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 승자와 패자
- 감독
- 미츠나카 스스무
- 제작년도
- 2015
- 출연
- 심규혁, 양정화, 성완경, 구자형, 류승곤, 무라세 아유무, 이시카와 카이토
주현숙 감독의 신작 < 빨간 벽돌 >을 보다 불쑥 떠오른 우화가 하나 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 돼지들이 각기 다른 재료로 집을 짓는다. 짚과 나무로 집을 지은 첫째 둘째의 시행착오를 거쳐, 셋째 돼지는 벽돌로 튼튼하게 집을 지어 늑대의 공격에 맞선다. <아기돼지 삼형제> 우화이다. 이 우화의 결말은 디즈니 버전은 좀 다르긴 하지만 두 돼지를 잡아먹고 셋째 돼지까지 잡아먹으려는 늑대를 막내 돼지는 끓는 물에 빠뜨려 잡아먹는다. 권선징악이자 먹고 먹히는 이야기다. 사실 <아기돼지 삼형제> 우화와 <빨간 벽돌>은 별다른 연관이 없다. 아마도 영화의 제목에서 셋째 돼지의 지혜와 생존전략의 도구인 벽돌이 연상된 정도가 아닐까 싶다. 실제 감독은 빨간 벽돌의 제목이 구로동맹파업 당시 구로공단을 둘러싼 벽이 붉은 벽돌임에 착안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아기돼지 삼형제>에서 시작하는 것은 연상 작용으로 비롯된 ‘의도적 오독’으로, 민중의 지혜와 생존전략을 담은 두 이야기를 벽돌로 이어내면서 둘의 비교를 통해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새롭고도 반가운 징후를 짚어보고자 함이다. 우화적으로 그리고 우회적으로. < 빨간 벽돌 >은 크게 두 축으로 아니 세 축으로 풀어볼 수 있다. 1985년 구로동맹파업에 참여했던, 지금은 중년이 된 여인들의 이야기가 한 축이고, 다른 한 축은 2017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당시 구로동맹파업 언니들의 나이인 청년들의 인터뷰이다. 그리고 그 두 그룹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요청하는 감독이 존재한다. 큰 얼개로만 얼핏 보면, 구로동맹파업 사건을 중심으로 세대별 시선과 태도를 다루는 것 같지만, 영화는 예상과 달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즉 부지런히 집을 지었고, 짓고 있는 아기 돼지들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아기돼지 삼형제>와 조금 다른 지점이 있다. 먼저, < 빨간 벽돌 >은 사건에 집중하지 않는다. 영화는 사건보다 인물에 주목한다. <아기돼지 삼형제>를 비롯한 많은 이야기들이 그렇듯, 사건을 중심으로 대상을 담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역시 은폐된 혹은 왜곡된 과거사를 다룰 경우,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사건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인물은 당시 사건을 체화한 증거이자 증언자로 소환된다. 최근에는 사건의 공간 자체에 주목하면서 공간에 내재되고 축적된 기억과 감응을 전면화한 영화도 등장하지만 여기서도 역시 인물은 부재하거나 전면화되지 않는다. 행동과 사건 중심 혹은 공간 중심의 이야기 구성에서 <빨간 벽돌>은 오늘을 살아가는 진행형의 인물에 주목한다. 영화는 시작하고 삼십 여분 동안 인물들의 일상을 나눈다. 몸이 마음 같지 않은 갱년기 증상에 대해, 솔 내음과 바람의 촉감을 느끼는 등산의 즐거움에 대해, 시어머니 병간호로 분주하고 힘들었던 마음에 대해, 나이 들수록 내면과 대화를 해야 할 때가 된 거 같다는 말을 통해 인물들의 오늘을 공유하고 동시에 낯가림을 풀어간다. 인물과 관계 맺기의 여정을 영화로 전반부 긴 시간 녹여낸 것이다. 참으로 낯가림 심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요 화두인 대상과 관계 맺음을 영화의 구조 속에 과감하게 기입한 것이다. 누군가를 알아가고 속내를 나누기까지 필요한 시간들을 영화 속에 기입한 것이다. 관계 맺음의 과정은 청년들과의 만남에도 같이 적용된다. 주어진 장소를 찾아오는 청년들의 모습에서 시작해 “어색하면 어색한 대로”를 말하는 감독의 모습이 삽입되면서 영화는 청년의 축이 시작된다. 