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 감독
- 로버트 와이즈
- 제작년도
- 1956
- 출연
- 로사나 포데스타, 자끄 세르나스, 세드릭 하드위크, 스탄리 베이커, 나이얼 맥기니스, 노라 스윈번, 로버트 더글라스
교과서는 언제나 역사를 재구성한 다음 요약한다. 독일 무성영화에 대한 오해는 영화사의 ‘매뉴얼’화에 관한 사례이다. 그때 영화사의 섬광은 사라지고 오류추론이 시작될 것이다. 독일 무성영화에 대한 대부분의 해설은 과도할 정도로 표현주의 영화에 기울어져 있고, 그런 다음 하나의 경향에 모든 영화를 수렴시키면서 현실의 반영이라는 도식을 끌어들인다.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의 저서 <칼리가리에서 히틀러까지, 독일영화의 심리사>가 너무 훌륭했기 때문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지만 크라카우어도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하지는 않았다. 물론 독일 무성영화의 위대한 전통이 표현주의 영화(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경향이 바이마르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다른 하나는 사극영화(Kostüfilme)의 대중적인 성공이 있었다. <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이 개봉했던 1919년부터 쏟아져나온 영화는 사극이었다. 먼저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1918년 11월 11일 일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전으로 끝났고,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유럽동맹들은 독일 제국을 해체할 수 있는 경제적 보상금을 요구하였다. 무엇보다도 산업혁명 이후 경험해본 적이 없는 근대적인 무기가 동원된 첫 번째 전쟁에 유럽인들 모두가 공포에 질렸다. 여기에 독일 국민은 패전으로 인한 천문학적 화폐 가치 평가절하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의 구렁텅이에 떨어졌다. 빈곤과 허기에 시달리는 독일인에게 필요한 건 빛과 그림자로 표현주의 세트에 그려내는 암울한 실내의 심리극이 아니라 잠시라도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여흥과 웃음의 스펙터클이었었다. 여기에 늘 위대하다고 노래하던 게르만 민족의 낭만주의의 꿈을 산산조각 낸 ‘패전한 조국’에 대한 실망이 독일 관객들을 사극 장르로 이끌었다. 전쟁 전에는 무대 극장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오페레타가 여흥이었다. 하지만 전쟁 중에 대부분 극장이 문을 닫았다. 그 역할을 사극영화가 떠안았다. 경기 불황으로 제작비는 전쟁 이전으로 돌아갔고, 게다가 전쟁에서 돌아온 수많은 남녀노소가 실직 상태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값싸게 대규모의 엑스트라를 쓸 수 있었다. 폴란드에서 온 유대인 에른스트 루빗치는 1913년 막스 라인하르트 그룹에서 배우로 합류하였다. 하지만 배우로서는 별 재능이 없었다. 이듬해 단편 <비누 거품 아가씨>를 첫 연출 했다. 배우와 연출을 오가던 루빗치는 1918년 첫 장편영화 <엄마의 눈길>을 감독했다. 다소 놀랍지만 1919년에는 7편의 영화를 연출했고, 그런 일정에도 <즐거운 남편> 시나리오를 썼고, 레오 라스코가 연출했다. 그 해 연출한 <마담 뒤바리>는 9월 18일 베를린의 가장 크고 화려한 극장에서 개봉하였고, 상영이 끝나자 “우레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 영화를 보고 막스 라인하르트는 에른스트 루빗치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다. “루빗치씨, 이 학생은 이제 스승을 넘어섰군요” 프랑스 대혁명 전야를 배경으로 실존 인물이었던 루이 15세의 정부 잔느 베퀴, 천민 계급이었지만 우여곡절을 거쳐 뒤바리 백작과 결혼한 다음 루이 15세의 ‘공식적인’ 정부였던 마담 뒤바리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혁명 관중들 앞에서 목이 잘리는 장면이다. 그래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는 문학적 표현으로 우회하지 않았다) 이렇게 설명했지만 에른스트 루빗치는 <마담 뒤바리>에서 프랑스 대혁명 전야를 재현하는데 아무 관심이 없다. 이 영리한 유대인은 처음부터 시대정신의 공기를 읽어내는 재능이 있었다. 루빗치는 1919년 독일 관객이 스크린에서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지를 읽었다. <마담 뒤바리>는 다가오는 혁명의 기운과 열광으로 클라이맥스이자 엔딩을 맞이한다. 독일인들은 무언가 다가오고 있음을 매일 거리에서 보고 있었다. <마담 뒤바리>가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동안 거리에서는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가 이끄는 독일 공산당 스파르타쿠스당이 경찰과 바리케이드까지 치면서 무장투쟁을 하고 있었다. <마담 뒤바리>를 보면 두 가지 점에서 깜짝 놀랄 것이다. 첫째, 루빗치의 영화를 대부분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로만 알고 있을지 모른다. <마담 뒤바리>에서 이미 ‘루빗치 터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둘째, 동시대의 표현주의 영화들 속에서 루빗치는 완전히 다른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루빗치는 ‘여자’ 주인공 (1919년이라는 걸 먼저 염두에 두고 셈을 하기 바란다) 잔느 베퀴를 따라가면서 자유자재로 사회의 신분과 계급을 옮겨갈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남성 복장으로 변장(cross_dress_gender)하면서 영화의 모든 장면을 동기화하고 재구성해나간다. 