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직원들: 직장연애사
- 감독
- 명석환
- 제작년도
- 2016
- 출연
- 주예빈, 조정현, 백세리, 유아, 신유철
사회복지학과 졸업을 앞둔 성희는 장애인 활동지원 아르바이트 활동 중 허리를 다치게 되고, 어떠한 산재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이용자로부터 해고당하게 된다. 학자금 대출, 생활비, 치료비 및 스페인 출국을 위한 자금 마련 등을 이유로 일을 그만둘 수 없었던 성희는 활동보조센터 담당자에게 산재 처리를 요구하지 않는 대신 일이 많지 않은 새로운 이용자 배정을 강력히 요구한다. 이후 하루 종일 의식 없이 누워만 있는 중증 장애인을 새 이용자로 배정받은 성희는 별 일 없이 업무시간을 채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지만, 성희의 형식적인 업무 수행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용자의 아들 현목과 갈등에 놓인다. 다른 일자리에서 비해서 비교적 높은 시급을 받고 있지만, 고용 불안정과 이용자의 부당한 업무지시에서 한 치도 자유로울 수 없는 장애인 활동지원사와 장애인 수급비와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고 있지만 보통의 삶을 살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장애인 가족의 빈곤과 결핍. 이들의 갈등을 전면에 내세운 < 에듀케이션 >( 김덕중 , 2019)은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복지 현실을 고발하는 영화로만 정의하기에는 여러 함의들이 내포되어 있다. 걷기 어려울 정도로 허리를 심하게 다쳤음에도 일을 쉴 수 없는 성희에게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대학 졸업을 위한 실습 시간을 채워야하는 아르바이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성희가 직업의식이나 장애인 운동에 관한 사명감 없이 오로지 졸업을 위한 수단 겸 시급 높은 생계 수단으로만 활동지원 노동을 생각한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성희에게 깊은 정서적 유대와 감정 노동을 원하는 현목과 이를 거부하는 성희 이 둘 중 누가 더 잘못했다고 명확히 판단하고 결론 내릴 수 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불협화음을 내다가 기어코 파열로 끝나는 <에듀케이션> 인물들은 신체적·정신적 한계로 인해 자유의지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없는 현목 엄마를 제외하곤 자신의 입장만 앞세우는 경향이 크다. 가령 활동지원사의 시급이 다른 직종보다 높다는 이유로 가사노동과 친밀감을 요구하는 현목에게 성희는 “(활동지원사가) 가사도우미, 파출부는 아니다.” 식으로 맞서는 설정이 몇 번 등장하는데 상시 업무 외 업무를 강요받는 활동지원사의 열악한 노동 환경 및 고용 불안정을 생각하면 크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아직 정서적 돌봄과 지지가 필요한 미성년자 현목의 요청을 단호히 거절하는 성희가 야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용자(혹은 이용자 가족)와 활동지원사간의 과도한 친밀감과 그로 인해 형성된 공고한 관계는 활동지원 노동 현장에서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고, 오히려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과 자립을 방해한다는 의견 또한 제기되고 있다. 1) 그렇다고 성희와 같은 활동지원사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려드는 중증 장애인과 그(녀)의 가족들의 태도가 잘못되었다고 무조건 근절할 수도 없는 형국이다. 필요 이상으로 타인의 일상에 끼어들고 싶지 않는 활동지원사 성희와 그녀에게 정서적 유대와 친밀감을 간절히 원하는 장애인 이용자 가족 현목. 허나 <에듀케이션> 속 성희와 현목의 갈등은 두 개인의 갈등 혹은 장애인 활동지원사와 장애인 이용자 (가족) 간의 문제를 넘어 현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제도만으로는 장애인(가족)의 자립과 사회 활동 참여 증진이 어려운 현실과 맞물린다. 몸이 아픈 와중에도 밤낮없이 일해서 겨우 최저생계비를 면할 정도의 수입으로 먹고 살아야하는 성희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청년 도시 노동자의 비애를 대변한다. 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시험 준비를 포기한 이후 스페인 이주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성희의 일상은 답답함과 무기력함이 가득하다. 하지만 막연하게라도 자신의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성희와 달리 중증 장애인의 보호자라는 이유로 많은 활동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는 현목의 상황은 더욱 참담하다. 자기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인 현목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는 있지만 자기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성희와 자칫 잘못하면 엄마는 물론 스스로에게까지 위협을 가할 수 있는 현목의 관계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실패한 성희와 현목은 우려했던 대로 파국을 맞는다. 영화 <에듀케이션>은 장애인 활동지원 사업의 문제점을 전면으로 제기하기보다 복지 정책에서 완전히 소외된 청년 간의 갈등에 더 집중하는 태도를 보인다. 자기 자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로 규정하고 이기적인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바쁜 성희와 자신의 미숙한 언행을 돌아볼 여력조차 갖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리는 현목. 승패 없이 서로에게 자괴감과 모멸감만 남기는 이들의 다툼은 얼렁뚱땅 넘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각자의 불행을 이유로 자신의 입장만 내세울 뿐 정작 타인에 대해서는 몰이해로 일관했던 성희와 현목의 갈등을 극대화시키면서 엔딩 이후의 이야기를 궁금하게 한다. 과연 영화가 보여준 엔딩은 절망과 분노 밖에 남지 않은 혼돈의 끝인가 아니면 미약하게나마 새로운 내일을 기약하는 희망의 시작으로 볼 수 있을까? 스포일러가 될 까봐 더 이상 언급할 수 없지만, 단언컨대 올해 가장 주목할 만한 문제적 엔딩이다. 1) <‘활동보조 갈등’을 바라보는 3인 3색 시각들>, 에이블뉴스, 2013.12.16.
