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X102
“이 以上 더 재미있는 劍客映畵는 없다!” < 뢰검, 번개칼 >의 포스터 맨 윗줄에 자리 잡은 단 한 줄의 영화 소개. 검객영화라는 자기 지시. 약간의 유머. 나는 이 포스터를 보자마자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가 떠올랐다. 무언가 여기에는 우리를 낭패스럽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다. 둘 사이의 서로 피할 수 없는 관계. 검객영화라는 말. 검객영화로서의 <뢰검, 번개칼>. 두 말이 서로 딱 맞게 겹쳐지지 않을 때 나는 맞지 않는 그 모서리를 생각하는 중이다. 영화를 보여주기와 설명하기. 영화를 둘러싼 이미지와 문장. 이때 저 문장이 호금전의 < 용문의 결투 >를 설명할 때와 지금 임권택 의 <뢰검, 번개칼>에 가서 달라붙었을 때의 차이를 생각하고 있다. 나는 단지 이쪽과 저쪽의 우열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했다면 당신은 나의 인용을 오해한 것이다. 왜 여기서는 저 말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일까. 말하자면 저 문장의 세계를 이 영화가 담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여기 따라올 때 영화는 저 세계에 관한 만족할 만한 주석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불만족스러운 두 개의 텍스트. 검객영화라는 지시. 검객영화라는 (만드는 쪽과 보는 쪽 사이의) 약속. 영화에서 약속의 세계 안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무엇일까. 하나는 문법의 질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영화는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이때 나는 크리스티앙 메츠가 아니라 파졸리니의 영화 언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파졸리니는 이미지란 글쓰기라고 생각했다. 그런 다음 영화는 랑그이고 영화들은 파롤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리얼리티와 영화 사이의 관계에 대한 긴 논의가 시작된다. 파졸리니는 운이 나쁘게 이탈리안 네오리얼리즘의 순간에 도착했고, 그는 자신의 이론을 경유하여 자기 자신을 자기의 시대로부터 소외시켰다. 그는 롯셀리니의 난처한 영화와 마주쳐야만 했다. 말하자면 < 이탈리아 여행 >이라는 수수께끼. 나는 이 문제를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 생각이다. 리얼리티와 영화라는 랑그. 임권택 의 기묘한 리얼리티. 이상하리만큼 잘 다루어지지 않은 < 티켓 >. 역사(들). 무엇보다도 < 길소뜸 >. 파롤로서의 영화 안에 상주하고 있는 랑그의 억압적 제도들. 다른 하나는 장르의 세상을 방문하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건드리려는 것은 이 두 번째 방문이다. 장르는 영화에서 환경에 대해서 논의를 하려는 것이다. 환경? 그렇다. 어떤 장르 안으로 들어오면 갑자기 영화가 그 장르의 약속에 따라서 자기의 기호들의 질료가 각자의 구실과 관계의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코미디 영화에서 망치로 사람의 머리를 치는 것과 공포영화에서 톱으로 머리를 자르는 것 사이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된다. 둘은 거의 동일한 행위이지만 그 둘은 완전히 다른 반응을 끌어낸다. 채플린이 절벽에 매달리는 것은 운명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황금광 시대 >) 릴리안 기쉬가 얼음 조각 위에 쓰러진 채 강물 위로 떠내려가는 것은(<동쪽으로 가는 길>) 절망적인 사건이 된다. 말하자면 영화적 환경. 이때 이 환경 속에서 지질학적 운동은 각자의 장르 안에서 서로 다른 세계의 속도와 질량을 갖게 될 것이다. 무엇이 무엇과 더불어 기능하는가. 주인공이 무엇과 연결되어 활동하기 시작하는가. 이를테면 라이플. 마니 파버는 서부극이란 결국 라이플의 운동이라고 말했다. 하워드 혹스의 < 리오 브라보 >. 악당이 무엇과 접속하여 자기의 힘을 누리기 시작하는가. 프릿츠 랑의 <빅 히트>. 뜨거운 커피. 사건들 사이에서 무엇을 통과시키고 어떻게 가로막는가. 두기봉의 < 익사일 >의 첫 시퀀스를 떠올려보라. 이층으로 이루어진 집. 둘로 나누어진 등장인물들. 그들의 손에 들린 총. 그들이 따라 올라가는 계단. 아무도 없는 것만 같은 거리. 순찰중인 경찰들은 정확히 그 순간 잘못된 장소에 도착했다. 새로운 배치. 그때 무엇이 어떻게 귀속되느냐라는 문제와 만나게 된다. 종종 영화는 세계의 이미지라고 말한다. 나는 영화가 세계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영화는 세계의 가능성을 거기에 덧붙이면서 그렇게 그 자신을 증식해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부극. 영화가 발명한 세계. 그런 다음 차례로 이 세계는 확장되어 나아갔다. 코미디(들). 멜로드라마. 갱스터 영화. 필름느와르. 사극들. 뮤지컬, SF영화. 공포영화(들). 그리고 수많은 변종들. 세상의 표면 아래 있었을 가능성들. 이때 영화는 세계와 새로운 약속을 맺어나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영화와 세계 사이의 약속을 종종 이중분절 시켜나갔다. 첫 번째 분절. 환경의 내재성. 두 번째 분절. 기호의 약속. 그때마다 새로운 방법의 약속이 나타났고, 그 안에서 새로운 분자들이 활동을 개시하였다. 분자들? 그렇다. 기호들 사이에 스며들어간 새로운 힘. 끊임없이 안정된 구조는 다시 정의되었고, 그런 다음 새로운 환경이 만들어졌다. 일단 이 환경 안으로 들어오기로 했으면 이 세계의 약속을 먼저 배워야 한다. 이때 이 배움은 셋이 함께 배워나가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먼저 주인공. 