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도시
- 감독
- 웨인 블레어
- 제작년도
- 2015
- 출연
- 에드리언 브로디, 셀마 헤이엑, 쇼레 아그다쉬루, 나비드 아카반, 가브리엘라 라이트, 아론 어붓볼, 바샤 라할, 안소니 아지지
무더위가 기지개를 펴는 지난 초여름 어느 날, 콩닥콩닥 가슴 설레며 프랑스 앙시로 현장실습을 떠나는 학생들에게 기막힌 뮤직비디오 한 편을 메신저로 날려 보냈다. 오렌 라비(Oren Lavie)의 < 그녀의 우아한 아침 Her Morning Elegance >이 몽블랑 아랫마실 앙시 호숫가의 느리고 여유 있게 움직이는 객체들을 멋진 영상으로 표현해야 하는 학생들의 창작활동에 도움을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Sun been down for days 며칠째 해가 나오질 않네요. A pretty flower in a vase 꽃병 속엔 어여쁜 꽃 A slipper by the fireplace 벽난로 옆엔 슬리퍼 한 짝 A cello lying in its case 케이스 안에 누워있는 첼로 Soon she's down the stairs 이제 그녀가 계단을 내려와요. Her morning elegance she wears 그녀가 갖춘 아침의 우아함 The sound of water makes her dream 물소리가 그녀를 꿈꾸게 하네요. 작품의 도입부는 읊조리는 음악과 함께 묘한 현기증 일으키는 스톱모션(픽실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느낌은 프랑스 슈농소 성 앞에 놓인 이브 생 로랑의 장식용 양 조각이 삶의 풍요를 위한 미적 환영이 된 것처럼, 고립된 평면 침상을 무한공간으로 확장한 작가의 발칙한 상상력이 3분여간 펼쳐진다. 제작예산문제로 ‘이틀’이라는 짧은 촬영기간 동안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프레임마다 놀랍도록 섬세하게 연출한 손가락, 발가락, 머리카락의 신체 언어, 음악에 똑 떨어지게 맞춘 립싱크, 그리고 < 라라랜드 >를 넘어서는 여주인공 쉬르 숌론(shir shomron)의 매혹적인 잠옷 댄싱까지 모든 것이 보는 이의 가슴을 뛰게 한다. 앙시의 현장실습을 다녀온 날로부터 짙은 여독과 함께 잠 못 이루던 열대야가 뜸해지는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영상자료원으로부터 꽤 오랜만에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을 추천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더위가 꺾이는 말복까지 여러 날을 지나며 개인적으로 아카이빙했던 자료와 영화제 본선작, 최신 업로드된 유튜브를 뒤졌지만 마땅한 작품을 찾지 못한 채 흔들의자에서 선잠이 들고 말았다. 그러던 중 꿈결에서 불현듯 오렌 라비의 < 그녀의 우아한 아침 >이 떠올랐다. 아마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새로운 뉴스가 연일 이어지면서 어지럽고 살벌한 악의 도시 ‘고담시’로 박제화 되어가는 우리나라와 세계 곳곳의 공포현실에 부드러운 충격 완화제가 되길 기대하면서 이 작품을 무의식중에 선택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시각극장’(1892), <하르피아>(1979) 현대는 100년 세월이 10년, 10년 발전이 1년 만에 이루어질 정도로 쫓아가기 벅찬, 총알같이 빠른 급변의 세상이 되었다. 에밀 레이노가 프락시노스코프를 이용해 만든 ‘시각극장’(1892)의 마술 같은 시각놀이와 라울 세르베가 연출한 <하르피아 Harpya>(1979)의 기묘한 영상이 당시로서는 ‘억’ 소리 나는 충격이었겠지만 이제는 낡은 골동품이 된 것처럼, 라이드 머신에 쌀랑한 에어컨 바람과 입안을 톡 쏘는 얼음 콜라를 마셔도 다가오는 졸음을 쫓기 어려워진 그렇고 그런 3D 애니메이션들이,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의 이종교잡으로 진화한 간사하고 예민한 감성을 가진 인간들에겐 식상해진 시대가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 그녀의 우아한 아침 >은 세계 최고의 스톱모션회사 라이카(Laika)의 장편 애니메이션 < 쿠보와 전설의 악기 >(2016)에 비견해도 손색없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작가 자신이 직접 부르고 녹음한 음악에 범상치 않은 영상의 일탈을 잘 녹인 보기 드문 걸작으로, 기법면에서는 죠르쥬 멜리어스의 < 달세계 여행 >(1902)에서 출발한 특수효과나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그리고 이제는 변곡점 시대에 이른 3D입체영상과는 거리가 있지만 전통적인 스톱모션과 세련된 메타몰포시스 영상 언어, 그리고 시적 몽타주 기법을 에셔의 초현실 그림처럼 우아한 몽환으로 엮어낸 빼어난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오렌 라비는 앨범 전체의 작사, 작곡은 물론 가수로 출연하고, 감독까지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음악 작업 외에도 극작가, 연극 연출가, 무대 감독, 동화 작가를 종횡무진 오가는 다재다능한 예술적 소양을 갖춘 아티스트다. 올해는 오렌 라비의 철학적인 우화에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의 독일 그림작가 볼프 에를브루흐(Wolf Erlbruch)의 섬세하고 고풍스러운 일러스트 협업으로 또 한편의 어른아이들을 위한 명작동화 『아무도 몰랐던 곰 이야기』도 출간하였다. 그 동화책의 한 대목이 머리와 가슴으로 쏘옥 들어온다. “와우 멋진걸! 내가 정말 ‘나’였으면 좋겠어” ... ... “아! 네가 나구나!”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아무도 몰랐던 곰 이야기』 한편 오렌 라비와 공동 연출을 담당했던 유발 나단, 메라브 나단(Yuval Nathan, Merav Nathan) 부부는 여러 편의 스톱모션 뮤직비디오와 단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필모그래피를 가지고 있다.