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일 없는 길
- 감독
- 박혜원
- 제작년도
- 2007
사진: “ 졸업 ”, tvN 올 한 해 TV와 OTT를 통해 공개된 시리즈들을 필자의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관심을 끌어모은 화제작부터, 스쳐 지나갔지만 돌이켜 볼 만한 문제작들까지 정리합니다. 이 글을 구상할 즈음 ‘비상계엄’이 도둑처럼 선포됐다. 용감하게 국회로 달려간 많은 시민들과 사명감을 가지고 사투를 벌인 공직자들 덕분에 비상계엄은 해제됐지만, 한국사회의 시간은 ‘12.3 내란 사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이 모든 상황이 차라리 ‘드라마’였으면 하고 생각하다가 지난 여름에 본 < 돌풍 >(김용완, 2024)이 떠올랐다. 한국 정치사를 압축한 것 같은 <돌풍>이 재현한 한국사회는 ‘대의 민주주의’ 대신 음모와 폭로가 난무하는 세계였다. 당시 나는 이 드라마의 위험한 상상을 비판했었다. 그러나 그 위험한 상상은 몇 달 뒤 현실이 됐다. 참으로 유해한 것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비상계엄이 아니더라도 이 세계는 이미 비상시국이다. 먼 곳에서 전쟁 소식이 끊이지 않았고, 기후위기가 코앞까지 도달했음을 절감했고, 경기침체로 인해 온갖 사회 지수는 지속적으로 나빠졌다. 사회적 갈등뿐 아니라 여성, 장애인, 이민자, 퀴어 등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도 지긋지긋하게 반복됐다. 마치 지구 종말 200일을 앞둔 < 종말의 바보 >(김진민, 2024) 풍경처럼. 이런 유해한 세상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자극적인 맛, 즉 도파민을 상승시킬 무언가를 찾고 또 찾았다. 드라마 세계도 마찬가지다. 사적 복수극, 고자극 장르물, 이번 생은 망했으니 과거로 돌아가서라도 욕망을 실현하는 ‘회·빙·환(회귀·빙의·환생)’ 서사가 줄을 이었다. 남편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이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역사를 바로 세우며 남편에게 복수하는 <내 남편과 결혼해줘>(박원국, 한진선, 2024)가 주목을 받았고, < 살인자ㅇ난감 >(이창희, 2024), < 더 에이트 쇼 >(한재림, 2023), <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모완일, 2024) 등 사적 복수물이나 고자극 장르물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이런 드라마들이 예전처럼 큰 화제를 모으지는 못했다.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생산되던 고자극 드라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니 피로감을 느끼게 된 탓이다. <돌풍>, <종말의 바보> (사진: 유튜브 넷플릭스 코리아) 뜻밖에도(!) 올해 가장 인기가 높았던 드라마는 <눈물의 여왕>(장영우, 김희원, 2024)이다. 이 드라마는 ‘너무 늦게 도착한 과거’와 같은 드라마이다. ‘퀸즈’로 대표되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재벌가(가부장제)를 선하고 무해한 집단으로 재현하며 무너진 퀸즈 일가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여기에 불치병과 기억상실증 등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가 빠지지 않았다. 위기를 통해 부부 관계와 가족애를 회복한다는 방향성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혈연·혼인 중심 가족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주목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생각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일상의 피로감이 높아질수록 단순한 맛을 찾기 마련이다. 맵거나 달거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자극 드라마에 피로감을 느낀 우리는 순하고 달달한 드라마를 도피처 삼아 그 세계에 몰입하여 울고 웃었다. <눈물의 여왕>은 그런 우리의 필요를 잘 반영했기에 진부한 설정에도 선택을 받은 것이다. 시청률은 낮았지만 마니아층이 생길 정도로 인기를 모았던 <선재 업고 튀어>(윤종호, 김태엽, 2024)나 시원하고 무해한 제주도의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웰컴 투 삼달리>(차영훈, 김형준, 2023~2024) 등도 비슷한 이유로 관심을 모았다. 사진: “ 눈물의 여왕 ”, “ 선재 업고 튀어 ”, tvN “생각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 곁에는 서로를 구원함으로써(쌍방구원) 위로를 전하며 치유적 기능을 한 드라마들도 있었다. 얼마 전까지 ‘먼치킨’ 주인공이 위험으로부터 인간-사회를 구하거나 악을 제대로 응징하여 ‘사이다맛‘ 정의를 구현하는 히어로물이 인기를 모았으나 그 히어로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히어로’가 사라진 자리에 ‘힐러(healer)’가 찾아왔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조현탁, 2024)은 우울증, 불면증, 비만이라는 ‘현대인의 질병’에 걸려 초능력을 상실한 가족 이야기다. 이들이 초능력을 상실한 이유는 화재 참사로 인한 상실감과 죄책감 때문이었다. 어디 드라마 속 인물들뿐일까?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는 한국사회 속 우리들 또한 같은 이유로 현대인의 질병에 걸린 게 아닐까? 드라마는 상처로 인해 무기력에 빠졌던 인물들이 “히어로는 아니지만” 서로의 행복을 바라며 구원하고자 애쓰는 것에서 희망은 시작된다는 걸 보여주었다. < Mr. 플랑크톤 >(홍종찬, 2024)은 뿌리를 모른 채 딛고 설 땅을 상실한 채 부유하는 “모든 물고기들의 밥”이자 “먹이사슬의 맨 밑바닥, 바닷속 가장 미천한 존재”인 플랑크톤과 같은 인물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구원했다. 세상은 유해한 것들로 가득하지만, 인간은 끝까지 ‘선함’의 본능을 잃지 않고 서로를 구원하고야 만다는 단단한 신뢰를 이런 드라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Mr. 