다만, 중년의 언니들은 흘러가는 이미지(버스, 지하철, 자동차)를 따라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방식인 반면, 청년들은 세팅된 장소에서 감독이 무엇인가 요청하고 물음을 던지는 방식이다. 여기에 바로, 두 세대를 아우르는 감독의 위치와 태도가 담겨져 있다. 윗세대는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다음 세대는 자리를 마련해 말 걸기를 시도하는 그 가교 역할이자 그 자리에 놓인 감독. 그러나 아무래도 감독은 윗세대가 조금 더 편한 모양이다. 중년 여성들의 말은 경청하고 맞장구를 치며 함께한다면, 청년들의 말은 요청되고 세팅되고 종종 유리벽 밖에서 그들을 담는다. 생략되어짐과 동시에 논의의 과정을 비춰내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청년들에게 정리해고 대상을 가려내라는 가상의 ‘나쁜 질문’을 던질 때, 감독은 386 세대의 이중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나쁜 질문을 받고 싸웠지만 결국 그 질문을 더 공고히 전달하고 심지어 다그치게 된 그 위치. 그래서 이 마지막 장면은 가장 불편하고 가장 긴장감이 넘치는 묘한 장면이다. 영화는 이처럼 두 그룹을 담아내는 동시에 두 그룹의 사이에 위치한 감독의 위치 혹은 역할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래서일까? 영화 속 간간히 파편적으로 틈입하는 이미지들은 단순히 삽입 이미지라고만 보기 힘들 정도로 힘이 있다. 신발, 빨래, 운전사의 명찰 목걸이, 창틀 거미줄, 재봉틀... 감독의 시선이 일상 속 사물에 가 닿은 방식으로 읽힌다. 영화는 감독을 포함해 인물들의 오늘이 보이는 작품이다. 영화는 시작하고 삼십여 분 지나서야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조금씩 풀어낸다. 영화는 조용히 우리들의 크고 작은 선택을 소환한다. 화장실이 급한데 지하철에서 내릴까 말까? 자고 간 남친의 팬티를 빨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다시 온 남친을 가라고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영화는 간간히 웃음을 유도하면서 살면서 마주하는 선택에 대해 말 걸기를 시도한다. 사실 숱한 선택을 해오면서 살아온 인생 아니던가. 어떤 선택은 여러 선택지 중에 나의 자의로 선택한 것도 있고, 어떤 선택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 강요된 방식의 선택도 있다. 그리고 고스톱을 치고 돌아온 새벽녘 강명자 씨의 말처럼 “나 자신에게 쪽팔리지 않으려는” 선택도 있다. 영화는 선택의 수많은 결과 그 선택의 저변에 놓인 마음들을 섬세하게 짚어가면서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택에 대해 다가간다. 구로동맹파업의 참가자들 더 나아가 수많은 민중항쟁과 오늘의 촛불 시위까지 “선택”으로 풀어낸다. 사건에 결박당한 인물이 아니라 인물이 선택한 사건과 경험에 대하여. 그래서 영화는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공장 도자기 부딪히는 소리가 좋았던”, “구로공단에 언발란스 머리를 퍼뜨린 패션 감각”에 대하여, “넝쿨장미가 어우러진 공장 벽이 너무 예뻤던”, “기를 쓰고 벗어나려던 공장을 대학생이 공장에 들어왔다는 말에 받았던 충격”을, “50장을 하고 5장을 숨기던” 기억을 오롯이 풀어낼 수 있는 것이다. < 빨간 벽돌 >은 늑대를 등장시키지 않는다. 등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늑대의 악행이 말되어지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늑대가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거나 늑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아기돼지에게 늑대의 악행에 대해 말을 하도록 묻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아기돼지의 일상과 기억을 공유하고 듣는다. 사실 늑대의 악행은 잘못된 사건과 문제를 고발하고 폭로할 때는 적절하고 유효하지만, 아기돼지의 입으로 악행을 말하게 되면 아기돼지는 사건에 결박당한 힘없는 피해자로 강제되어 버린다. “피해자의 피해자화”를 구축하게 된다고 할까. 