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의 부나비들
- 감독
- 유동훈
- 제작년도
- 1984
<무소주>(2024) 중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금강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차이밍량은 2012년부터 <행자(行者)> 연작을 찍기 시작했다. 장소만 달려졌을 뿐 내용은 모두 동일하다. 리캉성이 붉은색 가사를 입고 약간 고개를 숙인 다음 한 손은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들어 불가의 공(空)을 표시하고 다른 한 손은 내린 채 펼친 다음, 혹은 마찬가지로 원을 만들어서, 천천히 걷는다. 맥락과 배경, 그리고 거기에 대한 해설을 달 수 있겠지만 영화에서 보는 건 그게 전부이다. 차이밍량은 2013년 < 떠돌이 개 >를 찍은 다음 더 이상 극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언젠가부터 점점 차이밍량의 영화에서 극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들이 희박해져 갔다. 그는 < 안녕, 용문객잔 >(2003)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이미 모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행자> 연작을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무대에서 시작되었다. 2011년 타이베이 국립극장에서 300석 규모의 무대에서의 공연을 제안받았다. 세 명의 배우를 무대에 불러 각자의 모노드라마를 올릴 계획이었다. 세 명은 양구이메이, 루이징, 그리고 리캉성이었다. 리캉성에게는 일인삼역을 부탁했는데, 리캉성 본인과, 차이밍량의 아버지, 그리고 현장(玄奘)법사였다. 현장법사는 당나라 시대의 승려이다. 불교 교리를 연구하려고 했지만, 그때 중국에는 불교 경전이 없었다. 그래서 경전을 구하기 위해 천축국(지금의 인도)으로 길을 떠났다. 627년의 일이다. 둔황을 거쳐 천축국에서 불경을 얻은 다음 당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으로 돌아온 것은 645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그 여정을 명나라 시대에 신괴소설(神怪小說)로 쓴 오승은 작가의 『서유기』이다. 삼장법사와 세 명의 제자,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과 함께 그들을 기다리는 온갖 요괴와 난관을 헤쳐 나가는 모험극. 하지만 무대에서 리캉성은 무얼 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사각형으로 된 무대 끝 선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차이밍량은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무대에서 한 번 공연한 다음에 사라져 버리는 게 너무 안타까워 그걸 기록하고 싶어졌다. 이 말을 다시 한 번 옮기겠다. <행자>는 영화로 만들어지기 위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기록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모래>(2018) 중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하지만 무대에서 이미 한 것을 카메라 앞에서 반복하지 않았다. 차이밍량은 리캉성에게 붉은 가사(袈裟)를 입히고 길거리로 데려 나갔다. <무색>(2012)이라는 제목의 첫 번째 <행자>는 2012년 타이베이의 야시장(夜市場)에서 걸었다. 아주 느리게 걸었다. 이 해에 세 편의 <행자>를 더 찍었다. 처음에는 상영시간이 짧았지만, 점점 더 길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덟 번째 <행자> 연작인 <모래>(2018)에서 처음으로 1시간 상영시간을 넘어섰다. 아무 사건도 없고, 아무 이야기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 대사도 없다. 리캉성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언제나처럼 붉은 가사를 입고 한 손으로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들고 다른 손을 내린 채 맨발로 몹시 천천히, 아주 느리게, 마치 멈춘 것 같은 속도로 걷는다. 하지만 길거리로 나가자 구체적인 문제와 만나야만 했다. 기후의 가혹한 조건. 환경이 요구하는 한계. 한여름 뜨거운 햇빛으로 달궈지다시피 한 말레이시아 쿠칭의 아스팔트 위를 맨발로 걸었고(다섯 번째 <행자>인 <물 위 걷기>) 추운 한겨울 밤에도 도쿄의 길거리도 맨발로 걸었다(여섯 번째 <행자>인 < 무무면(無無眠, No No Sleep) >). 그래서 차이밍량은 모든 테이크를 단 한 번만 찍었고, 리캉성은 같은 장소에서 두 번 걷지 않았다. <행자>는 정신적인 여정이지만 육체적인 기록이다. < 곳 >(2022), < 무소주 > 중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열 번째 <행자>인 < 무소주(無所住, Abiding Nowhere) >(2024)에서 리캉성은 미국 워싱턴 DC를 걷는다. 