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이스트
- 감독
- 마츠나가 다이시
- 제작년도
- 2022
- 출연
- 스즈키 료헤이, 미야자와 히오, 나카무라 유코, 에모토 아키라, 아가와 사와코
지금도 일본 연예계를 장악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 AKB48에서 처음으로 센터를 맡았던 마에다 아츠코가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오프닝이 지나가고 나면, 영화 제목이 나온다. ‘사요나라 가부키초’. 안녕 가부키초, 라는 서정적인 제목을,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선정적인 ‘러브호텔’로 바꾼 것 아닐까 잠시 의심했다. 하지만 영문 제목 자체가 ‘가부키초 러브호텔’이다. 도쿄의 번화가 신주쿠에서도 환락가인 가부키초에 위치한 러브호텔의 하루를 보여주는 군상극.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섹스를 하고, 싸우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면서 안녕을 고한다. 가부키초는 언젠가 떠나가야만 하는 곳이다. 때로는 살해당한 채로. 가부키초는 환락가다. 일본의 신주쿠는 도쿄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온갖 일이 벌어지는 거리다. 신주쿠 골덴가가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이 모여드는 퇴폐적이면서도 유장한 거리라면, 가부키초는 그야말로 난잡하고 휘황찬란한 환락가 자체다. 러브호텔과 풍속 업소가 빼곡하게 들어차고 야쿠자와 불량청소년과 외국인들이 모여드는 곳. 하세 세이슈의 소설 「불야성」 3부작을 읽어보면 1980년대부터 다국적 공간으로 변해버린 가부키초의 상황을 잘 알 수 있다. 그걸 판타지로 풀어내면 기쿠치 히데유키의 <마계도시 신주쿠> 정도가 된다.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 <신주쿠 흑사회>와 <표류가>는 야쿠자와 중국계 조직폭력단을 중심으로 가부키초를 들여다본 영화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가부키초는 여전히 환락가이지만 여느 도시의 번화가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심에서 한 블록만 들어가면 나오는, 유난히 번들거리고 뒤틀린 공간.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거쳐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마계도시 신주쿠> <신주쿠 흑사회> <표류가> 러브호텔 아트라스의 점장 테츠는 인디 뮤지션인 사야와 동거하고 있다. 오다이바의 특급 호텔에서 일하는 호텔리어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이곳이다. 아트라스에서 객실 청소를 하는 스즈키 사토미는 폭행사건의 범인인 야스오와 함께 도주 중이다. 이제 하루만 더 버티면 시효가 끝나 자유의 몸이 된다. 한국에서 온 혜나는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동거 중인 정수에게도 말을 못했지만 그녀는 데리헤루, 즉 콜걸 일을 하고 있다. 직접적인 성행위는 하지 않지만 유사 성행위를 하면서 돈을 벌었다. 거리를 헤매는 여성들을 데리헤루에 팔아버리는 일을 하는 마사야는 가출소녀 요코를 만나 아틀라스에 하루 숙박을 한다. 단 하루에도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2층을 통째로 빌린 AV 촬영팀에 피자를 전해주러 간 테츠는 여동생을 발견한다. 테츠의 가족은 해일이 모든 것을 파괴한 센다이 지역에 살고 있었다. 전문대를 다니던 여동생은 돈을 벌기 위해 알바를 시작했지만 너무 힘들었다. 그 때 AV 배우 모집 광고를 보고 시작했다. 한 달에 두어 번 도쿄에 와서 촬영하고는 돌아간다. 이제는 사고 싶은 것을 사고, 학교도 잘 다닐 수 있다. 죄책감은 없다고 그녀는 단언한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혜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일본에 왔다. 여기서 번 돈으로 한국에 가서 옷가게를 낼 생각이다. 건설회사에서 밀려나 전단지를 돌리게 된 중년 남자를, 그녀는 따뜻하게 안아준다. 요코는 재혼한 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하다가 도망쳤다. 죽어버리라는 말까지 들었다. 요코는 말한다. ‘죽어버리라는 말을 들었으니까 매춘을 해서라도,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남을 거야’라고. 그런 요코를 보고, 마사야는 혼돈에 빠진다.