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꿈
- 감독
- 이와
- 제작년도
- 2023
- 출연
- 한예리, 랄리 아이과데, 오민애
좋아하는 영화감독의 명단이 궁금합니다. 이건 영화감독을 만났을 때 꺼내 들기 가장 어려운 질문 중의 하나이다. 이 질문 속에는 취향의 지평을 지나쳐가는 질문 안의 질문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보, 지식, 체험, 감흥, (미적인, 혹은 정치적인, 때로 은밀하게 사적인) 판단, 무엇보다도 수용의 태도. 영화비평가들은 이런 질문을 받아들면 대부분 약간 젠체하면서 새침하고 교활하게 균형을 맞춰가면서 개인적인 척하는 공식적인 대답을 한다. 그런데 감독들은 이 질문 앞에서 이제까지의 자신의 작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그들의 영화를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게 종종 모순을 일으키거나 혹은 일시적인 행동처럼 보이거나 아니면 때로 심술궂어 보이는 것만 같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명단을 꺼내 들면서 개인적인 대답을 한다. 잉그마르 베르이만은 <007 포 유어 아이즈 온리>가 흥미롭다고 대답했다. 홍상수 는 <젊은 날의 링컨>, <이른 여름>, <저항>, <라딸랑뜨>, (등등과 함께) 열 편중의 하나로 뤼미에르 형제의 <항구를 떠나는 배>를 “떠올리는 순간이 좋다”고 대답했다. 봉준호 는 어떤 경우에도 <큐어>과 <조디악>을 빼놓는 법이 없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1931년 판 오리지널 <프랑켄슈타인>을 포함시켰다. 가이 매딘은 (고레-에다의) <애프터 라이프>를 포함시켰다. 몬테 헬만은 열 편 중의 하나로 장 이모우의 <연인>을 뽑아 들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코스타-가브라스의 <Z>를 넣었다. 이런 명단은 끝이 없다. 물론 여기서 명단의 우열은 아무 의미가 없다. 임권택 감독님에게 망설이던 끝에 같은 질문을 했다. “나는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법이 없어요. 내 영화도 만들고 나면 다시 보지 않아요. 그런데 단 한 편, 펠리니의 <길>은 두 번을 보았어요. 그게 그렇게 쓸쓸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마음에 남는 거요” 그러면 어떤 영화감독들을 좋아하십니까? “그때는 영화를 볼 데가 극장밖에 없었으니까, 텔레비전이 나왔을 때는 내가 영화 찍으러 다니느라고 정신이 없을 때였으니까, 존 포드, 빌리 와일더, 윌리엄 와일러, 그렇게 세 명이지, 제일 싫어했던 이름은 힛치콕이지, 그 칼부림 하는 영화를 한 번 보고는 다시는 볼 생각을 안 했으니까” 임권택 감독님은 <사이코>를 말하면서 (비유법이 아니라 정말로) 몸서리를 쳤다. 우선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임권택 세대는 <카비리아의 밤>이 마지막 펠리니 영화였다. 임권택은 <달콤한 생활>부터 펠리니 영화를 보지 못했다. 만일 1963년에 임권택이 <8 1/2>을 보았다면 그 ‘이후’의 영화에서 어떤 영향을 볼 수 있었을까, 라고 상상해보고 싶어진다. (임권택 감독님은 아직도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이 상상은 단순하게 귀결되지 않을 것이다. 영향이라는 불안.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의 응답이다. 하지만 동시에 거기에는 투쟁의 긍정과 긍정의 투쟁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공식적인 영화사가 개인적인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사이에는 그 무대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거부와 저항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하나의 설명을 덧붙이고 싶다. 충무로의 첫 번째 세대들, 유현목 , 김기영 , 신상옥 , 김수용 은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에 완전히 동의하였다. 그러나 이상할 정도로 임권택은 < 자전거 도둑 >이나 < 무방비도시 >에 거의 영향 받지 않았다. 내가 이 영화 제목들을 꺼내 들었을 때 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대답은 무미건조하게 “좋은 영화들이지요”라고 말한 게 전부이다. 임권택을 리얼리즘 영화의 카테고리에 넣고 싶어 하는 비평들은 이 취향의 명단 앞에서 머뭇거릴 것이다. . <아일랜드의 연풍>(존 포드, 1952) 이 명단을 염두에 두고 읽어나가기 바란다. 임권택의 영화를 차례로 보다가 세 편의 영화 앞에서 잠시 멈추게 될 것이다. 하나는 < 남자는 안팔려 >이고 다른 하나는 <바람같은 사나이>이고, 마지막 하나는 < 30년만의 대결 >이다. 아쉽지만 <남자는 안팔려>는 프린트가 유실되어 우리가 볼 수 없다. 나는 이미 < 바람 같은 사나이 >가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각색한) 존 스타제스의 <황야의 7형제>를 각색한 영화라는 것을 이미 설명했다. 임권택은 수없이 많은 원작소설을 각색했고, 텔레비전 드라마를 각색했고, 라디오 드라마를 각색했다. 그리고 세 편의 할리우드 영화를 각색했다. <남자는 안팔려>는 빌리 와일더의 <뜨거운 것이 좋아>를 변주한 리메이크 영화이다. 그리고 <30년만의 대결>은 존 포드의 < 아일랜드의 연풍 >(지금은 <말 없는 사나이>라는 원제(The Quite Man)로 잘 알려졌지만 여기서는 국내 개봉제목으로 쓰겠다)의 리메이크이다. 먼저 첫인상을 고백해야겠다. <30년만의 대결>을 처음 보기 전까지 누구도 내게 이 영화가 <아일랜드의 연풍>의 리메이크라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는 무방비 상태였다. 어느 장면부터 처음 보는 이 영화를 어디선가 이미 보았다는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최무룡과 박노식이 김지미를 사이에 두고 동네에서 주먹싸움을 시작할 때 누구라도 <아일랜드의 연풍>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임권택 감독님에게 혹시 이 영화가 존 포드의 <아일랜드의 연풍>을 다시 한 번, 이라고 말을 꺼내자마자 그거를 리메이크 한 거요, 라고 바로 말을 이어받으면서 그 영화를 정말 재미있게 보았거든, 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제17 포로수용소>와 그 영화 두 편이 제일 재미있게 본 영화요” 1955년 11월 15일에 단성사에서 개봉한 이 영화를 임권택은 (아마도) 연출부를 하면서 보았(을 것이)다. 그런 다음 <30년만의 대결>을 제작할 때 누구도 <아일랜드의 연풍>을 다시 꺼내 들어 참고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는 아직 비디오가 발명되지 않았으며, 한국에는 시네마테크가 없었다. 그들은 오로지 기억에 의존해서 작업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난처하게도 자막에 각본 송장배, 각색 박남주라고 되어있다. 누군가 기억을 더듬으며 영화를 제작하기 위한 현장용 각본을 썼겠지만, 각색은 이 과정에서 무슨 역할을 한 것일까. 왜 어디에도 원작을 밝히지 않은 것일까. 그때 한국은 국제 저작권협회에 가입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원하면 비틀즈의 곡도 사운드트랙으로 사용하였으며, 충무로 녹음실에서는 음반 라이브러리에 보관된 음반을 자유롭게 꺼내 들어 자신의 영화에 사용하곤 했다. 하지만 저작권 여부의 진실은 이 글의 목표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말의 흥미로운 방점. 17년 전에 본 영화의 기억, 그리고 감흥. 무엇이 남고 무엇이 지워졌을까. 그런 다음 기억의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었던 <아일랜드의 연풍>은 어떤 영화였을까. 나는 여기서 존 포드의 <아일랜드의 연풍>에 대해서 쓰지는 않을 생각이다. ( 이 영화에 대해서는 이미 허문영이 ‘존 포드 이야기’ 연재에서 좋은 글을 썼다 .) 대신 임권택은 존 포드 영화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라는 오랜 질문에 질문해볼 생각이다. 나는 대답의 자리에 질문을 잘못 쓴 것이 아니라 두 번 질문이라고 썼다. 여기서 첫 번째 질문이 임권택의 ‘자리에서’ 해보는 것이라면 두 번째 질문은 임권택의 ‘자리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이다. 우선 1971년이라는 상황을 설명해야 할 것 같다. 그 해에 임권택은 일곱 편의 영화를 찍었다. < 요검 >,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 <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 >, < 둘째어머니 >, < 명동 삼국지 >, < 원한의 두 꼽추 >, 그리고 <30년만의 대결>. 이 영화들을 다른 방식으로 소개할 수도 있다. 무국적 무협영화 두 편, ‘다찌마와리’ 액션영화 네 편, 멜로드라마 한 편,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 한 편. 그저 뒤죽박죽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명단. 여기서는 어떤 일관성도 발견할 수 없다. 그 말은 한 감독으로서 말 그대로 주문을 받아서 찍어내듯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임권택의 고통스러운 시간. 그는 한 편의 영화를 만들고 다음 영화를 준비할 틈도 없이 그렇게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쩌면 자신이 가장 재미있게 보았다고 기억하는 영화를 떠올리면서 존경하는 존 포드의 영화를 만들었던 시간, 1971년이라는 참혹했던 그 해에 <30년만의 대결>을 만들었던 자리는 임권택의 잠시나마 즐거웠던 시간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고 가정해본다. 그리고 그것이 이 시기의 이상할 정도로 비참하고, 우울하고, 참담하고, 어둡고, 대부분 비극으로 끝나버린 영화들 속에서 드물게도 명랑하고 쾌활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계기였는지도 모른다. 한 가지 사실을 환기시키겠다. 임권택의 영화에서 이따금 유머를 간직한 장면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시종일관 로맨틱하고, 밝고, 명랑한 영화를 찾는 것은 거의 드문 일이다. 대규와 판수 옥희 먼저 <아일랜드의 연풍>과 <30년만의 대결>의 서사에서 인물들의 배치에 관한 차이를 설명하겠다. <아일랜드의 연풍>은 션 쏘튼이 기차를 타고 미국을 떠나 고향인 아일랜드의 (가상의 마을) 이니스프리에 정착하기 위해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중에 밝혀지기는 하지만 션 쏘튼은 권투시합에서 그만 상대방이 죽는 결과에 다시는 주먹을 사용하지 않기로 맹세한다. 운명처럼 션 쏘튼 이웃에 사는 메리(모린 오하라)에게 반하고 그녀에게 청혼을 한다. 그러나 메리의 오빠 레드 윌(빅터 맥라글렌)은 지참금을 내놓지 않는다. 션 쏘튼은 그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아일랜드 여자인 메리에게는 모든 것이 달린 자존심의 문제이다. 션 쏘튼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오빠 레드 윌에게 대결을 신청하고 온 마을로 이어지는 주먹 싸움의 장관이 펼쳐진다, 라고 썼지만 사실 5분 동안 이어지는 이 클라이맥스에서 정작 션 쏘튼과 오빠 레드 윌의 싸움 쇼트는 얼마 되지 않는다. 존 포드는 이 시퀀스를 구경꾼들과 이웃 사람들, 동네 주민들이 집단으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동선으로 연결하면서 역동적으로 만든다. 물론 디테일의 아름다움은 다른 데 있고, 존 포드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션 쏘튼과 메리 사이의 보기 드물게 성숙한 사랑의 감정선이다. 게다가 거의 천국처럼 색채 설계된 이니스프리의 테크니컬러는 <아일랜드의 연풍>을 존 포드의 가장 아름다운 영화중의 하나로 끌어올린다. <30년만의 대결>은 대규(최무룡)과 판수(박노식)이 박포장기를 두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표현을 빌리면) “죽마고우”지만 30년 전에 한 여자(김지미)를 동시에 사랑했고,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고향을 떠나갔다. 그런 옥희가 남편을 여의고 딸 지향과 함께 고향에 돌아온다. 대규는 상처를 하고 아들 웅(김희라)와 함께 목장을 하고 지내고, 판 수는 아내와 아들 민(윤양하)과 함께 양계장을 하며 지낸다. 이 마을의 두 명의 부자. 옥희가 돌아오자 두 사람은 다시 대결을 시작한다. 문제는 고향에서 농지 제방이 무너지면서 시작한다. 비만 오면 매번 물난리를 겪는 고향에 옥희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저수지를 만들 결심을 하지만 그건 큰돈이 드는 개간사업이다. 여차저차 한 우여곡절 끝에 옥희는 한 달 후까지 돈을 갚지 못하면 판수와 결혼하겠다는 약속어음을 쓰고 돈을 빌린다. 하지만 판수는 속임수를 쓰고 옥희는 결혼을 해야 하는 처지에 빠지자 마음에 끌리는 대규와 도망칠 생각을 한다. 떠나는 그들 앞에 판수의 아들이 나타나 그래도 이건 아버지에게 이야기는 해야 하지 않냐고 가로막는다. 대규는 교회에서 결혼식을 기다리는 판수 앞에 나타나 옥희를 앞에 두고 주먹 대결을 벌인다. 밤이 올 때까지 다투던 두 사람은 대폿집에서 막걸리를 앞에 두고 마지막 주먹을 주고받는다. 그런 다음 판수는 대규를 업고 옥희의 별장에 가서 내려놓은 다음 “나란 놈은 말야, 이제 마누라의 자장가가 그리워졌다구”라고 껄껄 웃으며 그들 곁을 떠난다. “나란 놈은 말야, 이제 마누라의 자장가가 그리워졌다구” <아일랜드의 연풍>은 션 쏘튼을 주인공으로 하여 메리와의 로맨스를 통해서 고향이라는 상상적 공동체를 배워나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론 여기서 공동체는 다소 복잡한 이데올로기적 봉쇄 속에 1952년 매카시 냉전 체제하의 미국에 대한 ‘어떤’ 진실을 불편하게 포함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존 웨인이라는 스타 기호는 하나의 부조리기 되어간다. (잘 알려진 대로 보수주의자이지만 극우파를 혐오했던) 존 포드는 그걸 충분히 의식하고 있으며, 또한 그걸 어떻게 다뤄야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나는 1955년 정창화의 연출부를 하던 임권택이 미국의 정치적 상황과 할리우드의 복잡한 네트워크와 그 안에 놓여진 해석들 사이의 상호경쟁적인 모순들을 들여다보면서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라고 <아일랜드의 연풍>을 이해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그때는 한국전쟁이 휴전한 지 채 삼년이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조셉 매카시의 ‘빨갱이 사냥’이라는 말은 오랫동안 한국사회에서 금지된 정치적 용어였다. 