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 통합검색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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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 작편곡집 - 이정훈의 어느 여름날, 이미자의 집없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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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날, 견우와 직녀가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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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110) 영화감독 신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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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선녀를 위한 로맨틱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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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체의 주인을 찾습니다
윤대원 감독의 < 매미 >는 하나의 몸에서 또 다른 몸이 껍질을 벗고 나오는 이야기를 비유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이 영화는 어느 여름밤 서울 남산 소월길에서 성매매를 하는 트랜스젠더 창현의 이야기를 변신의 모티브와 SF 영화의 관습을 활용해서 그린다. 매미가 유충에서 성충으로 거듭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탈피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처럼 창현은 생물학적으로 자신의 타고난 성을 완벽하게 바꿀 수 있기를 꿈꾼다. 또한, 외계인이라는 미지의 세계에서 온 타자와의 만남을 다룬 SF 영화처럼 이 작품은 창현의 몸으로 타자가 침입하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충격적인 변화에 대해 다룬다. 창현의 몸은 창현의 것이면서도 그의 것이 아니다. 이 작품은 창현과 어떤 남성을 주요 등장인물로 활용하는 가운데 둘 사이에서 나타나는 차이와 대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남성은 유사-탐정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는 흡사 범죄 현장에서 증발해버린 사건의 당사자를 쫓는 탐정처럼 서울 남산의 순환도로를 배회한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남성의 시선에 동기화된 카메라는 도로를 따라 줄지어 선 가로수를 위장막 삼아 서 있는 트랜스젠더들을 관찰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한편, 창현은 도시적 삶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여러 모험과 위험을 맞닥뜨리는 여느 멜로드라마 속 여주인공과 닮았다. 그는 자신처럼 거리에 나와 호객행위를 하는 트랜스젠더들과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거나 그들 중 누군가와 날이 선 대화를 나눈다. 그러던 중 창현은 남성을 만나 모종의 거래를 시도한다. 그들의 은밀한 거래는 대화, 언쟁, 성교, 몸싸움으로 이어진다. 남성은 창현을 잃어버린 대상으로 여기면서 그를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으려고 한다. 창현은 남성을 벗어나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면서 그가 자신의 눈앞에 사라지기를 바란다.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미덕은 이미지를 통해 언어적 담화를 구축하기보다는 이미지 그 자체에 대한 해독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관습적으로 접근했을 때 이 작품은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는 이원적 세계의 견고함을 다루는 것으로 이해될 소지가 다분하다. 젠더적 이분법이 하나의 규범처럼 작동하는 사회에서 성적 정체성은 주체의 자율적인 선택이 개입하기 이전에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사회는 어떤 인칭, 어떤 주체, 어떤 기관을 명확히 규정하기 위해 하나의 몸이 다양한 관계 속에서 변화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한다. 언뜻 보면, <매미> 또한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명확한 이원적 세계에서 발생하는 모종의 갈등을 다룬 도식적인 이야기에 가깝다. 