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러 군단 <은하편> 성전사로빈 주니어
- 감독
- 오쿠와키 마사하루
- 제작년도
- 1989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한국 영화평론가가 '한국'영화를 대하는 법) 이 원고를 청탁받은 날, 나는 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열리는 대담에 참여했다. “ 1990s 시네마테크의 필름들 ” 기획전의 일환으로 진행된 “1990s 시네필 대담 part 2”라는 제목의 대담이었다. 하길종 의 < 화분 >(1972)의 상영 뒤, 1990년대 사설 시네마테크를 운영했던 시네필과 1990년대생 영화평론가 사이의 대화를 만들고자 했다. 준비해 간 질문 중 하나를 옮겨보자. “이번 기획전 상영작을 보고 있자면 90년대 비디오테크에서 상영된 영화들이 지금은 영화사의 ‘정전’으로 다뤄지는 영화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타르코스프키, 고다르, 파스빈더, 앙겔로풀로스 뿐 아니라 데이비드 린치나 그리너웨이, 오시마 나기사처럼 당시엔 일정 부분 ‘컬트’로서 소화되던 감독과 영화들도 지금의 관점에서는 영화역사의 만신전에 오른 이름들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오늘 대담과 붙여서 상영된 하길종의 <화분>은 하나의 예외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중략) 이번 기획전에 <화분>이 포함된 것은 90년대 시네필들이 단순히 영화 교과서에 수록된 정전들을 직접 감상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영화를 (재)발굴 혹은 (재)발견하려 시도했음을 드러내는 것만 같습니다.” 기획전의 라인업을 보며 느꼈던 의문 중 하나를 옮긴 질문이라 할 수도 있겠다. 나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타르코프스키, 고다르, 파스빈더 등의 이름과 함께 하길종을 배열하는 것은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상영작이 꼭 <화분>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저 자리에 < 바보들의 행진 >(하길종, 1975)을 놓았더라도, 이만희 의 < 휴일 >(1968)이나 김기영 의 < 하녀 >(1960)을 놓았더라도 어딘가 어색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한국어로 글을 쓰며 한국어로 말하고 한국영화를 상대하는 한국의 영화평론가로서, 한국영화는 어딘가 이상한 존재처럼 다가온다. 한국영화라는 이름 뒤에 무엇이 따라붙든 간에 그것을 어색하지 않게 납득하는 것은 아마 이뤄지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한국영화란 무엇일까? 한국에서 만들어진 영화? 한국인이 만든 영화? 한국 자본이 투입된 영화? <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2023)에서 노라(그레타 리)는 남편에게 해성( 유태오 )을 설명하며 “Korean”이라는 단어를 아홉 번 사용한다. 그의 대사 속 한국인은 “평범한 직업과 평범한 삶을 사는 어른이 여전히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이고, 한국계(Korea) 친구와는 다른 한국인(Korean) 친구인 한국인-한국인(Korean-Korean)이다. 이 대사에서 느껴지는 뭔지 모를 반발감 혹은 어색함이 한국영화를 대하는 나, 동료 평론가들, 그리고 온라인상의 무수한 글로써 존재하는 시네필들이 한국영화에 대해 갖는 어떤 공통감일지도 모른다. <패스트 라이브즈> 중 대담으로부터 일주일 뒤 한국영상자료원의 ‘ 한국영화 100선 ’ 발표가 있었다. ‘영화를 보는 사람’ 171명과 ‘영화를 만드는 사람’ 69명이 참여한 이 리스트를 통해 한국영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순위가 공개된 10편의 영화 중 절반이 21세기 영화이며, 봉준호 , 박찬욱 , 이창동 이라는 세 명의 이름뿐인 이 리스트를 두고 한국영화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리스트에 오른 100편의 영화를 전부 본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 또한 10편의 영화 를 적어서 보냈지만, 그 영화들이 한국영화에서의 ‘한국’을 구성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영화들은 한국의 파편들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며, 한국영화라는 전체는 그 파편들의 집합을 통해 구성될 수밖에 없다. 케이팝을 필두로 무분별하게 난발되고 있는 접두사 “K-”가 결국 그 모든 파편의 집합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영화평론가의 일상과 비평에 관한 생각을 터놓는 지면에서 갑자기 왜 한국영화 이야기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국의 시네필들이 한국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나의 자기반성이기도 하다. 단지 영화제에서 한국영화를 후순위로 미뤄두고, 극장에 걸리는 한국영화들을 해외 영화들만큼 열심히 챙겨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국영화에서 한국이 무엇으로 구성되고 재현되는지, 그것은 항상 이야기 바깥에 놓여 있는 것이었다. 함연선 마테리알 편집인의 “ 비천한 영화를 위하여, 그중에서도 한국영화 ” 발표 녹취록을 보고 있자면, 그리고 그 위에 2024년 버전의 ‘한국영화 100선’을 겹쳐 놓는다면, 한국영화는 마치 과거에 존재했다가 사라진 뒤 봉준호와 박찬욱에 의해 부활한 것만 같다. 그리고 무수한 ‘비천한’ 영화들이 누락되어 사라진다. 나는 이 ‘비천한’ 영화들, 함연선의 발표에서 등장한 <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곽재용, 2004)와 < 달마야 놀자 >(박철관, 2001)를 포함한 일련의 조폭 코미디를 포함해, < 마파도 >(추창민, 2005), < 중천 >(조동오, 2006), < 고사: 피의 중간고사 >(창, 2008)처럼 지금은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을 영화들이 나의 ‘비천한’ 한국영화의 리스트를 채우고 있다. 이 영화들이 얼마나 비천하고 구리며 지루하건 간에, 이 영화들은 한국을 담아내는 것으로서 보였다. 한국영화라는 하나의 장르 속에서, 한국은 영화적 장소로 기능할 수 있었다. 그것이 설령 불쾌함을 자아내는 것일지라도. 지금의 한국영화들은 그것의 반대로 향하고 있다. 작년과 올해 개봉한 영화들을 떠올려 보자. < 밀수 >(류승완, 2023)는 극 중 등장하는 지도상 군산을 배경으로 삼고 있음이 명백함에도 ‘군천’이라는 가상의 지명을 사용한다. 소재만 바뀐 같은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 모가디슈 >(류승완, 2021), < 교섭 >(임순례, 2020), < 비공식작전 >(김성훈, 2022)은 한국의 바깥에서 한국을 찾아내려는 기묘한 시도를 선보인다. 