그러면서 영화의 플롯은 잔느가 이 남자에서 저 남자로 옮겨 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의 장면들에서 잔느는 항상 중심을 차지한다. 이 사이의 긴장이 상황을 거의 난장판으로 만들어나가는데 거기서 루빗치는 희가극이라고 부를만한 코믹한 유머를 냉소적인 조롱을 끌어낸다. 이 장면들을 연출하면서 루빗치는 이미 공간 안에서 인물의 동선을 연결하면서 콘티뉴이티 편집을 비롯한 할리우드 문법을 자신의 영화에서 활용하고 있었다. 에른스트 루빗치는 독일 영화시장을 이미 장악한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다른 독일 감독들이 거기에 대항하기 위해 더 ‘독일적인 것’을 찾는 동안 대중들이 그것을 더 잘 받아들인다면 그 일부가 되어야 하는 방법을 망설이지 않고 받아들였다. 잔느 베퀴를 연기한 폴라 네그리는 아마도 첫 번째 팜므 파탈의 계보에 속할 것이다. 폴라 네그리와 에른스트 루빗치의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조셉 폰 스턴버그와 마를레네 디트리히에 버금가는 여배우와 감독으로 하나의 짝이 되었다. 놀라운 성공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마담 뒤바리>는 이듬해 12월 12일 뉴욕에서 개봉하였다. 모두가 찬사를 보냈다.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미국 관객들은 독일영화를 혐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담 뒤바리>를 열렬하게 환영했다. 아이러니하지만 <마담 뒤바리>는 독일에서 만든 에른스트 루빗치의 ‘아메리카 영화’라고 불러야 할 것이라고 토마스 엘새서는 재치 있게 제안했다. 나만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비평가들은 루빗치를 “독일의 그리피스”라고 불렀다. 유대인이었던 루빗치는 스튜디오에서 ‘독일에서’ 계속 영화를 만드는 것은 금방 한계와 부딪치게 될 것이라고 예감하고 있었다. 이 열광은 루빗치에게 하나의 메시지가 되었을 것이다. 1920년 뮌헨에서 반유대주의와 범게르만주의를 당 강령으로 내세운 독일 노동자당이 창설되었다. 그 해 아돌프 히틀러가 당에 가입하였다. 에른스트 루빗치는 1923년 미국으로 떠나는 증기선에 몸을 실었다.
웹소설 원작 애니메이션의 유행 근래에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유행하는 장르라고 하면,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소위 ‘이세계(異世界)물’을 들 수 있다. 그것도 그냥 이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고전적인 이세계물(현재의 지구 및 우리가 사는 우주와는 다른 세계, 말하자면 판타지 세계[ex. <반지의 제왕>]이거나 다른 우주나 엄청난 먼 미래를 그린 SF 세계[ex. <스타 워즈>]를 다룬)이 아니라 (주1) , 주인공이 ‘현실 세계’에 있다가 이세계로 가는 형태의 작품이 유행하고 있다. 현실 속에서 이세계로 간다는 내용은, 원래부터 소위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라 불리우는 스토리텔링의 기본 구조에서는 아주 일반적인 형태다.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란 주인공이 자신이 사는 세계(집, 나라 등)를 떠나 다른 세계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구조를 가진 스토리를 뜻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성장’하기 때문에, 일종의 성장소설이란 측면도 갖고 있다. 이런 작품이라면 가까이는 < 나니아 연대기 >(앤드류 아담슨, 2005)도 있을 것이고, 더 거슬러올라가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있겠으며, 실은 단테의 <신곡>도 바로 현실 세계에서 이세계로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인 것이지 않은가. 또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나 구약성경의 요나 이야기, 메소포타미아의 설화 <길가메시 서사시> 등도 전부 이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의 구조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지금 유행하고 있는 이세계물은 이세계에 갈 뿐 현실 세계로 돌아오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아직 완결이 나지 않아서 못 돌아온 것일 수도 있고, 또 현실로 돌아오는 작품도 있기는 하다.) 라이트노벨 원작 애니메이션이 유행했던 1990~2000년대까지는, 예를 들어 <슬레이어즈>(애니메이션은 1995년부터)라든지 <마술사 오펜>(애니메이션은 1998년부터)을 비롯한 ‘판타지 세계’를 그린 작품이거나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시리즈(애니메이션은 2000년),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애니메이션은 2006년부터), <듀라라라!>(애니메이션은 2010년부터),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애니메이션은 2010년부터)에 이르기까지 현대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 많았다. 