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째 날
- 감독
- 저스틴 P. 랭
- 제작년도
- 2021
- 출연
- 가이 피어스, 바디르 데르베스, 스테판 랭, 키스 데이빗, 로빈 바틀렛
저항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우리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엄청난 수의 영화들을 소비하며 살고 있었다. 그 정점은 2019년이었다. 2019년 한국 영화 및 해외영화 제작/수입 편수는 총 2,207편, 이 중 1,740편이 개봉했고, 다시 이 중에서 647편이 실제 극장에 걸렸다. 대략 하루에 5편의 영화가 어떤 식으로든 새롭게 공개되고 매일 1.8편의 영화가 실제로 극장에서 개봉한 셈이다. 여기에 프리미어 상영 원칙을 가지고 있는 국고 지원 7대 국제영화제에서 2019년 한 해 동안 상영한 영화는 장편, 단편 합쳐 총 1,432편. 이외의 상당수의 작은 영화제들과 다양한 상영회들도 프리미어 영화나 국내 미개봉작들을 상영하곤 하니 이런 식으로 공개된 새로운 영화까지 다 합하면 이미 셀 수 없을 지경이다. 더구나 넷플릭스, 와챠 등의 OTT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는 오리지널 영화들과 독점 공개작까지 더하면 우리는 이미 평생을 봐도 다 볼 수 없는 영화 더미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올해 2월부터 갑자기 상황이 달라졌다. 코로나19는 영화산업과 극장, 극장과 관객이 만나는 길목을 틀어막고 누구도 쉽게 오갈 수 없게 만들었다. 관객은 극장에 가는 걸 꺼리고, 관객이 없으니 개봉하지 못하는 영화들이 점점 많아지고, 개봉 영화가 없어서 관객이 극장을 찾질 않은 악순환은 수개월째 반복되고 있다. 영화제 역시 대부분 축소 또는 온라인으로 운영되면서 상영작 수도, 참여 관객 수도 확연히 줄었다. 산업 구석구석에 이익을 분배하며 순환하던 영화산업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둔해졌고, 겨울과 함께 3번째 대유행이 시작되자 산업은 거의 멈출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고통 섞인 신음소리는 더 커졌다. 그러나 IT 기술과 자본을 기반으로 전통의 극장산업과 경쟁하던 OTT 플랫폼만은 이 와중에도 홀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순환이 멈추고 산업과 극장이 위험에 처하자 사람들은 갑자기 그동안 별로 상상해본 적 없었던 극장의 죽음에 대해, 극장과 영화의 상관관계에 대해, 그리고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모두가 영화산업과 영화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지금은 명백히 극장을 기반으로 하는 영화산업의 위기다. 그러나 지금이 영화의 위기인가? 지난 10년간 영화산업은 일정한 틀에 맞춘 비슷비슷한 영화들을 양산하고 있었고, 극장은 모든 영화를 똑같이 대한 적이 없었다. 독립예술영화는 스스로 순환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영화계 전반에 걸친 불평등의 문제는 사회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최근 몇 년간 더욱 심화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난 2월 이후 코로나19로 초토화되어버린 극장을 지킨 태반의 영화는 산업과 자본이 만든 상업 영화들이 아니라 극장이 평소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독립예술영화들이었다. 코로나19가 촉발시킨 산업의 위기는 손해 보는 걸 견디지 못하는 산업이 자초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 다시 떠오른 질문. 지금이 영화의 위기인가? 다큐멘터리 전문 계간 웹진 <DOCKING>의 2020년 겨울호에는 지난 11월 6일 세상을 떠난 아르헨티나의 영화감독 페르난도 솔라나스를 기억하는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씨의 글이 실렸다. (http://www.dockingmagazine.com/contents/21/177/) 이 글의 일부를 공유한다. 1970년 글라우버 로샤, 장 마리 스트라우브, 미클로스 얀초, 사이먼 하르톡이 로마에서 만나 정치 영화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하르톡은 로셀리니가 '영화는 죽었다'는 말에 동의하는지를 물었고, 장 마리 스트라우브는 이렇게 대답한다. “산업이 사라지면 영화가 시작됩니다. 기다리고 있지만, 우리는 20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겁니다.” 이어지는 글라우버 로샤의 대답: “내 생각에 위험한 것은 바로 산업의 원리인 것 같습니다. 영화는 생산과 소비의 시스템에 의존하는 유일한 예술 활동입니다. 왜냐하면 돈이 들기 때문에, 시나 소설을 인쇄하기 위해 편집자가 필요하더라도, 반면에, 각본은 출판될 수 없기 때문에, 회전하지 않으면 시장 가치가 없습니다. 