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트롱
- 감독
- 매나헴 고우란
- 제작년도
- 1997
- 출연
- 킴벌리 케이트, 프랑크 자가리노, 찰스 네이피어, 조 라라, 저스틴 캐롤, 리차드 린치, 이고르 포르쉬네브, 알렉산더 유틀레브, 미카엘라 스토이코바
번역 제목에 왜 오바마를 넣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흑인과 백인의 설전 도중에 오바마 이야기가 나오기는 한다. 소수집단 우대정책이 있었기에 오바마가 하버드를 갈 수 있었고, 그래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지금 미국의 노동시장에서 가장 손해를 보는 집단은 고등교육 받은 백인 남자라고, 아이비리그의 윈체스터 대학을 다니는 학장 아들 커트 플레처가 말한다. 어디선가 듣던 말 같다. 여성이나 특정 지역이나 소수자들이 지나치게 이득을 취해서 조용히 있는 우리가 손해를 보고 있다. 진짜 희생자는 우리다, 라고 떠드는 집단들은 어디에나 있다. 오바마라는 단어를 넣은 것은 관심을 끌기 위한 시도로 보이고, < 캠퍼스 오바마 전쟁 >의 실제 내용은 대학 내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이다. 2015년인 지금도 미국에 인종차별이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1960년대 말에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 흑인혁명조직인 블랙 팬더 등이 목숨을 바쳐가며 싸웠지만 세상은 그리 변하지 않았다. 영화에서도 인용되는 스파이크 리의 < 똑바로 살아라 >(1989)가 나온 지 20년이 훨씬 넘었어도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세상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특별 심사위원상을 받은 < 캠퍼스 오바마 전쟁 >은 < 똑바로 살아라 >처럼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시대가 변하기는 했다. 더 이상 대중은 정치적 구호에 휘둘리지 않는다. 같은 흑인이라도 그들의 사회적 처지는 천차만별이다. 성과 인종의 유리 천장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개별적으로는 상층에 올라갈 수 있다. 이미 대통령이 흑인이다. 반만 흑인이고, 진보적인 인사이더이긴 하지만. 그런 점까지 생각해 보면 <캠퍼스 오바마 전쟁>이란 제목도 역설적으로 그럴듯하게 들린다. 흑인이 대통령이 될 정도로 미국은 인종차별이 사라진 나라다. 하지만 그게 정말일까? 인종 간의 갈등과 전쟁은 지금 이곳, 가장 합리적이고 공정한 사람들이 있어야 할 아이비리그의 대학에서 첨예하고도 유치하게 진행되고 있다. 흑인인 저스틴 시미엔 감독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분명하다. 다만 < 캠퍼스 오바마 전쟁 >은 일방적으로 누가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영화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흑인이 등장한다. 미디어 아트를 전공하는 흑인 여학생인 샘 화이트는 이 영화의 원제이기도 한 ‘디어 화이트 피플 Dear White People’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흑인학생연합 소속인 샘은 미국 사회의 흑백차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치밀하게 전파한다. 백인들에게 전하는, 인종차별 이야기. 샘의 동료인 레지는 흑인학생연합을 이끄는 과격파다. 반면 흑인 학생들만 사는 기숙사인 암스트롱 파커 하우스의 학생 대표 트로이 페어뱅크스는 학생처장의 아들이고, 백인 학장의 딸과 연애를 하고 있다. 흑인 배신자라고 불린다. 코코 코너스는 베셋 하우스에서 백인과 연애하고, 리얼리티쇼를 통해 스타가 되기를 원한다. 코코는 ‘디어 화이트 피플’을 공격하고 조롱하는 동영상을 올려 인기를 얻는다. 그들의 사이에 있는 아웃사이더는 철학과 학생인 라이오넬 히긴스다. 동성애자이기에 고등학교 때는 흑인 남자애들의 괴롭힘을 더 심하게 당했고, 지금은 어디에도 끼이지 못한 채 기사를 쓴다. 마침 학교 신문인 버글에서 샘 화이트에 대한 기사를 써달라고 요청한다. 샘과 흑인학생연합은 시위를 준비한다. 학장이 시도하고 있는, 기숙사를 무작위 배정하려는 방침에 반대하는 것이다. 흑인들만 있는 암스트롱 파커 하우스에서 20여 년간 쌓은 고유한 전통과 문화를 무수려 한다는 것이다. 