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과 기억2 : 돌아 봄
- 감독
- 박종필, 김환태, 문성준, 안창규, 김태일
- 제작년도
- 2017
한 번 쯤은 달리기를 해봤을 것이다. 운동회의 릴레이든, 체력장의 오래달리기든 하다못해 트레이드 밀을 달린 경험일지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호흡의 중요성이야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릴레이를 할 때는 바통을 움켜쥔 채 단박에 내달렸을 것이며, 오래달리기를 할 때는 앞으로의 거리를 생각하며 페이스를 조정하지 않았을까. 뭐가 됐든 너무 많이 삼켜서도 너무 빨리 내뱉어서도 안 된다. 적절한 호흡이 있다. 다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여기 성긴 듯 급박한 호흡으로 나아가는 영화가 있다. 바로 홍원찬 감독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두 가지 흐름의 호흡을 통해 방콕에서 펼쳐지는 두 남자의 살인극을 그린다. 내러티브적 헐거움이란 성긴 호흡과 감정적 이음새로 이뤄진 액션의 급박한 호흡이 바로 그 두 가지이다. 그렇다면 먼저 내러티브적 헐거움이란 어떤 의미일까. 엄밀히 따져 영화는 극을 견인하는 치밀하고 뚜렷한 개연성을 제시하진 않는다. 그러나 영화 속 개연성은 부족할지언정 분명 존재하며 그가 진정 필요한가는 또 다른 문제가 된다. 정보를 전하는 영화의 흐릿한 흐름이 전략적 호흡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관객은 러닝타임을 따라가는 내내 이야기의 명확한 인과성을 얻을 수 없다. 영화는 ‘인남(황정민)’이 왜 하필 일본으로 떠났는지, 어쩌다 암흑가의 일을 하게 되었는지, 심지어 복수의 원인이 되는 ‘영주(최희서)’와 과거 어떤 특별함을 가졌는지도 제시하지 않는다. 불안한 미래를 암시하는 인남의 대사와 엘리베이터 속 단 하나의 총격 씬만이 둘의 과거를 압축한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불분명하다. 인남은 그저 시간이 흘러 영주가 죽었다는 전화 한 통과 그녀의 아이가 행방불명되었음을 듣고 방콕으로 향한다. 인남의 대척자 ‘레이(이정재)’ 역시 마찬가지이다. 레이는 인남이 자신의 형을 죽였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인남을 쫓는다. 형제의 과거가 간략히 언급되긴 하나 그들만의 특별한 무언가는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이렇게 영화는 흘러가는 줄곧 맹목적 복수의 이유를 뒷받침할 형제의 우애나 연인의 사랑 더 나아가 조명될 법한 인남의 부성애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죽어버린 과거의 인연만이 복수를 헐겁게 부여잡을 뿐 복수를 담아두는 줄거리의 개연성과 호흡은 다소 느슨하고 성겨 보인다. 이는 영화가 복수극이 아닌 살인극으로 전환되는 이유기도 하다. 더하여 이런 전개에 앞서 느슨한 개연성은 하나의 전략으로 영화적 전환을 뒷받침한다. 치밀한 복수의 이유와 계획이 제시되었다면 영화는 호쾌하게 질주할 수 없다.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부족한 개연성은 극을 이끄는 하나의 주요한 호흡으로 거듭난다. 이는 급작스레 시작되는 복수의 긴장감을 내뱉는 날숨의 과정이다. 그리고 영화의 중반부터 몰아쳐 올 액션의 시작을 전제하는 주요한 바탕으로서 영화의 장치가 된다. 영화는 이렇게 개연성의 필요를 물으며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바로 속도감 있는 액션이다. 듬성하니 채워진 복수의 뒤를 짚어 가던 관객은 점차 희미해지는 복수 대신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받는다. 바로 인남과 레이의 쫓고 쫓기는 액션 활극이다. 사실 이런 영화적 변환은 복수의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영화의 장소가 방콕으로 옮겨온 뒤 인남은 복수의 단서를 얻기 위해 사람들을 고문하며 살해하지만 결국 영주의 복수라는 근원에 닿지 못한다. 레이 역시 인남을 향한 살의의 이유를 잃어버린다. 즉 이들의 파괴 행위는 곧 복수라는 행위의 파괴이다. 