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저
- 감독
- 제레미아 체칙
- 제작년도
- 1998
- 출연
- 랄프 파인즈, 우마 서먼, 숀 코네리, 짐 브로드벤트, 피오나 쇼, 에디 이자드, 에일린 앗킨스, 존 우드, 카르멘 에조고, 킬리 호위스, 숀 라이더, 니콜라스 우더슨, 마이컬 가들리
천명관의 소설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이소룡 세대에게 바치는 절절한 송가이다. 서자로 태어난 집안의 천덕꾸러기 ‘삼촌’은 그 시절의 무수한 사내들이 그러한 것처럼 이소룡을 지극히 흠모했고, ‘그가 간 모든 길을 뒤따르고 싶어 했’다. ‘삼촌’은 이소룡을 따라 무술을 연마하고 몸을 단련한다. 심지어 이소룡은 마치 벼락처럼, 계시처럼 그의 앞에 나타나 삶의 향방을 몸소 손짓으로 가리키는데, 먼 남쪽 하늘을 가리키는 그 손가락 끝을 따라 중국집 배달부인 ‘삼촌’은 홍콩으로 가는 밀항선에 몸을 싣는다. 같은 형태의, 같은 크기의 열망을 품은 무수한 이소룡을 꿈꾸는 자들과 함께. 이소룡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홍콩의 골든하베스트와 워너브러더스는 그의 죽음으로 중단된 영화 < 사망유희 >를 완성하기 위해 이소룡 대역을 찾고 있었다. 영화 속 이소룡의 육체를 대신하는 것. 그건, 이소룡에게 매료된 수많은 아시아의 젊은 남자들의 꿈이었다. 그러나 배는 난파하고, 삼촌과 함께 꿈꿨던 자들은 홍콩 땅은 밟지도 못한 채 피로와 굶주림에 지쳐 가까스로 한국으로 돌아온다. 비록 소설 속 ‘삼촌’의 밀항선은 난파되었지만 우리는 이 꿈과 같은 일이 실제로 누군가에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안다. 본명 김태정, 예명 당룡(이 이름은 < 맹룡과강 >에서 이소룡이 분했던 바로 그 역의 이름이기도 하다)으로도 알려져 있는 이 부산 출신의 사내는 마치 삼촌이 그러한 것처럼, 혹은 같은 꿈을 꿨던 저 무수한 젊은 남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연히 < 정무문 >을 보고 이소룡과 같은 배우가 되기를 꿈꾸며 그의 모든 동작을 따라하기 위해 부단한 연마를 거듭하였다. 김태정은 다른 수많은 아시아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사망유희>의 대역으로 발탁되었다(이 영화의 또 한 명의 이소룡 대역은 1980년대 홍콩영화의 스타 중 하나가 될 원표였다). <사망유희> 이후 다시 한번 이소룡의 필름 푸티지를 알뜰히 활용한 영화 <사망탑>에서 이소룡의 동생으로 분한 그는 장 클로드 반담의 데뷔작이기도 했던 < 특명 어벤저 No Retreat, No Surrender >에서 이소룡의 유령 역을 맡은 것을 끝으로 ‘세계’ 영화계를 떠났다.(이 ‘국제적’ 영화인이 마지막으로 준비했던 프로젝트는 한국과 일본, 홍콩, 미국의 합작으로 이루어질 <야쿠자>라는 영화였다. 『무비스트』, 2009.6) 1970년대의 전세계적이고 지역적이었던 이소룡 붐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다고 해도, 단 한번도 부산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사나이가, 단 한마디의 중국어도 하지 못했던 자가 부산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홍콩으로 건너가 비록 한순간이나마 꿈꾸었던 바로 그 신체가 되는 이 이야기에는 여전히 기묘한 울림이 있다. 