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인: 최후의 결사단
- 감독
- 진덕삼
- 제작년도
- 2009
- 출연
- 견자단, 사정봉, 양가휘, 여명, 판빙빙, 왕학기, 호군
(사진: " La roue ", IMDb) 세계영화사의 주목할 만한 사건과 개념을 포착하고, 그 의미를 조명합니다. 미처 1분이 넘지 않은 상영시간으로 시작한 영화의 상영시간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의 예술인 영화에서 상영시간은 현실적이고 상업적인 이유로 무한정 길어질 수 없었다. 대중들이 스크린 앞에 앉아있을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은 제한적이었고, 그걸 허락할 수 있는 영화관의 상영시간은 관객의 노동시간과 휴식 사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오락의 정치경제학 시간 안에서 (영화 산업연구가 존 벨튼의 표현을 빌리면) 문자 그대로 ‘중층결정’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배급과 입장료라는 복잡한 계산이 뒤따라오지만, 이 문제는 나중에 다른 ‘영화사의 순간’에서 다시 대차대조표를 작성할 것이다. 상영시간은 야심적인 영화가 영화라는 제도와 전투를 벌여야 하는 또 다른 전쟁터가 되었다. 아벨 강스는 < 바퀴 >(1923)의 촬영을 이미 일 년 전에 마쳤다. 그리고 네거티브 필름을 들고 편집실로 들어왔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완성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 온갖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흉흉한 괴담도 있었다. 1921년이라는 생각을 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편집실을 방문한 이들은 편집본의 일부를 미리 볼 수 있었다. 보고 온 이들은 열광적인 찬사를 전하기 시작했다. 이 소문이 나쁜 상황을 덮으려는 거짓이라는 소문이 다시 돌았다. 아벨 강스는 소문을 진압하기 위해서 아직도 ‘편집중’이라는 발표를 하는 자리를 가져야 했다. 자신이 편집하는 영화의 제목은 <La roue(바퀴)>이고, 촬영장에서 편집실로 가져온 네거티브 필름은 911,624피트라고 밝혔다. 1,000피트가 15분 분량이니 계산해보시기 바란다. 하지만 이 발표를 한 다음에도 아벨 강스는 1년 반을 더 편집실에 머물렀고, 1923년 2월 17일에야 첫 개봉을 하게 되었다. (역시) 전하는 소문에 따르면 아벨 강스의 편집본은 7시간 30분이(라고 한)다. 다른 소문에 따르면 9시간이라는 말도 있다. 모두 32개의 릴로 완성되었다. 하지만 극장상영을 위해서 아벨 강스 자신에 의해서 2시간 30분 ‘단축판’이 완성되었다. 이 판본이 영화사에서 공식 상영본으로 알려졌다가 2008년에 DVD 판본으로 4시간 30분 상영본이 출시되었다. 아쉽지만 <바퀴>의 아벨 강스 편집본은 남아있지 않다. 아벨 강스의 열광적인 탐구자들에 의해 남겨진 필름들을 모아서 아벨 강스의 원래 의도를 복원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2019년 프랑스 뤼미에르 영화제에서 아벨 강스의 편집본에 가장 가까운 7시간 ‘복원판’이 상영되었다. 처음부터 위대한 걸작의 반열에 올랐고, 그런 다음에도 세대를 거치면서 계속해서 열광적인 새로운 지지자들을 낳았다. 나도 그중의 한 명이다. 사진: "La roue"( 좌 , 우 ), IMDb) 만일 영화를 보기 전에 <바퀴>의 줄거리를 먼저 ‘읽는다면’ 그렇게 훌륭할까, 라는 의심보다 먼저 이렇게까지 긴 상영시간을 어떻게 진행 시켰을지 의아할 것이다. 줄거리는 정말 간단하다. 기관차 운전수 시지프는 사고로부터 어린 고아 노르마를 구한다. 그리고 자신의 딸로 입양한다. 시지프에게는 또래 나이의 아들 엘리가 있다. 세월이 흘러 둘 다 어른이 된다. 시지프는 노르마가 자란 모습을 보고 사랑의 감정을 느껴 돈 많은 부자 친구 에르산에게 의논을 하지만 노르마를 보고 욕심이 생겨 자신이 가로챈다. 이때 엘리도 자신이 노르마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몇 가지 우여곡절 끝에 시지프는 시력을 잃고, 엘리와 에르산은 몽블랑 산벼랑에서 대결을 벌여 죽음을 맞는다. 아들을 잃은 시지프는 노르마에게 화를 내지만 두 사람은 화해하고 다시 아버지와 딸로 돌아간다. 노르마는 앞이 보이지 않는 시지프를 돌보면서 세월을 보낸다. 