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manii]아이유 IU 마시멜로 아이유 있잖아 직촬 동영상
- 제작년도
- 2010
<폭싹 속았수다> 중 (사진: 한겨레 /© 넷플릭스) 올 한 해 TV와 OTT를 통해 공개된 시리즈들을 필자의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관심을 끌어모은 화제작부터, 스쳐 지나갔지만 돌이켜 볼 만한 문제작들까지 정리합니다. 며칠 전, 12.3 비상계엄 이후 1년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눈물이 났다. 그 시간을 통과할 때는 미처 감각하지 못했는데, 지나고 보니 우리가 모두 참으로 위험한 시간을 지나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내란 사태를 수습하느라 사회 전체는 긴장 상태에 놓여 있었다. 정치뿐 아니라 경제 상황 역시 불안정했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과 씨름하느라 많은 이들이 ‘각자의 내란’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2025년의 시리즈에는 유난히 어려운 시절을 버티며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가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버틴 사람들의 이야기 올해 가장 많은 이들이 언급한 드라마는 < 폭싹 속았수다 >(김원석/넷플릭스)가 아닐까? <폭싹 속았수다>는 거친 바다를 온몸으로 견뎌낸 해녀, 광례( 염혜란 )에게서 시작한다. 광례와 딸 애순( 아이유 · 문소리 ), 손녀 금명(아이유)으로 이어진 모녀 3대는 한국 현대사를 가로지르며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파도에 맞선다. 인생을 사계절에 빗댄 이 이야기에는 해녀 공동체의 연대, 애순과 관식( 박보검 )의 풋풋한 사랑, 그리고 모두의 생애를 지탱한 가족애가 가득 담겼다. <폭싹 속았수다> 속 인물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삶의 과제를 감당하며 버텼다면, <태풍상사>(이나정, 김동휘/tvN)의 태풍( 이준호 )은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경제적 폭풍을 견딘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불어닥친 회사의 위기 앞에서 태풍은 직원들을 신뢰하며 열정적으로 회사를 지키고 살려낸다. <태풍상사>는 마치 ‘국난’을 극복하듯 회사를 되살리는 이야기인 동시에 “가장 평범한 곳부터” 도려내졌던 IMF 시대를 살아낸 보통 사람들의 얼굴도 놓치지 않는다. 태풍이 청년 사업가로 성장하던 IMF 시기, 낙수( 류승룡 )는 치열한 취업 전쟁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탄탄대로를 걷던 그는 어느새 명예퇴직 대상자가 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조현탁/JTBC)는 사회의 중심축에서 밀려난 중년 세대의 현실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사회적 ‘쓸모’가 사라졌다는 자각과 거듭되는 실패 앞에서 낙수는 모멸감과 상실감, 불안 속에서 흔들리며 우울과 공황을 겪는다. 이 시리즈는 중년의 위기를 유머와 애잔함으로 감싸며, 낙수가 가족의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상) <폭싹 속았수다> 중 (사진: 한겨레 , PD저널 / © 넷플릭스) (하) <태풍상사>,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중 (사진: tvN , JTBC ) 여성들의 세계, 더 넓어지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시리즈 너머, 여성을 생애사적·사회적 이야기로 확장한 시리즈도 눈에 띄었다. < 은중과 상연 >(조영민/넷플릭스)은 은중( 김고은 )과 상연( 박지현 ), 두 여성의 30년에 걸친 관계를 따라가며, 서로를 사랑하지만 미워하기도 하고,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배신도 하는 등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여성들의 복잡한 관계를 밀도 있게 그린다. 