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마와 변강쇠
- 감독
- 김문옥
- 제작년도
- 1995
- 출연
- 한명구, 박양희, 맹찬재, 금미소, 정직한, 이명배, 강희, 김신희, 국정환, 나갑성, 박동용, 유일문, 김헌준, 서평석, 조영이, 박용호, 성준용, 배동진, 마석준, 조성호, 하영은, 하연숙, 이혜전
<폭싹 속았수다> 중 (사진: 한겨레 /© 넷플릭스) 올 한 해 TV와 OTT를 통해 공개된 시리즈들을 필자의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관심을 끌어모은 화제작부터, 스쳐 지나갔지만 돌이켜 볼 만한 문제작들까지 정리합니다. 며칠 전, 12.3 비상계엄 이후 1년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눈물이 났다. 그 시간을 통과할 때는 미처 감각하지 못했는데, 지나고 보니 우리가 모두 참으로 위험한 시간을 지나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내란 사태를 수습하느라 사회 전체는 긴장 상태에 놓여 있었다. 정치뿐 아니라 경제 상황 역시 불안정했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과 씨름하느라 많은 이들이 ‘각자의 내란’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2025년의 시리즈에는 유난히 어려운 시절을 버티며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가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버틴 사람들의 이야기 올해 가장 많은 이들이 언급한 드라마는 < 폭싹 속았수다 >(김원석/넷플릭스)가 아닐까? <폭싹 속았수다>는 거친 바다를 온몸으로 견뎌낸 해녀, 광례( 염혜란 )에게서 시작한다. 광례와 딸 애순( 아이유 · 문소리 ), 손녀 금명(아이유)으로 이어진 모녀 3대는 한국 현대사를 가로지르며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파도에 맞선다. 인생을 사계절에 빗댄 이 이야기에는 해녀 공동체의 연대, 애순과 관식( 박보검 )의 풋풋한 사랑, 그리고 모두의 생애를 지탱한 가족애가 가득 담겼다. <폭싹 속았수다> 속 인물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삶의 과제를 감당하며 버텼다면, <태풍상사>(이나정, 김동휘/tvN)의 태풍( 이준호 )은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경제적 폭풍을 견딘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불어닥친 회사의 위기 앞에서 태풍은 직원들을 신뢰하며 열정적으로 회사를 지키고 살려낸다. <태풍상사>는 마치 ‘국난’을 극복하듯 회사를 되살리는 이야기인 동시에 “가장 평범한 곳부터” 도려내졌던 IMF 시대를 살아낸 보통 사람들의 얼굴도 놓치지 않는다. 태풍이 청년 사업가로 성장하던 IMF 시기, 낙수( 류승룡 )는 치열한 취업 전쟁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탄탄대로를 걷던 그는 어느새 명예퇴직 대상자가 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조현탁/JTBC)는 사회의 중심축에서 밀려난 중년 세대의 현실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사회적 ‘쓸모’가 사라졌다는 자각과 거듭되는 실패 앞에서 낙수는 모멸감과 상실감, 불안 속에서 흔들리며 우울과 공황을 겪는다. 이 시리즈는 중년의 위기를 유머와 애잔함으로 감싸며, 낙수가 가족의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상) <폭싹 속았수다> 중 (사진: 한겨레 , PD저널 / © 넷플릭스) (하) <태풍상사>,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중 (사진: tvN , JTBC ) 여성들의 세계, 더 넓어지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시리즈 너머, 여성을 생애사적·사회적 이야기로 확장한 시리즈도 눈에 띄었다. < 은중과 상연 >(조영민/넷플릭스)은 은중( 김고은 )과 상연( 박지현 ), 두 여성의 30년에 걸친 관계를 따라가며, 서로를 사랑하지만 미워하기도 하고,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배신도 하는 등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여성들의 복잡한 관계를 밀도 있게 그린다. 