마을 축제가 있던 날 시지프는 축제에 춤을 추러 간 노르마를 기다리며 숨을 거둔다. 열광적인 찬미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조언은 <바퀴>에서 줄거리를 거들떠보지 말라는 것이다. 입체파 화가이자 영화를 제작한 페르낭 레제는 그 찬미자 중의 한 명이다. “영화는 극적인 상태, 감정적인 상태, 조형적인 상태가 있다. (...) 아벨 강스는 <바퀴>로 영화를 조형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라고 예찬했다. 그러면서 “시네마토그래픽한 혁명은 우리가 거의 주시하지 않았던 모든 것을 보게 만드는 것”이라면서 바로 그걸 <바퀴>가 성취했다고 말했다. 아벨 강스는 <바퀴>의 네거티브와 함께 편집실에서 긴 시간을 보낼만한 가치가 있었다. <바퀴>를 보면 즉각적으로 당신의 눈앞에서 홀린 듯이, 아니 그 정도 표현으로는 부족한데, 시각기관을 감전시키는 것처럼 압도하는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편집의 리듬이다. 기관차의 속도, 뿜어내는 연기, 이리저리 휘어지면서 이어지는 철도, 철도 옆의 신호판들, 기관차의 바퀴, 달려가는 속도에서 바라보는 풍경, 클로즈업과 롱 쇼트의 거의 무한정한 교차. <바퀴>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은 배우들이 아니라 기관차다. 이 속도의 리듬감에 홀려서 <바퀴>의 화면 구도가 얼마나 훌륭한지는 두 번째 볼 때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달리는 기관차의 바퀴와 그안에서 밖을 바라본 풍경 인물에 대한 롱 쇼트와 클로즈업 <바퀴>를 보고 열광한 것은 파리의 시네필뿐만이 아니었다. 모스크바의 쿨레쇼프 공장의 학생들, 그중에서도 예이젠슈타인은 < 시월 >(1927)에서 분명히 빠른 교차편집을 (긍정적인 의미로) ‘베꼈다’. 할리우드의 편집실에서도 <바퀴>는 감탄을 자아냈다. 도쿄의 ‘영화광’들은 아낌없이 ‘傑作’이라고 불렀다. 일본 개봉 제목은 <철로의 백장미>였고, 이 제목으로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불렸다. 좀 더 섬세하게 <바퀴>를 지지한 에밀 뷔이에르모즈는 “흑과 백의 교향곡”이라고 부르면서 “석탄 먼지와 기차 연기의 비극적 어둠으로 시작해서 영원히 쌓인 눈의 순수함과 고통을 달래는 조용함으로 끝난다”라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바퀴의 시각적 테마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그리피스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아벨 강스가 있다고 선언했다. 여기에 <바퀴>를 지지한 명단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장 콕토와 루이 델뤽도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앙드레 바쟁은 「영화언어의 진화」에서 몽타주의 성공적인 예로 삼았다. 프랑수아 트뤼포도 여기에 가세했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포토제닉한 이미지와 몽타주가 운동하는 액션영화라고 불렀다. 내가 <바퀴>를 처음 보았을 때는 너무 어렸다. 그래서 이 영화를 설명할 만한 비평언어를 갖고 있지 않았다. 다만 영화에서 카메라의 이동 쇼트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를 처음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 간절하게 아벨 강스가 편집한 <바퀴>의 첫 번째 판본이 보고 싶다. <바퀴> 중 아이비 클로제(좌)와 가브리엘 드 그라본느(우) (사진: " La roue ", IMDb)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l 매일 영화를 보고 종종 영화 평을 쓰고 가끔 영화를 만들고 때로 영화제 일을 한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2003) 인터뷰 진행,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010), 『필사의 탐독』(2010) 비평집 집필. 첫 영화 < 카페 느와르 >(2009) 이후 < 천당의 밤과 안개 >(2015), < 녹차의 중력 >(2018), < 백두 번째 구름 >(2018) 연출.