이들 영화에서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레바논이라는 각기 다른 중동 국가는 한국에서 폐기된 것처럼 느껴지는 ‘야만성’을 간직한 곳으로서, 한국과 대비되는 야만의 땅으로서 묘사될 뿐이다. 아예 지구 바깥으로 향하는 < 더 문 >(김용화, 2023)이나 국가 자체의 구분이 무의미한 미래를 그리는 < 정이 >(연상호, 2022)와 같은 영화들은 한국이라는 장소에 영화가 묶여있고 싶지 않다는 의지 표명에 가까워보인다. <중천>, <모가디슈> 중 <경마장 가는 길>, <괴물> 중 ‘한국영화 100선’의 리스트를 작성하며, 나는 두 편의 영화에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덧붙였다. “한국영화가 한국을 찍는 방법,” "충무로가 한국을 영화적 장소로 대했던 마지막 순간." 전자는 장선우 의 < 경마장 가는 길 >(1991)이고, 후자는 봉준호의 < 괴물 >(2006)이다. <경마장 가는 길>을 보며 우리는 90년대 서울의 풍경을, 붉은 십자가로 가득한 야경과 무너지기 이전의 삼풍백화점과 사람으로 가득해 “산책이 노동이 된” 길거리를 목격할 수 있다. <괴물>을 보며 여의도 한강공원의 풍경을, 합동분향소와 한강의 매점을, 일상의 풍경이 순식간에 장르적 장소로 변화하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다. 한국영화의 장소가 해외 로케이션으로, 그린스크린으로 옮겨감에 따라 사라진 풍경들, 길을 걷고 뛰는 사람들. 물론 지금의 영화들에 그런 풍경이 사라졌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 여름날 >(오정석, 2019)의 거제도, < 아워 미드나잇 >(임정은, 2021)의 서울, < 아워 바디 >(한가람, 2018)의 한강공원, < 썬더버드 >(이재원, 2021)의 정선과 같은, 여전히 사람들이 걷고 대화하며 싸우고 도망치고 뒤따를 수 있는 영화적 풍경으로서의 한국은 여전히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충무로가 그것을 잊어버렸다는 인상을 반복해서 주고 있을 뿐이다. 물론 한국에서 활동하는 영화평론가이기에 한국영화에 관해 말해야 한다는 의무가 존재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셔널 시네마의 기획을 재차 가져와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국에서 살아가며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공간을 담아내는 영화를 보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이 있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는 다른 예시일지도 모르지만, 엄태화 의 < 콘크리트 유토피아 >(2023)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장르적 틀 안에서 서울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데 일정 부분 성공한다. 이것은 마치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2020)나 “호라이즌 제로 던”(2017)과 같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게임에서 시애틀이나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과도 유사하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지진 이전의 서울을 아주 짧게만 보여준다. KBS의 아카이브 다큐멘터리 <모던 코리아> 제작진이 참여한, 한국 아파트의 역사를 짧게 보여주는 푸티지 영상은 아파트로 뒤덮인 서울의 풍경으로 이어진다. 이윽고 저 멀리서부터 마치 밭이 갈리듯 땅이 뒤집히기 시작한다. ‘도큐먼트’로서의 아파트 이미지와 CGI로 그려진 아파트 숲의 연결은, 비록 그것이 완전한 폐허를 그려낼 뿐인 그린스크린 촬영의 결과물일지라도 연속성을 지닌다. 아주 짧게만 등장하는, 민성( 박서준 )이 대지진을 목격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그곳은 지하철 3호선 금호역과 약수역 사이의 도로로, 실제 도로의 건물들을 스캐닝하여 제작되었으며, 저 멀리서 장충체육관의 건물이 날아오는 것을 볼 수도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중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그려내는 세상은 모두 세트와 그린스크린 촬영을 통해 제작되었으며 로케이션 촬영이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따라서 이 영화를 두고 ‘영화의 다큐멘터리적 기능’을 이야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이 영화는 <경마장 가는 길>이 그러한 것처럼 1990년대 초 종로의 길거리와 서초동의 모습을 담아내지도, <괴물>이 그러한 것처럼 2000년대 중반의 한강공원을 담아내지도 않는다. 다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실제의 지리적 공간을 끌어와 장르적 장소로 재가공한다. 물이 말라버린 한강 바닥에 넘어져 있는 동호대교, 금호동의 황궁아파트에서 한강을 건너 마주한 압구정의 백화점, 아파트에서 도망친 민성과 명화( 박보영 )의 뒤로 보이는 구 서울역과 그들이 도착한 명동성당. 물론 이 이미지들은 (서울역 정도를 제외하면) 명시적인 이미지로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그 공간들을 익히 알고 있으며 서울의 지리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만 그 공간들이 드러날 뿐이다. 당장 비슷한 (그리고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고 처음엔 알려졌었던) < 황야 >(허명행, 2023)를 떠올려보면,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작동하는 지리학이 보다 구체적임을 감지할 수 있다. 나아가 지난 몇 년 간 재개발 이슈가 존재해온 금호동의 맥락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황궁아파트의 생김새 자체가 익숙한 이미지로서 다가오기도 한다. 지난 60년 동안 아파트는 한국영화의 중요한 장소였다. *주1 아파트는 성공의 트로피이자 욕망의 대상이었으며, 중산층 거주 형태의 기본형이자 일상의 장소였고, 종종 비밀스럽고 두려운 사건들이 발생하는 장르적 장소였다. 영화 속 아파트의 모습, 아파트가 그려지는 방식을 상상하는 것은 한 편의 영화가 그려내는 시대상을 압축적으로 묘사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포스트-아파트-아포칼립스라 부를 수 있을법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오래된 아파트와 신축 아파트가 바로 옆에 붙어 공존하는 서울의 특수성을, 실제의 지리학 위에 펼쳐냄으로써 ‘한국’이라는 맥락을 획득한다. 나는 이 영화가 대단한 걸작이거나 수작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가 아파트로 상징되는 한국의 부동산 자본주의를 너무 단순하게만 바라본다고 생각한다. 다만 < 해운대 >(윤제균, 2009)나 < 곤지암 >(정범식, 2018)에서 실제의 지역을 분리해 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콘크리트 유토피아> 또한 그렇게 하고 있을 뿐이다. 