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여 악녀가 되라(죽어도 좋은 경험)
- 감독
- 김기영
- 제작년도
- 1990
- 출연
- 윤여정, 현길수, 이탐미, 김병학, 조주미, 남성국, 임성국, 김정근, 임정일, 이영호, 손영순, 신신범, 유형관, 황진, 이춘, 송일동, 강수진, 조신영, 진나래
우리가 정지영 감독에 대해 가진 이미지는 < 남부군 >(1990) 이후에 고정되어 있다. 빨치산의 이야기 통해 당대의 금기를 넘었던 그는, < 하얀 전쟁 >(1992) <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1994) 등을 통해 한국 현대사에서 미국이라는 국가의 존재를 되새겼고, < 부러진 화살 >(2012) < 남영동 1985 >(2012) < 블랙 머니 >(2019) 그리고 아직 미개봉 상태인 최근작 < 소년들 >까지 공권력에 대해 문제 제기한다. 이른바 ‘사회파 리얼리즘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1980년대 호헌 철폐 운동부터 시작해 스크린쿼터와 영화법 개정과 스크린쿼터 수호 등 한국영화계 이슈의 중심에서 리더 역할을 했던 인물. 그가 바로 ‘감독 정지영’이다. 하지만 그의 1980년대 필모그래피는 사뭇 다르다. 첫 영화 <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1983)는 프랑스의 작가 피에르 브왈로와 토마 나르스자크가 쓴 소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1952)를 각색한 스릴러였다.(이 소설은 프랑스의 앙리 조르주 클루조가 1955년에 < 디아볼릭 >으로 영화화했고 할리우드에선 1996년에 이자벨 아자니, 샤론 스톤 주연의 < 디아볼릭 >이 나왔다.) 모델 출신 배우였던 오수미와 윤영실 자매가 등장하는 이 영화는 그 캐스팅 만으로도 압도적인 작품으로, 한 남자를 파멸로 몰아넣는 팜므파탈이 등장하는, 반전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작품이다. 이후 그에게 ‘여성’은 중요한 테마가 되는데,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제 2의 성』(1949)을 각색한 < 위기의 여자 >(1987)는 결혼한 여성의 현실을 보여주었고, 한수산 원작의 < 거리의 악사 >(1987)는 여성의 운명을 중심으로 한 아픈 사랑 이야기였다. 그리고 1988년, 정지영 감독은 악녀 캐릭터를 두 가지 방식으로 변주한다. < 여자가 숨는 숲 >이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입은 여성의 성적 일탈과 이중 생활을 다룬 심리적 성향의 에로틱 스릴러라면, 이어지는 < 산배암 >은 김기영의 < 하녀 >(1960)를 연상시키는, 계급과 섹슈얼리티를 결합한 가정 파탄 스릴러다. 우리에겐 < 외계에서 온 우뢰매 6 >(1989)의 ‘데일리’ 캐릭터로 기억되는 김종아의 데뷔작이자 첫 주연작인 이 영화는 정지영 감독 필모그래피의 이색지대로, 지금 접하는 그의 리얼리즘 영화를 생각하면 꽤나 낯설다. 1988년 당시 충무로의 젊은 피였던 정지영, 장길수, 신승수, 이황림, 박철수, 곽지균 감독은 오디션을 열었고 총 5명의 배우를 선발했다. 그 중 한명이었던 김종아는 <산배암>의 주인공이 되었고, 함께 선발되었던 김홍제는 이 영화에서 박 기사 역을 맡았다. ‘원초적 관능’의 세계를 줄곧 추구해온 김지연 작가의 장편소설 『산배암』(1979)을 각색한 이 영화는 전형적 설정으로 시작한다. 지리산에서 뱀을 잡으며 살아가는 시골 소녀 탄실(김종아). 그는 가난 때문에 도시로 와 우 사장(남궁원) 집 하녀가 된다. 임무는 우 사장의 아내(김영애)를 모시는 것. 하반신 불구로 휠체어에 앉아 생활하는 그는 탄실을 마치 딸처럼 여긴다. 하지만 그들에겐 빅 픽처가 있었으니…. 탄실을 씨받이로 사용하는 것. 불임인 그는 탄실을 우 사장에게 접근시키고 드디어 ‘일’은 벌어진다. < 씨받이 >(임권택, 1987)의 현대 버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임권택 감독의 영화가 유교 사회에서 대를 잇는다는 명목으로 희생당하는 여성을 보여준다면, <산배암>에서 탄실이는 ‘아이를 소유하고 싶다’는 부르주아 여성의 모성적 욕망을 위한 도구가 된다. 일단 우 사장 부부의 음모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탄실은 아이를 낳고, 우 사장 부부는 그 아이를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위장하며, 탄실은 집에서 쫓겨나 어느 아파트에 홀로 격리된다. <씨받이>에서 아이를 낳은 후 옥녀(강수연)가 처했던 상황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하지만 탄실은 옥녀처럼 자살하지 않는다. 