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manii]키보드 앙상블
- 제작년도
- 2009
열여덟 살 소년 한슬기는 남산순환로 통행 매표소 동전함을 털다 걸려 1년 6개월 형을 언도받는다. 카메라는 비좁은 구멍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려는 듯 한슬기가 수감된 소년원의 내부를 관음적인 앵글로 비추고 있다. 정해진 시나리오 없음, 정해진 배우 없음, 정해진 카메라 없음, 정해진 미술 없음, 정해진 음악 없음, 정해진 편집 없음, 정해진 거 다 없음, 이라는 자멸적 어조의 자막이 순서에 의거하여 나타나고 인디 밴드 ‘삐삐롱스타킹’이 부르는 노래 ‘나쁜 영화’가 울려 퍼진다. 노란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보컬 이윤정의 울부짖는 듯한 보이스가 “책상 위에 수많은 아주 좋은 영화가/ 잠을 자고 있는데 식탁 밑엔 수많은/나쁜 영화... (좋은) 영화 (나쁜) 영화 (좋은) 100편 (나쁜) 1편/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로 이어지는 가사를 통해내는 동안 아이들은 어두컴컴한 기차 안에서 무리를 지어 본드와 가스를 불고 갈피를 잃은 저들의 내면적 정황이 ‘환각 재현’이라는 제목의 키치적인 애니메이션으로 재생된다. 다음 쇼트에서 이어지는 한 장의 영정사진, 가스와 본드를 과다 흡입한 한 여자아이의 장례식장에서 지루해진 아이들이 춤을 춘다. 순간 나쁜 조감독의 나레이션이 나쁜 감독을 꼬시기로 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 것은 나쁜 조감독이 찍은 단편영화의 러프컷인가? 시험에 든 나쁜 감독. 나쁜 조감독의 꾐에 넘어간 나쁜 감독은 생각나는 대로 사는 아이들에 관한 생각나는 대로 찍는 영화를 시작한다. 나쁜 배우들을 구하는 광고를 통해 모인 아이들은 그들이 쓴 짧은 이야기를 자기 멋대로 찍는다. 상술(上述)한 < 나쁜 영화 >(1997)의 도입부는 서울의 10대 청소년들과 그들의 무모하고 환멸에 찬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혼란스럽고 무정부적인 이야기의 개요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서정적이고 영적인 것에서부터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뤘던 장선우의 이전 영화들과 달리 <나쁜 영화>는 길을 잃은 아이들처럼 거칠다. <제목이 없는 영원한 나쁜 영화>(Timeless, Bottomless Bad Movie)라고 하는 영문 제목이 암시하는 바처럼 <나쁜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의 구조화되지 않은 특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기성 영화의 기준과 규칙, 문법을 따를 생각이 없음을 선언한다. 항상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던 감독 장선우는 이제 나쁜 영화를 만들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였고, 그 결과는 놀랍다. 자학과 폭력, 섹스, 환각, 범죄의 만화경을 묘사하는 이 영화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10대 아이들이 쓴 대본을 재연하면서, 때로는 술 취한 거리의 사람들을 다큐멘터리의 방식으로, 특정 장면에서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삽입하는 예술적 만용으로, 일부는 35mm, 다른 일부는 16mm 내지는 슈퍼 8미리로 촬영하였다. 그러나 영화는 경계를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모든 경계를 지우가 위해 다양한 출처의 이야기와 장르, 형식, 캐릭터를 비빈다. 영화의 1/4 지점에서 서사는 기성의 논리와 계율을 거부하는 10대들의 삶에서 자본주의적인 체제의 바깥에 있기를 선택한 홈리스의 삶으로 건너간다. 외환위기가 한국 사회를 강타한 1997년 한국의 경제적 투쟁이 버려진 이들에게 미친 영향을 탐구하는 장선우의 방식은 틀에 박힌 사회에 풍요에 저항하는 거리의 방랑자들에 대한 사실과 거짓의 앙상블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거친 젊은이들, 안전하게 부유한 삶을 좇는 체제를 회의하는 홈리스들의 정신적 풍경을 기린다. 장선우는 새와 레드변, 감자, 이쁜이, 아이떡 따위의 유치한 별명으로 불리는 10대 등장인물들이 지루함의 공백을 범죄, 학대, 장난, 폭력 및 섹스로 채우려고 하는 맹목적인 행동들을 스토리로 만들어 연기하도록 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서울역 주변을 어슬렁대는 홈리스들의 일상과 10대들의 존재 양식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체제로부터 버림을 당한 이들의 무모한 욕망이 혈관을 타고 흐른다는 것만이 저들의 공통점일까? 