아홉 번째 <행자>인 <곳(何處, Where)>(2022)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아농 홍앙시가 등장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만나지 못하고 각자의 일을 각자 한다. 부사(副詞)로서의 각자(各自). 서로 따로따로. 어떤 일? 리캉성은 쉬지 않고 걷고, 아농은 외출하고 돌아와서 면을 끓인 다음 먹는다. 그 둘은 무슨 사이일까. 전주에서 만난 차이밍량은 내게 비밀을 알려주었다.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차이밍량 <행자> 전작 회고전을 했고, 차이밍량은 전주에 방문했다. 이때 긴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언지무(言之無)―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 나는 이를 추구한다”, 《필로》 38호, 2024 May_June.) “<행자> 연작 일부분은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 예를 들면 내가 어릴 적에 읽은 『서유기』에 나오는 요괴 같은 개념들을 몰래 넣기도 합니다. 당신에게 알려줄 수는 있지만, 관객들에게 내 생각을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습니다. 확실한 건 <행자> 연작을 찍을 때는 어떤 방법을 통해 표현할지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파리에서 찍은 <곳> 속의 아농은 거미 요괴를 닮았습니다. 그가 리캉성, 그러니까 행자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요괴를 닮았습니다. 내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들이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차이밍량은 거기까지만 비밀을 알려주었다. <무소주>에서 아농이 요괴인지 그렇다면 어떤 요괴인지, 거기까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무소주> 중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무소주>의 마지막 장면에서 석양이 저물어가는 물가를 리캉성이 걷는다. 그때 해가 저물어가면서 물 위로 반사광이 피어오른다. 구태여 비유를 빌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바세계(娑婆世界)를 건너서 극락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그때 노래가 흐른다. ‘了悟心性究竟之上師祈請文’. 문자 그대로 옮기면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 위한 스승들의 기도’이다. 이 노래가 들릴 때 리캉성은 마치 긴 여정을 마치는 것만 같다. 차이밍량은 베를린 영화제에서 이 열 번째 <행자>가 연작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했다. 추신 _ 전주영화제에서 차이밍량에게 열한 번째 <행자>를 제안했고, 차이밍량은 다음 <행자>를 전주에서 찍을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이것이 새로운 <행자> 연작의 첫 번째 영화가 될지, 아니면 열한 번째 <행자>일지, 그도 아니면 번외편이 될지, 또는 에필로그가 될지, 아무것도 정해진 바 없다고 했다. 나는 두근거리면서 기다리는 중이다.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l 매일 영화를 보고 종종 영화 평을 쓰고 가끔 영화를 만들고 때로 영화제 일을 한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2003) 인터뷰 진행,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010), 『필사의 탐독』(2010) 비평집 집필. 첫 영화 < 카페 느와르 >(2009) 이후 < 천당의 밤과 안개 >(2015), < 녹차의 중력 >(2018), < 백두 번째 구름 >(2018) 연출.
다이캐스트 모형 자동차 브랜드 중에 ‘쟈니 라이트닝’이라는 미국 회사의 브랜드가 있다. 미국 마텔사의 ‘핫휠’, 일본 토미사의 ‘토미카’ 등이 경쟁상대로서 대표적인 모형 자동차 장난감 브랜드인데 쟈니 라이트닝은 토퍼 토이사에서 소유하고 있다가 여러 번 문을 닫고 다른 회사로 팔려가는 과정을 거치면서도 오뚝이처럼 되살아나 모형 자동차를 생산해내고 있다. 국내 대형 마트 장난감 코너에서도 심심찮게 마주칠 수 있는 흔한 제품이지만 수집가용으로 출시되는 한정판은 정식 수입이 안 되고 구하기도 어렵다. 쟈니 라이트닝에서 최근 ‘2017 미국 머슬카’ 시리즈를 출시했는데 그중에서 세 편의 영화에 등장했던 머슬카가 포함되어 있어 호기심에 주문했다. 영화 <배니싱 포인트>(1971)에 등장하는 1970년형 흰색 ‘닷지 챌린저 R/T’, <매리와 래리>(1974)의 1969년형 ‘닷지 차저 R/T’, 그리고 <잭 리처>(2012)의 1970년형 ‘쉐보레 셰빌 SS’ 모델이 그것이었다. 위 세 편의 영화는 탈주의 쾌감을 확실하게 선사하는 영화로 닷지사의 머슬카를 몰고 나오는 것 외에도 음악과 카체이스 스타일 등이 닮아 있다.