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소년 탐정 김전일
- 감독
- 안일환
- 제작년도
- 2002
- 출연
- 이진서, 정경진
“나는 본디 활동사진을 좋아하는 터에 단성사 신파 활동사진을 요새 가 보니까 참 조선에 처음 되는 것으로 어찌 마음에 상쾌하고 좋은지 모르겠어요.” -애활가(愛活家), 《매일신보》 1919년 10월 31일자 4면. 1919년 10월 《매일신보》의 독자 한 사람이 단성사에서 공개된 조선 최초의 연쇄극 <의리적 구토>(김도산, 1919)를 관람한 후, 연쇄극에 삽입된 활동사진에 대한 감격을 신문에 투고했다. 그는 자신을 “애활가(愛活家)”라고 소개했다. 애활가란 ‘활동사진 애호가’를 가리키는 말로, 종로와 본정(本町)을 중심으로 극장이 들어서고 그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구경꾼이 늘어난 1910년대 중후반부터 신문지상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 용어다. 《매일신보》에 투고한 이 애활가는 연극과 영화가 결합한 연쇄극 <의리적 구토>에서 전성기를 지나 저물어가는 신파극의 긴 그림자보다 조선 사람들도 활동사진을 제작할 수 있다는 여명(黎明)을 보았다. 같은 해 12월 어느 날, ‘예술잡지’ 『녹성(綠星)』(편집 겸 발행인 이일해)이 발간되었다. ‘경성 죽첨정 1정목 39’에 발매소를 둔 『녹성』은 원래 문예지로 기획되었지만, 사정상 첫 호는 영화 분야의 재료만 다루었다. 근대 초기의 불안정한 출판 환경 속에서 나온 잡지들이 그렇듯 『녹성』도 창간호가 곧 종간호가 되는 불운에 처했고, 그러다 보니 『녹성』 창간호는 본의 아니게 ‘애활가’에 의한, ‘애활가’를 위한, ‘애활가’의 잡지가 되었다. 환하게 이를 드러내고 웃는 여배우를 표지 모델로 내세우고, 제럴딘 파라(Geraldine Farrar), 그레이스 커나드(Grace Cunard), 몰리 말론(Molly Malone)과 에디 폴로(Eddie Polo) 등의 권두 화보를 넣어 만들었지만, 본문 중에는 화보가 거의 없어서, 구경하기 좋아하는 애활가들의 욕구를 만족스럽게 채워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조선 애활가들을 실컷 울렸던 블루버드 영화사(Blue Bird Photoplay Inc.)의 신파영화 해설부터 “아무리 큰 우수(憂愁)를 안고 있는 우려객(憂慮客), 아무리 사경에 빠진 병자라도 그의 동작에는 큰 소리로 웃지 아니치 못”하는 중절모의 ‘잡후린(雜侯麟, Charlie Chaplin)’ 선생까지 모두 이 한 권의 책 속에 모았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획기적인 일이었으리라. 대중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물적 기반으로서 극장의 출현이 중요했듯이 그 공간을 향유할 수 있는 관객 집단의 등장 역시 주목할 장면이다. ‘애활가’라고 밝힌 이가 자신의 감상평을 직접 신문에 투고하고 애활가 집단을 겨냥한 잡지가 출간되는 등 1910년대 말과 1920년대 초 서울의 분위기는 소박하나마 적극적인 관객층이 형성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애활가들은 문명국가에서 온 박래품의 신기함 때문에만 극장을 찾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활동사진 그 자체에 매료된 이들이었고, 그러한 스스로를 특별히 ‘애활가’라 칭함으로써 다른 관객과 자신을 구분 지으려는 사람들이었다. 일본어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이라면 『활동사진계(活動寫眞界)』, 『활동화보(活動畵報)』, 『영화세계(映画世界)』와 같은 일본 영화잡지를 보고, 메리 픽포드(Mary Pickford)나 더글라스 페어뱅크스(Douglas Fairgbanks) 등 외국 배우들의 이름을 곧잘 입에 주어 담으면서 은근히 뽐낼 줄도 알았다. 영화를 보고 비평하며 그 자신의 고급한 취향을 과시하는 애활가. 이런 애활가가 된다는 것은 근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체화하는 일이기도 했다. 1920, 30년대의 잡지에는 애활가가 되려면 그에 앞서 극장에서 지켜야할 예법(禮法)을 몸에 익숙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마냥 「고급영화팬 되는 비결 십칙(十則)」 1 이나 ‘극장 예법’을 다루는 ‘모던 생활 강좌’ 2 같은 글이 잡지에 실리곤 했다. 조선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과잉의 형식을 설명하고 있는 예법 강의는 그런 매너가 몸에 배어야 ‘고급(high and noble)’한 모던 라이프를 진정 향유할 수 있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겼다. 극장을 찾는 자신을 특별히 과시하고 싶은 사람들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글이지만, 애활가가 되고 싶은 이들의 귀는 이런 글에도 제법 솔깃했을 듯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애활가의 일은 먼저 신문광고에서 볼 만한 영화를 선택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애활가는 그 영화의 감독과 주연배우, 스틸 컷 등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숙지하고 극장을 찾아야 하며, 극장에서 받아보는 프로그램 순서지의 도움 없이도 영화의 플롯이나 주제를 이해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추어야 한다. 