플랑크톤> (사진: “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 JTBC / 유튜브 넷플릭스 코리아) 드라마가 단지 도피처, 위로와 치유적 경험만 제공한 것은 아니다. 장르를 망라하여 저마다의 방식으로 ‘오늘’을 구현함과 동시에 ‘내일’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올해 드라마가 담은 오늘과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우선 다양한 가족의 형태와 가능성을 보여준 드라마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눈물의 여왕>이 절절하게 보여주었듯 기성사회와 미디어는 여전히 가부장적이며 혈연·혼인 중심 가족을 대표적 가족 모델로 반복재생 하지만, 한국사회의 전통 가족 모델은 빠른 속도로 해체되고 재구성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사회적 변화는 전통 가족의 모순성을 보여주거나 가족의 경계를 허물어 확장하는 지향성을 가진 드라마들을 통해 구현됐다. <정숙한 세일즈>(조웅, 김미진, 2024)나 <가족X멜로>(김다예, 2024) 등에서는 가부장 중심 가족의 해체를 보여주었고, <우리, 집>(이동현, 위득규, 2024)이나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송연화, 2024)를 통해서는 가족이라는 관계가 신뢰와 애정으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 의심과 오해로 조각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가족이라서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우리는 이 드라마들을 통해 씁쓸하고 서늘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낭만적 사랑과 결혼이 당연하지도 않고 심지어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드라마들도 있었다. < 트렁크 >(김규태, 2024)는 ‘계약결혼’이라는 파격적 설정을 통해 가족과 부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결혼이나 혈연을 넘어선 가족들도 등장했다. <조립식 가족>(김승호, 2024)과 <손해 보기 싫어서>(김정식, 2024)와 <Mr. 플랑크톤>은 ‘정상’ 세계에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인간들이 혈연·혼인이라는 관습과 제도를 넘어 서로의 ‘가족’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가족이 아니라면 무엇이 가족일 수 있을까? 가족의 재구성의 문제는 관계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생활고 때문에 관계마저 소원해진 젊은 부부가 돈을 벌기 위해 불륜 커플을 협박한다는 신박한 설정의 < LTNS >(전고운, 임대형, 2023)는 ‘불륜’이라는 키워드로 (부부) 관계의 복잡성을 상기시켰다. 부부, 가족, 인간관계가 복잡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이란 존재가 원래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이토록 친밀’한데 ‘배신자’ 일수도 있는 법이다. 드라마는 이런 인간의 복잡성을 흔들리거나, 해체되거나, 재해석되고, 재구성되는 가족을 통해 다채롭게 보여주었다. (상) <우리, 집>,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사진: “ 우리, 집 ”, “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 MBC) (하) <트렁크>, <LTNS> (사진: 유튜브 넷플릭스 코리아 / 유튜브 CJ ENM 글로벌)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하게 늘어난 여성서사가 올해도 다양한 얼굴로 우리와 만났다. 여성서사는 주인공 혹은 중심인물 다수가 ‘여성’인 경우를 의미하지만, 그 여성‘서사’에 무엇을 담았는가도 중요한 문제다. 올해도 드라마들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얼굴을 응시했고, 용감하고, 슬기롭고, 끈질기게 사회적 관습에 저항하는 여성들을 통해 새로운 인간-사회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낮과 밤이 다른 그녀>(이형민, 최선민, 2024)는 뜻밖의 사건으로 낮에는 ‘아줌마’로 호명되는 50대 여성으로, 밤에는 ‘취준생’ 20대 여성인 본래 몸으로 살게 된 이미진/임순을 통해 사회적 존재감을 잃어버린 여성들이 존재감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졸업>(안판석, 2024)에서는 대치동 학원가 1타 강사, 서혜진( 정려원 )이 퍽퍽하고 고단한 30대 여성 직장인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밤에 피는 꽃>(장태유, 최정인, 이창우, 2024)은 사별한 여성에게 자결하여 열녀가 될 것을 강요하는 사회적 관습을 거부하고 의적으로 활동한 조여화( 이하늬 )의 액션 활극을 시원하게 보여주었다. <정숙한 세일즈>는 1992년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생계를 위해 성인용품 방문 판매를 하게 된 여성들을 통해 여성들이 ‘정숙’하기를 강요하는 사회에 도발적 질문을 던졌다. 또한 무능하고 유해한 가부장들과 능동적이고 협력적인 여성들의 연대를 대비시켰다. 1992년이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에 낡은 서사로 여겨질 뻔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지향은 오늘날의 여성들과 공명하기에 충분했다. <굿파트너>(김가람, 2024)는 ‘이혼 전문 변호사’ 차은경( 장나라 )을 중심으로 가족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하며 여성들의 연대와 성장 서사를 보여주었다. 