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요정 휴고의 대모험
- 감독
- 갈리나 미클리노바
- 제작년도
- 2016
- 출연
- 조연우, 박상우, 진정훈, 이민형, 송영인, 크리스토프 하덱, 온드레이 트로얀, 타티아나 빌헬모바, 요세프 소므르, 마체 루퍼트
심우섭 감독의 1969년 영화 < 남자와 기생 >은 작품만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요즘의 관객에겐 다소 낯선 영화일 수 있겠지만, 이 영화를 한국영화사의 큰 흐름 속에 놓고 본다면 금세 고개를 끄덕일 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짧은 지면에서 한국영화사의 흐름을 다 훑을 순 없겠지만, <남자와 기생>이 만들어진 1960년대의 한국 코미디 영화의 경향 안에서, 그리고 이 영화를 연출한 심우섭 감독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우선 이 영화를 자리매김해보는 것은 영화의 이해를 돕는 데 있어 의미 있는 시작처럼 보인다. 1959년 인기를 얻었던 방송드라마 < 백련부인 >으로 감독으로 데뷔한 심우섭 감독은 연출자로 데뷔하기 이전, 1950년대 중반, 홍성기 감독의 <애인>의 촬영감독으로 먼저 영화에 입문했다. 하지만 연출자로서 예술적 야심을 녹여냈던 <백련부인>이 대중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지 못하자 그는 홍성기 감독, 최훈 감독 등 다른 작품에도 촬영 감독으로, 또는 편집자로 계속 참여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그 이후로도 몇 편의 작품을 더 연출했지만 정작 그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알리게 된 건 코미디 영화 < 청춘사업 >(1965)과 < 주책바가지 >(1965)가 연달아 흥행에 성공하면서 부터였다. 한 인터뷰에서 심우섭 감독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심우섭과 작업하면 무조건 웃고 돌아 간다”는 소문이 번졌다. 나와 일한 제작자들은 하나같이 주머니를 불려서 돌아갔다. 그저 잘되게 해줘서 고맙다는 소리가 좋았을 뿐이었다. 내 몫으론 얼마가 떨어지든 별로 신경 쓰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였다. 다만 스승 홍성기의 뜻을 거스르는 것 같아 일말의 죄책감은 있었다. 스스로 흥행감독이 되길 원한 바는 아니었으나 작품을 의뢰하는 제작자들의 뜻을 거스를 수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웃음을 주고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코미디가 내겐 맞았다." 1) 두 영화의 성공 이후 심우섭 감독은 < 남자 식모 >(1968)로 흥행을 보증하는 코미디 영화 감독으로 자리를 굳혔고, 그 이후 <남자 미용사>(1968), <남자와 기생>까지 '(여장) 남자' 시리즈로, 그리고 '팔도' 시리즈 (< 팔도 노랭이 >, < 팔도 며느리 >, < 팔도 주방장 >)을 연이어 연출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멀리 돌아왔지만 <남자와 기생>은 코미디 감독으로 명성을 얻은 심우섭 감독이 당대를 주름잡았던 서영춘 , 김희갑 , 양훈 , 구봉서 등과 같은 코미디언과 함께 작업한 일련의 코미디 영화의 중심에 놓여 있는 작품인 셈이다. 특정 소재를 가지고 시리즈로 만들어지는 일련의 영화들이 그렇듯 <남자와 기생> 역시 이야기는 제목에서 유추 가능할 만큼 단순하다. 회사에서 쫓겨나 생계가 막막해진 태호(구봉서)는 기생집에서 일하는 지인의 권유로 여장을 하고 기생이 되기로 결심한다. '산월'이라는 기생으로 일하게 된 태호는 기생집에서 자신을 쫓아낸 회사의 사장( 허장강 )을 만나게 되고, 그를 골탕 먹일 계획을 꾸민다. 한편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허사장은 산월이에게 빠져 흥청망청 기생집에서 돈을 쓰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허사장의 부인 ( 도금봉 )은 허사장의 뒤를 밟고 급기야는 밖으로 도는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어떻게 하면 남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그 '노하우'를 배우려 남장을 하고 직접 기생집에 찾아간다. 물론 이야기는 '코미디'라는 장르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모두가 '정상성'을 회복하고 웃으며 안전하게 마무리되지만, 이 때 이 영화의 핵심이 되는 '옷을 바꾸어 입는' 행위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지에 대해서는 한 번 되짚어 볼 만하다. 작지 않은 체구에 선 굵은 얼굴을 가진 '구봉서'가 한복저고리를 입고 교태 섞인 목소리를 내며 기생을 연기한다는 설정 자체가 이미 보증된 일종의 웃음 코드이겠지만, <남자와 기생>에서는 주인공 구봉서를 제외한 주변인물들의 '옷 바꿔 입기'도 등장한다. 산월과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허사장은 호텔로 그녀를 유인한다. 하지만 허사장을 골탕 먹일 계획인 산월이 샤워하러 들어간 허사장의 옷으로 바꿔 입고 호텔을 빠져나가자 허사장은 산월의 미니스커트를 입고 집에 가야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태호가 산월이 되기 위해 한복 저고리로 갈아 입는 것과 허사장이 (산월의) 미니스커트로 바꾸어 입는 것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생이 되기 전 태호는 허사장의 회사에서 바느질을 하거나 동료의 양말 빨래를 해주다가 걸려 해고당한다. 하지만 그가 '바지'를 벗고 '치마'로 갈아 입자 그는 순식간에 기생집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기생으로 탈바꿈된다. 말하자면 '옷 바꿔 입기'를 통해 회사에서 몰래 눈치 보며 남의 빨래나 해주던 남자(태호)가 돈을 마구 주무르며 남자 손님들을 상대로 큰 소리 치는 여자(산월)로 바뀐 셈이다. 