그에게 요구되는 이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 이 세계 안의 친족관계.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가, 라는 문제. 그런 다음 그 세계 안으로 들어온 감독. 차라리 여기서는 (작가가 아닌 말 그대로) 이 세계를 쓰고 있는 한 사람의 저자(un ecrivain, pas un auteur)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는 이 세계의 약속의 문법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아니, 차라리 얼마나 믿는가. 이때 절반은 자기 자신 속에 머물러 있다 할지라도 절반은 이 세계를 따라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있는 1969년의 영화관객들. 그들은 아직 호금전의 < 협녀 >, 장철의 < 복수 >, 1970년대 홍콩 골든 하베스트의 무술 영화들. 서극의 < 촉산 >, 왕가위의 < 동사서독 >, 리안의 < 와호장룡 >, 후 샤오시엔의 <섭은낭>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는 당신이 < 뢰검, 번개칼 >을 지금 본다면 1969년 ‘이후’의 영화들의 경험을 먼저 중단시켜야 한다고 충고할 생각이다. 지금 우리는 시간의 마모를 초월하는 예술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대신 정반대로 왜 어떤 영화는 시간의 맥락 안에서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설명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동시대를 경유하는 상상의 공동체. 이때 그들은 서로에게서 서로를 배워야 한다. 세 개의 배움의 선. 이때 이 배움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이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부분적으로만 배우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모두 다 배운다 할지라도 그저 순순히 따르기만 한다면 금방 이 세계는 진부해질 것이다. 종종 이 과정은 환상을 부추길 수도 있지만 환멸을 안겨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 이 세계는 자기를 구성하는 내부 환경과 이 환경을 떠받치고 있는 외부 환경 사이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종종 상대적인 경계를 형성하거나 예기치 않았던 원인 때문에 낯설고 불편한 약속에 따라 새롭게 세워지거나 종종 중심이 옮겨가기도 한다. <요검>(1971), <월하의 검>(1970) 누군가는 이 약속을 코드라고 지칭하고 싶을 것이다. 나는 의도적으로 그 단어를 피하고 있다. 코드라는 말에는 어딘지 모르게 더 이상의 활동이 중단된 인상을 포함하고 있다. 약속의 형식들. 형식의 약속들. 이 둘 사이의 끊임없는 교환, 이때 나는 먼저 < 뢰검, 번개칼 >이 무협(武俠)영화라고 자기를 호명하는 대신 검객영화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무협영화와 검객영화. 검(劍)이라는 말. 협객과 검객. 나는 차례대로 목록을 정리하다 말고 잠시 멈춰 서서 세 편의 영화제목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순서대로 <뢰검, 번개칼>과 < 비검 >, 그리고 < 요검 >. 검(劍)이라는 단어의 반복. 이 세 편은 마치 삼부작처럼 보이지만 (자료만으로는) 서로 아무 관계가 없다. 주연 배우도 전혀 다르며 세 편의 영화를 제작한 영화사도 다르다. <뢰검, 번개칼>과 <비검>은 극동필름에서 찍었지만 <요검>은 덕영필름에서 찍었다. 다만 유일한 공통점은 이 세 편의 영화가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제목으로만 따라간다면 <뢰검, 번개칼> 직후에 < 월하의 검 >이 한편 더 있다. 나는 이 영화를 셈에서 제외하였다. 이 영화는 조선시대가 무대이다. 같은 이유로 제외한 1967년의 영화 < 풍운의 검객 >. 문득 떠올린 이 공통점은 내게 이상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임권택 은 사극, 혹은 시대극을 찍을 때 언제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였다. 그런데 이 세 편은 모두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개에 따르면 <비검>과 <요검>은 백제를 무대로 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 세 편의 영화를 비교할 기회가 우리에게는 없다. 이 세 편 중 우리가 볼 수 있는 영화는 <뢰검, 번개칼>뿐이다. 한편 더. 제목으로부터는 떨어져 있지만 1967년에 만든 < 망향천리 >도 줄거리의 소개에 따르면 백제와 신라 사이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도 지금은 우리가 볼 수 없다. 나는 여기서 이 세 편, 그 중에서도 <뢰검, 번개칼>만을 대상으로 할 생각이다. 서기 668년 나당 연합군에 의하여 고구려가 멸망할 때까지의 낯선 환경. 역사의 인과관계로부터 희미해진 시간. 말하자면 검객영화가 성립될 수 있는 장소. 나는 먼저 무협영화를 생각해보고 싶다. 먼저 도착한 것은 무협영화가 아니라 무협소설이었다. 그때는 무협소설이라는 이름대신 무협지(武俠誌)라고 불렀다. 1961년 김광주가 대만의 무협지 <검해고홍>을 번역한 <정협지>가 경향신문에 처음 연재되었다. 그런 다음 1965년 대만작가인 와룡생의 <군협지>와 <무유지>가 번역되었다. 이 두 권의 소설은 무협소설 독자들에게 고전이 되었다. 하지만 무협지가 대중적으로 일종의 서브 컬처가 된 것은 1968년 만화대본소를 중심으로 대여방식을 통해 널리 퍼지면서 시작되었다. 문학비평은 무협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 책들은 서점에서 구할 수가 없었다. 