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왕 번개
- 감독
- 성백엽
- 제작년도
- 1998
- 출연
- 최덕희, 정미숙, 서혜정, 이선주, 김정애, 이미자, 한인숙, 손정아, 이현선, 김민석, 김일, 강수진, 유해무, 안경진, 김정희, 이규화, 오세홍, 온영삼, 이정구, 구자형, 박상일, 노민, 박은숙
사진: “ Safety Last! ”, IMDb 세계영화사의 주목할 만한 사건과 개념을 포착하고, 그 의미를 조명합니다. 때로는 영화보다 그 영화의 어떤 장면, 그 장면의 스틸 사진이 더 유명한 순간이 있다. 안경을 쓴 순진무구한 젊은 청년이 도시 한복판 높은 빌딩 시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아마 (스필버그가 제작한) 로버트 저메키스의 < 빽 투 더 퓨쳐 >(1985)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참을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신이 방금 떠 올린 그 영화, 마이클 J. 폭스가 매달려 있는 그 장면은 오마주이다. 마틴 스코세이지도 조르주 멜리에스에 관한 3D 영화 < 휴고 >(2011)를 연출하면서 이 장면을 오마주했다. 성룡도 < 프로젝트 A >(1984)에서 시계에 매달렸다. 더 많은 예를 열거할 수 있다. 심지어 이 장면은 영화에서 ‘시간’의 문제를 다루는 아카데미의 영화 이론서 표지에도 등장한다. 나도 스틸 사진을 먼저 보았다. 영화사에서 빌딩 시계에 처음 매달린 사람은 해롤드 로이드이다. 위대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이제는 거의 아무도 말하지 않는 이름. ‘방랑자’ 채플린, ‘스톤 페이스(Stone face)’ 버스터 키튼과 함께 할리우드 무성영화 시대 슬랩스틱 코미디를 이끈 세 명 중의 한 명. 둥근 프레임의 뿔테 안경을 쓰고 (이 스타일의 안경은 이제 로이드 안경테라고도 불린다) 둥글고 납작한 보터 모자를 쓴 해롤드 로이드는 가난한 ‘모던 보이’. 그 소년이 시계에 매달린 영화는 Safety Last (1923)이다. 영어 제목으로는 금방 이해되지만 번역하기 까다로운 “Safety Last”는 공사장에 붙어있는 “Safety First(안전 우선)”에서 가져온 말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안전 마무리>라고 하겠다. 하지만 역시 오해의 소지가 있고, 더 좋은 제목이 떠오르면 수정하겠다. 역시 세 명의 위대한 대가들을 비교하면서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채플린은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위험한 상황에 휘말려 들지만 역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치 신의 도움을 받기라도 하듯이 거기서 빠져나온다. 버스터 키튼은 자기가 위험하다는 걸 깨닫고 인간의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는 수준으로 전력 질주하면서 벗어난다. 해롤드 로이드는 반대이다. 버스터 키튼이 스피드의 대가라면 해롤드 로이드는 위험한 상황에 온갖 장애물 속에서 할 수 있는 한 시간을 늘리고 그 과정에서 계속 실수를 연발하면서 가까스로 거기서 벗어난다. 그 실수의 시간을 최대로 연장한 영화가 <안전 마무리>이다. <안전 마무리> 중 / 사진: “ Safety Last! ”, IMDb 이번에는 LA가 무대이다.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결혼하기 위해 지참금을 구해야 하는 (영화 속의 이름도 마찬가지인) 해롤드는 백화점에 취직한다. 그런데 함께 지내는 빌에게는 빌딩을 타고 올라가는 ‘스파이더맨’ 같은 재능이 있다. 백화점 지배인은 손님을 건물에 끌어모으기 위해 1,000달러를 내걸고 빌은 12층 빌딩에 1층부터 등반하겠다고 알린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여차저차 우여곡절 끝에 해롤드가 1층을 올라가게 된다. 일이 생긴 빌은 다음 층에 옷을 갈아입고 자기가 오르겠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 층에서 이런저런 일이 생겨 바꿔치기는 그다음 층으로 미뤄지고 그러면서 가여운 해롤드는 계속 올라가야 한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게다가 그 자리에 여자친구도 도착한다. 층마다 새로운 장애물이 나타나고 너무 높이 올라가 이제 내려갈 수도 없는 해롤드는 위로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 클라이맥스는 빌딩에 달린 시계에 매달릴 때 벌어진다. <안전 마무리>는 해롤드가 12층 빌딩을 19분 50초 동안 등반하는 장면을 감상하기 위해서 보는 영화이다. 거의 슬로우 모션처럼 진행되는 이 등반은 단 한 순간도 지루할 틈이 없다. 좀 이상한 비교이기는 하지만 이 씬은 < 전함 포템킨 >(1925)의 오뎃사 계단 장면의 거의 두 배이다. 물론 마지막은 여자친구와 키스로 마무리하는 해피엔딩이다. 사진: “Safety Last!( 1 , 2 )”, IMDb 해롤드 로이드가 이 장면의 영감을 받은 것은 1922년 7월 어느 날이었다. 다음 영화 회의를 위해서 영화사로 향하던 길에 LA 7번가 브록맨 빌딩 아래 사람들이 몰려들어 모두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이상한 모습을 보았다. 