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쌍화점에 강동원이 들어간다면
- 제작년도
- 2010
폴리아티스트란 영화에 나오는 목소리와 음악을 제외한 모든 소리를 진짜처럼 재창조하며 그 소리에 감정까지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엔지니어’가 아닌 ‘아티스트’라고 불린다. 2008년 처음 폴리아티스트란 일을 시작했으니 내년이면 딱 10년째다. 처음엔 이 직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으나 군대에서 TV를 보다가 우연히 폴리아티스트란 직종을 처음 접했고, 그 후로 막연히 이 일을 하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영화 사운드 후반 작업은 크게 대사, 폴리, 이펙트, 앰비언스로 나뉜다. 그중의 한 파트가 바로 내가 담당하는 폴리(Foley) 파트이다. 군 제대 후 학교에 복학하고 주위 선배, 친구들에게 수소문한 결과 운 좋게도 학교 선배 중 한 분이 폴리아티스트에 종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연락처를 받아내고 여러 번의 연락을 거쳐 어렵게 선배가 일하는 장소로 구경을 가게 되었다. 첫눈에 난 너무나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이는 폴리아티스트란 직업의 매료되어 버렸고, 무조건 폴리아티스트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건하게 다졌다. 그 이후로도 선배에게 계속 연락하며 선배가 일하는 회사에 자주 놀러갔었는데 그때 회사에서 작업하던 작품이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었다. 그때 선배가 “한번 녹음해볼래?” 해서 엉겁결에 폴리 부스에 들어가 쇠사슬 소리와 자물쇠 소리를 녹음을 했고, 그것이 바로 내 인생 최초의 폴리 녹음이 되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시간 날 때마다 선배 회사에 놀러 가게 되었고 운 좋게 학생 인턴에 뽑혀 한 달간 인턴 생활을 하게 되었다. 당시 회사에서는 < 미쓰 홍당무 >를 할 때였는데, 선배들이 녹음하는 걸 한 달간 지켜보면서 더욱더 이 일에 대한 애정이 깊어만 갔다. 한 달 학생 인턴이 끝나고 선배 회사에서 아티스트를 뽑는다는 연락을 받았고, 대망의 면접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2008년 8월부터 회사에 출근하라는 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다. 기쁨도 잠시, 회사에 폴리아티스트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선배가 폴리 녹음하는 현장을 구경하고 선배가 작업한 폴리세션으로 에디팅 하며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한 느낌이 들어 회사에서 작업했던 영화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입사하고 약 한 달간 40~50편의 영화를 봤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주위 환경 때문에 폴리녹음을 밤 10시부터 시작했는데 낮에는 영화를 보고, 밤에는 폴리 녹음을 구경하는 시간이 계속 반복되었다. 선배가 녹음을 하지 않는 시간이나 쉬는 날에 혼자 나와서 걷는 발, 뛰는 발 등등 발 연습을 했고, 길을 걸으면서도 앞에 지나가는 사람의 걸음을 따라 하는 연습을 가장 많이 했었다. 그래도 혈기왕성했던 신입 시절, 뭔가 아쉬웠는지 당시 회사가 대치동에 있었는데 퇴근하고 삼성 코엑스에서 심야 영화로 영화를 항상 챙겨보고 했었다. 회사에서 그때 진행 중이던 작품은 <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 < 쌍화점 > < 핸드폰 >이었는데 선배가 작업하는 걸 보면서 녹음하는 방식이나 걷는 방법, 소리 내는 방식을 배우려 부단히 노력하며 똑같이 따라 했지만 나에겐 전혀 그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또 좋은 소리도 아니었다. 사람의 몸은 모두 달라 단순히 따라 한다고 같은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었다. 결국 내 방식을 찾으려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러던 중,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 마더 >였다. 본격 폴리아티스트로 투입된 첫 작품인 만큼, 내가 이 영화의 폴리를 도맡아서 해야 한다는 것에 굉장히 부담스럽고 떨리며 긴장되었지만 한편으론 폴리아티스트로서 제대로 작업을 하게 되어 기쁜 마음도 컸다. 