내외의 주목을 크게 받지는 못했으나, < 사회생활 >( 이시대 , 2019)은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한국영화들 가운데 가장 눈에 들어온 ‘발견’이었다. 전주, 전북 지역 작품 공모를 통해 선정된 이시대 감독의 이 데뷔작은 프로그래머들 간 논의 끝에 한국경쟁에까지 오르지는 못했다. 이시대는 장우진 , 김대환 , 임태규 감독을 배출하면서 최근 한국 독립영화의 산파 구실을 하고 있는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 전문대학원 출신의 신인이다. 어떠한 지원도 없이 오로지 감독의 의지만으로 밀어붙인 고투의 흔적이 곳곳에서 확인되는 이 영화에서 그는 우리네 삶의 문제를 탐사하고자 한 작가정신의 치열함을 보여준다. 현실의 탐색 후에야 가능한 뼈저린 자성을 견고한 양식적 전략으로 다룰 줄 아는 이시대의 묵묵한 연출에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다. 영화의 무대는 서울에 본사를 둔 지방 소도시 지사의 사무실이다. 카메라는 폐소공포증을 자아내는 이 사무실 바깥으로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다. 이 사무실의 실질적 관리자인 이현제 대리는 모종의 사건에 연루되어 서울 본사로부터 쫓겨나 이곳으로 좌천된 이혜원 대리의 관리 감독을 맡게 된다. 관리 책임을 맡긴 팀장의 감시와 채근이 격화되면서, 냉정한 조직의 논리 안에서 생존해야 하는 현제는 혜원이 제 발로 걸어 나가도록 냉대와 멸시의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부정(不正)한 계율에 정면으로 맞서고자 하는 혜원은 꿋꿋이 버티고, 종종 똑부러진 일처리로 현제를 돕기도 한다. 순응과 굴종을 강요하는 집단 공작의 약발이 먹히지 않을 때쯤, 혜원을 둘러싼 흉흉한 소문이 돌고 코너에 몰린 혜원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사회생활>은 한국 사회를 잠식한 조직문화의 이면을 폭력의 순환으로 형상화한다. 신입사원 면접시험으로 열리는 플롯은 혜원의 좌천 수난기가 비극적으로 종료된 후 또 다른 면접시험으로 닫힌다. 회사 안에서 인정받고 진급하기 위해 엄격한 위계와 패거리 문화, 집단주의에 투항한 현제를 통해 이시대는 한국식 조직문화의 냉엄함, 보이지 않는 폭력을 가공할만한 밀도로 그려낸다. <사회생활>은 조직과 개인, 조직 안의 개인과 개인을 끝끝내 만날 수 없는 대립적 갈등관계로 묘사한다. 메마른 조직문화의 생리에 밀려난 자들의 패배는 그 세대에 그치지 않고 대물림된다. 현제와 혜원이 잠시나마 희미하게 교감하였다는, 패배의 질적 변별성에도 불구하고 패배는 그저 패배일 뿐이다. 여기서 대립적 세계인식을 통어(通御)하는 작가의 심층인식이 드러난다. 개별성을 말살하는 조직, 제도, 시스템의 폐쇄성과 그 정황을 그리고 있는 <사회생활>은 대립적 세계 상황에 포박된 자들의 속절없는 패배를 ‘아이러니’의 수사학으로 그린다. 구태여 희망과 미래를 보여주려 하지 않는 아이러니는 반성적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존재 의의가 있다. 좌절스러운 이 패배로부터 이시대는 자신이 견지하고자 하는 시스템에 대한 날선 관점을 추출한다. 우리는 얼마나 세상에 굴종하며 살고 있는가, 또 폭력을 온존케 하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에 가담하거나 최소한 방조하면서 밥벌이를 하고 있는가. 개별자들의 자존과 위엄을 짓밟는 제도와 시스템의 억압을 고발하는 영화의 톤은 얼음장 같이 차갑다. 무엇보다 <사회생활>의 도드라진 성취는 그 표제만큼이나 정직한 스타일의 일관성, 일체의 과장이나 수식을 배제한 미니멀한 장면연출에서 찾을 수 있다. 대다수의 쇼트는 롱테이크로 찍혔고, 그 무게는 육중하다. 흡사 아마추어 감독의 습작을 보는 것 같은, 놀라우리만치 강직한 이시대의 스타일은 그가 연출한 두 단편영화 <오늘의 중력>(2016), < 업무시간 >(2016)에서부터 이어지는 특징이기도 하다. 대못을 박아둔 것처럼 어떤 움직임도 없이, 인물들의 뒤편에서 저들의 뒤통수를 찍거나, 무언가에 가려지고 잘려진 몸의 일부, 세트의 일부를 찍는 카메라는 좀체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감옥의 형상으로 이 사무실을 그린다. 시스템의 감옥에 억류된 존재의 비의를 묘사하는 롱테이크 장면들은 범속한 세상사와 조직생활의 저열함을 보는 사람들에게까지 전이시킨다. 불합리한 세계의 비의를 형상화하는 범상한 수사 전략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정서와 드라마의 긴장을 집요하게 화면에 새기는 이시대의 완력은 근래 한국 독립영화에서 보기 드문 종류의 재능이다. 나는 이러한 재능을 가진 이 감독이 후일 더 가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재목(材木)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