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약속
- 감독
- 안드레아 자카리엘로
- 제작년도
- 2002
김소형 감독의 < 우리의 낮과 밤 >은 연인 관계인 지영과 우철이 공유하는 시공간에 대한 묘사를 통해서 두 사람의 사랑에 관해 이야기한다. 지영과 우철은 한 공간에 살면서 동거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두 사람이 평일에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오전 7~8시가 유일하다. 지영은 주간에 피부마사지 숍에서 그리고 우철은 야간에 제빵소에서 일하고 있기에 사실상 두 사람이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기는 힘들다. 영화는 지영과 우철의 관계가 일시적으로 어긋났다가 다시 회복되는 과정을 그리기 위해 두 사람이 일상적으로 공유하는 공간, 시간, 시선의 변화를 섬세하게 다룬다. 이 작품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동력원은 지영과 우철이 맺은 어떤 약속이다. 오프닝은 잠에서 깬 지영이 막 퇴근한 우철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는 중에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다루고 있다. 그 일상적인 대화는 두 사람이 다가오는 주말에 어느 바닷가로 여행을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영화가 제시하는 일련의 정보를 통해 지영과 우철이 노동과 휴식이 단조롭게 반복되는 일상의 고리를 끊기 위해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 여행을 위해 계획했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만약 두 사람이 연인과 공유할 수 있는 시간에 있어서 결핍을 느끼고 있었다면, 두 사람의 욕망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약속된 시공간을 공유하는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플라톤의 『향연』의 한 구절을 참고하자면, 사랑은 지금 시간에 대한 욕망뿐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욕망도 포함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지금 곁에 있는 것들이 나중에도 곁에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의 낮과 밤>은 지영과 우철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다루기에 앞서 그들 각자의 삶이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의 전반부에는 지영과 우철이 각기 다른 공간에서 일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지영은 자신에게 피부마사지를 받으러 온 손님들을 응대하는 과정에서 감정 노동을 하며, 우철은 불안정한 노동 시간과 위험한 작업 환경으로 인해서 여러 고충을 겪는다. 영화는 두 사람의 현재에 드리워진 그늘을 자연적인 환경과 인공적인 환경의 대립을 통해 그린다. 지영의 경우 주간에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출근 시간대를 제외하고는 빛을 보지 못한다. 그가 일하는 피부마사지 숍은 암막 커튼으로 외부의 빛과 시선을 차단한다. 우철의 경우 어두컴컴한 야간에 일하고 있음에도 항시 인공적인 빛에 노출되어 있다. 그가 일하는 제빵소는 형광등으로 작업장 전체를 밝게 비추어 노동자들이 시간에 대한 감각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지영이 자연적인 빛을 가로막은 인공적인 어둠 속에 있는 것에 반해 우철은 자연적인 어둠을 물리친 인공적인 빛 속에 있다. 비록 세부적인 조건의 차이는 있지만 두 사람 모두 자연적인 빛으로부터 소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불안정한 노동과 삶은 지영과 우철 사이에 맺어진 여러 약속에도 영향을 미친다. 영화 초반에 이야기의 동력원으로 작동했던 지영과 우철의 약속은 이내 두 사람이 겪는 갈등의 원인으로 바뀐다. 영화는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서 지영과 우철의 약속이 지연되거나 이행되지 않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선, 우철이 지영과 여행을 가기 위해 직장에 신청한 희망 휴가가 무산되는 이야기가 먼저 등장한다. 우철의 매니저는 직원 중 한 명이 작업 중 부상을 당했다는 이유를 들어 우철에게 휴가를 반납하고 주말에도 근무할 것을 권고한다. 이어서 우철이 지영에게 여행을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에서 작은 언쟁이 발생한다. 전자는 사회적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에서 발생하는 약속의 불이행이며, 후자는 사적으로 맺어진 연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약속의 불이행이다. 두 경우 모두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려는 힘과 그 약속과 관련된 시간성을 마치 애초에 없었던 일인 것처럼 되돌리려는 힘 사이에서 발생하는 충돌로 볼 수 있다. 그 결과 지영과 우철의 시선이 엇갈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과거 같은 대상을 바라보거나 서로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던 지영과 우철의 시선은 갈 곳을 잃고 표류한다. 지영은 우철을 기다리면서 그가 없는 곳을 멍하니 바라보고, 우철은 지영이 출근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그런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자책한다. 이 일련의 위기와 갈등은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의지와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일련의 몸짓을 통해서 봉합된다. 영화는 지영과 우철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특별한 사건을 삽입하거나 등장인물들의 수사적인 대사를 활용하는 대신 지영과 우철이 예전처럼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프닝과 대구를 이루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우철이 퇴근하는 모습, 지영이 우철을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 그리고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 밥을 먹으면서 대화하는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프닝을 일부 변주한 이 영화의 엔딩은 지영과 우철이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예를 들어, 우철이 퇴근하여 집으로 걸어가는 장면에서 우철을 제외한 모든 군중이 동질적인 방향성을 갖는 것과 달리 오직 우철만은 그 균질화된 흐름으로부터 이탈하는 이질적인 방향성을 갖는다. 우철의 몸짓은 군중의 기계적이고 일상적인 동작과 비교했을 때 부자연스럽다. 우철의 그러한 몸짓이 그가 지영과 암묵적으로 약속했던 오전 7~8시 사이의 만남을 위한 것으로 본다면, 그것은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랑에서 안식과 해방을 찾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영화와 사랑은 몸짓을 수사적으로 활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는 하나의 이미지에 어떤 의미를 고착시키기 이전에 무언극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원초적인 몸짓을 통해 특정 감정, 정서, 정동을 일으킨다. 사랑 또한 어떤 것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몸짓을 통해서 오직 두 사람 사이에서 공유될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를 창출한다. 사랑과 영화의 특이점은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내는 몸짓, 움직임, 행위가 있을 때 발생한다. 영화가 정지된 대상을 움직이게 하여 어떤 세계를 발생시키듯이 사랑은 오직 두 사람 사이에서 공유될 수 있는 약속의 시간, 공간, 시선을 드러내어 하나의 유일무이한 세계를 구축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낮과 밤>에서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등장하는 지영과 우철이 바닷가에서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은 판타지에 가까워 보이는 그래서 더 영화적으로 보이는 그런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극 중에서 지영과 우철이 바닷가에 갔는지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중요한 것은 관객인 우리가 그 엔딩 크레디트에 등장하는 장면을 통해 지영과 우철이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관객인 우리는 영화가 그리는 세계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고 싶은 습성을 갖고 있다. <우리의 낮과 밤>의 독특한 매력은 이 작품이 단순히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는 사랑에 관한 믿음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관련글) 1. 우리는 달팽이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 - <달팽이>(2020), 2022.04.21. 2. 나와 유령이 함께 하는 시간 - <탈날탈>(2018), 2022.05.31. 3. 타인의 그림자를 집어삼키는 법 - <햄스터 죽이기>(2021), 2022.06.29. 4. 얼굴 없는 영화, 등으로 말하는 영화 - <말투>(2020), 2022.07.27. 5. 사랑의 약속으로 하나가 되는 세계 - <우리의 낮과 밤>(2020), 2022.08.25. 6. 이 몸체의 주인을 찾습니다 - <매미>(2021), 2022.09.23. 7. 이것은 감자인가 아니면 고구마인가? - <감자>(2018), 2022.11.08. 8. 일상을 적시는 시간들 - <햇볕을 볼 시간>(2022), 2022.11.21. 9. 찢김의 고통을 극복할 날을 기다리며 - <자르고 붙이기>(2022), 2022.12.06.