자기도 올려다보니 한 남자가 건물을 타고 매달려 한 층씩 등산하듯이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남자는 옥상까지 올라갔고, 마치 등반에 성공한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옥상에서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돌면서 환호에 응답했다. 시계를 보니 이미 회의 시간을 놓칠 만큼 시간이 흘렀다. 잠깐 본다고 생각했는데 등반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해롤드 로이드는 보는 내내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이 등반에 매혹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만일 이 건물 등반을 영화로 찍으면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스펙터클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특수촬영이 초보 단계였던 1923년에 이 장면은 쉽게 찍을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다. <안전 마무리>가 첫 상영을 마쳤을 때 극장 안은 비명의 도가니였다고 한다. 관객들은 이 시퀀스를 극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처럼 받아들였다. 물론 해롤드 로이드가 ‘진짜로’ 건물을 타고 올라가는 걸 찍을 수는 없었다.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할리우드의 특수촬영은 이미 전문화되어가고 있었다. 이 시퀀스는 세 단계로 나누어서 촬영되었다. 처음 1층에서 올라가는 장면은 해롤드 로이드가 건물을 타고 오른다. 그런 다음 3층 높이의 세트를 지었다. 이 장면이 세트 촬영이고 거리의 풍경을 이중노출로 합성했다는 것은 매달린 해롤드 로이드를 보지 말고 카메라의 위치를 보면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이 장면을 그 위치에 찍었다면 정말 위험한 사람은 해롤드 로이드보다 촬영감독이었을 것이다. 시계에 매달린 장면을 위해서는 또 다른 세트를 건물 옥상에 지었다. 그래서 옥상에 세워진 세트에 달아놓은 시계에 해롤드 로이드가 매달렸다. 건물을 타고 오른 후, 시계에 매달리는 해롤드 로이드 / 사진: “Safety Last!( 1 , 2 , 3 , 4 )”, IMDb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하긴 했지만, 이 장면에서 가장 정교하게 설계된 것은 카메라의 위치와 각도에 관한 콘티이다. 게다가 건물을 타고 올라가는 해롤드 로이드에게는 신체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하여튼 매달리고 올라가는 장면을 찍어야 한다. 그런데 1919년 촬영 도중 소품 사고로 해롤드 로이드는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잃었다. 그러니까 오른손은 세 손가락으로 건물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는 뜻이다. 나는 <안전 마무리>를 몇 번이고 다시 보았다. 촬영과정을 알고 난 다음에도 다시 볼 때마다 이 시퀀스가 위치와 각도, 편집 타이밍, 구도, 동작, 진행 사이로 끼어드는 장애물들의 리듬, 이 모든 것이 마치 정교한 마법 기계장치처럼 작동하고 있음에 감탄하면서 보았다. 하지만 해롤드 로이드의 손가락 이야기를 알고 난 다음에는 매달려 있는 장면을 마음이 아파서 다시 보기 힘들어졌다. 아직 이야기가 남았다. 해비 페리를 잊으면 안 된다. 해비 페리는 1919년부터 해롤드 로이드의 위험한 장면 대역을 연기했다. 더 정확하게는 위험한 장면에서 해비 페리는 해롤드 로이드의 상대 쇼트(reverse shot)를 연기했으며. 높은 곳에 매달리거나 혹은 위험한 순간에 멀리서 해롤드 로이드 대신 건물을 타고 올라갔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오랫동안 해롤드 로이드의 모험을 믿었다. 해비 페리는 자신이 대역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해롤드 로이드가 세상을 떠나는 1971년까지 입을 다물었다. 스턴트맨으로 경력이 60년에 달하는 해비 페리는 험프리 보가트, 피터 로레의 할리우드 영화들, 심지어 키가 1미터 52센티였기 때문에 매리 픽포드의 대역도 했다. 어떻게 그렇게 매리 픽포드가 달리는 말에 능숙하게 올라탈 수 있는지 비밀이 풀렸을 것이다. 물론 비밀이 풀릴 때도 있지만 할리우드는 스턴트맨들의 피의 역사이기도 했다. 해비 페리 (사진: “ Harvey Parry ”, IMDb / © 1980 Steve Banks_ mptvimages )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l 매일 영화를 보고 종종 영화 평을 쓰고 가끔 영화를 만들고 때로 영화제 일을 한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2003) 인터뷰 진행,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010), 『필사의 탐독』(2010) 비평집 집필. 첫 영화 < 카페 느와르 >(2009) 이후 < 천당의 밤과 안개 >(2015), < 녹차의 중력 >(2018), < 백두 번째 구름 >(2018) 연출.
