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이브
- 감독
- 조지 쿠커
- 제작년도
- 1949
- 출연
- 스펜서 트레이시, 캐서린 햅번, 주디 홀리데이, 톰 이웰, 데이비드 웨인, 진 헤이근
사진: " 플로우 ", IMDb 한국영화로는 두 편을 골랐다. 이란희 의 < 3학년 2학기 >(2024)는 < 다음 소희 >(정주리, 2022)와 겹치는 영역을 다루지만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르다. 멜로드라마는 최소화되었고 아마도 지속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차분한 일상성이 들어온다. 무엇보다 이처럼 일상의 노동과 그 환경에 이만큼 깊은 관심을 가지는 영화는 오래간만이다. 윤가은 의 < 세계의 주인 >(2025)을 통해 자주 다뤄진 특정 소재와 주제를 다루는 단호하고 명쾌한 방식은 놀랍고 새로우며 아름답다. < 씨너스: 죄인들 >(라이언 쿠글러, 2025)과 <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폴 토마스 앤더슨, 2025)는 올해의 할리우드 영화들이다. 지금 이 시대에 고전적인 할리우드의 재료와 스타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고 할까. < 내 말 좀 들어줘 >(마이크 리, 2024)는 마이크 리의 방법론이 아직도 새롭고 강렬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올해는 프랑스 영화가 두 편인데 < 여름의 랑데부 >(발렌틴 카디크, 2025)에서 우린 에릭 로메르에서 시작된 전통이 로메르의 영역을 넘어 발전하고 확장되는 과정을 보게 된다. < 미세리코르디아 >(알랭 기로디, 2024)는 아마도 올해의 코미디인 것 같다. 사악하게 어처구니없지만 그러면서도 연민과 사랑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그리고 <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파얄 카파디아, 2024)이 그려보이는 뭄바이는 영화가 도시를 그리는 가장 완벽한 도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해 보인다. 애니메이션을 두 개 골랐다. 너무 처참해서 오히려 우스꽝스럽고, 너무 작정하고 못생겨서 오히려 사랑스러운 < 달팽이의 회고록 >(아담 엘리어트, 2024)과 바로 오늘 다룰 < 플로우 >(긴츠 질발로디스, 2024)다. 사진: " 플로우 ", 네이버 영화 <플로우>를 고른 데에는 개인적 이유가 있다. 작년에 나는 같이 살던 고양이 한 마리를 떠나보냈다. 사적인 이야기는 될 수 있는 한 하지 않으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내 고양이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한다. 그 때문에 <플로우>를 처음 보았을 때 내 개인적인 경험은 영화의 감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 영화가 드림웍스의 < 장화 신은 고양이 >(크리스 밀러, 2011)처럼 의인화된 고양이를 다룬 작품이라면 그만큼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만든 긴츠 질발로디스는 그 길을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인 고양이를 그렸느냐. 그러지도 않았다. 이 영화의 이름 없는 고양이는 그사이의 가느다란 길을 걷는다. 담벼락 위를 산책하는 진짜 고양이처럼. 질발로디스가 창조한 세계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곳이다. 인간들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들이 만든 것들은 크게 부서지지 않은 채 남아있다. 고양이가 사는 집에는 그곳에 살았던 인간들이 만든 것 같은 고양이 조각상과 스케치가 있다. 마치 마리 셀레스트호의 사라진 선원들처럼 인간들은 그냥 이유도 없이 갑자기 존재하기를 멈춘 것 같다. 등장하는 동물들도 이상하다. 고양이와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같이 있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캐피바라, 여우원숭이, 뱀잡이수리가 같은 공간에 있다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을 우리가 사는 지구와 비슷하지만 다른 곳이라고 퉁 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세계의 물리적 실제성을 계속 의심하게 된다. 이곳은 실재하는 공간보다는 애묘가의 몽상처럼 보인다. 아마도 이곳은 인터넷 사람들이 고양이별이라고 부르는 곳인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감독의 개인 경험을 의심하게 되는데, 정작 감독은 개를 기른다. 