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사람 인터뷰
- 감독
- 이보현, 박현경
- 제작년도
- 2013
어떤 시간은 언어로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내가 이곳에서 통과한 시간들이 그랬다. 내가 가진 언어의 한계로는 도저히 써낼 수 없는 것. 거대하고, 두렵고, 지저분하고, 복잡한 동시에, 달고, 기특하고, 사랑스러운 순간들을 만끽했다. 고로, 나는 특별한 목적보다는 기억의 흐름을 충실히 따라 첫여름의 제작 과정을 기록한다. 여전히 전부 소화해낼 수 없는 감각을 안고, 순간을 돌아본다. < 첫여름 >(2025)은 여성 노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연출을 공부하며 만들었던 졸업작품이기도 하다. 졸업작품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여자들의 이야기에 허기를 느꼈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은 나의 중추이다. 나는 자라면서 여자들이, 나아가 사회의 정상성에 어긋나는 존재들이 따갑고 납작한 사회에서 어떻게 투쟁하고 생존하는지 보고 겪었다. 축적된 분노와 우울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사회에 균열을 내고 싶은 갈망이 맺혔고, 그 창구가 내게는 영화였다. 자연스레, 졸업작품으로 불편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문득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의 할머니는 얄밉고 이기적이었다. 우리 둘은 잠깐 동거를 했었는데 할머니는 내게 어떠한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매일 마스크팩을 하시면서도 나에게 한 장을 나눠주지 않았었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 대학 과제로 할머니를 인터뷰하게 됐다. 그녀의 연애담을 들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당신이 춤을 출 때 누구보다 신이 나고, 음악을 힘껏 사랑하는지를, 그리고 그 남자와 있을 때 자신이 얼마나 자신다워지는지를 서툴게 표현하시던 얼굴이 선명하다. 삶이 바빠 할머니를 잊었다. 아코디언이 너무 갖고 싶었지만 비싸 사지 못한다고 했던 할머니를, 애인 소식을 듣지 못해 앓던 할머니를 어린 나는 그토록 쉽게 잊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녀의 49재에서 불경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마치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카바레 음악처럼 들렸다. 고개를 드니, 넓은 대웅전 마루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이 춤을 추는 할머니가 보였다. 한동안 나는 그 장면에 사로잡혔고, 기필코 이를 영화에 담아내 갖겠다고 결심했다. ‘관객들이 노인이 아닌 한 여자와 동행했다고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이 다짐 하나를 손에 쥐고 <첫여름>을 쓰기 시작했다. 대웅전 주변에 앉은 영순(허진) <첫여름> 초고는 지금의 완고와 완연히 다르다. 초고는 손녀의 시점에서 어딘가 평범하지 않은 할머니 영순을 이해하게 되는 전개였다. 심지어 삼대가 만두도 빚었었다. 학수도 살아있었다! 어찌 됐든 초고는 실화와 훨씬 가까웠고, 지금의 영화 톤보다 안정적이고 온화했다. 거칠게 쓴 초고를 학교에 들고 갔을 때, 반응이 좋아 어리둥절했다. 수많은 물음표들을 훑기도 전에 나는 졸업작품을 함께 할 학우들과 본격적인 프리 프로덕션을 시작해야 했다. 곧이어 언어로는 절대 서술할 수 없는 고통, 재난 같은 고역의 시기가 찾아왔다. 시나리오가 써지지 않았다. 탈고를 가져가면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초고보다 나은 고를 쓸 수가 없었다. 이동을 잘 하지 않는 내가 어떻게든 환기를 해보겠다며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며 시나리오를 썼다. 동기를 따라 한답시고 스터디카페까지 도달한 나는 밤새 홀로 앉아 텅 빈 모니터를 바라봤다. 아침 8시였다. 여전히 모니터도, 머리도 텅- 비어 있었다. 노트북 자판 위로 눈물이 뚝뚝 맺혔다. 그 고통은 공포였다. 나에겐 시나리오와 나를 보고 모여준 팀원들이 있었다. 그들의 기대를 꺾지 않는 연출자가 되고 싶었다. 내가 쓰고 결정을 내려야 다른 팀원들이 움직일 수가 있었다. 그 이상으로 나를 공포에 내몰았던 존재는 할머니였다. 학교 수업의 일환인 시나리오 크리틱에서 나는 단언했다. “내 졸업영화를 본 누군가가 ‘할머니 팔아먹은 영화’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겠다.” 할머니의 존재는 몸집이 점점 커지더니 나를 꾸짖었다. 너 따위가 한 사람의 존엄하고 아득한 삶을 꾸며내려고 하다니. 네게 어떤 자격이 있다고. 감히 이야기를 쓸 수 없었다. 모든 게 다 위선이고 거짓 같았다. 나는 고작 누군가의 삶을 담보 잡아 이야기를 쓰는 사람인가. 자괴감이 해일처럼 나를 쓸고 해쳤다. 시간은 내 멱살을 잡아끌어 초고는 어느새 완고 비스름한 것이 되어있었다. 다행히 어느 정도 무난한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나를 돌아보게 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내 숨을 엄하게 짓눌렀다. 잡념과 눈물이 차올라 무엇을 해도 해소되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교수님을 찾아갔다. 허겁지겁 정리되지 않은 말과 추잡한 감정들을 와르르 쏟아냈다. 교수님은 잠자코 들어주셨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불쑥 한 문장이 튀어나왔다. “사실 전 제가 쓴 시나리오가 너무 불편해요.” 불편한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초고의 불편함은 내가 의도한 것과 정반대의 것이었다. 난 그걸 견딜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새로운 고를 써 내려갔다. 손녀 석윤이 아닌 영순이 오롯이 주인공인 시나리오였다. 시나리오 속 인물들이 드디어 사람같이 숨을 쉬고 근육을 움직였다.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 가뿐했다. 신비한 경험이었다. 초고를 쓰며 나는 손녀의 시선으로 영순의 삶을 그렸다. 20대 여성이 보고 싶은 노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었다. 노인을 전시하고 대상화한다는 감각을, 그 숨 막히는 불쾌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건 이 이야기의 출발을 배신하는 일이었다. 타인의 삶을 가볍게 다루는 순간, 그걸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였다. 그 죗값은 고스란히 작가에게 돌아간다. 다음 날, 나는 할머니 영순이 주인공인 새로운 고를 A고, 손녀 석윤이 주인공인 이전 고를 B고라고 이름 붙여 팀원들에게 갔다. A고는 등장인물조차 정리가 안 된, 침 냄새가 나는 갓난아기 같았고, B고는 더 이상 돌볼 게 없는 장성한 자식 같았다. 촬영까지 딱 한 달 남은 시점이었다. 웃기게도 나는 흔들렸다. AB고 대첩은 정확히 반반으로 파가 갈릴 정도로 팽팽했다. 프리 프로덕션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라, 어느 시점에는 다 큰 자식을 독립시켜 안락하게 노후 준비나 하고 싶은 유혹을 버리지 못했다. 나는 선택을 유보하고, 불확실성의 무게를 가늠하고자 발버둥 쳤다. 팀원들은 굳건히 내 선택을 기다려주었다. 안전한 길을 두고 도박을 하고 싶다는 연출자에게, ‘네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후회 없이 하라며 독려하고,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어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A고를 택했다. 나는 할머니 영순의 마음이, 그녀의 세계가 궁금해 <첫여름>을 썼다. 태초부터 주인공은 정해져있었다. 우리 영화의 쟁점은 ‘노인’이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영순은 극중 70대였다. 70대 배우를 찾아야만 했다. 