이세계로 가는 작품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지만(앞서 언급했던 정도까지 서양의 고전이 아니더라도, 일본에도 1971년 <전국 자위대>를 비롯하여 이세계나 과거의 시간대로 ‘가는’ 작품은 많이 있었다) 2010년대 웹소설의 유행 이후로는 이세계물이 워낙 많아졌기 때문에 훨씬 더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소설을 발표한다는 것이 주류화된지가 워낙 오래 된(1990년대 초반 PC통신 시절로까지 거슬러올라간다) 한국에서는 소위 ‘이고깽’(이세계로 간 고등학생이 깽판을 치는 내용)이라 하여 현대인이 이세계에 가서 활약한다는 내용은 일본 웹소설의 유행보다 훨씬 앞섰다. 일본에서도 학생이 이세계로 가는 것은 애니메이션 <성전사 단바인>(1983년)이나 소설 <황금박차 - 이차원 기사 카즈마>(1988년) 등 많이 있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인터넷에서 발표되는 작품에 이세계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한국이든 일본이든 오래 전부터 반복되는 유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이세계물’이라면 게임 속의 세계로 가는 <소드 아트 온라인>과 <로그 호라이즌>, 게임형의 판타지 세계로 가는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이나 <오버 로드>, 밀리터리 취향의 세계(?)로 가는 <유녀전기>, 판타지 세계로 가는 <무직전생>이나 <전생했더니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이 중에는 이세계로 가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엄청난 능력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고 그냥 이세계로 가기만 할 뿐 어느 정도 수련과 노력을 해서 주인공이 성장하여 적절한 능력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전자는 일본에서 ‘난 강해――!(오레 츠에에에)’물이라고 부르는데, 한국에서도 전통적으로 대본소용 판타지소설 중 일부를 가리키는 소위 ‘양판소’(양산형 판타지 소설의 약칭)물에서도 ‘먼치킨’이라 불리운다. 노력없이 강한 주인공 비단 웹소설 원작이 아니더라도 이런 먼치킨형 주인공, 즉 ‘노력없이 강한 주인공’은 21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특징적으로 많이 등장하고 있다. (물론 이 역시도 21세기 이전에 그런 주인공이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만화잡지 「소년 점프」의 인기 만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는 2014년부터 연재를 시작했고 2016년부터 애니메이션이 방영되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미도리야 이즈쿠. 특수한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지만 어떤 기회를 통해 무척 강한 능력을 손에 넣은, 어떻게 보면 무협소설에서 ‘기연’을 얻는 주인공만큼이나 주역스러운 설정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미도리야 이외의 주요 인물 중에, 정형적이라 할만큼 ‘고전적 주인공’의 특징을 가진 캐릭터가 두 명이나 나온다. 소꿉친구였던 라이벌 바쿠고와, 새롭게 만난 라이벌 토도로키다. 오만한 성격에 다혈질처럼 보이는 바쿠고, 냉정한 성격이면서도 부모님 때문에 비틀린 의지와 고민을 갖고 있는 토도로키. 미도리야는 토도로키의 사정을 듣고서는 그에게 “만화였다면 주인공이다”라는 ‘메타 발언’(정작 주인공은 미도리야니까)을 하는 장면도 나온다. 만약 과거였다면 주인공은 바쿠고이거나 토도로키였을 텐데, 2010년대의 소년만화 독자들은 더 이상 단순한 고전적인 형태의 ‘주인공 캐릭터’에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미 2010년대의 젊은이들은 대개 ‘보릿고개’나 ‘전쟁’, ‘공해병’이나 ‘진폐증’을 겪을 일이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오히려 그들에겐 ‘자살’이나 ‘왕따’가 더 가깝게 느껴질 것이고 괴로운 병이라면 ‘아토피’라든지 ‘공황장애’, ‘백신 거부주의로 인한 홍역’ 같은 것일 수 있겠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 된 것이 21세기 이후의 일인 것만도 아니라는 말이다. 지역적 차이는 있겠으나 사실 이미 1990년대에도 픽션 속에서 ‘열혈 주인공’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한국에서도 <열혈강호>나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은 1990년대 초반에 등장해 있었고, 순정만화에서도 비슷한 변화를 볼 수 있었다. 일본만화에서도 1980~90년대의 주인공들, 예를 들어 손오공·사쿠라기 하나미치·미츠하시 타카시·우에스기 타츠야(앞에서부터 <드래곤볼><슬램덩크><오늘부터 우리는><터치>)는 그 이전 1960~70년대 ‘근성물’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했던 주인공 인물형이다. 또 같은 시대의 켄시로·사에바 료(<북두의 권><시티 헌터>) 등은 ‘난 강해――!’물에 그대로 해당될만큼 ‘처음부터 강한 주인공’이다. 물론 이런 작품과 캐릭터를 무조건 ‘노력없이 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맨처음 언급한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만 하더라도 2010년대 작품 중에서는 오히려 드물게도 나름대로 ‘노력을 하는’ 주인공이었다. 