오늘날 영화제작자가 겪는 어려움은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1970년 혈기 넘치던 최고의 청년 감독들이 통찰한 영화와 영화산업 사이의 모순은 20년 하고도 30년을 더 기다렸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코로나19는 지금 영화산업이 처한 위기의 결정적 요인이 분명하지만, 근본적인 요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 누군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면 상업 영화 만이 살아남지 않겠냐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1895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후 지난 125년간 끊임없이 위기를 겪어왔다. 그 위기는 대부분 신기술과 자본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지만 창작자들은 매번 실패를 반복하며 그 위기를 극복했다. 지금의 이 위기 역시 누군가에겐 절망의 시간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시간일 것이다. 산업의 지형도가 달라질 순 있겠지만 영악한 지금의 산업이 쉽게 폐허가 될 리 없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떤 영화든 예외 없이 산업일 뿐 아니라 창작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어떤 영화는 폐허 속에 묻히겠지만, 어떤 영화는 살아남아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모두가 위기라고 생각하는 지금, 우리는 산업이 아니라 창작자들을 지켜내는 데에 더 집중해야 한다. 올해의 사사로운 리스트에는 일 년 내내 머리 속에 가득했던 이런 생각들과 함께 골라낸 영화들을 담았다. < 공포분자 >(1986), <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2020), < 라이트 하우스 >(2019), < 바쿠라우 >(2019), < 분화구의 두 사람 >(2019), < 애틀란틱스 >(2019), < 언컷 젬스 >(2019), < 트랜짓 >(2018), < 퍼스트 카우 >(2019), < 휴가 >(2020).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영화들의 리스트이며, 산업의 징후 같은 영화이거나 산업이 없으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영화이거나 산업 같은 거 없어도 얼마든지 생명력을 이어갈 영화의 이름들이다. 리스트를 만들다가 다른 분들이 소개하지 않을 것 같아 자세하게 소개하고 싶어진 영화가 두 편 있었다. 첫 영화는 아라이 하루히코의 <분화구의 두 사람>. 이상한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인간의 육체와 사랑을 말랑말랑하고 끈적이게 담아내면서도 인간의 내면을 잘 들여다보고 있었다. 기묘하게 자유로웠고, 기묘하게 공허했으며, 기묘하게 시대의 공기를 담아내며 공감을 이끌어냈다. 언젠가 조금 더 자세하게 소개할 기회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또 하나의 영화는 클레버 멘도사 필루와 줄리아노 도르넬레스가 공동으로 연출한 브라질 영화 <바쿠라우 Bacurau>다. 이 기묘한 영화에 처음 관심이 갔던 건 클레버 감독이 연출한 두 편의 전작 < 네이버링 사운즈 >(2012)와 < 아쿠아리우스 >(2016) 때문이었다. 사실 <바쿠라우>는 클레버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이자, 줄리아노 감독의 장편데뷔작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영화적 동료로서의 두 감독의 관계(줄리아노는 클레버 감독의 전작들에서 프로덕션 디자인은 전담했다)와 클레버 감독의 전작들과 연결되는 영화의 세계관을 고려하면 <바쿠라우>는 실질적으론 클레버 감독의 영화라 해도 무방하다. 영화는 내 예상과 달랐지만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싶어진 건, 피칠갑을 한 이 영화가 지난 몇 년간 봤던 몇몇 중요한 장르 영화에서 발견한 징후와도 같은 특징-가장 파괴적이고 상징적인 형태로 정치적 사안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장르 영화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쿠라우>는 <기생충>이 작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 <레 미제라블>과 함께 공동으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브라질의 정치적 이슈 때문에 칸영화제 기간 꽤 화제가 되었고, 쟁쟁한 경쟁작들을 제치고 결국 큰 상을 받았기 때문에 <기생충>과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작년과 올해 훨씬 더 화제를 되었을 영화였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올해의 베스트 영화 리스트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요즘, <바쿠라우>는 각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다시 회자되고 있다. <바쿠라우>를 연출한 클레버 멘돈사 필루는 최근 10년간 등장한 남미 출신의 가장 주목할만한 감독 리스트를 만들 때 가장 위쪽에 놓을 수 있는 몇 개의 이름 중 하나다. 