결국, 관객과 두 인물이 새로운 선택지를 택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렇게 둘의 파괴 행위를 호쾌한 액션으로 재생하며 이전의 헐거운 개연성은 오히려 복수를 벗어던질 장점이 된다. 아이만은 살려 줄 수 없느냐 말하던 인남이 어느 순간 태도를 바꾸는 점 역시 의미심장하다. “더 이상 쫓아오면 넌 내 손에 죽는다.” 인남이 레이에게 전하는 대사이다. 이는 곧 영화의 내적 전환을 확언한다. 관객은 레이에게 향하는 인남의 태도 변화를 통해 그의 목적성이 변화하였음을 깨닫는다. 영화의 초반 영주의 복수와 아이의 행방을 위해 피를 흘렸던 인남에게 새로운 목적이 부여된 것이다. 이는 당연한 결과이자 내러티브적 선택이다. 앞서 언급했듯 영화는 연인의 복수(그 이유 역시 확실치 않고 불친절한)를 성긴 호흡으로 채워 왔다. 남은 시간 앞으로 내달리기에는 그 이유도 호흡도 부족하다. 새로운 숨을 들이마셔야 한다. 그렇기에 인남은 복수가 아닌 살인을 선언한다. 자신과 작은 아이의 몸뚱이 하나 간수하기 힘든 곳에서 그는 인간의 살인을 목표로 새롭게 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그렇게 인남과 레이의 싸움은 후반부로 향할수록 속도를 더해간다. 영화는 변화했고 헐거운 복수는 사라졌다. 그렇다면 피 끓는 투쟁을 이끌어가는 새로운 호흡의 매개는 무엇일까. 둘의 이야기가 액션을 위주로 변화되었다고 해도 영화는 분명 그 원동력을 가져야만 한다. 영화의 줄거리가 다소 힘을 잃었다고 해도 단지 그렇게 둘 수 없음만은 분명하다. 벌어져 가는 영화를 단단히 부여잡는 것은 바로 인남과 레이 두 주인공이 내뿜는 뜨거운 감정이다. 이것이 바로 점차 벌어져가는 복수를 접합시킬 아교이자 호흡이다. 이들이 가지는 맹목적 살의와 파괴성은 피를 연료로 삼아 영화를 불태운다. 하늘을 적시는 붉은 노을과 둘의 싸움으로 불타는 거리의 연기는 두 남자의 매연인 것이다. 영화는 두 인물의 대치와 그들이 표출하는 감정으로 달려가는 관객의 호흡을 다시 한번 정렬시킨다. 많은 대사는 필요치 않다. 둘의 눈빛과 부딪히는 육체만으로도 다소 심심했던 영화의 흐름은 활기를 띈다. 이런 영화적 흐름은 레이의 대사를 통해서도 구체화된다. 왜 그렇게 인남을 죽이고 싶어 하냐는 질문에 레이는 “더 이상 이유는 중요치 않아.”라고 답한다. 그렇다. 이는 곧 영화적 변화를 매듭짓는 결정타이며 극의 마무리를 내정하는 한 줄이 된다. 줄곧 언급했듯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복수와 그 과정에서 살인과 생존으로 옮겨갔다. 두 인물은 더 이상 복수의 원인과 결말을 따라가지 않는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혹은 살리기 위해 서로를 죽이고자 한다. 끈적한 살의를 품은 액션은 성기던 영화의 호흡을 급박하게 바꾼다. 치밀하지 못했던 복수로 비어있던 스크린의 빈틈은 이렇게 투쟁적인 들숨으로 가득 찬다. 마침내 숨은 영화의 말미 턱을 뚫고 뛰쳐나온다. 영화의 마지막, 인남과 레이는 부서진 자동차 속 피투성이가 된 채 나란히 죽어간다. 레이의 대사가 인상 깊다. “결국엔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잖아?” 인남은 레이를 그저 조용히 바라볼 뿐 어떤 말도 행동도 없다. 이는 곧 인남의 긍정이자 레이의 긍정이다. 둘은 죽어가는 와중 서로의 곁을 벗어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단순히 생명력을 잃어가는 몸은 문제가 아니다. 인남도 레이도 어느새 복수의 이유를 잃은 채 그저 서로를 죽이고자 달려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 탓이다. 조용히 앉아있더라도 더는 숨을 들이마셔 달릴 힘이 없다. 달릴 수 없다면 멈춰야 한다. 성긴 호흡으로 시작된 발걸음이 이리도 빠른 헐떡거림으로 바뀌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말이다. 느린 듯 성큼성큼 나아갔던 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전력을 다하는 달음박질이 되었다. 호흡 역시 그에 따라 조금씩 거칠어져 흐트러진다. 영화가 빨라지는 만큼 거칠게 변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 어떤 달리기라도 결승선은 존재한다. 무엇을 보았든 무엇을 위해 달렸든 주자는 결국 결승선에서 멈춰 선다. 복수로 시작해 살인이란 생존으로 달려갔던 인남과 레이. 둘은 단지 죽음이란 선에 멈추었을 뿐이다.