아파트 생활을 끝내고 시골로 돌아갔던 탄실은 다시 서울로 돌아와 선언한다. “오늘부터 저는 이 집의 떳떳한 식구인 거라예.” 그러면서 아이를 직접 키우겠다며 젖을 물린다. 현대판 씨받이인 탄실. 같은 침실 안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관계. 여기서 끝났다면, <산배암>은 탄실의 소심한 복수극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3중 반전으로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를 마무리했던 정지영 감독은 <산배암>의 결말에서도 이야기를 뒤틀며 탄실을 산배암처럼 독기를 지닌 악녀로 만든다. 우 사장의 아내는 박 기사(김홍제)에게 탄실을 강간하도록 지시하지만 탄실은 또 다시 돌아와 말한다. “내가 박 기사에게 쉽게 당할 줄 알았능교?” 이후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아기는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난다. 다시 여기서 끝났다면, 다소 황당한 결말의 드라마 정도겠지만, <산배암>은 갑자기 1년 후로 이동해 다소 충격적인 광경을 보여준다. 사고로 불구가 된 우 사장과, 휠체어를 밀고 있는 탄실. 그는 “아기를 다시 낳으면 된다”고 하지만, 우 사장은 더 이상 섹스를 할 수 없다. 여기서 탄실은, 이젠 안주인이 되어 집안을 장악한 그는, 한때 자신을 범하려 했던 박 기사와 몸을 섞는다. 사극 식으로 말하면, 씨받이였던 여자가 씨내리를 통해 양반 집안의 혈통을 잇는 셈이다. 백일 잔치 장면은 부르주아 가족의 위선과 균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신이다. 요약하면, <산배암>은 순수했던 한 여성이 도시라는 공간으로 오면서 욕망에 휘둘리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린 여기서 질문해야 한다. 탄실은 순수한 상태가 더럽혀지며 타락한 걸까, 아니면 자신에게 잠재되었던 악녀적 본성을 발견한 걸까? 마치 성선설과 성악설의 대립과도 같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쩌면 영화의 마지막에 굵직한 자막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문장일지도 모르겠다. “카인의 무리여, 네 형벌은 언제나 끝날 것인가.”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내가 죽던 날 >(박지완)은 메타영화, 즉 ‘영화에 대한 영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성서사의 구축과 동일시의 과정을 탐색하는 ‘여성영화’에 대한 영화이다. 물론 이 영화는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시체를 찾을 수 없는 세진(노정의)의 진실을 찾고자 탐문수사를 벌이는 경찰 현수(김혜수)를 중심으로 한 추리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메타영화가 갖는 현학적 모호함이나 전위적인 표현 양식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내가 죽던 날>은 분명 탐정느와르 장르영화이면서, 또한 여성의 ‘서사’를 발견하려고 하는 어느 한 여성의 여정에 대한 영화이다. 이 영화가 왜 ‘(여성)영화에 대한 영화’인지를 본격적으로 해명하기 전에, 잠시 에둘러 여성영화라는 용어부터 짚고 넘어가 보자. 최근 한국에서 전문 비평가뿐만 아니라 관객과 마케팅도 자연스레 사용할 만큼 대중화되고 있는 이 용어는, 씨네-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정의하기 어렵기로 악명이 자자하다. 그 이유가 학문적 혹은 비평적 난해함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누가, 언제 어디에서, 어느 목적을 위해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층적 차원에서 경합하며 내용과 범주가 역동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용어는 마케팅을 위한 알트 장르(멜로드라마나 로맨틱 코미디 같은 여성 관객을 주요 타겟으로 한 장르)처럼 이용되거나, 여성 창작자나 여성 주도 서사에의 주목을 이끌어내기 위한 산업·정책적 용어로 지칭되고, 페미니스트 미학이나 담론을 강조하기 위한 폭 넓은 개념이 되기도 하며, 큐레이팅을 위한 실천적 범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영화학자 테레사 드 로레티스가 「여성영화를 재사유하기: 미학 및 페미니즘 이론」(1985)에서 논의했던 개념에 기대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가부장제 이성애중심적인) 기존 주류 서사에 대항하면서도 서사 자체를 포기하지 않고 페미니스트 환상성을 길어내는 말 걸기(address)의 미학이다. 