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술꾼의 전설
- 감독
- 에르마노 올미
- 제작년도
- 1988
- 출연
- 룻거 하우어, 안소니 퀘일, 산드린 듀마, 도미니크 피뇽, 소피 세갈렌
어떤 시간은 언어로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내가 이곳에서 통과한 시간들이 그랬다. 내가 가진 언어의 한계로는 도저히 써낼 수 없는 것. 거대하고, 두렵고, 지저분하고, 복잡한 동시에, 달고, 기특하고, 사랑스러운 순간들을 만끽했다. 고로, 나는 특별한 목적보다는 기억의 흐름을 충실히 따라 첫여름의 제작 과정을 기록한다. 여전히 전부 소화해낼 수 없는 감각을 안고, 순간을 돌아본다. < 첫여름 >(2025)은 여성 노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연출을 공부하며 만들었던 졸업작품이기도 하다. 졸업작품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여자들의 이야기에 허기를 느꼈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은 나의 중추이다. 나는 자라면서 여자들이, 나아가 사회의 정상성에 어긋나는 존재들이 따갑고 납작한 사회에서 어떻게 투쟁하고 생존하는지 보고 겪었다. 축적된 분노와 우울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사회에 균열을 내고 싶은 갈망이 맺혔고, 그 창구가 내게는 영화였다. 자연스레, 졸업작품으로 불편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문득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의 할머니는 얄밉고 이기적이었다. 우리 둘은 잠깐 동거를 했었는데 할머니는 내게 어떠한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매일 마스크팩을 하시면서도 나에게 한 장을 나눠주지 않았었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 대학 과제로 할머니를 인터뷰하게 됐다. 그녀의 연애담을 들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당신이 춤을 출 때 누구보다 신이 나고, 음악을 힘껏 사랑하는지를, 그리고 그 남자와 있을 때 자신이 얼마나 자신다워지는지를 서툴게 표현하시던 얼굴이 선명하다. 삶이 바빠 할머니를 잊었다. 아코디언이 너무 갖고 싶었지만 비싸 사지 못한다고 했던 할머니를, 애인 소식을 듣지 못해 앓던 할머니를 어린 나는 그토록 쉽게 잊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녀의 49재에서 불경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마치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카바레 음악처럼 들렸다. 고개를 드니, 넓은 대웅전 마루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이 춤을 추는 할머니가 보였다. 한동안 나는 그 장면에 사로잡혔고, 기필코 이를 영화에 담아내 갖겠다고 결심했다. ‘관객들이 노인이 아닌 한 여자와 동행했다고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이 다짐 하나를 손에 쥐고 <첫여름>을 쓰기 시작했다. 대웅전 주변에 앉은 영순(허진) <첫여름> 초고는 지금의 완고와 완연히 다르다. 초고는 손녀의 시점에서 어딘가 평범하지 않은 할머니 영순을 이해하게 되는 전개였다. 심지어 삼대가 만두도 빚었었다. 학수도 살아있었다! 어찌 됐든 초고는 실화와 훨씬 가까웠고, 지금의 영화 톤보다 안정적이고 온화했다. 거칠게 쓴 초고를 학교에 들고 갔을 때, 반응이 좋아 어리둥절했다. 수많은 물음표들을 훑기도 전에 나는 졸업작품을 함께 할 학우들과 본격적인 프리 프로덕션을 시작해야 했다. 곧이어 언어로는 절대 서술할 수 없는 고통, 재난 같은 고역의 시기가 찾아왔다. 시나리오가 써지지 않았다. 탈고를 가져가면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초고보다 나은 고를 쓸 수가 없었다. 이동을 잘 하지 않는 내가 어떻게든 환기를 해보겠다며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며 시나리오를 썼다. 동기를 따라 한답시고 스터디카페까지 도달한 나는 밤새 홀로 앉아 텅 빈 모니터를 바라봤다. 아침 8시였다. 여전히 모니터도, 머리도 텅- 비어 있었다. 노트북 자판 위로 눈물이 뚝뚝 맺혔다. 그 고통은 공포였다. 나에겐 시나리오와 나를 보고 모여준 팀원들이 있었다. 그들의 기대를 꺾지 않는 연출자가 되고 싶었다. 내가 쓰고 결정을 내려야 다른 팀원들이 움직일 수가 있었다. 그 이상으로 나를 공포에 내몰았던 존재는 할머니였다. 학교 수업의 일환인 시나리오 크리틱에서 나는 단언했다. “내 졸업영화를 본 누군가가 ‘할머니 팔아먹은 영화’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겠다.” 할머니의 존재는 몸집이 점점 커지더니 나를 꾸짖었다. 너 따위가 한 사람의 존엄하고 아득한 삶을 꾸며내려고 하다니. 네게 어떤 자격이 있다고. 감히 이야기를 쓸 수 없었다. 모든 게 다 위선이고 거짓 같았다. 나는 고작 누군가의 삶을 담보 잡아 이야기를 쓰는 사람인가. 자괴감이 해일처럼 나를 쓸고 해쳤다. 시간은 내 멱살을 잡아끌어 초고는 어느새 완고 비스름한 것이 되어있었다. 다행히 어느 정도 무난한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나를 돌아보게 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내 숨을 엄하게 짓눌렀다. 잡념과 눈물이 차올라 무엇을 해도 해소되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교수님을 찾아갔다. 허겁지겁 정리되지 않은 말과 추잡한 감정들을 와르르 쏟아냈다. 교수님은 잠자코 들어주셨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불쑥 한 문장이 튀어나왔다. “사실 전 제가 쓴 시나리오가 너무 불편해요.” 불편한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초고의 불편함은 내가 의도한 것과 정반대의 것이었다. 난 그걸 견딜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새로운 고를 써 내려갔다. 손녀 석윤이 아닌 영순이 오롯이 주인공인 시나리오였다. 시나리오 속 인물들이 드디어 사람같이 숨을 쉬고 근육을 움직였다.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 가뿐했다. 신비한 경험이었다. 초고를 쓰며 나는 손녀의 시선으로 영순의 삶을 그렸다. 20대 여성이 보고 싶은 노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었다. 노인을 전시하고 대상화한다는 감각을, 그 숨 막히는 불쾌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건 이 이야기의 출발을 배신하는 일이었다. 타인의 삶을 가볍게 다루는 순간, 그걸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였다. 그 죗값은 고스란히 작가에게 돌아간다. 다음 날, 나는 할머니 영순이 주인공인 새로운 고를 A고, 손녀 석윤이 주인공인 이전 고를 B고라고 이름 붙여 팀원들에게 갔다. A고는 등장인물조차 정리가 안 된, 침 냄새가 나는 갓난아기 같았고, B고는 더 이상 돌볼 게 없는 장성한 자식 같았다. 촬영까지 딱 한 달 남은 시점이었다. 웃기게도 나는 흔들렸다. AB고 대첩은 정확히 반반으로 파가 갈릴 정도로 팽팽했다. 프리 프로덕션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라, 어느 시점에는 다 큰 자식을 독립시켜 안락하게 노후 준비나 하고 싶은 유혹을 버리지 못했다. 나는 선택을 유보하고, 불확실성의 무게를 가늠하고자 발버둥 쳤다. 팀원들은 굳건히 내 선택을 기다려주었다. 안전한 길을 두고 도박을 하고 싶다는 연출자에게, ‘네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후회 없이 하라며 독려하고,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어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A고를 택했다. 나는 할머니 영순의 마음이, 그녀의 세계가 궁금해 <첫여름>을 썼다. 태초부터 주인공은 정해져있었다. 우리 영화의 쟁점은 ‘노인’이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영순은 극중 70대였다. 70대 배우를 찾아야만 했다. 세월을 연기로 속일 수는 없었다. 게다가 노인 배우는 일할 수 있는 시간이 확연히 제한된다. 당연하다. 노인 배우는 배우이자 노인, 즉 사회적 약자이기도 하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현장에서, 시간을 한정하고 노인 배우가 안전히 연기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로케이션도, 이동도 적지 않았다. 나아가, 노년기 삶을 가깝고 정직하게 담아내야 했다. 사려 깊고 섬세한 동료들, 그리고 영리한 준비와 현장이 필요했다. 영화를 만들어본 경험이 많지 않지만, 연출자로서 영화를 만드는 일은 ‘하나의 작은 세계를 구축하는 일’과 같았다. 상상도 못할 만큼 커다란 품과 열정을 필요로 한다. 현장은 재난과 축제가 동시에 일어나는 무시무시한 곳이기도 하다. 연출자는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민하게 타인을 관찰해야 한다. 나의 한계를 채워줄 귀인을 알아보아야 하고, 계속해서 도움과 소통을 청해야 한다. 나같이 느리고 서툰 연출자에게 <첫여름> 팀은 든든한 버팀목이자 행운이었다. 확신이 없어도 현장에 가고 보는 대책 없는 나의 버릇은 그대로였다. 안 그래도 난도가 있는 프로덕션이었다. 맨땅이 얼마나 단단한지 두들기지도 않고 무식하게 머리만 박았다. 나는 끝까지 엔딩을 정하지 못한 채 촬영을 진행했었다. 나도, 팀원들도 만족할 만한 엔딩을 쓰지 못했다. 