이 때 '여장(女裝)'은 여성의 (전통적인, 아니 더 정확하게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던) 성역할을 입히는 대신 정반대로 태호에게 결핍됐던 '남성성' 혹은 (역시나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던) '남성의 성역할'을 회복시켜주는 행위가 된다. 이 때 태호의 한복저고리는 흡사 수퍼 히어로의 '수트'처럼 보인다. 바지를 입은 태호는 여동생의 도움 없이는 불량배들로부터 연인을 지키지도 못하는 존재지만, 치마를 입은 산월은 같은 기생집에서 일하는 연인(정미)을 무례한 남자손님들로부터 당당하게 구해낸다. 그러나 허사장의 '여장'은 반대로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던) 그의 남성성을 완전히 거세시키는 역할을 한다. 산월의 미니스커트를 입고 집에 들어간 허사장은 기 센 부인의 추궁에 거의 집에서 쫓겨날 지경에 이른다. 심지어 이유가 어찌됐든 그는 부인에게 가부장으로서의 역할마저 빼앗기는데, 이는 부인이 남편의 양복을 입고 (남장(男裝)), (남편이 해왔던 것처럼) 기생집에 찾아가는 전위적 행위로 변주된다. (물론 앞서 말한대로 심우섭 감독은 이 전위성을 영화의 결론까지 밀어 부치지 못하고 익숙하고 안전한 결말을 선택한다.) 말하자면 <남자와 기생>의 안전한 웃음 코드인 남자 주인공의 '여장'은 (또는 더 넓은 의미에서 '옷 바꾸어 입기'는) 전통적인 성역할을 두고 두 개의 젠더 사이를 오가며 이루어지는 일종의 전복적 게임이라 할 수 있겠다. 말년의 한 인터뷰에서 심우섭 감독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감독들은 대다수 예술영화를 꿈꾸지만 결국 살아남기 위해 흥행영화에 무게를 두지 않을 수 없는 갈등 속에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감독활동을 하는 동안 흥행보다 예술에 치중하며 연출활동을 한 유현목 감독을 부러워했습니다. 유감독과 가깝게 지내기도 했지만, 내 작품 세계에도 영향을 많이 준 사람이지요. 주로 관객을 염두에 두고 희극 영화를 만들면서도 나 역시 그냥 웃어넘기는 흥행영화가 아닌 작품마다 페이소스의 감동적인 여운을 남기려고 노력했어요." 2) 어쩌면 이제, '공장에서 찍어낸, 그렇고 그런 코미디 영화'라고 치부됐던 그의 영화들을 다시 한번 꺼내 보아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1) 씨네21, 2001-05-02자, "배고픈 민중, 웃음의 배를 불리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1773) 2) 인터뷰365, 2012년 3월 14일, ‘신상옥도 부러워한 코미디 거장 심우섭 감독’ (https://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17892) >> 남자와 기생 VOD 보러가기 <<
< 기생충 >( 봉준호 , 2019)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자 국내외에서 극찬에 가까운 호평들이 쏟아져 나왔다. 기대는 고조됐다. 더군다나 이번 영화는 < 설국열차 >(2013)나 < 옥자 >(2017)를 경유해 다시금 온전히 대한민국, 그 토착적 세계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나.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유독 한국적 삶을 풍속화처럼 포착해낼 때 지니는 생기와 활력, 치밀하고 지적으로 구조화된 영화적 세계 속에서 몽타주처럼 충돌하는 캐릭터들의 동물적이고 모순적인 에너지들의 조합(용맹과 불안, 선함과 악함, 잔혹과 연민)이 매혹적이다. 흡사 제목에서부터 김기영 과 이마무라 쇼헤이의 검은 마성과 육식동물의 괴이한 에너지를 연상케했던 이 작품, <기생충>에 대해 지금 시점에서 또 하나의 찬사를 보내는 것은 이젠 지루한 일일 것이다. 다만, 이 영화를 본 이후에도 지워지지 않았던 몇 가지 잔상들, 혹은 질문들은 남아 있다. 상징 혹은 페티시 “돌은 왜 그렇게 껴안고 있냐?” “이거요? 얘가 나한테 자꾸 달라붙는 거에요. 진짜로요. 얘가 자꾸 날 따라와요.” 폭우와 함께 역류하던 검은 오수가 기택의 가련한 반지하를 삼켜버리던 그 순간, 기택의 가족은 뭐라도 챙겨 이 집을 빠져나가야 하지만 정작 건져낼만한 무언가를 찾지 못한다. 기정은 다 체념한 듯 성난 짐승처럼 검은 물을 뿜어대는 변기를 누르고 앉아 담배나 태워야하고, 기택은 비루하기 그지없는 물건 몇 가지를 챙겨 어깨에 지고 두리번거릴 뿐이다. 그런데 이 순간 기우는 특별한 것에 사로잡힌다. 얼마 전 민혁으로부터 건네받은 산수경석, 그 수석이다. 재물과 합격운을 가져다준다는 그 돌을 건네받았을 때 기택은 “참으로 시의적절하구나”라고 감탄했고, 기우는 “상징적”이라고 응수했다. 삶의 모든 흔적들이 검은 물속으로 가라앉던 그 순간, 기우는 하필 그 산수경석 하나를 쥐고 나와 대피소에서 잠을 청할 때 조차 끌어안고 있던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각인의 기제로서 그 돌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민혁은 초반에 사라지지만 계속 관객 눈앞에 어른거려야하는데 그 장치가 돌이다. 기우는 돌을 들고 있지만 사실은 깔려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 <기생충>에서 돌이 처음 이 집안으로 들어오던 순간에는 집중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에필로그에 가까운 이 영화의 후반부에 산수경석은 망상에 가까운 기우의 내래이션(새로운 계획)이 시작되는 즈음, 어느 계곡 물 속에 조심히 놓여진다. 살해현장에 있었을 그것이 어떻게 기우의 손으로 되돌아갔는지, 왜 그 돌은 기어이 기우의 “계획”이 또다시 언급되던 순간에 계곡에 놓여져야만 했는지 감독은 구지 설명하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적 매력 중 하나는 이러한 서사적 구조 속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쉽게 눈에 띄진 않지만 치밀하게 서사적 변곡 지점에서 반복적으로 작동하는 어떤 모티브가 있는 것이다. 