영화는 아기돼지에게 늑대의 만행을 고발해 늑대의 피해자로 가두는 대신 아기돼지가 어떻게 벽돌을 선택했는지, 벽돌을 쌓아나갔는지, 지금도 열심히 쌓고 있는지에 주목한다. 피해자 서사의 프레임을 벗어버린 것이다. 우화 <아기돼지 삼형제> 역시 아기돼지를 피해자로만 가두지 않고 아기돼지의 지혜와 활약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긴 하다. 그러나 우화는 결국 먹히거나 먹는 것으로 승자와 패자를 가르고 끝이 난다. 얼핏 보면 해피엔딩이지만 먹느냐 먹히는 구도 외에는 다른 여지가 없는 시스템이다. 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또 다른 가해자가 되어야 하는 “가해자화 서사”는 우리 시대의 “나쁜 프레임” 중 하나이다. 피해자/가해자 서사 혹은 가해자화 서사는 결국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진흙탕 싸움을 유도하는 프레임이다. <빨간 벽돌>은 우리를 설명하기 위해 선택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걸고, 다른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버틀러식 용어를 빌면, “박탈당한 주체”로서 우리를 마주하게 하는 것이다. “박탈당했기 때문에 박탈당할 수 있는 것” 여기서 박탈은 자족성을 한계짓는 용어이자 우리를 관계적이고도 상호의존적인 존재로 확정 짓는 양가적 가치를 가진다. 영화는 사건을 겪은 혹은 겪어낸 인물들을 사건에 결박하기보다는 사건의 경험을 통해 자신을 속박하기도 하고 동시에 구성하기도 한 자율적 존재로 풀어낸다. 사람이 보이는 영화 <빨간 벽돌>은 우리 모두 유죄라는 집단적 대속 행위나 피해자에게 애도나 위로를 건네는 방식이 아니라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사를 소환하고 기억하게 하되, 이를 통해 일상이 품은 정치적 수행의 가능성을 조용히 풀어낸 힘 있는 작품이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죽었다. 18년이나 한국사회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자가 여자를 끼고 놀던 저녁 술판, 그것도 자신의 최측근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 엄청난 정치적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유신독재는 더욱 잔인한 군사독재로 이어졌고, 암울한 시대는 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신화로 기억하길 바랐다. 그로부터 2005년, 임상수 가 처음으로 이 사건을 영화화했다. 26년 만의 일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개봉도 하기 전부터 논쟁에 휘말렸다. 보수언론은 이 영화를 보기도 전부터 역사적 불경과 왜곡을 부르짖었고, 박지만은 이 영화에 명예훼손 등의 문제를 걸어 법정싸움으로 몰아갔다. 결과는 영화의 시작과 끝 부분에 삽입된 다큐멘터리 영상 4분여를 삭제하라는 법원 명령으로 이어졌다. 결국 영화는 훼손된 채 대중과 만나게 되었다. 이 결정으로 인해 영화계에는 표현의 자유 논쟁이 벌어졌으며, 또한 영화와 실재가 맺는 관계성에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정작 이상한 것은 이 영화가 개봉된 다음에 벌어졌다. 이 영화는 좌파와 우파, 어느 편에서도 환영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보수언론을 내세운 우파들은 이 영화에 대해 살의에 가까운 적개심을 내보였고, 진보주의적인 관점을 가진 평자들 상당수도 이 영화의 역사관에 대해 불편해했다. 이 불편함의 한 가운데는 승자와 패자를 막론하는 역사적 엄숙주의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질문이 필요하다. 이 영화는 왜 그때 도착했으며,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고증하는 영화가 아니라, “그날 그들이 죽었다.”