갈등이 격화되자 샘과 흑인 학생들은 암스트롱 파커 하우스의 식당을 이용하는 백인과 외부인을 모조리 쫓아내 버린다. 식당에서 쫓겨난 커트 플레처는 매년 주최하는 할로윈 파티를 ‘흑인 코스프레’로 주제를 잡는다. 지금 학내의 최고 ‘또라이 집단’은 흑인들이라면서 공격과 조롱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코코는 방송 매체인 파스티쉬에 들어가 인기를 얻기 위해, 파티를 블로그로 생중계하는 역할을 자원한다. 학생 대표 트로이도 주류 집단에 들어가기 위해 파티의 홍보문구를 작성한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정치도, 사회도 이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대 입장의 흑인들도 마찬가지다. 샘도, 레지도 오로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움직인다. 하지만 개인의 소소한 이익은 거대한 혐오 혹은 분노와 맞닥뜨리는 순간 힘을 잃고 방황한다. 흑인 코스프레 파티는 < 캠퍼스 오바마 전쟁 >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2010년 이후 미국 대학들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는 실제 사건이다. 백인들이 검은 분장에 힙합 차림을 하고 랩을 부르면서 프라이드 치킨과 퍼플 드링크를 마셔대는 파티. 현실의 대학생들이 왜 그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캠퍼스 오바마 전쟁>에서 백인 남학생들은, 흑인이 소수자인 것을 이용해서 더 많은 이득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늘 차별당한다고, 희생자라고 떠든다고 생각한다. 흑인 코스프레 파티를 주최한 백인이 말한다. 이런 표현도 마음대로 못한다면 그게 바로 언론탄압 아닙니까? 나도 희생자라고요. 하지만 엄연히 차별은 존재한다. 학생처장은 아들인 트로이에게 말한다. 학장과 나는 1년 차이이고, 나는 최우등 졸업생이고 그는 보통 학생이었다고. 하지만 세월이 흐르자 백인인 그는 학장이고, 나는 그의 아래에 있다고. 네가 백인 뒤를 따라다니면 그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마침 커트도 트로이에게 말한다. 너는 장기판의 졸일 뿐이라고. 커트의 아버지인 학장은 지금 미국에 인종차별은 존재하지 않고 기껏해야 멕시칸 문제가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인식은 그렇다. 아니 현실을 지우고, 자신들의 이익에 필요한 가상의 현실을 만들어내고 지배한다. < 캠퍼스 오바마 전쟁 >은 그들과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격파 레지의 방식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대항문화를 만들어 주류를 일깨우는 방식은 이미 과거의 것이다. 이미 주류는 너무나 세분화되었고 흩어져 있다. 필요한 것은 흑인 전체의 고함이 아니라 개인의 목소리다. 샘이 수업시간에 만든 무성영화는 정치적 선동으로 가득하지만 날것의 주장에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샘이 카메라를 들고 흑인 코스프레 파티를 찍으면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자 관객이 공감한다. 흑인과 백인으로 태어났기에 한쪽의 입장만 가지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차별이 있고, 차별을 둘러싸고 다양하게 반응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 캠퍼스 오바마 전쟁 >은 흑인 코스프레 파티를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주장은 명징하지만 수많은 목소리가 존재한다. 저스틴 시미엔은 다큐멘터리 아니 리얼리티 쇼 스타일로 대학 내의 자잘한 갈등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인간은 흑과 백으로 나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는 ‘다른 존재’에 대한 차별이 명백하게 있다. 나와는 다른, 우리와는 다른 어떤 존재들을 공격하고 조롱하는 악인들이 있다. 개인은 무력하지만 결국은 행동을 해야만 한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마틴 루터 킹과 < 똑바로 살아라 >와 <캠퍼스 오바마 전쟁>이 말하는 것은 같을 수밖에 없다.