가령 < 마더 >(2009)에서 엄마의 처연한 춤사위와 작두질(오프닝 타이틀 시퀀스, 후반부 고물상 노인의 살해 후 형사의 방문, 엔딩 관광버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영화에서 ‘산수경석’ 혹은 그저 무거운 돌덩이에 불과한 이것은 계획과 실패, 망상과 현실, 상징과 페티시가 작동하는 결정적 순간마다 기묘하게 움직인다. 그렇다면 그 돌은 왜 그 자리로 되돌아가야만 했는가? 서사의 필연성 보다는 감독의 무의식 혹은 의지에 가까운 이것은 정작 ‘상징적’이라고 찬탄하던 기우에게는 ‘물신(페티쉬)’으로 작동하고, 영화적 차원과 관객에게는 그야말로 하층 노동계급의 부재하는 ‘계급의식’과 망상(결코 도달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기능한다. 물신은 존재할 수 없는 어떤 것을 ‘거기 있다’고 믿는 환상의 구조(프로이드적 의미의 물신)이며 혹은 이데올로기적 효과(맑스적인 의미에서의 물신)이다. 한갓 돌덩어리에 불과한 이것에 대해 기우는 소망을 투사하고 주술적 효과를 기대한다. 당연히 그것은 실패한다. 현자의 돌, 반복된 실패 기우에게 그 돌, 산수경석은 흡사 연금술사들이 소망했던 “현자의 돌(철학자의 돌)”처럼, 결코 이룰 수 없는 소망 혹은 반복된 실패의 상징이다. 그 상징의 한 가운데 민혁이 존재한다. 앨리스의 빨간 토끼처럼 기우네 가족을 절망적 심연으로 안내하고 사라지는 민혁은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기우에게 계속 따라붙는 이름이다. 곤경 속에서 조차 ‘민혁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되뇌이던 그는 지속적으로 민혁을 모방한다. 그의 말을 따라하고(다혜에게 정식으로 사귀길 청하겠다는 것), 기세를 모방하고(노상방뇨하는 남자를 응징하는 것), 판단을 추정한다. 그러나 기우가 소망했던(물신화했던) 주술적 마법은 작동하지 않고, 그 돌은 그저 기우가 감당하지 못할 계획이나 폭력의 수단으로만 소용되며 그것마저도 번번이 실패한다. 영화 속에서 기우는 자신의 기세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 돌을 두 번 들고 나선다. 처음엔 반지하 창 밖에서 노상방뇨를 하는 남자를 응징하기 위해 들고 나서지만, ‘오버한다’며 제지하는 아버지에 의해 돌은 ‘물벼락’으로 대체된다. (이 응징은 폭우와 수해가 되어 고스란히 그들에게 되돌아온다) 두 번째 순간은 다송의 생일파티, 2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순간에 등장한다. 그 돌이 자신에게 따라 붙어왔다고 믿는 그는 무모한 계획의 수단으로서 그 돌을 들고 나서는 것이다. 그러나 그 돌은 그의 손에서 결국 미끄러져나가고, 감독의 말처럼 그는 결국 돌에 의해 깔리고 만다. 기우는 실패한다. <기생충>에서 그것은 거의 필연적인 결정처럼 보인다. 영화 속에서 여러 순간 반복되는 “계획”이라는 단어는 실패의 동의어로 간주되며, 심지어 봉준호 감독은 기우가 계획과 소망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마다 냉혹하리만치 그것은 불가능한 현실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듯 다음 장면을 이어간다. 이 영화에서 기우가 자신의 은밀한 소망을 입 밖으로 꺼내는 두 번의 순간은 그래서 중요하다. 첫 번째 순간. 박사장 가족이 캠핑을 떠나자 기우네 가족은 그 부르주아의 저택을 제 집인양 향유한다. 그 쾌락과 모방의 놀이가 한밤중의 거친 술판으로 이어졌을 때, 기우는 다혜에 대한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한다. 물론 그것은 민혁이 그에게 고백했던 다혜에 대한 감정을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다. “대학교 들어가면 정식으로 사귀자고 하려고요.”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기우는 기정에게 “만일 이 집이 우리게 된다면”이라는 소망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순간 이들의 부르주아적 삶의 망상은 예의 초인종과 함께 깨져나간다. 이른바 실재(the real)의 침입, 문광의 방문과 함께 새로운 지하공간이 열리는 그 순간 그들이 맞닥뜨리게 된 현실은 또 다른 하층 노동계급과의 적대와 경쟁이다. 그리고 더한 공포는 그들이 끊임없이 착하다, 좋은 분이다, 존경한다, 죄송하다고 읊조렸던 주인의 귀환, 진짜 부르주아의 당도와 함께 펼쳐진다. 선을 넘어버린 한밤중의 환상게임은 이내 당도한 ‘현실’과 함께 이 영화에서 가장 격렬하고 극적인 움직임들을 만들어낸다. 욕설과 폭력, 경쟁과 적대, 굴욕과 비참이 교차하는 이 활극은 부르주아의 교만과 섹스를 치욕적으로 참아내고 숨어야만 했던 거실 탁자를 벗어나는 순간 잠시 멈추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봉준호 감독이 이들에게 상기시키는 현실의 지위는 벌레처럼 기어 나온 저택으로부터 저 아래 반지하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하강 혹은 추락의 스펙터클(폭우와 와이드한 롱숏으로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비감), 그리고 그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절망의 또 다른 현장이었다. 수해로 잠겨버린 반지하의 처참한 몰골. 이들이 직면한 현실의 창은 겹겹이 처참하며,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비참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스펙터클로 전유된다. 에필로그, 도착하지 못할 편지 “아버지 저는 오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근본적인 계획입니다. 돈을 벌겠습니다. 아주 많이. 대학, 취직, 결혼 다 좋지만 일단 돈부터 벌겠습니다. 돈을 벌면 이 집부터 사겠습니다. 이사 들어가는 날에는 저는 엄마랑 그냥 정원에 있을게요. 