임권택이 <아일랜드의 연풍>의 이야기에 이끌린 행복은 특권화된 장소로서의 고향일 것이다. 아마, 아마 그럴 것이다. 그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고향 이야기를 반복해서 했다. 그때 그의 집은 지금 살고 있는 세계 바깥에 놓여있었다. 갈 수 없는 집. 그 집이 놓여있는 고향이라는 장소. 그때 임권택이 가정하는 그 고향은 아직 한국전쟁이 도착하지 않은 곳이다. 거기서 임권택이 유지하려는 역사적 거리는 아직 미학적으로 형식화되지 않았고 여전히 이데올로기적으로 긴장을 잃지 않은 상태로 불안하게 머물러 있었다. 션 쏘튼은 자기가 돌아가고 싶을 때 고향에 돌아왔고 그런 다음 거기서 사랑이라는 시련을 견디면서 받아들여진다. 임권택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존 포드는 션 쏘튼과 함께 미국을 등지고 고향에 돌아가지만 임권택은 옥희라는 여자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 시작한다. 우리는 옥희가 왜 대규와 판수 두 남자를 외면하고 다른 남자를 선택한 다음 고향을 떠나갔는지 끝까지 알지 못한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어디에서도 옥희가 자신과 사별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볼 수 없다. 심지어 옥희의 딸조차 아버지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옥희는 고향에 돌아와서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단 한 순간도 더듬지 않는다. 차라리 잠시 고향에 여행 온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아니, 그렇다 할지라도 옥희는 고향의 목가적 풍경을 조금도 즐기지 않는다. 옥희를 동네 사람들은 설씨네 과수원집 딸이라고 부른다. 옥희는 단 한 번도 과수원을 방문하지 않는다. 정말 고향에 과수원이 있기는 한 것일까. <30년만의 대결>을 보면서 내가 가장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대규와 달아나기로 결심한 장면을 제외하면) 옥희가 외부에 전혀 외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선의를 가장하여 다시 떠날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저수지라는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공사. 저수지는 혹시 매거핀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이 영화는 이상할정도로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여기서 약간 용기를 내서 인용하고 싶다. “이 방법을 적용하기 위해 첫 걸음을 내디디면 꿈 전체가 아니라 꿈 내용의 일부에만 주의를 기울여도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자에게 꿈과 관련하여 무슨 생각이 떠오르느냐고 물어보면 대개 정신적으로 아무 것도 포착하지 못한다. 그러나 꿈을 여러 부분으로 분할시켜 제시하면 환자는 각 꿈-부분의 배후 사고라고 부를 수 있는 일련의 생각들을 떠올린다. (중략) 내 방법은 전체적 해석이 아니라 부분적 해석이다.” (프로이트, <꿈의 해석>, 김인순 옮김) 물론 임권택을 환자라고 가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태를 추상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나는 판수의 마지막 대사에서 어떤 입구를 찾은 것만 같았다. “...(중략) 자장가가 그리워졌다구” 자장가. 잠들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 요점은 <30년만의 대결>을 일종의 백일몽처럼 가정한 다음 그 안으로 들어갈 때 전체와 만나는 대신 부분적으로 분할시켜 이 이상할 정도로 즐거운 영화 내부에서 난처하게 모순을 불러일으키는 대목들만을 향해서 질문한다면 우리는 질문 안의 질문과 대면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무대를 먼저 돌아보자. 이 마을에는 두 명의 부자가 있다. 한 명은 판수이고, 다른 한 명은 대규이다. 한 명은 양계장을 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목장을 하고 있다. 영화는 판수의 집과 대규의 집, 양계장과 목장을 오간다. 이 마을 사람들의 가장 큰 걱정은 우기가 다가오고 장마가 지면 제방이 무너져 농사를 망치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는 단 한 장면도 논밭을 보여준 적이 없다. 더 이상한 것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마을 사람들 중에서 양계장이나 목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볼 수 없다. 양계장이나 목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과 한 눈에 구별되는 복장을 하고 있다. 그래서 분주하게 양계장과 목장을 오가는 마을 사람들은 마치 서로 다른 고장에 사는 것처럼 겹치지 않는다. 양계장과 목장, 그리고 농사. 물론 그들은 하나의 공간에서 공존할 수 있다. 하지만 공존의 양식을 우리는 끝내 보지 못한다. <아일랜드의 연풍>에서의 이니스프리가 서로 이질적인 요소들이 매일 매일의 일상의 축제처럼 함께 어우러지는 천국이라면 <30년만의 대결>의 고향은 (끝내 지명이 나오지 않는다) 둘로 분리된 생산양식이 공존하는 가운데 현재의 토대가 보이지 않는 (니코 풀란챠스의 표현을 빌려) 비-장소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일종의 신기루. 임권택의 고향에는 무언가 어긋난 질서가 있다. 옥희는 왜 돌아왔는가. 혹시 이 어긋난 질서를 교정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얼핏 보기에는 매거핀처럼 보이는 저수지가 사실은 가장 강력한 교정수단인 것은 아닐까. 이때 이 고향이 하나로 수렴되지 않고 양쪽으로 찢어져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판수와 대규, 양계장과 목장을 단순히 두 개의 힘이 대립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가 과거에로 되돌아가고 있다면 다른 하나는 미래를 약속하는 것처럼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판수는 영화 내내 한복을 입고 동네를 돌아다니고 (서울에서 온) 옥희를 만난다. 그의 집은 전통적인 한옥의 구조를 갖추었고 방안에는 오래된 자개장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그의 아내도 부부싸움을 하고 집을 나갈 때까지 내내 한복을 입고 있으며, 아들 민은 가까스로 농촌을 벗어난 것 같은 면바지와 셔츠를 입고 다닌다. (지금의 우리들이 볼 때에는 다소 기괴하게도 민의 의상은 그때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새마을 지도자처럼 보인다) 반면 대규는 마치 도시생활을 하다 돌아온 것처럼 청바지를 입고 때로는 선글라스도 쓰고 다닌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아무도 청바지를 입은 사람을 볼 수 없다. 청바지와 선글라스는 부의 상징이 아니다. 대규는 양옥의 양식으로 지어진 집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아들 웅은 가죽 바지와 재킷을 입고 오토바이를 몰고 다닌다. 오토바이는 이상할 정도로 이 농촌의 풍경과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시끄러운 오토바이 모터 소리는 등장할 때마다 목가적인 풍경의 고요함을 깨트리곤 한다. 대규가 옥희와 함께 고향에서 달아나기 위해 머플러를 하고 댄디한 감각의 재킷을 입고 나타난 모습은 판수에게서 상상하기 힘든 의상이다. 그 둘은 어느 쪽도 고향에 긍정적인 가치를 제시하지 못한다. 판수는 과도할 정도로 고리타분하고 회고적인 과거로 돌아서고 대규는 무언가 어색하고 종종 불협화음을 불러일으키는 미래가 지나치게 서둘러 도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그 둘 사이에는 이상한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구두쇠라는 사실이다. 그건 단순히 자신의 재산에 대해서 과도하리만큼 집착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 둘은 ‘충분히’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여전히’ 빈곤하다고 여긴다. 충분히 부자인데도 여전히 빈곤한 것은 자신의 재산에 채워야 할 공백을 셈에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공백은 재산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구두쇠는 그 불가능성을 재산의 물신성으로 환원하기 시작한다. 억압과 부인 사이의 도착적 관계. 신경증적 불안과 현실적 불안이 페티시즘을 매개로 결합한다. 이때 옥희는 그 간극 사이에 끼어들어서 그 물신성을 무효로 만든다. 여기까지는 단순하다. 하지만, 하지만 당신은 이걸 도식적으로 읽으면 안 된다. 물론 이 설정이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 장면의 재료들이 반대로 우리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어렵지 않게 대립의 상황에로 데려갈 때 이 백일몽이 의도하는 바를 명백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옛 것과 새 것. 지나가고 있는 시간과 다가오는 시간. 그 간극을 연결 짓기 위해 옥희가 나타났다. 만일 옥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고향의 간극은 그냥 찢어져나갔을 지도 모른다. 여기서 이 두 개의 힘이 서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임권택인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대규와 판수가 장기를 두고 있고 마을 사람들이 그 주변에 몰려들었다. 판수는 자기가 이겼다고 장 받아라, 라고 외치지만 대규는 멍이야, 라고 하면서 비기는 장기를 만든다. 비김수를 쓰면 한 쪽이 판을 엎거나 포기를 하(거나 양보를 하)기 전에는 밤을 새워도 끝나지 않는 법이다. 장기판을 덮고 판수는 대규에게 그러면 팔씨름으로 승부를 내자고 한다. 이것도 요지부동 박빙의 승부로 이어진다. 이 균형을 깨는 건 누군가 달려와 서울 간 설씨 과수원네 딸이 돌아왔어요, 라는 외침이다. <30년만의 대결>은 정확하게 거기서 시작한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두 개의 힘의 긴장관계. 그 사이에 갑자기 끼어들어온 옥희. 나는 이걸 다소 아이러니하게 정식화시키고 싶다. 옥희는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안에 있었는데 바깥에서 나타난 것이다. 임권택은 여기에 완전히 매혹되었음에 틀림없다. 여기서 옥희는 아무 것도 상징하지 않는다. 그렇게 다가가면 <30년만의 대결>이 담고 있는 즐거운 기분을 끝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여기서 눈 감은 척 지나간 가장 이상한 설정을 건드릴 것이다. 질문 안의 질문. 대규와 판수를 비교하면서 한 쪽은 전통, 다른 한 쪽은 근대, 라는 식으로 도식을 세웠다. 그런데 우리의 가설을 전복시키기라도 하듯 서울에서 내려 온 옥희는 막 도착하자마자 방문한 대규와 판수를 한복을 입고 맞이한다. 마치 옥희가 고향에서 그들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 다음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그녀에게서 서울의 어떤 흔적도 볼 수 없다. 옥희는 줄곧 한복을 입고 생활한다. 심지어 자신의 생일잔치를 하는 자리에서도 촛불을 켠 케이크를 가져다놓고 서양의 생일 축하곡을 부르면서 한복을 입고 앉아있는 어색한 장면을 연출한다. (하지만 이 의상의 일관성이 계산된 연출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옥희는 저수지 공사를 위해서 과수원을 내놓고, 그런데 그걸 사려던 부동산 사업가가 내놓은 약속어음이 부도났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갑자기 도회적인 복장을 하고 문 앞에 나타난다. 그런 다음 옥희는 다시 한복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므로 이 장면을 예외로 하고...) 옥희가 한복을 벗어던지는 건 대규와 함께 고향을 떠나는 장면이 전부이다. 이건 무얼 말하는 것일까. 이 영화가 1971년의 영화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고 싶다. 나는 여기서 에드아루트 푹스를 떠올리고 있는 중이다. 풍속으로서의 역사. 사생활로서의 유물론. 일상생활의 사소한 디테일들 사이의 변증법. 옥희는 서울에서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그때 서울에서 가시적인 풍경 앞에 형상화된 여성성은 두 종류의 여자로 나뉘었다. 사회생활을 하는 여자들. 가정생활을 하는 여자들. 물론 실제의 한국 사회는 그때 청계천과 구로공단에서 ‘공순이’들을 착취하기 시작했고, 유한 부르주아 계급의 상징이었던 ‘여대생’의 이미지를 생산하고 있었고, 정반대의 자리에서 밤의 길거리에서 타락한 요부의 에로틱한 이미지를 도시화로 옮겨놓은 성매매 산업이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풍경 저 너머에 매우 제한적이거나 그림자 아래 숨겨져 있었다. 나는 지금 1971년의 풍경을 말하는 중이다. 이때 사회생활을 하는 여자들은 (경험해보지도 않은) 1950년대 미국 산업사회의 ‘오피스 레이디’의 복장을 마치 자신들의 교복처럼 입었다. 근대의 레디메이드. 혹은 근대화 식민지로서의 지체된 데자뷔.