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로 가는 길
- 감독
- 앤드류 V.맥라글렌
- 제작년도
- 1967
- 출연
- 커크 더글라스, 로버트 미첨, 리차드 위드마크
등록되지 못한 죽음, <아무도 모른다> 내가 본 첫 번째 고레에다 히로카즈(1962~)의 영화는 < 아무도 모른다 >(2004) 이다.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그를 ‘연구’하기로 했다. 그는 보기 드문 ‘자기 현장’의 지식인이다. 나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운동을 계기로 처음 일본을 방문했다가 충격을 받았고, 지구상에서 가장 독특한 근대를 실현한 국가가 일본이라고 생각했다. 늘 보던 일본 영화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의 석학, 도미야마 이치로는 일본을 일본이라고 쓰지 않는다. ‘일본’이라고 쓴다. 일본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글의 제목에 들어간 ‘포스트 자본주의와 일본’은 H. D. 하루투니언과 마사오 미요시가 엮은 유명한 일본 입문서(?) 『포스트모더니즘과 일본』을 바꾼 것이다. ‘일본’만큼 역설적인 공간도 드물 것이다. 그만큼 인문학 텍스트로는 최고라는 뜻이다. <아무도 모른다>. 열두 살 소년부터 막내까지, 네 남매는 돌아오지 않을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는 큰아들에게 말한다. “엄마는 행복하면 안 되니?” 이 장면을 본 사람들은 “어쩌면 저럴 수가……” 이런 생각을 하기 전에 금방 고레에다의 카메라 속으로 빠져든다. 사회 구조나 부모를 비난하기 전에, 아이들만의 삶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 영화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모두 아이들의 생존 방식과 관련이 있다. 길거리에서 돈을 줍는 것, 몰래 음식을 얻어먹는 것. 모두 딱히 탈법도 불법도 아니지만, 영원히 그렇게 살 수도 없고 자주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아이들은 거리를 돌아다니며 자판기의 거스름돈 창구에 손을 넣어본다. 누군가 잊고 간 동전을 기대하면서. 영화를 본 후 나도 그들처럼 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다가 서울에서 몇 달 만에 딱 한 번, 500원을 횡재한 적이 있다. 아무도 모른다 일본에서 자판기 다음으로 많은 시설이 편의점인 듯하다. 편의점에서 직원이 유통 기간이 임박한 혹은 살짝 지난 먹을거리를 소년에게 주는 장면도 좋다. 일본어에서는 유통 기간을 ‘상미기한(賞味期限)’이라고 한다. 팔기 적당한 상품은 아니지만, 맛을 ‘즐기는데’는 큰 무리는 없다는……. 편의점 직원은 좋은 일을 하면서도, 아이를 쫓아내듯 빨리 가라고 손짓한다. 2017년 여름밤, 나는 교토 대학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다. 맛있는 빵과 케이크를 잔뜩 들고서. 일본은 온 나라(?)가 맛있는 빵집으로 넘쳐나지만, 관광과 전통의 도시 교토는 특히 더 그렇다. 신호등이 바뀌는 동안 횡단보도에 서 있다가, 나랑 어느 소년 단 둘만이 거리의 행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다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 소년이 <아무로 모른다>의 주인공 배우 야기라 유야와 똑같이 생겼던 것이다. (그는 이 영화로 칸 영화제 역사상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탔지만, 중간고사 때문에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횡단보도의 그 소년은 도시락을 네 개쯤 들고 서 있었다. 흰 러닝셔츠, 마른 몸, 땀에 젖은 머리카락. 그런데 일본에서는 드물게 그가 들고 있던 물건은 비닐봉지 없이 낱개 그대로였다. 소년은 두 손에 도시락을 탑처럼 쌓아 턱으로 받치고 있었다. 나는 편하게 넣어 들고 가라고 종이봉투를 주었다. 그 소년도 <아무도 모른다>의 가장처럼 편의점에서 팔다 남은 음식을 자정 즈음에 얻어가는 길이었을까. 그는 내게 고맙다는 듯, 고개를 여러 번 꾸벅이며 뛰어갔다. <아무도 모른다>는 1988년 동경에서 발생한 ‘버림받은 네 남매’ 사건을 소재로 삼아 만들어졌다.(영화와 실화의 내용은 다르다고 한다.) 엄마는 각기 다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네 명의 아이들을 두고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난다. 큰아이를 제외한 세 아이는 출생 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발견되기 이전까지 6개월 동안 아무도 모르는 그들만의 삶을 살아낸다. 서류 한 장이 인생을 좌우하는 극도로 관료적인 일본 사회에서 등록되지 않은 어린이의 죽음은 당시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다고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비행기를 보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소년이 죽은 여동생을 공항 부근에 묻고 돌아오는 장면에 대해 소설가 김연수는 이렇게 썼다. “누구에게나 이뤄지지 못한 약속의 땅에 사랑하는 사람을 묻는 일이 한 번쯤은 찾아오리라……. 사랑하는 사람을 묻을 땅을 파느라 더러워진 옷, 아니 얼룩진 옷……. 옷이야 갈아입으면 되지만, 얼룩진 마음은 기억에서 잊혀질지언정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는다.” (『씨네21』, 934호) 태풍이 지나가고 가족 영화가 아니라… 고레에다의 영화들 - < 어느 가족(좀도둑 가족) >, < 세 번째 살인 >, < 태풍이 지나가고 >, < 바닷마을 다이어리 >,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 하나(花よりもなほ) >, < 공기인형 >, < 걸어도 걸어도 >, <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 < 원더풀 라이프 >... 다 좋았다. ‘가족 영화’가 따로 있을 리 없지만, <어느 가족>이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걸어도 걸어도>는 가족이란 ‘이다’가 아니라 ‘된다’임을 잘 보여준다. 그의 모든 작품이 내게 위로가 된다. 