2019년 5월, 4K로 복원된 옛날 한국영화 두 편을 극장에서 보게 되었다. 하나는 < 성춘향 >< 신상옥 , 1961)이고, 다른 하나는 < 파업전야 >(장산곶매, 1990)이다(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말하는 <성춘향>은 144분짜리 복원본이 아니라 영상자료원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 ‘발굴, 복원, 그리고 재창조’의 개막식에서 있었던 90분짜리 ‘필름 판소리, 춘향’이라는 공연이다). 두 편의 영화 사이에는 대략 30년의 간격이 있지만 각자가 놓인 시대적 맥락에서 저마다 다른 의미에서 영화적 사건이 되었던 작품이고, 그런 만큼 이미 여러 번 기념 상영되고 그때마다 반복해서 이야기되어왔던 작품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을 함께 묶어 다시 한 번 이야기해보고 싶게 만든 것은, 두 작품이 각각 취하고 있는 ‘공연’과 ‘상영’이라는 공개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모습으로 거의 동시적으로 나를 찾아온 두 작품을 체험하며, 새삼스럽게 영화의 복원이 지닌 의미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 또는 상념과 마주하게 되었다. <파업전야>의 재개봉 포스터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들이 등장한다. ‘90년 노동영화의 전설이 돌아온다!’,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30년 만에 극장 정식 개봉!’ 등이 그것이다. 30년 만에서 4K로 복원된 <파업전야>를 극장에서 보는 것은 분명 새로운 감흥을 불러일으켰지만, 동시에 복잡한 질문을 품게 만들기도 했다. <파업전야>의 ‘전설’의 많은 부분은 영화의 상영 자체가 투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파업전야>의 필름은 더 높은 해상도로 복원되었지만, <파업전야>의 ‘영화적 사건성’의 어떤 측면, 즉 그 상영투쟁을 둘러싼 온갖 전설과 무용담은 기억되거나 증언될 수는 있을지언정, 복원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 사건성을 근사치에 가깝게 복원하는 방법은 당대에 다양한 위치에서 그 사건을 체험했던 많은 사람들의 증언을 담는 다큐멘터리적인 방식이거나, 에이젠슈테인이 < 전함 포템킨 >이나 < 시월 >에서 했던 것처럼 대규모 대중을 동원하여 그 사건을 재연하고 그것을 영화 안에 담는 픽션적 방식일 것이다. 30년 만에 극장에서 (재)개봉된 <파업전야>는 오직 포스터의 배경 이미지(당대의 사건성을 기록하고 증언하고 있는 다양한 신문 기사들의 스크랩-몽타주)를 통해서 그 사건성의 희미한 흔적을 담아내고 있다. 이번 <파업전야>의 (재)개봉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파업전야>를 다시 보면서, 뒤늦게 발견한 이 작품의 의미 또한 적지 않다. 오프닝의 배우 소개와 엔딩 크레딧에서 배역의 중요도나 역할의 기여도와 상관없이 오직 ‘가나다 순’의 원칙을 따르고 있는 데서 드러나는 ‘장산곶매’의 철저한 ‘공동창작’의 정신은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사건성이다. <파업전야>가 80년대 리얼리즘 미학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것이지만, 그것이 할리우드 리얼리즘의 개인적 영웅서사와 소비에트 리얼리즘의 전형성의 미학 사이의 긴장을 품고 있다는 점은, 새롭게 이야기될 만한 가치가 있다. 어쩌면 <파업전야>의 리얼리즘이 보여준 사건성은 당대의 노동현실을 충실히 취재-반영한 후 앞서 말한 혼종성의 리얼리즘 스타일로 그것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운명을 앞서 내다보고 있는 일종의 ‘예지적 리얼리즘’이라는 점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안에서 한수(김동범)를 비롯한 노동자들이 스패너를 들고 일어나게 한 것이 용역 깡패들의 무자비한 폭력이었듯, 영화 밖에서 <파업전야>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대중들이 각목과 화염병을 들고 떨쳐 일어나게 만든 것은 당시 공안 당국의 과잉 탄압이었다. 영화가 당대의 노동현실을 반영하고 있었던 만큼이나, 당대의 정치현실이 영화의 만듦새를 반영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 예지적 리얼리즘의 측면이 <파업전야>의 ‘영화적 사건성’의 중요한 부분이라면, 그것의 복원은 불가능한 것에 가까운 것이다. ‘필름 판소리, 춘향’은 김태용 감독의 연출, 이소연 소리꾼의 판소리 공연, 손성제 및 최혜원 이라는 두 뮤지션의 현장 연주를 통해 재창조된 ‘복합예술 공연’이다. 