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 미녀
- 감독
- 이용민
- 제작년도
- 1969
- 출연
- 오은이, 이예춘, 장동휘, 김석훈, 추석양, 전계현, 옥상미, 김웅, 박미영, 김태숙
이용민 감독은 한국영화계에서는 불모지에 가까웠던 공포영화 장르를 개척한 선각자이다. 공포의 양식화라는 측면에서 그는 이탈리아의 지알로 호러를 대표하는 마리오 바바나 일본 괴담영화의 거두인 나카가와 노부오와 유사한 부류로 범주화할 수 있다. 공포와 스릴러, 판타지를 혼융한 < 악마와 미녀 >(1969)는 공포영화 감독으로서 이용민의 개성과 스타일에 대한 유용한 개요를 제공한다. 이용민 감독은 여기서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 모티프를 병합한 설정을 중심축으로 삼아 한국적인 원귀 서사, 사무라이 활극, 폐쇄적인 실내극 양식, 표현주의 스타일을 다층적으로 쌓아올린다. 특히 프랑켄슈타인 서사는 이용민의 후기작 < 공포의 이중인간 >(1975) 등에서 반복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귀기서린 괴 저택을 무대로 한 괴담이라는 일부 설정은 나카가와 노부오의 <망령의 괴묘저택>(1958)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몇 개의 촬영 세트에서 진행되는 조잡한 프로덕션 디자인에서는 저예산 속성 제작의 흔적이 여실하지만 이런 흠결은 장르의 특장을 손상시키지 않으며 도리어 기이한 스토리를 증폭하는데 도움이 된다. 영화의 무대는 으슥한 숲속 한 가운데에 위치한 서양식 병원이다.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병원의 수장인 곤도( 이예춘 )는 유리관에 누워있는 아내( 도금봉 )를 위해 매일 생피를 주입한다. 곤도의 계획은 뇌수이식에 성공하여 빈사 상태의 아내를 구제하고 인간의 영생을 이루는 것. 신선한 피를 얻기 위해 곤도는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어느 날 미스터리한 가족사를 품은 간호사 옥경( 오은이 )이 조수로 들어오면서 곤도의 계획은 조금씩 틀어진다. 옥경의 수상한 활동을 기점으로 거악(巨惡)의 씨앗이 발아하게 된 경위가 플래시백으로 제시되면서 미친 과학자의 스토리는 번개처럼 앞으로 나아간다. 이야기의 절반이 곤도의 음모와 옥경의 복수에 전념하는 동안, 나머지 절반은 플래시백을 통해 과거사를 기술하고, 곤도의 한국인 조수 원석( 김석훈 )과 옥경의 로맨스도 양념으로 첨가된다. 팜므 파탈의 이미지로 등장한 옥경이 점차 동정적인 캐릭터로 변모함에 따라 초자연적 복수 미스터리의 균형이 조정되면서 곤도와 옥경의 대립관계를 효과적으로 부각시킨다. <악마와 미녀>의 각본은 허흥 이라는 작가가 썼다. 허흥은 유일하게 이 영화의 각본가로만 기록되어 있는데 감독 자신의 가명일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악마와 미녀>의 스토리는 갈짓 자를 그린다. 허무맹랑한 신념에 강박된 의학박사의 맹목을 따라가다가 그의 악마성이 폭로되는 과거 장면들 이후에는 복수의 스토리로, 옥경과 원석의 대립과 공모로 국면이 전환되자 멜로드라마의 정동이 느닷없이 폭발한다. 현실과 단절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순수한 허구이지만 스토리 안에 있는 우매한 믿음과 광기, 냉담한 복수와 같은 요소는 우리들의 실제 생활에도 있다. 음모나 배신의 트라우마로 복수를 다짐하는 원한에 찬 여성의 스토리는 한국 고전 공포영화의 공식이다. <악마와 미녀>도 이 공식을 따르지만 원녀(怨女)의 존재가 인간과 유령의 경계에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반면에 인류의 삶을 뒤바꿀 의학기술의 신기원에 도달하겠다는 망집에 빠진 의학박사는 서양 공포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상투형이다. 영화의 주요한 소재로 채택된 수혈과 흡혈은 역시 드라큘라 전설에서 파생된 설정이다. 생명 연장을 위해 타인의 생피를 주입한다는 설정은 생명의 기원으로서 피의 의미를 강조한다. 피의 순환이라는 관점에서 곤도의 야심은 옥경으로 전이되는데, 복수의 일념으로 살아온 옥경이 우연히 피맛을 알게 되어 흡혈에 집착하는 모습이 이에 해당한다. 피에 굶주린 살인광 박사를 전형적인 공포와 구별하는 독특함은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지는 서사에 새겨진 무국적성일 것이다. 이처럼 <악마와 미녀>에는 상이한 뿌리를 갖는 이야기의 요소들과 사물들, 영화 기술, 정서들을 두서없이 교배한 흔적들이 넘친다. 