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저격 사건 현장에서 체포된 범인이 결백을 주장하며 지목한 단 한 사람 ‘잭 리처’가 사건 해결을 위해 홀로 나서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잭 리처> 역시 로드 무비 성격의 영화는 아니지만 차종에 있어서는 차저와 챌린저를 비롯해 다분히 미국 머슬카의 특징을 노린 선택이다. 자동차 모델명 뒤에 붙는 ‘R/T’는 1960년대 이후 닷지 차량에 사용된 성능 표시로서 ‘로드/트랙’의 약자를 뜻한다. R/T가 모델명에 붙은 차량은 서스펜션, 타이어, 브레이크, 엔진 등의 성능이 일반 모델보다 강력하다는 뜻이다. 제작진이 얼마나 큰 의미 부여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망자 신분의 주인공들이 머슬카를 몰고 질주하는 로드 무비 <배니싱 포인트>와 <매리와 래리>와 같은 영화에 등장하는 차종으로는 잘 어울리는 성능이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물론 옳은 일을 하고는 있지만 도망자 신분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 잭 리처(톰 크루즈)가 모는 1970년형 쉐보레 셰빌 SS 모델의 ‘SS’ 역시 ‘슈퍼 스포츠 버전’의 약자로 사실상 R/T와 같은 뜻이나 다름없으니, 탈주 즉, ‘도망’이라는 로망을 추구하는 자동차 모델로는 합격점을 받고도 남을 차들이 아닐까? <배니싱 포인트>(1971) 닷지 챌린저 R/T 장난감 전문 회사들이 어른의 수집 취향을 정확히 꿰뚫고 이들 영화 속 차량을 취급한 것에서도 느낄 수 있듯, <배니싱 포인트>와 <매리와 래리>는 영화적으로도 ‘도망자의 차’에 입문하기 딱 좋은 영화다. 그중에서도 <배니싱 포인트>의 추격 장면은 카체이스 영화 역사를 통틀어 종종 베스트로 손꼽히는 시적인 여운을 선사한다. 이 칼럼을 쓰면서 너무 많은 영화들에 ‘역사상 베스트’ 운운하는 게 조금 부끄럽기도 한데 이 영화는 카체이스 촬영 기술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정서적 여운을 건드리기에 더욱 회자되는 것 같다. 아무튼 연출을 맡은 리차드 C. 사라피안 감독에 따르면 이 영화에 1970년형 흰색 ‘닷지 챌린저 R/T’를 등장시키려 한 것은 제작자인 대릴 F. 자눅의 뜻이었다고 한다. 제조사인 크라이슬러사에서 저렴한 값에 차를 렌트하는 대신 영화 곳곳에 크라이슬러사의 차를 등장시키는 일종의 협찬 광고를 따온 셈이다. 이 영화의 카체이스 스턴트 대역 운전을 맡았던 유명 스턴트맨 캐리 로프틴이 직접 닷지 챌린저의 토션 바를 쓰는 서스펜션 퀄리티가 촬영 및 쾌속 질주에 잘 어울린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타이어가 터져 버릴 정도로 달리고 또 달리는 단순하면서도 과격한 탈주 장면은 언제든 다시 봐도 통쾌하고 묵직한 쾌감이 느껴지는데, 이는 베트남전 참전 용사이자 카레이서 이력도 있는 주인공 코왈스키(배리 뉴먼)의 삶의 태도 혹은 성격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가 덴버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밤낮없이 도로를 질주하는 동안, 그를 둘러싸고 억압하는 모든 사회적 굴레가 내던져지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그래서인지 <배니싱 포인트>는 상당히 실존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로도 해석된다. 요새는 여러 가지 프로덕션 상의 이유로 이 영화처럼 질주하는 장면을 편집도 없이 길게 찍지는 않는다. 게다가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허허벌판을 가로지르는, 길고 긴 도로의 끝과 끝을 달리는 자동차의 모습만 보여줬다가는 평점테러 당하기 딱 좋을 것 같다. <리피피>(1955) ‘도망자의 차’라는 이상한 카테고리에 영화를 골라 넣고 있자니, 줄스 다신 감독의 <리피피>(1955)를 처음 만났던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생애 마지막이자 최고의 작전이었던 퇴물 도둑 토니(장 세르베)의 보석털이가 실패로 돌아갈 운명에 처한다는 이야기인데, 누군가는 왜 이 영화를 누아르 영화가 아닌 ‘도망자의 차’ 카테고리에 들이미느냐고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숨소리조차 사치스러울 정도로 긴박했던 그리고 또 작전 자체로 기발한 면모도 보였던 금고털이 장면도 사실 자동차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지만 자동차는 의외의 순간에 결정적으로 등장한다. 범죄자로서의 프로 의식과 책임감, 내지는 비열하고 냉철한 감정이 뒤섞인 채로 주인공 토니가 결국 마지막 종착점에 다다랐을 때, 아주 처절하고 멋진 필사의 질주 장면이 등장한다. 이때 토니가 올라탄 차종이 ‘포드 비뎃’이다. 유럽 최초의 8기통 자동차라고 알려져 있는데, 영화의 정서적 핵심에 해당하는 이 장면과 자동차의 성능이 잘 맞아 떨어졌을 거라는 추측을 해본다. 카체이스 장면을 감각적으로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슴 뭉클한(?) 