스크래치
- 감독
- 서동훈
- 제작년도
- 2017
- 출연
- 안지환, 서동훈
영화 너머의 포스트-시네마를 가늠하면서, 여전히 남아있는 영화의 흔적도 제시합니다. 1. 2013년, 영화진흥위원회가 홍릉에서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30여 년간 운영해오던 필름 현상 업무를 종료했다. 이를 끝으로 국내의 모든 필름 현상소가 문을 닫게 되었고, 사실상 한국의 상업적 필름 관련 산업 대부분도 정리되었다. 이제 무비 필름을 현상하고 프린팅 하려면 해외로 보내야만, 무질서하게 흩어진 필름의 은입자를 만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은 필름이라는 매체의 물성을 점점 더 멀리 밀어내고, 디지털 이미지의 매끈하고 평평한 표면만을 우리의 시각 경험 중심에 남겼다. 미디어의 발전은 흔히 필름에서 비디오, 그리고 디지털로 이어지는 선형적인 궤적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비디오와 디지털을 먼저 접한 뒤 필름을 경험한 내 입장에서, 적어도 필름은 과거의 매체가 아니라 디지털 이후 새롭게 등장한 ‘뉴미디어’였다. 그러나 내가 필름이라는 매체를 알게 되었을 때, 이 ‘뉴미디어’는 이미 영화산업의 뒤안길로 물러나고 있었다. 사물의 가치가 경제적 효용성과 합리성을 통해 판단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름은 디지털 매체의 편리성과 효율성에 밀려 점차 추방되었던 것이다. 나조차도 효용의 관점에서 퇴보한 기술로 여겨졌던 이 사물을 직접 다뤄 보기 전까지는 필름에 대해 전혀 알 수 없었다. 흔히 필름은 그저 과거의 감성을 자극하는 수단으로 소비되거나, 디지털과 이분화된 대립 속에서 이해되곤 한다. 하지만 지금의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이 사라진 매체를 추억할 기억도, 향수에 젖을 과거도 없다. 이들은 단순히 필름과 디지털을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두 매체가 발생시키는 관계 를 통해 필름을 이해하고, 다룬다. 오히려 이런 관계가 미디어가 하는 일을 더 잘 알 수 있게 하며, 선형적 시간성에 대한 기성의 인식을 갱신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과 마주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투명한 감각>(2022) 독일 하메른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의 뒷이야기를 다룬 <투명한 감각>(2022)은 이와 같은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필름 애호가들의 실천을 사라진 친구를 기억해 내기 위한 세 사람의 분투로 알레고리화한다. 카메라는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남겨진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간다. 다리를 저는 아이,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아이. 이 세 아이는 피리 소리를 쫓아 사라져 버린 친구들이 남기고 간 사물들을 매개로 그들을 기억해 낸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조각을 덧대고 연결해가면서 서사를 작동시키고자 하는데, 이들이 재연해 낸 서사는 사라진 친구들의 시간을 그대로 복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지금 공동의 증언을 통해 새로이 구성되는 것이다. 이는 디지털 이미지 시대에 여전히 필름으로 작업하는 이들의 창작하는 방식에 관한 은유로, 이들은 더 이상 산업적으로 생산되지 않는 장비와 장치를 3D 프린트를 이용해 직접 생산하고, 그것들을 온라인 공간에 올려 자신과 같은 애호가들과 공유한다. 3D 모델링으로 새롭게 고안되어 공유되는 16mm 현상장비 3D 모델링 영사기 부품 중 필름 롤러 (사진: Thingiverse ) <투명한 감각>이 공동의 실천을 통해 과거의 매체를 ‘지금, 여기’로 불러냈다면, <베르팅커>(2022)의 경우 상상력을 통해 실존하는 별자리와 가상의 신화를 연결하여 매체를 ‘지금 여기’로 소환한다. <베르팅커>(2022) <베르팅커>는 실제 존재하는 별자리 ‘파리자리’에 착안해, 별자리가 된 사물의 삶을 은유한 작업이다. 1603년, 독일의 천구 지도 제작자인 요한 바이어(Johann Bayer)가 만든 천체 지도 ‘우라노메트리아(Uranometria)’에는 51개의 별자리가 표기돼 있는데, 그중 하나가 파리자리이다. 이 작품은 ‘파리자리’에 대한 가상의 설화를 만들어 필름의 의미에 대해 질문한다. <베르팅커>는 과거에 사물과 장소를 실로 묶어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 내는 정령에 대한 이야기로, 존재한 적 없는 ‘베르팅커’라는 대상을 상실된 것으로 상정함으로써 세계를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 작업은 디지털로 이미지를 촬영하고, 3D로 이미지를 생성한 뒤 이를 필름에 프린팅하고, 필름 위에 잉크로 직접 드로잉하는 과정을 통해 제작되었다. 