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 밖
- 감독
- 조은빈
- 제작년도
- 2022
- 출연
- 박다영, 임우성
<장손> 중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1. 곰곰이 뜯어보면 ‘비평, 안녕하십니까’란 질문은 오묘하다. 비평(critic)이 위기(crisis)를 전제로 한다는 통설에 근거하자면, 비평이란 그 성질상 한사코 안녕(安寧)할 수 없는 것이거나, 최소한 안녕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 태평한 시기일지라도 비평가는 위기를 발견하고, 때로는 그것을 인식의 표면에 올리고자 위기를 조장해야 한다. 통념과 상식의 범주에 포착되지 않는 요소를 끝내 사유의 영역으로 회수해내는 일—그곳에 비평가의 덕목과 기쁨이 있다. 물론 이러한 덕목을 실천하고 기쁨을 누리는 비평가도 안녕하기는 어렵다. 상식과의 불화를 견지하면서 평안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안녕한 비평’은 존재할 수 없고(안녕하면 비평이 아니다) ‘안녕한 비평가’는 소속감을 불안으로 받아들이고, 불화에서 안정감을 찾는 사람들의 희귀한 기질을 갖춰야 한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어느 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내 존재의 밑바닥을 이루고 있는 것은 잊음(oubli)이다. 나는 잊기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이 잊음이다.” *주1 ) 비평가는 탄탄대로를 지척에 두고도 굳이 외줄을 탄다. 탄탄대로처럼 보이지만 실은 앞길이 끊어져 있다고 말하며. 그러므로 마땅히 안녕할 수 없는 비평(가)에게 주어지는 ‘비평, 안녕하십니까’란 질문은 이렇게 읽힌다. ‘비평, 설마 안녕히……하고 계신 건 아니죠?’ 내게 비평가란(등단 등의 제도를 통해 부여되는 자격이 결코 아니고) 비평의 기능을 준비하고 수행하는 사람의 총칭이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부끄러울 정도로 조금만 비평가다. 그렇지만 질문은 언제나 정확한 시간에 도착한다. 그러니 질문을 핑계 삼아 외줄에 올라보자. 다시 한 번, 김현은 이렇게 쓴 적 있다. “나는 항상 옳다고 말하는 사람과 나는 항상 잘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앞의 사람은 투사고 뒤의 사람은 종교인·예술인이다. 나는 항상 옳다고 말하는 사람의 자부심 없이는 싸울 수 없고, 나는 항상 잘못한다고 사유하는 사람의 원죄성 없이는 느낄 수 없다.” *주2 비평가는 투사와 예술인의 세계를 오가고, 부지런히 샛길을 만든다. 잠깐, 자부심의 시간이다. 그렇지만 나는 부끄럽기에 아주 멀리 우회하고 감추고 파편화할 것이다. 2. 이두용 의 < 장남 >(1984)은 고향이 수몰지구로 선정되어 노부모가 자식들이 살고 있는 서울로 상경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장남( 신성일 )을 중심으로 담은 극영화다. 오즈 야스지로의 < 동경 이야기 >(1953)처럼 처음 장남의 집에 모셔진 노부모는 도시화된 생활과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집터로 사둔 변두리에 잠시 머물고 결국 노인에게 불편한 아파트로 옮겨진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제주도로 장남이 출장을 간 사이 노모는 아파트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틀니를 전달하지도, 임종을 지키지도 못한 장남이 도착한 건 엘리베이터에 실을 수도 없어 관이 ‘짐짝’처럼 곤돌라로 내려지고 있는 때였다. (상) 아파트로 이주한 노부모와 노모의 관이 내려지는 광경을 바라보는 장남 (하) 공중전화에 두고 간 수첩을 전달받는 장남 이렇게 글줄로 옮기니 장남이 적극적으로 불효를 저지른 것 같지만, 장남은 결코 지탄받을 정도의 불효자가 아니다. 그는 다만 ‘잘 잊는 사람’일 뿐이다. <장남> 그리고 이두용의 탁월함은, 이 성격을 구축하는 표현법에 있다. 5분, 장남이 공중전화에서 막내에게 전화를 하고/다음 이용객이 장남이 수첩을 두고 갔다고 불러/수첩을 전해주는 장면이 있다. 슬래쉬(/)를 기준으로 세 컷으로 이뤄진 이 장면은, 장남이 ‘잘 잊는 사람’임을 보여주려는 의도(intention)를 드러낼 정도로 강조되어 있지만, 몰입을 저해할 만큼 웅변조는 아니다. 이 장면을 계기로 시작된 ‘잘 잊는 사람’이란 성향이 연속되며 결말이 엄습해온다. 장남의 유실물이 점점 중대해진다. 그는 아내와의 결혼기념일을 잊고, 어머니의 틀니를 해주는 것을 잊고, (어머니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는 말을 했음에도) 결국에는 어머니의 다가오는 죽음을 잊는다. 그 제목만으로 <장남>과 ‘ 각각의 영화사 ’를 상상하게 하는 < 장손 >(오정민, 2023)은 여러모로 다른 영화다. 노부모가 장남을 찾아오는 게 아니라, 상경한 손자가 가족이 사는 대구의 고향 집으로 내려온다. 장남과 달리 장손 김성진( 강승호 )은 자동차를 몰지 않는다( 임권택 은 언젠가 영화평론가 정성일 에게 “남자가 말이오, 나이가 들어서 늙으면 안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운전밖에 없어요”라고 말한 적 있다. 남성성과 운전). 그리고 무엇보다 장남은 가족의 무게를 지려고 한다. 그렇지만 장손은 가족의 무게를 지려고 하지 않는다. 장손은 조부모의 영정사진을 찍는 일을 회피하고, 할머니의 장례식장으로도 곧잘 들어오지 않으며, 병실 바로 앞에서도 고모부의 얼굴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창밖의 햇볕에서도 눈을 돌리듯, 가족의 문제를 외면(外面)한다. 