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메모리즈
- 감독
- 김지운
- 제작년도
- 2002
- 출연
- 김혜수, 정보석, 문정희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한국영화 황금기 20년의 역사를 함께 하다 셀은 2003년 6월25일 황효균·곽태용 대표가 설립한 특수분장 업체,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이다. 두 대표는 세포의 기본 단위이자 배터리의 최소 에너지 단위를 뜻하는 의미를 담아 회사의 이름을 지었다. 한때 같은 특수분장 회사에 다녔던 동료인 두 대표는 박찬욱 감독의 < 쓰리, 몬스터 > 중 단편 <컷>을 필두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해, 이후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최동훈, 김용화, 나홍진 등 한국영화의 내로라하는 창작자들이 신뢰하는 동료로 자리 잡았다. 분장 및 더미·애니매트로닉스·특수소품·세트팀 등을 운영하는 국내 대표 특수분장 업체 셀의 현재 인원은 총 20명으로 해마다 약 10여개 이상의 작품에 참여해 지금까지 170여 작품에서 활약해왔다. < 친절한 금자씨 > < 도둑들 > < 부산행 > < 신과 함께 > < 기생충 > 등의 주요 미장센을 상상의 영역에서 물리적 실체로 구현해낸 셀의 핵심 가치는 분장과 소품, 애니매트로닉스에 이르기까지 영화를 위한 테크니컬 아트의 전천후를 담당하는 종합 스튜디오로서의 역량이다. 회화를 전공한 황효균 대표는 분장 및 더미, 공학을 전공한 곽태용 대표는 애니매트로닉스가 전문 분야다. 두 대표의 진두지휘하에 더미 전문가인 이희은 이사, 실장 3인(박영무, 박신영, 이효응), 팀장 2인(이고운, 박소연) 외 12명의 팀원들이 3개 층으로 구성된 메인 작업동에서 협업하고 있다. 황효균 대표는 24년, 곽태용 대표는 22년 경력의 베테랑이며 이희은 이사를 비롯한 실장급 직원들 모두 15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작업동 디자인실에서 작업중인 팀원들 셀 스튜디오는 설립 당시부터 주5일제 근무를 시행, 현재 주 40시간 일하고 있다. 불가피하게 영화 현장에 나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저녁과 휴일을 보장해 직원들이 자기계발을 병행하며 작업에 섬세히 몰두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국내 여타 특수분장 업체와 비교해 직원 수가 많은 것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부산행>과 <킹덤>을 거쳐 SF 장르에 도전하다 설립 이후 긴 시간 쉼 없이 성장해온 셀은 김지운 감독의 < 달콤한 인생 >에서 총격 신 더미를, < 인류멸망보고서 > 중 <천상의 피조물>에서 로봇 캐릭터를 구현하면서 역량을 한층 강화했다. 카이스트 로봇업체에서 억대로 책정한 로봇을 셀은 그보다 낮은 비용, 양질의 퀄리티로 결국 완성해냈다. 청룡영화상 기술상을 수상한 <부산행>에서 보여준 최초의 K좀비는 < 반도 >를 거쳐 넷플릭스 < 킹덤 >에 이르면 백성 출신 좀비와 양반 출신 좀비, 생사초를 먹고 살아난 왕 좀비 등으로 조선 좀비의 디테일을 새로이 창조하는 단계에 이른다. 그 밖에도 <기생충>의 수석과 털이 살아 있는 복숭아, < 옥자 >의 돼지 옥자, < 엑시트 >의 유해가스, < 암살 >에서 나이 든 염석진의 축 처진 뱃살 등이 모두 셀의 작품이다. 2000년대 초반의 한국영화 르네상스 속에서 본격적인 업력을 쌓았고, 스릴러 강세 속에서 전에 없이 완성도 높은 액션 신의 원천으로 자리했던 셀은 이제 < 승리호 > < 고요의 바다 > < 더 문 > < 정이 > 등을 통해 SF 장르로 새 무대를 개척하고 있다. 셀의 일원들은 할리우드와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는 실력에 자부하고 있다. 중국, 싱가포르, 대만 등 해외의 러브콜을 꾸준히 받고 있으며 2019년 이후 OTT 시리즈 작업 의뢰가 급증해 현재 < 커넥트 > <기생수> 등의 작업을 진행 중이다. OTT 시리즈 < 지옥 >에 쓰인 괴물의 미니어쳐 *CELL의 주요 작업 <쓰리, 몬스터> 중 <컷>의 손가락 <친절한 금자씨>(2005)의 반인반견 백선생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08)의 말 < 도둑들 >(2012)의 마카오 박(김윤석)이 변장한 얼굴 < 늑대소년 >(2012)의 늑대소년 <인류멸망보고서>(2012) 중 <천상의 피조물> 인명 <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의 이병헌(광해) 더미 < 미스터 고 >(2013)의 고릴라 링링 < 암살 >(2015)의 배우 이정재(염석진) 분장 < 부산행 >(2016)의 좀비 < 대호 >(2016)의 호랑이 < 로봇, 소리 >(2016)의 로봇 소리 <옥자>(2017)의 옥자 <기생충>(2019)의 수석과 복숭아 <반도>(2020)의 좀비 시리즈 < 스위트홈 >(2020) 속 괴물 시리즈 <고요의 바다>(2021)의 우주복 <정이>, 시리즈 <커넥트>, <기생수> 등 회의동 2층의 회의실 벽면: 그간 CELL에서 작업한 영화들의 포스터가 전시되어 있다 체계적인 공간 구성과 동선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셀은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북부에 자리한 덕이로 172번길 4-72에 위치해 있다. 남측에는 고양종합운동장, 북측에는 운정신도시 아파트단지, 동측으로는 3호선 주엽역과 경의중앙선 탄현역에 접근하기 용이하다. 인접한 건물로는 고양예술고등학교가 있다. 2003년 설립한 셀은 인근의 소규모 스튜디오를 이용하다 2020년 전용 건물 준공을 마쳤다. 1320m² 부지에 2개동으로 구성된 990m²의 건물이 현재의 셀 스튜디오다. 