어느 영화나 다 기구한 사연이 있기 마련이지만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 터커 >를 만들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과 우여곡절을 넘겨야 했다. 애초 계획은 < 대부 2 >가 끝나는 대로 말론 브란도를 주연으로 촬영할 생각이었으나, 이는 < 지옥의 묵시록 >으로 인해 바뀌고 만다. 시대를 앞서 나간 천재의 좌절과 전후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적 기치가 전쟁의 광기와 내재된 악마적 본성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코폴라는 두 번째 터커 역으로 버트 레이놀즈를 낙점하지만 배역을 맡기에 너무 어렸고, 시나리오가 지연되고 다른 프로젝트가 개입되면서 <터커>가 재개되었을 땐 불행히도 그 역을 맡기에 너무 늙어버린다. 최종 촬영이 들어갔을 때 터커 역을 맡은 이는 <지옥의 묵시록> 오디션에서 떨어진 바 있던 제프 브리지스였다.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 청춘낙서 > 때와는 반대로 조지 루카스가 제작을 책임지며 간신히 영화를 마칠 수 있었지만, 2,300만불의 제작비를 들인 <터커>는 본전도 회수하지 못한 채 망해버렸고, 이 실패로 코폴라는 16년 만의 속편, < 대부 3 >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코폴라의 꿈의 프로젝트였지만 좌초해버린 영화의 운명은 기가 막히게 실제 주인공인 프레스톤 터커의 삶과 닮았다. 1940년대 장삿속 위주로 판매에 몰두하던 미국 자동차 빅3, GM과 포드, 크라이슬러에 대항해 순수한 열정으로 안전과 편의에 입각한 자동차를 만들고자 했던 터커는 사기혐의로 몰려 오랜 기간 법정싸움을 벌여야 했고, 간신히 재판에서 이기지만 그로부터 6년 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만다. 그 도전의 좌절과 시련을 시종일관 유쾌하면서도 활력 넘치게 그려내는 코폴라의 유려하고 리드미컬한 연출은 인상적이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저평가되고 대중들마저 외면해 쓸쓸히 잊혀진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터커에 의해 처음 주창되고 채택한 안전벨트와 연료분사장치, 디스크 브레이크와 패디드 대쉬가 현대 자동차의 기본 장비로 쓰이고 있고, 혁신적인 공기역학 스타일의 디자인 역시 현재 유행이 되었듯, 코폴라가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했던 창조적인 열정과 무한한 도전정신, 그리고 꿈과 아이디어는 생생히 남아 두고두고 곱씹게 만든다. 물론 조 잭슨이 담당한 들썩들썩 흥겨운 영화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조 잭슨. 어딘가 익숙한 이름이라 느껴진다면, 맞다. 그는 펑크와 뉴웨이브가 약동하던 1970년대 후반 신성처럼 등장해 세련되고 도시감각 넘치는 스타일로 단숨에 주목받은 영국의 뮤지션이다. 펑크, 뉴웨이브, 스카와 레게, 팝, 블루스 그리고 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들을 재해석하고 혼합해 자신만의 사운드를 창조한 그는 뛰어난 연주자이자 보컬리스트로, 어린 시절부터 로큰롤과 베토벤, 재즈 등 다양한 장르에 심취해 여러 악기들을 연주하고 작곡했던 수재였다. 영국 왕립음악 아카데미를 장학금 받고 다녔고, 졸업 후 연주활동을 하던 그의 데모 테이프가 듀란듀란과 트레이시 채프먼, 브라이언 아담스 등과 작업한 바 있는 음반 제작자 데이비드 커센바움 눈에 들며 데뷔하게 되었다. 고전을 경배하지만 한 장르에 안착하지 않고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꺼리지 않는 그의 과감하고 진보적인 사운드는 익숙하면서도 모던한 경향을 띠는데, 90년대 이후 클래식과 연주 음악으로도 행보를 넓히며 더욱 원숙해진 음악성을 발휘하고 있다. 처음 영화음악을 담당한 건 1984년 <마이크의 살인>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영화가 재편집되며 존 배리의 음악으로 대체되는 불운을 겪었다. 잭슨 자신도 영화 후반의 타이트한 작업일정에 많은 부담을 느꼈다고 토로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터커>에선 원래 내정됐던 존 윌리엄스를 제치고 그의 스코어가 간택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조 잭슨 Joe Jackson 그래서 그런 걸까. <터커>는 일반적인 스코어와는 조금 다른, 자유분방함과 실험적인 면모를 동시에 지닌, 복고 지향적인 컨템포러리 재즈 앨범 같다. 빅밴드와 스윙, 딕시랜드, 랙타임 그리고 부기우기 등 초기 뉴올리언즈 재즈 스타일을 기조로 밝고 명랑한 사운드를 영화 전반에 배치하고 있는데, 이는 자칫 암울하고 무거운 비극으로 치달을 수 있는 터커의 실패담을 희망차고 상징적인 신화로 반전, 격상시키는 효과를 준다. 