고레에다의 영화는 치열하지만 고요하다. 나만의 감상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영화에서 언제나 죽음의 그림자를 느낀다. 그 그림자가 내 삶의 번잡스러움과 욕심, 고통을 잊게 한다. 삶이란 죽음이라는 영원하고도 편안한 잠(永眠)이 기다리는 행복한 시간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기대하지 않으면, 삶도 행복하지 않다. 죽음만이 희망이다. <좀도둑 가족(万引き家族)>의 우리 말 제목 <어느 가족>은 마음에 안 들 뿐만 아니라 아주 ‘틀린’ 번역이다. 이 영화는 가족 영화 중 하나라기보다는 <아무도 모른다>처럼 일본 사회를 그린다. 좀도둑질과 막노동, 연금으로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모습이니, ‘좀도둑 가족’이 맞다. 2018년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에 해당하는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1997년 이마무라 쇼헤이의 < 우나기(うなぎ) > 이후 21년 만의 일이다. <좀도둑 가족>은 칸 외에도 유라시아 국제영화제, 뮌헨 국제영화제, 시드니 영화제, 멜버른 국제 영화제 등에서도 수상 혹은 후보에 올랐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것이다. 아마도 한국 사회라면, 감독은 한국 사회의 그 어떤 추악함을 그렸더라도 청와대에 초대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수상 소식에 침묵으로 일관하다가(못마땅해하다가) 뒤늦게 축하 전화를 하려 했으나, 감독은 아베의 축하를 거절했다(아베는 국제대회에서 자국을 빛낸 스포츠 스타나 예술가에게 축하 전화를 자주 해대는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아베에게 <좀도둑 가족>은 일본 사회의 그늘에 카메라를 들이댔을 뿐 아니라 천황제를 근간으로 한 전통적인 가족주의를 숭상하는 일본의 주류 정서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여겨졌으리라. 고레에다 또한 평소에 아베의 노선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다. 어느 가족(좀도둑 가족) 나는 <좀도둑 가족>을 나의 선생님과 같이 보았고,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나누었다. 나 - 고레에다 영화는 거의 다 보았는데, 저는 그 가족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가족이 없어서 외로운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다 지긋지긋. 사람도, 가족도 모두요. 선생님 - 어제 나는 일본에서 주변부 삶이 영화 화면에 담겨지는 거. 그것을 행하는 감독이 좋았다. 영화로는 아버지가 되는 법이 훨씬 좋지……. 영화는 가족 영화라기보다는……. 나 – 예... 그렇죠, 일본 주변부... 그 집 미술감독, 끝내주지 않아요? 쇼타(‘큰 아들’)가 두 번 버림받았다고 생각해도, 그것이 인생임을 받아들이라고 기도했어요. 물론, 제 자신에게 대한 다짐이죠. 선생님 - 오키이. 어제 영화 릴리 프랭키가 사는 마지막 집은 <아무도 모른다>에서 아이들만 사는 집이었던 같은데. 쇼타가 그러잖아. 자기가 잡힌 거 일부러 그런 거라고. 쥬리 때문에 잡힌 거잖아. 가족들이 떠나려고 했던 것도, 이해한다는 거지. 자기를 보호하고자 하면 다 잡힌다는 거…… 그런 삶을 사는 것은 다른 방식의 삶의 지혜와 방식을 배우는 것이지. 그런 면에서 감독이 이 시대를 보는 눈이 깊은 거지. 아시아라는 공간, 시간을 앞선 자본주의 일본은 어떤 사회인가. 나는 ‘멀고도 가까운 나라’라기보다 한국이 가장 모르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한국에 관심이 없고, 한국은 일본을 제대로 아는 게 없다. 내가 처음 일본을 방문했을 때 가장 놀랐던 일은 거리에 맘껏 나붙은 ‘共産黨’ 포스터였고, 두 번째가 자판기였다. 물론 일본 공산당은 망한 지 오래고, 재일교포와 오키나와 인들과 연대하기를 거부하고 자본가들에게 노동 고용을 부탁하러 다니는 ‘단체’다. '共産黨' 포스터와 자판기 자판기는 몇 미터 간격으로 있는 정도가 아니라 다닥다닥, 거리의 가로수보다 아니 인구보다 많은 것 같았다. 음료, 담배, 라면, 인스턴트 식품은 기본. 여고생이 입던 팬티 냄새가 사라지지 않도록 캔으로 봉인한 섹스 관련 상품을 파는 자판기도 있다. 일본은 ‘한때’ 전자 제품의 나라이기도 했지만 빵, 치즈, 잉어, 옷감, 디자인, 와인, 종이, 두부, 면(麵), 건축, 음악, 다신(多神), 화장품 그리고 세습, 서브 컬처의 나라이기도 하다. 나 역시 평범한 한국인으로서 일본에 대해 복잡한 감정이 있다. 일단, 그들은 한국인과 중국인을 무시한다. 백인에 대한 호감은 자발적 식민지급이다. 나는 영어도 일본어도 못 하지만 일본에서는 반드시 ‘느끼한 발음’으로 영어를 사용한다. 이를테면 “호토 워토(hot water)” 대신에 “할 워러, 프리즈”이런 식으로 말이다. 일본과 미국은 히로시마 원폭과 9․11 전까지, 전 세계에서 단 한 번도 자국이 전쟁터가 된 적이 없는 나라다. 덕분에 일본은 천 년 동안 아무런 파괴 없이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와 문화재를 보존할 수 있었다. 일본 역시 오리엔탈리즘의 대상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그들은 ‘셀프 오리엔탈리즘’으로 서양의 일본관을 상품화했다. 서양인들이 일본 문화에 느끼는 신비로움은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한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한때 스시는 미국의 지식인 문화를 상징했다. 전통적인 국제정치학 교과서에는 ‘일본 편’이 따로 있(었)다. 외교 의전에서 일본은 공부가 필요한 사회다. 특별한 이해와 주의를 요한다. 예를 들어 대개의 언어, 특히 우리말에서 ‘고려해보겠습니다’는 대개 긍정적인 의미지만, 일본어에서 ‘절대 불가, 앱솔루트리 노’를 의미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본만의 문화가 있다는 얘기다. 파악되지 않는 타자? 롤랑 바르트는 <기호의 제국>을 썼다. 일본 사회는 기호(sign)만 있을 뿐 실제 말의 의미(이른바, ‘혼내’)를 알기 어려운 사회라는 뜻이다. 통념과 달리 일본은 류큐 왕조를 비롯한 수많은 다민족(nation), 다민족(ethnic) 국가, 다인종, ‘혼혈인’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근대 이후 강제 통합의 과정은 곧 내전을 의미했다. 