셀 스튜디오 2층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주변의 전경은 비닐하우스가 펼쳐진 평화로운 시골의 풍경으로, 그 아래 마당에는 주위의 목가적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거나 피칠갑한 더미들이 햇볕 샤워 중이다. “셀 스튜디오의 앞마당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방문객은 자연스럽게 향후 1년 내로 극장가에서 관객을 만날 한국영화의 밑그림을 절로 그려보게 된다”(<씨네21>, 2016년, 셀 스튜디오 특집)는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더미가 방문객을 반기는 셀의 마당을 지나면 각각 작업동, 회의동으로 불리는 2개 건물이 연결된 채 마주보고 있다. 셀의 직원들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은 총 3층으로 이루어진 작업동이다. 1층은 크게 기계장비실, 용접실, 자재실로 구분된다. 밀링, 선반, 알곤 용접기, 드릴프레스, 절단기 등 중량감 있는 주요 장비들이 모인 공간이다. 애니매트로닉스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주로 곽태용 대표가 관리한다. 1.5층에는 기계작업실, 3D프린터실, 폴리실, 디자인실, 기계부 채색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물질 없이 깔끔한 작업이 필요한 3D 프린터실이 따로 분리되어 있고, 채색실은 환풍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작업동 1층 기계 및 애니매트릭스 작업실 전경 2층은 황효균 대표가 관장한다. 보다 정교한 작업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미술작업실, 채색실, 폴리실, 우레탄 성형실, 재료실 등으로 쪼개진 공간에는 온갖 팔레트와 실리콘, 붓, 알코올, 접착제, 리무버, 프라이머 등등이 조합된 특수분장 가방이 펼쳐져 있고 더미 채색, 더미의 머리카락과 눈썹을 심는 작업, 괴생명체 등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3층은 주요 작업물 및 조형에 사용하는 몰드들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한다. 2층 테라스를 따라 회의동으로 이동할 수 있는데, 이곳에는 그동안 셀이 수상한 주요 상패를 모아둔 회의실, 라이프 캐스팅실 등이 있다. 1층은 식당과 휴게실로, 3층은 자료실로 사용된다. 공간 및 운영개요 1. 위치: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로 172번길 4-72 2. 설립일: 2003년 6월 25일 (2015년 7월 17일 법인 전환) 3. 대표자: 곽태용, 황호균 4. 규모: 부지 1320m² / 건물 990m² (2개동) 5. 조직 구성: 총직원 20명(공동대표 2인 포함) 6. 공간 구성 - 작업동 1층 - 기계장비실, 용정실, 자재실, 남자화장실 1.5층 - 기계작업실, 3D 프린터실, 폴리실, 디자인실, 기계부 채색실 2층 - 미술작업실, 채색실, 폴리실, 우레탄 성형실, 재료실 3층 - 몰드 및 제작물 보관실, 여자화장실 - 회의동 1층 - 식당 및 휴게실 2층 - 회의실, 라이프 캐스팅실, 남녀 화장실 3층 - 자료실 인터뷰: 황효균, 곽태용 대표(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CELL)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황효균(우측), 곽태용(좌측) 대표 김소미 _셀의 설립 배경을 들려주세요. 황효균 _2003년도 새해를 둘이서 시작을 했습니다. 되든 안 되든 한 2년 정도는 하고 싶은 영화를 해보면서, 밥벌이가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한번 도전해보자는 마음이었고요. 셀을 만들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피디님이나 제작실장님이나 조감독님, 이런 분들이 신작 들어갈 때 새로 생겼으니까 일을 한번 맡겨주신 거죠. 김소미 _두 분이 일하신지 총 몇 년이 되신 거지요? 곽태용 _저는 22년차고. 황효균 _저는 24년차이지요. 김소미 _두 분의 첫 인연은 언제 맺어졌나요? 곽태용 _영화 쪽에서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업체에서 일을 배우는 기간이 있었는데 거기서 둘이 처음 만나게 된 거예요. 좀 부족하지만 우리 것 한번 만들어보자 해서 의기투합했던 게 시작이었죠. 초반에 힘든 시기도 있었어요. 둘이서 이것저것 연구하고 재료도 찾아다니다 운 좋게 좋은 감독님들을 만나게 된 거죠. 황효균 _저희 사이를 돌아보게 되는 좋은 시간인 것 같네요. (웃음) 옛날 20년 전 골방에서 시작했어요. 버는 족족 투자해서, 딱 밥 먹을 정도만 남겨놓고 공간을 꾸려갔죠. 저희는 성격도 서로 참 달라요. 저는 좋게 말하면 꼼꼼한 편이고 곽 대표는 통이 커요. 분야도 다른데, 제가 미술과 분장, 더미 쪽이고 곽 대표는 기계 쪽, 로봇, 하드케이스 등을 만듭니다. 김소미 _공식적으로 작업에 착수하게 된 셀의 첫 작품은 무엇인가요? 곽태용 _개별적인 의뢰를 받고 소품이나 특수 제작물을 제작한 경우들이 앞서 있긴 했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 처음 작업하게 된 건 박찬욱 감독님의 <쓰리, 몬스터>죠. 그전에 배고픈 시기도 겪은 터라 사실은 굉장히 열심히 작업했었어요. 남들이 보기엔 ‘어, 저게 뭐지’ 싶은 새로운 효과를 가미하기도 하고요. 그런 점이 박찬욱 감독님께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다음 작품도 박찬욱 감독님과 하게 되고 또 그 작품을 함으로써 김지운 감독님, 봉준호 감독님의 의뢰를 받게 되었죠. 초창기에 <달콤한 인생> 같은 작품도 참 절실히 했던 기억이 나네요. 황효균 _<쓰리, 몬스터>에 저희 역량을 보여줄 요소가 다양하게 많았어요. 