말 걸기의 미학은 송신자 및 수신자의 위치성과 신체성을 드러낸다. 보편자나 표준적 정체성을 가정하지 않으면서, 동일시의 욕망과 차이 속에서 타자를 인식하는 현실을 동시에 각인한다. 여성 정체성의 재현 역시 마찬가지로 접근한다. 여성의 동일성만을 강조하면 남성과의 대립적 이분법에 고착되고 의도치 않게 남성이라는 기준을 계속 상정하게 되는 효과를 낳는다. 그래서 드 로레티스는 여성영화(women’s cinema)는 추상적인 대문자 여성(Women)이 아니라 복수적인 여성들 간의 그리고 한 여성 내의 교차적 정체성을 표현하며 다양한 관객들에게 말을 건넨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드 로레티스는 이러한 여성의 서사는 기존 재현에서 탈각되고 배제되어온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미 스크린 위에 보이는 것(space-on)뿐 아니라 프레임 바깥에 비가시화되어 있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리고 (카메라의 운동을 통해) 곧 도래할 이미지와 서사의 공간인 ‘스페이스-오프(space-off)’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내가 죽던 날>에서 현수는 세진의 죽음을 쉽게 확정짓지 않는다. 현수는 세진이 남긴 흔적에서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의지를 읽어내고 말을 건넨다. 당신은 정말로 죽었는가, 이렇게 살려고 애썼으면서도 왜 죽었는가? 현수는 세진에게서 행동의 이유, 즉 서사를 발견하려 한다. 더 나아가 현수는 세진이 살아있기를 바란다. 이는 자기 경험과 욕망의 투사다. 현수와 세진의 관계는 형사와 실종자인 동시에, 여성인물과 여성관객 간의 동일시 과정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차이와 간극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희박한 서사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삶과 마음을 읽어내려는 의지 속에서 동일시가 발생한다. 심지어 현수는 섬에 도착해 자신을 낯설어 하는 섬 여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거꾸로 이 과정을 이용한다. 남편의 불륜이라는 자신의 취약점을 드러내며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섬 여자들의 공감대를 얻어 세진을 이해할 정보를 수집한다. 이러한 과정은 (여성)영화적으로 말하면 스페이스-오프에 눈길을 주는 것이고, 문학적으로 말하면 ‘결을 거슬러 읽는(reading against the grain)’ 방식이다. 현수는 수사를 진행할수록 누구 하나 세진의 마음을 돌보고 이해하려 하는 이가 없었음을 알게 되면서 더욱 세진에게 빠져든다. 현수/관객은 세진의 서사를 발견할 마지막 보루가 된다. 현수는 출동 중 접촉사고를 내고 팔에 자해를 해 징계위에 회부된 상태다. 게다가 몰래 바람을 피운 남편은 이혼재판을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 현수 회사에 악성 소문을 퍼트렸다. 완벽해 보였던 현수의 삶은 사생활과 경력 모두에서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진다. 한편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며 부족한 것 없어 보였던 세진은 아빠가 죽고 그의 범죄사실이 밝혀지면서 자기가 살던 삶이 완전히 거짓에 근거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떻게든 삶을 회복하려 하지만 한번 추락한 삶은 원상복귀 되지 않고 악화될 뿐이다. 흥미롭게도 현수와 세진은 모두 남편의 불륜과 아빠의 범죄 사실 그 자체보다 자신이 그들의 부도덕함을 ‘몰랐다’는 사실을 가장 괴로워하고 자책한다. 