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만 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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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뻔한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늘어놓는 일은 그만하고, 진짜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 속 먹방 장면이나 감상해보자. 사실 애니메이션 속 먹방은 그 가짓수가 일만 오천육십 개까지나 되니(세어 보진 않았지만 하여튼 엄청 많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밀가루’에 관련된 먹방만 감상해보겠다. 첫 번째 이야기해 볼 애니메이션은 바로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들이다. 나는 사석에서 지브리 스튜디오를 ‘셰프 지브리’라고 부르곤 한다. 마치 감각 있는 셰프가 그날 날씨와 제철재료들을 고려하여 선보이는 ‘오늘의 추천 요리’ 메뉴처럼, 지브리 애니메이션 속의 먹방에서는 작 중 분위기와 상황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요리 메뉴를 선보인다. 먼저, 밀가루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애니메이션인 < 마녀배달부 키키 >를 감상해보자. <마녀배달부 키키>는 꼬마 마녀 키키가 빵 택배 일을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소소한 소동을 담은 따뜻하고 귀여운 성장 드라마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키키가 화덕에서 파이를 굽는 부분인데, 그 파이의 모양이 적잖이 낯설었다. 생선 모양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청어 파이’였기 때문이다. 이 청어 파이는 모두에게 몹시 충격적인 비주얼이었는지, 지금도 청어파이, 즉 생선 파이는 영국의 괴랄한 미식 문화를 조롱하는 의미로 통한다. 이 애니메이션에서도 셰프 지브리의 탁월한 센스를 엿볼 수가 있다. 생선 파이는 사실 역사가 오래된 영국 전통 요리다. 신선한 생선을 구하기 어려운 영국의 서민층들이 조리해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여하튼 영국 서민들의 전통 홈 푸드인데, 현재는 여기저기서 푸대접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마녀배달부 키키>의 청어 파이 역시 마찬가지 신세다. 손녀의 파티에 따뜻한 파이를 보내주고자 했던 할머니가 오븐이 고장 난 상황에서, 오래된 화덕을 수리하는 고생(물론 고생은 키키가 다 하기는 하였지만 어쨌든 키키에게 넉넉한 금전적 보상을 해주었지 않은가?)을 마다하지 않고 정성껏 구워낸 것이지만, 신세대 손녀에게는 문전박대를 당한다. 셰프 지브리의 특기인 ‘상징’이 빛나는 대목이다. 키키의 눈빛을 보면 맛있게 먹겠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지만… 움직이는 성안, 하울의 식사는 어떨까? 베이컨은 미국 서부개척시대에 개척자들의 필수아이템이었다. 여행 작가이자, 개척자인 랜스포드 헤이스팅스는 1845년, 오리건을 향하는 이민자들에게 150파운드(약 68kg)의 베이컨을 필수적으로 챙겨가라고 조언했다. 개척자들은 매일 아침으로 커피와 베이컨을 먹고, 저녁엔 베이컨 기름을 빵이나 비스킷에다 발라 먹었다. 1) 그 유명한 베이컨&달걀의 유행은 사실 하울이 원조가 아니다. 그 역사는 192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다이어트가 필수덕목인 이 시대에야 고열량인 이 조합은 사실 죄책감까지 불러일으키지만, 1920년대에 ‘베이컨&달걀’은 아주 ‘건강하고 가성비 좋은’ 아침식사였다. 그야말로 피로와 긴장에 찌든 여행자들에게 걸맞은 고영양 메뉴인 것이다. 게다가 셰프 지브리는 베이컨 기름으로 모든 조리를 해결한다. 올리브유나 향료같은 많은 부재료들을 챙겨 다니기 어려운 여행자들에게 아주 요긴한 재료다. 다만 계란 후라이를 저렇게 예쁜 ‘써니 사이드 업’으로 만들려면 약불로 인내심있게 구어야 하는데, 저렇게 화력이 센 불에 조리하니 타지는 않을지 걱정되었다. 뭐, 보기 좋기는 했다. 이 부분에서 서론에서 말했던 애니메이션 속 먹방 장면의 장점이 빛을 발한다. 왜 밀가루 이야기를 하다말고, 고지방 고단백 메뉴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하겠지만, 사실 내가 정말로 주목하고 싶었던 것은 베이컨과 달걀과 함께 식탁 위에 나란히 놓여있던 빵, 깜빠뉴다. 절대 사심으로 베이컨&에그를 끼워 맞춘 것이 아닙니다. 사실 약간 그래요. 뭐 어쨌든… 이 고열량, 고단백의 조합의 목 멜 듯한 기분은 탄수화물이 녹여준다. 깜빠뉴는 오래 보관하기 쉽고, 재료가 단순하고 맛이 담백하여 어느 메뉴와도 잘 어울린다. 식사빵이라는 카테고리답게 묵직하고 든든하다. 여러모로 먼 길을 떠날 때 아주 적합한 메뉴다. 