햇살이 워낙 좋으니까요. 아버지는 그냥 계단만 올라오시면 됩니다.” 기우의 소망이 실패할 것임을 확정하는 두 번째 순간은 기우가 아버지에게 쓰는 편지를 통해서이다. 이 편지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실패할 것이지만, 더 큰 실패는 그 계획이 역시 부질없고 무모하며 무능한 것임을 확정하는 영화적 수사학을 통해 드러난다. 기우가 아버지에게 새로운 계획을 진술하는 순간 영화는 침잠된 톤으로 어쩌면 기우가 정말로 그 소망을 이루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후일담 같은 이미지를 제시한다. 부동산 업자의 디테일한 호들갑, 조심스레 지하 계단을 올라오는 기택, 그리고 쏟아지는 햇살아래에서 말없이 이루어지는 재회. 그러나 이내 롱숏으로 아득하게 포착되는 그 재회는 다음 컷과 함께 현실로의 귀환을 촉구한다. 서서히 틸다운 되는 카메라는 반지하, 지상의 발아래 놓인 창과 그보다도 더 아래에 앉아있는 기우를 비춘다. 도달할 수 없는 편지를 읽고 있는 기우의 얼굴에서 우리는 그의 소망과는 정반대의 무력하고 비루한 실패자의 얼굴을 마주한다. 이 영화의 오프닝과 정확히 대구를 이루는 이 장면에서 기우는 여전히 발아래 세상, 양말과 변기 따위가 그나마 이 집의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할 수 있는 그런 현실로 다시금 돌아와 있는 것이며, 기우의 소망 이미지는 망상으로 확정되며 괄호 안에 묶여버린다. <기생충>은 계급상승이라는 비천한 욕망을 허용하지 않으며, 전복의 정치학은 상정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에필로그를 구성하는 감독의 선택 및 방법에 대한 몇 가지 소소한 궁금증. 박사장에 대한 죄의식을 지닌 기택은 왜 현실적 단죄(사법적 처벌과 수형생활)보다 더 가혹한 지하 공간에 스스로를 감금해야만 했는가. 물론 이 선택은 공간의 정치학과 생존 게임으로 표명되는 이 영화에 있어서 보다 완결적이고 맞추어진 퍼즐(또다시 누군가 그 공간으로 전락해야만 하는 게임)처럼 보인다. 그리고 기우의 웃음. 몇 달 만에 의식을 회복한 기우는 얼마간 계속 웃는 표정을 짓는다. 병원 병상에서, 재판정에서 그리고 심지어 여동생의 영정을 마주하는 그 순간조차 그는 웃어야만 한다. 흡사 < 올드보이 >( 박찬욱 , 2003)의 엔딩에서 웃고 있던 오대수의 그것처럼, 기우의 웃음은 그가 직면한 현실과 충돌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우의 다음 선택지. 그는 왜 그 잔혹한 공간(대저택)으로 되돌아가 그것을 반복적으로 조망해야만 했는가(물론 영화에서 아버지의 모르스 부호는 그에게 전달되어야만 했기에), 왜 에필로그에서 여성들은 지워지고 아버지와 아들의 목소리와 정감에 집중하는가, 왜 산수경석은 그의 부질없는 계획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계곡 물 속에 다시 놓여져야만 했는가, 그리고 왜 기우의 망상은 괄호 안에 가둘 것임이 명백함에도 화면 안에서 관객들을 잠시 오인케 하며 재현되어야만 했는가. 사실 이러한 소소한 질문들은 장르적 구조를 침입해오는 현실적 실체들과의 긴장 속에서 생겨난다. 통상적인 장르 영화 속에서라면 사건이나 캐릭터의 극단성, 현실적 인과론 따위는 크게 질문되지 않는다. 장르적 포뮬라와 컨벤션 속에서 영화는 인위적 실체와 쾌락으로 간주되면 완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는 자꾸만 장르와 부딪히는 현실의 틈입, 그 사이 공간을 비집게 된다. 장르적 구조 안에서 창조된 현실적(비장르적) 인간의 캐릭터들, 일루전과 인공적 구조물로만 간주할 수 없게 만드는 감독의 집요하고도 정치한 현실적인 질문들. 부조리한 세계를 장르적으로 치환하되 극장 밖까지 짊어지고 가게 만드는 윤리적인 질문들, 불안의 감각들. 이 틈입 속에서 <기생충>은 자꾸만 영화에서 말해지지 않은 어떤 것들 혹은 감독이 구지 선택해서 제시했던 장치들에 대해 그 선택의 의지 혹은 무의식은 무엇이었는지 질문하게 만드는 것이다. 계급 도식과 엑조티즘 <설국열차>와 <기생충>은 전면적으로 계급 문제를 제기한다. 가상 세계를 배경으로 질주하는 기차칸의 위치로 계급을 위계화하고 지배와 피지배, 저항과 억압, 절망과 희망의 문제를 배치했던 <설국열차>와 달리 이번 영화 <기생충>은 동시대 한국사회, 극단적 계급적 분할과 기시감 있는 현실의 풍경들을 절묘하게 교차시키며 서사를 구성한다. 그런 점에서 분명 <기생충>은 한국 관객에게 보다 촉각적인 풍경들이지만, 동시에 계급 재현의 전략에 있어서는 엑조티즘에 가까운 풍경과 타자의 스펙터클을 만들어낸다. 부르주아 엑조티즘(박사장 저택의 와이드한 공간과 값비싼 소품들) 혹은 프롤레타리아 엑조티즘(반지하를 가득 채운 빈곤의 흔적들. 방바닥의 끈적거림, 벌레와 소변)으로 간주될 수 있는 두 계급 공간의 시각적 재현은 이 영화에 응축된 공간의 정치학 혹은 계급 정치학을 위한 미장센이자 표상이지만 한편으론 관람자 위치에서 그 극단적 어느 계급과도 동일시 할 수 없는 미묘한 거리감 또한 만들어낸다. 이 영화가 기택네 가족 특히 기우를 중심으로 안내되는 카메라의 동일시 메커니즘을 작동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것은 아마 이들이 영화적 사건을 통해 계급 의식을 성취해가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질서와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순응하고 포획된 주체들로 재현되기 때문일 것이다. 본질적 모순이 아니라 지배질서가 유포한 관념과 경쟁의 틀 속에서 말초적으로 반응하고 오인하는 자본주의의 선한 주체(good subject) 혹은 무지한 주체들 말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본주의 내 본질적인 기생자들인 부르주아들을 선하고 존경할만하다고 오인하며, 같은 계급을 적대한다. 봉준호 감독은 지옥도 같은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의 보수화되고 무력화된 계급 군상을 포착하되, 그들의 저항이나 연대와는 선을 긋는다. 