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한국 사회에서는 OL(Office Lady)이라고 불렀다. 반대로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여성들은 자신이 직장에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신 설명하기라도 하듯 하나의 표시로서 전통적인 한복을 입었다. 나는 근대의 물결, 산업의 세계, 자본의 현장에 있지 않답니다, 라는 걸 의미하는 사회적인 모드의 양식. 복식의 수사학은 (바르뜨가 잘 설명한 것처럼) 은유가 빈곤한 개인적인 시학이자 (부르디외가 설명한 것처럼) 구별의 사회학이기도 하다. 1971년의 여성들은 아직 미혼이었을 때는 한복을 명절에만 입다가 결혼을 하면 마치 그것이 하나의 의무적인 의상인 것처럼 일상에서 입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도시에서 생활하는 여성이 한복을 입은 것은 이중적인 기호가 되었다. 하나는 나는 직장을 다니지 않습니다, 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남편이 있습니다, 라는 이중의 기호. 그때 한복에는 유교적인 가치의 맥락 속에서 전통적인 의미가 더해졌다. 나는 집에서 가정을 지키는 정숙한 아내입니다, 라는 하나의 모델에 자기를 기입하기. 옥희가 고향에 돌아와 대규와 판수 앞에서 전시하는 복장은 정확하게 그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에 하나의 의미를 더하고 싶다. 옥희의 한복에서 결핍된 것은 무엇인가. 그건 물론 남편의 자리이다. (...그러므로) 옥희가 고향에 돌아와 전시하는 복장은 나는 정숙한 아내가 되고 싶습니다, 라고도 읽힐 수 있다. 누구에게? 대규와 판수에게. 돌아온 옥희에게 대규와 판수는 단 한 마디도 옥희의 전 남편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는다. 옥희는 단 한 마디도 전 남편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마치 그것이 금지의 단어이기라도 한 것처럼. 여기에는 어떤 애도도 없다. 서울을 괄호 친 채 추억과 향수만이 이들을 감싼다. 잃어버린 시간, 되찾은 시간. 대규와 웅 부자 판수와 민 부자 옥희와 지향 모녀 세 번째 이상한 설정. 대규와 판수, 그리고 옥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각자 한 명의 자식이 있다.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를 물려받았다기보다는 마치 삶 자체를 ‘카피’한 것처럼 보인다. 아들은 아버지와 대결할 의사가 조금도 없다. 그건 대규의 아들 웅이나 판수의 아들 민 두 사람 모두 동일하다. (아버지가 바람이 나자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난 다음 민이 잠시 판수에게 저항하지만 그건 잠깐 동안 불평을 늘어놓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들은 마치 얌전하게 지내기만 하면 아버지가 재산을 물려주기로 약속한 것처럼 순종적일 뿐만 아니라 종종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설명적으로 반복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무엇보다 서사의 전반부에서 우스꽝스러운 부조리를 연출하는 것은 민과 웅이 옥희 딸 지향을 보자마자 경쟁적으로 구애를 할 때이다. 그들은 아버지 세대의 실패에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 것처럼 다시 한번 반복한다. 이때 민과 웅은 그들의 아버지들이 겪지 못한 똑같은 딜레마에 동시에 빠진다. 그들은 한 눈에 자신의 아버지 대규와 판수가 옥희와 재혼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다. 그렇게 되면 새 어머니 옥희를 모시는 순간 지향을 상대방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들을 못 견디게 만든다. 아버지의 이득은 자신의 상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차라리 아버지의 상실을 기대하면서 상대방의 아버지의 이득을 기대하게 된다. 말하자면 두 명의 아들은 두 명의 아버지의 이해관계와 동일한 상호 모순의 계산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아일랜드의 연풍>에는 없는 구도이다. 물론 이 문제는 심각하게 진행된다기보다 서사 전체에서 가벼운 기분전환에 가깝다. 갈등은 간단하게 해결된다. 지향은 그녀의 어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뉴욕에 있는 애인이 갈등의 과정에서 적당한 순간에 나타나 민과 웅의 구애를 무효로 만든다. 지향은 약간의 미련도 없이 그들을 뒤로 하고 떠난다. 그런 다음 지향은 애인과 함께 영화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그런데 잠시만 멈춰보자. 지향은 분명히 자신의 어머니가 저수지 공사를 위해 과수원을 내놓았고 그 과정에서 부도가 난 (거짓) 약속어음 때문에 곤궁에 처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녀는 어머니 곁을 미련 없이 떠난다. 단순한 갈등 속에 포함된 이해하기 힘든 서사 내부의 인과관계 사이의 불연속성들. 하지만 갈등이 단순하다고 해서 그것이 포함하는 의미마저 단순한 것은 아니다. 나는 먼저 갈등을 건드리고 난 다음 지향의 이상한 선택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등장할 때 갈등은 이미 예고된 것이다. 이때 갈등은 양쪽 방향으로 향한다. 하나는 아들의 자리에 무언가를 물려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아버지의 자리에서 하나의 시간이 끝나고 하나의 사건이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30년만의 대결>에서는 기이하게도 어떤 아들도 아버지와 대결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아버지도 아들을 위한 자리를 남겨놓지 않는다. 이건 무얼 말하는 것일까. <30년만의 대결>에는 시간이 없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임권택은 시간의 진공상태에 들어온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서 임권택에게 가장 즐거운 것은 고향에 돌아왔지만 거기서 어떤 시간도 경험하지 않는 것이다. 백일몽적인 환상. 시간 없는 장소. 과거에 머물러 있는 판수와 그를 둘러싼 미장센들. 아직 고향에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은 대규. 대규와 판수의 공존. 그 둘 사이의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균형의 긴장상태. 임권택이 여기서 즐기는 것은 고향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고립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30년만의 대결> 속에서의 고향은 고색창연하면서도 (마을사람들의 초가지붕으로 둘러싸인 동네) 이상하게 모던하고 (젖소들이 유유히 노니는 유럽풍의 목장), 종종 퇴행적이면서도 (단 한 대의 버스도 다니지 않는 외진 동네) 때로 급진적이다. (웅은 1960년대 도쿄의 시부야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모터사이클족(族)들과 어울린다) 이때 지향이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나는 이미 웅과 민이 그들의 아버지 대규와 판수의 카피라는 것을 설명했다. 웅과 민은 왜 동시에 지향에게 매혹된 것일까. 고향의 수상한 점. 지향(과 옥희 집에서 일하는 젊은 가정부)를 제외하고 이곳에서는 단 한 명도 젊은 여자를 볼 수 없다. 좀 우스꽝스러운 추론. 그러니 웅과 민이 어떤 여자와도 데이트를 하지 못하면서 지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웅과 민은 어느 쪽도 자신의 고향 애인을 외면하고 지향에게 이끌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외면하는 것은 아내와 이혼하기 위해 애쓰는 판수이다. (물론 대규는 이미 상처(喪妻)했기 때문에 구태여 그런 수고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나는 매혹의 요점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향은 여기서 조금도 매력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눈에 웅과 민을 사로잡은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건 지향 자신도 자기가 그걸 갖고 있다고 알지 못하는 그 어떤 힘, 그런데 웅과 민에게만 의미가 있는 그 어떤 것이라고 가정해볼 수 없을까. 혹시 웅과 민이 지향에게 끌리는 것은 그녀가 서울에서 왔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한 번 더 환기하는 1971년의 상황, 서울과 ‘시골’의 격차는 단지 지리적인 것 이상으로 근대의 지체된 시간적 간극의 물화이기도 했다. 나는 구태여 시골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곳은 지방 도시가 아니다. 하루 종일 기다려도 버스 한 대 볼 수 없는 마을. 대규는 옥희와 이 마을에서 도망치려할 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를 이용하는 대신 언덕을 걸어서 읍내까지 갈 생각이었다. 360도로 카메라가 둘러보아도(round_panning) 그저 산과 논밭과 언덕과 가로수가 소실점으로 수렴되는 길만이 보이는 동네. 여기에 갑자기 ‘출현한’ 지향은 웅과 민에게 단지 서울에서 온 것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기호 그 자체일 것이다. 그저 풍문으로 전하는 서울. 그때 웅과 민은 지향에게 서울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다가간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지향은 세 개의 가능성을 품고있는 매혹의 근거였던 것은 아닐까. 어떤 세 개의 가능성? 아버지를 떠날 수 있는 가능성. 집을 떠날 수 있는 가능성. 고향을 떠날 수 있는 가능성. <30년만의 대결>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이 모든 설정의 이면에는 고향을 떠날 수 있는 계기로 가득 넘쳐난다. <젊은 날의 링컨>(존 포드, 1939) 당황스러운 말이긴 하지만 <30년만의 대결>은 (미학적인 성취는 일단 제쳐둔 상태에서) <아일랜드의 연풍>에 가까이 가져다놓으면 놓을수록 마치 외면하는 것처럼 보이는 서사의 결들이 점점 더 완강해진다. 그래서 그 둘 사이에서 유사점이라곤 클라이맥스의 순간에 두 사내가 주먹으로 싸우면서 서로의 우정을 나누는 것이 전부가 아닐까, 라는 의문에 빠지게 된다. 나는 맨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고 싶다. 임권택은 존 포드에게서 무엇을 본 것일까. 임권택은 <아일랜드의 연풍>에서 무엇을 즐긴 것일까. 존 포드에 대한 많은 글들은 풍경에 대해서 언급한다. 나는 좀 생각이 다르다. 존 포드는 풍경이 아니라 장소의 영화를 찍고 있다. 그리고 그 장소를 성립시키기 위해 애를 쓰기 시작한다. 하나의 장소라는 문제. 그때 그 장소는 종종 무심하고 도무지 어찌해볼 수 없는 것처럼 거기 있지만 하여튼 거기서 등장인물들은 살아야하고, 견뎌야하고. 배워야하고, 기쁨을 찾아야 한다. 거기서 그들은 매번 결단을 내려야한다. 이 장소에 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가. 거기서 영화가 시작하고 거기서 영화가 끝난다. 존 포드는 영화에서 드라마가 행위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심리적인 장면을 연출한 적이 없다. 존 포드는 행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표현하긴 했지만 여기서 애쓰는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 자체가 너무 훌륭하기 때문에 종종 기적처럼 보인다. 하나의 과정. 존 포드의 방법론은 거기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론이 무엇보다 아름답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날의 링컨>은 성장의 장소를 찍고 있는 중이다. 정확하게 똑같은 의미에서 <아일랜드의 연풍>은 휴식의 장소로서의 이니스프리를 성립시키기 위해 애쓰는 영화이다. 여기서 임권택이 즐긴 것은 휴식이고, 그가 배운 것은 그것을 성립시켜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1971년의 임권택은 지친 몸을 이끌고 이 휴식의 장소에 와서 허송세월을 보내버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막 영화에 도착했던 자신의 젊은 날의 순간에 잠시 머문다. <아일랜드의 연풍>을 보면서 잠시나마 누렸던 꿈결 같은 귀향의 시간. 아마도 그때 전라남도 장성은 아일랜드의 이니스프리만큼이나 먼 곳이었을 것이다. 갈 수 없는 곳.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장성과 한국전쟁 이후의 장성은 얼마나 다른 곳이었을까. 소설 <태백산맥>에서 빨치산들 토벌의 무대에 되었던 곳 중의 하나. 그 피비린내 나는 역사. 물론 비평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30년만의 대결>을 말하면서 이 영화의 씬들 사이에 묻어나는 정감을 완전히 치워버리면 우리는 해야 할 말이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다. 이 영화는 개념적인 영화가 아니다. 임권택은 열렬한 시네필이 아니다. 아직은 <30년만의 대결>이 성숙하지 않은 임권택을 보여주고 있지만 여기서 옥희가 돌아온 고향이 임권택이 그 자신의 고향에 이끌리기 시작하는 증후라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나는 임권택의 영화(들)에서 은밀한 고향의 선을 탐색해왔다. 그는 아주 느리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30년만의 대결>은 < 바람 같은 사나이 >와 < 아내들의 행진 > 사이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선을 이어주는 영화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단순하게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다른 한 편으로 물 쓰듯이 낭비해버렸지만 마음 한 구석에 존 포드라는 위대한 이름을 가슴에 품었던 젊은 날의 청춘에 대한 호소를 담은 그 자신만의 내밀한 예술의 세계가 있다. 