남미 출신 감독으로는 2016년 이후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그것도 두 번이나. 1968년생. 올해로 53세다. 20대 중반부터 단편 작업을 하며 영화평론가와 영화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그의 모든 장편영화의 오프닝에서 볼 수 있는 CinemaScopio는 자신의 제작사 이름이지만 평론가 시절 만든 자신의 홈페이지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45세가 되던 2012년, 첫 장편데뷔작 <네이버링 사운즈>를 연출했다.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이 영화는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 평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4년 후에 완성한 두 번째 장편영화 <아쿠아리우스>는 2016년 칸영화제 경쟁 부문으로 직행했다. 여우주연상의 강력한 후보였지만 수상의 기쁨을 누리진 못했다. 그러나 2016년 전 세계 거의 모든 베스트 영화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정식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지 4년 만에 전 세계 영화계와 평단에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그리고 다시 3년 후 세 번째 장편영화 <바쿠라우>를 완성했고, 다시 한번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대받았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바쿠라우’는 브라질의 오지에 있는 가상의 지명이자 마을의 이름이다. 이 마을에는 다양한 인종, 연령, 성향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다. 이 공동체를 이끌던 고령의 흑인 여성 리더 카르멜리타가 세상을 떠나자 마을 사람들은 함께 장례식을 치른다. 식이 끝나자 마을 주변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지역 정치인의 무능으로 진작에 수도가 끊긴 바쿠라우에 물을 나르던 물탱크 트럭이 총격을 받고, 통신 장애가 발생하고, 인터넷 지도에서 바쿠라우가 사라지더니, 느닷없이 낯선 외지인들과 함께 원반 형태의 드론이 목격된다. 이 모든 일은 지역 정치인의 사주를 받고 중무장한 미스터리한 백인 일당이 저지른 일이다. 이들은 마치 사파리에 가서 돈을 주고 사냥을 즐기는 관광객처럼 보인다. 차이가 있다면 이 사냥의 대상이 동물이 아니라 사람일 뿐이다. 선발대를 보내 마을을 살펴본 이들은 별 죄책감 없이 게임을 즐기듯 바쿠라우를 습격하여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려 한다. 위기를 감지한 바쿠라우 주민들은 도망자인 트랜스젠더 룽가를 중심으로 함께 힘을 모아 외부에서 온 잔인한 이방인들을 처단하고 결국 삶의 터전을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사실 ‘바쿠라우’는 노예제도가 존재했던 17세기 브라질, 농장에서 도주한 노예(시마론 Cimarron)들이 건설한 공동체 마을 ‘낄롱부 Quilombo’를 연상시킨다. 낄롱부를 건설한 시마론들은 생존을 위해 외부와 단절하고, 내부를 결속시켰다. 때때로 노예들의 도주를 돕거나 농장을 습격하기도 했다. 현재 브라질에는 2천 개가 넘는 낄롱부 형태의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영화 속의 ‘바쿠라우’는 ‘리믹스된 낄롱부 remixed quilombo’라고 할 수 있다. ‘바쿠라우’가 낄롱부에서 영감을 얻어 창조된 공간이라는 건 주민들이 밤에 모여 희생자를 추모하며 브라질의 전통 무예인 카포에이라를 추는 장면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백인, 원주민, 흑인, 트랜스젠더 등으로 이루어진 주민들은 이 의식을 통해 저항의 역사를 공유하고 새로운 싸움을 준비한다. 그렇게 ‘바쿠라우’는 가난하지만 존엄한 공동체, 저항의 역사적 공간으로 변모한다. 클레버 감독은 이 장면에서 <더 워드>(2010) 이후 음악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존 카펜터의 인더스트리얼 뮤직 ‘Night’를 그대로 활용한다. 그리고 이 음악의 뮤직비디오에서 백인 일당의 시각적 이미지를 차용한다. 공포 영화의 거장에 대한 이같은 오마주는 이 영화가 어떤 장르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바쿠라우>는 마치 민족지 영화처럼 가상의 역사적 공동체가 놓인 지리적 환경과 주민들의 일상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의 1/3지점부터 장르 영화의 조짐을 보이더니 중반에 접어들면서 SF, 스릴러, 호러, 웨스턴 등 온갖 장르가 뒤섞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스파게티 웨스턴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적 배경(선인장, 말, 총, 인종차별적 악당) 속에서 마지막까지 긴장과 힘을 유지하며 정부의 무능과 부패, 식민주의의 모순 같은 정치적 주제까지 그 세계를 점차 확장해 나간다. 