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신세경 (김수로의 제자가 된 신세경)
- 제작년도
- 2010
1 지금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화자는 이것을 시인해야만 한다. 영화 관람이 끝나고 영화관 밖으로 나오는 순간을 그가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라는 말로 롤랑 바르트는 「영화관을 나오며」를 시작한다. 나도 그 순간을 좋아한다. 문제는 영화관을 나오기 위해서는 먼저 영화관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초콜릿이 코팅된 아이스크림 콘의 꼬다리를 먹기 위해서는 먼저 나머지 부분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나이를 먹으며 어느 순간 군것질을 하면 곧바로 군살이 붙는다(대사량이 떨어져서)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늙었다(만나는 사람만 만나서)는 사실도. 나는 시간으로 둥글어진 다른 이들의 얼굴에서 나의 늙음을 본다. 굴뚝을 청소하는 두 아이가 등장하는 오래된 이야기처럼, 혹은 그냥 거울처럼. 바르트는 계속해서 쓴다. “영화관 안에서는, 아무리 멀리 앉아있더라도, 나는 스크린이라는 거울에, 나 자신을 자기애적으로 동일시하고 있는 “타자의” 상상적 세계에, 코가 납작하게 짓눌릴 정도로 바짝 들이댄다(스크린에 최대한 가까이 앉는 관객은 어린아이이거나 영화광(cinéphiles)이라고들 한다).” 그러니 그날 내가 극장에서 너무 많은 늙음을 보았다고 해서 너무 놀라거나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을 것이다. 2 먼저 말해두어야 할 것은, 내가 어린아이가 아닌 만큼 씨네필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린아이와 함께 살며 몇 명의 영화광을 알기는 한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나는 종종 씨네필이 아닌 한 인간(=나)에게 얼마나 많은 씨네필-지인들이 필요할까 자문해보곤 한다. 내 대답은 늘 같다: 한 명도 너무 많다! 오해하면 안 된다. 체스터턴을 따라 말하면,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을 사랑할 수는 있으며 사랑하기도 한다. 여기에 솔직한 마음을 덧붙인다면, 나는 그들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그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우리는 극장에 갔다. 아이도 씨네필도 없이. 아내와 나 둘이서. 그날은 아내의 생일이었고, 우리가 함께 극장에 갔던 건 < 극한직업 >이 마지막이었다. 주말 오후에 아이를 어머님께 맡기고 다녀온 것이었다. 힘들 때 하는 선택이 그 사람의 본모습을 보여준다는 말이 맞다면 나는 3년 만에 가는 극장에서 무슨 영화를 볼까 고민하지 않고 주저없이 < 탑건: 매버릭 >을 고르는 사람이다. < 헤어질 결심 >이나 < 브로커 >가 아니라… 문득 임재철(=씨네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니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었다는데 무슨 길을 잃었냐고. 내가 보기엔 한국 영화에 들어간 적도 없는데, 안 그래?” 3 <극한직업>과 <탑건: 매버릭> 사이 나는 극장에 모두 다섯 번 갔는데, 그중 네 번은 JD와 함께(나머지 한 번은 혼자)였다. 가장 최근은 지난 6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GV를 진행하기 위해 영자원에 갔던 것이다. 장학퀴즈 우승자, 베스트셀러 작가, 천재 감독으로 불리지만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씨네필에 따르면 “그저 딜레탕트일 뿐”인 이규형의 1987년 작품으로 서울 관객 26만 명을 동원하며 그해 한국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작품이다. 참고로 같은 해 개봉한 외국 영화들의 대략적인 목록은 다음과 같다. < 오버더톱 >, < 록키4 >, < 코브라 >, < 플래툰 >, < 스타워즈:제다이의 귀환 >, < 백 투 더 퓨처 >, < 프레데터 >, < 죠스3 >, < 작은 신의 아이들 >, < 컬러 오브 머니 >, < 파리, 텍사스 > 그리고 < 탑건 >. 4 그날 우리가 길을 잃기는 했다. 오랜만에 찾은 웨스턴돔은 기억보다 훨씬 복잡했고, 낡았다. 그리고 그건 극장도 마찬가지였다. 중간중간 공실이 된 상가와 저녁 시간에도 텅 빈 식당들과 달리 극장에는 사람이 제법 있었지만 직원은 적었고 관리가 되지 않은 티가 곳곳에서 났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관객이 줄고 그에 따라 인원을 감축했지만, 관객이 다시 늘어난 이후에도 충원을 하지 않아 크고 작은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도 그렇지. 