그런 점에서 <기생충>은 올해 < 미안해요 리키 >(2019)로 다시 돌아온 켄 로치 감독의 작품세계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물론 봉준호 감독과 켄 로치 감독은 잔혹한 자본주의(신자유주의)의 폭력 속에서 불행과 생존의 위기로 내몰리는 개인을 묘사하고 그 폭력의 구조를 전제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켄 로치가 창조하는 영화적 주인공들은 사회적 구조의 희생자들이고 공감과 연대의 명백한 대상이다. 최근작이었던 < 나, 다니엘 블레이크 >(2016)나 <미안해요 리키> 뿐만 아니라 그의 오랜 필모그라피 속에서 주인공들은 자본주의 구조 내 착취당하고 소모되며 희생되는 개인들임과 동시에 서사와 함께 ‘각성하는 개인’ 혹은 ‘관객’을 유도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계급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전도된 관념들로부터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계급적 의식을 터득하는 과정으로서의 주체들로서 그들은 ‘계급의식’을 성취하는 것이다. (켄 로치 영화 속에서 가장 처참하게 현실을 묘사했던 작품은 < 네비게이터 >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속에서 하루아침에 경쟁관계로 내몰린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동료의 비참한 죽음을 방치한다. 그러나 관객은 동료 노동자의 죽음을 방관하고 방치했던 그들을 비난하거나 미워할 수 없다. 극중 인물들의 무력함과 죄의식은 영화가 끝난 후 고스란히 동시대를 살고 있는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이상하게도 이번 영화 <기생충>의 캐릭터들이 당면한 비극은 일정부분 타자화된다. <마더>에서 아들을 지키기위해 살인까지 저지른 엄마에게조차 동일시되고 연민했던 것과는 분명 다른 체감이다. 그것은 아마도 이미 대한민국 현실에서 충분히 목도하는 무한경쟁의 각축장, 계급에 무지한 채 이기적인 생존 감각으로 자신보다 더 못한 사람들을 혐오하고 밀쳐내는 일상의 풍경들에 지쳐 영화 속에서 그러한 그들을 다시금 목도하는 과정은 결코 편치 않기 때문이다. <기생충>의 군상들은 정확히 현실을 반영하거나 혹은 인간의 본질을 장르적으로 변형하고 있지만 (계급이기 이전에 인간이 지닌 분열적이고 모순적인 측면들, 그 복잡한 내면들이 특정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욕망하는지에 집중하는 것), 그것은 분명 불편한 진실이다. 계급과 폭력,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는 이 영화가 공개되기 전부터 봉준호 감독이 언급했던 작품들 속에서도 다양하게 묘사되어 왔다. 20세기 초반에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파팽자매 살해사건(하녀로 들어간 어린 자매들이 영문 없이 여주인과 그 딸을 참혹하게 살해한 사건. 이들은 살해의 이유에 대해 명백하게 밝히지 않았으며, 다만 재판정에서 “우리도 그들의 피부를 갖고 싶었어요”라는 말을 함으로써, 이른바 계급 살해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언급된다.)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클로드 샤브롤의 < 의식 >(1995)에서 하녀의 돌발적 살해행각은 계급적 착취를 교양주의와 호혜의식, 선의로 위장하고 있는 부르주아의 위선에 대한 폭로로서 자행된다. 조셉 로지의 < 하인 >(1963) 역시, 사회적으로 주어진 계급적 지위가 집안 내부 공간에서 어떻게 주인과 노예의 역할과 위계를 만들어내는지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특히 이 영화에서 부르주아 여성이 하인을 모멸하기 위해 그의 냄새를 노골적으로 지적하고 비하하는 순간은 <기생충>에서 계급 냄새로 환기되는 것과 겹쳐진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감독의 계급 정치학이 가장 명료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중반부를 지나, 폐쇄적인 집안 내부에서 주인과 하인의 관계가 역전되면서부터이다. 집안 내부에서 계급이 지워지는 순간, 노동능력이 없는 부르주아는 무능함과 의존성, 유약함으로 간주되고, 실질적 자기 재생산이 가능한 노동계급-하인은 권력을 쥐게 된다. 미카엘 하네케의 < 퍼니 게임 >(1997)은 계급 호러 그 자체이다. 이 영화는 감독의 “스릴러 장르에 대한 패러디”라는 말처럼 장르적 컨벤션을 위반하고 재구성하는 형식적 기교를 과시하지만 더욱 섬뜩한 것은 오히려 살해극의 동기가 오로지 ‘계급 적대’ 그 자체만으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억압된 것의 귀환’이라는 호러 장르의 공식을 계급 정치학으로, 장르 패러디로 구성한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소재나 문제의식이라는 측면에서 위에서 언급한 영화들과 일정 부분 흥미로운 지점을 공유하지만 새로운 장르 자의식과 형식적 수사학을 구성하는 지점으로 나아간다. 장르적 요소들을 탈구시키지만 하네케처럼 과시적이거나 관객심리를 공격하지 않으며, 켄 로치처럼 계급의식을 성취하거나 연대하진 않으나 무력하고 비참한 상황에 내몰린 그들에 대해 연민하고 응시한다. 조셉 로지의 <하인>처럼 공간의 정치학과 흡사 제 3의 시선을 구성하는 유려한 카메라 워킹을 캐릭터화 하지만 캐릭터들의 내적 심리에 보다 밀착하고 동기화한다. <기생충>은 표면적으로 명백하고 이분법적으로 도식화된 계급세계를 묘사하는 듯하지만, 감추어진 지하 너머 그 심연의 공간처럼 자신만의 형식 언어가 층층이 구조화된 세계이다. 그 구조의 심연 속에서 영화사의 궤적을 향유한 시네필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는 것, 또한 그것이 어떻게 오리지널리티를 지닌 자신만의 수사학으로 성립될 수 있는가를 해석하는 것은 꽤 흥미로운 작업이다. 역시 시네필의 영화는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읽어야만 한다.