디지털 작업을 통해 추상화된 이미지는 필름의 물질적 표면 위에 드러나며, 그 후 잉크라는 물질 자체가 필름 표면 위에 새겨지는 화학적 과정을 거친다. 이처럼 디지털과 아날로그 기기 사이를 반복적으로 오가며 제작된 <베르팅커>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익숙하지 않은 시각적 경험을 제안한다. 2. 디지털 시대에 우리의 경험은 더욱 개별화된 가운데 선택의 폭은 더 넓어졌다. 영화 역시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감상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제작 과정에서도 물리적·시간적 제약으로부터 한층 더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이렇게 확장된 선택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알고리즘이라는 체계는 우리의 선택의 폭을 익숙하고 비슷한 관심사 안에 가두고 있으며, 디지털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 역시 정해진 프로그램과 에셋(Asset)의 사용에 의존하여, 역설적으로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영화감독 조지 루카스(George Walton Lucas Jr.)는 디지털 기술이 전례 없는 창작의 자유와 효율성으로 모두가 영화를 제작, 배포할 수 있는 민주적 시대를 열 것이라 예견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한대로 디지털 이미지가 만들어 내는 환상적인 세계가 과연 우리의 경험을 민주적으로, 그리고 진정으로 확장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패터슨>(2016) 영화 < 패터슨 >(짐 자무쉬, 2016)의 주인공 패터슨은 버스 기사이자 시인이다. 그의 시는 버스 안에서 만나는 무작위의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패터슨이 좋아하는 시인이자 소아과 의사인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의 시 또한, 진료 현장에서 만난 예상치 못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해 탄생했다. 영화 속 래퍼가 읊조리는 윌리엄스의 시구 “관념이 아닌 사물로(No ideas but in things)”는 이러한 ‘직접적 접촉(immediate contact) *주1 ’이 창작의 본질임을 상기시킨다. 이렇듯 ‘직접적 접촉’은 단순히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과정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사람이나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확장해가는 행위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는 접촉을 통해 개별화된 ‘나’ 라는 존재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경험이었다. 이 접촉의 중요성은 비단 창작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데,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관람이라는 행위를 통해 예상치 못한 접촉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사람들과 나란히 앉아 낯선 이야기에 스스로를 밀어 넣는 것. 영화는 그런 낯선 접촉을 통해 우리의 시야를 확장한다. 반면 최근 디지털화된 우리의 경험은 점차 통제 가능하고 선택된 것들로 제한되며, 예측 불가능한 접촉에 대한 면역력을 잃어 가는듯하다. 이런 디지털 시대에, 필름 작업은 창작에서의 접촉과 제약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필름 장비를 구하기 위해서는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을 통해 예상치 못한 사람들과 접촉해야만 하는데, 이 과정에서 때로는 퇴역한 군인의 삶, 때로는 사라져 버린 극장의 은퇴한 영사 기사의 삶과 마주하게 된다. 필름이라는 물질적 저장 매체는 단순 도구를 넘어, 창작자와 물리적 환경, 그리고 그 환경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 형성된 일종의 연결 고리로 작용한다. 작업을 하며 만나게 된 사람들 (좌) 카메라 관련 장비수리 진영사 / (우) 서울아트시네마 전 영사 기사님의 작업실 또한, 필름의 물리적 특성은 창작에 있어 물리적 제약을 제시한다.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은 필름의 길이에 의해 제한되며, 이미지를 보기 위해 복잡한 현상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온도와 습도, 스크래치 등 물리적 조건에 민감한 필름은, 디지털 기술에서 간과되는 물질성과의 상호작용을 다시 일깨우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불확실성과의 접촉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경험이다. 