그중에서도 상연을 단순한 ‘빌런’이 아니라 결핍과 외로움이 빚어낸 인물로 끝까지 이해하려는 시선이나, 성소수자인 상학( 김건우 )의 죽음과 안락사를 선택한 상연의 죽음을 “내가 있어도 되는 세상”을 갖지 못한 존재들의 죽음으로 연결하는 감각이 인상적이었다. <미지의 서울>(박신우, 남건/tvN)은 일란성 쌍둥이, 미지와 미래( 박보영 )의 ‘삶 교환’을 중심으로 청년 세대의 불안과 고립, 직장 내 괴롭힘, 비정규직 차별, 장애와 성소수자 문제를 복합적으로 짚는다. ‘마론제과’ 무기계약직 여성들의 이야기 <달까지 가자>(오다영, 정훈/MBC)와 아파트에서 발생한 사건을 추적하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살롱 드 홈즈>(민진기, 정현남/ENA)는 가족의 확장된 형태로서 여성들의 우정과 연대를 보여준다. < 피라미드 게임 >(박소연/TVING)과 < 선의의 경쟁 >(김태희/U+TV)은 여고 내 계급과 폭력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미지의 서울>, <폭싹 속았수다>, <견우와 선녀>(김용완, 정우식/tvN), <첫, 사랑을 위하여>(유제원, 함승훈/tvN) 등 모녀 관계를 통해 여성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현대극뿐 아니라 시대극 역시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옥씨부인전>(진혁/JTBC)은 조선시대 노비로 태어나 양반 마님이 되어 ‘변호사’로 활약한 구덕이( 임지연 )를 중심으로 계급, 여성 차별, 성소수자, 아동·약자 착취 문제 등을 녹여내 ‘조선판 인권 선언문’과 같은 역할을 했다. < 애마 >(이해영/넷플릭스)는 1980년대 충무로를 배경으로, 에로 영화 전성기의 포문을 연 영화 < 애마부인 >(정인엽, 1982) 촬영기를 극중극 형태로 재현하며 ‘남성적 응시’에 맞선 여성들의 연대를 메타 비평적으로 풀어낸다. 여성의 성적 욕망을 부정하던 1980년대 시골 마을에서 성인용품 판매를 하게 된 여성들의 이야기인 <정숙한 세일즈>(조웅, 김미진/JTBC)와 1990년대 버스 안내양들의 우정을 담은 <백번의 추억>(김상호/JTBC)은 그간 주목받지 못한 여성의 역사를 복원해, 가부장 사회에서의 여성 억압의 문제, 노동과 우정의 연대기를 보여준다. (상) <은중과 상연>, <미지의 서울> 중 (사진: MBC /© 넷플릭스, tvN ) (하) <애마>, <백번의 추억> 중 (사진: 넷플릭스 , JTBC ) ‘보편성’이라는 이름의 한계 이렇게 여성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고 폭넓게 등장했음에도 ‘가족’ 바깥을 상상하게 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폭싹 속았수다>를 여성 서사로도 볼 수 있지만, 결국 부모 세대와 가족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또한 낙수의 아내 하진( 명세빈 )이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지만, 시리즈는 결국 “김부장 이야기”, 즉 가장을 이해하고 북돋우며 가족애로 회복에 이르는 데 집중했다. <태풍상사>도 마찬가지다. IMF로 일자리를 잃거나 불안정한 노동에 배치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지만, 이런 이야기는 로맨스 서사에 묻히고 만다. 이런 한계에도 이 시리즈들은 ‘보편성’을 가진 좋은 이야기로 회자됐다. K-드라마의 보편성이란 여전히 ‘아버지’ 중심의 가족 서사라는 게 재확인된 셈이다. 이런 특징은 결국 세대, 노동, 차별 등 사회 구조적 문제로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이른바, ‘여성 서사’라 불리는 드라마에서도 극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가족 다양성, 가족 너머의 서사를 온전히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흐름을 어떻게 봐야 할까? 『페미니즘 리부트』(2017)에서 영화평론가 손희정이 IMF 이후 영화의 여성 재현에 관해 지적했듯, IMF 이후 또 다른 위기의 시대를 통과하는 지금, 이런 흐름은 가족이라는 안전하고 효율적인 이데올로기를 작동시켜 ‘위기의 시대’를 손쉽게 통과하려는 징후가 아닐까.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태풍상사> 중 (사진: JTBC , tvN ) 그런데 흥미롭게도, 가족과 연대로는 포착되지 않는 또 다른 층위의 이야기들도 있었다. 가족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폭력, 사회가 방치하고 묵인해온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이다. 