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DIARY 신곡 발표 인터뷰 영상
- 제작년도
- 2010
1 지금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화자는 이것을 시인해야만 한다. 영화 관람이 끝나고 영화관 밖으로 나오는 순간을 그가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라는 말로 롤랑 바르트는 「영화관을 나오며」를 시작한다. 나도 그 순간을 좋아한다. 문제는 영화관을 나오기 위해서는 먼저 영화관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초콜릿이 코팅된 아이스크림 콘의 꼬다리를 먹기 위해서는 먼저 나머지 부분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나이를 먹으며 어느 순간 군것질을 하면 곧바로 군살이 붙는다(대사량이 떨어져서)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늙었다(만나는 사람만 만나서)는 사실도. 나는 시간으로 둥글어진 다른 이들의 얼굴에서 나의 늙음을 본다. 굴뚝을 청소하는 두 아이가 등장하는 오래된 이야기처럼, 혹은 그냥 거울처럼. 바르트는 계속해서 쓴다. “영화관 안에서는, 아무리 멀리 앉아있더라도, 나는 스크린이라는 거울에, 나 자신을 자기애적으로 동일시하고 있는 “타자의” 상상적 세계에, 코가 납작하게 짓눌릴 정도로 바짝 들이댄다(스크린에 최대한 가까이 앉는 관객은 어린아이이거나 영화광(cinéphiles)이라고들 한다).” 그러니 그날 내가 극장에서 너무 많은 늙음을 보았다고 해서 너무 놀라거나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을 것이다. 2 먼저 말해두어야 할 것은, 내가 어린아이가 아닌 만큼 씨네필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린아이와 함께 살며 몇 명의 영화광을 알기는 한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나는 종종 씨네필이 아닌 한 인간(=나)에게 얼마나 많은 씨네필-지인들이 필요할까 자문해보곤 한다. 내 대답은 늘 같다: 한 명도 너무 많다! 오해하면 안 된다. 체스터턴을 따라 말하면,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을 사랑할 수는 있으며 사랑하기도 한다. 여기에 솔직한 마음을 덧붙인다면, 나는 그들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그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우리는 극장에 갔다. 아이도 씨네필도 없이. 아내와 나 둘이서. 그날은 아내의 생일이었고, 우리가 함께 극장에 갔던 건 < 극한직업 >이 마지막이었다. 주말 오후에 아이를 어머님께 맡기고 다녀온 것이었다. 힘들 때 하는 선택이 그 사람의 본모습을 보여준다는 말이 맞다면 나는 3년 만에 가는 극장에서 무슨 영화를 볼까 고민하지 않고 주저없이 < 탑건: 매버릭 >을 고르는 사람이다. < 헤어질 결심 >이나 < 브로커 >가 아니라… 문득 임재철(=씨네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니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었다는데 무슨 길을 잃었냐고. 내가 보기엔 한국 영화에 들어간 적도 없는데, 안 그래?” 3 <극한직업>과 <탑건: 매버릭> 사이 나는 극장에 모두 다섯 번 갔는데, 그중 네 번은 JD와 함께(나머지 한 번은 혼자)였다. 가장 최근은 지난 6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GV를 진행하기 위해 영자원에 갔던 것이다. 장학퀴즈 우승자, 베스트셀러 작가, 천재 감독으로 불리지만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씨네필에 따르면 “그저 딜레탕트일 뿐”인 이규형의 1987년 작품으로 서울 관객 26만 명을 동원하며 그해 한국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작품이다. 참고로 같은 해 개봉한 외국 영화들의 대략적인 목록은 다음과 같다. < 오버더톱 >, < 록키4 >, < 코브라 >, < 플래툰 >, < 스타워즈:제다이의 귀환 >, < 백 투 더 퓨처 >, < 프레데터 >, < 죠스3 >, < 작은 신의 아이들 >, < 컬러 오브 머니 >, < 파리, 텍사스 > 그리고 < 탑건 >. 4 그날 우리가 길을 잃기는 했다. 오랜만에 찾은 웨스턴돔은 기억보다 훨씬 복잡했고, 낡았다. 그리고 그건 극장도 마찬가지였다. 중간중간 공실이 된 상가와 저녁 시간에도 텅 빈 식당들과 달리 극장에는 사람이 제법 있었지만 직원은 적었고 관리가 되지 않은 티가 곳곳에서 났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관객이 줄고 그에 따라 인원을 감축했지만, 관객이 다시 늘어난 이후에도 충원을 하지 않아 크고 작은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도 그렇지. 내 기억 속 극장은 대부분 새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하지만 이내 그것이 전혀 보편적이지 않은 우리 세대의 특별한 경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내가 스무 살이 될 무렵 멀티플렉스가 생겼다. 처음에는 강변으로, 다음에는 코엑스로. 우리는 각자의 친구들과 함께 새로 생긴 극장을 찾아다녔고, 그러는 동안 여기저기 지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가깝고 새로운 상영관을 찾았고, 다시 더 가깝고 새로운 상영관을 찾았다. 더 이상 가까운 곳에 새로운 상영관이 생겨나지 않을 때까지. 그러면서 시간과 함께 서서히 낡아가던 기존의 극장들은 팬데믹을 거치며 급격히 쇠락한다, 뭐 이런 이야기 아닐까? 그리고 그건 (상업) 영화 자체에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일 수 있다. 아니면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문화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이거나. 한 마디로, 메인스트림 문화가 적절한 세대 교체의 리듬을 놓친 채 동일한 인물들, 주제들, 스타일들과 함께 고인물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5 결론부터 말하면 <탑건: 매버릭>은 좋았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시험비행단을 해체하러 온 에드 해리스 위로 탐 크루즈가 모는 전투기가 지나가는 장면부터 눈물이 날 뻔한 걸 참느라 혼났다. 다만 제목이 <탑건: 매버릭>이 아니라 <탑건: 우리들의 블루스>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저도 후반부 공중전 장면 재밌었고, 잘 찍은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뭔가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또 다른 씨네필이 말했다. 전편의 편집이나 데쿠파주를 거의 똑같이 따라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전편에서 기성세대에 반항하는 젊은이로 등장했던 톰 크루즈가 속편에서는 늙은이(young sixty)가 되어 반항하는 새로운 젊은이와 함께 등장하지만 영원한 대위(captain)로 머물며 스스로 기성세대가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정확히 말하면 아직도 윗세대에는 반항하면서 그렇다고 아랫세대에게 자리를 내주거나 당해주지는 않은 채 모든 것을 해결하는 잘난 주인공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곱게 받아주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사실이다… 그런 나를 위로하려는듯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또 다른 씨네필이 말했다. -탐 크루즈가 내한했잖아요. 영상이 있는데, 중년 남성 관객이 영화를 보고 막 울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한테 탐 크루즈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괜찮아요! 마음껏 우세요! 이건 바로 당신을 위한 영화에요!” 6 이 글을 마감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내게 유운성(=씨네필)은 유럽의 어느 영화 평론가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이름도 정확한 국적도 기억나지 않지만 주간지에 매주 빠짐없이 영화평을 쓰던, 그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단명한 평론가를 회고하며 다른 이가 쓴 글이라고 했다. 어느 날 글쓴이가 집에 가려는데 문제의 영화 평론가가 하얀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더란다. 마감 날이라서 원고를 쓰고 있나보다 생각하고 집에 갔는데,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없어서 다 쓰고 집에 갔나보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나온 잡지를 보니 그의 영화평이 있어야 할 자리에 그의 이름만 있고 본문이나 제목은 없이 하얗게 비워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는 원고를 펑크낸 게 아니다. 하얀 백지를 원고로 제출한 것이다. 바로 그거다! 나는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표절을 할 순 없기에 이 글을 쓴다. 내가 <탑건: 매버릭>처럼 그 영화 평론가의 속편도 아니고… 7 <탑건: 매버릭>에서 또 재미있었던 점은 영화가 이런저런 세부를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어떤 부분에서 <탑건: 매버릭>은 온전한 서사라기보다는 설정집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는데, 이를테면 젊은 파일럿들을 다루는 방식이 그렇다. 영화에서는 굳이 다루지 않겠지만 이런 인물들이니 원한다면 마음껏 2차 창작을 해보라고, 라고 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혹은 내가 출처를 잊어버린 일화를 떠올리게 하는데, 감옥에 간 사람의 이야기다.