작업 중 만나게 되는 이러한 예상 밖 사람들과 물리적·시간적 제약은 상상력을 요청했고, 예상치 못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알지 못했던 세계와 연결될 수 있었다. 상상력은 현실적 제약과 접촉을 토대로 성장하며, 디지털 세계의 무한한 자유만으로는 물질적이고 유한한 우리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루프>(2024), 설치 전경, 아마도예술공간 (사진: 조준용) 최근의 작업 <루프>(2024)는 이렇듯 디지털 장치들의 물질적 조건이 신비화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디지털 이미지가 만들어 내는 환상적 세계는 디지털 매체가 지닌 물질성을 얇은 표면 안으로 숨기고 이음새를 보이지 않게 만듦으로써 마치 그것을 비물질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이러한 특징은 디지털 이미지가 무한히 확장 가능하고, 물리적 한계에 구애받지 않는 세계를 구성할 수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신비화의 전략이 우리로 하여금 세계의 단편만을 경험하게 한다는 비판 아래, 최근 이미지 지지체들의 얇아진 세계를 열어젖혀 이미지 기기의 기능 중 하나인 반복 재생의 기능을 루프라는 시스템으로 가시화했다. 보다 가볍고 무한한 세계를 꿈꾸는 디지털 미디어의 시간에서, 인간의 몸을 비롯해 유한할 수밖에 없는 물질세계와 마주해 보려는 의도로 진행한 작업이다. <루프>(2024), 설치 전경, 아마도예술공간 (사진: 조준용) 디지털을 경유한 필름의 이미지들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세계를 더욱 잘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필름 이미징 작업은 단순히 과거 매체로의 회귀가 아니라, 새롭게 주어진 선택지를 활용해 지금의 선택지들을 재평가하게 해준다. 이런 의미에서 필름은 우리에게 ‘관념이 아닌 사물’로서, 일상 속에서 우리가 가진 제약과 타인의 이야기로부터 예상치 못한 응답을 이끌어내는 활동이 아닐까? 디지털 시대에 불편하고 현실적인 제약에 끊임없이 응답해야 하는 접촉과 그로 인해 지속적으로 궤도를 이탈하게 되는 필름 작업은 포스트-시네마 시대에 영화가 가진 힘을 재조명하며, 다양한 존재와 현실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새로운 삶의 양식을 제시하는 상상력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 주1. 윌리엄스는 시는 도서관 같은 고독한 공간에서 벼려진 시인의 독특한 관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껏 거의 무시되어온 사물이나 환경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면서 그것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쓰여져야 한다고 믿었다. (진은영, 김경희, 「영화 <패터슨>에 나타난 시와 예술의 공공성」, 『문학치료연구』 50호, 한국문학치료학회, 2019, 181쪽.) 윌리엄스가 다루는 대상은 매우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이지만 그 주위의 시간과 공간은 이상하게 왜곡되어 드러나는 것이다. 윌리엄스는 오로지 평범함을 통해서 평범함을 벗어나([the] banal to escape the banal)(SE 236)고자 하였으며, 오로지 상상력을 통한 사물과의 직접적인 접촉으로 인해 사소한 일상 속에 감추어진 광대한 우주의 법칙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류기택,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 시적 상상력과 상대성 이론」. 『영어영문학연구』 41호(1), 32쪽.) 한우리(미술작가) l 물질이 만들어내는 시간을 좋아한다. <포털>(2024), <루프>(2024), <베르팅커>(2022) 등 작업.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 영상으로 이동) * 위 이미지와 영상에 표기된 참여자의 직급과 부서는 인터뷰 일자 기준이며, 현재와 다를 수 있습니다. 입지 및 개요 2016년 개관한 파주보존센터는 한국영상자료원 보존·복원 업무를 집중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본원과 별도로 건립된 보존·복원 전문시설이다. 상암본원 보존고와 더불어 이원 보존 체제를 구축하여 재난재해에 대비하고 있으며, 필름 보존·복원을 위한 인화현상 설비, 4K 기반 필름 디지털화 및 복원 시스템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별 최첨단 보존연구시설과 전문 인력을 갖추어 우리나라 영상문화유산을 후대에 전승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301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 파주보존센터는 ‘파주출판도시’라고 알려진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에 위치하고 있다. 