그중에서도 상연을 단순한 ‘빌런’이 아니라 결핍과 외로움이 빚어낸 인물로 끝까지 이해하려는 시선이나, 성소수자인 상학( 김건우 )의 죽음과 안락사를 선택한 상연의 죽음을 “내가 있어도 되는 세상”을 갖지 못한 존재들의 죽음으로 연결하는 감각이 인상적이었다. <미지의 서울>(박신우, 남건/tvN)은 일란성 쌍둥이, 미지와 미래( 박보영 )의 ‘삶 교환’을 중심으로 청년 세대의 불안과 고립, 직장 내 괴롭힘, 비정규직 차별, 장애와 성소수자 문제를 복합적으로 짚는다. ‘마론제과’ 무기계약직 여성들의 이야기 <달까지 가자>(오다영, 정훈/MBC)와 아파트에서 발생한 사건을 추적하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살롱 드 홈즈>(민진기, 정현남/ENA)는 가족의 확장된 형태로서 여성들의 우정과 연대를 보여준다. < 피라미드 게임 >(박소연/TVING)과 < 선의의 경쟁 >(김태희/U+TV)은 여고 내 계급과 폭력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미지의 서울>, <폭싹 속았수다>, <견우와 선녀>(김용완, 정우식/tvN), <첫, 사랑을 위하여>(유제원, 함승훈/tvN) 등 모녀 관계를 통해 여성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현대극뿐 아니라 시대극 역시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옥씨부인전>(진혁/JTBC)은 조선시대 노비로 태어나 양반 마님이 되어 ‘변호사’로 활약한 구덕이( 임지연 )를 중심으로 계급, 여성 차별, 성소수자, 아동·약자 착취 문제 등을 녹여내 ‘조선판 인권 선언문’과 같은 역할을 했다. < 애마 >(이해영/넷플릭스)는 1980년대 충무로를 배경으로, 에로 영화 전성기의 포문을 연 영화 < 애마부인 >(정인엽, 1982) 촬영기를 극중극 형태로 재현하며 ‘남성적 응시’에 맞선 여성들의 연대를 메타 비평적으로 풀어낸다. 여성의 성적 욕망을 부정하던 1980년대 시골 마을에서 성인용품 판매를 하게 된 여성들의 이야기인 <정숙한 세일즈>(조웅, 김미진/JTBC)와 1990년대 버스 안내양들의 우정을 담은 <백번의 추억>(김상호/JTBC)은 그간 주목받지 못한 여성의 역사를 복원해, 가부장 사회에서의 여성 억압의 문제, 노동과 우정의 연대기를 보여준다. (상) <은중과 상연>, <미지의 서울> 중 (사진: MBC /© 넷플릭스, tvN ) (하) <애마>, <백번의 추억> 중 (사진: 넷플릭스 , JTBC ) ‘보편성’이라는 이름의 한계 이렇게 여성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고 폭넓게 등장했음에도 ‘가족’ 바깥을 상상하게 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폭싹 속았수다>를 여성 서사로도 볼 수 있지만, 결국 부모 세대와 가족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또한 낙수의 아내 하진( 명세빈 )이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지만, 시리즈는 결국 “김부장 이야기”, 즉 가장을 이해하고 북돋우며 가족애로 회복에 이르는 데 집중했다. <태풍상사>도 마찬가지다. IMF로 일자리를 잃거나 불안정한 노동에 배치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지만, 이런 이야기는 로맨스 서사에 묻히고 만다. 이런 한계에도 이 시리즈들은 ‘보편성’을 가진 좋은 이야기로 회자됐다. K-드라마의 보편성이란 여전히 ‘아버지’ 중심의 가족 서사라는 게 재확인된 셈이다. 이런 특징은 결국 세대, 노동, 차별 등 사회 구조적 문제로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이른바, ‘여성 서사’라 불리는 드라마에서도 극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가족 다양성, 가족 너머의 서사를 온전히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흐름을 어떻게 봐야 할까? 『페미니즘 리부트』(2017)에서 영화평론가 손희정이 IMF 이후 영화의 여성 재현에 관해 지적했듯, IMF 이후 또 다른 위기의 시대를 통과하는 지금, 이런 흐름은 가족이라는 안전하고 효율적인 이데올로기를 작동시켜 ‘위기의 시대’를 손쉽게 통과하려는 징후가 아닐까.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태풍상사> 중 (사진: JTBC , tvN ) 그런데 흥미롭게도, 가족과 연대로는 포착되지 않는 또 다른 층위의 이야기들도 있었다. 가족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폭력, 사회가 방치하고 묵인해온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이다. 