사진: "Lichtspiel Opus 1.", IMDb 세계영화사의 주목할 만한 사건과 개념을 포착하고, 그 의미를 조명합니다. 세계영화사를 뒤져나가면서 슬픈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어떤 순간? 영화가 가졌던 하나의 가능성이 역사의 폭력 앞에서 어처구니없이 중단되었을 때. 이번에는 세계영화사의 슬픈 순간 중의 하나와 만날 차례이다. 아마 수없이 이런 순간과 다시 마주치게 될 것이다. 발터 루트만(Walter Ruttmann, 1887~1941)은 188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스위스 취리히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타이밍이 좋았다. 그때 취리히는 제1차 세계대전을 피해 중립국으로 모인 다다이스트들의 도피처였다. 여기에 한스 리히터, 트리스탕 차라, 에미 헤닝스, 한스 아르프, 하여튼 셀 수 없는 다다이스트들이 있었다. 한때 제임스 조이스도 여기 머물렀고, 이웃 도시에 러시아의 동지들에게 문건을 보내던 블라디미르 레닌도 잠시 체류했었다. 아마 여기서 발터 루트만은 다다이스트가 되었을 것이다. 1909년에 독일로 돌아왔고, 뮌헨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파울 클레, 라이오넬 파이닝어와 교분을 맺었다. 잠시 파울 클레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그때 파울 클레는 닥치는 대로 화가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중에서 누구보다도 바실리 칸딘스키와 프란츠 마르크가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틀림없이 발터 루트만은 그들의 작품을 유심히 보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디서 그의 영화들 속의 이미지를 가져왔겠는가. (좌1) 발터 루트만 (사진: "Walter Ruttmann", IMDb ) (우2) 발터 루트만 연출 <빛의 유희, 작품 2번>(1922), <빛의 유희, 작품 3번>(1924) (사진: "LICHTSPIEL: OPUS II", MUBI / "Opus III", IMDb ) 발터 루트만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던 상황.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벨기에 아르 누보 미술가이자 건축가인 헨리 반 데 벨데가 바이마르 미술 공예학교와 바이마르 미술 아카데미를 통합하여 바우하우스(Bauhaus)를 세웠다. (하지만 바이마르 미술 아카데미는 바우하우스를 곧 탈퇴하였고, 독일인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초대 교장이 되었다. 여기에는 복잡한 이야기가 있지만 우리는 미술사를 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나쳐 가기로 한다.) 이 학교는 예술의 창조와 20세기 테크놀로지의 ‘결합’이 교육 목표이자 학교의 정체성이며 바우하우스의 프로젝트라고 선언(하다시피)했다. 이 학교에 네덜란드에서 《데 스타일(De Stijl)》을 창간한 테오 반 두스뷔르흐가 방문했고, 러시아 구축주의 미술가 엘 리시츠키도 찾았다. 바우하우스의 방향을 결정한 사람은 헝가리 미술가 라슬로 모호이-너지였다. 바우하우스는 산업 디자인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다. (좌) 바우하우스 (사진: "Chronology", Bauhaus Dessau ) (우) 1920년대 바우하우스 마스터 하우스에서, 라슬로 모호이-너지 (사진: "Biography", MOHOLY-NAGY FOUNDATION ) 발터 루트만은 화가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표현주의 그림을 그렸지만, 곧 추상주의 양식에 끌렸다. 그런 다음 영화를 끌어들였다. 이때 발터 루트만은 영화를 ‘새로운 예술’이라기보다는 미술을 위한 새로운 테크놀로지, 새로운 매체, 새로운 사이트(site)로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예술에서의 보편언어’를 추구하는 테크놀로지와 추상의 형식을 서로 결합하는 미래를 선언하는 《데 스타일》의 ‘기계 미학’에 관한 논의에 일정한 영향을 받았다. 오늘날에는 발터 루트만이 선택한 길이 아방가르드 영화로 나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루트만 자신은 미술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고 믿었다. 좀 더 간단하게 스크린을 새로운 캔버스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새로운 캔버스는 ‘시간의 움직임을 담아내는 매체’였으며 여기에 “우리 시대의 속도”를 그려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첫 번째 작품이 <빛의 유희, 작품 1번(Lichtspiel; Opus 1)>(1921)이다. 