홋카이도의 면적만 남한의 3분의 2를 넘는다. 고베나 오사카만 가도, 근대 초기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를 꿈꾸었고, 실현했다. 유럽 문화에 정통한 인문학자가 수두룩하다. 탈아입구를 실현한 정도가 아니라 일찍이 메이지 유신을 시작으로 해서 국민국가 체제를 완성, 세계 제패를 기획하고 미국, 중국과 전쟁을 치렀다. 작은 나라(‘倭’)가 아니다. 노벨상,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1950년대에 ‘성취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일본 문제’와 고레에다 히로카즈 하루투니언 같은 일군의 자본주의와 근대성 연구자들이 일본에 주목하는 것은, 일본이 공간적으로는 서구가 아니지만, 자본주의의 발전 속도(시간)는 서구를 앞지른 지역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이면서 아시아에 있다. 서구를 쫓으면서, 동시에 서구를 초과했다. 이 ‘모순’은 현재 일본 사회의 고통이기도 하고, 인류가 다음 세계를 사유하는 ‘자원’이 될지 모른다. 일본 자국의 문학, 인문학, 역사학은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데, 이들은 남을 침략하기 위해 자신을 연구했고 이미 ‘정상(頂上)국가’나 ‘정상(正常)국가’를 경험했다. 그래서 한국의 지식인처럼 식민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나라 만들기에 열중하기보다는 당장, 자국의 문제에 관심이 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문제에 관심이 없다. 모든 담론이 “ ~ 게 되어야 한다(should be)”다. 현재는 지나가고 있는데, 오지 않을 미래를 설계한다. 자본주의와 발전주의, 민주주의가 같은 말로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주민등록증을 대신한 스마트폰 사용이 그것이다). 일본은 ‘더는 성장할 수 없는 자본주의’, 금융 유통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사회의 징조들이 197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출산, 자살, 우울증, 초고령화, 빈집 증가, 고실업, 프리터의 등장…… 힘든 일 기피 현상이 의대 진학 저조로 나타나서 일주일에 평균 1명의 임산부가 산부인과를 찾지 못해 사망한다. 최근에는 인생 자체를 리셋(reset)하는 자발적 실종인 ‘인간 증발’까지, 다른 사회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사회 현상이 있다. 일본의 계급 세습과 상상을 초월하는 경쟁주의, 학벌 사회는 의외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다. 북한은 정권 세습이지만, 일본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자민당 일당 독재는 전후 계속되고 있고 ‘가업’이란 이름의 계급 제도가 철저하다. TV 예능 프로그램에는 개그맨들이 어느 학교 출신인가가 병기된다. 오타쿠, 이지메, 히키코모리, 희망 난민(희망이 있지만 이룰 수 없어 고민하는 젊은이들), 하류지향(‘루저’를 적극적으로 선택한 학생들), 소비 주체로서의 자부심, 공부하는 이들에 대한 경멸, 수학(數學)과 수학(修學)을 구분하지 못하는 도쿄 대학 학생들, 부자 나라 일본의 극빈층 노인들, 고독사 연 2만 명, 젊은이들의 탈력(脫力, 온 힘을 빼고 아무것도 안 함), 혐한(嫌韓), 혐중(嫌中)……. 일본의 현재를 살펴보는 것은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고레에다가 소중한 혹은 윤리적인 예술가인 이유가 여기 있다. 자기 사회를 직면하고 고민을 담되, 그 상황이나 인물을 대상화하지 않고 껴안는다. 이것이 그의 영화가 지닌 소구력이며, 관객은 그가 재현하는 특정한 이미지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가 <좀도둑 가족>에서 가난한 일본인을 그렸다고 해서, 일본을 가난한 나라라고 생각하거나 일본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영화가 아무리 다양해도 전 세계 관객들은 미국 영화에 대한 특정한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비교가 된다. 사족 - <좀도둑 가족>에서 두 명의 배우가 생각난다. 역시, 배우는 작품으로만 만난다. 안도 사쿠라를 ‘취조’하는 이케와키 치즈루는 더 이상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의 그 소녀가 아니었다. 그리고 내 눈썰미가 맞다면, 성 구매를 하는 남자 손님으로 잠깐 나왔던 배우는 < 종이 달 >의 ‘못된 녀석’ 이케마츠 소스케다. (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우) 어느 가족(좀도둑 가족)의 이케와키 치즈루 (좌) 종이달, (우) 어느 가족(좀도둑 가족)의 이케마츠 소스케
켈리 레이차트는 가장 소박한 형식으로 동시대 미국인의 삶을 둘러싼 정치, 사회적인 맥락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있으며, 지역의 고유한 풍광 속에서 삶을 버티다가 무뎌지고 바스러지는 인물의 현재를 세심하게 관찰한다. 그녀의 6번째 장편영화인 < 어떤 여자들 >(2016)은 전작을 관통했던 그만의 인장도 찾을 수 있지만, 이 영화가 스케치한 몬태나의 풍경과 여성들의 삶은 ‘오리건 3부작’보다 쓸쓸하고 스산하며 적막하다. 현재 직면한 문제들과 씨름하던 인물들이 이 영화에서 굳게 입을 다문 채 저 멀리로 시선을 던지거나 묵묵하게 계절을 견뎌가는 숲과 나무, 하늘과 구름이 더 이상 사람들의 삶에 포함되지 않으려는 것처럼 저 멀리 떨어져 존재한다. 그들은 이미 사라진 것들의 흔적으로 남거나 곧 사라질 것처럼 고요하고 삭막하다. 레이차트의 고유함은 로컬, 독립, 여성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될 수 있지만 그녀의 온화하고도 단호한 시선은 이러한 범주에 갇히지 않는다. ‘오리건 3부작’은 지역의 상황을 통해 미국의 동시대적 문제를 진단하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고, 독립적인 제작형태를 통해 미국인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맥락을 주류의 흐름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다. 