손가락을 잘라서 믹서에 갈아버리는 설정이라든가. (웃음) 이후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몸은 개인데 얼굴은 최민식 배우인 반인반수 소품도 있었죠. 박찬욱 감독님 작품엔 항상 저희에게 큰 숙제 같은 것들이 하나씩 있었던 것 같아요. 작업동 3층 몰드 및 제작물 보관실에 놓인 인체 일부 모형들 김소미 _셀이라는 이름의 작명 배경도 궁금합니다. 황효균 _멋있는 영어 단어로 이름을 짓고 싶었죠. (웃음) 로봇, 더미, 특수분장 쪽으로 의미 있는 단어가 뭐가 있을까 찾다가 셀이라는 단어가 외자라는 게 특히 좋았어요. 생명체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곽태용 _또 배터리의 가장 기본 단위 에너지인 그런 의미도 있거든요. 황효균 _처음에는 회사 설립 후 전화 받을 때 ‘셀입니다’라고 인사하면 ‘요술공주 샐리’ 아니냐는 말도 듣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름 하나 잘 지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네요. 김소미 _두 분이 성격과 전문 분야에 있어서 상호보완적인 시너지를 이루고 계시네요. 곽태용 _이 일 자체가 굉장히 복합적이잖아요. 간단한 특수분장에서 시작해, 분장으로 안 되는 건 더미를 만들고, 또 더미를 만들었는데 그걸 조금 더 활용하고 싶으면 거기다 애니매트로닉스를 적용하고. 결국 이게 다 섞여 있는 것이거든요. 이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관장할 수 있어야 퀄리티 높은 작업물이 나옵니다. 각각의 세분화된 영역을 한데 모아서 할 수 있다는 점이 저희 회사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김소미 _테크니컬 아트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 스튜디오로서의 비전은 설립 초기에도 명확히 갖고 있던 그림인가요? 황효균 _그렇죠. 예를 들면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이병헌 배우의 더미가 나오는데요. 그냥 가만히 있는 더미가 아니고, 독에 중독된 채로 숨도 쉬고 고통스러울 땐 미간을 살짝 찌푸리거나 건초를 태워서 코에 갖다 대면 연기가 코로 빨려 들어가는 식의 설정들이 있었어요. 감독님이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했고요. 그럼 저희는 2층에서는 더미 외형을 만들고 1층에서는 안의 기계 장치를 동시에 만들어요.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 상호보완적으로 작업하는 거죠. 지금은 특수분장팀이 많지만 저희는 외주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할 수 있는 팀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가집니다. 김소미 _황효균 대표는 분장과 더미 전문, 곽태용 대표는 기계 및 애니매트로닉스 전문으로 자신만의 특화된 분야를 개척하기까지 두 분 각자의 전공과 최초의 관심 분야느 무엇이었나요. 황효균 _저는 미술, 회화를 전공했는데요. 캔버스에 그리는 게 아닐 뿐 결국 입체 위에 그리는 작업으로서 같다고 느낍니다. 결국 좀비 분장도 배우의 얼굴에 그림을 그리는 거죠. 어릴 때부터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더미나 괴물 캐릭터를 만든다고 하면 모델링, 채색을 주로 해야 하니까 결국 영화 특수분장 일은 제 전공을 그대로 이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곽태용 _저는 화학공학을 전공하다가 중퇴했어요. 어릴 때부터 뭔가 만들거나 분해해서 작동 원리를 연구해보는 성향이 있었어요. 모형 제작을 취미로 계속하기도 했고요. 그걸 계기로 미니어처 작업을 통해 영화 쪽에 처음 입문했습니다. 영화 애니매트로닉스 분야는 정확한 전공이나 커리큘럼이 있다고 보기가 어려워요. 결국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기계의 원리를 면밀하게 관찰해서 그걸 응용하는 거거든요. 해외 자료들도 많이 보고요. 공장을 돌아다니면서 재료를 직접 만져보고 사무실에서 테스트해보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제가 원해서이기도 하지만 늘 새로운 것들을 연출하길 원하는 감독의 바람을 충족시켜주기 위함이 더 커요. 계속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밖에 없는 일이에요. 작업동 2층 미술작업실 전경 김소미 _지금 시점에서 돌아보았을 때, 셀의 매출 및 작업 규모 혹은 기술 수준에 있어서 확실한 성장의 분기점으로 꼽아볼 작품이 있을까요? 곽태용 _특수분장이라는 게 맨 처음에는 배우의 얼굴에 실제로 상처를 낼 수 없으니까 그것을 분장으로 만들고, 거기서 더 심한 상처가 필요하면 더미로 커버를 하고, 나중에는 그 더미가 기계 장치로 움직이면서 점점 더 극적인 효과를 내는 식으로 계속 간 거잖아요. 저희도 초반부터 그런 모든 기술이 있었던 건 아니니까 처음엔 상처 분장, 인조 피부 이런 작업 위주로 했었죠. 그러다 아무래도 한국영화의 흐름에 영향을 받았죠. 스릴러영화를 하게 되면 더미가 많이 나오니까 한동안 그런 작업 위주로 하게 되었어요. <달콤한 인생>의 경우 총격 신에서 더미가 많이 필요하잖아요. 총에 맞은 손가락이 터져 나간다든가 하는 효과들도 저희로선 의욕을 부추기는 데가 있었죠. 또 <부산행>을 기점으로 좀비물 붐이 일지 않았습니까. 덩달아 관련 작업도 늘어났죠. 또 재밌었던 작품 중에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있는데, 움직이는 말을 제작해서 슈팅카에 실었어요. 실제 달리는 말을 대체해 촬영을 했어요. 저희 작업 이후 사극에서도 많이 활용이 되었죠. 황효균 _운이 좋았죠. 그런 작업을 처음 맡을 수 있었다는 게. 