도망자의 질주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자동차 영화로서는 상당히 중요한 미덕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의외의 순간에 등장할 때 감동은 배가된다. <이탈리안 잡>(1969) 오스틴 미니 쿠퍼 S <리피피>가 프랑스 도둑들의 어떤 정신세계를 잘 보여줬다면 마이클 케인이 주연을 맡았던 피터 콜린슨 감독의 <이탈리안 잡>(1969)은 이탈리아 땅을 휘젓고 다니는 영국 도둑들의 영화다. 마크 월버그가 주연을 맡아 리메이크되기도 했는데 같은 브랜드의 자동차가 등장한다는 것 외에 마이클 케인의 오리지널 영화와는 여러모로 비교 불가다. 이탈리아는 람보르기니와 페라리를 만든 나라지만, 주요 도시의 길이 좁고 아스팔트 대신 자갈을 깔아 놓은 길도 많아 운전하기 썩 좋지 않은 나라라는 인식이 있다. 대신 조그만 크기의 자동차는 좁은 골목 사이 사이를 지나다니기에도 유용하고 또 영화적으로도 ‘탈주’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이탈리안 잡>은 이러한 지역 특색을 매력으로 승화시켰다. 오죽했으면 무시무시한 스턴트 배우들의 운전 솜씨가 배우들의 연기를 압도하기까지 했을까. 런던 출신의 유명한 도둑 찰리(마이클 케인)가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400만 달러의 현금을 탈취할 작전을 세우는데 이때 쓰이는 범죄 도구가 바로 1967년형 ‘오스틴 미니 쿠퍼 S’다. 지금은 ‘미니’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 차는 브리티시 모터 코퍼레이션(BMC)에서 1959년에 처음 만들어졌고 현재는 인수 과정을 거쳐 BMW 산하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1960년대 당시 영국의 국민차로 각광받았는데 몬테 카를로 랠리에서 3차례나 우승도 했던 차다. 영국 도둑들이 영국 국민차인 미니 쿠퍼를 이끌고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크게 한탕 벌이는 영화의 줄거리 속에는 영국과 이탈리아의 재미있는 ‘자동차 부심’ 대결도 숨어있다. 극 중 찰리 일행은 거사 직전에 마피아들에게 붙잡혀 이탈리아를 빈손으로 떠나라고 협박을 당한다. 영국과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깡패 집단들끼리 기 싸움을 벌이는 상황인데, 영국의 미니 쿠퍼가 탄생하게 된 이유도 이탈리아의 피아트 때문이었다. 1956년 수에즈 위기로 심각한 연료난에 처했을 때 유럽 전역에서 소형차들이 각광받던 때가 있었다. 그때 이탈리아의 ‘피아트 500’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브리티시 모터 코퍼레이션의 회장은 이 차를 극도로 혐오했다고 한다. 그래서 제대로 된 미니카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고는 대안으로 미니 쿠퍼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렇다고 제작진과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계와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이 영화의 제작자인 매튜 필드와 마이클 딜리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부터 의도적으로 이탈리아 대배우 로자노 브라지라와 람보르기니를 함께 등장시키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누가 봐도 이탈리아의 상징 같은 배우와 자동차가 아닌가. 또 영화에서 산산조각이 나는 스포츠카 디노 페라리에 얽힌 사연도 있는데 당시 피아트의 회장이었던 지아니 아넬리가 촬영을 위해 선뜻 빌려줬다고 한다. 왜냐하면 피아트는 영화의 배경이기도 한 토리노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기업이었기 때문에 <이탈리안 잡>의 제작을 반겼다고 한다. 당시 유럽 영화계에서 최고의 자동차 스턴트팀을 이끌었던 곡예 운전사 레미 줄리엔은 이 영화에서 스턴트 총괄을 맡은 이후 피아트에 스카우트되어 공식 드라이버가 되기도 했다. 이런 알아둬도 쓸데없는 사연을 모두 차치하고서라도 <이탈리안 잡>은 자그마한 소형 자동차들을 가지고 당시로써도 획기적이고 지금 봐도 스펙터클한 카체이스 장면을 탄생시켰다. 아마 21세기에는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도심 추격 장면은 절대로 구현할 수 없을지 모른다. 대리석으로 이뤄진 저택이나 도심 한복판에 세워진 백화점 실내, 혹은 건물 옥상을 타고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장면을 과연 누가 찍을 수 있을까. 이전 칼럼에서 소개한 <블리트>나 <프렌치 커넥션> 같은 영화의 도심 카체이스 장면도 21세기에는 구현이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 대단한 장면을 찍을 기술적 준비는 충분히 되어 있겠지만. 가장 최근에 무식한(?) 도심 카체이스 장면을 선사해준 영화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도로 주변을 다 때려 부수면서 질주하던 <킬러의 보디가드>(2017)였다. 촬영 현장 메이킹 영상이 참으로 궁금하다. 