세월을 연기로 속일 수는 없었다. 게다가 노인 배우는 일할 수 있는 시간이 확연히 제한된다. 당연하다. 노인 배우는 배우이자 노인, 즉 사회적 약자이기도 하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현장에서, 시간을 한정하고 노인 배우가 안전히 연기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로케이션도, 이동도 적지 않았다. 나아가, 노년기 삶을 가깝고 정직하게 담아내야 했다. 사려 깊고 섬세한 동료들, 그리고 영리한 준비와 현장이 필요했다. 영화를 만들어본 경험이 많지 않지만, 연출자로서 영화를 만드는 일은 ‘하나의 작은 세계를 구축하는 일’과 같았다. 상상도 못할 만큼 커다란 품과 열정을 필요로 한다. 현장은 재난과 축제가 동시에 일어나는 무시무시한 곳이기도 하다. 연출자는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민하게 타인을 관찰해야 한다. 나의 한계를 채워줄 귀인을 알아보아야 하고, 계속해서 도움과 소통을 청해야 한다. 나같이 느리고 서툰 연출자에게 <첫여름> 팀은 든든한 버팀목이자 행운이었다. 확신이 없어도 현장에 가고 보는 대책 없는 나의 버릇은 그대로였다. 안 그래도 난도가 있는 프로덕션이었다. 맨땅이 얼마나 단단한지 두들기지도 않고 무식하게 머리만 박았다. 나는 끝까지 엔딩을 정하지 못한 채 촬영을 진행했었다. 나도, 팀원들도 만족할 만한 엔딩을 쓰지 못했다. 이상했다. 첫 장면은 머릿속에서 재현될 만큼 확연했는데, 영순을 어떻게 보내줘야 할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첫여름> 촬영 현장 더불어, 나는 콘티에 약한 연출이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뚜렷하지만, 이를 장면화하는 일에 대한 기술이 부족하다. 카메라나 사운드에 대한 이해도 다른 동기들보다 없었다. 그런데도 지독하게 욕심을 부린다. 나와 김시진 촬영감독은 우리 둘 모두 만족하지 못한다면, 절대 콘티를 그리지 않았다. <첫여름>에서는 사찰에서 영순이 춤추는 씬이 공백이었다. 콘티는 있기야 했지만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가 연출자로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일 촬영 계획표가 변동되며, 휠체어 씬과 사찰 씬을 다 소화해야 하는 날. 결국 휠체어 씬의 반 이상을 찍지 못한 채 사찰로 이동하면서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사찰 입구로 진입하고 있었다. 사찰에서의 춤 씬을 설계하고 설득할 유일한 기회는 허무하게 끝났다. 녹음의 그림자를 멍하니 바라보며 무책임한 나를 증오했다. 스태프들이 밥도 먹지 못한 채 분주하게 몸을 움직였다. 고요하고 우아한 자연 속에 고장 난 내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해가 지면 사찰에 다시는 못 온다. 한복을 입고 휠체어를 직접 다 끌며 열연하셨던 허진 선생님은 지칠 대로 지쳐 계셨다. 나는 춤을 포기할까, 순간 망설였다. 그런 나 스스로가 오싹했다. 사찰에서 영순이 춤을 추는 모습 하나를 보기 위해 달려가던 이야기였다. 어떻게든 찍어내야 했다. 허진 선생님 또한 즉흥적으로 춤을 추는 감정에 대해 다른 해석들을 주셨다. 어느 지점에는 춤을 추는 감정이 당신에게 다가오지 않아 어려워하셨다. 배우도, 콘티도, 시간도 모두 내게 허락되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찍었다. 이 씬을 찍지 않으면 이 영화는 모든 의미를 잃는다. 이 작품 하나를 위해 모인 수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은 버티고, 설득하고, 성실히 시간을 붙잡는 일뿐이었다. 스스로 분노가 치밀었다. 가장 중요한 씬을 왜 이런 식으로 방치했을까. 허탈했다. 그런데, 테이크를 갈수록 내가 그렸던 할머니의 얼굴이 허진 선생님 위로 살며시 드리워졌다. 선생님의 몸짓을 보고 마음에 미약한 움직임이 일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할머니의 49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있구나. 사찰 씬이 나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망가지고 있었음에도, 알 수 있었다. 그제서야 알싸한 가을 냄새가 코에 맴돌았다. 내가 만약 확신을 가지고 배우와 스태프들을 설득했었다면 그날 사찰 씬 촬영은 달라졌을 수 있겠다. 그 장면을 편집할 때마다 나는 현장의 나로 돌아갔다. 모두를 불안하게 하는 나를 묵묵히 지켜보다 겨우 기억에서 빠져나왔다. 뭐가 됐든 나는 동료와 배우를 설득해내지 못한 연출자였다. 자책에서 벗어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확신과 솔직함의 줄다리기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연출자로서 얼마나 중요한지 배울 수 있었다. 사찰 앞, 춤을 추는 영순 허진 선생님과의 작업은 연애와 같았다. 나는 프리 기간 거의 매주 부산-서울을 통근하며 그녀의 집 앞까지 찾아갔다. 당일치기로 다녀온 적도 많았다. 그녀와 처음 대본 리딩을 하고 팀원들에게 긴 글을 썼다. 확신을 잘 갖지 못하는 내게 확신을 준 배우였다. 나는 분명 허진 선생님에서 우리 할머니를 보았다. 허진 선생님은 톡- 쏘는 청귤 같았다. 작고 푸른데, 시면서도 달고, 균일하지 못하고 예측할 수 없으면서도, 이해 가능하고 사랑스러웠다. 새침하고 외로운 여자지만, 사랑받고 싶어 하셨고, 사랑하고 싶어 하셨다. 그녀는 그 시절을 버텨낸 여성들이 문신처럼 가진 흉터를 가졌다. 그게 우리 할머니를 닮아 괜스레 마음이 저렸다. 영순은 더 이상 우리 할머니가 아니었고, 나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럼에도 허진 선생님과 우리 할머니가 닮은 것을 거부하지 않도록 했다. 나의 전략은 허진 선생님이 그녀 자신으로 연기해도, 영순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즉, 허진과 영순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었다. 선생님을 끈질기게 관찰하고, 그녀가 살아온 삶을 깊숙이 이해하는 일이 초짜 감독인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우리는 그렇게 웃고 떠들고 싸우고 지치고 애정하며 관계를 쌓았다. <첫여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노인을 20대 여성이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판은 아니었다. 나는 나와 전혀 다른 생애주기를 살아낸 한 여자가 되어 말을 하고, 감정을 서술해야 했다. 내 시나리오의 빈칸들은 내가 진정으로 영순의 신체와 일상을 이해할 수 없음에서 비롯됐다. 별 수를 다 써봐도 영순이 어떻게 섹스를 하는지, 아침에는 어떤 컨디션인지, 긴 길을 걷는다는 의미가 그녀에게 무엇인지,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는 보통 컷 사인과 동시에 현실로 돌아간다. 배우는 연기를 멈추고, 다시 자신이 된다. 그러나 허진 선생님은 달랐다. 나는 5회차 촬영 내내 영순이 된 허진을, 허진이 된 영순을 봤다. 빈칸들은 허진 선생님으로 인해 메꿔졌다. 허진 선생님 손등에 난 검버섯 하나와 주름 한 겹이 꾸며낸 대사 몇 줄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선배는 선배라는 이름을 가진 이유가 있었고, 나는 신이 나 그 세월을 훔쳤다. 허진 선생님의 몸짓과 숨소리는 내가 연출해낸 것이 아니다. <첫여름> 촬영 중 허진 배우와 허가영 감독 영화 속 영순의 대사, “그놈이 만져주면 동하더라.”는 원래 “그놈이 만져주면 젖어.”였다. 카바레에서 영순과 덕희( 김미향 )는 요실금으로 인해 기저귀를 주고받았었다. <첫여름>을 쓰면서 절대로 지우고 싶지 않았던 장면과 대사였다. 그러나, 허진 선생님과 리딩을 한 첫날, 선생님은 바로 이 대사와 장면을 빼자고 제안하셨다. 노인에 대한 해석이 너무 가볍게 보일 수 있다는 이유였다. 우리는 기싸움을 했고, 나는 벼랑에 매달려 애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허진 선생님의 말을 따랐다. 그만큼 허진 선생님 또한 다른 부분들을 내게 선뜻 양보해 주셨다. 아직까지도 그것이 나의 타협일 수도 있었겠다는 자책이 맴돈다. 그러나, <첫여름>은 배우에게 기대 살을 붙이는 영화였다. 