가상의 지명을 내세우고선 실제의 지도 위를 가리킨다거나 한국의 바깥에서 한국성이라는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영화들과 달리, 어쨌거나 한국을 영화적 토양으로 삼아보려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 흥미로울 뿐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비춘 아파트 그러니까 이 글은, 결국 한국영화가 뭔지 여전히 모르겠는데도 ‘한국의 영화평론가’라는 이름표로 활동하고 있는 누군가가 스스로에게 재차 질문하는 글이다. “K-”라는 접두사가 붙은 일련의 영화들 속에서,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이름 아래 한국을 벗어나고자 하는 영화들 사이에서, 이 비천한 영화들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한국을 발견할 수 있을까? *** 주1. 『아카이브 프리즘』 vol. 13, 한 국영상자료원, 60~82쪽. 박동수(영화평론가) l 보고 듣고 읽고 쓰는 일을 반복하는 사람. 2021년 독립영화비평상 당선.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회원.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공저) 집필.
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인 구술사’ 시리즈를 바탕으로, 자료가 없어 실체를 알기 어렵던 사건과 인물,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인의 입을 빌려 흥미진진하게 전달합니다. 흔히 ‘망작’이라고 불리는 영화들이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말 전설적인 망작이 되어 오래도록 ‘제일 망한 영화’ 리스트에 오르내리는 방법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컬트로 재정의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당시에는 망한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그 ‘망했다’라고 평가되는 지점이 후대에는 묘한 매력이 되어 이를 즐기는 팬들에게 숭앙받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할리우드 영화 역사에서 < 인천(오! 인천) >(테렌스 영, 1981, 이하 <오! 인천>)은 전자에 해당하는 영화이다. 천문학적 제작비가 들어갔지만, 개봉 이후 비평계와 대중 양쪽 모두로부터 차갑게 외면당했고, 제3회 골든 라즈베리상 최악의 작품상을 수상하며 그 명성에 정점을 찍었다(최악의 작품상 외에도 최악의 남우주연상, 최악의 감독상, 최악의 각본상 등 4관왕에 올라 모름지기 당해 연도 최악의 영화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렇다고 이 글을 통해 섣불리 <오! 인천>을 컬트로서 재평가하려 하거나, 혹은 그럼에도 영화팬들에게 감히 시간을 들여 한 번 즈음 볼 만하다고 추천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피할 수 있는 것은 그냥 피하는 것이 좋다. 여기서는 오직 <오! 인천>을 둘러싼 외부적인 기록들, 그리고 여기에 참여했던 한국영화인들의 구술을 통해 할리우드 역사상 최악의 영화로 기록된 이 작품이 한국영화계에 몰고 온 변화와 그것이 이후 한국영화들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 할리우드에서도 역대급의 제작 규모 처음 <오! 인천>을 제작한다는 이야기는 1978년 3월 신문기사를 통해 국내에 알려졌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남궁원 , 윤미라 *주 1 등 20여 명의 배우가 출연하고, 미국의 원웨이프로덕션과 일본의 동보영화사가 제작에 참여하며 각본은 <그린베레>(존 웨인, 레이 켈로그, 1968), < 프렌치 커넥션 >(윌리엄 프리드킨, 1971)의 원작자인 로빈 무어와 폴 사베지가, 감독은 < 서부로 가는 길 >(앤드류 V. 맥라글렌, 1967), <철인들>(앤드류 V. 맥라글렌, 1969)과 같은 서부영화를 주로 만들었던 앤드류 V. 맥라글렌이 담당하기로 했다. 그렇게 5월부터 촬영에 들어간다는 영화는 그러나, 5월이 한참 지나도록 촬영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7월이 되자 이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이 들려왔다. 기술협조를 하기로 한 일본의 동보영화사 직원들이 파업에 들어갔다든가, 시나리오에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이는 단순한 소문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촬영 개시를 지연시킨 가장 큰 문제는 시나리오였다. 당시 각색을 담당했던 로빈 무어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에 대해 “2시간 안에 담아내기에 너무 방대한 이야기였다. … 등대가 인천상륙작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구성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고 결국 다른 작가들이 투입되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주2 결국 1978년 5월에 촬영에 들어간다던 영화는 무려 1년을 더 기다려 1979년 5월, 새로 영입한 감독이 한국을 방문하며 다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1년을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교체된 감독이 무려 테렌스 영이었다. 테렌스 영은 국내에서 ‘007 시리즈’로 명성이 나 있는 감독이었다. 한국에서는 1965년에 < 007 제2탄 - 위기일발 >(테렌스 영, 1963)이 007 시리즈 가운데 가장 먼저 개봉했다. 실제 007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이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트렌드에 민감한 수입업자들은 서둘러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 007 살인번호 >(테렌스 영, 1962)를 수입해 개봉했을 정도였다. 테렌스 영이 감독한 마지막 007 시리즈 < 007 썬더볼작전 >(테렌스 영, 1965)이 국내에 개봉하고도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테렌스 영은 여전히 국내에 다수의 팬을 거느리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영화 촬영을 위해 방한한 테렌스 영 감독이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6.25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 한국이 공산당에 침략당했다는 것을 세계 모든 나라에 알리게 될 것(《경향신문》 1979.5.5)”이라는 발언을 한 이후, 북한에서 《로동신문》의 논평을 통해 이 영화가 “악랄하게 중상모독, 헐뜯는 반동 내용(《경향신문》 1979.5.16)”이라고 비난하며 제작 중지를 요구해왔다. ‘테렌스 영’이라는 스타 감독의 참여에 더해 친한(親韓)적인 그의 발언,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에 이르기까지 확실하게 화제성을 확보하면서 <오! 