담합과 관료주의 앞에 무릎 꿇은 시련에 찬 기업가 모습을 담기보다 낭만적인 영웅의 도전기로 비치길 원했던 코폴라의 감상적인 연출은 그래서 조 잭슨의 고색창연하지만 감미로운 사운드와 더 잘 어울린다. 만약 존 윌리엄스의 고전적인 심포닉 스코어였다면 이처럼 다양하고 색다른 분위기로 전환하거나 변화를 주기 어려웠을 것이다. 과거 뉴스릴이나 징글(이른바 CM송)에서 쓰였던 스타일을 카피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장기인 블루스와 뉴웨이브 등을 가져와 재즈와 결합시키며 조 잭슨이란 이름을 명확하게 각인시킨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공장을 인수해 자신의 터전으로 삼게 되는 장면에서 흘러나온 ‘Factory’는 여백과 퍼커션, 공장에서 들릴법한 소음들로 공간감을 극대화시킨 상상력이 돋보이는 큐이고, 하워드 휴즈와 만나는 짧은 씬에 흘러나온 ‘Hangin’ in Howard Huges’ Hanger’는 그 당시 SF영화에서 유행처럼 사용된 테레민 사운드를 흉내 낸 센스가 일품인 트랙이다. 여기서 코폴라는 거대 세력에 맞선 고독한 영웅의 심리를 앙각으로 담아내고 있으며, 모노톤의 표현주의 스타일을 활용해 인상적인 씬을 만들어냈다. 터커가 자신의 주제가처럼 시도 때도 없이 부르며 호랑이 힘(?)을 불어넣는 ‘Tiger Lag’은 밀즈 브라더스나 루이 암스트롱이 불러 유명해진 올드 넘버를 잭슨 자신이 직접 부르고 있으며, 그 외 아들 영화라면 빠짐없이 작곡가든 지휘자로 참여하는 아버지 카마인 코폴라가 작곡한 ‘Tuker Jingle’도 멋진 조화를 이룬다. 이 이전부터 재즈의 매력에 빠졌던 잭슨이지만, 이 사운드트랙이 기점으로 보다 진일보한 인스트루멘털 앨범들을 선보이며 아티스트 반열에 올라선다. 실패한 영웅이자 아메리칸 드림의 다른 신화 프레스톤 터커의 일대기를 다룬 이 영화는 비록 코폴라에게 좌절과 실망을 안겨주었지만, 이처럼 훌륭하고 뛰어난 응원가를 남겨주었다. 그해 그래미상 최우수 영화음악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던 조 잭슨의 긍정적이고 희망찬 스코어는 타인에게 쉽게 전염되는 달콤한 꿈처럼 강렬하고 아름답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하다. 성공의 의미를 곱씹게 만드는 찬가로 더할 나위 없다. Track List 1. Captain of Industry (Overture) 2. The Car of Tomorrow-Today! 3. No Chance Blues 4. (He's A) Shape In a Drape 5. Factory 6. Vera 7. It Pays To Advertise 8. Tiger Rag 9. Showtime In Chicago 10. Lone Bank Loan Blues 11. Speedway 12. Marilee 13. Hangin' In Howard Hughes' Hanger 14. Toast of the Town 15. Abe's Blues 16. The Trial 17. Freedom Swing / Tunker Jingle 18. Rhythy Delivery
<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1977 >는 임정규 의 감독 데뷔작이다. 이 작품의 시나리오에 의하면, 1973년부터 장장 4년간 매일매일 방송되던 MBC 라디오 어린이 연속극을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든 것이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 로보트 태권V-수중특공대,1977 >보다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이하 마루치 아라치)>는 근대의 산업화를 통해 인간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는 기계문명의 잘못된 사용이 가져오는 결과에 대한 경고로 보인다. <마루치 아라치>가 개봉된 1970년대는 우리나라에서도 경제개발계획이 진행되면서 산업화가 고조되고 있었고, 이에 대한 우려들이 예술작품과 산업계에서 전망되고 있었다. < 마루치 아라치 >는 SF(Science Fiction)물이다. SF영화는 신화, 전설, 민담에서 소재를 구하기도 하지만 주요 대상은 과학기술문명이다. 장르 전체로 볼 때, SF는 테크놀로지에 대하여 두 가지의 상반된 입장을 취한다. 첫째는 과학기술이 궁극적으로 문명의 진보를 보장할 것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과학기술이 지닌 파괴적인 측면을 경고하는 것이다. 상반되는 두 가지 입장임에도 SF영화들은 두 가지로 확연히 구분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SF영화의 이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은 흔히 영화 속에서 함께 나타나기 때문이며, 때로는 내러티브가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입장과 텍스트의 심층적 의미가 각각 다른 입장을 취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임정규 의 작품 중에 두 번째 경향을 대표하는 < 마루치 아라치 >는 산업사회를 기계와 신체의 대립이라는 문제로 부각시켜 과학기술의 파괴적 측면을 드러낸다. 