이상했다. 첫 장면은 머릿속에서 재현될 만큼 확연했는데, 영순을 어떻게 보내줘야 할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첫여름> 촬영 현장 더불어, 나는 콘티에 약한 연출이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뚜렷하지만, 이를 장면화하는 일에 대한 기술이 부족하다. 카메라나 사운드에 대한 이해도 다른 동기들보다 없었다. 그런데도 지독하게 욕심을 부린다. 나와 김시진 촬영감독은 우리 둘 모두 만족하지 못한다면, 절대 콘티를 그리지 않았다. <첫여름>에서는 사찰에서 영순이 춤추는 씬이 공백이었다. 콘티는 있기야 했지만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가 연출자로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일 촬영 계획표가 변동되며, 휠체어 씬과 사찰 씬을 다 소화해야 하는 날. 결국 휠체어 씬의 반 이상을 찍지 못한 채 사찰로 이동하면서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사찰 입구로 진입하고 있었다. 사찰에서의 춤 씬을 설계하고 설득할 유일한 기회는 허무하게 끝났다. 녹음의 그림자를 멍하니 바라보며 무책임한 나를 증오했다. 스태프들이 밥도 먹지 못한 채 분주하게 몸을 움직였다. 고요하고 우아한 자연 속에 고장 난 내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해가 지면 사찰에 다시는 못 온다. 한복을 입고 휠체어를 직접 다 끌며 열연하셨던 허진 선생님은 지칠 대로 지쳐 계셨다. 나는 춤을 포기할까, 순간 망설였다. 그런 나 스스로가 오싹했다. 사찰에서 영순이 춤을 추는 모습 하나를 보기 위해 달려가던 이야기였다. 어떻게든 찍어내야 했다. 허진 선생님 또한 즉흥적으로 춤을 추는 감정에 대해 다른 해석들을 주셨다. 어느 지점에는 춤을 추는 감정이 당신에게 다가오지 않아 어려워하셨다. 배우도, 콘티도, 시간도 모두 내게 허락되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찍었다. 이 씬을 찍지 않으면 이 영화는 모든 의미를 잃는다. 이 작품 하나를 위해 모인 수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은 버티고, 설득하고, 성실히 시간을 붙잡는 일뿐이었다. 스스로 분노가 치밀었다. 가장 중요한 씬을 왜 이런 식으로 방치했을까. 허탈했다. 그런데, 테이크를 갈수록 내가 그렸던 할머니의 얼굴이 허진 선생님 위로 살며시 드리워졌다. 선생님의 몸짓을 보고 마음에 미약한 움직임이 일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할머니의 49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있구나. 사찰 씬이 나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망가지고 있었음에도, 알 수 있었다. 그제서야 알싸한 가을 냄새가 코에 맴돌았다. 내가 만약 확신을 가지고 배우와 스태프들을 설득했었다면 그날 사찰 씬 촬영은 달라졌을 수 있겠다. 그 장면을 편집할 때마다 나는 현장의 나로 돌아갔다. 모두를 불안하게 하는 나를 묵묵히 지켜보다 겨우 기억에서 빠져나왔다. 뭐가 됐든 나는 동료와 배우를 설득해내지 못한 연출자였다. 자책에서 벗어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확신과 솔직함의 줄다리기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연출자로서 얼마나 중요한지 배울 수 있었다. 사찰 앞, 춤을 추는 영순 허진 선생님과의 작업은 연애와 같았다. 나는 프리 기간 거의 매주 부산-서울을 통근하며 그녀의 집 앞까지 찾아갔다. 당일치기로 다녀온 적도 많았다. 그녀와 처음 대본 리딩을 하고 팀원들에게 긴 글을 썼다. 확신을 잘 갖지 못하는 내게 확신을 준 배우였다. 나는 분명 허진 선생님에서 우리 할머니를 보았다. 허진 선생님은 톡- 쏘는 청귤 같았다. 작고 푸른데, 시면서도 달고, 균일하지 못하고 예측할 수 없으면서도, 이해 가능하고 사랑스러웠다. 새침하고 외로운 여자지만, 사랑받고 싶어 하셨고, 사랑하고 싶어 하셨다. 그녀는 그 시절을 버텨낸 여성들이 문신처럼 가진 흉터를 가졌다. 그게 우리 할머니를 닮아 괜스레 마음이 저렸다. 영순은 더 이상 우리 할머니가 아니었고, 나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럼에도 허진 선생님과 우리 할머니가 닮은 것을 거부하지 않도록 했다. 나의 전략은 허진 선생님이 그녀 자신으로 연기해도, 영순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즉, 허진과 영순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었다. 선생님을 끈질기게 관찰하고, 그녀가 살아온 삶을 깊숙이 이해하는 일이 초짜 감독인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우리는 그렇게 웃고 떠들고 싸우고 지치고 애정하며 관계를 쌓았다. <첫여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노인을 20대 여성이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판은 아니었다. 나는 나와 전혀 다른 생애주기를 살아낸 한 여자가 되어 말을 하고, 감정을 서술해야 했다. 내 시나리오의 빈칸들은 내가 진정으로 영순의 신체와 일상을 이해할 수 없음에서 비롯됐다. 별 수를 다 써봐도 영순이 어떻게 섹스를 하는지, 아침에는 어떤 컨디션인지, 긴 길을 걷는다는 의미가 그녀에게 무엇인지,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는 보통 컷 사인과 동시에 현실로 돌아간다. 배우는 연기를 멈추고, 다시 자신이 된다. 그러나 허진 선생님은 달랐다. 나는 5회차 촬영 내내 영순이 된 허진을, 허진이 된 영순을 봤다. 빈칸들은 허진 선생님으로 인해 메꿔졌다. 허진 선생님 손등에 난 검버섯 하나와 주름 한 겹이 꾸며낸 대사 몇 줄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선배는 선배라는 이름을 가진 이유가 있었고, 나는 신이 나 그 세월을 훔쳤다. 허진 선생님의 몸짓과 숨소리는 내가 연출해낸 것이 아니다. <첫여름> 촬영 중 허진 배우와 허가영 감독 영화 속 영순의 대사, “그놈이 만져주면 동하더라.”는 원래 “그놈이 만져주면 젖어.”였다. 카바레에서 영순과 덕희( 김미향 )는 요실금으로 인해 기저귀를 주고받았었다. <첫여름>을 쓰면서 절대로 지우고 싶지 않았던 장면과 대사였다. 그러나, 허진 선생님과 리딩을 한 첫날, 선생님은 바로 이 대사와 장면을 빼자고 제안하셨다. 노인에 대한 해석이 너무 가볍게 보일 수 있다는 이유였다. 우리는 기싸움을 했고, 나는 벼랑에 매달려 애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허진 선생님의 말을 따랐다. 그만큼 허진 선생님 또한 다른 부분들을 내게 선뜻 양보해 주셨다. 아직까지도 그것이 나의 타협일 수도 있었겠다는 자책이 맴돈다. 그러나, <첫여름>은 배우에게 기대 살을 붙이는 영화였다. 치열하게 설득한 후, 기꺼이 배우를 믿었기에 완성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젊은 내가 노년 여성의 삶을 다루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세계였기에, 말투 하나, 몸의 반응 하나까지 막막했다. 그래서 나는 많은 노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카바레를 무작정 찾아가 춤을 즐기는 분들과 가까워져 그분들을 영화의 단역으로 모시기도 했다. 카바레에서 동료들과 맥주를 까마시고 그 공간이 가진 온도와 냄새를 살갗으로 느꼈던 순간들, 그곳에서 맴도는 언어와 소문들을 훔치고, 노인들과 함께 춤췄던 순간들을 <첫여름>을 만들어가며 가장 사랑했다. 노인은 욕망하는 주체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노년 여성의 욕망을 지우고, 외면하고, 혐오한다. 소위 춤바람, 노망이라고 일컬어지는 노인들의 움직임은 분명한 역동을 가진다. 속절없이 늙어버린 신체와 삶 안에서도 그들은 끝없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이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그들은 살아간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여자일 수 있고, 남자일 수 있고, 결국 ‘인간’일 수 있다는 그 사실에 기대어 존재를 긍정한다. 나는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카바레에서 만난 노인들의 흘린 땀에서, 그 몸부림과 사랑에서 노인들이 만들어간 문화와 생존을 보았다. 특히, 영화 속 여성의 욕망은 종종 극단적으로 다뤄진다. 억눌리거나, 폭발하거나. 하지만 그사이에는 다양한 결이 있다. 나의 외할머니 역시 사랑을 하고, 춤을 췄지만, 동시에 고된 시집살이를 견뎠다. 그 복잡하고 다층적인 면모에서 ‘영순’이라는 인물이 탄생했다. <첫여름> 편집 기간은 쉽지 않았다. 나는 원체 편집을 못한다. 속옷가게 씬 편집할 때는 손도 못 대고 벙쪄 있던 기억이 있다. <첫여름>을 사랑했기에, 현장이 눈앞에서 재생되고 후회가 몰려왔다. 지금의 <첫여름>은 처음 그렸던 <첫여름>과 닮고도 많이 달랐다. 이 영화는 더 지저분하고 사람 냄새가 그윽한 영화이길 바랐는데, 내가 더 갔어야 했는데, 밀어붙여야 했는데. 그 실망이 나를 주저앉혔다. 그러나 <첫여름>이 담아낸 영순의 얼굴은 그런 나를 일으켜 세웠다. 이 이야기는 로맨스 영화가 아니라 한 여성의 주체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 노인들이 삶의 마지막 궤적에서 춤을 추고, 사랑하고, 관계를 맺어가는 그 움직임은 아름답고도 인간적이라는 것. 