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마키나
- 감독
- 박종우
- 제작년도
- 2023
- 출연
- 진성찬, 김채원, 박혜진, 이달형, 양홍주
주상숙은 서울시장 선거에 나가도 되는 걸까?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동명의 브라질 영화를 원작으로 한 < 정직한 후보 >( 장유정 , 2019)는 기막힌 설정 한 줄이 큰 몫을 하는 영화다. 늘 거짓말을 하던 정치인이 거짓말을 못하게 되면서 겪는 해프닝이 핵심 요소다. 이런 설정이 재미있는 건, 정치인은 무릇 청렴한 공직자이어야 하지만 현실은 (당연히도) 그렇지 않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단단하게 형성돼 있어서다. <정직한 후보>는 이런 사회적 인식을 가볍게 흔들어 코미디를 만든다. 하지만 참신한 설정에 기대는 서사일수록, 마무리가 중요한 법. 그런 맥락에서 <정직한 후보>의 ‘국민뻥쟁이’ 국회의원 주상숙이 ‘진실의 주둥이’를 얻게 된 후가 더 궁금했다. 먼저 짚고 갈 게 있다. 주상숙은 ‘뻥쟁이’ 시절부터 막나가는 진실 폭탄 발언을 할 때까지 한 번도 관객의 호감을 잃지 않는다. 주식 내부 거래, 사학재단 비리, 자녀 군입대 비리 등 ‘비리 3종 세트’를 시원하게 저지르는 데도 말이다. 이는 장유정 감독과 그가 주인공 성별까지 바꾸며 캐스팅한 배우 라미란 의 눈부신 컬라버레이션 덕분이다. 대중 영화의 주인공으로 잃으면 안 될 호감도와 가벼운 현실 풍자를 모두 잡아낸, 흔치 않은 성과다. 극중 주상숙은 거짓말을 못하게 된 후엔 노련한 선거전략가 이운학( 송영창 )을 기용해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 하지만 밉지 않은 주상숙에게 용서할 수 없는 치부가 있다. 이미지 전략으로도 커버할 수 없어 이운학이 주상숙을 배신하게 되는 큰 문제다. 그건 주상숙이 살아 있는 할머니 김옥희( 나문희) 를 두고 ‘운명을 달리했다’고 공론화해 동정표를 얻은 과거다. 김옥희는 호적상으론 사망해, 숨어 살고 있다. 김옥희 건은 이 영화 서사에서 가장 중요한 갈피다. 절대 해서는 안 될 거짓말을 해버린 정치인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극은 주인공에게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그를 처벌할 것인가, 눈감아 줄 것인가. 여기엔 이 영화가 지닌 윤리적 결정이 있다. <정직한 후보>가 내놓은 답은 적당한 절충안이다. 정면 돌파는 하지 않으면서, 주상숙 스스로 자신의 과오를 깨닫게 한다. ‘데우스엑스마키나’처럼 김옥희는 이 중대한 거짓말이 탄로 나기 직전 적절한 시점에 사망하고, 주상숙은 정치를 포기하겠다는 결단을 내린다. 우연한 결과로 그녀의 ‘자폭’ 결정은 그녀 외의 많은 비리 정치인을 무더기로 고발하게 된다. 이후 주상숙은 죄값을 받고 가난하지만 선량한 정치인으로 거듭난다. 종합하면 극 중 세상사람들은 그녀가 멀쩡한 할머니를 죽었다고 한 거짓말은 끝내 모른 채로 영화가 끝난다. 이렇게 해결하지 못(안)할 결정적 악행을 왜 애당초 만든 것일까. 결말부엔 예전에 부패한 주상숙을 맹공격하던 젊은 정치인 신지선( 조수향 )이 과거 주상숙처럼 변한 모습이 나온다. 이 장면은 순수한 정치인조차 변할 수 밖에 없는 정계 현실을 풍자한다. 누구도 다르지 않은 현실. 그 누구도 깨끗할 수 없다는 메시지와 함께, 그렇게 닳고 닳아버린 신지선에 비해 개과천선한 주상숙은 좀 더 괜찮은 인물로 비춰진다. <정직한 후보>는 부패할 수 밖에 없는 세상에서 적당히 부패했지만 자기 과오를 뉘우치는 주상숙을 끊임없이 끌어안는 영화다 (결국 주상숙은 서울시장에 도전한다). 이 세계엔 냉정한 심판자가 없다. 