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예정된 균열이 생기거나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관계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하필이면 테츠가 일하는 아틀라스에, 사야가 다른 남자하고 들어온다. 음반회사의 관계자다. 사야라는 것을 확인하고도 테츠는 애먼 방문을 걷어차는 정도밖에 하지 못한다. 사야의 얼굴을 보고도, 그만두라고 말하거나, 손을 잡고 도망치지도 못한다. 자신이 보잘것없음을 아니까.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의 인물들은 대체로 그렇다. 혜나는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수에게 말하지 못한다. 아무리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테츠는 여동생에게 말한다. AV 배우 한다고 부모님한테 말할 수 있어? 여동생은 아니라며, 절대 말하지 말라고 부탁한다.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있다. 아무리 자신은 떳떳해도, 세상은 다른 눈으로 보는 일과 사람들이 있다. 가부키초의 러브호텔에 드나드는 사람들 태반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살아간다. 지금은 이렇게 살아가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떳떳하고 언젠가는 다른 곳으로 가서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시효가 끝날 때까지 꿋꿋하게 버티면서 일을 하는 사토미처럼. 쉽게 변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요코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며 약속을 지키는 마사야처럼, 그들에게는 최후의 믿음이 있다. 그건 요코의 끈질긴 생명력 같은 것이다. 죽어라, 하는 말에는 결코 복종할 수 없다는 오기 같은 것.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라고 내뱉는 테츠보다는 하고 싶어서 한 거 아니야. 접대로 한 건데 뭘 그래. 데뷔할 수 있잖아. 그런 걸 신경 쓰는 거야? 쪼잔해, 라고 말하는 사야가 훨씬 더 건강하고 애잔하다. 한국인, 중국인, 베트남인, 이란인 등이 뒤엉켜 살아남기 위해 살육전을 벌이던 가부키초에서는 지금도 보통의 남녀들이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상의 어둠에 파먹히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혜나도, 사야도, 요코도, 사토미도 악착같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 앞이 보이지 않아도 나아간다. 그들은 지금, 스스로 들어온 감옥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요나라는,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쓰는 인사다. 다시 보지 않으려 할 때. 그러니까 이제 그들은 가부키초를 떠나간다. 혜나도, 마사야도, 사야도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가부키초가 기억에서 지워야 할 지옥이나 악몽은 전혀 아니다.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이 그리는 가부키초는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보다 조금 더 아래에 있는 공간일 뿐이다. 지저분하다거나 추악하다고 힐난할 수도 있는, 아래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몸을 팔거나, 뒤틀린 욕망이 뒤엉킨 곳이지만 히로키 류이치 감독은 씁쓸하면서도 건강하고 경쾌하게 그들의 하루를 보여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종잇장 하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별다르지 않으니까. 보통의 삶을 살아간다고 믿는 나도, 언제 한 칸 아래의 바닥으로 떨어질지 모르니까. 1982년 핑크영화로 데뷔한 히로키 류이치는 < 경멸: 에고이스트 > < 도발적 관계: 엠 > < SM 작가 > 등에서는 도발적이고 뒤틀린 성애를 묘사하지만 < 바이브레이터 > < 노란 코끼리 > 등에서 여성에게 부드럽고 따뜻한 태도를 드러낸다.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은 후자에 가깝다. 굳이 따진다면 인정희극에 기울어진다. 비극보다는, 그래도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에 카메라를 가져간다. 그래도 살아갈 만한 세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다.