왜냐하면 이 영화 또한 기존의 여러 내러티브 중심적인 영화들이 주인공과 그것에 대립하는 인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서서히 봉합해나가는 그런 관습을 부분적으로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부류의 작품에서 캐릭터는 특이하기보다는 전형적이고, 갈등은 복잡하기보다는 단순하고, 결말은 갈등을 봉합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기존의 영화적 관습에 기대어 이미지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이 작품은 그저 남성 중심적인 세계에서 소외된 소수자의 정체성을 재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미지를 의미화하거나 그것을 서사에 종속시키는 방식 대신 이미지를 하나의 식별 불가능한 형상으로 다룸으로써 기존의 의미 체계를 무너뜨린다. 이를 위해 이 작품은 여러 시각적 이미지가 한 화면 속에서 복합적으로 교차하는 장면을 통해서 의미의 사슬에 포획되지 않는 형상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시각적 묘사가 그러한 경우에 속한다. 영화는 남산 순환도로와 그곳을 통과하고 있는 자동차, 그리고 자동차의 동선과 겹치는 남성의 시선을 수평축으로 설정한다. 이 가상의 수평선들은 도로를 따라 늘어선 가로수와 그 뒤에 몸을 숨긴 채 서 있는 트랜스젠더들을 통해 형성된 수직축과 겹쳐서 가상의 격자를 만든다. 그것은 성적 쾌락을 추구하려는 남성의 욕망, 젠더적 구분을 초월하려는 트랜스젠더의 욕망, 그리고 음성적인 거래를 통해 법의 경계를 가로지르려는 소수자의 욕망이 교차한 결과이다. 이 영화에서 트랜스젠더는 그 단어를 구성하는 접두사 ‘트랜스(trans)’가 의미하는 초월 내지는 횡단을 수행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는 의미 체계에 포착되지 않는 모호한 형상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들은 외형적으로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대상이다. 어두운 밤에 가로수 뒤편에 몸을 은폐하고 있기에 그 형태 자체가 흐릿하거나 어둡게 나타나는 비가시적인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외견상 여성의 헤어스타일과 의상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그들 중 누군가는 아직 신체적으로 여성의 생식 기관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들은 남성도 그렇다고 여성도 아닌 중간자에 가까우며 바로 그런 이유로 그들은 사회적 체계 속에서 자리를 잃은 존재로 볼 수 있다. 그들은 어둠이라는 비가시적인 세계 속에서 누군가의 시선에 포착되는 순간에 등장하는 하나의 몸으로 존재할 뿐이다. 들뢰즈와 가타리에 따르면, 하나의 몸체를 결정하는 것은 어떤 지배적인 힘이 아니라 그 몸체가 어떤 관계 속에서 점하고 있는 위치이다. 모든 대상의 몸은 어느 시각, 어느 계절, 어느 분위기, 어느 공기, 어느 삶과 분리되지 않는 어느 배치물 가운데 하나의 사건으로 존재한다. 마치 <매미>의 창현이 어느 여름밤 남산 소월길에서 만난 한 남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의 몸과 그것에 깃든 정체성을 탈바꿈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창현의 몸은 저항의 장소, 파괴의 장소, 창조의 장소이다. 만약 창현을 신화적 영웅의 비범함을 가진 존재로 볼 수 있다면, 그것은 그가 인간 세계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어떤 규범으로부터 영향을 받기 이전에 그런 규범을 무효화시키고 더 나아가 스스로 새로운 질서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매미>는 식별 불가능한 이미지와 그것의 변형 가능성을 탐구하고 이를 통해서 영화라는 매체가 이미지의 형상적 변화를 통해서 세속적인 대상들 가운데서 숭고한 대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웅변하는 작품이다. (관련글) 1. 우리는 달팽이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 - <달팽이>(2020), 2022.04.21. 2. 나와 유령이 함께 하는 시간 - <탈날탈>(2018), 2022.05.31. 3. 타인의 그림자를 집어삼키는 법 - <햄스터 죽이기>(2021), 2022.06.29. 4. 얼굴 없는 영화, 등으로 말하는 영화 - <말투>(2020), 2022.07.27. 5. 사랑의 약속으로 하나가 되는 세계 - <우리의 낮과 밤>(2020), 2022.08.25. 6. 이 몸체의 주인을 찾습니다 - <매미>(2021), 2022.09.23. 7. 이것은 감자인가 아니면 고구마인가? - <감자>(2018), 2022.11.08. 8. 일상을 적시는 시간들 - <햇볕을 볼 시간>(2022), 2022.11.21. 9. 찢김의 고통을 극복할 날을 기다리며 - <자르고 붙이기>(2022), 2022.12.06.