하다못해 <시티 헌터>의 사에바 료도 끊임없이 사격 연습을 하는 장면이 작중에 나오고,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은 여러 스승들에게 수업을 받거나 강한 중력 하에서 수련을 하는 등 충분한 노력을 보인다. <슬램 덩크>에서도 사쿠라기 하나미치는 전형적인 ‘노력없이 강한’ 척을 해야 하는 불량 학생 출신이었음에도 나중에는 농구라는 스포츠를 인정하면서 ‘풋내기 슛’을 연습하여 이기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이런 모습들은 작품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 정도일 뿐, 아무리 그렇더라도 후대에 거의 희화화될만큼 말도 안되는 ‘노력(?)’을 하는 1960년대 스포츠근성물이나 슈퍼로봇물인데도 작품 전반 거의 4분의 1 가까이까지 주역 로봇이 제대로 등장하지 않거나 싸우지 않고 오직 주인공이 파일럿으로서의 연습과 스파르타 훈련만을 받는다는 독특한 로봇애니메이션 <혹성로보 단가드A>(국내 방송 제목은 <날아라 스타에이스>) 같은 경우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 1980년대 중후반 이후의 작품들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없이 강한 주인공’이라 함은 진짜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고전 작품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덜 노력하거나 노력을 하더라도 그 노력하는 장면을 거의 그리지 않는 식으로 처리되어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길가메시 서사시> 이런 ‘노력없이 강한 주인공’의 유행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요즘 젊은이는…” 운운하는 비평도 자주 보지만, 물론 ‘요즘 젊은이들’ 때문에 그런 주인공이 유행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분석의 태반이 너무 상황을 단순화시킨다는 생각은 든다. ‘노력없이 강한 주인공’은 비단 요즘 유행일 뿐만이 아니라 앞서 언급했듯 무협지에선 과거에도 자주 볼 수 있던 유형이다. 하물며 ‘이야기의 주인공’은 신화 시대로 거슬러올라가 보더라도 다들 ‘노력없이 강한’ 것 아닌가? 과거엔 그것을 혈통이나 타고난 능력(신의 아들이라느니 천손이니)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그리스로마신화나 <삼국유사>를 보아도 그런 인물은 등장하고, 앞에서 말한 <길가메시 서사시>도 그렇지 않은가. (그런 길가메시가 등장인물로 나오는 작품이 <Fate/stay night>를 비롯한 <페이트> 시리즈이다.) 따라서 이런 주인공의 유행이 비단 21세기 이후 서브컬처의 특징이란 식으로 말하기는 어렵고, 앞에서 살펴보았듯 이세계물의 유행 역시 마찬가지이다. 애시당초 어떤 한두 가지 사안을 특정 시기의 ‘특수성’으로 설명하는 담론은 대개 거기에 어긋나는 사례로 인해 금새 반박되기 때문에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그렇지만 ‘과거와 달리 21세기에만 이런 특징이 드러난다는 것은 아니’라는 전제를 단다면, 분명히 현 세대 서브컬처의 큰 유행으로서 이세계 전이와 노력없이 강한 주인공이란 흐름을 짚을 필요는 있다고 보기에 이 글을 썼다. 여기까지 판타지와 SF의 관계, 이세계물과 노력없이 강한 주인공의 유행, 라이트노벨과 웹소설에서의 이세계물이 갖는 차이, 시대에 따른 주인공상의 변화 등 간략하게나마 몇 가지 사인에 대해 다루어보았다. 이 이상의 내용은 다른 기회로 돌리겠으나, 이런 변화를 바탕에 두지 않고서는 2010년대의 만화/애니메이션 계열 서브컬처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웹소설의 이세계물도 지겹다는 반응이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적지 않기 때문에, 이 장르의 유행이 당장 없어지진 않겠으나 2020년대에는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주1) SF의 경우, 설정에 따라서는 현재의 인류가 먼 우주로 나아가 외계인을 접하거나 혹은 워낙 먼 미래가 되거나 갑작스러운 기술 발전으로 우주 전체를 누빌 수 있게 된다는 내용 등 다양한 배리에이션이 있는데, 어쨌거나 그 어느 쪽이든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계’와는 다른 ‘이세계(異世界)’를 그린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판타지와 다를 바가 없다. 작품의 방향성이 마법과 연금술이나 과학이냐 하는 차이점일 뿐. 또한 이때 ‘과학’이라고 하더라도 어차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과학, 즉 빛보다 빨리 달릴 경우의 물리 법칙을 상상해서 만들어낸다거나 비(非)탄소계열 생명체를 상상해서 만들어내는 등 범위를 너무 벗어나는 내용을 그릴 경우를 생각해보라. 그런 SF가 마법이나 연금술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판타지라고 해도 그 세계관 내에서는 합리성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작품도 많고, 그렇기에 완전히 동떨어진 상상만의 판타지 작품은 판타지라는 장르 안에서도 여러 단계로 구분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서구권을 대표하는 SF잡지의 제목이 <The Magazine of Fantasy & Science Fiction>였던 것 아니겠나. (그나마도 1949년 창간 당시의 잡지 이름은 <The Magazine of Fantasy>였다. 2호 때부터 ‘Science Fiction’이 추가된 것이다.)