1.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가장 익숙한 문예 양식이자 사회적 제도이기도 한 로맨스는 그 어원에서부터 통속 혹은 진부함(banality)을 속성으로 갖고 있다. 영화 장르로서의 로맨틱 코미디는 바로 이 진부함의 요소들을 중심으로 재미를 만들어내며 그 핵심에는 로맨스를 로맨틱한 것으로 구성하는 통속적인 조건들의 질서가 있다. 그런 점에서 로맨틱 코미디는 여느 대중 장르보다 다채로운 색깔로 채색된 풍속화로서의 지위를 얻는다. 풍속화를 보는 첫 번째 재미는 젠더관계와 계급, 몸짓과 패션, 매너와 에로티시즘 등 다양한 토픽들을 재현하는 그 표면의 이미지들에 있다. 그러나 진짜 재미는 이러한 이미지들을 배열하는 내부의 질서를 탐색할 때 등장한다. 당대의 삶을 포착하는 어느 한 순간은 무엇과 무엇이 연결되고, 그 연결에서 어떤 힘의 관계가 소묘되며, 이를 바라보는 것은 누구인가라는 내적인 질서에 의해 그 역동적인 힘을 발휘한다. 풍속화로서의 신윤복의 그림에서 그 결정적인 동인이 늘 화폭 구석에 숨어있는 관음적 구경꾼이며 그를 통한 응시가 그 소우주를 통합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점에서 이용민 의 < 서울의 휴일 >은 1950년대 한국의 흥미로운 풍속화인데 특히 풍속의 이미지들과 이를 바라보고 통합하는 응시 사이의 메워지지 않는 간격들 그리고 그로 인한 불안이라는 맥락에서 그렇다. 영화는 산부인과 의사인 희원( 양미희 )과 신문기자 재관( 노능걸 ) 커플이 겪는 휴일 하루 동안의 모험과 그 주변 캐릭터들의 앙상블이 빚어내는 에피소드의 연쇄로 전개된다. 1950년대의 여느 한국영화와 마찬가지로, <서울의 휴일> 역시 당대 한국영화를 관통하는 운동, 즉 근대적 가치의 전지구화와 1950년대의 한국이라는 로컬의 특개성이 절합되는 폭풍 안에 놓여있다. ‘프랜(plan),’ ‘에고이스트’ 등 대화에서 넘쳐나는 영어, 디올(dior) 풍의 튤립 스커트, 맥주와 호텔 라운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중산층 주부들의 요트 놀이 등 이른바 ‘서양 라이프스타일’의 품목들(commodities)을 당대 일상의 풍경 안에 빼곡히 채워 넣으면서, 영화는 3세계 포스트 식민경험에서 대중문화가 수행하는 전시(exhibition)의 전형적 양태를 보여준다. 서구화에 대한 판타지적 열망과 로컬 현실의 절합을 매개하는 이 품목들은 고전 할리우드 서사와 양식적 세련미에 대한 이용민 (그리고 1950년대 대부분의 한국 영화감독들)의 열정 안에서 그 매력을 발산한다. 후암동 살인사건의 단서를 쫓는 재관의 카 체이싱 장면이나 살인범과의 육탄 액션 장면은 (당시 열악한 제작조건을 감안했을 때) 제한적이나 다양한 카메라의 움직임과 앵글, 장식적 미장센 등의 시각적 양식에 대한 이용민의 영화적 재량과 취향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 프랭크 카프라와 프레스톤 스터지스를 오가는 걸작 스크루볼 코미디의 꼼꼼한 참조나 (종종 서사의 흐름을 훼손할 정도로 각각의 장르적 재미가 강조되는) 로맨틱 코미디와 가족 멜로드라마, 액션과 미스터리의 혼용 등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 서울의 휴일 >의 고전 할리우드 양식은 (미리엄 한센의 말을 빌자면) 20세기 초 전지구적 영향력을 갖게 된 미학적, 산업적 규준이자 (미국적) 근대 가치 체계의 운반체인 이른바 ‘통속적 모더니즘(vernacular modernism)’의 장치로 기능한다. 요컨대, <서울의 휴일>에서 형식적 매끈함과는 거리가 먼 채 강박적으로 모방되는 고전 할리우드 양식은 로맨스를 구성하는 판타지의 품목들이 배치되는 재현의 격자, 풍속화를 구성하고 통합하는 ‘응시’의 장소다. 2. 로맨스라는 서사의 우주 안에서 응시가 통합하려는 대상은 바로 성관계다. 대중서사로서 로맨틱 코미디는 성관계를 규정하는 남근적 질서에 대한 대항하는 운동과 이를 다시 그 질서 안에 재포획하여 안정시키는 힘이라는 모순적 관계 안에서 그 재미를 만들어간다. 이른바 ‘신세대’ 엘리트 커플인 희원-재관 부부는 이러한 모순적 힘 관계를 체현하는 주인공이며, 여기에 옆집 부부나 재관의 동료 기자들, 임신한 앞집 처녀와 재관이 우연하게 만나는 ‘살짝 정신 나간 그녀’ 등 그들 주변의 인물들 역시 1950년대 한국의 서구적 근대화를 대표하는 변화 중 하나인 성관계 질서의 변화와 대항을 체현한다. 대개 여성을 중심으로 한 이 성차의 만화경은 (5,60년대 여타 한국영화에서처럼) 돈 버는 아내, 공부 많이 한 여자, 연애하다가 임신한 처녀, 남편 속이고 총각들과 ‘엔조이’하는 주부 등 ‘노는 언니들’에 노골적으로 집착한다. 요컨대, < 서울의 휴일 >의 로맨스 서사 역시 짐짓 20세기 중반 한국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드라마를 관통하는 욕망인 ‘즐겨라!’ 