그녀는 1960년대의 시대정신인 자유와 해방이라는 가치와 폭력에 대한 저항정신을 잃어버린 중년 남성이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찾는 것이 가능한지, 이미 사라진 세대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가치 있는 것인지, 변화하는 세상에서도 온전하게 지켜질 사람 간의 예의가 존재하는지 탐색한다(< 올드 조이 >(2006)). 젊은 여성이 일자리를 찾아 알래스카로 이동하던 중 자동차가 고장 나고 그녀의 개가 사라지는 사건을 겪게 된다. 낯선 공간에 남겨진 그녀는 불안과 대면해야 하며 알래스카에서 맞이하게 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웬디와 루시 >(2008)). 새로운 삶을 찾아 서부로 이동하는 개척민들이 길을 잃고 사막을 통과하게 된다. 황량하고 피폐한 노정에서 그들이 만난 인디언과 폭력적인 길잡이를 통해 서부라는 지형과 남성의 전유물이 된 서부극을 그녀만의 시선으로 탐구한다(< 믹의 지름길 >(2010)). 레이차트는 공간을 통과하는 행위에 주목함으로써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은밀하게 숨겨져 있거나 제한적인 관심사의 바깥에 버티고 선 삶의 풍경을 탐색하고 인물들의 노정을 통해 더 나은 삶의 가능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유하도록 제안한다. 특히 미국인의 꿈과 이상이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좌절되는가라는 질문을 짊어진 여성들이 당면한 문제들은 미국이라는 국가로부터 비롯된 은근하고도 끈질긴 불안을 거쳐 악몽이 되어간다. 그녀의 인물들은 예기치 못한 순간, 낯선 곳에 머물러야 하고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서 하루하루 버텨내야 한다. 우리는 사소해 보이지만 살기 위해 당장 필요한 것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인물과 마주하고 우회로조차 허용되지 않는 그들의 절박한 현실과 대면하게 된다. 그들이 당면한 삶의 조건은 영화 바깥의 우리와 동일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점점 줄어드는 돈, 일자리를 찾는 것, 먹을 것과 마실 물을 확보하는 것, 안전하게 잠들 장소, 부당한 합의금에 대한 소송처럼 실질적인 문제도 있다. 또 무자비하고 무분별한 자본의 횡포와 실용주의적 사고에 맞서 환경을 구하는 것, 신념과 실천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태도에 대한 질문, 9.11 테러-미국이 벌인 전쟁-2008년의 금융위기와 같은 부시 정권의 악행과 무능함의 폭로에 이른다. 레이차트는 미국인들을 위협하는 정치적 상황과 경제적 위기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면서도 개인의 내밀한 삶을 작동시키는 동력을 꾸준히 모색한다. 그녀의 영화는 지역의 풍광 속에 새겨진 당대 삶의 구체적인 문제들과 더불어 세밀한 삶의 순간으로 인해 아름다움과 풍부함을 선사한다. 처음으로 친구가 생길지 모른다고 생각한 소녀의 빛나는 눈동자, 사랑하는 개를 낯선 곳에 떼어놓을 수밖에 없던 웬디의 절망스런 손짓, 낯선 곳에서 만난 경비업체 직원이 건네준 꼬깃거리는 지폐, 깊은 밤 적막한 소도시를 유유히 활보하는 말의 우아하고도 힘찬 발걸음, 개척시대 학교 건물에서 떨어져 나온 사암 더미, 특별하거나 진지하지 않은 하루를 담은 편지, 목동을 따라 뛰어다니는 사냥개의 활기찬 모습은 일상 속에 감춰진 비범하고 고귀한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레이차트의 영화가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건네는 것은 겸허함과 친밀함을 바탕으로 한 관계의 풍요로움(< 올드 조이 >의 두 친구, < 웬디와 루시 >의 두 존재, < 믹의 지름길 >의 강직한 신념을 지닌 부부)도 있지만 한편으로 실패한 여정과 균열되는 관계(오랜 친구인 중년 남성들이 온천여행을 떠나지만 그들의 삶은 잃어버린 지난날에 대한 향수조차 허용되지 않을 만큼 불안정하고, 일자리를 찾아 알래스카로 가던 중 사랑하는 루시를 잃어버리고 깊은 절망과 두려움에 빠진 웬디는 유일한 이동수단인 차마저 잃게 된다. 믹과 인디언이라는 두 길잡이를 동원해서 신앙공동체를 세울 약속의 땅을 찾아가는 순례자 가족에게 닥친 공포와 두려움의 확산은 서부라는 공간이 배태한 이주와 정착이라는 근원적인 두려움을 바라본다. <어둠 속에서>(2013)는 환경을 위해 댐을 폭파시키려다 실패한 젊은 운동가들의 회의와 좌절을 통해 머릿속에서 생산되는 신념과 육체를 통해 실천되는 행위에 대해 질문한다. 하지만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은 희박하기만 하다.)에서 파생된 곤경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풍경과 인물에 대해 일체의 타협을 거부하는 레이차트의 완고한 태도가 중심에 놓여 있다. 그렇기에 그녀의 인물들은 타인과의 관계가 회복되거나 당면한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는 불가능한 꿈에 대해 전력을 다해 거부한다. 불안과 절망을 이겨낼 수 없을지라도 삶은 이어질 것이며, 삭막한 여정에서 친밀한 존재와 교감하거나 이별할지 모르고, 그리하여 인간의 삶이 사막의 모래알갱이처럼 바람에 흩어져 흔적으로 남게 된다는 사실 앞에 그들은 솔직하고 겸허하다. 오랜 시간 묵묵히 존재하는 풍경과 대면한 인간의 유한성을 수용하고, 미완의 삶을 살고 있는 존재가 당도하고자 애쓰는 노정을 끈질기게 응시하는 레이차트의 카메라를 통해 동시대 서부의 풍광과 세밀한 삶의 기록이 조우한다. < 어떤 여자들 >은 네 여성의 이야기가 느슨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그녀들이 어떤 삶을 꾸려나가고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지,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불화를 어떻게 대하는지, 서부라는 풍경이 그들을 어떻게 품고 있는지에 집중한다. < 믹의 지름길 >이 서부의 횡단기라면, 이 영화는 서부를 맴도는 인물이 그들을 에워싼 풍경을 응시하거나 회피하는 시선으로 건네받는 풍경과 역사에 대한 사색이다. 그런데 응시의 연결망이 너무 쓸쓸하고 음울해서 서부라는 풍경과 그 시대에 대한 종언처럼 느껴진다. 