고립된 서양식 병원과 일본식 장검을 휘두르는 곤도의 표상, 액션 활극에나 어울릴법한 옥경의 초인적인 퍼포먼스, 곤도의 어수룩한 일본인 조수의 생뚱맞은 사랑 고백 등 예측할 수 없는 요소들의 결합이 태연자약하게 이루어진다. 두 대의 카메라를 사용한 전통적 방식의 3D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둥둥 떠다니는 원귀들의 얼굴, 무덤을 뚫고 나오는 손, 카메라를 향해 날아드는 몽둥이와 램프 등 입체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적인 연출도 눈에 띈다. 영화의 색조는 시종일관 어둡고 여러 면에서 특이하게 보일 뿐 아니라 과장된 연극적 연기로 일관하는 배우들의 뻣뻣한 말투는 비현실적이어서 더욱 이목을 끈다. 촬영감독으로 영화 이력을 시작한 감독답게 이용민의 장면 연출은 카메라의 활용을 중심에 둔다. 옥경이 수행하는 역동적인 액션 신을 제외하면 대다수 장면을 실내 세트에서 촬영하여 속성 제작의 효율성도 성취한다. 곤도의 정신을 어지럽히는 원귀들의 환영은 조잡한 특수효과로 제시되어 B급 공포영화의 무드를 조성하고, 시각적으로 로우 키 조명으로 방과 복도 세트를 채우면서 공포영화의 표현 스타일을 확실히 구현한다. >> 악마와 미녀 고화질 VOD 보러가기 <<
B급 영화를 전문으로 하는 칼럼을 쓰다 보니 항상은 아닐지라도 ‘뭐 괜찮은 거 없나’ 하며 눈과 귀를 코를 쫑긋거리며 다니기 일쑤다. 몇 번 이야기한 적 있을 테지만, 한국의 B무비란 참 애매한 것이다. 외국영화의 예를 든다면 그냥 정리가 가능할 텐데, 한국의 경우를 설명하라고 한다면 뭐라 말하기가 정말 어렵다. 못 만든 거? 너무 많다. 이상한 거? 90년대 이전의 못 들어본 영화를 꺼내면 거의 다 이상하다. 그럼 웃긴 거? 그것도 아니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나름대로 이쪽의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영화를 소개하고 싶은 욕심에 이래저래 찾고는 하지만, 소문 듣고 찾아보고 실망한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다고 다 아는 영화를 소개하자니 티끌만 한 양심이 간질거려 매번 그러지는 못하고. 당연히 나와야 했을 몇 몇 영화가 아직 다루어지지 않는 게 그런 이유다. 이번엔 < 로보캅 > 개봉에 맞추어 맹구가 살해당한 뒤 ‘18만 2천 원’을 들여 사이보그로 활약하는 <18만 2천 원짜리 맹구>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으나 자료원에 영상이 없어서 포기. 아쉬운 대로 캡콤사의 유명게임 ‘스트리트 파이터2’를 패러디한 <맹구짱구 스트리트 화이어>를 써볼까 했으나... 나 자신을 속이는 일 같아 그만두었다. 쉽지 않다. KMDb에도 없는 영화 <18만 2천 원짜리 맹구> 그러던 중, 얼마 전 극장에서 좀 멀쩡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고 싶어서 고른 게(‘멀쩡한’이라는 형용사를 써놓고 한 선택이 이거라니 나도 점점 맛이 가고 있는 것 같다) < 프랑켄슈타인 : 불멸의 영웅 >이었다. 영제는 < I, Frankenstein > 아이작 아시모프가 띠요옹~ 했을 것 같은 원제를 지닌 이 영화는 우리가 아는 그 프랑켄슈타인에다가 < 스폰 >을 갖다 붙인 이도 저도 아닌 영화였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이 질문이 미묘한 과정을 거쳐 ‘나는 악마와 싸우는 영웅이다’에 도착하는 그런 판타지. 건진 거라면 영화에 등장하는 가고일 여왕이 내 취향이었다는 것과 오늘 소개할 영화가 떠오르도록 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장르영화가 그리 부흥한 적은 없었지만 그 시도는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시도’만 이어지고 있다는 게 눈물 쏙 빼는 이야기입니다만) 해외의 괴물, 귀신에 대한 수입 역시 영화사 초기부터 이루어지고는 있었는데 지난 주에 소개한 < 우주괴인 왕마귀 >도 그렇고 오늘 소개할 < 공포의 이중인간 > 역시 그런 시도 중의 하나다. 이용민 감독의 1975년 연출작인 이 영화는 한국판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라고 할 만하다. 청평 정신병원 에서 시체를 살리는 연구를 하는 정 박사 일당 영화가 시작되면, 비바람과 천둥번개가 쏟아지는 불길한 날씨를 뚫고 옥경이 길을 간다. 그녀는 눈앞에 보이는 제법 그럴듯하게 괴기스러운 건물. ‘청평정신병원’(실제로 이런 병원은 없다고)에 당도한다. 