편집본을 받고 그림을 보며 제작부에게 폴리도구를 요청을 했고, 그래서 약재, 약재 자르는 칼, 문아정( 문희라 )의 마네킹, 도준 모( 김혜자 )의 신발, 침 상자 등을 받을 수 있었다. 이중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도준 모의 신발, 즉 도준 모의 발소리였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신발들로는 그림과 어울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고 해서 도준 모의 신발을 요청하여 받았지만 김혜자 배우의 발이 무척 작아 신을 수조차 없었다. 지금이야 여러 경험을 통해 신발 소리는 충분히 낼 수 있지만 그때 당시엔 엄청나게 고민이 많았다. 시장에 있는 신발 가게, 백화점 신발 코너 등을 전전하며 비슷한 소리가 나는 신발을 구매하였으나 여전히 그림과 잘 어울리지 않았고, 결국 영화에 사용된 도준 모의 신발을 억지로 신고 발소리를 녹음하게 되었다. 처음 작업하는 거라 익숙지 않아서인지 선배가 하면 두 번의 녹음으로 끝낼 것을 당시에 난 10번, 20번, 30번을 해야 하나의 소리가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6개월간 연습을 했지만 실제 녹음에 들어가니 그림과 싱크 맞추랴 느낌 맞추랴 강약 맞추랴 정말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녹음을 들어가기 전에 그림을 외운다곤 했지만 정작 들어가면 싱크 맞추는 데 급급했다. 영화 속 인물이 열 발자국을 걸으면 처음에 녹음했던 발 두 개의 소리, 두 번째로 녹음했던 발 두 개의 소리, 세 번째에 녹음했던 발 두 개의 소리... 이런 식으로 열 개의 걸음이더라도 최소 5~10번 정도의 녹음을 해서 하나의 발소리를 완성시켜야했다. 이렇게 작업을 하니 하루 종일 녹음했는데도 약 10분 정도의 분량이 나올 뿐이었다. 그러니 녹음하다 동이 트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작업을 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 < 마더 >에서 도준( 원빈 )이 벽에 소변을 보는데 도준 모가 쫓아와 도준에게 약을 주는 장면이 있다. 스파팅 때 봉준호 감독은 도준이 오줌 누는 줄기가 굉장히 세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걸 녹음하려고 정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녹음을 시도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폴리룸이 물바다가 될 정도로 물을 뿌리기도 하고 물총에 넣어 쏴 보기도 하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생각처럼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진짜로 소변을 극한으로 참았다가 싸는 소리를 실제로 녹음하면 어떨까, 하는 거였다. 새벽에 녹음기 들고 밖으로 나가 소변 소리를 녹음했고(녹음 후 청소는 깨끗이 했다...) 결국 영화에 실제로 쓰인 소리는 나와 폴리 레코딩 한 선배의 소리, 그러니까 두 명이 소변보는 소리가 쓰인 것이다. 이후 과정은 무사히 끝냈고, 그렇게 나는 폴리아티스트로 데뷔를 하게 되었다, 그 이후 폴리 작업은 계속 진행되었고 나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경험이 쌓이면 정말 소리를 쉽고 편하게 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어려워지고 고민은 끝이 없다. < 차우 >의 멧돼지 발소리, < 해운대 >의 물소리, < 설국열차 >의 각 칸마다 들리는 발소리, < 최종병기 활 >의 속도감이 느껴지는 발소리 등등 매 작품마다 다르고 어렵고 그래서 고민하며 여러 에피소드가 불쑥불쑥 생기지만 그중 가장 어려운 건 각 캐릭터마다 소리를 다르게 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캐릭터의 성격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건 늘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 술을 한잔 걸치고 집으로 향하는 발소리, 상대방에게 복수하고 돌아가는 발소리, 슬프지만 상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억지로 즐거운 척 하는 발소리... 발소리 말고도 장례식장에는 담배를 꺼내 피는 소리, 양아치가 씹는 껌 소리 등. 영화에 나오는 여러 장면, 여러 감정들을 소리로 표현해 내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며 다양하게 녹음하여 그림과 딱 맞는 소리를 찾는 건 정말 인내심이 많이 요구된다. 1 더하기 1은 2. 