영사가 시작되었는데도 불빛을 훔쳐 프로그램을 읽으려 애쓰는 사람은 ‘영화팬’의 기본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평소에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는 영화비평을 정독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무릇 애활가라면, 이미 본 영화를 또 보더라도 옆 사람에게 영화의 줄거리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예의이며 프로그램 진행 중에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간혹 박수를 칠 만한 장면에서도 너무 흥분하지 말 것이며, 다른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그치기 전에 박수를 끝내는 것이 좋다. 프로그램 중간 ‘10분 휴식’ 시간에는 극장의 전속 악단이 음악을 연주해 주는데, 이때는 휴식 시간이므로 연주가 끝났다고 해서 손뼉을 치거나 해서는 안 된다. ‘주악’에 너무 귀를 기울이거나 “헐하게 감격”하지 않는 것이 요점이다. 극장의 스크린 옆에는 유리등을 끼워놓고 호출할 사람의 이름을 적어 신호하는 통고등(通告燈)이 있는데, 여기에 이름이 비치면 전화가 왔거나 일행이 찾는 것이니 조용히 일어나 나가면 된다. 스스로가 활동사진 애호가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고 공공질서를 지켜가면서 조용히 영화를 즐기고 감상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사실 극장 예법을 잡지에서 배운 사람이 조선에서 그의 이상대로 조용하고 우아하게 영화라는 예술을 ‘고급하게’ 감상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의 신문과 잡지에 그려진 극장의 풍경은 무성영화가 상영되는 시대의 극장이 온전히 감상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음을 암시한다. 변사는 때로 영화와 무관하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하고, 자막을 잘못 해설하기도 한다. 그런 변사의 해설에 관객들은 울고 웃고, 때로는 야유를 보내기도 한다. 입에 손가락을 넣고 휘파람을 불어대거나 손뼉을 치거나 발을 동동 구르며 관객들이 한바탕 법석을 벌이는 것이다. 영화 상영 중에도 과자를 파는 사람이 객석을 돌아다니고, 전화 온 손님의 이름을 버럭 부르는 직원도 있다(극장의 전화 교환은 다른 관객들의 관람을 위해서 점차 통고등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갔다). 자주 정전이 발생하고, 영사가 돌연 중단되는 일도 많다. 어떤 관객은 옆 사람의 입에서 품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에 숨이 막히는 듯 했을 것이다. 냉난방 설비가 충분하지 않은 극장에서는 여름이면 겨우 몇 개의 부채, 겨울이면 화로 몇 점으로 더위와 추위를 견뎌야 했을 것이다. 결국 애활가의 극장 예법이란 극장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침착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노하우, 그런 매너를 갖춘 관객이 되는 법이었다. 1) 스크린 빨-쥐, 『별건곤』 제 29호(1930년 6월), 108~11쪽. 2) 청의아(靑衣兒) 생, 「현대 신사 숙녀로서 알아 둘 모던 생활 강좌」『조광』 1936년 1월호, 222쪽. 상단 그림. 극장 안 풍경 출처: 석영 생, 「서울행진(5) 480석, 5년간 중학생 학비」 《조선일보》 1928년 11월 7일자 3면. <자료> ※ 이하 자료는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현대어 표기에 맞게 다시 썼다. 일부 표현은 문맥에 맞게 다듬었다. 1-1. 「극장만담」『별건곤』 제5호(1927년 3월), 94~5쪽. (부분 발췌) 근일에는 극장을 가보면 관객의 변천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장내가 소란치 않은 것이다. 그리고 유년 관객이 적어진 것이니 그것은 입장료가 고가이고 예전과 다른 정도 높은 영화를 해득하기에 어려운 까닭이라 할지 가정에서 감독이 심한 까닭인지는 모르나 비판력이 모자라는 그들에게는 다행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특별히 변한 것은 희소하던 부인석에 남자석 이상으로 매일 만원인 것이다. 노부인, 여염집 부녀, 기생 그리고 여학생들인데 진기한 일은 그중에서 성에 갓 눈뜬 여학생이 반 수 이상을 참렬한 것이다. 그 뿐 아니다. 경악할 인은 ‘키쓰’하는 장면–그 순간에는 반드시 질식할 듯한 외마디 소리가 부인석에서 의례히 돌발한다. 그런데 부인석 중에도 머리 틀어 얹은 젊은 여인들 모여 앉은 곳에서. 이 말은 거짓말인가. 거짓말이 아닌 것은 극장 출입 잦은 이에게 물어보면 알 것이다. 어쨌든 세상은 변하였다. 