영화라는 특수한 세계.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삶. 먹고 산다는 근거. 이 세계는 돈 밖에 모르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여튼 여기는 예술의 세계이다. 현실적인 세계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품어야하는 이 세계의 진정성에 대한 의지. 정창화의 연출부를 하면서 품어보았을 어떤 꿈. 틀림없이 수백 번도, 수천 번도 더 가져보았을 꿈. 임권택은 몇 차례이고 내게 말한 적이 있다. “미국영화를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저런 영화를 만들어야지, 이런 생각을 해보았죠, 그리고 그걸 버리면서 내 영화를 찾아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비로소 한 거지요” 아마 그것이 또 다른 하나의 선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하나의 선이 더 있을 것이다. 그건 자기 삶의 궁핍함에 대항하는 백일몽과도 같은 환상의 세계였을 것이다. 자신을 지키려는 노력. 몰래 숨어서라도 기쁨을 하여튼 유지하려는 안간힘. 프로이트의 가설. 그런데 마치 임권택은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적 조건을 더 나쁜 방식으로 재생산하는 것만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만들었다. 1971년의 영화들의 목록. 임권택은 고통과 비애로 가득 찬 세계를 그 자리에로 되돌아오듯이 반복해서 다루었다. 그의 주인공들은 비참했고(< 황야의 독수리 >), 더럽혀졌고(<둘째 어머니>), 종종 신체절단의 시련을 이겨내야 했으며(< 애꾸눈 박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원한의 두 꼽추>), 그런 다음 쫓겨나듯이 자기의 세계에서 퇴장해야만 했다.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 오랫동안 그의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실존적인 현실때문이 아니라 타락한 로맨스가 요구하는 규칙에 따라 그렇게 행동했다. <30년만의 대결>은 마치 거기에 반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상승하는 로맨틱한 감정에 모든 힘을 집중시킨다. 세 개의 선. 고향의 선. 예술의 선. 로맨스의 선. <30년만의 대결>이 내게 흥미로운 것은 이 세 개의 선이 완전히 서로 뒤엉켜버렸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연풍>의 이니스프리 처음의 처음 질문으로 되돌아가보자. 존 포드의 이니스프리와 임권택의 고향 사이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이니스프리는 에덴동산이지만 임권택의 고향은 애당초 가져본 적이 없는 에덴이라는 것이다. <30년만의 대결>에서 옥희는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교회를 찾아가 목사를 자신의 멘토처럼 여기면서 모든 것을 의논하지만 정작 목사는 여기서 가장 무능하고 어떤 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심지어 팔려가듯이 옥희가 판수와 결혼을 해야 할 때조차 속수무책으로 주례를 진행해야하는 입장에 놓이는데도 그걸 그저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이때 이 영화는 세상에 어떤 믿음도, 기대도, 신념도, 희망도 없음을 부지불식간에 내비친다. 다소 괴이하게도 임권택의 고향은 한 치의 용서도 없이 자본주의적인 거래의 양식 아래 규칙이 집행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협상도 없다. 계약을 맺으면 그것은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고향의 법칙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그 안에서 로맨스가 버틴다. <아일랜드의 연풍>에서 지참금을 줄 수 없다고 버티는 약혼녀 메리의 오빠 레드 윌과 주먹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30년만의 대결>은 아주 멀리 떨어져있다. 결혼식을 피해 도망치던 옥희와 대규 앞에 판수의 아들 민이 나타나서 가로 막았을 때 대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을 교회로 되돌아간다. 그런 다음 판수에게 목장 문서를 내민다. 그러자 판수는 그 문서를 불태워버린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판수는 여기서 자신에게 돈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다. 이 제스처는 정반대이다. 판수는 그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물론 ‘구두쇠’ 판수는 그 돈이 탐날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 돈을 받으면 판수는 대규와 싸움을 할 수 있는 명분을 잃게 될 것이다. 정확하게 그 돈은 거래이다. 그 돈을 거절함으로써 판수는 대규와 싸울 수 있는 권리를 사는 것이다. 이 로맨스는 거래로 시작해서 거래로 끝난다. 그러므로 대규는 이 권리를 산 판수에게 승리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우리는 이미 판수의 진정한 목표가 무엇인지 보았다. 집에서 ‘결혼 행진곡’을 틀어놓고 웨딩 마치 연습을 하는 판수를 보고 민이 녹음기를 집어던지면서 아버지는 집을 나간 어머니는 생각도 하지 않느냐, 라고 소리치고 나갈 때 혼자 남은 판수는 중얼거린다. “질 수가 없어, 질 수가 없어” 판수는 30년 동안 사랑한 옥희를 잊을 수가 없어, 포기할 수가 없어, 놓칠 수가 없어, 라고 말하지 않았다. 판수의 목표는 옥희와 결혼하는 것아 아니라 대규가 옥희와 결혼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규가 제공해야 할 대가는 옥희를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판수와의 이 싸움에서 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대규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규는 하루 종일 주먹 싸움 끝에 늦은 저녁 대폿집에서 막걸리 잔을 앞에 두고 판수의 주먹에 결국 나가떨어진다. 정말 대규는 쓰러진 것일까. 판수가 대규를 등에 업고 옥희에게 데려다 준 다음 호기롭게 떠나자 이게 그저 ‘한바탕 쇼’라는 듯이 슬쩍 눈을 뜨고 조용히 지켜보자는 신호를 장난스럽게 보낸다.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이것은 낮의 풍경이 아니라 어두컴컴하고 우울한 밤의 정경이다. 로맨스는 여기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존 포드를 존경하던 그 예술의 세계도 거의 희미해져서 잘 분별되지 않는다. 그리고 남은 것은 이제 판수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대규와 옥희가 고향을 떠나가는 일만 남았다. 이 마지막 장면은 둘 중 양자선택 속에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지 거의 알기 힘들다. <30년만의 대결>은 결국 판수를 아내에게 되돌려 보내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제 발로 돌아온 옥희가 어쩔 수없이 제 발로 다시 고향을 떠나야 하는 이야기인가. 이 명랑한 영화의 이면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계획과 목적을 향해서 부산하게 계산한 다음 비밀스러이 상대방을 이용하고 전유하려는 싸움이 펼쳐진다. 그걸 로맨스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임권택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의 영화에서 로맨스는 항상 근대에 밀려나가면서 애처롭게 뒤돌아보는 것이다. 임권택은 그걸 어디선가 보기는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더 이상 경험해볼 수 없는 것처럼 다룬다. 그러므로 나는 약간 대담하게 <30년만의 대결>을 정의 내려 보고 싶다. 이 영화는 조건의 영화이다. 어떤 조건? 자기 자신도 잘 알지 못했던 도약의 자리에로 가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영화. 그는 계속해서 질질 끌려가고 있는 것만 같은 이 과정을 어디서 끊을 수 있는 지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 < 잡초 >를 자기가 제작하고 연출하기 전의 일이다. 여기서는 그걸 영화 안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다. 미세한 변화들. 하지만 되풀이되는 실패들. 그러면서 어딘가에 기대서라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어 하는 장면들. 효과들은 잘 발휘되지 않고 있으며 무언가 의심만이 둘러싸고 어수선하게 활동하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한 변화를 감지하였다. 무엇보다도 이제까지 자기 영화로부터 낯설어지기 시작하는 임권택.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풍경의 쇼트들, 그 낯섦. 그보다 더 분명한 변화의 조짐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계속)
1930년대 만주 벌판을 무대로 항일 투쟁에 나선 독립투사들의 이야기에 만주에서 악명 높은 세 악당이 호출된다. 영화에서 한 번도 이름이 불리지 않는 정체불명의 도적( 장동휘 ), 독립군의 청부를 받은 철수( 남궁원 ), 일본군의 밀정으로 알려진 달건( 허장강 ). 그 어떤 신념도 신의도 없이 오직 자신의 이윤을 좇아 만주 벌판을 종횡무진하던 무법의 국외자들이 독립투사들의 명단이 숨겨져 있는 티베트 불상을 찾아 나선다. 이만희 감독의 1971년 작 < 쇠사슬을 끊어라 >는 만주 활극이라는 장르의 시효가 거의 끝난 시기에 등장하였다. 돌이켜보면 감독 자신의 황금기도 저물어갈 무렵이었다. 시효를 다한 장르를 붙잡고 2년 만에 귀환한 이만희는 전에 없이 낙관적이며 유쾌한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이만희 영화에 대한 나의 협소한 이해를 전제한 채 말하자면, 내게 <쇠사슬을 끊어라>는 이만희의 가장 재밌는 영화이자 (조금 특수한 의미에서) 그의 사적이며 급진적인 영화로 기억되었다. 대체로 < 쇠사슬을 끊어라 >의 재미는 순수한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하는 액션 활극이라는 점에서 기인되지만 사실 이 영화의 액션 설계는 그리 정교하지 않다. 대충 뚝딱뚝딱 이어붙인 듯 성기고 다소 무성의하기까지 한 액션 신들은 때론 의도치 않은 반응(가령 감탄 대신 웃음)을 불러오는 반면, 극적 국면에 맞추어 도적과 철수가 번갈아 가며 달건의 뺨을 후려치거나 귀와 코를 물어뜯는 식의 난장 같은 결투가 소소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게다가 가죽 재킷과 호피 무늬 코트, 붉은 스카프, 양복, 트렌치코트 등 국적과 시대뿐 아니라 계절조차 초월한 의상과 웨스턴 공간에 말과 마차는 물론 지프차, 오토바이, 심지어 스키까지 온갖 탈 것들이 등장하는 ‘무국적’적이고 무정부적인 설정들이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이룬다. 어쩌면 이만희 는, 당대 만주 활극에 따라붙던 조롱 섞인 비평적 수사인 ‘무국적’이라는 성격에 매혹되어 뒤늦게 이 장르에 몸을 실은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6, 70년대 이 땅에서는 불가능한 어떤 것을, 무국적의 상상적 공간에서 펼쳐 보일 가능성을, 만주 활극에서 찾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특정 시대나 국가에 귀속되지 않는 무정부주의적인 주인공들에게서 이만희의 어떤 꿈을 엿보았던 것만 같다. 내가 아는 이만희 의 영화들은 인공적인 공간 안에서 비극적 숙명을 맞이하는 인물들을 담은 깊은 우울과 도저한 체념의 산물이다. < 쇠사슬을 끊어라 >의 놀라움은 그런 이만희의 세계와 완전히 절연된 시공간이 안긴 인상과 이만희 특유의 존재론적 그늘이 말끔히 거둬진 명랑한 인물들에게서 왔다. 특히 세 주인공들이 압권이다. 김지운 의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08)이 많은 부분 차용한 것으로 알려진 이 영화에는 명백히 착한 놈은 아닌데 나쁜 놈이라기엔 사악함이 부족한, 그저 이상한 놈들만 셋이 나온다. 도적과 독립군의 청부업자와 일본 밀정 사이에서 도덕적 우열을 가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서로 배신을 일삼지만 결코 노하는 일이 없는 그들은 언뜻 우정을 쌓는 듯 보이지만 실은 언제나 적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국가나 민족, 정의나 신념이라는 개념 저 너머의 존재들이다. 당대 관객들이 이 이상한 인물들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들은 아무런 회의도 각성도 없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한국영화사에서 희귀한 존재들이다. 이만희는 자기 시대로부터 멀리, 이 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이 무정부주의적인 인물들을 성립시킨 후 기어이 그들을 긍정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치명적일 수 없다. 아무도 죽지 않고 심각한 부상을 입는 이도 없는 이 세계는 일제 강점기 항일 투쟁의 역사적 장으로서가 아니라 국경도 민족도 정체성도 없는 상상적 공간으로 구축되었다. 서사의 정교함이 떨어지는 대목들도 문제가 되진 않는다. 이를테면 서사적 절정인 불상을 찾는 과정은 납득할 만한 설정 없이 압축적으로 처리되고, 불상이 일본군의 손에 넘어간 즈음(영화의 중반) 서사는 종결되기를 억지스럽게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이만희 에게 중요한 것은 서사적 디테일이나 향방이 아니라 서사적 국면에 따른 인물들의 반응이었던 게 아닐까. 그렇기에 이 이야기의 큰 줄기는 뻔한데, 각 국면에 처한 인물들의 반응만은 우리의 예상대로 전개되는 법이 없다. 그리고 그 반응이 이 영화가 품고 있는 무정부주의적인 활력과 전복적인 쾌감의 요체가 된다. 결말에 이르는 과정도 그렇다. 독립군과 일본군의 격렬한 전투가 펼쳐지는 와중에 (예상치 못하게) 그들은 “나완 상관없는 일”이니 “몸이나 녹이자”며 전장 한가운데 캠핑이라도 나온 듯 모닥불을 피워 마주 앉는다. 이 터무니없이 한가하고 낙관적인 장면을 거쳐 (예상대로) 마침내 독립군의 손에 불상을 건네고 나면, 이제 그들에겐 (장르적 형식의 일부로서) 떠날 일만 남았다. 이 무법의 국외자들이 선택한 것은 앞선 신에서 표명된 것(“한국, 한국인”)과는 달리 국적과 민족이 지워진 저 너머의 세계다. 그곳엔 밤 대신 태양만이 영원하리라 믿으며. 저 멀리 붉게 물든 지평선을 향해 달려가는 세 국외자들의 뒷모습에는 이만희의 동경 어린 시선이 투영되어 있다. 태양은 이미 지고 있었지만, 이만희의 이 희귀한 낙관만은 결코 빛을 잃지 않는다.