‘우미관’(1912~1982)은 70년 남짓이라는 긴 시간 서울의 종로 관철동에 위치하면서 도시 문화사의 한 축을 설명하는 키워드이자 어떤 장소성의 표식으로 기능해 왔다. 예컨대, 김두한(1918~1972)을 ‘영웅 협객’으로 그려냈던 임권택 감독의 영화 <장군의 아들> 3부작(1990~1992)이나 TV드라마 <야인시대>(2002~2003)에서 1930년대의 우미관은 종로 주먹의 요람과 같은 장소로 등장한다. 실제로 우미관 주변을 근거지로 삼았던 주먹패가 있었고, 종로를 누가 차지하느냐를 두고 ‘내선(內鮮)’ 간 치열한 주먹 다툼도 있었다. 김두한이 해방 후 국회의원이 되어 오물 투척 사건으로 영웅 협객의 파란만장한 정치사를 써나간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미관의 김두한’ 혹은 ‘김두한의 우미관’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한동안 대중문화에서 우미관은 김두한으로 대표되는 ‘협객의 무대’로 표상, 전유되어 왔다. 열여덟의 나이로 우미관 일대를 제패하고 싸움 실력 하나로 일본인도 무릎 꿇게 했다는 협객 김두한. 일본인 자본가들이나 주먹 패거리로부터 조선인 상인들을 보호하려는 종로 주먹들의 민족적 의기와 의리. 이러한 재현이 우미관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도 우미관을 기억의 공간으로 자리매김시키는 데 중요한 문화적 기능을 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말 우미관은 김두한의, 민족적 의기와 의리의 성지였을까. 아니, 어쩌다가 우미관은 종로 협객들의 공간이 된 것일까. 어쩌면 이런 식의 기억하기는 극장이 ‘관객(만)의 공간’이며 ‘관람 행위’가 기대되는 공간이라는 상식, 즉 ‘극장=관람 공간=관객의 공간’이라는 상식을 넘어서는 극장 경험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근대 문화의 첨단에 있던, 그래서 ‘영화 보기’라는 문화 실천이 근대의 패션으로서 그들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던 모던보이와 모던걸뿐만이 아니라, 부랑자, 불량소년, 걸인 등 도시 문화의 주변부에 위치한 하위 주체들에게 극장이라는 장소의 경험이 무엇이었을지에 대해 생각할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 한국의 첫 근대 장편소설로 기록되는 이광수의 『무정』(1917)은 작가가 일본 도쿄에 체류하는 동안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소설 집필 전인 1916년 여름, 그는 잠시 경성을 다녀간 일이 있었다. 『무정』의 일본어판 번역자이자 한국문학 연구자인 하타노 세츠코(波田野節子)는 작품 속 영채의 유서를 근거로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 1916년 6월 말부터 7월 사이라고 추정했는데, 어쩌면 소설 속 다음의 대목은 이광수가 경성에 머물면서 체험한 종로 밤풍경을 묘사한 것일 수도 있겠다. 밤은 서늘하다. 종로 야시에는 ‘싸구려’ 하는 물건 파는 소리와 기다란 칼을 내두르며 약 광고하는 소리도 들린다. (중략) 아직도 장옷을 쓴 부인이 계집아이에게 등불을 들리고 다니는 이도 있다. 우미관에서는 무슨 소위 ‘대활극’을 하는지 서양 음악대의 소요한 소리가 들리고 청년회관 이층에서는 알굴리기를 하는지 쾌활하게 왔다 갔다 하는 청년들의 그림자가 얼른얼른한다. 1 야시(夜市)가 열리는 종로의 소음들 속에서 “서양 음악대의 소요한 소리”를 가려들으며 우미관의 ‘대활극’을 연상하는 『무정』주인공 이형식을 그 여름의 이광수 자신이라고 했을 때, 그 ‘대활극’은 무엇이었을까. 당시 매일신보 광고를 살펴보면, 1916년 6월 말 우미관의 주요 상영 프로그램은 23일부터 개봉된 ‘세계적 모험 탐정 대활극’ 연속영화 <명금>(The Broken Coin, 1915)이었다. 뉴욕의 탐정소설가 키티 그레이(Kitty Gray)가 유럽 고대 왕국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파란만장한 모험을 펼치는 영화 <명금>은 미국 유니버셜사가 총 22편 44권으로 제작한 연속영화로서, 1910년대 후반 미국발 활동사진 열풍을 불러 일으키며 우미관의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을 장식한 흥행작이었다. 우미관은 1916년 개봉 이래 <명금>을 여러 차례 재상영했고, ‘명금 대회(名金大會)’라는 이름의 상영 행사를 열어 많은 관객들을 유인했다. 한국 근대소설에는 우미관에서 <명금>이 상영되었을 당시를 회고하는 대목이 종종 등장한다. 박태원의 「오월의 훈풍」(1933)에는,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수전동 골목 아이들이 우미관에서 본 영화를 흉내 내며 ‘명금 놀이’를 하는 모습을 회고하는 대목이 있다. 아이들은 각자 <명금>에 나오는 인물—‘기지꾸레’, ‘싸치오 백작’, ‘후레데리꾸 백작,’ ‘로로’—이 되어 골목길을 누빈다. 이태준의 자전적 소설로 알려진 『사상의 월야』(1941)에서도 주인공 송빈이 우미관에서 이 영화를 보는 장면이 있다. 우미관의 2층 좌석에서 송빈과 함께 영화를 본 일행은 누가 ‘기지꾸레’이고 누가 ‘후레데리꾸 백작’인지를 이미 잘 알고 있다. 우미관의 <명금>은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는, 그런 영화였던 것이다. 우미관에서 이 영화의 해설을 진행했던 서상호에게도 <명금>은 변사 인생을 대표하는 흥행작이었다. 스물여덟에 경성고등연예관에서 변사 생활을 시작한 서상호는 우미관에서 생애 최고의 전성시대를 맞았다. 우미관은 김덕경, 우정식, 최병룡, 최종대 등을 견습 변사로 두고 영화 해설의 묘미를 선사했는데, 그중에도 서상호는 우미관의 ‘달러 박스’라고 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명성이 높아지자 그는 우미관과 제2 대정관 사이를 오가며 몸값을 높였고, 단성사가 개관하자 극장주 몰래 변사, 악사, 종업원 등을 빼돌려 단성사로 옮겨버렸다. 이런 그였으나, 우미관에서 다시 ‘명금 대회’를 열었을 때에는 언제 배신했던가 싶게 우미관으로 돌아와 <명금>을 해설했다. 방탕한 생활과 아편 중독으로 생계가 기울고 결국 극장주도 관객도 꺼리는 변사가 되어 버렸지만, ‘우미관의 변사’로서 서상호를 빛나게 해주는 영화가 <명금>이었다. * 서상호의 변사 인생처럼, 우미관의 시대도 점차 기울어갔다. 북촌 조선인 상설관 중 단성사가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한 이래, 우미관은 상영되는 영화보다도 극장 주변에서 일어나는 범죄들과 함께 악명을 높여갔다. 