상암본원과는 30km 거리로 자유로를 통해 연결되어 양원간의 접근성을 확보하고 있다. 즉, 파주를 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접근성이다. 개관 당시 영상자료원 조소연 경영기획부장은 “충청권, 강원권도 검토했으나 하루에도 여러 차례 본원과 센터 사이에 자료가 오가야 하는 만큼 거리적인 이유를 가장 크게 고려했다”라고 기자간담회에서 설명한 바 있다. 파주보존센터 1층 색재현실 겸 영사실 책과 영화를 중심으로 한 문화산업을 위해 조성된 계획도시인 파주에 위치한 만큼 연구 및 보존시설로서의 교통 및 입지가 잘 갖추어져 있으며 반대로 대민시설로서의 기능은 상암본원에 비해 크지 않다. 실제로 개관 이후 2020년까지 시민들을 대상으로 영상도서관을 운영하였는데, 방문객의 감소, 인력 부족과 자료 보존 등의 이유로 2021년 1월 1일부터 ‘보존복원연구실’로 변경되었다. 이원 보존을 위한 구상이 실현되다 1990년 이래 예술의전당 임대 생활을 끝내고, 2007년 상암동 본원으로 이전한 영상자료원은 이전 직후부터 이미 아카이브의 고질적인 문제에 직면해야 했다. 바로 보존공간의 부족이다. 상암동 시설은 기본적으로 극장, 박물관, 도서관, 사무국 등 서비스 중심의 시설들로 채워졌고, 보존공간은 3층과 4층의 일부 공간에 할애되었다. 이에 보존시설의 별도 확보가 절실한 과제가 되었다. 또한 아카이브 자료 보존의 기본 원칙, 즉 동일 자료를 다른 곳에 보존한다는 이원 보존 원칙을 위해서도 별도의 보존공간이 필요했다. 이에 한국영상자료원은 2009년 7월 건립 기본계획을 수립했고 2011년 9월과 12월에 걸쳐서 한국영상자료원 제2 보존센터 조성방안 연구를 진행했으며, 건립 예산이 확정되었다. 다음 해인 2012년 8월 건립부지를 매입하였고, 2012년 11월 설계 공모, 2013년 4월 설계를 착수해서 5월에 완료되었다. 2014년 착공되어 일 년여가 지난 2015년 12월 준공되었고, 다음 해인 2016년 5월 19일에 정식으로 개관하였다. 파주보존센터는 본원의 부족한 보존공간을 확보하는 동시에 영상자료원의 보존·복원 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건립된 독립 청사라 할 수 있겠다. 파주보존센터 3층 필름 보존고 영상 보존과 복원, 연구를 위한 완벽한 인프라 무엇보다 파주보존센터의 건립으로 향후 30년 정도 수용 가능한 충분한 보존공간이 확보되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파주보존센터 건립 이전 상암본원의 보존고 수장률은 거의 100%에 달해 수장 여력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완공 이후 필름 보존고 수장률은 70% 내외로 떨어졌고(현재는 다시 거의 90%로 높아짐), 비디오 및 비필름 보존고는 50~60% 내외의 수장률을 보이고 있다. 5℃ 이하의 저온 보존고가 기존 2개 실에서 10개 실로 확충됨에 따라 필름 영구 보존 가능성은 더욱 확대됐고, 파주-상암 간 이원 보존 체계 구축의 완성으로 재난, 재해 등 만일의 사태에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파주보존센터 내에 필름 현상실이 새로 구축된 점도 특기할 만하다. 필름 열화를 최대한 지연시키기 위한 각종 보존처리도 중요하지만, 필름을 영구 보존할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방법은 기존 필름의 내용을 새로운 필름으로 옮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필름 기반 산업이 저물면서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필름 현상소가 속속 문을 닫아 필름의 복원·복사가 어려워지고 있는 시점이라, 보존센터 내에 현상시설을 갖추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마침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운영하던 인화현상 시설을 이관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상당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파주보존센터에 이전 설치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영상자료원은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필름 인화현상 시설을 유지하는 아카이브 기관이 되었다. 파주보존센터 현상실은 훼손 우려가 있는 유일본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을 마스터 필름으로 복사하거나 유일본 프린트를 인터 네거티브 필름으로 복사하는 일을 주로 수행하고 있다. 파주보존센터 1층 필름 인화현상실 파주보존센터 건립과 함께 고해상도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필름 디지털화 설비가 4K 기반으로 전면 업그레이드되었다. 