고모부를 보지 못하고 병실 앞에 앉은 성진 물론 <장남>의 잦은 망각도 무의식적 외면의 욕구가 가족주의에 검열된 결과로 충분히 바라볼 수 있다. 다만 무의식적 외면의 욕구가 가족주의라는 검열과 부딪칠 때마다 쌓였던 에너지는 노모의 죽음과 함께 슬픔으로 폭발하고 관객에게 전이된다. 그리하여 이두용 영화에 내재한 미묘한 냉엄함과 별개로, <장남>은 가족주의의 메시지로 귀결된다. *주3 이와 달리 가족의 무게를 결단코 외면하지만 (지극히 특권적이고 결단코 반항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그러므로 단언컨대 성진은 그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핵심적 구동원리인 ‘장자우선주의’의 수혜자인 덕에 가족주의의 전(全) 과정을 익히 알 수 있는 성진의 특권적 시야로 인해 <장손>은 건조한 케이스 스터디로 귀결된다. <장남>과 <장손>의 이 차이는 흥미롭다. 그렇지만 지금 남겨둘 질문은 하나다. 어쩌다 장손은 외면을 하게 되었는가? 3. 유산(heritage)은 벽이다. 외면하고 도망치려 할수록, 그 벽은 점점 더 커지고 결국에는 모두를 병들게 한다. 이 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법은 단 하나다. 그것을 정확히 대면하는 것. 나는 여기에 관한 최량의 우화를 하나 알고 있다. 남재일 : 당신의 영화는 매우 공격적이고 신랄하게 발언한다. 지금 ‘아버지’라고 표현한 부분일 수도 있겠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공격하고 싶은 건가? 임상수 : 나는 모든 권위 혹은 권위주의를 철저하게 경멸한다. < 그때 그사람들 >(2005)을 본 사람들은 임상수가 이렇게까지 존경심이 없다는 데 당혹해한다. 좌파와 진보적인 사람들까지도. 그런 걸 보면 나는 묘한 쾌감을 느낀다. 경멸하고 싶다고 해서 갑자기 경멸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조롱하고 싶다고 해서 갑자기 조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뿌리 깊은 속성부터 아무런 존경심이 없다. 그 근원은 내 부친이다. 그는 존경심이 없었던 사람이다. 그는 출세하지 못한 사람이 출세한 사람에 대해 가지는 질투가 있었지만, 나는 한 세대를 겪고 나오면서, 그 질투를 정확하게 걸러냈다. 그의 경멸만을 물려받았다. 경멸하려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요만큼도 존경할 거리가 없는 사람들이 허투루 존경받고 있다는 치명적인 사실 말이다. (강조-인용자) ‘남한’을 구축했다고 할 만한 최대의 유산인 박정희를 경멸하기 위해 임상수 는 사실을 대면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임상수는 박정희를 거의 촌부로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 해직기자이자 영화평론가였던 아버지 임영(林英)의 덕이며, 심지어는 “어떤 점에서는 아버지가 이 영화의 공동창작자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층위는 다소 다르지만) 유산의 성격이다. (박정희라는) 유산은 강력하다. 그렇지만 정확히 대면하면 그것을 경멸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버지-임영이라는) 유산은 강력하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주4 한국의 영화에도 많은 유산이 있다. 나는 이 유산의 영향 아래 살고 있다. 유산은 일종의 물과 어항이다. 나는 그 안에 살기에(물) 제한된다(어항). 제한하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으면 평안함을 누릴 수 있지만, 의심이 시작되면 참을 수 없이 답답해진다. 이 답답함을 외면(外面)하는 것이 ‘안녕’한 선택이다. 그리고 ‘안녕’을 위한 외면도 반복된다면 평안함을 누릴 수 있다. 다시 한 번, 비평은 어항의 ‘바깥’을 향한 몸짓이다. 그 몸짓의 방법과 정도는 가지각색일 수 있다. 어항 속의 물고기들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지느러미로 어항을 가늠하고 빈틈을 탐색할 수도 있고, 눈알이 빠지도록 대가리를 어항에 처박을 수도 있다. 한국의 영화사를 돌아보면 많은 비평은 어항을 새로이 만드는 일에 참여해왔다. 초기의 비평은 세계영화에 비해 기반과 역사가 빈천한 ‘한국영화’의 위신(prestige)을 위해 투쟁했고, 1990~2000년대 ‘뜻밖의 연합(Unexpected Alliances)’ *주5 이 이뤄진 시기의 비평은 ‘스크린쿼터 운동’을 문화제국주의에 대립하는 첨예한 전선으로 잡고 독립과 인디(indie)의 기반이 되는 제도와 기금의 조성에 헌신했다. 이들의 투쟁과 헌신이 얼마나 상례적이었고 유효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지만, 제도는 분명 중요한 비평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 비평의 결과로 만들어진 제도가 오늘날 영화에서의 유산이다. 나는 2010년대 중반부터 영화 비평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리고 기억컨대, 2010년대의 영화계는 제도 비평의 활기가 가득했다. 