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
- 감독
- 오오네 히토시
- 제작년도
- 2019
- 출연
- 시노하라 료코, 히로세 스즈, 코이케 에이코, 토모사카 리에, 와타나베 나오미, 이케다 에라이자, 야마모토 마이카
2002년 | 기획시대 감독: 김동원 | 각본: 김은화 | 각색: 김동원 노진수 연미정 | 제작: 유인택 | 촬영: 전조명 | 미술: 김희정 장춘섭 | 음악: 조성우 CAST 해적: 이정진 | 봉팔: 임창정 | 성기: 양동근 | 봉자: 한채영 | 큰형님: 이대근 | 봉팔 부: 김인문 | 해적 모: 김영애 | 성기 모: 김선화 | 배 사장: 안석환 | 제비: 정은표 | 2000년대 초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가 열리면서 새로운 현상이 하나 생깁니다. 젊은 감독들의 등장이죠. <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 >(2002)의 모지은 감독이나 < 일단뛰어 >(2002)의 조의석 감독 등은 모두 20대에 데뷔를 했는데요, < 해적, 디스코왕 되다 >의 김동원 감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도제 시스템을 거의 거치지 않고 단편 작업을 통해 인정을 받아 20대에 첫 장편을 만들 수 있었죠. <해적, 디스코왕 되다>도 마찬가지입니다. 1999년에 만든 단편 < 81,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 >를 토대로 김동원 감독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가 배경인 이 영화의 현장 공개는 화곡동의 한국관 나이트에서 이뤄졌습니다. 디스코 경연 대회 장면은 <해적, 디스코왕 되다>의 클라이맥스였는데요, 그 중심에 바로 ‘해적’이라 불리는 사나이 이정진이 있었습니다. 알록달록한 분홍 블라우스에 ‘쫄바지’를 입은 그의 모습은 제대로 복고였죠. < 해변으로 가다 >( 김인수 , 2000)에 이은 두 번째 영화 출연작에서 처음으로 원 톱 주연을 맡았습니다. 어색하면서도 나름의 스타일로 춤을 추는 해적. 나중엔 관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옷까지 벗어 던집니다. 중동 간 아버지와 춤바람 난 어머니 밑에서 바르게(?) 자란 청년 성기 역의 양동근입니다. 성기는 친구 봉팔(임창정)의 동생인 봉자(한채영)을 구하기 위해, 해적을 도와 춤 선생을 자처하죠. 이정진과는 <해변으로 가다>에 이어 두 번째 함께 하는 작품입니다. 한편 양동근이 처음 관심 있었던 역할은 엉뚱하게도 안석환이 맡은 ‘배 사장’ 역할이었다고 하네요. 봉자 역의 한채영입니다. 첫눈에 해적을 홀려버린 그녀는 돈을 벌어 집안을 구하겠다는 일념에 룸살롱에 나가고, 그런 그녀를 구하기 위해 해적은 경연대회 우승을 노립니다. 한채영은 < 찍히면 죽는다 >( 김기훈 , 2000)에 이어 두 번째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모니터 앞에 모여 있는 배우들과 감독의 모습이 자못 심각하다면, 촬영 중간중간엔 박장대소를 하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현장 분위기의 중심인 봉팔 역의 임창정이 있었는데요, 자신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봉팔이는 아이큐가 92 정도 되는 아이에요. 바보는 아닌데 기억력이 너무 짧아 뭔가를 자꾸 잊어버리는 아이.” 한편 독특한 헤어스타일은 자신의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사실 해적 역으로 먼저 캐스팅 뉴스가 나갔던 배우는 아이돌 그룹 ‘신화’의 전진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정진이 맡게 되었죠. 김동원 감독은 “처음엔 전진이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니에요. 정진이가 너무 열심히 잘해줬어요”라고 말합니다. 연일 계속되는 촬영 속에서 피곤한 양동근이 촬영 사이에 틈을 내 쪽잠을 자고 있습니다. 1974년생인 김동원 감독은 서울예술대학 재학 시절 만든 단편 <81,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를 통해 첫 장편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 플란다스의 개 >( 봉준호 , 2000) 연출부를 거쳤고요. 성기 엄마(김선화)와 춤 바람 난 댄스 강사 역의 정은표입니다. 일명 ‘제비’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역시 인상적인 헤어 스타일의 소유자입니다. 황제 디스코텍에 봉자를 빼앗긴 후 마음 고생을 하고 있는 배 사장 역의 안석환입니다. 그러나 황제 디스코텍의 사장(이대근)이 만만치 않은 거물인지라, 찍소리도 못하죠. 디스코 경연 대회를 염탐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습니다. 