10대 청소년들과 홈리스들 사이의 접점을 상상하게 하면서 카메라는 즉흥적인 퍼포먼스와 느슨한 플롯에 의해 사전에 설계하지 않았던 의미가 발발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원초적인 분노, 평온한 포기, 특정한 순간을 위해 사는 것, 경고를 무시하고 사는 무정부주의적인 삶의 가치를 찬미하는 장선우의 예술적 자의식은 도전적이다. 형식적으로 <나쁜 영화>는 유사 다큐멘터리적인 스타일로 거리의 유목민들을 묘사하는 픽션 영화이다. 시네마베리테 양식으로 촬영되었지만 재연 에피소드와 현실, 구성된 이벤트 사이를 오가며 현실과 무대 사이의 경계를 흐리기 위해 애쓴다. 계획과 우연을 병합한 사이비 다큐멘터리 형식은 영화가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게 한다. 카메라를 든 영화 스태프가 길바닥에 주저앉은 한 소년을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자. 이제부터 카메라를 든 사람과 붐 마이크가 화면 안으로 들이닥친다. 여기서 카메라는 스스로 참여적이 되는 동시에 촬영 대상의 개입을 촉발하는 촉매가 된다. 영화적 진실을 생산하는 순간처럼 의도된 그 장면에서 실제적인 세계에 속한 자연인은 허구적 스토리가 요구하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실재하는 존재와 대상에게 부여되는 역할이 중첩되어 어느 한 가지로 규정하기 힘든 영화적 실천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연출된 무수히 많은 장면들은 상당한 정도의 혼란을 유발한다. 카오스는 캐릭터들의 재현 방식과 그들의 행동 뿐 아니라 운동의 방향에서도 발생한다. 때때로 등장인물들은 의도적으로 화면서 속도를 덧붙이면서 골목길을 질주하거나 추적자들의 추궁을 피하기 창밖으로 뛰어내린다. 섹스와 성적인 방종은 자유로운 행동 양식의 소여(所與)인 것처럼 변덕스러운 스타일로 전달되고 목표나 의도, 지향을 버린 말과 행위, 결과가 수반된다. 예술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을 습격하고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적 태도와 유머, 냉소를 시전하는 특성은 어떤 한국영화도 도달하지 못했던 미학적 혁신의 지점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는 실제 영상과 가공된 재연의 흐릿한 경계가 명확해지는 장면 중 하나는 송강호와 안내상, 기주봉, 이문식 등 익숙한 얼굴의 배우들이 홈리스 분장을 하고 실제 홈리스들과 섞여 들어가는 장면일 것이다. 찬송가를 부르는 거리의 전도자들 사이로 슬금슬금 이동하여 능청스럽게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송강호는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지우는 전략을 육체적 제스쳐를 통해 몸소 실행한다. 기주봉은 어린 딸을 데리고 다니는 서울역의 홈리스가 되어 현실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고, 진짜 행려들과 3개월 간 합숙을 한 안내상은 놀라운 친화력으로 진짜와 가짜의 구분을 무색하게 만든다. 10대 아이들, 홈리스들과 달리 이 진짜를 연기하는 가짜들은 오랜 기간 훈련한 스킬을 발휘하여 능숙하게 현실에 자리를 잡는다. 감독과 스태프, 감독과 배우, 배우와 일반인, 진짜와 가짜, 선과 악, 미와 추, 현실과 허구 따위의 기준들을 깔아뭉개는 장선우의 방임적 태도는 야심적이다. 현재 시점에서 회고해 보건대 <나쁜 영화>의 위상은 시네마베리테와 에세이 필름의 언저리에 둘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대상들의 세계로 들어가 의도된 구성을 포기하고 그들에 의해 영화가 생성되는 과정을 조직한다. 젊음의 기쁨과 발견의 시기를 거리에서의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묘사하면서 장선우는 미학적 논쟁을 야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체의 영화적 형식을 제거한 상태로 나아간다. 진실(과 진실한 사람)을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이 스스로를 말하고 그 과정에서 매체의 성질을 다시 설정하며, 가치판단의 기준을 재정의하도록 하는 불온한 의도는 시네마의 역량을 시험한다. 도전적이지만 의도적으로 한계를 두지 않는 이 이야기는 체제에 저항하는 존재들의 삶과 예술적 반항의 태도를 일치시킨 현대 한국영화의 시금석이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 이 글은 2022년 10월 11일(화)부터 19일(수)까지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진행되는 시네마테크KOFA 기획전 ‘미완의 사가: 아오야마 신지(1964-2022) 추모전’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기획전에 대한 정보는 아래 링크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142 ) 언제나 많은 이해자들에게 둘러싸여 일찍이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오야마 신지는 불우한 작가였다. 