이 병원에는 환자의 시신을 이용해 죽은 자를 깨우는 실험을 하는 정 박사( 이예춘 )가 조수 준호와 박 군이 있다. 이들이 하는 실험은 서양의 프랑켄슈타인과 좀 다르다. 메리 셀리가 제시한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의 몸을 기계-장치로 생각했을 때 그것의 활동을 재생시킬 수 있다고 치고, 자아의 문제는 어쩔 것이냐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정 박사는 이 책을 봤는지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이에게서 영혼을 이식하는 방식으로 실험을 업그레이드시켰다. 뭐 이러나저러나 정체성에 문제가 생기는 건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그들은 병원에서 일하던 박 간호사의 몸에 3명을 살해한 개망나니 남자 살인범의 영혼을 심었기 때문이다. 실험에 실패한 줄 알고 내다 버린 그녀는 벼락을 맞고 ‘작동’을 시작해 온갖 행패를 부리며 결국 자신의 몸을 바꿔놓은 정 박사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돌아온다. 그녀가 이 영화의 제목이 지칭하는 ‘공포의 이중인간’인 것이다. 이 이야기가 적당히 잘 흘러갔다면 무척 괜찮은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이용민 감독은 촬영 감독 출신으로, 지금 보아도 꽤 잘 찍었다 싶은 장면들이 많다. 특히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상당한 능력을 보여주는데 어떤 장면에서는 독일 표현주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미장센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멀쩡한 영화라면 ‘한국영화걸작선’에 갔겠지 이 ‘삐용삐용B무비’에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다. 우선 정 박사가 이 실험을 하는 이유를 알아보자. 정 박사가 죽은 자를 깨우는 실험을 하는 이유는 매드 사이언티스트로서의 긍지!인 신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청년시절 일본군 학도병이었는데, 당시 대장이었던 ‘오노 소좌’는 수많은 다이아몬드를 오대산 어딘가에 숨겨놓았다. 이 사실을 안 정 박사는 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30년간(전쟁은 45년에 끝나고 영화는 75년에 개봉한다. 이 놀라운 디테일을 보라)죽은 자를 깨우는 실험에 실험을 거듭, 오노 소좌를 살려내 다이아몬드의 위치를 ‘물어보려’고 한 것이다. 그가 오노 소좌의 시체를 파내려 오대산에 갔을 때, 동행한 조수 박 군은 묻는다. 괜한 소리해서 죽는 박 군 “아니 이것 때문에 그 오랜 시간 연구를 하신 겁니까? 그냥 산을 전부 뒤졌으면 훨씬 빨리 찾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정말이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정 박사는 “이놈이 내 다이아몬드를 노리는구나.”라며 그를 죽여버린다. 과연 매드 사이언티스트. 마치, 이렇게 묻는 관객들에게 ‘조용히 있으라’고 말하는 감독의 메시지 같기도 하다. 일단 전제가 이러하니 이야기가 잘 풀릴 리가 없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야기를 끌어가고자 하는 무리수가 상당 부분 등장하는데, 이게 요즘 말로 ‘꿀잼’이다. 박 간호사의 육체에 살인범의 영혼이 깃들어진 여자는 영혼이 남자이므로 자신의 집에 찾아가 아주 당연한 듯이 행패를 부리는데 그곳은 본인의 빈소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불쌍한 아내를 패주고 나오다가 육체(박 간호사)의 딸을 만나 박 간호사의 집에 가서 행패를 부린다.(박 간호사의 딸이 먹을 것을 주자 넙죽 받아먹는 귀여운 모습을 보이기도) 그러다 다시 청평정신병원으로 찾아가 정 박사에게 복수를 하려는데 그곳에서 현재 간호사 옥경이를 만난다. 그러고는 ‘예쁘다. 너를 좋아한다’며 강간을 하려 한다. 여자 둘이 이러고 있는 사이 정 박사가 나타나자 문득 생각난 듯 그를 죽이려고 달려든다. 목 부러져 물론 그의 시도는 실패. 결국 정 박사는 옥경이의 영혼을 이용해 오노 소좌를 살려내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전 실험에서는 분명히 죽은 자의 영혼이 살아나지는 않았는데, 이번엔 살아난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되었다. 