경연 대회 사회자 역할로 개그맨 서승만이 특별 출연을 했습니다. 첫 영화를 마친 김동원 감독은 벌써(!) 두 번째 영화에 대해 말합니다. “잘 모르겠지만, 아마 <우묵배미의 사랑 2> 같은 영화를 하고 있지 않을까요? 전 강남이 싫어요. 서민들 생활을 그리는 게 더 편하죠.” OB 맥주, 써니 텐, 솔 담배…. 1980년대를 드러내는 소품들입니다. 좁은 현장에서 1980년대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카메라를 잡은 사람은 전조명 촬영감독이었습니다. 1959년부터 촬영을 시작하신,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시죠. 1933년생이시니 촬영 당시 70세셨고, 현장에선 모두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큰어른이셨습니다. 주로 김수용 감독님과 호흡을 맞추셨는데요 < 혈맥 >(1963) < 저 하늘에도 슬픔이 >(1965) < 갯마을 >(1965) 등이 전조명 촬영감독의 작품입니다. 대작인 임권택 감독의 < 증언 >(1973)을 비롯, 장길수 감독의 < 레테의 연가 >(1987), 박종원 감독의 < 영원한 제국 >(1994), 이영재 감독의 < 내 마음의 풍금 >(1998), 김유진 감독의 < 약속 >(1998) 등에서도 작업하셨습니다. 그리고 2004년 < 아홉살 인생 >( 윤인호 , 2004)을 마지막으로 은퇴하셨습니다. 촬영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10여 편의 작품을 남기셨습니다.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을 처음 발견한 영화는 2013년작 < 흉악-어느 사형수의 고발The Devil's Path >이다. 연쇄살인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남자가 형무소에 찾아온 기자에게 비밀을 말한다. 드러나지 않은 범죄가 있고, 다른 범인도 있다는 것. 세상에는 수많은 범죄가 있고, 다양한 악인이 있다. 그중에는 정말 끔찍한, 사악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흉악한 인간과 범죄도 있다. <흉악>은 기자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가장 어두운 바닥까지 파고 들어간다. 인간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질문하는 영화였다. 2017년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을 보게 되었다. 45주년을 맞아 기획한 로망포르노 리부트 작품의 하나인 < 암고양이들Dawn of the felines >(2016)의 무대 인사였다. 로망포르노 리부트는 소노 시온과 시오타 아키히코 등 일선에서 활발하게 영화를 찍는 감독들에게 핑크영화 연출을 의뢰한 야심 찬 기획이었다. <암고양이들>은 이케부쿠로의 유흥 업소에서 일하는 미혼모, 주부 등 세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다. <암고양이들>은 다나카 노보루의 1972년작 로망포르노 < 암고양이들의 밤 Night of the felines >의 리메이크작이라고 할 수 있다. 60년대말부터 시작된 니카츠 로망포르노의 거장이라면 구마시로 다츠미가 해외에서 유명하지만, 일본 내에서는 < 실록 아베 사다A Woman Called Sada Abe >(1975)와 < 유부녀 집단폭행치사사건 Rape and death of a housewife >(1978)의 다나카 노보루도 상당히 지명도가 높다. 작년 로테르담 영화제에서는 다나카 노보루의 <암고양이들의 밤>과 시라이시 카즈야의 <암고양이들>을 이어서 상영했다. <암고양이들의 밤>은 격동의 시절인 1972년의 영화답게,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다. 여성에 대한 긍정적이고 관대한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흉악>을 워낙 좋아했던 터라 시라이시 카즈야가 핑크영화를 만들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암고양이들>은 거리에서 떠도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건조하면서도 사회적인 이슈를 파고들며 잘 그려냈다. 이력을 찾아보니, 북해도 출신인 시라이시 카즈야는 핑크영화의 전설인 와카마츠 코지에게 사사했다고 나온다. 로망 포르노를 만들게 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공개된 시라이시 감독의 신작 < 아무것도 우리를 멈출 수 없다Dare to stop us> (2018)는 와카마츠 코지 감독 사후 흔들렸던 와카마츠 프로(덕션)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영화다. <흉악>과 <암고양이들>의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은 반드시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하고 싶은 감독이었다. 