이런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며, 그냥 듣는 내 귀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는 거니까. 100%의 정답도 없고 100%의 오답도 없는 그런 분야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운드의 최종 목적은 딱 하나다. 너무 당연하고 간단한 것 같지만 ‘진짜 같은 소리’를 만드는 것. 관객들이 듣는 소리는 진짜 리얼 사운드는 아니지만 그게 마치 리얼하게 느껴지고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며 폴리아티스트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면 난 성공한 거로 생각한다. 10년을 바라보는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최종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 또 노력하겠다.
한국영상자료원으로부터 영화 속의 푸드팀에 대한 글 문의를 받고 문득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이런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을 만큼 그간 영화 속의 음식을 많이 진행했었구나, 두 번째는 수많은 영화에서의 음식을 선보였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쓰면 좀 더 맛깔나고 재미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어느덧 2017년도 개봉 예정작에 선보일 음식 촬영 진행을 하며 작업할 영화들이 추가되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자리에 앉아 고민하며 글을 써본다. 푸드팀이라는 단어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할 것이다. 수많은 영화가 만들어지지만 아직도 푸드팀과 한 번도 작업을 해보지 않았거나 아예 인지를 못 하고 있는 영화인들도 많다. 영화에서 푸드팀이라는 타이틀로 처음 일을 하게 된 것은 시간을 거슬러 2005년으로 올라간다. 영화 쪽에 먼저 발을 들여 일하고 있던 남동생이 우리를 영화의 세계로 입문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마침 남동생이 작업하던 이준익 감독님의 < 왕의 남자 >(2005)에 연회 씬이 아주 크게 나오는데, 미술과 소품의 영역으로 음식을 차리면 전문적이지 못하다고 요리 전문가를 모시고 세팅을 하길 원하신다는 감독님의 요청이 있었다며 연락이 왔다. 그땐 우리에게도 영화 속 음식이란 것이 너무도 생소해서 연출 제작팀과 끝없는 회의를 했음에도 지금 돌이켜보면 실소를 금치 못할 실수들이 잦았다. 팔팔 끓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연출을 원해서 닭백숙을 정말 뜨겁게 끓여 놓았는데 광대역의 배우들이 닭을 손으로 막 찢어 먹다가 입천장을 데어 다시 식혀 놓기도 하고, 모든 음식을 먹는 거라 이해하고 한 음식마다 정성을 다해 맛있게 간을 하여 세팅했지만 연출상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한두 가지로 정해져 있어 수 시간 준비한 음식들을 맛도 보지 못하고 버리는 아픔이 있었다. <왕의 남자>의 한 장면 <왕의 남자> 촬영현장의 음식 세팅 < 왕의 남자 > 이후로 < 식객 >(2007)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요리 만화 「식객」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에 마음이 벅차올랐었는데, 이런 큰 음식 영화가 우리에게 먼저 연락을 해오다니! <식객>은 국내 최초로 본격적인 음식 영화이기도 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생소했던 셰프의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라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욕심을 갖고 도전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정말 공부를 많이 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수십 편의 영화에서 음식을 담아냈지만 <식객> 때만큼은 우리가 미술 소품에 포함되는 푸드팀이 아닌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에 있는 푸드팀이었다. 음식 영화의 푸드팀장이라는 타이틀은 부담감도 매우 클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인가. 