치열하게 설득한 후, 기꺼이 배우를 믿었기에 완성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젊은 내가 노년 여성의 삶을 다루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세계였기에, 말투 하나, 몸의 반응 하나까지 막막했다. 그래서 나는 많은 노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카바레를 무작정 찾아가 춤을 즐기는 분들과 가까워져 그분들을 영화의 단역으로 모시기도 했다. 카바레에서 동료들과 맥주를 까마시고 그 공간이 가진 온도와 냄새를 살갗으로 느꼈던 순간들, 그곳에서 맴도는 언어와 소문들을 훔치고, 노인들과 함께 춤췄던 순간들을 <첫여름>을 만들어가며 가장 사랑했다. 노인은 욕망하는 주체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노년 여성의 욕망을 지우고, 외면하고, 혐오한다. 소위 춤바람, 노망이라고 일컬어지는 노인들의 움직임은 분명한 역동을 가진다. 속절없이 늙어버린 신체와 삶 안에서도 그들은 끝없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이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그들은 살아간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여자일 수 있고, 남자일 수 있고, 결국 ‘인간’일 수 있다는 그 사실에 기대어 존재를 긍정한다. 나는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카바레에서 만난 노인들의 흘린 땀에서, 그 몸부림과 사랑에서 노인들이 만들어간 문화와 생존을 보았다. 특히, 영화 속 여성의 욕망은 종종 극단적으로 다뤄진다. 억눌리거나, 폭발하거나. 하지만 그사이에는 다양한 결이 있다. 나의 외할머니 역시 사랑을 하고, 춤을 췄지만, 동시에 고된 시집살이를 견뎠다. 그 복잡하고 다층적인 면모에서 ‘영순’이라는 인물이 탄생했다. <첫여름> 편집 기간은 쉽지 않았다. 나는 원체 편집을 못한다. 속옷가게 씬 편집할 때는 손도 못 대고 벙쪄 있던 기억이 있다. <첫여름>을 사랑했기에, 현장이 눈앞에서 재생되고 후회가 몰려왔다. 지금의 <첫여름>은 처음 그렸던 <첫여름>과 닮고도 많이 달랐다. 이 영화는 더 지저분하고 사람 냄새가 그윽한 영화이길 바랐는데, 내가 더 갔어야 했는데, 밀어붙여야 했는데. 그 실망이 나를 주저앉혔다. 그러나 <첫여름>이 담아낸 영순의 얼굴은 그런 나를 일으켜 세웠다. 이 이야기는 로맨스 영화가 아니라 한 여성의 주체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 노인들이 삶의 마지막 궤적에서 춤을 추고, 사랑하고, 관계를 맺어가는 그 움직임은 아름답고도 인간적이라는 것. 이는 우리가 이야기로서 마주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 사랑, 섹스 그리고 삶은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 나와 이 작품을 함께 만들어간 배우들과 동료들이 굳건하고 세밀하게 만들어낸 토대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이 이야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그리고 이 작품이 가진 생명을 다시 직시하고 믿으며 <첫여름>을 만들었다. 칸영화제에서 내 영화가 아주 먼 곳에서 온 관객들을 만나고, 선명히 상영되고, 수상했던 기억을 가끔 꺼내어본다. <첫여름>이 영화가 되고, 사랑을 받으며 칸국제영화제에 초청이 되면서 내 삶은 질주하듯 전복됐다. 그 변화가 생생한데도 불구하고, 그날의 감정은 거대하고 짙어 지금도 소화하는 과정에 있는 듯만 하다. 시상식 때 1등으로 내 이름이 호명되었던 순간은 특히 그렇다. 수상 발표가 나자마자 동료들 모두가 놀라서 울기 시작했고,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진 상태로 수상 소감을 발표하러 무대에 올랐다. 심사위원 중에 내가 깊이 존경하는 마렌 아데(Maren Ade) 감독이 있어 벅차고 떨렸다. 영어로 더듬더듬 소감을 말한 뒤 동료들 곁으로 도망치듯 돌아갔다. 칸국제영화제 라 시네프 섹션 수상 현장 그저 신기했다. 칸영화제는 영화인들에게 꿈의 무대인 만큼 눈이 부셨다. 쿠엔틴 타란티노랑 같은 공간에서 영화를 보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엠마 스톤을 봤다. 한편으론 영화제가 지나치게 화려해 상처받은 순간도 있었다. 종종 영화제가 너무나도 눈이 부셔 내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았다. 낮은 곳의 이야기에 주목하며 박수를 보내면서도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이 모든 문화적 자본을 누리고 소비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모순을 느꼈다. 영화학교 학생들이 모이는 라 시네프 섹션에서 전 세계 각지에서 영화를 만드는 또래 감독들을 만났다. 우리는 서로가 만든 영화를 비교하고, 만져보고, 느끼며 신났다. 그들과 소통하며 동시대의 영화인들이 가지는 시선을 봤고 큰 자극을 얻었다. 무엇보다 기쁜 건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무수한 얼굴의 관객을 만나는 일이었다. 상영 전 발표를 해야 해서 앞줄에 앉아 영화를 관람했는데, 관객들이 영순의 표정과 마음을 따라가며 신나게 웃고 격하게 울어주었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가닿아 감정을 일으키고, 우리가 공동체가 되어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그 귀한 감각을 만끽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관객의 얼굴을 지켜보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상영이 끝나자 관객들이 다가와 소감을 말해주었다. <첫여름>은 그 많은 관객들 하나하나를 만나 그보다도 더 거대한 이야기로 뻗어나가고, 새로운 생명을 얻어나갔다. 이 날 것의 반응들과 감정들을 지켜볼 수 있어, 나는 참으로 복 받은 연출자였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노인 관객들이 ‘삶의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라며 고마움을 전했을 때는, 내가 왜 창작자로서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되새길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사회와 연결되고, 인간과 대화하고 싶어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영화는 솔직하고 아름다운 예술이다. 내가 그곳에서 사랑했던 진실을 잊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 <첫여름>과 함께 내가 자라날 수 있었다. 연출자로서 이토록 가득해 넘쳐흐르던 첫여름이었다. 허가영(영화감독) l 솔직한 영화를 만들고, 필요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 너를 심을 땅 >(2025), <첫여름>(2025) 연출·각본. * 촬영 현장 및 일부 스틸: 필자 본인 제공