내 기억 속 극장은 대부분 새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하지만 이내 그것이 전혀 보편적이지 않은 우리 세대의 특별한 경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내가 스무 살이 될 무렵 멀티플렉스가 생겼다. 처음에는 강변으로, 다음에는 코엑스로. 우리는 각자의 친구들과 함께 새로 생긴 극장을 찾아다녔고, 그러는 동안 여기저기 지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가깝고 새로운 상영관을 찾았고, 다시 더 가깝고 새로운 상영관을 찾았다. 더 이상 가까운 곳에 새로운 상영관이 생겨나지 않을 때까지. 그러면서 시간과 함께 서서히 낡아가던 기존의 극장들은 팬데믹을 거치며 급격히 쇠락한다, 뭐 이런 이야기 아닐까? 그리고 그건 (상업) 영화 자체에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일 수 있다. 아니면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문화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이거나. 한 마디로, 메인스트림 문화가 적절한 세대 교체의 리듬을 놓친 채 동일한 인물들, 주제들, 스타일들과 함께 고인물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5 결론부터 말하면 <탑건: 매버릭>은 좋았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시험비행단을 해체하러 온 에드 해리스 위로 탐 크루즈가 모는 전투기가 지나가는 장면부터 눈물이 날 뻔한 걸 참느라 혼났다. 다만 제목이 <탑건: 매버릭>이 아니라 <탑건: 우리들의 블루스>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저도 후반부 공중전 장면 재밌었고, 잘 찍은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뭔가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또 다른 씨네필이 말했다. 전편의 편집이나 데쿠파주를 거의 똑같이 따라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전편에서 기성세대에 반항하는 젊은이로 등장했던 톰 크루즈가 속편에서는 늙은이(young sixty)가 되어 반항하는 새로운 젊은이와 함께 등장하지만 영원한 대위(captain)로 머물며 스스로 기성세대가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정확히 말하면 아직도 윗세대에는 반항하면서 그렇다고 아랫세대에게 자리를 내주거나 당해주지는 않은 채 모든 것을 해결하는 잘난 주인공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곱게 받아주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사실이다… 그런 나를 위로하려는듯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또 다른 씨네필이 말했다. -탐 크루즈가 내한했잖아요. 영상이 있는데, 중년 남성 관객이 영화를 보고 막 울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한테 탐 크루즈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괜찮아요! 마음껏 우세요! 이건 바로 당신을 위한 영화에요!” 6 이 글을 마감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내게 유운성(=씨네필)은 유럽의 어느 영화 평론가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이름도 정확한 국적도 기억나지 않지만 주간지에 매주 빠짐없이 영화평을 쓰던, 그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단명한 평론가를 회고하며 다른 이가 쓴 글이라고 했다. 어느 날 글쓴이가 집에 가려는데 문제의 영화 평론가가 하얀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더란다. 마감 날이라서 원고를 쓰고 있나보다 생각하고 집에 갔는데,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없어서 다 쓰고 집에 갔나보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나온 잡지를 보니 그의 영화평이 있어야 할 자리에 그의 이름만 있고 본문이나 제목은 없이 하얗게 비워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는 원고를 펑크낸 게 아니다. 하얀 백지를 원고로 제출한 것이다. 바로 그거다! 나는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표절을 할 순 없기에 이 글을 쓴다. 내가 <탑건: 매버릭>처럼 그 영화 평론가의 속편도 아니고… 7 <탑건: 매버릭>에서 또 재미있었던 점은 영화가 이런저런 세부를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어떤 부분에서 <탑건: 매버릭>은 온전한 서사라기보다는 설정집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는데, 이를테면 젊은 파일럿들을 다루는 방식이 그렇다. 