점점 피범벅으로 변해가는 이 영화에서, 잔혹한 폭력은 약자의 생존과 권리가 위협받을 때 권력과 힘에 저항하여 공동체를 지켜내는 필수 도구로 묘사된다. 앞에서 언급했듯 장르 영화는 기본적으로 가장 파괴적인 형태로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고, 평론가 출신의 클레버 감독은 이런 장르의 관습과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 종종 이 영화를 설명하면서 ‘디스토피아적 웨스턴’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유사한 장르 영화나 타란티노의 몇몇 영화들의 이름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다. 그러나 <바쿠라우>는 물론 장르적 쾌감으로 가득한 장르 영화지만 오히려 장르의 전통과 관습을 최대한 활용하여 완성한 강력한 정치 영화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정치 영화는 부조리한 현실을 바탕으로 한다. 2019년 브라질의 남동부 리우데자네이루의 주지사는 범죄자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무장 요원과 스나이퍼들을 시내 빈민가에 은밀하게 배치하여 비판을 받았다. 2018년 10월 브라질 대통령으로 당선된,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정치인 자이루 보우소나루는 경찰이 더 많은 범죄자를 사살해야 한다면서 범죄자들을 재판 회부보다는 약식 처형(총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BBC의 보도에 따르면 브라질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시민들의 숫자는 2019년 한해에만 하루 평균 5명, 총 1,810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쿠라우>가 담으려고 하는 건 동시대 브라질의 이러한 현실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현실을 은유적으로 담아내면서 비판을 멈추지 않는다. 영화의 시점을 ‘지금으로부터 몇 년 후’로 설정하여 ‘영화 속 현실이 곧 다가올 실제 현실과 별다를 게 없다’는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아내는가 하면, 무능하고 부패한 지역 정치인 토니 주니어와 그의 사주를 받은 잔인한 백인 그룹을 통해 브라질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영화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잔혹한 복수극으로 영화를 끝낸 다음 마지막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 검은 화면 위로 3줄로 된 자막이 뜨는데, 이런 문장이 쓰여 있다. “이 영화는 800개 이상의 일자리와 함께 국가와 문화, 산업의 정체성을 직간접적으로 창출했습니다.” 과거 국책영화에서나 볼 법한 이 낯선 문구는 건조하고 단정하게 씌여있지만 칸영화제가 개최되기 약 4개월 전에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한 연설에 대한 감독의 답변이자 풍자이며 냉소의 표현이다. 그렇다고 <바쿠라우>가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프로파간다식의 정치영화는 아니다. 클레버와 줄리아노의 방식은 훨씬 정교하고 유희적이며 영화적이다. 그들은 정치적 메시지를 담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교하게 구축된 영화적 서사를 중심에 두고 다양한 장치를 통해 정치적 의미를 창조해낸다. 특히 클레버 감독은 과거의 시간이 축적되고 압축된 공간을 영화적 공간으로 활용하는 데 능하다. 장편 데뷔작 <네이버링 사운즈>는 감독의 고향인 헤시피의 한 중산층 동네를 배경으로 한다. 동네 건물의 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지주 프란치스코와 그의 조카 주앙을 중심에 두고 동네의 안전을 위해 사설 경비 업체가 들어오면서 생기는 마을의 미세한 변화를 담는다. 이 영화에서 쇠창살과 철제 대문, 감시 카메라와 사설 경비원 같은 현대적 안전장치들로 대표되는 기술적 모더니티는 이웃의 접근을 차단하고 중산층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이 동네는 피로 물든 식민주의 역사의 산물이다. 폐허가 되어버린 과거의 공간, 피로 물든 폭포 속에 선 지주의 후예인 주앙의 모습, 그리고 역사적 피해자의 후손과 지주와의 직접 대면하는 장면은 감독이 담아내고 싶었던 정치적 의미를 극적으로 창조해낸다. <아쿠아리우스>의 핵심 공간인 주인공의 오래된 빌라도 마찬가지다. 