(첫 번째 쪽) 가을 학기가 되자 oo일보사에서 주최하는 학생 계몽운동에 참가하였던 대원들이 돌아왔다. 오늘 저녁은 각처에서 모여든 대원들을 위로하는 다과회가 그 신문사 누상에서 열린 것이다. 오륙백 명이나 수용할 수 있는 대강당에는 전 조선의 방방곡곡으로 흩어져서 땀 흘려가며 활동한 남녀대원들로 빈틈없이 들어찼다. 폭양에 그을린 그들의 시커먼 얼굴! 큰 박덩이만큼씩 한 전등이 드문드문하게 달린 천장에서 내리비치는 불빛이 휘황할수록, 흰 벽을 등지고 앉은 그네들의 얼굴은 한층 검어 보였다. 만호장안의 별처럼 깔린 등불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도록 사방의 유리창을 활짝 열어젖혔건만, 건장한 청년들의 코와 몸에서 풍기는 운김이 우거진 콩밭 속에 들어간 것만치나 후끈후끈 끼친다. 정각이 되자, P학당의 취주악대는 코넷, 트럼본 같은 번쩍거리는 악기를 들고 연단 앞줄에 가 벌려 선다. 지휘자가 손을 내젓는 대로 힘차게 연주하는 것은 유명한 독일 사람의 작곡인 ‘쌍두취행진곡(雙頭鷲行進曲)’이다. 그 활발하고 장쾌한 멜로디는 여러 사람의 심장까지 울리면서 장내의 공기를 진동시킨다. 악대의 연주가 끝난 다음에 사회자인 이 신문사의 편집국장이 안경을 번득이며 점잖은 걸음걸이로 단 위에 나타났다. (...) 라고 심훈 이 1935년에 쓴 장편소설 <상록수>는 시작한다. 애플북스 「상록수」 소설가 심훈 은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는 내내 경성에 살았으며 그때 거기서는 많은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심훈은 단지 시네필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1926년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을 동아일보에 연재하였고, 그런 다음 영화를 배우기 위해서 이듬해 일본에 가서 영화감독 무라타 미노루(村田實) 밑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고 한다. 여기서 공부했다, 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관한 자료가 내게는 없다. 무라타 미노루는 영화학교 선생이 아니라 영화감독이다. 그에게서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연출부를 하는 것인데도 구태여 자료에는 공부를 했다, 고 되어있다. 한국영화에서 도제제도라는 방법이 식민지 시대의 영화현장에서 해방 ‘이후’에 남겨진 일본영화의 전통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약간의 추론. 쇼오치쿠 영화사는 1921년 쇼오치쿠 배우학교를 개조하여 쇼오치쿠 키네마 연구소를 만들었다. 여기에 아직 이십 대였던 무라타 미노루도 가세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그 첫 번째 영화로 니콜라이 고골의 소설 <밑바닥>을 각색하여 <거리의 영혼>을 찍었다. 이 영화는 (다소 놀랍게도 ‘이미’) < 인톨러런스 >의 영향을 받은 평행편집기법으로 연출되었다. 노엘 버치는 이 영화를 본 다음 감격하여 프릿츠 랑의 < M >이나(1930년) 칼 드레이어의 < 잔 다르크의 수난 >의 단계에(1928년) 이미 이르렀다고 썼다. <거리의 영혼>이 두 영화보다 먼저 만들어졌다는 점을 셈에 넣어주기 바란다. 그런 다음 닛카츠 영화사로 옮긴 무라타 미노루는 1924년 요시다 겐지로의 소설을 각색한 <세이사쿠의 아내>를 만들었다. 거의 결정적인 걸작. 이 영화는 마스무라 야스조가 1965년에 훌륭하게 다시 만들었지만 비교는 어림도 없다. 심훈이 1926년에 무라타 미노루 밑에서 ‘영화를 공부했’을 때 그는 <춘희>를 찍고 있었다. 심훈은 왜 무라타 미노루를 선택했을까. 심훈은 그에게서 무엇을 배웠을까. 아쉽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지 못했고, 그런 다음 돌아와서 심훈은 < 먼동이 틀 때 >를 자신이 각본을 쓰고 연출하였고 이 영화는 단성사에 개봉하였다. 한국영화사가 (프린트가 사라진) 걸작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아마 흥행은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심훈이 이듬해 조선일보에 기자로 입사했을 리 없다. 하지만 심훈은 영화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았다. < 상록수 >를 쓴 이듬해 1936년 심훈은 이 소설을 각색하여 영화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이것이 심훈의 마지막 행보이다. 그는 그해 9월 16일 장티푸스로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1926년 11월 29일 동아일보, 심훈「탈춤」 나는 하스미 시게히코가 아니다. 그는 플로베르에 관한 글을 쓰면서 마치 영화감독을 다루듯이 <마담 보바리>를 바라본다. 물론 ( 심훈 가까이 살았던) 현진건이나 이효석을 읽고 있으면 종종 어떤 문장의 수사들이 마치 이미지를 만지는 것만 같다는 인상을 받지만 그 대목들이 영화적으로까지 옮겨간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마찬가지로 <상록수>를 읽으면서 심훈이 영화감독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나는 무라타 미노루의 영화를 보았고 심훈의 (사라진) 영화는 (당연히) 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심훈이 이 소설을 어떻게 영화로 옮길 계획이었는지를 알 수 없다. 이루지 못한 심훈의 소망을 1961년 신상옥 이 영화로 만들었다. 주연은 최은희 와 신영균 . 두 사람이 채영신과 박동혁을 연기했다. 그런 다음 1978년에 임권택 이 다시 이 소설을 영화로 옮겼다. 새로운 커플. 한혜숙 과 김희라 . 물론 1978년은 이 소설을 다시 만들기에 좋은 시기였다. 나는 이 말을 부정적으로 하는 중이다. 거의 절정에 이른 새마을 운동. 농촌 계몽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소설. 게다가 그때는 영화진흥정책에 따라 반공영화, 새마을영화, 문예영화로 나눈 우수영화에 선정되면 외국영화 수입 쿼터권을 나눠주던 시기였다. 제작자들은 영화가 농촌에 가기를 희망했다. < 삼포가는 길 >을 새마을 영화로 둔갑시킨 마지막 쇼트를 기억하라. 교과서에 올라온 심훈이라는 이름. 누구나 읽어야 하는 소설의 명단. 일제 식민지의 탄압과 싸우면서 한편으로는 농촌 계몽에 온몸을 바친 선남선녀의 이야기. 민족주의와 근대의 (기괴한) 결합. 그해에 임권택은 < 족보 >와 < 상록수 >를 찍었다. 그리고 정말 이상한 두 편의 반공영화(라기보다는 차라리 실험영화처럼 보이는) <가깝고도 먼 길>과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를 만들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 네 편의 영화 중 오직 <상록수>만이 우수영화에 선정되지 않았다. 나는 그 선정과정에 얽힌 우여곡절을 알지 못한다. 아마도 임권택은 몹시 당황했을 것이다. 가장 안전한 선택. <상록수>는 새마을영화이면서 문예영화였다. 양수겸장. 그런데 빗나간 예상. 거기서 느꼈을 어떤 위기를 상상해주기 바란다. 그때 임권택의 영화들은 거의 대부분 개봉되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영화는 간판은 걸려있지만 영화는 상영되지 않았다. 사라져 가는 경력. 외부가 허용되지 않는 상황. 한국영화의 많은 감독들이 그때 자신의 경력을 거기서 끝냈다. 미미해지는 잔존의 영역.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있을 때 거기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에서 제외될 때의 사라져가는 존재의 기분. 그 곁의 예. <족보>는 미처 개봉도 하지 못하고 재개봉관으로 향해야만 했다. 하지만 제작사의 관점에서 <족보>는 제 임무를 다했다. 버려진 영화들. 수 없이 많은 1970년대 영화들은 그 과정을 따라갔다. 그 과정에서 허용된 미학적 성취들. <족보>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숨겨놓은 놀라운 미학적 경지에 가 닿았다. 거기에 담겨있는 힘. 거기서 다시 한 번을 원하는 의지. 이 말을 반복해서 하고 싶다. 다시 한 번. 임권택이 1970년대 국책영화의 폭력적인 요구 안에서 가까스로 끌어낸 예, 라는 긍정의 힘과 의지의 새로운 조화. 오직 그의 영화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긍정의 구도. 정확하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상록수>가 또 다른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1978년은 임권택에게 모든 점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상록수>의 첫장면 아마, 어쩌면 아마도, 임권택 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계몽의 서사로 따라가는 대신 신파의 감흥으로 가득 찬 비애극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그의 독서 체험은 < 장군의 아들 2 >에서 나온다. 김두한이 출판사 앞을 지나가다 계용묵 선생으로부터 자네 김두한이지, 책 좀 읽고 다녀, 라는 핀잔을 들은 다음 자신이 머무는 종로 운당여관에 두 청춘남녀 학생을 부른다. 문맹이었던 그는 그들에게 심훈 의 <상록수>를 낭독시킨다. 대낮에 시작하여 밤늦은 시간까지 듣던 김두한은 죽어가면서 채영신이 박동혁을 그리워하는 대목에서 눈물을 훔쳐 닦으면서 중얼거린다. 죽여주는구나. 죽을 만큼 슬픈 이야기. 그런데 이상하게도 임권택의 < 상록수 >는 슬프게 찍히지 않았다. 단지 관객의 슬픈 감흥을 불러내는 데 실패했다는 뜻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 이야기를 슬프게 접근하지 않았다. 구태여 이 영화의 기분을 설명해야 한다면 차라리 우울하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물론 슬픔과 우울을 엄격하게 나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사이를 우울증이 가로막아 나서고 있고 그 둘은 그 상태로 불투명한 채로 남는다. 슬픔은 종종 자아가 텅 비었는데 주체가 남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 말을 빌려서 우울은 이미 잃어버린 대상 앞에서 즐기는 주체의 외설적 긴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상실. 임권택은 <상록수>에서 어떤 승리도 거둘 생각이 없다. 그는 일단 이야기를 찌그러트리고 그런 다음 두 주인공의 운명을 따라가는 척하다가 완전히 바꿔놓는 쪽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데로) 박동혁과 채영신은 교육을 받고 개화한 다음 각자 자신의 고향에 돌아가 개혁에 몰두한다. 그러므로 이야기는 두 사람의 고향 이야기를 오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채영신은 몸이 아파서 그만 먼저 세상을 떠난다. 남은 박동혁은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더욱 힘을 모은다. 