하지만 고양이와 살았던 경험이 있고 그 경험이 영화의 정서적 흐름에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 사진: " 플로우 ", 네이버 영화 이야기는 단순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영화엔 대사가 없기 때문에. 텅 빈 집에 살던 고양이가 갑자기 홍수와 마주친다. 고양이는 물을 피해 달아나고 그러다가 빈 보트 위에 올라탄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다른 동물들이 한 마리씩 보트 위에 오른다. 그들은 말이 통하지 않고 타고난 습성도 다르다. 하지만 살아남으려면 같이 어울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동물들이 나오는 고전적인 틀의 동화이다. 영화는 동물을 의인화한 수많은 동화에서 논리와 구조를 가져오고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동물들은 모두 지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키를 잡고 보트를 조종하고 윤리적 딜레마를 경험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먹이사슬이 교묘하게 탈색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잡아먹히는 동물들은 물고기밖에 없고 그들에겐 포유류나 조류의 생기가 제거되어 있다. 이 영화가 그리는 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다. 이 정도면 너무 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작 영화의 묘사는 거기에 맞추어져 있지 않다. 여전히 영화에 나오는 동물들은 수상쩍을 정도로 사실적이다. 자연 상태에서 캐피바라나 뱀잡이수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고양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럴싸하다. 동작이나 행동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표정이 그렇다. 이렇게 정교하게 고양이 표정을 살린 애니메이션 영화를 전에 본 적이 있나 싶다. 스크린 위에서 이런 이야기와 이런 묘사와 결합되면 관객들은 아주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사진: "Peullou( 좌 , 우 )", IMDb 홍수 이야기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노아의 방주를 다룬 성서 이야기,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고. 하지만 이 두 주제는 이 영화와 완전히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구약의 홍수는 인간에 대한 신의 처벌이다. 하지만 홍수가 시작되었을 때 이미 인간은 사라지고 없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고로 보더라도 아귀가 맞지 않는데, 이 세계는 온난화를 촉진했을 기계 문명이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다. 이 목가적 폐허와 환경 문제를 연결해 해석을 시도하면 여러모로 무리수를 두게 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이 세계에서 그냥 일상일까? 이 홍수가 첫 번째가 아니라는 암시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영화 속 동물들은 주기적인 홍수를 경험하며 살아온 것 같지도 않다. 이 영화의 월드 빌딩을 설명하려는 모든 시도는 어느 단계에서 이상해진다. 결국 모든 게 애묘가의 꿈이라는 게 가장 그럴싸한 답이다. 영화를 연달아 보다 보면 이 세상을 해석하고 의미를 찾으려는 모든 시도가 그리 큰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선 이 세계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어떻게 우리가 아름다움에 시비를 걸 수 있겠는가. 둘째로, 이 영화를 이루는 다른 존재들에 대한 연민, 동정, 이해 그리고 이에 바탕을 둔 친절함과 연대는 세상의 이해와 무관하게 존재한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친절하기 위해 굳이 세계의 숨은 의미를 찾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우주의 명령 없이 선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 사진: " Peullou ", IMDb 듀나(영화평론가) l SF 작가이고 영화 컬럼니스트다. 영화 관련 저서로는 『가능한 꿈의 공간들』(2015), 『옛날 영화,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2022),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2019), 『남자 주인공에겐 없다』(2020) 등이 있다.