반면에 도심 추격 장면을 블록 구간별로 쪼개 찍어 편집으로 이어 붙일 수밖에 없었던 <베이비 드라이버>(2017) 같은 영화는 스타일을 강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드라이버>(1978) 다시 과거로 돌아가, 나만의 ‘도망자의 차’ 카테고리에 포함된, 그리고 카 체이스 영화의 묘미를 잘 드러낸 연출은 월터 힐 감독의 <드라이버>(1978)였다. 사실 이 영화는 자동차보다 드라이버라는 캐릭터 자체에 더욱 무게가 실린 영화이긴 하다. 어쩌면 소위 ‘도망자의 차’ 영화 중 가장 자동차가 중요하지 않은 영화이기도 하다. 배우 라이언 오닐이 연기하는 이름도 없는 캐릭터 ‘드라이버’는 범죄자들을 딜리버리 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어떤 면에서 그에게 중요한 것은 운전 실력이지 자동차가 아닌 듯 보인다. 어떤 자동차도 운전할 줄 알아야 진정한 장인이라고 눈빛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영화는 수많은 ‘드라이버’ 영화들, 예를 들면 최근의 <드라이브>(2011)나 <베이비 드라이버> 등의 영화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월터 힐 감독의 다른 영화들을 찾아봐도 그는 항상 자동차를 하나의 캐릭터 이상으로 잘 다룬다. 3편의 연재 칼럼 내내 영화 속의 특정 자동차 브랜드나 성능에 주목해서 역으로 영화의 매력을 들여다보곤 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들은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자동차를 어떻게 캐릭터처럼 생명력 넘치게 그려낼 것인가, 이지 않을까. 물론 ‘도망자의 차’ 영화들이 전해주는 ‘재미’의 핵심은 탈주의 기술에 있고, 또 그 기술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자동차다. 그런데 카메라에 담긴 자동차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뭘까. 무엇이 자동차를 주인공처럼 보이게 할까. <뺑반>(2018) 시나리오 표지 최근에 2018년 한국영화 기대작 취재를 하면서 <뺑반>의 한준희 감독을 만났는데 그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뺑소니 사고 조사를 전담하는 경찰 수사팀이 주인공인 <뺑반>은 어쩌면 한국영화 중 가장 본격적으로 카체이스 액션을 선보이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표현하면 카체이스 액션에 있어 거의 선구자격의 노력을 기울였던 <썸>의 장윤현 감독이 기분 나빠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돌려 말하면 어떨까. <뺑반>은 2018년 현재 카체이스 액션에 있어 가장 기대해도 좋을 국내 최고의 스태프들이 모였다. 김태경 촬영감독과 허명행 무술감독, 장근영 미술감독, 그리고 특수효과에 데몰리션 팀이 참여한다. 경찰 영화와 자동차 영화로서의 카체이스 액션이 결합할 <뺑반>의 개봉을 기대하면서 영화와 자동차 칼럼 연재를 마친다.
1980년대 한국영화를 이야기할 때, 과거에 가장 의존적이었던 장르는 하이틴 무비와 청춘 영화일 것이다. 모든 건 1970년대에 결정되었고, 1980년대 충무로에서 만들어진 틴에이저와 청춘의 이야기는 대부분 과거의 답습 혹은 각색이었다. 여기서 ‘1975년’은 기억할 만하다. 이 해에 얄개 영화가 시작되었고, 하길종 감독의 < 바보들의 행진 >이 나왔다. 이후 1980년대는 물론 21세기까지도, ‘스물 즈음’을 다룬 한국영화는 1975년이라는 시간에 정박되어 있었다. 먼저 하이틴 무비를 보자. 조흔파의 소설을 각색하고 안성기 가 주연을 맡은 1965년의 < 얄개전 >( 정승문 )이 있었지만, 얄개(얄미운 개구쟁이) 영화의 물꼬를 튼 영화는 10년 후인 1975년의 < 여고 졸업반 >( 김응천 )이었다. 1976년 문여송 감독의 ‘진짜진짜’ 시리즈가 이어졌고, 1977년 석래명 감독의 < 고교 얄개 >(1977)가 나오면서 ‘얄개의 전성시대’가 열렸으며, 1978년에 김응천-문여송-석래명 3인방은 옴니버스 영화 < 우리들의 고교시대 >에서 만난다. 1, 2. < 고교 얄개 >와 < 대학 얄개 >( 김응천 , 1982). 얄개 영화의 전통은 1980년대도 지배했다. 3, 4. < 바보들의 행진 >과 < 고래 사냥 >( 배창호 , 1984). ‘병태’의 청춘 스토리는 지속된다. ‘얄개 영화’는 유신 시대를 살아가는 10대들을 위한 가이드라인이었다. 최고 권력자를 정점으로 국가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했던 시기를, 입시의 중압감과 칙칙한 교복과 ‘교련’으로 상징되는 군대식 학교를, 게다가 남녀 공학마저 없었던 시대를, 한참 꿈 많고 호기심 충만한 틴에이저로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다. 여기서 얄개 영화는 작은 해방구이자, 참고 견디며 현실에 순응하자는 국책성 메시지였다. 각자의 개성과 고민이 있지만 결국엔 흐뭇한 웃음으로 무마되고, “그렇게 우린 성장한다”는 식의 찡한 엔딩으로 마무리되던 영화들이었던 셈이다. 한편 < 바보들의 행진 >은 아직까지도 ‘한국 최고의 청춘 영화’로 꼽히는 작품이다. 실제 대학생들을 캐스팅 한 이 영화는 당시 캠퍼스 청춘 문화를 배경으로 로맨스와 청춘의 고뇌를 담아내고, 동시에 숨 막히는 시대에 대해 절규한다. 그리고 한 친구는 죽음을, 한 친구는 군 입대를 선택한다. 