신작이 발표될 때마다 적지 않은 리뷰가 나오기는 했지만 정리된 작가론이라면 지금도 결정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자신이 동서고금의 영화, 음악, 문학에 정통했던 예민한 비평가였기 때문에 아오야마 신지를 논하는 것은 비평가에게는 그 대상에 필적할 만큼의 지성과 감성을 요구하는 골치 아픈 도전이었던 것이다. 아오야마는 소설가나 연극 연출가로서도 성공을 거두었고, 음악가로서의 활동도 단순한 취미로서 정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다재다능함이 아오야마가 하는 일의 전모를 한층 보이기 어렵게 한 면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아오야마와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는 거리에 있으면서 끝내 아오야마론을 쓰지 않은 태만한 영화비평가 중 한 명이었으며, 너무나도 이른 그의 죽음 앞에서 부끄러운 마음을 씻어낼 수가 없다. 구로사와 기요시, 만다 구니토시, 시오타 아키히코와 같은 현대 일본영화의 이름난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릿쿄대학 출신이었지만 세대적으로 가장 아래 세대였던 아오야마는 일찍부터 학생영화계에서 명성을 얻었던 ‘릿쿄 누벨바그’ 선배들과는 조금 다른 경로를 거쳐 영화계에 진입하게 된다. 거품경제 붕괴 이후 1990년대의 일본영화 산업은 크게 침체되었고, 신인 감독이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일자리를 얻는 길은 이미 완전히 막혀 있었다. 기타노 다케시 같은 반전통적인 작가가 영화계 밖에서 갑자기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혼란을 틈탄 것이었다. 이처럼 혼미한 시대에 새롭게 등장해 성행한 것이 OV(오리지널 비디오)라고 불리는, 처음부터 렌탈 비디오용으로 양산된 저예산 영화였으며, 또 시장 확대를 위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필요로 하기 시작한 BS(위성방송)였다. 그리고 아오야마는 실로 OV의 세계에서 처음으로 감독을 경험한 후,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유료 BS 방송국 WOWOW에서 < 헬프리스 >(1996)를 찍으며 본격적인 데뷔를 장식했다. 이런 형태로 시작된 아오야마의 행보는 영화의 정의가 점점 모호해져가는 와중에 영화란 무엇인가를 매번 되묻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헬프리스>는 현장에 결집한 인재들의 면모에서도,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이후의 아오야마의 작품을 규정하는 결정적인 첫걸음이었다. 일단 당시 WOWOW 소속이었던 프로듀서 센토 다케노리가 있다. <헬프리스>는 센토가 시작한 프로젝트 'J·MOVIE·WARS'의 하나로 제작되었는데 이는 매년 비교적 저예산인 영화 4, 5편을 한데 모아 제작, WOWOW에서 프리미어 방영 후 극장 개봉하는 프로젝트로 해를 거듭할수록 신인 감독에게 적극적으로 데뷔의 장을 제공하고 있었다. 여러 편의 묶음 제작은 손익의 상쇄에도 용이했기에, 스튜디오 시스템이 없는 시대에 이를 대체하는 시스템의 구축을 의식했다는 점에 센토의 비범함이 있었다. 또 하나 센토가 일본영화 프로듀서로서 선구적이었던 것은 일찌감치 해외 진출을 시야에 넣고 있었던 점이었다. 가와세 나오미의 < 수자쿠 >(1997)가 칸 영화제에서 수상한 것은 그 가장 두드러진 성과였다. 아오야마가 센토가 프로듀싱한 < 유레카 >(2000)로 칸 국제비평가연맹상과 에큐메닉상을 수상하는 등 프랑스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이 센토의 전략에 힘입은 바 컸다고 말할 수 있다. 아오야마에게 있어서 센토와 함께 결정적이었던 것은 촬영감독 다무라 마사키와의 만남이다. 다무라는 <산리즈카> 시리즈로 알려진 급진적 다큐멘터리 영화제작 집단 오가와 프로덕션 출신으로, 극영화에 진출하고 난 후에도 파격적인 롱테이크로 세간에 놀라움을 안겨준 소마이 신지의 < 숀벤 라이더 >(1983) 등에서 특이한 개성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 특징으로는 카메라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비정상적일 정도의 높은 감응력과, 살아있는 공간을 포착하는 카메라 시선의 철저한 비인칭성을 들 수 있다. <헬프리스>의 시작 부분에서 기타큐슈의 거리 풍경을 위에서 포착하고 이윽고 위태로운 진자운동을 시작하는 공중 촬영이라고 하는, 그 어떤 자의 시점으로도 결코 환원될 수 없는 마이클 스노우의 구조영화마저 연상시키는 카메라워크를 보면 그것은 명백해진다. 