음악 평론가 클라라는 지속적인 철거의 위협 속에서도 과거의 기억이 켜켜이 쌓여있는 집을 자본가에게 내주지 않기 위해 싸운다. 문화와 역사의 아이콘인 클라라의 고집과 싸움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역사를 지키려는 저항과 투쟁의 몸짓인 셈이다. 영화는 유려하게 과거와 현재, 클라라의 집과 외부를 오가며 이 모든 걸 담아낸다. 클레버 감독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영화의 핵심이 되는 공간의 실제 과거 사진을 활용하여 자신의 영화적 의도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낸다. <네이버링 사운즈>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헤시피의 옛 지명 페르남부쿠에 살았던 당시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을 연달아 보여주는 시퀀스로 시작하고, <아쿠아리우스>는 오버헤드숏으로 찍힌 해변 도시 헤시피의 과거의 모습 - 보아비아젱 해변의 모습과 오래된 차들로 가득한 길게 뻗은 거리, 거대한 고층 건물이 슬럼가를 대체하는 부감 쇼트의 흑백사진들을 연달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바쿠라우>에서는 마을의 작은 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과거 사진들과 리더 카르멜리타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여준다. 특히 <바쿠라우>는 공간의 지리적인 면을 중요하게 다루는데, 우주의 인공위성에서 남미, 브라질, 바쿠라우로 하강하며 좁혀들어오는 오프닝숏은 로컬리티가 고스란히 담긴 공동체를 세계의 중심, 서사의 중심에 놓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네이버링 사운즈>에서 시작되어 <아쿠아리우스>를 경유한 다음 <바쿠라우>로 수렴된 클레버 멘돈사 필루와 줄리아노 도르넬레스의 세계는 시간이 축적된 영화적 공간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과 함께 역사를 소환한 다음, 강력한 저항을 촉구한다. 이 세계는 영화적 전통과 관습, 현실의 로컬리티와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가 정교하게 뒤섞여 있으며, 무엇보다 변하지 않는 기존 부조리한 질서에 대한 저항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믿음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뜻밖에도 이 세계는 1970년 브라질의 선배 감독 글라우버 로샤가 가졌던 영화산업의 모순과 산업 논리가 가진 위험성, 이를 극복해야 하는 영화제작자의 숙명에 대한 문제의식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계승하고 있으며, 코로나 시대가 영화산업과 영화에게 던지는 질문과도 그 맥이 닿아있다. 저항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 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항하지 않으면 세상은 어떤 답변도 알아서 내놓지 않는다. 따라서 장르 영화의 전통 속에서 저항과 투쟁으로 스스로를 구원하는 과정을 담아낸 <바쿠라우>는 다시 한번, ‘저항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선언과도 같은 이 문장이 명제가 아니라 믿음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삶은 그 믿음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60년대 이후 한국영화, 하면 ‘충무로’였잖아요. 근데 지금 충무로에 있는 영화사가 거의 없거든요.”(임필성 감독) “충무로란 단어가 주는 올드함, 다가가고 싶지 않은 비호감의 이름을 껴안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을지로가 ‘힙지로’가 되고, 이날치의 국악 공연이 주는 신선함처럼 즐길 수 있는 ‘힙함’을 만들고 싶었죠.”(민규동 감독) ‘THE CMR-디렉터스 위크’. 올해 한국영화감독조합과 새롭게 손잡고 출범한 제5회 충무로영화제(12월 1~5일)의 새 이름이다. 왕년의 한국영화 1번지 충무로의 재탄생이란 의미로 영어 첫 글자만 따온 ‘THE CMR’에 국제영화제란 명칭일랑 떼고, ‘감독주간’이란 뜻의 영문부제(Directers Week)를 달았다. 국내 전무후무한 ‘감독에 의한, 감독을 위한, 감독의 영화제’(슬로건)다. 중구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했다. 프로그래머를 자처한 ‘허스토리’의 민규동 감독, ‘마담 뺑덕’의 임필성 감독을 24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만났다. 충무로엔 2007년 고전영화의 ‘발견, 복원, 창조’를 내걸고 나선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2016년 새 장르로 갈아입은 충무로뮤지컬영화제가 출범했지만 모두 4회 만에 수명을 다한 터. 올해 제5회 영화제가 성사될 수 있었던 건, 앞서 두 영화제를 각각 운영위원장, 예술감독으로서 이끈 김홍준 감독이 개최시기를 두 달여 앞두고 다급히 감독조합 문을 두드리면서다. 