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의 시를 시각적으로 잘 해석한 <로빈 Robin>(2014)과 모래 질감의 속성을 잘 살린 <바다거북의 노래 Lose This Child>(2010)는 또 한편의 감수성 진한 뮤직비디오라고 할 수 있다. <로빈>(2014), <바다거북의 노래>(2010) 혹시 점심시간 전이라면 오렌 라비의 < 그녀의 우아한 아침 >을 애피타이저로 식욕을 돋우고, 식사 끝난 오후라면 중독성 있는 부다바(buddabar)의 라운지음악 ‘Hotel Costes vol 10- paper aeroplane’을 디저트로 들으면서 고소달콤씁쓸한 거품이 코끝을 적시는 피넛키오와 아인슈페너의 절묘하게 변해가는 커피 맛을 생채기 난 감성의 치유제로 권해본다. Where people are pleasantly strange 사람들이 유쾌하게 낯설고 And counting the change 잔돈을 세고 있는 곳 And she goes 그리고 그녀가 가네요. Nobody knows 아무도 모르게 Nobody knows 아무도 모르게 Nobody knows 아무도 모르게
철콘 근크리트? 개봉한 지 10년이 훌쩍 지났건만, 좀처럼 입에 찰싹 달라붙지 않는 몇 안 되는 제목 중 하나이다.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아이들이 철근 콘크리트를 잘못 발음하는 것에 착안해서 붙여진 제목이란다. < 철콘 근크리트 >는 일본만화계에서 독창적이고 천재적인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마츠모토 타이요의 3부작 동명 만화 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겨 놓은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 속 세상은 캐릭터와 배경뿐 아니라 대사와 성우 목소리까지 하나하나 섬세하게 묘사되면서 동시에 독창적인 스타일과 연출로 작품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마츠모토의 개성을 그대로 뿌려 놓았다. 여기에 신의 한 수는 그의 작품이 스튜디오 4도씨와 만났다는 것이다. 스튜디오 4도씨는 전통적인 드로잉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극복한 독창적인 디지털 애니메이션 테크닉으로 가장 주목받아 온 일본의 크리에이터 집단이다. 이들은 모리모토 코지 감독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2D 기법과 3D 디지털 기술을 넘나들며 독특한 화면구성과 실험성 짙은 영상미를 선보여 왔으며, 일본 내에서도 차별화된 스타일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특히 이 작품은 스튜디오 4도씨 설립 이래 처음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 시스템하에서 미국 LA 출신의 마이클 아리아스 감독에게 연출을 맡긴 첫 장편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물의 밀도가 가장 높은 온도가 섭씨 4도씨라는 것에서 영감을 받아 ‘스튜디오 4도씨’라고 작명한 것처럼 밀도 높은 작품을 창작하겠다는 이들의 의지와 철학이 이 작품 곳곳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원작이 기괴한 카메라 앵글을 통해 초현실적인 톤을 보여줬다면, 애니메이션에서는 인간의 눈으로 그릴 수 없는 세상을 광각 렌즈의 독특한 화각으로 도시의 건물들과 거리의 골목골목을 사실적으로 변주하며 빼곡히 담아내고 있다. 이야기는 불량배들과 노숙인들이 모여 사는 다카라쵸라는 곧 개발을 앞둔 무방비 도시에서부터 시작된다. 집도 절도 없이 거리를 떠돌며 지내는 고아 소년 쿠로와 시로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이다. 도시의 빌딩 옥상과 철제 난간을 놀이터 삼아 자유롭게 휘젓고 뛰어다니는 두 소년의 모습은 흡사 파쿠르 선수를 연상시킨다. 쿠로(흑)와 시로(백)는 폭력과 순수, 어두움과 빛의 양면성을 동시에 상징한다. 둘 사이에는 단순히 고아라는 관계 그 이상의 끈끈한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마음속 ‘검은 그림자’를 품고 사는 쿠로는 ‘순수’를 상징하는 시로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지만, 정작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시로에게 더 많은 정신적 위로를 받는다. 혼자 떨어져 있을 때 둘은 서로 불안하다. 이들은 뭉쳐야 비로소 하나로 완벽해진다. 상처받고 병들어가는 타락한 도시에서 생존을 위한 고아 소년의 몸부림은 아이러니하게도 잔혹함을 일삼는 어른들보다 때때로 더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온갖 부조리의 온상이 되어버린 악의 도시에서 타락한 어른들의 이기심은 더 이상 이들을 순수한 세계에 남아있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병들게 한다. 오염된 사회에서 인간성 회복의 실마리는 고아 소년들의 유일한 바람인 비행기를 타고 바닷가 어딘가에서 살고 싶은 꿈으로 치환된다. 다행히 상처받은 어린 영혼들은 서로의 존재에 대한 가치와 소중함을 깨닫고 다친 마음을 치유하며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지만 그 과정 속에서 소년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폭력은 상당히 잔혹하고 가학적이다. 이 때문일까? 이 작품과 만나는 내내 컬러풀하고 환상적인 연출과 영상미로 눈의 호사는 맘껏 누렸지만 가슴 한구석을 파고드는 먹먹함은 아직도 오랜 잔향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