이와 함께 필름 스캔실, DI색재현실, 화면복원실, 음향복원실, 영상편집실, 중앙장비실 등 최적화된 작업 환경이 구축됐고, 4K 해상도 필름 스캐너와 색보정기, 마스터링 장비는 물론, 사운드 필름 전문 스캐너가 신규 도입됨에 따라 고품질 디지털화 작업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 결과 전적으로 외주용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디지털 복원 사업을 자체 디지털 복원 시스템과 복원 전문 인력을 갖추고 직접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당해 연도 심화 복원 대상작으로 선정된 1~2편만이 복원의 혜택을 입었을 뿐, 대부분의 디지털화 결과물은 색재현 작업 위주로만 진행됐기 때문에 먼지, 스크래치, 흔들림, 노이즈 등이 제거되지 못한 상태로 종료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파주보존센터 건립을 계기로 자체 복원 시스템이 구축됨에 따라 필름 디지털화 과정에 복원이 핵심 공정으로 포함될 수 있게 되었고, 우수 한국고전영화를 고품질 디지털시네마로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파주보존센터 2층 음향복원실 파주보존센터는 필름 외에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디지털 영상 콘텐츠 아카이빙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구축됐다. 디지털시네마 등 디지털로 수집된 콘텐츠와 디지털로 변환된 결과물들은 검수 및 카탈로깅 과정을 거친 후, 자료 분류에 따라 아카이브 스토리지에 선별 저장되고, 백업용으로 LTO 테이프에 2부 복사되어 파주보존센터와 상암본원에 이원 분리 보존된다. 내외부 자료 이용 요청에 따라 다양한 포맷으로 변환, 편집해 신속히 공급하는 역할도 물론 수행한다. 그 외 필름에 비해 수명이 월등히 짧은 비디오 매체에 대한 영구 보존 강화를 위해 미보유 또는 단종이 예상되는 영상음향장비들이 구비되었고, 문헌자료 소독기, 대형 컬러 스캐너 등 비필름 자료에 대한 보존처리 장비 보강도 이어지고 있다. 파주보존센터를 계기로 보존·복원 인프라가 많은 부분 강화되면서 새로운 보존·복원 전문 인력이 보강되었다. 이는 보존처리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고 전수할 숙련된 전문가의 양성이라는 아카이브의 중요한 과제를 이행하기 위해 한 걸음 더 내딛은 성과이다. 공간 및 운영 개요 1. 위치 :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301 한국영상자료원 파주보존센터 2. 설립일 : 2016년 5월 19일 개관 3. 대표자 : 김홍준 4. 규모 : 연면적 9,294.78㎡ 지하1층-지상5층 5. 공간 구성 - 지하1층: 주차장 - 1층: 현상실, 보존기술센터 사무실, 시사실(색재현실로 사용중) - 2층: 색재현실, 스캔레코딩실, 영상편집실, 음향복원실, 필름검색실, 디지털아카이빙실, 전산운영실 - 3층: 필름보존실 1~10, 스틸보존실 1·2, 디지털보존실 1·2 - 4층: 디지털보존실 3, 비디오/오디오보존실 1·2, 문헌보존실 1·2, 박물류보존실 1·2, 포스터보존실, 비필름보존연구실, 비디오/오디오보존연구실 글/진행 : 김문경 사진 : 허 성 취재 일자 : 2023년 9월 20일
“영화는 비-영화적인 메시지를 위해 오용되어서는 안 된다” 빌헬름 하인과 비르기트 하인(이하 W+B 하인)이 첫 영화 < S & W >(1967)를 만든 이후 약 10여 년간 이어간 영화 제작 활동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개념이 있다면 재생산(reproductions)일 것이다. 전후 서유럽의 언더그라운드 실험영화에 대한 살아있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XSCREEN: Materialien über den Underground-Film』(1971)의 77쪽을 보면, ‘재생산에 내재한 미학 Reproduktionismmanente Ästhetik’이라는 제목아래 쓴 짧은 글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내용을 한번 살펴보자. “재생산 과정만으로도, 이미 필름의 미적 특질은 결정된다. 영화라는 공간은 서로 다른 재생산 과정 안에서 원본(vorlage)이 변화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곳이다. 이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원본(사진)은 16mm 카메라로, 8mm 카메라로, 비디오카메라로, 그리고 스틸 카메라(슬라이드)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공간에서 동시에 재생된다.” W+B 하인은 필름의 재생산의 결과로 나타나는 지각 효과를 전경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즉 영화에서 재생산 저 혼자서 발생시키는 미학적 경험을 선명히 하려 한 것이다. 재생산의 과정에서 무엇이 일어나는가? 이러한 맥락에서 그들의 관심사가 처음으로 드러나게 된 작업이 바로 < 생필름 Rohfilm >(1968)이라고 할 수 있다. 《Film as Film》(1977) 도록에는 비르기트 하인이 구조영화(Structural Film)에 대해 소개하고 그 역사를 서술한 글이 있는데, 그가 구조영화의 특징 중 처음으로 손꼽은 것이 ‘필름 스트립’이다. 