※ 이 글에서는 되도록 < 너의 이름은. >의 스포일을 하지 않고자 신경 썼으나, 작품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은 주의하기 바란다. 첫 단락 “‘세카이계’라는 용어”에는 <너의 이름은.> 관련 내용이 전혀 없고, 그다음 단락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 너의 이름은. > 한국판 메인 포스터 / <너의 이름은.> 한국판 티저 포스터 ■ ‘세카이계’라는 용어 일본에는 ‘세카이계(セカイ系)’라는 용어가 있다. ‘세카이(セカイ)’는 ‘세계(世界)’를 뜻하는 단어를 일본어의 가타카나로 표기한 것이다. 일본에서 2000년대(00년대, 소위 ‘제로년대’라고 불린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오타쿠 문화에 관한 빈번한 논의의 와중에 자주 사용되었던 용어이다. 한국에도 번역판이 출간된 「세카이계란 무엇인가: 포스트 에바의 오타쿠 역사」(마에지마 사토시 저/2010년 첫 출간, 2014년 문고판 출간, 2016년 한국 번역판 출간/주재명·김현아 번역)에서는, 이 용어의 정의가 불명확하지만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은 요소를 띤 작품을 느슨하게 가리킨다는 식으로 설명되어 있다. - 소년과 소녀의 연애가 세계의 운명과 직결한다. - 소녀만 싸우고 소년은 전장에서 배제된다. - 사회에 대한 묘사가 없다. (「세카이계란 무엇인가」 한국어판에서 인용) 그리고 그 대표작으로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 별의 목소리 >, 타카하시 신의 만화 < 최종병기 그녀 >, 아키야마 미즈히토의 라이트노벨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을 들었다. < 별의 목소리 > < 최종병기 그녀 >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 하지만 매우 곤란하게도 이 ‘세카이계 대표작’ 세 작품은 세카이계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 별의 목소리 >에서는 소년과 소녀의 연애가 세계의 운명과 직결되지 않고, < 최종병기 그녀 >에서는 주인공 소년도 전쟁에 휘말리며,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생활을 에워싸고 있는 군대라는 사회적 존재에 대한 묘사가 상세히 나온다. 애초에 이 세 작품은 ‘세카이계’라는 말로 한데 묶어버리기에는 각기 너무나 다른 특징이 있다. (「세카이계란 무엇인가」 한국어판에서 인용) 그래서 세카이계는, 일종의 유행어일 뿐 실체가 없는 용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1995년 TV 방영 이후 1990년대 일본 오타쿠 문화를 규정짓는 작품이 되어버린 애니메이션 < 신세기 에반게리온 > ‘이후’(포스트; post)에 등장한, 어떤 하나의 흐름에 속한다고 일컬어져 온 작품들을 폭넓게 지칭하는 단어로 편리하게 사용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대략적인 경향에 대한 설명은 존재하는데, 그것은 앞선 「세카이계란 무엇인가」에서 지적한 세 가지 요소이기도 하고, 혹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과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의 저자 아즈마 히로키가 주도하여 기획한 비평 무크지 「미소녀게임의 임계점」에 정의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기도 하다. 주인공(나)과 히로인(너)을 중심으로 한 작은 관계성(너와 나)의 문제가, 구체적인 중간항을 사이에 두지 않고 ‘세계의 위기’, ‘이 세상의 마지막’ 등과 같은 추상적인 거대한 문제와 직결하는 작품군.― 「미소녀게임의 임계점」 (「세카이계란 무엇인가」 한국어판에서 인용) 말하자면 배후에 어떤 명확한 (혹은 ‘명확해 보이는’) 세계관이나 설정이 처음부터 존재하거나, 적어도 제작 도중에 도입되었던 작품들, 즉 <기동전사 건담> 같은 애니메이션이 대표적일 것이다. 그런 고전적인 작품들과는 달리 세카이계 작품은 ‘자의식’을 그려내는 부분에 더 중점을 두었다고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마치 <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 중간 24화까지는 ‘마치 어떤 숨겨진 설정이 있는 것처럼’ 고전적으로 스토리를 그려내는 듯 보였으나, TV판 마지막에 느닷없이 수수께끼를 전혀 설명하지 않은 채 등장인물의 ‘내면’을 그리는 것만으로 완결된 것과도 비슷하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세카이계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에지마 사토시는 이렇게 비유했는데 정말 수긍이 가는 표현이라고 생각하므로 인용해보겠다. 추리소설로 비유하면, 탐정이 갑자기 수수께끼 풀기를 내팽개치고 피해자의 멘탈 케어를 시작하더니 “밀실 트릭은 풀 수 없지만, 피해자가 건강해졌으니 됐죠?” 이렇게 말한 것과 같은 꼴이니, 폭풍같은 비난이 일어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세카이계란 무엇인가」 한국어판에서 인용) 말하자면 스토리 그 자체나 작품에 담긴 ‘설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인공(주로 10대 소년)의 ‘자의식’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카이계란 무엇인가」에는 ‘세카이계의 시조’로서 < 신세기 에반게리온 >만이 아니라 PC용 어덜트 게임인 ‘시즈쿠’, 라이트노벨인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시리즈도 손꼽고 있다. 물론 < 별의 목소리 > < 최종병기 그녀 >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도 10대 소년의 자의식에 초점을 맞추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품들이 오직 인물의 내면이나 자의식을 그려내기 위한 내용인 것만도 아니고, 또 앞에서도 인용했듯이 이런 ‘세카이계’ 작품들이 전부 동일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제각기 전부 다른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하나로 묶어버리기가 곤란한 측면이 있다. 바로 그래서 ‘세카이계란 용어에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가 힘들지 않은가’, ‘세카이계란 말에서 당초 의도하던 바와는 달리 변질되어 버렸다’는 식의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것은 예를 들어 ‘오타쿠’라든지 ‘사이버펑크’ 같은 용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차피 새롭게 정의되기 시작한 용어는 그 역사가 짧으면 짧을수록 ‘아직 논의되고 있는 도중’이기 때문에 모든 이들이 그 정의에 쉽게 동의하기는 어렵기 마련이다. ‘세카이계’는 그중에서도 지극히 짧은 역사(기껏해야 만들어진지 15년,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따지면 겨우 10년 정도) 밖에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논의 중인 단어’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비평적으로 이 단어 및 이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에 대해 연구하고자 하고 있는 서적도 일본에 겨우 몇 권 정도 나와 있을 뿐이니 당연한 상황이기도 하다. 90년대의 아이콘 < 신세기 에반게리온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명확한 정의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무시해도 되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어쨌거나 일본 애니메이션을 설명할 때에, ‘70년대 야마토, 80년대 건담, 90년대 에반게리온’이라고 각 시대별 대표작을 나열한 다음에 보통 이야기되는 것이 ‘그런데 2000년대 이후로는 대표작이 없다’인데, 거기에서 ‘2000년대는 어떤 하나의 대표작이 아니라 세카이계가 대표적 장르가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참고로, 세카이계가 유행했던 제로(00)년대 이후의 시대, 즉 2010년대에는 어떤 경향성이 존재하는가에 관해 마에지마 사토시는, 2010년대에는 심지어 장르조차도 아니고 니코니코동화(일본의 동영상 투고 사이트)에서 유래한 캐릭터 ‘하츠네 미쿠’를 비롯한 소위 ‘2차 창작’이나, 혹은 온라인게임이라든지 라인 메신저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가 유행한 것 아니겠는가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을 ‘70년대 야마토, 80년대 건담, 90년대 에반게리온’이라고 예시하고, 2000년대에는 “특정 작품을 대표작으로 손꼽기보다는 ‘라이트노벨 원작’이라거나 ‘세카이계’라는 식으로 ‘장르’ 자체가 대표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나마도 201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작품은 물론이고 어떤 장르 자체가 붐이라기보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행위, 혹은 양식 자체가 붐이었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니겠냐는 지적인 것이다. 사실 이것은 그리 엉뚱한 주장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살펴보자면, 미술에 있어서의 ‘아르누보’라든지 영화에 있어서 ‘누벨바그’도 마찬가지로 어떤 특정한 경향성을 통틀어서 설명하는 용어가 아니라는 점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지금 진행 중인 ‘알폰스 무하: 모던 그래픽 디자인의 선구자 전’을 공동 주최한 체코 알폰스 무하 재단의 사토 토모코 큐레이터도 그런 말을 한 바 있다. 말하자면 ‘아르누보’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주의 주장이나 이론적 바탕을 가진 ‘예술 운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그 당대에 유행처럼 번졌던 하나의 스타일, 몇몇 작가들의 작풍을 가리키는 용어일 뿐이지 지금도 어떤 확정된 정의가 학계에 정립되어 있지는 않다고 언급했다. 그것은 ‘아르누보’의 의미가 인상파라든지 사실주의 같은 용어와는 달리 그냥 ‘새로운 예술’이라는 의미라는 점, ‘누벨바그’ 역시도 영어로는 ‘New Wave’, 즉 그 당시 영화계에 있어서 새로운 물결을 형성했던 영화 운동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아도 알 수 있다. 마치 ‘오타쿠’나 ‘세카이계’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일본 서브컬처계에서의 상황과도 유사한데, 물론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아르누보든 누벨바그든 오타쿠든 세카이계든, 이 용어가 탄생한 지 기껏해야 수십 년, 백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 다른 ‘클래식’한 학문적 용어만큼 학계에서의 논의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이런 용어들에 대해서는 예를 들어 “만들어졌던 당초에는 주로 이런 의미로 사용되었다”라든지 “이러이러한 비평가들이 그 단어에 관해서 이러이러하게 말했다”, 혹은 “맨 처음 그 단어를 만들어내었던/유행시켰던 사람은 실은 이런 의미로 사용하였다”식의 논의만이 가능할 뿐이지, 학문적인 어떤 정립이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말이다. 또 세상 모든 언어에 있어서 공통적인, 매우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어떤 단어에 대해 항상 그 단어를 처음 만든 사람이 의도한 바대로 단어가 유포되는 것은 아니므로, ‘맨 처음 만들었던 사람의 의도’에 대해 탐구하는 것은 역사적인 의의는 있을지언정 거기에서 그 단어를 모두가 ‘바로 그 의미’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비교적 근래에 유행한 용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이런저런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단계일 뿐이고 어떤 확정적, 이론적인 공통 의견이 구축되어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다. 세카이계란 단어 자체도, 「세카이계란 무엇인가」에도 설명되어 있지만 2002년 말에 인터넷의 어떤 이가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던 용어이고, 필자가 일본의 평론가 아즈마 히로키를 만났던 2003년 초까지만 해도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일본의 비평계에서 이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004년에 접어든 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2016년 지금 돌이켜볼 때 겨우 10년 조금 더 지난 용어라는 말이다. 2016년 10월에 「세카이계란 무엇인가」 한국어판이 출간되었을 때 “세카이계 유행은 이미 흘러가 버렸는데 인제 와서 출간되다니 너무 늦었다”는 식의 말도 나왔는데, 애시당초 이 용어 자체가 ‘겨우 10년 전’에 만들어졌는데 그에 대한 비평서의 외국어판 출간이 이제 되었다는 것을 ‘너무 늦었다’고 말한다는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다. 