개척기 서부를 통과했던 이주민과 오랜 시간 땅의 주인이었던 인디언이 사라진 곳에 사암 덩어리나 황야를 달리는 철길, 드문드문 남아 있는 목장이 서부임을 드러낸다. 정착지를 향해 걷는 고된 행렬, 카우보이와 악당들이 허다하게 뿜어내던 총성, 달리는 말들의 격렬한 운동과 추격은 차갑고 어두운 겨울이라는 계절, 마을을 에워싼 산, 고립된 목장, 길게 뻗은 도로에 흡수된 것처럼 보인다. 레이차트는 퇴적물이 되어버린 서부, 이미 죽어버려 생동하는 힘이 사라진 서부를 사색하기 위해 풍경을 기억하고 자신의 삶으로 기입하는 자들(노인과 인디언 소녀), 풍경과 무관하게 살아가거나(리빙스턴에 거주하는 중년의 변호사와 법대생), 서부를 소유하려는 자(집을 지으려는 여성)를 등장시킨다. 그렇기에 <어떤 여자들>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는 겨울의 황량한 풍경을 관찰함으로써 경관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모습을 응시하도록 인도한다. 그리고 풍경에 기입된 서부의 원초적인 기억과 사라진 존재들을 불러들인다. 어쩌면 이 영화는 인물들의 세밀한 표정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보다 잔뜩 흐린 하늘과 낮게 깔린 구름,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 바싹 말라버린 목초지,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산이 주인공임을 증명하는 것 같다. 척박한 풍경과 고된 인물의 삶을 드러내는 방식을 살펴보자. 이 영화의 인물들은 모두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미묘하게 어긋나거나 고립되어 있으며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친구라고는 말이나 개가 전부인, 삭막한 겨울을 보내는 인디언 소녀나 골칫덩어리 의뢰인을 설득하지 못하는 중년의 변호사, 대출금을 갚기 위해 왕복 8시간을 운전해야 하는 법대생, 고즈넉한 숲에 집을 짓기 위해 개척시대의 사암이 필요한 일 중독자의 겨울은 반복되는 노동과 고립된 생활, 소원에 대한 과도한 집착, 무기력함과 공허함, 빈곤에 대한 두려움과 피로에 잠식되어 있다. 변호사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에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그녀의 관심은 의뢰인의 무리한 요구로부터 벗어나는 것뿐이며, 잠이 부족한 법대생은 밤에만 등장하기 때문에 풍경(과 사람)으로부터 배제되고 고립된다. 숲속에 집을 지으려는 여성이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에도 그녀가 자연을 응시한다기보다 사이가 틀어진 사춘기 딸과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못하는 남편과의 단절이 강조된다. 조깅을 하거나 숲길을 걷고 집이 지어질 장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녀조차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집의 미래를 떠올릴 뿐, 현재 그녀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겐 눈을 감고 있다. 그녀의 관심사는 오직 이웃 노인이 소유한 사암뿐이고, 본고장에서 나는 돌로 집을 짓겠다는 소원조차 소유와 과시, 약탈의 행위로 변질된다. 그녀는 노인이 애틋하게 집과 땅의 역사에 대해 회고할 때에도 그저 사암을 가져가라는 허락만 요구할 뿐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기어이 사암을 싣고 가던 날, 노인이 집 안에서 물끄러미 바깥을 바라보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뭉클하면서도 절망적인 선언처럼 다가온다. 집의 형태를 갖춘 가족의 텐트/노인 홀로 사는 미완성의 집, 오랜 시간 녹지 않았을 눈이 더께로 앉은 산을 배경 삼아 서부의 무덤처럼 놓인 사암더미/여인의 텐트 근처에 차곡차곡 정리된 사암, 필요에 따른 거래/증여의 행위 끝에 마치 무덤에 갇힌 왕의 미라처럼 보이는 노인의 끈덕진 응시가 놓여 있다. 개척기의 서부, 마을이 처음 만들어질 때 교회보다 먼저 지어진 학교의 흔적만 남은 돌무더기가 치워진 곳은 노인이 거주한 지 50년 넘게 지켜온 터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레이차트의 카메라는 노인의 집을 멀리서 지켜보는데, 마치 개척기의 역사가 스며든 대지와 몬태나의 스산한 풍경이 노인의 응시와 더불어 사라질 것임을 알면서도 제자리를 지키는 예언자 같다. 비록 기억하고 응시하는 행위자가 사라질지언정 레이차트는 인물보다 먼저 시선을 거두지 않는 것만이, 그들의 사라짐까지 목도하는 것이 서부와 그곳에서 살았던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노인이 자신의 죽음과 서부의 소멸을 염려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 어떤 여자들 >에서 가장 서부와 닮아 있는 사람은 목장 소녀이다. 그녀는 미국이라는 국가보다 더 오랫동안 서부와 함께 살아온 존재이자 삶의 터전으로써의 서부와 능동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즉 목장, 말, 카우보이로 대표되는 서부를 공유하고 있으며 원주민인 선조들의 삶을 기억함으로 인해 온전히 풍경에 속해 있는 존재가 된다. 소녀는 우연히 학교법 강의에 참석하게 되고 법대생에게 각별한 감정을 느낀다. 마구간과 목장 숙소를 규칙적으로 오가면서 일하는 그녀의 단조로운 삶에 파장이 일기 시작하지만, 피로에 찌들고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봐 두려운 법대생은 인사도 없이 강의를 그만둔다. 소녀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리빙스턴으로 향하고 도시의 밤거리를 걸으면서 카우보이모자가 진열된 상점을 구경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을 쳐다본다. 결국 법대생을 찾게 되지만, 정작 그녀는 당혹스러워하며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낸다. 자신을 기다리는 유일한 존재인 동물들에게로, 자신이 속한 서부로 돌아가던 길에 졸음을 이기지 못한 소녀의 차가 스르륵 미끄러지다가 마른 목초지에 멈춰 선다. 이 움직임은 중년의 변호사가 쇼핑몰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인디언들의 전통춤 공연과 대비를 이룬다.