그것은 단지 이 이야기가 지독한 행운처럼 보여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 기묘함은 『나의 삼촌 브루스 리』가 보여주는 밀항선에 올라타 난파된 저 무수한 꿈들의 강도 때문에 그렇다. 그것은 부산에서 홍콩까지의 거리를 단숨에 압축시켜버릴만큼 강렬하다. 한 시기 한국의, 아시아의 젊은 남성들을 사로잡았던 이 열망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어떻게 가능한 것이었을까? 그런데 다시 말하건데 이들이 꿈꿨던 것은 배우가 아니라, 정확히 ‘이소룡 같은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이소룡 영화에서 진정 매혹적인 것(혹은 모방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의 신체 자체이자 그 몸의 운동이다. 매끈한 근육질의 몸, 그것이 만들어내는 동작의 디테일은 끊임없는 복기와 수련으로 가능해질 터, 이소룡 영화가 상영되는 동시상영관이야말로 이 모든 수업이 이루어지는 장소였다. 그곳은 아침에 극장에 들어가면 ‘머리가 아플 지경’이 될 때까지 하루 종일 똑같은 영화를 반복 학습하고 저녁에 되어서야 나왔던 진정 학습의 장이라 할만한 곳이었다.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일일 게다. 이소룡이라는 이 중화권 최초의 국제 스타가 남긴 단 네 편의 영화를 어떤 일관성 속에서 포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홍콩의 골든 하베스트, 이소룡 자신의 제작사인 콩코드 픽쳐스, 할리우드의 워너브러더스가 이런저런 방식으로 관여한 그의 영화는 초국적 시장에 대한 고려 위에서 만들어졌으며 크리스 베리의 언급처럼 “인종적이며 민족적인 동맹의 광범위함”을 특징으로 하는 이 영화들을 유일하게 하나의 일관성으로 묶고 있는 것은 이소룡이라는 강력한 페르소나이다. 공장주와 싸우는 이주 노동자(< 당산대형 >), 스승의 복수를 위해 일본인에 맞서는 수제자(<정무문>), 로마에 도착한 동양인 촌뜨기(<맹룡과강>), 국제 첩보조직과 협력하는 소림사 수제자(< 용쟁호투 >). 인종과 민족과 계급에 관한 이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이소룡이라는 유려하고 아크로바틱한 근육질의 신체를 가로지른다. 게다가 웃통을 벗고 맨몸의 상체를 드러낸 채 적과 맞서는 이 몸은 그 이전의 무협영화가 견지하고 있던 문화적 의장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즉, 이 맨몸은 그 어떤 의장 없이, 오직 아시안, 젊음, 남성이라는 기호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럼으로 이 몸은 기술과 신체의 연마를 통해 ‘무한히’ 모방 가능한 것이 된다. “로저 무어가 나오는 <007> 영화를 보면 우리가 집에 가서 흉내를 내겠어요? 그건 상상의 나라인 거고. 근데 이소룡이 발을 차는 걸 보면 내가 운동하면 저게 가능하겠구나 싶었던 거지.” 1) 김태정의 이 언급은 저 모방 가능성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보여준다. 이소룡은 당연한 말이지만 동양인 남성이다. 그는 ‘내가 운동하며 저게 가능하겠구나’ 싶은 맨몸의 격투 혹은 단순하지만 숙련이 필요한 오래된 기구(이를테면 쌍절곤)을 쓴다. 이소룡과 제임스 본드. 이는 단지 유행하는 액션 장르영화의 두 히어로를 불러온 것 이상으로 꽤나 흥미로운 대비를 보여준다. <007> 시리즈에서 당신이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시리즈가 이토록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당대 최고의 미녀들이 분하는 본드걸과 매번 새롭게 선보이는 최첨단 기구들이야말로 이 시리즈가 유지하는 매혹의 기본값이 아닐까. 