가장 친밀한 이들에게 배신을 당한 피해자인 그녀들에게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모를 수 있었냐’고 힐난한다. 현수는 단순히 사생활에 대한 비난을 넘어서 경찰로서의 직업적 수행능력까지 의심 받는다. 새엄마가 있어도 집안 살림을 책임져왔던, 똑 부러지고 어른스러운 세진은 갑자기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아이가 된다. 그녀들은 자신이 보지 못한 사각지대에서 타인이 그린 ‘그림’에 갇혀 일순간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잃게 된 것이다. 자신이 속해있던 그림이 허상이라는 사실은 그 자신의 정체성마저 빼앗기는 일이 된다. 그래서 세진은 유서에서 자신의 가장 큰 죄는 ‘바보처럼 아무 것도 알지 못한 것’이라며 아빠와 오빠의 죄까지 대속하려 한다. 그것만이 다시 주도권을 되찾을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말이다. ‘무지의 죄’는 도덕이 아니라 파워의 문제이다. 현수도 유사한 고통을 겪고 있기에, 세진이 애써 살아보려는 흔적을 발견하고 성긴 증거들을 연결해 서사를 구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흔적들 사이의 구멍을 채우는 것은 현수의 삶과 경험이다. 누구의 시점에서 누구를 위해 그리고 누구에게 가닿기 위해 그린 그림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현수도 깨닫는다. ‘개연성’과 그럴듯한 그림에 대해 우리는 끈질기게 질문해야 한다. 그것은 다분히 편향된 것일 수 있다. 풍경조차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포착된 것이다. 현수는 마침내 경찰조직이 보기에 좋은 ‘그림’에 다시 자신을 넣는 것을 거부하고, 세진과 순천댁(이정은)이 그린 진실의 그림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현수 덕택에 세진의 얼굴은 더 이상 미스터리로 남지 않는다. 남성중심적 서사, 특히 느아르나 스릴러 장르에서 여자의 얼굴과 표정은 미스터리이기 때문에 매혹적이다. 그 미스터리는 모호한 욕망의 대상으로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처럼 남성영웅이 풀어야하는 문젯거리이자 남성중심의 서사를 추동시키는 동기가 된다. 남성 관점에서 만든 서사와 그림을 위해, 남성들이 해결할 때까지 여성들은 계속 미스터리로 남아있어야 한다. 그래서 기존의 남성중심적 그림에서 여성의 서사는 희박하거나 행동의 근거가 잘 주어지지 않는다. 잘 납득되지 않는 그녀의 행동은 손쉽게 ‘민폐’ 캐릭터로 낙인찍힌다. 경찰이 설치한 CCTV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분노에 찬 얼굴을 하고 카메라를 움직여 사각지대를 만드는 세진의 행동은 기존의 ‘그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이다. 현수 역시 이러한 세진의 얼굴에 빠져든다. 그러나 그 얼굴은 해결해야할 문젯거리나 매혹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이해하고 공감하며 서사를 불어넣어줄 동일시의 대상이다. 순천댁과 세진은 CCTV의 사각지대, 즉 스페이스-오프에서 교류하고 그들만의 서사를 쌓아간다. 순천댁이 세진의 죽음을 위장하고 그녀를 빼돌렸다는 진실은, 동시대 한국 장르영화에서 점점 더 핵심적인 장치로 사용되는 충격적인 반전효과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순천댁의 계략과 세진의 생사 그 자체가 장르적으로만 소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죽음 이후 원한을 풀어주는 멜로드라마를 지향하지도 않는다. 박지완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너무 커서든, 너무 작아서든 누구나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자신만의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누군가 보이는 걸 봤다고 얘기해 주면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것“이라고 밝혔듯, 중요한 것은 행동에 대한 이해와 공감 그리고 세진의 ‘내일’이다. 