황당한 농담처럼 들릴 것 같지만, 십 년도 훨씬 전에 죽은 엄마에게 아버지가 아닌, 평생의 동성 연인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한동안 해본 적이 있고, 지금도 그 의심에는 나름 합리적인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여기서 그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늘어놓을 생각은 없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사실은, 당시의 내가 겁에 질리고 화가 많았던 스물 몇 살이었고, 일견 터무니없어 보이는 상상을 통해서 엄마의 불행하고 때 이른 죽음이 조금이라도 덜 억울해지길 바랐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디든 마구 뛰어내리고 싶었던 내 정신도 좀 더 안전한 울타리 속에 가둘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연극영화과를 지망했던 활달한 성격의 대구 여자였던 엄마에겐 친구들이 많았는데, 여자 형제가 없었던 엄마는 나로 하여금 그들을 ‘(누구)이모’라고 부르게 했다. 이모들과 함께 한, 구체적으로 재미난 일화 같은 건 이제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와 함께 그들을 한 번씩 만나러 갈 때 내가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는 또렷하게 생각난다. 은퇴한 운동선수들 마냥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기는 기운 넘치는 사람들이었던 이들은 고개를 뒤로 젖혀가며 큰 소리로 자주 웃었고, 만나고 헤어질 땐 다시 못 볼 사람들처럼 끌어안은 채 정전기가 날 정도로 서로의 등을 쓸어주었다. 그 손힘이 얼마나 센 것이었냐면, 그러고 나서 내 머리를 쓰다듬던 이모들의 손바닥으로 내 머리카락이 항상 붕 떠오르던 느낌이 아직까지 생각난다는 것 정도로만 말하겠다. 결혼하기 전의 엄마와 이모들이 찍힌 흑백사진을 가끔 들여다보면, 거기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의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듯 호탕하게 웃고 있다. 사진을 접었다가 펴면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영원히 지원될 것 같은 얼굴들이라고나 할까. 그중 나랑 닮은 얼굴의 이 행복한 여자가 당시 꿈꾸던 미래에는, 오십이 갓 넘은 나이에 암 선고를 받고 딱 반년 고통스럽게 살다가 어느 날 새벽, 조용히 눈을 감는 장면 같은 건 물론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짐작도 못 했겠지. 어떤 젊고 행복한 사람이 그런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까. 엄마의 장례식 이후로 이모들은 다들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들인가 싶을 정도로 한순간에 내 인생에서 사라졌는데,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다발적인 증발이어서 나에겐 서운함과 그리움을 넘어, 어리둥절하고 신비스럽기까지 한 느낌으로 남았다. 어쩌면 이건 무슨 질문이나 신호 같은 건가? 근심과 상상력 외에는 가진 게 없었던 스물 몇 살의 나는 한동안 그런 생각을 종종 했지만, 매번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한 채 조용히 모른 척하는 것으로 끝났다. 하긴,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고, 여기서 더 늘어놓기에 뭐해서 생략한 이야기들도 있지만, 나에게 부모의 죽음이라는 인생의 한 챕터를 닫는 느낌은 결국 그런 것이었다. 뭔지 모를 어리둥절함... 어느 날 갑자기 담요가 사라져 버린 걸 알게 된 라이너스가 텅 빈 손을 내려다보고 있는 얼굴을 상상해 보면 될 것이다. 딱 여기쯤에서 「펀 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좋겠다. 2006년에 출간된 앨리슨 벡델의 그래픽 노블 「펀 홈 Fun Home」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작가 본인의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오가며, 평생 클로짓 게이로 살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사망한 장의사 아버지와의 복잡한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회고록이다. 이렇게 소개하면 ‘읽다가 우울증 걸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둡고 울적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주인공 부녀를 비롯한 가족구성원들이 하나같이 매력 넘치는 괴짜들이라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키득키득 웃게 되거나, 네모난 칸을 공들여 채운 그림과 정교한 앵글에 취해서 한동안 움직일 수 없을 때도 있다. 