돌아보면 최근 한국 상업 영화와 드라마에서 악한 주인공을 단죄하지 않는 경향이 여럿 보인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용두사미’라는 평을 들으며 매듭지은 것도 비슷하다. 거짓말로 다른 이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았던 한서진( 염정아 )은 마지막에 자기 잘못을 스스로 깨닫기만 할 뿐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창작자도, 배우도, 관객도 나쁜 짓을 해온 주인공과 친밀해져 어느새 단죄하지 못하는 현상. 이런 서사적 경향의 기저에는 친소에 따라 윤리적 판단을 보류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 것일까.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결말을 보면 악한 주인공을 매력있게 그리면서도 창작자가 주인공에게 갖는 단호한 윤리적 태도를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정직한 후보>의 유쾌하고 밝은 연출에는 박수를 보내면서도 반문했다. “그래서, 살아 계시던 자기 할머니가 죽었다고 거짓말한 정치인이 영원히 그걸 숨긴 채 적당히 옥살이를 하고 나와서 서울시장에 도전한다고?”
인간은 너무 빨리 성인이 된다. 세상에 태어나 겨우 20년만 살면 어른이다. 만 19세에 이르면 보호자나 대리인의 동의 없이 자의적으로 뭔가를 해도 괜찮은 법률적 나이로서 ‘성년’에 도달한다. 나는 이룬다는 뜻의 한자 ‘성(成)’이 신경 쓰인다. 내 생각에 인간은 죽을 때까지 영영 ‘성인’은 안 되는 것 같다. 어른과 어린이의 차이점은 거짓말을 할 때 어른이 더 뻔뻔하다는 것뿐이다. 어린이는 상대를 순간적으로 속이는데 급급하나, 어른은 자기 자신부터 영영 속인다. 또 성인은 미성년자에 비하여 욕구의 실행에 있어 좀 더 사회지향적인 눈치를 본다.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훨씬 더 엉망진창이라는 뜻이다. 30살이 넘은 인간의 말은 함부로 믿지 말라고 한다. 서른이 넘어도 전혀 어른이 아닌데, 고쳐 쓸 수 없는 속물이 되는 건 확실한 모양이다. 그나마 이 기준선의 나이도 갈수록 더 어려진다. 어른이나 성인 말고 다른 단어가 필요하다. 속물을 대신 쓰기엔 좀 그렇다. ‘물(物)’은 인간이 아니라 물건을 가리킨다. 만 17세 고교생 주리( 김혜준 )는 아빠 대원( 김윤석 )의 뒤를 밟아 그가 지금 요릿집 사장과 불륜 진행 중인 사실을 확인한다. 같은 학교의 윤아( 박세진 ) 역시 엄마 미희( 김소진 )가 외간 남자와 연애질에 빠졌음을 알고 있고 주리를 옥상으로 불러내 최신 정보를 더해준다. “어떻게 모르냐? 배가 불러오는데.” 이때 주리 엄마 영주( 염정아 )의 전화가 걸려오자 윤아는 “아줌마 남편이 우리 엄마랑 바람났고 엄마는 임신했다”고 신속, 정확하게 알려준다. 엄마 모르게 아빠의 불륜을 없었던 일로 만들 생각이었던 주리는 당혹해서 윤아에게 앙앙대며 따지고, 윤아는 느닷없이 주리에게 입을 맞춘 다음 ‘없던 일로 하면 되는 건 세상에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우쳐 준다. 여기까지가 시작한지 10분이 채 되지 않은 지점이고, 영화는 구구절절하여 구질구질한 치정극으로 전개하지 않는 미덕을 스스로 예고한다. 서로를 가리켜 사이좋게 “미친년”을 주고받은 두 소녀는 이후 문제의 사생아가 막상 태어나자 실제로 사이가 좋아지기 시작한다.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현대 인물들이 매 상황마다 망할 휴대폰 없이는 존립이 안 되어 개인적으로 괴롭다. 