<로보트 태권브이>와 <외계에서 온 우뢰매>로 한국 로봇 애니메이션 영화사에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김청기 감독.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던 그는 1958년 18세에 단행본 만화를 발간하며 만화작로 데뷔했다. 데뷔작은 펜싱만화 <무적의 오프린>인데 펜싱영화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그린 뒤 무작정 아리랑 문고를 찾아가 출판한 작품이었다. 당시 이화여대 근처에 인쇄소와 만화 총판들이 있었는데 만화책이 인쇄되어 나오면 자전거 부대가 각 동네의 대본소에 배달하는 방식으로 만화책이 유통되었다. 그래서 그는 때로 자전거부대가 대본소에서 신발주머니에 받아온 동전으로 작가료를 받기도 했다. 그가 만화작가 활동 중이던 1961년 5.16 이후 출판만화에 대한 검열이 생겨나 소재와 표현방법에 있어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예를들어 풍속에 위배 되기에 부모에게 반항적인 인물을 묘사할 수 없었고 한 컷 안에 총과 칼을 겨눌 수 없었으며 ‘이놈’, ‘이 새끼’, ‘이 자식’이라는 단어는 쓸 수 없었다. 결국 극적인 악을 드러내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만화에 대한 공격은 심했고 어린이, 청소년 문제는 모두 만화 탓으로 돌려졌다. 그런 속에서도 그는 작화가 서툴거나 느린 만화가의 그림 작업도 겸하며 수입 좋은 잘나가는 만화가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1959년 세기극장에서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1937)를 본 뒤 그는 애니메이션의 매력에 빠져든다. (그림1)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1937)의 한 장면 1967년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신동헌)의 흥행을 시작으로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방학시즌을 노리고 대거 제작된다. 그는 박영일의 애니메이션 영화 <손오공>(1968)과 <황금철인>(1968), <보물섬>(1969) 및 TBC 방송 애니메이션 <황금박쥐>(1968)의 원화 및 동화가로 참여한다. 그는 1968년 최초의 단편 애니메이션인 <개미와 베짱이>(1961)를 만든 박영일을 감독으로 세기상사가 제작한 장편 애니메이션인 <손오공>에 처음 참여했다. 작화가들 모두 만화를 그린 경험이 없는 시각디자인과 출신이다보니 작업이 도안 그리듯 늦어졌다. 결국 손이 빠른 그가 하룻밤에 120장씩 그리며 작업을 진척시켰다. 심지어 밑그림 없이 셀에 곧바로 동작을 그려낼 정도로 그의 작업속도는 빨랐다. 기여도가 커지자 월급 6천 원이 8천 원으로 올랐다. (그림2) <손오공>(박영일, 1968) 포스터. 그는 이 작품에 동화작가로 참여했다. 그는 <손오공> 제작 중에 TBC 방송국의 제안으로 TV애니메이션 <황금박쥐> 작업에 참여한다. TBC 방송국이 동화부를 두고 일본만화의 하청작업을 시작했을 때이다. 하지만 1초에 8장을 사용하는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이었고 일본에서 지시받은 그대로 작업해야 했기에 그로서는 배울 것이 없었다. TBC에서는 월급 1만 3천 원을 받았지만 그는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세 달 만에 나와 다시 <손오공> 제작 현장으로 돌아갔다. 이때는 월급으로 만원을 받았는데 당시 만원이면 쌀 한 가마니를 살 수 있는 정도였다. (그림3) <황금박쥐>(1968년 TBC방영)의 한 장면 그는 세기상사 제작의 <손오공>, <황금철인>, <보물선>에 참여할 때 세기상사가 수입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1937), <걸리버 여행기>(1939) 등의 필름을 보고 실사영화와 비교, 분석했다. 움직임을 기계적으로 쪼개는 것이 아니라 작용과 반작용, 리듬을 고려해야 유려하고 자연스러운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림4) 그가 작업한 애니메이션 광고의 한 장면 삼성제약 <판토> (그림5) 롯데 라면땅 <황금박쥐>편 그림이 빠르고 애니메이션 작업 경험이 있는 그에게는 곧 많은 기회가 생겼다. 애니메이션이 들어가는 광고와 문화영화 등의 작업과 연출이 밀려들었던 것이다. 그는 1970년대 초 보림영화사, 선진문화사에 입사해 방송 CF, 각종 타이틀백, 문화영화, 기록영화에 사용되는 애니메이션을 맡아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이 잘 맞지 않아 유현목 감독의 문화영화사인 유프로덕션으로 옮겨가 프리랜서로 일한다. 유프로덕션에서 때로 기록영화와 문화영화를 맡아 자율적으로 자기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당시 청년 감독들이었던 김호선, 하길종, 홍파 등과 교류하며 실사영화에 대한 흐름을 익히게 된다. 하지만 주요수입은 광고 스토리보드였다. 최고의 광고기획사였던 제일기획, 한일기획의 감독들이 집까지 찾아와 스토리보드를 그려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그는 인기 있는 작가였다. 감각있는 그의 스토리보드만이 광고주에게 쉽사리 통과되었기 때문이었다. 종합적으로 그는 이즈음 CF나 문화영화 한 편을 온전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즉, 스토리와 구성, 작화, 음악, 녹음까지 가능한 연출자였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 준비가 되었다. (광고경험으로 그는 편집에 대한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이런 감각은 빠른 속도감으로 탄생했다. 