그때 참 날씬했던 것 같기도 하다. 글을 쓰며, 그간의 영화 경력을 다시 찾아보니 정말 많은 영화에서 음식을 선보였다. < 왕의 남자 >(2005) < 식객 >(2007) < 미인도 >(2008) < 쌍화점 >(2008) < 폭풍전야 >(2009) < 식객-김치전쟁 >(2010) < 방자전 >(2010) < 미스터 아이돌 >(2011) < 후궁 >(2011) < 기술자들 >(2014) < 나는 왕이로소이다 >(2012) < 톱스타 >(2013) < 협녀, 칼의 기억 >(2013) < 군도: 민란의 시대 >(2014) < 상의원 >(2014) < 해적: 바다로 간 산적 >(2014) < 허삼관 >(2014) < 궁합 >(2015) < 검사외전 >(2015) < 봉이 김선달 >(2016) < 미쓰 와이프 >(2015) < 뷰티 인사이드 >(2015) < 고산자, 대동여지도 >(2016) < 침묵 >(2016) < 보통사람 >(2017) < 군함도 >(2017) < 공작 > (2017) < 남한산성 > (2017)까지 약 17편의 크고 작은 영화에서 우리의 역할을 드러냈고, 또 드러낼 예정이다. <식객-김치전쟁> 음식 세팅 <뷰티 인사이드> 음식 세팅 영화마다 남아있는 기억도 다양하다. 영화를 통해 평소에 전혀 접하지 않는 식재료들을 다루는데, < 후궁 > 때는 자라탕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김대승 감독님은 촬영 내내 음식에 대해 매우 세심하게 하나하나 신경을 쓰셨는데, 극 중 자라탕이 매우 혐오스럽게 보이길 원해 목이 나와 있는 상태로 탕을 끓이기도 했다. < 검사외전 > 촬영 때는 < 군도 > < 허삼관 > 때 함께 했던 연출, 제작, 미술, 소품팀을 다 같이 만나 매우 반갑게 촬영했다. 현재 촬영 중인 < 공작 >에서는 위의 세 개 영화를 함께 했던 팀들과 또다시 호흡을 맞춰서 정말 즐겁게 찍고 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고증에 입각한 음식을 선보이길 원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적도 있다. < 쌍화점 >은 고려 시대가 배경이었으나 음식에 대한 고증은 기본만 따라가고 가장 화려하고 멋있게 세팅해달라는 연출과 미술팀의 요청이 있었다. 그래서 시대극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색감의 음식들을 준비해 23회차씩이나 현장에 나가 음식을 세팅했는데 정작 영화 속 음식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 아직 개봉 전인 영화 < 궁합 >은 < 식객 > 때 조감독님의 입봉작으로 확실히 음식 영화를 경험하셨던 분이라 영화 속 음식 연출에도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쓰시고 (고증을 철저히 따랐다) 앵글에도 음식이 많이 보였다. 음식을 세팅하는 우리로선 화면에서 많이 보이는 것이 가장 뿌듯하기에 신바람 나게 일했던 기억이 있다. <후궁>의 자라탕 <쌍화점>의 화려한 음식 영화 < 식객 >의 인연으로 배우 임원희 와는 지금까지도 매우 친하게 지낸다. 역할은 악역 봉주였지만 실제로는 성격이 좋고 너무도 친절했다. 그는 왼손잡이여서 칼 사용을 왼손으로 시작했었는데 2007년 촬영 당시 왼손잡이 요리사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 칼질을 오른손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대다수의 의견으로 피나는 연습을 통해 오른손 칼질을 앵글에 담아낼 수 있었다. 그때 그 연습 이후로 아직도 칼질 하나 만큼은 오른손으로 한다고 한다. 그가 예능 방송에 출연할 때 야간 매점 음식을 뭘 할지 고민하며 연락왔을 때도 내가 자주 해 먹는 야식 하나를 알려주었는데 예상치도 않게 1등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연락하며 안부 물으며 지내는 친한 지기이다. <식객>의 배우 임원희 때로는 손 대역도 자처한다. 그간 다양한 영화에서 내 손이 여러 가지 형태로 많이 비치기도 했다. < 식객-김치전쟁 >을 촬영할 때는 배우들의 조리 동선, 완성된 음식의 형태, 조리과정에 있어 NG 후 필요한 재료들에 대한 조치를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요리사 8’의 보조역할로 극 중에 투입되어 촬영하기도 했고, < 허삼관 >을 촬영할 때는 허삼관이 자주 가는 만두집의 만두를 직접 빚는 조리 장면, 피순대와 생고기를 투박하게 써는 장면, 붕어찜의 식재료를 전문적으로 써는 장면 등을 능수능란하게 선보이기도 했다. 내 손이 가녀리진 않지만 날씬하다고 알고 있었으나 화면에 비친 내 손은 아주 통통한 손이었다! <허삼관>을 촬영할 때는 내 평생 그렇게 피순대를 많이 썰어보기도 처음이었다. 