인천>에 대한 기대는 더욱 높아졌다. 뒤이어 해외 출연진도 속속 명단이 발표됨과 동시에 배우들이 한국에 도착했다. 물론 제일 관심을 끄는 것은 과연 누가 ‘맥아더 장군’의 역할을 맡을 것이냐였다. 놀랍게도 그 역은 영국의 영화배우 로렌스 올리비에에게 돌아갔다. 로렌스 올리비에는 < 햄릿 >(로렌스 올리비에, 1948), < 헨리 5세 >(로렌스 올리비에, 1944), < 리차드 3세 >(로렌스 올리비에, 1955) 등 셰익스피어 작품을 기반으로 한 영화의 주연을 맡아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배우이고, 1947년에는 배우로서는 처음으로 영국에서 기사 작위를 수여받기도 했으며(국내 신문기사에서도 로렌스 올리비에를 지칭할 때는 꼭 올리비에 ‘경’이라는 호칭을 붙여주었다),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빅터 플레밍, 1939)와 < 애수 >(마빈 르로이, 1940),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엘리아 카잔, 1951) 등의 작품으로 국내 많은 팬을 가지고 있었던 비비안 리의 연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때문에 그가 ‘맥아더 장군’의 이미지에 잘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런 ‘로렌스 올리비에’가 그 역을 맡는다는 것 자체로 이 영화는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스케일을 가지게 되었다. 영화 촬영이 시작되자, 미국에서 공수해온 장비와 동원된 스태프, 엑스트라의 스케일이 또 한 번 한국 측 스태프들과 언론, 촬영현장을 구경하러 온 시민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당시 촬영 현장의 분위기와 이 영화의 규모는 이를 상세히 설명한 신문 기사와 구술에서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6.25 당시 피난민들의 행렬을 재현한 촬영 현장(《동아일보》 1979.9.5) 테렌스 영 감독을 비롯해서 로런스 올리비에 경, 재클린 비세트, 벤 가자라 등 세계 정상의 배우들이 우리나라에 몰려와 촬영 중인 영화 <오! 인천>은 스태프 캐스트 못잖게 엄청난 물량 작전으로 계속 화제를 뿌리고 있다. … 현역미군 등 5백명의 엑스트러와 탱크 4대, 장갑차 2대 등이 출연한 서울탈환 장면은 당시 서울 거리와 가장 비슷한 인천 신포동에서 2시간 가량 진행됐다. … 지난 6월 28일 촬영을 시작한 영화 <오! 인천>은 용인 민속촌을 비롯하여 경기도 파주군 법원리, 강원도 횡성비행장, 경북 왜관, 인천, 서울 등을 돌며 제작됐다. 이중 6.25 당시 낙동강 철교 폭파를 재현한 촬영에는 피난민 차림의 엑스트러 1천 3백명, F86 등 전투기와 탱크들이 동원돼 13일 동안 6대의 카메라에 담았다. *주3 인천에서도 폐기된 수인간(水仁間) 미니열차가 다시 모습을 나타냈고 영흥도에 3천만원을 들여 등대를 세우기도 했다. 특히 인천상륙작전 모습은 인천 제2부두에서 촬영됐는데, 군함 12척과 상선 10여척이 동원돼 장관을 이뤘다고. … 이 영화는 당초 1천8백만 달러(90억원)의 제작비가 계상되었으나 제작기간의 지연 등으로 이미 3천5백만 달러(1백75억원)가 투입됐단다.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물량이 동원된 이 작품에는 6명의 주연급 배우(남궁원 포함)와 테렌스 영 감독이 쓸 캠핑카 8대, 토일렛카, 링컨 컨티넨털 승용차, 지프 2대가 미국에서 운반됐다. 캠핑카는 침대와 화장실, 식당과 에어컨 장치가 돼 있어 촬영현장에서 주연 배우들이 쓸 수 있도록 했다. 또 높이 10m까지 올라가는 크레인 카도 제작자인 이탈리아인 기사가 직접 가져와 운전하기도. 이밖에 진행을 위해 1백30대의 차량이 국내에서 동원되고 영화에 등장할 40년대식 승용차 6대, 이승만 대통령이 당시에 쓰던 차와 동형의 크라이슬러, 그리고 탱크, 장갑차, 소제(蘇製) 무기 등이 미국에서 옮겨져왔다. 칠순의 로런스 올리비에 경을 비롯해서 재클린 비세트, 벤 가자라, 데이비드 젠슨(TV영화 <도망자> 주연), 리처드 라운트리, 일본의 미후네 도시로(三船敏郞) 등 세계적인 배우를 포함, 한국인 1백명, 미국인 50명, 영국인 30명, 이탈리아인 30명, 일본인 30명 등 스태프가 참가한 이 영화는 인적 구성에서도 국제적인 성격을 짙게 띠고 있다. - “<오! 인천> 로케 한창, 엄청난 물량작전 한국동란 재현(《경향신문》 1979.9.14.) ” 그때 내가 <오! 인천>을 보고, 카메라가 아홉 대가 다 뭐냐하면, 다 파나비전 카메라예요. 아리플렉스가 아니라. 미국에서 원 파나비전 카메라, 제일 좋은 카메라예요! ( 구중모 , 2015, 212쪽) *주4 그때 하얏트 호텔 2층 일체를 썼죠. 그때 뭐 복사하는 데도 있었고, 뭐 신기하게 여겼죠. … 우선, 이 장비가, 장비가 많아, 양이. 그리고 우리가 볼 수 없는 현대적인 장비. 특히 낮에 라이트를 킨다는 게, 이건 못 보던 거거든. ( 김호길 , 2016, 116쪽) *주5 그때 150대의 차가, 그러니까 자동차 배차하는 거 있잖아요? 배차요원을 홍콩에서 데려왔어요. 현장에서 차 관리하는 애가 스무 명. 또 뭐 관리하는, 여하튼 식당이 있잖아요? 식당이 두 팀. 얼마나 웃기냐면요,하얏트 호텔에서부터 문산까지 온다고 생각하면, 시내는 500미터, 긴 거리는 1키로마다 깃발을 꽂아놔요. 잊어먹을까봐. 한 팀이라도 늦게 나오면 안되잖아요. … 엄청난 돈이에요. 은행 차가 쫓아, 현장에서 줘. 은행 차가 다녔어. 얼마나 많겠어요. 그럼 스태프들한테 시간 당 현찰로 줘버려요, 엄청난 돈을. ( 박광남 , 2023, 112~113쪽) *주6 경북 칠곡군 왜관면에서 촬영된 다리 폭파 장면의 촬영 현장 (박광남 기증 자료) 중앙청 앞에서 진행된 서울 탈환 장면 촬영 현장 (박광남 기증 자료) 통일교, 그리고 영화에 쏟아진 혹평들 특히, 당시 <오! 인천>에 참여했던 국내 스태프들은 구술에서 공통적으로 외국에서 온 스태프들이 하얏트 호텔의 한 층을 통째로 빌려 사용했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서울 하얏트 호텔은 이 영화가 촬영되기 1년 전인 1978년 7월에 개장한 5성급의 미국 체인 브랜드 호텔이었다. 평소 한국영화 촬영을 다닐 때 “5천원짜리 여관방에서 댓 명이 한 방을 쓰는” *주7 환경에 익숙해져 있던 충무로 스태프들에게 최신식 시설이 갖춰진 호텔을 촬영 기지로 쓴다는 것은 꽤나 인상 깊은 일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한국에서의 촬영을 끝낸 촬영팀에게 새로운 문제가 되었다. 촬영팀의 출국을 앞두고, 하얏트 호텔의 숙박비 22,327,000원을 지불하지 못해 촬영 기자재 등의 유체동산에 대한 가압류 처분이 내려졌다. 당시 물가를 생각했을 때, 2천여만 원이라는 금액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지만 몇 백억의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에서, 외국인 출연자들의 주급을 매주 헬리콥터로 실어나르고, 스태프들의 일당 지급에 은행차까지 동원해가며 그때 그때 현찰로 지급하는 등 제작비를 쓰는 데에 아낌이 없던 영화 제작사가 호텔 숙박비를 내지 못해 가압류에 들어간다는 것은 분명 자금에 문제가 생겼음을 의미했다. 