그 ‘사이코패스’들은 무엇을 보여주었는가 올해 시리즈의 또 다른 흐름은 < 하이퍼나이프 >(김정현/디즈니+)의 소시오패스 의사 세옥( 박은빈 )을 비롯해 사이코패스 성향의 인물들이 전면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단지 반사회적 인물로 등장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그 재현을 통해 무엇을 드러내고 질문했는가에 있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변영주/SBS)의 연쇄살인범 이신( 고현정 ), < 친애하는 X >(이응복, 박소현/tvN)의 사이코패스 아진( 김유정 ), < 당신이 죽였다 >(이정림/넷플릭스)에서 남편을 살해하는 희수( 이유미 )와 그의 친구 은수( 전소니 ), < 자백의 대가 >(이정효/넷플릭스)의 모은(김고은) 등 폭력을 행하거나 살인을 저지른 반사회적 여성들을 통해 아동 학대, 가정폭력, 성폭력을 묵인하는 가부장제와 권력의 문제를 드러낸다. 이 시리즈들은 반사회적 선택이 개인의 선택이나 비정상적 일탈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산물임을 보여줬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은 초반의 기세와는 달리, 후반부에는 장르적 쾌감이나 개인에 대한 처벌로 귀결되며 구조 비판의 힘을 잃었다. 그 결과 폭력은 사회의 문제로 제시되지만, 변화의 책임은 다시 개인의 파멸이나 응징으로 환원된다. 2010년대 이후 빈번하게 등장한 ‘사적 복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이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 <자백의 대가> 중 (사진: SBS , 넷플릭스 ) 결국,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2025년 시리즈를 회고하다가 ‘돌봄’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폭싹 속았수다>의 해녀 공동체가 서로를 살피고, <태풍상사>의 태풍이 직원들을 신뢰하며 회사를 지켜내고,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에서 가족이 함께 위기의 시간을 견디고, < 다 이루어질지니 >(안길호/넷플릭스)에서 마을 사람들이 사이코패스인 가영( 배수지 )을 사랑으로 키워내는 것. <미지의 서울>에서 미래가 딸기 농원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신을 추스르고, <첫, 사랑을 위하여>에서 골수암에 걸린 효리(최윤지)가 꽃 농사를 짓는 보현(김민규)을 만나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고, <폭군의 셰프>(장태유/tvN)에서 지영( 윤아 )이 음식으로 사람을 살리고, < 내가 죽기 일주일 전 >(김혜영, 최하나/TVING)에서 이미 죽어 저승사자가 된 람우( 공명 )가 생기를 잃고 사는 첫사랑 희완( 김민하 )를 살리고, <견우와 선녀>에서 곧 죽을 운명에 처한 견우( 추영우 )를 무당인 성아( 조이현 )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살리는 것. 이 모든 장면의 공통점은 어떤 대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이야기라는 점 아닐까? 그래서인지 올해 시리즈에는 유난히 식물을 키우는 설정이 자주 등장했다. 식물을 정성껏 가꿀 뿐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서로의 곁을 지켰다. 올해 시리즈는 ‘죽이는 것’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살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대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가족주의라는 안전한 이데올로기에 기대고, 그것을 넘어서려 애쓰면서 2025년 시리즈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선택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문제는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돌봄과 버티기만으로는 구조를 바꿀 수 없다. 가족 간의 사랑을 앞세우고, 개인의 파멸로 끝나는 응징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흐릿하게 만들고,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상상력의 시계를 좁게 한다. <애마>에서 희란( 이하늬 )과 주애( 방효린 )가 “각자의 링” 위에서 싸우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세계로 나아갔듯, 지금 우리에게는 낡은 세계로 회귀하지 않으면서 “미래를 앞당기는”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미지의 서울> 중 (사진: tvN ) 오수경(드라마평론가) l 인간과 사회에 관심이 많아 문학을 전공했고, 신앙인으로 살고 있으며, 드라마를 들여다본다. 여러 매체에 칼럼 기고. 『을들의 당나귀 귀 』(2019) 공동 집필, 『드라마의 말들 』(2022) 집필.