무협지가 지상으로 올라오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 김용의 <영웅문>이 서점에 판매의 유통구조로 등장하게 된 다음의 일이다. 무협지는 장안의 독자들의 소소한 소일거리이기는 했지만 아무도 이 책들을 사서 자신의 서가에 소장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사려면 전집으로 사야했다) 대부분 시멘트 종이라고 불리는 싸구려 제본을 했으며, 그 당시의 모든 무협지는 (상당수가 국내 출판사가 무명의 작가들을 고용해서 날림으로 쓴 다음) 거의 예외 없이 와룡생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면서 원본과 진본의 구별조차 애매해졌다. 1966년, 호금전의 무협영화 < 방랑의 결투 >가 개봉된 다음 < 용문의 결투 >와 장철의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부천영화제에서는 <독비도>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가 홍콩 무협영화의 커다란 성공을 가져왔다. 하지만 이 성공은 매우 제한적인 것이었다. 약간의 기이한 상황. 차라리 풍속이라고나 할까. 이때 당신이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무협영화를 ‘보는’ 영화관객과 ‘보지 않는’ 관객들 사이에서 어떤 경계선 같은 것이 세워졌다. 이 경계선은 제법 오래 이어졌다. 무협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내내 이 장르를 탐닉했고, 그렇지 않은 관객들은 이 장르 자체에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혐오하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황당무계하다는 것이었다. 당신은 반문하고 싶을 것이다. 버스터 키튼의 영화는 황당무계하지 않은가요. 서부극의 수많은 상황 속의 액션장면들. 또는 뮤지컬의 갑작스러운 안무들. 무엇보다도 힛치콕의 < 새 >. 하지만 1969년을 생각해야 한다. 관객들은 무협영화의 상상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않았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손에서 장풍이 나오며 그저 칼을 한번 휘둘렀을 뿐인데 십 수명이 쓰러지는 장면을 보고 누군가는 피가 끓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워보였다. 이건 영화를 보는 쪽과 만드는 쪽 양쪽 모두에서 심지어 충무로에서도 많은 영화 스태프들은 이 장르를 ‘으악새 영화’라고 부르면서(등장인물들이 ‘으악’하고 죽은 장면들이 줄을 지어 등장한다고 해서 경멸조로 붙인 이름이다) 이 영화의 제작에 참여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이 황당무계한 거부 반응의 이면에는 무언가 무협영화가 대중과 영화가 맺은 약속을 저버렸다는 불쾌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 무협영화는 십대 청소년들, 혹은 아직 미숙한 어른들, 그 중에서도 남자들의 문화라고 받아들여졌다. 반대로 그들은 어른들이 세워놓은 사회적 약속의 이면을 들여다보았다고 생각했다. 다소 소박한 사회심리학적인 의미에서 무협영화를 1969년에는 외설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논점을 벗어나면 안 된다. 나는 지금 < 뢰검, 번개칼 >을 만든 임권택 의 상황을 생각하는 중이다. 도식적으로만 말하면 1969년은 영화가 환상의 자리에 (미처 배우지 못한 욕망에게) 양보한 어떤 지연 속에서 망쳐버린 채 살아있는 현실이라면 무협영화는 영화에 대한 도착적인 형상을 한 이면의 모습으로 분열되었다. 무협영화는 자신이 환상이라는 것을 영화보다 더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때 이 적나라한 노출에는 좀 우스꽝스럽지만 아직 기술적으로 미숙한 영화가 액션 속에서 영화 그 자체의 기계적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떠올려야 한다. 배우들을 끌어당기는 피아노 줄, 손바닥에서 나가는 장풍 뒤에 숨겨진 환풍기, 아주 초보적인 특수촬영, 그대로 약점이 노출된 스크린 프로세스, 그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활동하는 배우들. 그리고 마찬가지로 마치 그런 것을 눈치조차 채지 못한 듯이 시침 뚝 떼고 보고 있는 관객들. 무협영화의 약속에는 기괴하지만 일종의 크리스마스와도 같은 상황이 존재한다. 누구나 산타 할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사실을 발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날을 망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도 무협영화의 화면에서 벌어지는 이미지가 진짜라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도 그걸 내세워 빈정거리지는 않는다. 응, 나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그래도 여기서는 할 수 없잖아, 그러니 해도 괜찮아, 그리고 해야만 해. 이건 무협영화잖아. 무협영화의 약속에는 어딘가 냉소적인 상상이 관객의 공동체를 지배하고 있다. 이때 이 냉소적인 상상은 만드는 쪽도 동시에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1969년, 이 약속의 세계를 경유하는 임권택. KMDb 에는 < 뢰검, 번개칼 >의 줄거리가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뢰검이라는 보검을 둘러싸고 검객들 사이에 치열한 칼싸움이 벌어진다. 그들 검객 중 안길원이 뢰검의 행방을 찾아 적진으로 혼자서 돌진한다. 그리하여 적장들을 섬멸하고 뢰검을 찾은 다음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떠난다” (http://www.kmdb.or.kr/movie/md_basic.asp?nation=K&p_dataid=01976) 먼저 이 소개를 빨리 잊을 것. 