사실 ‘베이컨과 에그 게다가 단순 탄수화물인 빵’은 비만 인구 상승에 힘을 실어줄 조합이기는 하지만,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고 막강한 적과 싸워야하는 하울 무리에게는 더없이 걸맞은 메뉴였다. 이번엔 일본을 벗어나, 영국의 훌륭한 스튜디오로 넘어가 보자. 아드만 애니메이션은 <월레스와 그로밋> < 치킨 런 > < 플러쉬 > < 아더 크리스마스 > < 허당 해적단 > < 숀더쉽 > 등 정말 재미있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대거 제작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다. 아드만의 애니메이션들은 진짜로 웃기고, 재밌다. 그리고 먹음직스럽다. 클레이 애니메이션이다 보니, 먹방으로써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의 장점들을 고루 갖출 수 있다. 만져질 것처럼 생생하면서도 오버액션도 ok. 멋진 일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월레스와 그로밋>을 살펴보자. 월레스는 발명가이자 빵집사장이다. 그로밋은 그가 기르는 강아지. 하지만 이 강아지 그로밋이 월레스보다 약 두 배가량 현명하다. (하긴 역마살 붙은 것 마냥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동네를 휘젓는 이웃집 개도 집만 잘 찾던데, 10년 산 동네에서 한번 낯선 길로 가보자고 했다가 돌아오는 길을 한참 헤맸던 내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둘은 아무리 바빠도(사실 별로 바빠 보이지도 않지만) 늘 시간을 내어 치즈&크래커와 홍차를 즐긴다. ‘빵이냐 죽음이냐’ 편에서, 파이엘라는 늘 정시에 티타임을 즐기는 월레스의 습관을 이용하여 살인을 계획할 정도로 그들에게 티타임은 무척 중요한 의식이다. 사실 이런 문화는 영국인이라면 아주 익숙하다. 영국인들의 티타임 사랑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도버해협을 건너는 기차 안에서도 전용 도기로 애프터 눈 티를 즐겼다고 하며, 영국의 유명한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환상의 세계에서도 티타임은 빠지지 않는다. 이런 영국인의 홍차사랑에 대한 결실은 현재 티타임에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찻잎들의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찰스 그레이 백작의 이름을 딴 ‘얼그레이’,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같이. 영국이 구움 과자 분야에서는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이 ‘차사랑’에 원인이 있다. 음식문화가 취약하다고 정평이 난 영국도 비스킷, 스콘 등 티타임에 곁들일 메뉴를 개발하는 데에는 꽤나 열정적이었던 모양이다. 역시 인류 최고의 발명가는 사랑이라고 했던가. 월레스와 그로밋이 여기에 곁들이는 비스킷 역시 지극히 영국적인 과자다. 비스킷은 1588년 스페인과 영국이 영불해협에서 맞붙었던 전투에서 영국을 승리로 이끈 숨은 주역이었다. 해전 시 배에 실을 수 있는 식량은 한계가 있어 칼로리가 높지만 가볍고 부피가 작아야 했는데, 비스킷이 그에 딱 걸 맞는 메뉴였다. 영국군은 최대한으로 수분을 없앤 딱딱한 비스킷을 있는 대로 보관해 둔 덕에 굶주릴 일없이 전쟁에 임할 수 있었고,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쟁을 기점으로 세계최강이라 자부하던 스페인 함대는 몰락했고, 영국은 세계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다. 2) 어쨌거나 월레스와 그로밋의 티타임은 달로 향하는 우주 비행선 안에서도 계속되었다. 이 용감한 개척자들은 출발하기 직전까지 티타임 도구들을 챙기기 바쁘다. 바삭하고 퍽퍽한 비스킷에 부드러운 치즈를 곁들인 티푸드에 맛있는 홍차, 그리고 오래된 친구와 즐기는 티타임이라니, 우주 한가운데 더없이 영국적인 풍경이다. 위 거론한 예시들 말고도 애니메이션 속 먹방에 대한 이야기는 밤새도록 나누어도 모자람이 없다. 언젠가 또 기회가 닿는다면 < 너의 이름은. >의 팬케이크 이야기나, < 검정고무신 >의 크림빵에는 생크림이 없다는 이야기로 시작되는 크림의 비밀 등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다. 애니메이션 속에도 현실 세계 만큼이나 먹음직스러운 이야기들이 가득 숨어있다. 행복한 이야기다. 먹는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답게 나의 첫 데뷔작도 레진코믹스에서 연재했던 음식 만화(<삶은 토마토>)였다. 주로 음식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나 상황들이 스토리의 전부다. 심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사는 게 별건가 싶다. 우리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밥먹기’를 원하며, 대부분의 중요한 결정들이 ‘식사자리’에서 거론된다. 