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인 구술사' 시리즈를 바탕으로, 자료가 없어 실체를 알기 어렵던 사건과 인물,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인의 입을 빌려 흥미진진하게 전달합니다. 취향에 맞는 영화라는 것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이미 정전으로 기록된 작품 목록의 외부를 끊임없이 훑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지영 감독의 이력에서 데뷔작인 <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1982)나 대표작으로 꼽히는 < 남부군 >(1990), < 하얀전쟁 >(1992)을 아는 사람들은 많아도, < 산배암 >(1988)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당대의 영화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다음과 같이 보았다. “이 작품 <산배암>의 광고 문안이나 포스터를 보면, 바로 그런 류의 한탕 영화라는 짐작을 하게끔 만든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러한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오히려 ‘벗기기’와 ‘지방 장사’가 기피하는 사회현실의 반영과 약간의 정치의식마저 담고 있기 때문 이다. 필자는 이 작품이 중견 정지영 감독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요즘 나온 영화 중 장선우 감독의 < 성공시대 >와 더불어 사회성 영화로 퍽 드물게 성공한 예에 속한다고 보았다.” - 정재형, “[영화평] 한국영화가 좋아지고 있다는 증거, 정지영 감독의 <산배암>”, 《스크린》 1988년 10월호(통권56호), 284쪽. “4년여의 긴 공백 끝에 만든 < 거리의 악사 >는 검열로 인해 부분적인 사회묘사마저 생략됨으로써 평범한 멜로드라마로 평가될 수밖에 없었으며 화제작이었던 < 위기의 여자 >는 과다한 나눠찍기에 의한 편집이 거슬리는 1930년대 할리우드의 여성관객용 멜로드라마의 재판이었다. 1988년에 만들어진 두 편의 영화 < 여자가 숨는 숲 >과 <산배암>은 정지영 감독의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최악의 작품이었다. 정신분석학적 접근과 계급의식이 배제된 이 두 편의 여성 심리를 다룬 영화들은 충무로의 장르영화에 불과하다 .” - 전양준, “젊은 평론가가 본 한국 영화감독 10인 (5) 정지영”, 《한겨레》, 1990년 7월 1일자 11면 기사. 음? 어떻게 이렇게 상반된 평가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위의 글이 <산배암>의 사회현실 반영과 정치의식(이 글의 뒤에서 이를 계급의식이라고 보충한다)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반면, 아래의 글은 ‘계급의식이 배제된’ 영화로, 심지어 정지영 감독 작품 중 최악의 영화로 평가한다. 당연히 하나의 영화에 대한 평가는 보는 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같은 지점에 대해 전혀 다르게 보는 경우는 흔치 않다. 도대체 <산배암>은 어떤 영화인가? 탄실이는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뱀도 잡고 벌레도 잡는 이 구역의 최상위 포식자이자 순박한 산골소녀이다. 그러나 집은 가난하고 산골에는 일자리도 마땅치 않기에 탄실이는 소개를 받아 부잣집으로 들어간다. 마을 사람들은 떠나는 탄실의 뒤에서 ‘식모살이’를 가게 되었다고 수군대고, 일을 소개해 준 사람은 펄쩍 뛰며 ‘건강이 안 좋은 부잣집 사모님을 돌봐주는 일’이라고 정정해준다. 실제로 탄실이가 도착한 부잣집은 이미 나이 든 식모가 일을 봐주고 있으며, 탄실에게는 사모님의 휠체어를 밀어주거나, 목욕을 시켜주는 정도의 일이 주어진다. 오히려 사모님은 자신의 비싼 옷을 탄실에게 주며 앞으로 자신의 것은 모두 탄실의 것이기도 하다는 다정한(?) 말도 해준다. 하지만 이들의 평화로운 나날을 깨뜨리는 인물이 나타나니 이 집의 주인인 사장님이다. 사장님은 수상한 여자로부터 반복적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피하고, 사모님은 자꾸만 사장님과 탄실 둘만 방에 남을 기회를 만들려고 한다. 그렇다. 탄실이는 사실 불구가 된 사모님을 대신하여 씨받이가 되기 위해 이 집에 온 것이다. 이 영화가 개봉하기 1년 전에 < 씨받이 >(임권택, 1986)가 국내 각종 영화상을 휩쓸었을 뿐만 아니라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강수연 이 여우주연상을 탄 이후라 이러한 소재가 그다지 낯설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아, 또 뻔한 이야기겠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묘미는 이 다음에 있다. 탄실은 결국 아기를 빼앗기고 집에서 쫓겨난다. 이런 상황에서 탄실은 무엇을 원할까? 복수? 우리의 탄실이는 이래 봬도 산골에서 뱀도 잡고 벌레도 잡고 놀던 건강한 소녀이다. 그녀는 복수에서 더 나아가 이 집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고자 하고, 그 과정이 영화 속에서 반전에 반전을 더하며 펼쳐진다. ‘산배암’이 된 탄실이는 독으로 상대를 단박에 물어 죽이는 것이 아니라 시커멓게 똬리를 틀고 들어앉아 천천히 숨통을 조이며 이 집안에 가장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나머지는 영화를 통해 직접 확인하도록 하자. 그래도 명색이 ‘구술로 푸는 한국영화사 미스터리’가 아닌가. 구술에 대한 이야기 한 마디 하지 않은 채 끝을 낼 수는 없다. 그럼 이제 한 집안을 집어삼키려는 ‘산배암’보다 더욱 어둡고 음습하고, 찝찝한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여러분 이 영화 한 번만 봐주세요 정지영과 1988년 정지영 감독은 여러모로 1988년 한 해 동안, ‘뱀’과 인연이 많았다. <산배암>은 8월 27일 코리아극장에서 개봉했다. 그리고 한 달 뒤, 미국 직배영화 < 위험한 정사 >(아드리안 린, 1987)가 한창 상영되고 있던 신영극장과 코리아극장에 영화감독 장길수 와 조감독 최진식 이 뱀을 풀며 소란을 피웠고, 이로 인해 두 사람은 업무방해혐의로 체포했다. (“미영화 직배 반대 시위 두 영화감독 즉심 넘겨”, 《동아일보》, 1988년 9월 27일자 14면 기사) 사건이 그렇게 끝나는 건가 싶었는데, 1년 뒤인 1989년 9월 4일 정지영 감독은 포항에서 <남부군> 촬영 도중 경찰에 체포되었다. 혐의는 코리아극장과 신영극장에 뱀을 집어넣도록 사주했다는 것이다. 나머지 이야기는 정지영 감독에게 직접 들어보자. UIP 직배반대시위 (사진: 부산시 부산영화체험박물관 기증) 정: 매일 코리아극장하고 신영극장 양쪽에, 그때 미국영화 직배가 상영될 때니까. 남: <위험한 정사>. 정: 어어. 그래 양쪽에 가서 매일 데모를 하면서 저녁에 들어와서 회의를 하고 헤어지고, 매일을! 그랬어요. (중략) 그런데 그렇게 데모를 할… 그때 88올림픽을 앞두고 어느 구역 안에서는 일체의 시위가 금지돼 있었다구. 근데 그거를 우리는 무시하고 한 거거든? 근데 신문에 안 나. (웃음) 신문에 단신으로 “영화인들이 이렇게 데모하고 있다” 나오고. (중략) 그래 그것이 쌓이다가 사람들이 지쳐가고 그러니까 누가 뱀 얘길 꺼낸 거지. “언제까지 이렇게 싸울 거냐” 정부에서 무슨 반응이라도, ‘자, 보자. 왜 그러냐. 너네들 만나나 보자’ 이런 반응도 없고. 기자들이 와서 취재도 안 하고. “이거 어떡할 거냐.” 그래서 누군가가 “이거 사고 치지 않으면 신문에 안 납니다.” (웃음) 그래서 “사고를 어떻게 치냐” 그랬더니, “사고를 곱게 치는 법이 하나 있다. 지금 <위험한 정사>를 하고 있는 극장에 뱀을 놓으면은… 물론 독 없는 뱀을 놓으면은, 사람들은 놀라겠지만 그걸로 크게 신문에 나면 극장은 며칠간 문을 닫고, 그럼 그건 사고다. 기자들이 안 다룰 수가 없다, 왜 그렇게 됐는가를. 그걸 해야 된다.” 이렇게 주장을 하는데, 그 주장을 한 사람은 옛날에 그런 사건이 있었대요, 충무로에. 어느 극장에 뱀을 넣어서 며칠 뭐 ‘일주일간의 휴관을 했다’ 이런 게 있었대. (136~137쪽) ‘뱀 얘기’를 제안한 사람의 “어느 극장에 뱀을 넣어서 휴관을 했다”라는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이 사건도 매우 재미있으니, 이야기가 나온 김에 살펴보고 가면 좋을 듯하다. 1958년, 충무로 극장 주변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깡패끼리 백주에 집단폭행이 일어나더니 그 보복을 하기 위하여 극장 관람석에다 뱀까지 집어넣어 관객들이 한때 혼란을 일으키고 다시 복수전을 전개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중략)… 지난번 29일 낮 11시경 세기극장 주변의 주도권을 빼앗으려고 극장 주변에 모였던 소위 명동파와 종로파 간에 패싸움이 벌어져서 …(중략)… 2일 밤에는 세기극장 관람석에다 뱀 두 마리를 집어넣어 관객들이 일대혼란을 일으킨 일이 있으나 이 뱀은 어느 파에서 집어넣은 것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한다. - “새로 개관한 세기극장에 뱀 소동”, 《조선일보》, 1958년 6월 5일자 2면 기사. 이전에 “ 한국영화 야인시대 ”에서 한 번 다룬 적이 있지만, 1958년에는 임화수 로 대표되는 종로파와 이화룡 으로 대표되는 명동파를 통하지 않고는 극장의 운영이 불가능했다. 이정재라는 든든한 뒷배를 갖고 있던 명동파는 틈만 나면 종로파와 세력 다툼을 벌였는데, 여기에 영화계에 갓 뛰어든 세기상사의 ‘세기극장’이 애꿎게 세력 결투의 장이 된 것이다. 