본드걸을 동반한 이 백인 남성이 헤테로섹슈얼한 남성성을 과시하며 최첨단 기구를 능숙하게 다루며 자신의 능력을 과시한다면, 이소룡(과 한국, 홍콩, 대만, 태국, 필리핀 등등에서 유행했던 ‘권격영화’)은 여자들에게 관심이 없다. 그럼으로 이 동성사회적(homosocial) 영화들은 노골적으로 젊은 남성관객들에게 어필하고자 한다. 동시에 이소룡 영화와 권격영화의 몸들이 보여주는 능력은 단련된 신체를 통해서 발현된다. 요컨대, 이소룡(과 권격영화의 주인공들)은 영국 첩보원이 구사하는 세계 전략과 테크놀로지와 신사다움과 지능이 아닌 맨몸과 오래된 기구를 이용하여 다수를 상대한다. 요절한 이소룡을 둘러싼 저 열망들, 이 지역 일대의 산업화와 도시화라는 공통의 감각이 발생시킨 트랜스내셔널한 아시아적 동일성이라 할만한 것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적 열망이라고 할만한 저 열망들은 백인 남성에 대한 동양남성의 오랜 좌절과 이 좌절에 대한 상상적 극복, 남성성의 재활성화와 연결되어 있다. 미국 패권하의 아시아 남성들, 계급적 하위자들이 미국에서 온 강한 동양인 이소룡에게 매혹당한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이리라. 동시에 최첨단 기구가 장착된 신체와 수련을 거친 맨몸의 능력이라는 이 차이야말로 세계 자본주의 내에서 제1세계와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 부과된 역할 분담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소룡 붐이 시작된 1973년, 한국은 유신 체제에 접어들었고 그해 8월 경제기획원은 「우리 경제의 장기 전망(1972~1981)」을 발표하며 경공업 중심 산업에서 중화학공업화 정책으로의 전환을 알렸다. 1979년 박정희의 죽음으로 끝나게 될 이 개발근대화 하이모던 철권통치 기간이 홍콩-한국-대만의 권격영화들이 유행하던 시기와 겹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시기 맨몸으로 상경한 산업 노동자(혹은 예비 인력들)들은 맨몸의 저 싸우는 영화들 속에서야말로 진정 신체의 어떤 이상(idea)을 발견한 것인지 모른다. *** 1) 김태정 인터뷰, 『무비스트』, 2009.6.(http://www.movist.com/star3d/read.asp?type=32&id=16400) (관련글) 1. 비행기의 시선, 무정한 시선 - 2021.04.30. 2. 액션영화의 한 기원, 안중근과 무협 - 2021.05.31. 3. '외팔이'의 도래, 1960년대 후반의 무협붐 - 2021.06.30. 4. 태권도 영화- 챠리 셀과 바비 김, 이국적 이름들의 행렬에 관하여 - 2021.07.23. 5. 이소룡적 신체 - 2021.08.24. 6. 김두한과 협객물, 유신 시대의 가장 안전한 쾌락 - 2021.10.01. 7. 브루스플로이테이션과 한국영화 - 2021.11.01. 8. 춤추는 괴수, 1967의 '트위스트' 용가리 - 2021.12.02. 9. 우리는 왜 그때... - 2021.12.24. 10. 용팔이, 1970년대의 과잉과 잉여 - 2022.02.24. 11. 1970년대식 섹스와 폭력, 여감방 영화와 <여수 407호> - 2022.03.22. 12. <삼국대협>, '트랜스내셔널한 어떤 고립에 대하여 - 2022.04.20. 13. '빈곤한 이미지'의 여행- <정도>/<당수태권도>와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 - 2022.05.30.