그 ‘사이코패스’들은 무엇을 보여주었는가 올해 시리즈의 또 다른 흐름은 < 하이퍼나이프 >(김정현/디즈니+)의 소시오패스 의사 세옥( 박은빈 )을 비롯해 사이코패스 성향의 인물들이 전면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단지 반사회적 인물로 등장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그 재현을 통해 무엇을 드러내고 질문했는가에 있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변영주/SBS)의 연쇄살인범 이신( 고현정 ), < 친애하는 X >(이응복, 박소현/tvN)의 사이코패스 아진( 김유정 ), < 당신이 죽였다 >(이정림/넷플릭스)에서 남편을 살해하는 희수( 이유미 )와 그의 친구 은수( 전소니 ), < 자백의 대가 >(이정효/넷플릭스)의 모은(김고은) 등 폭력을 행하거나 살인을 저지른 반사회적 여성들을 통해 아동 학대, 가정폭력, 성폭력을 묵인하는 가부장제와 권력의 문제를 드러낸다. 이 시리즈들은 반사회적 선택이 개인의 선택이나 비정상적 일탈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산물임을 보여줬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은 초반의 기세와는 달리, 후반부에는 장르적 쾌감이나 개인에 대한 처벌로 귀결되며 구조 비판의 힘을 잃었다. 그 결과 폭력은 사회의 문제로 제시되지만, 변화의 책임은 다시 개인의 파멸이나 응징으로 환원된다. 2010년대 이후 빈번하게 등장한 ‘사적 복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이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 <자백의 대가> 중 (사진: SBS , 넷플릭스 ) 결국,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2025년 시리즈를 회고하다가 ‘돌봄’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폭싹 속았수다>의 해녀 공동체가 서로를 살피고, <태풍상사>의 태풍이 직원들을 신뢰하며 회사를 지켜내고,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에서 가족이 함께 위기의 시간을 견디고, < 다 이루어질지니 >(안길호/넷플릭스)에서 마을 사람들이 사이코패스인 가영( 배수지 )을 사랑으로 키워내는 것. <미지의 서울>에서 미래가 딸기 농원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신을 추스르고, <첫, 사랑을 위하여>에서 골수암에 걸린 효리(최윤지)가 꽃 농사를 짓는 보현(김민규)을 만나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고, <폭군의 셰프>(장태유/tvN)에서 지영( 윤아 )이 음식으로 사람을 살리고, < 내가 죽기 일주일 전 >(김혜영, 최하나/TVING)에서 이미 죽어 저승사자가 된 람우( 공명 )가 생기를 잃고 사는 첫사랑 희완( 김민하 )를 살리고, <견우와 선녀>에서 곧 죽을 운명에 처한 견우( 추영우 )를 무당인 성아( 조이현 )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살리는 것. 이 모든 장면의 공통점은 어떤 대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이야기라는 점 아닐까? 그래서인지 올해 시리즈에는 유난히 식물을 키우는 설정이 자주 등장했다. 식물을 정성껏 가꿀 뿐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서로의 곁을 지켰다. 올해 시리즈는 ‘죽이는 것’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살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대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가족주의라는 안전한 이데올로기에 기대고, 그것을 넘어서려 애쓰면서 2025년 시리즈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선택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문제는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돌봄과 버티기만으로는 구조를 바꿀 수 없다. 가족 간의 사랑을 앞세우고, 개인의 파멸로 끝나는 응징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흐릿하게 만들고,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상상력의 시계를 좁게 한다. <애마>에서 희란( 이하늬 )과 주애( 방효린 )가 “각자의 링” 위에서 싸우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세계로 나아갔듯, 지금 우리에게는 낡은 세계로 회귀하지 않으면서 “미래를 앞당기는”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미지의 서울> 중 (사진: tvN ) 오수경(드라마평론가) l 인간과 사회에 관심이 많아 문학을 전공했고, 신앙인으로 살고 있으며, 드라마를 들여다본다. 여러 매체에 칼럼 기고. 『을들의 당나귀 귀 』(2019) 공동 집필, 『드라마의 말들 』(2022) 집필.