영화 < 블레이드 러너 >나 < 아키라 >에서 보듯이 SF가 보편적으로 미래사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의 징후를 포착해 내듯, 그는 기계문명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이 작품을 통해 드러낸다. 1969년 7월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미 항공우주국(NASA)의 유인우주선 아폴로 11호와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남긴 인상은 강렬했다. 이후 1975년 7월, 아폴로-소유즈의 우주도킹은 실사영화계에서도 공상과학물이 쏟아져 나오는 계기를 만들었다. 세계적으로 산업혁명 이후 점차 발전하는 기계문명에 대한 전망을 내놓고 있었다. 이런 전망들은 영화계에도 마찬가지이어서 당시 최고 흥행영화였던 <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1977 >, < 007 문레이커 (007Moonraker), 1979 >나 < 스타워즈(Star Wars), 1977 >시리즈는 미래 문명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어쨌든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1973년부터 시작된 MBC 라디오의 어린이 연속극 <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의 인기는 대단한 것이었다. 이는 태권도가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하여, 우리나라에서 국제대회가 개최되면서 사회적 붐이 일어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또한 라디오극 <마루치 아라치>와 ‘경기(競技) 태권도’의 인기는 태권도를 소재로 <마루치 아라치>와 < 로보트태권V , 1967 >의 제작으로도 이어졌다. < 마루치 아라치 > 라디오 연속극의 원안은 김진희가 썼고, 각본을 민병권 이 맡았다. 그리고 극장용 애니메이션 영화는 민병권의 각본을 송길한 이 각색하였다. 그러나 실제 애니메이션 영화는 임정규 감독이 스토리보드 작업을 하며 대폭 뜯어 고쳤다. 원작이 라디오 극본이다 보니, 작품의 곳곳에 영상적인 장면보다는 설명적인 장면들이 너무 많아 시나리오를 그대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고 한다. 특히 스토리와 캐릭터의 설정에서 많은 부분 수정되었다. 1977년 7월 27일 중앙극장에서 개봉한 <마루치 아라치>는 당시 세계태권도대회 등 태권도 붐이 일었던 시대적 분위기와 원작 방송의 인기에 힘입어 먼저 개봉한 < 로보트태권V >보다 크게 성공한다. < 마루치 아라치 >의 제작은 당시 일고 있던 태권도의 열풍 때문이었다. 1970년대는 우리 것에 대한 긍지와 주체성을 살리자는 의식이 높았던 시기로 민족문화를 재인식하고 재발견하여 보존하자는 정부정책의 하나로 태권도를 알리는데 노력하던 시기였다. 이런 노력으로 해외에서 태권도 연맹과 협회가 설립되었다. 이어 이들을 초청하는 태권도 국제대회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면서 국민들에게 우리 민족의 우수함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태권도는 세계 속에 대한민국의 국위를 선양하며 국민적 자부심을 갖게 하였다. 자랑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 이러한 자부심은 애니메이션 영화 속에서도 드러나 당시 선진 외국에 주눅 들었던 어린이들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었다. 실제 < 마루치 아라치 >나 < 로보트태권V >의 작품 속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태권 소년 ‘마루치’와 ‘훈이’는 외국의 선수들을 물리치고 競技 태권도의 영웅으로 그려진다. 이는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통해 유행하던 로봇물과 결합하여 여러 작품을 내놓게도 했다. 