기대치 않은 정서적 충격과 감정적 고양의 순간들이 은근히 자주 튀어나와서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붙잡기 때문이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역설의 힌트는 ‘FUN HOME’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짐작 가능한데, 벡델 가족의 가장이자 이 책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브루스 벡델의 직업이 장의사이며, 이야기의 주된 배경이 ‘장례식장(FUNeral Home)’이기에 가능한 별칭이다. “가끔 내가 졸라대면, 우리 아버지도 다른 아버지처럼 ‘비행기 타기’ 놀이를 해주셨다. 아버지가 두 발로 날 들어 올리면 온몸의 무게 중심이 내 배에 실렸다.” “이런 건 어쩌다 한 번씩 있는 아버지와 나의 신체 접촉이었다. 그리고 힘들긴 했지만 내가 아버지 위로 붕 떠 오를 때 균형을 제대로 잡아야 신나는 놀이였다. 서커스에서는 한 사람이 바닥에 누워 상대방의 균형을 잡아주는 곡예를 ‘이카로스’ 게임이라고 한다.“ “어쩌면 아버지는, 자신의 충고를 무시하고 태양에 너무 가까이 날아갔다가 날개가 다 녹아버린 이카로스의 운명이 생각나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화에나 나오는 그런 장면을 우리가 재현했을 때, 하늘에서 떨어져 아픔을 겪게 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바로 아버지였다.” 왠지 어색한 표정의 두 부녀가 비행기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펀 홈」이 어떤 이야기로 시작해서 마무리될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아름답게 은유한 오프닝이다. 위태롭게 서로를 바라보며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이 놀이에서 혹시라도 균형을 잃고 떨어진다면, 추락할 그곳에서 자신을 받아줄 사람이 아버지라는 사실, 그것이 7년에 걸친 작업과정 끝에 마주한 책의 결론인 것이다. 그리고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특별하게 주목하게 되는, 이 이야기만의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함께 어울린다거나, 기분 좋게 공유할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어 서로에게 소원했던(차라리 앙숙처럼 보였던) 이 두 사람에겐 의외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들 부녀가 둘 다 게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시골 마을을 떠나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며 동성애자로서의 사회적 자아를 키워가던 딸과는 달리, 시골 마을 장의사 가업을 물려받은 아버지는 쓰러져가던 고딕풍의 대저택을 강박적으로 복원하는 취미에 시간을 보내던 클로짓 게이로 자살함으로써, 세상에서 퇴장한다. (언젠가의 인터뷰에서 앨리슨 벡델은 사고사와 자살의 경계에 걸쳐있는 그의 모호한 죽음은 어쩔 수 없이 아버지와 어울리는 것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버지가 아테네인이라면 나는 스파르타인이었고, 아버지의 취향이 빅토리아식이라면 내 취향은 현대적인 것들이었다.” “목 끝까지 꼭 맞춰 입을 필요가 있나요? / 당장 노란 터틀넥 스웨터로 갈아입어라.” “먼지 털기도 힘든 이런 것들은 대체 왜 만드신 거예요? / 아름답잖니.” 판이하게 다른 성격으로 서로를 긁어대던 두 사람이 부인할 수 없는 영혼의 단짝이었다는 사실을 마주하면서, 「펀 홈」은 그저 그런 회고록이 좀처럼 보여줄 수 없는 수준의 예술적 긴장을 품게 된다. 그것의 정체는, 평생 혼자서 견고하게 쌓아 올린 비밀의 성안에 살던 아버지의 죽음이, 강박적으로 예민한 작가 앨리슨 벡델의 진정한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리고, 아버지가 남겨준 정신적 유산이 결국 자기 예술의 원천이자 근원이 되었다는 고백이다. 어색한 얼굴과 포즈의 두 사람이 아슬아슬 ‘비행기 놀이’를 하고 있는 오프닝이 절묘하게 아름답다고 느껴진다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언젠가 아버지는 자수가 놓인 어떤 천이 붉은 자주색이냐 짙은 분홍색이냐를 놓고 저녁 식사에 초대한 여자 손님과 거의 싸울 뻔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석양빛이 연어 살빛에서 황금색으로 또 암청색으로 끝없이 변해가는 동안에는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계셨다.” 