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그것은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제가 아니라, 그것을 철저하게 몰아내는 엑소시즘으로서의 영화이다. 박정희는 죽은 자이고 유령이다. < 그때 그 사람들 >은 그 유령의 절대적 죽음을 재촉한다. 이를 보다 잘 설명하기 위해서는 슬라보예 지젝의 ‘두 번의 죽음’이라는 흥미로운 개념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라캉에게서 가져온 이 개념은 존재의 죽음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물리적 죽음으로 이것은 유한한 인간 육체의 죽음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상징적 죽음으로 상징계(Symbolic) 내에서 의미가 소멸하거나 부정되는 순간인 것이다. 물리적 소멸과 상징적 종말이 이루어졌을 때야 비로소 절대적 죽음이라는 개념에 다다른다. 슬라보예 지젝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여기, 첫 번째 죽음이 발생한 이후, 두 번째 죽음까지의 차이 공간이다. 두 개의 죽음 사이에서 죽은 자를 둘러싼 산 자들의 환상이 결합되기 때문이다. 이 환상 속에서 죽은 자는 성자가 되기도 하고 괴물이 되기도 한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박정희를 떠올려야 한다. 그는 1979년 10월 26일 살해당했다. 그날 그때 물리적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사회의 상징계에서 그는 여전히 성스러운 존재이다. 박정희 신화는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한국사회의 경제적 위기는 가부장제와 남성성에 대한 위기로부터 부활하였다. 우파와 대중의 환상이 그를 신화로 불러낸 것이다. 현실에 대한 우울은 과거의 영광스러운 시대(오인된 시대)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했고, 박근혜가 정치적 실세로 등장하였다. 임상수 의 < 그때 그 사람들 >은 바로 그러한 시기에 도착한 영화였다. 경제악화와 함께 노골화된 박정희 신드롬의 절정 속에서, 임상수는 영화를 통해 박정희를 다시 한번 살해한다. 그러나 영화적 소환과 살인은 실제 살인처럼 현실에서 격렬하게 부딪쳤고 법정으로 비화되었다. 조선일보의 리뷰는 그러한 반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0·26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미친놈들의 미친 짓’이라 말하는 건 지식인적 니힐리즘이 아니라, 무책임과 회피다. 이 맹목적 시니컬리즘은 나름의 존재적 이유로 충만했던 박정희와 김재규라는 두 인물의 진심을 어느 쪽도 설명하지 못한 채 그저 역사를 모독할 뿐이다. 이런 금기의 소재를 미진한 블랙코미디로 낭비해버린 건, 영화역사에 대한 실례다. 이 영화의 최대 악덕은 민감한 내용을 강하게 다뤘다는 게 아니라, 역사를 버릇없고 무책임하게 다뤘다는 점이다.“ 그러나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영화에 대한 불편함은 비단 보수언론으로 한정되지 않았다. 이 영화는 당시 거의 아무에게도 지지받지 못하였다. 한국의 많은 평자들이 지적하기에 이 영화는 하루 동안의 정치적 스캔들만 존재할 뿐 원인과 결과가 사라진 영화이다. 사건은 묘사되지만 역사적 해석과 입장은 배제된 것처럼 보인다. 감정이입과 동일시를 배제하는 카메라 워크는 관객들의 심리적 정박지를 제공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영화는 스스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서 동시에 관객 대다수가 스스로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통념들을 부정한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 그때 그 사람들 >은 정말이지 임상수 의 영화가 아니라 박정희의 영화가 되었고, 임상수는 영화감독이라기보다는 역사가가 되어 버렸다. 허문영은 < 그때 그 사람들 > 개봉 당시, 이 영화를 풍속화에 비유했다. 이것은 적절해 보인다. 풍속화라는 개념은 비천하고 남루한 서민들의 일상을 그 자체로 드러내는 묘사였다. 10.26 사건은 위에 인용한 보수지 기자가 썼듯이 금기의 사건이었고 성스러운 영역이었다. 