그리고 이것은 이후 제작되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태권도 유단자로 설정되게 하는 전범이 되었다. < 마루치 아라치 >는 우리에게 친근한 태권도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SF장르의 영화이다. <마루치 아라치>는 ‘미래사회’가 아닌 당대(현재)적 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은 공상과학의 세계를 다루면서도 공상과학의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당시 유행하던 공상과학물을 탐닉하는 청소년들에게 심신의 단련이 필요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이 다루고자하는 세계는 파란해골13호로 상징되는 기계문명의 폐해를 없애고, 태권도를 통해 심신을 단련하는 건강하고 밝은 사회를 그리고자 한다. 그래서 기계문명의 폐해를 극복하는 태권도영웅의 탄생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2] 태권도 수련 SF물이 그렇듯 < 마루치 아라치 >도 단순한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영화는 처음 과거 회상을 통해 복수의 원인을 보여주고 갈등을 설정한다. 이후 장 선생과 양 사범의 도움으로 체계적인 태권도를 배워 파란해골을 추적하여 복수하는 단순한 구조의 이야기이다. 마루치와 아라치는 복수로 움직이는데, 복수의 원인이 되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보면 다음과 같다. 파란해골13호와 대결하는 할아버지의 대각선 인물구도와 붉은 색 배경은 불안을 야기 시키고 이를 통해 사건의 위험성을 알려준다. 이를 지켜보는 어린 마루치와 아라치의 배경도 온통 붉은 색으로 처리된다. 결국 쓰러지는 할아버지와 이를 장 선생에게 전하는 마루치의 눈동자 속에는 동굴 속의 모닥불과 겹쳐지면서 복수를 암시한다. [그림 3] 할아버지의 죽음 이 영화의 희생자는 어린 마루치와 아라치를 키우며 무술을 가르친 스승이며 할아버지이다. 그는 영화의 시작 전에 희생당한다. 이처럼 범죄가 스승이면서 가족이기까지 한 인물에 대한 살인이기에 복수는 더 정당화된다. 복수 플롯의 특징은 범죄를 목격하게 만들면 효과가 커지고, 범죄가 끔찍할수록 호응을 얻는다. 관객이 범죄를 목격하여 정서적으로 사건을 경험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강렬할 뿐만 아니라 관객과 희생자 사이에 강한 연대감을 맺어준다. 이를 통해 감정이입을 느끼게 하여, 이 플롯의 중요 목적인 관객과 복수를 하는 주인공 마루치 아라치와 강한 정서적 다리를 놓아준다는 것이다. 관객은 이들이 소개될 때, 첫 시퀀스에서 산속 동물들이 그들의 숙소 앞에 모여드는 것으로서 이들이 동물들과 교감을 나누며 자연을 지키는 정의로운 사람임을 알게 한다. 그래서 이들의 억울함이 관객들에게도 가슴 깊이 억울함을 느끼게 한다. 관객은 이런 끔찍한 분노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는 완전한 정의가 세워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러한 플롯을 사용할 때에는 정당한 행위와 정당하지 못한 행위가 무엇인지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한편 주인공이 추구하는 방법은 야생의 정의이기 때문에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야기의 핵심에는 마루치와 아라치가 있고, 그들은 어려서부터 무술을 통해 심신을 단련한다. 그들은 할아버지의 유언대로 태백산에서 자연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천성적으로 자연친화적이고 불의를 참지 못하며 정의감에 불타는 소년소녀이다. 하지만 이들이 하고자 하는 바는, 스승이며 유일한 혈육인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복수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복수가 아니라 인류의 사회악을 물리치는 것이다. 이로서 영화는 갈등이 설정된다. 마루치와 아라치는 스승이기도 했던 할아버지를 갑자기 잃고 행복을 빼앗기게 된다. 그들은 범죄를 막을 수 있는 힘이 없다. 아직 파란해골에 대적할만한 힘이 없어 물러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파란해골의 범죄를 목격하였기에 복수를 꿈꾼다. 영화는 마루치 아라치와 파란해골 13호, 장 선생과 양 사범 등 캐릭터의 소개와 주요 갈등인 할아버지의 죽음을 통한 복수의 설정, 태권도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는 스토리의 세계를 13분 30초라는 짤막한 시간에 탁월하게 설정한다. 또한 중간에 드러날 사건까지 촘촘히 직조해 낸다. 장 선생과 양 사범의 권유로 산을 내려온 주인공들이 양 사범으로부터 체계적인 태권도를 수련하면서 본격적으로 복수를 계획한다. 이들의 훈련 장면에 등장하는 테마송을 보면 이들의 훈련이 무엇을 준비하는지 알게 해준다. 복수의 테마송이 나오는 동안 양사범의 지도로 밤낮과 눈비를 가리지 않고 이들의 훈련은 계속된다. 