며칠 뒤 제작사와 호텔 측이 합의에 도달하며 가압류 기간이 연기되었다는 짧은 기사로 이 사건은 정리가 되었고, 촬영팀도 무사히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오! 인천>를 둘러싼 구설들은 끊이지 않았다. 먼저 한국 체류 당시 테렌스 영의 손목시계와 필름 1,345피트(당시 시가로 350만원 상당)를 도난맞은 사실이 뒤늦게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그러나 끝내 범인도 잃어버린 물건도 찾지 못했다). 그리고 1980년에 이미 모든 촬영을 다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개봉과 관련하여 아무 소식도 들려오지 않다가, 1981년 2월에는 이성구 감독이 재편집을 위해 미국으로 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런 소문이 돌고 있는 와중에 5월에는 워싱턴 케네디센터에서 미국의 상류층 인사들을 모아놓고 <오! 인천>의 비공개 시사회를 개최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그런데 시사회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케네디센터 주위에서 통일교에 대한 반대 시위가 일어나며, 영화에 대한 가타부타 평가는 없이 모든 관심이 ‘통일교’에만 쏠려버렸다. 비슷한 시기 국내에서도 <오! 인천>을 둘러싼 아주 미스터리한 사건이 발생했다. 1981년 8월 4일 용산구 원효로에 살던, 일명 ‘원효로 보살’로도 알려진 70대 노파가 그녀의 양녀⋅가정부와 함께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평소 유명 정치인들의 점을 봐주거나 복을 빌어주며 고위층과 인맥을 형성한 바 있고, 이를 통해 큰 부를 쌓았던 윤 노파가 살해당한 사건과 관련하여 재판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윤 노파의 <오! 인천>에 대한 투자 여부가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주8 이렇게 <오! 인천>에 대한 관심은 작품 자체에 대한 흥미보다는 자꾸 그 주변부로 옮겨가고 있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그 관심이 이 영화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확산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래도 개봉해서 흥행만 잘 된다면 이까짓 구설들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가장 먼저 대중에 영화가 공개된 것은 프랑스 칸에서였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제작사 측은 칸국제영화제에서 “25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 영화 제목이 새겨진 키트 등을 나눠주고 16일 시사회가 끝난 후 호화파티를 열었는데 구매희망자가 나타나지 않았다(《조선일보》 1982.5.19)”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신문 기사는 이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외면당한 원인을 통일교와 연관 짓고 있지만, 그보다는 전체적인 영화의 완성도 문제가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영화는 해외 영화시장에서 전혀 판매되지 않았고, 1982년 9월 17일 미국 내 상영만이 힘겹게 성사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혹평 일색이었다. 급기야 통일교 측에서는 영화제작팀 이름으로 《뉴욕타임즈》,《워싱턴포스트》, 《시카고 트리뷴》, 《LA타임즈》, 《뉴스 월드 인 뉴욕》, 《워싱턴타임즈》 등 6개 일간지 전면광고를 통해 “미국 기자와 평론가들이 <인천> 영화 자체의 가치는 평가하지 않고 이 영화의 특별후원자로서 문선명 목사의 이름만 강조하고 있는 데 대해 서글픔을 느낀다”라며 “영화 <인천>의 예술적 가치를 객관적 입장에서 냉정히 평가해줄 것을 미국 국민들에게 촉구(《동아일보》 1982.10.5)”했다. 그러나 영화 <오! 인천>의 흥행 실패를 통일교와의 연관성에서만 찾는 것은 오히려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럼 처음 제작 때부터 그토록 큰 대중적 관심을 끌어모았던 <오! 인천>은 왜 한국에서 상영되지 못했던 것일까? <벤허>보다 (제작비가) 더 많이 들었다고 그랬어, 그 작품이, <오! 인천>. 근데 한국에서 상영 못한 거는 뭐냐 하면 너무 북한을 우상화 시켰다는 거야, 영화를. 그래서 안된 거예요. (구중모, 2015, 216쪽) 영화가 안 되는 이유는 … 정치적인 거예요, 그게. 국방부에서 3일 공연을 했어요, 국방부에서만. 그래 그 시대에 그거야, 이북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공연 못하게 한 거예요. 그거 잘했으면 문선명이 자기 일대기를 하겠다고 그랬다고. … 다 영화제작사에서 잘못한 거야. 일개 장교가 비행기 타고, 한국에 들어올 때 이승만 대통령 등때기 탕탕치고 하는데, 그렇게 푸대접을 하는 것 같은 그런 장면은 사실 아니거든. 한국의 국익이 상하지. 그래서 나라에서 공연 못하게 했는데. 미국에서도 안 됐어. 전혀 안 됐어요. 한 일주일 하고 문 닫았어. (박광남, 2023, 154쪽) <오! 인천> 제작 당시 특수효과 담당 스태프로 참여했던 박광남은 이 영화가 국방부 내에서 시사회가 이루어진 이후, 한국에서의 영화 상영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기억했다. 만약 그의 기억이 맞다면 이 영화를 본 국방부 관계자들은 북한에 대한 미화는 둘째 치고, 일부 장면에서는 적군보다 더 나빠 보이는 데다가 *주9 전쟁 장면 내내 인민군 탱크를 향해 돌멩이를 던지는 민중들보다도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 한국군의 모습을 더 마음에 들지 않아 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영화 속에 드러난 한국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나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고증 실패를 모두 눈 감아 준다고 하더라도 앞서 이야기했던 구설들로 인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쌓인 영화를 국내에서 상영하겠다고 나서는 업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무려 4,600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어간 이 대작 영화는 조용히 사라졌다(IMDb 기준, 이 영화를 통해 벌어들인 총수익은 520만 달러에 불과하다. 이중 오프닝 수익이 230만 달러로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여기서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같은 해 1천만 달러를 들여 제작한 영화 < 이티 >(스티븐 스필버그, 1982)는 미국 내에서 그해 흥행 1위를 차지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약 8억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다). 