영화 제목이라기보다는 회화 작품에 어울리는 제목. 상영 시간 11분 44초. 음악 막스 부팅. 검은 바탕 화면에 푸른색과 초록색 원이 번갈아 교차하면서 시작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도형이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유리 위에 그림을 그린 이 작업은 명백히 칸딘스키의 영향 아래 놓인 것으로 보였다. <빛의 유희, 작품 1번>은 1921년 4월 27일 베를린 마르모르하우스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이 극장에서 한 해 전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로베르트 비네, 1919)을 공개했었다. 이 영화를 보고 비평가 베른하르트 디폴트는 《프랑크푸르터 자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에 “루트만은 자신의 스피드를 미래주의자 캔버스의 영화적 돌진으로부터 가져왔다”라고 썼다. 영화와 미술은 표현주의 영화들과 다른 차원에서 다시 한번 친교를 맺었다. <빛의 유희, 작품 1번> 중 하지만 <빛의 유희, 작품 1번>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인 사람들은 상품 광고 아이디어를 찾던 쪽이었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아방가르드와 비즈니스가 서로 결합했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예술은 다시 한번 돈이 되었다. 그들은 이 작품을 산업 디자인을 제시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받아들였다. 발터 루트만뿐이 아니라 많은 실험 영화 작가들이 새로운 제안을 받았고, 그들은 작업을 계속해서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였다. 이 과정을 유심히 지켜본 곳은 바우하우스였다. 산업 디자인의 관점에서 영화라는 매체를 활용한 ‘예술과 테크놀로지 사이의 새로운 통합’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라슬로 모호이-너지는 영화라는 표현 대신 매체로서 ‘빛의 구성과 조립으로 이루어진 이 종합’에 관해 1922년 《데 스타일》에 ‘생산, 재생산’이라는 글을 썼다. 발터 루트만은 자신의 작업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왁스-커팅기에 관한 허가권을 얻은 다음 1926년에 로테 라이니거의 영화 < 아흐메드 왕자의 모험 >(1926) 오프닝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도 했다. <아흐메드 왕자의 모험> 중 일시적으로 영화(와 미술 사이)의 또 다른 가능성에 다리를 놓았던 순간은 1933년 나치에 의해 바우하우스가 폐교하면서 갑자기 사라졌다. 발터 루트만은 추상적인 이미지의 ‘빛의 캔버스’를 버리고 산업 디자인 영화에 관심을 돌렸다. 1935년, 발터 루트만은 군중을 대상으로 자신의 ‘캔버스’를 실험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나치당은 그가 1928년에 모스크바 여행을 다녀온 경력을 문제 삼으면서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여 감독직에서 해고하고 그 자리에 레니 리펜슈탈을 지명했다. 그 영화가 < 의지의 승리 >(1934)이다. 발터 루트만의 경력은 여기서 끝났다. 오스카 피싱거는 나치 독일을 피해서 1936년에 미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월트 디즈니의 < 환타지아 >(제임스 알가 외, 1940) 작업에 참여했다. 라슬로 모호이-너지는 1937년에 시카고에 머물렀고, 미국에 개교한 바우하우스의 교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 기간은 아주 짧았다. 한스 리히터는 작업을 중단하고 1940년 뉴욕에서 영화를 가르쳤다. ‘빛의 캔버스’는 그렇게 섬광처럼 빛을 발한 다음 순식간에 꺼져버렸다. 하나의 순간이 덧없이 지나가 버렸다.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l 매일 영화를 보고 종종 영화 평을 쓰고 가끔 영화를 만들고 때로 영화제 일을 한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2003) 인터뷰 진행,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010), 『필사의 탐독』(2010) 비평집 집필. 첫 영화 < 카페 느와르 >(2009) 이후 < 천당의 밤과 안개 >(2015), < 녹차의 중력 >(2018), < 백두 번째 구름 >(2018) 연출.