사실 이 시기 명동을 중심으로 한 영화산업의 흐름은 조용히 충무로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건달 세력들이 자리를 잡고 있던 명동도, 종로도 아닌 ‘충무로’에 사업가 출신의 영화제작자(수입업자)들이 새로운 터전으로 잡고 모여들면서 시작되었다. 최근 진행하고 있는 신창영화사의 전석진 대표의 구술을 살짝 스포하자면, ‘화성영화사(이화룡)-한흥영화사( 최관두 )-대원영화사( 원선 )-한성영화사( 정진모 )’는 명동을 중심으로 하는 ‘명동파’의 대표들이었다. 이들은 각각의 회사인 듯 보이지만 하나의 쩐주를 통해 굴러가는 한 덩어리였다고 한다. 이를 깨고 나오기 시작한 것이 무역을 통해 크게 성장한 기업가들이었다. 세기상사가 그랬고, 이우석 이 영화계에 뛰어든 것도 이 시기였고(아직 동아수출공사는 설립 전이다), 불이무역이나 동양영화사와 같은 영화사들이 모두 무역업으로 시작해 충무로에 극장을 세우고 영화계로 들어왔다. 이 이야기는 그 나름으로 크고 재미있는 얘기니까 이쯤에서 접어야겠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다루어볼 것이다. 아무튼 저 ‘뱀 소동’의 이면에는 이러한 충무로 vs 명동의 세력 다툼이 배경에 있었다는 사실만 알아두자. 직배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극장에 ‘뱀을 넣자’라고 제안한 사람은 무려 30년 전에 있었던 사건을 기억해내고 의견을 낸 것인데, 이는 다시 말해 그가 1988년 직배저지투쟁이 벌어지고 있던 당시 영화계 원로의 위치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한 번만 더 스포를 하자면, 역시 올해 진행하고 있는 주제사의 구술자인 정병각 감독은 이 시기 직배저지투쟁과 스크린쿼터사수투쟁을 떠올리며, “원로영화인들의 참여가 매우 활발했다”라고 회고했다. 당시 영화계에서 원로영화인들은 딱히 일거리를 찾지 못해 그 지위가 매우 약해진 상황이었는데, ‘직배’라는 거대한 적을 앞에 두고 자신들의 역할이 생긴 것에 내심 새로운 활력을 얻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직배저지투쟁이나 이후 이어진 스크린쿼터사수투쟁과 영화진흥법 투쟁은 겉으로 보기에는 ‘미국영화 직배’라는 외부 세력과의 투쟁인 동시에 기존 충무로 세력과 새로 유입된 충무로 신진 인력들 사이의 세력 투쟁 또한 내재하고 있었다. 세력 다툼엔 역시 ‘뱀’이 등장하기 마련인가보다. 뱀은 사라졌지만… 다시 1988년으로 돌아오자. 저 뱀 제안을 듣고 회의가 진행 중이던 장내에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정지영 감독은 공식적으로는 저 의견에 반대 의사를 표했다. 정: 내가 말은 나왔지만 이것은 공식화 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여러분들이 박수를 쳤지만은 이것이 실현될 수는 없는 겁니다. 우리가 그런 사고를 어떻게 칩니까. 일단 이건 없던 걸로 합니다. 회의록에도 지웁니다.” 이렇게 하고 헤어지고난 다음에 그 아이디어를 제안했던 사람을 불렀어, 내가. “어떻게 뱀을 넣냐?” (모두 웃음) “뱀을 어떻게 넣냐. 누가 넣냐, 도대체?” “아니 이거 사람 사서 넣으면 되는 거지 우리가 어떻게 넣냐” “그러면 뱀은 어디?” “아이, 청계천 가면 뱀 많다.” (웃음) 그래서 그 사람을 통해 시켜서 청계천 가서 꽃뱀 사 가지고, 사람 사 가지고 뱀을 넣었지. 그러나 ‘뱀들은 극장 안에 있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차갑고 거친 시멘트 위에서 독이 올라 몽글몽글 자기들끼리 엉킨 채 옴짝달싹도 하지 못했다’라고 한다( 2022년 주제사 1권 <김형종> 2차 구술채록문 , 90~91쪽 참조). 결국 뱀의 출현은 다소간의 소요를 일으키기는 했지만, 대세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 채 조용히 지나가는 듯했다. 그리고 그사이 싸움의 방향이 바뀌었다. 영화인들은 ‘직배’가 영화산업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외교의 문제이기 때문에 저항을 한들 그 거대한 흐름 자체는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직배저지’가 아닌 ‘스크린쿼터사수’와 ‘영화진흥법 제정’ 운동을 펼쳐나갔다. 그런데 앞서도 말한 대로, 이 사건은 1년 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남부군> 촬영 현장. 이 사진의 뒷면에는 ‘이 장면을 찍고 밤에 서울로 연행 당함’이라는 메모가 적혀있다. (사진: 정지영 기증) 정: 그러다가 어느 날 포항에서 촬영을 하고 있는데 형사들이 갑자기 와 가지고 나를 연행해 갔지. 여기서 상당히 중요한 문제가 있는 건데, 내가 한참 촬영을 하는데 형사들이 왔다고. 계곡 위에서 찍고 있는데 형사들이 계곡까지 올라왔어요. 올라와 가지고 “왠일이냐?”고 그랬더니 “감독님, 서울로 올라가셔야 되겠는데요” 그래. “아니 서울은 왜 갑자기 올라가느냐?”고 내가 그랬더니 신문을 딱 주는데 보니까 거기에 ‘정지영 감독 구속’으로 돼 있어. 나는 여기서 지금 촬영을 하고 있는데 《조선일보》에 ‘정지영 감독 구속’ (1989년 9월 3일자 15면 기사-편집자 주) 그래서 “이게 무슨 소리냐?” 그랬더니 “아 글쎄 말입니다” 그래. “근데 왜 나를 연행해 가냐?” 그랬더니… 재밌다고, 이게. “아니 여기 구속으로 돼 있는데 감독님 여기 있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 말이 돼? 그렇게 한심한 시대였다는 거지, 말하자면. (웃음) 그러니까 신문에 ‘구속’으로 돼 있으니까 나는 구속돼 있어야 된다는 얘기 아니야? 신문의 오보를 내가 몸으로 실현해 주라는 거 아니야, 그건? (웃음) 남: 아, 그러면 그거는 어디서 정보를 미리 제공받아서 나온 기사가 아니라 오보가 난 거였던 거네요? 정: 오보를 일부러 쓴 거지. 나를 잡아오려고 일부러 오보를 낸 거지 . 물론 본인을 잡기 위해 일부러 오보를 냈다는 것은 정지영의 추측이다. 그러나 오보를 실현시키기 위한 구속이든, 구속을 위해 일부러 정보를 흘린 것이든 둘 다 어이가 없는 이유이고,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정지영 감독은 1989년 <남부군> 촬영 도중 체포되어 UIP영화 상영 극장에 뱀을 풀어 영업을 방해한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구치소에서 석방된 날, 정지영 감독(2열 좌2)과 정회철 감독(2열 우2)의 모습 (정지영 기증) 어쨌든 시작은 이렇게 과격하고 무모했지만, 이후 투쟁은 대학가에서 문화운동을 주도하던 새로운 세대의 합류로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그렇다고 1980년대 후반의 ‘직배저지투쟁’이 완전 실패라고는 볼 수 없다. 정지영은 이 시기 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스스로 평가를 내렸다. 정: 우리가 이 운동을 통해서 ‘우리 영화는 우리가 살려야지 누가 보호해 주는 게 아니다’란 생각을 한 거지. 왜냐면은 직배저지투쟁할 때 극장 앞에서 막 데모를 할 때 관객들이 표를 사 가지고 들어가요. 영화인들이 와서 데모 하고 있는데 표 사 가지고 들어가. 누군가가 이제 “관객 여러분, 이거 직배영화입니다. 영화 구경하지 마세요!” 그랬을 때 뭐라고 대답을 들었냐면, “당신들이 영화 잘 만들어 봐. 우리가 한국영화 보지 왜 미국영화 보겠어, 이 사람들아. 영화나 똑바로 만들어!” 그러고 들어갔다구. 그만큼 한국영화가 관객들한테 우습게 보였을 때란 말이지. 그것이 나한테 자극을 줬는데 다른 사람한테 자극을 안 줬겠어? ‘우리한테 책임이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지. 그래서 그런 것들이 모두 자극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운동이 모든 영화인들에게 (사이) 용기도 만들어 주고. 또 열심히 해야겠다는 어떤 자세를, 사명감 이런 걸 만들어 주지 않았겠는가. 나는 직배운동이나 스크린쿼터투쟁이나 검열 투쟁 이런 것들이 그냥 ‘표현의 자유 문제를 우리가 지적한다’ 이런 차원이 아니고, 그 운동 자체가 영화인들 개개인에게 ‘우리가 우리 영화를 잘 만들어야 사랑을 받을 수 있어’ 이런 어떤 사명감 같은 걸 심어주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해요. 2023년 『1980년대 한국영화: ‘서울의 봄’부터 코리안 뉴웨이브까지』 중 ‘구술로 보는 1980년대 한국영화’ 챕터를 쓸 때도, 이 ‘뱀 소동’은 무조건 넣는다는 일념으로 글을 구성했었다. 