공교롭게도 조선총독부가 활동사진필름취체규칙(1926)을 제정하고 영화 검열을 본격화하는 때를 즈음해 도시의 소년범죄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식민 당국은 영화가 미칠 악영향을 사전에 차단한다는 근거로 검열을 정당화하며, 영화를 보고 국가의 권위에 도전한다든가 범죄 수법 등을 학습하여 공공의 안전을 위협한다든가 하는 범죄자가 양산되는 것, 그리고 영화에 재현된 퇴폐적이고 음란하며 불량한 풍속이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조선인 사회의 엘리트들 역시 영화가 모방 범죄를 야기하고 ‘미풍양속’을 위협하는 악한 쓰임새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소년범죄를 영화의 ‘모방범죄’로 치부하는 사회 담론들은 영화가 ‘불량소년’을 제조하는 마술적인 힘을 내장하고 있다는 듯 논했다. 종로의 영화상설관을 근거지로 절도 행각을 벌인 ‘불량소년단’의 검거 기사들은 제목부터 이 사건들이 범죄영화를 좋아하는 ‘영화광’의 ‘모방범죄’라고 암시했다. 영화의 한 장면을 모방했다거나 영화에 등장하는 악한을 흉내 낸 범죄는 말할 것도 없고, 영화를 모방한 범죄라고 단정할 만한 근거가 없어도 소년들이 돈을 훔쳐 극장 구경을 가려 했다는 진술만으로도 범죄 동기가 영화, 특히 이들이 좋아하는 활극영화에서 비롯된 듯 보도되곤 했다. 어떤 범죄의 원인이 ‘활동사진 중독’ 때문이라거나, 범죄의 발생 장소나 과정이 영화상설관과 연관되어 있다고 제시함으로써, 영화와 극장의 유해성을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하는 듯 보일 정도다. 영화의 필름을 검열하는 것은 총독부 도서과에서 이루어지는 출판경찰의 업무였지만, 영화가 실제 상영되는 흥행장 및 흥행 행위에 관한 단속은 관할 경찰서 소속 풍속경찰의 업무였다. 풍속경찰은 임검(臨檢)을 명목으로 관련 영업장에 자유로이 출입하는 막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입장권 없이 극장에 들어가려는 자를 단속하는 것부터 상영 행위가 검열 기준에 저촉되는지의 여부를 판정하는 것, 극장의 위생 상태와 관객의 음란폐풍 행위를 감독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임검에서 수행하는 업무는 매우 포괄적이었다. 말하자면, 극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범죄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임검 업무였다. 우미관과 그 주변을 근거지로 삼았던 불량소년들이 임검으로 대표되는 풍속경찰의 시야 안에 있었음은 물론이다. 김두한은 우미관의 불량소년들 중 하나였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들 패거리의 ‘불량’은 식민지 경찰과의 긴장과 대치 관계를 통해 식민지인의 ‘불온’을 구성한 중층적인 측면이 있었다. 이들이 ‘일제’로부터 종로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주먹을 휘둘렀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들은 ‘보호’라는 명분으로 상인들에게 돈을 뜯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1930년대 경성이 근대 도시로서 확장되어 가는 동안 그들의 근거지였던 우미관과 그 주변이 상대적으로 종족적이면서도 계층화된 공간으로 게토화될 때, 김두한과 우미관 패거리의 불량스러움은 종족적 혹은 계급적 불온성을 잠재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 1938년도 경성 주요 극장의 관객 구성을 살펴보면, 2 우미관의 조선인 관객 대 일본인 관객의 비율은 9:1이다. 같은 시기 단성사가 8:2, 명치좌가 5:5의 비율을 보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우미관은 확실히 조선인 관객이 절대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는 극장이었다. 이 시기에는 우미관 역시 이미 북촌의 다른 극장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영화를 병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체 관객 중 조선인이 9할을 차지하는 종족 비율을 극장 프로그램에서 기인했다고만은 할 수 없다. 우미관을 줄곧 ‘3류관’의 위치에 머물게 했던 낙후한 설비와 비위생적인 환경, 저렴한 입장료가 오히려 조선인 관객에게 문턱을 낮추었다고 할 수 있다. 불결하고 불량한 극장의 분위기에 눌려 혹여 불량패들의 표적이 될까 두려워하는 일본인 관객이 굳이 우미관을 찾아 영화를 볼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김두한이 종로에서 싸움으로 명성을 쌓아가던 1930년대를 지나며 바야흐로 우미관과 그 주변은 경성 뒷골목의 불량하고 퇴폐적이며 자극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게 된다. 그와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걸인과 부랑자, 불량소년, 하층계급 노동자들에게는 안온한 공간이 된다. 공중화장실의 악취와 근처 우동집의 간장 달이는 냄새, 상경한 사람들이 묵는 싸구려 여관과 여인숙 특유의 음습함과 소음들. 이미 낡고 오래되어 어떤 ‘향수’의 공간이 되어버린 우미관의 화장실에서 왕년의 유명 변사 서상호가 자살하고, 김두한 패거리의 주먹질은 더욱더 골칫거리가 되었다. 우미관과 그 주변은 경성이라는 도시의 식민지적 이원성(식민자 일본인의 공간/피식민자 조선인의 공간)이 극장 문화에서 어떻게 굴절되어 나타났는지, 그 장소성의 다층적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해준다. 1) 이광수,『무정』,김철 편집, 문학과지성사, 2005, 116쪽 2) 「서울 관객 구별」,『삼천리』,1938년 5월호, 25쪽. 상단사진 1. 우미관의 흥행작 영화 <명금(The Broken Coin)>의 두 배우 출처: 송완식 역 『(사진소설대활극)명금』 경성: 영창서관, 1923.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자료) <자료> ※ 이하 자료는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현대어 표기에 맞게 다시 썼다. 일부 표현은 문맥에 맞게 다듬었다. 1. 「영화를 모방한 가두 소년범죄」,《조선일보》,1935년 3월 6일 자, 2면. 이 역시 활동사진을 본뜬 소년의 탐정극 실연 일막 [一幕] ―4일 오후 한시 경에 시외 하왕십리 426번지 배추 행상하는 김사남(金四男, 14)은 배추 수레를 끌고 시내 관철동 우미관 앞을 지나는데 돌연 소년 한 명이 길을 막아서서 김사남의 호주머니에서 현금 60전이 든 지갑을 뺏어 가지고 도망하였으나 김사남은 곧 그 뒤를 추격하려 했더니 다른 소년 한 명이 또 나타나서 붙잡고 방해하였다. 