이 사회의 불균형을 이장하다 “장남도 없이 (어떻게) 무덤을 파냐!” 큰아버지( 유순웅 )의 불호령에 아버지 묘 이장을 하러 고향 마을에 막 도착한 네 자매들은 연락이 되지 않은 남동생을 찾아 다시 발길을 돌린다. 그들이 찾아야 하는 장남, 그 이름이 하필 ‘승락’이다. 혜영( 장리우 ), 금옥( 이선희 ), 금희( 공민정 ), 혜연( 윤금선아 ). 승락의 위로 줄줄이 누나들이 모두 왔는데도, 승락의 승낙 없이는 이장이 불가능한 사회. 승락이 아니라 혜연이 사정상 못 왔다면 이장은 진행되었을, 이곳은 뿌리 깊은 가부장제로 여전히 갈등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딸 넷에 막내아들. 이 집은 말 그대로 아들 낳으려 계속 출산을 했을, 오남매는 구성 자체가 딱 가부장제 가족이다. 이쯤 되면 막내딸 이름이 ‘다음 아이는 아들을 얻겠다’는 염원을 담아 딸 이름은 희생되는 ‘후남’ ‘차남’ ‘필남’이 아닌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걸까. 어쨌든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등 온갖 방법을 다해 찾아낸 승락이 화면에 등장하는 건 영화가 시작된 지 44분 36초 만의 일이다. 전체 러닝타임 94분 중 거의 절반이 지나서야, 카메라는 노트북 앞에 앉은 승락의 뒤통수를 필두로 그의 손가락을 훑어 간신히 그 얼굴을 드러낸다. 그것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이 모든 상황에 잔뜩 열 받은 첫째 혜영이 승락이 있는 반지하 창문에 돌을 던지면서다. 여자친구 윤화( 송희준 )의 임신에 책임회피 중인 승락은 여러모로 비난받을 여지가 충분하지만, 그럼에도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는 발언권을 가진 중요 인물로 치부된다. 그러니까 그게 남성이 집안의 통솔권을 가지는 이 사회의 가부장제! 사실 큰아버지가 승낙을 데려올 것을 ‘명령’한 건 재개발로 이장을 하게 된 지금, 자신 동생의 묘를 매장 대신 화장하려 하는 조카 딸들의 결정을 번복하기 위해서다. 그는 같은 남자인 장남 만은 자신의 편을 들어줄 거라 믿으며, 또 그런 이유로 장남인 승락에게 더 큰 권위를 부여해 주려 한다. 가령 이미 죽은 오남매의 아버지는 혜영의 말대로 ‘그 인간 죽어서까지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존재감을 드러내며, 문제를 회피하기 급급한 승락은 ‘우리가 (언제까지) 걔 엄마야?’라는 누나 금희의 독설을 받는 대상이다. 영화는 가부장제 아래 집안의 권위를 부여받은 남자들의 치부를 거침없이 드러내는데, 그래서 이 영화의 남자들은 한편으로는 귀엽거나 사랑스럽게 그려지기도 하지만, 겉으로 볼 때 무섭거나(큰아버지), 비겁하거나(승락), 말 안 듣거나(혜영의 아들 동민) 지질(금희의 남친) 해서 여자들을 자주 괴롭힌다. 물론 아버지 묘의 이장 문제는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기존 사회 질서에 부합해 흘러가지 않는다.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틀 안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지만, 남매는 변화하는 현재의 사회를 살아가는 인물들이며, 그래서 지금 심하게 이 사회와 부대끼는 중이다. <이장>의 여성인 네 자매는 그래서 마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균형을 찾아가려는 이 사회 여성들의 표본을 보는 것 같다. 