그래서 “... 오호, 너희들은 기나긴 겨울에, 그 눈바람을 맞구두 싱싱하구나! 저렇게 시푸르구나!” 라고 감탄을 한 다음 상록수 그늘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었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 하지만 임권택의 <상록수>에서 박동혁은 일본의 토지개혁정책에 동조하지 않아 음모에 빠진 채 경찰서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완전히 실성한 채 풀려난다. 그러는 동안 채영신은 소설 그대로 점점 몸이 아파 죽어간다. 마지막으로 채영신이 박동혁을 만나지만 그건 아무 의미 없는 작별이다. 채영신은 죽어가고 박동혁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절반은 심훈을 따라가지만 남은 절반은 심훈을 버리는 결정을 내린다. 채영신과 박동혁의 작별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내가 무언가 소설을 잘못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14개로 나눈 이야기에서 12번째 장(章) ‘천사의 임종’부터 다시 읽었다. 만일 이런 식으로 말해도 괜찮다면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은 영화였다. 물론 그것이 영화의 잘못은 아니다. 소설을 빌려온 영화가 어느 대목부터 원작을 버리는 예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흔하다. 아니, 차라리 이것이 소설과 영화가 맺어온 우정의 방식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낱말이 이미지 안에서 반대로 활동한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야기만을 따라간다면 둘 사이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이 비애극적인 연인들이 죽음의 위력 앞에 던져졌을 때 심훈 은 거기서 그것을 뛰어넘고 승리하는 계기를 찾으려고 한다. 반대로 임권택 은 무기력하게 그걸 받아들이면서 움츠러들고 마침내는 견디지 못해 부서져 나가기 시작한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하고 싶다. 심훈은 슬픔의 충만함에 만족한 다음 그걸 대가로 하여 그 너머에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임권택은 희생의 셈에 실패한 채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서 우울한 상태에 젖어들어 거기에 그냥 머문다. 나는 지금 그 둘 사이의 우열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내가 보는 것은 둘 사이의 운명의 서사적 차이가 아니라 그 운명의 시간적 차이이다. 무엇이 반복을 봉쇄하는가. 나는 그 사이에 어두운 바탕이 있다는 기분이 든다. 채영신과 박동혁이 살았던 시대에 이 소설을 쓴 심훈이 운명 안에서 가까스로 희망을 보려던 신비한 합리화로부터 할 수 있는 한 멀리 떨어져서 임권택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재현하면서 운명의 윤곽이 어떻게 역사를 대상으로 자신을 유지하는지를 쳐다본다. 이때 영화는 일제 식민지 강점 하를 다루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새마을 운동의 시대를 우울하게 비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복하는 운명극의 기분. 공허해진 세계. 그들은 어린 상록수를 키워야 한다는 의무감을 맹세하듯이 몇 번이고 말하지만 세계는 여기에 응답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심훈은 일제 식민지시대에 <상록수>를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임권택은 새마을 운동시대에 < 상록수 >를 이렇게 찍을 수밖에 없다. 같은 이야기 안의 차이. 차이 안의 차이. 그 차이의 유기적 재현을 한 번 더 만날 때, 그래서 그사이에 놓인 매개의 요구가 반복이라는 복종을 요구할 때 우리는 거절해야 한다. 내가 영화 <상록수>에서 보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한 번 더, 라는 반동의 의지이다. 임권택은 심훈의 <상록수> 앞부분을 성큼 건너뛴 다음 70쪽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어디를 자를 것인가. 장편소설을 만나면 영화는 책장을 이리저리 넘기기 시작한다. 소설은 정월 대보름이 지나고 삼 개월 뒤 긴 가뭄 끝에 비가 내린 다음 날로 되어있지만 영화는 그저 화창한 초여름 어느 날로 시작한다. (소설) 이윽고 파아란 뺑끼칠을 한 똑딱이가, 선체를 들까불며 들어온다. 갑판 위에서 손수건을 흔드는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가 보인다. 동혁은 손을 높직이 들며 허공을 저었다. 조가만 거루는 선객과 짐을 받아 싣고, 선창으로 들어와 닿았다. 동혁은 반가운 웃음을 얼굴 가득히 담고, 영신의 손을 잡아 뭍으로 끌었다. “이번 비, 참 잘 왔죠?” 한 마디가 첫밗에 하는 영신의 인사였다. “잘 오구말구요. 그래 그 동안 얼마나 고생을 허셨에요?” 하며 동혁은 얼굴빛을 살핀다. 상상하던 것보다는 나아도, 어글어글하던 눈이 전보다 커다래 보이는 것은, 그 복성스럽던 얼굴의 살이, 그만큼 빠진 탓일 듯. 드러나 반가운 김에 상기가 되어 그런지, 혈색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을 보고, 위선 안심을 했다. (중략) 소설은 채영신과 박동혁이 만나는 데서 시작해서 그 두 사람이 농촌 계몽운동에 뜻을 모으고 연인으로 발전한다. 영화는 그 두 사람이 연인으로 만나서 자신들의 감정을 확인한 다음 (거기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연인으로 머문다. 임권택 이 심훈 의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그러나 소설 안의 균형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상록수>를 다시 읽어나간다. 이때 임권택은 이 파란만장한 이야기의 굴곡을 거의 없애버린 다음 마치 제자리를 뱅뱅 도는 것만 같은 방식으로 두 연인을 가둔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박동혁의 고향인 한곡리를 하나의 원으로 하고 채영신의 고향인 청석골을 다른 하나의 원으로 한 다음 두 사람이 번갈아 두 개의 원 사이를 오가는 왕복운동만이 반복적으로 진행될 뿐이다. 각자의 원은 각자의 운동을 하면서 지리적 경계를 두고 채영신과 박동혁을 사이에 둔 교집합이 있긴 하지만 어떤 교환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곡리와 청석골은 다소 대조적이긴 하지만 그 둘 사이의 대비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 두 개의 원의 운동에 대해서 그저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임권택은 이상할 정도로 채영신과 박동혁의 동선을 따라가지 않았다. 한쪽을 진행하다가 잠시 후에는 다시 다른 한쪽이 진행된다. 그래서 마치 두 개의 원이 이질적으로 보일 정도이다. 물론 끝까지 그 둘을 그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순간에 그 둘을 수렴시킬 것인가. 임권택은 여기서 갑자기 두 개의 원을 두 개의 다른 차원으로 옮겨놓는다. 수렴에 관한 거의 결정적인 순간이 마지막에 기다리고 있다. 비애의 순간. 임권택 은 희극의 순간에는 언제나 실패하지만 비애의 순간에는 그것이 품고 있는 병든 감상주의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역사의 고통스러운 상실을 불러낸다. 비유의 시간. 하지만 무엇에 대해서? 대상을 괴상한 의미의 노예로 삼는 시간. 그때마다 임권택의 주인공들의 몸이 부서지거나 기관의 일부가 훼손되거나 때로 감각의 일부를 상실한다는 것을 떠올려주기 바란다. < 상록수 >는 그중에서도 가장 처참하고 아름다운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영화는 소설에 전혀 없는 부분을 찍어나가기 시작한다. 면회 채영신은 병색이 짙은 몸을 끌고 비를 맞으면서 멀리 떨어진 경찰서 지하실에 붙잡힌 채 고문을 받고 있는 박동혁을 만나러 간다. 채영신은 마음을 조리며 그를 만나러 지하실 방에 들어선다, 라고 해야겠지만 영화는 그 반대로 찍혔다. “3분 동안만 면회를 허락하겠소. 증거가 없을 뿐 이 자의 죄과를 잘 알고 있소. 순순히 자백을 하면 가벼운 처벌을 받게 해주겠다는데도 끝내 자백을 않고 우리 취조관 진을 빼놓고 있소. 약혼자 되시는 분이 잘 타일러서 우리도 이 자로부터 손을 털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소”라고 형사가 채영신에게 말하지만 그 말은 화면 바깥에서 (voice_off) 주인 없는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이때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형사의 언질은 그렇게 장면 위에 내리 누르듯이 놓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목소리는 어떤 저항도 불가능한 절대적인 권력을 얻게 되고 목소리는 마치 전체의 상황을 요약하는 하나의 지배적인 쇼트(master_shot)처럼 기능한다. 채영신이 고문실에 들어설 때 영화는 채영신이 박동혁을 보는 대신 고문을 받고 지친 박동혁이 고문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지금 막 들어서고 있는 채영신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 신scene을 시작한다. 나쁜 시작. 여기서 갑자기 동선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 그런 다음 마치 조건반사적인 기계적인 작동처럼 쇼트들의 순서는 채영신을 따라 고문실에 들어선다. 그런데 갑자기 마치 다시 시작하기라도 하듯이 박동혁에게로 옮겨 들어서는 채영신을 바라보는 자리에로 옮겨간다. 이때 가장 이상한 것은 두 사람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기울어진 구도이다. 갑자기 잃어버린 균형. 이제까지 < 상록수 >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장면을 반듯하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정면과 45도를 번갈아 진행시켰으며 두 사람 사이의 어떤 감정적인 동요도 느끼지 못한다는 듯이 평행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박동혁이 균형을 잃고 앉아있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카메라가 수평을 잃는다. 이 장면은 심리적인 표현주의를 따르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잃어버린 균형이 아니라면 동선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킬 수 있었을까. 