혹자는 이들의 제도 비평을 두고 지면(紙面)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라고 저열한 힐난을 했지만, 내가 아는 한 제도 비평에 열을 올렸던 비평가 중 영화계에서 안정된 지면을 얻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제도 비평은 실질적으로 유효한 행정의 변화로 이어지지도 않았고, 제기한 논점을 두고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듣는 회담이 열린 적도 없다. 솔직한 토론이 이루어질 경우 자신들의 지적 기반과 역사적 모순이 노정될 게 두려웠던 것일까? 비아냥거리고 싶은 마음을 최대한 억누르고 말하자면, 영화계는 제도 비평을 수용하고 처리할 수 있는 실질적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것 같다. (비판을 지면의 요구로 해석하는 사람이나, 비판의 실질이 아니라 태도를 사사건건 따지고 드는 사람들은 영화를 문화가 아니라 산업으로 보고 자리를 지키는 것에만 혈안이 된 게 아닐까? 그들은 종종 이렇게 무의식적인 고백을 한다. “이런 비판에는 동업자 정신이 결여되어있어……” 재원의 전부가 국가지원금인 경우에도……) 어쨌거나 그때의 비평가들은 대개 미술이나 문예 계열의 지면으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2020년 COVID-19로 인한 팬데믹(Pandemic)이 도래했다. 2010년대가 핵심적으로 겨냥한 유산이 ‘뜻밖의 연합’이 창안한 제도였다면, 이러한 역사적 우연은 지극히 공교롭게 느껴진다. 초기의 비평이 세계영화에 대해 한국영화의 위신을 추구한 배경은 당대 영화의 미디어 환경이 단관극장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같은 맥락에서 ‘뜻밖의 연합’ 시기의 비평이 세계영화에 대해 한국영화와 독립영화의 ‘다양성’을 ‘보장받길’ 원한 배경은 당대 영화의 미디어 환경이 멀티플렉스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수의 상영관에서 한국의 영화를 확실히 몇 자리 확보하고자 하는. 그리고 팬데믹은 정확히 멀티플렉스에 치명적인 위기를 몰고 왔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리하여 2010년대의 제도 비평을 지금 보면 어딘가 예언적인 게 있다. 그때 지적된 다양한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산적해 있고 심화되었다. 그렇지만 학습의 효과일까. 오늘날 영화 비평은 더는 제도를 문제 삼지 않기로 한 것처럼 보인다. (어차피 내 대가리만 깨지고 말 텐데?) 그리고 전국적으로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마이크로시네마’가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 같다. (여담이지만 《씨네21》이 서로 너무도 이질적인 집단을 묶고 이들을 ‘마이크로시네마’라는 새로운 환경으로 제시했지만, 그 요체인 소규모-(비)공식-영화보기 모임은 당연한 말이지만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최근의 ‘마이크로시네마’가 새로운 현상인 것은 이 기획에 비평가가 다수 참여하고 있고, 과거와 달리 (위법성의 소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한 홍보로 호객을 한다는 점일 테다) 그 실질은 제도 비평과 아무 관계 없다고 실소할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구조적으로도 팬데믹 시기에 강화된 OTT라는 미디어 환경이 영화를 초과공급하고 있기에 강력한 큐레이팅 기능을 요구하는 수요를 포착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역사의 시야에서 2010년대의 제도 비평과 2020년대의 마이크로시네마가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나만의 착각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혹은 착각일지라도, 이 착각이 적잖이 생산적일 거라고 자신한다. 이러한 착각을 지속하자면(사실 비평가는 착각의 대가 아니겠는가?) 나는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포스트 2010년대’를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영화 제도가 비판을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새로운 유통과 인정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판단, 혹은 제도화 없는 비판이 내파(implosion)와 외파(explosion)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토대로 시작한 참호공사. 어항과 금붕어의 비유를 계속 들자면, 전자는 작지만 작은 어항을 새로이 만들자는 것이고, 후자는 어항을 부술 수 있을 때까지 머리를 단단하게 만들자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어쩌다보니, 제안받은 원고의 매수와 주제를 모두 훌쩍 초과했기에, 이쯤에서 서둘러 마무리해보자. 나는 비평이란 그 성질상 위태롭고 불쾌하고 불건전할 때 적절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는 다시 어항에 대가리를 처박는 사람들이 보고 싶다. 2010년대에 예견되었듯, 멀티플렉스는 머지않아 시장에 의해 자동조절 될 것이고 줄어드는 관객에 따라 영화에 부착된 사회적 기능도 점차 희미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비평적 실천이 아니라, 제도 비평의 계절이 다시금 오기를 바란다. 그러니 (이제, 감히 대명사를 바꿔 보자) 우리의 ‘제도 비평’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나의 근심이자 고민이다. 