영국 감독 샐리 포터의 영화 <스릴러>(1979)는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을 재해석하며 ‘낭만적인 희생자’로서의 재봉사 미미가 정말로 병으로 죽은 것인지, 아니면 남성 예술가의 시적 소재와 동기가 되기 위해 살해당한 것인지를 묻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미미는 ‘나는 왜 죽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남성 예술사 내에서의 여성살해를 비판하고 <라 보엠>에서 악녀로 그려진 또 다른 여성 무제트와 남성이 제외된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둘은 결말에서 남성이 그린 그림에서 문자 그대로 창문을 통해 탈출하며 여성의 서사를 발견하고 써내려갈 가능성을 맞는다. 마찬가지로 현수도 세진의 죽음의 이유를 질문하며, 순천댁과 세진이 그린 새로운 그림을 만나게 된다. 현수는 순천댁이 세진을 빼돌렸을 것이라 거의 확신한 후 기존의 자신의 삶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굳이’ 세진의 안녕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이미 현수와 관객 모두 진실을 알아냈기 때문에 이러한 꽉 닫힌 엔딩은 재확인에 불과한 군더더기처럼 보일 수 있다. 왜 진상이 거의 드러나 장르적 완결성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안녕이 그렇게 중요한 걸까? 통쾌한 반전과 자기충족적인 문제해결을 넘어서 이 영화가 정말로 궁금해 하는 것은 세진의 서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지, 그녀가 정말로 안녕한지, 그녀가 원하던 ‘해가 지는 그림’ 속에 자신을 놓고 있는지 이기 때문이다. 여성영화가 관심 있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것은 진부한 군더더기가 아니라 오히려 페미니스트 환상성을 길어내는 장면, 기존 서사에 대항하면서 서사와 함께 가는 양상이다. 그래서 클리셰 같은 이 해지는 이국적 풍경은 고착되고 고정된 그림이 아닌 앞으로 더 다양하게 그려질 ‘여성서사’의 시작이다. 그런 이유로 카메라는 그 그림 속에 현수와 세진을 남겨두고 멀어진다. 그것은 여성들의 해방적 공간의 그림을 끝까지 그리고 시각해보고자 하는 마음, 그녀들의 서사를 발견하고 그 서사 속에 ‘너’가 있고 ‘너’의 내일이 있기를 바라는 순천댁의 마음이기도 하다. 순천댁이 쓴 것처럼 말이다. “니가 남았다.” (관련글) 1. 소진과 이상한 기운 - <아워 바디>(2018), 2021.04.23. 2. 의심의 씨앗과 취약한 영웅들 - <도희야>(2013), 2021.05.21. 3. 여름밤 초록색 전구불빛이 가만히 당신을 응시할 때 - <남매의 여름밤>(2019), 2021.06.18. 4. 당신의 안녕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 <내가 죽던 날>(2019), 2021.07.16. 5. 피해와 가해의 알레고리 - <소리도 없이>(2019), 2021.08.13. 6. 돌봄의 정동 - <우리집>(2019), 2021.09.10. 7. 유년과 재난 - <벌새>(2018), 2021.10.22. 8. 목격의 시간 - <휴가>(2020), 2021.11.19. 9. 한평생 이야깃거리가 된 삶을 찢고 나온 웃음소리 -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2019), 2021.12.17. 10. 이름을 불러 닿는 시간 - <윤희에게>(2019), 2022.01.14. 11. '혼자'의 정동 - <혼자 사는 사람들>(2021), 2022.03.15. 12. 억압의 체제와 닫혀있는 여자들의 세계 - <궁녀>(2007), 2022.04.13. 13. 소원성취, 환상, 실재 사이의 어딘가에서 - <팬지와 담쟁이>(2000), 2022.05.18. 14. 몫과 값 그리고 경계물 - <82년생 김지영>(2019), 2022.06.24. 15. 실종의 감각과 징크스의 미학 - <오마주>(2022), 2022.07.21. 16. 레즈비언 편집술, 혹은 시계가 된 여자 - <연애소설>(2002), 2022.08.19. 17. 탐정-엄마의 각성하는 모성 - <비밀은 없다>(2016), 2022.09.16. 18. 시간과 정념의 지층을 찾아서 - <누에치던 방>(2018), 2022.11.04. 19. More or Less - <모어>(2021), 2022.12.09. 20. 이름을 지우고 살아남기 - <안나-감독판>(2022), 2023.01.09. 21. 우리에겐 따뜻한 국물과 유머가 필요하다 -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 2023.02.07. 22. 아직 끝나지 않은 - <미망인>(1955), 2023.03.10.