사진: " 도큐멘타 14에 관한 뒷 얘기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5년을 주기로 열리는 현대미술 전시회 ‘도큐멘타 14(documenta 14)’의 예술 감독인 아담 심지크(Adam Szymczyk)가 도큐멘타의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헨리에트 갈루스(Henriette Gallus)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갈루스는 심지크에게 “그녀는 영악한 짓을 하고 있어요. 우리와 자신을 묶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심지크가 대꾸한다. “영악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녀가 우리와 함께 가라앉을지도 모르니까요.” 1년 후, 그들이 말하는 ‘그녀’에 해당하는 아네트 쿨렌캄프(Annette Kulenkampff)는 540만 유로의 적자를 빌미로 도큐멘타 CEO 직(職)에서 물러났으며 이 스캔들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예술행사의 성취를 통째로 가려버렸다. 독일 언론으로부터 ‘무모한 침입자’로 묘사된 심지크는 도큐멘타 14가 남긴 적자의 원흉으로 공격을 받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지나친 예술적 야심이 화를 불렀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예술계에서 비난을 받는 사람들 중에는 끈기와 주견, 고독, 창의성을 지닌 별종들이 있다. 심지크는 그런 인물이며, < 도큐멘타 14에 관한 뒷 얘기(exergue - on documenta 14) >(디미트리스 아티리디스, 2024)는 이 별스러운 인물에 관한 캐릭터 연구이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현대적 예술 제도의 존재 양식과 가치 기준에 대한 방대한 기록을 제시한다. 도큐멘타 14는, 심지크의 담대한 결정에 따라 역사상 처음으로 독일 카셀과 그리스 아테네, 두 도시에서 나눠 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막대한 적자가 났고 정치인과 미디어 기관의 공격이 쏟아졌다. ‘아테네에서 배우기’라는 제목 하에 개최된 이 웅대한 프로젝트는 유럽 역사에서 식민주의를 탐구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포함하고 있었고, 미투 운동과 테러리즘, 유럽발 경제위기, 폭력과 전쟁의 한복판에서 열렸다. 어떤 다큐멘터리도 특정 행사의 총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지만, 14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는 바로 그것을 해냈다. 디미트리스 아티리디스 감독은 큐레이터들의 회의, 스튜디오 방문, 기자회견과 프레젠테이션 따위의 공개 행사, 예산 문제, 설치 과정, 파티를 횡단하면서 위기에 처한 기관의 속살을 들추어낸다. 2015년 여름부터 2017년 가을 도큐멘타 14가 종료될 때까지를 따라가며 14개의 장으로 구성한 이 영화는 사명감에 불타는 예술 큐레이터의 행적을 시간순으로 기록하였다. ‘아트 바젤’의 디렉터였던 심지크는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거의 없는 대신 카메라를 벗어나거나 화면 가장자리에 휴대폰을 두고 사진을 찍는다. 예술이 정치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 그는 예민하지만 편집증에 빠진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영화는 ‘돈’이라는 주제를 피하지 않지만, 예산은 큐레이터들 간의 대다수 대화에서 나타나는 유령처럼 보인다. 오히려 <도큐멘타 14에 관한 뒷 얘기>는 거대한 논쟁을 낳은 열네 번째 에디션이 예술 전시의 개념에 대해 급진적인 방식으로 변화를 꾀한 내력을 초점으로 한다. 사진: " exergue - on documenta 14 ", IMDb 미술 전시 큐레이팅에 대한 14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볼만한 가치가 있는가? 확실히, 그렇다. 디미트리스 아티리디스가 이룬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매력적이고, 긴장감 넘치고, 시의적절한 문제의식이다. 