줄거리를 쓴 사람은 이 영화를 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자료도 찾아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크게 웃을 수밖에 없는 지적. 아쉽게도 이 영화에는 ‘뢰검’이라는 보검이 나오지 않는다. 이 줄거리는 영화와 아무 상관이 없다. 영화 <뢰검, 번개칼>은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이다. 아마도 영화는 소설이 출간되자마자 제작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 과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소설의 출간 시기와 영화의 제작년도가 같은 1969년인 것으로 단지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고향하와 성걸 두 작가가 함께 집필한 <뢰검(雷劍)>은 다섯 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권마다 서로 다른 부제가 달려있다. 당시의 소개를 보면 대만 무협지가 번역되던 시기에 ‘한국 작가가 쓴 최초의 무협소설’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아마도) 창작 무협소설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두들겼던 것 같다. 이 다섯 권의 소설은 지금도 (짝을 모두 갖추지 못한 채) 고서희귀본 호사가들 사이에서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이 다섯 권의 소설은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영화 <뢰검, 번개칼>은 이 소설의 첫 번째 권인 ‘풍운의 제국’만을 영화로 각색하였다. 나는 이 소설이 연작으로 기획되었는지, 아니면 어떤 연유에서 첫 번째 권만이 영화화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또한 원작 소설을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소설과 영화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영화에 한정해서만 이야기 할 수밖에 없다. 우선 낯선 환경. <뢰검>은 중국의 중원을 무대로 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니 당연히 무협지에서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소림사. 무당파, 화산파, 곤륜파, 아미파, 점창파, 청성파, 공동파, 종남파, 그리고 거지패들로 이루어진 개방이 모두 이야기의 장치에서 제외되었다. 혹은 약속의 바깥에서 진행된다. 무협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국가 안의 국가이다. 이 말을 유심히 보아주기 바란다. 두 개의 국가 사이의 연합과 분리. 선택받은 자들만이 이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국가 바깥의 국가에 머물러야만 한다. 국가 안의 보이지 않는 국가. 무협의 기호를 배운 자들만이 이 국가 안에 들어올 수 있다. 물론 이 기호를 아는 자들이 외부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 나라를 찾아오는 다른 나라의 문화는 이질적이거나 종종 외부적인 존재들로 취급당한다. 이를테면 서역인들. 낯선 상인들. 적대적인 조정의 관료들. <뢰검>은 이 국가 바깥의 이야기이다. 아니, 차라리 변방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중원의 그림자가 거기 부분적으로 머물러 있는 것을 본다. < 뢰검, 번개칼 >의 등장인물들은 장풍, 검법. 경공술, 때로는 은신술을 어디서 배운 것일까. 이렇게도 물어볼 수 있다. 왜 마찬가지로 삼국시대라는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서 사는 다른 장르의 다른 주인공들은 이 방법을 익히지 못한 것일까.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무협이라는 환경. 그러나 <뢰검, 번개칼> 속에서는 너무 희미해서 거의 보이지 않거나 무언가 다른 것과 서로 겹치고 더해졌다. 나는 둘 사이에 어떤 위계를 설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뢰검>의 두 작가 자신에 따르면 대만 무협지를 옮기는 대신 일본의 닌자(忍者) 무협과 중국의 무협기담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으며 의도적으로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나는 이들이 참고한 소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 대신 나는 여기서 다소 곡예를 부리듯이 두세 가지 추론을 하고 싶다. 임권택 은 < 뢰검, 번개칼 >을 각색하면서 홍콩 쇼브라더즈 무협영화를 빌려오는 대신 그 자신이 어린 시절 고향에서 천막치고 보았던 일본 시대활극 영화들을 떠올렸음에 틀림없다. 임권택은 호금전의 < 방랑의 결투 >와 장철의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를 보았다. 내가 질문을 하자 그 두 편의 영화를 “매우 흥미진진하게 보았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하지만 그 이후에 나온 영화들은 황당무계해서 금방 관심을 잃었다”고 덧붙였다. 이 활극영화의 시대 ‘이후’ 임권택은 사무라이들의 활극 장면을 1990년에 한 번 더 찍었다. 그 장면은 < 장군의 아들 >에서 김두한이 극장에 들어가서 영화를 보는 장면에 슬그머니 등장한다. 이 액션장면은 다른 영화에서 빌려온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장군의 아들>의 한 장면을 위해서 그 자신이 연출한 씬이다. 