이는 우리가 이야기로서 마주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 사랑, 섹스 그리고 삶은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 나와 이 작품을 함께 만들어간 배우들과 동료들이 굳건하고 세밀하게 만들어낸 토대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이 이야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그리고 이 작품이 가진 생명을 다시 직시하고 믿으며 <첫여름>을 만들었다. 칸영화제에서 내 영화가 아주 먼 곳에서 온 관객들을 만나고, 선명히 상영되고, 수상했던 기억을 가끔 꺼내어본다. <첫여름>이 영화가 되고, 사랑을 받으며 칸국제영화제에 초청이 되면서 내 삶은 질주하듯 전복됐다. 그 변화가 생생한데도 불구하고, 그날의 감정은 거대하고 짙어 지금도 소화하는 과정에 있는 듯만 하다. 시상식 때 1등으로 내 이름이 호명되었던 순간은 특히 그렇다. 수상 발표가 나자마자 동료들 모두가 놀라서 울기 시작했고,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진 상태로 수상 소감을 발표하러 무대에 올랐다. 심사위원 중에 내가 깊이 존경하는 마렌 아데(Maren Ade) 감독이 있어 벅차고 떨렸다. 영어로 더듬더듬 소감을 말한 뒤 동료들 곁으로 도망치듯 돌아갔다. 칸국제영화제 라 시네프 섹션 수상 현장 그저 신기했다. 칸영화제는 영화인들에게 꿈의 무대인 만큼 눈이 부셨다. 쿠엔틴 타란티노랑 같은 공간에서 영화를 보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엠마 스톤을 봤다. 한편으론 영화제가 지나치게 화려해 상처받은 순간도 있었다. 종종 영화제가 너무나도 눈이 부셔 내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았다. 낮은 곳의 이야기에 주목하며 박수를 보내면서도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이 모든 문화적 자본을 누리고 소비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모순을 느꼈다. 영화학교 학생들이 모이는 라 시네프 섹션에서 전 세계 각지에서 영화를 만드는 또래 감독들을 만났다. 우리는 서로가 만든 영화를 비교하고, 만져보고, 느끼며 신났다. 그들과 소통하며 동시대의 영화인들이 가지는 시선을 봤고 큰 자극을 얻었다. 무엇보다 기쁜 건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무수한 얼굴의 관객을 만나는 일이었다. 상영 전 발표를 해야 해서 앞줄에 앉아 영화를 관람했는데, 관객들이 영순의 표정과 마음을 따라가며 신나게 웃고 격하게 울어주었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가닿아 감정을 일으키고, 우리가 공동체가 되어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그 귀한 감각을 만끽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관객의 얼굴을 지켜보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상영이 끝나자 관객들이 다가와 소감을 말해주었다. <첫여름>은 그 많은 관객들 하나하나를 만나 그보다도 더 거대한 이야기로 뻗어나가고, 새로운 생명을 얻어나갔다. 이 날 것의 반응들과 감정들을 지켜볼 수 있어, 나는 참으로 복 받은 연출자였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노인 관객들이 ‘삶의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라며 고마움을 전했을 때는, 내가 왜 창작자로서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되새길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사회와 연결되고, 인간과 대화하고 싶어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영화는 솔직하고 아름다운 예술이다. 내가 그곳에서 사랑했던 진실을 잊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 <첫여름>과 함께 내가 자라날 수 있었다. 연출자로서 이토록 가득해 넘쳐흐르던 첫여름이었다. 허가영(영화감독) l 솔직한 영화를 만들고, 필요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 너를 심을 땅 >(2025), <첫여름>(2025) 연출·각본. * 촬영 현장 및 일부 스틸: 필자 본인 제공
필자가 씨네 21 기자로 일하던 1998년 9월 중순, 특이한 상영회가 열린다는 전갈이 왔다. 김수형 감독의 전화였다. 그는 1980년대에 < 산딸기 >, < 훔친 사과가 맛이 있다 > 등의 에로 영화를 연출했던 감독이며 김수용 감독의 조감독 출신으로 스승의 대표작인 < 갯마을 >을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사연은 이랬다. 당시 천리안 동성애자 모임 ‘퀴어넷’이 이태원의 어느 카페에서 김수형의 < 금욕 >(1976)이란 영화를 상영했고 이 자리에서 영화를 본 동성애 잡지 「버디」의 편집인들이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영화’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잡지에 실었으며 신촌의 한 카페에서 재상영을 한다는 것이었다. 사춘기와 청년기에 그의 영화를 동시상영 극장에서 곧잘 봤던 필자는 호기심이 동했으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정작 당사자인 김수형 감독은 다소 흥분해 있었다. 영화전문기자인 김영진은 이처럼 역사적인 자리에 꼭 기록자로 참석해야 한다는 게 그의 요지였다. 실제로 < 금욕 >은 흥미로운 구석이 많은 영화였다. 1973년 < 바람아 구름아 >로 데뷔했던 김수형 은 이 세 번째 장편영화에서 자기 나름의 모험을 시도한다. 제작자가 원한 대로 그는 새롭게 에로티시즘을 가미한 멜로드라마를 찍을 작정이었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급진적인 시선을 담은 영화로 태어날 뻔한 미완의 가치 있는 시도가 거기 담겨 있었다. <금욕>의 여주인공인 패션모델 영희는 세 남자에게 성폭행당한 기억 때문에 패션쇼장에서 발작을 일으킬 만큼 몸과 마음이 다친 상태인데 부유한 이혼녀이자 화가인 노미애의 그림 모델 제안을 받고 노미애의 집에서 함께 지내며 사랑에 빠진다. 남편에게 학대받은 기억이 있는 노미애는 영희에게 동병상련을 느끼고 영희의 재활을 헌신적으로 도와준다. 당시 대다수의 한국 멜로드라마 영화 여주인공들이 남자들에게 상처받으며 전락하는 과정을 다뤘다면 < 금욕 >은 남자들에게 상처받은 여성들이 서로 보듬어줌으로써 아픔을 치유하고 넘어선다는 주제를 다룬다. 물론 이 플롯은 에로티시즘을 넣기 위한 구실이기도 하다. 영희와 노미애가 서로 마음을 보듬는 과정은 노미애가 영희의 몸에 바디 페인팅을 하거나 벌꿀로 영희의 몸을 전신마사지하는 초보적 에로티시즘의 형태로 묘사된다. 1970년대의 심의 기준으로는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면서 김수형 은 여성 주인공들이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나눈다는 설정을 플롯에 암시적으로 끼워 넣었다. 노미애의 집을 온갖 새장들로 가득 찬 공간으로 설정하고 새장의 이미지를 줄곧 화면 전경에 놓고 폐소공포증을 의도적으로 부추기는 가운데 두 여성 주인공이 가학과 피학을 오가는 성적 교감을 나누는 전개는 제작자의 구미를 당겼을 것이다. 물론, < 금욕 >이 끝까지 당시의 금기를 밀어붙인 영화라는 것은 아니다. 중반 이후 전개가 다소 상투적인 전개로 흐르는 가운데 영희는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남성 디자이너 준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와의 결혼을 꿈꾼다. 영희는 준이라는 완벽한 남자를 만나 나누는 성관계를 통해 강간의 충격을 벗어나 이성애적 사랑의 길로 다시 걸어 들어간다. 그런 영희의 선택을 비난하는 노미애의 태도는 감상적인 질투에 가깝다. 당시 잡지 「버디」의 편집진은 노미애가 영희를 붙잡을 때 “내 삶을 전부 너에게 줘버렸기 때문이지”라고 말하는 대사에 이 영화의 비의도적인 레즈비언 적 상상력의 올바른 정치적 태도가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금욕>이 레즈비언 영화의 계열에 들어갈 수 있다면 바로 이 대목 때문이다. 레즈비언이란 여자와 성교하는 여자가 아니라 자기 인생의 가치 중심을 여자에게 둘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금욕>은 이성애주의로 점철된 한국영화의 한켠에서 레즈비언 적 시선을 한 줄 건져 올릴 수는 있는 셈이다.” 80년대 충무로 에로 영화 계보의 한 축을 차지했던 감독 김수형 은 < 금욕 >을 만들 때 29살의 나이였다. 미숙한 대로 이 영화에는 의욕 충만한 영화청년의 기질이 곧잘 드러난다. 새장 속의 새와 남성 지배사회 속의 여성이라는 유추는 뻔한 것이지만 일관되게 새장 이미지를 밀어붙이는 화면의 응집력은 꽤 힘이 있다. 불행한 여성이 또 다른 여성을 만나 구원을 얻었고 남자 때문에 그 여성을 버렸다가 다시 불행해진다는 이야기 구조도 남성의 의지에 따라 여성주인공의 운명이 정해지는 멜로드라마의 관성을 깨는 것이었다. 영화의 말미에 영희는 다른 여자의 구애를 받는 준을 목격하고 다시 노미애의 집에 돌아오지만 노미애는 이미 자살한 뒤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 필자를 만난 김수형 감독은 <금욕>이 자기 의도대로 촬영했다면 더 좋은 영화가 됐을 거라고 변명했다. 그는 “애초에 영화의 결말은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다른 여자를 찾는 노미애를 보여주며 끝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검열 때문에 자신이 없어서 결말을 바꿨다. 제목도 본래는 ‘여자와 여자’였는데 개봉 당시 심의가 나오지 않아 <금욕>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어쨌든 검열과 영세한 산업구조의 이중고에 갇혀 있던 1970년대의 한국영화계를 감안 할 때, <금욕>은 우리가 기억할 만한 미완의 동성애 소재 영화이다.