당시 극영화는 700커트 정도였는데 <태권브이>는 1200커트였고 예고편 3분짜리가 극영화 20분 분량의 커트 수였다.)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기 위해, 그는 애니메이터 육성을 위한 키프로덕션을 용산에 만든다. 키프로덕션에서 그는 중앙정보부로부터 통일전선에 대한 애니메이션을 수주받아 납품하기도 했다. 그리고 1974년 제1땅굴이 발견되자 아이디어를 얻어 <똘이장군>의 스토리보드를 만들어 중앙정보부의 지원을 받아 완성, 개봉시키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1974년 박영일과 디즈니를 목표로 애니메이션 회사 서울프로덕션을 광화문에 설립한다. 우선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CF를 작업을 하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우던 중 1975년 박영일 감독이 서거한다. 결국 그는 홀로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을 시도한다. 마침 TBC 방송에서 상영한 애니메이션 <마징가>가 일본만화인지 모른 채 어린들에게 인기를 끌고 완구가 마구 팔리는 등 애니메이터로서 경각심이 생겨나던 차였다. 극장용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문화영화 라이센스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 그는 친분이 있던 유프로덕션을 찾아갔다. 유현목 감독은 지상학 작가의 시나리오 “마징가 태권”을 그에게 권했다. “마징가”라는 주인공 설정이 불쾌해 거절한 그는 제목부터 바꾸고 스토리도 지상학 작가과 함께 한 달간 새롭게 만들며 아이디어와 스토리를 글이 아닌 콘티로 풀어나갔다. 워낙 그림으로 생각하는 게 편하고 빨라 심지어 실제 작업에서도 원화 없이 바로 작화에 들어가는 수준이었다. <로보트 태권 V>는 1976년 초 제작에 들어가 그해 7월 21일 개봉했다. (그림6) <로보트 태권 V> 얼굴 이미지 ‘태권 V’라는 설정은 ‘마징가에 대응할 우리 것을 뭘 하면 좋겠는가’라는 고민 속에서 탄생했다. 당시 태권도 액션 영화들이 등장하고 태권도가 군인들에게 국기로 막 보급되던 시절이었다. 주변의 반응 또한 ‘태권도라면 괜찮다. 제목이 좋다’ 였다. ‘태권 V’의 이미지는 사무실이 있던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에서 힌트를 얻었다. 당시 모든 학교에 장군의 동상이 있을 정도로 군부정권은 정권의 정통성을 만들어내고자 무장 출신 이순신 장군에 대한 성웅화 작업에 열심히였다. 그래서 그는 국난의 영웅 중 최고로 칭송받는 이순신 장군에서 모티브를 따와 근엄하고 멋진 이미지를 태권브이에 심어줬다. (그림7,8) <로보트 태권 V> 중 훈이와 마사오의 대련장면 <로보트 태권 V> 대결장면도 월트 디즈니의 책을 참고해 <백설공주>의 ‘로토스코핑 기법’ 즉 실사영화로 찍은 뒤 화면 위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사용했다. 왕호 도장 유단자들과 유승선이 선릉에서 대련하는 것을 16미리 카메라로 찍고 편집한 뒤 그대로 그려 훈과 마사오의 대련장면에 사용해 리얼한 연출 효과를 냈다. (그림9) <로보트 태권 V>의 캐릭터들 왼쪽부터 윤박사, 악당 카프박사, 훈이, 깡통로봇 철이, 카프박사가 만든 인조인간 메리, 영희 <로보트 태권 V>는 태권도를 하는 로보트 외에도 컴플렉스가 심한 ‘카프 박사’, 인간이 되고 싶은 안드로이드 ‘메리’, 엉뚱하지만 친근한 ‘깡통로봇 철이’ 등 캐릭터 하나하나가 굉장히 흥미롭다. 이중 ‘메리’는 매력과 연민을 지닌 복합적인 캐릭터였다. 당시 <6백만 불의 사나이>(1976년~1978년 TBC 방송), <소머즈>(1976년~1978년 MBC 방송) 같은 사이보그 캐릭터들이 인기를 끌어 ‘메리’라는 인조인간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러나 예쁜 여자아이가 도둑질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당시의 사회적, 도덕적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검열을 피하기 위해 선한 설정을 한 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케이스다. 깡통로봇 철이는 그가 어린시절 학교의 큰 주전자를 보며 머릿속으로 상상만 했던 캐릭터를 재현한 결과물이다. (그림10,11) 안드로이드 메리와 깡통로봇 철이 <로보트 태권 V>의 음악은 최창권이 맡았는데 금관, 목관악기 편성을 잘해 음색이 깨끗하고 화려했다. 활기찬 주제곡 또한 인상적인데 태권브이 주제가는 최창권의 큰아들인 가수 최효섭이, 깡통로봇 주제는 작은아들이 불렀다. 효과는 김벌래가 담당했다. OST도 발매해 좋은 반응과 큰 수익을 얻었다. <로보트 태권 V>시리즈는 검열에 걸리지 않기 위해 적을 북한을 의미하는 붉은 제국으로 설정하는 등 반공정신이 투철한 작가의 작품으로 인식시키려 했지만 <로보트 태권 V 제2탄 우주작전>에서 3분 20초 즉, 일주일의 작업분량을 삭제해야 했다. 일본 선수 마사오와 훈이 대결하는 장면에서 마사오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는데 장발이었다는 이유에서 삭제됐던 것이다. (그림12) <로보트 태권 V 제2탄 우주작전> 마사오의 머리길이가 보이는 장면이다. 애니메이션에서도 장발단속이 행해져 바람에 날리는 마사오의 장발이 삭제되었다. <로보트 태권V>는 극영화처럼 지방투자자의 투자금으로 제작비를 충당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CF 스토리보드로 직접 돈을 모아 대부분 자비로 제작했다. 