나는 애니메이션 속 등장인물들이 먹고 마시는 게 좋다. 등장인물들이 아무리 진중하고 긴박한 상황에서도 허기짐을 느껴, 혹은 기운이 달려 무언가를 먹고 마시는 순간 거리를 두고 감상하던 이야기들이 삶의 차원으로 넘어온다. 게다가 음식 만화를 연재하며 먹는 장면을 그리는 것이 즐겁지만, 번거로운 일임을 뼈저리게 경험했던 사람으로서 스토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빼버려도 상관없는 먹방 장면을 굳이 삽입한 애니메이션 감독에게는 인간적인 애정을 느끼기까지 한다.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들이 더 먹고 마셨으면 좋겠다. 더 많이, 더 맛있게, 더 오버액션으로 먹어주면 좋겠다. 언젠가 여러분, 제가 엄청나게 맛있게 먹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거 거든요? 얼마나 맛있게 먹나 한번 보러와 주세요. 어설픈 글을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어쨌든, 나도 난생처음 칼럼이라는 걸 써본 기념으로 오늘은 맛있는 걸 좀 먹어야겠다. 1)『아침식사의 문화사(Breakfast: A history-Heather)』 (헤더 안트 앤더슨 저, 니케북스, 2016) 참조 2)『양과자 세계사』(요시다 기쿠지로 저, 비앤씨월드, 2011) 참조
지난 4월, 철의 여인이라 불리던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의 타계 소식을 접했을 때, 문득 아드만 스튜디오의 1989년작 단편 < 동물원 인터뷰 Creature Comforts > 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동물원에 (갇혀) 사는 동물들이 삶의 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대처가 총리직을 그만두기 1년전에 제작, 발표된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나는 개인적으로 당시 집권 보수당의 정책과 영국인들의 삶을 결부시키려는 집착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평론가의 가장 나태하고도 안일한 태도는 특정 작품을 제작 당시의 시대 상황이나 민족성/국민성과 같은 상상적 본질로 환원시키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마도 현실 삶과 작품의 연관 고리를 거두기 어려운 까닭은 인터뷰 형식이 깔고 있는 ‘목소리’ 때문일 테다. 남녀노소, 토박이, 이방인을 아우르는 등장 목소리들은 방금 전에 거리에서 인터뷰를 따온 듯한 생생함을 전달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로 분류되기도 한다. 눈을 감고 그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분명 ‘자신의 삶’에 대해 면전에서 말하는 것 같은 착각이 여전히 든다. 이전에도 아드만은 ‘대화’ 시리즈 (Animated Conversations 시리즈와 Conversation Pieces 시리즈)를 만들면서 목소리의 현장성을 살린 선녹음 방식을 취했는데, 닉 파크의 합류 후 립싱크는 아드만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한층 강화되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 월레스 앤 그로밋 >의 그로밋은 말을 하지 않는다.) 현실과 연결된 또 하나의 장치는 카메라/스크린의 사각 틀이 만들어내는 프레이밍(framing)이다. 카메라는 이미 동물원 우리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그 속의 동물과 바깥의 관람객을 구분하는 쇠창살이나 유리창은 사라진다. 그리고 마이크를 쥔 ‘사람’의 손이 프레임에 걸쳐있다. 인터뷰 중간에 프레임 바깥에서 프레임 안으로 공이 날아 들어오기도 하고, 물벼락이 들이치기도 한다. 이처럼 카메라가 잘라낸 프레임의 위, 아래, 양옆, 앞, 뒤로 끊임없이 개입하고 확장하면서 동물원 속 동물과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의 거리를 좁혀간다. 이들 동물원 속 동물이 말하는 안락함은 영국이라는 국가체에서 흥미로운 쌍곡선을 그린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로 대변되는 복지는 영국 근대 자본주의의 고안물이었고, 그러한 복지는 인류를 뛰어넘어 근대적 동물원의 효시격인 런던 동물원에서 보듯 동물의 안식처(라는 여전히 논쟁이 잦아들지 않는 주장)까지 확장되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 작품이 만들어진 때는 신자유주의의 논리 속에서 공공 복지 부문이 처참히 파괴된 시기였다. 