[사진] 한국전쟁 중 미군 위문공연을 하러 온 마릴린 몬로와 함께 한 최은희 최은희는 좌우익의 분열이 본격화되기 전인 민족영화 건설기에 모처럼 얻은 수확이다. 1947년 청구영화사가 제작한 신경균 감독의 <새로운 맹서>에 발탁되면서 그녀의 파란만장한 여배우의 삶이 시작된다. 일제의 강제 징용에 끌려 나갔다가 해방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온 어촌 청년들이 마을 처녀들과 힘을 모아 황폐한 어촌을 재건해 나간다는 이 영화에서 그녀는 잘사는 집 외동딸 역을 맡아 애인 역인 최운봉과 그의 어머니 김연실 등과 함께 공연했다. 은막으로 이끈 순진한 얼굴 <노도(怒濤)>를 개작한 최금동 각본의 <새로운 맹서>는 46년 기획 단계부터 여주인공은 신인을 쓰기로 방침이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마땅한 후보 깜이 나타나지 않았다. 영화에 투자할 전주(錢主)의 마음이 변할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을 때 회현동에 있는 영화사 사무실로 한 손님이 찾아왔다. 신경균 감독은 누군가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여기 주연 깜이 한 명 나타났으니 와서 보라고. 이 처녀가 바로 최은희(崔銀姬)였다. 감독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사람은 이 영화의 촬영을 맡은 카메라맨, 뒷날 그녀의 남편이 된 김학성이었다. 그의 눈에 비친 최은희는 ‘큰 키에 때 묻지 않은 촌스런 얼굴, 가꾸지 않은 엉성한 몸매에다 집안에만 있다가 배우가 되겠다고 뛰쳐나온 순진한 모습’이었다. (김학성, 「30년을 하루 같이(6) 원로 연예인의 수기」, 『일간스포츠』, 1978.3.20.) 그래서 처음에는 반대했으나 좋게 본 감독과 작가의 의사에 따르기로 했다. 그녀가 영화사 사무실을 찾게 된 데는 이 무렵 토월회 연극무대에 함께 섰던 최운봉이 제 상대인 배역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 같다며 지원을 적극 권유했기 때문이다. 촬영에 들어가자 감독으로부터 오버 액션이라는 질책을 받았다. 아버지가 딸에게 준 돈이 애인의 서울 유학비에 쓰인 사실을 알고 꾸짖자 딸이 용서를 비는 장면이었다. 관객들이 없이 스태프들만 바라보는 가운데 정해진 프레임 안에서 해야 하는 연기는 허공에 뜬 것처럼 와 닿지 않았다 .(최은희, 『고백』 영화에 데뷔하다, 2007, 랜덤하우스 코리아, 46쪽) 그래서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하듯이 하다 보니 감정이 과장됐던 것이다. <새로운 맹서>는 제재(題材)와 내용이 과거 무성영화 <바다와 싸우는 사람>이나 <바다여 말하라>에 비하여 별다른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이금룡, 최운봉, 김연실 등과 함께 신인 최은희가 열연했다. (「신영화평, ‘새로운 맹서’」, 『대동신문』, 1947.6.30.) 는 평을 들었다. 이 영화에 이어 캐스팅된 것이 수도청 경우회가 제작한 <밤의 태양>(1948, 박기채)이었다. 대규모 밀수단을 추적한 끝에 일망타진하는 경찰관의 이야기로, 김동원의 상대역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개봉되자 수도청 기자단으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언론인 전체의 명예를 훼손한 장면이 있으니 삭제해 줄 것과 사과를 요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진] 최은희는 <마음의 고향>에서 젊은 미망인 역을 맡았으나 연기가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다 세 번째 출연한 <마음의 고향>(윤용규, 1949)에서는 홍역을 앓다가 죽은 어린 아들의 49제를 지내려 절을 찾아온 젊은 미망인 역을 했다. 정적 연기가 요구되는 캐릭터 때문이었는지 주지 역(변기종)과 미망인 어머니 역할(석금성)에 비해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태우, 「조선영화의 발전, ‘마음의 고향’을 보고」, 『경향신문』, 1949.1.6.) 모두 6.25전쟁 이전의 출연작들이다. [사진] <젊은 그들>에서 남장 여인으로 분한 최은희 최은희의 연기 활동은 그로부터 5년 만인 1954년 신상옥 감독의 문화영화 <코리아>(1954)를 계기로 재개된다. 잇따라 신 감독의 <꿈>(1955)을 비롯한 <젊은 그들>(1955), <무영탑>(1957), <지옥화>(1958)에 주연으로 기용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다. 