처음에는 18,000매로 계획했다. 일본 TV만화영화가 30분에 4,000매가 들었기 때문에 그보다 훨씬 많은 18,000매면 1시간 16분 정도를 유연한 동작으로 표현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제작에 들어가자 32,000매가 필요했고 이 숫자는 작화 뿐 아니라 트레이싱, 컬러링, 셀까지 이어지다보니 각각의 재료비가 예상보다 훨씬 많이 들게 되었다. 총제작비 4500만원 중 유현목 감독으로부터는 지방투자자에게 단매하고 받은 진행비 200만 원과 후반 작업비용을 제공받았다. 나머지 금액은 김청기 감독의 사비로 빚을 져서 해결했다. 당시 애니메이션 재료들이 고가였고 또 많이 부족했기에 셀은 군사용 항공 필름과 엑스레이 필름을 구해 물에 불린 후 하이타이로 닦아서 사용했다. 종이며 연필 모두 질이 안 좋아 마루펜에 먹을 찍어 그림을 그렸다. 포스터 칼라도 국산은 색을 배합하면 색감이 탁해지는 등 재료에서 오는 고통이 컸다. (그림13) <로보트 태권V> 신문 광고 (그림14) <로보트 태권V) 개봉일 대한극장 앞에 즐비한 관객들 (그림15) <로보트 태권V) 극장 매표소 앞 행렬과 매진표시 작품을 완성시켜 개봉할 때도 고통은 이어졌다. <로보트 태권V> 1탄은 대한극장에서 개봉했는데 극장의 횡포가 심했다. 표돌리기로 극장은 관객수를 줄였고 상영중단 커트라인이 1200명이었지만 개봉 21일이 되자 1800명이 들어도 간판을 내리게 했다. 현금으로 수입을 챙긴 극장은 제작사에 어음으로 대금을 줬다. 그가 최종적으로 얻은 수입은 유현목 감독과 서울흥행수입 절반을 나눈 것이 전부였고 유현목 감독은 서울흥행수입의 절반과 부산흥행 수입을 가져갔다. 결국 그는 빚을 다 갚지 못해 당시 1800만원 상당의 사당동 단독주택을 팔아야 했다. 극장의 횡포에 부당함을 느낀 그는 <로보트 태권 V> 3탄부터 극장이 아닌 시민회관에서 개봉하며 어린이 영화의 새로운 흥행 관행을 만들어냈다. (그림16) <똘이장군> 포스터 그는 <똘이장군>(김청기, 1979)에서 수익을 냈고 <로보트 태권V>로 얻은 빚을 갚을 수 있었다. 키프로덕션 시절 기획했던 이 작품은 『정글북』과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소재에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을 섞어 만든 것이었다. 동아광고에서 대명해 제작했고 제작비의 일부는 지방 선판매로 해결했다. 개봉관 상영이 힘들어 서울 2번관 서너 개를 잡았는데 오히려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똘이’ 라는 이름은 <코주부> 김용환 선생의 <똘똘이의 모험>을 참고해서 지은 작명이다. (그림17) <혹성 로보트 썬더 A>(김청기, 1982) 포스터 그는 <똘이장군>의 흥행이 성공한 후 다시 로봇만화로 돌아온다. 로봇만화가 나오면 각종 완구들이 덩달아 인기였는데, 완구업체 ‘뽀빠이과학’은 <로보트 태권 V와 황금날개의 대결>(김청기, 1978)부터 완구를 만들어 수익을 보고 있었다. <혹성 로보트 썬더 A>(김청기, 1982)때부터 완구업체 ‘뽀빠이과학’은 독점 판매권을 얻고자 김청기 감독에게 제작비의 일부를 대고 판권을 사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완구 모델을 제대로 개발하지 못할 때라 뽀빠이과학은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있던 합체로봇을 가져와 “이런 모델로 영화를 만들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결국 그는 일본에서 애니메이션 영화화되지 않는 모델일 경우에 한해 제안을 받아들였고 조금씩 변형시켜 작품에 사용했다. 회사를 유지하고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뽀빠이과학의 투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뽀빠이과학은 제작비의 3분의 1 정도를 부담했다. (그림18) <초합금 로보트 쏠라 원투쓰리>(김청기, 1982) 포스터 (그림19) <로보트군단과 메카3>(김청기, 1985)의 한 장면 (그림20) <똘이와 제타 로봇>(김청기, 1985)의 한 장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합금 로보트 쏠라 원투쓰리>(김청기, 1982), <로보트군단과 메카3>(김청기, 1985)는 이름을 빼고 싶을 정도로 작가로서 자부심에 상처를 입힌 작품이었다. 하지만 흥행을 위해서는 그의 이름이 필요했다. <똘이와 제타 로봇>(김청기, 1985)도 뽀빠이과학에서 제공한 완구를 모델로 한 작품인데 그래도 어려운 시기를 만회시켜준 영화였다. 소인국의 ‘파라셀 공주’가 완구 비행기에서 뚜껑이 열고 등장하는 것이 당시 아이들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슈퍼 태권V>(김청기, 1982)의 경우 합체는 뽀빠이과학의 요구대로 갔지만 캐릭터의 얼굴과 태권브이의 이미지는 벗어나지 않았다. 1980년대 들면서 태권브이 모델이 조금씩 변하는데 이 또한 완구업체의 영향이 있었다. <84 태권브이>(김청기, 1984)에서는 3단 변신합체로봇과 칼이 등장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뽀빠이과학과 연출자의 의견 차이로 태권브이의 얼굴이 완구와 애니메이션이 차이가 날 정도였다. (그림21) <84 태권브이>(김청기, 1984)의 한 장면 (그림22) <84 태권브이>(김청기, 1984)의 한 장면 훌쩍 커버린 깡통로봇과 미나 <84 태권브이>(1984)는 <로보트 태권 V>(1976)를 본 아이들이 성장해서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주인공인 훈이, 미나, 영희의 외모나 체형 또한 성장하고 분위기도 현대적으로 바뀌는 변화를 보여줬다. 