3년 넘게 아티리디스는 폴란드 출신의 예술 감독이 전 세계 국가를 돌며 뛰어난 작품을 찾고, 창의적인 큐레이터 팀과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유력한 지식인, 예술가, 영화 제작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자금을 조달하는 기관과 협상하고, 작품을 설치하고, 정치인과 만나고, 언론에 답변하면서 도큐멘타 14를 조직하려는 노력을 조명한다. 이것은 흥미롭고 신명이 나는 광경인 동시에 끔찍한 시간이기도 하다. 혼란스러운 구조와 큐레이션 담론을 묘사하는 정밀성을 통해 심지크의 큐레이션 팀은 선동적인 정치가 무참하게 무너뜨린 것(예술의 본원적인 가치)을 구제하려고 했다. 이런 종류의 거대한 예술 이벤트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피상적인 수준에 머문다. 이벤트의 연속성을 조각조각 모으려는 이 영화의 엄청난 노력은 검열이나 부채로 인해 가려지는 것들, 예술가와 큐레이터의 이상적인 협업 모델, 시대의 쟁점을 가시화하는 과정에 대해 말해준다. 2017년 나는 ‘도큐멘타 14’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고 다양성과 깊이를 갖춘 전시의 모든 레퍼토리에 감동을 받았다. 7년이 지난 지금도 노이에 갤러리(Neue Galerie)의 방들, 스탠리 휘트니(Stanley Whitney)의 추상화와 어니스트 만코바(Ernest Mancoba)의 수채화, 올루 오귀베(Olu Oguibe)의 오벨리스크, 기차역의 요나스 메카스(Jonas Mekas)에게서 받은 영감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화려한 축제의 뒷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도큐멘타 14에 관한 뒷 얘기>는 만성적인 위기에 시달리는 예술계, 이 역설과 씨름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고고한 에디터 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한 사례를 언급할 수 있겠다. 베이루트에서 폭발이 일어나기 전 큐레이터들은 지붕을 타격하는 총소리를 듣는다. 그리스의 극우 정당인 ‘황금의 새벽’은 도큐멘타 본사 바로 앞에 있는 노점상에 불을 지르고 도큐멘타 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 광경을 바라본다. 베이루트에서 작가 카엘렌 윌슨-골디(Kaelen Wilson-Goldie)와 미술계의 순회 전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심지크는 “파티는 끝났다”라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심지크의 허탈한 말과 달리 도큐멘타 14의 현란한 주제 설정은 흥미롭기 그지없다. ‘폐허, 다중적 시간성, 장애 연구, 반정신의학, 섹슈얼리티의 정치, 트랜스 페미니즘, 포스트 포르노 정치학, 에너지 정치, 죽음과 애도, 의식의 기술, 샤머니즘, 다중 자연주의, 자유의 발명을 위한 프로토콜로서의 건축, 범 아프리카주의, 흑인 전통, 반 식민지주의와 탈식민지주의 지식, 원주민, 토착주의, 급진적 교육학.’ 시대를 통찰하는 예술 행사의 문제설정에서 비판과 창의성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사진: " exergue - on documenta 14 ", IMDb / " 도큐멘타 14에 관한 뒷 얘기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전설적인 피터 왓킨스(Peter Watkins)의 <레산(Resan)>(1987)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긴 다큐멘터리로 기록된 <도큐멘타 14에 관한 뒷 얘기>는 예술 시장과 외교의 관계에 대한 심오한 연구 작업을 만들어냈다. 지적인 야망을 품고 관료주의적이고 부조리한 현실을 뚫고 가는 이들의 용기가 한 편에 있지만, 독점적인 접근을 통해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빛나는 예술 작품의 큐레이션이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힘을 얻는 것도 예술의 힘이다. 영화에는 숱한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싸우고,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그리고 두려움, 분노, 기대, 좌절, 기쁨 등과 같은 보편적인 감정이 있다. 시를 읽거나 그림에 관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거나 무언가를 발명할 때 느끼는 것도 감정이다. 오늘날 영향력 있는 예술 콘텐츠는 미디어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다. 