셀이 최초로 시도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전에는 움직이는 말을 만들어서 촬영한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배우들은 항상 낙마에 대한 두려움이 있잖아요. 액션을 소화하면서 말을 탄다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배우가 저희의 움직이는 말 소품을 써보고 괜찮아서 이후에 계속 쓰고 싶다고 하면 보람이 있죠. 또 로봇을 직접 제작해 촬영한 영화인 <인류멸망보고서> 중 <천상의 피조물>, <로봇, 소리>도 중요한 작품이 되겠네요. 게다가 이제는 우주로 나아가지 않습니까. < 외계+인 > 1부 같은 작품을 보면 마블의 < 어벤져스 > 시리즈 못지않게 현실감 있게 나오니까 이제 한계점이 사라진 게 아닐까 싶어요.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를 위해 우주복을 최초로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곽태용 _최근엔 연상호 감독의 <정이>를 작업했고요. 영화 <대홍수>도 SF고 드라마 쪽에서도 우주 배경의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어서 작업을 많이 하고 있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나왔던 움직이는 말 기계 모형 김소미 _<인류멸망보고서> 중 <천상의 피조물>을 위해 제작한 로봇 소품도 당시로서는 한국에서 직접 로봇을 제작한 경우가 없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황효균 _맞아요. 저 작품을 찍고 7년인가 있다가 개봉을 했거든요. 처음 촬영할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그게 될까’ 하던 때였거든요. 로봇이 합장을 하고 절을 하는 움직임들을 다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제작사가 카이스트의 로봇 공학 분야 전문가들에게 의뢰를 했었는데 그들은 정석대로 접근한 거죠. 이를테면 영화 세트장 바닥은 미끄러워서 작동이 불가능하다, 기간은 1~2년, 비용은 10억~20억원이 든다고 했대요. 제약이 너무 많았던 거죠. 그런데 사실 영화적으로 이해를 할 필요가 있거든요. 카메라가 발 부분을 잡지 않는다면 로봇이 실제로 걷지 않아도 그럴듯한 흉내만 내도 괜찮은 거예요. 어찌 보면 편법에 강한 겁니다. 영화 촬영을 위한 잔머리가 강한 거고, 응용력이 중요하죠. 김소미 _지금의 셀 스튜디오는 언제 완공이 된 건가요. 황효균 _여기 이사 온 지는 이제 2년 정도 되었네요. 곽태용 _원래 있던 곳도 여기 근처죠. 황효균 _처음 시작한 곳은 지금 스튜디오보다 규모가 약 1:3 정도였습니다. 옛날보다 환경이 많이 좋아진 거죠. 곽태용 _예전에는 큰 작업물을 만들면 공간이 부족하잖아요. 그래서 안에 있던 걸 다 빼고 다 치우고 하느라 고생했죠. 아예 외부 창고를 단기 임대해서 그쪽으로 장비를 다 옮기기도 했고요. 황효균 _지금 부지는 총 400평이고요. 3층 건물은 약 80평 정도 됩니다. 작업동 3층 몰드 및 제작물 보관실 선반의 인체 모형, 인체 일부 김소미 _총 3층으로 이루어진 셀 스튜디오의 주요 작업 공간을 소개해주세요. 곽태용 _일단 1층 애니매트로닉스 작업실 쪽은 무거운 기계와 재료들이 많죠. 밀링 머신. CNC, 드릴, 프레스 등등. 가공 자재들도 기본적으로 쇠파이프 같은 무거운 재료들이니까 아래층에 있는 게 좋겠지요. 그 위에 1.5층이 있는데 프린트, 레이저, 도면 기반의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방을 따로 두었습니다. 1층 기계실은 아무래도 분진이 많이 발생하고 소음이 심해 조금 더 정교한 작업이 필요한 3D 프린팅 작업실을 위쪽으로 분리한 거죠. 황효균 _1층은 을지로 같은 분위기라고 보면 됩니다. (웃음) 공구들, 기계 장비들. 안 다루는 부품이 없고 전기, 배선, 라이팅까지 전부 다 하니까요. 2층으로 올라가면 페인트류, 실리콘, 물감, 분장 재료들이 중심이 되지요. 곽태용 _더미의 머리카락, 눈썹을 섬세하게 심고 채색하는 공간도 따로 구분되어 있어요. 화학 약품을 많이 쓰는 도색 작업 공간엔 냄새가 많이 나고 휘발성 페인트가 많기 때문에 환기 시설이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었고요. 황효균 _이 건물을 새로 지을 때 설계 사무소와 논의해서 여러모로 저희 입맛에 맞게 건물을 지은 거지요. 냄새가 나는 방은 환기가 중요하니까 맨 뒤쪽, 오른쪽 구석에 가 있게끔 하고 분진이 많이 나는 폴리실은 따로 두고, 청결 유지가 필요한 채색실은 그 반대편에 거리를 두고 만든다든가 하는 식이죠. 김소미 _개인적으로 가장 애착 가는 공간이 있을까요. 곽태용 _저는 도면실이요. 도면실 겸 취미 활동방이 되었는데요. 개방해놓고 쓰고 있어요. 컴퓨터 옆에 드럼이 세팅되어 있거든요. 퇴근하면 직원들이 거기서 드럼 치고 있어요. 황효균 _곽 대표님은 보통 도면실이 있는 1층과 1.5층에 많이 머무르죠. 저는 아무래도 2층이겠죠. 각자의 공간에서 작업에 충실하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같이 모여서 밥을 먹습니다. 도면작업실에서 작업 중인 곽태용 대표 김소미 _셀의 현재 직원수는 총 몇 명인가요. 한국영화의 주요 작품들에 상당수 참여하고 있는데, 근무 강도를 어떻게 자평하는지 궁금합니다. 황효균 _저희가 지금 다 해서 20명인데 보통의 특수분장팀들과 비교하면 3~4배 정도의 규모라고 해요. 많이 듣는 얘기가 ‘셀은 맡은 작품 수가 많으니 야간작업을 자주 하는 거 아니냐’인데 그렇지가 않아요. 저희는 오후 5시 반 되면 다 퇴근해요. 곽태용 _한 8년, 9년 전부터 주 40시간 근무합니다. 황효균 _창립 초기부터 주5일제로 일했고요. 곽태용 _가끔 예상치 못한 시행착오 때문에 마감이 늦어지면 밤 9시, 10시까지 야간작업을 할 때도 있는데, 1년에 5번도 안 돼요. 촬영이 걸리지 않는 이상은 각자의 저녁 시간을 갖고, 빨간 날은 그냥 쉬는 걸로 해요. 