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너무 오랫동안 감옥에 있었던 탓에 매일 똑같은 농담들을 주고 받았고, 어느 순간 농담에 번호를 붙여서 매번 번거롭게 농담을 이야기하는 대신 번호를 부르는 것으로 갈음하게 되었다. “45번.” 누군가 말하자 사람들이 웃었다. “125번.” 사람들이 뒤집어졌다. 그렇게 번호들이 이어지고 깔깔 대잔치가 벌어지던 와중에 영문을 모르던 신참이 시험 삼아 말했다. “77번.” 그러자 순식간에 감방이 조용해진다. 잠시 후 누군가 헛기침을 하며 말한다. “그건 적절하지 않은데. 사과하세요.” 그러니까 <탑건: 매버릭> 또한 수많은 영화들에서 반복되어온 세부들을 번거롭게 이야기하는 대신 번호를 부르듯 간략한 설정만 제시해주고 넘어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의 나머지를 번거롭게 일일이 쓰는 대신 몇 가지 아이디어를 질문의 형태로 제시하며 영화의 예를 따를 생각이다. -비와 신세경이 주연한 한국의 항공 블록버스터 < R2B >는 세간의 평가와 (달리) <탑건>의 아류라기보다는 <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의 속편에 더 가깝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R2B>가 <탑건>과 <탑건: 매버릭>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라고 주장하는 건 가능할까? -<탑건>과 <탑건: 매버릭>과 <R2B> 중에서 비천한 영화는 무엇이고 비천하지 않은 영화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이유는? -몇몇 유튜버를 비롯한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전에 참전하겠다며 불법 출국을 감행한 사건이 <탑건: 매버릭> 같은 영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혹은 < 라이언 일병 구하기 >를 두고 “아주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그리고 스필버그의 재능이 최고도로 발휘된 그런 훌륭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정말 감동적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미국인, 미국 국적이라는 자격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한 박찬욱 감독이 <탑건: 매버릭>을 어떻게 평가할지 유추한다면? -왜 이번 화에는 JD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가? 그것은 지난 화의 마지막에 임창정의 신곡 <나는 트로트가 싫어요>의 유튜브 링크를 보낸 것에 대한 일종의 앙갚음인가? -기타 등등… 8 지금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화자는 이것을 시인해야만 한다. 원고를 마감하고 워드프로세서를 종료하는 순간을 그가 좋아한다는 사실을…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웹소설 원작 애니메이션의 유행 근래에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유행하는 장르라고 하면,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소위 ‘이세계(異世界)물’을 들 수 있다. 그것도 그냥 이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고전적인 이세계물(현재의 지구 및 우리가 사는 우주와는 다른 세계, 말하자면 판타지 세계[ex. <반지의 제왕>]이거나 다른 우주나 엄청난 먼 미래를 그린 SF 세계[ex. <스타 워즈>]를 다룬)이 아니라 (주1) , 주인공이 ‘현실 세계’에 있다가 이세계로 가는 형태의 작품이 유행하고 있다. 현실 속에서 이세계로 간다는 내용은, 원래부터 소위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라 불리우는 스토리텔링의 기본 구조에서는 아주 일반적인 형태다.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란 주인공이 자신이 사는 세계(집, 나라 등)를 떠나 다른 세계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구조를 가진 스토리를 뜻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성장’하기 때문에, 일종의 성장소설이란 측면도 갖고 있다. 이런 작품이라면 가까이는 < 나니아 연대기 >(앤드류 아담슨, 2005)도 있을 것이고, 더 거슬러올라가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있겠으며, 실은 단테의 <신곡>도 바로 현실 세계에서 이세계로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인 것이지 않은가. 또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나 구약성경의 요나 이야기, 메소포타미아의 설화 <길가메시 서사시> 등도 전부 이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의 구조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지금 유행하고 있는 이세계물은 이세계에 갈 뿐 현실 세계로 돌아오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아직 완결이 나지 않아서 못 돌아온 것일 수도 있고, 또 현실로 돌아오는 작품도 있기는 하다.) 라이트노벨 원작 애니메이션이 유행했던 1990~2000년대까지는, 예를 들어 <슬레이어즈>(애니메이션은 1995년부터)라든지 <마술사 오펜>(애니메이션은 1998년부터)을 비롯한 ‘판타지 세계’를 그린 작품이거나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시리즈(애니메이션은 2000년),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애니메이션은 2006년부터), <듀라라라!>(애니메이션은 2010년부터),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애니메이션은 2010년부터)에 이르기까지 현대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 많았다. 이세계로 가는 작품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지만(앞서 언급했던 정도까지 서양의 고전이 아니더라도, 일본에도 1971년 <전국 자위대>를 비롯하여 이세계나 과거의 시간대로 ‘가는’ 작품은 많이 있었다) 2010년대 웹소설의 유행 이후로는 이세계물이 워낙 많아졌기 때문에 훨씬 더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소설을 발표한다는 것이 주류화된지가 워낙 오래 된(1990년대 초반 PC통신 시절로까지 거슬러올라간다) 한국에서는 소위 ‘이고깽’(이세계로 간 고등학생이 깽판을 치는 내용)이라 하여 현대인이 이세계에 가서 활약한다는 내용은 일본 웹소설의 유행보다 훨씬 앞섰다. 일본에서도 학생이 이세계로 가는 것은 애니메이션 <성전사 단바인>(1983년)이나 소설 <황금박차 - 이차원 기사 카즈마>(1988년) 등 많이 있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인터넷에서 발표되는 작품에 이세계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한국이든 일본이든 오래 전부터 반복되는 유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이세계물’이라면 게임 속의 세계로 가는 <소드 아트 온라인>과 <로그 호라이즌>, 게임형의 판타지 세계로 가는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이나 <오버 로드>, 밀리터리 취향의 세계(?)로 가는 <유녀전기>, 판타지 세계로 가는 <무직전생>이나 <전생했더니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이 중에는 이세계로 가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엄청난 능력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고 그냥 이세계로 가기만 할 뿐 어느 정도 수련과 노력을 해서 주인공이 성장하여 적절한 능력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전자는 일본에서 ‘난 강해――!(오레 츠에에에)’물이라고 부르는데, 한국에서도 전통적으로 대본소용 판타지소설 중 일부를 가리키는 소위 ‘양판소’(양산형 판타지 소설의 약칭)물에서도 ‘먼치킨’이라 불리운다. 노력없이 강한 주인공 비단 웹소설 원작이 아니더라도 이런 먼치킨형 주인공, 즉 ‘노력없이 강한 주인공’은 21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특징적으로 많이 등장하고 있다. (물론 이 역시도 21세기 이전에 그런 주인공이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만화잡지 「소년 점프」의 인기 만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는 2014년부터 연재를 시작했고 2016년부터 애니메이션이 방영되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미도리야 이즈쿠. 특수한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지만 어떤 기회를 통해 무척 강한 능력을 손에 넣은, 어떻게 보면 무협소설에서 ‘기연’을 얻는 주인공만큼이나 주역스러운 설정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미도리야 이외의 주요 인물 중에, 정형적이라 할만큼 ‘고전적 주인공’의 특징을 가진 캐릭터가 두 명이나 나온다. 소꿉친구였던 라이벌 바쿠고와, 새롭게 만난 라이벌 토도로키다. 오만한 성격에 다혈질처럼 보이는 바쿠고, 냉정한 성격이면서도 부모님 때문에 비틀린 의지와 고민을 갖고 있는 토도로키. 미도리야는 토도로키의 사정을 듣고서는 그에게 “만화였다면 주인공이다”라는 ‘메타 발언’(정작 주인공은 미도리야니까)을 하는 장면도 나온다. 