첫째 혜영은 싱글맘이라는 상황으로 인사 가산점이 깎여 육아휴직 이후 퇴사를 권고받았으며, 둘째 금옥은 남편의 외도를 알고도 떳떳하게 판을 뒤집지 못하는 평범한 주부다. 두 언니의 ‘실패한’ 결혼 생활에도 셋째 금희는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철없는 남친에 갑갑한 채로 N포 세대의 곤궁은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청춘이다. 여성 인권을 외치는 막내 혜연은 학내에 자신이 애써 붙여놓은 대자보 위에 ‘너도 결국 한남의 씨에 불과한 종족이다’라는 테러성 반응에 맞서야 한다.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 단절되어 우울증을 겪는 < 82년생 김지영 >(2019)의 ‘김지영’이 이들의 사촌자매 쯤이라고 해도 어울릴 것 같다. 결국 육아휴직, 남편의 외도, 결혼 문제, 페미니즘 등 대한민국 여성이 겪는 고충의 총합이 이 자매 안에 다 보인다. 정승오 감독은 이장을 하러 오랜만에 모인 남매를 혜영의 미니밴에 탑승시킨다. ‘이장 후 받게 될 500만 원을 누가 갖게 될 것인가’의 문제가 시종 묘한 긴장감을 형성하며 남매간에 그동안 쌓여 있던 갈등을 점화시킨다. 티격태격 가족 로드무비의 원조 격인 < 미스 리틀 선샤인 >(2006)의 ‘미니밴 버전’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네 자매와 혜영의 아들인 초등학생 동민( 강민준 ), 승낙의 전 여자친구 희준도 한 차에 타고 내리고 해서, 차 안은 시종 구성원이 바뀌고 복닥복닥 거린다. 시동이 걸리고 출발을 한 이상 도로 안에서 쉬이 내리는 건 불가능하고, 앉아있는 자리에 따라 맞붙는 ‘말싸움’ ‘몸싸움’의 조합도 새롭게 재편된다. ‘제한된 상황’ ‘다양한 인물’들이 이렇게 새로운 조합으로 영화의 액션과 리듬, 코믹과 드라마를 만드는 재미들이 모여 <이장>의 미니밴을 굴러가게 만든다. <이장>의 이 오밀조밀 갈등이 폭발하는 공간 구성은 사실 정승오 감독의 주특기다. 전작인 단편 <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 >(2016)은 <이장>의 프리퀄 격인데, 입원한 엄마의 병문안을 간 딸들이 모두 엄마의 침대 위에 올라가 옹기종기 모여 앉은 씬은 가족의 갈등과 화해를 그리는 탁월한 장면 연출이다. 이같은 구성이 독립영화계의 ‘어벤저스급’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가 제대로 빛을 발하는 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 자신 역시 가부장제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라 청년 세대를 거친 남성으로서 정승오는 <이장>의 가족들이, 더 나아가 이 사회가 기울어진 관습과 제도에서 벗어나 모두가 동등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이 역시 새벽녘 오남매가 함께 걸터앉은 좁은 툇마루 씬에 말갛고 기분 좋은 장면으로 연출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승낙의 전 여자친구가 승낙의 사과에 보인 일격은 영화를 보는 이들을 위해 남겨둔다. 각자의 가족 깊숙이 공기처럼 스며든 가부장제 사회는 이제 변화하고 있다. 그 관습의 이장을 제안해 주는 영화 <이장>의 질문이 반갑다.