개인적으로 이 ‘극장에 나타난 뱀’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상당히 무모하긴 하지만, 한편으로 굉장한 시대적 위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디아나 존스 >가 상영 중인 극장에 뱀을 풀었으면 완전 4D 체험이 가능했을 텐데’ 같은 상상을 해보면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한국 영화시장을 집어삼키기 위해 (질적으로나 물량적으로 한국영화와 비교도 되지 않는) 미국영화들이 물밀듯 밀려들어올 때, 한국의 영화인들은 뱀을 내세워 이를 물리치려 했다. 마치 거대한 폭풍 앞에 부채 한 장을 들고 서 있는 형세였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다시 <산배암>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해볼까 한다. 정지영 감독(우3)과 <산배암> 출연 배우들. (《스크린》 기증) 위 사진 속 집과 마당은 묘하게 < 기생충 >(봉준호, 2019)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산배암>과 <기생충>은 ‘계급’과 ‘계단’이라는 모티프에서 매우 유사함을 갖고 있다. 1988년 도덕적으로 타락한 상류층 가정에 들어간 순진한 산골소녀는 자신이 가진 건강한 생명력까지도 착취하려는 이들에게 ‘산배암’이 되어 저항했다. 그리고 지금 3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사이, 계급에 대한 인식은 ‘뱀’에서 ‘기생충’으로 바뀌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언제든 자신이 받는 억압에 대해 ‘뱀’으로 돌변해 상대를 위협할 수 있었던 이들이, 이제는 숙주에게 붙어 사는 기생충이 되었다. 기생충은 숙주가 없이는 살 수 없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숙주에게 붙어 그 체계 안에서 피와 고름 같은 것을 먹으며 살아남든가, 아니면 공멸하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생존방식은 제3의 길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든다. 오늘날의 한국영화 안에, 그리고 극장 안에 다시 ‘뱀’이 나타날 수 있을까?
<미망> 중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잘 가,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난다면 어떤 춤을 추면서 너와 나는 둥글어질까, 여름의 장례식, 우리는 오래 나무 아래에 서 있었다 우리는 오렌지의 영혼을 팔에 안으며 혼자서 둥글어졌다 잘 가, 원점으로 어두워가던 너의 발이여, 오렌지빛의 소풍이여 *주1 - 허수경, 「오렌지」 이렇게 한번 주장해보고 싶어진다. 영화는 군중의 걸음걸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다면, 이렇게까지 믿어보고 싶다. 영화는 단지 걷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충분히 매혹할 수 있다고. 요약해보자면 < 미망 >(김태양, 2023)은 헤어짐과 장례의 시간으로부터 빠져나온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 나란히 걷는 것을 기록한 영화이다. 이들은 낡은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로운 정육면체를 쌓아 올리는, 붕괴와 재건의 행위가 끊임없이 갱신되는 서울의 복잡한 풍경 사이를 가로지른다. <미망>을 독해하는 첫 번째 방법(이자 대부분의 감상)은, 영화가 결국 인물들의 관계를 매듭짓지 않음으로써 생성되는 ‘서정’에 주목하는 것이다. 분절된 3편의 이야기와, 각 이야기의 틈에 단단하게 박혀있는 ‘단절’과 ‘공백’이라는 영화적・실제적 시간 *주2 이 이 영화의 고유한 시적 리듬감과 정감을 형성한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에 넘실대는 서정을 곱씹어보는 동시에, 엔딩 시퀀스에서 화면 밖으로 서둘러 사라지며 종적을 감춘 남자( 하성국 )의 행방을 계속해서 쫓아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김태양 감독에 따르면, 그의 차기작 <서울 이야기>에는 <미망>의 두 주인공 하성국, 이명하 배우가 다시 등장할 예정이다. 인용한 시구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난다면’이 어김없이 실행되는 곳, 이야기의 지속을 굳게 믿으면서 인물들이 담담하게 작별하고 외화면으로 탈주하는 곳, 이곳은 김태양 감독의 프레임이자 그가 ‘멋진 도시’ *주3 로 명명한 서울의 영화적 설계도이다. 그렇다면 <미망>을 이해하는 두 번째 방식은 감독이 서울을 매핑하는 방식을 가늠해 보는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서울은 무엇이며 어디일까. 오류로부터 산출된 서울이라는 픽션 “잘못 내렸어요.”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을지로3가역을 비추는 영화의 첫 숏 안으로 사람들이 마치 쏟아지듯 들어온다. 남자는 아마도 만나기로 약속된 사람과의 통화에서 자신이 잘못 내렸음을 알린다. 공사 현장과 초록색 잎사귀가 무성하게 달린 나무 앞을 지나며, 남자는 ‘여기가 이렇게 연결되네요’라고 말한다. 그의 발걸음은 어떤 연결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다음 숏에서 남자는 과거의 연인(으로 추정되는) 여자(이명하)와 맞닥뜨린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고 대화하면서 영화는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아즈마 히로키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실수로 내리지 말아야 할 곳에 내린 남자는 생경한 장소로 잘못 배송됨으로써 우연성이 내재된 세계로 뛰어든 오배(誤配)의 존재이다. 예정된 곳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어야만 시작되는 이야기. <미망>은 남자의 잘못 내린 행위, 다시 말해 오류로 산출된 행위들로 조합된 서울의 픽션이다. 물론, 우연성에 기대어 영화를 읽는 것은 유별난 발견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상술했던 마지막 시퀀스를 다시 떠올려보자. 잠에서 깨어난 남자는 창밖으로 뿌옇게 보이는 서울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광화문 광장으로 보이는 곳을 버스가 지나치자 황급히 하차벨을 누르고 프레임의 오른쪽으로 사라진다. 프레임의 왼쪽으로부터 걸어 들어오며 출현했던 오프닝 숏을 환기하는 이 남자의 몸짓은 여자와 헤어진 후 또다시 잘못 내리기를 결심한 것 같은, 즉 불확실성의 세계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행위에 가까워 보인다. 배역의 이름과 플래시백이 부재하는 이 영화에서, 불릴 이름과 기억이 없는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의 신체로 오류를 기꺼이 실천하는 것이다. 적어도 <미망>에서 남자가 잘못 내린다는 것, 그리고 어딘지 모르겠는 미로 같은 서울의 한복판을 걷는다는 것은 끝을 맺지 못했던 관계의 대상과 다시 조우하는 행위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망>은 안타까움의 서정과 서울이라는 복잡한 노선도를 해체하며 재회를 향하는 반복적인 발걸음이 만들어내는 역동성이 공존하는 영화이다. <미망> 중 남자와 여자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남자의 발걸음이 길 잃은 사람의 것이라면, 여자의 발걸음은 죽음을 겪고 다시 생의 공간으로 걸어 나온 사람의 것이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고백하는 여자는, 그 후 연락처를 바꿨음을 말하며 남자에게 ‘나 변한 것 없어?’라고 물어본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그녀는 ‘서울극장’이라는 장소의 죽음을 선언하며,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함께 알던 예전 사람의 넋을 기리는 장례식에서 남자와 재회한 후, 광화문 일대를 다시 걷는다. 