인간이 네모난 직사각형 물체를 들여다보고 문자를 입력하고 귀에 대고 떠드는 장면을 커다란 스크린으로 그만 보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전화기에 입력된 서로의 호칭을 보는 깨알 같은 재미가 있다. 윤아가 들여다본 미희의 폰에서 대원은 ‘마지막 사랑’이지만, 대원의 폰에서 미희는 ‘덕향(오리) 김사장’이다. 입원한 미희를 보러 간 병원에서 대원은 ‘예쁜 딸 주리’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대원을 발견한 주리는 “아빠!”하고 부르고, 윤아는 “저 사람이야?” 묻는다. 딸을 보자 황망히 도망치는 대원은 자신을 “아빠, 아빠” 부르며 쫓아오던 낯선 (남의) 딸 윤아를 보자 “누구니 너?”라고 당황해서 묻는다. 윤아는 엄마 병원비를 영주에게 갚을 생각으로 오랫동안 봉인했을 존재를 엄마의 폰에서 검색한다. ‘ㅂㅅ’를 누르자(나는 이게 나쁜 말로 그것처럼 느껴졌다) ‘박서방’이 뜬다. 미희는 더 이상 내 남편도 아니고 내 딸의 아버지도 아닌 지긋지긋한 존재의 이름을 그녀의 부모측이 불렀을 ‘박서방’으로 저장해놓았다. 윤아의 나이도 모르고 아마 분명히 이름도 모를 친아빠는 실제로 ‘ㅂㅅ’이었다. 현 시대의 관객은 불륜을 저지른 중년 남자의 내면 따위 혐오스러울 뿐 깊이 알고자 할 관심이 없을 것이고, 영화는 그가 전면에 나서는 것을 영리하게 차단했다. 네 여자의 상황을 고통스럽게 만든 것만으로 남자가 끼친 영향은 충분히 드러났고, 대원의 캐릭터는 그저 대책 없이 허우적거림으로서 극에서 제 몫을 다 한다. 잘못했다고 비는 남편에게 “성욕이야, 사랑이야?” 냉정하게 묻는 영주는 성당의 신부 앞에서 울며 고해하며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정말 나쁜 인간”이기를, 일찍 태어나고만 사생아가 아픈 것이 “하느님이 내린 천벌”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천벌’은 불가해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영화에는 잘 만든 데우스엑스마키나가 있다. 아마도 유전적 가능성마저 집요하게 고려했을 캐스팅은 극중 엄마와 딸들이 실제로 비슷한 외모로 보여서 영화를 더 그럴듯한 이야기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주역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는 물론이고, 선생 김희원 , 박서방 이희준 , 방파제의 이상한 아줌마 이정은 , 병실에서 남의 사생활을 관전하던 모녀 엄혜란 과 정이랑까지 단역일지언정 저마다 출연한 씬을 제대로 챙겨간다. 먼저 중견 배우로서 연기를 너무 잘 아는 감독의 어떤 배려를 짐작케 한다. 나는 한국영화사상 가장 무자비한 남성의 이미지를 가진 배우가 이토록 산뜻한 영화를 만들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영화 마지막에서 두 소녀가 60, 70년대 일본 야쿠자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애도의 방식을 보여주어도 그것이 충격적이거나 거북하지 않았다. 영화는 산뜻하나, 그렇게 느껴지게끔 적정선을 뽑아낸 연기 연출이 다만 무서웠다. 나중에 감독의 인터뷰에서 그가 어린 두 배우에게 했다는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너희가 사랑받으려고 애쓰지 마라,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면 애쓰는 모습을 들키지 마라.” 나는 이 문장이 영화 <미성년>의 주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