작년, 누마타 마호카루의 소설을 각색한 < 이름 없는 새Birds without names >(2017)는 시기가 맞지 않아 포기했다. 올해는 < 고독한 늑대의 피The blood of wolves >(2018)와 < 써니를 찾아서Sunny / 32 >(2018), 2편을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하고 시라이시 감독의 초청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고독한 늑대의 피>에 비하면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써니를 찾아서>는 인터넷 공간이 현실 이상의 리얼리티를 갖게 된 우리 시대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B급 감성으로 포착한 흥미로운 영화다. <고독한 늑대의 피>는 히로시마 인근의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야쿠자 조직 간 항쟁을 그린 영화다. 히로시마, 라고 하면 후카사쿠 긴지의 < 의리없는 전쟁 Battles without honor and humanity >이 떠오른다. <의리 없는 전쟁> 시리즈의 무대가 바로 히로시마였다. 1973년 작인 <의리 없는 전쟁>은 일본 야쿠자물을 혁신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야쿠자물은 소위 ‘협객물’이라 불리기도 했다. 사회의 음지에 있지만, 정의와 의리를 지키는 아웃사이더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의리 없는 전쟁>은 협객으로서의 야쿠자를 전면 부정한다. 말로는 의리를 외치지만 야비한 술수와 음모를 꾸미고, 목숨 따위 아무것도 아닌 듯 떠벌이지만 사실은 두려워서 벌벌 떠는 야쿠자의 진짜 얼굴을 그린 것이다. 치사하고 악랄한 범죄자로서의 야쿠자를 실록-다큐멘터리 스타일로 그려낸 <의리 없는 전쟁>은 야쿠자물의 전형을 바꾸었고,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후카사쿠 긴지는 〈의리없는 전쟁〉 시리즈와 〈 의리의 무덤Graveyard of honor 〉(19775), 〈 도베르만 형사Detective Doberman 〉(1977), < 배틀 로얄Battle royale >(2000) 등의 걸작을 만들어내며 거장으로 평가받았다. 의리없는 전쟁 <의리 없는 전쟁>의 영향을 받은 것은 영화 <고독한 늑대의 피>만이 아니다. 원작 소설부터 영향권에 있었다. 1968년생이며 기자로 일했던 유즈키 유코는 2008년 『임상 진리』를 발표하고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마흔 살이었다. 이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던 유즈키는 2015년 『고독한 늑대의 피』를 출간한다. 후카사쿠 긴지의 영화 〈의리없는 전쟁〉과 아사다 데쓰야의 소설 『마작방랑기』를 좋아했고, 이런 풍으로 남자들의 세계에 대해 쓰고 싶었다던 꿈을 실현한 것이다. 치밀한 취재를 통해 『고독한 늑대의 피』는 21세기에 걸맞은 경찰, 야쿠자 소설의 걸작이 되었다. 여성인 유즈키 유코는 <의리 없는 전쟁>을 너무나 좋아하여 비슷한 스타일의 소설을 쓰고 싶었고 『고독한 늑대의 피』를 썼다. 그러니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의리 없는 전쟁>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소설의 구성도 〈의리없는 전쟁〉의 ‘실록’ 스타일을 연상시킨다. 각 장마다 누군가의 보고서가 등장하고, 지워진 문장들이 있다. 지워진 사건들이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보고서를 지운 인물이 누구인지는 소설의 마지막에 드러난다. 지워진 상황들은 각 장마다 드러난다. 누가 무엇을 지운 것일까,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하기는 한데, 소설을 읽다 보면 궁금해할 여유가 없다. 상황들이 너무나 긴박하고, 인물들이 강렬하다. “맞아, 난 미쳤어. 수사를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거야.”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도,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잘 알고 있는 오가미형사의 미래가 궁금해서 마지막까지 한달음에 달려가게 된다. 영화 〈고독한 늑대의 피〉도 충실하게 실록 스타일을 따른다. 잔인한 폭력이 나오는 첫 장면이 지나고, 오프닝은 슬라이드 사진의 바랜 듯한 화면으로 바뀐다. 