그래서 인원이 좀 많은가 봐요. 이렇게 일하려면 적어도 3~4명은 더 있어야 되거든요. 그리고 저희는 일용직이랑 계약직을 쓰지 않고 정직원만 고용합니다. 일단 고용안정이 돼야지 자기 실력이 발휘가 되니까요. 이 분야는 적어도 1년에서 2년은 배워야지 실력 발휘를 하는 직업이라서 그러려면 꾸준히 다니면서 할 수가 있어야 하고요. 김소미 _셀 입사를 꿈꾸는 구직자들이 많겠습니다. 지금 젊은 직원들의 성비는 어떻게 되나요. 황효균 _애니매트로닉스 쪽은 남자가 많고요. 미술 파트 쪽은 여자가 많고. 곽태용 _전체로 따지면 여성 직원이 더 많습니다. 입사 희망자들도 여성 비율이 높고요. 황효균 _분장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남자들에게는 아직도 약간의 편견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곽태용 _그런데 사실 기본적으로는 골조도 넣어야 되고 또 되게 무거운 몰드도 돌려서 스킨을 뽑아내야 되고, 작업의 많은 부분이 중노동에 가깝기도 하지요. 반대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못하고 이 일을 희망하는 분들도 제법 있는 것 같아요. 어쨌든 성비로만 놓고 보면 포트폴리오 지원자 중 여성들이 월등하게 많습니다. 인체 모형을 작업중인 직원 김소미 _최근의 테크니컬 아트를 위한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면 될까요? 제작 여건 면엥서 가장 크게 변화를 실감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황효균 _옛날에 직원이 3D 프린터란 게 나왔으니 하나 사달라고 해서 구매했더니, 스프라이트라고 하는 긁힌 자국이 그대로 다 보이는 수준이어서 ‘아, 이게 될까’ 싶었죠. 초창기에 300만원 주고 하나 사보자고 하는 걸 일단 시험 삼아 들여서 저희들끼리 열쇠고리 같은 것도 뽑아보고 그랬어요. 그렇게 실험하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음 버전이 나와요. 지금은 3D 포인트 프린트를 스튜디오에 5~6대 정도 놓고 쓰거든요. 만약 처음 나왔을 때 실험해보지 않았으면 아직도 못 쓰고 있을 거예요. 새로운 장비가 나왔다고 하면 우선 투자를 합니다. 최근에는 직원들이 레이저 각인기를 사달라고 해요. 우주복을 예로 들면 그 위에 NASA라고 새길 수 있는 거죠. 원래는 업체에 외주로 맡겨야 했던 작업을 그 기계를 사면 직접 새길 수 있대요. 200만원 정도 하는 것 같아요. 괜찮을까, 지금 고민하고 있어요. (웃음) 또 직접 사서 써 봐야 새로운 실험을 해볼 수 있는 거죠, 물론 그냥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곽태용 _저희는 어떤 기계를 원래 목적 그대로 정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변형시켜서, 그러니까 작업의 목적에 맞추어 변형해서 쓰는 거죠. 시나리오에 담긴 천차만별의 요구를 표현하기 위해선 편법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야지 만들 수 있고요. 박람회가 열리면 가서 구경하고 응용할 거리가 있으면 구매해서 테스트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박물관에 주고요. (웃음) 작업동 1.5층 3D 프린팅 및 스캐닝실 전경 김소미 _셀이 새 자리로 이사한 이후, 코로나19가 영화계를 강타한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어떠신가요? 곽태용 _한국은 팬데믹 기간에도 록다운 없이 영화 촬영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시리즈에는 계속 투자가 이뤄졌고, 그런 수요를 저희도 느꼈죠. 약간 반전이었죠. 황효균 _팬데믹으로 인해 오히려 작년, 재작년 엄청 바빴어요. 시리즈물 작업을 많이 하게 된 거죠. 지금 다시 극장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어서 영화 작업도 많이 들어가고 있는데요, 저희 욕심만큼 다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제 다른 업체들도 많이 생겨났으니 현업에서 계속 뛰긴 하지만 저희 둘만큼은 전보다는 일에 덜 쫓기면서 살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런데 영화라는 게 몰릴 때 몰리고 또 없을 때 없고 하니까, 뭐 잘 조율해가면서 해야죠. 김소미 _아직까지도 '이것만큼은 꼭 해보고 싶다' 싶은 도전 과제가 남아 있으신가요? 곽태용 _ 이 일은 전적으로 과제가 주어지는 일인 거잖아요. 연출자들이 새로운 콘셉트를 갖고 오면 최대한 그걸 구현해보고 싶은 거죠. 어렸을 때 할리우드영화를 보면서 항상 꿈꿔왔던 것은 있어요. 예를 들면 <에이리언>이요. 과거에는 이런 작품 해보고 싶다고 하면 뜬구름 잡는 소리였는데 이제는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할리우드 메이킹 필름을 보면서 동경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반대로 우리의 작업을 레퍼런스 삼는 나라들도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황효균 _한국 콘텐츠의 질이 엄청 높잖아요. 한국영화를 보고 특수분장을 꿈꾸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고요. 제보받은 게 있는데 중국, 싱가포르에서 한국영화 보면서 저희 레퍼런스를 많이 참고한다고 해요. <옥자>에 쓰인 기술은 할리우드에서 그대로 따라 하고 있어요. 해외에 셀이 소개될 때 <부산행>을 했던 회사라고 하면 다 알아봐 주고요. 그런 게 참 뿌듯합니다. 필자: 김소미(씨네21) 사진촬영: 백종헌 인터뷰 일자: 2022년 10월 25일