누구나 알고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무도 그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 알고 있는 것은 박정희가 김재규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보수 언론이 운운하는 그들의 진심, 존재론적 정당성은 그들 자신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때 그 사람들>이 풍속화로 비쳤다면, 그것은 그 살 떨리는 순간에,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의 평범하고 비천한 욕망과 공포가, 마치 성상을 덮고 있던 검은 천(제의적 기능)을 벗겨 내듯 적나라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사실 ‘역사에 대한 불경’, 심지어 ‘영화역사에 대한 실례’라고 주장하는 자 역시, 그날의 역사가 어떠했으며, 실은 역사란 무엇인지, 더더구나 영화역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 그때 그 사람들 >에서 임상수 의 태도는 애당초 분명해 보인다. 그는 그때 그 사람들의 진심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임상수에게 중요한 것은 그날 그들이 죽었다는 사실과 그날 죽은 자들이, 사실은 그런 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지배자들이란 TV 사극에서 묘사되듯 근엄하고 엄숙하며, 숭고한 것이 아니라, 군사쿠데타를 통한 집권자들과 그의 수하들은 사실 저열한 남근 주의자들이며 저잣거리의 불량배 패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임상수 의 < 그때 그 사람들 >에서 또한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상업영화의 가장 기본적 서사 전략인 심리적 동일시를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임상수는 이러한 불한당들의 세계에 관객의 심리적 연루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윤리적인 선택이고, 정치적인 전략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두 개의 쇼트는 영화의 초반과 살해 사건 이후에 나온다. 영화의 초반, 주 과장은 정보부 고문실을 산보 자처럼 거닐고 있다. 이때 카메라는 수평으로 트래킹하며, 전경화된 세트를 통해 70년대의 시대상황을 함축한다. 두 번째 쇼트는 살해사건이 벌어지고, 주과장이 현장을 돌며 바닥에 피를 흘리며 널브러진 시체들을 돌아보는 장면이다. 공중 부감쇼트로 찍혀진 이 장면은, 가장 미학적인 야심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대한 가장 명백한 ‘알레고리 형상’이다. 다시 말해 임상수가 바라보는 그 사람들의 현대사의 형상이란 바닥에 시뻘건 피를 쏟아내며 죽어간 시체들의 이미지이다. 이 그림을 그려내기 위해 임상수는 감정이입의 주인공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목격자를 만들어낸다. 주 과장이 그날의 첫 번째 목격자라면, 관객은 그날 그가 죽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게 되는 진정한 목격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 법원의 삭제명령으로 잘려나간 후반부 다큐멘터리에는 박근혜가 소복을 입고 태극기에 덮인 관 앞에 서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대규모 장례행렬과, 신성에 가까웠던 박정희를 ‘인간’ 박정희라고 부르며 조사를 행하는 김수환 추기경과, 오열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오래전 필자와 했던 인터뷰에서 임상수 는 이 얼굴들을 시대의 거울 이미지로 해석했다. 저 당시 가장 핍박받던 사람들이 가장 슬픈 얼굴로 오열하는 모습과 지금까지 지속되는 그에 대한 환상들.. < 그때 그 사람들 >은 그 죽음을 재촉하는 영화였다.