물론 ‘당대 비평’이라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본래 비평은 그런 ‘유행’이 지나간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유행’으로서의 ‘세카이계’는 이미 흘러가 버렸다고 해야겠으나, 세카이계가 2000년대 일본의 애니메이션, 게임, 라이트노벨 등 ‘서브컬처계’에 있어서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이후의 작품들(즉 현재 시점의 작품들)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90년대 이전 작품들로부터 어떤 유전자를 이어받았는지 등 ‘세카이계 비평’은 2010년대에 시작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2016년인 현재 시점에도 일본에 있어 ‘외국’인 한국은 말할 나위도 없고 일본 국내에서도 의미를 갖는 연구 주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카이계란 무엇인가」란 책이 일본에서 2010년에 첫 출간된 이후, 2014년에 문고판으로 다시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2010년대에는 무의미한 연구 테마’였다면 2010년도의 첫 출간은 몰라도 2014년도의 문고판은 출간되지 않았을 테니까.) 즉 ‘세카이계’는 ‘1990년대로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문화로서, 2000년대 일본 서브컬처계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유행’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문화 스타일이고, 지금 시점에서 2010년대를 ‘총괄’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표현이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된다. 비평 분야에서는 「세카이계란 무엇인가」가 그 하나의 시도인 것이고(일본에서도 ‘세카이계’에 관한 연구나 비평에 있어서 주된 참고자료가 바로 「세카이계란 무엇인가」이다. 아즈마 히로키를 제외하면 세카이계를 비평한 평론가가 일본에도 그다지 많지 않기도 하지만, 본격적인 연구서로서 이 책만큼 넓고 깊게 소개한 평론이 드물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작품으로서는 바로 이 < 너의 이름은. >에 대해서 ‘세카이계의 총괄’이라는 감상이 일본에서는 개봉 초기부터 이어졌다. < 별의 목소리 > ■ < 너의 이름은. >과 세카이계 < 너의 이름은. >은 분명히 ‘세카이계의 총괄’, ‘세카이계의 종점’, ‘세카이계로부터의 졸업’이란 평가를 받을 만한 내용이다. 작품이 국내에 막 개봉된 시점이니 자세한 내용 설명은 하지 않겠으나, 직접 관람을 하고 나면 이 작품의 줄거리에서 전형적인 ‘세카이계’와의 관련성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신카이 마코토야말로 초기부터 ‘세카이계의 기수’라는 식으로 설명되곤 했다. ‘세카이계’라는 단어 자체를 설명할 때에, 항상 따라붙는 것이 < 별의 목소리 >의 첫 구절이다. “세계(세카이), 란 말이 있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 세계란 것은 휴대전화의 전파가 닿는 곳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내 휴대전화는 아무한테도 닿지 않는다.” (< 별의 목소리 > 대사에서 인용·번역) 세카이계를 ‘소년과 소녀의 연애가, 중간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세계의 운명을 좌우하는 문제로 바로 직결된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관점에서, < 별의 목소리 >는 (앞서 언급했듯이 약간의 차이점은 존재할지언정) 분명히 ‘세카이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 너의 이름은. >의 경우, 종전과 같은 세카이계 작품인가 하는 질문에 관해서 대부분의 관객은 확답을 주저하는 것처럼 보인다. 굳이 말하자면 ‘세카이계를 바탕에 두고 있지만 새롭게 다시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말이다. 그것은 일본의 영화사 연구자 와타나베 다이스케(「이미지의 진행형: 소셜 시대의 영화와 영상문화」 저자)가 일본의 인터넷 미디어 「리얼 사운드」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신카이의 애니메이션 작품을 논할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키워드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세카이계’, 또 한 가지는 ‘미소녀게임’입니다. 나중에 기술하겠지만 이 두 가지는 상호 연관되어 있고, 소위 ‘제로년대(2000년대)’의 오타쿠 계열 컬처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에 있어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즉 신카이 마코토라는 애니메이션 작가의 독창성, 신선함을 이해하기 위해 정말로 중요한 점은 그가 제로년대라는 고유의 시대, 그리고 애니메이션 이외의 오타쿠 계열 콘텐츠라는 고유의 영역이 서로 교차되는 지점에서 출현한 ‘이레귤러(변칙)’적인 재능의 소유자이고,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어 지브리(미야자키 하야오, 타카하타 이사오)로부터 오시이 마모루, 안노 히데아키를 거쳐 호소다 마모루에 이르는 ‘2차대전 후 일본 애니메이션사(史)의 정통적 문맥이나 유산’을 사실은 거의 공유하지 않는, 말하자면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돌연변이’적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로 그렇기에 이번 < 너의 이름은. >의 ‘역사적’ 대히트는 한편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사(史)에 있어 커다란 ‘절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하략) (와타나베 다이스케 「<너의 이름은.>의 대히트는 어째서 ‘사건’인가? 세카이계와 미소녀게임의 문맥에 의거한 독해」(2016.09.08)에서 인용·번역) 이처럼 신카이 마코토를 호소다 마모루 등과 한 묶음으로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 ‘지브리의 후계자’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비평계에서 몇 번 나온 이야기인데, 이번 < 너의 이름은. >을 통해 그것은 더더욱 강조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미야자키 하야오나 오시이 마모루, 그리고 최근의 호소다 마모루에 이르기까지의 애니메이션 크리에이터들은 기본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흐름’ 속에서 나타난 존재라는 것이다. 그들은 전원 종래의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 속에서 이력을 쌓아왔고 애니메이터로서의 경험을 갖고 있다. (호소다 마모루의 경우에도, 대학 졸업 이후 스튜디오 지브리 입사 시험을 치기도 했고 첫 직장으로 입사한 것도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최고 정통 애니메이션 업체라고 할 수 있는 토에이애니메이션이었다.) 하지만 신카이 마코토는 게임 업계 출신이고(첫 직장이 ‘Ys(이스)’ 시리즈, ‘영웅전설’ 시리즈로 유명한 니혼팔콤이었다), 독립한 이후에도 초기부터 미소녀게임의 오프닝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그런 의미에서 와타나베 다이스케는 <너의 이름은.>을 보고 난 감상으로서 “이것은 ‘세카이계와 미소녀게임 등 본인의 작가적 출신지에 자각적으로 회귀’한 것임과 동시에 ‘그 이후의 시대의 변화에도 제대로 적응하고 있는’ 작품”(앞선 글에서 인용·번역)이라고 말한 것이다. < 너의 이름은. >에서 몸이 바뀌는 소년 소녀 즉, < 너의 이름은. >의 스토리 구조와 영상 그 자체는 지극히 기존의 신카이 마코토스러움, 즉 세카이계나 미소녀게임적인 일면을 유지하고 있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몸이 바뀐다거나,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타임 트래블’적 내용, 혹은 기억상실이란 모티프는 일본에서 오랫동안 이어진 소위 ‘주브나일’(청소년 대상의 소설, 주로 SF나 판타지 등의 장르문학이 많다. 원래 서구권에서 시작된 청소년 문학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고, 최근 미국에서 유행한 ‘영어덜트픽션’ 장르와도 비교해볼 수 있는 장르이다.) 장르의 전형적인 내용이다. 물론 세카이계 작품이나 미소녀게임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던 설정이다. 당연히 이 각각은, 세카이계에 속하지 않는 장르에서도 흔한 설정이긴 하다. 하지만 ‘소년 소녀의 몸이 바뀌면서 동시에 타임 트래블도 하면서 기억상실도 하게 되는’ 내용은 의외로 세카이계 작품이나, 혹은 게임이 아니고서는 아주 일반적으로 흔하게 사용되는 것은 아니기도 하다. 반대로 일본 만화나 게임을 쭉 접해온 계층에게는 이것들이 거의 ‘클리셰’인 셈이고, 자세한 설명이나 소개 없이도 즉각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요소가 되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기존에는 신카이 팬들의 대다수가 ‘10대~30대의 남성 오타쿠’(와타나베 다이스케의 앞선 글)였고 그것은 세카이계와 미소녀게임에 원점을 둔 신카이 감독으로서는 자연스러운 결과였는데, 이번 < 너의 이름은. >은 특히 10대 여성 관객(세카이계나 미소녀게임에 대해 기본적으로는 전혀 모르는)을 중심으로 대히트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어째서일까. 보통 이 정도의 메이저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일본에서도 ‘패밀리 관객층’을 향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법이고, 호소다 마모루가 < 늑대 아이 > 등을 통해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포스트 지브리’로 주목받았던 것을 생각해보더라도 <너의 이름은.>의 이런 독특한 지향성은 특이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에 관한 와타나베 다이스케의 지적은 매우 시사적이다. 약간 길지만 인용해보겠다. 분명히 < 너의 이름은. >은, 몇 번이고 지적했듯이 스토리적으로나 연출적으로나 지브리나 호소다 애니메이션처럼 ‘국민적 애니메이션’, ‘패밀리 대상’을 명확하게 지향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또한 과거 우리들 젊은 남성 관객이 지지했던 세카이계적 세계관이나 설정을 다분히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너의 이름은.>을 보고 나서 나는 결정적인 위화감도 느꼈습니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세카이계적이면서도, 하지만 어딘가 세카이계와는 다릅니다. 그것은 아마도, 주인공 타키가 ‘세카이계적 나약한 소년’(중략)과는 달리, 그야말로 ‘포스트 제로년대적’으로 주체성을 갖고 행동하며 운명을 바꾸고자 하는 ‘현실(리얼)에 충실한’ 캐릭터상으로 바뀌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변화는 근래의 오타쿠 계열 콘텐츠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략) 구 <에반게리온>의 주인공 이카리 신지와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파>(2009년) 신지의 ‘캐릭터 체인지’도 완벽하게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에 <너의 이름은.>은 틀림없는 세카이계적 애니메이션이면서도 어딘가 과거에 봤던 작품들과는 다른, ‘세카이계라고 할 수 없는 애니메이션’이기도 한 것입니다. 아무튼간에 신카이는 이러한 ‘마이너 체인지’(*역주:크지 않은, 소소한 수준에서의 세부 수정)를 세세하게 쌓아올림으로써 이번에, ‘패밀리 대상’으로 만들지 않고서도 ‘국민적’인 규모의 대히트작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 <너의 이름은.>이 갖는 획기성이 있는 것입니다. <너의 이름은.>은 과거 미야자키의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984) 처럼, 혹은 안노의 < 신세기 에반게리온 >처럼, 일본 애니메이션사(史)의 무언가를 확실하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무언가의 계승이라기보다도, 오히려 결정적인 ‘단절’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돌연변이’ 신카이가 만든 신작은, 글자 그대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완전한 ‘돌연변이적’ 걸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 ‘돌연변이’=예외가 ‘오리진(origin)’=기원이 되어, 새로운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가 앞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와타나베 다이스케 「<너의 이름은.>의 대히트는 어째서 ‘사건’인가? 세카이계와 미소녀게임의 문맥에 의거한 독해」(2016.09.08)에서 인용·번역) 바로 이런 식의 평론이 2016년 8월 26일 < 너의 이름은. > 개봉 이후 이어졌던 것이다. (위 평론도 개봉일로부터 보름도 채 안 되어 게재되었다. 아무리 인터넷 매체라고 하더라도, 필자가 집필한 것은 개봉일 거의 직후였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기존 신카이 감독 작품의 주인공들(특히 남자주인공들)이 기본적으로 ‘오타쿠’적인 성격(외톨이이고 자기완결되어 있는 인격체)이었던 것과 비교할 때, <너의 이름은.