나는 성진-장손이 택시를 돌려 다시 집으로 가길 바란다. 그것이 그의 몸과 정신을 찢어놓는 결과를 낳을지라도, ‘2010년대 재방문’이 너무 늦지 않기를. “장자의 무용지용에 대한 퉁명스러운 반론: ‘그래 그렇게 오래 살아 뭐하자는 게요, 제기랄.’” *주6 *** 주1. 김현, 『행복한 책읽기』, 문학과지성사, 1993, 128쪽. 주2. 위의 책, 168쪽. 주3.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건대, 영화의 결말이 가족주의인 것이 영화의 질을 훼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주4. 고백하자면 나는 초기의 (영화적, 문화적) 세계관을 남재일 선생님의 말과 글에서 전수받았다. 유산은 강력하다…… 주5. 포스트 권위주의 사회에서 영화산업과 국가, 그리고 독립영화가 어떻게 예기치 않게 연합을 이뤘는지를 설명하는 동명의 저서(박영아, 2014)의 제목. 주6. 위의 책, 156쪽. 금동현(영화평론가) l 「상상되는 것인 동시에 그 잉여」(2024), 『하녀: 하녀 따위에 흥미를 가져요?』(2024) 등을 집필했다. 대구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의 매거진 《삼삼오오》를 기획하고 있다.
R(문성근)과 J(강수연), 둘은 끊임없이 서울 시내를 배회한다. 1990년대 초중반 한국 사회와 영화계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시민들은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이듬해 2월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6공화국이 시작되었다. 올림픽 이후에도 노동자와 학생들이 탄압받는 공안 정국은 계속되었고, 여당은 정권 재창출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1990년 1월 ‘3당 합당’을 깜짝 발표한다. ‘민주투사’ 김영삼이 평생을 싸워온 그들과 손잡은 것이었고, 결국 그는 1993년 2월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강준만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역사의 자연스러운 발전이라기보다 인위적인 결단에 의해, 즉 정치적 야합으로 인해 한국의 ‘이념의 시대’는 몰락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문화의 시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소비의 시대’로 들어섰다(「한국 현대사 산책: 1990년대편 1권」). 1990년대 초반 한국 소비문화의 핵심적인 이미지는 바로 자가용이다. 1992년 자동차 대수가 500만 대를 돌파하며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로 접어들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자동차 산업은 정경유착의 산물이었고, 할부 판매 그리고 이와 결합한 광고라는 ‘판촉’(마케팅을 당시 사용하던 용어로 표현하자면) 기술은 은행과 언론에도 호황을 안겨주었다. 1991년 4월 시인 유하가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를, 이듬해 4월 소설가 이순원이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를 내놓은 것은 압구정동으로 상징되는 소비문화와 한국식 자본주의를 예단한 것이었다. ‘오렌지족’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10대가 부상한 것도 바로 이때다. TV의 트렌디 드라마와 그 스타들이 출연하는 광고는 대중문화를 소비문화에 밀착시키며, 우리의 일상 깊숙이 소비라는 감각을 안착시켰다. 현대 한국 사회의 자본 중심적 가치관과 그 양상은 바로 이 시기에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영화계도 변화의 기로에서 요동쳤다. 영화인들은 스크린쿼터 투쟁의 강도를 높여갔지만, 외화 직배로 상징되는 글로벌 기업의 시장 진입은 한국영화가 산업화의 길로 들어서면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했다. 1989년 110편, 1990년 111편, 1991년 121편, 1992년 96편 제작된 한국영화는 1990년대 중반 들어 60편대로 제작편수가 줄었고, 한국영화의 상영 비중 역시 1990년 28.7%에서 1993년 15.4%로 준 이후 1990년대 내내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특히 할리우드 직배 영화가 보여준 흥행 파워는 시장 개방의 결과를 명백히 보여줬다. 상영 외화 중 직배의 비중은 15% 내외였지만, 동원 관객 수로 치면 50%를 훨씬 넘겼기 때문이다. 파라마운트와 유니버설이 합자한 비디오 회사 CIC가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서고, 뒤이어 대기업들이 판권 경쟁에 뛰어들며 형성된 비디오 시장은 한국 영화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관 흥행 외에도 수익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제작자유화 조치로 생겨난 영화사들의 제작 기반이 되어준 것이다. 1980년대 후반 다수의 프로덕션이 비디오용 에로티시즘영화에 몰두하는 양상을 보였지만, 1990년대 초 영화기획사의 영역이 만들어지고 이른바 ‘기획영화’가 등장한 것은 산업의 변화가 가져온 순기능이었다.