김기영 감독의 1961년 작 < 현해탄은 알고 있다 >는 학병을 싣고 가는 군함으로 시작한다. 보이스 오버 나레이션이 위의 정보를 전한다. 정면으로 군함의 풀 샷이 보이고 , 조타 중인 조정실이 보인 인 후 숏이 바뀌어 일본 장교(김승호)와 등을 보이고 앉은 군인이 보인다. 일본 장교가 묻는다. 네 이름이? 아로운입니다. 일본 장교는 아로운! 이라고 말한 후 그가 요주의 인물로 분류 되어있음을 알린다. 군함에 경계경보가 울리고 선실의 병사들은 경계 태세로 들어간다. 처음부터 거의 인물들을 정면 숏으로 프레임에 넣고 기둥 등으로 프레임을 정확하게 나누는 이 영화는 군인들이 경계 태세를 갖추는 이 장면을 트레킹을 처리하는데, 카메라가 트레킹으로 두 선실을 수평으로 가로지름으로서 그 두 선실의 한쪽 벽이 카메라를 향해 개방되어 있는 세트임을 명백하게 전경화 한다. 연극 무대 장치처럼 한쪽 벽이 없는 혹은 그 벽이 관객에게 열려있는 세트장 임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어 바다가 보이고 현해탄(玄海灘 )이라는 타이틀 자막이 뜬다. 배우를 비롯한 스탭 소개 크레딧이 물결치는 바다 위로 중첩된다. 일본에서는 현계탄(玄界灘, 겐카이나다)로도 부르는 이 현해탄을 아로운( 김운하 )을 비롯한 학병들이 1944년 나고야로 가기 위해 건넌다. 공중 샷(aerial view)으로 도열한 군함들이 미니어처 촬영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세트의 전경화와 미니어처 촬영으로 어느 정도의 비평적 거리감 혹은 반대로 어떤 영화적 위용(spectacle)이 만들어진 후 , 우리는 이들 학도병이 나고야의 수송 부대로 배치되고 내무 생활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일본군 모리 ( 이예춘 )는 다시 문제아로 아로운을 호명한다. 이후 영화는 모리가 아로운을 새디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보게 된다. 마구 구타하고 , 자신의 똥 묻은 군화를 혀로 핥고 삼키게 하는 등의 군대가 아닌 수용소의 전쟁 포로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아로운은 비인간으로 전락한다. < 현해탄은 알고 있다 >를 이해하기 위한 몇 개의 중요한 참조틀이 있다. 우선 이 영화의 원작자인 한운사 의 이 영화 관련 소설 TV , 라디오 방송극 등이 있다. <현해탄은 알고 있다>, < 남과 북 >, < 아낌없이 주련다 >,< 빨간 마후라 >,< 잘돼갑니다 >,<나루터 3대>등의 작품이 있으며 노래 <잘 살아보세>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의 작사가이기도 하다. 1) < 현해탄은 알고 있다 >의 주인공 이름을 딴 아로운(아큐정전의 그 아(阿) 다)삼부작 『현해탄은 알고 있다』(정음사, 1961), 『현해탄은 말이 없다』(정음사, 1961), 『승자와 패자』(정음사, 1961)의 연작은 “현해탄 3부작”으로 불리기도 한다 . 1. 활유법과 현해탄 한반도의 지리적 경계이자 정동의 장소인 두만강, 압록강, 황해등과 더불어 보면 현해탄은 두만강과 더불어 현해탄 서사라 불릴 만큼 사연이 많다. < 현해탄은 알고 있다 >의 주인공 학병 만이 아니라 수많은 청년들, 중장년들이 현해탄을 건넜다. <현해탄> 이라는 시집을 쓴 임화 역시 1929년 도일했다. 한운사의 현해탄 서사는 임화의 『현해탄』보다 몇 년 뒤에 일어난 학병 경험을 소재로 하고 4.19 혁명이라는 청년 정치의 파고 속에서 만들어진 역사적 배열, 거울 쌍을 만들뿐만 아니라 소설, 라디오, 영화 등의 멀티미디어로 다종다기, 파생하는 예를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40년대 중반과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의 두 시간 대가 만나 역사적 짝패(pairing)를 이루고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생성되고 , 역사적 쌍과 거울 쌍은 소설, 라디오, 다매체를 횡단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복합성 속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화자의 문제다. 