총 7개의 챕터로 나뉜 과거사 속에서 똑같은 상황을 각기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되는 구성이나, 그리스 신화와 영미문학을 오가는 풍부한 교양으로 사건과 인물의 내면을 추적하는 방식은 그 재미와 깊이가 결코 녹록지 않다. 여기서 앨리슨 벡델이 취한 작가적 태도는 추리작가와 인류학자의 그것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엔 생생한 유머와 인간적 온기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복잡해 보이는 구성이나 부담스러울 수 있는 문학적 레퍼런스들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감정적 파장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앨리슨 벡델이 「펀 홈」으로 해낸 성취는, 평생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마을에 처박혀 클로짓 게이로 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를 벽장 속에서 끄집어낸 뒤, 전 세계적으로 번역, 출판되어 수많은 상을 수상한 문학작품 속의 잊을 수 없는 주인공으로 부활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캐릭터는 「펀 홈」에서 비범하게 복잡하고 아름다운 주인공의 자격을 획득했으며 그것이 자신의 분신이었던 딸의 손끝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특별히 더 찡하다. 「펀 홈」을 읽은 지 몇 년이 훌쩍 지났지만, 나는 작업실 책상이든 가방 속이든 이 책을 근처에 놓아두고 자주 펼쳐본다. 한때는 진지하게 이 책의 판권을 알아보려고만 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때 내가 가지고 있었던 거친 아이디어는 원작 그래픽 노블의 형식을 영화 안으로 화끈하게 가져오는 방식이었다. 내래이터인 작가 자신이 적극 개입해서 영화에 등장하기도 하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 구성원을 연기하는 배우들을 지켜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것은 원작의 화자인 앨리슨 벡델의 적극적인 목소리와 생생한 코멘트에 대부분 기인한 것인데,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 아메리칸 스플렌더 >라는 영화가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언더그라운드 만화가 커플인 ‘하비 피카’와 ‘조이스 브랩너’를 중심으로, 그 이웃들의 별 볼 일 없는 일상을 스케치하듯 보여주는 영화였는데, 실제 주인공인 하비 피카가 내레이션도 하고, 등장까지 해서 코멘트를 막 던지는 것이다. 당시, 하비 피카를 연기한 배우가 폴 지아마티였고,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뭔가 더러운 기분을 경험 중인 표정으로 등장해 골목을 걸어가는데, 그 위로 실제 하피 피카의 목소리가 끼어든다. 이런 식으로. “자, 여기 이놈이 우리 주인공이야. 다 자란 어른인데 아주 제멋대로지. 이것저것 아는 척은 잘하는데, 정식교육 같은 건 받은 적이 없어. 거의 평생을 이 개떡 같은 동네에서 개똥 같은 일만 하면서 살았지. 지금은 비참한 재혼 생활 중인데, 네가 로맨스나, 현실 도피적인 삶을 꿈꾼다거나, 궁지에서 구해줄 수퍼히어로 따위를 찾는 사람이면... 잘 들어라, 넌 영화를 잘못 골랐어.” < 아메리칸 스플렌더 > 이런 방식을 두고 포스트모던이니, 브레히트 적이니 같은 말들을 줄줄이 덧붙일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상영 내내 키득대다가 막판에 감동을 받으며 극장을 나왔던 기억의 영화다. 폴 지아마티와 호프 데이비스의 ‘인생 역할’처럼 보이는 이 만화가 커플은 보고 있기 엄청나게 흥미진진한 괴짜들이었거든. 대신, 「펀 홈」의 각색을 생각해보던 예전의 나는 실제 원작자를 연기하는 배우를 등장시켜 영화에 어떤 형태로든 개입시키는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있었다. 중요한 상황마다, 멀리서 팔짱 끼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고 있는 원작자 역의 배우가 프레임에 보인다거나, 끼어들어 코멘트를 던져도 (열심히 대화 중이던 배우들이) 안 들리는 척한다거나 하면, 감상에 엄청난 방해가 되면서 짜증도 나고, 기가 차서 코웃음도 나고 할 것 같지만, 내 전략상으로는, 바로 그런 접근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재미라서, “그런 책을 영화로 만든다고?” 반문하는 친구들에게 결국 한 방 먹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반나절 정도만’ 흥분하며 생각해본 듯한 이런 아이디어는 5분도 채 안 되는 인터넷 검색에서 어떤 식으로든 마침표를 찍게 됐다. 