처음으로 좋아한 격투기는 프로레슬링이었다. 김일의 박치기와 천규덕의 당수를 보며 가슴 졸이고 환호했다. 홍수환, 유제두, 박종팔 등의 복싱도 열심히 봤다. 그리고 프라이드와 UFC 등을 접하며 종합격투기에 빠져들었다. 격투기는 원초적인 스포츠다. 프로레슬링은 번외로 하자. 프로레슬링은 육체의 기술을 갈고닦아 캐릭터와 스토리를 더해 만들어진 쇼다. 육체의 화려함과 열정을 최대한으로 뽑아내는 엔터테인먼트. 프로레슬링은 쇼이지만, 복싱과 종합격투기는 일상의 싸움과 다르지 않다. 후두부와 성기 등 급소를 때리지 않는 정도의 규칙만 있을 뿐이다. 맹수의 공격을 방어하고, 동물을 사냥하고, 인간끼리의 다툼에서 필요한 생존의 기술은 격투기로 발전했다. 내가 격투기에 빠진 이유는 단순했다. 싸우는 그들에게 끌렸다. 격투기의 결과는 승패로 갈린다. 하나는 이기고, 다른 하나는 진다. 오로지 승리하기 위해 그들은 상대를 때리고, 걷어차고, 꺾는다. 혼자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싸운다. 하지만 격투기를 보면서 승자에게만 열광하지는 않았다. ’졌잘싸‘라는 말이 있다. 졌지만 잘 싸웠다, 의 줄임말이다. 비록 승부에서는 패배했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싸우는 이를 보면 가슴에 무엇인가 일렁인다. 오로지 승리하기 위해서, 치사한 전략으로 일관하는 놈을 보면 짜증이 일어난다. 단지 지지 않기 위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녀석을 보면 그저 한심하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미야케 쇼의 <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격투기의 감흥을 떠올리는 것은 어딘지 이상하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격투기, 복싱의 희열이 무엇인지 그리는 영화가 아니다. 복싱을 택한 청각 장애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영화에 가깝다. 복싱은 케이코에게 중요하지만, 생활을 압도하거나 대체할 수 없다. 케이토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복싱을 택했을 뿐이다. 누군가가 아니라, 세상을 때리고 싶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싸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 우리는 던져진 것이니까.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일본 최초의 청각장애인 여성 복서 ‘오가사와라 케이코’의 자서전 <지지 마!>(2011)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미야케 쇼는 오가사와라의 모든 이야기를 영화에 담을 생각은 없었다. 아니 그의 모든 것을 담고 있지만, 모든 시간과 사건을 그리지 않는다. 미야케 쇼는 말한다. ‘복싱을 다룬 것만이 아닌, 하루하루 링 위에서 그리고 링 밖에서 싸워나가는 한 여성을 그린 영화다.‘ 오가사와라 케이코가 소속된 체육관의 관장은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재능은 없어요. 키가 작고, 리치도 짧고, 스피드도 느리고요. 하지만 뭐랄까. 인간적인 기량이 있어요. 정직하고 솔직하고 아주 좋은 녀석이에요.’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케이코는 반항적인 아이였다. 고등학교 때는 분을 못 이겨 선생을 때릴 정도였다. 보통 아이들과 다른 자신의 처지 때문에 울분이 많고, 쌓인 감정을 발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반항아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케이코는 호텔에서 객실 청소 일을 하고, 복싱을 시작한다. 케이코는 말한다. ‘때리면 기분이 좋아요.’ 그리고 또 말한다. ‘맞을 때 아픈 것이 싫어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은 아무래도 쉽지 않다. 치열하게 싸우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케이코를 비롯한, 싸우는 사람들에게 끌리는 것은 그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치고받으며 싸우는, 마지막까지 전장에 서 있는 이들을 보면 어딘가 연대감이 느껴진다. 처참하게 패배할지라도, 함께 끝까지 싸워보고픈 마음이 든다. <내일의 죠>의 명대사처럼, 마지막까지 ‘하얗게 불태워’버리고 싶은 마음이랄까. 실베스터 스탤론의 < 록키 >처럼, 지더라도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쏟아내고 난 후 링 위에 꿋꿋하게 서 있고 싶어진다, 할까. 그렇게 생각했었다. 젊을 때는. 