여자에게 죽음은 지난 관계를 매듭지으면서 새로운 관계로 연결되는 선험적인 사건이며, 그런 그녀가 걷는 걸음이란 장례의 시간으로부터 나와 생의 공간으로 복귀하여, 살아있는 사람과 변한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빚어낸다. 여자는 마지막 이야기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옛 친구에게 ‘난 죽을까봐 운전 못 하겠어’라고 말한다. 운전하지 않는 그녀가 길을 걷는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을 감각하는 행위이다. 말하자면 <미망>이 그려내고 있는 서울의 거리란 길 잃은 사람과 삶으로 복귀한, (이미지적으로) 환생한 사람이 멈추지 않고 각자의 궤도에 따라 걸으면서 서로의 간격을 좁혀보고자 하는 몸짓들이 조우하는 잠재적인 시공간이다. 영화는 촘촘하게 조립된 서울의 노선도를 해체하고, 출발시간과 도착시간, 환승 방법들이 지겹도록 나열된 정합적인 도시인 서울을 탈영토화시킨다. 세 번째 이야기 중간 즈음, 택시 안에서 이뤄지는 세 사람의 대화 사이에 초월적 시선으로 서울의 저녁 풍경을 담은 익스트림 롱숏이 등장한다. 이 숏은 다시 한 번 나를 부추긴다. 미세혈관처럼 배치된 긴 도로와 그 위를 채우고 있는 차량들, 그리고 그 안에 있을 사람들. 어쩌면 이들은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길 잃은 사람들일 뿐이며, 누구와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할지 모르는 우연과 잠재성으로 가득 찬 도시, 서울의 이름 없는 시민들은 아닐까. 그러니까 서울은 순수한 강렬함을 가진 미세한 입자들이 끊임없이 탈주하는 선들로 구성된 기관 없는 신체 *주4 인 것은 아닐까. 이 주장을 견고히 하기 위해, 주인공들이 걷던 길 위로, 배우와 카메라 사이를 개의치 않고 침입하여 활보하던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영화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이 어딘가를 향한다. 아니,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걷고 있다고 해야겠다. 이름 없는 사람들이 유기체처럼 조직된 노선도를 벗어나 구태여 길을 잃고, 살아있음을 스스로의 발걸음으로 감각하는 곳. 김태양 감독의 장편 데뷔작 <미망>은 기관 없는 신체, 서울의 픽션을 발명한다. 20세기의 결말 없는 영화와 이름 없는 이들의 발걸음을 호명하면서 두 번째 이야기.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간 어둠 속 스크린에선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 박남옥 의 < 미망인 >(1955)이 상영되고 있다. 여자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면서, ‘극장 문을 열고 나서면 1955년과 같은 거리를 걷는 것’이라 말한다. 그런가 하면, 여자를 따라나선 남자( 박봉준 )는 피맛골의 유래를 이야기하면서 서울의 뒷골목에 무수히 쌓여온,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상기시킨다. <미망>은 결말이 유실된 20세기의 영화와, 서울의 길거리를 채웠던 사람들의 무한한 발걸음을 호명하면서, 서울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픽션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걸었던 자리를 다시 걸어보는 신체의 반복적 행위가 역사를 환기할 수 있을까? 마지막 이야기에서 여자의 머리 위로 떨어졌던 대낮의 빗방울이, 남자에게는 여자와 헤어진 후 홀로 골목길을 걷던 밤이 되어서야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장면은, 첫 번째 이야기에서 여자가 담배를 피우던 골목길로 돌아가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는 장면과 대구를 이룬다. 헤어진 존재의 행위를 복각해보면서 지금은 내 옆에 없는 상대방의 마음을 그림자처럼 어렴풋하게나마 추적하는 것. 이것은 <미망>이 서정의 회로를 만드는 방식이자, 신체의 재연을 통해 발현되는 픽션의 역량을 믿어보고 싶게 만든다. <미망> 중 골목의 여자, 그를 따라나선 또 다른 남자 올해 2월 21일부터 3월 1일까지 진행되었던 ⟪ 각각의 영화사 ⟫는 한 영화가 다른 영화들과 맺는 연속적인 관계를 되짚어보기 위해 마련된 기획전이다. <미망>은 박남옥 감독의 <미망인>(1955)과 더불어 강대진 감독의 < 마부 >(1961), 이용민 감독의 < 서울의 휴일 >(1956)과 한데 묶였다. 나는 이 영화들을 하나의 이미지 집적체로 상정하기 위해, <미망>이 사용한 방식, 즉 행위의 반복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서로 다른 시공간을 살았던 사람들을 마치 하나의 시공간에 있는 것처럼 둥근 나선의 형상으로 모아보는 것. 이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은 영화가 이미 성취한 바 있다. 그 중, 아피찻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의 작품 중 < 엉클 분미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2010)의 한 시퀀스를 언급하고 싶다. 영화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식사 장면이 그것이다. 분미와 젠, 통이 한데 모여 식사를 하고 있을 때 19년 전 죽었던 분미의 아내 후아이의 유령이 나타난다. 늙지 않은 모습 그대로. 이어서, 13년 전 가출했던 아들 분쏭은 원숭이 유령의 모습을 하고 등장한다. 이 시퀀스에서 산자와 망자, 인간과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존재는 한데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재현 불가능성을 초월함으로써 영화의 한계를 극복한 <엉클 분미>는 한자리에 있을 수 없는 존재들과 그들이 머무는 불가능한 시공간을 태국의 숲으로 한 데 불러 모아 하나의 숏 안에 현시한다. 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경탄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안부를 묻는다. <엉클 분미> 중 (사진: " Loong Boonmee raleuk chat ", IMDb) <미망>과 함께 상영된 세 한국 고전을 한 데 묶는 가장 명료한 방법은 사람들과 자동차, 대중교통과 마차가 복잡하게 교차되는 서울의 광장이라는 시공간과 그곳을 누비고 있는 인물들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영화의 인물들은 모두 ‘사건’ 후에 남겨진 사람들이다. 세 고전은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겪은 후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형상을 포착한다. 그리고 <미망인>, <마부>, <서울의 휴일> 모두 죽음과 죽음이 촉발하는 인물, 그리고 서사의 변화를 그린다는 점에서 <미망>의 여자와 겹쳐지며 네 영화는 성글게 연결된다. <미망인>은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한 여인의 욕망을 대담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마부>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예컨대 비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Sica)의 <자전거 도둑>(Ladri di biciclette)을 떠올리게 하면서, 한국전쟁 후 한 가족이 겪는 질곡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부>에서 첫째 딸, 옥례( 조미령 )가 죽은 후 수원댁( 황정순 )이 이 가족의 비어있던 어머니 역할을 메우면서 네오리얼리즘에서도 두드러졌던 연대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서울의 휴일>은 살인 사건에 휘말린 신문기자 송재관( 노능걸 )의 행적을 좇는 동시에 남편의 부재로 계획과 다른 휴일을 보내게 된 의사 남희원( 양미희 )의 하루를 채우는 여러 해프닝을 나열한다. 