한국영화계에 <오! 인천>이 남긴 것들 하나의 작품으로서 <오! 인천>이 가진 수명은 여기에서 끝이 났지만, 한국영화계에서 이 영화는 또 다른 방향으로 계속해서 그 영향력을 이어갔다. 먼저 당시 <오! 인천>에 참여하면서 충무로 스태프들은 소품⋅의상⋅특수효과 등에 쓰일 재료들을 한 곳에 모아놓을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오! 인천> 촬영 이후 생긴 촬영 소품과 재료들을 같이 관리할 곳이 필요했다. 그때 <오! 인천>에서 재료를 내가 많이 받았거든. 그걸 그냥 활용했으니까. …<오! 인천>이란 영화, 그거 끝나고 인저 삼우회를 결성해가지고, 의상⋅효과⋅소품 해가지고 뚝섬에 큰 창고 건물을 직접 얻어 가지고 그걸 나눠서 썼는데, 1980년도에 큰 화재가 나면서… (김호길, 2016, 103쪽) 그때 어디냐면 뚝섬. 거기 우리 불났어. (웃음) 완전히 탔어. 의상도 완전히 타버리고. 의상하고 우리하고 창고를 하나로 같이 있었거든. 그때 <오! 인천>에 갖다 놓은 물건도 있었구나. 거기 사다리 같은 거, 그 좋은 것들이 몽창 다 탔어. 무기도 몽창 타고. 화약은 거기 안 뒀거든. (박광남, 2023, 127쪽) 구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창고에 화재가 발생해 많은 촬영 소품과 의상, 효과 재료들이 소실되기는 했지만, 당시 충무로 인력들이 <오! 인천>에 참여하며 배웠던 것들이 함께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이후 한국의 전쟁영화, 근현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나 규모가 큰 영화를 촬영할 때 자신이 배웠던 것들을 최대한 살려 활약했다. 이게 촌길에 철조망이 깔려 있으니까 우체부가 자전거 끌고는 못 가는 거야. *주10 “책임지겠습니다. 지나가세요.” 그랬지. 그게 뭐냐 하면은 가짜 철조망이거든. 제가 만든 거예요. 그게 79년도 <오! 인천>이라는 영화 때문에, 거기서 그걸 배운 거야. 이렇게 해서 만드는구나. … <프로페셔날>인가? 전쟁터 나오는 장면에서 라스트가 막 가다가 철조망에 걸려 죽는 게 있어요. ‘야, 저거 되게 아팠겄다. 이렇게 어떻게 했을까’ 했는데, 바로 그런 거야. 그래 인제 79년도 <오! 인천> 영화를 하면서 배운 게 많았고. (김호길, 2016, 133~134쪽) 상륙작전 하는데, 카메라 아홉 대가 필요한 거예요. 거기서 그런데, 헌팅을 가서 어떻게 했냐면, 봐요. 거기서 뭘 배웠냐? 카메라 아홉 대를 어떻게 배치하느냐는 거를 하루종일 하는 거야. A카메라 이렇게 부감대로 놓고, B카메라 하나, 둘 막 바꿔놓는데, 한국사람 같으면 그걸 연출을 못해. … 한국에서 만약에 이걸 동시녹음을 하게 되면 한 달은 더 찍어야 돼. 그런데 하루에 딱 끝나는 거야, 그날에. 예행하고 정식촬영할 땐 하루에 다 끝나더라고. 또 중요한 게 뭐냐, 폭탄이 터지는데 걔들은 각도를 다 살려놔요, 터지는 각도. 한국 특수효과들은 그걸 다 배우는 거예요, 거기서. 그러면 거기서 폭탄이 터지는 순간에 여기 카메라가 안 보일 거 아니냐고, 응? *주11 고런 머리를 다 써놨어요. 그러니 아홉 대라는 게 말이 쉽지 이걸 연출자가 계산을 할 정도면. (구중모, 2015, 212~213쪽) < 용가리 > 할 때 몸에 폭탄을 터트려야 하는데, 실제 화약이 안 좋아서 막 불이 붙기도 하고 그랬어요. *주12 <오! 인천> 할 때 보니까 미국사람이 완벽하게 하는 거, 미국사람들이 와서 터득을 했어요. 터득하면서 저는 저 나름대로 그거를 다시 응용을 해서 어떻게 하면 좋은지 많이 습득을 했죠. … <오! 인천>이란 영화, 외국사람 특수작업 같이 했기 때문에 많이 배웠고, 저희도 많이 응용했고. 저 나름대로도 그 사람들 기술 플러스 우리 기술을 어느 정도 포함시켜서 더 좋게 됐지 않았느냐 그렇게 보기도 하거든요. ( 이문걸 , 2006, 40쪽) 그러나 이들의 구술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들이 약 20여 년(구술 시기에 따라 길게는 40년)이 흐른 뒤에도 <오! 인천> 촬영에 참여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에야 많은 한국의 영화인들이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그 안에서 함께 작업을 하거나 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1979년 당시 한국영화계의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오늘날 블록버스터 급이라고 할 수 있는 엄청나게 큰 스케일의 영화에 참여하며, 할리우드의 기술과 시스템을 직접 경험했다는 것은 분명 무시할 수 없는 그들만의 경력이다. 그리고 이때 참여한 스태프들이 모두 <오! 인천> 이후 더 많은 한국영화 촬영현장에 불려 다니며 1980~1990년대 내내 활동했다는 것이 그러한 사실을 방증한다. 저희가 <오! 인천>에서 영화발전에, 특수효과에 많이 발전시켰다고 자부합니다.(12쪽) … 한국영화계가 <오! 인천>이라는 거를 하기 위해서 차량이라든가 기동력이라든지 이런 거를 많이 배웠어요. 어떻게 보면 영화는 상영되지 못해도, 영화 개념적으로 많이, 영화 바뀐 것이, 제작자 바뀐 것이 <오! 인천>이지 않았나.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이문걸, 2006, 21쪽) ※ 인용 구술 (인용된 페이지는 각 구술 뒤에 표기) 심혜경, 『2006년도 원로영화인 구술채록 자료집: 이문걸 편[특수효과⋅소품⋅미술]』, 한국영상자료원, 2006. 배수경, 『 2015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합작영화 2 김정란⋅이남기⋅구중모 』, 한국영상자료원, 2015. 이정아, 『 2016년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생애사> 1권 김호길 』, 한국영상자료원, 2016. 남기웅, 『2023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생애사> 1권 박광남』, 한국영상자료원, 2023. *** 주1. 윤미라는 후에 출연을 거부했다. 그리고 윤미라가 연기하기로 했던 배역은 리디아 레이(Lydia Lei)에게 돌아갔다. 이 영화에 참여했던 배우 남궁원의 구술에 따르면 당시 한국 측 출연 배우들은 직접 테렌스 영을 만나 오디션 비슷한 것을 봤는데, 이때 배역에 맞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까다로운 조건들을 제시했다고 한다. 주2. “<Inchon> Trivia”, IMDb, < https://www.imdb.com/title/tt0084132/trivia/?ref_=tt_trv_trv >. 주3. 신문 기사에서 상술한 장면은 경북 왜관에서 촬영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완성된 영화를 봤을 때 해당 장면은 1950년 6월 28일에 있었던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을 다룬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구술자들 역시 기억에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이 장면을 ‘한강 다리 폭파’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당시 촬영기사로 참여했던 구중모의 구술에서는 테렌스 영이 원래 이 장면 촬영을 위해 실제 제3한강교를 폭파시키고 싶어했지만, 여건이 맞지 않아 경북 칠곡군 왜관면에 있는 다리를 폭파시킨 뒤 촬영했다고 말했다. (배수경, 『2015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주제사>: 합작영화 2 – 2권 김정란 이남기 구중모 편』, 한국영상자료원, 2015, 215~216쪽.) 