오노가 정신을 차리자 다이아몬드의 행방을 묻고, 옆에 있는 옥경의 육체 쪽으로 목을 잡아 돌리며 영혼을 옮겨 저 여자로 살게 해주겠노라 약속한다. 부패한 육체의 오노는 아주 힘겹게 말한다. “목..부...러...져...” 죽은 지 30년 된 자가 하는 말치고는 꽤나 신선해서 고개를 주억거리지 않을 수가 없다. 암, 목이 부러지면 큰일나지... 이외에도 재미난 부분이 상당하다. 물론 의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로선 다루기 어려운 소재였을 것이다. 1910년 토마스 에디슨이 최초의 프랑켄슈타인 영화를 제작한 이후 많은 영화가 이 괴물을 다뤄왔다. 그러나 그 소재의 섬뜩함과 주제의 깊이가 당시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 공포의 이중인간 >은 어찌 됐든 75년의 한국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프랑켄슈타인을 영화화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무리수들이 등장하고 영화의 꼴은 좀 우습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이 영화가 정말 좋다. 황당한 설정, 이상한 행동과 대사, 밑도 끝도 없는 연출이 얼기설기 엮여져 있으면서도 조명과 촬영이 상당한 수준이라 보는 재미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지금 봐도 지루한 부분은 거의 없을 정도다. 게다가 당시로써는 보기 힘든 노출까지 담고 있어(왜 전라의 여자 실험대상은 전선과 반창고를 꼭 유두 부분에 부착해야만 했을까. 물론 우리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B급 공포영화에 바랄 수 있는 모든 부분이 충족된다. 안타깝게도 무섭지는 않지만, 다른 부분들이 그 아쉬움을 채우고도 남는다. 공포의 이중인간 이용민 감독은 꽤 재미있는 이력을 가졌다. 촬영감독으로 더 많은 경력을 가진 영화인인데, 그가 기획하거나 연출했던 영화들의 많은 수가 공포영화다. < 무덤에서 나온 신랑 >, < 악마와 미녀 >, 특히 각본, 감독을 모두 맡은 < 살인마 >, < 목 없는 미녀 >, < 공포의 이중인간 > 은 나름대로 분위기와 재미를 잘 전달하고 있으니 공포영화 전문감독이라 불려도 좋지 않을까? 당시로써는 상당히 현대적인 감각으로 촬영, 편집을 해내고 있어서 내가 본 그의 모든 영화가 무척이나 좋았다. 좀 더 제대로 된 각본가와 작업을 했더라면 정말이지 걸작이 한 편 나올 수도 있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한국 컬트, B무비라는 으레 언급되는 감독들이 있다. 그 사이에 이용민의 이름이 왜 들어가지 못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에라도 많은 분들이 그의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더 많이 이야기될 (조금 다른 의미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P.S : 현재 KMDb VOD 기획전(2014년3/4월)을 통해 집에서 공짜로 볼 수 있다. 참고 하시라. 이예춘 김옥진 진봉진 감독: 이용민 각본: 이용민 개봉극장: 중앙 관람인원: 6,886명
2013년을 결산하던 중에 영화 관람 행태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영화 관람 2억 회(‘영화 관객 2억 명’보다 ‘영화 관람 2억 회’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라는 대기록은 이제 한국에선 ‘영화 관람’이 일상적 문화생활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더불어 흥행 영화보다 취향 영화를 선호하는 1인 관객, 즉 ‘나 홀로 관객’이 전체 예매 관객의 17%를 차지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기존의 ‘시즌 공식’을 깨는 슬리퍼히트 영화가 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관람 행태 변화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올해 ‘시즌 공식’을 박살 난 최고의 ‘슬리퍼 히트’를 꼽으라면 단연 제임스 완 감독의 < 컨저링 >이다. 스산한 가을에 조용히 개봉해 상상 이상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컨저링>과 그 뒤를 이어 개봉한 ‘이한치한’ 호러 < 인시디어스: 두 번째 집 >에 대한 호러 관객의 반응도 기대 이상이다. 