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니오 모리꼬네 아레나 콘서트
- 감독
- 조반니 모리코네
- 제작년도
- 2002
- 출연
- 엔니오 모리꼬네
“주인공들이 너무 가여워요” 봉준호 , 임권택 을 생각하(면서 자기 영화들을 돌아보)다 이렇게 말을 꺼내들고 싶다. 봉준호 는 CJ가 아니다. 그와 똑같은 의미에서 봉준호는 홍상수 가 아니다. 어쩌면 이런 표현이 당신을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게 읽었다면 당신은 내 의도를 오해한 것이다. 점점 CJ 영화를 보는 것은 마치 대중적 흥행을 염두에 두고 정교하게 (엉성하게?) 작성된 매뉴얼을 검토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홍상수 영화를 보는 일은 이야기를 만든 다음 그게 희미하게 보일 때까지 물러나서 남은 인상만을 가지고 엉성하게 (정교하게?) 그려낸 재빠른 스케치를 약간 아슬아슬하게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봉준호가 영화 제작에 돌입할 때 장르를 다루는 것인지, 매뉴얼을 작성하는 것인지 약간 모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종종 영화 앞에서 그가 만들어놓은 콘티가 영화를 보는 내게는 매뉴얼처럼 보일 때가 있다. 일사불란한 영화적인 기계 기호들의 운동. (< 살인의 추억 >) 일단 시작되면 멈추지 않을 것만 같은 쇼트들의 접합과 그 안의 변화. (< 설국열차 >) 그러나 그 도표는 대중적 흥행과 아무 관계가 없다. (< 마더 >) 이때 그의 매뉴얼은 그 자신의 매우 사적인 영화(歷)사의 (그 자신에게만) 명장면에 관한 다소 기형적인, 어쩌면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변태적으로 구부러트린 집합처럼 보인다. (< 괴물 >) 그게 일정한 순열로 놓여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 무언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배열된 것처럼 보이는 리듬 사이에서 삑사리의 순간들이 섬광처럼 나타날 때마다 이 영화를 하나의 집합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라고 질문하고 싶게 만든다. 이상할 정도로 봉준호의 영화는 매번 그 안에 완전히 소속되지 않는 (그래서 여전히 설명하기 까다로운) 분리된 또 하나의 집합이 공존하고 있다. 그것이 둘 사이에서 교집합을 이루고 있지만 그렇게 연쇄망을 이루는 그 고리를 따라 가다보면 어떤 집합들은 중심과 완전히 공집합을 이룬 채 영화 안에서 마치 독립변수처럼 활동하는 쇼트를 만날 때가 있다. 그리고 이 잉여의 공집합은 잘 눈에 띄지 않은 채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이를테면 <마더>에서의 나무. 아마도 21세기 한국영화에서 가장 불길하고 아름다운 나무. 이제 막 살인을 저지른 ‘마더’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저 홀로 서서 마치 우주의 복판에 서 있는 것만 같은 나무. 그 나무를 하나의 점으로 하여 이미지가 회전을 시작할 때 거기서 만들어지는 것은 사건을 기다리는 사건이라는 간접화법의 (미처 닫히지 않은) 원을 그려내는 운동이다. < 마더 > 그 다음. 홍상수 와의 대차대조표. 먼저 순열에 대해서 말해야 할 것이다. 종종 홍상수를 말하기 위해서 시간을 말하지만 그건 차라리 등식으로 이루어진 순열과 집합의 게임이다. 숫자가 매겨진 영화들. < 오! 수정 >, < 생활의 발견 >. 그리고 < 옥희의 영화 >. 만일 그것을 시간이라고 부른다면 오로지 그것은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당신의 머릿속에서 순열의 조립 과정을 따라 벌어진 거짓 운동일 것이다. 그 안에서 이제 어떻게 접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무엇이 무엇에 속하는가. 그런 다음 그 안에서 정렬될 수 없는 변수들은 어떻게 셈할 것인가. 이번에는 더할 수 없이 마치 조각조각 찢어버리듯이 변수를 나누(고 나서 뒤섞)었다. < 자유의 언덕 >. 13개로 이루어진 편지. 나는 여기서 뒤섞는다기보다는 무언가 매번 고통스럽게 씬 사이를, 그 사이 안의 쇼트를, 찢어버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다음 아마도 어떻게 셈하느냐에 따라 하나, 혹은 둘을 더하거나 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더) 그런 다음 거기서 잃어버린 편지 한 장을 셈해야 한다. 무엇이 무엇에 귀속되는가. 거기서 무엇이 무엇 앞에 있는가.