거의 60년 만에 이루어진 이 공연은 애초에 <성춘향> 개봉 당대의 ‘영화적 사건성’의 반복과는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던 기획이다. 그 공연은 영화 <성춘향>이 재매개한 원전인 판소리 현장 공연과 결합된 것이었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역-재매개로서의 복원이고, 두 뮤지션이 연주하는 전자음향과 결합된 여러 매체 사이의 크로스-오버라는 점에서는 새롭게 반복되는 재매개로서의 복원이다.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가 한 편의 영화 안에 이 복잡한 재매개 과정을 담아내려 한 시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필름 판소리, 춘향’은 그것을 영화 작품 밖으로 풀어헤쳐 보여주려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후자의 시도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복원된 몇몇 무성영화의 공개 시에 시도되었던 공연을 유성영화인 <성춘향>으로까지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디지털 복원은 원래 영화의 시청각적 질료를 최대한 원래의 것과 가깝게 복원해 내거나(<성춘향>의 경우), 심지어 그것보다 더 나은 해상도로 복원해 내기도 한다(<파업전야>의 경우). 그러나 이 복원의 충실도는 매체의 질료의 측면에서 이루어진 성과다. 하지만 한 편의 작품이 갖는 영화적 사건성에는 그 매체의 질료적 차원 이상의 것이 항상 개입되어 있기 마련이다. 상영조건과 상영 형식의 측면(또한 그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당대의 사회적 조건과 관객성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파업전야>의 (재)개봉은 일종의 ‘과소 복원’이고, ‘필름 판소리, 춘향’ 공연은 일종의 ‘과잉 복원’이다(이 ‘과소’ 또는 ‘과잉’이라는 표현은 단지 상대적인 비교를 위한 묘사적인 형용사일 뿐, 어떤 가치 평가적 함축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과소와 과잉은 과거의 영화가 지닌 사건성을 총체적으로 복원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 총체적 복원 불가능성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 자리를 빌려 말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복원의 정치학을 위해서는 매체의 질료적 측면의 복원만이 아니라, 그것의 공개 형식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과 실험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2000년 | 싸이더스 감독: 이현승 | 각본: 여지나 | 제작: 차승재 | 촬영: 홍경표 | 미술: 김기철 | 음악: 김현철 | 무술감독: 정두홍 CAST 성현: 이정재 | 은주: 전지현 | 한 교수: 김무생 | 재혁: 조승연 2000년대 초, ‘시간’은 한국영화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였습니다. 1990년대 말부터 강세를 띠기 시작했던 멜로와 로맨스 장르의 흐름 속에서, ‘시간 판타지’의 상상력이 발휘된 영화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 거죠. 여기에 환생이나 소울메이트 같은 모티브가 결합되면서, 잠깐이었지만 한국영화는 낯선 사랑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현승 감독의 <시월애>는 이런 트렌드를 대표하는 영화입니다. 1997년의 남자 성현(이정재)과 1999년의 여자 은주(전지현). 그들은 시간을 뛰어넘어 편지로 사랑을 나눕니다. 2000년 5월 말 공개된 <시월애>의 현장은 인상적이었습니다.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섬 석모도. 그곳 해변에 지어진 집 한 채. 영화 속에서 두 주인공이 2년의 시간차를 두고 사는 집인 ‘일 마레’(Il Mare). 이탈리아어로 ‘바다’라는 뜻이죠.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이 세트는 디자인도 중요했지만, 갯벌을 다지는 지반 공사를 해야 했기에 2억 원이라는 제작비가 든 ‘작품’입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날 촬영에서 가장 공들인 부분은 원형 트래킹 신이었습니다. 