언제나 그런 일이 반복되었지만, 그래서 별로 놀랍지도 않지만, 지금 약간만 검색을 해보면 거의 모든 인문사회학에 관련된 교수들, 필자들, 혹은 글을 발표할 지면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한 ‘거의’ 전문가들이다. 정작 의학 전문가들은 이 바이러스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데 사실은 이 바이러스에 관해서 거의 아는 게 없는 사람들은 앞 다투어서 전문적인 사회적 진단을 내린다. 심지어 어떤 자리에 가도 팬데믹 담론에로 귀결되는 악순환 속에서 상당히 피로하고 이제는 권태를 느낄 지경이다. 나는 여기서 내 논점을 후퇴해서 영화에 한정해서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역시 이야기는 어떤 자리로 되돌아간다. 다만 이 자리가 좀 다른 것은 거기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영화 ‘시장’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이름을 호명할 수는 없지만) 극장을 운영하거나, 영화를 수입해서 배급을 하거나, 그 영화를 홍보 마케팅을 하거나, 저예산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자리에서 들은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지금 시장이 죽었다, 라는 하나 마나 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하여튼 언젠가는 끝날 팬데믹 ‘이후’가 걱정된다는 누군가의 말이었다. 처음에는 무언가 상대방이 말을 잘못한 줄 알았다. 그래서 내가 극장이 텅 빈 지금이 끝나기를 바라지 않으시는 건가요, 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내게 대답했다. 극장에서 관객들이 떠나가고 있어요, 정말 문제는 코로나가 끝난 다음 그들이 돌아온다는 어떤 보장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떠난 동안 극장에서 보내는 시간을 대신할 다른 무언가를 찾아내고 거기서 재미를 찾아낼 것입니다. 코로나가 끝난 다음 새롭게 찾은 재미에 머물지 아니면 극장에로 돌아올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어요. 사람들이 여가시간에 쓸 수 있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하루 종일 노는 사람도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은 24시간밖에 안 되니까요. 여기서 이 대답의 논리적 허점을 찾는 것은 요점이 아니다. 이 말에는 어떤 진실이 있다. 그건 영화를 보러 가는 건 하나의 습관이라는 사실이다. 인구 비례에 따른 관객점유율을 놓고 한국영화 시장에 관한 설명을 하면서 약간 우쭐한 말투로 영화를 선택했다는 상대적 우월의 관점을 가지고 다가간다. 이때 이 설명이 항상 실패하는 순간은 구태여 누군가의 설명이 필요하지도 않을 만큼 보는 쪽에서 누구나 형편없는 영화라는 걸 누구나 다 아는 영화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때이다. (나는 지금 구체적인 제목을 열거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있는 중이다) 반복해서 말하겠다. 하나의 습관. 술을 마실 때 그걸 마시면 다음 날 머리가 아프고 속이 쓰리다는 걸 알면서도 마신다. 하나의 습관. 그걸 보고나면 불쾌해질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보러 간다. 영화를 보러가는 습관의 이유는 서로 다른 여러 층위에서 결정되는 복합적 요인들의 카오스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잘 설명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 습관에 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을 누군가 해내기는 하겠지만 아무도 설득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어떤 영화를 보러 가는 선택은 밥을 먹기 위해 식당을 고르는 것과 다른 문제이다. 영화를 보기 위해 외출했다가 중간에 마음을 바꿔 서점에 들려 시간을 보내다 올 수 있지만 밥을 먹으러 외출을 하면 식당을 바꿀 수는 있지만 밥을 먹고 돌아온다.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그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각자의 기술이다. 아주 가끔 이 시간 낭비가 큰 기쁨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건 얼마나 드문 경험인가) 대부분은 그 시간을 덜 지루하고 더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영화를 보러 간다. 누군가는 내게 그 시간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자유의 권리를 느껴보기 위해서 영화를 본다고 대답했다. 우리의 논점으로 돌아오자. 그런데 그 작은 즐거움에 예기치 않게 불안이 동반하게 되었다. 당신 옆 좌석에서 누군가 기침을 할 때 갑자기 영화를 보다 중단하고 고개를 돌려 어둠 속에서 그 사람의 얼굴에 마스크가 있는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 기침 소리가 나는 곳이 뒷좌석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은 자신에게 질문할 것이다. 불안을 무릅쓰고 이 작은 즐거움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운이 나쁘면 당신은 14일 동안 격리될 수도 있다. 더 운이 나쁘면, 지금의 상황은 최악의 가정까지 순식간에 당신을 데려갈 수도 있다. 