그 방은 매우 단조롭다. 텅 빈 사각의 방. 길게 줄을 늘어뜨린 채 매달린 전구. 가운데 놓인 책상. 가장 간단한 미장센. 고문실에는 더할 게 없다. 거기에 앉아있는 박동혁. 그저 한눈에 보기에도 그동안 심한 고문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모습. 물론 어떻게 말문을 꺼내 들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채영신에게 갑자기 박동혁은 돌아가라고 말한다. “빨리 돌아가요, 돌아가서 청석골 학원의 어린나무들을 돌봐요. 긴긴 눈보라를 맞고도 시들지 않는 싱싱한 상록수가 클 때까지 쓰러져선 안 돼요. 이자들은 내가 죄인이 될 때까지 죄인으로 몰고 가고 있는 거요. 이게 모두 나를 빼앗긴 설움이오” 채영신은 그 말을 멈추게 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 여기서 이상한 장면이 갑자기 나타난다. 쇼트는 말하고 있는 박동혁과 듣고 있는 채영신 둘 사이를 단순하게 등 뒤에서 오간다. (over_the_shoulder_shot) 그러다가 갑자기 박동혁을 바라보는 채영신의 얼굴을 왼쪽 구석으로 몰아넣은 다음 마치 카메라의 오른쪽이 주저앉은 것만 같은 구도의 쇼트가 이 일련의 연쇄 속에 침입한다. 이 쇼트는 박동혁과의 물리적 거리와 둘 사이의 심리적 거리 양쪽 모두로부터 탈구되어 있다. 얼핏 보면 단지 박동혁의 등 뒤에 찍던 채영신의 얼굴을 좀 더 자세하게 보기 위해 다가간 것처럼(close_up) 보이지만 이때 상상선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만일 그렇게 진행하고 싶었다면 채영신의 얼굴은 오른쪽에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프레임에서 왼쪽으로 온 그 얼굴은 심지어 거의 화면 바깥으로 빠져나갈 것만 같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다. 차라리 영화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고 요구하듯이 그렇게 가까스로 거기 그렇게 잠시 머물 때 나는 이 쇼트를 침입이라고 불렀다. 새로운 힘. 복종하기를 거절하는 반동적인 힘. 파졸리니라면 훨씬 잘 설명했을 그 힘. 어떻게 반동적인가. 여기에는 세 가지 서로 다른 표현의 속성을 지닌 상태가 생겨난다. 우선 첫째, 이 쇼트는 문법적으로 빠져나왔기 때문에 그 자체로 존재한다. 그 순간 채영신의 얼굴은 이 신 안에서 갑자기 하나의 고정점 같은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빠져나온 쇼트가 연쇄망 안에서 이미지가 된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나는 지금 쇼트가 아니라 이미지라고 말했다. 쇼트에서 이미지로의 후퇴. 연쇄망 바깥에서 일어나는 작용. 말하자면 이 신 전체의 작동방식에 마치 채영신의 얼굴의 이미지가 침입하는 것처럼 이루어질 때 그건 단지 하나의 쇼트가 아니라 이 신의 얼룩이 된다. 두 번째, 서로 교환하던 두 사람 사이의 연쇄적인 쇼트에서 이 난데없는 쇼트는 채영신을 갑자기 박동혁으로부터 빼내듯이 관계의 바깥으로 데려간다. 주고받던 쇼트가 연속성을 중단하는 순간 박동혁의 계열의 쇼트와 채영신의 계열의 쇼트는 서로 분리된다. 이때 이 분리는 이제까지 진행되어 온 이야기의 계열과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이미지의 계열이라고 불러보고 싶어진다. 처음에는 이 둘 사이의 차이가 분명하지 않았지만 여기서부터 마치 두 개의 서로 다른 차원이 존재하는 것처럼 서로 평행하게 서로 분리된 두 개의 계열이 공존하기 시작한다. 세 번째, 여기서 갑자기 이루어진 파괴는 그것을 대가로 하여 이야기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영화가 감상하고 있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먼저 감정과 감상의 차이를 충분히 음미해주기 바란다. 박동혁의 진지한 표정, 웅변적인 대사에 어울릴법한 채영신의 경청하는 쇼트 대신 그 말을 조금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듯한 카메라의 태도는 마치 그 둘 사이에 다른 무언가가 개입하고 있는 것만 같은 틈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갑자기 그 둘 사이가 묶이지 않는 것을 한데 묶어놓은 것 같은 어긋남을 보여준다. 이때 그 틈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두 개의 쇼트가 단지 문법적으로 어긋났을 뿐만 아니라 그 둘 사이에 어떤 시간적인 진공상태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둘이 동시적으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박동혁을 채영신이 사후적으로 보고 있는 것만 같은 착시가 벌어진다. 암전의 반복 하지만 이 순간이 길어지면 영화는 부서질 것이다. 그 둘을 다시 강제적으로 하나로 묶기 위해서 하나의 통일된 행위가 필요해진다. 지켜보던 일본 형사는 그런 박동혁을 채영신의 눈앞에서 무자비하게 때라고 걷어차기 시작한다. 임권택 은 이 장면을 단순하게 찍었다. 하지만 이 단순한 장면 단순한 공간에서 형사가 박동혁을 때리기 시작할 때 매달려있는 전구를 건드리고 그 전구가 좌우로 진자운동을 시작하자 빛과 그림자가 번갈아 나타나고 사라지면서 갑자기 이 공간 전체가 바로크적인 미장센으로 바뀐다. 일그러진 공간. 어둠 속의 사라짐과 나타남. 이때 핵심은 이 장면이 채영신의 눈앞에서 연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형사가 채영신에게 면회를 허락한 것은 어떤 호의를 베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박동혁과 함께 일본의 조선반도 식민지 정책에 반대하면서 계몽운동을 하는 채영신에게 고문을 전시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채영신 앞에서 박동혁은 나타나고 사라진다. 연속된 행위 안에서 이미지의 비연속성. 그녀 앞에서 박동혁은 마치 포르-다 게임을 하는 것처럼 보여 진다. 면회 후 새로운 계열은 새로운 장면을 출현시킨다. 박동혁을 면회하고 돌아오는 채영신을 영화가 멀리서 물끄러미 쳐다보는 장면은 너무 이상해서 어떤 감정을 느끼기는커녕 그 장면 자체가 마치 그 무언가에 대한 표현처럼 보인다. 단순하게 이 장면을 상징의 예술적 표현이라거나 알레고리의 기술적 압축이라고 부르기에 망설여지는 그 어떤 것이 거의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것만 같은 이 신 안에서 작동하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장면이 무언가를 환기시키고 그 안에 이미 운명을 예고하는 것만 같은 인상을 단번에 붙잡아낸다. 채영신은 언덕에서 걸어 내려오고 그 오른쪽 곁에 나무 몇 그루가 무심하게 서 있을 뿐이다. 카메라는 휘청거리면서 그 언덕길을 걸어 내려오는 채영신을 돌볼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마치 그녀가 쓰러져도 할 수 없다는 듯한 거리. 멈추어선 카메라. 그 언덕길을 채영신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저 보지 않고도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길. 이때 구도는 화면 대부분을 하늘이 차지하고 있다. 구름 낀 사이로 조금 드러난 파란 하늘. 그렇게 언덕길을 내려오던 채영신은 그만 지쳐 쓰러지고 만다. 아무도 없는 들판과도 같은 언덕. 쓰러진 채영신이 고개를 들어 보는 것은 구름 낀 하늘이다.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박동혁의 목소리가 그녀를 일으켜 세운다. 마치 (구슬픈) 합창처럼 그 목소리 뒤에서 들려오는 (박동혁이 작곡한) ‘애향가(愛鄕歌)’. 채영신의 희미한 미소. 하지만 이 노래가 그녀에게 새로운 힘을 주기는커녕 생명을 앗아가는 듯한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가까이 다가온 죽음. 몰락해가는 기운 속에서 잠시 동안 바라보는 구원의 빛은 죽음의 표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말하자면 어떤 약속. 이제 당신은 할 만큼 했어요. 그러니 부디 짐을 내려놓아 주세요. 카메라가 채영신을 도와주는 대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저 멀리서 지켜볼 때 내가 느껴보는 것은 이 소설을 이미 읽은 자의 측은지심이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결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이 장면을 그렇게 쇠락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때 여기서 보는 것은 어린 상록수들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쇠락해가는 역사 안에서의 수난의 시간이다. 채영신은 청석골에 돌아와 박동혁의 말을 전하고 그냥 쓰러진다. 그날 밤 박동혁은 고문으로 인해 완전히 실성한 채로 풀려난다. 그런 다음 영화는 박동혁이 실성해서 머물고 있는 한곡리와 채영신이 몸져누워있는 청석골을 단순하게 오간다. 채영신은 의사로부터 “알릴 데가 있으면 기별하시오”라는 마지막 통보를 받는다. 하지만 박동혁은 여전히 고문 후유증을 벗어나지 못한다. 채영신은 마지막 가는 길에 박동혁을 보고 싶어 하고 그래서 먼 길 제자인 원재 청년이 달려가 청석골 마을 사람 한 명과 함께 박동혁을 데려온다. 소설은 채영신이 도망치듯이 일본에로 떠났다가 심신이 더 쇠약해져서 청석골로 돌아와 다시 농촌계몽사업을 하지만 각기에 맹장염이 도져 미처 아직 경찰서에서 풀려나지 못한 박동혁을 보지 못하고 숨지는 것으로 다한다. 그런 다음 오일장을 치르는 가운데 사흘째에야 박동혁은 옥에서 풀려난다. 그가 소식을 듣고 청석골로 달려와 마주치는 것은 학교 ‘교단 위에 검정 보를 덮고 가로누운 영구’이다. 소설과 반대로 영화에서 채영신과 박동혁은 만난다. 하지만 채영신은 죽어가고 박동혁은 실성한 채로 만난다. 나는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할 것이다. 여기에는 원작과의 대결관계나 반대로 가까스로 해피엔딩을 만들겠다는 의도 따위는 없다. 그래서 반대, 라는 표현 대신 소설과 상관없이, 라고 설명하고 싶다. 상관없다는 말. 임권택 은 원작에서 무얼 꺼내 들어서 이야기의 어떤 진실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신 거기까지 따라온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 나는 이미 경찰서 고문실에서부터 이 영화가 두 개의 계열로 진행된다는 말을 했다. 쇼트의 계열과 이미지의 계열은 서로 만날 수 있을까. 하나가 만나고 싶어 할 때 다른 하나가 그걸 알지 못한다. 하나가 보고 싶어 할 때 다른 하나가 그걸 알지 못한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잡아당길 때 다른 하나가 그걸 알지 못한다. 