명령을 수행하는 언니들이 - 돌아와 반성하거나, 너무 즐기다 쫓겨나면서 - 그 핵심을 구성하고 있으며 이를 다시 기존의 질서 안에 통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 행복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사랑을 확인하는 희원과 재관 위로 서울의 야경과 보름달이 장관을 이루는 이중노출 쇼트는 응시의 시각화 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으로 뻔뻔한 종류의 이미지다. 그런데 < 서울의 휴일 >을 흥미로운 텍스트인 것은 고전 할리우드 양식에 대한 강렬한 의지와 그 불완전한 구축, 그리고 서구 근대가치와 로컬의 경험 사이에서 메워지지 않는 구멍, 납득되지 않는 흔적으로 얼룩진 이 응시 때문이다. 영화의 플롯은 ? 이 영화가 재관의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 로마의 휴일 >의 오드리 헵번-그레고리 펙 커플의 로맨틱한 휴일과는 정반대로 ? 휴일 하루조차도 함께 할 수 없는 부부의 상황에 기초한다. 특종에 눈이 멀어 아내와의 로맨틱한 휴일도 반납한 재관은 전형적인 목적지향의 히어로로, 문제의 ‘보름달 장면’에서 그가 행복할 수 있는 건 우여곡절 끝에 획득한 특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반면 ‘즐길 준비’가 다 된 희원에게 재관의 목적은 방해물일 뿐이다. 그녀의 로맨틱한 휴일은 오직 일벌레 남편을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펼쳐지는 공상 안에서만 가능하다. 공상하기를 그만둔 희원은 남편 없이 외출을 하지만. 친구들과 다과를 하고 우연히 마주친 남편 동료들과 미니 골프를 즐기고 맥주 한잔을 해도 남편이 없으니 로맨틱할 리가 없다. 영화는 ‘남편 없이 나간 아내’의 화려한 외출을 애써 지루한 것으로 만들려고 애를 쓴다. 한마디로, 희원은 놀아도 즐겁지가 않은 여자다. 그녀가 이 이상한 휴일을 행복하게 마감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우연히도 후암동 살인범 아내의 출산을 돕게 된 ‘일’이다. 결국 부부 모두 즐기라는 명령을 온몸으로 신경증적으로 거부하면서 질서정연한 남근적 일상 안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런데 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플롯 안에서 휴일 내내 어딘가 아리송해하는 희원의 묘한 표정이 자꾸 눈길을 끈다. 친구들과의 다과, 남편 친구들과의 음주라는 발랄한 장면 안에서 희원은 대사도 목적도 없는 묘한 클로즈업으로 종종 포착된다. 그녀의 표정만큼이나 그녀의 휴일이 어리둥절해지는 순간이다. 서사의 용도에 의한 정확한 그림값을 부여받는 재관과 기타 캐릭터들과는 달리, 희원을 둘러싼 이 이상한 장면구성은 고전 할리우드 양식의 불완전한 구현이라 치부하기에는 그녀의 묘한 얼굴을 지나치게 각인시키는 효과를 낳는데 이는 영화의 후반부 살인범 아내의 출산이 끝난 후 링거를 바라보는 희원의 클로즈업에서 가장 도드라진다. 웅장한 음색의 교향악 음색(그녀는 로맨틱한 휴일의 피날레를 이 연주회로 끝내고자 했다)이 깔리는 이 장편은 서사 기능으로는 턱없이 넘치고 성애적 이미지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이 곤혹스러운 무의미의 얼굴은 불쾌의 흔적, 분노의 공격 마냥 그녀의 엔조이를 허락하고 방해하고 통제하는 서사와 응시에 대한 대항하는 것 같다. 이러한 희원의 존재는 무의미로서의 ‘정신 나간 여자,’ 그리고 ‘진격의 엔조이 걸’인 옆집 주부로 인해 더욱 부각된다. 무의미로서의 분열증은 차치하고서라도, 옆집 주부는 < 서울의 휴일 > 아니 당대 한국영화에서 아마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 중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영화의 초반 희원에게 임신 3개월임을 고백하면서 ‘애가 다 뭐람, 귀찮게...“라며 불평하던 그녀는 로맨틱한 휴일을 기대하며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을 저버린 채 미용실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남편 몰래 총각들과의 ‘썸씽’을 즐기다 저녁이 다 되어 귀가한다. 골난 남편을 달래 함께 외식을 즐기는 두 사람의 모습은 금슬 좋은 부르주아 부부의 교과서적 이미지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정자에서 어깨춤을 추는 남편을 귀찮다는 듯 쳐다보며 무심하게 태평가를 부르는 그녀의 얼굴은 ‘유부녀가 엔조이하기엔 정말 피곤한 세상이야’라고 푸념하는 ‘자유부인’의 완전범죄를 대변하는 것 같다. 이렇게 질서의 바깥에 선 무의미와 질서를 교란시키는 쾌락 (그리고 범죄자의 아내와 미혼모라는 주변성) 사이에서, 서구적 근대 여성 희원의 어리둥절한 얼굴은 <서울의 휴일>이라는 풍속도에 덧칠된 흔적, 통합하는 응시가 미처 통제하지 못하는 불안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