만약 과거였다면 주인공은 바쿠고이거나 토도로키였을 텐데, 2010년대의 소년만화 독자들은 더 이상 단순한 고전적인 형태의 ‘주인공 캐릭터’에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미 2010년대의 젊은이들은 대개 ‘보릿고개’나 ‘전쟁’, ‘공해병’이나 ‘진폐증’을 겪을 일이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오히려 그들에겐 ‘자살’이나 ‘왕따’가 더 가깝게 느껴질 것이고 괴로운 병이라면 ‘아토피’라든지 ‘공황장애’, ‘백신 거부주의로 인한 홍역’ 같은 것일 수 있겠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 된 것이 21세기 이후의 일인 것만도 아니라는 말이다. 지역적 차이는 있겠으나 사실 이미 1990년대에도 픽션 속에서 ‘열혈 주인공’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한국에서도 <열혈강호>나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은 1990년대 초반에 등장해 있었고, 순정만화에서도 비슷한 변화를 볼 수 있었다. 일본만화에서도 1980~90년대의 주인공들, 예를 들어 손오공·사쿠라기 하나미치·미츠하시 타카시·우에스기 타츠야(앞에서부터 <드래곤볼><슬램덩크><오늘부터 우리는><터치>)는 그 이전 1960~70년대 ‘근성물’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했던 주인공 인물형이다. 또 같은 시대의 켄시로·사에바 료(<북두의 권><시티 헌터>) 등은 ‘난 강해――!’물에 그대로 해당될만큼 ‘처음부터 강한 주인공’이다. 물론 이런 작품과 캐릭터를 무조건 ‘노력없이 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맨처음 언급한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만 하더라도 2010년대 작품 중에서는 오히려 드물게도 나름대로 ‘노력을 하는’ 주인공이었다. 하다못해 <시티 헌터>의 사에바 료도 끊임없이 사격 연습을 하는 장면이 작중에 나오고,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은 여러 스승들에게 수업을 받거나 강한 중력 하에서 수련을 하는 등 충분한 노력을 보인다. <슬램 덩크>에서도 사쿠라기 하나미치는 전형적인 ‘노력없이 강한’ 척을 해야 하는 불량 학생 출신이었음에도 나중에는 농구라는 스포츠를 인정하면서 ‘풋내기 슛’을 연습하여 이기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이런 모습들은 작품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 정도일 뿐, 아무리 그렇더라도 후대에 거의 희화화될만큼 말도 안되는 ‘노력(?)’을 하는 1960년대 스포츠근성물이나 슈퍼로봇물인데도 작품 전반 거의 4분의 1 가까이까지 주역 로봇이 제대로 등장하지 않거나 싸우지 않고 오직 주인공이 파일럿으로서의 연습과 스파르타 훈련만을 받는다는 독특한 로봇애니메이션 <혹성로보 단가드A>(국내 방송 제목은 <날아라 스타에이스>) 같은 경우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 1980년대 중후반 이후의 작품들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력없이 강한 주인공’이라 함은 진짜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고전 작품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덜 노력하거나 노력을 하더라도 그 노력하는 장면을 거의 그리지 않는 식으로 처리되어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길가메시 서사시> 이런 ‘노력없이 강한 주인공’의 유행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요즘 젊은이는…” 운운하는 비평도 자주 보지만, 물론 ‘요즘 젊은이들’ 때문에 그런 주인공이 유행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분석의 태반이 너무 상황을 단순화시킨다는 생각은 든다. ‘노력없이 강한 주인공’은 비단 요즘 유행일 뿐만이 아니라 앞서 언급했듯 무협지에선 과거에도 자주 볼 수 있던 유형이다. 하물며 ‘이야기의 주인공’은 신화 시대로 거슬러올라가 보더라도 다들 ‘노력없이 강한’ 것 아닌가? 과거엔 그것을 혈통이나 타고난 능력(신의 아들이라느니 천손이니)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그리스로마신화나 <삼국유사>를 보아도 그런 인물은 등장하고, 앞에서 말한 <길가메시 서사시>도 그렇지 않은가. (그런 길가메시가 등장인물로 나오는 작품이 <Fate/stay night>를 비롯한 <페이트> 시리즈이다.) 따라서 이런 주인공의 유행이 비단 21세기 이후 서브컬처의 특징이란 식으로 말하기는 어렵고, 앞에서 살펴보았듯 이세계물의 유행 역시 마찬가지이다. 애시당초 어떤 한두 가지 사안을 특정 시기의 ‘특수성’으로 설명하는 담론은 대개 거기에 어긋나는 사례로 인해 금새 반박되기 때문에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그렇지만 ‘과거와 달리 21세기에만 이런 특징이 드러난다는 것은 아니’라는 전제를 단다면, 분명히 현 세대 서브컬처의 큰 유행으로서 이세계 전이와 노력없이 강한 주인공이란 흐름을 짚을 필요는 있다고 보기에 이 글을 썼다. 여기까지 판타지와 SF의 관계, 이세계물과 노력없이 강한 주인공의 유행, 라이트노벨과 웹소설에서의 이세계물이 갖는 차이, 시대에 따른 주인공상의 변화 등 간략하게나마 몇 가지 사인에 대해 다루어보았다. 이 이상의 내용은 다른 기회로 돌리겠으나, 이런 변화를 바탕에 두지 않고서는 2010년대의 만화/애니메이션 계열 서브컬처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웹소설의 이세계물도 지겹다는 반응이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적지 않기 때문에, 이 장르의 유행이 당장 없어지진 않겠으나 2020년대에는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주1) SF의 경우, 설정에 따라서는 현재의 인류가 먼 우주로 나아가 외계인을 접하거나 혹은 워낙 먼 미래가 되거나 갑작스러운 기술 발전으로 우주 전체를 누빌 수 있게 된다는 내용 등 다양한 배리에이션이 있는데, 어쨌거나 그 어느 쪽이든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계’와는 다른 ‘이세계(異世界)’를 그린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판타지와 다를 바가 없다. 작품의 방향성이 마법과 연금술이나 과학이냐 하는 차이점일 뿐. 또한 이때 ‘과학’이라고 하더라도 어차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과학, 즉 빛보다 빨리 달릴 경우의 물리 법칙을 상상해서 만들어낸다거나 비(非)탄소계열 생명체를 상상해서 만들어내는 등 범위를 너무 벗어나는 내용을 그릴 경우를 생각해보라. 그런 SF가 마법이나 연금술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판타지라고 해도 그 세계관 내에서는 합리성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작품도 많고, 그렇기에 완전히 동떨어진 상상만의 판타지 작품은 판타지라는 장르 안에서도 여러 단계로 구분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서구권을 대표하는 SF잡지의 제목이 <The Magazine of Fantasy & Science Fiction>였던 것 아니겠나. (그나마도 1949년 창간 당시의 잡지 이름은 <The Magazine of Fantasy>였다. 2호 때부터 ‘Science Fiction’이 추가된 것이다.)
여기서는 장황하게 시작할 수밖에 없다. 먼저 < 아내들의 행진 >의 포스터를 잠시 보아주기 바란다. 한 여성이 보기에도 힘겨운 돌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번쩍 들어 마치 자신의 아이를 안기라도 하듯 그런 자세로 서 있다. 그녀의 옷매무새가 벌어져 그 사이로 브래지어가 젖가슴을 가까스로 가리고 있고 치마를 걷어 올려 무릎 위 허벅지가 드러나 보이지만 바라보는 사람에게 이 그림의 디테일 어디에서도 성적인 자극을 주는 유혹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그녀는 필요 이상으로 당당하고 약간 거만하게까지 느껴진다. 건강함. 하지만 과장된 건강함. 약간 두텁게 칠해진 위에 다시 덧칠한 것이 분명한 터치도 그런 인상을 더 한다. 게다가 전체를 검붉은 색으로 물들인 색채가 약간 위압감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온통 불타오르는 듯한 힘, 그 사이를 뚫고 비치는 서광. 붉은 어둠, 혹은 암흑 사이로 내비치는 어떤 계시. 종종 종교적인 그림들에서 마주한 맹목적인 희망이 거기에 있다. 그것이 차라리 두렵다고 할까. 그녀가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 주변을 에워싼 인물들에 비해서 필요 이상으로 큰 비례로 그려진 모습이 위압감을 주면서 단지 주인공이 아니라 아마도 그녀 주변 인물들을 이끄는 지도자라는 표지를 전달한다. 마치 괴물처럼 큰 주인공.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물론이다. 다소 기괴한 느낌마저 불러일으키는 이 거대한 모습. 그녀는 주변의 얼굴조차 눈 말고는 윤곽이 거의 뭉개져 버린 듯한 한 무리의 사람들에 비하면 또렷한 얼굴의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다. 하지만 내 시선을 끄는 것은 구태여 선명하게 그린 팔꿈치와 무릎 사이로 마치 빠져나올 듯이 버티어선 뼈마디이다. 그녀는 지금 노동을 하는 중이라는 것을 하여튼 보여주고 싶어 한다. 나는 두 개의 지시어를 하나로 합쳐보고 싶다. 노동 지도자. 바로 오른쪽에는 영화를 설명한다기보다는 왠지 그녀를 설명하는 것만 같은 인상을 주는 카피가 그녀와 똑같은 자세로 위에서 아래로, 세로로 내려써서, ‘證言에 이어 내놓은 汎國民映畵!’ 라고 달려있다. 이때 포스터를 보는 우리가 불려가는 카피 안의 자리는 그녀가 아니라 그녀를 에워싼 얼굴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주변의 여자들이다. 汎國民 映畵, 라는 이상한 말. 여기에는 동원의 명령이 담겨있다. 국민이라는 당신, 그런 다음 국민으로 (재)통합하기. 汎, 이라는 강력한 명령. 마치 그 명령을 가시화하기라도 한 것 같은 견고딕의 서체. 그 아래 굵은 먹글씨 풍으로 쓴 제목 <아내들의 行進>. 행진이라는 말에 담겨있는 서사의 시각적 알레고리. 벤야민의 말을 빌리면 이 포스터 위에 놓여있는 제목의 서체에는 조각난 상형문자의 비의적 순간들이 이어지는 어떤 연속이 놓여있다. 어떤 영웅적 서사의 오작동. 이 표현을 다시 한 번 반복하고 싶다. 어떤 영웅. 