하지만 <84 태권브이>의 흥행은 LA 올림픽과 문화생활의 변화 때문에 기대 이하의 실망을 안겨줬다. 자가용이 늘어 아이들과 교외로 이동하는 레저가 생겨났고 주차가 힘들었던 극장에는 발길이 뜸해졌다. 게다가 1980년대 컬러TV가 보급되어 화려한 원색의 어린이 만화가 연일 방송되었다. 어린이 영화가 퇴조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애니메이션의 흥행은 타격을 받게 된다. (그림23) <외계에서 온 우뢰매>(김청기, 1986) 포스터 어린이 영화의 퇴조라는 위기를 타개하고자 새로운 도전으로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합성한 로봇 영화 <외계에서 온 우뢰매>(김청기, 1986)를 만들게 된다. <외계에서 온 우뢰매>는 <황금날개>의 스토리를 각색해 만든 것이다. 순진하고 어벙한 주인공이 덤블링을 하면 히어로가 되는 이야기에 디즈니의 <메리 포핀스>(1964)처럼 실사와 만화가 어우러지는 형식을 더해 만든 작품이었다. 마침 뽀빠이과학이 독수리가 로봇이 되는 우뢰매 완구를 가져왔는데 썩 괜찮았다. 하지만 실사 애니메이션은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을 각각 따로 찍은 뒤 합성해야 했기에 제작비가 상당했다. 결국 뽀빠이 과학이 제작비 5천만을 투자해 제작이 시작될 수 있었다. (그림24) <외계에서 온 우뢰매>(김청기, 1986)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합성 장면. 우뢰매가 악당 로봇 캉가를 공격하려는 장면 코메디언 심형래가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다행히 덤블링이 가능해 <우뢰매>시리즈에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심형래를 주인공 ‘에스퍼맨’으로 설정하고 ‘데일리’ 또한 <로보트 태권 V>의 메리와 같이 외계인이라는 설정을 가져갔다. 그는 이때도 만약 데일리가 지구인일 경우 검열에서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림25) <외계에서 온 우뢰매>(김청기, 1986)의 한 장면. 에스퍼맨 심형래와 데일리 천은경 <외계에서 온 우뢰매>(1986)가 흥행에 성공하자 그 수입과 <외계에서 온 우뢰매 2>(김청기, 1986)의 선판매금을 합쳐 잠실에 세를 얻고 3억을 들여 올림피아극장을 만들었다. 마침 소극장 붐이 일었을 때였다. <외계에서 온 우뢰매 2>는 겨울방학시즌 개봉 때 올림피아 극장에서도 상영했다. <외계에서 온 우뢰매 2>부터는 <스타워즈>를 모델로 특수촬영을 해보고자 애니메이션과 모형을 사용했다. (사진26) <외계에서 온 우뢰매 2>(김청기, 1986) 데일리 송금란과 에스퍼맨 심형래가 모형으로 된 우뢰매를 출동시키는 장면 그는 <외계에서 온 우뢰매> 시리즈의 성공 후 성인 히어로물에 대한 기대감으로 <바이오맨>(조명화·김청기, 1988)을 제작한다. 이 작품도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주인공을 <6백만 불의 사나이>나 <소머즈> 같은 사이보그로 그리고자 한 작품이었다. 홍콩, 태국 등지로 로케이션 촬영을 감행하는 등 평균제작비가 1억이던 시절 5억의 제작비를 투자한 대작이었다. (그림27) <바이오맨>(조명화·김청기, 1988) 홍보전단 <바이오맨>은 국도극장에서 개봉하기로 했으나 마침 개방화 물결 속에서 1988년부터 공산권 국가들의 작품이 대거 국내에 상영되고 화제를 모을 때였다. <바이오맨>은 갑작스럽게 중국영화에 밀려 국도극장에서 상영할 수 없게 된다. 지방의 흥행사들은 서울 상영관의 개봉 이력과 선전물을 받아 흥행을 해야 했기에 궁여지책으로 어린이회관에서 <바이오맨>을 개봉하게 된다. 작품의 성격과 상영관이 전혀 맞지 않아 흥행은 요원했다. (그림28) 만화잡지 《월간 우뢰매》 <외계에서 온 우뢰매> 시리즈의 흥행 속에서 1988년에는 잡지 《월간 우뢰매》를 창간한다. 본격 로봇 만화잡지였는데 어린이 대상 잡지여서 광고수입이 없었고 결국 적자를 보며 운영하다 18권까지 발매하고는 폐간한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 국세청으로부터 잡지 90만 권의 판매에 대한 소득세가 부과된다. 당시 열악한 출판업계 관행상 영수증 처리가 미비해 제대로 된 비용 증빙을 할 수 없어 공제 없이 고스란히 세금을 내야만 했다. 그는 세금을 벌기 위해 비디오사업에 뛰어들었으나 당시 포화상태였던 비디오업계에 진입해 성공하기는 힘들었다. 결국 ‘태권브이’의 아버지이자 한국 로봇애니메이션 영화의 창시자인 그는 1990년대 중반 안타깝게도 파산을 선언하고 낙향한다. 애니메이션 영화에 대한 열정과 사랑만으로 사업을 운영하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이후 방송국과 주변인들의 요청으로 애니메이션 몇 편을 만들었고 1999년에는 영화사 ‘신씨네’ 신철 대표에게 <태권브이>의 저작권을 넘기고는 제작 일선에서 물러난다. (그림29) 2016년 ‘태권브이’ 탄생 40주년을 기념해 열린 전시 ‘엉뚱산수화전’의 작품 현재는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하며 조용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그는 위기마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로보트 태권브이>와 <외계에서 온 우뢰매>라는 성공적인 시리즈를 만들어내 국내 애니메이션과 어린이 영화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애니메이션 영화에 대한 기대와 사랑을 놓지 않고 있다.