아오야마와 다무라는 이후에도 < 새드 배케이션 >(2007)까지 오랫동안 콤비를 이루게 되지만, 그 관계가 일관성 있게 서로 익숙한 채로 의존하는 종류의 것과는 거리가 먼, 더없이 긴장 가득한 것이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시네마스코프로 찍은 <유레카>에서 인간을 압도하는 웅대한 환경 속에 인물을 던져놓은 다음 시간을 두고 그 생태를 쫓는다는 방향성을 정한 뒤, <달의 사막>(2001)에서는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스탠다드 사이즈를 통해 의도적으로 공간을 한정하고, <호숫가 살인사건>(2005)에서는 멀티카메라 시스템을 채택했을 뿐 아니라 다무라를 굳이 세컨드로 돌린 것이다. 다무라와의 결별 후에 찍은 < 도쿄공원 >(2011)과 마지막 감독작 < 구름 위에 살다 >(2020)에서 나타나는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로의 현저한 관심의 이동은, 결코 스타일적인 후퇴 같은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부단한 자기 혁신 끝에 처음으로 획득한 것, 더할 수 없는 복잡함을 경험해봤던 자만이 다다를 수 있는 단순함의 경지였다. 아오야마는 다니엘 슈미트가 일본에서 찍은 걸작 <쓰여진 얼굴>(1995)에서 조감독을 맡았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이때 가까이서 관찰한 슈미트와 촬영감독 르나토 베르타와의 관계성으로부터 다무라와의 공동작업으로 연결되는 무언가를 배웠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덧붙여서, <유레카> 이후 거의 모든 아오야마 작품에서 녹음을 담당하고 있는 기쿠치 노부유키 또한 다무라와 마찬가지로 오가와 프로 출신이다. 사람들에게 만연해 있는 자살 충동 바이러스를 음악으로 치유하는 SF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2005)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처럼 아오야마 작품에서의 음향은 종종 시각적인 영상과 길항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었는데, 그건 소리의 공간성을 중시하는 기쿠치의 공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헬프리스>는 내용 측면에서도 아오야마에게 있어 결정적이었다. 이 작품은 나중에 만든 <유레카>, <새드 배케이션>과 함께 ‘기타큐슈 사가’를 구성하게 된다. 개개의 작품 테두리를 넘어 공통적인 캐릭터가 오고 가면서 전체로서 큰 강과 같은 거대한 서사의 너울을 형성하는 사가라는 형식은 근대소설사에 있어서는 포크너의 것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아오야마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은 포크너의 영향을 받은 나카가미 겐지이다(아사노 타다노부가 연기하는 주인공의 이름인 겐지는 그에게서 유래한다). 고대로 이어지는 신화적인 땅 기슈에서 살아온 나카가미는 스스로가 피차별 부락 출신이라는 사실에 마주하여, 그 장소를 ‘골목(路地, Roji)’이라고 이름 붙이고 활황일 때부터 소멸 후까지를 사가로 그렸다. 아오야마에게 있어서 나카가미의 영향이 얼마나 절대적이었는지는 <로지예: 나카가미 겐지가 남긴 필름>(2000)을 보면 분명히 나타나지만, 아오야마는 나카가미의 기슈를 자신이 태어난 고향인 기타큐슈로 단순히 대체하지는 않았다. < 로지예 >에서 역시 기슈 태생의 영화작가 이즈치 기슈가 나카가미의 텍스트를 낭독할 때 과장된 기슈 사투리가 특징적이었던 것처럼, 기타큐슈 사투리의 거의 음악적일 정도의 매력을 재발견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일이 아오야마에게는 중요했다. 일본인이라 하더라도 규슈 이외의 사람이라면 전부를 알아듣는 것이 쉽지 않은, 조야함과 순정을 겸비한 듯한 기타큐슈 사투리의 독특한 가락은 들으면 들을수록 ‘일본어’라는 통합된 개념을 불확실한 것으로 바꾸어 간다. 그리하여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한반도에도 인접한 기타큐슈는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말이 폴리포닉하게 교차하는 다의성을 가진 공간으로서 재정의되게 되었다. 그리고 <새드 배케이션>에서 가장 깊이 탐구된 이 성격이야말로, 나카가미가 ‘골목’이라는 허구에 진정으로 기대했던 것이기도 했던 것이다. 아오야마는 또한 나카가미로부터 물려받은 짙은 정치성, 특히 천황제나 국가라고 하는 대문자 정치에 대한 강한 관심에 있어서는 동시대 작가들보다 오시마 나기사 같은 작가와 훨씬 가까운 곳에 있었다. < 이미 늙어버린 그녀의 모든 것에 대해 말하지 않기 위하여 >(2001)에는 그러한 아오야마의 정치성이 가장 직접적인 형태로 표출돼 있다. 애초에 <헬프리스>에서도 남자들을 괴롭히는 아버지의 부재라는 상황이 쇼와 천황의 죽음과 겹쳐져 있었다. 죽여야 할 아버지가 이미 없어졌다는 사실이 남자들을 기댈 곳 없는(helpless) 고아로 변모시킨 것이다. 