주4. 구술자 구중모 는 <빨간 마스크의 여인>(김인수, 1971)을 통해 데뷔하여 <티켓>(임권택, 1986), <결혼이야기>(김의석, 1992) 등의 영화에 촬영감독으로 참여하였으며, 1986년에는 <씨받이>(임권택)로 대종상 촬영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15년 <합작영화> 주제사를 통해 <오! 인천>에서 한국 측 촬영팀으로 참여했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주5. 구술자 김호길 은 1960년대 연출부로 영화계 입문하여, 1968년 임권택 감독의 <몽녀>를 시작으로 한국영화에서 소품 담당 스태프로 일했다. <오! 인천>에서도 소품 스태프로 참여했다. 주6. 구술자 박광남 은 1950년대 후반 영화계에 입문, 1960년대 본격적으로 특수효과 스태프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1980년대부터는 CF, TV드라마, 연극,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특수효과 전문가로 활약했다. <오! 인천>에서 특수효과 담당 스태프로 참여했다. 주7. 이정하, 『2016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1권 김호길 편』, 한국영상자료원, 2016, 73쪽. 주8. 사건의 내용이 다소 복잡한데, 당시 재판을 받던 피의자가 경찰에 의한 강압적인 수사와 고문이 있었으며, 자신의 자백은 모두 이 고문으로 인한 것이었다며 억울함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에 피의자의 결백에 대한 근거로 피해자의 사망시각이 중요한 쟁점이 되었는데,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경찰이 주장하는 사망시각에 피해자가 <오! 인천>의 한국 제작총괄이었던 박경도와 원웨이프로덕션의 대표 이시이 미츠하리를 만났다는 증언이 나온 것이다. 피의자 측에서는 윤 노파가 <오! 인천> 제작에 20억의 거액을 투자했고, 이를 통해 한국 측 상영권을 확보하고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원웨이프로덕션 측에서 증인으로 나왔던 박경도는 이러한 사실을 모두 부정하며, 그들이 윤 노파를 만나고자 했던 것은 단지 ‘영화가 검열을 무사히 통과하고, 흥행이 될 수 있도록 불공을 부탁드리고자’ 했으나, 약속한 날 윤 노파는 나오지 않아 만나지 못한 채 이시이 씨는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증언했다. 주9.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인도교 폭파 장면이다. 미군 장교의 부인이 자신의 차량 안에 한국인 어린이와 소녀들을 가득 태우고 다리를 빠져나가는 도중, 미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국군은 다리를 폭파시킨다. 끊어진 다리 끝에 걸린 차량 안에서 모두 무사히 구출되기는 하지만, 이것도 주위 피난민과 미군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주10. 영화 <뽕>(이두용, 1985)을 촬영할 당시 뽕밭에 친 철조망을 보고 마침 촬영장 쪽을 지나가던 우체부가 자전거를 멈추고 섰다는 의미이다. 주11. 어떤 각도에서 폭탄이 터져도 9대의 카메라 중 어느 카메라에도 다른 카메라가 잡히지 않도록 구도를 잘 맞춰놓았다는 의미이다. 주12. 영화 <대괴수 용가리>(김기덕, 1967) 촬영 당시 사람의 몸에 작은 화약을 넣고 터트려 총에 맞는 듯한 효과를 내야 했는데, 그 기술이 부족해서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대괴수 용가리> 촬영 때는 일본의 특수효과 기술자들을 초대해 함께 작업을 했었는데, 본문과 이어지는 구술에서 일본 특수효과 기술자들도 ‘미니어쳐’ 전문가들이라 당시에는 작은 화약을 활용한 특효 기술을 잘 배우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구술자 이문걸 은 박광남과 함께 <오! 인천>에서 특수효과 담당 스태프로 참여했다.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라고 일컬어지는 프로레슬링은 독특한 형태의 공연 예술이며, 로마의 검투사 대결에 비견할만한 남성성의 신화를 과시하는 이벤트이다. 연행자와 청중이 합의한 사이비 스포츠이자 대중문화의 한 갈래로서 프로레슬링을 통해 전달되는 전언은 ‘남자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확실한 암시를 준다. 영화 < 반칙왕 >(2000)은 이 같은 프로레슬링의 함의 안에 IMF 경제위기가 야기한 여파를 깔아두고 직업인으로서 이중생활을 하며 평범한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소심한 은행원을 소재로 한 이야기이다. < 조용한 가족 >(1998)으로 한국 장르 영화의 지형에 변화를 몰고 온 김지운 감독이 얼마나 창의적인 이야기꾼이었는가를 입증하는 색다른 블랙코미디였다. 주인공 임대호(송강호)는 위기의 남자이다. 일상생활의 굴욕과 권태로부터의 안도와 더 큰 굴욕을 겪을 기회를 동시에 찾는 이 사내는 직장에서의 전망이 그리 밝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의욕도 없다. 실적을 쌓아서 연명해야 하는 직업적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은행의 부지점장(송영창)은 저조한 실적을 빌미로 그를 괴롭히며, 여자들은 그를 무시하고, 아버지는 그가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엉뚱하고 유치한 이 남자의 성격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반칙왕>의 핵심 서사는 자존감을 가진 어른이 되기 위한 대호의 여정에 동행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현대적이고, 고도로 엄격하며, 궁극적으로 온유한 금융의 세계에 견주었을 때 프로레슬링은 저급하고 극단적인 천박함으로 가득 차 있다. 마스크를 쓰고 레슬링을 하는 대호가 추구하는 남성다움의 시뮬라크르는 내러티브 안에서 양극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으로 그는 은행 고객들의 비위를 맞추는 복종적인 감성의 소유자이나 마스크를 쓰고 링에 올랐을 때에는 약속과 규율을 위반하는 반칙 레슬러이다. 대민 봉사 및 사무 조력에 익숙한 일상의 대호는 자신의 옛 영웅인 울트라 타이거 마스크 가면을 쓰고 반칙왕이 됨으로써 내성적인 패배자에서 폭력적인 무법자로 변신한다. 새로운 페르소나의 가면을 쓴 그가 열광적인 대중들의 반응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그 자신도 알지 못했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된다. 평소에는 소심하고 싸움을 기피하는 성격인 반면 반칙왕으로써 대호는 호전적인 싸움의 신이 된다. 