영화에서는 굳이 다루지 않겠지만 이런 인물들이니 원한다면 마음껏 2차 창작을 해보라고, 라고 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혹은 내가 출처를 잊어버린 일화를 떠올리게 하는데, 감옥에 간 사람의 이야기다.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너무 오랫동안 감옥에 있었던 탓에 매일 똑같은 농담들을 주고 받았고, 어느 순간 농담에 번호를 붙여서 매번 번거롭게 농담을 이야기하는 대신 번호를 부르는 것으로 갈음하게 되었다. “45번.” 누군가 말하자 사람들이 웃었다. “125번.” 사람들이 뒤집어졌다. 그렇게 번호들이 이어지고 깔깔 대잔치가 벌어지던 와중에 영문을 모르던 신참이 시험 삼아 말했다. “77번.” 그러자 순식간에 감방이 조용해진다. 잠시 후 누군가 헛기침을 하며 말한다. “그건 적절하지 않은데. 사과하세요.” 그러니까 <탑건: 매버릭> 또한 수많은 영화들에서 반복되어온 세부들을 번거롭게 이야기하는 대신 번호를 부르듯 간략한 설정만 제시해주고 넘어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의 나머지를 번거롭게 일일이 쓰는 대신 몇 가지 아이디어를 질문의 형태로 제시하며 영화의 예를 따를 생각이다. -비와 신세경이 주연한 한국의 항공 블록버스터 < R2B >는 세간의 평가와 (달리) <탑건>의 아류라기보다는 <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의 속편에 더 가깝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R2B>가 <탑건>과 <탑건: 매버릭>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라고 주장하는 건 가능할까? -<탑건>과 <탑건: 매버릭>과 <R2B> 중에서 비천한 영화는 무엇이고 비천하지 않은 영화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이유는? -몇몇 유튜버를 비롯한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전에 참전하겠다며 불법 출국을 감행한 사건이 <탑건: 매버릭> 같은 영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혹은 < 라이언 일병 구하기 >를 두고 “아주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그리고 스필버그의 재능이 최고도로 발휘된 그런 훌륭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정말 감동적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미국인, 미국 국적이라는 자격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한 박찬욱 감독이 <탑건: 매버릭>을 어떻게 평가할지 유추한다면? -왜 이번 화에는 JD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가? 그것은 지난 화의 마지막에 임창정의 신곡 <나는 트로트가 싫어요>의 유튜브 링크를 보낸 것에 대한 일종의 앙갚음인가? -기타 등등… 8 지금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화자는 이것을 시인해야만 한다. 원고를 마감하고 워드프로세서를 종료하는 순간을 그가 좋아한다는 사실을…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2004년 | 컬쳐캡미디어 감독: 김호준 | 각본: 유순일 | 각색: 조중훈 김요석 | 제작: 최순식 | 촬영: 서정민 | 미술: 윤도환 | 음악: 히드라 CAST 박상민: 김래원 | 서보은: 문근영 | 보은 조부: 김인문 | 상민 부: 한진희 | 상민 모: 김혜옥 | 보은 부: 송기윤 | 보은 모: 선우은숙 | 혜원: 신세경 | 동구: 류덕환 2004년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은 무엇이었을까요? < 실미도 >( 강우석 , 2003)에 이은 두 번째 ‘천만 영화’ < 태극기 휘날리며 >( 강제규 , 2004)였습니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1위였죠. 당시 충무로가 만들 수 있는, 아니 당시 충무로의 수준을 뛰어넘는 대단한 작품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2위는 어떤 영화였을까요? 놀랍게도 < 어린 신부 >였습니다. 비수기인 4월 초에 개봉한 이 영화는 전국 관객 315만 명을 동원했습니다. 권상우 를 스타덤에 올린 < 말죽거리 잔혹사 >( 유하 , 2004), 정우성 손예진 의 < 내 머리 속의 지우개 >( 이재한 , 2004), 최동훈 감독의 데뷔작 < 범죄의 재구성 >(2004), 류승완 감독의 액션 판타지 < 아라한 장풍 대작전 >(2004), 원빈 신하균 의 < 우리 형 >( 안권태 , 2004), 강동원 조한선 의 < 늑대의 유혹 >( 김태균 , 2004)... 이 모든 영화들을 <어린 신부>가 제쳤고, 당시 대한민국은 ‘국민 여동생’ 문근영 신드롬으로 들끓었습니다. <어린 신부>는 24살 대학생 상민과 16살 여고생 보은의 결혼 이야기입니다. 