영화의 절반을 차지하는 승려 조신의 꿈을 통해 애욕의 덧없음을 깨우치게 되는 이광수 원작의 〈꿈〉, 실각한 대원군의 복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열혈 청년들의 사투기 김동인 원작의 <젊은 그들>(1955), 불국사의 석가탑 건립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엮은 현진건 원작 〈무영탑〉(1957)에서는 승려를 홀린 달례(꿈)와 정혼자가 있는 남장 여인(젊은 그들), 그리고 석공 아사달을 사랑한 구슬아기(무영탑) 등 다양한 역할을 해낸다. 그녀는 어느새 ‘신상옥의 전속배우’나 다름없는 부러운 존재가 되어 있었다. 고전미에 상응한 도발적 여성의 욕망 그러나 <지옥화>에서는 앞의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전후 아프레 걸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기지촌의 미군을 상대로 몸을 파는 양공주 쏘냐 역 최은희는 미군부대의 창고를 털어 내다 파는 일이 주업인 사내(김학)의 정부 노릇을 하면서도 그의 동생을 유혹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쏘냐는 동생과 도망가기 위해 정부 일당의 음모를 헌병대에 신고하지만 도망쳐 나온 정부의 칼에 찔려 죽고 사내도 총에 맞아 죽는다. <지옥화>에는 통속적인 겉모습과는 달리 6.25전쟁을 겪은 궁핍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비판하는 작가의식이 담겨 있다. 깊게 파인 검은 드레스와 짙은 화장으로 빗나간 여성의 욕망을 표출하고 그동안 한복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농염한 몸매를 드러내면서 기존의 정적 이미지를 탈색시키는데 성공한다. [사진] <지옥화>에서 최은희는 형제를 동시에 유혹하는 악녀 쏘냐 역을 맡아 변신에 성공한다 이 작품을 전후하여 농촌을 무대로 한 김소동 감독의 <돈>과 김성민 감독의 액션 영화 <형제>(이상 1958)에 출연했으나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고아인 법대생이 부정한 방법으로 신분을 세탁, 변호사의 꿈을 이루게 되는 신상옥 감독의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과 <동심초>(1959)의 전쟁미망인 역할에 이르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특히 <동심초>의 경우 양장점을 경영하다가 사기꾼에 걸려 파산상태에 이르렀을 때 도움을 준 남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물러서는 미망인의 연기는 ‘최은희가 발산하는 고절(高節)한 미망인다운 애절감이 좋았다’는 호평을 받았다. 서울 국도극장에서 개봉돼 연일 대성황을 이룬 이 영화는 신상옥프로덕션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에 크게 이바지한다. [사진] <동심초>에서의 최은희와 김진규 김기영 감독의 <슬픈 목가>로 1960년대 신년 벽두를 연 최은희는 <동심초>의 변주라 할 수 있는 이 영화를 포함, <청춘의 윤리>(김화랑), <려인(麗人)>(이봉래), <돌아온 사나이>(김수용) 등 타사 영화 5편과 신상옥프로덕션 10주년 기념작 <이 생명 다 하도록>을 비롯한 〈로맨스 빠빠〉, 〈사랑의 역사〉, 〈백사부인〉(이상 신상옥 감독) 등 4편에 출연했다. 이 가운데 <이 생명 다 하도록>은 6,25 전쟁 때 참전했다가 척주마비로 하반신 불구가 된 남편(김진규)과 어린 딸을 돌봐야 하는 인고(忍苦)의 여인상을, <로맨스 빠빠>에서는 가부장적 질서와 해체의 경계를 넘나든 영악한 맏딸의 모습을 보여 관심을 끌었다. 이 시기에 그녀와 대적할 만한 여배우는 연배가 비슷한 황정순과 주증녀, 이민자 정도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별아 내 가슴에>(1958)의 히트 이후 기세가 오른 젊은 김지미였다고 할 수 있다. 최은희에게 신상옥이라는 배경이 있듯이, 김지미에게도 남편인 홍성기 감독이 있었다. 그래서 영화계에서는 그들의 판세를 ‘연기와 미모의 대결’로 받아들였다 .(「라이벌」, 『씨나리오문예』 4호, 40쪽, 1959, 12) 이 무렵 최은희는 연기 잘 하는 스타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40고개를 바라보아도 잔주름을 연기력으로 너끈히 카버하고 젊은 주역을 해내는 데보라 카처럼 연령적 육체적 조건을 극복하고 톱스타의 자리를 차지할 것’ (「‘배우동서(俳優東西)’ 데보라 카와 최은희」 , 『경향신문』, 1960.8.13.) 이란 전망을 갖게 했다. [사진] 흥행 신기록을 세운 <성춘향>의 한 장면. 오른쪽은 월매 역을 맡은 한은진 그런 점에서 1961년 시네마스코프 색채 대형화면 시대를 연 구정 대목 프로 <성춘향>(신상옥)은 이와 같은 세간의 평가와 전망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셈이었다. 