헤드락을 걸고, 손가락으로 눈을 찌르면서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는 대호의 이중생활은 한 장면에서 엘비스 프레슬리 코스프레를 하며 링 위에 선 모습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반칙왕>의 흥미로운 지점은 이 완벽한 시뮬라르크의 세계에서 프로레슬러들이 배우가 하는 일과 비슷한 과업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는 경쟁의 과정에 본래 정체성으로부터 빠져나와 자신의 이미지를 철저하게 가꾸고 가상의 시나리오에 따라 연기를 해야 한다. 이는 허구의 드라마 안에서 배우가 자신의 캐릭터를 발전시키는 과정에 비견할만하다. 마스크 퍼포먼스가 대호의 성격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묘사하는 김지운의 서술은 흥미롭다. 그의 나약하고 무기력하며 굴욕적인 일상과 비교했을 때 반칙 레슬러로의 변신은 자존심과 자존감을 향상시킨다. 따라서 개인은 현실 안에서의 열성 페르소나보다 영향력이 있는 수행적 페르소나를 선호하게 된다. 이러한 요소는 <반칙왕>의 코미디 코드에서 핵심이 된다. 가면이나 변장이 왜소한 자아를 방어하는 심리적 보호막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정립된 심리학의 가설이지만, 일상에서 자신감이 떨어지는 대호는 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마스크를 쓰고 코치의 딸 민영(장진영)과 데이트할 때조차도 마스크의 힘을 빌린다. 이야기의 밑그림을 제공하는 시나리오에서 은행 부지점장은 비열한 수단을 통해 관객에게 두려움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려는 악한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는 노골적으로 규칙을 위반하고, 경기 범위 밖에서 상대를 공격하고, 의도적인 부상을 입히고, 때로는 청중을 위협하기도 한다. 부지점장은 이 모든 악행, 내지는 그 이상의 악행을 저지르는데, 김지운은 이를 ‘공포의 헤드락’으로 묘사하며 악한의 시그니처 동작을 서사의 메타포로 만든다. 그의 독재적인 행동과 타인을 괴롭히는 신체적 억압은 비즈니스에 대한 냉혹한 통찰력. 자유로운 개인에 대한 잔인하고 굴욕적인 처벌을 특징으로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의 반칙은 합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 대호에 대한 부지점장의 억압적인 처우는 스토리에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는 <반칙왕>이 세기 전환기 한국의 경제위기를 바탕으로 한 우화적인 코미디임을 일깨워준다. 주지하다시피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한 업종 중 하나는 금융 업계이며, 이 환란의 시기 동안 은행 직원들은 실적과 과업에 과도하게 집착했을 뿐 아니라 오래되고 부패한 규칙들을 군말없이 따라야 했다. 현대화로 인해 국가는 새롭고 대안적인 문화적 이상을 환영할 수 있지만 은행과 같은 해묵은 기관은 여전히 검증된 계층적 비즈니스 문화 형태를 고수해 왔다. 이러한 코드 하에서 개인이 경영진의 억압에 저항하기 시작할 만큼 자아가 충분히 발달하면 조직에 역효과를 낳고 따라서 조직의 기능에 해를 끼치게 된다. 부지점장으로 특정된 악한의 성격화는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대호와 부지점장의 갈등 구도를 TV 레슬링 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영웅 vs 악당의 구도로 치환한다. 대호는 적어도 승리하기 위해 세상의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적인 약자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반칙왕>의 파괴적 에너지는 반칙의 황제가 가장 위대한 싸움을 위해 링으로 향하는 종결부에서 절정에 오른다. 사각의 진혼곡’으로 이름 붙여진 영화의 마지막 챕터로 진입하기 전, 우리는 어어부밴드가 부르는 노래 ‘사각의 진혼곡’을 듣는다. “저기 왼쪽 구석에 주전자 바라보다, 일그러진 자신을 보네, 샌드백 흔들리고 흩날리는 먼지를, 혀에다 듬뿍 바르네 ... (중략)... 오버 액션 구경꾼 오버 액션 레슬러, 울트라 썬더 파워 붐 그의 이름은 레슬링 스타”로 이어지는 가사는 초라하고 내성적인 한 남자가 울트라 썬더 파워를 뿜어내는 레슬링 스타로 변신하는 과정을 예찬한다.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20분 동안 김지운은 스파게티 웨스턴에 등장할법한 상투적인 음악과 함께 대호와 유비호(김수로)의 긴장된 대결을 연출한다. 상황을 기술하는 쇼트의 기능에 관련하여 이 시퀀스는 다양한 옵션을 구사하는 연출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탈의실과 복도를 가로지르는 화려한 스윕 쇼트, 신체 연기를 통해 슬랩스틱의 터치를 부여한 배우 송강호의 경이적인 육체 액션은 프로레슬링의 운동성을 인상적으로 묘사하면서 대미를 장식한다. 대호는 주먹을 치켜들고 앞으로 돌진하여 오랜 시간 수련한 백 드롭 기술을 시전하면서 링 너머에 사뿐히 착지한다. 이 비장한 순간조차 슬랩스틱을 유지했다면 영화의 진성성이 의심받았을 수 있었지만 여기엔 참된 레슬링 기술이 전시되어 있다. 텔레비전에서 보는 레슬링은 증폭된 신체 타격과 현란한 카메라 워크로 감각적 과부하를 제공하지만 여기서는 좀 더 절제되고 위엄 있는 안무를 선호한다. 이 신의 하이라이트는 유비호에 의해 대호가 쓴 가면이 찢기고 두 대결자가 링 바깥으로 굴러떨어져 계획하지 않은 난투극을 벌이는 장면이다. 합을 맞추지 않은 마구잡이 싸움이 끝난 뒤 대호의 얼굴 위로 다시 한번 어어부밴드의 ‘슬픈 대호’가 흐른다. 가는 선율이 고통을 가르고 우울의 가면이 벗겨진 대호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자신만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 링 위에서 사력을 다하는 대호의 페르소나는 무참스런 모양으로 벌거벗겨진다. 익살과 페이소스가 가득한 <반칙왕>은 진실된 삶 혹은 자신이 바라는 모습대로 살지 못하는 삶을 전제로 한 만큼 표층과 심층의 합일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원적 열망을 다룬다. 마스크를 쓰는 행위를 통한 자아의 완성에 관한 이야기에서 가면은 그 안에 진짜 얼굴을 감춘 은폐의 도구이지만 숨겨진 야성을 되찾는 데 도움을 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대호는 말끔한 정장을 입고 은행으로 출근하는 길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이제 막 만개한 이중생활에 만족하며,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그의 카타르시스적인 여정은 직업적 세계의 속박을 초월하려는 소시민의 헛된 시도와 규율의 지배로부터 탈주하는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 안에서 울트라 썬더 파워의 가능성을 찾아낸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6.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