보은의 할아버지는 꾀병을 부려, 죽기 전에 보은이 상민과 결혼하는 걸 보고 싶다고 하죠. 그렇게 ‘어린 신부’는 탄생합니다. 촬영 공개는 바로 그 결혼식 신이었습니다. 촬영이 공개된 날은 2003년 12월 17일이었습니다. 청담동에 있는 어느 결혼식장이었는데요, 날씨가 엄청 추웠습니다. 배우들은 촬영이 없을 땐 추위를 막기 위해 두꺼운 옷을 입어야 했죠. \ 현장에서 짬이 날 때 전화 통화를 하는 문근영의 모습입니다. 당시 문근영은 실제로 극중 나이와 같은 16세였고, <어린 신부>의 리얼리티는 배우와 캐릭터의 연령대 일치에서 생겨난 셈입니다. 김래원도 캐릭터와 같은 연령대였고요. 문근영이 주로 부각되었지만, <어린 신부>가 성공할 수 있었던 토대엔 분명 김래원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있습니다. 당시 TV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로 승승장구 하던 김래원은 <어린 신부>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남자 주인공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굳히게 되죠. 신부 입장을 기다리는 문근영의 모습입니다. 영화 속에서 하객들이 “예쁘다, 정말 예쁘다”라며 감탄하던 그 장면이죠. 당시 문근영은 TV에서 영화로 옮겨 오면서 < 장화, 홍련 >( 김지운 , 2003)으로 영화배우로서 자리를 굳히던 시절이죠. 그리고 <어린 신부>가 이어집니다. 사실 <장화, 홍련>의 수연과 <어린 신부>의 보은은, 극과 극의 감정을 필요로 하는 캐릭터죠. 1년 사이에 그 극단을 오가는 건 10대 중반의 배우에겐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요, 문근영은…… 그 어려운 걸 해냅니다. 이 영화의 모든 사건은 바로 보은의 할아버지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인문 선생님의 모습입니다. 특유의 구수하면서도 정다운 연기가 이 영화에서도 관객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었죠. 이 영화에서 양가 부모 캐릭터는, 주로 TV에서 활동하시는 중견 연기자들이 맡았습니다. 상민의 아버지는 한진희 씨, 어머니는 김혜옥 씨가 맡았습니다. 곧 있으면 신혼 여행을 떠날 아들에게 아버지로서 충고를 하지만, 아들은 듣는 둥 마는 둥이네요. 보은의 엄마 역은 선우은숙 씨가 맡았습니다. 아직 어린 딸이 안쓰럽기만 한 표정입니다. 대신 상민의 엄마는 며느리가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어린 신부>는 김호준 감독의 데뷔작입니다. 일본에서 영화를 전공한 김 감독은 1990년대 초부터 충무로 연출부 생활을 했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 축제 >(1996), 이정국 감독의 < 편지 >(1997) 등을 거쳐 10여 년의 도제 시스템 끝에 자신의 첫 영화를 만들게 되었죠. 한편 카메라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서정민 촬영감독이 잡았습니다. 지난 번 < 몽정기 >( 정초신 , 20002) 포스팅 에서 자세히 설명 드렸던, 바로 그 분입니다. 촬영 당시 70세셨고, 2015년에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영화 속에서 결혼식은 보은의 수학여행 날에 치러집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보은의 결혼 사실을 모르죠. 단, ‘베프’인 혜원은 예외였는데요, 당시 14세였던 신세경이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문근영보다 어린 유일한 배우? 당시 두 사람은 같은 소속사(나무 액터스)였는데요, 지금도 그곳에 함께 있네요. 상민의 선배인 지수 역은 김보경 이 맡았습니다. < 친구 >( 곽경택 , 2001)의 진숙 역으로 떠오른 그녀는 이 영화에 특별 출연을 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양가 부모가 딸과 아들을, 며느리와 사위를, 배웅합니다. 보은 아빠 역은 탤런트 송기윤 씨가 맡았습니다. 선우은숙 씨 옆에 보은의 동생 동구 역을 맡은 류덕환이 보이네요. 실제로는 문근영보다 한 살 많은 오빠지만 영화에선 동생으로 등장했습니다. 아담한 웨딩 카. 그리고 그 안의 신혼 부부입니다. 실제 촬영 때는 아니고 차 안에서 대기하는 모습입니다. 결혼식 신에 대해, 김래원은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사실은 무거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신”이라고 말합니다. 한편 문근영은 “어떤 마음으로 연기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의외로 편하게 촬영한 신”이라고 말합니다. 호기심 많은 성격인 보은이 ‘결혼 그 자체’만 생각하고 있다는 설정이었다고 하네요.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