시나리오 작가 송길한 인터뷰 두 번째 이야기: “그때는 내가 쓰면 최고의 장면이 기다리고 있었지요.” 정성일 _ 드디어 < 만다라 >입니다. <만다라>는 한국영화사상 10 베스트 영화에 꼭 들어가는 한 편입니다. 이 영화는 단지 훌륭하다고 말하기보다 이상하게 볼 때마다 심금을 울리는 어떤 힘이 거기에 있습니다. 감상이랄까 그런 게 전혀 없는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마음을 움직인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깊이도 볼 때마다 새로운 배움을 얻는다고나 할까요. 임권택 감독님 말씀에 따르면 당신께서 어떤 영화를 하고 싶다는 말을 제작사에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만다라>는 예외로 소설을 읽자마자 이걸 영화로 하고 싶다고 화천공사에 이야기를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일성 촬영감독도 큰 수술을 마치고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찍다가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최후의 영화를 찍는다는 심정으로 소변통을 옆에 차고 촬영을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이 모든 힘들이 이 한 편의 영화에 모이면서 단지 1+1+1... 이 아니라 마술적인 화학작용이 일어난 영화인 것 같습니다. < 만다라 >(1981) 송길한 _ 그거는 정성일 평론가나 보는 눈이지. 다른 사람은 몰라. 이것은 창작자도 모르는 플러스알파가 있거든. 그건 몰라. 다 모르는 거거든. 이 비밀이 없으면 영화를 못해먹지. 이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거지. 미리 짜고 친다고 고스톱 되는 게 아니고, 영화를 하다 보면 진짜 아, 이건 정말 몸 한번 던져보고 해볼만 하구나. 이런 게 있거든. 근데 나는. 무엇인지 모르는, 애틋함 같은 게 근본 속에 있다고 하는 건, 소설에서처럼 단순히 두 사람의 구도자들의 실지적인 불교 생활을 그렸다면 그건 없어졌을 거야. 누구들은 이것이 광주사태 이후의 저항처럼 보기도 하지만 그게 아니여. 그건 두 젊은이의 자기완성을 위한 어떤 치열함을 그리자, 그런 데서부터 불교가 갖고 있는 꽉 짜인 틀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지 않나 싶어. 그게 나는 오히려 대중들에게 더 보편적인 진동을 주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해. 정성일 _ 선생님께서 처음 김성동 씨의 원작 소설을 읽었을 때 첫 느낌은 어떠셨습니까? 송길한 _ 난 그저 그랬어. 둘이 가다가 가끔가다 지산이가 나타나서,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서부극의 갱처럼 휘젓는 것 말고는 재밌는 게 없었어. 너무 논설이 길어. 안티 불교에 대한. 십 년간 회상을 하는데 지겨운 것들이 너무 많아. 그래서 교단에 대한 것들은 다 삭제해버리자.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이지. 그러고 나니 상당히 좋은 거야. 특히 서정성이 좋아. 영화 처음 시작할 때 버스 오는 씬. 그 장면에서 숨 막혔거든. 극장에서도 물을 뿌린 듯 정적감만 감돌았지. 정성일 _ < 짝코 >가 플래시백 구조가 통할 것인가를 놓고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조마조마한 장치였다면 < 만다라 >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형이상학적인 대사가 통할 거라는 것이 제일 큰 관건이었을 텐데. 이 힘겨운 대사에 작가의 확신이 있었습니까? 송길한 _ 나는 확신은 없었어. 절간에 드나드는 사람이나 알까. 젊은 애들은 더더욱 모를 테고. 하지만 못 알아들어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아는 사람이 봤을 때 저건 구라야 하면 작품 전체가 정말 구라인 거잖아. 하지만 제대로 썼구나, 하는 소수가 있다면 괜찮은 거니까. 감독님도 그 신념이었을 거야. 그런 신념이 무섭지. 그런 오기 같은 게 임 감독님에게 있다고. 관객이 못 알아들어도 상관없다는 거. 전문인들 몇 명이 인정하면 돼. 그게 상당히 중요한 거 같아. 그러니 편해지지. 무슨 어려운 얘기가 있더라도 그냥 썼지. 그래서 감독님은 정일성 촬영감독을 그렇게 기다렸는지도 모르겠어. 앓을 때에 문병도 가고. < 만다라 >는 서정성을 살릴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그게 맞아떨어졌어. 풍광이 주는 비애 또는 애수라 할까, 그런 정감들이 관객의 가슴에 스며드는... 정성일 _ 한편으로 < 만다라 >는 첫 번째 데뷔작부터 순서대로 따라 오면서 다시 보면 임권택 감독님의 첫 번째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송길한 _ 근데 그 형이상학이 그렇게 보편성을 가지고 우리에게 와주지는 않지. 그래서 맨 처음 이 영화를 절간의 승려가 아니라 두 젊은이가 자아완성을 향해서 가는 치열한 모습에 초점을 맞춘 거였어. 정성일 _ 여기에는 약간 복잡한 사연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찍지는 못했지만 < 비구니 >가 있고, 그리고 선생님이 참여하지 않았지만 < 아제 아제 바라아제 >가 있습니다. 1980년대 임권택 감독님은 많은 시간을 영화에서 불교와 함께 보냈습니다. 불교의 무엇이 그렇게 그 시기를 이끌었을까요? 송길한 _ 나는 우선적으로 구도승들이 갖고 있는 치열성. 그게 가장 매력적이여. 그래서 그네들이 ‘만다라’를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가 아니라 거기까지 근접해가는 이야기를 한 것이거든. < 비구니 >는 분단 상황도 다 들어가는 건데, 전쟁 중에 그네들이 삶을 버텨내고 어떻게 자기들 나름의 원칙을 지켜내고 치열하게 가는가. 그리고 여기에서 고아를 위해 몸 한번 준다. 이런 거랑 의미가 달라. 이것은 붓다가 갖고 있는 큰 것과 맥이 닿고 있는 거지. 이 양반이 좀처럼 그런 소리를 안 하는데, 여름철에 혀 빠지게 쓰고 있는데 한번은 쓱 오더니 그래. 좋네, 어쩌면 이것이 송 작가의 대표작일 거여, 그런 소리를 다 하더라고. 나도 자부심이 있었고. 임 감독 자신도 본인의 입으로 나는 수많은 전쟁영화를 찍었지만 그렇게 스펙터클하고 착 앵기는 씬을 찍은 거는 처음이라고 했거든. 그런 걸 못 본다니 어이가 없는 거지. 김지미 씨도 몸을 던져 정말 열심히 했거든. < 만다라 >, 저건 내가 한방에 보낼 수도 있다, 그런 야심도 있었을 거야. 영하 몇 도 되는데 그 추운데 발가벗고 찬 물에 뛰어 들어가고 스텝들 다 있는데 무서운 거지. 그 열정이..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거여. < 만다라 >의 풍경 정성일 _ < 만다라 >는 여러 가지 빛나는 부분들이 있지만, 촬영의 풍광이 아름답게 빛나는 영화들 중 하나입니다. 이 풍광이 이야기의 일부이기도 한데, 이런 경우 시나리오를 쓰는 입장에서 헌팅과 시나리오의 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송길한 _ 그건 원작이 있는 경우니 내가 무슨 풍경을 잡자, 어쩌자 할 수가 없지. 내가 헌팅을 다녀와서 지문에 어떻게 쓰고 그럴 수도 없고. 감독님도 이미 헌팅을 다 해놓으셨을 거야. 그때 아마. 정성일 _ 시나리오를 쓴 입장에서 완성된 후에 < 만다라 >를 본 느낌은 어떠셨습니까? 송길한 _ 좋았어. 거진 완벽 하구나 그랬지. 녹음실에서 봤을 때, 처음에 동안거(冬安居)에 관한 디졸브 몽타주가 있잖아요, 선방생활을 하나로 묶는. 사실 그게 (시나리오에서는) 뒤에 나오거든. 임 감독님이 꿈틀꿈틀하더니 “어이 송작가” 부르더니, 나를 데리고 필름 들고 편집실에 간 거야. 그리고 그 부분을 도입부에 갖다 붙이는 거야. 아예 동안거 과정을 영화 앞에 간략하게 싹 전제해버리는 거야. 그리고 보니 벌판길 롱 테이크가 압도된 거지. 편집을 상당히 꾸물꾸물하더라고. 그러다 밤 두, 세시 되었는데 딱 결심을 하더라고. 그 기억이 참 생생해. 정성일 _ 시나리오를 써놓은 상태에서 < 만다라 >는 유랑하듯이 영화가 진행됩니다. 이 경우 시나리오와 영화의 편차가 어느 정도 작용이 됩니까? 송길한 _ 불교 특유의 만행(萬行)이라는 게 있잖아요. 떠돌면서 수행하는 거. 