나이가 들면서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미야케 쇼는 인터뷰에서 ‘나는 솔직히 말해 10대부터 20대까지 꾸준히 성실하게 살자, 라고 하는 구호에 약간의 반감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이대에 접어드니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숏 한컷 한컷이 쌓여 완성되는 영화처럼 인생의 의미란 것이 결국 아주 조그마한 것들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쌓아가는 게 아닌가, 그렇게 느리고 작은 움직임이 소중하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의 영문 제목을 떠올려 보니 ‘Small, Slow But Steady’다. 작고, 느린 것이 소중함을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케이코의 위대한 승리나 처절한 노력을 말하지 않는다. 케이코는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체육관에서 열심히 훈련한다. 그것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편해지지는 않는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시합에서 지는 일은 벌어진다. 그렇다고 상대가 엄청난 것도 아니다. 그 역시 케이코와 마찬가지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운동하며 살아가는 생활 복서다. 천재도, 셀럽도 아닌 그들의 성취는 작고 느리게 이루어진다. 미야케 쇼는 케이코의 일상을 세심하게 그려낸다. 케이코는 들을 수 없지만, 세상에 가득 찬 소리들. 케이코가 다니는 체육관과 강변 그리고 골목길 등을 채우는 햇살과 공기 그리고 먼지들. 우리들의 일상은, 문득 멈추어 보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는 작고 느린 것들로 가득하다. 16밀리 필름으로 촬영한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다정하고, 섬세하다. 그리고 사려깊다. 소리도, 공기도, 어느 하나도 허투루 쓰이지 않고 각자 있어야 할 곳에 존재한다. 작고 느린 것들은 꾸준하게 움직이며 어디론가 나아간다. 아니 존재한다. 케이코는 아픈 것이 싫다. 복싱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있다. 세상도 그렇다. 때리고 싶고 싸우고 싶은 마음만큼 도망치고 싶고 피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넘친다. 그런 케이코를 붙들어주는 존재는 타인이다. 오랜 시간 권투를 했고, 지금은 후배를 키우는 체육관 관장. 나이가 들어 육체는 쇠하며 병이 들었고, 재개발로 인하여 체육관을 닫아야 한다. 세상은 결코 그의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재능이 뛰어나지 않은 케이코를 가르친다. 청각 장애인인 케이코가 싸워나가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일 것이다.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작은 일상의 싸움을 무수하게 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공감했을 것이다. 관장만이 아니라,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의 인물들은 모두 예사롭지 않다. 음악을 하는 케이코의 남동생은 말한다. 누나는 강하다고. 자신은 누나처럼 강하지 않다고. 흑인 혼혈인 남동생의 애인 하나는 케이코에게 선뜻 다가가 인사를 하며 친해진다. 하나는 케이코에게 춤을 알려준다.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재능이 있고, 최고가 아닐지는 몰라도 서로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무엇을 가르칠 정도는 된다. 그들은 자신의 길에서 작고 느리게, 꾸준하게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윗세대인 케이코의 엄마와 체육관 관장은 그들이 걸어가는 길을 지켜보고 있다. 결코 서두르지 않고, 미리 판단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면서, 세파에 움추러든 아이들의 등을 따뜻하게 두드려준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따뜻한 영화다. 케이코는 결코 외롭지 않다. 언제나 그들이 있고, 풍경이 있다. 케이코는 홀로 존재하지 않고, 풍경 속에서 어우러져 있다. 그리고 소리와 공기가 가득 차 있다. 케이코도 우리도, 언제나 함께, 세상 안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