완전 범죄는 있다 2018년, 내게 가장 인상적인 영화는 < 암수살인(暗數殺人) >( 김태균 )이었다. ‘보이지 않는 숫자’는 모든 정치의 열쇠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대표적인 숨겨진 범죄(hidden crimes)다. 신고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범죄라는 인식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문제, 보지 않으려는 문제, 왜 어떤 문제는 드러나고, 어떤 문제는 덮어지는가, 어떤 문제는 문제로도 상정되지 않는가. 누구는 보호받고, 누구는 그렇지 않은가, 어떤 사람의 살인은 과실치사인데(폭력 남편이 아내를 구타하다가 피해 여성이 사망하는 경우), 어떤 사람의 살인은 교묘히 계획된 범죄인가(남성의 폭력에 대한 정당방위를 행사한 여성).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누가 정하는가? 차이와 배제, 범주를 둘러싼 권력과 지식은,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는 말은 생각보다 심오한 함의를 가지고 있다. 완전 범죄는 머리 좋은 가해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암수살인처럼 피해를 파악할 수 없는 범죄가 완전 범죄다. 신고도, 시신도, 증거도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유일한 증인은 범인이다. 미제 사건도 아니고 범죄 자체가 가시화되지 않은 경우, 그것이 완전 범죄다. 하룻밤에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가정폭력으로 혹은 성 산업에 종사하다가 사망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강남역 사건은 드러났을 뿐이다. 암수살인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이주자, 난민, 노약자, 빈곤층, 노숙자, 여성 등 취약 계층이 대부분이다. 글쓰기나 인문학 강의를 하다 보면, 자주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지식과 지식인의 개념이다. 다른 문제에 비해 이 이슈는 자신 있게(?) 대답하는 편이다. “지식의 개념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지식인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또한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모르는지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모르는 것을 모르는데...” 지식인의 개념보다는 지식인에게 필요한 태도를 묻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인 질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식인이나 예술가에게 필요한 덕목은 사명이나 역할이 아니다. 윤리에 대한 추구와 지향. 가장 기본적인 윤리적 자세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지식은 공부하고 조사해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발명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어딘가에 있어서 찾아지는 대상이 아니라 특정한 시각이 없다면 드러나지 않는 사실이다. 시각이 지식을 드러나기 하므로 지식은 발명(making)되는 것이다. 그래서 객관적인 지식이란 존재할 수 없다. 시각이 앎을 결정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는 우리가 끼고 있는 렌즈의 색깔에 달려 있다. 등록되지 않는 죽음 영화 <암수살인>의 미덕은 윤리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형사 영화는 범인과의 심리 게임이나 액션(폭력), 스릴러를 강조한다. 주제는 남성들 간의 승부이고, 피해자(주로 여성과 어린이)는 그들의 대결이 가능하도록 기능하는 도구다. 그런 영화 중에서 가장 웰메이드를 꼽으라면 < 살인의 추억 >( 봉준호 , 2003)이 될 것이다. <암수살인>은 반대 입장을 취한다. 등장인물은 형사와 범인이지만, 서사의 흐름은 철저히 피해자 중심이다. 또한, 이 영화는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다루고 있다. 이로 인해 <암수살인>은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작품이 ‘되었다’. 이 지면에서 굳이 언급하자면, 당대 한국의 남성 영화감독 중에서 시대의 윤리, 재현의 윤리를 가장 고민하는 이는 이창동 감독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영화의 윤리성은 실화를 바탕 하는 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마지막 장면에서 범죄자 강태오( 주지훈 분)는 김형민( 김윤석 분) 형사에게 진부한 대사를 던진다. “당신은 나 못 이겨”. 형사는 진부하지 않게 받는다. “내가 너를 이겨서, 뭐 할 긴데?” 그는 이기고 지는 것에 관심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 이런 장면을 두고 “진짜 이겼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 역시 승부의 관점이다. 인간의 생명을 두고 승부가 중요한가? 형사의 관심사는 범죄자와의 심리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와 피해자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있다. 때문에 (실화와 달리), 김형민은 재소자 강태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등의 불법 행위도 불사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단 하나,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대립 구도가 사회운동에서도 빈번하다는 사실이다. 어떤 이들은 ‘적’과의 싸움, 이기는 것에 무게를 두는 반면 어떤 이들은 피해자를 지원하고 그들의 상황을 더 걱정한다. 물론, 피해는 사회 구조의 산물이기 때문에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전자의 입장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면, 피해자는 사회운동의 명분, 증거로 전락하게 된다. 피해자를 ‘앞세우거나 동원하는’ 사회운동가, 페미니스트들이 의외로 많다. 이들의 변(辨)은 한결같다.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긴 이야기다.) ‘완전 범죄’라는 표현은 가해자의 관점이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완전 범죄는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해서도 안 된다. 