나는 처음부터 절간 포함 로드무비라고 생각했어. 절간도 지나가다 들리는 주막이나 마찬가지인 거지. 이걸 도입부에다 때려버리고 그렇게 프리하게 간 거지. 그게 간결하잖아. 정성일 _ 반면에 임권택 감독님 영화에 대해서 많은 비평가들이 그런 압축적인 표현, 간결함, 어떤 감정을 절제하는 것을 장점으로 얘기하면서도 가끔은 지나치게 설명적이지 않나 그런 얘기를 종종하지 않습니까? 간결함과 지나친 설명이 공존하는 게 이상하다는 느낌이 있거든요. 송길한 _ 영화 뒤에 자막 붙이는 거. 얘기를 영화로 다 해놓고, 주제가 되는 것을 목소리로 설명을 한다든가, 나도 대놓고 얘기 했어. 근데 감독님이 아니여, 다 필요해, 그러는 거여. 감독님이 필요하다고 하는 그런 영화들은 대부분 다 해외 영화제에 다 내보내려 한 것들이야. 그건 일종의 못 알아들음에 대한 어떤 자막으로써 주는 함축적인 테마가 아닐까. 오시마 나기사의 < 감각의 제국 >에서 “사랑도 모르는 것들이 전쟁은 무슨”하는 야유의 자막처럼 하면 되는데, 사실 아무 것도 없어야 저게 뭔 이야기야, 하면서 생각을 하게 되는데 결론을 딱 내려주니까, (잠시 생각) 하지만 그것이 감독의 자기 주관이고 신념이고 한다면 뭐라 말을 할 수 없어. 모르고 가면 몰라도 자기도 알고 간다는데 할 말이 없지. 어쩌면 그분만의 완벽성이 아닐까? 정성일 _ 자막 문제뿐만이 아니라 저의 경우 < 만다라 >에서 법운 스님으로 나온 안성기 선배의 속세시절 대학생 에피소드가 나온 순간에는 설명을 넘어서서 당황을 했습니다. 이게 왜 필요하지? 송길한 _ 나도 죽고 싶어. (웃음) 내가 썼지만 정말 죽고 싶어. 그건 쥐가 물어갔으면 좋겠어. 그건 감독님도 마찬가지일 거여. 잘 없어졌다 그러실 거여. 물론 그의 세속 시절의 출가 동기를 설명하는 씬인데, 너무 구질구질한 거지. 그림도 별로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쳐다보면 더 죽겠는 거지. 그때 당시는 몰라서 넘어갔는데, 한참 뒤에 쳐다보니 내 보기에도 웃기고 손가락이 오글거려. 그 관념적인 대사를 연인끼리 주고받는다는 게.. 정성일 _ < 만다라 >는 몹시 강렬한 에피소드인데도 저에게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 기억 속에 지워지는 게 지산이 법운과 사창가에 간 대목입니다. 매우 중요한 장면이기도 한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법운이 떠도는 풍광이 너무 아름다우니까 그 대목들이 자꾸 잊혀 집니다. 한편의 영화 안에서 완전히 반대되는 그 두 에피소드, 지산과 법운의 세계의 균형을 잡는 게 무척 어려웠을 거 같습니다. 송길한 _ 법운의 승려생활이 청정 FM이라면 지산은 파계도 두렵잖은 무애주의(無碍主義)인거죠. 그러나 두 사람의 수행이 맞닿는 꼭짓점은 하나이고 같다. 길은 다를 수 있되 그들이 추구하는 궁극적 종착점은 같다. 이게 두 사람의 균형이 아닐까? 정성일 _ 임권택 감독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떤 태도를 취하면서 가끔 섬뜩한 느낌이 드는 순간과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새마을 운동의 성공적인 시골 지도자를 다르면서 온갖 우여곡절 끝에 그 자리에 이른 인물을 다룬 다음에 문득, 이건 성공 다음을 다루어야 진짜 이 사람을 보는 거야, 할 때, < 길소뜸 >, 그리고 < 티켓 >에서의 원래의 비정함. 여기에는 인간에 대한 불신, 거기서 오는 어떤 얼음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반대로 선생님의 시나리오를 읽으면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어떤 신뢰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해석이나 결론에서 서로 근본적으로 갈릴 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송길한 _ 나도 무슨 신뢰나 이런 거 없어. 하지만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한, 우리가 그런 쪽에다 시야를 줘야하지 않겠나, 하는 막연한 투시지. 머 절대적인 사랑 이런 건 나도 없어. (잠시 생각) 무슨 말인지 나도 충분히 알겠고. 몇 년 전에 < 달빛 길어 올리기 >를 하는데 임권택 감독님이 저것들 미친 것들이여,를 입에 달고 살아. 전체 인물들이 다 미친 것들이여. 인간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치 자기 주문, 주술인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미친 것들, 하고 가는 거여. 거기 더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스스로 자기 경계를 강조하고 있는 듯한 느낌. 다 그분만의 안목이겠지. < 나비 품에서 울었다 > (1983) 정성일 _ < 만다라 >를 찍고 나서 다음 작품이 약간 당혹스럽게도 역시 로드무비이긴 하지만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를 찍었습니다. 송길한 _ 감독님도 그렇고 나도 그걸 생계형 영화라고 봤다고. 근데 전작전(全作展)에서 다시 보니 절대 생계형 영화가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얘기했어. 감독님 만나면 반드시 얘기할 거야. 지금 보니 생계형 영화 아니라고. (웃음) 정성일 _ 영화가 갖고 있는 굉장히 독특한 세계가 있다고 할까요. 진담으로 유부녀판 < 만다라 >라는 느낌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다소 기괴한 발상으로 영화가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데요. 송길한 _ 이 영화는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는데. 그 무렵에 막 ‘묻지마 관광’이 시작되던 때인 것 같은데. 먹고 살만하니까 여자들이 천연덕스럽게 ‘고독’이란 단어를 은근히 발설하곤 했죠. 그 고독은 여자들의 정신적, 육체적 공허감을 말하는 건데 시대적으로 이상한 바람기가 맴돌던 때가 아니었나 생각되네요. 그 무렵에 남편이 해외출장을 떠난 한 여성의 방황을 로드무비로 만든 것이 < 나비 품에서 울었다 >이죠. 정성일 _ 그게 원작도 없고, 그 어디선가 발상이 시작된 건가요? 송길한 _ 정진우 감독이 뻐꾸기, 앵무새 시리즈로 재미를 봤잖아. 그 시리즈의 하나여, 그게. 그냥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로 제목까지 붙여줬죠. 우리가 생계형이라고 했을 수밖에 없는 게 감독님도 그냥 하지! 그랬고. (웃음) 그야말로 그것은 길 위에서 만든 작품이야, 인물 몇 명만 설정해 놓고, 사전 헌팅 해 봐야 딱 맞는 것도 아니고. 대충 이렇게 맥락만 세워놓고 스텝 끌고 떠난 거지. 정성일 _ < 나비 품에서 울었다 >와 < 안개마을 >과 시나리오의 전후 관계가 어떻게 된 건가요? 임권택 감독님 말씀에 의하면 <안개마을> 헌팅 떠나는 차에, <나비 품에 울었다>를 찍자고 떠났다고 하셨습니다. < 나비 품에서 울었다 >가 떠돌아다니는 장면 중간에 <안개마을>을 찍은 지역을 통과했고, 그래서 촬영이 끝나자마자 바로, 겨울이 시작하는 지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촬영 팀을 다 데리고 돌아와서 <안개마을>을 찍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나리오는 어느 쪽을 먼저 작업한 건가요, 아니면 촬영과 마찬가지로 시나리오도 동시에 작업에 들어간 건가요? -- 송길한 _ 대종상 접수마감이 문제가 된 거에요. < 나비 품에서 울었다 >의 시나리오가 먼저지. 그때 시나리오도 시간이 있나 길어봐야 한 달이지. 그 안에 하여튼 하는 거지. 일단 검열을 맡아야 하니까 그냥 출발하는 거지. 내가 현장에 안가면 몰라도 가니까.. 그리고 로드무비라는 게 현장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맥락만 서있고 궁극적으로 뭔 얘기인가만 공감하면 그냥 가는 거지. < 안개마을 > (1982) 정성일 _ < 안개마을 >은 임권택 감독님 영화중에서 많은 사람이 사랑하기는 합니다만, 감독님 필모그래피에서 매우 특이한 영화입니다. 감독님이 추구하던 테마로부터 완전히 빠져나온... 송길한 _ 좀 미숙성된 영화지. 시나리오부터 좀 더 다졌어야하는데.. 