그런가 하면 <손해 보기 싫어서>는 ‘위탁모’로 봉사한 어머니를 둔 손해영( 신민아 )과 ‘위탁아동’으로 연결된 또 다른 ‘딸들’의 자매애를 보여주었다. <피라미드 게임>(박소연, 2024)은 한 달에 한 번씩 비밀 투표로 왕따를 정하는 ‘백연여고’ 2학년 5반을 통해 계급화된 사회의 문제를 환기하고 여성 청소년들이 연대하여 힘의 세계관에 저항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 정년이 >(정지인, 2024)는 1940년대 후반부터 50년대 중후반까지 유행한 ‘여성국극’을 재현하여 남성중심 사회 속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는 여성들과 여성들의 관계를 보여주었다. ‘여성국극’은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의 사회’라는 대안적 상상을 해보게 하는 담대한 시도였다. 여성서사를 표방하지 않더라도 드라마 속 여성들은 꾸준하게 진화하고 있다. 드라마 속 여성서사는 장르도, 시대도, 인물들이 처한 상황도 다르지만 지금-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처한 현실과 그에 대항하는 페미니즘적 지향성과 상상력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중요한 흐름이다. 사진: “ 밤에 피는 꽃 ”, MBC / “ 굿파트너 ”, SBS 드라마에서 여성서사의 공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단지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아졌다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퀴어서사의 공간도 함께 늘어나게 됨을 의미한다. <피라미드 게임>, <웨딩 임파서블>(권영일, 2024), <엄마친구아들>(유제원, 2024)과 같이 퀴어 캐릭터가 주요하게 등장하는 ‘퀴어프렌들리’ 드라마들이 있었고, <정년이>, < 대도시의 사랑법 >(허진호, 홍지영, 손태겸, 김세인, 2024), <옥씨부인전>(진혁, 2024) 등 퀴어가 중심이 된 드라마도 제작됐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소설가 박상영의 소설을 영화와 드라마로 각색하여 호응을 얻었는데 게이 남성 고영( 남윤수 )을 통해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동성애’도 당연하고 보편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옥씨부인전>은 노비에서 양반으로 신분이 바뀐 여성, 구덕( 임지연 )을 중심으로 여성, 노비, 성소수자 등 ‘소수자’ 문제를 전면에 등장시켰다. <정년이>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퀴어서사에 관해 고민하게 했다. 동명의 웹툰 원작에서 정년이와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는 인물인 ‘부용’이 드라마에는 삭제됐다는 면에서 그렇다. 부용은 페미니즘과 퀴어서사를 담당한 중요한 캐릭터였기에 타협적이고도 퇴행적 각색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한편 <대도시의 사랑법>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보수 단체의 거센 항의에 예고편을 삭제하기도 했다. 이 두 드라마를 둘러싼 논란은 드라마가 처한 모순적 상황을 절감하게 했다. 이화여대 퇴임교수 김훈순의 진단처럼 드라마는 “우리의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과정에 적극 개입하는 문화적 생산물”임과 동시에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가치를 담아내는 문화적 공론장”이자 “시대 흐름 속에서 충돌하는 가치들을 담아내는 역동적인 텍스트”이다. 그렇기에 순응하거나 퇴행하는 면도 있지만, 관습의 저항을 피하기는 어려운 순간도 있다. <정년이>나 <대도시의 사랑법>은 충돌하는 가치들을 ‘뚫고’ 나아가는 서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다. 사진: “ 정년이 ”, tvN / “ 옥씨부인전 ”, JTBC 한 해 동안 우리가 주목했던 드라마들의 흐름을 톺아봤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유해한 현실의 도피처로서 무해한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다가 위로를 받았다. <옥씨부인전>에서 구덕의 말처럼 드라마가 “하루하루 수고한 사람들한테 행복을” 주고 “시름을 잊게” 한 것이다. 또한 드라마가 구현한 작은 세계를 통해 우리의 ‘오늘’을 돌아볼 수 있었다. 드라마라는 거울은 우리의 ‘오늘’뿐 아니라 ‘내일’로 나아갈 길을 발견케 했다. 드라마가 비춘 현실은 자주 절망적이었지만, 관습을 깨고, 더 나은 세계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꾸준하게 성장하는 여성서사와 꿋꿋하게 등장하는 퀴어서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다양하게 넓어지고 있다는 희망적 생각을 해보게 됐다. <정숙한 세일즈>에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무대처럼 어떤 시도는 “시대를 앞서간 느낌” 때문에 저항에 부딪히지만 곧 그 시차를 극복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가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은 질문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인간다움’과 ‘가족’으로 상상된 사회공동체다(그렇기에 가족의 범위가 확장되는 걸 보여준 드라마들이 반갑다). 올해 본 드라마 중 가장 좋아한 드라마가 무엇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졸업>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졸업>은 한국사회의 욕망이 집약된 ‘대치동 학원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정답’이 아닌 ‘지문 바깥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역량과 ‘인간다움’에 관해 이야기한다. 드라마는 자신의 삶과 연인을 지극히 사랑하는 성실하고 윤리적인 직업인 혜진을 통해 ‘인간답게 사는’ 길을 보여주었다. 혜진은 수업 시간에 에리히 프롬의 글을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다.” 이것은 나와 우리, 그리고 ‘유해한’ 세상을 향한 조언이기도 하지만, 드라마의 소명과도 같다. 사진: “ 졸업 ”, tvN 오수경(드라마평론가) l 인간과 사회에 관심이 많아 문학을 전공했고, 신앙인으로 살고 있으며, 드라마를 들여다본다. 여러 매체에 칼럼 기고. 『을들의 당나귀 귀 』(2019) 공동 집필, 『드라마의 말들 』(2022) 집필.