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홍상수가 (그 스스로의 예술적 스승이라고 부른) 세잔에게서 배운 것은 그 순간의 균형 감각이다. 순열 사이의 균형. 집합의 균형. 그 안의 정지 감각(의 균형). 그 어느 그림보다도 나는 세잔이 1890년에 시작해서 이 년간 매달린 두 점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에서 그 배움을 본다. (이상할 정도로 홍상수가 사람을 세워놓을 때 이와 비슷해지는 것은 그저 우연일까) 그때 그것이 하나의 집합이 된다는 것 말고는 그 안의 대상들 사이의 운동을 분별하기 힘들어진다. 심지어 점점 그렇다. 그래서 희미해져가는 것을 누군가는 셈해보고 싶어 하지만 물론 그건 불가능하다. 그때 꿈은 유리한 알리바이이다. 반대로 봉준호 는 일단 시작하면 되돌아가는 법이 없다. 도미노처럼 처음 하나만 쓰러지면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차례로 쓰러져간다. 마치 사연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시작하면 그저 앞으로만 나아간다. 하지만 이 운동이 괴상해지는 것은 그게 사방팔방으로 쓰러져나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걸 붙잡으러 뛰어가는 인물의 동선조차 자기가 쫓아가는 게 누구인지 몰라 여기저기를 뒤지기만 할 뿐이다. 잃어버린 동선. (< 살인의 추억 >) 그래서 이상할 정도로 산만하게 보인다. 영화가 시작한 지 55분 만에 풍비박산 나듯이 흩어지는 가족들이라는 점들. 그 점이 만들어내는 동선. (< 괴물 >) 혹은 찾아갈수록 점점 자기가 붙잡으려는 대상으로부터 멀어진다. (< 마더 >) 심지어 모두가 한 열차에 타서 한쪽 방향으로만 나아갈 때조차 그렇다. (< 설국열차 >) 이때 그는 직선을 온갖 방법을 써서 곡선처럼 보이게 만들고 싶어 한다. 봉준호의 영화에서 진행되는 운동에 대한 가장 명징한 이미지는 직선으로 달려가는 열차가 철로를 따라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할 때 거의 절반처럼 거의 접히다시피 하면서 맞은 편 열차 칸에서 형 프랑코가 절반의 이쪽 칸의 남궁민수를 향해 총을 쏘는 장면이다. 직선 속의 곡선. 선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유기체와도 같은 하나. 수많은 형태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직선이다. 그런 다음 모든 것을 하나로 수렴하는 점. 개. 시체가 발견되었던 구멍, 괴물, ‘마더’. 엔진. 잠깐! < 설국열차 > 나는 빨리 임권택 에게로 돌아와야 한다. 원래의 자리. 처음 이 자리에 봉준호 를 초대했을 때 나는 둘 사이의 도표를 그리고 있었다. 물론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그릴 것이다. 모든 영화감독(들)은 동시에 그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영화(歷)사의 감독들이다. 그러므로 나는 두 개의 역사 사이의 교차로를 찾을 것이며, 그러는 동안 나를 따돌리고 그 사거리에서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시간이 매번 또 다른 교통의 질서를 만들어낼 것이다. 누군가는 거기서 옮겨 탈 것이며 또 누군가는 거기서 내릴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서로에게 이어질 것이다. 나는 여러 차례 임권택 감독님이 봉준호(의 서로 다른 영화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그건 사적인 자리에서 한 이야기들이다. 그러므로 그걸 구태여 여기서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이번에는 반대로 듣고 싶었다. 물론 내가 여기서 청해 들으려는 것은 (그 뻔한) 의례적인 존경과 찬사가 아니다. 그 둘은 어디서 서로를 지나쳐 간 것일까. 우발적인 만남. 아마도 그 사이에 얽혀들게 될 한국영화사. 물론 봉준호의 주변에서 어른거리는 이름은 김기영 이다. 그 자신도 그렇게 (자주) 말을 했고 구태여 그 말을 빌리지 않아도 나는 < 마더 >를 보는 내내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더 자주 떠올린 것은 < 붉은 살의 >의 이마무라 쇼헤이였다) 나는 여기서 무리를 해가면서 임권택과 봉준호를 묶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가능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이따금 임권택의 영화중의 무언가가 봉준호의 영화에서의 어떤 순간을 만져본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반대로 어디에선가 봉준호의 쇼트가 임권택의 어떤 영화의 장면에 대한 연인처럼 여겨질 때가 있었다. 