한국영상자료원이 보유한 10,000건 이상의 검열 행정자료들 중 흥미롭고 주목할만한 것들을 선별하여 영화사적 배경이나 상황과 함께 소개하는 시리즈입니다. 이 글들을 통해 새로운 자료들을 발견하는 기쁨과 아울러, 한국영화사를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한국영화사에서 이만희 감독만큼 검열 이슈가 많았던 감독도 드물다. <7인의 여포로> 사건 으로 한국영화 감독 중 최초로 반공법 위반혐의를 받았고 옥고까지 치렀으며, < 휴일 >(1968)은 너무 어둡다는 이유로 개봉조차 되지 못했다. 이 영화의 필름은 2005년, 거의 40년이 지난 후에야 대중을 만날 수 있었다. < 기적 >(1967)은 공산주의 국가인 폴란드 영화를 표절했다는 이유로 거의 1년을 시달렸다. 심지어 영진공이 직접 제작한 국책영화 < 들국화는 피었는데 >(1974)조차, 영화가 충분히 반공의 이념을 담고 있지 못하다는 이유로 당국과 갈등을 빚다 마지막 검열을 포기했다는 설까지 있다. 이 글을 통해 살펴볼 < 삼포가는 길 >(1975)은 그런 종류의 검열 이슈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종류”라는 것은 삭제, 제한, 공개 금지 등 네거티브한 규제, 즉 검열에 대해 통상적으로 가지는 인식의 범주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권장과 규제의 변증법: <삼포가는 길>의 사례가 보여주는 피검열자의 기예 그렇다면 <삼포가는 길>은 무엇이 다른가? <삼포가는 길>의 검열과 관련한 사건은 이미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영상자료원이 2021년 <삼포가는 길> 블루레이 서플먼트로 인터뷰한 동영상에서 주연배우 문숙 님은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증언한다. 사안은 간단하다. 하층민 세 명의 우연한 동행을 담은 이 영화가 검열의 제약을 받을 것을 두려워한 제작사가 감독에게 새마을 운동 홍보가 될 수 있는, 그러니까 당시 한국의 발전상을 담은 장면을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이만희 감독은 내켜 하지 않았으나, 제작사의 간곡한 설득에 준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해대교를 무대로 엔딩 장면을 촬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지막까지 이 장면을 넣지 않으려 했으나 그가 뜻하지 않게 영화 편집 중 별세하면서, 이후 제작사 쪽에서 이 장면을 넣었다는 내용이다. <삼포가는 길> 블루레이 출시 기념 주연배우 문숙 특별 인터뷰 "마지막 장면은 검열 때문에 들어간 거예요“ (16분 56초, 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 영상으로 이동) <삼포가는 길>의 사례는 검열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로 우리를 이끈다. 검열하는 주체의 소망은 검열이 사라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당연하게도 검열자가 검열을 싫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검열이 필요 없을 정도로 (검열 주체가 보기에) 바람직한 산출물만 나오는 세상을 꿈꾼다는 의미다. 그런 세상을 실현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바람직하지 못한 산출물을 제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람직한 산출물을 권장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아래 서류들을 살펴보자. 1970년대 검열관들은 특정 영화에 대한 검열을 시행함에 있어 검열기준(영화법 시행규칙 제9조 영화검열기준)과 함께 “국산영화제작권장방향”을 참고해야 했다. 심지어 이들은 단순히 이를 참고할 뿐 아니라 영화가 어떤 항목에 해당하는지를 표시해야 했다. 다시 말하지만 검열기준이 아니라, 권장방향이다. 완성품을 대상으로 표현되어서는 안 되는 것을 삭제하거나 제한하는 것만이 검열이라 보는 입장에서는 이를 통상적인 검열 절차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왜 “제작권장방향”이 주어졌던 것일까. 일단 이 서류가 시나리오 검열자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그것은 향후 제작될 영화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당대 검열이 단순히 제한과 삭제라는 부작위의 명령에 머무르지 않았음이 반증된다. 