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의 삶이 한낱 구경거리가 되면서 도시의 상품으로 전락했고, 그렇게라도 연명해야 하는 삶의 스산함은 쇼윈도에 진열된 모자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기념품이나 상징에 머물기를 거부하는 소녀는 야생의 삶에 대한 열망과 자신에게 충실하겠다는 의지를 아직 지니고 있기에 존귀하다. 어쩌면 생애 처음으로 도시를 찾았을지 모를 소녀의 방문은 실패한 여정이었어도 깊은 감동을 남긴다. 백인 가족의 단란한 식사를 보면서 미소를 짓거나 우아하고 당당한 자세로 말을 타고 활보하는 모습은 정성껏 말의 갈기를 매만지는 손길과 말과 동일한 리듬으로 움직이는 그녀의 발, 목초지를 가로지르는 생생함과 더불어 그녀의 존엄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레이차트는 오랜 시간 거주했던 선조들의 땅을 떠났다가 씁쓸한 감정을 지닌 채 돌아오는 소녀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그녀의 자동차가 갓길로 빠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지만 다시 소녀의 얼굴로 시선을 돌리지 않는 것은 여행 이후 소녀의 변화 여부를 확인하는 것보다 중요한 사실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소녀는 아직도 단단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목장에는 그녀와 겨울을 함께 보내는 동물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 그녀의 의지로 말을 길들이거나 돌보는 행위가 그녀를 지탱할 것이며, 그녀를 품고 있는 서부 또한 소녀의 삶을 물끄러미 바라볼 것이기 때문이다. 레이차트는 우리에게 주어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문제를 고심한다. 일상을 영위하는 표면 아래 숨어 있는 것 같지만, 먹고 마시고 잠을 청하거나 노동하는 매 순간 첨예하게 개입된 정치적 사안은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도는 과정에 놓인 인물들의 제스처와 표정, 불온한 시대에 잠시나마 온기를 더하는 숨결, 인물들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미국의 풍경들 속에 깊이 스며든다. 나아가 < 어떤 여자들 >은 서부의 지형과 지리적인 풍경에서 서부라는 역사와 영화적 기억을 덧대어놓는다. 그것은 서부와 이별했던 남자들, 사막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 사막을 달려 멀리 사라지는 기차와 같은 회고의 대상에 머물기를 거부한다. 위대한 풍경이 된 서부는 적막할지언정 그녀들의 삶을 지켜보고 있으며 사람들은 저마다의 서부를 되살리거나 망각한다. 하지만 사라짐에 대해 무심한 응시가 되었건, 끈질기게 나와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임을 알고 있는 시선이건 서부를 떠돌던 그녀들의 고단하고 피로한 삶을 향하고 있다. ‘개인의 경험과 삶의 감각이 지닌 힘을 믿으며, 작고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되는 삶의 가치를 탐색하는 것이 영화가 해야 하는 일’임을 실천하는 그녀의 영화가 아름답고도 위대한 것은 미완의 시간을 견디면서 목적지에 도달조차 하지 못한 인물들에게 고집스럽게 머물러 있는 그녀의 시선 때문이다. ‘어떤’ ‘여자들’이 살아내고 응시한 것은 정직하고 윤리적이며 풍경에 대해 겸손하고 솔직한 레이차트를 향하고 있으며 인물들이 머무는 공간에 깃든 과거와 현재를 대면하도록 인도한다. 그들이 사라진 존재들과 생성되는 것들에게 통감할 때 정치, 사회적 표명과 내밀한 감정이 일체를 이룬다.
존 포드의 ‘영예의 시기’(1939~1941)에 태어난 영화 중에 < 젊은 날의 링컨 > < 역마차 > < 분노의 포도 >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는 이 연재의 초기에 다뤄졌다. 남은 세 편의 영화 중에서 < 롱 보이지 홈 >과 < 타바코 로드 >를 이제 만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모호크족의 북소리 >(1939)는 별도로 다루지 않을 생각이다. 이 영화에서는 아직 좋은 점을 찾지 못했다.) <롱 보이지 홈>(1940)은 촬영은 훌륭하지만 캐릭터나 이야기에서 포드적인 복합성이 부족한 영화, <타바코 로드>(1941)는 장점을 찾기 힘든 총체적인 실패작이라는 것이 존 포드 연구자들 사이에서의 일반적인 평가다. 물론 극소수의 지지자도 있다. 나로선 두 영화가 걸작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지만 여기엔 포드의 영화 이력의 중요한 계기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 먼저 <롱 보이지 홈>을 만나보자. 이 영화에서 먼저 떠올려야 할 이름은 그렉 톨랜드Gregg Toland(1904~1948)이다. 관상동맥 혈전증으로 44세의 나이에 영면한 전설의 촬영감독 그렉 톨랜드는 존 포드와는 두 영화(< 분노의 포도 > < 롱 보이지 홈 >)에서 함께 작업했고, <롱 보이지 홈> 다음에 오슨 웰스의 < 시민 케인 >(1941)을 찍었다. 천재였지만 영화의 기술적인 면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던 25세의 청년 오슨 웰스에게 촬영에 관한 모든 것을 그렉 톨랜드가 개인교습을 통해 가르쳤고, <시민 케인>의 성취가 웰즈의 것인 만큼 톨랜드의 것이기도 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웰스는 <시민 케인>의 엔딩 크레딧의 마지막에 자신의 이름과 톨랜드의 이름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그에 대한 경의를 표현했다. <시민 케인> 촬영장의 오슨 웰스와 그렉 톨랜드 그런데 이미 할리우드의 거목으로 군림하고 있던 존 포드와의 작업은 어땠을까. 이에 대한 자료나 증언이 별로 없어 정확한 사정을 알기는 힘들다. 다만 존 웨인은 < 롱 보이지 홈 >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다른 영화들의 경우) 촬영감독이 최대한의 효과를 위해 구도를 잡는 일은 대개 존 포드의 도움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이 영화를 찍을 때는 반대로 촬영감독 톨랜드가 존 포드를 돕는 쪽이었다. <롱 보이지 홈>은 아마도 가장 아름답게 촬영된 영화일 것이다.” 