이 장면과 <뢰검, 번개칼>의 검술 액션장면을 연결시켜 보면 이상할 정도로 둘 사이에서 시간의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유사하게 느껴진다. 이를테면 <뢰검, 번개칼>에서 닌자 복장을 한 신라의 검객들이 도풍으로부터 버림받고 혼자 남겨진 채 성녀를 둘러싸고 벌이는 활극장면. 이때 인물들을 펼치고 좁히면서 옮겨가는 공간적인 이동의 동선. 나는 임권택이 검술 활극장면에 대해서 하나의 모델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본 영화가 무슨 영화인지 몇 차례를 물어보았지만 유감스럽게 그 제목을 들을 수 없었다. 틀림없이 마키노 쇼조(와 마사히로)와 이토 다이스케로 시작한 (일본 영화사의) ‘피의 살진(殺陣)’ 1925년으로 시작된 다음 1930년대에 절정에 이르렀던 활극중의 한편일 텐데, 서울에서 내가 볼 수 있는 이 시기의 일본 시대극은 너무 제한적이어서 거의 추론할 수가 없다. 아마도, 아마도 내 추론이 틀리지 않다면 임권택은 홍콩 쇼 브라더즈 무협영화를 거의 참고할 수 없었을 것이다. 1969년은 그 영화들을 충분히 볼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다. 두 편의 영화 <방랑의 결투>와 < 용문의 결투 >가 개봉된 다음 한동안 호금전의 영화는 국내에서 볼 수 없었다. (한참 뒤에 < 충열도 >가 개봉하였고, < 산중전기 >는 절반 이상이 재편집되어 개봉하였다) 장철은 < 돌아온 외팔이 > 혹은 < 심야의 결투 >에서부터 그의 무술 동작지도가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 임권택 스스로 종종 언급하는 영화적 ‘스승’ 정창화가 홍콩에서 만든 무술영화들이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세 편의 ‘검’에 관한 제목을 단 영화들이 만들어진 ‘이후’의 일이다. 그리고 그 영화들은 임권택과 아무 관계가 없다. 아마도 임권택은 그 영화들에 어떤 호기심도, 어떤 호의도, 어떤 배움도 가지지 않은 것 같다. 한 가지 더. 임권택은 무협소설에 익숙한 세대가 아니다. 1961년 경향신문에 첫 번째 무협소설 <정협지>가 연재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첫 번째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내 경험으로 어른들은 그때 만화 대여점에 오지 않았다. 이곳 문턱을 들락날락 거리던 독자들은 대부분 중고등학교 청소년 사내아이들이거나 아니면 백수처럼 보이는 남자 어른들이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만화대여점들은 낮에 운영되었고 해가 지면 대부분 일찍 문을 닫았다. 어두컴컴한 실내는 책을 읽기에 적절치 않았고, 그때는 형광등의 수명이 매우 짧았다. 물론 빌려 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다섯 권이 한 질로 이루어진 무협지는 들고 다니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아니다. 게다가 이 소설은 하루, 혹은 길어야 이틀 단위로만 대여하였다. 지방촬영을 다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무협지를 빌려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아마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때 임권택은 너무 많은 영화를 찍었고, 게다가 그가 이제까지 찍은 영화들은 무협소설의 세계와 아무 관계가 없었다. 다시 한 번 환기하지만 지금은 1969년이다. 검객들의 세계. 새로운 약속의 문법. < 뢰검, 번개칼 >은 이제 막 삼국통일의 기운이 감돌고 있는 서기 642년 전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연개소문이 영류왕과 그를 뒤따르는 온건파 중앙귀족들을 참하고 권력을 장악하기 직전, 혹은 진행 중인 시대. 이때 연개소문이 세운 또 다른 계획 중의 하나는 삼국통일을 막기 위해 신라의 김유신을 암살하려는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말이 안 된다. 그 당시의 삼국시대는 당나라와 한반도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힘의 관계이며, 이 이야기는 사후적으로 신라가 당나라에 협력하여 삼국을 통일할 것이라는 역사적 결과를 귀납적으로 재구성한 다음 설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이야기에서 즉각적으로 이상하게 여긴 것은 이 설정의 역사적 당위성에 대해서 <뢰검, 번개칼>은 단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권택 은 <뢰검, 번개칼> 이전에 만들어진 조선시대를 무대로 한 사극영화에서 이런 설정을 한 적이 없다. 이를테면 사도세자와 22대 정조에 관한 궁중사극인 네 번째 영화, 1963년에 만든 < 망부석 >을 떠올려보라. 그는 역사적 배경을 지닌 사건을 끌어들이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다. 혹은 1973년, 그러니까 < 잡초 >이후에 만들어진 사극영화들에서 임권택은 과도할 정도로 역사적인 연표에 대해서 정확함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그런 문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왜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일까. 나는 이상하게도 임권택이 <뢰검, 번개칼>을 환상문학의 일부 같은 방식으로 취급한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물론 나는 이 말을 그저 느슨하게 인상에 한정지어서만 할 생각이다. 여기서 임권택이 환상의 진짜다움을 끌어낸 다음 과장의 경이와 수수께끼와 같은 괴기에 대해서 시적인 마법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여기에는 세상의 내용과 표현 사이의 구분이 거의 사라진 것 같은 어떤 붕괴의 순간이 차례로 찾아온다. 