이처럼 아오야마의 정치적 측면에서의 독창성은 천황제나 국가권력이라고 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이 자신의 육체를 흐르는 피의 문제로 여긴 점에 있었다(전전의 국가이데올로기에서 일본 국민은 천황의 적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이후 아오야마의 관심이 아버지 죽이기에서 여성적인 것의 탐구, 모성이라는 헤어날 수 없는 굴레의 속박으로 옮겨갔다는 점은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새드 배케이션>에서 진정으로 무서운 것은 아무리 아이가 발버둥질해도 모든 것을 미소와 함께 받아들이는 어머니의 사랑임에 틀림 없다. 온갖 저항이 모성으로 인해 무력화되는 개미지옥 같은 나라, 일본――절망적으로 여겨지는 한편, 그 끝없는 포용력에 희망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서게 되는 그 지점에서 ‘기타큐슈 사가’는 닫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오야마의 미국문화에 대한 경도도 그 자신을 흐르는 피의 문제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남성여성>(1966)의 고다르는 당시 파리 젊은이들을 ‘마르크스와 코카콜라의 아이들’이라고 불렀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아오야마는 자신에게 흐르는 피의 절반이 코카콜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평생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미국영화와 음악, 문학 속에서 자라나면서 현실 국가로서의 미국에게는 환멸할 수밖에 없었던 빔 벤더스를 ‘그를 논하는 것은 나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동지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1) 아오야마가 보기에 전후 일본에게 있어서 미국은 아무리 그곳으로부터 독립하려고 발버둥질해도 본질적인 종속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전술한 천황제와 같은 형식의 문제였다. 그런고로, 패전 직후 도쿄를 무대로 젊은 자매가 자신들이 사는 집을 미군 상대의 위안소로 하여 살아가는 <퇴폐자매>의 영화화가 실현되지 않은 것이 너무나 애석하다. 시마다 마사히코의 원작을 아라이 하루히코 등이 각색한 그 각본에는 “일본은 미국에 점령당했지만, 이제는 우리가 미국인의 몸을 점령해 주겠어”라는 대사가 포함돼 있었다. 2) 지금 와서 새삼 생각하는 것은, ‘기타큐슈 사가’뿐만 아니라 아오야마가 남긴 모든 일들이 열린 채로 있는 거대한 사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뒤에 남은 우리는 끝내 완결되지 않고 중단되어 버린 그것들을 양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거기서 다뤄지고 있는 것들이 얼마라도 상관없이 자신의 피에 흐르고 있다고 느끼는 자라면 그 누구라도, 이 사가의 등장인물이라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필자 - 후지이 진시: 일본의 영화평론가이며, 현재 와세다대학 문학학술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입문: 현대 할리우드 영화 강의』(2008), 『되살아나는 소마이 신지』(2011), 『모리사키 아즈마 당 선언!』(2013) 등에 편저자로 관여했으며 『이와나미영화의 1억개의 프레임』(2012), 『에드워드 양 재고/재견』(2017),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2017), 『레오스 카락스 – 영화를 떠도는 사람』(2022) 등에 필자로 참여했다. 번역 -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박진희 *** 1) 아오야마 신지, 『나의 영화를 발견했다』(われ映画を発見せり), 세이도샤, 2001, 142쪽. 2) <퇴폐자매>의 시나리오는 《영화예술》 480호(2022년)에 실려있다(96-121쪽). (원문) 青山真治、未完のサーガ 藤井仁子 常に多くの理解者に囲まれ、早くから国内外で高い評価を獲得していたにもかかわらず、青山真治は不遇の作家だった。新作が発表されるたびに少なくないレビューが書かれはしたが、まとまった作家論となると決定的なものは今も存在しない。彼自身が古今東西の映画、音楽、文学に精通した鋭敏な批評家であったために、青山真治を論じることは、批評家にとっては対象と匹敵するだけの知性と感性を求められる厄介な挑戦だったのである。青山はまた小説家、舞台の演出家としても成功をおさめ、音楽家としての活動もたんなる趣味として片づけられるようなものではなかった。そうした多才さが、青山の仕事の全貌をいっそう見えづらくした面もあろう。かくいう私も、青山といつでも連絡がとれる距離にいながらとうとう青山論を書かなかった怠惰な映画批評家の一人であり、あまりにも早すぎる彼の死を前に、忸怩たる思いを拭い去ることができない。 青山は黒沢清、万田邦敏、塩田明彦といった現代日本映画の名だたる作家たちと同じ立教大学の出身だったが、世代的にいちばん下だった青山は、早くから学生映画の世界で評判をとっていた「立教ヌーヴェル・ヴァーグ」の先輩たちとはいささか異なる経路をたどって映画界に参入することになる。