이런 설명이 비평의 자리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길 사이 바깥으로 빠져나간 이탈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몹시 위험한 자리에 들어섰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가정을 더 밀고 나가고 싶다. 그런 다음 그 가운데서 무언가가 서로를 밀쳐낼 때 그 둘 사이에는 그것을, 말 그대로 그것을, 잠재운다는 인상이 남는다. 저기서 깨어있는 것이 여기서는 잠들고 있다. (내게 조금만 관용을 베풀어준다면) 나는 그걸 공존의 경제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쪽에서 초과해버린 부분이 저쪽에서 부족하면서 겨우 균형을 맞춘 기묘한 교환. 마치 저쪽에서 그래버렸기 때문에 내 쪽에서는 이래도 괜찮아, 라고 그냥 긍(정해버렸다고 가)정된 거래. 하지만 이 비유적인 느낌을 내게 탓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 둘 사이에서 내가 느끼는 거리는 딱 그 정도에서 멈춰 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그것이 아직 서툴긴 하지만) 용기를 내어 21세기에 들어선 한국영화 안에서 선물의 경제학이라는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모델을 제시해보고 싶다. 우리가 희망의 원리를 비평 담론에서 망설여야 할 어떤 이유가 있단 말인가. < 살인의 추억 > < 악의 손길 > 약간의 잡담. 봉준호 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내게 누군가 말하기를 봉준호의 영화에는 그걸 의도한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어떤 장면에서 영화사의 한 순간에 대한 향수를 느껴보게 만들 때가 있어요, 라고 건드렸을 때 잠시 돌아본 적이 있었다. 영화 안에 있는 영화에 대한 기억. 그것이 이야기 안에서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 자체로 영화를 기묘하게 앞뒤로 오가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봉준호를 설명하면서 왜 어떤 비평가도, 어떤 시네필들도 그런 희한한 운동에 대해서 건드리지 않는 것일까. 여기서 받는 감동은 마치 암호와도 같은 것이다. 하나의 예. 박두만 형사가 시체가 발견된 현장에서 범인의 흔적을 찾기 위해 논두렁 위아래를 오르내릴 때, 그 뒤를 따라 카메라가 뒤따라가는 긴 롱 테이크의 운동에서, 논둑길을 뛰어 올라와 발자국을 밟지 말라고 저 멀리 오는 경운기를 향해 사선으로 달려가는 장면에서(< 살인의 추억 >), 문득, 말 그대로 문득, 마크와 이제 막 결혼식을 끝내고 신혼여행을 온 수잔을 따라 카메라가 뉴멕시코의 작은 마을의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함께 만나고 헤어지면서 또 하나의 동선을 만들어내는 다이너마이트를 실은 캐딜락 오픈카를 어처구니없게도 떠올리면서(< 악의 손길 >), 롱 테이크에 감탄하는 대신 그 ‘럭셔리한’ 캐딜락이 ‘촌스럽기 짝이 없는’ 경운기로 바뀐 모습에서 깔깔 대고 웃는 극장 안의 그 누군가에게, 나도 지금 함께 극장에서 당신과 영화를 보고 있다는 공감을 가져보고 싶어진다. 우리들 사이의 웃음이라는 인사. 말하자면 그런 의미에서의 기록을 찾아보았다. 봉준호는 2012년 영국 영화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Sight & Sound)에서 앙케이트 한 ‘영화사상 탑 10 영화’에 응답했다. 이 잡지는 1952년부터 10년 단위로 앙케이트를 했고, 2002년부터는 비평가(와 학자, 문화이론가, 영화제 프로그래머)와 영화감독을 분리하였다. 그런 다음 2012년 9월호에 결과를 발표했다. 사이트 앤 사운드 편집진에 따르면 지구상에 활동하는 358명의 감독이 앙케이트에 응했으며, 그 중 100명을 잡지에 게재했고 전체 명단은 온 라인으로 발표했다. 봉준호의 명단은 알파벳 순서에 따라 63페이지에 실렸다. 별다른 설명은 없고 그저 짧게 “Ten films that the biggest impact on my own personal view of cinema”라고 명단 앞에 덧붙였다. 그런 다음 10편의 제목은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 비정성시 >(후 샤오시엔), < 큐어 >(구로사와 기요시), < 하녀 >(김기영), < 파고 >(코엔 형제), < 싸이코 >(알프레드 힛치콕), < 성난 황소 >(마틴 스콜세지), < 악의 손길 >(오손 웰즈), < 복수는 우리가 한다 >(이마무라 쇼헤이), < 공포의 보수 >(앙리-조르주 클로조), < 조디악 >(데이빗 핀처). (물론 알파벳 순서이다) < 플란다스의 개 > < 괴물 > < 설국열차 > 이 명단에 기대어 봉준호 는 홀수의 영화가 있고 짝수의 영화가 있다고 다소 익살스럽게 말하고 싶어진다. 