정성일 _ 이문열 작가의 소설 “익명의 섬”을 처음 읽었을 때 어떤 느낌이셨어요? 송길한 _ 이문열 씨가 이미 익명성을 주제로 쓴 소설들이 시리즈로 몇 편 나왔고 그 중에 계간지 ‘세계문학’에 실린 걸 읽었는데 오지에서 일어나는 익명성이 에로티시즘으로 생명력에까지 이르는 그의 착안이 어릴 적 우리 시골마을에서 비밀리에 떠돌던 얘기도 같고, 존재의 신비감이랄까, 이런 게 마음에 들었죠.) 내가 거기서 버스 정류장 앞에 산월이란 벙어리 술집 아가씨. 남자들은 (성적인) 분출을 어떻게 해결 하느냐, 나는 그것이 자꾸 생각나더라고. 산월이 에피소드가 잘 들어간 거라고 봐. 그것도 없으면 거기 적막한 산골에서 무슨 에피소드가 있어. 정윤희 누드가 나오지만, 영화가 그것만으로는 힘드니까, 대종상 일정에 대느라 단양 근처 수몰지역 근처 직티리라는 데서 최단 시일 안에 찍어낸 작품이요. 그게 근데 그 영화 하면서 오랜 시간 지지고 볶는다고 잘 되는 게 아니란 걸 알았죠.(웃음) 대종상도 주고, 안성기 도 주연상 받고... 시즌이 많이 도와줬어. 눈이 올 때가 아닌데 눈도 많이 내려주고, 일이 되려면 그렇게 되는 거여. 감독님의 순발력의 승리랄까. 그런 작품이죠. 정성일 _ 문제는 정윤희 씨가 빛나게 아름답기는 한데 연기로 감당할 수 없는 역할을 맡은 게 아닌가요? 송길한 _ 맞어. 뭔지 모르고 나온 거 같았어. 거기다 내레이션도 밀착되지 않고 떠있지. 정성일 _ 그 영화는 이례적일 정도로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 유독 많습니다. 그건 정윤희 씨의 출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인가요, 아니면 처음부터 시나리오를 그렇게 쓰신 것입니까? 송길한 _ 처음부터 그렇게 갔어. 시간이 없기도 하고. 주인공의 육체적 백서이기도 해서, 내레이션이 없으면 맥락도 안서니까. 그런데 그걸 용케 보는 쪽에서는 굉장히 오랜만에 내레이션이 나오니까 쇼킹하게 느낀 사람도 있어. 그건 착각이지. 정성일 _ <익명의 섬> 같은 작품을 시나리오로 쓸 때, 꼭 이문열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도, 선생님의 경우 원작자와 이야기를 하시나요? 송길한 _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어차피 소설은 영화에서는 소재니까. 그러고 다 끝난 다음에 우리 끼리 보는 시사에서 한번 같이 보고. 본인은 족하게 생각하고. 영화화된다고 하면 소설가들은 다 좋지.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어. 근데 이 친구가 시나리오를 봤는지, 어쨌는지 이건 상당히 너무 깊이 들어갔고, 평론가나 할 소리를 하면서 어쩌고 뭐라 그러더라고. 아무튼 제작사인 화천서는 야무지게 계산했지. 베를린 영화제 출품한다고. 근데 영화제에는 그런 영화가 많잖아. 이게 로컬이지만 단순히 로컬도 아니고 익명성이잖아. 정성일 _ 선생님이나 임권택 감독님은 < 안개마을 >을 거의 이야기를 회피하지만 이 영화는 그때 런던영화제에 다른 한국영화 4편과 함께 상영되면서 비평가들로부터 큰 관심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때 <안개마을>은 유럽비평가들을 매혹시켰고, 많은 비평적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임권택이라는 감독의 다음 영화를 보고 싶다는 관심이 커졌지요. <안개마을>에 대해서 비평이 느끼는 매혹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지는 지요? 송길한 _ 나도 이상하게 생각해. 정윤희 가 예뻐서 그런 건지.(웃음) 한국 고유의 로컬리즘과 그 속에 은밀하면서도 생생하게 숨 쉬는 생명력으로써 익명성이 이채로웠을지도 모르지. 인간 존재의 미스터리를 솔직하고 깊이 들여다본 감독님의 안목, 그 독특성이 어필했을 수도 있고, 주인공 정윤희가 갖는 백치미와 그녀의 내숭이 빚어내는 인간의 양면성도 재미있고, 그런데 곁에서 보니까 사실 정윤희는 백치미가 아니고 다독(多讀)을 하는 내실주의자였어요. < 불의 딸 > (1983) 정성일 _ 이상하게 이야기가 안 되고 있는 중요한 영화중의 하나는 < 불의 딸 >입니다. 여기서는 < 만다라 >에서 다루었던, 존재론적이고 철학적인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건드리고, 또 한편으로는 < 짝코 >에서 형식적으로 다루었던 플래시백이 더 복잡한 순서로 동원되면서, < 신궁 > 이후 임 감독님이 탐색해온 무속신앙이라는 세계를 다시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간의 주제와 형식, 질문이 집결되었다고나 할까요. 송길한 _ 욕심을 내자면 < 불의 딸 >은 샤머니즘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터득이 부족했어요. 그것이 피상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을 민족의 한이나 그런 쪽으로 이야기하고, 그런 것들이 뒤에서 생각해봐도 계속 걸리고, 좀 더 알고 덤볐더라면, 원작자인 한승원 은 잘 알았냐, 그쪽도 마찬가지여 오십보백보야. 내가 큰 만신 김금화 씨를 따라다니며 본질을 알고 보니까 그게 얼마나 피상적이었나, 그게 느껴지더라고. <서울만신>은 중간에 넘어졌잖아. 두 제작자들 간에 트러블이 생겨서. 나만큼 상처 많은 사람도 없어. 중간에 내린 게 참 많아. < 비구니 >도 그렇고, 차기작으로 썼던 <노을>도 좌절되고, <서울만신>까지... 정성일 _ < 불의 딸 >은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송길한 _ 임 감독님하고 나하고 김지미 를 왕 무당으로 하는 무당영화를 하자 그랬어. 그게 < 신궁 >에서 성이 차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 좋다 그렇게 했는데, 오리지널을 쓰자니 시간이 너무 짧고, 좋은 찬스인데 제작자는 기다리고 있잖아, 얼핏 보니 한승원 이 쓴 <불의 아들>이라는 연작이 있었어. 읽어보니 그런대로 말이 되더라고 그래서 감독님에게 읽어보라고 했지. 오히려 본질에 대한 확신도 없고, 그게 잘 안되니까 얘기가 내가 생각해도 좀 피상적인 게 많았지. 정성일 _ 한편으로는 무속신앙이라는 것 자체에 공감을 전혀 못하시고... 송길한 _ 모두 공감은 했으니 작업에 임했던 거 아니겠어? 상당량의 관련 서적이나 사례집 등을 통해 샤머니즘에 관한 공부도 열심히 했었지. 그럼에도 그 본질에 접근하는 데는 산 너머 산이었어. 공부해야할 폭이 너무 넓은 거야. 과학이나 정신 의학 같은 합리적인 잣대를 들이대면 무산되는 게 무속이어서 그 실체를 규명하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어요. 원작자인 한승원 도 어설프긴 비슷했어. 나는 좀 아는 줄 알고, 이건 어떤 의미에서 그런 거여, 하고 물어봤거든. 나는 시간도 없고 한승원 집에 눌러 붙어서 초고를 썼거든. 그 본질을 알려고, 근데 그도 본질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픽션으로 쓴 거야. 본질을 모르고 덤벼드니 안 되는 거여, 정성일 _ 이 영화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시피 한데, < 비구니 >에 대한 아이디어는 맨 처음 언제부터 논의가 시작되었나요? 송길한 _ < 길소뜸 > 바로 전이지. 소설가 한승원 이가 < 비구니 >를 쓴다고. 감독님이 같이 작업을 한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그가 당시에는 불교를 그리 썩 잘 아는 사람이 아니야. 아주 해박하지는 않아도 뭔가를 좀 알아야 쓰지 않겠냐고. 중간에 보니까 본인도 슬며시 프레임 아웃을 해버리고, < 만다라 >때 우리 도와준 평상스님, 그 여름철에 평상스님을 오시라고 해서 고증을 받았지. 모르니까 물어봐야 할 거 아니야. 도움이 컸지. 이 분은 다른 분과 틀려서 관념적인 얘기라고 하더라도 맞아 떨어지는 거야, 나는 관념적인 얘기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지. 꼭 필요한 거 아니고는 벗어나려고 했어. 나중에는 엎어지고 나니까 그동안 얼마나 매달렸던지 <비구니>의 비읍자(字)만 들어도 신물이 넘어올 정도였어. 전국의 비구니들이 몰려와서, 뭐, 다 아는 얘기지만 전두환 씨한테 짓밟혀놓고는 화풀이는 엉뚱한데다 한 거지. 정성일 _ 시나리오 선집에서 < 비구니 > 시나리오를 읽어보면 분량으로는 선생님의 시나리오 중 가장 긴 것 같습니다. 