나는 영화에서 이런 형식의 포스터를 사회주의 체제아래에서 만들어진 국영 제작소의 영화들을 위한 다른 수많은 예를 알고 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아내들의 행진>은 잘 알려진 것처럼 새마을운동을 홍보하기 위해 (문화공보부 산하기관 중의 하나인) 영화진흥공사에서 만든 국책영화이다. 자본주의 근대화를 위해서 시작한 새마을운동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민들을 계몽하고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이 시기의 수많은 프로파간다 대중선동 문화 중의 하나였던 영화중의 한 편. 그저 영화 한 편. 그런데 이 포스터는 이상할 정도로 이 체제가 불온시하고 콤플렉스에라도 걸린 것처럼 창백한 경련을 일으키면서 증오하고 적으로 삼아 내부에서 고발하고 외부에서 대치 중이었던 이데올로기의 문화적 양식을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다. 포스터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화 취향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기자도 아니며 제3공화국의 연구자도 아닐뿐더러 이 세대에 속하지도 않는) 내가 여기서 제한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내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영화에 관한 자신의 견해나 취향에 대한 인터뷰를 한 적이 없으며 영화에 관한 저서를 남기지도 않았다. 아마도 국가 지도자 중에서 영화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저서로 남긴 유일한 예는 김정일 북한 전 국방위원장일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북한영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참고문헌을 통해서 저서의 존재를 알고만 있을 뿐이지 그 내용을 알지는 못한다) 이건 사회주의에서도 드문 일이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톨스토이에 관한 문건을 남겼으며 고리키와는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인민을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영화에 대해서는 별다른 글을 남기지 않았다. 에이젠슈테인의 < 이반 대제 일편 >을 보고 열렬한 지지를 보냈던 스탈린은 1950년 언어학과 마르크시즘에 관한 짧은 테제를 썼지만 (이 글은 미셀 페쉐를 경유하여 알튀세 학파에 적지 않은 영감을 주었다) 영화에 대해서 문건을 남기지는 않았다. 그건 마오쩌둥도 마찬가지이다. 감옥에서 영화를 볼 여유가 없었던 그람시는 대중들의 동의를 끌어내야 하는 헤게모니의 진지전에서 거의 영화를 언급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그람시가 영화를 언급한 건 1916년 8월 26일에 발표한 “연극과 영화”가 전부이다. (그리고 그 글에서 어떤 영화제목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람시는 영화보다는 대중들의 전선을 이해하기 위해서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소설, 단테의 「신곡」 중 ‘연옥’편, 루이지 피란델로의 희곡을 연구하는 편이 훨씬 유익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런 다음 그람시는 감옥에 갔다.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었던 요제프 괴벨스는 영화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아돌프 히틀러가 영화에 관한 글을 쓰진 않았(던 것 같)다. 지도자와 영화, 국민영화. 나는 단순하게 파시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차적 간극에 대한 약간의 설명. 내가 < 아내들의 행진 >을 처음 본 것은 새마을운동이 막 시작되었던 이 영화의 개봉 시기인 1974년 5월 16일 주변이 아니라 그로부터 한참을 더 지나 새마을운동이 민관유착에 의한 부패의 온상이 되고 난 다음 비판에 직면한 새마을 중앙본부가 새마을 중앙협의회로 변신을 꾀하던 1987년 무렵이었다. 나는 오로지 임권택 감독과의 인터뷰를 위해서 이 영화를 비디오로 보았다. 처음 개봉했을 때 국제극장 앞을 지나면서 간판을 본 기억도 난다. 하지만 이 영화에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새마을운동은 그때 음산한 희망의 (거짓된) 약속이라는 걸 모두들 알면서도 애써 침묵을 지켰다. 몇 가지 구호를 외우면 언제든지 시험에서 만점을 받을 수 있는 도덕 과목 같은 것이었고 그렇게 해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시험에서 문제를 풀어낸 것처럼 일상생활에서 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어긋남의 지루한 동요 속에서 모두들 새마을운동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새마을 국책영화 <아내들의 행진>을 그 자리에 위치 지은 다음 곧바로 잊어버렸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 족보 >를 통해서 임권택을 발견한 다음에도 그 이름과 <아내들의 행진>을 금방 연결시키지 못했다. 내가 비로소 알게 된 것은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순서대로 작품 연보를 정리할 때였다. 그런 다음 <아내들의 행진>을 (비디오로) 처음 보게 되었다. 먼저 줄거리를 소개할 필요를 느낀다. 지순은 성공적인 새마을운동을 이룬 마을에서 지도자인 오빠와 함께 자란 다음 아직 새마을운동을 시작하지 않은 가난한 마을 한밭골로 시집을 온다. 이 마을에서 우여곡절 끝에 지순은 마을 아낙들을 중심으로 가난의 원흉이었던 장마철 강물의 범람을 막기 위한 방죽을 세우면서 새마을운동을 시작하고 그녀들의 노력에 감복한 남편들도 함께 힘을 모아 버려진 농지를 개간하여 부자 마을이 된다. 자, 여기까지는 아무래도 좋다. 그런데 나를 당황시킨 것은 마지막 시퀀스 전체였다. 갑자기 기습이라도 하듯이 방향을 틀어서 이 마을에 한국전쟁 당시 납북된 만수댁의 남편이 무장공비가 되어 돌아온다. 영화는 새마을 영화에서 반공영화로 어리둥절하게 바뀐 다음 잔인무도한 공비들의 만행과 국군장병들의 용감한 대처 끝에 일망타진하는 장면을 보여주더니 갑자기 끝나버린다. 나는 처음에 비디오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에 다시 되돌아가서 문제의 장면부터 반복해서 보았다. 영세한 산업이었던 비디오업체들은 종종 필름 릴을 뒤죽박죽으로 섞거나(< 삼포 가는 길 >의 ‘악명 높은’ 비디오) 때로 90분 테이프의 길이에 맞추어서 제멋대로 영화를 자르거나, 그래서 갑자기 끝나거나, 때로 서로 다른 영화 릴이 엉키고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한편의 제목 아래 이어 붙였다. 하지만 <아내들의 행진>은 외형적으로 (화질이 너무 나쁘다는 문제를 제외하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너무 이상해서, 하지만 조심스럽게, <아내들의 행진>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결국 마지막 시퀀스에 대해서 임권택 감독님에게 질문을 하였다. 그때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을 돌려받았다. “그거는 윤주영 (문화공보부)장관이 넣으라고 해서 들어간 거요, 미치는 거예요, 거기를 박정희 대통령이 넣자고 그런다고, 절대로 넣어야 된다고 그러잖아. 나는 계속, 계속 이게 갑자기 무슨 짓이냐고 해도 소용이 없어”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책에는 질문의 반복이라 누락되어 있지만 그때 나는 대답을 듣자마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반문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 영화를 본 건가요?” “그러니까 다 찍은 영화에다가 그런 이야기를 덧붙이라고 말을 한 거겠죠. 원래 시나리오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다니까” 잠시만 멈춰보자. 나는 단순하게 여기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월권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은 매우 폭력적이며 잘못된 처사이다. 하지만 그 일은 이미 벌어졌고 벌써 40년 전의 일이다. 그저 비난을 하고자 한다면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거기에 더 할 수 있겠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은 < 아내들의 행진 >을 보았고 (아마도) 몹시 마음이 들었다. 그를 감동시켰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무언가 여기에 결핍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몹시 위험한 가설을 세워보고 싶다. 참 훌륭합니다. 하지만 여기엔 무언가 빠진 게 있어요. 이 영화가 단지 새마을운동을 계몽하는 수준에서 멈추지 말고 더 밀고 나아가 반공 이데올로기까지 담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생각해서 지시를 내렸(을 것이)다. 왜 그 둘은 하나에 있을 때 비로소 하나가 된 둘이 아니라 둘 각자의 결핍을 채운 하나가 되는 것일까. 영화감독은 그 둘을 서로 다른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지도자는 그 둘이 하나를 둘로 나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의 이념에 대한 하나의 결정적 판본 역할. 하지만 아직 덧셈이 필요하다. 상황을 계산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0년 4월 22일 한해(寒害)대책을 세우는 자리에서 ‘새마을운동’이라는 정책을 꺼내 들었다. 그는 지금 이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김대중은 이제까지 만나보지 못한 힘겨운 상대였으며 그가 내세운 ‘청년기수론’은 해방 이후에 태어난 세대의 마음을 움직였다. 