먼저 홀수의 영화. < 플란다스의 개 >와 < 괴물 >. 두 영화는 외양으로 볼 때 완전히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냥 간단하게 규모가 다르다. 누군가는 둘 사이의 차이를 먼저 지적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두 영화는 당신의 상상보다 훨씬 가깝게 있다. 무엇보다 개와 괴물. 그 둘은 어떻게 대상에 주인공들이 애절하게 가닿으려고 애를 쓰는지를 보여준 다음 거의, 아마도 거의, 그 근처에 다가갔을 때 비로소 그것이 실패한 목표라는 것을 깨닫는지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상실감을 안겨준다. 그들 사이의 기기묘묘한 교환. 종종 봉준호의 슬로 모션에서 운동의 쾌감을 맛보는 대신 허우적거린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부정적인 운동의 고통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많은 영화들이 증후에 시달리는 동안 봉준호는 충동의 계략을 꾸미는 중이다. 나는 < 설국열차 >를 보았을 때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열차는 어딘가를 향해서 가는 중이 아니다. 모두들 열차 맨 앞 칸에서 벌어진 일에 매달렸다. 그런 다음 뫼비우스의 순환에로 빠져들었다. 그때 봉준호는 아니오, 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목표는 열차의 맨 앞 칸이 아니라 열차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충동의 순환궤도를 멈추지 않고 빙빙 도는 것이 핵심이다. 빙빙 돈다는 것. 앞은 끝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끝은 앞의 힘으로 달아나는 중이다. 그러므로 <설국열차>의 마지막 장면에서 봉준호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환상을 붕괴시키는 순간 현실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패러독스의 세계. 여기서 봉준호는 마침내 영화와 만화가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맛보았을까. 물론 그걸 내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설국열차>보다 <괴물>이, <괴물>보다 <플란다스의 개>가 훨씬 만화에 가깝게 보인다. 만화라는 캐리커처의 예술. 여러 자리에서 봉준호는 자기가 얼마나 만화를 사랑하는지 공공연하게 선언하다시피 했다. 물론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는다. 차라리 이 말은 봉준호의 예술적 야심이 때로 영화가 가 닿을 수 없는 어떤 지점을 목표로 한 표현이 아닐까, 라는 의심을 품게 만든다. 영화의 블랙홀은 어디일까. 그때 만화는 어디에 있을까. 봉준호는 종종 영화만이 가능한 순간에 과도하게 집착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로는 불가능한 지점이 어디인지를 탐색한다. 이 암흑지점의 이미지를 만날 때 영화 안에서 비-영화를 엿보는 괴상한 순간과 만나게 된다. 그 순간 영화의 감각이 일시적으로 멈추고 때로 어떤 구조가 붕괴되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여기서 봉준호는 현실을 고립시킨 다음 그 속에 불가능한 존재를 집어던졌을 때 사실들이 어떻게 견디고 부서져나가는지, 라는 사건을 만들고 싶어 한다. 아마도, 역시 아마도, (잠시 머뭇거린 다음 소리 내어 읽어주기 바란다) 그래서 봉준호의 웃음은 불길하다. 오고 가며 봉준호 를 여러 번 마주치기는 했지만 앉아서 작정을 하고 이야기를 나눈 것은 < 마더 >를 찍고 난 다음, 혹은 < 설국열차 >를 준비하고 있을 때 였다. (“봉준호는 지금 다시 시작 한다” _씨네21_800호_20110419/0426) 그때 (함께 씨네 산책을 진행하던) 허문영에게 봉준호에게서 결정적으로 우리가 질문해서 얻어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라고 그 자리가 시작되기 전에 묻자 슬그머니 웃으면서, 물론 (영화 속에서 날뛰는) 리비도의 비밀이지요, 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이 오랫동안 남았다. 그때 우리의 이야기는 <설국열차>에 모아졌고 영화는 그의 두뇌 속에서 이미 만들어진 상태였다. 그러므로 이야기는 다소 이상하게 진행됐다. 