극장 간판―이 간판도 수년 전에 비하면 여간 발전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늘 보면 그 간판의 그림은 그림으로 보아서는 덜 추하나 그 영화 중에 그 영화 전편을 통하여 제일 주요한 신을 빼놓고 영화 자체에 있어서도 제외하여 버려도 실패가 안될 장면만을 그리는 때가 많은 것이 그 간판, 더욱이 극장 간판의 임무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러한 극장 간판 중 좀 미안한 말이지만은 우미관 간판이 좀 천한 느낌이 있다. 그 간판은 입장료를 5전씩 받던 옛날 그 시절과 현재와 별반 차도가 없는 것이 그 관을 위하여 좀 불안하다는 말이다. 극장 내부―근일에는 단성사의 영화막(스크린) 상하좌우의 장치가 예전보담은 색채라든지 구성이 좀 아담한 듯하다. 그리고 조선극장은 옛날과 그리 현격한 변화가 없지만은 그저 추하지는 않다. 우미관도 그저 그러하다. 10분 휴식―10분 휴식에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관객의 피로한 뇌를 쉬게 하는 데는 퍽 유효할 것 같다. 그러나 그때에 변사가 나와서 잔소리하고 서있는 것이다. 한마디도 들어서 유리할 데 없는 자기의 회포를 천 명이나 오백 명의 청감을 가진 관객에게 늘어놓아서야 미안치 않은가? 다음번에 갈릴 영화 예고를 한다는 목적이라 하더라도 무대 위에 예고간판을 세워놓고 프로그램지에 적어놓고 또 무슨 필요가 있을까? 물어본다. 그리고 10분 휴식 간에 오케스트라도 있으려니와 무슨 다른 여흥이 있으면 좋겠다. 그것은 경영난인 현금의 극장에 주문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무도나 독창이나 독주나 있었으면 10분 휴식하는 의의가 있지 않을까 한다. 음악―어느 극장이나 오케스트라는 좀 변화가 지체되는 감이 있다. 영화 차환할 때마다 새 곡조로 갈았으면 어떨지. 너무 들어서 도리어 감정을 괴롭게 한다. 그리고 좀 정도를 높였으면 어떨지 물어본다. 변사―변사 제군에 하나 제안한다. 다른 게 아니라 그 ‘하얐다’, ‘하얐었다’가 글 쓰는 데는 모르겠지만 말로 하는 때에 듣는 사람으로서는 어떨지? 처음 극장가는 노인은 대분개할 것이다. 그 조(調)를 고치고 ‘하였습니다’, ‘하였었습니다’ 하면 어른에게나 어린이에게나 퍽 다정하게 들릴 것이다. 더구나 인정극에리오. 그리고 변사계에 한 가지 유행이 있으니 ‘마음자리’라는 말이다. ‘마음자리’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마음의 돗자리라는 말인지, 마음이 깔고 자는 자리인지 어쨌든 해석할 수 없는 말이다. 그리고 한참 긴장한 장면에 가서 농담(醜談)을 탁 터뜨리는 변사가 있다. 그 변사는 원래, 희극에는 더 우는 조로 하는 이인데 청승맞은 것은 좋으나 너무 그 음성이 청승맞아서 너무 천하게 들린다. 그리고 한 가지 우스운 일이 있으니, 어떤 변사는 한참 자기도취로 “자연의 의지와 우주의 이성이 아–슬프다!” 하니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 그러한 고상한 문자를 안 써도 능히 할 수 있는데 얼토당토않은 문자를 쓰는 것이 도리어 자기 폭로에 지나지 않을 줄 안다. 그리고 장면이 벌써 지났는데 지난 장면을 가지고 떠들고 섰으니, 그것도 자기 취미지만 관자(觀者)는 그러한 변사를 원치 않을 것이다. 특히 이 점에 생각 좀 하여 주었으면 고맙겠다. 전화―극장에 온 손님에게 전화가 올 때,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이 소리를 버럭 질러서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당자는 (더구나 여자) 퍽 불쾌할 것이다. 여기에는 완전치는 못하나마 조선극장에서 하는 방식이 좋을 것이다. 스크린 옆 기둥을 뚫고서 유리등을 끼워놓고 그 유리에 부를 사람의 이름을 써놓고 전등으로 신호하는 방식이다. 1-2. 「극장만담」『별건곤』 제6호(1927년 4월), 108~9쪽. (부분 발췌) 모든 것이 구각(舊殼)을 벌어 젖히고 자체로부터 신생물의 싹을 좇는 이 봄에 근일에 각 극장에서는 2, 3년 전에 수입되었던 영화를 다시금 되풀이하고 있으니 여기에 극장경영자의 몰상식을 규시(窺視)할 수 있다. 설령 2, 3년이나 1, 2년 전에 일반 팬에게 호감을 산 영화이어서, 그것을 수십 차라도 되풀이하여도 매야(每夜) 만원의 성황을 이룰 수 있다치더라도―원래 수입되는 서양영화는 대개가 3, 4년 전 혹은 5, 6년 전 심지어 십 년 전 제작된 영화가 (기적적으로 1년 이내에 수입되는 것도 간혹 있지만) 상장되는 것인 그만큼, 먼 과거에 제작된 영화인 터에도 그것을 재삼 상장한대서야 시대 변천에 너무나 몰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영업 편으로 보아서는 유리한 방책이라 하더라도 일반팬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말이다. 여기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새로운 경지를 향하여 움직이는 팬보다도 더 앞서 나아가지 않으며 어느 시기에든지 큰 실패를 맞이하리라. 근일에 영화열이 팽창함에 따라서 팬의 수효도 배전(倍前)으로 증가되어 어느 날이든지 극장은 대만원의 성황을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말할 것은 그러한 때에 좌석이 참도 불고(不顧)하고, 그저 공간만 있으면 관객의 눈에 스크린의 끄트머리도 보이지 않더라도 불고하고, 그저 우릿간에 송아지 몰아넣듯이, 막 쓸어 넣는다 하면 너무도, 관객에게 불친절이 지나치지 않는가? 