이 영화는 다른 수준에 존재하는 예술, 지적이고 영적인 희망을 줄 수 있는 예술의 감정에 관해 묵상하게 한다. 축제 기획자이자 큐레이터로서 나는 이런 주제를 말하는 영화에 완전히 몰입하였다. 정부 지원 이벤트의 큐레이터가 정부의 요구를 따르지 않고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 공공 예산을 사용하는 예술 이벤트의 큐레이터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예술과 대중의 간극을 극복할 방법은 있는가? 이것은 혁신가 아담 심지크의 고뇌 중 하나일 뿐 아니라 예술 전시 축제의 기획자로 일하는 모든 이들의 뇌리를 맴도는 질문이다. 장병원(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l 영화주간지 《필름 2.0》 편집장,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쳐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영화글을 쓰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태양계 궤도를 도는 에베레스트 크기만한 새로운 혜성을 발견한 천문학과 박사 과정의 케이트(제니퍼 로렌스). 다른 동료들의 열렬한 축하를 받는 가운데 지도교수인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궤도 계산을 하다 거의 100%에 가까운 확률로 6개월 안에 지구와 충돌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딪치는 순간 종말이 펼쳐질 게 명백한 상황이기에 케이트와 민디 박사는 NASA에 보고하는데 이때 정부 관계자들이 극비리에 개입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익숙한 SF 재난 블록버스터를 떠올릴 법하지만, < 돈 룩 업 >은 그 쉽고 흔한 길을 걷지 않는다. 이 영화는 혜성 충돌의 고전적인 마스터피스 <세계가 충돌할 때>나 < 지구의 대참사 >도, 할리우드 스케일의 위력을 담은 < 아마겟돈 >이나 < 딥 임팩트 >도, 운명적인 < 너의 이름은 >이나 로맨틱 코미디의 < 세상 끝까지 21일 >도, 그리고 암울한 아트하우스의 < 멜랑콜리아 >도 보여주지 않았던 세태 풍자에 집중한다. 무능한 정부는 정치 스캔들에서 벗어나 중간 선거에 이기기 위해 혈안이 돼있고, 언론은 심각한 분위기를 피해 가십으로만 소비하려 한다. 여기에 이익에만 눈이 먼 기업과 전문가들의 경고를 외면하고 기만하는 대중들이 가세하며 환장의 대(大)콜라보를 이룬다. SNL 작가 출신으로 윌 페럴과 함께 많은 코미디를 작업한 아담 맥케이 감독은 기후 환경 문제와 막장의 끝을 달린 트럼프 정부 그리고 제작과정 중 실시간으로 터진 코로나 상황을 혜성에 빗대 마치 실제 인류의 대위기 앞에서 벌어질 법해 정말로 무서워(!)지는 블랙 코미디를 완성해냈다. 제니퍼 로렌스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메릴 스트립, 조나 힐, 마크 라일런스, 케이트 블란쳇, 타일러 페리, 티모시 살라메, 론 펄만, 아리아나 그란데, 키드 쿠디, 히메시 파텔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며, <돈 룩 업>은 넷플릭스에서 성공의 지표로 뽑는 “공개된 지 28일 동안 가장 많이 본 영화” 중 < 레드 노티스 >에 이어 역대 2위를 차지했다. 비판의 대상이 다소 편향적이라는 지적과 반복적이고 단선적인 플롯과 고압적인 자세가 불편하다는 반응도 있는 등 호불호가 갈렸지만, 2021년 오스카를 비롯해 각종 연말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각본상 등 후보에 오르며 완성도에서 호평을 얻었으며, 현재 미국 사회가 가진 문제점과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극찬도 받았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한심한 작태를 풍자하는데 주력한 작품이지만, 이 극도로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웃음과 재미, 감동을 이끌어내는 건 바로 적당한 거리두기를 통해 나름 객관성을 유지하는 니콜라스 브리텔의 명민한 음악 덕분이다. 니콜라스 브리텔 배리 젠킨스의 < 문라이트 >와 <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으로 오스카를 비롯한 각종 시상식 음악상 후보에 오르며 단숨에 주목을 받은 니콜라스 브리텔은 1980년대생 할리우드 영화음악가들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이력을 쌓고 있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다. 