2017년은 영화를 보는 게 그렇게까지 즐거운 해는 아니었다. 좋은 영화는 계속 나왔고 내가 놓친 영화들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슈퍼히어로와 (김혜리 기자의 표현을 빌린다면) 암청색 양복을 입은 조폭들로 구성된 할리우드와 충무로의 주류 영화들이 만드는 풍경은 지겨웠고 종종 숨이 막혔다. 사실 올해는 좋아하는 영화보다 싫어하는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이 더 크다. 내 리스트는 언제나처럼 조금 랜덤이다. 아마 평론가들은 드니 빌뇌브가 만든 두 편의 SF 영화 중 < 컨택트 Arrival >보다 < 블레이드 러너 > 속편을 더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난 그 영화가 SF로서 매우 게을렀다고 생각하고, 다소 할리우드적으로 통속화되었을지 몰라도 <컨택트>의 성취가 더 크다고 본다. 무엇보다 <컨택트>가 더 훌륭한 주인공을 갖고 있다.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영화에 질렸다고 했는데,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싫어하는 건 대단치도 않으면서 쓸데없이 부풀어진 슈퍼히어로 유니버스들이다. 마블과 DC 팬들은 제발 전쟁에서 나를 빼 달라. < 로건 >을 뽑은 것은 이 영화가 슈퍼히어로 유니버스에 속해있으면서 그 우주의 일관성이나 논리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으며 마구 질주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나는 < 옥자 >를 SF보다는 <내셔널 벨벳>과 같은 ‘소녀와 동물’을 다룬 전통적인 가족영화의 연장선에서 보았고 그 절절한 상황이 만들어내는 멜로드라마를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 < 로우 >는 지금까지 호러 영화가 여성 감독을 외면해왔던 게 얼마나 역사적으로 끔찍한 낭비였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사례 중 하나이다. 다큐멘터리를 두 개 뽑았는데, 이들은 모두 한국에서 허구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의 상상력이 얼마나 빈곤한지를 보여준다. < 옵티그래프 >가 사적 다큐멘터리의 작은 틀을 통해 그려 보이는 한국 현대사와 < 택시운전사 >와 같은 대작 영화들이 그려내는 지루한 풍경을 비교해보라. < 땐뽀걸즈 >의 생생한 주인공들에 비하면 비슷한 상황을 다룬 한국 학원물의 주인공들은 얼마나 식상한가. 올해 뽑은 두 편의 퀴어 영화인 < 꿈의 제인 >과 < 판타스틱 우먼 >은 모두 트랜스젠더 캐릭터가 주인공이거나 타이틀롤이다. 리스트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彼らが本気で編むときは >와 < 분장 >도 주목할만한 영화였다. 20여 년 전이라면 식상한 방식으로 다루어졌을 주인공들이 조잡한 퀴어베이팅과 위장한 BL 사이에서 빛나고 있다. (< 메소드 >의 욕을 길게 하고 싶지만 그만두기로 한다.) 리스트에서 남은 건 < 배드 지니어스 >와 <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이다.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모두 아시아에서 만들어진 대중적 장르물이고 놀랄 만큼 정통적인 재미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좋은 대중영화가 도전적인 아트하우스 영화보다 드물어지고 있는 이 시기에 두 작품은 보다 많이 감상되고 깊이 연구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하자. 이 영화의 팬들이 대부분 그렇듯 나는 이 국내 제목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잠재적인 한국 관객들에게 < 칠월과 안생 七月與安生 >이라는 제목이 와 닿지 않을 거라는 걱정 또한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칠월과 안생이라는 두 여자의 14년에 걸친 우정의 이야기다. 둘은 어린 시절부터 단짝친구였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자 둘은 모두 가명이라는 남자를 좋아한다. 갈등이 생긴다. 이 상황은 익숙하기 짝이 없다. 일단 40년대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스럽고, 비슷한 내용을 다룬 국내 연속극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 다른 삼각관계 영화와 비교했을 때 가장 튀는 것은 이 관계의 꼭짓점을 이루는 남자 가명의 투명함이다. 달리기가 취미인 멀끔하게 잘생긴 모범생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영화는 이 인물에 대해 끝까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는 두 주인공이 가명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감정을 깊이 들여다볼 수 없다. 칠월과 안생은 끊임없이 가명의 이름을 언급하지만 가명보다는 가명으로 인해 복잡해지고 까다로워진 자기들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그는 두 주인공의 삶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 등장하는 도구적 존재이다. 이렇게 되면 우린 단짝 친구의 남자친구에 대한 안생의 집착이 과연 어떤 종류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둘은 그렇게 오래 알지도 않았고 만난 횟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멀끔하게 잘생긴 모범생이라는 건 좋은 가치지만 그만큼 흔한 가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안생에게 가명의 가장 큰 가치는 단 하나, 단짝 친구 칠월의 남자친구라는 것이다. 