왕시린. 한자 이름으로 王西麟(pinyin_Wang Xilin). 1936년 12월 13일에 중국 허난성(河南省) 카이펑(開封)에서 태어났다. 연도를 유심히 읽어 주기 바란다. 아직 국공내전은 끝나지 않았고, 일본 제국주의와의 전쟁이 이어지고 있었다. 마오쩌둥이 중국 공산군을 이끌고 18개의 산을 넘고 17개의 강을 건너 1만 2,500킬로에 이르는 대정정을 끝낸 이듬해이다. 왕시린은 음악에 대한 재능을 타고났다. 시골에서 악기를 변변히 가르쳐주는 교사가 없는 데도 스스로 음악책을 읽으면서 12살에는 중국 전통악기인 후친(胡琴). 아코디언, 그리고 몇몇 관악기를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했고, 사회주의 중화인민공화국이 되었다. 1949년, 13살 소년 왕시린은 그게 무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때 왕시린은 간쑤성(甘蕭省) 핑량(平凉) 미션스쿨 졸업반이었다. 인민 해방군의 행진을 보았다. 그러면서 소년들에게 입대를 선전하였다. 가난한 왕시린은 가족 중의 입을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입대하였다. 여기서 왕시린은 1957년까지 근무하였다. 음악과 먼 생활이었지만 다시 음악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그때 군부 위원회에서 군악대 지휘자를 양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왕시린은 지원을 했고, 여기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 그래서 우수 인재로 발탁되어 상하이에 있는 상하이 음악학교(上海音樂學院)로 전출되었다. 왕시린은 여기서 처음으로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 이 학교에는 유럽에 음악 유학을 다녀온 선생님들과 연주자들이 있었다. 대기근으로 알려진 대약진의 시대를 왕시린은 피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천안문 안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1965년 11월 10일 베이징 부시장인 우한(吳晗)이 쓴 경극 희곡 <하이루이의 파면(海瑞罢官)>을 야오원위안(姚文元)이 대약진운동에 대한 비판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발표하였다. 지도자는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1966년 6월 1일 인민일보에 마오쩌둥은 “모든 괴물과 악마를 척결하라”는 논설을 발표하였다. 새로운 강령. 이 문장에 들어있는 단어, 척결(剔抉). 살을 도려내고 뼈를 바르듯이 나쁜 부분들을 깨끗이 없애버려라. 부주석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이 손에 피를 묻히는 역할을 맡았다. 1966년 8월 18일. 천안문 앞에 100만 명의 학생들이 집합하였다. 그들에게 붉은색의 비단 완장이 배급되었다. 해가 떠오르자 연단에 마오쩌둥이 나타났다. 붉은 완장을 두른 학생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열광하였다. 린뱌오는 “착취계급의 모든 낡은 사고와 낡은 문화, 낡은 전통, 낡은 관습을 타도하라”고 호소하였다. 지도자는 인자한 표정으로 그들의 환호에 응답했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었다. 홍위병들은 처음에는 그들의 교사를 공격하였다. 상하이 음악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왕시린의 선생님들은 자아비판에 불려갔고, 그 과정에서 자살하거나 불구가 되거나 아니면 체포되어 감옥에 갔다. 다음에는 그들의 동료가 목표가 되었다. 그 중의 한명이 왕시린이었다. 왕시린은 학교를 비판하는 대중연설을 요구받았다. 왕시린은 거절하였다. 청년동맹에서 악질분자로 분류한 다음 10번도 넘은 자아비판을 요구했고, 그런 다음 “인민 속으로 들어가서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다시 학습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왕시린은 시골로 하방(下方)되었다. 그가 보내진 곳에서 왕시린은 주자파로 분류되어 한밤중에도 불려 나가 사람들 앞에 서서, 자아비판을 하고 야유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이른바 제트기 자세라고 불리는 사상개조 고문을 받았다. < 흑의인 >이 시작되자마자 왕시린이 허리를 숙인 다음 두 팔을 길게 뻗고 서 있던 그 자세, 이 자세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지금 이 글을 읽는 걸 멈추고 일어서서 해보길 바란다. 중국 전역에서 반혁명분자로 분류된 이들에게 요구된 자세. 그 자세를 추운 겨울날 운동장에서 밤새도록 요구하고, 한여름 뜨거운 뙤약볕 아래 세워놓고 종일 그렇게 서 있어야 했다. 쓰러지면 무서운 매질이 기다렸고, 그리고 다시 일어서서 계속해야만 했다. 왕시린은 문화혁명 기간 중에 자신의 치아를 잃었고, 청력의 20퍼센트를 상실했다. 왕시린은 음악가이다. 왕빙은 왕시린의 음악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첫 번째(이자 아직까지는 마지막) 극영화 < 바람과 모래 (The Ditch, 夾邊溝)>의 사운드트랙으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복잡한 사정으로 잘 안 되었다. 하지만 계획을 바꾸어서 왕시린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그 사이에 변화가 생겼다. 왕시린은 2017년 10월 24일 그의 거주지를 베이징에서 독일 라인할트- 팔츠주(州) 마인츠로 이사했다. 왕빙은 왕시린을 찾아가 집에서 인터뷰했고, 또 왕시린이 지휘하는 무대도 찍었다. 