그뿐 아니라 젊은 색시들이 남자의 틈에서 비명을 질러도 그저 쓸어 넣어서 한푼이라도 더 모으려고 하여서야 될 수 있는가? 그러한 까닭에 종차(從次)로는 입장권에 좌석 순차표를 첨부하여서 누구든지 먼저 입장한 이를 제일 좋은 자리에 앉히고 그 다음 순차대로 좌석을 정돈시킨 후 좌석만 차면 문을 닫아버리면 어떨까 하는 것을 참고로 말한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관객의 피로를 덜어 주었으면 좋을 줄 안다. 그리고 입장권 매팔구(賣捌口) [필자 주: 판매소] 에는 써 붙이지 않고 내용으로 특등석을 설치하여 놓고 돈을 더 받으니, 이것은 경찰과 무슨 약속이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경찰의 허가도 없이 비밀히 하는 일인가? 우리로서는 그 진의를 알 수가 없다. 그이들의 것 무슨 구실이 있다 할지라도 이상에 말한 방법으로 한다면, 특등석도 없어질 것이요, 따라서 그 비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당하는 창피도 없어질 것이다.(상층 하층을 구별치 말라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변사와 대(對) 관객(특히 남녀 학생과 소년)과의 관계를 말하려 한다. 변사들이 영화대본(설명서)을 보지 않는지, 영화의 내용과는 아주 다른 추담을 베푸는 변사가 많은데, 항용 청소년 혹은 남녀 학생들의 염서(艶書)나 담화에까지 그 추담병이 전염된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서 희극변사 최병룡 군(단성사)의 추담 없이도 점잖게 웃기는 그 비결을 좀 배웠으면 어떨지? 그리고 변사의 말이 났으니 말이지 그 영화에 역할된 인물의 성명(영어나 기타 외국어에)을 어떤 나라말이든지 발음의 만능인 조선말을 하는 사람이 그대로 못하느냐, 모르면 누구에게든지 물어볼 수 없을까. 예(例)하면, ‘짹크’를 ‘짯구’라니 외국인의 웃음거리를 장만할 필요는 무엇 있는가. 일본 것이 아무리 좋대도 나쁜 것은 배우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2. 강사 스크린·빨-쥐, 「고급영화팬 되는 비결 십칙」『별건곤』 제29호(1930년 6월), 108~11쪽. 현대청년이란 그 언어에 있어 행동에 있어 처신에 있어, 아니 손가락 한 개를 놀리는 데 있어서도 모름지기 고급이어야 한다. 고급! 얼마나 입맛이 당기는 말이냐! high and noble. 존 바리모어(John Barrymore)의 프로필과 같은 noble. 미국이면 마천루 꼭대기와 같은 high. 그러한 것을 집어삼킨 듯한, 자신과 같은 풍도(風度)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점잖으면서도 완미(頑迷)한 구석이 없고 경쾌연미(輕快軟美)하면서도 부경(浮輕)한 맛이 없어야만 소위 고급에 속하는 영광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고급의 시대 철학적 해석은 다음 강의에 미루고 오늘은 제군들 앞에서 영화의 고급팬 되는 비결을 해설하는 영광을 내가 먼저 가지기로 한다. 1 대개 수요일이나 목요일 석간신문에는 각 영화관의 사진 교체 광고가 다투어 난다. 제군이 고급영화팬이 되려면 먼저 그러한 광고 가운데서 한번 감상할 가치가 있음직한 영화를 선택한 다음에 그 영화의 감독이며 주연배우 등의 이름을 외워두고 사진 내용에 들어가서도 될 수 있는 대로 다소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위연만한 영화이면 봉절하기 전에 신문이나 잡지에서 「시사실에서」란 제(題)로 간단한 비평 비슷한 것이 실리는 법이다. 제군은 무엇보담도 먼저(1면 기사보담도) 그 기사를 통독해 두어야한다. 그러고 보면 제군이 제군의 연인과 더불어 산보를 나왔다가 “차나 한잔 마시려오, 극장엘 가시려오?” 할 때도 그러한 예비식견이 여간 유효한 게 아니다. 더구나 여자들이란 사진이 좋지 못하면 그 사진을 같이 간 사나이가 만들기나 한 것처럼 짜증을 내고 책망을 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가령, 이를테면 “이까짓 걸 다 사진이라고 구경 오랬어요! 당신두 참 딱도 하시우!” 혹은 “인젠 두 번두 당신하고 같이 극장에 오진 않을 테야요. 내가 그래 겨우 이 따위 사진을 보러 왔단 말이요……?” 이런 매서운 선고 등이다. 무섭지 않느냐!? 또 설사 이러한 연애, 구애 관계 등의 이득을 도외시하고도 노상에서 우연히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질문에 응하여 시방 아무 영화관에서는 무슨 영화를 상영 중인데 그 영화는 운운, 이렇게 즉석에서 대답할 수 있는 이익이 따르는 까닭이다. 이와 같이 즉석에서 남의 질문에 응답할 수 있다는 것은 무슨 일이고 간에 남의 찬탄을 받는 법이다. 또 그리고 만약 제군이 극이나 영화의 기맥에 다소간 통하는 바가 있다면 그 답을 할 때 살짝살짝 첨부 삽입 작용을 하고 보면 효험이 더욱 날 것이 틀림없다. 2 자, 그러면 제군이 광고의 안내로 (혹은 연인이나 친구들의 요청에 응해서든지 상관이 없지만) 이제 영화관의 한 좌석을 차지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때 제군이 가장 먼저 취할 방법 이 무엇일까? 제군은 무엇을 먼저 하여야 할 것인가! 그러나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은 없다. 