즉, 그것은 해당 영화뿐 아니라 영화 일반의 생산 주체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리스트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이 리스트는 궁극적으로 검열이 도달해야 할 바를 가리킨다. 1970년대 검열관들이 참고한 "국산영화제작권장방향" <삼포가는 길>의 제작자가 두려워했던 것은 단순히 하층민의 재현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낙후된 사회의 모습이 재현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박정희 정권 내내 검열적 금기였다. 한국영화 감독들은 빈민촌을 비롯한 낙후된 사회의 모습을 포착하는 장면에 대한 무자비한 삭제에 대해 빈번이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그러나 실제 검열기준에 이와 관련하여 삭제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은 시행규칙 2호 “적성국가(대한민국과 분쟁중인 상대방을 포함한다)를 유리하게 할 우려가 있을 때”에서 간접적으로 추론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 모호한 부작위 명령 규정보다 “국산영화제작권장방향”에서 더 나은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예컨대 기본방향 중 “1. 한국의 국위를 선양하고 약진하는 한국의 발전상을 부각시킬 수 있는 내용”, 세부방향의 “2. 영화의 소재는 가급적 고속도로, 웅장한 공장, 새로운 주택가 등 발전하는 한국의 모습을 배경으로 할 것 / 3. 농촌을 소재로 하는 영화는 가급적 농업의 기계화, 새로운 농지정리 및 지하수 개발 등 밝은 농촌을 배경으로 할 것” 등이다. 이는 단순히 권장방향이 그 자체로 검열기준이 되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검열이라는, 흔히 생각하는 부작위의 명령에 내재하고 있는 작위의 요소들을 무의식 중에 표현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검열자는 종국적으로 삭제를 전제한 검열기준보다 “제작권장방향”만이 남기를 바란다. 비가시성이 완벽히 가시성 속에서 지양되는 것, 그것이 검열이 최종적인 목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검열의 의지는 현실 속에서 교활한 시장 주체들과 만날 때 교란된다. 피검열자들의 기예는 검열의 본성과 의지를 시험하고, 왜곡하고, 오도한다. 그 대표적 사례 중의 하나가 <삼포가는 길>의 남해대교 씬과 같은, 권장과 제한 사이의 줄타기다. 즉 권장 요소를 포함시켜서, 제한의 위험을 줄이는 것이다. 검열자가 원하는 것을 주면서, 검열자가 원하지 않는 것도 함께 포함하고자 하는 전략인 셈이다. 70년대 내내 검열자들은 “반공을 빙자한 폭력”, “반공을 빙자한 에로” 영화들에 넌더리를 내었다. 많은 제작자가 정책적 목표인 반공을 이용하여 폭력과 에로티시즘을 섞은 반공 아닌 반공영화들을 양산했던 것이다. “반공”이라는 정권의 제1 가치가 상업영화 제작자들로부터 조롱당했던 셈이다. <삼포가는 길> 마지막 장면(남해대교 씬) 검열의 생산성이라는 테마 1990년대 이후 검열 이론을 전환시켰던 것은 검열이 단순히 부정적 규제가 아니라 생산적인 효과를 가진다는, 검열의 생산성이라는 테마였다. 명백하게 푸코의 권력이론을 반영한 이 테제는 검열은 네거티브한 규제라는 인식을 전환했고, 보다 복잡한 절차와 효과들을 “생산”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검열의 생산성이라는 개념은 아직 어떤 합의된 결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논자마다 다양한 상황과 맥락에서 논의하곤 한다. 이 제한과 권장의 변증법 역시 검열의 생산성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권장과 제한의 변증법이 정책적으로 완벽하게 합일된 사례가 있다. 1980년, 영화검열을 담당하던 공연윤리위원회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검열위원들이 정부가 관장해 온 우수영화의 선정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우수영화란 정부가 제시한 기준에 따라 우수하다고 판단한(그 세부 기준은 해마다 달라졌으나, 관제적인 영화에 미학적 완성도가 가미된 기준이라 볼 수 있다) 영화에 외화수입권을 포상하는 제도였다. 시기마다 다르지만 외화수입권의 이권이 한국영화 한 편의 제작비를 초과하는 수준이었다 보니 우수영화에 선정되기 위한 제작사들의 경쟁이 치열했고, 우수영화 선정 여부는 그해 영화계의 최대 관심사였다. 그리고 정부는 이 제도를 통해 한국영화 제작사들을 통제했다. 말하자면 우수영화 선정 사업은 당시 한국영화 정책 수단 중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이러한 중차대한 국가적 진흥 사업의 임무가 검열기관에 주어졌던 것이다. 진흥기관인 영화진흥공사가 별도로 있었던 시절이었으니 더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물론 그 결정은 영화인 중심으로 구성된 영화진흥공사가 심사를 공정하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이 작용한 결과였다. 