야쿠자 조직과 인물들에 대한 나레이션이 이어지면서 배우와 스태프의 이름이 세로로 박힌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폭력단 대책법이 나오기 전 1988년. 야쿠자와 결탁한 부패 형사인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질 형사가 된 것인지 모호한 오가미 형사가 주인공이다. 신입 형사인 히오카는 오가미의 진짜 얼굴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히로시마 인근의 구레하라시에서 벌어지는 야쿠자 항쟁을 막으려는 오가미의 고군분투를 보여준다. <고독한 늑대의 피>는 야쿠자물이지만 형사가 주인공이다. 형사물과 야쿠자물은 같은 류이지만 분명히 다르다. 범죄의 세계를 어떤 시점으로, 어떤 스타일로 그려지는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이는 종이 한 장이다. 아니 동전의 양면일 수도 있다. 오가미 형사도 그렇다. 그가 악인인지, 선인인지 중반까지 종잡을 수가 없다. 범죄영화에 흔히 나오는, 악과 싸우다 결국 닮아가는 캐릭터 같기도 하다. 형사가 악이 되어가는 이유는 잡아야 하는 악당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움직이는지 알아야 단서를 포착하고, 증거를 찾아낼 수 있으니까 닮아간다. 하지만 닮아가는 것만으로 인간이 변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얕다. 처음에는 히오카도 오가미가 야쿠자를 닮아 변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가미는 고독한 늑대다. 철저하게 무리를 지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늑대라는 짐승. 그렇기에 무리에서 밀려난 늑대는 더욱 강인해져야만 한다. 투철한 각오를 해야만 살아남는다. 오가미는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자신의 원칙을 세웠다. 무리의 규칙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야만 하는 규범을 스스로 만든 것이다. 이유는, 경찰도 야쿠자와 다를 게 없기 때문에. 야비하고 술수를 앞세우며, 자신의 안위를 위해 타인을 짓밟는다. 오가미는 야쿠자만이 아니라 동료인 경찰과도 싸워야 한다. 자신의 영역을 철저하게 지켜야만 한다. <고독한 늑대의 피>는 오가미라는 고독한 늑대의 일생을 히오카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매료될 수밖에 없는,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아웃트로의 처절한 싸움을 그려낸다. <고독한 늑대의 피>는 시종일관 에너지가 들끓는다. <흉악>을 보았을 때부터, 시라이시 카즈야의 영화는 늘 그랬다. 결코 관조하지 않고, 결코 무르지 않다. 강인하게, 고독한 늑대처럼 이 세상을 차갑게 바라보면서 싸우고 있다. 소설과는 다르게,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각색을 통해 만들어진 시라이시의 고유한 장면이다. 격렬한 클라이맥스를 보고 있으면 시라이시 카즈야의 영화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알 수 있다. 지금 일본 영화의 현재를 보고 싶다면 반드시 봐야 할 영화가 <고독한 늑대의 피>다.
이제 뻔한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늘어놓는 일은 그만하고, 진짜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 속 먹방 장면이나 감상해보자. 사실 애니메이션 속 먹방은 그 가짓수가 일만 오천육십 개까지나 되니(세어 보진 않았지만 하여튼 엄청 많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밀가루’에 관련된 먹방만 감상해보겠다. 첫 번째 이야기해 볼 애니메이션은 바로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들이다. 나는 사석에서 지브리 스튜디오를 ‘셰프 지브리’라고 부르곤 한다. 마치 감각 있는 셰프가 그날 날씨와 제철재료들을 고려하여 선보이는 ‘오늘의 추천 요리’ 메뉴처럼, 지브리 애니메이션 속의 먹방에서는 작 중 분위기와 상황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요리 메뉴를 선보인다. 먼저, 밀가루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애니메이션인 < 마녀배달부 키키 >를 감상해보자. <마녀배달부 키키>는 꼬마 마녀 키키가 빵 택배 일을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소소한 소동을 담은 따뜻하고 귀여운 성장 드라마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키키가 화덕에서 파이를 굽는 부분인데, 그 파이의 모양이 적잖이 낯설었다. 