윤제균 감독과 더불어 감독조합 공동대표인 민 감독은 “온전히 장르를 감독으로 설정하고 이름도 바꾸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면 해보겠다고 했다”면서 1998년부터 개최해온 감독들이 서로 한해 영화들을 돌아보는 시상식 ‘디렉터스 컷 어워즈’가 토대가 됐다고 했다. “오프라인으로 부딪혀야 재밌는 행사여서 올해 디렉터스 컷 어워즈는 내년으로 넘겼지만, 감독이 중심이 돼서 주차관리, 티켓발급, 테이블세팅, 음식준비, 청소 같은 작은 일까지 직접 호스팅하는 전통이있거든요. 이번(THE CMR)에도 감독들이 전면에 나섰어요. (코로나19로) 좀 세포가 죽어있던, 짓눌렸던 감독님들이 몸 움직이면서 감독으로서 자기 존재감을 워밍업하고, 그런 시기라고 생각했죠.” 영화제는 1일부터 닷새간 네이버TV, 네이버 시리즈on, 틱톡(TikTok), 줌 등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비대면으로 열린다. 구석구석 창작자들다운 아이디어가 가득하다. 개막작 ‘The CMR’은 중구 15개동을 감독 15인이 각기 세로 화면의 단편에 담은 옴니버스 프로젝트. 올해의 장편영화 9편, 단편 10편을 각기 선정한 상영 프로그램 ‘쌀롱 드 씨네마’엔 상영 후 각각을 연출한 감독에게 또 다른 감독이 진행을 맡아 질문하는 관객과의 대화(GV) ‘감감묻(감독이 감독에게 묻다)’도 마련했다. ‘충무로 클라쓰’ 섹션에선 이경미 감독 등이 OTT 오리지널 작품 연출에 대해 말하는 ‘극장을 탈출한 감독들’, 연기자로 출발한 감독들의 체험을 나누는 ‘감독이 된 배우들’, 최근 시나리오 작법서를 낸 오기환 감독의 강연 ‘흥행하는 글쓰기’를 진행한다. ‘한숨 토-크’ 섹션에선 윤제균‧이준익 등 올해 신작 개봉을 연기해야 했던 굵직한 감독들의 ‘코로나 시대 감독살이’, 개막작으로 신개념 세로 영화를 만든 감독들의 분투기도 들을 수 있다. 나원정: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상했나. 임필성: 일정이 타이트하게 진행되는 영화제고 감독들이 다른 사람한테 해달라는 얘기를 주로 하니까, 혼자 할 줄 아는 일이 별로 없잖나(웃음). 고민의 핵심은 감독들이 중심이 된 영화제에서 영화 좋아하는 관객들, 영화학도들한테 보여줄 수 있는 게 뭘까였다. 두 번째는 저희 감독조합 회원이 370명 정돈데 감독들도 다른 감독들의 작업에서 어떤 걸 궁금해 할까. 마스터클래스(충무로 클라쓰)도 원래 영화감독인데 OTT 화제작을 찍은 이경미 감독을 모셔와서 어떤 일이 있었나 저부터 궁금했다. 마스터클래스는 사전 녹화했는데 촬영하던 강대규 감독도 도중에 진지한 질문을 막 하더라. CG가 많지않은 영화를 주로 찍던 이경미 감독이 한 에피소드에 CG 몇백컷짜리 작품을 찍었잖나. 젤리 괴물의 첫 소스는 뭐였고 창작 과정에 어떤 괴로움이 있었는지 저부터 궁금했으니까. 또 배우와 감독을 겸업하거나 아예 감독 변신한 배우들이 많아지니까, 왜 오게 됐을까 묻고 싶었다. 한국 감독의 80% 이상이 시나리오를 겸해서 쓰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얘기하면 재밌지 않을까. 상영 프로그램도 올해 개봉한 독립영화 대표작, 상업영화 흥행작과 영화제 수상 단편 및 해당 감독의 전작 단편까지 한눈에 정리할 수 있게 마련했다. 색깔은 좀 없을지 몰라도,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영화제에 쫓아가서 볼 수 없었던 감독, 관객들 한번에 보면 소위 얘기하는 충무로 정신, 충무로의 문화와 이어지는 면이 있지 않을까. 내년을 위한 일종의 ‘프리 페스티벌’로 준비했다. 민규동: 게으른 자들을 위한 컴필레이션인 셈이다(웃음). 나원정: 감독조합은 올해 OTT SF 시리즈 ‘SF8’, 여성주의적 영화를 고찰한 ‘벡델데이’ 등 새로운 플랫폼, 인식에 꾸준히 도전해왔는데, 이번 개막작도 세로란 점이 신선하다. 민규동: 영화제도 새로워지고 공간도 새로워지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새로, 새로’ 하다가 ‘세로로 찍자’고 결정했다(포스터에 적힌 ‘충무로, 새(세)로 보다’에도 ‘새’와 ‘세’를 합한 형태의 글자가 사용됐다). 감독조합 밴드에 공고를 받아서 추첨을 통해 4대 1 경쟁을 뚫고 당선된 15명에게 행정동을 추첨으로 나눠주고 영화 ‘사랑해, 파리’처럼 미션을 주고 찍었다. 제작비 300만원 주고 한 달 동안 알아서 찍으랬다. 세로란 느낌이 특화된 영화도 있고 여전히 가로와 세로가 구분되지 않는 영화도 있다. 다들 고민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대화샷을 못 찍고 풀샷의 개념이 달라지니까. 위아래조차 달라지기 때문에 자기가 익숙한 언어를 뒤집어야 한다. 스마트폰으로 한 번도 안 찍어본 감독님이 강의를 듣고 공부해서 시작한 작품도 있다. 이옥섭 감독님의 ‘동화동’은 구교환 배우가 나와서 본 적 없는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신아가 감독님의 ‘신당5동’도 몰입감이 굉장하다. 임필성: 2분이든, 3분이든 짧은 작품이라도 감독한테 좋다고 생각한다. 정규 영화 하겠다고 5년, 10년 기다리면 감독의 정체성이 모호해진다. 이번 개막작도 일종의 짧은 작품이라도 만들 기회를 주는 일종의 수요 창출이다. 네이버TV는 전체 15편을 각 4분짜리 풀 버전으로 개막일부터 볼 수 있고 틱톡에선 3분짜리 재편집된 버전을 개별 관람할 수 있다. 