안생은 칠월의 모든 욕망을 공유하기를 원한다. 가명은 칠월과 자신을 연결하는 또 다른 다리이다. 많은 사람들이 <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를 레즈비언 로맨스 영화가 되고 싶었지만 너무 수줍었던 영화라고 생각한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둘의 우정을 연애처럼 그린다. 그들은 처음 만났을 때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다. 14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온갖 일들을 겪어도 서로에 대한 둘의 감정은 변하지 않는 상수이며 그들은 아무리 험악한 단계에 접어들어도 이를 당연히 여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지독한 욕은 “이 세상에 너를 사랑하는 건 나밖에 없어!”이다. 요새, 특히 모 시상식장에서 아이유가 자신의 소울메이트 유인나에 대한 감정을 고백한 뒤로 SNS에 자주 등장하는 “A와 B가 친구라면 나는 친구가 없어!”라는 문장은 칠월과 안생의 이야기에도 그럴싸하게 잘 맞는다. 이들의 격정적인 우정은 우리가 당연시하는 편안한 일상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 우리의 친구들이 모두 이렇다면 삶은 피곤할 것이다. 하지만 왜 우정이 모두 같은 종류여야 하는가. 우정 역시 사랑이지 않은가? 아니, 수많은 사람들에게 우정은 처음 겪는 사랑의 형태이고 이후 겪을 모든 사랑의 원형이 아닌가? 여러분의 연애 감정이 언제나 우정보다 위였나? 가장 소중한 사람이 언제나 연애 대상이었나? 칠월과 안생의 이야기를 우정으로 위장한 로맨스 영화로 보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분명 이들에겐 서로에 대한 강한 욕망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같은 방향을 보는 사람들이며 이들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로맨스 이야기, 특히 이성애 로맨스와는 다른 길을 간다. <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는 삶의 선택, 조금 다르게 이야기한다면 동아시아 여성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과 그 조건의 돌파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 속에서 칠월과 안생은 언제나 상대방과 반대되는 삶을 사는데, 늘 친구가 하나의 선택을 하느라 놓친 삶의 가능성을 커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선택은 늘 교환이 가능하다. 칠월과 안생이라는 이름을 보라. 영화는 충동적이고 변덕스럽고 자유분방한 소녀에게 安生이라는 이름을, 모범생이며 어른이 된 뒤에도 태어난 도시를 거의 떠난 적 없는 소녀에게 七月이라는 이름을 준다. 이는 초반부에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캐릭터의 성격이 생각만큼 당연하지 못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캐릭터 설정은 <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가, 우리가 이성애 로맨스를 통해 익숙해진 이야기와는 많이 다른 틀에서 전개되는 러브 스토리라는 점을 암시한다. 안생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자신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누군가와 하나가 되어 온전한 모습으로 완성되기 위해 그 누군가가 포기한 길을 일부러 선택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러브 스토리의 틀은 이성애 로맨스와는 맞지 않는다. 이는 같은 욕망을 갖고 같은 삶의 조건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다. 만약 안생이 남자였다면 이 이야기는 아귀가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독하게 얄미웠을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랑의 방식이 있다. 그리고 이성애 중심적인 사고방식은 사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극단적으로 제한했고 이 단어가 포함되는 이야기를 편협하게 장르화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랑의 행위와 이야기가 그 장르의 울타리 밖에 버려지거나 울타리 안의 익숙한 몇몇 공식에 맞추어 재해석되게 된다. <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의 가장 큰 가치는 이 울타리를 대놓고 무시하면서도 관객들을 거의 완벽하게 설득할 수 있는 러브 스토리라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칠월과 안생이 그렇듯 우리에게 들려줄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성애적인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다울 것이다. 그럼 아이유인나는? 남의 사생활이니 우리가 뭐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들도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