범주가 사라진 채, 여기서 저기로, 혹은 다시 저기서 여기로 넘어오는 과정에 어떤 문턱도 없는 것 같은 카오스. 스승 도풍과 주룡 성녀와 도풍 버들녀와 주룡 고구려의 무술을 전수하고 있는 고명한 스승은 두 제자를 부른다. 그런 다음 자신의 딸 성녀와 약혼한 제자 도풍에게 연개소문의 명이라는 말을 전하며 신라에 가서 김유신을 암살하고 돌아온 다음 결혼을 하라고 명한다. 두 개의 명. 국가와 스승의 명. 그러나 도풍은 신라에 간 다음 국가와 스승을 배신하고 신라에 투항한다. 스승은 두 번째 제자 주룡을 다시 보낸다. 한편 성녀는 자신과 스승, 국가를 배신한 약혼자 도풍을 죽이기 위해 아버지 몰래 길을 떠나지만 도풍을 만나서 차마 죽이지 못한다. 신라에 잠입하던 주룡은 우연히 주막에서 무술이 뛰어난 버들녀를 만나게 되고 그녀는 주룡을 돕는다. 마침내 주룡은 김유신의 처소에까지 잠입하지만 김유신이 함께 천하를 통일해보자는 제안을 하자 그를 죽이는 대신 그를 배신한 신라의 상인 최현을 고발하고 그 자리를 떠난다. 떠나기 전 주룡은 도풍과 마지막 대결을 한다. 자, 이 마지막 대목을 잠시 멈춘 다음 읽을 것. 도풍은 갑자기 나타난 약혼녀 성녀의 손에 죽고, 이제까지 딸과 제자의 뒤를 쫓으며 음으로 양으로 돕던 스승은 자기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그녀의 죽음 앞에서 그냥 떠난다. 주룡은 버들녀와 함께 떠난다. 어디로? 그건 알 수 없다. 그가 심산유곡으로 은퇴를 하는지, 아니면 이제 남은 유일한 나라 백제로 가는지 그건 영화 ‘이후’의 일이다. 어디까지는 대중 무협지의 약속을 따르는 척 하면서 어디서부터는 완전히 벗어나기도 하는 이 줄거리 앞에서 나는 어디서부터가 각색이며 어디까지가 원작에 따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를테면 마지막 대결의 순간, 주룡이 도풍을 처형하는 대신 그의 약혼녀인 성녀가 그를 칼로 찔러 벌하는 것은 감정의 과도하리만큼 기형적인 행동처럼 보인다. 게다가 도풍이 자신의 임무가 무가치하다고 성녀에게 말하면서 신라를 떠나 아무도 살지 않는 곳에 가서 함께 살자고 말한 다음 그걸 실행에 옮길 때 이미 도풍과 주룡의 대결은 무의미해진 다음이다. 이미 사회적으로 상징적 네트워크 안에서 자살을 선택한 도풍을 구태여 죽일 어떤 필요가 있었던 것일까. 좀 더 결정적인 사회적 등록의 취소. 딸 성녀를 만나서 아버지는 변장을 벗은 다음 자신이 연개소문의 거짓말에 속아서 배신당했음을 알릴 때 주룡과 도풍의 임무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이다. 임권택 은 이 줄거리를 문제 삼지도 않을뿐더러 등장인물들의 관계 속에서 이 아이러니를 신중하게 다루지도 않는다. 그 어느 장면보다도 김유신을 대면하는 결정적인 순간, 그러니까 이 가상의 이야기가 역사의 중심에 들어서서 마치 실재를 베일 듯한 순간과 마주했을 때조차 임권택은 더 밀고 나아갈 생각이 없다. 역사의 저 멀리서 온 이야기가 마침내 역사 안에 들어선 순간, 어쩌면 누군가는 장이모우의 < 영웅 >에서 무영이 우여곡절 끝에 진시황을 눈앞에 두고 칼을 거두고 포기해버리는 결정을 떠올리면서, 두 이야기의 유사성을 지적하고 싶을 지도 모른다. 장이모우는, 거기에 동의의 여부와 상관없이, 역사를 느껴본다.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거기서 시간을 끈다. 음미의 시간. 교차점. 현재로 소환된 과거. 물론 역사는 집행될 것이다. 그러나 잠시만, 아주 잠시만이라도, 할 수 있는 한 잠시라도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볼 때, 우리는 역사가 택한 입장 앞에 선 우리를 생각하게 된다. 두 개의 우리. 임권택은 여기서 역사가 미처 자기를 눈치 채기를 두려워하기라도 하듯이 잠시 동안 마주본 다음 재빨리 빠져나온다. 주룡은 김유신을 내리칠 수 있었고, 또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하지 않는다. 이때 그가 하지 않는 이유는 쇼트의 질서 안에서 잘 설명되지 않는다. 마치 영화 바깥의 그 무언가에 대한 복종처럼, 마치 사후적으로 김유신이 역사 안에서 여전히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오래된 타임머신의 이론처럼, 시간의 질서를 건드리는 순간 현재가 카오스가 될 것을 두려워하기라도 하듯이, 그는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그 자리를 떠난다. 이야기(histoire)가 역사(Histoire) 앞에 서서 느끼는 자기의 왜소함. < 뢰검, 번개칼 >의, 어쩌면 가장 의미심장한, 이 장면에서 나는 역사가 어떻게 임권택을 바라보는지를 쳐다본다. 반복. 역사가 어떻게 임권택을 바라보는지를 쳐다본다. 나는 역사와 임권택을 반대로 쓴 것이 아니다. 한밤중. 유령들이 출몰하는 시간. 그때 영화는 주룡을 따라 김유신을 찾아간다. 거의 마주보는 듯한 느낌이 없는 시선의 쇼트 사이의 교환. 주룡이 자신을 죽이러 온 자객 앞에서 두려움이 없는가, 라고 묻자 김유신은 인명은 하늘에 달렸다고 말한 다음 오히려 등을 내보인다. 이때 김유신과의 절대적인 비대칭성 앞에 세워진 불균형 앞에서 임권택은 재빨리 뒷걸음질 쳐서 연기처럼 사라진다. 나는 지금 주룡의 자리에 임권택이라고 썼다. 여기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김유신이 아니라 그를 죽이러 온 주룡의 자리에 선 임권택이다. 이때 임권택이 물러선 세계는 역사의 그림자가 거의 희미하게 진 채 기계적으로 약속이 작동하는 검객영화의 (상상적) 국가이다. 나는 이 두려움을 임권택의 영화에서 형식을 달리하여, 매번 다른 심급으로, 수십 겹으로 쌓이고 또 다시 쌓이는 지층의 결을 따라가며, 거의 문자 그대로의 역사 앞에 다가가거나, 반대로 역사 안에서 종종 교란당한 것만 같은 사건들의 와중에서, 때로 인물을 따라갈 때조차, 내내 느껴본다. <뢰검, 번개칼>은 임권택의 영화중에서 어떤 자리에서 질문을 던져도 자기가 서 있는 자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채 거의 어떤 상호작용도 멈춰버린 영화이다. 그때 내게 신기하게 보이는 것은 임권택의 모든 영화들 중에서 영화 안의 모든 기호들의 능력과 사용의 역할과 방법의 감각들이 가장 덜 조직적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이다. 