그녀는 우연히 한 여인의 출산을 돕게 되는데, 그녀는 살인자의 아내라는 점에서 죽음이 생으로 변환되는 지점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세 고전과 <미망> 모두, 여성이 주도적으로 상황을 이끌어나간다는 점에서도 유사점을 갖는다 할 수 있겠다. (상) <미망인> 중 클로즈업되는 이신자의 발걸음 / (하) <마부>, <서울의 휴일> 중 길 위의 인물들 <미망>의 인물들이 걷던 서울의 길. ⟪각각의 영화사⟫는 이 거리의 형상을 재편한다. 주위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의지로 삶을 이어나가려 했던 이신자( 이민자 )의 굳건한 발걸음, 춘삼의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것을 망설임 없이 내어주며 그들에게 먼저 다가갔던 수원댁의 온정어린 발걸음, 초조한 마음으로 시험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눈길을 헤쳐 나가던 수업( 신영균 )의 무거운 발걸음. 그리고 유혹에 굴하지 않고 생명을 살리는데 거리낌이 없었던 남희원의 발걸음. ⟪각각의 영화사⟫에서 추출해볼 수 있는 서울이란, <미망>의 인물들이 증언하였듯 사람들의 무수한 발걸음으로 구성된 도시이자 역사이며, 과거와 현재, 서정과 삶의 의지가 역동적으로 진동하는 픽션이다. 비평이라는 퇴행하는 몸짓에 대하여 얼마 전 ⟪씨네21⟫ 편집부로부터 올해 영화평론상 공고문에 들어갈 전년도 수상자의 소감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물론 당선 시점을 생각하면 아직 1년에 한참 모자라지만(그렇게 믿고 싶다), ‘전년도’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원고지 1.6매의 짧은 분량 안에서, 비평을 ‘퇴행하는 몸짓’이라 말했다. 더 겸허한 자세를 취하겠다는 다짐을 적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건 비평의 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건 내 탓이 아니라는 새침한 변명에 불과한 것 같기도 하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누군가는 왜 ‘비평에 대한 생각’은 끄트머리에 짧게 등장하고, ‘비평’만 가득한 것인지 불만을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등단 이후 쓴 글 중 가장 요란한 고통의 몸부림을 치게 한 이 글의 개요를 구상할 때부터 이러한 구조를 생각했다. 마지막에 등장하기. 이건 피날레를 장식하겠다는 야망과 무관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는 비평가는 ‘몫 없는 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먼저 영화라는 텍스트가 선행되어야 할 테고, 그 이후에 텍스트를 중심으로 생성되는 얕은 사유들이 뒤따른다. 이상적으로는 담론을 형성할 것이고,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읽히지 않은 채 ‘요즘에 누가 비평을 읽어?’라는 뼈아픈 비판을 견고히 하는 예시로 사용될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비평을 가까이하려는 누군가가 ‘혹시 거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나요?’라고 빈곤한 A4용지 너머로 물어봐준다면, 그제야 쑥스럽게 고개를 내밀고 ‘사실은 말이에요’라며 나타나는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비평가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용량을 초과한 이 글의 대부분은 <미망>에 대한 비평일 수밖에 없고, 그 뒤를 따르는 것은 <미망>을 다시, 그리고 치열하게 보게끔 해준 ⟪각각의 영화사⟫에 대한 단평인 것이다. 이 글을 읽다 지쳐 중간에 떠난 사람들은 마지막 문단을 보지 못할 테지만, 선행하는 글들을 흥미롭게 읽은 사람이라면, 전년도 수상자가 말하는 비평에 대한 이 고백을 읽고 있을 것이다.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는 “영화는 흔한 장소인 공공 공간이다. 그것은 기념비가 아니라 토론과 행동의 공간이다. 그것은 하나의 생태계다.” *주5 라고 말한 바 있다. 비평의 영역을 만들어주는 것 같은 이 말은 조금은 희망적이다. 한편, 연극에 대한 두 철학자, 필립 라쿠-라바르트와 장-뤽 낭시의 논쟁을 다룬 책 『무대』(2020)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혔다. 두 개의 대화가 처음으로 함께 출판되었다. 두 대화는 서로 긴 시간 간격을 두고 이루어졌지만, 그 목표는 언제나 두 대화 상대자 사이에서 새롭게 토론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토론은 필립 라쿠-라바르트의 죽음으로 중단되었다. *주6 - 장-뤽 낭시 이 책을 채우고 있는 아름다운 문장들과는 별개로, 둘의 대화를 단절시킨 것이 죽음이었단 사실은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죽음 외엔 이 사유를 멈출만한 사건이 없었다는 점에서 작은 안도감을 느낀다. 한편에는 비평의 무용함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영화의 죽음을 예견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나는 그 사이 어디쯤 어정쩡하게 서 있다. 언제까지 두 목소리 사이를 오가며 비평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죽음을 말하기엔 아직 못 본 영화들과,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들이 많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다. 한 영화에 대한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적어도 비평을 쓰는 동안만은 지구상에서 그 영화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내가 되어야만 한다는 허황된 다짐을 하곤 한다. <미망>을 여러 차례 보면서도, 그런 절박함에 휩싸인 순간들이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싶다. 잘 가, 원점으로 어두워가던 너의 발이여, 오렌지빛의 소풍이여 *** 주1. 허수경, 「오렌지」의 후반부,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문학과 지성사, 2016, pp. 42~43. 주2. <미망>은 두 단편 < 달팽이 >(2020)와 < 서울극장 >(2022), 그리고 중편 <소우>(2022)를 한데 모아 배치한 장편이며, 여기에는 4년이라는 시간이 축적되어있다. 영화는 코로나로 인한 단절의 시간을 겪으면서 완성되었으며, 이로 인해 형성된 공백과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체화한 배우들의 변화는 역설적으로 이야기의 지속을 증명한다. 주3. 지난 3월 1일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김태양 감독은 차기작의 제목을 <서울 이야기>로 정한 배경에 대해, < 동경 이야기 >(오즈 야스지로, 1953), < 타이페이 스토리 >(에드워드 양, 1985), < 뉴욕 스토리 >(우디 알렌,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세이지, 1989)는 있지만 <서울 이야기>는 아직 없다며, 이 ‘멋진 도시’를 영화 제목으로 선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4. 기관 없는 신체(Corps sans organes, CsO)는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Pierre-Félix Guattari)가 함께 집필한 『천 개의 고원』(새물결, 2001)에서 인용한 것으로, 이 개념은 잔혹극의 창시자인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주5. George Baker and Pierre Huyghe, An Interview with Pierre Huyghe , The MIT Press, 2004, p. 96. 주6. 필립 라쿠-라바르트, 장-뤽 낭시, 조만수 옮김, 『무대』, 문학과 지성사, 2020. 문주화(영화평론가) l 2024년 씨네21 영화평론상을 통해 등단했다. 아직은 비평이라는 퇴행하는 몸짓이 가진 역량을 믿고 있다. 세상이 지겨울 때 영화관을 가고, 좋은 영화를 만나면 세상이 다시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