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뷰티
- 감독
- 샘 맨데스
- 제작년도
- 1999
- 출연
- 케빈 스페이시, 아네트 베닝, 도라 버치, 웨스 벤들리, 미나 수바리, 피터 갤러거, 크리스 쿠퍼, 앨리슨 재니, 아라 셀리, 존 조, 크리스타 굿싯, 낸시 앤더슨, 스코트 버큘러, 샘 로바즈, 배리 델 셔먼, 암버 스미스, 조엘 맥크러리, 데니스 앤더슨, 매튜 킴브로그, 에린 케서린 스트러비
아리아가 흘러나온다. 잡음이 잔뜩 낀 조악한 음질이지만, 봄바람처럼 하늘하늘 불어오는 소프라노들의 목소리는 아름답고 화사하다. 방송실 문을 걸어 잠그고, 교도소 전역으로 음악이 흘러나가도록 마이크 볼륨을 올린다. 소리라곤 철창 벨과 구타 소리, 진득한 욕설 말곤 들리지 않던 이 삭막한 공간에 노래가 울려 퍼지는 순간, 모든 재소자와 교도관들은 그 자리에서 멈춰 선다. 그리고 넋을 잃고 확성기를, 스피커를 바라본다. 마치 꿈을 꾸듯. 영혼을 빼앗긴 사람처럼. 몸은 갇혀있지만 그 순간 그들은 하늘을 날아 자유로운 해방감을 맛본다. 자유 의지를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준 이 일말의 희망이야말로 < 쇼생크 탈출 >이 말하고자 하는 바였다. <피가로의 결혼>의 이중창 아리아 ‘저녁 바람이 부드럽게 Che Soave Zeffiretto’는 그렇게 <쇼생크 탈출>을 대표하는 음악이 되었다. 하지만 과연 그것뿐일까. 있는 듯 없는 듯 은은하면서도 투명하게 부유하다 천천히 가라앉아 결국엔 묵직하게 뒷받침해주는 토마스 뉴먼의 스코어야말로 진정 희망을 곱씹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여기서 그는 그럴듯한 팡파르와 드라마틱한 악곡을 준비해 희망을 애써 포장하지 않는다. 휴머니즘이란 이런 것이다 설교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모든 것이 다 사라져도 남아있을 근원에 대해 그대로 담고자 노력했다. 그의 느릿하면서도 침전된 선율은 분위기를 장악하고 잔혹스러울 만치 긴 인고의 세월을 치유해낸다. 저녁 바람이 부드럽게 Che Soave Zeffiretto 영화 내내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테마와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은 극도로 자제한다. 무겁도록 짓누르는 스트링과 공허한 피아노, 가녀린 목관악기가 쇼생크 교도소의 폭력적이고 암담한 상황 속에 갇힌 인물들을 미니멀하게 스케치해간다. 영화 초반 헬기 샷으로 쇼생크의 전경을 담아내는 장면에 흘러나온 ‘Shawshank Prison’만 들어도 그렇다. 저음의 두터운 스트링은 나락으로 떨어진 앤디의 암울한 현실을 대변하고, 조용히 깔리는 혼(Horn)은 앞으로 닥칠 그의 험난한 미래를 암시하듯 불길하게 첨가된다. 장면을 앞서지도 뒤서지도 않는 짧은 큐지만 뉴먼의 섬세한 인장은 영화의 감성을 부드러이 감싼다. 교도소에 처음 적응해가는 신입들의 시련을 담아내는 장면에서 흐르던 ‘New Fish’도 귀를 쫑긋 세우지 않으면 듣기 힘든 음악이지만, 희미한 피아노로 발가벗겨진 신입 죄수들의 나약함을 드러내고, 엠비언스처럼 깔리는 신디로 불안한 심리를 표출한다. 뉴먼은 그래서 미키마우징처럼 음악이 긴밀히 영상과 연결된 직접적인 묘사의 수단으로 삼기보다 악기가 가진 특성으로 인해 제공되는 디테일한 내면적인 효과에 더 집착했다. 그의 필모들을 살펴보면 유난히 가족과 친구, 인간관계에 대한 드라마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앤디가 부탁한 조각용 망치가 교도소로 반입돼 건네지는 과정에서 흘러나온 ‘Rock Hammer’는 통통 튀는 감각의 전형적인 토머스 뉴먼 표 사운드다. 그는 후에 < 아메리칸 뷰티 >나 < 에린 브로코비치 > 등에서 마림바를 활용해 이런 스타일을 종종 구사하는데, 영화 문맥상 주요한 복선이나 암시를 나타낼 때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동시에 명징한 사운드로 관객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곤 한다. 앤디를 강간하던 보그스가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An inch of his life’는 한없이 관조적이다. 결국엔 그도 가해자가 아닌 교도소의 희생양으로 끝나고 만다는 걸 비극적인 오보에와 차가운 피아노, 폭풍 속의 전야를 담은 듯한 스트링 속에 섞어 긴장감 있게 풀어냈다. <쇼생크 탈출>에서 가장 슬픈 시퀀스로 기억될 브룩스의 자살에 나온 ‘Brooks was here’는 잊을 수 없는 긴 파장을 남긴다. 