만약에 실제로 영화화 됐으면 2시간 반이 훨씬 넘는 정도는 되었을 텐데요. 사실 한국영화 제도 안에서 2시간을 넘는 건 제작 규모랄까, 나중에 배급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든다는 걸 너무 잘 알고 계실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시간 반이 넘는 분량으로 <비구니>를 이야기해야할 만큼 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까? 송길한 _ 해야 한다는 이유란 것이, 남자보단 여성을, 그러니 일반 승려가 아닌 비구니를 그려야하니 소모되는 게 더 많았어. 그리고 그 원수 같은 놈의 역사성, 전쟁을 합쳐놓으니까 이야기가 길어질 수밖에 없지. 뒤에 축약을 어떻게 했을지는 몰라도 그것을 다 상영할 것은 아니었으니까. 어떤 점에서는 꼭 필요하고 있어야하는 거는 다 담아내자. 그리고 씬도 많아 그래서 죽었다 깨어난 작품이야. 그게 그만 엎어지고 나니까 내가 얼마나 울화가 치미는지, 한동안 술로 살았지. 감독님도 정일성 촬영 감독님도 김지미 씨도 다 함께 영화판을 떠나려고까지 했으니까... 정성일 _ 선생님 마음속에서 < 비구니 >는 가장 야심적인 시나리오... 송길한 _ 과장된 소리가 아니라 적어도 이게 완성되었다면 우리 작품을 밖으로 보여주는데 그 시간이 상당히 단축되었을 것이다, 난 그렇게 믿어요. 물론 거기에는 감독님의 완벽한 연출력에 대한 기대도 있지만. 내용도 상당히 괜찮았고. < 비구니 >가 먼저 만들어졌다면 감독님 영화나 한국영화를 바깥에서 좀 더 보편적으로 보게 할 거라는 그런 자부심이 있었지. 그리고 이게 비구들의 얘기가 아니니까. < 리틀 부다 > 그런 엉터리들이 아니거든. 이게 말이 안 되는 얘기가 아니야. 붓다가 얘기한 게 그나마 고스란히 살아남은 것이 한국이여. 형식적으로나마. 그 내용에 도달하려고 애쓰는 게 한국 불교여. 이것은 더구나 여성의 얘기이고. 여러 가지로 하면 괜찮은 얘기였는데, 임 감독님도 늘 아쉬워했거든. 그때 전쟁 씬은 정말 압도적으로 찍혔는데. 한번은 부산영화제에서 이태원 사장이 그러는 거여. 원작 승인을 해달라는 투로 얘기를 하는 거여. <비구니>를 다시 찍으면 어떻겠냐고. 좋다고 그랬지. 근데 그때 김지미 랑 지금이랑은 많이 달라졌을 테고, 그것보다도 (<비구니>의 일부 찍은 장면들) 필름의 보존 상태가 너무 나빠서 많이 삭아버렸대. 그래서 다시 그것을 못 한 거여. 시대가 조금 좋아졌기 때문에, 다시 무엇을 하더라도 괜찮았고, 필름 상태만 좀 좋았다면 영화를 볼 수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정성일 _ 그때 이미 찍은 < 비구니 > 촬영 분량이 어느 정도였었나요? 송길한 _ 잘은 모르지만 오분의 삼 정도는 아닌가 싶어. 상당히 많이 찍었지. 정성일 _ 임권택 감독님께서 이제까지 찍은 전쟁장면 중 가장 잘 찍었다고 말씀하시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이었는지 여쭤보면 말씀은 피하시더라구요. 저는 볼 수가 없었으니까... 어떤 전쟁 몹 씬이었나요? 송길한 _ 그 몹 씬을 찍을 때 차기작을 쓰느라 내가 못 갔어. 그 장면은 고향 사리원에 묘진이랑 둘이 갔다가 전쟁이 터져서 폭격을 맞는 장면인데, 폭격 통에 빠져나와서 육보시를 하는 거 아니여. 그 다음에 가보니 묘진이가 죽고, 그녀들의 수행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무척 중요한 시퀀스였어. 거기에 시가전도 있었을 것이고 중공군에 밀려 후퇴하고 있는데 그냥 폭격이 쏟아지는 그런 것이었어. 내가 시나리오에서도 꽤 강렬하게 쓴 거 같은데.... (잠시 생각) < 길소뜸 > (1985) 정성일 _ < 비구니 >를 전후로 해서 < 길소뜸 >, < 티켓 >이 연이어지면서 임권택 감독님과 김지미 씨와의 1980년대 여인 3부작이 어우러지는데, 선생님께 배우 김지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송길한 _ 좀 늦은 감도 있지만 내가 본 김지미 씨는 새롭게 개안된 김지미였어. 배우로써 지금까지 스타로 있던 고정관념 속의 여배우가 아니라 조금 벗어나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비로소 < 길소뜸 >에서야 냉혹한 여주인공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달라진 것이지, 그리고 그 열정이란 것은 무섭고 그 군번에 그런 열정을 갖는다는 것은 힘들 것이고. 그리고 우선적으로 감독님과 호흡들이 서로 잘 맞았어. 정성일 _ < 길소뜸 >의 주제는 분단으로 인해서 이산가족이 된 이야기인데, 임권택 감독님이나 선생님이나 사실 이산가족은 아니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 짝코 >는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이지만 <길소뜸>은 반대로, 물론 한집 걸러 이산가족 아닌 사람이 있겠습니까만 친지 일가 중에 그것을 경험한 사람이 없는 건데, 그럼에도 이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여의도 이산가족 광장을 시나리오도 없는 상태에서 찍어나가게 만든 그 소재의 힘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송길한 _ 당연히 분단문제였지. 우선 그게 불붙은 것은, 그때가 KBS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생방송으로 방영을 했고 전국이 눈물바다였지, 그런 다음 그 시기가 지나가자 침묵이 되고 공허해지고 잠잠해졌어. 그리고 실제 그런 사건이 있었어. KBS에서 발간한 사례집에 있더라고. 친자임에도 거부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 그런 것들에 초점을 맞춰두고 작품을 써나갔지. 정성일 _ < 길소뜸 >은 영화의 구성이 절반으로 갈라집니다. 절반은 화영과 동진이 만나면서 플래시백으로 그들의 삶을 돌아보고 그런 다음 둘이서 석철이라는 아들을 찾으러 갑니다. 그 둘이 함께 아들이라고 여겨지는 남자를 만나러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가는 장면을 망원렌즈로 찍은 장면은 정확하게 영화의 절반입니다. 구성으로서도 매우 특별한 구조입니다. 소재 혹은 주제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매우 특별한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송길한 _ 글쎄, 나는 미드 포인트를 놓고 쓴 건 아니고, 적어도 이 두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 상황들이 어떤 것인가를 설득하지 않으면 뒷얘기가 아무리 기가 막혀도 안 될 거 같으니까 우선 그걸 정신없이 쫓은 거지. 그러고 보니 이 얘기 저 얘기가 붙은 거고. 나중에 완성 돼서 보니까 그런 것들이 결코 쉬운 게 아니었어. 나는 지금도 생각해요. 거기에 화영이와 신성일의 고등학교 시절, 둘이 자전거 타고 통학을 하는데, 가면서 시를 읊잖아. “산보다 높아라...” 근데 그 시 원작자가 누군지 아무도 몰라. 한용운 시야. 그 시대 유행했던. 나는 철저한 고증을 한 거야. 만약 지금 유행하는 하이칼라 시인의 시나 노래를 해버리면 시대적으로 안 맞아. 그래서 나는 거기 맞는 시를 찾기 위해서 무지 애를 썼어. 그러다 한용운 시를 뒤지던 중에 아주 딱 적절한 시를 발견했어. “산보다 높아라, 물보다 깊어라” 자전거 타고 가는데 사랑에 대한 더 길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고 사랑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이것만큼 맞는 시가 없어요. 근데 아무도 몰라. 이건 만해 한용운의 시야. 시나리오를 쓰면서 반쯤 죽어났던 그 여름이 생각나네요. 정성일 _ 임권택 감독님이 만든 모든 영화중에서 < 길소뜸 >은 전례 없이 논리적으로 찍은 영화입니다. 말 그대로 모든 쇼트, 모든 제스처, 모든 대사를 설명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 점에서 <길소뜸>은 정말 차가운 영화입니다. 어떤 점에서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중에서 형식적 절정이랄까요, 이 영화가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나요, 혹은 이 시기에 그래야 할 미학적 목표가 있었나요? 