[초이스]링링
* 이 글에는 < 링링 >의 결론이 포함돼 있습니다. 근래의 한국독립영화 가운데 보기 드문 기류의 영화가 있다. 지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윤다영 감독의 단편 <링링>(2019)이다. 소녀 진아( 김주아 )의 가족 내부에 음습해 있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공기는 예의주시해야 할 파상의 전조로 보인다. 기류의 변화는 집안 곳곳에 예시돼 있고 그 기류를 쫓다 보면 우리는 종국에 이르러 폭발하는 에너지의 실체와 마주할 것이다. 폭발 이후의 잔여물은 맥없고 허망하며 무력할 뿐 아니라 이상하게도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관성과 타성으로 아슬아슬하게 유지돼온 이성애 중심의 가족이 비록 껍데기뿐일지라도 이대로라도 유지되길 바랐던 진아의 바람은 힘을 잃고 말 것이다. 그리고 남은 가족은 각자의 몫으로 남은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떠안아야 한다. <링링>의 기상도, 이 태세 변화가 흥미롭다. <링링>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여름날. 뉴스에서는 곧 태풍이 몰아칠 거라 한다. 진아는 불안한 눈치다. 아빠는 엄마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말이면 홀로 낚시를 떠난다. 태풍이 온다고 하는 데도 아빠의 고집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진아의 불안은 곧이어 의심이 된다. ‘매주 낚시를 하러 간다는데 어째서 아빠의 낚싯대는 새것 같은가. 아빠의 수첩에 암호처럼 쓰여 있는 ‘링링’은 누구란 말인가.’ 의심은 저만의 방식으로 가속도가 붙더니 금세 몸집을 불린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진아는 같은 반 친구 나현(정한희)의 엄마와 담임이 바람났다는 얘길 들었다. 소녀들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의 바람이 어디 그곳에서만 불라는 법이 있겠는가. 게다가 결정적인 물증까지 확보했다. 댄서 ‘링링’이 있다는 주점의 명함이다. 아빠와 ‘링링.’ 이 불길한 조합을 쫓아 진아는 아빠의 뒤를 밟는다. 진아의 불안이 의심에서 확신으로 번지기까지 그 중심에는 아빠가 있다. <링링>에서 아빠의 존재, 즉 가족 내 성인 남성의 자리는 의뭉스럽고 수상쩍으며 불온한 방식으로 등장한다. 영화 초반, 진아는 둔탁한 소리에 잠에서 깬다. 아직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누군가(아빠)는 “뭐 하세요?”라는 진아의 놀란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진아의 방문을 닫고 나간다. 딸아이의 방을 찾은 아빠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퇴장이다. 진아의 경계 어린 시선과 수세적이고 어색한 말투 등에서 아빠의 방문이 진아로서는 꽤 당혹스러운 일이었으며 어찌 보면 성인 남성의 일방적인 난입처럼 보일 만하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진아가 발견하는 것 역시 아빠의 흔적이다. 낚시한다며 뒤로 빠져 있던 아빠가 자신만 없는 뒷모습의 가족사진을 찍은 뒤 그 사진을 액자에 넣어 진아 방에 걸고 나간 것이다. 가족과 함께하지 않는 아버지가 박제된 형식으로 가족주의와 자신의 존재를 환기하는 이 방식이 편할 리 없다. 이러한 아빠의 등장과 퇴장은 바람난 아빠라는 진아의 의심과 맞물리며 앞으로 전개될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이 영화의 은밀한 시선과 긴밀히 연동한다. 아빠만이 아니다. 진아를 초조하게 하는 건 활력을 잃은 가족 전반에 있다. “공기가 부족해.” 엄마가 내뱉던 이 말을 권태라고 다시 쓴다. 아빠에게 낚시가 있다면 엄마에게는 베란다와 화장실을 가득 채운 온갖 화초와 식물이 있다. 물고기와 식물로 가득한 집에서는 언제든 물비린내가 날 것이다. 그러니 진아가 했던 헛구역질은 불안하고 초조한 심리의 외적 반응이자 활기를 잃은 가족에 반하는 본능적이고 육체적인 저항이자 동시에 자기방어로 보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이 반응은 매스꺼움과 맞붙어 있는 혐오의 감정마저 서려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링링’은 그 여름을 관통하는 태풍의 이름. (제13호 태풍 ‘링링’이 오기 전 영화 <링링>이 먼저 왔다) 진아는 아빠가 아닌 ‘링링’에게 일격을 당한 것일까. 