뉴욕의 유대 가정에서 자란 브리텔은 피아노에서 발군의 실력을 드러내며 고교 시절 줄리어드 음대의 프리 칼리지 프로그램을 이수했으나, 왜 인간이 음악에 매료될까에 궁금증을 느껴 하버드 심리학과에 지원할 정도로 괴짜이자 수재였다. 학부 시절 내내 힙합 연주그룹에서 키보드 주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심취했고, 자신의 하버드 심리학과 동기였던 배우 나탈리 포트만이 처음 연출한 단편 <EVE>에서 그의 소품 “Forgotten Waltz No.2”가 쓰이며 영화음악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이후 포트만이 참여한 < 뉴욕 아이 러브 유 >의 한 꼭지를 비롯해, 각종 다큐멘터리에 참여하며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브리텔은 본격적으로 음악을 업으로 삼지 않고 월스트리트에서 잘 나가는 해지펀드 매니저이자 외환 딜러로 활동했는데, 그가 결국 다시 음악으로 마음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된 건 < 노예 12년 >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스티브 맥퀸 감독의 부탁으로 한스 짐머가 <노예 12년>의 스코어를 맡았지만 영화 전반에 삽입될 소스 음악들에 대해선 다소 부담을 느끼고 있던 터라 새로 외부 음악가를 수혈했는데, 그게 바로 니콜라스 브리텔이었다. 그는 전혀 녹음된 바 없고, 제대로 전승되지도 못한, 잃어버린 노예들의 음악을 위해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실제 유행하던 스타일에 맞춰 철저한 고증 끝에 새롭게 만들어 빌보드 매거진으로부터 “<노예 12년> 음악의 비밀병기”란 극찬을 받았다. 금융권 출신답게 브리텔은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제작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단편 영화에 제작으로 참여하기도 했으며(그게 바로 데이미언 셔젤의 < 위플래쉬 >였다!), 후에 이 영화가 장편화되며 음악에서 일부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확고히 영화음악가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건 앞서 언급한 배리 젠킨스와 아담 맥케이와 함께 한 일련의 작품들이 성공한 덕분이 크다. < 빅쇼트 > 때 브리텔의 대본에 적힌 전문적인 금융(음악이 아니라!)업계 용어 메모에 놀라 아담 맥케이가 반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사실 그의 음악이 가진 매력은 대단히 놀랍다. 이미 <빅쇼트>와 < 바이스 >를 통해 복잡하고 민감한 경제와 정치 생태계를 깔끔하고 명료하게 음악적으로 정리한 바 있는 니콜라스 브리텔은 이번 <돈 룩 업>에서도 멸망을 앞둔 경박한 사회적 혼란과 진실이 잘못된 정보 앞에 덮이는 아이러니, 무능한 정부를 비꼬는 다양하고 세련된 스코어들을 들려준다. 신랄한 풍자와 날 선 묘사들로 불쾌해질 수 있는 영화의 공격성을 최대한 무마하고, 널뛰는 코미디와 진지한 드라마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그는 여러 고민 끝에 혼란이 절정에 달했던 2차 세계대전 시기 유행한 업 템포의 빅밴드 사운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를 메인 테마의 색채로 잡는다. 광기와 혼돈을 묘사하면서 멸망이라는 실존적인 문제 앞의 우울함과 슬픔을 내재해야 하고, 동시에 코미디 음악으로서 희극적인 면모도 갖춰야 하기에 복잡하고 미묘한 톤을 유지해야 하는데, 브리텔은 절규하듯 울부짖는 브라스섹션에서 절묘한 부조리의 묘미를 찾았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필사적으로 혜성 충돌을 경고할 때마다 빅밴드 사운드는 더 처절하게 조증 기조를 발하고, 격렬하고 활력 넘치는 사운드는 이들이 무기력하게 실패할 때마다 공허하게 울려 퍼지며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뒷받침해준다. 또한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 X’와 스티브 잡스의 ‘애플’, 그리고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사이 어딘가에 위치할 영화 속 대기업 BASH의 다양한 징글(방송이나 광고, 벨소리에서 쓰이는 짧은 곡)을 배치해 공허한 낙관론과 가짜 희망주의를 조롱하며 음악적 효과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니콜라스 브리텔은 이를 위해 영화 속에 나오는 모든 핸드폰 벨소리와 기업 프레젠테이션 속 영상, 방송 시그널과 CF 음악들을 일일이 작업했다. 