우리는 미처 보지 못한 영화에 대해서 하듯이 질문했고 봉준호는 마치 이미 만들어진 영화에 대해서 설명하듯이 대답했다. 이 신기한 불균형. 나는 이 대답 속에 가려져있는 정념의 신호들을 읽는다. 물론 만들어진 영화는 말하여진 영화와 차이가 있었다. 누군가는 그것만으로도 뇌의 영화와 퍼포먼스로서의 영화 사이에 놓인 간극에 관한 흥미로운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문제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 둘을 하나로 합치는 대신 그 둘을 각자 존재하는 두 편의 영화라고 가정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좀 더 느슨하게 말해도 괜찮다면 두 대의 기차가 한 궤도 위에서 달리고 있다. 물론 지금 한 대는 눈 밭 위에 쓰러져있고 다른 한 대는 아직도 달리는 중이다. 그런 다음 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봉준호는 제작의 자리로 물러 난 다음 (< 살인의 추억 >에서 연출부를 한) 심성보 를 연출자로 내세운 < 해무 >를 제작했다. 물론 지금 많은 감독들이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설국열차>는 박찬욱 이 제작한 영화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봉준호의 공백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딘지 적절치 않은 회색의 베일이 그 앞에 드리워져 있다. 어떤 터치라는 문제. 봉준호의 터치. 나는 봉준호의 연출에 대해서 설명해야 할 때마다 이상하게 (어디선가, 텔레비전에서 했던) 이 대답이 떠오른다. 그 자신이 막 영화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난 다음 한동안 (그의 표현을 빌리면) ‘지리멸렬’하게 지낼 때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죠, 제가 찍은 결혼식 테이프를 갖고 계신 분도 계실 거예요, 근데 아마 모르실 거예요, 제가 찍고 편집한 지는, 잘 찍었어요, 게다가, 신부 엄마 울 때는 딱, 클로즈 업 들어가고, 절대 안 놓치죠, 그런 순간은, 주례사도 끊기면 안 되고, 또 우는 하객들 찍고, 신랑의 과거 여자친구 같아 보이는 사람 또 괜히 막 가까이 찍고(...)” 처음에는 그냥 시작했다. 그러면서 눈을 돌려 신부의 엄마가 흘리는 ‘눈물’을 “절대 안 놓칠”뿐만 아니라 클로즈업으로 다가가서 바라본다. 물론 주례사도 끊기면 안 된다. “우는 하객들” 그런데 여기는 장례식장이 아니다. 하객들이 왜 우는 것일까. 너무 기뻐서? 이건 두 사람의 몰락이니까? 슬퍼서? 무엇이 슬퍼서? 신부의 남자 친구도 여기에 와 있는 것은 아닐까? “신랑의 여자친구 같아 보이는 사람”을 그냥 찍는 게 아니라 “괜히 막 가까이 찍”을 때 봉준호는 이미 이 결혼식장에 관한 또 다른 시각적인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 보이는 풍경. 풍경 속의 이면의 풍경. 이 결혼식장은 봉준호의 친구 혹은 선배의 결혼식장이 아니다. 심지어 지금 이건 이 비디오테이프를 봉준호가 찍었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한 아르바이트였다(고 한다). 그날 온 하객들은 봉준호가 그날 처음 본 사람들이다. 아니, 그날 결혼식을 올리는 신랑 신부를 처음 보았을 것이다. 이때 봉준호는 두 가지를 따라간다. 하나는 결혼식 장면의 법칙이고, 다른 하나는 그 법칙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음란한 외설적 이면의 얼룩이다. 그때 여기에는 봉준호의 원근법이 잘 설명되고 있다. 나는 진심으로 이 비디오테이프들이 보고 싶다. 그리고 할 수만 있으면 그의 필모그래피에 포함시키고 싶다. 말하자면 그런 의미에서 <해무>를 나는 비스듬히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베일을 열어보는 것은 이 자리에서 할 일이 아니다. 물론 이 영화를 셈에 포함시키기는 했지만 나는 미스터리를 그냥 내버려두기로 하였다. 여기서는 방점을 옮겼다. 오늘 만나서 진행한 이 대화는 지난 대화의 속편이 아니다. 우리 둘 사이에서 나누고 싶었던 것은 임권택 이라는 영화를 어떻게 통과해갈 것인가, 라는 질문의 세션이다. 여기서는 질문을 서정적으로 만들 생각이 없다. 마찬가지로 나는 낭만적인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 단지 그 안에서 영화가 던진 체험을 어떻게 견디는지, 어떻게 즐기는지, 그 안에서의 참을성에 대해서 들어보고 싶었다. 참을성? 진정한 참을성. 그것은 매혹에 사로잡힌 우리들이 그 안에서 몸부림친 대가로 얻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영화는 결국 매혹당한 시선이 바라보게 되는 진실이 될 것이다. 