사람이 범죄의 대상이 된 현실이 완벽하다는 말인가. 논리적으로도 넌센스다. 예를 들어, “세월호 사건은 완벽했다”는 말이 가능한가? 피해가 퍼펙트 했다? 영화에서는 “암수살인이 한 해 200건”이라는 대사가 나오지만, 이 숫자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은 법무부 장관도 알 것이다. 경찰이 인지한 사건만 이 정도라는 것이다. 실제는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다. 실종 사건에서 남겨진 이들의 고통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을 확인하는 문제다. 기다리는 이들의 고통. 이들은 고통이 끝나길 원한다. 여기서 딜레마는 그것은 범인만이 알고 있으며, 그것이 그의 권력이라는 사실이다. 수사 기관이 파악하지 못한 범죄를 범인이 자백하는 조건으로 형량 거래가 이루어지거나 이 영화에서처럼 형사가 자기 돈을 써가며 범인과 적극적으로 협상한다. 요컨대 <암수살인>은 고통, 가시성, 윤리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도 상업 영화로서 성공했다는 점은 성취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영화를 세 번 봤다. 암수살인의 피해자가 사회적 약자라는 점, 피해자의 신분이나 언론의 관심도에 따라 사회적 자원(수사)은 다르게 분배된다는 현실. 용의자만 유전무죄가 아니다. 안전 역시 사회적 공공재이기 때문에, 잠재적 피해자들도 유전무죄다. 등록되지 못한 피해 정찬의 소설집 『새의 시선』(2018년, 문학과 지성사)에 수록된 단편 ‘등불’은, 세월호에 승선한 사람 중에 명단에 없는 이들의 이야기다. 우리 사회는 세월호에 탄 모든 이들의 리스트를 확보하고 있는가? 세월호에 몇 명이 있었는지 알고 있는가. 만일, 운임이 없어서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아이와 함께 배에 탄 가난한 여성이 있다면? 이제 세월호 사건의 정확한 피해자 숫자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미등록된 자의 죽음. 역사도 우주도 저 하늘의 별도, 그 어디에도 흔적 없는 죽음이다. 무지가 권력인 사회에서, 소수자를 함부로 하는 사회에서, 시민권의 의미가 좁은 사회에서는 누가 인간이고 성원권을 가졌는지는 언제나 논쟁거리다. 태아는 생명권, 선거 연령, 동성애자의 숫자, 인터 섹스(間性), 누군가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는 투쟁을 통해서만 확보되는 진실이다. 우리는 통계를 통해 현실을 아는 것이 아니다. 통계는 그 사회가 합의한 개념에 따라, 그에 맞는 수준의 정보를 제공할 뿐이다. 예를 들어 무엇이 폭력일까. 무엇이 위계일까. 가해자, 피해자, 조사자의 개념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학교폭력이든 가정폭력이든 군대 내 폭력이든 실태 조사가 어렵다. 이런 일들은 부지기수다. 통계를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통계의 맥락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나는 (『한국기지촌여성인권운동사』를 쓴 적이 있어서) 주한미군 기지에 관한 질문을 종종 받는데 뭐라고 답해야 할지 당황한다. 통상, 기지(bases)의 개념에는 다양한 ‘시설’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a military base, camp, post, station, yard, center, homeport facility...) 이는 번역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이처럼 팩트는 단 한 번도 팩트일 수 없다. <암수살인>은 고통, 지식, 권력의 문제를 연결한다. ‘통찰’을 뜻하는 영어 ‘insight(in + sight)’는 “눈을 감아야 새로운 것이 보인다.”는 뜻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지식을 잠시 잊거나 상대화하지 않으면, 새로운 지식은 절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절충’을 가장 싫어한다. 여성주의 지식이나 마르크스주의가 사회적 저항이 큰 이유는 이 때문이다. 기존의 사고방식을 의심해야 하는데, 이는 기득권과 연결된 문제다. 여성주의는 가부장제 세계관과 협상할 수는 있지만 양립할 수는 없다. 환경운동은 발전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모든 인식이 당파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아는 만큼 보인다. 그때부터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아름다운 말이지만, 실상은 매 순간의 긴장을 요구하는 만만치 않은 삶이다. <암수살인>에서 내가 좋아하는 몇 장면. 처음 두 남자가 비 오는 자갈치 시장을 걷는다. 바로 다음, 칼국수 집 장면은 화면 밖으로 냄새가 풍기는 듯했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경찰서나 관공서에 박카스류를 사 들고 오는 민초들, 실종자 할머니 역의 허진 배우의 연기도 좋았다. “그지 맹크로(거지처럼)” 같은 부산 사투리(서울말도 사투리지만)는 중독성이 있었다. 6년간에 걸친 감독의 필드웍은 이 속도의 시대에도 창작의 원칙에는 변함이 없음을 일깨운다. 김윤석 배우의 형사 영화를 모두 보았지만 비슷한 장면이 거의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영화는 < 천하장사 마돈나 >( 이해준 , 이해영 , 2006)다. 여성이 되기를 꿈꾸는 뚱뚱한 씨름 선수( 류덕환 분)의 아버지로 나오는데, 그는 상흔이 가득한 얼굴로 학대를 대물림한다. 상처 입은 남자가 아들에게 휘두르는 폭력. 나는 그의 ‘루저 한국 남성’ 연기에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변호사 역의 김중기 배우는 오십대 초반인데, 아주 젊게 나온다. 택시 안의 구토물을 닦아내는 여성 노동자들의 일하는 장면. 강태오‘도’ 하지 않는 노동이다. 구토기와 눈물이 동시에 나왔다. 영화를 본 이들은 그 식사 장면을 기억하리라. 두 명의 형사(김윤식, 진선규 )가 포크레인 기사에게 ‘애원’하는 장면은 굉장한 기시감이 들었다. 우리 주변에는 자기 일도 아닌데 늘 손해를 보면서 남을 돕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일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영화에서처럼 상관, 후배, 검사, 가족... 그러니, 이들의 인생은 늘 “미안하고 죄송하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일은 혼자 못하기 때문에 주변에 ‘민폐’를 끼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