여기에는 구조영화가 필름 스트립을 사용하는 세 가지 방법이 안내되어 있다. 첫 번째는 시각적인 ‘과정’이다. 필름의 연속이 내러티브 영화에서 내러티브 시퀀스를 만든다면, 구조영화에서는 시각적인 리듬으로 기능하는 데 이용된다. 두 번째는 네거티브와 포지티브 필름의 화학적 현상 과정이고, 세 번째는 필름 스트립의 표면에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풀로 무언가를 붙이거나, 흠을 내는 것이다. 아무것도 촬영되지 않은 투명한 필름은 스크린에 흰빛만을 영사할 뿐인데, 이것 또한 ‘영화’로 인정한다. < 생필름 >을 보면 우리는 비르기트 하인이 언급한 이러한 특징을 모두 확인해볼 수 있다. < 생필름 >은 말 그대로 눈앞에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 모를 혼란스러운 경험을 선사한다. 빌헬름 하인의 얼굴이나 네거티브로 드러나는 남성의 형상, 쾰른 대성당을 롱 샷으로 찍은 장면 등 이미지의 파편들이 일정한 내러티브나 목표를 가지지 못하고 스크린에서 부유하듯 흐른다. 중간중간 남녀가 벌거벗은 채 침대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장면이나 누군가가 책상에 앉아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것 정도만이 형상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촬영된 이미지일 뿐이다. 스프로켓 홀과 필름의 경계가 화면에 드러나고, 스크래치, 일그러진 얼룩이 추상적인 조형이 되어 점멸한다. 두 종류의 필름 스트립이 한 화면에서 동시에 나타남으로써 검은 선으로 나뉜 분할화면의 효과가 생성되기도 하는데, 이 모든 시각적 자극이 뒤죽박죽된 영화는 20여 분 동안 지속된다. W+B 하인은 <생필름>을 위한 필름 스트립을 만들기 위해 머리카락, 먼지, 담뱃재, 잘게 조각난 네거티브와 포지티브 필름이미지, 종이 파편, 이어 붙인 천공 테이프 등을 비어있는 필름에 붙이고 여기저기 흠집을 냈다. 풀로 오브제를 붙여 두꺼워진 필름 때문에 회전이 때때로 멈추게 되면서 같은 이미지가 계속해서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매우 느린 속도로 재생되면 프로젝터의 열이 필름을 녹이고, 이미지의 형상을 변화시킨다. 이 필름은 무비올라에 올라가 다시 8mm 혹은 16mm로 촬영되고, 재촬영 본은 임의로 선택된 필름 조각이 붙여진 뒤 재촬영된다. < 생필름 >을 통해 W+B 하인이 주요하게 내세웠던 태도는 앞서 말한 것처럼 필름이라는 물질 그 자체라기보다는 재생산의 전반적인 과정이다. 그들이 최초로 만든 필름 스트립은 또 다른 재생산 과정을 위해 소요될 뿐이며, 물신화되지 않고 폐기된다. 그 결과로 남는 것은 매우 강렬한 파괴의 인상을 주는 영상 이미지이다. 여기서 ‘파괴’적인 인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생필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이것이 꽤 중요한 감각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만든 다른 작업을 떠올려 보자. 스탠 브래키지의 < Moonlight >(1963)는 나방의 날개나 잡초, 꽃 등을 투명한 필름 위에 붙인 것으로, 다소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운율을 전달한다. 오웬 랜드(조지 랜도우)의 < Film in Which There Appear Edge Lettering, Sprocket Holes, Dirt Particles, Etc. >(1965-66)는 여성의 상반신 초상이 담긴 필름을 중앙에서 빗겨나게 두어 스프로켓 홀과 필름에 적힌 숫자뿐만 아니라 먼지 따위가 모두 화면에 나오도록 했는데, 여기서는 영사된 이미지가 어떤 감정을 환기시킨다기 보다는 필름의 자기-지시적인 측면이 도드라질 뿐이다. 반면 W+B 하인에게 중요했던 것은, 영화의 한정적인 생산 양식 안에서 기존의 이미지를 다시 생산하는 행위 자체만으로 어떤 이미지의 효과, 미학적 상태가 발생할 수 있는지 탐구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사운드의 기능 또한 중요하게 등장한다. 사운드는 W+B 하인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였다. W+B 하인의 초기 작업에서 대부분의 사운드를 담당했던 것은 비르기트의 형제였던 크리스티안 미카엘리스(Christian Michelis)였다. W+B 하인이 이미지에, 미카엘리스가 사운드에 집중하여 비재현적이고 형식적인 영화 만들기에 헌신하면서, 그들은 사운드와 이미지 사이의 부조화, 그리고 비동시적인 관계를 성취하고자 했다. 사운드에 관한 미카엘리스의 생각을 살펴보자. “사운드는 영화의 분위기나 특정한 형식적 측면을 강조 혹은 무시하며 일종의 해석을 제공한다. 음향의 영역에서는 영화의 형식적인 문제나 기술적인 문제와의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유사성은 직접적으로 대응되는 것이 아니라 재료들의 조직과 유사하다. 이론적 개념들의 유사성보다 중요한 것은, 필름과 사운드의 효과로서 즉각적으로 지각되는 감각의 상호작용이다.” W+B 하인과 미카엘리스는 (그들이 뉴 아메리카 시네마의 작품들에서 확인한 순진한(naive) 전술이라고 할 수 있는) 익숙한 사운드를 거부했고, 관객이 편안함을 느끼지 않기를 바랐다. 