그러니까 바로 이런 방식으로, 「펀 홈」의 뮤지컬 각색 버전이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시작했던 것. 그리고 이듬해에 브로드웨이 공식 무대로 이어졌고, 2015년 토니상에서 뮤지컬 부문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작곡상 등 5개의 토니 트로피를 가져가며 그해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의 하나가 되었다. 재미있는 건, 2017년 현재, 그렇게 각색된 뮤지컬 버전을 마침내 본 나는, 뮤지컬 트랙의 송리스트를 내내 듣고 다니면서 가사를 외울 정도의 팬으로 입장을 바꾸게 된 것이다. 뮤지컬 <펀 홈> 트레일러 뮤지컬 <펀 홈>의 이카로스 게임 뮤지컬 <펀 홈> 세트 뮤지컬 버전이 놀라운 건, 타이밍이 어긋난 서로의 커밍아웃과 그로 인한 아버지의 죽음을 클라이맥스로 확실하게 보여준다는 것, 극 중 화자이자 성인이 된 딸이 죽기 전의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제발 어떤 이야기라도’ 해달라고 울부짖는 그 장면 내내, 노래로 소통하는 그들을 보면서 전혀 기가 차거나 코웃음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콧물을 훌쩍이는 소리나, 눈가와 두 뺨을 손으로 훔치는 관객들의 손짓들이 여기저기 보인다는 것은 그런 방식이 성공했다는 증거겠지. 다시, 「펀 홈」으로 돌아가자. 요즘 나는, 회고록(memoir)만큼 솔직한 ‘정신적 투쟁’을 구경할 수 있는 문학 장르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과거를 만나고 해석하는 일이야말로,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계획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작가적 미션이라는 이유가 그런 생각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펀 홈」은 안타깝게 죽은 아버지를 향한 예술적인 부고(obituary)로 그치는, 그저 그런 회고록이 아닌, 고통스러울 정도로 솔직하고 꼼꼼하게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만든 사람들을 들여다보려는, 정신적인 투쟁을 기록한 르포이기도 한 것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오래전 죽은 엄마에 관한 내 가장 선명한 기억조각 중에 하나를 꺼내본다. 당시, 나는 중학교에 갓 입학한 어린아이였고, 엄마는 자신의 남동생들(외삼촌)과 함께 탁구장에 놀러 왔다. 외삼촌들은 운동신경이 좋고 기분도 항상 좋은 사람들이라, 나는 이모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만큼 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즐겁다. 누나! 누나! 라고 불리는 엄마는 외삼촌들이 탁구 치는 걸 처음에는 구경만 한다. 탁구채를 건네도 손사래를 치는 엄마를 나는 신경도 안 쓴다. 외삼촌들이 괴성을 지르며 탁구 치는 모습을 보는 게 더 웃기고 재밌기 때문이다. 그러다 당시 아마 이십 대였을 것 같은 막내 외삼촌이 엄마를 끌고 와 탁구대 앞에 억지로 세운다. 그리고 탁구채를 억지로 잡게 한다. 어쩔 수 없이, 에라, 모르겠다, 쑥스럽게 자세를 잡은 엄마는 맞은편에 자리를 잡은, 유일하게 자신이 오빠라고 부르는 큰 외삼촌을 향해 예사롭지 않은 눈길을 슬쩍 보낸다. 큰 외삼촌을 비롯해, 지켜보던 세 명의 외삼촌들이 갑자기 조용하다. 탁구채를 잡은 엄마가 아무래도 어색한 사람은 나뿐인 것 같다. 바로 그 순간, 탁구대 위를 흐르는 그 시간부터 근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이후 이어진 몇 초간의 장면을 매번 또렷하게 기억해 낼 수 있게 된다. 대충 4K 해상도 정도로...? 그러니까 순식간에 탁구공을 머리 위로 던져 올려, 맞은 편 큰 외삼촌의 탁구대에 스카이서브를 정확하게 꽂아 넣던, 엄마의 우아한 번갯불 같은 동작 말이다. 방방 뛰며 좋아하던 외삼촌들의 모습도, 내 온몸을 지나갔던 소름의 기분도... 그리고, 얼굴은 기억 안 나지만, 내 머리를 쓰다듬어 정전기를 일으키던 그 이모들은 분명히, 엄마가 한때 전국소년체전에 나갈 정도의 실력을 자랑하던 유망한 탁구선수였음을 알고 있었겠지. * 「펀 홈」은 「재미난 집」이라는 제목으로 몇 년 전, 번역 출간된 적이 있으나, 현재는 절판 상태다. 올 해 안에 ‘움직씨’( https://twitter.com/oomzicc )라는 출판사에서 재번역/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1 펀 홈 #2 안녕, 내일 또 만나 #3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4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5 이모와의 여행, 그 외 몇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