하지만 정작 제대로 된 한 방은 진아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온다. ‘링링’의 맹렬한 기세 속에서 아빠의 낚싯대는 무언가가 걸리기라도 한 듯 휘청댄다. 그 가운데서 굴하지 않고 우뚝 솟아 있는 것이 있다. 아빠의 그것. 일그러진 얼굴로 자위하며 절정을 향해 휘몰아치는 아빠는 비바람 속에서 맹렬히 자신의 희뿌연 정액을 흩뿌린다. 자연의 통제 불가능한 에너지와 오직 제 안의 뜨거운 것을 분출하려는 일념으로 서 있는 남자의 에너지가 마치 성교하듯 뒤섞인다. 에너지 대 에너지의 뒤섞임. 이 모든 걸 지켜보는 진아는 자신이 실체 없는 대상을 두고 그토록 불안해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동시에 아빠의 가장 내밀하고 은밀한 순간을 마주해야 하는 이중의 당혹 앞에 섰다. 발산된 에너지는 완벽히 소멸했다. 태풍은 지나갔고 아빠는 태풍 속에서 죽었다. 나현이 진아에게 “여자처럼 온순하게 지나가길 바라며 태풍에 여성의 이름을 붙여왔다”라고 하며 “너 같으면 조용히 넘어가겠냐?”고 하던 말을 떠올린다면, 링링과 아빠의 이상한 조응은 마치 링링이 여성을 둘러싼 오래된 신화를 깨부수려는 강력하고 파괴적인 복수와 저항의 기운으로 아빠를 휘감고 산화한 듯 보일 정도다. 마지막 장면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같이 얘기돼야 한다. 진아가 아빠의 유골함을 놓치는 바람에 재가 된 아빠가 바람에 흩날린다. 이 미끄러짐을 유발한 건 바람에 나부끼는 진아의 교복 치맛단을 노골적으로 바라보던 남성들의 시선에 있다. 진아를 다시금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드는 이 무자비한 시선 앞에서 진아는 재가 된 아빠를 놓치는 대신 치맛단을 매만진다. 그러니 진아의 눈물은 아주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아빠가 죽었다는 데서 오는 슬픔보다도 은밀하고 노골적인 남성의 사정과 시선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데서 오는 불안이 진아에게 더 큰 파상의 흔적으로 남는 게 아닐까. 링링은 그렇게 파괴적으로 갔다지만, 진아는 여기 남아 계속 살아가야 하므로. 아직 멈추지 않은 진아의 눈물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이다.
[월간스크린]무림 학원 전설: <화산고> (김태균, 2001)
2001년 | 싸이더스 감독: 김태균 | 원작: 서동헌 | 각본: 서동헌 정안철 허균 박헌수 김태균 | 제작: 차승재 | 촬영: 최영택 | 미술: 장근영 김경희 | 음악: 박영 | 특수효과: 정도안 | 무술감독: 이응준 | 시각효과: 장성호 CAST 김경수: 장혁 | 유채이: 신민아 | 장량: 김수로 | 송학림: 권상우 | 소요선: 공효진 | 마방진: 허준호 | 교감: 변희봉 | 요마: 차시은 2000년대 초 한국영화의 화두 중 하나는 컴퓨터 그래픽이었습니다. 그 역사는 채 10년도 되지 않았지만 적잖은 기술적 축적이 있었고, 테크놀로지가 제대로 구현될 수 있는 콘텐츠만 만나면 폭발력을 지닐 듯했습니다. < 화산고 >(2001, 김태균)는 그 첫 시도입니다. 이후 < 해운대 >(2009, 윤제균 )이나 최근 < 신과 함께 > 시리즈(2018~2019, 김용화 ) 등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블록버스터의 시작은 <화산고>였던 셈이죠. 무협 액션과 컴퓨터 그래픽을 결합한 이 영화는 어쩌면 반 걸음 정도는 앞서 간 실험이었는데요, 개봉 당시엔 기대만큼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월드 마켓에서 마니아 층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현장 공개는 6월 말, 어느 여름 밤에 이뤄졌습니다. 장소는 전라남도 고흥군에 있는 ‘도양’이라는 곳이었는데요, 지금은 도로 사정이 나아져서 서울에서 5시간 정도 걸리지만 당시엔 장장 7시간을 가야 했던 곳입니다. 소록도로 가는 배가 떠나는 부두 근처에 있는 어느 폐교에 세워진 야외 세트는 장관이었는데요, 전국을 뒤지며 1,000개에 달하는 폐교를 둘러본 끝에 헌팅한 장소입니다. 운동장 양 끝엔 거대한 조명탑이 있고, 그곳엔 ‘火山’ ‘武’ 같은 한자가 새겨진 붉은 휘장이 걸려 있습니다. 