하지만 무언가 핵심적인 것이 거기에 빠졌다고 느꼈다. 계속해서 완성을 미루었다. 방법을 바꾸었다. 왕빙은 왕시린을 단 하룻밤 극장 무대에 세우기로 하였다. 프랑스 파리 10구 샤펠가 37번지에 자리한 극장 떼아트르 데 부프 뒤 노르(Théâtre des Bouffes du Nord)에서 2022년 5월 27일에 촬영하였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극장. 왕시린은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말 그대로 발가벗고, 몸의 어떤 부위도 가리지 않고 무대 위로 걸어 올라온다, 이때 우리는 그 몸에서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몸에 새겨진 역사. 달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온몸에 피어난 검버섯. 흘러내리는 것만 같은 살. 몸은 아직도 문화혁명을 기억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대에 서자마자 제트기 자세를 한다. 그런 다음 자신이 처음 인민해방군의 행진을 보던 날부터 시작해서 긴 증언을 시작한다. 아니, 차라리 이건 공연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왕시린은 기억의 무게 앞에서 몸서리치면서 견딜 수 없는 그 시간을 물리치기라도 하듯이 노래 부르고 피아노 앞에 앉아서 건반을 쾅쾅 두들긴다. 그건 아름다운 선율이 아니다. 노래는 비명을 지르는 것 같고, 건반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다. 그렇다. 이것이 왕시린이 자신을 짓눌렀던 역사와 싸워온 방식이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한다. “나는 오직 작곡을 하고 또 하면서 그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그렇게 악보에 그걸 기록했습니다. 누군가 그걸 연주할 때 그건 그 시간을 살았던 인간을 다시 불러내고 그 시간의 무게를 듣고 경험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영화의 제목에 관해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이 영화에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黑衣人)’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왕시린은 마지막에 노래를 부른다. 노래 가사만으로는 이 내용을 따라올 수가 없다. 이 노래는 왕시린이 작곡한 ‘흑의인지가(黑衣人之歌,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노래)’이다. 이 노래 가사는 소설가 루쉰이 1926년에 쓴 소설 <주검>(鑄劍, 쇠붙이를 녹여 칼을 만들다, 한국에는 <도공의 복수>라고 김시준이 번역했다)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알지 못하면 이 가사의 뜻을 알 수가 없다. 단조롭게 줄거리를 소개하겠다. 열여섯 살이 되는 소년 미간척은 어머니에게 칼을 만드는 천하제일의 명인이었던 아버지 이야기를 듣는다. 왕은 어느 날 신비로운 쇳덩어리를 얻게 되고 미간척의 아버지를 찾아와 검을 만들어달라고 한다. 아버지는 삼 년에 걸려 두 자루의 검을 만든 다음 아내에게 한 자루를 주면서 자신이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알려준다. 의심 많은 왕은 틀림없이 세상에 둘도 없는 검을 바치면 자신이 또 다른 검을 만들지 못하게 자신을 참수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아이가 열여섯 살이 되면 자신의 복수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왕궁에 가서 검을 바치고 참수당한다. 미간척은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 떠나지만 그만 왕의 부하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미간척 앞에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나타난다. 그리고 두 가지 제안을 한다. “만일 나에게 너의 목과 검을 바치면 네 복수를 해주마” 미간척은 망설임 없이 아버지의 칼로 자신의 목을 자른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는 미간척의 목과 검을 들고 왕에게 세상에 없는 구경거리를 보여주겠다고 아뢴다. 그러면서 큰 솥에 물을 끓여달라고 요구한다. 물을 끓이자 그 속에 미간척의 목을 집어 던진다. 그런 다음 ‘검은 옷을 입은 사내’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솥 안에서 노래에 맞춰 미간척의 목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런데 오르락 내리락 하던 그 목이 갑자기 보이지 않자 왕이 어찌 된 일이냐고 묻는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는 솥 안에서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가까이 오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고 아뢴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왕이 솥에 가까이 와서 목을 들이밀자 ‘검은 옷을 입은 사내’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왕의 목을 자른다. 솥 안에 굴러떨어진 왕의 목을 미간척의 목이 물어뜯으면서 ‘검은 옷을 입은 사내’와 눈을 찡긋 맞춘다. 왕시린이 부르는 노래는 여기서 ‘검은 옷을 입은 사내’의 사내가 부르는 노래를 가져와서 작곡한 곡이다. 루쉰의 소설에 관해서는 많은 해설이 있다. 아마 <흑의인>을 보고 나면 당신의 해설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왕시린은 평생동안 싸웠다. 어디서? 그의 악보 위에서. 혁명 속에서의 혁명. 선율과 피비린내. 리듬과 비명. 피아노 연주를 마치고 난 다음 왕시린은 무대를 떠난다. 왕빙은 텅 빈 극장을 둘러본다. 그런데 저기 누가 앉아있다. 왕시린이 앉아있다. 왕시린은 누구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일까. 왕빙을? 영화를? 천안문의 지도자를? 아니면 역사를? 아니면 우리를? 아마도, 아마도 그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만 같다. 왕시린, 그 자신을,