또한 검열관들이 어차피 영화를 보게 되니 그 과정에서 우수영화를 선정할 수 있으리라는 문공부의 편의주의적 발상의 결과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편의주의적 결정의 이면에는, 어쩌면 검열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을 꿰뚫은 무의식적 사고가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공윤이라는 검열기관이 부정적인 규제뿐 아니라 능동적인 권장 사업을 함께 한다는 것은 분명한 모순처럼 보인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당시 영화검열위원이자 공윤의 부위원장을 역임한 여석기는 “생산적”이라는 단어를 활용하여 이 모순을 해소하고자 시도하려 한다. 공윤이 맡아서 하는 일은 윤리규제이니까 그 자체로서 오히려 통념대로라면 규제란 뭔가 하지 말라는, 즉, 표현 내용을 자유롭게 허용하기는커녕 제한을 가하는 기능밖에는 없으니까 비생산적일 수밖에 없을는지 모른다. 굳이 「생산적」이란 용어를 쓰는 이유는 윤리규제가 양질의 문화를 생산하는데 간접적 기여를 할 수 있고 어쩌면 그런 역할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문화의 창의성을 침해하는데 최소의 작용을 하는 반면에 저질화를 막는데 최대의 노력을 경주할 때 윤리규제는 「생산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윤리규제 그 자체는 비평 행위가 될 수 없고 대상이 되는 작품의 값을 따져야 하는 입장에 서는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최소한의 「이런 것은 안된다」하는 주의 환기로서 끝나는 것이 그 본래의 기능일 것이다. 그러나 공윤이 우리사회에 뭔가 기여할 수 있는 적극적 능동적 측면이 있다면 그것은 규제가 육성으로 연결되는 점이 아니겠는가. - 여석기, "새시대 공연문화와 윤리", 《공연윤리》 53호, 1981. 1. 15. (강조는 필자) 여석기는 검열이 가지는 수동적 기능 혹은 부정적 규제 기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검열이 한국사회에 양질의 문화를 전파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기능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인용문에서 흥미로운 점은 공윤이 우수영화의 선정과 같은 적극적인 어떤 행위를 작위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굳이 전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그는 “비생산적”인 네거티브한 규제라 할지라도 그 자체에 충실할 때 생산적인 결과가 이어진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마지막 문장 속 “규제가 육성으로 연결되는 점”이라는 구절은 의미심장하다. “되어야 하는”이 아니라, “되는”이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당위를 전제하지 않는다. 검열 규제가 육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것, 때로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어느 면에서 여석기는 시대를 앞질러, 검열의 궁극적 본질을 포착했다고 할 수 있겠다. *** 이 글은 필자가 발표한 두 편의 논문, 「한국영화검열사의 몇 가지 주제에 대한 시론적 연구」(『한국극예술연구』 제59권, 2018)와 「〈애마부인〉이 등장하기까지: 영화 풍속 검열의 변동 요인 분석, 1979∼1982」(『영화연구』 제104호, 2025)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서지환의 < 저 ㄴ(X)을 어떻게 죽이지 >란 영화를 보기 전에 가장 궁금한 것은 ‘저 제목을 어떻게 읽느냐’다. 그냥 ‘저 엑스’라고 읽어야 할까. 아니면 X가 검열한 단어를 찾아서 읽어야 할까. 후자를 따른다면 아마도 X가 검열한 단어는 ‘년’일 것 같다. ‘놈’은 아무래도 덜 검열되는 단어이고 다른 비속어 욕들은 두 글자 이상이니까. 영화의 무대는 시골 전원주택. 중년 부부가 애 없이 살고 있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노동으로 돈을 버는 거 같지 않다. 영화 속에서 이들과 함께 사람들은 젊은 고용인 세 명. 여자 둘과 남자 한 명이다. 그러니까 이 부부는 정상적인 사회 시스템에서 격리된 공간에서 옛날 서양 유한계급 사람들을 흉내내고 있는 것이다. 그건 이들이 ‘지나간 시대의 먼 나라’의 특정 계급 사람들이 다른 계급 사람들에게 가졌던 권력을 갈망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사람들이 이 역할극 안에서 선을 넘었고 다른 선도 넘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건 집에 있는 총기다. 