곧 시대를 종단하고 매체를 횡단하는 복합적 텍스트가 되는 『현해탄은 알고 있다』는 제목에서 소위 활유법, 무생물을 생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방식을 택하고 비유법인만큼 이것은 당연히 여러 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무생물인 현해탄이 정보나 지식을 가질 리 없다 .인지나 지각을 할리 없다. 그럼에도 현해탄은 알고있다 라고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한 많은 식민지 역사의 목격자로서의 위치를 현해탄에 부여하는 것이며 , 식민지 역사의 앎의 장소로서 현해탄을 호명하는 것이다. 활유법(prosopopeia)에 대해 미셀 리파테르 (Michel Riffaterre)는 퐁텐니에(Fontanier)의 활유법에 대한 글쓰기를 환기시키면서 이것이 의인화와 달리 부재한 것, 죽은 것, 초자연적인 것 혹은 비생물적 존재들을 무대화 한다고 말한다. 마치 우리가 습관적으로 하는 것처럼 이것들이 행동하고 말하고 대답하게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것들은 우리가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 증인, 고소인, 복수하는 사람, 판사 등등이 된다고 설명한다. 2) 『현해탄은 알고 있다』에서 현해탄은 목격자, 증인, 일종의 식민지의 침묵, 무언의 아카이브지만 언젠가는 입을 떼고 , 문을 열 아카이브가 된다. 왜 현해탄이 살아있는 것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 예컨대 앎의 주어 일 뿐만 아니라 , 잠재적으로 말할 수 있고 증언할 수 있는 생명체로서 기능이 부여되는 - 활유법을 증여받는가는 명백하다. 살아있는 것, 식민지의 하위 주체, 서벌턴이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살아있으나 식민화된 주체는 오히려 말할 수 없는 비인간이 되고 생명을 갖지 않는 현해탄은 활유를 통해 살아난다. 이런 역설을 드러내기 위해 현해탄이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현해탄이 알고 있다는 것은 또한 훗날 복수의 근거가 된다. 현해탄이 증인이고 증언이기 때문이다. 2. 고백, 진실, 섹스 김기영 감독 영화는 학병 아로운을 다루면서 활유의 공간으로서의 현해탄과 대구를 이룰만한 하나의 양식을 적절히 활용한다. 그것은 고백이다. 아로운은 평범한 일본 여성 히데꼬( 공미도리 )와 연인 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들의 관계가 시작되고 지속되고 발전되는 방식은 아로운이 히데코에게 자신이 일본군에게 구타당하고 학대받은 것에 대한 고백을 하는 것이다. 히데코 역시 처음에는 조선인들이 도둑질을 일삼는 민족이라는 인식을 가진 일본 여자 였으나 아로운이 당한 폭력의 내용을 듣고 그것을 지켜봄으로써 아로운을 사랑하게 된다. 위의 활유화된 현해탄이 학병으로 끌려가는 조선인들을 지켜본 무언의 증인으로 설정되었다면, 일본 여성 히데코는 증언을 듣는 자, 청자로 설정 되어 있다. 인종적, 권력적 폭력이 매개한 이 관계는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사랑으로 이어진다. 고백과 진실과 섹스가 식민지의 담론으로 배치되는 순간이다. 이 담론의 복잡한 역학을 사실 현해탄인 들 알 수 있었겠는가? 주 1) 한운사의 작품에 관한 연구로는 윤석진,<방송극 작가 한운사의 ‘통일 연습 시리즈’ 고찰1: 반전 드라마를 중심으로>,한국문학연구 39집 , 김예림의 <치안, 범법, 탈주 그리고 이 모든 사태의 전후(前後>, 대중서사 연구 제 24호 , 이 경숙의 <한운사의 ‘아로운(阿魯雲)’ 삼부작 연구>,『한국문학이론과 비평』 제 33집 (10권 4호) 등이 있다. 2) Michael Riffaterre,“Prosopoperia”,Yale French Studies, No.69,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