스틸 컷과 애니메이션으로 이들의 발차기, 격파, 날기 등의 태권도 수련과정이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그림 4] 복수의 준비 대개 복수의 플롯은 등장인물의 의미 있는 탐색보다는 복수의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마루치와 아라치의 정의는 야생적이며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 그들만 집행하는 정의이지만 이들의 복수는 관객의 정서를 자극한다. 그래서 마루치와 아라치의 복수가 법적으로는 아닐지라도 도덕적 정당성을 가진다. 이 작품에서는 타깃이 청소년이기 때문인지, 조력자로 경찰인 김 주임이 함께 동행 한다. 하지만 그의 역할은 미약하다. 사실 이들은 처음부터 양 사범과 장 선생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복수를 준비하게 된다. 태권도에 타고난 재능을 지닌 마루치는 양 사범의 훈련으로 더욱 기량이 좋아져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게 되고, 여기서 뛰어난 재능 때문에 파란해골단의 표적이 되어 비수에 크게 다치게 된다. 이로서 복수를 위한 추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파란해골단은 동해 수중공원에서 열리는 ‘세계핵물리학자대회’에서 장 박사를 납치하고, 마루치는 해룡과 싸우다 크게 다쳐 실종되면서 반전이 발생한다. 그러나 실종되었던 마루치를 인어 유리가 구해주고, 마루치는 유리의 도움으로 해골섬을 찾아내지만 복수에는 실패한다. 이렇게 두 번의 실패로 마루치와 파란해골 13호 간에 팽팽한 긴장이 발생하고, 이제 이들의 극적 대결만 남는다. 파란해골이란 캐릭터는 이 영화에 있어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파란해골은 인간의 생로병사를 연구하던 과학자였지만, 기계문명을 맹신해 자신의 몸을 없애고 해골만 남은 유별난 사람이다. 그는 인간의 심신이 거추장스럽다고 느껴 기계문명에 영혼을 맡긴 인물이다. 그래서 그가 발명한 기계로 부하들을 모두 기계인간으로 개조한다. 파란해골 13호는 인간의 신체를 기계화하는 근대화와 산업화의 상징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태백산에서 마루치와 아라치의 할아버지를 죽인 장본인으로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납치하며 설인국을 파괴하려 한다. 최종적으로 그는 핵물리학자인 장 박사를 납치하여 광속으로 나는 우주선을 만들어 지구와 우주를 정복하고자 한다. 이에 반해 기계문명에 대항하는 마루치와 아라치는 태권도 수련으로 심신을 단련한 정의로운 소년소녀이다. 그들은 인류의 악이자 할아버지의 복수를 꿈꾸며 외곬으로 마지막까지 달려왔다. 그들은 파란해골을 추적했지만 매번 복수의 기회를 놓쳐왔다. [그림 5] 할아버지의 복수 파란해골 13호는 장 박사와 설인국 공주 쏘냐를 볼모로 잡고, 마루치와 대결하지만 마루치와 아라치의 정의의 주먹에 납작코가 된다. 그들의 복수는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건강한 인류사회를 위한 행동이다. 그래서 복수의 원칙으로 처벌은 범죄와 맞먹는다. 심판은 법이 아닌 마루치와 아라치의 주먹으로 이루어진다. 마루치와 아라치는 할아버지의 복수에 성공하고 인류는 평화를 되찾는다. 복수는 파란해골이 기계문명을 맹신하고 잘못 사용한 자이기 때문에 마루치와 아라치는 그들의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정의의 주먹으로만 응징해야 한다. 그래야 파란해골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 될 수 있다. 산 위에서 자연인으로 살던 이들은 야생의 정의를 실천한다. 산위에서 일어나는 할아버지의 죽음도 문명화 되지 않은 야생이다. 이들에게 산은 야생의 공간이며, 문명이 억압하는 것을 표출하는 공간이다. 산위의 공간에 비해 이들이 하산한 도시의 공간은 문명의 공간이다. 그곳은 기계문명이 번성하는 곳으로 파란해골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에서 파란해골과 첫 대면을 하게 된다. 문명의 가장 대표적인 공간이 바다 속 수중공원이다. 그곳에서 장 박사는 납치되고, 마루치는 실종된다. 하지만 이들이 야생의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다시 산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들은 문명화되지 않은, 즉 원시가 그대로 보존된 히말라야의 설인국에서 최후의 대결을 벌이게 된다. 설인 또한 문명과는 거리가 먼 야생이다. 이들은 파란해골이 공주를 인질로 잡고 있어,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마루치와 대결하게 되나, 결국에는 야생의 자연이기에 마루치를 돕게 된다. 영화는 야생의 산 위에서 시작해서 문명화된 도시로 수중공원으로 이동한다. 이는 다시 야생의 공간인 북극기지에서 또 다시 히말라야의 산 속 설인국으로 옮겨 마지막 대결을 벌여 잘못 사용된 기계문명을 무찌름으로써 복수를 완성하는 공간 구조를 보여준다. 