여기에 영웅적인 블록버스터 사운드(물론 이마저도 비웃기 위해 사용되었다!)나 휴머니즘에 입각한 정통적인 할리우드 스코어까지 활용하며 음악적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장르적인 방식뿐만 아니라 악기에서도 베이스, 드럼, 트럼펫 그리고 색소폰 트리오 등의 빅밴드나 전통적인 오케스트라는 물론, 밴조와 만돌린, 토이 피아노, 첼레스타, 파르피사 오르간, 차임벨, 힙합 비트를 포함한 각종 일렉트릭 효과까지 특이하고 독특한 종류를 혼합해 유희적이고 절충된 사운드스케이프를 펼쳐 보인다. 일견 스코어만 듣고 있으면 짧은 큐들에, 워낙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두서없이 펼쳐져 응집력이 떨어져 보일 수 있지만, 영화 내에서 각각 장면마다 강력하게 작용하며 존재감을 발휘한다. 또한 영화 내에선 니콜라스 브리텔이 공동으로 참여한 두 곡의 노래도 흘러나오는데, 극중 커플로 나오는 아리아나 그란데와 키드 쿠디가 영화 중반 소행성과 충돌을 경고하기 위해 콘서트장에서 부르는 “Just Look Up”과 동면에서 깨어나 새로운 세상에 진입하게 된 지구인들의 쿠키를 담은 엔드크레딧에 흐르는 “Second Nature”다. 아리아나 그란데와 키드 쿠디의 듀엣송으로 전통적인 사랑 노래처럼 시작하는 “Just Look Up”은 후반 2절에 이르러서 무지한 대중들의 계몽을 일깨우는 과격한 가사로 영화의 조롱 강도를 더한다. 아름다운 파워 발라드에 이질적인 가사가 던지는 격차야말로 이 노래의 백미로, 2021년 강력한 오스카 주제가상 후보였지만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다. “Second Nature”는 브리텔과 인디 밴드 본 이베어의 리더인 저스틴 버논이 함께 만든 곡으로, 혜성 충돌 후 모든 것이 사라진 세상에서 먹먹해진 감성과 풍자로 쓰린 속을 다스리기에 좋은 몽환적인 포크송이다. 권력과 재력으로 새로운 세상에 이주한 이들을 위한 노래가 아닌, 현시점에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올바른 선택과 희망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응원가이자 송가라 할 수 있다. 코로나 시기 비장의 OST 중 하나였던 <돈 룩 업>으로 자신의 세 번째 오스카 음악상 후보에 지명된 니콜라스 브리텔은 아담 맥케이와 함께 HBO에서 4시즌까지 방영된 드라마 <섹세션>과 디즈니 플러스의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 < 안도르 >를 통해 안방 데뷔에도 성공했으며, 24년 배리 젠킨스와 새롭게 도전하는 라이온 킹의 실사화 속편이자 프리퀄인 <무파사: 더 라이언 킹>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Track List 1. "Just Look Up" by Ariana Grande & Kid Cudi 2. Discovery 3. Ephemeris 4. On Hold 5. The Call 6. C-5 Galaxy 7. Don't Look Up (Main Title Theme) 8. BASH Corporate Ident ("Liif") 9. Hyperobject Approaches 10. My Boyfriend Broke Up With Me 11. The Arrest 12. It's A Strange Glorious World 13. The Launch 14. The BASH Presentation 15. Kate Goes Home 16. FEMA-BASH Commercial 17. Arrival At The Hangar 18. There Is A Comet 19. The Comet Appears 20. The Prayer For Stuff 21. The BASH Launch 22. Twenty-Four Drones Is Enough 23. It All Comes Down To This 24. Thanksgiving (Overture To Logic And Knowledge) 25. The End? 26. Memento Mori 27. Don't Look Up (End Credits Suite) 28. Logic Waltz In B Major (Bonus Track) 29. Don't Look Up (Main Title Suite; Bonus Track) 30. Ode To Science (Bonus Track) 31. "Second Nature" by Bon I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