이번 주말에 영화를 보러 가지 않아도 당신에게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은 그게 가장 좋은 상황이다. 안타깝게도 접촉 빈도가 높아질수록 당신이 익명의 확진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당신은 그러면 극장에서 방(room)으로 옮겨가면 되잖아요, 산업의 구심점이 이동하면서 극장이 침체하겠지만 영화 산업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예요, 라고 냉정한 대답을 할지 모른다. 그 대답은 당신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이때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이제까지 거의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정치경제학적 환경이 민주적이었다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한다. 당신은 입장료를 내면 계급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영화를 경험할 권리를 얻었다. 나는 구태여 경험, 이라는 표현을 썼다. 방으로 물러나게 되면 이제 이 민주적 기회는 사라지고 각자의 환경의 토대가 제공하는 영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환경의 토대? 누군가는 홈 씨어터에 최신 버전의 프로젝터와 스피커를 갖춰놓고 방음까지 된 방에서 스크린에 가까운 화면으로 영화를 ‘경험’할 것이다. 누군가는 같은 영화를 반지하 방에서 노트북으로 볼 것이다. 두 개의 경험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서 두 계급 사이의 극장이라는 교집합의 경험이 사라지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논점이 부동산으로 옮겨올 때 당신은 더 이상 이 상황 앞에서 강 건너 불구경하는 냉소적 태도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이 간극에 놓여있는 모순은 영화를 하찮은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우리 세상의 한복판에 놓여있는 논쟁의 장소이다. 나는 너무 멀리 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 간극의 모순에 시간이 부여되면 연쇄 고리가 만들어진다. 모순은 어느 순간에 멈추는 법이 없다. 이것이 이 세계의 원리이다.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자신의 상대적으로 하찮은 경험 속에서 노트북에 최적화된 기쁨을 내어줄 시간 낭비의 기술에로 눈을 돌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영화는 부르주아들의 문화 일부가 된다는 뜻인가요? 그렇게 질문한다면 아직도 당신은 순진한 것이다. 이 관객들이 옮겨가기 시작할 때 영화라는 상품을 유기적으로 구성하는 자본의 축적과정은 빠른 속도로 해체되기 시작할 것이다. 아마도 상대적 잉여가치를 놓고 여러 가지 대응이 모색되겠지만 한계에 부딪힌 상품은 임금과 노동 사이에서 시장에서의 자신의 가치를 놓고 재조정 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나는 그냥 단순하게 따라가는 중이다. 물론 이 과정이 이렇게 간단할 리가 없다. 여기서 멈추어야 할 것 같다. 그러면 당신이 반문할 것이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요? 나는 그날 그 자리에서 그 걱정에 대한 위로는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가 아니라 아마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라는 긍정을 한 다음 우리들 앞에 다가온 변화에 우리들도 변해야 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가 대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는 생각보다 짧은 시간 안에 시장 안에서 자신의 성격을 바꿀 지도 모른다. 물론 영화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영화는 다시 한번 영화라는 이름의 다른 그 무엇이 될지 모른다. 나는 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위험한 단정이다. 하나의 가정. 하나의 가능성, 그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준비. 영화의 역사는 끊임없이 자신을 다시 한 번 재정의 내리는 과정이었다. 물론 이것은 개념의 위기에서 멈추지 않고 시장의 위기로 모습을 드러낸 다음 구체적이고 (당신이 어느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폭력적인 위기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가정에 대해서 말하는 중이다) 여기서 가장 나쁜 태도는 위기를 구경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위기가 요구하는 대로 생각하고 그런 다음 시장이 요구하는 대로 순종할 것이다. 우리는 위기를 먼저 긍정하고 (달리 무슨 방법이 남아있는가?) 긍정 안에서 위기를 의심해야 한다. 우리는 진짜 위기와 위기를 이용하려는 가짜 위기를 구별해내야 한다. 우리들은 오직 진짜 위기 앞에서 영화의 새로운 변화를 환영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아마도, 아마도 그렇게 해서, 새로운 영화 앞에 나타나게 될 새로운 관객에게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고 질문할 준비를 해야 한다. 여기가 하나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번의 시작.