짧은 여행의 기록 1-1: 파주행 성공한 사람 곁에는 성공한 사람이나 성공하고 싶은 사람이 모인다. 실패한 사람 곁에는 실패한 사람이나 실패하고 싶은 사람이 모인다. 그리고 외톨이 곁에는 외톨이만 모인다. 구분하자면 나는 외톨이에 가깝다, 라는 말로 오한기는 [바게트 소년병]을 시작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굳이 따지자면 말이지만. 나는 지금 파주를 향하고 있다. 자유로를 타고, 피치포크 선정 90년대 최고의 노래 250곡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늘 그런 것처럼 내가 가야하는 장소가 파주가 아니라 블레인 카운티라는 가벼운 착각 속에서… (좌: T맵, 우: [GTA5] 맵) 하지만 그곳에는 샌디 해안이 없고, 칠리아드 산이 없다. 보기만 해도 팔이 아픈 것 같은 할리 데이비슨을 모는 폭주족들이 모여 사는 트레일러촌도, 깊은 산 속의 컬트 본부도, 마약을 제조하는 버려진 수퍼마켓나 최신형 기관 단총을 등에 매고 자전거를 타는 시골 힙스터들도, 모래 바람 부는 누런 황야도, 회전초도, 야생 늑대도 없다(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마지막 세 개 정도는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개쯤 더 있을 수도 있고…). 지금 나는 수상할 정도로 서로 닮은 남자들이 운영하는 집단 농장을 불태우러 가고 있지 않다. 오한기를 만나러 간다. 그러니까 외톨이가 외톨이에게, 그런데 이제 자동소총 대신 바게트빵을 곁들인… 1-2: 메타포 외톨이와 외톨이가 모이면 그들은 여전히 외톨이일까요 외톨이가 아닐까요, 만약 아니라면 그들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외톨이야+외톨이야=Daridaridara du? 내가 묻자 오한기가 말했다. 정연씨, 좋아보이시네요. 우리는 출판단지에 있는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인쇄에 쓰이는 기계들이 전시된 박물관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시간, 영원함, 이 세상과 그다음 세상, 책, 출판업자, 가능한 문제, 불가능한 문제를 두고 날이 어둑해지도록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기는 했다. 소설이라는 것에 대해서. 영화라는 것에 대해서. 세상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러니까 사실이 아닌 문장은 단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나의 무능과 아직도 오한기의 소설을 영화화 하지 않은 세상의 무능에 대해서… 문득 그런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오한기가 말했다. 영화 < 파주 >에서 서우가 이선균한테 이렇게 묻잖아요. 이런 일 왜 하세요? 이 일이 형부한테 무슨 보람이 되죠? 그러자 이선균은 얼빠진 표정으로 담배를 한모금 피우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글쎄, 처음엔 멋져 보여서 한 거 같고, 그 다음엔 내가 갚을 게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던 거 같은데, 지금은 잘 모르겠네, 그냥 늘 할 일이 생기는 것 같아, 끝이 안 나, 라고요. 나는 물었다. 도대체 그런 대사는 어떻게 외우고 있는 거예요? 언제 봤는데요? 그런 나를 오한기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대꾸했다. 안 봤는데요. 정연씨, 그건 그냥 메타포에요. (상: 서우, 하: 이선균) 1-3: 총 맞은 것처럼 아직 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문학동네 편집자분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천변을 따라 천천히 걷다가 헤르만하우스 옆길로 들어섰다. 심학산 입구쪽으로 올라가는데, 식당이며 커피숍들이 보였다. 어쩐지 엠티라도 온 듯한 기분이었다. 식당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이게 오늘의 첫 끼니라는 사실이 떠오르며 미친 듯이 배가 고파졌다. 얼마나 배가 고픈지 당장 먹을 걸 준다면 춤이라도 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딴딴딴 따단 따단, 딴딴딴 따단 따단, 리듬에 맞춰서, 배고픈 사람의 춤을, 밤이 깊도록. 춤을 추지 않아도 음식은 나왔고 날은 저물었다. 파스타와 피자를 먹고 카페에 갔다. 멀리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였다. 창가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며 나도 저 노을처럼 사라지고 싶다, 그렇게 사라져서 푹 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는 원고를 쓰느라 꼬박 밤을 샜다. 