그저 변소에 가라는 게다. 우스운 말 같으나 이 변소에 가라는 것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다음 방책을 세우는 데도 필요한 것이다. 사진관에 들어가 보아서 시작하기까지에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는 변소에 갔다 나와서 유유름름(悠悠凜凜)한 태도로 당하나 통로 같은 데를 거니는 것도 흥이 있다. 이때 태도는 아주 침착하고도 무게 있게 보여야 하나니 하여간 일견지하에 남들이 짐짓 아마 놈이 영화계 명사인가 보다 하고 남에게 경계와 찬미의 탄사가 흐르게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지루해 못 견디어 하는 얼굴로 하품을 하는 것도 남의 주의를 끌기는 하나 이 방법은 도로히 반대의 효과를 가져오기가 쉬우니 이 방법을 택할 때는 기미를 잘 보아서 하지 않으면 실패다. 그리고 만약 제군이 사진관으로 달려갔을 때 이미 영화가 시작되었을 때는 사진쯤 상관할 것 없이 자리를 잡아 모자나 외투를 놓아두고는 변소부터 먼저 가야 할 것이다. 이미 시작된 사진일 것 같으면 2, 3분 동안 더 보나 덜 보나 마찬가지다. 그것보다는 변소에 다녀오는 게 더 필요하다. 한 사진이 끝나고 다시 다른 사진이 시작되는 짧은 휴식 시간에 부리나케 변소에 갔다가 황급히 자리에 돌아오는 사람을 많이 보는데 그것은 극히 졸렬한 행동이요, 적어도 고급에 있어서는 물론 사회도덕의 관념에서 말하더라도 그리 칭찬할 바 행동이 못된다. 3 그리고 사진이 시작되기 전에 급해 빠져서 프로그램이나 『위클리』에 쓰인 플롯을 읽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도 아름답지 못한 일이라. 대관절 영화를 보기 전에 그런 류의 해설을 읽지 않고는 영화의 스토리나 연락을 모른대서야 영화팬으로서 적지 않은 문제라 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영화팬의 자격은 완전히 상실된다고 각오하고 있어도 좋다. 크게 주의할 일이다. 프로그램 같은 것은 집에 돌아가서 눈을 한번 거치면 그만이다. 더구나 기막히는 것은 사진이 시작되어 전등이 꺼진 뒤에도 그 캄캄한 불빛을 훔쳐서 프로그램을 읽으려 애쓰고 있는 친구들이다. 이렇게 되면 비참 우(又) 참담, 실로 언어도단이다. 영화란 원래 그 first scene과 아울러 최초에 나오는 자막이 가장 필요한 것이다. 이 제작역할을 일별하고는 미소를 띠어서 아래턱을 쓰다듬게쯤 되지 않고는 아직도 고급팬 되기는 멀었다. 그리고 모르는 친구들은 hero와 heroine이 서로 껴안기만 하면 벌써 다 된 줄 알고 일어나서 무엇이 그리 급한지 출구로 우르르 몰려나가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적지 않은 실책인 것이, 영화란 그 뒤에도 사건이 시작되는 수가 있으며, 첫째 last scene을 보지 않고 일어선다는 것은 영화팬으로 용서치 못할 일이다. 어떠한 일이고 첨이 있고 끝이 없는 법은 없다. first scene과 last scene은 영화를 논함에 있어서 반드시 팬들의 입에 오르는 것임을 알아두어야 한다. 4 그 다음 휴식 시간에 주악(奏樂)이 있을 때는 그것을 들어도 좋고 듣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단지 요점은 주악에 너무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더구나 끝난 뒤에 감격해서 손뼉을 치든지 하고 보면 남의 조소를 받을 우려가 많은 것이니 주의할 일이다. 하여튼 고급영화팬이란 그리 헐하게 감격해서는 견뎌나갈 수 없는 처세술(?)이다. 무엇이고 “정말 우스워 못 보겠네”라든지 “나 원, 기가 막혀 이걸 어떻게 듣고 있어”라든가 “이건 지독한데” 등등의 능청스런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늘 머릿속에 명념(銘念)해 두어야 한다. 5 그러면 제군! 영화 중에 돌연히 필름(film)이 끊어질 때는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 그때는 크리스트와 같은 얼굴을 하고 묵묵히 앉아 있어야 한다. “사진 망했다”, “불 켜라” 하고 노호한다든가 영사실을 힐끗힐끗 들여다보는 것은 천박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또 정전이 되었을 때에도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좋다. 그렇다고 너무 생각하는 척 하노라고 눈을 감고 그대로 잠이 들어버리면 야단이다. 6 다음 해설자가 쓸데없는 것을 늘어놓는다든지 자막 같은 것을 오역했을 때는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면, 그때는 아주 무서운 얼굴로 해설자가 서있는 편을 노려보는 것이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아무런 효과도 없다고 생각할는지 모르나 주관적 견지에서 본다면 정의의 열혈이 끓어오르는 지사와 같은 흥분을 느끼게 되어 다시 없이 마음이 쾌(快)한 것이다. 7 자! 제군은 인제 영화를 보았다. 그러면 어떻게 그것을 비평할까가 나머지 문제일 것이라. 스토리는? 시나리오는? 감독은? 배우는? 이렇게 판에 박은 듯한 비평을 한다면 벌써 제군은 고급영화팬이 못된다. 그런 것을 지껄이는 도배(徒輩)를 가리켜 제군은 식소사번(食少事煩) [필자 주: ‘먹을 것은 적고 할 일은 많다’는 뜻.] 