아무리 음식을 하는 사람이라지만 피순대를 좋아하지 않는 이상 많이 먹어볼 일도 접할 일도 없는데, 촬영을 위해 엄청난 양이 필요했고 또 의외로 정말 맛있어서 촬영을 마치고 촬영 스텝들과 다 같이 나눠 먹기도 했다. <식객-김치전쟁> 촬영현장 <허삼관>의 피순대 푸드팀의 역할이 무얼까. 이름에서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우리는 영화 속 음식을 세팅하는 사람들이다. 시대극을 찍을 때는 시대적 배경에 맞아야 하며, 화려하거나 소박하거나, 감동이 느껴지거나 정치성이 보이거나 등등 음식만 보고서도 그 느낌이 전달될 수 있게 구성하고 세팅해야 한다. 푸드팀이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제작, 연출, 미술, 소품팀과의 호흡도 중요하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게 되면 전체적인 배경색과 톤앤매너 협의, 소품팀과의 소품 정리, 감독님과 함께 논의하는 연출팀과의 다자간 미팅이 진행된다. 대화를 통해 음식 시안을 공유하며 메뉴 구성을 마치면 영화 촬영장에서는 푸드팀의 요리 마술이 시작된다. 현장에서 음식을 준비할 때는 조리 공간이 충분치 않아 이미 만들어 온 음식에서 살짝 손보는 정도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 날이 더 많다. 또한 다른 팀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준비를 마쳐야 한다. 배우가 음식을 먹는 장면이면 NG 장면을 대비해 미리 음식을 준비하거나, 김이 나야 하는 장면은 슛 들어갈 때 그 김이 바로 보일 수 있게 사전 준비를 꼼꼼히 해야 하는 등 촬영하는 동안 푸드팀 일원들은 정말 바쁘게 움직인다. 영화 속 음식이라 대부분 먹지 못하는 음식을 만든다고 해서 요리를 못 해도 푸드팀에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큰 오산이다. 음식을 누구보다도 전문적으로 알아야 하는 게 푸드팀이다. 역사적 배경과 시대에 따라, 또 상황과 극 역할에 따라 수많은 음식의 종류와 가짓수가 바뀌고 이 부분을 이해, 설명, 그리고 조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푸드팀의 또 다른 역할. 영화 촬영장에 푸드팀이 함께하면 현장 분위기가 매우 훈훈해진다. 예전엔 음식 소품이라 해서 영화 속 음식을 먹지 않고 기피하였으나 정말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눈에 보이면 스텝들 눈에도 소품이 아닌 일용할 양식으로 돌변하는 순간이 온다. 현장이 정말 바쁜 날이 아니면 우리가 별도의 조리를 하여 스텝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곤 하는데 그 순간만큼은 고된 촬영에 지친 스텝들에게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가 된다. 맛있는 음식 냄새를 풍길 때면 언제나 구름떼처럼 몰려드는 스텝들, 음식 옆을 지나가며 차마 먹을 수 없는 상황의 스텝들의 그렁그렁한 소 같은 눈. 감독님, 피디님부터 배우들, 각 팀의 막내까지 모두가 평등해지는 순간이다.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일을 두 배로 만들기도 하지만 이렇게 나눠먹으며 느낄 수 있는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은 그 이상이 된다. 벌써 약 10년이 넘게 영화 쪽 음식을 진행하다 보니, 현장에 아는 사람들도 많고 함께 같이 여러 작품을 한 사람들도 많다. 10년 넘게 시간이 흐르니 영화 입문 초창기부터 봐 왔던 사람들이 어느덧 영화팀의 고참이 되어 현장에서 만나면 함께 예전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남동생의 영화 쪽 지인들을 내가 하는 영화에서 만나 같이 작업하며 친분도 쌓게 되고, 또 최근에 알게 되는 신참 팀원들의 열정적인 패기를 보며 때로는 그들의 열정에 자극을 받기도 한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곧 크랭크인 하는 큰 규모의 영화 속 음식 예시 안을 준비하고 있는데, 글을 쓰며 나 자신에게 동기부여 하는 시간이 된 것 같이 뿌듯하다. 약 10년차가 넘게 이쪽분야에서 일을 하다 보니 우리 음식이 정말 맛있고 따뜻하게 보이는 마음, 훈훈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영화 < 식객 > 이후로 음식영화가 제작이 되지 않고 있는데, 그간 음식에 관련한 다양한 일들을 진행하며 얻은 좋은 아이디어들을 토대로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 이번에 작업하게 되는 영화에서도 음식이 중요하게 보일 예정인데,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푸드팀으로써 더 맛있게 그리고 멋있게 음식을 세팅 해보려한다. 마지막으로 맹렬한 더위와 추위에도, 잠과의 사투를 벌이며 지금도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촬영하고 있는 모든 영화인들, 화이팅입니다!