대부분은 서바이벌 게임에서 사용되는 페인트건이다. 하지만 아닌 것도 있다. 그리고 지겨워진 남편은 고용인들에 사냥 게임을 제안한다. 여기서부터 관객들은 영화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확인한다. 2021년작이다. 그라고 봉준호의 < 기생충 >은 2019년에 나왔다. 이 영화가 <기생충>의 자장 밑에서 나왔다고 짐작하는 건 타당하다. 하지만 그만큼 게으른 생각이기도 하다. <기생충>을 염두에 둔 영화라도 장 르누아르의 < 게임의 규칙 >의 영향을 더 받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엔 계급을 다룬 수많은 영화들이 있다. 이 세계 속 갈등은 익숙해보인다. 여자 고용인 1번인 하윤은 새로 들어온 여자고용인 2번인 지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윤은 저택 남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영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렇다면 제목의 ’저 X’는 저 년’이 맞나? 그런데 요새 세상에 이런 제목 트릭에 그렇게 쉽게 넘어가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일단 이 영화는 프라이드 영화제 상영작이다. 그리고 영화는 이런 역학 관계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관객들의 고정관념을 반영한 것 같은 그림을 그리다가 중반 이후에 뒤집는다. 그 뒤집음은 비교적 상식적인 생각에 기반을 둔다. 젊은 고용인에 대한 중년남자 상사의 치근거림은 불쾌한 성희롱이다. 당하는 사람도 괴롭고 옆에서 이를 보는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바라 보는 사람이 성희롱 당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불쾌함을 설명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이 영화는 그걸 지켜보는 사람, 그러니까 하윤이 성희롱을 당하는 사람, 그러니까 지영을 처음부터 사랑하고 있었다고 친다. 이렇게 하면 진부해보였던 하윤의 행동이 다른 식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 이야기가 더 재미있어진다. 여기에는 다른 기능이 있는데, 지금까지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남편의 위치를 사정없이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성애자 남자의 권력은 하윤이 지영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않겠다고 생각한 뒤부터 붕괴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보니 남자의 권력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허약했다. 앞에서 나는 이 남자가 어떤 노동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건 남자의 사회적 기능이나 가치가 시시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건 정상적인 사회 시스템에서 격리된 이 세계에서 남자가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여기에 대해 깊이 고민할 사람이 별로, 또는 전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화는 발랄한 코미디지만 누군가에겐 정말로 무섭게 보일 법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런 단편 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는 출연한 신인이나 무명배우들이 발표 이후 주목받는 위치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윤역의 하윤경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봄날의 햇살이고 곧 부산에서 공개될 < 딸에 대하여 >(편집자 주: 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공개되었다) 영화판의 레인이다. 지영역의 방효린은 < 지옥만세 >의 선우이고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에 캐스팅되었다. 두 배우의 경력이 이후에도 여성간의 관계 또는 퀴어의 주제를 품고 있다는 건 흥미롭다. 심지어 방효린은 <지옥만세> 개봉 이전인 ‘썸머 프라이드 시네마 2022‘에 이미 방효린 특별전이 가능할 정도로 꾸준히 퀴어 주제 단편들을 찍어왔다는 정보를 덧붙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