여기서 채영신과 박동혁의 만남이 그 두 사람의 만남이 아니라 채영신과 채영신이 만나보고 싶어 하는 박동혁과 자신이 박동혁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고문에 의하여) 잃어버린 박동혁 이 세 사람이 함께 만나는 자리라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너무 쇠약해져서 이제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채영신은 자기 앞에 도착한 사람이 박동혁이라는 건 알아보지만 지금 그가 실성해버렸다는 건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기 앞에 와 있는 이 사람이 눈앞에 몸만 와 있을 뿐이지 텅 빈 대상이라는 것을 모른다. 마치 인형과도 같은 박동혁은 자발적인 의지로 아무 것도 못하고, 아무런 판단도 내리지 못하고, 아무런 태도도 보여주지 못한다. 임권택은 이 장면을 단순하게 찍었다. 박동혁은 마을 사람의 손에 이끌려 방에 들어와 앉는다. 채영신은 방에 들어서는 박동혁을 바라본다. 하지만 박동혁은 실성한 채 초점 없이 허공을 응시할 뿐이다. 그래서 이 신에는 박동혁의 시선 쇼트(point_of_view_shot)가 없다. 반면 박동혁이 실성한 것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깊은 병색인 채영신의 죽어가는 시선 안에서 세상은 점점 희미해져 갈 것이다. 하지만 임권택은 채영신의 시선에 별다른 기술적 조작을 가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 두 시선의 교환은 단지 기계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며 박동혁과 채영신 두 사람 사이는 일종의 부등가 교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중이다. 박동혁은 이 방에 들어서서 이 자리에 앉았지만 채영신을 그저 알아보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녀를 바라보지도 않는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박동혁의 쇼트는 채영신의 쇼트를 마주 보지 않는다. 아니,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다. 채영신은 박동혁을 알아보지만 쇠약해진 그녀의 시선이 고문 후유증으로 실성해버린 박동혁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저 간절하게 박동혁의 쇼트에 말을 걸고, 또 걸고, 또 걸 뿐이다. 대답해주세요, 제발 대답해주세요. 그러므로 이 둘 사이는 한쪽의 오해를 기반으로 한 관계만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때 박동혁의 계열은 완전히 중단된다. 혹은 쇼트의 진행이 더 이상 안 된다. 반대로 채영신의 계열은 완전히 고립된 것이 되어버린다. 그녀가 말을 걸지만 박동혁은 그 말을 한마디도 듣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녀가 하는 말은 사실상 그녀 자신에게 돌아오는 말이다. 이때 쇼트의 성질로 말하면 채영신은 일종의 재귀 대명사의 반복처럼 보인다. 그래서 신 안에서 박동혁과 채영신이 함께 만나지만 그 둘의 쇼트는 각자의 계열을 따라가기만 할 뿐이다. 임권택은 그 사실을 잘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저 단순하게 반복적으로 둘 사이의 쇼트를 오고 간 다음(shot_reverse_shot) 채영신이 대사를 시작하자 그저 그녀를 바라본다. 아니, 그저 그녀에게 머문다. 이때 수수께끼 같은 시선은 채영신이 박동혁의 손을 붙잡고 긴 대사를 시작할 때 그녀를 박동혁이 바라보는 대신 박동혁의 등 뒤에서 바라본다는(over_the_shoulder-shot) 것이다. 누워있는 그녀를 그렇게 찍으면 그녀 쪽에서는 다시 마주 볼 방법이 없다. 그런데도 그렇게 했다. 두 개의 쇼트는 그렇게 마주 볼 수 없는 불가능의 자리에 가야만 하는 것일까. 그녀가 애처롭게 대사를 낭독하기 시작했을 때 무언가 이 쇼트는 그렇게 등에 걸린 채 느리게 다가가는 렌즈의 운동 때문에(zoom_in) 무언가 머뭇거리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의 대답이 아니다. 채영신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아이들을 부탁해요”라고 한 다음 “약속해주세요”라고 반복한다. 하지만 박동혁의 대꾸는(reverse_shot) 아무 말 없이 허공을 응시하는 무표정한 침묵뿐이다. 알지 못하는 채영신은 다시 한 번 “약속해주세요”라고 거의 꺼져가는 목소리로 힘겹게 요구한다. 이때 갑자기 다시 한 번 박동혁의 얼굴로 돌아가는 대신 박동혁의 뒤로 가서 앉아있는 그의 등 전체를 보여준다. 그리고 마치 쇼트의 구도 안에 침입하기라도 하듯이 (옆에 앉아있던 박동혁의 마을 친구의) 왼손이 그 등을 따라서 조심스럽게, 행여 들킬세라. 느리게 박동혁의 뒤통수를 향해 거슬러 올라간다. 손은 지금 무엇과 결합하려는 것인가. 누구라도 이 손이 지금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운동. 이 갑작스러운 손의 운동은 누구라도 깜짝 놀랄 만큼 아름답고 슬프다. 그렇게밖에 달리 말할 수 없다. 그런 다음 이 손이 박동혁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때 이 긍정은 단지 채영신을 만족시키려는 목표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긍정의 힘은 이제까지 두 개의 계열로 나뉘어 진행되어 온 이미지의 계열의 부름에 쇼트의 계열이 응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다. 임권택이 여기서 힘들 사이의 관계를 정확하게 구분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신 안에서 서로 다른 차원을 공존시키면서 파토스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서 그의 모든 영화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한순간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 상록수 >를 언제나 < 족보 >와 함께 보아야 한다. 두 편의 영화가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했거나, 혹은 원작소설을 각색했거나, 또는 같은 해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아무 관계가 없다. 두 영화가 같은 여배우 한혜숙 을 주연으로 해서 만들었다거나 두 영화가 농촌을 무대로 진행된다는 사실도 아무 상관이 없다. 이때 임권택 은 두 편의 영화에서 조심스럽게 쇼트의 성질에 대해서 탐구하기 시작했다. 나를 감동시킨 두 가지 예. 박동혁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그 손. (<족보>에서) 어느 초여름 날 무심하게도 포풀라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길을 따라 걸어오는 설진영 노인을 바라보는 쇼트. 나는 약간 망설이면서 이렇게 설명하고 싶어진다. 이제까지 임권택은 쇼트가 결합하여 신이 어떻게 하나의 사건을 만드는지를 물었다. 그 사이의 조화. 그들 사이의 화음. 하지만 하나의 차원. 여기서부터 하나의 신이 두 개의 차원을 얻기 시작했다. 이때 쇼트는 종종 신 안에 침입해 들어오는 불순물을 허락하거나 혹은 쇼트 자체가 갑자기 세상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므로 신 안에서 쇼트는 어떤 원근법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여기엔 쇼트가 바라보는 영화와 영화가 바라보는 이미지 사이의 간극이 생겨났다. 임권택은 그 간극을 그냥 내버려둔 채 자기의 방법을 밀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벤야민은 내게 간명하게 충고한다. 인식에 있어서 방법이란 영유대상을 획득하는 길이지만, 진리에 있어서 방법이란 제시 자신의 제시이다. 방법의 대가들. 어쩌면 영호욜뇩예疫萱?역사이다. 좀더 단순하게 말하겠다. 방법이 결과이다. 간단한 예. 오즈의 방법. < 오차즈케의 맛 >. 로셀리니의 방법. < 유럽 51 >. 혹스의 방법. < 몽키 비즈니스 >. 1952년의 세 개의 방법. 이때 지성은 방법을 통해서만 영화를 구성하는 표현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며, 표현이라는 쇼트가 그때 방법의 속성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방법을 정식화시키기 위해서 먼저 방법을 작동시키는 장면을 만나야 한다. 나는 임권택의 방법으로부터 임권택이라는 방법에로 옮겨가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이것이 목표이다. (계속) 추신_ 인용한 대목은 애플 북스에서 ‘한국문학을 권하다’ 전집 중 다섯 번째로 2014년 6월 16일에 나온 판본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사용된 쪽수는 모두 이 판본에 따른다. 또한 인용 판본에 따라 1936년에 쓰인 일부 당시 문장을 2014년에 독자를 고려하여 고친 대목도 역시 그에 따랐다. 그러나 문단 나누기는 임의로 이어 붙였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명기하지 않았다. 1978년 105분 컬러 1.66 감독 임권택 화천공사 각본 김강윤 촬영 이석기 조명 정덕규 편집 김희수 음악 정민섭 한혜숙 채영신 김희라 박동혁 이일웅 김형자
“그때는 최고로 안 팔리는 감독이었어요, 그 무렵은 영화가 불황이었고, 하여튼 없었어요, 영화 하자는 사람도 별로 없고, 나도 그 시기에 크게 열을 내서 하고자 하는 의욕도 잃었고, 그래서 영화가 걸리면 그냥 적당히 하고,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그러던 때였어요. 심리적으로도 힘들었고, 그 전에는 영화를 만들면서 다른 데서 안 해본 것도 해보고 했는데, 전혀 그럴 생각도 없고, 그 무렵에야 비로소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 삶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아마 내 삶을 자각하면서 그래서 만든 첫 번째 영화가 < 잡초 >(1973)일 거예요, 그래서 이 영화가 이전에 만든 영화들 사이에 처음으로 어떤 공백 같은 것이 생겼어요. 그건 내게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단지 영화를 준비한다기보다는 심리적인 시간이라고 할까” 없었다는 말. 그 말에 감도는 차가운 감정. 거의 희미해진 기억. 마치 의도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종종 외면하려는 듯한 제스처, 혹은 그로부터 취하려는 일정한 거리. 할 수만 있다면 더 멀리. 그렇게 그 이전 영화들에 대해서 시종일관 무뚝뚝하게 대답하다가 <잡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치 맑은 정신이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씩 마치 어제 일처럼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반문하듯이 질문했다. “그렇다면 50편의 습작을 만들었다고 표현해도 되겠습니까?”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단연코 습작이었어요” 1973년 그해 임권택 은 50번째 영화 < 잡초 >를 만들었다. 