어려서 본 에로영화 중 가장 충격적인 영화는 단연 < 사방지 >다. ‘그들에겐 남자가 필요 없었다!’는 도발적인 카피와 함께 입을 반쯤 벌린 배우 방희의 뇌쇄적인 표정이 꽉 찬 포스터도 무척 야했고, ‘퀴어’라는 개념 자체도 없던 시기에 ‘반남반녀’ 사방지라는 캐릭터 자체가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다. 선우일란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큰 가슴을 억지로 가리고 있던, 그러니까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를 널빤지로 막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의 < 이조춘화도 >(1988) 포스터와 더불어, 그저 한참을 서서 봤던 당시 포스터들 중 하나였다. 실제로 <사방지> 제작사인 인창영화사의 정준규 대표는 공연윤리위원회의 불가판정에도 불구하고 <사방지> 포스터를 배포, 부착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나이아가라를 널빤지로 막는 < 이조춘화도 > 포스터 영화가 시작하면,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외딴 초가에서 한 여자가 아이를 낳고 죽는다. 우연히 옆을 지나던 한 스님이 그 아이를 거둬 절로 데리고 들어가고, 그렇게 사방지( 이혜영 )는 절에서 성장한다. 한편, 절에 남편의 탈상제를 지내러 왔던 청상과부 이소사( 방희 )는 독특한 매력을 뿜어내는 사방지를 눈여겨 본다. 폭포에서 몸을 씻던 그녀 앞에 또아리를 튼 뱀이 등장하자, 그것을 나뭇가지로 건져 올려 무심히 던져 버리는 사방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뱀의 클로즈업과 사방지의 등장은, 이후 이소사가 사방지의 ‘물건’을 처음 발견하고 놀라는 장면에 대한 복선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소사는 스님에게 얘기해 사방지를 자신의 몸종으로 데리고 내려온다. 사방지의 등장 한창나이에 남편과 사별한 이소사는 밤마다 마구 몸을 뒤척이며 괴로워한다. 급기야 남근 모양의 나무로 만든 성기구를 꺼내 욕구를 해소한다. 그러고 보면 방희 는 임권택 의 < 씨받이 >(1986)에서도 비슷한 역할이었다. 아이를 낳지 못해 씨받이 옥녀( 강수연 )에게 밀려난 윤씨 부인(방희)의 처지도 그러했다. 유현목 감독의 < 문 >(1977), 임권택 감독의 < 만다라 >(1981), 박호태 감독의 < 빨간 앵두 >(1982) 등에 출연한 1973년 TBC 특채 탤런트 출신의 방희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배우였다. 특히 < 신궁 >(1979), < 짝코 >(1980), < 오염된 자식들 >(1982), < 불의 딸 >(1983), <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 >(1984) 등 임권택 감독 영화에서 주, 조연을 가리지 않고 중요한 역할을 해냈는데(아마도 출연 편수로만 보자면 김지영 아주머니와 함께 가장 많은 임권택 영화에 출연했을 것이다), 바로 <씨받이>가 일종의 세대교체의 순간이었던 것. 임권택 감독의 이전 영화들에서 방희가 맡은 역할이 ‘욕’(欲)이었다면 언제부턴가 그의 영화에서 그것이 사라졌고, 그것을 임권택 영화에서 방희의 퇴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오염된 자식들>에서 병구( 안성기 )는 명희(방희)의 과도한 자식욕으로 인해 성적 공포심에 시달리는 남자였다. 별당에서 혼자 지내는 이소사는 이제 대놓고 사방지를 방으로 불러들인다. 천자문을 읽고 수를 놓을 줄도 아는 사방지를 보고는 “절에서 밥이나 짓는 애인 줄 알았는데 이런 재주가 있다니. 날마다 너를 새롭게 보는구나.”라며 작업을 걸고 결국 야심한 시각에 이르자,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거라.”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소사가 레즈비언은 아니지만 사방지에게서 어딘가 사내다운 중성적 매력을 느껴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소사의 손이 점점 아래쪽으로 내려가자 사방지는 방을 박차고 나온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 이소사가 사방지의 특별한 육체에 대해 알게 되는 순간이 기어이 찾아온다. 