의 주문돌이 [필자 주: 미두장 등에서 주문을 대행해주는 브로커.] 라고 비소(鼻笑)하고 있어도 좋다. 그보다는 경구(警句)를 토해야 한다. 한 말로 그 영화를 차 던져야 한다. 기다란 변설(辯舌)을 농(弄)하여 내용의 공허를 폭로시킨다든지 자기의 부족처를 남에게 보이든지 하는 것은 모던 고급팬들의 관여할 바 못된다. 무엇이고 Make believe의 세상이니 말이다. 8 그리고 보면 금세의 고급영화팬 된 자 반드시 이름 있는 영화를 전부 다 보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아니, 보지 않더라도 고급팬으로 통할 수 있다. 그 대신 신문잡지에 실리는 영화비평을 정독해 두었다가 다른 사람들이 왜 안보느냐고 물을 때는 그 비평의 공격 부분만을 외워두어서 “결국 허잘 것 업는 스토리에 좌우된 영화였지 뭐야! 흥, 그까짓 걸 누가 보러간단 말이야” 하고 한마디로 격퇴해 버리면 고만이다. 그러고는 외국 영화잡지 등을 일별해두었다가 “그러나 이번 미국 ○○회사에서 제작하고 있는 △△란 영화만은 나로서 적지 않은 기대를 가지고 있는 걸! 그것이 건너오기만 하고 보면 억만 사(事)를 제처 놓고도 보러 가겠네만은……”하고는 슬쩍 영화통인 점을 보여서 상대자의 간을 주물러 놓는 것도 속 시원한 노릇 아니냐. 9 복색은 너무 혼란해서는 못 쓴다. 너무 지나치게 화려하다든지 제법(製法)이 별나고 보면 부랑자나 모뽀로 잘못 보이기가 쉬워서 헛되이 명성을 떨어트리게 된다. 영위계구(寧爲鷄口)일지언정 불위우후(不爲牛後) [필자 주: 혹은 ‘영위계구 물위우후(寧爲鷄口勿爲牛後)’.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말라’는 뜻으로 큰 집단의 말석보다 작은 집단의 우두머리가 낫다는 의미이다. 줄여서 ‘계구우후’라고도 한다.] 로 맑스·뽀이로 보일지언정 모뽀로 잘못 보여서 쓸까보냐다. 또 그러고 촬영감독이나 카메라맨으로 보여서도 안 된다. 고급영화팬은 촬영소 인종들과 혼동되는 것을 세심한 주의를 가지고 피해야 한다. 비평가 부류의 인종하고도 혼동이 되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촬영소 인종들을 자본가의 영리한 주구(走狗)로 보아 경멸하고 비평가를 기생충이나 어용 매문업자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고 영화잡지 같은 것은 외국 것이면 몰라도 절대로 가지고 다녀서는 안 된다. 요컨대 고급영화팬은 시네아스트의 긍지를 가지고 스넙 [필자 주: snob] 하면서 우울하여야 하고, 경멸할 줄을 알고 천학박식(淺學博識)이어야 하며, 또한 교묘한 궤변가여야 하며, 기타 여러 가지여야 한다. 10 끝으로 한 가지 부언해 둘 것은 요사이 유행 영화인 토키(talkie)에 대한 것인데, 우리 고급영화팬들은 그것이 사운드·픽처이면 상관이 없지만 불행히도 토킹·픽처일 때는 근신을 해야 한다. 하고(何故) 하면 제군이 뛰어난 어학자이거나 기막힌 즉흥시인이 아닌 이상 동반자(예컨대, 군들의 연인)의 질문에 응하지 못하여 천추에 회한을 남길 염려가 없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노니 고급영화팬은 광범 심원한 지식과 교양을 요하는 것은 이것저것 할 것 없이 덮어놓고 경이원지(敬而遠之)하고 그 대신 매멸(罵蔑)하는 것을 유일한 Motto요, 철학이요, 전술로 알고 굳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매력 충만한 영화가 극장 개봉을 못 하다니, 좀 억울하지 싶은 생각이 든다. 스크린으로 못 보는 것도 그렇고, 덕분에 마케팅의 기회를 잃어 소개될 기회도 제한된다는 생각이 드니 그런 안타까움이 급증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 코너가 그래서 생겨났지 하는 생각에 일단의 안도감을 느끼며. < 더 브론즈 >는 굳이 카테고리를 찾자면, 스포츠영화다. 뼈대로만 보면 17살 체조선수가 부상 후 실의에 빠져 있다가 몇 년 후 후배 선수를 양성하며 다시 자아를 찾아 나가는 예측 가능한 형태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손쉽게 설명하고 말아버리면 영화의 매력이 손가락에서 모래 빠져나가듯이 쉬쉬쉬 다 빠져나가 버리고 만다. 기존 스포츠영화가 가진 식상한 도식들에서 벗어날 비장의 무기들을 잔뜩 챙겨가지고 있으니, 부디 일단은 빨,파,흰색 조합의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걸친 멜리사 로치의 <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 >스러운 스틸 컷에 일단 혹해주길 바랄 뿐이다. 호프 앤 그레고리(멜리사 로치)는 미국 중서부의 작은 마을 애머스트에서 나고 자란 영웅이다. 올림픽 체조 동메달 선수로 명성을 얻어 마을 입구 비석에는 ‘세계 제일 사암의 고장’이라는 수식과 함께 ‘2004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호프 앤 그레고리의 고향’임이 자랑스럽게 표기되어 있다. 그녀의 동메달이 화제가 된 건 2004년 올림픽 도중 발목에 부상을 입은 채로 아픈 다리를 수습하고 이단 평행봉에 도전한 스포츠 정신을 높이 사서다. 그렇게 그녀는 일숨에 에머스트의 천사가 되었다. 착지의 순간, 브라운관을 빠져나온 카메라가 잡는 건 화면을 보며 쾌감에 젖은 현재의 호프다. 호프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그녀의 현재에는 ‘가망’이 없다. 