물론 알고 있다. 니체는 예술에서 진실에 속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므로 나는 의도적으로 산만하게 질문했다. 매번 봉준호 는 질문 안에서 자신이 놓인 부재의 조건을 차례로 열거했다. 우리들의 임권택이라는 체험 속의 움직임. 그것이 움직이는 장소. 이때 봉준호는 대답을 하면서 몇 차례이고 영화 속의 인물을 향해서 가엽다, 라는 말을 썼다. 임권택의 영화를 보면서도 그런 말을 썼고 자기 자신의 영화를 향해서도 그 말을 썼다. 나는 자꾸만 이 말 앞에 멈춰 서게 된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그 말의 원래 뜻 안에 머물면서도 그 말을 다르게 쓰는 경우가 있었다. 한번만 더 내게 비교를 허락해준다면, 이를테면 그건 마치 (잘 알려진 대로) 홍상수 가 예쁘다, 라는 말을 쓰는 것과 같은 어법처럼 들렸다. 물론 홍상수는 언제나 자기의 주인공들을 예쁘게 바라본다. 그러나 가끔 그 주인공에게 지나치게 가깝게 다가갈 때 무시무시할 정도로 잔인해진다. 똑같은 의미로 봉준호가 가여운 주인공에게 지나치게 가깝게 다가갈 때 변태스러울 정도로 기괴해진다. 그들은 그런 의미에서 거리 조절의 시네아스트들이다. 여기서 나는 봉준호에 대해서만 생각할 참이다. 그러므로 질문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정성일 _ 설명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 자리는 한국영화에서 지금 활동 중인 감독들을 차례로 만나면서 2014년이라는 시간에, 자기의 자리에서 어떻게 임권택 감독님을 바라보는지, 언제 (영화적으로) 만났는지, 거기서 어떻게 헤어지는지, 말하자면 지도를 그려보고 싶은 바람에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 마련한 자리입니다. 초대에 응해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저는 한편으로는 임권택 감독님의 전작을 차례로 써나가면서 수직선을 그어나가면서 다른 한 편으로 차례로 이야기를 청해 들으면서 수평선을 그어보면 한국영화의 씨줄과 날줄에 관한 하나의 기록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님의 전작 회고전을 하면서 한국영화 감독들에게 백지수표를 나눠주었습니다. 봉준호 감독께서는 < 아제아제 바라아제 >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그 자리의 관객석에 앉아 첫 사랑과 이 영화를 본 사연을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웃음) 오늘은 임권택 감독님에 대한 봉준호 감독의 생각뿐만 아니라 동시에 21세기 평행으로 진행된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질문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두 영화가 공존할 때 어떻게 서로 다른 성질의 영화가 함께 한국영화라는 구도의 집을 세우는지 보고 싶습니다. 봉준호 _ 지금 임권택 감독님 102편 중 몇 편을 볼 수 있는 상황인가요? 정성일 _ (현재 다시 보고 쓸 수 있는 편수는) 75편입니다. 봉준호 _ 생각보다 많네요. 반 정도인 줄 알았는데 꽤 많네요. < 인플루엔자 > 정성일 _ 제 소망은 이런 것입니다. 임권택 전작을 놓고 진행한 이 연재가 끝나면 누군가는 봉준호 감독의 전작을 쓰겠다고 그러겠죠.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저는 뒤늦게 (전주영화제 삼인삼색 중의 하나로 만들어진) 중편 < 인플루엔자 >를 봤어요. 그 영화가 정말 좋았어요. 그냥 이건 걸작이었어요. 그런데 왜 아무도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지 않는지 의아할 따름이었어요. 말하자면 모든 영화는 친구를 가지고 있어야만 외롭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모든 영화에 대해서 하나 이상의 글이 쓰여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어떤 영화는 친구가 많지만 어떤 영화는 그저 외롭게 영화 혼자서만 시간을 기다리는 영화들도 있으니까요. 오늘 드릴 질문에는 약간 불편한 이야기도 있고, 아마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궁금한 질문도 있습니다. 재미없는 질문도 있고, 미루어둔 질문도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결심은 하고 있습니다. 