>의 주인공들은 기본적으로 현실 속을 살아가고 있는, 사회적인 개체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주인공만이 아니라 다른 인물들에 대한 묘사도, 기존 작품에서는 ‘전형적인 일본 만화적 캐릭터’였던 것과 비교해볼 때 차이가 크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선 심지어 ‘정치’(정치적이란 의미에서의 ‘정치’가 아니라, 말뜻 그대로의 ‘정치=사회나 조직에서 상호 간의 이해 조정’)까지도 그려져 있는 것이다. 즉 외계인이라든지 ‘닫혀진 세계’ 속에서의 ‘오타쿠적 세카이(세계)’에서 벗어난, 그야말로 ‘포스트 에반게리온’으로서 ‘제로년대의 시작을 알렸던 세카이계의 기수가 세카이계에 종지부를 찍은’ 작품으로서 <너의 이름은.>은 초기부터 (대중적인 히트와는 별개로) 일본의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그 부분을 한국에서도 확실하게 알리고 싶어서 필자는 이 글을 쓰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와 < 너의 이름은. > 또 한 가지, 필자가 < 너의 이름은. >에 관해서 이 글을 쓰고자 생각한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그 작법론에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너의 이름은.>의 극장용 팸플릿 제2탄(2016년 12월 9일/토호 영상사업부 발행)에 수록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직접 풀어낸, 영화 <너의 이름은.>」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글은 신카이 감독이 11월 5일 나가노 현의 도서관에서 개최한 강연 「<너의 이름은.>의 이야기 ~현대 이야기의 역할~」을 글로 옮긴 것인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스토리텔링 작법에 관해 스스로의 방법론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이야기를 만들 때에는 스토리의 콘셉트를 몇 줄 정도로 표현하는 ‘로그라인’이란 것을 맨 처음 생각하는 법입니다만, < 너의 이름은. >의 로그라인은 ‘꿈에서 만난 소년과 소녀가, 나중에 결국 현실에서도 만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년과 소녀가 만남을 가지고, 한때 헤어지기도 하지만 또다시 만나게 된다는. 그런 보이 미츠 걸(Boy Meets Girl)의 이야기는 보편적인 구조로서, 강력한 스토리라인을 가진 로맨틱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너의 이름은.> 극장용 팸플릿 vol.2 Collection of interview」에서 인용·번역) 여기에서 신카이 감독이 말한 ‘로그라인(log-line)’이나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에 관해서는, 일본의 평론가이자 만화 스토리작가인 오쓰카 에이지가 쓴 스토리텔링 작법서 「스토리 메이커」와 「캐릭터 메이커」 그리고 「이야기 체조」 「이야기의 명제」(한국어판 2013~2015년/북바이북 발행) 등에 자세히 실려 있다. 우선 오쓰카 에이지는 로그라인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처럼 플롯을 한 줄로 요약하는 것을 프레미스 혹은 로그라인이라고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부르는데, 좋은 시나리오는 명확한 로그라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식으로 보통 일컫습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로그라인은 시나리오의 근본을 규정하기 때문인데, 그 정리 방식에 따라 플롯이 펼쳐져 갈 방향이나 작품의 테마가 크게 바뀌는 것입니다. (「스토리 메이커」에서 인용) 그렇다고는 하나 이 워크숍이, “우정을 테마로 삼아 스토리를 만들어봐라”는 식으로 단순한 것은 아니다. 과거에 만화잡지 「소년 점프」 에서는 독자 앙케이트를 통해 선정된 ‘우정’, ‘노력’, ‘승리’라는 3가지 키워드를 테마로 삼아 작품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주인공이 목적을 향해 ‘노력’하고, ‘우정’의 도움을 얻어 ‘승리’한다”는 스토리를 지탱하는 원리 원칙일 뿐이다. 블라디미르 프로프식으로 말하자면 ‘캐릭터의 행위의 3연속’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는 지극히 단순화시킨 이야기의 구조임과 동시에, 구체적인 캐릭터 조형이나 스토리라인 만들기의 지침이기도 하다. 「소년 점프」의 이 3가지 키워드를 통해 유도되는 문장은, 영화 업계에서 ‘프레미스’라고 부르는 용어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유의어로 ‘로그라인’, ‘콘셉트’, 그리고 ‘테마’가 있는데, 시나리오 입문서에서도 실제 현장에서도 혼동되어 사용된다는 인상이다. 이런 식의 ‘정의’가 있기는 있는 듯하다. 프레미스, 테마, 콘셉트, 로그라인 등과 같은 용어는 보통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보통은 중심이 되는 아이디어(착상)이나 토픽(사건), 2~3행으로 표현할 수 있는 스토리라인의 뼈대를 가리킨다. 그러나 혼동하기 쉽지만 ‘프레미스’와 ‘테마’는 스토리 속 깊은 곳에 있는,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란 의미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정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콘셉트’는 스토리의 중심이 되는 아이디어나 토픽을 의미하고, ‘로그라인’은 하나 혹은 두 문장으로 ‘콘셉트’의 요점을 표현한 것이라고 정하겠다. ‘프레미스’와 ‘테마’는 스토리의 내부 깊숙히 담겨진 메시지를 의미한다. (「이야기의 명제」에서 인용) 그다음,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의 구조에 대해서는 신카이 마코토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중략) 여기에는 사실 커다란 의미가 있는데, 경계를 넘어서 갔다가 돌아온다고 하는 것은 이야기의 기본입니다. 예를 들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도, 소녀가 이계(異界; 다른 세계)에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이죠. 경계를 넘어 다른 세계에 갔다가 돌아온 다음, 무언가가 약간 변화되어 있다는 것. 거기에서 제가 연상하는 것은 어린 시절 경험했던 담력 시험입니다. 담력 시험을 끝낸 다음에, 스스로가 무언가를 뛰어넘어서 강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있습니다. 갔다가 돌아올 때마다 사람은 변화하는 법이죠. < 너의 이름은. >은 그 모티프를 반복해서 집어넣음으로써 타키와 미츠하가 조금씩 성장해 갑니다. (중략) 사람이 태어난 다음에 처음 겪게 되는 놀이 ‘이나이 이나이 바아(엄마 없다 놀이)’도 말 그대로 갔다가 돌아오는 구조입니다. 눈앞에서 어머니가 사라짐으로써 다른 세계에 빠져든 것 같은 느낌을 받고, 다음 순간에 어머니 얼굴이 다시 나타나면서 현실로 돌아옵니다. 그때 이미 그 놀이를 한 아기의 내면에서는 무언가가 변화되어 있죠. 그것이 성장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만들고 있는 영화라는 존재의 구조 그 자체이기도 한데, 관객들은 어떤 꿈을 보기 위해서, 특별한 꿈의 계시를 얻기 위해 영화관에 가고, 변화되어서 돌아옵니다.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는 우리들의 생활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너의 이름은.> 극장용 팸플릿 vol.2 Collection of interview」에서 인용·번역) ‘이나이 이나이 바아’란 것은 일본에서 ‘엄마 없다’ 놀이를 지칭하는 명칭인데, 아이 앞에서 본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추고 ‘없다 없다(이나이 이나이)’라고 말한 다음 ‘바아’라는 말과 함께 얼굴을 드러내어 아이한테 보여주는 행위이다. 영어권에서 말하는 ‘Peek-a-boo’이고, 한국에서는 ‘얼레리 까꿍’에 해당한다고 보면 되겠다. 이 ‘엄마 없다’ 놀이를 통해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는 점(「스토리 메이커」 참조),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을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의 전형적인 사례로서 예를 들고 있는 것도 오쓰카 에이지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너의 이름은.> 일본판 팸플릿 1편 / <너의 이름은.> 일본판 팸플릿 2편 제 1장 이야기의 기본 중 기본은 ‘갔다가 돌아오기’다 이야기의 문법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두 가지 있다고 생각해주십시오. 하나는 ‘결락된 것이 회복된다’는 패턴. 또 하나는 ‘갔다가 돌아온다’는 패턴입니다. 전자에 대해서는 다른 장에서 살펴보도록 하고, 이 장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의 문법’인 ‘갔다가 돌아온다’에 관해 이해해두고자 합니다. ‘갔다가 돌아온다’는 구성이 이야기의 가장 기본적인 패턴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은, 영화 「반지의 제왕」 원작으로 유명한 J.R.R. 톨킨 저 「반지의 제왕」의 번역자로 알려져 있는 아동문학자 고 세타 데이지입니다. 세타는 갔다가 돌아오는 구성을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라고도 불렀습니다만, 「반지의 제왕」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톨킨 작품 「호빗」의 본래 타이틀 「The Hobbit or There and Back Again」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다고 썼습니다. (중략) 톨킨의 대학 동료였던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에서도 주인공 소년과 소녀는 옷장 안에 있는 나니아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내용이 기본 줄거리입니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갔다가 돌아온다’는 패턴에 있어서, 주인공은 반드시 원래 있던 장소에 그저 돌아오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래 있던 장소와는 다른 장소로 돌아가는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갔다가 돌아온다고 하는 문법이 대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중략) 세타는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가 우선 “어린 아이들에게 있어서 발달 과정에 있는 그 두뇌와 감정에 따르는, 가장 받아들이기 쉬운 형태”라고 지적하고서, (중략)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경계선을 넘어 저쪽 편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경계선은 작중에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경계선일 때도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는 앞으로 계속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작품세계 안에 하나의 경계선이 있고, 그 선을 넘어 주인공이 ‘저쪽 편’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에 ‘이야기’의 가장 기본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단순한 이야기의 한 형태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습니다. (「스토리 메이커」에서 인용) 그런 의미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갔다가 돌아온다고 하는 문법을 교묘하게 사용한 작품이 많은 것에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에서는 터널 저쪽 편, 그리고 다리를 건넌 다음에 있는(물론 터널과 다리가 경계선이라는 점은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저쪽 편 세계의 여관에 치히로가 가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또한 저쪽 편 세계에 간 후에도 하쿠를 구하기 위해 가오나시와 물 위를 달리는 열차를 타고 제니바가 있는 곳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스토리 메이커」에서 인용) 「스토리 메이커」(오쓰카 에이지/북바이북) / 「이야기의 명제」(오쓰카 에이지/북바이북) 사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법론이 오쓰카 에이지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은 필자의 상상만은 아니다. 실제로 필자는 과거, 오쓰카 에이지 본인에게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스토리 메이커」 등을 읽고서 작법론을 배웠다고 말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카이 마코토가 처음으로 오쓰카 에이지의 스토리텔링 이론을 도입했던 작품은, 실은 < 너의 이름은. >이 아니라 2011년도 작품 < 별을 쫓는 아이: 아가르타의 전설 >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나 일본에서나 검색만 조금 해보더라도 비판적인 관객 평가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이전까지 어느 쪽인가 하면 SF와 ‘세카이계’에 기반을 둔 작품이 많았던 신카이 마코토가, 갑자기 미야자키 하야오 + 스튜디오 지브리 풍의 ‘판타지’를 그렸다는 점, 게다가 그 내용에 있어서도 인물이나 스토리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신카이 감독 자신은 이 작품에 대해 ‘어느 정도 자각적으로’ 지브리 풍을 연상케 되는 내용으로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고, 또 오쓰카 에이지에게도 자신이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라는 작법론을 공부하고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고 직접 전달했으니만큼, ‘일부러’ 그런 내용으로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왜 갑자기 그때 작법론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 것일까? 