게다가 공화당은 눈에 보이게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었다. 그해 5월 6일 새마을 사업추진방안을 구체적으로 지시하였다. 국가 단위의 근대화 개혁을 시작하라, 는 이 정책적 명령은 정치적으로 근대적이라기보다는 봉건적인 성격에 가까웠다. 백성들을 계몽하라. 그들을 깨어나게 해서 더 큰 잠에 빠져들게 하라. (지젝이 아도르노를 빌려 설명했던) 억압적 승화. 이듬해 4월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가까스로 김대중을 이겼다. (이 선거에 대한 후일의 역사적 평가에 따르면 부정선거의 개입에 의해서, 라는 설명도 있다. 하지만 그걸 판단한다는 것은 내 능력 바깥의 일이다) 모든 일이 평화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선되자 내린 결단은 12월 6일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는 것이었다. 새마을운동과 국가계엄은 거의 평행해서 진행되었다. 이것은 권유가 아니라 명령이다. 새마을운동은 그것의 취지에 머물지 않고 그것의 과정을 함께 보아야만 한다. 만일 누군가 반대를 한다면 그는 새마을운동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그는 ‘빨갱이’가 될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고작 20년에 불과하며 여전히 분단 상태가 계속되고 있으며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지속적으로 간첩들이 일상생활에 침투하여 활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무장공비들이 휴전선을 넘어오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이 이스라엘의 집단농장인 키부츠에서 가져온 모델이라고 생각했고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이 운동이 소련의 강제이주 집단수용소에 가까운 콜호즈와 비슷한 것으로 보았다. 1972년 3월 박정희 전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마을을 직접 시찰하기 시작했다. 모범적인 사례들. 그해 4월 21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직접 ‘새마을 노래’ 가사를 작사하고 작곡했다. 다소 지루하겠지만 당신에게 ‘새마을 노래’ 가사를 불러주겠다. (일절)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후렴)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이절)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후렴) (삼절) 서로서로 도와서 땀 흘려서 일하고 소득증대 힘써서 부자 마을 만드세 (후렴) (사절) 우리 모두 굳세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새 조국을 만드세 (후렴) 적어도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이 가사는 새마을운동에 관한 가장 짧은 형태의 아포리즘처럼 이루어진 강령이자 정감의 언어로 이루어진 이상적인 메시지일 것이다. 이 설명을 읽고 당신은 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도 웃을 수 없었다. 이 노래는 국민 누구나 외어야 하는 가사였으며 일상생활의 행동 지침이자 반복적으로 학습해야 하는 복음이었다. 무조건적인 추종만을 요구하는 노래. < 아내들의 행진 >을 보고 나면 다소 놀라운 것은 이 영화가 단지 새마을 정책의 이념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 가사를 고스란히 서사 안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영화는 끊임없이 새 아침이 반복적으로 밝아오고 마을의 새 삶은 농한기에 집에서 게으른 아침을 보내던 마을 사람들이 미처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데서 전환을 맞는다. 옛 마을의 지표는 초가집이고 새 마을의 지표는 형형색색의 슬레이트 지붕이다. 한밭골은 길이 좁아서 리어카를 새로 장만해도 그걸 사람들이 둘러메고 동네에 들어서야 한다. 그런 마을을 새 마을로 만드는 시작은 먼저 이 마을 여인네들의 부녀회를 조직한 다음 그녀들에게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강령을 전파하는 것이다. 잘 살 수 있다. 부자가 될 수 있다. <아내들의 행진>에서 이 말은 일종의 마법의 언어이다. 이 말 앞에서 어떤 다른 반대도 힘을 잃고 만다. 여러분, 새 조국의 미래를 향한 행진 앞에서 다른 한가로운 주장을 할 시간이 없답니다. 민주주의라니요. 이 영화에서 모든 결정은 선동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단 한 번도 모두 모인 자리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지도자의 명령처럼 내려진 가사를 전달하는 영화. 그러면서도 신기하게 이 영화에는 ‘새마을 노래’가 흘러나오지 않는다. (비디오 판본)무장공비와 함께 돌아온 남편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 아내들의 행진 >의 어떤 장면에 그렇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는지 알지 못한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너무 다양한 차원에서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몹시 은밀하고 종종 사소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걸 짐작하는 것은 바보 같은 추론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오로지 결핍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생각이다. <아내들의 행진>의 마지막 시퀀스에는 먼저 판본의 문제가 있다. 내가 본 비디오 판본은 새마을운동이 성공하고 모든 마을 사람들이 잔치를 벌이던 날 한밭골 새마을운동 부녀회의 회장직을 맡았던 과부 만수댁 집에 한국전쟁에서 납북된 이후 생사를 알 수 없었던 남편이 한밤중에 돌아오면서 이 기괴한 시퀀스가 시작한다. 약간의 부언 설명이 필요하다. 새마을운동을 전파하려는 새댁 지순은 부녀회를 조직하면서 자신이 아직 어리고 한밭골 주민들도 잘 알지 못한다면서 만수댁을 추천한다. 이 과정은 자연스럽다기보다는 논리적으로 시나리오에서 만들어진 인물의 배치이다. 한밭골은 아내들이 여전히 구습에 매여 있고 그래서 가정에서 남편에게 절대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마을이다. 만일 누군가 나서서 부녀회 회장을 맡는다면 (이 영화의 장면에 따르면) “북어와 아내는 사흘 걸러 매질을 해야 한다”고 남편들끼리 모여 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 마을 어른들은 “자고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고 가르치는 마을에서 줄거리에 매우 번잡하게 그녀가 남편을 설득하는 과정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남편이 없는 아내가 필요해졌고 만수댁이라는 과부가 만들어졌다. 그런 다음 만수댁이 왜 과부가 되었는지 설명할 필요가 생기자 남편이 납북된 인물이라는 설정이 동원되었다. 이 영화는 전라북도 익산에서 촬영되었고 이야기에 구체적인 지명을 기입하지는 않았지만 등장인물들은 모두 호남 방언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호남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남한 최대 빨치산 조직인 남부군이 활동하였으며, 망실공비로 인한 결손가족은 호남 전역에서 드문 사례가 아니라는 계산이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만수댁은 납북된 날을 남편의 기일로 삼아 제사를 지내고 아직도 그의 실성한 노모가 살아서 아들이 언제 오느냐고 묻곤 한다. (하지만 이 제사 장면이 남편이 돌아오는 설정 이후에 보충 촬영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있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임권택 감독님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대답으로 처음부터 일관하고 있고, 현재 남은 시나리오는 심의대본이기 때문이다) 돌아온 남편은 다른 무장공비들과 함께 만수댁에게 밥을 차려달라고 한 다음 곧 한밭골을 떠날 생각이다. 하지만 이미 집은 국군에게 포위된 다음이며 만수댁은 그 위급한 상황에서 남편에게 자수를 권유한다. 지순의 남편은 위험을 무릎 쓰고 양손을 들고 집으로 다가오면서 “여기가 아제의 고향이요, 어디를 또 가시려고 그러시는 겁니까”라고 자수를 설득한다. 지순 남편이 다가오자 위기를 느낀 무장공비들이 지순 남편에게 총을 쏘고 그 틈을 타서 만수댁 남편은 그들을 일거에 쓰러트린 다음 재빨리 아내와 문 바깥으로 탈출하여 국군들이 포위한 논두렁까지 달려가다가 그만 총을 맞는다. 다음 장면은 만수댁 부부의 장례식 장면이다. 여기까지가 비디오 판본이다. (또다른 판본)혼자 돌아온 남편 그런데 이번에 영상자료원에서 제공받은 스크리너는 이 시퀀스 전체가 전혀 다른 판본이다. (다시 한 번 반복하자면) 새마을운동이 성공하고 모든 마을 사람들이 잔치를 벌이던 날 한밭골 새마을운동 부녀회의 회장직을 맡았던 과부 만수댁 집에 한국전쟁에서 납북된 이후 생사를 알 수 없었던 남편이 한밤중에 돌아오면서 이 기괴한 시퀀스가 시작한다. 이때 내가 본 비디오 판본과 달리 여기서는 남편이 혼자 집을 방문한다. 그는 사흘을 굶었다고 말한 다음 저녁상을 먹고 나서 바로 집을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안방에 누워있는 노모를 본 다음 마음을 바꾸고 자수를 결심한다. 그래서 한밤중에 만수댁 손에 이끌려 경찰서에 자수를 하기 위해 달려간다. 그런데 길목에서 기다리던 무장공비 무리들과 마주친다. 그들은 남편의 의도를 눈치채고 칼로 찔러 죽인 다음 만수댁마저 잔혹하게 죽인다. 그 둘은 어둠 속에서 죽어가면서 두 손을 꼭 쥔다. 무장공비 무리들의 행방을 더는 알 수 없고 장례식 장면으로 이어진다. 갑자기 장례를 하다말고 지순은 두 손을 움켜쥔 다음 우리들은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라고 외친 다음 아내들을 이끌고 새마을 사업을 완수하기 위해 행진한다. 