일단 봉준호 감독과 이야기를 하려면 내가 주도권을 빼앗기면 안 된다! (웃음) 그렇게 되면 봉준호 감독이 자기 페이스로 진행하게 되니까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런 결심, 왜냐하면 제가 이미 3년 전에 ( 허문영 씨와 함께) 긴 인터뷰를 해본 실전 경험이 있으니까요 (웃음) 그래서 몹시 정신 사납고 산만하게 진행할 생각입니다. 봉준호 _ 제가 정서가 산만해서(웃음) 정성일 _ 무조건 산만하게 얘기를 진행해야겠다, 는 결심 (웃음) 봉준호 _ 국정원에 끌려온 느낌입니다. (일동 웃음) 정성일 _ 우리들의 지난 번 이야기는 < 설국열차 >로 끝났으니까 이번에는 <설국열차>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모든 면에서 작년 여름 <설국열차>의 소용돌이로부터 정확히 일 년이 지났고 지금은 그 사이 제작을 한 < 해무 >가 있습니다. 제가 임권택 감독님과 인터뷰를 할 때에도 그 영화를 막 마쳤을 때와 그로부터 어느 정도의 거리를 지니게 된 다음 일 년이 지나고 나면 같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곤 했습니다. 혹은 적어도 방점이 달라진다고 할까요. 게다가 그 영화가 큰 영화일수록 감독들은 마케팅의 전략 안에 놓여진 전술이 되어 수 없는 자리에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다보면 인터뷰 자체를 반복하는 학습의 과정을 겪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개봉 당시에는 같은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정말 지겨운 상태에 놓인 달까요. 봉준호 _ 저도 개봉시기가 항상 제일 싫습니다. 이상한 이슈에 끌려 다녀야 하고, 참, 정성일 _ < 설국열차 > 프로젝트를 처음 들은 것은 < 괴물 > 직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괴물> 직후에 <설국열차>를 만들 줄 알았는데 그 사이에 < 마더 >가 끼어든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봉준호 _ 저는 < 살인의 추억 > 직후에 김혜자 선생님과 약속을 해놨던 상태였어요. 정성일 _ 영화의 규모나 이야기의 태도, 게다가 열차라는 폐쇄공간으로 시종일관 진행하는 사실상 450억 원 실험영화 < 설국열차 >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봉준호 감독의 숙원의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개봉하고 이제 1년이 지났는데 돌아보니 <설국열차>는 자신에게 어떤 영화였나요? 봉준호 _ 아직 완전히 과거형은 아닙니다. 미국과 핀란드에서 개봉중이고, 그래서 지금 극장에 걸려있고, 또 개봉 준비 중입니다. 지금 8월인데, (잠시 생각) 지난 6월 말에서 7월 초에 북미 프로모션을 하다 온 거여서, 미국 프로모션 할 때 정말 지겨웠죠. 거의 인터뷰가 500개, 무대인사 100개, 관객과의 Q&A 50개를 넘어가니까 사람의 멘탈이 이제 너덜너덜해졌어요. 그렇게 하고 온 직후라서 아직도 완전히 객관적으로 보이지는 않아요, 얼마 전 작년에 영상자료원에서 < 살인의 추억 > 10주년 행사를 해주셔서 옛날 배우들이 모여 큰 프린트로 봤는데, 그건 정말 그 영화를 지나왔구나, 라는 기분이 있는데, < 설국열차 >는 그 정도의 느낌은 당연히 아니구요, 지금은 <설국열차>는 철도 레일에서 이제 막 벗어나서 뛰어내리려는 그런 상황이고, 요즘 < 해무 >도 개봉했고, 다음 작품 시나리오도 열심히 쓰고 있지만. (잠시 생각) 아직도 완전히 마무리된 느낌은 안 들어요. 미국판 DVD가 나와서 진열장에 꽂으면 그때 딱 마무리가 되는. (웃음) 제가 소유욕이 강해서, 손에 만져지는 물건화 돼서 나와 책장에 꽂으면 끝날 거 같아요. 아마 다음 그 다음 달에 미국 DVD가 나오면 (마음속에서) 종료될 거 같아요. 미국이 제게 별 의미가 있는 거 아니지만 가장 늦게 개봉한 나라고, 어쨌든 영어 영화였으니까요. 질문은 <설국열차>가 제게 어떤 의미인가였는데 일단 영화 외적으로 너무 과열된 상태로 개봉이 돼서... (망설이다가) 그렇게 흥분할 영화가 아닌데 그게 좀 부담스러웠고, 그리고 제게는 SF 장르를 본격적으로 했다는. 물론 그 전에 < 괴물 >이 있었지만 사실 그 영화는 괴생물체 존재만 제외하면 소시민적인 세팅이었고 여기서는 하나의 세계 전체를 창조하는 거잖아요. 여기서는 기차라는 세계였는데, 그런 것이 SF의 매력인 거잖아요. 골수 SF 팬은 아니지만 정면으로 SF 장르를 다뤄봤다는 것이 제게는 보람이었다. (<설국열차>는) 다섯 번째 영화인데 지금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영화를 함께 준비하고 있지만 그 영화가 저에게 어떤 전환점이 되거나 분기점이 되었는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그건 좀 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거 같고, 지금 여섯 번째 영화로 쓰고 있는 시나리오도 <설국열차> 전에 2010년에 구상했어요. 