여기서 만들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 모두이다. 하나는 그 자신이 연출했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자신이 제작했다는 뜻이다. 이 영화는 그 자신이 제작한 첫 번째 영화이다. (그때) 나는 질문을 하다 말고 여기서 잠시 멈추었다. 그런 다음 그 결정을 느껴보고 싶어졌다. 이미 49편을 만든 영화감독. 1962년에 첫 영화를 만든 다음 12년이 되던 해. 자신의 삶, 그 삶의 진동, 감독으로서의 자신이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를 성찰해보기 시작한 순간과의 대면. 말 그대로 창조의 새로운 도약. 모든 예술가들이 그 자신이 예술가임을 자각하는 필연적인 시간. 말하자면 절대적인 요구. 그런 다음 자기가 만들어낸 창조의 세계가 홀로 서게 만드는 일.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잡초>를 볼 수 없다. 임권택 감독님 그 자신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다. 이 영화의 스틸을 볼 때마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어디선가, 이를테면 다른 영화를 보기 위해서 동시상영을 보던 중에, <잡초>를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 대신 나는 몇 차례이고 이 영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거의 절망적인 상황. 비참한 지경. 그때 임권택 은 놀랍게도 자기에게서 가장 멀리 있는 힘을 끌어당겼다. 영화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 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대결. 나는 그것이 단번에 성공적이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영화는 비로소 영화가 되는가, 라는 질문. 임권택은 (그 자신이 스스로에게) 가장 바닥에 내려앉았다고 판결문을 내린 다음 그 질문을 끌어안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된다. 그는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이 질문을 꺼내든 것이 아니다. 반대로 지금 자기의 자리를 부정하기 위해서 이 질문을 끌어당긴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공격하기로 결심하였다. 공격?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때 그가 공격하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제까지의 모든 습관. 습관? 우리는 영화를 만드는 일이 종종 집을 세우는 일에 비유된다는 자크 리베뜨의 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프레임이라는 사각형. 그것 앞에 세워진 네 개의 면. 그 안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는 동선. 그때 어디서 어디를 보느냐의 문제. 방향. 그 안에 세워진 수많은 문들. 어느 문이 열릴 것인가. 어느 문으로 들어올 것인가. 그러나 이때 집이 세워지면 그 집은 동시에 연출의 감옥이 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여기에 일단 갇히면 그때부터 이 집에서 맴돌기 시작한다. 예술에서 가장 두려운 말, 안주. 우리는 위대한 예술가들이 종종 자기 집을 불태우고 낯선 땅에서 새로운 집을 끊임없이 세웠다는 이야기를 떠올려야 한다. 말하자면 모험. 그러나 대부분 그냥 집에 머물 것이다. 가까스로 세운 집. 자기가 세운 집. 하나의 집이 세워질 때 그 안에 들어서는 순간을 상상해보자. 이때 영화는 그 집에서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의 반복이다. 그리고 반복은 곧 습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예술에서 좋은 습관이란 무엇일까. 그런 건 없다. 오로지 나쁜 습관만이 있을 뿐이다. 나쁜 습관과 더 나쁜 습관. 그때 더 나쁜 습관이란 무엇일까. 그건 자기 집에 살면서 남처럼 살고자 흉내 내면서 자기 집을 남의 집의 모습으로 끊임없이 고치고 부수고 그런 다음 자기의 집 위에 다시 남의 집을 세우면서 그 안에서 남의 집에 사는 시늉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순간 작동하기 시작하는 예속성. 그 무시무시한 힘. 두뇌와 의지 사이의 선을 잘라낸 다음 의지를 복종시키기기 시작하는 구조들. 이미 결정된 방. 임권택은 자기 집에 살면서, 그 집에서 48번, 혹은 49번이나 살면서, 점점 더 지쳐가면서, 이 집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고 그 자신에게 말했다. 살 수 없다는 말. 그때 그 말은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다는 뜻이다. 다시 한 번 1973년 그 해. < 잡초 >를 만들기로 결심하기 직전. <잡초>앞에 놓여있는, 하지만 같은 해에 만들어진 두 편의 영화. < 대추격 >, 혹은 < 장안명기 오백화 >. 나는 둘 중 어느 쪽이 먼저 인지 알 수 없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나는 임권택이 48번, 혹은 49번째 살았던 그 집에 가보고 싶어졌다. 그가 정말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로워진 영화, 단지 실패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가 그 집이 자기를 잡아먹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하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어쩔 수 없이 만든 영화, 하지만 그런 다음 더 이상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영화. 어떤 기쁨도 없이, 심지어 고통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그렇게 그 어디서도 힘을 끌어낼 수 없을 때, 그런 다음 삶이 무언가에 복종되어버린 자리. 나는 <장안명기 오백화>를 선택했다. 왜냐하면 <대추격>은 지금 우리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라진 임권택의 24편의 영화중의 하나. 영화의 줄거리는 일제 강점하 경성의 유명한 요정 명월관에서 시작한다. 이 말은 1973년 한국영화들 사이에서 아무데서나 시작한다는 뜻이다. 아무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이름 명월관. 1909년 경성 종로구 세종로에 세워진 다음 1918년 5월 24일 화재로 소실된 이후 돈의동 139번지에 다시 세워진 요정. 1919년 기미독립선언 이후 종종 독립운동 지사들의 연락처로도 사용되었다고 알려진 장소. 하지만 사실상 영화 안에서 의미가 없는 지표. 다소 지루할 지라도 나는 약간의 첨언을 더해서 이 영화의 줄거리를 먼저 소개하고 싶다. 아니, 차라리 한국영화사의 저편에서 불러내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임권택 자신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 사라진 기억. 죽어버린 기호들. 몇 차례이고 질문했을 때마다 심지어 내가 그런 영화를 찍었나요, 라고 반문했던 영화. 오로지 그 시간에만 활동했던 이미지들. 기억으로부터 과거로의 추락. 현재와 공존하기를 포기한 영화. 그러나 역설적인 의미로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 잡초 >를 만들 수 있었을까. 나는 차라리 여기서 그 포기의 배후에 숨어있는 부정적인 힘을 알고 싶다. 그러므로 다시 이야기 안으로. 그저 이 영화가 요구하는 대로 볼 생각이다. 최칠용과 영국 최칠용과 현주 신운일과 정미 박노운과 기홍 명월관에는 그날 저녁 술시중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장안의 한량들에게 자랑거리가 된다는 명기 오백화가 주름잡고 있다. 일제 강점하. 요정, 장안의 다섯 명기. 고백화 기홍, 태백화 정미, 김백화 현주, 최백화, 유백화. 그녀들은 아무나 수청을 들지 않는데 심지어 조선총독부 총독의 부름도 거절했다고 한다. 그녀들은 그날, 그러니까 이 영화가 시작되는 첫 장면의 그날, 사이토 경무국장의 술자리 수청을 들기 위해 그 모습을 보인다. 그런 다음 위기의 시작. 첫 도미노. 김백화 현주의 오빠 영국은 상해에서 활동하는 독립군인데 경성에 잠입해 들어왔다가 그만 체포되어 한국인 고등계 형사 최칠용에게 고문을 받는다. 독립군과 조선인 형사. 신념을 따른 희생자들과 배신을 한 앞잡이. 역사로부터 장르에로의 이행. 그 사이에 개입하는 균열. 차라리 드라마의 복선. 그런데 최칠용은 원래 학생시절 경성제대 법대를 다니며 훗날 변호사가 되어 조선인을 위해 일하겠다고 맹세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자신의 말을 따르면) “일본인보다 더 악랄하게 조선인을 괴롭히는” 고등계 형사가 되었다. 그래서 김백화 현주는 최칠용의 후배이자 음으로 양으로 조선인의 편에서 오백화를 돕고 있는 청년 신운일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찾아간다. 하지만 최칠용은 명월관의 술자리에서 그의 양심에 호소하는 신운일의 청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번에는 신운일의 딜레마. 신운일은 친일파인 중추원 원로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친일행적에 분노하며 부끄럽게 여긴다. 아버지와 아들의 분열. 각자의 자리에서 마치 한 쌍처럼 이루어진 대립적인 인물들. 과도하리만큼 민족주의적 열정에 가득 차 있는 인물들. 결국 대의적 관점 아래에서 아들은 아버지의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물론 아직은 아니다. 또한 그는 오백화 중의 한명인 태백화 정미와 연인 사이이며 그녀에게 결혼을 청하지만 정미는 자신이 기생의 신분이라 지금의 연인 관계에 만족한다면서 완곡하게 거절한다. 신분의 차이. 이제 막 조선시대가 끝났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은 근대. 물론 그것만으로는 이야기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이중의 곤란함이 여기에 개입하여 이 가련한 연인들의 결정을 재촉한다. 신운일은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집안이 친일의 충성을 맹세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일본 여자와의 결혼을 강요당하고 있으며, 정미는 명월관에 드나드는 사이토 경무국장의 잠자리 수청을 종용받고 있다. 갑작스러운 새로운 인물. 이야기의 바깥으로부터, 그런 다음 바깥으로의 새로운 방향. 상해 임시정부로부터 조선총독부 총독의 생일에 맞춰 창경궁에 모이는 중요인사들과 친일파를 암살하라는 임무를 띠고 박노훈이 경성에 잠입했다가 총상을 입고 고백화 기홍의 집에 숨어든다. 