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했고, 대통령 연례보고에 할리우드영화 < 쥬라기 공원 Jurassic Park >(스티븐 스필버그, 1993) 한 편이 벌어들인 수익이 자동차 150만 대의 판매 수익과 맞먹는다는 보고가 올라가면서, 영화는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비디오와 케이블TV 프로그램이라는 창구 효과(window effect)를 기대한 대기업이 영화산업에 속속 진출하면서, ‘흥행업’으로 비하 받던 충무로 영화산업은 혁신적인 변화를 맞게 된다. 지방 흥행업자의 돈을 모아 영화를 만들던 방식에서, 조사기획을 거치고 대기업의 결제 라인을 통해 자금이 집행되는 제작 환경으로 바뀐 것이다. 이 흐름과 맞물린 것이 바로 ‘기획영화’라고 기록되는 제작 방식이다. 제작자유화 물결을 타고 1980년대 후반 영화판에 들어온 젊은 기획자들은 비디오 판권 형식으로 대기업 투자를 이끌어내며 한국영화가 산업화의 길로 들어서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 시작은, 1992년 신씨네의 기획으로 익영영화사가 지방배급업자와 삼성으로부터 제작비를 투자받아 만든 < 결혼이야기 >(김의석)다. 영화는 서울에서만 52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 그해 흥행 1위를 차지하며, 한국영화의 ‘산업’적 모델을 만들었다. 현대 한국영화의 특질을 특유의 완성도 높은 상업영화로 정의할 수 있다면, 바로 이 영화가 출발점일 것이다. 산업으로서의 성장이 길을 넓히면서, 한국영화의 미학도 확장되어갔다. 1990년대를 작가주의 감독의 시대로 명명하는 이유인 것이다. 바로 직전인 1980년대 말 ‘코리안 뉴웨이브’의 작가주의 감독군과 ‘장산곶매’ 등 독립영화 진영의 장편 극영화 활동이 있었고, 특히 장선우 는 이후 작가주의 감독들의 미적 터전을 마련하며 홍상수 , 이창동 등의 작업을 예고했다. 말하자면 그의 영화 작업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이후의 작가주의 영화를 연결한 가장 핵심적인 흐름이었다. 장선우 감독 도발적 화두와 거침없는 실험, 가장 논쟁적인 감독 1952년 서울에서 태어난 장선우는 1971년 서울대 고고인류학과에 진학해 1976년 시위 주도의 여파로 방위병으로 끌려가기 전까지, 마당극을 중심으로 한 민중문화운동의 최선전에서 활동했다. 영화판으로 발을 옮긴 것은, 1980년 복학 후 민주화운동에 합류했다가 6개월간의 징역을 살고 나서였다. 이효인 교수와 한 인터뷰(「한국의 영화감독 13인」)에 따르면, 합법적이고 생활이 되는 예술을 하고 싶었고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영화예술로 표현해야 한다는 판단 역시 그를 영화계로 이끌었다. 1980년 11월 이장호 의 < 바람불어 좋은 날 >을 관람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이후 장선우는 이장호 감독의 <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1981)의 각본(크레디트: 장민승 )과 연출부로 영화계에 입문한 후, 영화사 기획실에서 일하며 영화평과 시나리오를 썼다. 이장호 연출부의 조감독이던 선우완 과 같이 < 서울황제(원제: 서울예수) >(1986)를 연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했지만, 검열의 수모 끝에 극장 개봉에도 실패하는 불운을 겪었다. 이후 둘은 <MBC 베스트셀러극장>에서 작가와 PD로 호흡을 맞추며 영화 복귀를 준비했다. 장선우의 실질적인 데뷔작은 < 성공시대 >(1988)다. 자본주의 사회를 우화적으로 묘사한 이 영화는 흥행과 비평 양쪽을 모두 만족시키며, 그의 이름을 충무로에 각인했다. 그가 비평적으로 주목받는 지점은 영화적 화두와 미학적 스타일이 고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영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 우묵배미의 사랑 >(1990)과 하일지의 소설을 영화화한 < 경마장 가는 길 >(1991)에서는, 사회에 대해 직접 발언하는 것에서 한발 물러나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전환했다. 전자는 서울 근교 하층 계급의 삶을 해학과 연민 어린 시선을 통해 보여주며 ‘묘사의 진실성’을 화두로 삼았고, 후자는 지식인 계층의 허약한 내면을 카메라의 움직임을 통해 포착하며 ‘주관적 객관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후 < 화엄경 >(1993)으로 베를린영화제 알프레드 바우어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에서도 인정받았고, 1995년 영화 탄생 10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한국영화 씻김>을 거쳐, 1996년 최윤의 원작을 영화화한 < 꽃잎 >을 내놓으며 광주항쟁을 대중예술 매체인 영화로 표현하겠다는 그의 목표를 이루게 된다. 한국의 영화 문화가 폭발하던 1990년대 중반, 이 영화는 비평뿐만 아니라 흥행에도 성공하며, 충무로의 상업영화를 통해 처음 광주를 환기시켰다는 작품의 가치를 배가했다. 한편 그는 늘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1994년 성을 전면에 내세운 장정일 원작의 < 너에게 나를 보낸다 >로 흥행과 화제의 중심에 선 후, 1997년에는 한국영화사의 대표적인 문제작 < 나쁜 영화 >를 디지털 질감으로 선보였다. 세기말에는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영화화한 < 거짓말 >(1999)을 내놓으며 한국 사회의 오래된 논쟁거리인 창작물의 표현 수위 문제를 부각했다. 