이 말이 맞다면, 적어도 화면 구성에선 그렉 톨랜드가 주도적이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존 웨인의 말대로 < 롱 보이지 홈 >의 화면은 더없이 아름답다. 그런데 여기엔 서사와 영상의 미묘한 불협화음이 있다. < 분노의 포도 >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이 불협화음이 포드와 톨랜드의 현실의 불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을 근거는 없지만, 당대 최고의 감독과 당대 최고의 촬영감독이 함께 빚어낸 영화가 모종의 불협화음을 낳는다는 것은 얼마간 흥미로운 일이다. 어떤 면에.서는 존 포드와 그렉 톨랜드는 최상의 조합으로 보일 수도 있다. 우리는 존 포드가 무성영화 시절부터 전경, 중경, 후경을 함께 담는 심도화면에 몰두해왔고, 무르나우에 감화된 뒤로 종종 표현주의적 조명과 화면 구성에 심취했음을 알고 있다.(< 네 아들 > 편 참조) 딥포커스의 창시자로 알려졌으며,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표현주의적 영상의 대가인 그렉 톨랜드는 포드의 이상적 동반자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표현주의적 영상에 종종 이끌리긴 했지만 포드는 그 세대의 다른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사실주의자였다. 적어도 포드의 유성영화에서 카메라는 초월적이거나 자기 과시적인 시각 기계가 아니었다. 카메라의 시선이 인간의 시선과 다른 차원의 것으로 인지되거나 카메라의 존재가 관객에게 의식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라이징 오브 더 문 > 3부의 사각촬영은 드문 예외다.) 하지만 젊고 야심적인 톨랜드는 카메라의 비인칭적 시선과 기계적 역량에 몰두함으로써 종종 카메라의 권능을 과시하며 일상적 지각양식에 충격을 가한다. 심도화면을 찍는 방식에서 두 사람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같은 해 포드가 아서 밀러를 기용해 찍은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의 한 장면(#1)과 톨랜드가 찍은 < 시민 케인 >의 한 장면(#2)을 비교해보자 #1 #2 포드의 심도화면에는 전경의 사물, 중경의 인물, 후경의 또 다른 인물이 극히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이것이 심도화면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으며, 화면의 다양한 결과 섬세한 아름다움을 놓치기에 십상이다. 반면 딥포커스 기법을 과시하는 톨랜드의 심도화면에는 전경의 인물은 클로즈업으로 후경의 인물은 익스트림 롱숏으로 대비되어 있어, 누구나 이 구도의 작위성을 의식하고 인물뿐만 아니라 카메라의 시각적 수사학 자체를 감지하게 된다. 이 쇼트는 두 인물을 따로 찍어서 합성한 것인데, 톨랜드는 다른 몇 장면에서도 딥포커스 효과를 위해 합성을 시도했다. 앙드레 바쟁은 < 시민 케인 >의 “바로크적 요소의 과도함”을 지적하면서도 그것의 딥포커스가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시각적 공간의 전체를 동일한 선명도로 포착”함으로써 “지각 가능한 연속성을 회복시켰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이 찬사는 오히려 존 포드나 장 르누아르에게 어울릴 것이다. 오슨 웰스는 딥포커스를 즐겨 사용한 이유를 묻자 “인간의 눈이 보는 세상은 딥포커스 화면에 보다 가깝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는데, 웰스 역시 톨랜드의 딥포커스가 지닌 수사학적인 면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렉 톨랜드는 과장된 딥포커스 뿐만 아니라 사실적인 심도화면에도 뛰어났으며, 윌리엄 와일러와의 작업(< 폭풍의 언덕 > < 작은 여우들 > < 우리 생애 최고의 해 >)에서 특히 탁월한 능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와일러의 < 데드 엔드 >(1937)에서 이미 톨랜드는 < 시민 케인 >의 수사학적 딥포커스를 시도하고 있다. 우리로선 톨랜드의 오래된 야심이 또 다른 천재 야심가 오슨 웰스를 만나 만개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 롱 보이지 홈 >으로 돌아오자. 유진 오닐의 네 편의 희곡을 더들리 니콜스가 각색한 이 영화는 2차대전 시 영국 화물선 선원들의 생활을 담고 있으며, 중심인물이 따로 없는 앙상블 드라마이다. 선상이 무대의 거의 전부이며, 나머지 공간도 항구로 제한되어 있다. 선원들은 배라는 폐쇄공간에의 감금을 선택한 존재, 바다에 자신을 유폐한 자들이다. 그들은 서사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육지의 기억으로부터 바다와 배로 도피한 것이다. 우울한 현자와도 같은 선원 당키맨은 이렇게 말한다. “기억을 가장 잘 다루는 방법은 기억을 잊는 거야. 남자가 바다로 나설 때는 육지에 관한 건 더 이상 생각하지 말아야 돼. 육지는 당신을 더 이상 원하지 않거든. 내게도 나쁜 기억이 있지. 그건 전부 육지에서 온 거야. 나는 육지를 버렸고, 육지도 나를 버렸어.” 집으로 가는 머나먼 항해. 이 제목은 반어적이다. 올슨을 제외하면 선원 누구도 집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배를 떠난다면 그건 귀가가 아니라 죽음이다. 폭풍우로 부상당해 죽거나(양크), 독일군의 습격으로 죽거나(스미스, 드리스콜). 그러지 않더라도 그들은 소명도 전망도 없이 조금씩 죽어갈 뿐이다. 포드의 서부극을 ‘약속의 땅을 찾아 황야를 가로지르는 운동의 영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웨건 마스터 > 편 참조), 죽음을 향해 바다를 떠도는 자들의 이야기인 이 영화는 서부극의 염세적 번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존 포드가 유진 오닐과 가까운 친구라 해도 이처럼 염세적인 희곡에 끌린 이유는 불확실하다. 배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극적인 사건도 없고 운동감을 살릴 여지도 제한된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더구나 대사에 거의 의존하지 않는 포드로서는 촬영에 거의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다. 