나원정: GV와 토크 관람은 무료지만 직전에 상영되는 장‧단편 상영작 온라인 관람은 1,000원(장편 기준)가량 결제해야 한다. 상영작을 행사 스케줄에 맞춰 실시간 온라인 상영하는 점도 새롭다. 앞서 국내 비대면 영화제들에선 잘 시도하지 않은 방식이다. 민규동: 신개념 시도다. 코로나에서 살아남은 영화들, 개봉 성공했다고 하지만 직접 GV, 무대인사를 못 했잖나. 또 단편은 1+1로 감독의 전작까지 튼다. 모두 한 시간씩, 원하는 스태프, 배우 다 데려와서 모든 진행은 감독조합 소속 감독이 맡는다. 감독들이 딱 한 주간만이라도 자기 정체성이 존중받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밀도 있게 할 수 있는 시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각 제작사와 협의해서 성사했다. 나원정: 장편 상영작은 독립영화 ‘69세’ ‘남매의 여름밤’ ‘찬실이는 복도 많지’부터 상업영화 ‘남산의 부장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오케이 마담’ ‘반도’ 등 선정 폭이 넓다. 민규동: ‘SF8’처럼 플랫폼은 다변화되는데 그런 작품이 갈 수 있는 영화제 성격은 정해져있더라. 이번 선정작엔 영화제 환영작뿐 아니라 아주 대중적인 영화도 담았다. 임필성: 상업영화는 나름의 신선한 시도를 하고 관객한테 의미 있는 평가를 받아도 비평가가 인정하지 않거나 흘러가버리곤 한다. 어떤 배우의 오랜만에 너무 의미 있는 복귀작이라거나, 기술적으로 굉장히 새로운 제시를 했다거나, 흥행성이 아쉬워도 최소 100명은 더 볼 가치가 있는 영화들이 감독 입장에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찌어찌 종합상차림처럼 됐는데 개성 없는 게 개성인 것 같다. 민규동: 뮤지컬, 건축, 무용…. 넘치는 영화제 속에서 또 하나의 영화제가 공해가 되지 않으려면 의미가 있어야 한다. 감독 자체를 장르로 삼는 영화제는 무한한 확장성이 있다고 본다. 프로듀서, 배우 등도 모두 감독의 관계망으로 풀어갈 수 있으니까. 이번 영화제에선 ‘오케이 마담’의 주연 배우 엄정화, ‘담보’의 성동일처럼 평상시 GV에서 잘 만나기 어려운 배우들도 참석해 이야기를 나눈다. 민규동 감독은 이전에도 감독들의 비전을 담은 영화제를 부산영화제, 전주영화제 등에 제안하며 고민해왔다고 했다. 부산영화제에서 신인감독에게 주는 감독조합상 ‘비전상’이 그런 결과물의 한 예다. 하지만 단순한 시상을 넘어 기존 프로그래머, 평론가와 다른 시선으로 작가, 감독의 영화를 프로그래밍하는 다른 성격의 비전을 새로이 시도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올해 ‘프리 페스티벌’ 이후 내년엔 어떤 영화제의 모습을 꿈꿀까. 코로나 상황이 개선된단 가정 하에 그가 답했다. “큰 영화제와 작은 영화제의 갈림길이 오프라인 행사죠. 상황이 가능해진다면 대면 방식의 정통 영화제 형식을 확장시켜보고 싶은 몇몇 아이디어가 있어요.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는. 극장을 벗어나 맛집, DDP, 덕수궁, 남산타워도 가고.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방식에 엄숙주의를 최대한 빼고 좀 더 즐길만한 방식이면 좋겠습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2>가 궁금하다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홍원찬 , 2020)를 보았다. 타격감을 강조한 액션 연출이나 황정민 , 이정재 , 박정민 배우의 강렬한 연기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건 사건의 무대가 되는 국가마다 폭력의 전개 양상, 또는 강도가 크게 다르다는 점이었다. 일본에서 야쿠자와 싸우는 인남(황정민)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아지트에 잠입하고 총은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특히 최종 목표를 노릴 때는 줄로 목을 조르는 방법을 택했으며, ‘일’을 끝낸 뒤에도 위장한 채 얌전히 현장을 벗어난다. 레이(이정재)도 마찬가지다. 레이는 언뜻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저지르고 보는 캐릭터 같지만 시마다(박명훈)를 죽일 때는 다른 이들의 손까지 빌려가며 가능한 신중하게 남들의 눈을 피하려 한다. 한국에서는 폭력의 세기가 좀 더 약해진다. 인남의 동료들은 소음기가 달린 총으로 어두운 밤에 비밀스럽게 사람을 죽이며, 레이의 살인 과정은 아예 생략된다(아마 몰래 잠입해 칼로 죽인 것으로 보인다). 플래시백으로 등장하는 인남의 총격신 역시 엘레베이터 안의 한정된 공간에서만 벌어진다. 이 폭력들은 작은 규모로 빠르게 일어나며 폭력 후의 수습에 더 많이 신경쓰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들의 시선을 끌지 않는 걸 목표로 한다. 반면 태국에서는 상황이 갑자기 크게 변화한다. 레이는 일본이나 한국에서와는 달리, 마치 자신의 정체를 숨길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큰 칼과 중화기로 무장한 채 도심을 휘젓고 다니고 지금까지 비밀스럽게 행동했던 인남 역시 레이에 맞서 폭력의 강도를 높인다. 