두 번째 판본은 여기서 끝난다. (좀 더 난처한 것은 현재 소장본은 영화가 모두 끝난 다음 내가 이미 말한 비디오 판본이 다시 그 뒤에 붙어있다) 나는 새로운 판본 앞에서 좀 어리둥절해졌다. 그 둘은 내용은 다르지만 결국 하려는 이야기는 같은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둘을 두 가지 판본으로 찍어야 할 필요가 왜 생긴 것일까.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훨씬 훌륭한 것도 아니다. 둘 중 어느 쪽이 극장 개봉 당시에 사용된 프린트일까. 어떻게 두 가지 판본이 돌아다닐 수 있게 된 것일까. 둘 다 임권택 이 연출한 것일까, 아니면 둘 중 하나를 (어쩌면) 제작 프로듀서를 한 정진우 가 찍은 것일까. 우리는 정진우가 감독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는 이미 < 증언 >을 제작하면서 영진위의 요구에 따라 임권택이 다음 영화를 찍고 있는 동안 수정 제작본을 위해서 일부 장면을 별도로 연출하고 편집하였다. < 아내들의 행진 >은 <증언>에 이어서 영진위가 제작하고 정진우가 제작 프로듀서를 한두 번째 영화이다. 그런데 둘 중 어느 쪽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선택한 판본일까. < 아내들의 행진 >을 도식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성공적인 새마을운동을 해냈다고 안심하지 마세요. 당신이 힘들여 일구어낸 마을을 언제 ‘빨갱이’들이 침투하여 망쳐놓을지 알 수 없답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 문제를 덧셈으로 생각하는 대신 뺄셈으로 놓고 원래의 판본으로 되돌아가 이 기괴한 마지막 시퀀스를 삭제하고 다시 보면 즉각적으로 이상한 질문과 부딪치게 된다. 임권택 은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것만으로는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어디서 영화감독과 지도자의 차이가 시작되는 것일까. 이 둘 사이의 차이는 단지 반공 드라마가 더해진 것이 아니다. 이 마지막 시퀀스가 당신을 망연자실하게 만드는 것은 명랑한 승리만으로 가득 찬 계몽극을 갑자기 비극으로 바꿔놓기 때문이다. 만일 <아내들의 행진>을 진정으로 심미적인 관점으로 다가간 사람은 임권택이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 영화를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은 물론 임권택이겠지만 이 이야기를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은 (어쩌면) 박정희 전 대통령일 지도 모른다. 만일 이 표현이 불편하다면, 이 이야기를 감정적으로 진심을 다해서 온전하게 껴안은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일 지도 모른다, 고 수정해도 괜찮다. 자신의 이념을 실현한 영화. 말하자면 그에게 <아내들의 행진>은 스탈린에게 < 이반 대제 일편 >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시퀀스를 삭제하면 이 영화는 새마을운동의 인정 미담과 승리에서 멈출 것이다. 그다음은 그래서, 라는 다음 단계에 대한 질문과 과정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밀고 나아가 무장공비들이 한밭골에 침투하여 만수댁을 죽음으로 이끌 때 갑자기 이 모든 과정은 다른 차원에로 도약하듯이 이끌린다. 이제까지 이 모든 역경을 딛고 지순의 도움을 받으면서 성공적인 마을을 이룬 부녀회 회장 만수댁에게 요구되는 지도자의 마지막 단계는 예기치 않은 비극적 사건을 통해 죽어서 이 승리를 더 이상 반박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지도자(이지만 조연)인 만수댁이 이제 진정한 지도자(이자 주인공)의 자리를 어떤 권력다툼 없이 지순에게 운명적으로 양보하는지에 관한 슬프지만 아이러니한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만수댁이 차지했던 위치를 부언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녀는 지순이 한밭골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호의를 베푼 사람이며, 지순이 새마을운동을 시작하려 들자 모두가 적대감을 보일 때도 가장 먼저 그녀에게 협조를 시작한 인물이다. 만일 그녀가 없었다면 (결국 성공하긴 했겠지만) 훨씬 가혹한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만수댁은 지순과 한밭골 새마을운동 사이의 매개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이 운동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사실상 그녀가 차지할 자리는 공백이 되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 이 애도의 장면에 감정만이 넘쳐날 뿐이지 어떤 성찰도 없는 것은 삭제의 항목에 관한 질서를 재조정하려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방죽 쌓기 이 질문을 완전히 다른 자리에서 질문해보고 싶다. 모든 새마을운동 이야기는 긍정되어야만 하며 새마을운동에 관한 모든 영화는 성공적인 결론을 맺어야만 한다. < 아내들의 행진 >은 계엄 하에 놓인 국가에서 만들어진 국책영화이며 모든 부정적인 언사는 금지된 영화이다. 그러므로 새마을운동의 지도자에 관한 이야기가 비극으로 귀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 바깥의 지도자가 아니라면 누가 감히 제안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을 체제 안에 있었기 때문에 영화감독이 영화 안에서 하지 못한 것을 지도자가 현명하게 해냈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읽고 있다면 당신은 내 말을 완전히 오해한 것이다. <아내들의 행진>은 새마을운동의 페티시즘에 가까운 계몽영화이다. 모든 등장인물은 목적론의 결론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그 과정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면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제한된 공간. 시간적인 차단. 여기서 하나의 모델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하나의 명령. 이렇게 되어야만 합니다. 이때 이 모델에는 텅 빈 시간이 음산하게 감돌기 시작한다. 임권택 은 지금 그의 영화 중에서 가장 공허한 자리에, 말 그대로, 어떤 비유도 없이, 마치 강제부역을 하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불려 온 것이다. 새마을이라는 낯선 마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고 난 다음, 그러니까 8년 후에 임권택이 찾아간 낯선 마을을 다룬 < 안개마을 >을 떠올려보면 둘 사이의 간극은 더 멀리 느껴질 것이다. 핵심은 <아내들의 행진>에서 영화감독이 가졌던 영화와 모델 사이의 거리를 지도자는 그 자신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느끼면서 가진 거리의 상실이다. 이때 지도자는 이야기 안에 비극의 필요성을 감지하고 있다. 내게 시련이 필요합니다. 혹은 비극 없이 이야기는 여전히 부족한 결핍상태에 놓여있다고 믿습니다. 아직 부족합니다. 당신들은 남한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 시련은 거기가 아니라 다른 데 있습니다. <아내들의 행진>은 장마만 시작하면 강물로 넘쳐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죽을 쌓아올렸을 때 이미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무슨 할 이야기가 더 남았나요. 지순이 시집오고 다음 1시간 39분의 지점, 그런데 갑자기 이야기가 방향을 틀었을 때 지순은 마치 친정으로 돌아가기라도 한 듯이 영화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만수댁 남편의 귀환은 무언가 이야기가 더해졌다기보다는 완전히 다른 영화가 여기에 덧붙여진 것처럼 보인다. 흔히 진부한 영화들에서 마주치는 것처럼 이미 한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두 편의 영화. 그러나 이것은 미학적 선택이 아니다. 이 괴상하기 짝이 없는 만수댁 남편의 시퀀스를 보고 있으면 몹시 불길한 인상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지순이 내내 시련을 겪기는 하지만 <아내들의 행진>은 단 한 순간도 그녀의 운명 때문에 보는 우리를 긴장시키지 않는다. 이 영화는 승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불해야 할 노력을 기울이면 어떤 오차도 없이 거기에 대한 응당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아니, 기대보다도 훨씬 큰 보상을 받을 것이다. 현실이라는 외양을 갖추기는 했지만 이 영화는 새마을운동의 법칙이 작동하는 어떤 변수도 없는 말끔한 세계이다. 이때 만수댁 남편이 갑자기 이 안전한 법칙의 세계를 일순간에 뒤흔드는 얼룩의 삽입이라고만 생각한다면 끝내 이 과잉하는 장면이 반대로 결핍하는 모델의 약점을 비로소 완성하여 입체적인 이념의 공간에로 도약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지도자의 뜻을 (비판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 시퀀스는 이야기 전체의 균형을 완전히 망쳐놓을 뿐만 아니라 가까스로 이루어놓은 승리의 감흥조차 깨트려버린다. 핵심은 거기에 있다. 지도자는 망쳐놓아야 할 뿐만 아니라 깨트려야 한다고 믿는다. 정확하게 그런 의미에서 이 시퀀스가 요점에서 빗나가기는커녕 거의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였던 이 모델의 세계에 언제든지 오류가 작동할 수 있는 현실감각을 부여하고 있다. 물론 당신은 반론을 제기하고 싶을 것이다. 현실감각이라니요. 이건 그저 모델 옆에 다른 모델을 덧붙여놓은 것에 불과하답니다. 도식적인 설명. 