バブル経済の崩壊後にあたる1990年代の日本映画は産業としては大いに低迷し、新人監督がメジャー・スタジオで仕事を得る道はもはや完全に閉ざされていた。北野武のような反伝統的な作家が映画界の外から突然出現することができたのは、そうした混乱に乗じてのことにすぎない。この混迷の時代に新しく登場して盛んになったのが、OV(オリジナル・ビデオ)と呼ばれる初めからレンタル・ビデオ用に量産された低予算映画であり、また、市場拡大のためにオリジナル・コンテンツを必要としはじめていたBS(衛星放送)であった。そして青山は、まさにOVの世界で初めて監督を経験した後、開局間もない有料BS放送局WOWOWで『Helpless』(1996)を撮り、本格的なデビューを飾ったのである。このようなかたちで開始された青山の歩みは、映画の定義がますますあいまいになっていくなかで、映画とは何かをそのつど問いなおすものにならざるをえなかった。 『Helpless』は、現場に結集した人材の点でも内容の点でも、その後の青山作品を規定する決定的な第一歩であった。まず、当時はWOWOWに所属していたプロデューサーの仙頭武則。『Helpless』は仙頭が立ちあげたプロジェクト、「J・MOVIE・WARS」の一本として製作されたが、これは毎年、比較的低予算の映画を4、5本まとめて製作し、WOWOWでのプレミア放映後に劇場公開するというもので、年を追うごとに新人監督に積極的にデビューの場を提供するようになっていった。数本を束ねての製作は損益の相殺を容易にするもので、スタジオ・システムなき時代にそれに代わるシステムを構築しようと意識していた点に仙頭の非凡さがあった。もう一つ、仙頭が日本映画のプロデューサーとして先駆的だったのは、早くから海外進出を視野に入れていたことだ。河瀬直美の『萌の朱雀』(1997)がカンヌ国際映画祭で受賞したのはそのもっとも目立った成果だった。青山が仙頭のプロデュースした『EUREKA』(2000)でカンヌの国際批評家連盟賞とエキュメニック賞を受賞するなど、フランスを中心に世界的な名声を得ていくことになるのは、この仙頭の戦略によるところが大きかったといえる。 青山にとって仙頭と並んで決定的だったのは、撮影の田村正毅(のちに改名してたむらまさき)との出逢いである。田村は『三里塚』シリーズで知られる先鋭的なドキュメンタリー映画製作集団、小川プロダクションの出身で、劇映画に進出してからも、型破りな長回しで世間の度肝を抜いた相米慎二の『ションベン・ライダー』(1983)などで特異な個性を発揮していた。その特徴としては、キャメラの前で生起しつつある出来事に対する異常なまでの感応力の高さと、生きた空間を捉えるキャメラの視線の徹底的な非人称性を挙げることができる。『Helpless』の冒頭で北九州の街並みを真上から捉え、やがて危うい振り子運動を始める空撮の、何者の視点にも決して還元することのできないマイケル・スノウの構造映画さえ思わせるキャメラワークを見れば、そのことはあきらかだろう。青山と田村はその後も『サッド ヴァケイション』(2007)まで長くコンビを組むことになるが、その関係が一貫して馴れあいからはほど遠い、きわめて緊張に富むものだった点に注意しなければならない。シネマスコープの『EUREKA』で人間を圧倒する雄大な環境のなかに人物を放ち、その生態を時間をかけて追うという方向性を極めた後、『月の砂漠』(2001)ではすでに滅びかけていたスタンダード・サイズに空間を意図的に限定し、『レイクサイド マーダーケース』(2005)ではマルチキャメラを採用したばかりか、たむらをあえてセカンドに回したのである。たむらとの訣別後に撮られた『東京公園』(2011)と最後の監督作『空に住む』(2020)に顕著な俳優たちの演技アンサンブルへの関心の移動は、断じてスタイル的な後退などではなく、こうした絶えざる自己革新の末に初めて獲得されたもの、複雑さを極めた者だけが到達することのできる単純さの境地であった。青山はダニエル・シュミットが日本で撮った傑作『書かれた顔』(The Written Face、1995)で助監督をつとめた経験を持つが、このとき間近で観察したシュミットと撮影監督レナート・ベルタとの関係性から、たむらとの共同作業に通ずる何かを学びとったように思えてならない。ちなみに、『EUREKA』以降のほぼすべての青山作品で録音を担当している菊池信之は、たむらと同様、小川プロの出身である。人を自殺させるウイルスの蔓延を音楽によって癒すSF『エリ・エリ・レマ・サバクタニ』(2005)にあきらかなように、青山作品にとって音響はしばしば視覚的な映像と拮抗するほど重要なものだったが、それも音の空間性を重視する菊池の貢献あってのことだっただろう。 先述したように、『Helpless』は内容の点でも青山にとっては決定的だった。この作品は、のちに撮られる『EUREKA』、『サッド ヴァケイション』とともに「北九州サーガ」を構成することになる。個々の作品の枠を超えて共通するキャラクターが行きかい、全体として大河のような巨大な物語のうねりをかたちづくるサーガの形式は、近代小説史にあってはフォークナーによるものが広く知られているが、青山への直接の影響源となったのは、そのフォークナーの影響を受けた中上健次である(浅野忠信演じる主人公の役名、健次は彼に由来する)。古代につながる神話的な土地、紀州に生を享けた中上は、自らが被差別部落の出身である事実と向きあい、その場所を「路地」と名づけて活況から消滅後までをサーガとして描きつづけた。青山にとって中上の影響がいかに絶大であったかは『路地へ 中上健次が残したフィルム』(2000)を見ればあきらかだろうが、青山は中上にとっての紀州をただたんに自分の生まれ故郷である北九州に置き換えたわけではない。『路地へ』でやはり紀州生まれの映画作家、井土紀州が中上のテクストを朗読する際の誇張された紀州訛りが特徴的であったように、北九州弁のほとんど音楽的な魅力を再発見することにつながった点が青山にとっては重要だった。九州以外の者には日本人観客でもそのすべてを聴きとることは容易ではないものの、北九州弁の粗野と純情を兼ね備えたような独特な調子は、聴くほどに「日本語」という統合された概念を不確かなものへと変えていく。こうして、海を挟んで朝鮮半島にも面する北九州の土地は、多様な人と言葉がポリフォニックに交差する、多義性の空間として再定義されることとなった。