모든 인물들이 곤궁에 빠져서 거의 빠져나갈 길 없을 것만 같은 일제 강점하의 경성에서 열린 새로운 도주의 선으로서의 상해. 그러자 갑자기 이야기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들 모두에게 상해로 떠날 구실을 만들어주기 시작한다. 장황하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우연들의 연속. 우여곡절 끝에 박노훈은 중국인으로부터 폭약을 구해서 신운일과 함께 창경궁에 잠입하고, 그 시간에 정미는 삼엄한 경계를 풀기 위해 책임자인 경무국장 사이토와 함께 온천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그를 총으로 사살하고 그녀 자신도 자살을 하고, 최칠용이 사실은 이제까지 그의 고등계 형사 노릇은 조선인의 편에서 돕기 위한 그 자신의 고육지책이었으며 게다가 이 모든 행동이 김백화 현주를 사모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지만 그만 (최칠용 자신이 구해준, 그러나) 그 사실을 알지 못한 현주 오빠 영국의 손에 죽고 만다. 거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듯한 사건의 사슬들. 암살에 성공한 박노훈과 신운일은 죽은 정미를 제외한 오백화와 함께 상해로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아직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니다. 일본군의 추격 끝에 이들을 따돌리기 위해 신운일이 이들 모두를 위해서 대신해서 죽고 박노훈과 남은 네 명의 오백화가 배를 타고 상해로 떠난다. 한 남자와 네 여자. 멀어져가는 배, 혹은 새벽 강물에 실려 사라져가는 배. 말 그대로 난처한 입문. 이 줄거리를 몇 번을 다시 읽고 반복해서 영화를 보아도 결국 남은 인상은 기이하리만큼 그 안에서 서로의 인과관계가 거의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이 영화의 전술적인 규칙들은 무엇일까. 거기서 무엇이 멈춘 것일까. 아니, 아무 것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기서 저기로 옮겨가고 그런 다음 인물의 위상관계를 달리하여 저기서 여기로 옮겨올 때, 종종 느껴보는 하강과 상승, 추락과 도약 대신, 거의 모험담에 가까운 < 장안명기 오백화 >를 보는 내내 느끼는 거의 일관된 상태는 이 장면이 다음 장면들과의 관계 사이에서 자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재빨리 이 영화를 내려놓는 대신 1969년에 < 황야의 독수리 >를, 그리고 이듬해 < 속눈썹이 긴 여자 >, 그런 다음 1971년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와 < 둘째 어머니 >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즐거움을 생각한다. 이 영화들이 표준적 관점에서 좋은 영화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즐거운 영화들이다. (잠시만 기다리면, 나는 차례로 그 이유를 쓸 것이다) 말하자면 긍정의 힘. 바르뜨라면 누군가 말하기 전에 선수를 쳐서 어떤 변명도 하지 않으며, 지루하게 설명하지 않으면서, 종종 시선을 멈추게 만드는 장면들이 거기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나는 그 표현을 사랑한다. 이때 이 네 편의 영화는 서로 완전히 다른 장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만주) 웨스턴. 스릴러. 다찌마와리. 신파 멜로드라마. 네 개의 장르. 네 개의 꼭짓점. 그들 사이의 교차점. 그런데 그 자리에 서 있는 <장안명기 오백화>는 우리를 단조로운 위치에 데려다 놓는다. 여기에는 그 즐거움이 어느 순간 고갈되어 버렸다. 이때 가장 따분한 설명은 여기에 창작의 열정이 고갈되어버렸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위험을 무릅쓰고 반대로 말하고 싶다. 혹시 열정이 가져온 의심이 즐거움을 고갈시켜버린 것이 아닐까. 의심? 그렇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 된다. 나는 여기서 심리적인 분석의 기법을 빌려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 장안명기 오백화 >에서 본 것은 거의 모든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의심이다. 무엇에 대한 의심? 설명에 대한 의심.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영화적 효과들. 인물들의 대사. 그 대사를 둘러싼 표정. 표정을 만들어내기 위한 카메라와 연기 사이의 거리. 이때 내가 인물이라고 말하는 대신 연기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주기 바란다. 임권택 은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의 수많은 기호들을 연결하고 종종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개념들을 여러 가지의 경로를 빌려 결합시켜왔다. 말하자면 영화의 규칙 안에서의 활동. 이때 임권택은 문득 여기서 멈춘 다음 이 개념들이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처럼 영화를 다루기 시작했다. 갑자기 연결과 결합 사이의 영화적 효과들은 일시적으로 작동이 중단되었다. 나는 그것을 <장안명기 오백화> 안에서 기이한 감정을 안고 바라보았다. 도대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상한 상황. 그 안의 배치를 성립시키는 모든 요소들 사이의 조화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건드리면 어떤 효과가 생겨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아는 장인이 갑자기 자포자기 하듯이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는 사실을 느껴볼 때 나는 이 행위 자체가 보는 쪽에 고통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사유를 시작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물론 이것은 <장안명기 오백화>를 위해서 설명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이 상황을 한편으로는 앞으로 돌아보고, 이를테면 1969년의 영화들, 반대로 저 멀리 1978년 < 족보 >까지 끌어당겨보고 싶다. 하지만 여기서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기 시작했다. 관성적으로 오던 것은 여전히 빨리 가고 갑자기 어떤 것은 필요 이상으로 느리게 가기 시작했다. 임권택 은 서둘러 가는 것을 마치 남의 영화를 쳐다보듯이 내버려두고 있다. 반대로 그 안에서 무엇이 느리게 갈 수 있는 지를 건드려본다. 이제까지 접속되었던 방식을 바꾸려 하기 전에 무엇이 무엇과 더불어 기능하는지를 마치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순간들. 이때 멈춘 것은 다소 불투명하긴 하지만 대부분 장르의 신호들이다. 혹은 그 신호들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신호들은 계속해서 지시를 내리지만 기이하게도 장르의 기호들은 반응하지 않는다. 아니, 차라리 반응을 멈추었다고 말하고 싶다. 좀 더 구체적인 설명. 이 중단은 단순하게 멈춘 것이 아니다. 자동적 반응의 중단이라는 문제. 나는 영화를 보기 전 제목만 슬쩍 본 다음 장안명기 오백화를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다섯 명의 기생. 다섯 명의 여자. 다섯 개의 운명. 그녀들 사이에 던져진 사건, 혹은 인물. 던져진 돌. (그렇게 된다면) 원형으로 번져나가는 이야기의 선. 나는 틀렸다. 오백화는 이 영화의 중심에 있지도 않으며, 또한 오백화 사이에서 어떤 분열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게다가 오백화가 이 영화를 움직이기 시작하는 어떤 힘을 끌어내지도 않는다. 이 영화의 선은 도대체 어디로 이어지는 것일까. 영화를 보고 나면 줄거리가 어떤 법칙을 따른 것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에는 기이하게도 그 선이 자꾸만 제자리에로 돌아온 다음 어떤 새로운 차원에로의 이동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잡아당기기만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느 순간 끊어질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기서 어떤 긴장이 생겨나지도 않는다. 줄거리의 경제학으로만 본다면 다섯 명의 장안 명기 오백화는 서로 그녀들의 우정을 나누기는 하지만 사실상 줄거리를 위해서라면 고백화와 태백화, 그리고 김백화 세 명으로 충분하다. 게다가 임권택 은 최백화와 유백화를 위해서 거의 어떤 시간도 들이지 않는다. 나는 영화가 끝난 다음 최백화와 유백화의 존재 자체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다섯 명의 스타의 얼굴의 순환. < 장안명기 오백화 >에서 이상한 것은 이 순환 자체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를 본 다음 고백화 기홍을 연기하는 고은아 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잊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임권택은 고은아를 영화 안에서 거의 활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 첫 장면에서 중심에 있었던 고은아는 줄거리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외곽으로 밀려나기 시작한 다음 영화가 끝날 때 그녀는 시작할 때와 반대로 단지 오백화 중의 한명이 된다. 사라져가는 무게. 줄어드는 빈도. 스타는 줄거리의 장르이다. 그러나 <장안명기 오백화>에서 고은아는 마치 이 영화에서 사라져가는 메시지처럼 점점 뒤로 물러난 다음 화면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자리를 옮겨간다. 그렇다고 해서 박노식과 신성일이 그 자리를 탈취하거나, 혹은 옮겨오지도 않는다. 그들은 제 역할을 한 다음 재빨리 물러난다. 여기에는 스타들 사이의 균형이 거의 무너져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인물들 사이의 민주주의적 배치에 따른 것도 아니다. 나는 다소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싶다. 이들은 마치 공장처럼 작동한다. 기능적으로 배치된 다음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자기의 역할을 하고 잠시 멈춘 다음 다시 자기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인물들은 상황에 연결되어 있는 것만으로 자기의 존재를 증명할 뿐 그 어떤 다른 변수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상황이 그 존재에 변수를 부과하기 시작한다. 