새마을운동은 수없이 많은 승리를 재생산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 승리란 얼마나 약한 것이며 또한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가. 승리를 지켜내기 위해서 국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말하자면 국가에로 재통합한 다음 그 하위개념에로 재위치 시키는 확대재생산의 수순. 얼마든지 반론에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좀 더 나아가보고 싶다. 나는 영화감독과 지도자가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고 먼저 말하고 싶다. 그래요, 이 모델은 이미 충만해있어요. 그런데 왜 지도자는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시나요. 지도자는 그렇지만, 이라는 단서를 달고 싶어 한다. 그건 말이죠, 너무나 성공적인 이 모델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도둑맞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로부터? 우리들의 성공을 질투하는 북한으로부터. <아내들의 행진>의 마지막 시퀀스는 승리에 대한 염려이다. 이것이 이 이상한 시퀀스의 불길함이다. 이제 막 시작한 새마을운동은 오직 모델 안에서의 승리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도둑질당할까 염려하는 것은 둘 사이의 관계가 완전히 환상 안에서만 맺어진 (거의 도착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착각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염려는 이루어내고, 도둑질 당하고, 되찾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서 바라보고 싶은 지도자가 새마을운동의 승리를 즐기는 방식이다. 그러니 이 염려는 미처 이루지도 못한 승리를 앞서는 결과에 대한 도둑질의 걱정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자크-알랭 밀레는 좀 더 멋지게 표현했다. 향유의 도둑질. 지순이 도착한 마을의 황폐한 풍경 (비디오 판본)새마을운동 후의 마을 물론 여기서 임권택 이 운동의 동력에 질질 끌려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 아내들의 행진 >을 보면서 임권택이 새마을운동에 반대하기는커녕, 혹은 조롱하기는커녕, 그저 마지못해 진행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종종 진심으로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과 수없이 마주쳤다. 분명한 것은 이 영화가 < 요화 장희빈 >을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장르적인 발견과는 상관없이) 그 자신에게는 거의 추락하듯이 다찌마와리 액션활극과 무국적 만주웨스턴, 쇼브라더즈 무협영화를 카피한 무국적 무술영화들로 이어지던 목록에서 갑자기 방향을 선회하면서 나타난 단절의 순간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 사이에 존재하지만 사라진 도서실의 빈칸인 < 잡초 >를 염두에 두고 있다. 아마도 <아내들의 행진>은 <잡초>로부터 그리 멀지 않는 자리에 놓여있을 것이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임권택은 <아내들의 행진>을 찍은 다음 (< 장군의 아들 >을 예외로 하면) 두 번 다시 다찌마와리 영화에로 돌아가지 않았다. 또한 만주웨스턴이나 무국적 무협영화를 찍지도 않았다. 이 장르영화들은 물론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우리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어떤 결단. <아내들의 행진>은 임권택에게 어떤 결사적인 방어선 같은 영화이다. 그는 여기 머물지 못한다면 영화 안에서 더 이상 자신이 견뎌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 같다. <아내들의 행진>에는 이따금 임권택의 모든 영화 중에서도 몹시 아름다운 장면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의 이데올로기에 매달린 비평들은 그 아름다움을 미처 보지 못했을 것이다. 혹은 보았다 할지라도 몹시 불편했을지 모른다. 거기 어른거리는 파시즘의 자동인형들의 그림자. 하지만 <아내들의 행진>은 임권택을 전혀 다른 의미의 맥락 안으로 이끈다. 나는 한국영화에서 등장인물 모두가 예외 없이 호남 방언을 사용하는 영화를 그 이전에는 본 적이 없다. 당신은 임권택이 호남영화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기 영화 세계 속에서 넓혀온 것을 생각해야 한다. 고향으로 가는 먼 길, < 짝코 >. 자기를 부르는 고향의 소리, < 서편제 >. 혹은 고향의 역사, < 태백산맥 >. 그리고 사모곡, < 축제 >. 아마도 호남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판본이라고 할 < 춘향뎐 >. 그런 다음에도 거기 남은 것을 다시 찾으려는 < 달빛 길어올리기 >. 하지만 아직은 이상할 정도로 표준어로만 이루어진 영화들. 한국영화에서 한 편의 대중영화가 방언으로만 이루어진 < 친구 >가 2001년에야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물론 등장인물 중의 누군가 호남이나 영남 방언을 사용하는 수많은 예가 있다. 그때마다 주인공은 표준어의 세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방언은 마치 봉건적인 세계, 혹은 미처 근대화되지 못한 지역(에서 온 사람)에 대한 청각 기호처럼 사용되었다. 때로는 북한에서 월남한 이들, 혹은 공산괴뢰군을 지역적으로 분리시키거나 단순하게 편을 가르기 위해서 (함경도와 평안도 사이를 별 구별 없이 평양 방언으로 통일하여) 대사로 차별화시켰다. <아내들의 행진>은 호남방언으로 이루어진 영화이다. 여기서 이상하게도 지순(과 그녀의 오빠)만이 표준어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그녀의 고향은 어디인 것일까. 문득 편지를 쓰면서 떠올리는 지순의 고향에 대한 기억(flash_back)에 따르면 그녀도 다른 농촌에서 자라서 이 마을로 시집을 온 것인데 그녀(와 그녀 오빠)의 말에는 어떤 방언도 묻어있지 않다. 마치 지순이 받은 교육이 그녀의 방언을 탈색한 것만 같은 말을 들려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순과 한밭골 사람들 사이를 개화(開化)와 몽매(蒙昧)로 분리하는 도식을 세우지만 그 둘 사이가 예민하게 긴장을 불러일으키거나 어떤 대립을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순의 표준어가 여기서는 그녀를 고립시키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무엇보다도 임권택은 지순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별로 우리를 설득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야기는 한밭골로 전통혼례의 가마를 타고 시집오는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가마 안의 지순은 조금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 다음 그녀를 따라온 오빠가 다음 날 안개 낀 새벽에 동생의 시댁과 인사도 없이 떠나면서 남기는 말은 미안하다, 는 표현이다. 시집간 여동생에게 왜 미안하다는 말을 한 것일까. 이 말은 마치 이제부터 시작될 여동생 지순의 고난과 시련에 대한 불길한 예고처럼 들린다. 그런데 왜 지순은 이 마을로 시집을 온 것일까. 오빠와 지순의 남편이 절친한 친구 사이도 아니며 그렇다고 시댁과 잘 아는 사이도 아니다. 여기엔 이상하게도 어떤 설명도 없다. 게다가 이 한밭골은 지순에게도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고장이다. 영화 중간에 지순이 남편에게 고향 오빠를 만나보라는 말을 듣고 다녀오는데 꼬박 하루가 걸린다.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임권택은 이 마을로 시집온 지순과 남편 사이의 첫날밤을 찍지 않았다. 그런 다음 영화 전체에서 그 둘 사이의 내밀하게 사적인 다정한 순간을 단 한 장면도 찍지 않았다. 마치 지순은 한밭골에 새마을운동의 임무를 가지고 온 사람처럼, 정말 첫 장면만 삭제한다면 시집을 왔다기보다는 파견된 것처럼, 그래서 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개인적인 그 어떤 기쁨도 버린 사람처럼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에만 매달린다. 이야기가 지순의 활동을 따라가긴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아내들의 행진>의 동선은 산만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인물들이 아니라 풍경이다. 황폐한 풍경. 하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이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서진 산하. 그런데 왜 그렇게 된 것일까. 긴 일제강점 하의 무분별한 벌목과 한국전쟁을 통과하면서 빨치산을 소탕한다고 무자비하게 잘라낸 나무들. 오랜 시간을 타향에서 보낸 다음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이 기대하는 추억 속에 자리 잡은 풍경의 형상들이 부서지고 사라져버린 것을 확인할 때 품는 분노가 <아내들의 행진>의 전반부를 가득 채우고 있다. 텅 비어버린 추억. 임권택은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무능력한 자신에 대한 분노. 그걸 지키지 못한 고향의 남겨진 이웃에 대한 분노. 그 지경이 된 내가 살아온 땅의 역사. 하나의 세계가 사라져 버렸뇩?상실에 대한 탄식. 그때 거기 그것에 대한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한 채 그저 고향에 머물며 살아가는 현재의 이들에 대한 깊은 미움을 숨기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낯선 사람에게 흉악하고 이득을 눈앞에 두고 교활하며 종종 비겁하고 폭력적이며 대부분 완고하고 그들의 무지가 때로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는데도 임권택은 그들에게 어떤 연민을 품지 않는다. 