더욱이 최은희는 역대 <춘향전> 영화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35세의 중년 춘향 역에 도전했다. 같은 시기에 경쟁한 21세인 <춘향전>(홍성기)의 김지미와는 무려 14년이라는 차이가 났다.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이명우, 1935)의 문예봉이 19세에, 1955년 한국영화 중흥기의 <춘향전>(이규환, 1955)의 조미령이 27세에, 그리고 뒷날 <성춘향>(박태원)의 장미희가 21세에 춘향 역할을 맡은 것과는 대비되는 무리한 캐스팅이었다. 감당하기엔 어려운 배역이었으나 당시의 매스컴은 <성춘향>에 대해 성의 있는 고증과 색조, 허장강의 방자 역에 호의를 표명 (「예술과 기업의 대결, 매니큐어 반짝이는 두 편의 춘향전」, 『조선일보』, 1961.1.30.) 하면서도 최은희의 과년한 춘향 역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손에 바른 ‘반짝이는 매니큐어’만 지적했을 뿐이다. 이는 분장과 연기력으로 나이의 약점을 극복했다는 말이 된다. 결국 <성춘향>(명보극장)은 김지미 주연의 <춘향전>(국제, 국도극장)에 참패를 안겨주며 서울에서만 74일간 38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렇게 기업적 기반을 마련한 신상옥은 신필름을 확장하고 스튜디오 시스템을 갖춘 영화사로 키워 나갈 수 있는 계기로 삼는다. <성춘향>에 이어 최은희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 <연산군>(이상 신상옥), <서울의 지붕 밑>(이형표) 등 5편과 이만희와 유심평의 감독 데뷔작 <주마등>과 <군도(群盜)> 등 2편이 포함된 9편에 출연하였다. 여섯 살 소녀 옥희를 화자로 내세워 어머니와 사랑방에 세든 중년 남성과의 애틋한 사랑을 보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신상옥)의 여주인공은 <마음의 고향>(1949), <동심초>(1960)에 이은 미망인 소재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다. 깨끗이 빗어 올린 쪽진 머리와 하얀 저고리, 절제된 미소, 조신한 동선(動線)으로 ‘동양적인 청결과 멜랑콜리한 분위기’ (「신영화, 담담하고 격조있는 가작,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한국일보』, 1961. 8.26.) 를 자아내며 인내와 수절이 미덕, 가부장 중심 사회의 단면을 애잔하게 보여 주었다. 그 반면에 <상록수>(원작 심훈)에서는 야학을 열어 문맹 퇴치에 나선 일본 식민지시대의 농촌 여성 채영신으로 변신해 역할의 확장을 꾀하였다. 이 시기야말로 최은희 연기 생애에 있어 절정기였다고 할 수 있다. [사진] 최은희 연기 인생의 절정기를 대표하는 영화 중 하나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한 장면 〈산색시〉(박상호), <29세의 어머니>(이강원), <무정>(이강천) 등 외부 작품을 포함 12편에 캐스팅되면서 최다 출연 기록을 세운 62년은 <열녀문>과 <로맨스그레이>(1963, 이상 신상옥)로 자칫 굳어질 뻔한 ‘청상과부’의 이미지를 탈색시키는 효과를 거두게 했다. 그런 잔제는 <29세의 어머니>와 같은 캐릭터에 남아 있긴 했으나 <열녀문>의 경우처럼 양반집 과부 며느리(최은희)가 머슴(신영균)과 정분에 빠져 임신을 하거나, <로맨스그레이>에 나타나듯이 단란한 가정의 가장인 대학교수(김승호)를 유혹해 돈을 뜯어내는 꽃뱀 수준의 호스티스(최은희)로 전환, 지금까지와는 상반된 여성상을 그려 보였다. 특히 <로맨스그레이>에서 여주인공 민자의 입술 오른쪽 볼에 그려놓은 검은 점은 화류계 여성다움을 나타낸 차밍 포인트로 작용하였다. 이와 같은 캐릭터는 <지옥화>의 양공주 쏘냐와 함께 최은희 연기세계의 동적인 한 축을 형성하는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사진] <로맨스 그레이>에서 김승호와 한 장면 [사진] <민며느리>에서 최은희는 연출에 도전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후 <벙어리 삼룡>(1964, 신상옥)과 직접 메가폰을 잡은 <민며느리>(1965), 신상옥 감독의 옴니버스 사극 〈이조여인잔혹사〉(1969) 등에 출연하여 일부종사(一夫從事)라는 봉건주의적 인습에 희생 되는 여성의 틀을 유지한 채 <날개부인>(1965, 김수용),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1965, 임원식, 나봉한) 등에 출연, 밀수품 장사에 뛰어든 공무원(김진규)의 아내, 쇄국정책을 펼치는 대원군(김승호)의 섭정에 맞서 개혁·개방 정책을 추구하다가 죽음을 맞는 민비 역 등을 통해 연기의 폭을 넓혀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