우편함을 가운데 놓고 성현과 은주가 시간을 뛰어넘어 만난다는 설정인데요, 마치 두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가 회전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원형 트래킹 카메라 워크를 썼습니다. 덕분에 촬영 스태프들은 카메라에 걸리지 않으려 몸을 최대한 낮춰야 했죠. 우편함 앞에 선 성현과 은주를 각각 촬영한 후 두 사람을 함께 촬영해 합성합니다. 설명이 조금 복잡한데요, 영화로 보시면 어떤 비주얼인지 쉽게 아실 수 있습니다. 햇살이 제법 따가운 초여름이었지만, 영화의 배경 탓에 배우들은 겨울 옷을 입고 구슬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현장의 이정재와 이현승 감독입니다. 연기 지도라기보다는, 촬영 중간중간에 ‘일 마레’ 앞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촬영을 맡은 홍경표 촬영감독입니다. 당시 그는 충무로에서 가장 ‘핫’한 촬영감독이었죠. < 유령 >( 민병천 , 1999)의 특수촬영, < 반칙왕 >( 김지운 , 2000)의 역동적 카메라워크 등으로 주목 받았는데요, <시월애>에선 사뭇 다른 장르에 도전에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매력적인 배우들과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었지만, 영화 <시월애>에서 관객들이 느낀 가장 큰 매력은 공간과 풍경이 만들어낸 비주얼의 감성적 느낌이었겠죠. “컷!” 사인이 떨어지면, 감독과 스태프와 배우가 모니터 앞에 모여 ‘그림’을 확인합니다. 원래 시나리오엔 전원 주택 스타일이었지만, 이현승 감독은 쓸쓸하고 고독한 느낌을 원했고 그 결과 ‘일 마레’가 탄생했습니다. 갯벌 위에 집을 짓는다는 것에 반대도 많았지만, 감독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죠. 집의 구조도 독특한데요, ‘현실’이라는 땅으로 나오기 위해선 긴 다리를 거쳐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아무튼 ‘일 마레’는 단순한 집이 아니라 영화를 풍부하게 만들어준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공간도 연기를 하는 셈이었죠. 여름의 촬영을 마치고 9월 9일 개봉을 앞둔 가을의 어느 날 <시월애>의 시사가 있었습니다. 사진은 시사 후 기자 간담회 때 이현승 감독의 모습인데요, 그 장소는 인사동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일 마레’였습니다. <시월애>는 < 그대 안의 블루 >(1992) <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1995)에 이은 세 번째 영화이며, 처음으로 자신이 쓰지 않은 시나리오로 찍은 작품이었습니다. 감독이 시나리오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외로운 사람들’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는 점이었다고 합니다. 전지현과 이정재입니다. 당시 이정재는 < 이재수의 난 >( 박광수 . 1999)를 마치고 2000년에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며 한 해에만 세 편의 멜로를 내놓습니다. < 인터뷰 >( 변혁 , 2000) <시월애> 그리고 < 순애보 >( 이재용 , 2000)죠. 한편 <시월애>는 전지현의 두 번째 영화였는데요, 스무 살 시절의 모습이 반갑네요. “저 같으면 은주처럼 과거의 사랑으로 괴로워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롭게 다가오는 사랑을 택했을 거예요.”(전지현) “성현과 은주는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고, 그냥 편지라는 매개체를 통해서만 연결되는 관계예요. 그런 상황에서 사랑의 감정을 어떻게 잡아낼까, 이 부분이 참 어려웠어요.”(이정재) 이현승 감독은 언제나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대 안의 블루>와 <네온 속으로 노을 지다>에 이어 <시월애>도 마찬가지였죠.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일과 사랑’이나 ‘결혼’ 같은 페미니즘적 테마에서 조금 거리를 두었다는 점인데요, 은주는 아직은 세상과 많은 갈등을 겪지 않은, 대신 사랑의 감정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감정의 흔들림을 겪는 캐릭터입니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