인물들에 대한 억압. 어떤 억압? 줄거리의 억압. 이때 이 억압을 무효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임권택 은 마치 이 억압에 순응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고도 바람직한 일일까, 라고 반문하는 것만 같다. 나는 여기서 이제부터 시작될 임권택의 영화에 대한, 영화를 향한, 영화에 의한 그 자신의 인정투쟁의 시작을 본다. 그때 줄거리의 무한한 계속으로부터 바깥으로 나오면 거기서 무엇과 만날 수 있을까. 물론 그건 삶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온, 또 살아가야 하는 삶. 나는 < 장안명기 오백화 > 다음의 영화, 임권택 자신이 그 ‘이전’의 모든 영화를 ‘습작’이라고 부른 다음 비로소 만든 < 잡초 >가 한 여인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을 환기시키고 싶다. 신운일과 아키코 박노훈과 기홍 물론 < 장안명기 오백화 >를 좀 더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종종 인물들 사이의 자기 자리의 수행은 때때로 갈팡질팡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때 이 영화의 이상한 점은 그 뻔한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그 어딘가에서 부터 이야기의 결말을 소급해서 올라가서 재구성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 기괴한 역설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게 만든다. 우리는 줄거리의 소급이 사실상 이미 예정된 전제 위에서 진행된 결말로부터 나온 자연스러운 연쇄망의 잠재적 가능성이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이 영화에서 느끼는 것은 시나리오와 영화 사이의 이상한 분리이다. 시나리오의 잠재적인 감정은 거의 진행되지 않고 그 줄거리의 행위들만이 차례로 나열된다. 시나리오는 세 명의 여자와 세 명의 남자, 그러니까 고백화와 박노훈, 태백화와 신운일, 김백화와 최칠용을 하나의 짝으로 묶은 다음 다시 이들 사이의 관계를 연결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임권택 은 거의 고의적으로 그들 사이의 끈을 느슨하게 만들어놓았다. 실제로 이 영화는 아무리 진행되어도 그것을 잡아당겨서 긴장을 만들어내려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풀려나가서 느슨해진다. 이 영화는 중심이 없는 영화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몇 가지 단락의 순간들. 신운일은 아버지의 요구에 따라 기무라 총독의 여식인 아키코와 결혼을 강요받는다. 그런 다음 이어지는 약혼식. 여기서 이상한 방식으로 구부러지는 분배의 방식. 신운일은 아키코에게 둘 만의 데이트를 청한 다음 갑자기 자기의 처지를 고백하면서 진정 사랑하는 태백화 정미와 결국 결혼할 것이며 당신과는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동거는 하겠지만 기회가 주어지면 떠나가겠다고 말한다. 잠재적인 대립의 수행. 그런데 이때 아키코가 예상치 않게도 신운일을 이해하면서 당신이 나와 같은 일본 여자와 결혼하는 조선인 남자였다면 오히려 경멸했을 것이라는 대답을 할 때 여기서 진행되어야 할 어떤 긴장도 사라진다. 말하자면 무효. 그런 다음 아키코는 영화에서 어떤 설명도 없이 사라진다. 도대체 아키코라는 등장인물은 이 줄거리에 무엇을 봉사하기 위해서 등장한 것일까. 혹은 신운일의 이야기와 평행하면서 (영화가 시작도 하기 전에) 상해에서 보낸 독립 운동가들이 체포되고 (영화가 시작된 다음에) 조선총독부 총독 생일에 맞춰 전원 몰살하려 한 폭약을 구입하려던 군자금을 고등계 형사 최칠용에게 빼앗기기까지의 과정을 길게 서술하고 있다. 이제 어떻게 그 돈을 다시 구할 것인가.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돈이라는 역할의 표면 등록. 역할의 수행에 관한 인물들에 대한 기대. 교활한 중국인은 돈을 먼저 내놓으라고 박노훈에게 말한다. 이때 박노훈의 방법은 이상할 정도로 단순하다. 고백화 기홍을 찾아가 민족에 대한 사랑에 관해 몇 마디 웅변을 한 다음 그 돈을 구해달라고 간청한다. 그 돈을 구하기 위한 고백화 기홍의 이야기. 생략된 장면. 그런 다음 (고백화가 아니라) 태백화가 경무국장에게 수청을 약속하면서 그 돈을 빌린다. 물론 돈의 순환과정의 아이러니. 총독을 지켜야 할 경무국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암살할 비자금을 구해준다. 궁금한 질문. 그런데 왜 고백화 기홍은 민족이라는 이름 앞에서 자신이 빚을 청산하듯이 어떤 요구나 대가없이, 하다못해 박노훈에 대한 사랑의 감정조차 없이, 그 돈을 구해주려는 것일까. 그런 다음 왜 그 임무를 태백화에게 떠넘긴 것일까. 마치 이 행위는 신운일이 자기의 뜻과 관계없이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일본 여자인 아키코와 약혼을 발표한 다음 그 축하연이 명월관에서, 그것도 태백화 눈앞에서 벌어진 다음 이어지기 때문에 마치 그녀를 완전히 자포자기시키는 요구처럼 보인다. 단지 부조화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인물들 사이의 네트워크. 이때 이들 사이의 관계는 오로지 이야기의 골격에 따라 장르를 유지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 사이의 교환은 어디선가 흩어진 다음 오로지 기능의 액션만을 남겨놓은 채 감정의 분배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사라진 씬들이 에매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걸 모를 리가 없다. 이를테면 거의 설명과잉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의 1960년대 임권택 의 사극영화들을 생각해보라. 그때 단지 이것이 인물들 사이의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장르의 욕망의 경제학에서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심층적 구조가 사라진 컨벤션들. 그러므로 어떤 불연속. 무엇을 주장하기 전에 먼저 없어진 것은 무엇일까. < 장안명기 오백화 >에서 거의 완전히 붕괴된 것은 이 영화의 경제성이다. 그렇다면 임권택 은 교환과 분배 없이 무엇으로 이 규칙을 다시 작동시킬 수 있다고 믿은 것일까. 임권택은 자기 영화 안에서 목표를 찾아가는 대신 목적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장안명기 오백화>는 목표가 사라진 영화이다. 어떤 목표? 장르에 따라 줄거리가 거두어야 하는 최종 목적지. 이 영화는 그 목적지가 마치 도달할 수 없는 헛된 목표인 것처럼 거기에 갈 수 있는 영화적인 방법의 경제학을 거의 포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목표가 헛된 대상이 될 때 이 영화의 모든 쇼트들은 갑자기 장르의 규칙 안에서 자기의 사용가치를 상실할 것이다. 나는 이상할 정도로 마지막 장면에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저 어울리지 않게 작은 배에 저 많은 사람들, 박노훈과 네 명의 백화가 새벽에 몸을 싣고 정말 그 머나먼 서해 바다를 가로 질로 저 멀리 상해까지 갈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이 생겨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이 영화의 어디서도 아니에요, 이건 영화에요, 그러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상상해주세요, 라는 요구를 하지 않고 있다. 그때 상해는 이 영화 전체의 헛된 최종 목적지에 대한 텅 빈 기표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시적으로 찍힌 유일한 장면. 그건 마치 어떤 작별인사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이건 지나치게 사후적으로 감상적인 기분에 사로 잡혀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선언했다. <장안명기 오백화>를 보면서 나는 이 영화를 알고 싶은 대신 < 잡초 >를 만들기 직전, 그러니까 이제까지의 영화가 모두 습작이라고 단언해야만 했던 그 상황의 심정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때 여기서 내가 보는 것은 새로운 도약을 향한 어떤 약속의 증거가 아니라 정반대로 그 모든 것의 조화가 어지럽혀진 채 너무 많은 장면들이 스스로 의미를 포기해버린 얼룩들의 거의 망쳐버린 듯한 카오스였다. 나는 < 장안명기 오백화 >의 이상한 마지막 장면을 다시 떠올리는 중이다. 일본군의 추적이 마지막까지 뒤따르고 네 명의 오백화와 박노훈, 신운일을 태운 병원 앰뷸런스 구급차는 그들을 태울 배가 있는 강변 가까이 도착한다. 신운일은 그들을 내리라고 한 다음 자신이 이들을 따돌리겠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자살의 제스처에 다름 아니다. 그들은 무사히 탈출을 하지만 마치 예정된 것처럼 신운일은 일본군의 추적 끝에 총에 맞아 죽는다. 그가 죽어가면서 보는 것은 마치 대지가 기울듯이 흔들리는 시선이다. 물론 그것은 신운일이 쓰러지면서 보는 세상의 마지막 풍경이다. 그런 다음 일본군들은 마치 자기들의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돌아간다. 눈 덮인 언덕 아래에서 고백화는 물어본다. “아니, 어떻게 된 것일까요?” 박노훈은 자기 자신에게 말하듯이 대답한다. “녀석은 여자를 사랑하는 법을, 아니 인생을 사랑하는 법을 나에게 가르쳐주고 있군” 멀어져가는 일본군. 그때 앰뷸런스 차 안에서 총에 맞아 구멍 뚫리고 금이 간 창문을 통해서 그들을 바라본다. 이 난처한 두 개의 쇼트 사이의 반복적인 쇼트와 상대 쇼트. 말하자면 성립되지 않는 시선의 교차.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 과도하게 사후적인 설명이 동원되어야 할 지 모르지만 나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다. 마치 배를 타고 멈춰 서서 바라보는 박노훈처럼. 그때 눈물을 흘리는 박노훈의 얼굴. 눈물. 한 없이 이어지는 무심한 강물. 그들은 무사히 상해에 도착할 수 있을까.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이 길을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 인생을 사랑하는 법. 그건 임권택 그 자신이 습작들과 작별하면서 내게 설명한 말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계속) 1973년 98분 칼라 2.35 감독 임권택 제작 우진필림 각본 신봉승 , 윤석훈 촬영 변인집 음악 전정근 미술 노인택 편집 현동춘 박노식 박노훈 신성일 신운일 고은아 고백화 기홍 태현실 태백화 정미 독고성 최칠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