생선 모양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청어 파이’였기 때문이다. 이 청어 파이는 모두에게 몹시 충격적인 비주얼이었는지, 지금도 청어파이, 즉 생선 파이는 영국의 괴랄한 미식 문화를 조롱하는 의미로 통한다. 이 애니메이션에서도 셰프 지브리의 탁월한 센스를 엿볼 수가 있다. 생선 파이는 사실 역사가 오래된 영국 전통 요리다. 신선한 생선을 구하기 어려운 영국의 서민층들이 조리해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여하튼 영국 서민들의 전통 홈 푸드인데, 현재는 여기저기서 푸대접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마녀배달부 키키>의 청어 파이 역시 마찬가지 신세다. 손녀의 파티에 따뜻한 파이를 보내주고자 했던 할머니가 오븐이 고장 난 상황에서, 오래된 화덕을 수리하는 고생(물론 고생은 키키가 다 하기는 하였지만 어쨌든 키키에게 넉넉한 금전적 보상을 해주었지 않은가?)을 마다하지 않고 정성껏 구워낸 것이지만, 신세대 손녀에게는 문전박대를 당한다. 셰프 지브리의 특기인 ‘상징’이 빛나는 대목이다. 키키의 눈빛을 보면 맛있게 먹겠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지만… 움직이는 성안, 하울의 식사는 어떨까? 베이컨은 미국 서부개척시대에 개척자들의 필수아이템이었다. 여행 작가이자, 개척자인 랜스포드 헤이스팅스는 1845년, 오리건을 향하는 이민자들에게 150파운드(약 68kg)의 베이컨을 필수적으로 챙겨가라고 조언했다. 개척자들은 매일 아침으로 커피와 베이컨을 먹고, 저녁엔 베이컨 기름을 빵이나 비스킷에다 발라 먹었다. 1) 그 유명한 베이컨&달걀의 유행은 사실 하울이 원조가 아니다. 그 역사는 192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다이어트가 필수덕목인 이 시대에야 고열량인 이 조합은 사실 죄책감까지 불러일으키지만, 1920년대에 ‘베이컨&달걀’은 아주 ‘건강하고 가성비 좋은’ 아침식사였다. 그야말로 피로와 긴장에 찌든 여행자들에게 걸맞은 고영양 메뉴인 것이다. 게다가 셰프 지브리는 베이컨 기름으로 모든 조리를 해결한다. 올리브유나 향료같은 많은 부재료들을 챙겨 다니기 어려운 여행자들에게 아주 요긴한 재료다. 다만 계란 후라이를 저렇게 예쁜 ‘써니 사이드 업’으로 만들려면 약불로 인내심있게 구어야 하는데, 저렇게 화력이 센 불에 조리하니 타지는 않을지 걱정되었다. 뭐, 보기 좋기는 했다. 이 부분에서 서론에서 말했던 애니메이션 속 먹방 장면의 장점이 빛을 발한다. 왜 밀가루 이야기를 하다말고, 고지방 고단백 메뉴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하겠지만, 사실 내가 정말로 주목하고 싶었던 것은 베이컨과 달걀과 함께 식탁 위에 나란히 놓여있던 빵, 깜빠뉴다. 절대 사심으로 베이컨&에그를 끼워 맞춘 것이 아닙니다. 사실 약간 그래요. 뭐 어쨌든… 이 고열량, 고단백의 조합의 목 멜 듯한 기분은 탄수화물이 녹여준다. 깜빠뉴는 오래 보관하기 쉽고, 재료가 단순하고 맛이 담백하여 어느 메뉴와도 잘 어울린다. 식사빵이라는 카테고리답게 묵직하고 든든하다. 여러모로 먼 길을 떠날 때 아주 적합한 메뉴다. 사실 ‘베이컨과 에그 게다가 단순 탄수화물인 빵’은 비만 인구 상승에 힘을 실어줄 조합이기는 하지만,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고 막강한 적과 싸워야하는 하울 무리에게는 더없이 걸맞은 메뉴였다. 이번엔 일본을 벗어나, 영국의 훌륭한 스튜디오로 넘어가 보자. 아드만 애니메이션은 <월레스와 그로밋> < 치킨 런 > < 플러쉬 > < 아더 크리스마스 > < 허당 해적단 > < 숀더쉽 > 등 정말 재미있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대거 제작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다. 아드만의 애니메이션들은 진짜로 웃기고, 재밌다. 그리고 먹음직스럽다. 클레이 애니메이션이다 보니, 먹방으로써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의 장점들을 고루 갖출 수 있다. 만져질 것처럼 생생하면서도 오버액션도 ok. 멋진 일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월레스와 그로밋>을 살펴보자. 월레스는 발명가이자 빵집사장이다. 그로밋은 그가 기르는 강아지. 하지만 이 강아지 그로밋이 월레스보다 약 두 배가량 현명하다. (하긴 역마살 붙은 것 마냥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동네를 휘젓는 이웃집 개도 집만 잘 찾던데, 10년 산 동네에서 한번 낯선 길로 가보자고 했다가 돌아오는 길을 한참 헤맸던 내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둘은 아무리 바빠도(사실 별로 바빠 보이지도 않지만) 늘 시간을 내어 치즈&크래커와 홍차를 즐긴다. ‘빵이냐 죽음이냐’ 편에서, 파이엘라는 늘 정시에 티타임을 즐기는 월레스의 습관을 이용하여 살인을 계획할 정도로 그들에게 티타임은 무척 중요한 의식이다. 