장발 단속과 통금과 휴교령의 시대에 “한 마리 예쁜 고래를 잡는 것”이 꿈이었던 젊음의 이야기. 이 영화는 이후 청춘 영화의 정전이 된다. 그렇다면 1980년대의 양상은 어떠했을까? < 바람 불어 좋은 날 >( 이장호 , 1980)처럼 청춘들의 모습을 사회적 메시지와 결합시킨 작품도 있었지만, 여전히 ‘털보’ 김응천 감독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김응천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매우 흥미로운데, 그가 이룬 자가발전은 곧 10대를 다룬 하이틴 영화와 20대 초반을 다룬 청춘 영화를 아우르며, 이 장르들 자체의 역사가 된다. 유신 시대가 막을 내리고 교복 자유화가 이뤄진 1980년대에 얄개 영화는 지속될 수 없었다. 이때 김응천 감독은 대학 문화를 얄개 영화 방식으로 접근한다. < 꽃밭에 나비 >(1979)부터 조짐이 보였고, < 모모는 철부지 >(1980) < 달려라 풍선 >(1980) < 내 이름은 마야 >(1981) < 갈채 >(1982) 등을 거쳐 그는 드디어 < 대학 얄개 >(1982)와 < 대학 들개 >(1983) < 대학 괴짜들 >(1984)에 도달한다. 이 영화들의 테마는 꽤 익숙했다. 가난 속에서도 잃지 않는 희망, 진실한 우정에 대한 깨달음, 부모의 강요와 자신의 꿈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화해, 학교생활의 낭만과 로맨스, 이루어지지 않는 첫사랑…. 김응천 감독의 ‘대학 청춘 영화’들은 여전히 얄개 영화의 세계관 안에 있었다. 고등학교는 대학 캠퍼스로, 교복은 사복으로, 치열한 입시는 머리 싸매는 고시로, 제과점은 나이트클럽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1. 김응천 감독은 1970년대 틴에이저 무비를 개척해 1980년대 청춘 영화로 변형시켰다. 그는 1980년대에 20편의 하이틴 청춘 영화를 만들었다. 2. 이규형 감독은 1980년대 청춘 영화의 대표적 감독이었다. 3. 이장호 감독의 < 바람 불어 좋은 날 >(1980). 1980년대의 포문을 연 이 영화는 < 바보들의 행진 >과는 다른 방식으로 청춘의 현실을 다룬다. 4. 전상국 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임권택 감독의 < 우상의 눈물 >(1982). 얄개 출신인 진유영 은 이 영화에서 사뭇 다른 톤의 십대 연기를 보여준다. 배우들도 여전했다. 단짝이었던 김정훈 이 대만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이승현 은 여전히 ‘사고뭉치’ 캐릭터로 이 장르를 이끌었다. 그는 김응천 감독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고등학생으로 시작해 대학에 가고 결혼을 하고 취직을 한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과 ‘앙토완 드와넬’ 시리즈의 장 피에르 레오처럼) 한 감독의 영화 안에서 배우가 성장하는 ‘감독-페르소나’ 관계였던 셈이다. “흥, 절교야!”라며 홱 토라질 때 남학생들의 애간장을 녹이던 깍쟁이 강주희 , 완력을 앞세우던 ‘마초 고교생’ 진유영 , 어눌하면서도 인간적이며 낙관적인 의리파 손창호 , 억척스럽고 생활력 강한 김보연 , 부잣집 도련님 스타일의 활동파 전영록 , 동안의 감성파였던 전호진 과 박재호 (이후 < 내일로 흐르는 강 >(1996)으로 감독 데뷔), 얄밉게 고자질하던 강남길 …. 그들은 여전히 얄개 시절의 캐릭터를 지닌 채 대학생이 되었다. 오토바이 사고로 활동을 중단했던 이덕화 는 < 대학 얄개 >에 ‘얄개 1기 선배님’으로 불리며 등장하기도 했다(단 20대에 접어든 임예진 은 연기 변신을 시도하며 이 대열에서 이탈한다). 인력 충원도 있었다. 송승환 김주승 강문영 이미영 조용원 등이 ‘포스트 얄개’ 시대의 청춘스타가 되었고, 이미숙 이나 원미경 도 이 장르에 적잖은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특기할 사랑은 가수들의 진출이었다. 전영록 의 사례가 있긴 했지만, 1980년대엔 가요계와 영화계의 하이브리드 현상이 두드러졌고, 청춘 영화 장르는 그 격전지였다. 일단 당대 최고 인기 밴드였던 송골매가 있다. 처음엔 카메오처럼 등장하더니 < 모두 다 사랑하리 >( 김응천 , 1983)와 < 대학 괴짜들 >에 이르면 배철수 와 구창모 는 주요 배역을 차지한다. 숨은 강자는 김형용 이었다. ‘김형용과 톱니바퀴’의 리더로 ‘해변가요제’ 출신인 그는 당대는 희귀한 미소년 스타일로 어필했다. < 고래 사냥 >( 배창호 , 1984)의 김수철 , < 졸업 여행 >( 오성환 , 1985)의 김범용 도 가세했다. 여기서 김응천 감독의 전환점(사실 하강점)이 되는 영화는 이상아 와 하희라 주연의 < 말괄량이 대행진 >(1986)이다. 여기서 그는 다시 고교 시절로 돌아가며, 다음 해 < 얄숙이들의 개성 시대 >(1987)를 이어간다. 이런 회춘이 가능했던 건, 새로운 스타덤의 등장 덕분이다. 1980년대 후반기에 등장한 하희라 이상아 김혜수 김희애 이응경 최수지 이미연 , 그리고 강석현 이재학 민규 최재성 최민수 허준호 박중훈 김민종 김보성 김세준 등은 좀 더 화려한 아이돌 스타덤을 이루었다(1980년대에 한국의 아이돌 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여기서 김응천 감독은 기존의 청춘스타를 조연으로 기용하고, 신진 세력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방식으로 나름의 ‘절충’을 이룬다. 1. 