그래서 제도가 보장하는 삶의 안락함은 이미 인간의 세상에서는 사라졌고 (시장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정글 세계로 내던져졌다), 동물원 울타리 속 동물들에게나 그럭저럭 허용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5분남짓의 짤막한 이 작품을 보다보면, 동물원이라는 전시 공간 속 전시물이었던 동물과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 관객의 처지가 어느 순간 역전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을 전적으로 철의 여인에게 헌정할 필요는 없다. ‘당신의 삶은 안녕하십니까’ 라는 인터뷰어의 질문은 그때나 지금이나, 영국이나 한국이나, 동물원이나 그 바깥이나 늘 그렇듯이 여전히 유효한 민생 관련 현안이지 않은가? 다만 어떠한 삶이 만족할 만한 삶인가에 대한 대답은 적어도 애니메이션 속 동물들의 목소리를 빌자면 단지 ‘밥 먹여주는’ 수준에 머물지는 않는다. 그리고 분문보다 더 긴 사족들 # 1. 브라질에서 건너온 사자는 아마존을 꿈꾼다. 실제 브라질 이주 남성의 목소리를 따온 이 동물을 사자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갈기 없는 수사자이거나, 고양이과의 다른 맹수이거나 하는 식으로 모호함을 남긴다. 2005년, 7/7 테러 직후 영국 경찰은 테러 용의자로 한 청년을 추적, 현장 사살하였다. 아랍계로 오인된 이 청년은 브라질에서 왔다. 인종적, 문화적으로도 이슬람권과는 연관이 없었다. 모호함과 선입견이 낳은 비극이었다. # 2. 이 작품을 지금 리메이크한다면 폴란드 억양이 추가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폴란드 이주 노동자의 대거 유입과 그들이 처한 현실을 다룬 한 시사 프로그램은 애니메이션 시리즈 를 패러디하여 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 3. 막내 북극곰의 이름은 ‘앤드류’인데 (그렇다면 첫째 북극곰 이름은 찰스, 아빠 북극곰은 필립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요즘 리메이크한다면 두 어린 북극곰의 이름도 윌리엄과 해리(헨리)라고 부를 법하다. 아드만은 장편 < 치킨 런 > 속에서 탈출을 꿈꾸는 암탉 진저를 질주의 속도감 속에서 다루었는데, 나는 다이애너 전 왕세자비와의 오버랩을 지우기 힘들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윌리엄이 득남을 하였는데, 아이를 돌보면서 자신도 흥얼대며 ‘곰 세 마리’ 노래를 불러주지 않을까. (익히 잘 알고 있듯이 동물의 세계를 Animal Kingdom, 영국을 United Kingdom이라고 한다.) # 4. 대처의 타계 소식을 전하는 영국의 언론 매체들은 이미 입을 맞춘듯 하나의 헤드라인을 손쉽게 뽑아냈다. “영국을 둘로 쪼갠 인물.” 이 분할비율이 5:5 가르마를 뜻하지는 않는다. 대처의 발자취를 기리는 다큐멘터리를 한국의 TV에서 방송했다는 사실을 영국인들이 안다면 자못 뜨아해 할 것이다. 혹자는 대처의 오랜 재임 기간이 영국인의 지지를 반영한다고 주장하고 싶을 테지만, 대서양 건너 그녀의 소울 메이트인 레이건의 연임과 결부시키면 당시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한결 손쉬울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에서 이들이 침체에 빠져있던 당시의 경제 상황을 단숨에 끌어올린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경제 지표의 상승 뒤에는 공통적으로 전쟁이 놓여있고 (내전이 아닌, 자국 영토 밖에서 이루어지는 전쟁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는 좀더 자세한 데이터가 필요할 테다. 다만 ‘20세기의 전쟁은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발생한다’는 에릭 홉스봄의 혜안에 기대보고자 한다), 이 전시 상황은 유권자의 표심을 끌어모으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편이었으니까. 대처 시대의 트라우마는 그녀의 집권 기간 이상으로 오래갔다. 일례로, 2005년 선거에서 세번째 연임을 노리는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은 자신들이 등장하지 않는 선거 영상을 하나 만들었다. 주인공은 대처 정권에서 중책을 맡았던 마이클 하워드 보수당 당수였고, 영상은 대처와 메이저 전 총리로 이어지는 보수당 정권 시절에 이루어진 대량 해고와 공장 폐쇄, 노동자들의 항의와 이를 진압하는 경찰력, 단호한 정책 실행의지를 피력하는 보수당 정치인의 모습 등의 보도 사진들을 엮은 것이었다. 그 이미지들에 “Memories~”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를 얹는 것으로 게임 끝이었다. 이 선거 영상물의 제목은 ‘기억하는가?Remember?’였다. 당시 보수당은 조금 더 자극적인 선거 캠페인을 벌였다. ‘도대체 병원은 왜 이다지도 불결한 건가?’, ‘어째서 경찰들은 안 보이는가?’와 같은 도발적 문구를 낙서체로 휘갈긴 대형 포스터를 곳곳에 붙였는데, 유권자들은 친절히 그 포스터들 위에 보수당의 질문에 답을 달아주었다. ‘그러니까 병원 청소부를 자른 건 누군데?’, ‘경찰인력을 축소한 게 누구였을까?’라는 문구를 진짜 낙서 글씨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