이렇게 야생의 정의가 승리함으로써, 작품의 수직적 공간도 플롯에 상징적으로 기여한다. 이렇듯 < 마루치 아라치 >의 이야기 구조는 전형적인 복수의 플롯에 추적 및 구출의 플롯이 가미된 작품이다. 그러나 크게 보면 복수의 플롯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그 복수의 원인인 파란해골 13호의 할아버지 살해에 대한 뚜렷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다. 시나리오에서는 파란해골 13호가 태백산에 파란해골단의 기지를 짓기 위해 마루치의 부모와 아라치의 부모를 살해하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그러나 임정규 는 마루치와 아라치를 산속에서 신비한 무술을 배우는 소년 소녀로 그리고자 부모 대신 도사의 면모를 갖춘 할아버지가 파란해골에 살해당하는 장면으로 복수의 원인을 설정한다. 그리고 팔라팔라 사령관이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마루치를 보고 산에서 보았던 소년이라고 파란해골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보아 이들의 원한관계는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되었어야 했다. 하나의 완결 구조를 갖는 장편에서 이 같은 실수는 스토리구조상의 약점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복수는 정서적으로 강렬한 플롯을 만들어낸다. 정의를 갈구하는 상황을 창조하여 강력한 정서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마루치와 아라치, 그리고 파란해골 13호로 상징되는 기계문명에 복수하는 < 마루치 아라치 >는 SF물로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핍진성 있게 그려내었고, 이는 관객에게도 정서적으로 영향을 미쳐 공감을 끌어낸 작품이 되었다. SF물이 미래의 불안한 징후를 드러내듯 작품의 극적 긴장은 냉소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임정규 의 < 마루치 아라치 > 속에서 그려지는 것은 대부분 인간과 과학의 평화로운 공존이 아니라 파란해골 13호로 상징되는, 과학이 제어할 수 없는 진보로 인해 파멸해가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러면서 임정규 작품의 특이한 점은 보통 SF 작품에서 기계를 파괴하려는 인간, 혹은 기계 문명을 전복하려는 인간은, 그것과 싸우기 위해서 기계문명 내지 과학문명을 이용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기계문명이나 과학문명이 아닌 신체를 단련하여 대항한다는 것이다. 특히 과학기술과 인간성의 충돌을 강하게 부각시킴으로써, 테크놀로지의 지배 아래에 있는 세계가 얼마나 황폐하게 변질되고 있는가를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이로서 임정규는 당대의 현실을 SF로 변주하여 상징화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능력은 이 작품의 시나리오와 그가 감독한 영화의 스토리텔링의 차이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시나리오에서는 파란해골이 전 세계를 귀신병에 들게 하여 지배하려고 하였으나, 그는 당시 고조되고 있던 산업화의 폐해와 두려움으로 스토리의 갈등 구조를 바꾸어 놓음으로써 당대의 사회적 문제를 충실하게 그려내고 있다. 마루치가 파란해골 13호에게 어떻게 복수를 해나가는가에서 주제의식이 돌출되는데, 이는 당시 시대정신과도 연관되어 있다. 영화는 일제의 수탈과 한국전쟁으로 황폐화되었던 1950년대를 지나, 급속도로 산업화가 진행되던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혼란스런 모습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급격한 산업화로 치닫던 1970년대, 인간의 신체를 기계와 결합시키려는 자본주의적 요구에 대항하는 정신적, 신체적 저항을 보여준다. 인류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마루치의 욕망은 그것을 억압한 시대의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기계문명의 폐해와 인류평화를 위한 인간의 확고한 정의감을 대립시켜서 인류의 적인 사회악이 기계문명을 교묘히 이용할 때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것과 기계문명은 어디까지나 인류의 이익을 위해서만 존재가치가 있음을 말한다. 따라서 악의 무리가 조종하는 기계를 정의의 주먹으로서 격파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갖춘 인격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