そして、『サッド ヴァケイション』でもっとも深く探究されたこの性格こそは、中上が「路地」という虚構に真に期待していたものでもあったのである。 青山はまた中上譲りの深い政治性、ことに天皇制や国家といった大文字の政治への強い関心において、同時代の作家よりも大島渚のような作家とはるかに近い場所にいた。『すでに老いた彼女のすべてについては語らぬために』(2001)には、そうした青山の政治性がもっとも直接的なかたちで表出されている。そもそも『Helpless』では、男たちをさいなむ父の不在という状況が昭和天皇の死と重ねられていた。殺すべき父はもはやいなくなってしまったという事実が、男たちを寄る辺のない(helpless)孤児へと変貌させたのである。このように、青山の政治面での独創性は、天皇制や国家権力というものを、自らの肉体を否定しようもなく流れる血の問題として考えた点にあった(戦前の国家イデオロギーにおいて日本国民は天皇の赤子と位置づけられていた)。その後の青山の関心が、父殺しから女性的なものの探究、母性による骨がらみの呪縛へと移っていったことは、この文脈において捉える必要がある。『サッド ヴァケイション』で真に恐ろしいのは、どれほど子があがいてもいっさいを微笑みとともに受けとめてしまう母の「愛」にほかならない。あらゆる抵抗が母性によってすべて骨抜きにされてしまう蟻地獄のような国、日本――絶望的に思える一方で、その底なしの包容力に希望を探りあてるしかないという認識に立ったところで「北九州サーガ」は閉じられるのだ。 このように考えることで、青山によるアメリカ文化への傾倒ぶりも、彼自身を流れる血の問題であったとわかるだろう。『男性・女性』(Masculin, féminin、1966)のゴダールは、当時のパリの若者たちを「マルクスとコカ・コーラの子供たち」と呼んだが、その伝に倣えば、青山は自分に流れる血の半分がコカ・コーラでできているという事実から生涯眼をそむけることがなかった。だからこそ、自分と同じようにアメリカの映画と音楽と文学で育ちながら、現実の国としてのアメリカには幻滅するしかなかったヴィム・ヴェンダースのことを、「その人を論じることが自分について語ることに等しい」ほど重要な同志と感じていたのである 。青山の見るところ、戦後日本にとってのアメリカは、どれほどそこから独立しようともがいても本質的な従属関係からは脱け出せないという意味で、先述した天皇制と同型の問題であった。それゆえに、敗戦直後の東京を舞台に若い姉妹が自宅を米兵相手の慰安所にして生きぬく『退廃姉妹』の映画化が実現しなかったことが惜しまれてならないのだ。島田雅彦の原作を荒井晴彦らが脚色したその脚本には、「日本はアメリカに占領されたけど、これからはあたしたちがアメリカ人の体を占領してやるのよ」という台詞が含まれていた 。 今、あらためて思うのは、「北九州サーガ」のみならず、青山の遺したすべての仕事が開かれた巨大なサーガをな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それがついに完結することなく中断されてしまったことを、後に残されたわれわれは糧としなければならないだろう。そこで扱われている事柄がいくらかでも自分自身の血に流れていると感じる者なら誰一人、このサーガの登場人物である事実から逃れることはできないのだ。
아마 금방 첫눈이 내릴 것이다. 눈 내린 풍경에서 가장 웃긴 순간은 넘어진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누군가 미끄러져 자빠질 때일 것이다. 그게 꼭 악의적인 것은 아니다. 단지 미끄러져 넘어지는 모습을 볼 때 거의 기계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물론 그런 다음에는 미안한 마음을 안고 거리를 지키면서 가까스로 표정을 감춘 채 시선을 돌리고 할 수 있는 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날 것이다. 우리가 자빠지는 모습을 보고 공식적으로 웃을 수 있는 장소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볼 때이다. 지금도 이 개그는 웃음을 자아낸다. 브라운관에서 너도 나도 자빠질 때 그걸 바라보던 언론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그저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자빠지는 것 말고 없다는 비난과 함께 지성이 없는 희극이라는 비판을 던졌다. 이 개그는 가장 단순하지만 매번 보는 쪽을 웃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자빠지는 개그가 시작된 곳은 아마도 보드빌 연극무대였을 것이다. 이 무대에서 활동하던 많은 배우들이 각자의 퍼포먼스를 갖고 카메라 앞으로 왔다. 보드빌 무대에서 누가 가장 먼저 자빠졌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카메라 앞에서 누가 가장 먼저 자빠졌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들은 앞 다투어 자빠졌다. 왜냐하면 그 퍼포먼스가 가장 쉽고 가장 분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말했지만 이 퍼포먼스는 부상당할 위험이 항상 있었으며 게다가 상대방과의 앙상블이 중요했기 때문에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채플린은 그의 경력 초기부터 자빠지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1916년은 채플린에게 중요한 한 해가 되었다. 