김응천 감독의 < 대학 들개 >(1983). 전영록 과 이승현은 1980년대에도 여전히 얄개로 활동했다. 2. < 스물한 살의 비망록 >( 김응천 , 1983)의 송승환 과 강문영 . 1980년대 초에 새롭게 등장한 청춘 배우. 3. < 모두 다 사랑하리 >( 김응천 , 1983)의 김형용 . 가수이자 배우로 1980년대 초 청춘 영화를 잠시 이끌었다. 4. < 대학 괴짜들 >의 배철수 . 그가 속했던 밴드 ‘송골매’는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청춘스타 중 하나였다. 스타 지형도만 변한 게 아니었다. 1980년대 중반, 한국의 틴에이저 무비는 1970년대의 영향권을 벗어나 드디어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 김응천 의 세계관’을 벗어나기 시작한 십 대의 이야기는 훨씬 더 거칠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시작은, 당시로선 충무로에서 정말 드물었던 ‘20대 여성 감독’ 이미례 의 데뷔작 < 수렁에서 건진 내 딸 >(1984)이었다. 호즈미 다카노부의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한국영화의 10대들이 더 이상 얄개 영화의 해피 엔드에 갇혀 있을 순 없다고 말한다. 폭력적 사회와 무관심한 가정 사이에서 콤플렉스를 지닌 16세 소녀 유리( 김진아 )는 갈 길을 잃고 저항한다. 1985년 동명 연극을 영화화한 < 방황하는 별들 >( 차현재 , 1986)은 밤거리를 헤매는 아이들의 사연 속으로 들어간다(< 나쁜 영화 >( 장선우 , 1997)의 선배격이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비디오 다방, 술집, 대학로, 만화가게, 성인 오락실, 나이트클럽, 여관 등을 휘저으며 단속에 걸린 10대들을 경찰 보호실로 내몬다. 영화는 뮤지컬 형식을 통해 그들의 속마음을 드러내며, 소외당한 아이들의 외침을 들려준다. 이런 시도들은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 강우석 , 1989)를 통해 대중적 폭발력을 지닌다. 1990년대 초 기획영화의 포문을 여는 ‘신씨네’의 신철 대표는 이 영화의 기획을 맡았는데, 그는 수백 명의 중고등학생들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었고, 취재를 바탕으로 김성홍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으며, 강우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학창 시절의 에피소드와 로맨스를 배치함으로써 얄개 영화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이 영화는 당시 아이들이 실제 모습을 영화에 담아낸다. 이후 <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 김성홍 , 1990) < 사랑은 지금부터 시작이야 >( 이미례 , 1990) <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 조금환 , 1990) < 열아홉의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 >(강우석, 1991) < 인생이 뭐 객관식 시험인가요 >( 강구연 , 1992) 등 ‘긴 제목 영화’들이 쏟아진다. 다소 나이브한 태도는 있지만, 이 영화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아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포착했던 영화들이었다. 리얼리즘에 좀 더 기운 영화들도 있었다. <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 반을 찾습니다 >( 황규덕 , 1990)는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와는 다른 방식으로 입시 지옥을 보여주는데, 담임 교사( 문성근 ) 캐릭터를 통해 ‘참교육’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이것은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변하기 시작한 한국 사회의 움직임과 맞물리는 부분으로, 1989년에 ‘전교조’를 계기로 ‘참교육’이라는 단어가 등장했고 그 문제의식은 영화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독립영화 단체 ‘장산곶매’에서 제작한 < 닫힌 교문을 열며 >( 이재구 최호 김숙 김건 강경환 황길재 , 1990)는 바로 전교조 문제를 담아낸 첫 영화였다. 1. < 방황하는 별들 >의 이상아 . 이상아는 1980년대 후반기에 등장한 새로운 아이돌 스타덤의 기수였다. 2. < 캠퍼스 연애특강 >( 조금환 , 1988)의 강석현 하희라 민규 . 3. < 수렁에서 건진 내 딸 >의 김진아 . 4. 연극을 영화화한 < 방황하는 별들 >은 다큐멘터리, 극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적 요소가 결합된 실험적 작품이었다. 틴에이저 무비 계열에서 ‘현실’이라는 화두가 떠오르며 얄개 영화와의 결별이 서서히 이뤄졌다면, 청춘 영화 계열에서도 작은 변화는 있었다. 