제임스 완 감독의 호러 영화가 가진 재미는 익숙한 클리셰를 비틀고 뒤섞어 이종집합하는 기발한 발상과 그 아이디어를 밀어붙이는 배포에 있다고 본다. 이 모든 것은 ‘공포의 속성’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제대로 기를 못 펴는 최근의 한국 호러 영화들과 비교하면, 특히 아쉬움이 더 커진다. CG 기술과 특수효과가 제아무리 번듯해도, 공포의 속성과 맞닿지 못하면 소용없다. 매끈하되 무섭지 않은 최근의 공포 영화보다 투박하지만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무서웠던 옛 한국 공포 영화가 그리워지는 이유다. 한국 공포 영화는 ‘소복을 입고 산발한 여인네들의 원맨쇼’라는 오해를 ‘쩍’ 소리 나게 쪼개버린 영화가 있다. 한국 공포 영화의 전통적인 깜짝쇼 레퍼토리에 익숙해졌다고 자만하던 나를 얼어붙게 만든 장면. 도깨비불이 날아다니는 한밤의 공동묘지에서 무덤 하나가 뭉게뭉게 연기로 휩싸이더니, 쩍 하니 갈라지고 시신이 벌떡 일어났다. 압도적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무덤 트라우마를 남겼을 이 작품이 한국 공포 영화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권철휘 감독의 < 월하의 공동묘지 >(1967)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나중 일이다. 어린 시절에 섬뜩한 잔상을 복기하기 위해 <월하의 공동묘지>를 다시 본다면 뜨악할지도 모른다. 기억 속 무서운 장면들은 예상보다 훨씬 코믹하다. 오히려 상상 이상으로 촘촘한 드라마에 놀라게 된다. 때는 일제 말기 표독스러운 아내 난주( 도금봉 )가 전처 명선( 강미애 )의 어린 아들을 독살하려던 찰나 남편 한수( 박노식 )가 들이닥친다. 서로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면 부부싸움을 하는 그들의 사연은 이렇다. 명선은 사랑하는 남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 기생이 되었다가 병을 얻고, 그녀의 병간호를 위해 가정부로 들어온 난주는 재산을 가로채고자 의사 태호( 허장강 )과 짜고 명선을 죽인다. 끝내 한수와 어린 아들마저 없애려다가 무덤을 쪼개고 돌아온 명선의 원혼이 원수를 갚는다는 해피엔딩. 최신 막장 TV 드라마 뺨치는 줄거리를 1960년대 영화에서 만나는 것도 신선하지만, 더 놀라운 건 배포 좋게 섞여 들어간 실험적인 장치들이다. 괴기스러운 몰골의 변사가 등장해 주인공의 사연을 구구절절 읊기도 하고, 자결한 명선의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유서는 산발한 여인들이 ‘창 뮤지컬’로 재연하는 식이다. 보석 같은 ‘퓨전 호러’라 칭하기에 충분하다. < 월하의 공동묘지 >가 탁월함은 ‘과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 있다. 자고로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라고 했다. 사실 이 영화의 진짜 공포는 쩍 갈라지는 무덤이나 후반 10분간 공포 영화의 소임을 다하려는 듯 몰아치는 귀신의 깜짝쇼가 아니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갓난아이건, 정을 통한 남자건, 음모의 협조자건 ‘뚝딱 죽여 버리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난주의 서늘한 욕망이다. 특히 난주가 죽인 줄로만 알았던 명선의 어린 아들이 살아나자 아이의 목을 덥석 움켜쥐는 장면은 특수효과나 분장의 도움 없이도 등골이 서늘하다. 원조 ‘호러 퀸’ 故 도금봉 여사(1930~2009)가 아니었으면 상상하기 힘들 공포. 그녀는 한국 공포 영화사에서 가장 독보적인 여배우다. < 살인마 >(1965)를 시작으로 < 목 없는 미녀 >(1966) < 생명을 판 사나이 >(1966), <월하의 공동묘지>와 < 이조여인 잔혹사 >(1969) < 백골령의 마검 >(1969) < 악마와 미녀 >(1969)를 통해 원조 호러퀸에 등극했다. 1960년대에 한국 여배우 중 남자 피를 빠는 흡혈 마녀 역할을 누가 소화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뒤져봐도 대안 없는 선택이다. <월하의 공동묘지>는 한국 공포 영화계에 한을 품은 소복 귀신의 이미지를 정착시킨 첫 작품이자, 배우 도금봉의 육신을 빌어 현대적 의미의 욕망의 화신을 배출한 에로틱 스릴러로 재음미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