살수차는 지하수를 끌어 올려 폭우를 만들어내고, 카메라는 크레인에 올라가 있었으며, 무술 팀은 끊임없이 와이어를 잡아당기던 분주한 밤 현장이었습니다. 이날 촬영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수학 교사 마방진(허준호)과 주인공 경수(장혁)의 대결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와이어 액션이었는데요, 마방진의 가격에 경수가 하늘로 치솟는 장면 때문이었죠. 허리에 와이어를 매단 경수의 몸이 한 순간에 갑자기 솟구치는 장면을 위해, 카메라 밖에선 무술 팀(이른바 ‘땡김이’)이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와이어를 잡아 당깁니다. 10번 넘는 테이크 만에 OK 사인이 났는데요, 카메라 앵글을 바꿔서 그 장면을 반복합니다. 그때마다 장혁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져야 했고요. 마치 <매트릭스>의 한 장면 같습니다. 12개의 살수구에서 물줄기가 쏟아지면 ‘우중 액션’이 시작됩니다. 어릴 적 우연하게 뇌전벽력을 맞아 극강투기를 가지게 된 경수. 그는 여덟 번 퇴학을 맞고 아홉 번째 전학으로 화산고에 옵니다. 영화 < 짱 >(1998, 양윤호 ), 드라마 <학교>(1999)로 고등학생 이미지가 강했던 장혁에게 <화산고>는 어쩌면 운명적인 캐릭터였을지도 모릅니다. 마방진 역의 허준호. ‘빌런’ 캐릭터로 허준호만큼 다크 포스를 내뿜는 배우도 많지 않을 겁니다. <화산고>에서도 경수를 압도하는 엄청난 힘을 보여줍니다. 장혁은 경수를 “바보스럽지만 바보는 아닌” 캐릭터로 설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느낌을 만들어내는 게 정말 힘들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11개월 동안 이어진 촬영은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신인급 배우에게 결코 쉽지 않았는데요, 촬영이 끝났을 땐 마치 학교를 졸업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합니다. <화산고> 현장에서 와이어는 장혁에겐 마치 신체의 일부와도 같았습니다. 거의 항상 몸에 달려 있었으니까요. 거친 액션을 소화하느라 온몸에 멍이 들었고, 일곱 번 기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중엔 너무 익숙해져서, 와이어에 매달린 상태에서 자장면을 먹을 정도가 되었다네요. 1997년 어느 공모전에 출품된 시나리오가 하나 있었습니다. <화산고>였죠. 당선되진 않았지만 그 시나리오를 재밌게 읽었던 김태균 감독은 원작자 서동헌에게 영화화 제안을 했는데요, 처음엔 직접 연출할 생각은 아니었다고 하네요. 이후 < 키스할까요? >(1998)을 마친 후 불현듯 <화산고> 시나리오가 떠올라 친구인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에게 제안했고, 2년에 걸쳐 <화산고>를 만들게 됩니다. 촬영에 11개월, 후반작업에 6개월. 당시 한국영화로선 파격적인 제작 일정이었죠. <화산고>의 클라이맥스 액션 신은 마치 서부극을 연상시킵니다. 김태균 감독은 이 대목에 대해 “총과 총의 대결이 아니라 물 싸움으로 변형”시켰다고 설명합니다. <화산고>는 제작 노하우에서 그 어떤 참고 자료도 없었던 영화입니다. 의도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와이어 액션을 위해 홍콩 액션 팀을 불러올 수도 있었지만, 컴퓨터 그래픽을 해외 업체에 맡길 수도 있었지만, 모두 국내 인력을 통해 해결했습니다. 그래야 뭔가 쌓인다는 판단 때문이었는데요, 그러다 보니 제작비와 일정이 늘어났죠. “아무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영화 작업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무지막지한 괴로움을 겪었어요. 과연 이 영화를 끝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했죠.” 김태균 감독의 말입니다. 김태균 감독은 <화산고>를 “근사함과 망가짐이 공존하는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아주 촌스러운 구석도 있고, 만화적인 톤도 있지만, 근사한 비주얼과 스펙터클이 결합된 영화. 그런 면에서 <화산고>는 거대하면서도 무모하고 한편으론 용기 있는 시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