그 결과 관객이 보게 되는 건 거리를 가득 채우는 총성, 화염이 치솟는 폭발로 쑥대밭이 된 골목 그리고 널부러진 시체들이다. 즉, 태국에서 벌어지는 폭력들은 일본과 한국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규모와 성격으로 그려진다. 이때 한 가지 더 눈여겨볼 건 주인공들이 국경을 넘는 순간, 다시 말해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이동하는 장면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인공들은 일본에서 한국, 한국에서 태국, 태국에서 파나마로 옮겨다니지만 감독은 이들이 비행기나 배를 타는 이동의 순간을 단 한 숏도 그리지 않는다. 숏이 바뀌면 인물은 이미 그 국가에 도착해있으며, 국가 간 이동은 마치 순간 이동처럼 간단하고 빠르게 이루어진다. 이처럼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이동하는 과정을 과감히 생략한 연출로 인해 주인공이 도착한 국가에 따라 폭력의 세기가 달라지는 특징이 더욱 도드라진다. 다시 말해 레이와 인남은 어디서든 자신의 일관적인 행동 양식을 고수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장소에 따라 행동 양식을 즉각 바꾸는 예측 불가능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려 폭력의 강도를 신중하게 조절하던 일본과 한국에서의 레이가 태국에 도착하자마자 얼굴에 피를 잔뜩 묻힌 채 거리를 돌아다니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적어도 폭력에 관한 행동 양식만 놓고 보면 일본-한국의 레이와 태국의 레이가 같은 캐릭터라고 보기 어렵다. 인남 역시 딸의 구출을 알리바이 삼아 일본-한국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과감하고 거친 행동을 선보인다. 특히 레이가 범죄 조직은 물론 국가 공권력인 경찰 특공대와 아무 예고 없이 전면전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약간 당혹스러운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러니 태국에서 펼쳐지는 액션 장면들을 캐릭터 구축의 개연성 관점에서 비판할 수도 있다. 단지 다른 국가에 갔다는 것만으로 다른 캐릭터처럼 행동하는 모습은 분명 납득하기 힘든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단점으로 지적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이런 불균질한 측면이 쉽게 예측하기 힘든 긴장을 서사에 부여하고 예고 없이 터져 나오는 폭력이 어떤 쾌감을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태국 범죄 조직의 두목 앞에서도 일단 폭력부터 먼저 행사하고 보는 레이의 모습에서는 일본-한국에서 응축한 긴장을 일순간 폭발시키는 것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예외적 폭력을 위한 간편한 무대를 마련하기 위해 태국이란 이국적 공간을 손쉬운 도구로 사용했다는 의심이 들긴 하지만, 세 개의 국가를 무대로 펼쳐낸 서로 다른 성격의 폭력 묘사, 또한 이 과정에서 자신의 행동 규범을 그때그때 손쉽게 바꾸는 인물을 보는 건 정말 즐거웠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독특한 개성 역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맥락에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속편이 보고 싶어졌다. 만약 다음 이야기의 중심이 태국이나 다른 외국이 아닌 한국이라면 감독은 과연 어떤 폭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장르는 언뜻 리얼리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상상을 펼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장치 같지만, 결국 모든 영화는 현실의 조건을 (무)의식적으로 반영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한국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액션에 어떤 제약을 부여하는 공간이었고 이 때문에 본격적인 활극의 무대가 되지 못했지만, 만약 한국이 이야기의 중심이 됐을 때 그 영화의 주인공들이 어떤 성격의 폭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보고 싶다. 즉,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이 아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에서도 감독은 예외적인 강렬한 폭력의 순간을 그릴 수 있을까? 비록 영화는 파나마의 이국적인 풍경으로 끝났지만 한국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더욱 강렬한 흥미로운 장면을 선사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