당시 장정일의 소설은 음란물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장선우의 영화는 무혐의 처분과 등급 보류 판정을 받았다. 이후 그는 「성냥팔이 소녀」를 모티프로 한 한국형 블록버스터 <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2002)을 연출했으나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차가운 평가를 받았고, 현재 시점에서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지식인 남자 R의 비루한 현실 영화는 공항을 나서는 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R( 문성근 )이 돌아왔다는 ‘누군가’(실은 감독의 목소리)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프랑스에서 유학을 마치고 5년 만에 돌아온 R은 파리에서 동거한 J( 강수연 )와 재회한다. 하지만 J는 한국과 프랑스는 다르다는 석연찮은 말로 R과 섹스하기를 거부하고, 화가 난 그는 고향인 대구로 내려간다. R은 오랜만에 아내( 김보연 )와 자식들을 만나지만 이미 이혼을 통보한 탓에 전혀 반갑지 않다. R은 오로지 J와 섹스하기만 갈망한다. 그는 서울에 올 때마다 그녀를 만나 다방과 식당을 전전하며 관계를 요구하지만, 여관행은 번번이 거부당한다. 한편 대구의 집에 내려가면 아내는 이혼을 거부한다. R은 자신이 써준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J가 자신이 써준 글로 문학비평가로 데뷔한 사실을 알고, 또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할 거라며 그를 떠나려고까지 하자 극도의 배신감을 느낀다. 하지만 R은 좀처럼 J를 떠나지 못하고, 되레 한국을 떠나 같이 프랑스로 가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J는 끝내 R을 거부한다. 영화의 중심 인물은 지식인 남자 R이다. 그는 프랑스라는 1세계와 한국이라는 3세계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물인데, 특히 3세계에 처한 그의 비루한 현실은 대구의 가난한 고향집을 통해 그려진다. R은 J를 만날 때마다 프랑스를 떠올리며 “우리 모처럼 산책이나 할까”라고 제안하지만, 그녀는 밑도 끝도 없이 걷는 건 산책이 아니라 노동일 뿐이라고 대꾸한다. R은, 그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프랑스에서 동거한 서울의 J 혹은 그녀와의 섹스라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J는 계속 R과의 관계를 거부하고, 그는 (한동안 회자된 대사인) “너의 이러한 행동의 이데올로기는 뭐냐”라며 지식인의 허세를 노출한다. 그는 그녀를 회유하고 때로는 협박하지만 그녀는 완강하게 섹스를 거부한다. R의 추궁에 J가 결혼할 남자가 있다는 고백을 하자 그의 비참함과 지질함은 극에 달한다. R은 J에게, 결혼할 남자에게 프랑스에서 3년 반 동안 동거한 이야기를 했느냐며 “그런 소릴 하면 너를 그토록 사랑한다는 그 사람은 충격을 받을 것이고 그 고통 때문에 바람을 피우게 되고 끝내는 파탄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 이는 R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말이기도 한데, 그는 아내와 이혼하는 사유로 나를 키워줄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를 대지만, 실은 아내의 혼전 남자관계를 마음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J가 R의 글을 문예지에 내서 당선되었다고 사실을 털어놓은 후, 그의 요구는 애걸과 협박 사이에서 후자로 무게를 옮긴다. 급기야 R은 J에게, 자신의 글로 문학박사가 되고 문학평론가가 된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재판을 걸겠다는 것이다. 결국 섹스는 하게 되지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후에도 둘의 지난한 만남은 계속된다. J가 R이 아닌 결혼할 남자를 택하겠다고 말하자, 이제 그는 J에게 한국을 떠나기 위해 필요한 3,000만 원을 내놓으라고 한다. 둘은 또 관계를 가지지만 결국 J는 R을 떠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갈 곳을 잃은 R이 시외버스를 타고 우유를 마시려 하다, 시골 아낙들이 있는 바깥 풍경을 보면서 우유를 흘리는 장면이다. 장선우가 “일종의 경련처럼 찾아온 깨달음”이라고 표현한 이 장면은, 한국영화사의 가장 불가해한 상징 중 하나일 것이다. 도대체 R은 불현듯 무엇을 깨닫고 메모하는 것일까. R(문성근)과 그의 아내(김보연) 카메라와 합일하는 남자 R 이 영화는 완결된 이야기를 목표로 하지 않고, R과 J, 두 남녀의 관계를 묘사하는 것에 치중한다. 영화의 초반부 R이 J에게 대전까지 같이 가자고 할 때, 둘의 대사와 풍경을 잡는 숏들을 통해 당시의 한국 사회에 대한 발언이 잠깐 등장하기도 한다. 서울은 이제 차가 많아지고 올림픽대로가 생기는 등 길이 얼마나 복잡한지 모른다는 J의 말과 함께 보이는 자동차 광고판이 그것이다. 또 십자가 가득한 서울 도심의 야경을 보여주는 숏 다음에 마치 유럽의 공동묘지 같다고 말하는 R의 대사가 그렇다. 하지만 영화는 원래의 목적대로 곧바로 둘의 관계에 집중한다. 