운명론과 폐소공포증의 공기를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가. 그렉 톨랜드라는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은 아마도 이 프로젝트의 최상의 동반자였을 것이다. < 롱 보이지 홈 >의 첫 시퀀스는 우리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다. 막이 열리면 밤의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섬 남자들의 노래와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섬 여인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나무에 기대 유혹하듯 몸을 비튼다.(#3) 그리고 기항하지 않은 채 연안에 정박 중인 배의 거대한 실루엣이 위협적으로 등장한다.(#4) 갑판의 선원들은 노랫소리를 향해 불안과 망설임이 뒤섞인 표정을 짓고 서 있다.(#5, #6) 지금이 전시임을 알려주는 라디오방송 외엔 대사 없이 5분간 지속되며, 귀기와 외설과 불안과 망집이 교차하는 이 시퀀스는 포드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렬한 오프닝 시퀀스다. #3 #4 #5 #6 선원들은 섬에 닿지도 바다로 가지도 못한 채 그사이에 멈춰 있다. 한쪽에는 초대인지 위협인지 불분명한 북소리와 노랫소리, 누군가를 유혹하려는지 아니면 무엇엔가 이미 취해 있는지 알 수 없는 여인들의 에로틱한 몸놀림이 있다. 반대쪽에는 라디오방송이 암시하는 전쟁 그리고 바다가 내재한 상시적인 재난의 위협이 있다. 말하자면 지금 선원들은 신화적 유혹과 역사적 사건 사이에 놓여 있다. 물론 어느 쪽이나 위험하다. 선원들은 그 경계에서 초조한 얼굴로 서성이고 있다. 경계란 실은 존재하지 않는 장소이거나 정박할 수 없는 곳이며 그들은 이제 곧 하나씩 사라질 것이다. < 롱 보이지 홈 >이 도피를 위해 바다를 택했으나 에로스의 유혹도 역사의 위협도 피하지 못한 사내들의 이야기라면, 이보다 더 멋진 오프닝 시퀀스를 상상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 성취의 반 이상은 그렉 톨랜드의 것으로 돌려져야 할 것이다. 전경의 피사체를 극대화한 특유의 딥포커스, 실루엣 효과를 과시하는 빛과 어둠의 능란한 대조, 현란한 앵글 사용은 < 시민 케인 >에서의 만개를 예고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한 대로 이 영화에서 톨랜드의 촬영과 포드의 서사에는 미묘한 불협화음이 있다고 나는 느낀다. 불협화음의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볼 수 있다. 이상한 말이긴 하지만, 이 오프닝 시퀀스는 과도하게 멋지다. 이후에 이어질 본편보다 5분 동안의 오프닝이 더 크고 화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건 본편이 빈약하다기보다 오프닝과 본편이 이질적이라는 느낌에 가깝다. 오프닝에서 예기된 모호하고도 매혹적인 대립항들의 긴장이 본편에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오프닝에는 신화적이고 몽환적인 기운이 가득하지만, 본편은 대부분 사실적인 사건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톨랜드의 시각적 수사학이 포드의 배우들의 연기 방식에 맞지 않는다는 점인 것 같다. < 시민 케인 >은 연출과 촬영뿐만 아니라 50년의 세월을 연기한 배우 오슨 웰스의 연기력으로도 칭송받았다. 하지만 웰스의 연기는, 케인이라는 캐릭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시적이고 연극적인 제스처로 가득하다. 톨랜드의 시각적으로 과장된 프레임이 웰스의 자기 과시적 몸짓을 고양시킨다. 하지만 포드의 배우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포드는 할리우드 고전기 감독 중에서도 양식적 연기, 연극적 연기를 가장 멀리한 사람이며, 배우가 지닌 고유의 존재감을 가장 존중한 사람이다. 또한 그의 영웅들은 앞서 여러 영화에서 보았듯이, 과시하기는커녕 망설이듯 프레임에 진입한다. 앞서 예로 든 한 장면(#2)에서 웰스의 일그러진 얼굴은 딥포커스 화면의 전경을 가득 채울 때 그는 무언으로 자신의 분노와 인내를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 롱 보이지 홈 >에서 존 웨인의 얼굴은 어떤가?(#7) #7 이 장면 외에도 여러 쇼트에서 웨인은 프레임의 전경을 채우지만, 그의 얼굴은 텅 비어있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가 연기한 올슨은 이 앙상블 드라마에서도 가장 존재감이 약한 인물이다. < 롱 보이지 홈 >에는 시각적으로는 강렬하지만 공허한 쇼트들이 드물지 않게 등장한다. 다음은 다른 사례다. #8 #9 #10 인물(스미스)이 프레임의 수직선을 질주하다 소실점 밖으로 사라진다. 이런 부류의 심도화면이 드문 것은 아니지만 톨랜드는 달리는 인물이 점이 될 때까지 찍으면서 화면의 깊이를 과장한다. 문제는 바로 다음 쇼트에서 인물이 쉽게 붙잡힌다는 것이다. 공간의 아득한 깊이와 소실의 운동이 다음 쇼트에서 간단히 부정될 때, 이런 시각적 수사학이 장식적으로 보이지 않기란 힘들다. 몇 가지 결함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 롱 보이지 홈 >을 좋아한다. 사적인 10베스트에 넣기는 망설여지지만 이 영화의 소란과 활력과 어둠을 사랑한다. 하지만 포드의 유성영화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시각적 수사학의 과잉이 마음에 걸렸다. 존 웨인의 진술이 맞다면 그 과잉은 < 시민 케인 >과 < 작은 여우들 >을 비슷한 시기에 찍으면서 정점에 이른 그렉 톨랜드의 의욕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물론 톨랜드 역시 이 시기를 지나면서 수사학적 과장에서 조금씩 멀어진다. 그는 누가 뭐래도 영화사에서 가장 뛰어난 촬영감독이었으며, 나는 그가 촬영한 영화 중에서 윌리엄 와일러의 < 우리 생애 최고의 해 >(1947)를 가장 좋아한다.) 존 포드는 표현주의적 구도와 조명에 심취했지만, 그 한계도 이 영화를 만들면서 느꼈을 것으로 나는 짐작한다. 포드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더 고도의 균형을 향해 더 나아가고 있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