마침 지나가던 종로서원 [鐘路署員] 이 보고 악 [惡] 소년 한 명은 현장에서, 한 명은 전차에서 뛰어오른 것을 쫓아가서 모두 붙잡았는데, 그들은 시내 돈의동 127번지 오량산(吳梁山, 29)과 초음정 14번지 김태산(金泰山, 14)으로서 우미관 부근에 근거를 둔 소년부랑패의 일당인 것이 판명되어 방금 엄중 취조중이다. 2. 일송생(一松生), 「극장풍경」,『영화시대』,1935년 10월호, 59~61쪽. (부분 발췌) 늦은 가을서부터 밤거리의 추워진 공기를 호흡하는 축만시(丑滿時)의 낭객(浪客)―. 텅 빈 종로 거리에 네온사인의 냉광(冷光)을 물리치는 듯 어디선가 구수한 냄새가 날라 온다. 오장육부 속속들이 사무치는 그 구수한 냄새야말로 진미(珍味)의 송곳 끝이 혓바닥을 콕콕 쏘아 한없는 침을 흘리게 한다. 얼큰히 취한 자는 ‘한 잔 더’의 미련으로 발이 안 떨어질 것이오, 맹맥한 노동자의 창자는 이 냄새에 십년은 감수하리라. 이 진미한 냄새. 밤거리의 낭객을 도취시키는 이 ‘구수한 냄새’의 출처는? 우미관 앞. 네 바퀴 달린 ‘오뎅(おでん)’ 장소에서이다. 원래 종로 가까이 있을 뿐 아니라 역사가 오래여서 비록 전신과 후신의 혈통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우미관하면 모르는 이가 없고 또 따라서 연상되는 것의 세 가지가 있으니 1. 우미관 쌈패. 2. 우미관 조무래기 관상. 3. 우미관 문전의 ‘오뎅’ 장수 등이다. 근자에 와서는 경찰 당국의 경계로 경성 북촌 유일의 우미관 쌈패의 존재가 적이 미약해진 셈이고 또 네 바퀴 오뎅 장수보다도 그 앞은 카페를 위시하여 오뎅집, 바-, 만둣집 등등 동경(東京) 약초 [浅草, 아사쿠사] 풍경을 연상케 한다. 3. 이태준,『사상의 월야』,《매일신보》, 1941년 3월 4일~7월 5일 연재. (발췌는 1941년 5월 3일자, 4면.) 구경이란 말에 은주는 먼저 나서며 앞을 섰다. 배다리로 나와 광교 큰길을 건너 샛길로 관철동에 들어서니 벌써 군악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무슨 곡조인지는 몰라도 잰 걸음을 걷는데 신이 나게 맞는다. 가까이 가보니 전등을 구슬 꿰듯 해 여러 줄을 늘이었고, 이층 노대(露臺)에서는 눈이 불거진 사람, 볼이 불룩한 사람, 배가 내민 사람들이 새로 닦은 놋그릇 같은 악기를 메고, 들고, 흥겨운 몸짓을 하며 불고 있다. 그 노대 밑에는 큰 간판 그림들이 붙어 있었다. 첫머리엔 ‘명금 대회(名金大會)’라 쓰여 있었고, 달리는 말 위에서 소나무로 뛰어오르는 그림, 큰 다리 위에서 그 밑으로 달아나는 기차로 내려 뛰는 그림, 천여만여한 절벽과 절벽 사이를 자동자전거를 탄 채 건너뛰는 그림,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쳐다보는 사람들로 마당이 그득 찼다. 윤수 아저씨는 2층표를 샀다. 은주는 자주 와보는 데인 듯 2층길이 어수선한데도 익숙하게 곬을 찾아 먼저 뛰어가 앞줄에 자리를 맡았다. 은주가 먼저 앉고, 윤수 아저씨가 앉고, 그 담에 송빈이가 앉았다. 앉아서 보니 청년회관 대강당은 어림도 없게 넓고 그런 아래웃층이 별로 남는 자리가 없다. 이윽고 밖에서 나던 군악소리가 무대 뒤에서 나더니 그 군악에 맞춰 변사가 나타났다. 변사가 무대 한가운데 머물러 관중을 향해 예를 하자 군악소리는 뚝 끊쳤다. “오늘 저녁에도 이 우미관을 사랑하사 이처럼 다수 왕림…….” 어쩌고 한참이나, 다음 주일에는 무엇을 상연하겠으니 그때도 많이 와달라는 말까지 늘어놓고야 다시 군악에 발을 맞춰 들어갔다. 이내 불이 꺼지며 사진이 나타나는데 모두가 서양사람들이다. 송빈이가 보기에는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은데 은주와 윤수 아저씨는 어느 게 ‘기지꾸레’니 어느 게 ‘후레디리꾸 백작’이니 하고, 알아맞히며 지껄였다. 영사막 옆에서는 아까의 변사가 다시 나서서 목청을 높여 어떤 일정한 장단이 나게 떠들어댔으나, 송빈이는 한마디도 자세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 재미있어, 하는 은주를 가끔 어스름한 속에서 엿보았다. 4. 이주홍, 「소년행」,《동아일보》, 1967년 12월 27일자, 6면. 저뭄이 깃들어오는 밤이면 영하 17, 8도의 매운바람을 가르면서 소년은 일과대로 종로를 향해 걸어갔다. 외투나 장갑이 있었다면 누가 투정을 할 것이랴. 열다섯 살 어린 소년의 살을 싸고 있는 것은 얇은 면 사지의 교복과 면 샤쓰, 그리고 물감 냄새가 채 가시지도 않고 있는 까만 새 모자에 발가락과 발뒤꿈치가 튀어나와 있는 떨어진 양말과 운동화뿐이었다. 화신상회 건너편의 야시(夜市)를 누비고 나가 소년은 수표다리 못미처에 있는 영화관의 우미관 앞에서 서성대는 습관이었다. 아슬아슬한 장면의 <명금>과 <동도> 그림 간판의 뼁끼는 전등불에 번쩍거리고 있었고, 발코니에서 신나게 뿡빠거려대는 악대 소리는 시골 소년의 가슴을 용수에 넣어 흔들 듯 흥분시켰다. 5전짜리 우동장사의 외는 소리, 왜간장 다리는 냄새와 코크스 타는 냄새를 간지럽도록 맡으면서 소년은 조심조심 매표구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은 표를 사려는 것이 아니었다. 손님의 턱밑에 내밀고 애원하는 것은 보인단(普仁丹)이나 영신환(靈神丸)인 것이었다. 지금 아이들만 한 간(肝)이 있었더라도 버스 안 승객들의 무릎 위에 갖은 미사여구로 엮은 삐라를 척척 나눠놓고서 한바탕 반(半)압력의 열띤 애국연설로 연필을 사달라 보챌 수가 있었을는지 모르지만, 지나치도록 암띠고 겁쟁이인 소년은 겨우 한마디로 익힌 대사 “학비를 벌어서 공부하는 고학생이올시다. 동정하시는 맘으로 약 한 첩만 갈아주십쇼”였다. 그러나 하룻밤에 세 첩의 약만 팔아도 두 때의 밥은 살 수 있는 것이었어도, 노상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잘해서 소금으로 반찬 해 먹는 4전짜리 팥밥 한 그릇, 아니면 세 때 네 때를 내리 달아 굶고 늘어져 있어야 하는 얼음장의 냉돌이었다. “배워야 산다.” 단 하나 끝까지 소년을 달랠 수 있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3.1 봉기 직후로 삼천리 전역에 불 지른 민족의 대구호,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행로는 촉도난(蜀道難). 세월이 꿈이 순을 잘라먹었음일까. 이것도 저것도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이, 그때만큼이나 추운 날,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 효자동의 갈돕회 기숙사로 돌아가고 있던 외로운 소년의 뒷모습을 회상해 보면서, 서글피 오십년 뒤의 그 소년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