삶의 강도와 영화의 기호들 사이의 힘의 관계. 나는 <뢰검, 번개칼>을 보면서 임권택의 영화가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세상 안의 서로 다른 삶의 기호들과 얽혀들고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반대로 이 영화가 완전히 자기의 세계로 돌아와 액션 활극장면을 펼칠 때 나는 임권택 이 무언가 자기의 향수의 환상을 즐기고 있다는 기분을 멈출 수 없다. 이 영화에는 두 개의 극단이 있다. 하나는 역사의 실재에 다가가는 척 했다가 재빨리 빠져나온 다음 할 수 있는 한 그 가까이 다가가지 않기 위해서 영화 사방에 만들어놓은 블랙홀 안으로 뛰어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만들어진 약속 안에서 그 약속 자체를 종종 기괴하게 보일 정도로 소박하게 쳐다보는 것이다. 어떤 각도에서 다가가도 < 뢰검, 번개칼 >은 진지한 구석을 찾을 수 없는 영화이다. 나는 이 장르 자체가 진지한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믿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호금전의 < 협녀 >. 하지만 <뢰검, 번개칼>에서 아이러니나 유머를 맛보려는 의도도 없다. 반대로 이 영화는 자기가 다루려는 이야기를 무언가 신비롭게 믿으려는 태도가 어슴푸레 감돈다. 말하자면 여기에는 이야기를 믿으려 한다기보다는 자기가 이미 본 장면에 대한 믿음이 있다. 이미 그 장면은 존재했고, 그러므로 그 장면을 다시 재현한다는 기분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향수가 거기서 배어나온다. 당신이 이것을 기분의 비평이라고 불러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기분을 좀 더 섬세하게 다루고 싶다. <뢰검, 번개칼>이 기술적으로는 유치하지만 반대로 그 소박함을 하나의 원장면(Urszene)으로 설정하면 마치 영화가 자기의 장치를 꺼내들었을 때 그것 자체를 믿을 수 있다는 향수의 시선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테면 가장 아름다운 예.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의 <안젤리카의 이상한 경우>에서의 그 놀라운 상공비행의 장면. 이때 물론 이 성립의 바탕에는 멜리에스가 있다. <뢰검, 번개칼>의 바탕에는 1930년대 일본 시대극의 활극장면이 있다. 이 영화는 기술적으로만 본다면 마치 무성영화 시대의 관객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만 같은 장면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장소의 재빠른 이동을 보여주기 위한 점프 컷. 아니, 차라리 그냥 흐르는 공간 안의 시간의 장면들을 잘라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하나의 쇼트 안의 가시적인 데쿠파주. 마치 가위로 오려낸 것만 같은 인물을 배경 위에 올려놓고 진행되는 스크린 프로세스라는 경공술. 나는 이 장면들을 오마주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어떤 존경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자기가 본 대중영화들의 감흥을 개인적인 세계 안의 새로운 예술품으로 끌어올리려는 그 어떤 시도도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아예 그런 시도 자체를 믿지 않는다. 좀 더 가혹하게 말할 수도 있다. 임권택은 자기가 다루는 대상을 그런 소멸 속에서 다시 부활시켜 찬미하고 그것을 새로운 단계의 감흥으로 고양시킬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곤 조금도 믿지 않는다. 그 대신 여기에는 이미 자기가 본 것에로 자기가 되돌아 갈 수 없다는 체념의 전망이 향수 속에서 끝나지 않을 것처럼 지속된다. 무엇이 무엇을 전제하는가. 그때 전제는 무엇을 허락하는가. 나는 도풍과 주룡의 대결 장면의 기괴한 반복을 보았을 때 정말 이상해서 처음에는 내가 무얼 본거지, 라는 일시적인 중단의 자리에 머무는 것 같은 착시에 빠졌다. 이 대결은 두 번 되풀이 된다. 두 번 되풀이 된다는 자체가 이상한 것은 아니다. 처음 도풍과 주룡이 서로 대결을 했을 때 나는 전체의 균형 속에서 좀 이르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아직 영화는 40분이 남았고, 이 약속 안에서 도풍의 패배는 예정된 것이며, 도풍이 죽고 나면 사실상 더 할 이야기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따분하게 이 순간을 해결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도풍이 승리한 다음 다시 두 사람의 대결을 준비하는 것이다. 약속의 게으른 관습. 그런데 < 뢰검, 번개칼 >에서 이 첫 번째 대결은 이상한 방식으로 중단된다. 도풍의 편에서 주룡을 생포하기 위해 대결의 장소를 습격한 신라 닌자 입운과 그의 부하들이 주룡의 부하들을 몰살한 다음 홀홀단신의 주룡을 거의 포위 했음에도 불구하고 도풍은 별다른 이유 없이, 마치 주룡의 편에서 그의 사정을 위해서 행동하기라도 하듯, 그저 간단하게, 오늘은 여기서 멈추지, 라고 한 다음 그냥 그 자리를 떠난다. 주룡도 더 이상 대결할 의사가 없다는 듯 도풍이 떠나는 것을 수수방관한다. 둘 중 누가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니며, 그 두 사람이 대결을 중단해야 할 어떤 이유가 생겨난 것도 아니다. 나는 어리둥절하게 이 장면을 지나쳤다. 그런 다음 더 이상하게도 도풍은 이제 더 이상 신라를 위해 충성을 바칠 이유가 없다는 듯 그의 약혼녀(이자 스승의 딸인) 성녀와 이곳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약간의 우여곡절. 혼자 남겨진 성녀 앞에 나타난 스승은 연개소문이 자기를 속였다고 탄식한다. 