카메라는 줄곧 자동차 안, 다방과 여관방의 R과 J를 포착하며, 지식인 남녀의 내면을 해부라도 하려는 듯 그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영화평론가 장병원의 지적처럼, “그럴듯한 이야기의 창출보다 현실의 표면을 기록하는 것”에 치중하는 이 영화의 목적은, 분명 이후 홍상수의 작업을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는 R의 지인으로 추정되는 ‘누군가’(나)의 내레이션으로 열고 닫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프랑스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R이다. 장선우 역시 포착했듯, 하일지의 원작 소설은 3인칭 주인공의 시점을 통해서만 이야기가 진행된다. 3인칭을 탈피해 나라는 존재가 잠깐 등장하긴 하지만, R이 보고 듣고 행하는 것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것이다. 한편 영화는, 카메라의 시점과 3인칭 주인공의 시점을 합치는 방식으로 감독이 목적한 ‘주관적 객관성’을 실험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절대적인 객관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주관적인 관찰자를 벗어난 객관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R이 공항에서 빠져나오는 영화의 첫 장면부터 확인할 수 있다. R의 주관적 시점으로 마중 나온 환영 인파가 보이지만, 카메라가 옆으로 회전하면서 즉 카메라의 시점으로 전환해 R을 잡는 식이다. 또 R을 포착하던 카메라가 즉 카메라의 시점으로 시작된 숏이 R의 주관적 시점처럼 움직이기도 한다. R이 지나가는 사람이나 들려오는 소리에 관심을 가지면 카메라 역시 그쪽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장면들이다. R이 다방에서 껌을 사는 장면에서, 카메라의 시점으로 시작된 숏이 껌 파는 여성으로 시선을 옮기는 그의 주관적 시점으로도 활용된다. 또 J와 만난 다방 장면에서, R을 비추던 카메라가 그의 시선을 따라 다방의 어항을 비추다가 다시 돌아오면 카메라의 숏이 되는 식이다. 하지만 다음 숏이 J를 향한 그의 시점 숏이라는 점에서 숏의 논리는 한층 복잡해진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1인칭 화자가 날짜를 혼동하는 것처럼, 이 영화의 시간은 순전히 R의 주관적 감각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카메라와 R의 주관적 시점이 합쳐지는 숏 운용은, 객관적 진실을 거부하는 감독의 태도를 지지하는 동시에 시간의 모호성을 탁월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1990년대 작가주의 영화의 계보 ‘코리안 뉴웨이브’ 작업은 1990년대에도 진가를 발휘했다. 장선우의 영화는 물론이고, 박광수 의 < 그 섬에 가고 싶다 >(1993),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1995), 정지영 의 < 하얀전쟁 >(1992), <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 >(1994), 이명세 의 < 나의 사랑 나의 신부 > (1990), < 첫사랑 >(1993) 등이 작가주의 미학과 대중적 감각 사이의 균형점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임권택 은 < 서편제 >(1993)의 흥행 성공으로 국민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1996년과 1997년은 2000년대 해외 영화제를 통해 인정받은 작가주의 감독 홍상수, 김기덕 , 이창동이 각각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1996), < 악어 > (1997), < 초록물고기 >(1997)로 데뷔한 해다. 특히 <그 섬에 가고 싶다>의 각본과 연출부에 참여하며 영화계에 입문한 이창동은, 소설가 출신다운 이야기꾼으로서의 내공에 영화 매체에 대한 집요한 탐구를 결합하며 작가주의 감독으로서 신중한 행보를 시작하고 있었다.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의 르네상스는 두 개의 축으로 재도약 한다는 점이 이전의 경향과 크게 변별점을 가진다. 우선 가장 일반적인 접근 방식으로 사업적인 성공을 목표로 대중적 오락성과 작품성 두 마리 토기를 다 잡으려는 30억 이상의 장편 애니메이션과 작품성과 특정 매니아 층을 겨냥한 10억 이내의 저예산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구분될 수 있겠다. 오성윤 감독의 < 마당을 나온 암탉 >과, 100만을 넘긴 3D CG애니메이션 영화인 < 점박이 >가 첫 번째의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둘 다 나름 한국의 척박한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성공한 모델로 꼽히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오랜 제작경험을 가진 스튜디오와 영화제작사와 투자배급사의 안정적인 결합으로 제작 및 마케팅비를 마련하고 100개관 이상의 상영관을 확보하며 관객몰이를 하는 전형적인 메이저 영화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을 다 갖춘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그리 쉬운 얘기가 아니다. 무엇 보다 검증 안 된 감독의 첫 번째 장편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작년은 우리에게 저예산 장편의 가능성과 함께 한계도 명확히 깨닳게 한 해였다고 생각한다. 