이제 인스타 라이브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면 내일은 하루종일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모레는 광주에도 가야 하는데. 한 두 번 해본 것도 아니지만 촬영을 시작하면 늘 긴장하게 된다. 지금도 그렇다. 담당자의 시작 신호를 못 알아듣고 몇 분 동안 멀뚱하게 카메라와 아이패드 화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고만 있었다. (좌: 오한기와 금정연, 우: 장 뤽 고다르) 작가로서 본인의 10년을 되돌아본다면, 어떠세요? 출판사 분들이 쿠팡에서 주문했다는 고소한 빵 냄새가 나는 모형 바게트를 앞에 두고 내가 물었다. 저는 작가로서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이건 진짜 어려운 질문 같은데, 질문을 들으면서 딱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제가 회사에 다닐 땐데, [의인법]을 냈는데 어느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제 [의인법]에 대한 이야기가 문예지에 실렸다, 문예지를 보내주겠다, 그래서 저는 어? 문예지를 보내줄 정도면 되게 좋은 이야기가 실렸겠구나. 그래서 기다렸죠. 마침내 와서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읽었는데 진짜 제 소설에 대한 완전한 악평. 두 분이 대담을 하셨는데 서로 주고 받으시면서 제 기억에는 되게 안 좋은 말들, 비판을 하셨어요. 그래서 그때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거의 총 맞은 기분? 그 기억이 자꾸 났어요. 이 질문을 들으면서. 그게 제 작가인생입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슬펐다. 라이브가 끝났다. 밤의 자유로를 달려 오한기를 합정에 내려준 다음 나는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바게트 소년병]을 펼쳐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마지막 작가의 말을 읽었다. 오한기는 이렇게 썼다. 희망을 버렸지만 나는 여전히 소설을 쓰고 있고, 비공식적으로는 전 세계 백 등 안에 든다고 확신한다. 착각일까. 언제나처럼, 아마도 그렇겠지? 데뷔할 때 ‘나의 마지막 장편소설’이라는 제목의 수상 소감을 썼던 게 기억난다. 수상 소감 속에서 나는 볼링장에서 일하는 포르노 작가였고, 시상식장에서 한 원로 작가에게 수상 소감이 허구여서는 안 된다고 꾸지람을 들었다. 왜 안 될까. 글쎄. 도무지 모르겠네. 2-1: 뉴욕에 간 사나이 오늘의 일정. 일산 집에서 은평 작업실에 간다, 다시 일산으로 돌아와 나윤이와 장모님을 태우고 안산에 간다, 안산에 차를 놓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대학로로 간다, 대학로에서 일산으로는…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대학로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나윤이 데리고 소아과 다녀와서 작업실로 운전해서 가는데 정지돈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이 그날이라 이것저것 이야기도 할겸 미안하고 고마워서 전화했다고 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됐고 뉴욕은 어떻냐고 물었다. 그러자 정지돈이 대답했다. 여러분이 없는 뉴욕은 아무 의미도 없다고,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여기 사람들은 진짜 말이 안 통한다고, 물론 그건 거의 전적으로 제 잘못이겠지만 너무 안 통해… 근데 지돈씨 지금 뒤로 들리는 이게 뉴욕의 소음인가요?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정지돈이 대답했다. 그렇죠, 들리나요? 뉴욕의 소리가. 근데 지금 길거리는 아니고 카페에 있는데 여기가 무슨 카페냐면 밥 딜런이 단골인 완전 유서 깊은 카페로 여기에 또 누가 단골인줄 알아요? (이하 생략)(이하 생략)(이하 생략)… 나는 지금까지 뉴욕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가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런저런 영화를 통해 보았고, 음악을 통해 들었으며, 책을 통해 읽었다. 그래서 종종(실은 자주) 뉴욕이 어릴 때 떠나온 옛 고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가끔 작업실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우탱 클랜의 [Enter the Wu-Tang(36 Chambers)] 앨범을 들으며 살인적인 주거비용 때문에 직주근접을 이루지 못하고 밤의 고속도로를 달려 뉴욕의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뉴저지 사람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but <I’m not there>) 2-2: In Between Dyas 안산에 도착하니 3시 15분이었다. 금요일이라서 그런가? 낮인데도 차가 제법 막혔다. 대학로까지는 딱 두 시간이 걸린다고 나왔다. 아슬아슬했다. 77번 버스 타고 초지역에 갔다. 4호선을 타고 지상구간을 지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도시들, 이미지들. 한참을 멍하게 앉아 음악도 듣지 않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문득 [나의 해방일기] 구씨 생각이 났다. 어디서 뭘하고 사는지, 건강은 좀 어떤지, 염미정이랑은 잘 만나고 있는지… 언젠가 정지돈은 여행이 좋지만 공항에 가고, 비행기를 타고, 환승을 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싫어서 여행까지 싫어질 때가 많다고 했다. 