장 클로드 반담은 추억의 이름이다. 그 옛날 <투혼>으로 처음 만나 < 어벤저 >로 스타덤에 올랐다. 뭐 요즘에야 < 옹박 >부터 < 레이드 >에 이르기까지 온갖 리얼 액션들이 난무하는 영화계지만 <투혼>과 <어벤저>가 등장했던 당시 그런 순도 높은 리얼 액션은 진정 놀라운 것이었다. 아직 시네마테크니 예술영화전용관이니 그런 건 꿈도 못 꾸던 시절 거실에 보통 하나 있는 VHS 비디오데크로 각종 필터링 안 된 영화들을 잡탕으로 구경하던 당시 영화광들은 장 클로드 반담을 비디오로 먼저 만났다는 것에 자부심은 커녕 비디오 영화에서나 만날 수 있는 ‘B급 히어로’ 정도로만 인식했다. 주로 우리가 ‘반담이형’이라고 부르던 장 클로드 반담의 필모그래피는 그야말로 저렴했다. < 지옥의 반담 >이나 < 더블 반담 > 등 그의 이름이 영화 제목에 등장했지만 그것은 워낙에 반담이형이 액션 광들에게 인기가 많아 수입사에서 억지로 붙인 제목이었다. 그렇게 반담이형은 블록버스터 < 유니버설 솔져 >로 도약하나 했더니 역시 ‘1류’가 되지는 못하고 이후 < 페이스 오프 >를 성공시킨 오우삼의 빈약한 할리우드 데뷔작 < 하드 타겟 >이나 한동안 숀 코네리 주연의 <아웃랜드>니 <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 >의 공식 속편 < 2010 >같은 영화들로 잘 나갔던 피터 하이암스가 커리어 하이에서 내려온 뒤의 작품 < 타임캅 >과 <서든 데스> 등 ‘괜찮은 감독의 B급 영화’로 연명할 뿐이었다. 그리고 21세기가 오자 반담이형은 급격히 잊혀졌다. 척 노리스로부터 스티븐 시갈 등 생각이 없이 액션만 달리던 ‘추억의 동작 영웅’ 중의 한 명으로 농담에나 등장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해마다 작품을 하며 <세컨드 인 코맨드>니 < 언틸 데스 >니 하는 제목들로 무의미하게 필모그래피만 늘여가고 있던 중, 2008년 드디어 ‘장 클로드 반담’이라는 그의 이름이 공식 제목으로 사용된 영화를 찍게 된다. 영화 제목이 < 장 클로드 반담 JCVD >다. 이 영화 < 장 클로드 반담 >에서 장 클로드 반담은 장 클로드 반담 역을 맡았다. 자전적인 전기 영화냐고? 아니다. 영화 속의 장 클로드 반담은 앞서 설명한 ‘한물 간 왕년의 스타 장 클로드 반담’ 역으로 등장한다. 2008년 그의 현재 모습을 그대로 연기한다. 대체 무슨 영화길래 설정이 이런 것일까. 영화가 시작되면 누가 봐도 뻔한 액션영화에서 롱 테이크로 각종 권격 액션 연기를 하는 반담을 만나게 된다. 나이는 들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주먹과 발차기를 날리던 반담은 컷을 외치는 감독에게 다가간다. 마흔일곱의 나이로 커트를 나누지 않고 통으로 찍는 것은 너무 힘들다고 항의하는 반담에게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건방지고 어린 감독은 ‘오우삼을 할리우드에 데려간 배우라고 내 영화를 마음대로 주무르려고 들면 안 되지’라고 시큰둥하게 말하며 무시할 뿐이다. 와중에 감독은 할리우드를 증오하는 듯 할리우드 간판 사진에 다트 핀을 날리고 있다. 그렇게 옛날의 영광은 물론 직업적으로도 ‘찌그러져’있는 반담은 법정으로 출두한다. 바로 딸에 대한 양육권 재판이다. 상대 변호사는 반담의 과거 영화들을 열거하며 그가 영화 속에서 폭력에 몰두했다고 몰아세운다. 반담이 출연했던 영화의 DVD들을 한 장 한 장 집어 던지면서 “차로 뭉개고, 사람 목을 조르고, 칼로 찌르고, 사타구니를 발로 차고...” 그가 행했던 연기들을 열거하며 딸을 양육할 자격이 없음을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클로드 반담은 아직도 나이 먹은 관객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그냥 길을 걷는 중에 만난 남자들이 반갑게 인사하며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 알아보기만 하지 아무도 그의 현재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마치 영화 < 버드맨 >의 리건 톰슨 같다고나 할까. 