영화의 지속 안에서 부유하며 감정적인 측면을 제공하는 음향은 스크린에서 아주 잠깐 동안만 식별 가능한 이미지의 발생과 같은 감각적인 인식을 요구한다. < 생필름 >은 1968년 11월 뮌헨에서 열린 “유럽 독립영화 감독들의 모임 European Meeting of Independent Filmmakers”에서 처음 상영되어 무척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으며, 빠른 속도로 주목을 받게 된다. 바로 뒤이어 뉴욕, 런던, 도쿄, 그리고 프랑스 감독 조합에 의해 설립된 비경쟁 프로그램인 감독주간(L Quinzaine des Realisateurs)을 통해 칸 영화제에서도 선보이게 된다. 그런데 비르기트가 이탈리아 영화감독 알프레도 레오나르디에게 쓴 편지를 보면 칸에서 <생필름>을 본 관객들에 대한 흥미로운 묘사가 나온다. “우리가 풀 사운드로 <생필름>을 보여주자, 관객들은 소리를 질렀고 마지막 십분 동안에는 상영을 중지하라는 박수를 쳤다. 그건 정말로 테러였다.” 이는 대부분 미카엘리스의 타협하지 않는 사운드 때문이었는데, 제5회 국제만하임영화제의 경쟁부문에서 상영될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관객들은 야유를 보내고 소리를 질렀는데, 한 신문의 지면에서는 이에 대해 “영화의 노이즈가 주는 메시지에 대한 적절한 응답”이라고 쓰기도 했다. 그러나 당대의 동료들이나 아방가르드 영화감독들에게는 이 영화가 그들의 실천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것임을 적절하게 인지했다. 그들은 W+B 하인의 초기 영화들이 뉴 아메리카 시네마의 작업들과는 변별된다고 생각했다. 영국의 영화비평가 데이비드 커티스는 그의 저서 『Experimental Cinema: a Fifty Year Evolution』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필름이라는 물질에 대한 확신과 프로젝터 안의 물질이 지닌 존재감은 압도적이었으며, 내가 본 모든 미국 영화보다 강력하다.” 스티븐 드워스킨이 <생필름>에 대해 “시각적 폭탄”이라 표현한 것도 그렇게 과장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필름의 재생산이 낳은 “시각적 폭탄”과도 같은 강렬한 경험이라는 것은 단순히 수사에 그치는 것 같지 않다. 그보다는, W+B 하인이 영화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시화하기 위한 의도인 것처럼 보인다. 비르기트 하인이 1975년 『스튜디오 인터내셔널 Studio International』 11/12월호에 쓴 글은 영화의 영역에서 그들이 무엇을 추구했는지, 그리고 영화에 대한 태도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준다. 이 글은 『Film as Film』 도록 마지막 부분에 개별 작가의 필모그래피와 함께 발췌되어 실렸다. “우리의 영화는 미학적인 창조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시작점은 어디인가? 예술과 과학의 경계는 어디인가? 재생산의 기술적 과정은 어느 정도 수준으로 미학적 변형의 기본 단계로 여겨지는가? 이미 재생산된 현실의 해석을 촬영할 때, 가장 단순한 카메라의 조작은 어느 정도인가? 조작된 추상과 실제적인 물질 이미지의 대결에서, 또 다른 문제는 명백해진다. 이는 예술을 다룰 때면 언제나 발생하는 문제인데, 실제 오브제와 그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는 도록의 볼 때의 괴리를 상상해보라. 바로 이것이 육체적으로는 경험할 수 있지만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 시각적 형식의 ‘표현’이다. 이것이 하워드 아이헨바움이 영화의 ‘포토제닉, 자움(the zaum) - 본질’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이성을 넘어선, 이성 앞에 뉘어있는 언어’이다. 구조에 대한 연구는 이 문제를 걸고넘어지는 첫 시도이다. 작품의 ‘무의식적’ 요소를 의식적인 과정으로 만드는 것이 얼마만큼 가능한지 살피면서 말이다. 만약 당신이 사회와 사회의 역사적 과정의 바깥에 예술과 예술가를 놓아두고자 하는 이데올로기, 즉 무의식의 창조적인 힘이라거나 천재와 같은 낭만을 넘어서고 싶다면 이 질문은 중요하다. 영화는 종종 ‘손가락 운동’ 이라거나 예술이 아닌 것으로 평가되곤 했다. 이러한 반응은 느슨하고 열려 있는 영화의 구조 때문에 발생한다. 이는 고전적인 예술 작품의 닫힌 형식이나 유일성의 이데올로기에 반대되는 개념 중 일부이다. 영화의 구조는 변화와 연속에 열려 있다. ‘예술 작품’은 닫혀 있으면 안 되며 반드시 그 스스로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작업의 과정을 열어 두는 것이 필요하며, 영화를 교훈적인 것에 가깝게 만들어야 하고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회고적으로 보면 < 생필름 >은 W+B 하인이 뒤이어 제작한 개별 영화에서 추구했던 미학적 전략이 응집된 핵심적인 작품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제목에서조차 그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작업 <재생산 Reproductions>(1968)은 W+B 하인이 아프리카, 이탈리아, 그리스 등지에서 휴가를 즐기며 찍었던 흑백 슬라이드 한 종류만을 이용해 만든 영상이다. 