이 시기 조금씩 시도되던 청춘 로드 무비가 그렇다. < 바보들의 행진 >의 병태( 윤문섭 )가 꿈을 찾아 떠나듯, < 고래사냥 > < 열아홉 살의 가을 >( 김응천 , 1984) < 가슴을 펴라 >( 최원영 , 1987) < 굿모닝! 대통령 >( 이규형 , 1989) 등의 그들도 길 위에서 인생을 배운다. < 내일은 뭐 할 거니 >( 이봉원 , 1984) 같은 실험적 영화도 등장했다. 1960년 4.19 때 도주 중이던 대학생과 창녀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 B( 강석현 )은 대학생이 된 1980년대에 마치 사회 부적응자처럼 방황한다. 아마도 < 바보 선언 >( 이장호 , 1984)과 함께 가장 파격적인 스타일과 내러티브의 1980년대 영화로 기억될 <내일은 뭐 할 거니>는 당시 젊은이들의 무기력함에 대한 메타포였다. 새로운 흐름을 만든 사람은 이규형 감독이었다. <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1987)가 흥행작이지만, 먼저 그가 20대 때 만든 데뷔작 < 청 블루 스케치 >(1986)를 주목해야 한다. 이 영화는 당시로선 드물게 ‘청춘 비가’ 스타일의 영화였으며, 이야기보다는 모던한 공간 감각과 비주얼에 더 초점을 맞춘 작품이었다. < 비 오는 날의 수채화 >( 곽재용 , 1990)나 < 비트 >( 김성수 , 1997)의 장르적 근원을 더듬다 보면 <청 블루 스케치>를 만날 수 있는데, 로맨스와 범죄 세계의 폭력과 비극적 서사 장치를 결합한 청춘 영화는 1980년대에 만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밋밋한 흥행(서울 관객 약 4만 명) 이후 이규형 감독은 ‘얄개의 세계’에 더 접근했고, <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로 서울 관객 약 26만 명을 동원한다. 대학 초년생인 영문과 미미( 강수연 )와 신방과 철수( 박중훈 )의 연애담인 이 영화는, 미래지향적 분위기와 젊은 날의 고뇌를 동시에 담았고, 이규형 감독은 청춘 영화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극한다. 이 영화로 청춘의 아이콘이 된 또 한 명은 배우 박중훈이었다. 그는 < 이장호 의 외인구단 >(1986)으로 상한가를 치던 최재성과 투 톱을 이뤄 <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 >(1988)와 < 내 사랑 동키호테 >(1989)를 이끈다. 메가폰의 주인은 얄개 영화의 장인이었던 석래명 감독. 그런데 두 영화는 같으면서도 달랐다. 두 편 모두 젊음과 사랑과 도전과 우정을 다루지만, <내 사랑 동키호테>는 당시 입시 현실을 다루던 하이틴 영화와 접점을 지닌다. 두 주인공이 개발한 ‘쿨쿨 머신’은 수면 중에도 뇌파 조작을 위해 학습을 할 수 있는 기계. 이것은 당시 밤낮없이 책상 앞에 앉아 입시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십 대의 현실에 대한 풍자였다. 이처럼 1980년대 말에 오면, 이 장르 안의 그 어떤 영화도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게 된다. 1.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는 하이틴 영화가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한 영화다. 2. <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 반을 찾습니다 >는 ‘참교육’을 이야기한다. 3. < 내일은 뭐 할 거니 >는 실험적 스타일 속에서 억압적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의 무기력함을 보여준다. 4. <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는 1980년대에 가장 흥행한 청춘 영화이다. 1970년대 얄개 영화와 청춘 영화는 1980년대 시기 변형을 겪은 후 1990년대에 리얼리즘으로 방향을 잡았다. < 숲속의 방 >( 오병철 , 1992)이나 < 세 친구 >( 임순례 , 1996) 등이 ‘현실’이라는 프리즘으로 방금 고등학교를 벗어난 아이들의 삶을 바라본다면, < 정글 스토리 >( 김홍준 , 1996)처럼 힘겹게 자신의 길을 가는 청춘의 이야기가 있었다. < 비트 > < 태양은 없다 >( 김성수 , 1999) < 질주 >( 이상인, 1999) 등은 ‘도시 청춘’을 스타일리시한 영상과 결합시켰다. 흥미로운 건 1990년대 말에 나타난 장르화 현상이었는데, 남녀의 성이 바뀌는 판타지 < 체인지 >( 이진석 , 1997), 아이돌 문화나 밴드 콘셉트와 결합했던 음악 영화들인 < 세븐틴 >( 정병각 , 1998)과 < 짱 >( 양윤호 , 1998) 그리고 호러 장르를 부활시킨 < 여고괴담 >( 박기형 , 1998) 등이 등장했다. 어떻게 보면 1980년대 하이틴 청춘 영화는, 이 장르의 역사에서 일종의 ‘가교’ 역할을 한 셈이다. 전통은 수정되었고, 관습은 변주되었으며, 배우는 교체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제기되었던 수많은 젊음의 테마들은 좀 더 시간이 흐른 2000년 이후 독립영화와 저예산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그렇다면 얄개 영화의 전통은? 거의 희석되었고, <학교> 시리즈 같은 TV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