돈도 명예도 없는 장 클로드 반담은 은행 업무를 하는 우체국에 들르는데, 갑자기 그곳에서 총성이 울린다. 지나던 경찰이 우체국 안을 보자 장 클로드 반담의 모습이 스친다. 그리고 자신을 겨누는 총구를 발견한다. 경찰은 반사적으로 상부에 보고한다. “장 클로드 반담이 우체국을 털고 있다!” 중계차들이 날아와 이 흥미로운 사건을 생방송으로 중계하고, 경찰은 인질을 잡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 클로드 반담과 협상을 벌인다. 와중에 이 현장을 구경하고 있는 구경꾼들은 무슨 이유인지 장 클로드 반담을 응원한다. 분명히 ‘한물 간 스타가 돈이 없어 은행을 터는’ 모습에 동정심 섞인 재미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반담은 은행 안에서 인질들과 함께 뭔가 어정쩡한 상태로 머물면서 예상을 뒤엎는 스토리가 진행된다. 영화 < JCVD >는 탐라 데이비스 감독의 1990년대 은행 인질 영화 < 베스트 맨 >이나 알 파치노의 < 뜨거운 오후 >를 연상시키는 대치극으로 정체되지 않는다. 법정에서 딸이 ‘아빠가 TV에 나오면 친구가 놀린다’며 함께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거나 시시한 영화에나 출연해야 하는 반담의 현실, 알아보는 사람을 피곤해하면 바로 잘난 척을 한다며 공격받는 피로한 상황 등을 병치하며 흘러간다. 나를 포함해서 세상에서 제일 흔해빠진 ‘한정 공간 영화로 저예산을 극복하고 스토리텔링 기술을 어필하려는 데뷔 감독’의 전형적인 영화처럼 보이던 작품은 예상외로 깊은 감정들을 담아낸다. ‘퇴물 스타가 소동에 빠지는’ 영화는 앞서 말했던 <버드맨>을 비롯해 여러 차례 만들어진 아이템이다. 심지어 이 영화는 < 버드맨 >보다 7년이나 먼저 만들어졌다. 하지만 < JCVD >는 퇴물 스타가 징징대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차원을 뛰어넘는다. 장르영화적인 재미는 당연히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 퇴물이 되어버린 왕년의 스타가 부르짖는 인생의 소회를 그린다. 도대체 이 희한하게 재미난 작품을 만든 감독은 2015년 현재 어디에 있을까. 2005년 <버질 Virgil>로 장편 데뷔한 감독 마브룩 엘 메크리는 고몽 영화사에서 만든 이 작품 < JCVD >을 통해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다. 할리우드로 실려 간 엘 메크리 감독은 어느 한국 감독의 작품을 리메이크할 기회를 얻게 됐다. 야심 차게 각본을 완성하고 제출한 엘 메크리 감독은 스튜디오로부터 의외의 반응을 맞이한다. ‘대본이 너무 좋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당신이 아니라 마틴 스콜세지 급의 거장이 연출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여기서 교훈은 ‘할리우드에서 데뷔하는 감독이 시나리오를 지나치게 잘 쓰면 곤란하다’일까. 그렇게 해당 프로젝트의 감독직으로부터 억울하게도 하차하게 된 엘 메크리 감독은 우연하게도 ‘역시 이미 한물간’ 왕년의 대스타 브루스 윌리스가 출연하는 액션 영화를 연출하게 된다. 바로 헨리 카빌, 시고니 위버 등이 함께 출연한 < 콜드 라잇 오브 데이 >였다. 흥행에서 대실패를 하고 평가 역시 비참했다. 여기서 우리는 할리우드 밖에서 주목받아 할리우드로 입성해 첫 작품에서 망해버린 여러 감독의 이름이 떠오른다. 장 클로드 반담과 함께 했으며 바로 오늘의 이 영화에서 직접 언급되기도 했던 오우삼의 이름이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친다. 2012년 이후 단 한 작품도 연출하지 못하고 있는 엘 메크리 감독은 지금쯤 어떤 각본을 쓰고 있을까. 오우삼 이 결국 < 페이스 오프 >로 성공을 거둔 것처럼 와신상담의 날이 올 것일까. < JCVD >를 보고 있으면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PS. 참고로 예의 엘 메크리 감독이 감독직에서 하차했던 한국 영화의 리메이크판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