한글이 주인공인 영화 < 나랏말싸미 >( 조철현 , 2019)는 좀 기이한 영화다. 한 번 보면 세종- 송강호 와 신미- 박해일 의 투 톱 영화처럼 보이지만, 한 번 더 들여다보면 소헌- 전미선 이 가세한 쓰리 톱 영화임을 드러내고, 또 한 번 들여다보면 정작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한글 그 자체였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영화는 단지 한글 창제 과정을 배경이나 소재로 삼은 영화가 아니라, 한글을 주인공이자 주연으로 삼은 영화다. 적어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랏말싸미>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따라가는 것보다 한글을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따라가는 것이 훨씬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더 깊은 맛을 내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는 한글 창제의 과정이 세종을 비롯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의 배경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물들이 한글이라는 주인공 이야기에 복무하고 있다. 이야기의 구조와 플롯은 한글이 자신의 탄생 과정에서 겪었을 우여곡절을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으며, 배우들의 연기는 그 과정에 담긴 드라마의 조연이 되도록 (배우들에 의해) 절제되고 (감독에 의해) 조절되어 있다. 한글이 태어나기까지 겪었을 우여곡절에는 두 가지 다른 층위의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하나는 익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세종의 애민의식과 신진 사대부의 특권의식의 갈등과 충돌이다. 다른 하나는 뜻글자와 소리글자 사이의 간격이다. 전자는 다양한 대중문화의 형식을 빌려 여러 번 이야기된 바 있어 이미 익숙한 상식이 되었지만, 후자는 (적어도) 대중영화의 틀 안에 담아내기에는 까다롭고 어려운 문제다. <나랏말싸미>는 이 어려운 과제에 도전한 영화이고, 대중영화의 틀 안에서 그 초심 또는 원칙을 끝까지 충실하게 지킨 영화다. 내가 말하는 초심이란 이 영화의 작가가 한글에 대해 품고 있는 애정이다. 이 영화가 그려내고 있는 한글 탄생 과정은 이미 한글에 익숙한 사람은 쉽게 상상하기 힘든 우여곡절의 연속이다. 한글의 잃어버린 탄생의 과정을 그려내는 데는 그 과정을 역으로 되짚어 가보는 상상력과 그것을 뒷받침할 많은 조사 및 연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 지난한 과정을 감내하는 것은 어떤 근본적인 애정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애정은 때로는 한글의 미래를 예견하는 유쾌한 상상으로 드러나지만, 때로는 한글 자신이 품고 있는 어두운 비밀을 깊이 있게 드러내기도 한다. 어린 스님과 궁궐 나인이 ‘초성’으로 나누는 문자 대화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꽃피운 한글의 빼어남을 경쾌하게 보여주지만, ‘아래 아’자의 생사여부를 둘러싸고 세종과 신미 사이의 긴장은 한글의 어두운 비밀을 놀라운 방식으로 드러낸다. 그 어두운 비밀이란, 세종의 한글 창제에는 그의 애민의식만큼이나 그의 수학적(또는 기하학적) 사고방식이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고, 글자가 경제성과 효율성을 추구할수록 그것은 생생한 말을 죽이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랏말싸미>는 또 다른 의미에서도 한글의 영화다. 감독의 말대로 이 영화는 “대사가 액션이고 사건이며 심리인 영화”다. 특히 세종(송강호)과 신미(박해일)이 주고받는 대사들 속에는 ‘우아한 랩 배틀’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깊이와 경쾌함이 공존한다. <나랏말싸미>은 한글이 탄생 과정에서 겪었을 또 다른 우여곡절(세종과 사대부의 권력투쟁) 또한 정확한 분석과 풍부한 상상력과 간결한 표현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그 중 가장 놀라운 통찰은 한글이 태어나기보다 태어난 후 살아남기가 더 힘들었을 수도 있는 글자였다는 통찰이다(적어도 나는 아직까지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것, 이것은 예술의 용어로 표현하면 ‘창작’일 것이고, 정치의 용어로 말하면 ‘개혁’일 것이다. 둘 모두 태어나기보다 살아남기가 더 힘들다는 공통의 운명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랏말싸미>는 한글 창제를 둘러싼 세종 당대의 정치적 상황의 갈등 구도와 오늘날 개혁을 둘러싼 대립을 겹쳐 놓고자 한 영화이기도 하고, 일정하게 그 시도가 성공한 영화이기도 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권력투쟁은 동일한 구조와 비슷한 과정을 겪게 된다는 것, 아마도 이것이 그 성공의 비결일 것이다. 모든 사극은 서로 다른 시공간의 조우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퓨전일 수밖에 없다. 퓨전사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극 자체가 퓨전의 정신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장르다. 문제는 그 퓨전 정신의 깊이와 그것을 형상화해낼 수 있는 감각일 것이다. 어느 모로 보나 <나랏말싸미>는 한국영화사 안에서 새롭고 깊이 있는 성취를 이루어낸 작품으로 기억될 만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