부상으로 체조를 그만둔 그녀는, 일생 최고의 환호가 쏟아지던 순간을 되감기 하며 침대에서 자위를 하고 약물을 흡입하며 시간을 보낸다. 단둘이 사는 아버지에게는 온갖 짜증과 욕설을 퍼붓고, 우체부로 일하는 아버지의 우편물을 뒤져 돈을 훔치기 일쑤다. 마을 곳곳 상점에 동메달을 목에 건 빛바랜 사진으로 간신히 명성을 입증해야 하는 삶.(그러고 햄버거 할인을 받는 정도랄까) 호프의 현재에는 그러니까, 문제가 넘쳐흐른다. 호프 앤 그레고리가 가진 문제의 핵심은 그녀가 한때 ‘공주’였으며, 공주가 아닌 현재의 그녀가 여전히 그 ‘한때’를 놓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온다. 부상으로 더 이상 선수생활은 불가능한데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선수, 연금이 이미 다 바닥났는데도 여전히 자신의 수익으로 집안이 유지된다고 믿는 자신감. 그 갭과 괴리감을 다른 누가 메꾸어 줄 수나 있을까. 일단 차림새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어딜 가나 호프 앤 그레고리를 모를 새라 등에 큼지막하게 U. S. A가 새겨진 낡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자를 보면서 찬란했던 그녀의 과거를 유추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호프를 추락한 지금의 일상에서 끄집어내는 계기는, 자신이 지금 지도 중인 매기를 올림픽에 나가게 해준다면 50만 달러의 유산을 호프에게 상속해 주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택한 그녀의 전 코치에게 있다. 현실을 위해 50만 달러의 가능성을 수락하지만, 사실 호프에게 중요한 건 돈보다, 대중에게 천사로 군림해 온 자신의 자존심이다. 전도유망한 후배 선수 매기에게 기름진 햄버거만 먹여 망쳐놓는 건, 그녀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돋보이게 해 줄 코치가 아니라 여전히 자신만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주인공이고 싶어 하는 열망에서 기인한다. 그녀가 현실과 과거에서 오는 영광의 갭을 줄이지 못하는 걸 탓하지 못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이 인정욕구 역시 호프가 별나서가 아니다. 올림픽 출전을 꿈꾸며, 메달을 향해 달려왔던 이 영화의 선수들 모두가 그렇다. 호프와 티격태격하며 시종 그녀를 시기하는 팀 코디네이터 랜스 터커는 그리하여 이렇게 폭발한다. “난 금메달, 은메달 다 땄는데, 사람들은 모두 동메달 딴 ‘호프의 기적’만 대단하다고 말한다고!” 체중 조절을 위해 ‘한 달 동안 수박주스만 먹어, 씹는 법을 새로 익혀야 할 정도’인데다, 가슴이 나오지 않도록 붕대로 가슴을 꽁꽁 싸매고 다닌 호프 같은 사춘기의 선수들에게 대중의 인정은 곧 폼 나는 삶을 유지할 동력이다. 경쟁, 시기, 낮은 자존감, 부상 같은 변수들 앞에서 영화의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 모두 자신이 획득한 영웅의 자리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 무시무시한 공포를 끌어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비정상적인 어른이 되어갈 뿐이다. 호프는 결국 매기가 올림픽 영웅이 될 수 있도록 돕게 되지만, 그러기까지는 환호 속에 존재하던 자신이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 이 씁쓸한 현실 어디에도 여느 스포츠 영화의 ‘재기와 갱생의 프로젝트’가 들어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그리하여 < 더 브론즈 >의 장면 중 마음을 흔드는 하나의 장면은 올림픽 경기에서 매기가 환호를 받는 순간 자신의 영광을 뒤로하고 멀어져가는 호프의 뒷모습이다. 관중은 새로운 영웅을 주목할 뿐, 그 순간 과거의 영웅은 빛을 잃는다. 그 교체의 시간을 안타깝고 길게 응시해주는 건 호프의 아버지뿐이다. 브라이언 버클리 감독은 체조경기의 쾌감은 모두 덜어낸 채, 오롯이 대중의 심리가 움직이는 역동성 안에서 벌어지는, 이 감정의 분투를 지켜본다. 이 영화가 신기한 지점은 욕쟁이 호프를 위시한 어느 하나 선뜻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호프 정도는 좀 포장해줄 법한데, 그러지 않는다는 데 오히려 점수를 주고 싶다. 시트콤 < 빅뱅 이론 >에서 독특한 목소리로 시종 웃음을 끌어내는 베르나데트 역의 멜리사 로치가 심통스런 호프 역을 맛깔나게 연기할 뿐 아니라, 그녀의 남편 윈스턴 로치와 공동 각본을 집필했는데, 그녀의 코믹함을 십분 투여했지만 그게 <빅뱅 이론>에서처럼 귀엽고 유쾌한 웃음과는 거리가 좀 멀다. 그들은 그냥, 지질하고 있는 그대로여서 웃길 뿐이다. 아, 호프와 랜스가 급작스럽게 돌진하는 19금 체조 섹스 장면에서만큼은 호프의 캐릭터만큼이나 제대로 ‘병맛’ 살린다. 미국을 대표하는 남녀 국가대표 체조의 다양한 동작들이 격렬한 체위로 수행되는 그 과정에 대해 랜스 역을 연기한 세바스티안 스탄은 인터뷰를 통해 “어떻게 하면 병맛을 살릴지 스태프들과 함께 엄청난 구상과 아이디어를 통해 만들었다“고 밝힌다. IPTV 서비스로는 안타깝지만 그 장면이 모자이크 처리가 되는 바람에, 그렇게 고심해서 찍었을 게 분명한 정말 중요한 장면 하나를 놓치고 만다는 걸 미리 알려둔다.