이제 주룡과 도풍이 대결해야 할 어떤 이유도 없어진 셈이다. 그런데 떠나가는 도풍 앞에 주룡이 나타나서 마지막 대결을 청한다. 이때 이 두 번째 대결은 마치 첫 번째 대결이 다시 반복되기라도 하듯이 거의 비슷한 풍경을 지닌 장소에서 반복된다. (그러나 정확하게 같은 장소는 아니다) 이때 이 반복은 마치 이 두 번의 대결 사이의 이야기를 무효화 시키는 것처럼, 말하자면 두 개의 씬 사이의 수많웰오潔薩綬?간단하게 접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혹은 좀 더 인상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앞의 장면이 그대로 다시 한 번 반복되는 기묘한 기시감을 안겨준다. 물론 결정적으로 이 두 개의 장면에서 주룡과 도풍이 입은 의상은 정반대로 첫 번째는 둘 다 검은 흑색 옷을 입었고, 두 번째에서 고용은 흰색 백의를 주룡은 노란색 황의를 입었다. 여기서 즉각적으로 먼저 이상하게 여긴 것. 왜 도풍과 주룡 이 두 사람의 옷을 매번 서로 반대의 색을 선택하는 대신 서로 동일하거나 유사한 의상을 입혔냐는 것이다. 첫 번째 의문. 장르의 아이코노그래피. 말하자면 이상할 정도로 여기에는 선악의 구분이 없다. 게다가 악의 편에 선 도풍이 마지막에 흰 색 옷을 입은 것은 더 이상한 선택이다. 두 번째 의문. 미장센의 경제학. 이 의상은 검술이라는 액션 장면의 연출에서도 매우 비경제적인 선택이다. 왜냐하면 서로 검술을 교환하면서 오갈 때 종종 카메라는 이 두 사람의 액션을 더 잘 보여주거나 혹은 전문적인 대역 무술감독이 그들 대신 연기하기 위해서 카메라가 부감으로 수직 상승하거나 아주 멀리 떨어질 때 두 사람을 구별할 수 없다는 문제와 부딪치기 때문이다. 이건 임권택 도 잘 알고 있는 문제이다. 이를테면 거의 동시에 만들어진 < 황야의 독수리 > 혹은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를 생각해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렇게 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를 생각해본다. 임권택은 여기서 이미 드라마에 관심을 잃은 지 오래이다. 그 대신 반복할 수 없는 것을 눈앞에서 다시 재현할 때 거기서 불러 일으켜진 시뮬라크라에 다소 당황한 것 같은 태도를 취한다. 나는 두 번째 대결 장면이 정말 이상해 보인다. 도풍과 주룡의 대결의 액션 설계는 두 사람의 상반신을 중심으로 한 투 쇼트와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먼 롱 쇼트를 반복해서 교차시킨다. 하나의 쇼트는 두 사람의 액션을 고스란히 노출시키고, 반대로 다른 하나의 쇼트는 너무 멀리 떨어져서 누가 누구인지를 알아보기 쉽지 않을 정도로 물러난다. 그 두 개의 쇼트 사이의 불편하기 짝이 없는 교환은 거의 영화의 배열 장치를 중단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지금 나는 임권택이 여기서 실험적인 시도를 한다거나 반대로 유물론적 교차 편집을 하고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이 두 개의 쇼트는 보는 우리들을 두 사람의 대결에 몰두시키는 대신 하나는 줄거리의 중심에서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대결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이 진행의 또 다른 쇼트는 이 대결이 세상이라는 풍경 안에서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를 보여주려는 시도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둘 중 어느 쪽도 따를 수 없는 까닭은 하나의 씬 안에서 어느 쪽에도 주도권을 주지 않고 반복적으로 두 개의 서로 다른 계열의 두 개의 동일한 내용의 쇼트가 교환되면서 둘 사이에 어떤 공백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채워져야 할 이 공백은 임권택의 향수이다. 어린 시절 천막 앞에서 느껴보았던 영화라는 체험의 경이. 이미지들의 기쁨. 생각지 않았던 감각들의 향연. 잠들었던 기억의 시간. 물론 나는 여기서 멈춰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글은 금방 소설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하고 싶다. 임권택은 여기서 자기의 향수를 그냥 공백인 채로 남겨놓는다. 그는 그 시간 안으로 들어가기를 망설인다. 그래서 < 뢰검, 번개칼 >은 명백히 자기의 영화적 계보를 드러내면서도 그 장면들에 어떤 오마주의 존경이나 되찾은 시간의 기쁨이 없다. 임권택 의 영화를 보면서 나는 단 한 번도 그에게서 영화가 영화 그 자신에게 기꺼이 바치는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다. 망설임. 언제나 망설임. 그때 그가 망설이는 것은 아마도, 아마도 영화가 아니라 그 영화를 느껴보았던 시간일 지도 모른다. 그 시간의 뿌리. 종종 그래도 괜찮을 법한 자기의 기억에 베풀어도 상관없을 우월한 관점이 여기에는 없다. 나는 가끔 영화가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임권택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그는 세상이 영화를 볼 때 영화가 그걸 견디지 못하면 부서질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세계와 저 세계. 나는 지금 그 사이의 틈새, 간격, 거리. 무엇보다도 그 둘 사이 어딘가에 있을 지도 모르는 비밀 통로를 찾고 있는 중이다. 아직은 찾고 있는 중이다. (계속) 1969년 87분 칼라 2.35 감독 임권택 제작 주식회사 극동필림 각본 서윤성 , 강조원 촬영 구문석 음악 황문평 미술 노인택 편집 김희수 안길원 주룡 이훈 도풍 김청자 성녀 오경아 버들녀 안일력 입운
정성일
2013-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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