그때 사방지의 ‘아래’를 손맛으로 확인함과 동시에 거의 0.1초 정도 막대기 모양의 물체가 몽타주로 끼어든다. 그리고 두 사람의 정사신이 < 쌍화점 >(2008) 못지않은 농도로 진행된다. 다음 날 아침 식사시간, 이소사는 무척 흡족한 표정으로 ‘먹방’을 시연하며 기존의 별당 담당 사월이에게 명령을 내린다. “앞으로 별당 일은 사방지가 다 혼자서 할 수 있으니, 이제 넌 그만 가 보거라.”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거라.” 얼마 전 900만 관객을 동원한 < 관상 >처럼 ‘사방지 사건’ 역시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죽이고 계유정난으로 왕권을 찬탈한, 바로 그 세조 때의 이야기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생생하게 기록돼 있는데 세조 집권 후기인 1462년, 괴이한 사건으로 대신들과 사법기관이 떠들썩했다. 이른바 양성인(兩性人) 사방지 사건이다. 사방지 사건이 처음 제기된 것은 세조에게 올려진 한 상소 때문이었다. “김구석의 처 이씨의 여자 종인 사방지가 여복을 하며 종적이 괴이하다고 하여 관가에서 잡아다가 이를 보았더니, 과연 여복을 하였는데 음경과 음낭이 곧 남자였더라.” 물론 여자의 성기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방지를 그냥 내버려두고 싶었던 세조는 그 일을 거론하지 말라는 영을 내렸다(이씨의 아버지 이순지는 세종이 아끼던 공신이었고, 또 이씨의 외아들 김유악의 아내가 바로 세조의 왕위 찬탈을 도와 영의정이 된 정인지의 딸이었다). 나중에 사방지가 다시 이씨의 집에 들어가 이전과 같은 행각을 벌이자, 우의정 한명회도 나서서 먼 지방으로 유배하라고까지 했다. 그럼에도 세조는 “전에도 이미 국문(조선 시대, 국청에서 역적이나 강상죄인 등의 나라의 큰 죄인을 형장을 가하여 신문하던 일)하지 않았으니 지금도 또한 용서하라”고 했다. 하지만 신숙주를 포함한 대신들의 반대가 이어지니, 세조도 어쩔 수 없이 “사방지는 인류가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먼 지방으로 보내 노비로 삼게 했다. 사방지 이소사 집안의 어르신들에게 발각된 이후, 문제가 된 사방지를 데리고 간 무당 모화는 ‘뚜쟁이’처럼 사방지를 사대부 부인들에게 보낸다. 수많은 부인들을 만족시켜주고 농락하는 사방지의 행각은 당시 1980년대 에로영화의 그것과 유사하다. 그걸 통해 양반사회를 뒤틀고자 했던 무당의 욕망은 당시 산업화사회 한국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것. 사방지의 물건을 향해 달려드는 사대부 부인들의 모습을 담아낸 고속촬영은 당시 룸살롱을 가득 메운 사내들의 탐욕과 다를 바 없다. 그 매춘 생활에 질린 사방지가 “전 남자도 여자도 아니지만 짐승도 아니에요.”라고 항변하며 달아나려 하자, 무당은 “넌 달팽이의 혼을 타고 나서 음지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물론 달팽이의 몽타주가 끼어든다. 그렇게 무당은 사방지를 ‘악마의 씨’라 여기고, 급기야 사방지는 “부처님이 계시다면, 왜 저 같은 저주받은 생명을 만드셨습니까. 남자도 여자도 아닌 병신을 말입니다.”라며 울부짖는다. (잘 안보이지만) 욕망의 사대부 부인들 고속촬영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이수광 지음)을 보면, 당시 사방지 사건과 비교해 영화 < 사방지 >의 ‘격정 멜로’스러운 스타일이 눈에 띈다. 먼저 실제 노비 출신 사방지는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어머니가 죽으면서 낳은 것이 아니라, 늘 함께 지냈다. 살결이 곱고 입술이 붉어 다들 ‘계집애가 사내로 잘못 태어난 것’이라는 얘기를 듣던 사방지를 보면서 그 어머니는 늘 수심에 잠겼다. 그러니까 영화의 첫 장면은 뭔가 사방지에게 ‘몹쓸 운명’이라는 숙명을 부여한다. 또한 장성해서는 벼슬한 선비의 집안에 꽤나 드나들며 많은 여종들과 정을 통했다. 그와 달리 이소사에게 일편단심을 바친 것으로 묘사되는 영화는 사방지의 가슴 아픈 사랑을 더욱 강조하는 것. 그러니까 사실과 달리 두 사람의 자살로 끝맺는 <사방지>는 조선왕조실록의 사방지 사건을 ‘첫사랑의 멜로’로 완성했다. 이쯤에서 실제 사방지의 ‘그것’이 어떠했는지 궁금하기도 할 것이다. 사헌부가 사방지를 잡아들여 심문하면서 여자아이를 시켜 직접 만지게 했는데, 그 아이는 무척이나 놀란 얼굴로 ‘아주 장대하다’고 했단다. 왜소한 수많은 남자들의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릴 얘기다. 이혜영 방희 감독: 송경식 각본: 지상학 , 안태근 개봉극장: 아세아 관람인원: 40,221(서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