한혜진 , 안재훈 감독의 < 소중한 날의 꿈 >과 연상호 감독의 < 돼지의 왕 >이 극명하게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었다. < 돼지의 왕 >은 부산국제영화제의 3관왕 수상과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관으로 초청되며 언론의 집중조명과 호의적 국내외 여론형성으로 차기작 < 사이비 >의 투자결정과 일련의 과정이 지금까지의 한국애니메이션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분위기와 현상들은 메이저급 장편애니메이션이 펼쳐온 전략과 분명 차별화된 것으로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최근 개봉한 이대희 감독의 첫 번째 장편 < 파닥 파닥 >과 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의 김선아 , 박세희 감독의 < 은실이 >는 이러한 면에서 다시 곱씹어볼 만한 작품들이다. 이대희 감독의 <파닥 파닥>은 < 돼지의 왕 >에 비하면 7억이라는 상대적으로 큰 제작비와 영화진흥위원회 프로모션 지원사업을 받아 개봉한 3D애니메이션으로 아마도 3D장편 중에는 가장 저렴한? 제작비로 완성한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횟집의 어항에 갇힌 고등어인 ‘파닥 파닥’의 탈출을 둘러싼 어항 속 물고기 캐릭터들의 이해관계를 통해 인간의 세상사를 비판적이고 풍자적으로 그려낸 이야기로 다소 무거운 현실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 다른 독립, 저예산 장편애니메이션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영화아카데미 장편 제작연구과정 작으로 올 겨울 개봉한 장편애니메이션 < 은실이 > 또한 한 마을의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소녀를 둘러싼 성적 폭력성을 방관자와 가해자의 입장에서 우리사회의 약자에 대한 태도의 양면성을 그려낸 작품으로 최근 이슈화 되고 있는 집단적 성도덕성의 추락을 꼬집고 있다. 저예산 장편 애니메이션이 이러한 사회문제화 된 소재의 선택과 감독의 연출에 있어 좀 더 자유로운 건 메이저 영화들이 가져갈 수 없는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편이라는 도전과 제작경험이라는 값진 이득 이면에는 많은 부분 잃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즉, 감독이 추구하는 작품세계와는 별개로 무언가 안 어울리는 제작시스템과 배급환경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것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제작비 규모의 문제만이 아니라 제작에 상당부분을 외부인력으로 아웃소싱 할 수밖에 없는 저예산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 현실에서 제작 스탭의 공감과 참여방식의 문제, 컨트롤의 범위와 한계에 대한 문제이다. 제작인력의 안정적인 확보만큼이나 적절한 노동력의 활용과 시스템의 지원에 대한 문제는 특히 독립 장편 애니메이션에 새롭게 부각될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배급에 관련해서는 자본의 논리에 지배 받을 수밖에 없는 거대한 배급시스템에 표류하는 저예산 영화들의 통제하기 어려운 것이 가장 큰 현실적인 벽이다. 그나마 < 파닥 파닥 >이 CGV무비꼴라주상과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이 없었다면 개봉조차 어려웠을 것을 생각하면 다양성 영화에 정부지원은 제작 및 마케팅 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결 방안이라고 볼 수 있다. < 파닥 파닥 >은 50개관 상영 첫 주 5천명 정도의 저조한 성적에 그쳤지만 이는 여름성수기를 맞아 쏟아진 국내외 대작에 밀린 어쩔 수 없는 부분으로 무엇보다 어려운 제작현실에서도 끈기와 열정을 잃지 않고 견뎌낸 감독과 제작진에 큰 격려를 보내고 싶다. 긍정적인 평가로는 저예산에서 감히 디즈니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뮤지컬 장면으로 연출을 시도했고 영화를 좀 더 풍요롭게 만들고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3D와 2D의 적절한 제작방식의 활용 등 새로운 도전도 눈에 띄었다. 마지막으로 저예산 애니메이션들이 해마다 한 두 편 개봉하는 것은 감독이 커나가고 시장을 다양화 하는 면에서 반가운 일이지만 아직도 한국의 저예산 장편 애니메이션은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다. 작품으로서의 완성도와 함께 관객에 대한 재미를 다 줄 수 있는 작품이 나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상업영화의 기본 생존법칙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지만 관객이 외면하는 저예산, 독립 장편 애니메이션은 존재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미란 단순한 오락은 아닐 것이다. 메이저 작품이 잃어버린 독창적인 매력이라고 할까? 해답은 작품을 만드는 감독과 이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관객에게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