우선, 신카이 감독 자신이 나름대로 그 시점에 작품적인 고민이 많았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02년 < 별의 목소리 >(25분), 2004년 <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91분), 2007년 < 초속 5센티미터 >(63분)까지, 장편을 만들기 시작한 후로도 적은 수의 스태프만으로 만든 것 치고는 나름대로 빠른 속도로 작품을 제작하던 신카이 마코토가 4번째 장편인 < 별을 쫓는 아이 >(116분)는 2011년, 전작으로부터 4년 후에 발표한 것만 보더라도 알 수가 있다. 작품 제작에만도 2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다음이 다시 46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의 2013년 < 언어의 정원 >, 그리고 2016년도에 다시금 107분의 장편인 < 너의 이름은. >에 이르렀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본인도 여러 번 말하고 있듯이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창작론을 배경으로 갖고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초기에 만들었던 <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를 비롯한 단편 작품에서 화제를 모았고, 처음 만들었던 극장용 애니메이션 < 별의 목소리 >가 세계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게 되면서, 어떻게 보면 상당히 ‘갑작스럽게’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름대로는 그런 ‘밑바탕’이 없다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이 아닐까 유추한다. 그런데 오쓰카 에이지는 일본에서 상당히 초기부터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호평했던 평론가였고, 그런 평론가가 작법 이론서를 여러 권 출판했으니 관심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스토리 메이커」를 비롯한 스토리텔링 이론서를 읽으면서 그 작법론에 수긍을 하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작품 속에 이론적 바탕을 도입하고자 시도했던 것이다. 하지만 < 별을 쫓는 아이 >의 내용은, 일본신화의 이자나기·이자나미 신화나 그리스로마 신화의 오르페우스와 아내 에우리디케 이야기 등, 그야말로 오쓰카 에이지가 「스토리 메이커」 등 작법서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던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와 세계의 민담·신화를 거의 그대로 도입한 내용이었다. 판타지적인 스토리 역시도 앞서 「스토리 메이커」에서 예시되어 있는 「반지의 제왕」이나 「호빗」 「나니아 연대기」와의 연계성도 엿보이지 않는가. 말하자면 이 시점에 신카이 마코토는, ‘본인의 스토리텔링 능력에 불안감을 느끼고 그에 대한 보완책으로서 이론적 바탕을 공부하고자 노력’했고, 그에 따라 전 세계의 민담과 신화에서 가장 기본이 되어 있는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라는 기초 이론과 할리우드 영화 등에서 보편적인 ‘로그라인을 바탕으로 한 시나리오 작법’에 맞춰서 작품을 만들고자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 첫 번째 시도였다 보니, 아직 제대로 본인의 스타일로 제대로 ‘체화(體化)’시키지 못한 결과로서 그처럼 관객들의 비판을 받았던 것 아닌가 싶다. 그러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앞선 < 너의 이름은. > 팸플릿의 문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 이론에 확신을 갖고 있었고, 따라서 그 작법론을 금방 포기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가 이번 <너의 이름은.>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너의 이름은.>은, 본인도 직접 언급하고 있듯이 작품 전체의 스토리 구조가 기본적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적인 구성이다. 거기에 < 별의 목소리 >로부터 이어져 온 세카이계로서의 콘셉트 역시도 (앞에서 기술했듯 그 내용에 있어서는 중요한 변화를 거치면서도) 계승하고 있다. 말하자면 본인의 지금까지의 작품 활동 전체가 녹아들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그냥 그대로 표출한 것이 아니라, < 별을 쫓는 아이 >로부터 한발 더 나아간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로, 기존의 세카이계에 종지부를 찍는 듯한 또 다른 작품 세계로, 새롭게 완성해낸 것이 바로 <너의 이름은.>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 너의 이름은. > 한국판 런칭포스터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 ‘1인제작 애니메이션’이라는 신화 마지막으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여전히 소위 ‘1인 제작 애니메이션’이란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소개되고 있는 국내의 현실에 대해 몇 가지만 첨언하고 싶다. 필자는 지금까지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 두 번 인터뷰를 했는데, 그 첫 번째는 「콘텐츠 코리아」 2001년 9월호에 기고하기 위해 행했던 것이었다. 이 시점은 그가 < 별의 목소리 >(2002년 2월 2일 개봉)를 완성하기도 전이었는데, 이후 오쓰카 에이지나 아즈마 히로키 등의 평론가와, 일본의 각종 애니메이션 잡지와 매스컴이 신카이 마코토를 주목하면서 국내에도 ‘1인 애니메이션’이라는 형태에 대해 초기부터 크게 주목받았다. 무엇보다도 필자부터가 당시 2001년 9월호에서 신카이 마코토에 대해 가장 먼저 설명한 문장이 ‘배경 음악과 여주인공 성우를 제외한 나머지를 완전히 혼자서 만들어낸 4분 46초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의 제작자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실사 영화 < 부산행 >으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크리에이터가 된 연상호 감독이, 당시 < 지옥 > 등의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들면서 신카이 마코토의 제작 방식에 크게 관심을 가졌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 당시 「CG랜드」 등의 잡지나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등을 통해 연상호 감독과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신카이 마코토가 1인 제작으로 4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를 만들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25분짜리 < 별의 목소리 >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계약’을 해서 ‘소속 회사’(지금도 소속되어 있는 주식회사 코믹스웨이브)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요즘 식으로 알기 쉽게 말하자면 ‘아이돌 지망생이 프로덕션과 계약해서 연습생으로 활동하며 데뷔를 목표’로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는 말이다. 물론 신카이 감독의 경우 이미 회사원으로서의 경력이 있었고, 소속사에서 그의 단편 작품을 보고 계약했던 것이니만큼 소속사가 직접적인 경제적 지원금(생활비나 교육비 등)을 주었다기보다는 그에게 작업 의뢰를 받아주면서 일이 끊기지 않도록 했던 것에 가까웠다. 그렇게 보면 그 당시 신카이 감독의 경우 소속사를 굳이 둘 필요 없이 프리랜서로 일했어도 상관이 없었던 것인데, 신카이 감독은 CG 관련 수주를 받아 프리랜서 직업인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자신만의 오리지널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으므로, 굳이 소속사에 소속되는 것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에서 당시 한국의 독립애니메이션 계열과는 조금 사정이 달랐고, 직접적인 참고가 되기 어려웠던 것이다. 예를 들어 신카이 감독과 같은 길을 걸으려면, 우선 소위 작가주의적인 지향성을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는 말이니까. 물론 이 말은 작가주의적 지향성을 버려야만 신카이 감독처럼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신카이 감독은 장편을 만들면서 쭉 본인의 작가적 지향성을 놓지 않아 왔고,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해왔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미소녀게임 오프닝 애니메이션이라든지 기업의 CF애니메이션도 수주받았고, 소속사와 계약하는 등 (그것은 즉, 작가 본인의 수입을 소속사와 분할해서 나눠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소속사와 계약하고 매니저를 두는 연예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한국식 상황에서 보자면 지극히 상업주의적이라고 여겨지게 될 시스템에 속하는 것을 신카이 감독은 선택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그런 상황을 쭉 지켜보아 온 입장에서, 신카이 감독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으면서 신카이 감독과 같은 길을 걷기는 어렵지 않나 하는 실감이 드는 일도 많았기에, 그 당시 한국의 독립애니메이션 쪽 상황에서 ‘한국의 신카이 감독’의 등장을 바라기는 쉽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한국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길을 찾는 크리에이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연상호 감독은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 양쪽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를 이어나가며 그런 길을 찾아낸 것 같아,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더더욱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지적해왔던 바이지만, 한국에서는 일본의 만화나 애니메이션 업계의 상황을, 갖가지 소식과 뉴스를 통해 바로바로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잘 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실제로 많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은 기본적인 시스템도 거쳐 온 역사도 업계의 온갖 상황도 전부 다 다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이해가 없이 표면적인 뉴스만으로는 알 수 없는 부분도 많다. 심지어는 직접 일본 업체로부터 수주를 받아 일러스트 작업을 하거나 만화 작품을 연재하는 경험을 갖고서도, 일본 업계에 대해 잘못된 정보나 편향된 경험담을 말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정작 일본 업계에서 더 오래, 더 폭넓게 활동해왔을 ‘일본의 작가들’과 상반되는 이야기를 ‘일본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한국인 작가’가 말하는 케이스가 있다는 뜻이다.) 개인적 경험담을 단순히 말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겠으나, “일본 업계는 이렇다”는 식으로 업계 전체를 논하는 정보로서는 주의가 필요한 경우도 많을 텐데, 개인적 경험담을 일반론으로 너무 쉽게 치환하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 당시 국내에서 유행했던 ‘신카이 마코토의 1인 제작 애니메이션’이란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앞서 언급했듯 실제로는 신카이 감독이 꼭 1인 제작 애니메이션을 고집하지도 않았고, 또 1인 제작을 했던 때에도 여러 가지 상황에서 국내와는 차이점이 존재했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신카이 마코토를 1인 제작 애니메이션이란 측면에 포커스를 맞춰 국내에 소개했던 적이 있는 한 사람으로서, 다시 한번 꼭 확실하게 언급해두려고 쭉 생각해왔다.) 아무튼 이런저런 논점들이 많았는데, 어쨌거나 이번에 < 너의 이름은. >을 보고 ‘일견 대중적이지 못하고 마니아 취향이기 쉬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이 새로운 단계에 도달했고, 또 그 도달점이 이처럼 전 세계의 수많은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 대해 개인적으로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2017년 개봉 이후 관객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모르겠으나, 한국 관객들 역시도 오랫동안 신카이 감독의 작품을 높이 평가해왔으니만큼 좋은 반응이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