카메라는 풍경이나 건물이 찍힌 정지한 이미지를 훑기도 하고, 초점을 또렷이 맞췄다가 흩뜨리기도 한다. W+B 하인의 초기 작업에서 특징적인 것이 있다면, 비르기트가 말하듯 “개인적인 이미지를 형식적인 맥락에서”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625>(1969)는 순수한 추상처럼 보인다. ‘625’라는 제목이 지시하는 것은 PAL(Phase Alternation by Line) TV의 프레임당 주사선의 숫자이다. 볼렉스 16mm 카메라로 TV의 화면을 찍게 되면, 아날로그 비디오와 필름 카메라의 서로 다른 초당 프레임 숫자 때문에 두꺼운 검은색 띠가 생겨나는데, 1969년 빌헬름이 쿠르트 크렌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가 1초당 8~32프레임으로 촬영 속도를 조절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가 <625>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카메라의 재촬영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띠의 두께와 속도, 움직임 등이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고, 그 운동에서 발생하는 리듬을 느낄 수 있다. <머테리얼필름 Materialfilme>(1976) 시리즈에 이르러서는 필름의 재생산 과정보다는 이미 주어진 발견된 오브제(found object)로 탐구의 방향을 선회한다. 이를 마지막으로, 그들은 필름 만들기를 중단하고 1978년부터 독일 곳곳을 돌아다니며 클럽이나 바에서 직접 퍼포먼스를 선보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재생산 과정을 거친 이미지의 지각적 효과와 그 미학을 탐구한 W+B 하인의 초기 활동은 30여 개가 넘는 실험적인 작업을 뒤로하고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다. 빌헬름 하인 Birgit Hein과 비르기트 하인 Wilhelm Hein (W+B 하인) 덧붙여 보자면,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후반까지의 기간 동안 W+B 하인이 영화의 영역에서 수행했던 것은 작품 제작뿐만이 아니다. 1966년 본격적으로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먹고 그 이듬해인 1967년은 그들이 영화에 관한 기획까지 아우르는 전방위적인 활동을 이어나가는 데 영향을 준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난 한 해였다. 그중 하나가 67년 10월 로마에서 < Bliss >(1967)를 상영하던 자리에서 그레고리 마르코폴로스를 만난 일이었다. 이를 계기로 W+B 하인은 마르코폴로스를 쾰른으로 초대하여 상영회를 마련한다. 12월 11일 마르코폴로스의 < Eros, o Basileus >가 쾰른대학에서 상영되었는데 무려 1천 명의 관객이 왔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W+B 하인이 벨기에 크노케(Knokke)에서 열린 제4회 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에 참석한 일이었다. 이 행사는 영화를 선보이고 토론하는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아방가르드 영화의 유통, 비평, 프로그래밍 등의 국제적 협력을 도모하는 곳이었는데, 67년의 행사는 유럽에 ‘언더그라운드’ 아방가르드 영화를 확산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W+B 하인은 쾰른으로 돌아와 1968년 국제적 아방가르드에 초점을 맞춘 정기적인 스크리닝 시리즈 《XSCREEN》을 그의 동료들과 기획하여 만든다. 이후 그들은 10여 년간 아방가르드 영화 이벤트를 꾸준히 마련하며 필름 큐레이팅에 대한 경험을 착실히 축적해 간다. 1977년에는 《도큐멘타 6》을 비롯해 《Film as Film》과 같은 대규모 전시에 공동 기획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 뮌헨 필름뮤지엄(Filmmuseum München)에서 출판하는 DVD 시리즈 ‘Edition filmmuseum’을 통해 W+B 하인의 초기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 시리즈의 54번 에디션으로 제작된 『Materialfilme1968-76』(2012)에는 < 생필름 >을 비롯해 <재생산> <625> <초상들 Portraits>(1970), 그리고 <머테리얼필름> 등 W+B 하인의 주요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DVD에 포함된 소책자에는 W+B 하인에 대한 마크 시겔의 소개가 있는데, 본 글은 마크 시겔의 글을 참고하여 작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