내 생각은 다르다. 아침부터 적지 않은 시간을 길 위에서 보냈지만 조금 피곤하기는 해도 나는 그게 전혀 싫지 않다. 정확히 그 반대다. 토마스 베른하르트가 말한 것처럼, 진실은 이렇다. 나는 그냥 자동차에 앉은 채로 한 장소를 떠나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데, 행복한 순간 은 오직 자동차에 앉아 있을 때뿐이다. 나는 차를 타고 이동할 때만 행복하고, 도착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이 된다. 어디에 도착하든지 상관없이, 도착하는 순간 나는 불행하다. 나는 세상의 그 어떤 장소에서도 견디지 못하고, 오직 떠나 온 장소와 도달할 장소 사이에 있을 때만이 행복한 인간에 속한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이라도 지하철을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고 [GTA4]나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정확히 말하면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그냥 택시 뒷좌석에 앉아 창밖으로 흘러가는 리버티시티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싶을 뿐이다.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리버티 시티에서 택시 타기) 2-3: 치질에 대해서 (ㄱ) <스위밍 풀>에서 샬럿 램플링이 했던 말 기억해요? 편집장이 20년 전에 자기를 세뇌시켰던 말이라면서 이렇게 말하잖아요. 상은 치질 같은 거라고, 모든 작가들이 언젠가는 받게 된다고요. 지돈씨, 네 번째 치질을 축하합니다. 혹시 우리가 처음 만난 날 기억해요? 서울국제도서전에서였잖아요. 지돈씨는 출판사 부스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저는 다른 친구와 같이 도서전을 구경하고 있었죠. 그 친구는 지돈씨랑 아는 사이였고요. 아, 네, 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안녕하세요 인사하던 지돈씨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이 새낀 또 뭐야? 같은 눈빛이었는데. 그날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꾸벅, 고개를 숙이고 다시 각자의 일로 돌아갔죠.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어요. 그러니까… 모든 것이요. 제가 지돈씨를 두 번째로 본 건 문지 신인상 시상식 자리였습니다. 예의 친구가 지돈씨에게 초대를 받았다며 저를 불렀는데, 시상식장에 조금 늦게 도착해서 인사는 하지 못했어요. 그때 저는 화정동에 있던 영화 창작공간 시나리오작가존에 입주해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날이 자리를 빼야 하는 날이었거든요. 그래서 가방 가득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지돈씨가 상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시상식이 끝나기 전에 친구와 둘이 그곳을 빠져나왔죠. 그날 지돈씨가 수상 소감을 말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멋진 재킷을 입고 단상에 올라 이렇게 말했죠. 준비해온 소감이 있어서 그걸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는 멋진 재킷의 안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종이를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물론 지돈씨는 본인의 목소리는 원래 떨린다고 말하겠지만요), 아주 긴 수상 소감을. 저는 지금 지돈씨가 제게 선물한 재킷을 입고 있습니다. 안주머니에는 지돈씨가 쓴 수상 소감도 들어 있고요. A4 6장이면 짧다고는 할 수 없겠네요. 오늘은 지돈씨의 대리 수상을 하는 자리인만큼,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정지돈의 시상식을 최대한 재현하는 것이 오늘 저의 목표입니다. 잘할 수 있을까요? 굳이 잘할 필요는 없겠지만요. 벌써 다음 역이 혜화네요. 이제 내릴 준비를 해야겠어요. 곧 다시 연락할게요. 안녕! (ㄴ) [비트겐슈타인의 조카]에서 베른하르트가 했던 말 기억해요? 시상식이란, 상이 주는 돈만 아니라면 이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고역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죠. 이런 시청과 강당 안에서 남들이 내게 똥물을 뿌리도록 놓아두었다. 상이란 한 사람에게 똥물을 뿌리는 행위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상을 받는다는 것은 남들이 내 머리 위에 똥물을 뿌리도록 허용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면 상금이 지불되니까. 지돈씨, 오늘 저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위트 앤 시니컬 2층이었어요. 그 안에서 남들이 내게 똥물을 뿌리도록 놓아두었죠. 심지어 상금도 없이… 지돈씨, 어떻게 제게 이럴 수 있죠? 맹세컨대 시상식이 이런 건줄 알았다면 저는 아무리 지돈씨의 부탁이라도 결코 대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말이지 여태까지 살면서 이렇게…… [더 보기] (좌:정지돈, 우: 신해욱) (다음 회에 계속)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