사실 이런 문화는 영국인이라면 아주 익숙하다. 영국인들의 티타임 사랑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도버해협을 건너는 기차 안에서도 전용 도기로 애프터 눈 티를 즐겼다고 하며, 영국의 유명한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환상의 세계에서도 티타임은 빠지지 않는다. 이런 영국인의 홍차사랑에 대한 결실은 현재 티타임에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찻잎들의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찰스 그레이 백작의 이름을 딴 ‘얼그레이’,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같이. 영국이 구움 과자 분야에서는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이 ‘차사랑’에 원인이 있다. 음식문화가 취약하다고 정평이 난 영국도 비스킷, 스콘 등 티타임에 곁들일 메뉴를 개발하는 데에는 꽤나 열정적이었던 모양이다. 역시 인류 최고의 발명가는 사랑이라고 했던가. 월레스와 그로밋이 여기에 곁들이는 비스킷 역시 지극히 영국적인 과자다. 비스킷은 1588년 스페인과 영국이 영불해협에서 맞붙었던 전투에서 영국을 승리로 이끈 숨은 주역이었다. 해전 시 배에 실을 수 있는 식량은 한계가 있어 칼로리가 높지만 가볍고 부피가 작아야 했는데, 비스킷이 그에 딱 걸 맞는 메뉴였다. 영국군은 최대한으로 수분을 없앤 딱딱한 비스킷을 있는 대로 보관해 둔 덕에 굶주릴 일없이 전쟁에 임할 수 있었고,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쟁을 기점으로 세계최강이라 자부하던 스페인 함대는 몰락했고, 영국은 세계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다. 2) 어쨌거나 월레스와 그로밋의 티타임은 달로 향하는 우주 비행선 안에서도 계속되었다. 이 용감한 개척자들은 출발하기 직전까지 티타임 도구들을 챙기기 바쁘다. 바삭하고 퍽퍽한 비스킷에 부드러운 치즈를 곁들인 티푸드에 맛있는 홍차, 그리고 오래된 친구와 즐기는 티타임이라니, 우주 한가운데 더없이 영국적인 풍경이다. 위 거론한 예시들 말고도 애니메이션 속 먹방에 대한 이야기는 밤새도록 나누어도 모자람이 없다. 언젠가 또 기회가 닿는다면 < 너의 이름은. >의 팬케이크 이야기나, < 검정고무신 >의 크림빵에는 생크림이 없다는 이야기로 시작되는 크림의 비밀 등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다. 애니메이션 속에도 현실 세계 만큼이나 먹음직스러운 이야기들이 가득 숨어있다. 행복한 이야기다. 먹는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답게 나의 첫 데뷔작도 레진코믹스에서 연재했던 음식 만화(<삶은 토마토>)였다. 주로 음식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나 상황들이 스토리의 전부다. 심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사는 게 별건가 싶다. 우리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밥먹기’를 원하며, 대부분의 중요한 결정들이 ‘식사자리’에서 거론된다. 나는 애니메이션 속 등장인물들이 먹고 마시는 게 좋다. 등장인물들이 아무리 진중하고 긴박한 상황에서도 허기짐을 느껴, 혹은 기운이 달려 무언가를 먹고 마시는 순간 거리를 두고 감상하던 이야기들이 삶의 차원으로 넘어온다. 게다가 음식 만화를 연재하며 먹는 장면을 그리는 것이 즐겁지만, 번거로운 일임을 뼈저리게 경험했던 사람으로서 스토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빼버려도 상관없는 먹방 장면을 굳이 삽입한 애니메이션 감독에게는 인간적인 애정을 느끼기까지 한다.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들이 더 먹고 마셨으면 좋겠다. 더 많이, 더 맛있게, 더 오버액션으로 먹어주면 좋겠다. 언젠가 여러분, 제가 엄청나게 맛있게 먹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거 거든요? 얼마나 맛있게 먹나 한번 보러와 주세요. 어설픈 글을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어쨌든, 나도 난생처음 칼럼이라는 걸 써본 기념으로 오늘은 맛있는 걸 좀 먹어야겠다. 1)『아침식사의 문화사(Breakfast: A history-Heather)』 (헤더 안트 앤더슨 저, 니케북스, 2016) 참조 2)『양과자 세계사』(요시다 기쿠지로 저, 비앤씨월드, 2011)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