<조에트로프 디벨로프먼트 Zoetrope Development> 프로젝트 필름과 비디오에 기반을 둔 애니메이션에서 프레임과 프레임은 서로 넘어갈 수 없는, 서로 다른 ‘시간’에 있는 이미지이고, 이 스틸 컷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보여서 움직이는 이미지, 즉 애니메이션이 된다. 그런데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탄생하기 이전, 즉 19세기 ‘프리-시네마(Pre-Cinema)’ 시대의 대표적인 광학장난감, 옵티컬 토이(Optical Toys)인 페나키스티스코프, 조에트로프, 프락시노스코프 등이 21세기에 들어서서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바, 이 글에서는 19세기 옵티컬 토이가 21세기에 어떻게 새롭게 변화되어 재탄생하고 있는지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서, ‘라이브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상상보고자 한다.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일러스트레이션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짐 르 페브르(Jim Le Fevre) 감독은 10여 년 전부터 ‘조에트로프 디벨로프먼트 - 더 포노트로프(Zoetrope Development - the Phonotrope)’라는 이름으로 LP 턴테이블과 비디오카메라의 셔터 스피드 조절 기능을 활용하여 페나키스티스코프, 조에트로프 등과 같은 19세기 옵티컬 토이를 새롭게 제작, 구현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성취한 놀라운 성과는 ‘프레임 바이 프레임’ 촬영이나 스크리닝을 통해 보이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눈앞에서 직접 실시간으로 보이는 ‘라이브 애니메이션’을 구현했다는 점이다. 즉 원판에 그려진 그림이나 오브제를 LP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회전시키고, 이를 비디오카메라 셔터 스피드 ‘조작’에 의한 영상으로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데, 이때 프레임 바이 프레임 애니메이션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새로운 애니메이션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즉, 이미지가 시간적 개념의 프레임 바이 프레임 사이를 건너뛰는 매우 ‘기묘한’ 애니메이션을 ‘라이브’로 볼 수 있게 된다. <홀리 플라잉 서커스 Holy Flying Circus> 타이틀 시퀀스 (2011) <홀리 플라잉 서커스 Holy Flying Circus> 타이틀 시퀀스 제작과정 짐 르 페브르 감독이 연출하여 만든 BBC4 코미디 드라마 <홀리 플라잉 서커스 Holy Flying Circus>의 애니메이션 타이틀 시퀀스는 그의 ‘조에트로프 디벨로프먼트’ 프로젝트의 정점을 이룬다. 턴테이블 버전과는 달리 사전에 3D 그래픽 모델링으로 입체적인 조에트로프를 만들고, 이를 다시 목공과 각종 수작업 및 미술 작업을 통해 실제 오브제로 제작하여 거대한 규모의 라이브 애니메이션용 조에트로프를 제작하였다.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애니메이션은 ‘프레임 바이 프레임’이 아니라, 프레임 사이를 건너뛰는 라이브 오브제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다. ▶ 동영상 보기: http://youtu.be/pfZQmgiSkfk | http://vimeo.com/30833811 ○ 감독 홈페이지: www.jimlefevre.com <위 갓 타임 We Got Time> 뮤직비디오 (2009) 영국의 블링크잉크 스튜디오(Blinkink Studio) 소속으로 애니메이션과 뮤직비디오 및 시각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데이빗 윌슨(David Wilson) 감독은 19세기 프리-시네마(pre-cinema) 시대의 대표적인 옵티컬 토이였던 조에트로프와 프락시노스코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활용하여 모레이 맥라렌(Moray McLaren)의 음악 <위 갓 타임 We Got Time>을 뮤직비디오로 만들고, 제작과정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짐 르 페브르 감독의 라이브 애니메이션이 비디오카메라의 셔터 스피드 조절 기능을 활용한 것이었다면, 데이빗 윌슨 감독은 프락시시노스코프 고유의 거울 반사형 애니메이션으로 라이브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 동영상 보기: http://youtu.be/j9e38cuhnaU ▶ 제작과정 보기: http://youtu.be/d4LSg7f4lFs ○ 감독 홈페이지: www.thisisdavidwilson.com <벨로우즈 마치 The Bellows March> (2009) <벨로우즈 마치 The Bellows March>는 애니메이션과 설치미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에릭 다이어(Eric Dyer) 감독이 만든 실험 애니메이션으로, 3D 모델링과 3D 프린터로 제작된 오브제들로 만들어진 3D 조에트로프를 활용하여 라이브 애니메이션을 구현했다. 그리고 에릭 다이어 감독은 자신의 2006년 작품 <코펜하겐 자전거 Copenhagen Cycles>와 함께 <벨로우즈 마치>를 갤러리와 영화제에서 설치미술로 새롭게 선보이는 작업도 병행한 바 있다. ▶ 동영상 보기: http://vimeo.com/17314292 ▶ 제작과정 보기: http://vimeo.com/21324452 ○ 감독 홈페이지: www.ericdyer.com 소니 브라비아 조에트로프(Sony Bravia Zoetrope) (2008) 소니사는 자사의 TV 브랜드 브라비아(Bravia)를 홍보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베나리아(Venaria) 라는 마을 광장에 ‘브라비아드롬 BRAVIA-drome’이라 명명된 지름 10미터의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조에트로프’를 설치하고, 이탈리아 AC 밀란 소속 축구선수 카카의 대형 사진으로 3D 조에트로프 라이브 애니메이션을 선보였다. 소니 브라비아 조에트로프(Sony Bravia Zoetrope)는 <브라비아 볼 Bravia Balls>(2005), <브라비아 페인트 Bravia Paint>(2006), <브라비아 피라미드 Bravia Pyramid> (2007), <브라비아 도미도 시티 Bravia Domino City>(2008>에 이은 소니사의 혁신적인 광고 프로젝트이다. ▶ 동영상 보기: http://youtu.be/tkiQM7MXp-c ▶ 제작과정 보기: http://youtu.be/rCltdyiLyIc | http://vimeo.com/4129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