하나의 예. 이웃의 어린아이가 급성 폐렴으로 죽어가는 것을 지순이 알려주지만 (그런데 의사도 아니며 진료도 하지 않고 그저 한 눈으로 쳐다본 다음 그녀는 병명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일까) 돈이 없어 병원에 가보지 못한 채 마을 어른 김 첨지의 민간요법에 의존해서 일시적인 경기로 판단하고 방치하는 바람에 가엾게도 생명을 잃는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말을 할 뿐 거의 무관심하게 다루고 있다. 아이가 아픈 장면과 그 아이가 시신이 된 장면은 서로 떨어져 있으며 그 둘 사이에 전혀 다른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마치 그 아이의 생명을 잊은 것처럼 보이다가 되돌아왔을 때는 이미 죽은 다음이다. 한밭골에서 부서진 것은 풍경이지만 망가진 것은 이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래서 종종 마을이 아름답긴 하지만 대부분 정감 없이 찍혔으며 마을 사람들은 단지 무지할 뿐만 아니라 계몽되기 전의 그들은 종종 폭력에 자주 의지하거나 너무 쉽게 노출된다. 만일 이 모든 것이 그저 이야기에 걸쳐 서 있는 것이라면 이 영화는 별로 우리들의 주의를 끌지 못했을 것이다.내가 단절이라고 부른 것은 이상한 방식으로 여기서 장소와 인물들을 연결시키는 대신 집합의 형식으로 모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시네마스코프는 반복해서 검토할만한 가치가 있다. 아직 카메라가 멈춰 서서 (< 만다라 >에서처럼) 바라보고 있지는 않지만(long_take) 이미 인물들의 배치는 그럴 준비를 하고 있다. 반원형을 만들면서 앉아있는 인물들. 그때 2.35 사이즈를 위해서 수평으로 늘어선 배치를 보고 있으면 (물론 아직 임권택 은 보지 못했지만 끈질기게 그를 아시아 영화의 전통 안으로 다시 위치 지으려는) 서방세계 비평가들이 그를 미조구치 겐지의 그림자 아래 있다고 설명할 때마다 우리들은 오히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거기 있다고 대답하고 싶어진다. 고작 5년의 차이를 두고 만들어진 동시대의 영화 < 오하루의 일생 >과 < 거미둥지의 성 >에서 동일한 일본 가옥 구조 안에 앉혀놓은 무사들의 배치의 차이를 떠올려보라. < 아내들의 행진 >은 단지 장르 안에서 쇼트의 체계를 완전히 반대의 방향으로 돌이키려는 시도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영화 시스템을 좌표상의 영도(degre_zero)에로 되돌려 놓으려고 스스로에게 부과한 어떤 제한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제한? 그렇다. 시네마스코프 화면에서 일단 이렇게 앉혀 놓으면 편집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게 된다. 그걸 나누기 시작하면 앞의 장면들 전체가 무효가 된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 이렇게 배치하면 누가 누구를 보는지 시선의 방향이 그 자체로 충만해지기 때문이다. 임권택이 누구보다 잘알고 있고 누구보다 능수능란하게 진행해온 세계. 그런데 그걸 중단하기 위한 구도를 여기서 자기 손으로 스스로 만들어낸다. <아내들의 행진>은 임권택의 영화에서 형식적으로 무언가를 잡아 뜯어내듯이 버리면서 새로운 관계를 짝짓기 시작하였다. 이때 이 영화 이전 임권택의 영화들과의 결정적인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 무대가 농촌에서 진행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이 핵심이다. 임권택은 스타일을 발명하는 대신 스타일이란 그 영화가 머무는 세계 안의 형식과 조응하는 매개라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오직 그렇게 할 때만이 스타일을 통해서 의미가 도래하기 때문이다. 임권택에게 <아내들의 행진>이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새마을운동이 아니라 이 이야기가 농촌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되기 때문이다. 신기한 일이긴 하지만 (< 잡초 >를 제외하면) 장르의 요구를 따르지 않고 지금이라는 시간 안에서 영화를 찍은 건 53번째 영화인 <아내들의 행진>이 처음이다. 그가 배우들과 스태프를 이끌고 농촌으로 간 것은 언제나 조선 가옥이 서 있고 주변에 별다른 근대건물이 없어야만 하는 사극이거나 수많은 엑스트라들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때로 건물들을 폭파시켜야 하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었다. 조건과 상황 안에서의 농촌. 그러므로 거기에는 거기 살고 있는 사람이 없다. 그냥 단순하게 말하고 싶다. 이제까지 임권택은 농촌을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진행시켜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마치 자신이 도시 사람인 것처럼 청춘영화를 찍었고, 갑작스러운 전후 서울의 근대화 과정 그늘에서 자라난 폭력과 희생을 다루었고, 이따금 도시에서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애환처럼 연출했다.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 추억. 그렇다면 어떻게 되찾아야 할까. 그곳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한국전쟁이 놓여있다.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폭력적인 시간의 흔적들. 존재했던 것들의 소멸. 고향 사람들의 삶이 변해버렸고 풍경은 부서져 버렸다. 거기서 더 이상 나를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때 임권택은 무엇을 찾아다녀야 하는 것일까. 정확하게 여기서 영화감독과 지도자는 서로 갈라진다. 되찾아야 할 시간과 도래해야 할 시간.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설명해야 할 것이다. < 아내들의 행진 >은 이제까지 임권택 이 만들어본 적이 없는 형식의 영화이다. 그건 이 영화가 교육의 영화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당신은 <아내들의 행진>이 새마을운동에 관한 국책영화라는 사실 때문에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를 떠올리면서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물론 반론을 위해서 푸코를 따라 칸트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대신 맞은편에 브레히트의 교훈극에 관한 배움에 따라 고다르가 만든 교육의 영화들을 가져다 놓을 생각이다. 세르주 다네의 그 유명한 명제. “스크린이라는 칠판” 임권택의 교육의 영화는 세 번째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임권택은 영화를 만들면서 자기 자신을 위한 배움을 청해가는 방식을 취했다. 단지 그것은 주제에서 배움을 가져오거나 소재를 알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었다. 임권택이 그것을 영화로 담기 시작할 때 그것의 모든 지식들이 영화 안의 기호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임권택은 거기서 다시 시작하였다. 나는 아는 것이 없으며 배운 것이 없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질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서술은 그의 전진이 되었다. 낯선 지식들. 이것은 저것과 함께 갈 수 있는 것일까. 이것과 저것은 왜 대립하는가. 질문이라는 형식. 그 형식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의 리듬. 그는 스님의 만행길을 따라가면서 소승불교를 배우고(< 만다라 >) 그리고 번갈아 대승불교를 배웠다. (< 아제아제 바라아제 >) 그런 다음 자신에게 내린 무병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찾아 나선 중년남자를 따라가며 무속신앙을 배웠다. (< 불의 딸 >) 임권택은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일백년 전 조선말 막 근대가 시작되었을 때 도망치고 또 도망치면서도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상을 전했던 천도교 2대 교주 최시형의 포교활동을 따라가면서 인본사상을 배웠다. (< 개벽 >) 임권택은 계속해서 질문했다. 그는 이제 남도 소리를 따라 다시 유랑을 떠났다. 당신을 부르는 소리. 고향의 소리. (< 서편제 >) 그리고 또 떠났다. (< 천년학 >) 그런 다음 조선화의 마지막 대가 오원 장승업을 따라가면서 배움을 청했다. (< 취화선 >) 그는 멈추지 않았다. 천년을 이어져 내려온 종이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를 알고 싶어 했다. (< 달빛 길어 올리기 >) 임권택의 영화는 오로지 자기 자신을 향한 교육의 영화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아내들의 행진>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마치 벤야민이 <아내들의 행진>을 만들 때의 임권택을 위해서 쓴 것만 같은 테제로 마지막 문장을 대신 하겠다. ‘역사철학 테제’ 18개 테제에 관한 부기 B. “시간으로부터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했던 점술가들은 확실히 시간을 동질적 시간으로도 체험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어쩌면 과거의 시간이 어떻게 기억을 통하여 체험되어졌던가를 알 수 있을지 모른다 (중략)” (계속) 1974년 111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영화진흥공사 각색 신봉승 , 윤삼육 촬영 변인집 조명 최원근 편집 김창순 음악 한상기 김희라 윤미라 윤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