당시에는 매주 월급의 형식으로 지불하는 주급(週給)방식으로 영화사와 계약을 맺었다. 채플린의 명성이 올라가면서 더 많은 주급을 받으면서 매년 연간 제작 편수를 줄여나갈 수 있었다. 1915년에 연간 16편의 영화 연출(과 주연으)로 계약을 맺었던 것을 1916년에는 12편으로 줄일 수 있었다. 이 시간적 여유는 채플린을 도약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채플린은 좀 더 시나리오에 공을 들일 수 있었고, 자신의 개그 퍼포먼스를 정교하게 다듬어 나갔으며,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점점 그의 영화가 눈에 보이게 길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에피소드에 불과했던 채플린의 영화들은 점차 서사 형식을 갖추기 시작했고 드라마투르기를 작동시키는 쪽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씬들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으며 그러는 과정을 통해 씬 안에서 활동하는 동선과 드라마, 감정선, 퍼포먼스의 디테일, 그것들이 펼쳐지는 장소의 미장센,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는 거리를 정식화시켜 나아갔다. 채플린이 말한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비극, 이라는 말은 단순하게 클로즈업과 롱 쇼트를 설명한 것이 아니다. 채플린은 하나의 씬 안에서 액션과 상황의 원근법을 창조해냈다. 원근법은 가까운 것(近)과 먼 것(遠)이 한자리에 있을 때만 구별되는 것이다. 채플린은 하나의 씬 안에서 그 둘 사이의 왕복운동을 만들어내면서 하나의 씬이 희극이자 비극이라는 천재적인 발명을 해냈다. 나는 이 문제를 다시 한번 다루게 될 것이다. 이 해에 만든 영화 중에서 마지막으로 개봉한 <롤러 스케이트장(The Rink)>은 상영 시간 24분의 소동극이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웨이터로 일하는 찰리는 손님 주문을 받으면서 뿐만 아니라 주방에서도 실수를 거듭하지만 롤러 스케이트장에 가면 보란 듯이 솜씨를 뽐낸다. 이때 찰리는 레스토랑에 온 진상 손님 스토우트씨를 여기서 다시 만나자 골탕을 먹인다. 게다가 여기서 만난 아름다운 여인이 찰리를 롤러 스케이트장 파티에 초대한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번 스토우트씨와 마주친다. 일대 난동이 벌어지고 찰리는 유유히 빠져나와 롤러스케이트를 신은 채 달리는 자동차의 뒤에 매달려 뒤를 쫓아오는 신사들로부터 멀어진다. 두 번의 시퀀스에서 찰리는 거의 믿을 수 없는 수준의 롤러스케이트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면 나는 그냥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찰리는 롤러스케이트가 갖고 있는 자유로운 미끄러짐과 불안정한 균형을 이용해서 우아한 동선을 먼저 만들어냈다. 그런 다음 무례한 악당을 사정없이 쓰러트린다. 이때 악당은 찰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매번 제풀에 미끄러지고 자빠진다. 롤러스케이트장에 들어서는 순간 일반적인 균형의 법칙은 사라지고 갑자기 새로운 중력 법칙이 작동하는 것만 같은 세상이 될 때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찰리는 이제까지 보잘것없이 모두에게 구박받던 존재로부터 벗어나서 여기서 세상의 법칙에 대한 주인의 자리에 간다. 이때 자빠지고 넘어지는 개그는 세상의 법칙에 대한 전복적인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 개그는 가진 것 없는 자들이 부자들을 마음껏 웃어주는 위대한 퍼포먼스가 된다. 물론 찰리 채플린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찰리를 잡기 위해 스케이트장 안으로 몰려든다. 하지만 찰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들 사이를 공기처럼 빠져나간다. 점점 더 스케이트장은 카오스에 가까워진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이르면 거의 초현실주의적인 율동의 동선으로 가득 찬다. 모두의 동선이 실타래처럼 뒤엉키는데도 찰리만은 우아한 동작으로 그들 사이를 그렇게 빠져나간다. 찰리 채플린은 여기서 자빠지고 넘어지는 개그 퍼포먼스의 스펙터클을 정식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 스펙터클이 품고 있는 웃음의 정치학을 발명해낸 것이다. 아마도 그때 이 스펙터클을 모스크바에서 레프 쿨레쇼프와 그의 제자들은 유심히 보고 있었을 것이다. 한 번 더. 아마도 그때 베를린에서 발터 벤야민은 유심히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사 앞에서 나는 반문하고 싶다. 누가 이 스펙터클을 바보로 만들어버렸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