한없이 고독하고 외로운 심정을 대변하듯 방황하는 피아노는 절제되고 반복되지만, 여운이 처연하니 남아 가슴을 우벼 판다. 이런 우울함과 고통 속에서도 토머스 뉴먼의 스코어가 한 줄기 빛으로 다가오는 건 영화 내에서 희망을 상징하는 테마인 ‘Suds on the roof’의 존재감 때문이다. 앤디의 기지로 옥상에서 느긋하니 동료들과 맥주 마실 때 흐르던 이 곡은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이를 쟁취하기 위해 긴 세월을 바쳐가며 투쟁을 마다치 않았던 앤디의 신념을 겹겹이 견고하게 쌓아올린 스트링과 밝은 오보에 솔로로 들려주고 있다. 때때로 이들 테마는 반복되고 변주되며 대구를 이룬다. 쇼생크 교도소의 무거운 분위기를 묘사하던 ‘Shawshank Prison’은 앤디가 여러 명에게 강간당하는 장면에서 흐르던 ‘Sisters’로, 탈출의 빌미가 될 망치의 등장을 알린 ‘Rock Hammer’는 벽에 걸린 라켈 웰치를 훑으며 무언가 꿍꿍이가 있음을 암시한 ‘Lovely Raquel’로 응용되고, 5월은 야외작업하기 좋은 날이라며 옥상 방수페인트 작업에 레드 일행이 참여하던 장면에 흐르던 블루그래스 스타일의 ‘May’는 앤디가 독방에 갇혔을 때 레드 일행이 서로들 돌을 구하러 작업에 참여하던 ‘Workfield’와 겹쳐진다. 이밖에 스티븐 킹 원작에서 레드가 아일랜드인이라는 설정에서 착안한 듯한 아이리쉬 스타일의 ‘And that right soon’은 결정적인 순간 앤디의 탈출에 얽힌 전모를 밝혀내는 장면에 등장해 흥겨운 감흥을 안긴다. 그러나 무엇보다 영화에서 가장 극적이고 인상적으로 쓰인 곡은 그의 탈출과 직접적으로 얽혀있는 영화제목과 동명의 ‘Shawshank Redemption’이다. 여기서 뉴먼은 그간 절제했던 감성과 스타일을 모두 무장해제해버리고 가장 드라마틱한 악곡으로 풀 관현악 사운드의 위력을 마음껏 펼쳐 보인다. 천둥번개가 치는 빗줄기 아래서 환희의 포즈를 취하는 자유스러운 앤디의 모습은 뉴먼의 스코어와 어우러져 온몸에 전율을 돋게 한다. 그 감흥은 ‘So was Red’와 포즈 없이 이어진 ‘End Title’까지도 계속된다. So was Red - End Title 토마스 뉴먼은 1995년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에 노미네이트됐다. 이해 후보에는 한스 짐머의 < 라이온 킹 >과 알란 실베스트리의 < 포레스트 검프 >, 엘리웃 골든탈의 < 뱀파이어와 인터뷰 >가 있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뉴먼은 첫 지명임에도 <쇼생크 탈출> 외 < 작은 아씨들 >로도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비록 수상엔 실패하고 말았지만, 역사상 가장 많은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던 영화음악가이자 아버지인 알프레드 뉴먼의 뒤를 이을 진정한 ‘적자’가 비로소 등장했음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 후 뉴먼은 작년 < 007 스카이폴 >까지 동년배급 작곡가들 중에선 가장 많은 11번 후보에 오르며 명실공히 아카데미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음악가가 되었다. 희망은 좋은 것이고,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앤디의 마지막 대사처럼 이 위대하고 거룩한 스코어가 부디 재평가되어 꾸준히 사랑받게 되길 희망해본다. (참고로 <쇼생크 탈출>은 엠파이어지가 뽑은 90년대 사운드트랙 20개 중 한편으로 선정되었다.) Track List 1. May 2. Shawshank Prison (Stoic Theme) 3. New Fish 4. Rock Hammer 5. An Inch Of His Life 6. If I Didn't Care - Performed By The Inkspots 7. Brooks Was Here 8. His Judgement Cometh 9. Suds On The Roof 10. Workfield 11. Shawshank Redemption 12. Lovesick Blues - Performed By Hank Williams 13. Elmo Blatch 14. Sisters 15. Zihuatanejo 16. The Marriage Of Figaro "Duettino-Sull'Aria“ - Performed By Deutsch Oper berlin / Karl BÖhm 17. Lovely Raquel 18. And That Right Soon 19. Compass And Guns 20. So Was Red 21. End Tit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