송길한 _ 아까도 얘기했지만 인간이라는 것이 도대체 신뢰하고 껴안을 수 있는 존재냐. 나와 너가. 이런 개념도 있지. 민족이라는 게, 부부 간에 어쩌고저쩌고 한다고 해도. 그리고 아마 감독님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여기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 아닌가. 말하자면 좀 비정할 만큼 냉철하게 본 영화인 거지. 가령 셋이서 탄 차가 개를 치는 장면에서, 그 장면이 논리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이들이 지금 갖고 있는 내면의 상황들이 어떤 것인가 그걸 표명할 길이 없는 거여. 이 자식은 개를 먹거리로 생각하고, 전쟁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게 이네들 입장이지. 신성일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잖아. 가족회의를 몇 번이나 열어. 빼도 박도 못하지만, 그런 점에서 내면을 표출한 거고, 개를 치는 장면은 임권택 감독님의 아이디어인데 나는 전체에서 가장 좋다고 봤어. 감독님의 서브 텍스트의 무서운 점이지. 에필로그에서 또 다시 재이산(再離散)을 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처지이자 복선이기도 했으니까. < 티켓 > (1986) 정성일 _ < 티켓 >은 임권택 감독님이 맹렬하게 리얼리즘을 찾는 영화입니다. 이때 이 영화는 이상할 정도로 < 길소뜸 >과 멀리 느껴졌습니다. 임권택 감독님 필모의 특징 중의 하나는 A를 하면 다음에 B를 하는 것이 아니고 A 다음에 NOT A, 무조건 A는 아니어야 한다는 작용 반작용의 리듬이 있습니다. 송길한 _ 어떻게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게 작품의 맥락이 왔다 갔다 한다고 생각하지. 나는 어떻게 보면 그래야 되는 것이고 하는 것이지 꼭 자기 세계를 만든답시고 비스무리하게 패턴화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봐, 다양성이란 면에서. 요는 각 작품의 완성도가 문제겠죠. 정성일 _ < 티켓 >은 한쪽에서는 < 짝코 >에서부터 죽 이어졌었던 역사의 문제가 희미하게 뒤로 물러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 만다라 >에서 이어지는 철학적인 존재론적인 문제가 잠시 뒤에 선 채, 아주 드물게 사회적인 문제에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도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에는 이상할 정도로 사회적 문제에 눈을 돌리는 영화는 없습니다. 이 이야기에, 혹은 네 명의 여자 주인공들의 어떤 부분에 끌렸습니까? 송길한 _ 사회적이라면 너무 거창하고, 세태(世態)적이라고 봐야지. 그것은 우리가 계획적으로 상업적인 영화를 하자고 했었어. < 티켓 >은 김지미 씨의 회사 지미필름의 오프닝 작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보고 감독님이 자꾸 얘기하는 거여. “어이, 이건 우리가 이제까지 했던 거랑 전혀 다르게 가야해”, 했던 게 장사가 되어야 하니까. 정성일 _ 이건 에로영화도 아니고 고발에 가까운 영화인데... 보는 사람을 몹시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심지어 검열에서 뒷부분이 뒤집힐 만큼 마지막 결론도 끔찍하게 끝나고 있습니다. 근데 그걸 상업영화로 생각했다는 게 좀 놀라운 말씀이네요. 송길한 _ < 티켓 >이란 게 표피적으로 보면 매춘에 관한 얘기 아닌가요. 그리고 그때만 해도 티켓에 대한 말이 없었어. 사회가 얼마만큼 사람을 비인간화 시키고 있나. 이렇게까지 이야기가 퍼져간 거여. 그래야 널찍하게 멀리 볼 수 있으니까. 사회가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것에 대해 그대로 그것을 고스란히 보임으로써 우리는 안티를 한다. 이런 얘기가 없어져야 한다, 그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거 나오고 티켓 다방이 우후죽순처럼 생겨 버렸잖아. 근데 나는 몸서리쳐지게 죽을 맛인 게, 그 무대가 실제 다방이잖아, (이야기가 전부) 거기서 들락날락 하는 것인데, 감독님이나 나나 그것을 마당극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 근데 마당극처럼 됐지, 그게. 김지미 씨는 상업영화로 장사하려고 한 게 아니라 완전히 열정적으로 잘 했어. 박근형 씨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이었는데, 그래서 나는 이 친구를 시인 신동엽이 정도로 높여 놓은 거여. 거기서 흐르는 시가 신동엽의 시야. ‘아사녀’. 다들 모를 것인데, 반체제인사였고 또 그런 캐릭터가 변절해야 갈등도 증폭될 테니까. 나는 시나리오에서는 그런 걸 생각할 짬이 없었는데, 박근형이 딱 나타나서, 우리 사랑은 다 게임이 끝났다 그러고 차가 휭 하고 간다고. 처음에 이 친구가 그때 약 올리듯이 오렌지 캔 주스를 먹고 있었는데, 그걸 차 위에 놓아. 그리고 절교 선언을 하고는 차가 휭 가니까 그게 툭 떨어져. 그 소품이 말하는 건 쏙 빨아먹고 간다는 거지. 너무 자연스럽게 보여 지는 거야.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 노래가 딱 붙으니까. 절묘해, 그 대목이 오래 안 잊혀져. < 개벽 > (1991) / < 달빛 길어올리기 > (2010) 정성일 _ < 티켓 >까지 작업을 하고 나서 < 씨받이 >가 두 분의 마지막 작업이 되었습니다. <씨받이> 이후의 임권택 감독님 영화들 중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영화는 무엇입니까? 송길한 _ 나는 < 개벽 >을 상당히 좋아해. 당시의 우리 영화 수준이나 형편을 봐서라도 그런 걸 건드릴 사람도 없었고, 누군가는 건드려야하는데 아무나 못 건드리는. 그런 작품이 두개가 있어. < 달빛 길어 올리기 >와 <개벽> 두 작품. 누군가는 꼭 건드려야해. 하지만 이건 아무나 못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정성일 _ 긴 시간의 공백 이후에 임 감독님 현장을 다시 방문하신 건 < 달빛 길어 올리기 >의 각색으로 참여할 때였습니다. 25년 만에 다시 곁에서 보면서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송길한 _ 아직도 멈추지 않고 드라마의 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험하고 있는 모습. 그걸 하여튼 구현하려는 정신, 그게 내심 감동으로 다가왔지요. 정성일 _ 임권택 감독님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쳐다봤던, 말하자면 함께 작업을 했던 작가로써, 102번째 작품 < 화장 >에서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송길한 _ 그 양반의 스타일에 맞게 쿨하고 콜드 한 것. 나는 궁극적으로 이 양반이 100 작품 넘게 만들었지만 현재까지도 그런 소재를 백미(白眉)로 한번 찍어봤으면 하는 것을 바라요.. 임 감독님도 굉장히 재미있어 하실 것 같아. 주인공 오상무 부부의 삶의 궤적과 여직원 추은주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궁금해요. 지금까지와는 전혀 색다른 걸작을 기대하고 있어요. 정성일 _ 마지막 질문입니다. 선생님에게 임권택 감독님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송길한 _ (망설임) 글쎄, 뭐라고 해야 할까, 내 영화 인생에서 가장 존중하는 분. 정성일 _ 두 분 사이에서 지금 떠오르는 에피소드 하나만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사소한 이야기도 상관없습니다. 송길한 _ (한참 생각) 딱 떠오르는 게 없는데. 영화를 떠나서도 늘 마음속으로 가까이 계시니까. 정성일 _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_ 11월 10일, 날씨 화창했지만 바람이 몹시 차가웠음. 정리, 진행, 사진_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