그러니까 영화들이 서로 계속 디졸브 되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SF 장르를 도전해서 해봤고, 그런데 거기서는 한국적인 좌표에서 벗어나 보았죠. (그 전에는) 한국적인 로컬리티가 있거나 시공간적인 좌표를 갖고 항상 영화를 해왔는데, 한강에 괴물이 나오고, 80년대 화성이 등장하고, 이것은(<설국열차>) 거기서 완전 벗어난 영화입니다. 다국적 사람들이 기차라는 공간에 있고, 그야말로 ‘사이-파이(Sci-Fi)’ 영화죠. 맥락들은 다른 것 같은데 미국에서 ‘사이-파이’영화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게 제일 보람 있는 부분이에요. 거의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게, IP_TV에서 연말까지 수금을 하면, 그런데 러시아 배급사 애들이 아직 돈을 안준다는데(웃음) 그렇게 <설국열차>는 전 세계 배급의 험난한 길을 걷고 있는 거 같아요. 프랑스나 일본처럼 점잖게 제때 돈을 주는 나라만 있는 게 아닙니다. 남미 및 러시아 배급사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직원 분들께 응원의 한마디를 보내고 싶습니다. (웃음) 정성일 _ 나라마다 영화 문화가 서로 다르지 않습니까? 그렇게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인터뷰하고 또 관객들과 만나보면서 감각적으로 느껴보기에 < 설국열차 >를 봉준호 감독이 원래 시도하려했던 연출의 뜻에 가장 가깝게 잘 받아들이고 있는 나라는 어디였습니까? 그저 극장에서 느껴보기에는 한국에서 이 영화는 흥행의 결과와 또 달리, 뭐랄까,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상할 정도의 저항에 부딪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봉준호 _ (잠시 생각) 만든 입장에서 얼마나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지 모르겠구요. 각 나라마다 다른 정체성이 있는 거 같아요. 한국에서는 여름철 개봉하는 제일 대작 블록버스터야, 그렇게 먼저 전제를 하니까, 봉준호 의 울트라 초 블록버스터 대작이 되어야 하고, 제가 원하든 원치 않든 그런 십자가가 지워져 있잖아요. 근데 막상 보니 마이클 베이 영화 같지 않고, 변태적이고 잔인한 부분이 있기도 하고 초등학생을 데려갔더니 애가 경기를 일으키기도 하고(웃음). 기대한 것과 다른 부분이 있는 것 같고. 그런데 미국에서는 < 트랜스포머 4 >와 같은 날 개봉을 하면서 오히려 훨씬 더 이상하고 유니크한 영화로 받아들여졌어요. 이 영화를 보면 왠지 젊은 애들 틈에서 좀 더 쿨한 사람인 것처럼 잡지에서 나오기도 하고, 그쪽에서 평가는 훨씬 더 유니크하고 이상할수록 더 점수가 높아지는 상황이었어요. 트랜스포머와 반대말일수록 더 좋아하는 거죠. 로튼 토마토 점수가 상상이상으로 95점, 97점 높이 치솟은 것도 한국에서와 이 영화를 받아들이는 기준이 다르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인터뷰를 정리하고 있는 2014년 9월 6일자 rottentomatoes.com 의 신선도는 95퍼센트이다) 정성일 _ 한국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읽으면서 왜 아무도 이 질문을 하지 않을까 궁금했습니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최고의 열차 영화가 무엇입니까? < 설국열차 >를 찍는다고 했을 때 사실 저에게 즉각적으로 든 생각은 그 열차에 어디에선가 영화사 속의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와 만날 것이라는 제 멋대로의 상상이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영화가 거기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열차를 보면 마음이 두근거리지 않습니까? 봉준호 _ 미국 프로모션 때는 미국 평론가나 기자는 그런 질문을 많이 하셨었어요. 한국에서는 영화 역사를 짚어가며 질문하는 분이 많이 없거나 없어지는 추세라서 안타깝기는 하지만... 당연히 (< 설국열차 >를 준비하면서) 구로사와 아키라 각본의 (<눈(雪)>을 영화로 옮긴 할리우드 영화) < 런어웨이 트레인 > 같은 거는 다시 꺼내서 봤죠. <폭주 기관차 Runaway Train> 정성일 _ (< 런어웨이 트레인 >을 연출한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의 영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봉준호 _ 그 분의 영화는 < 탱고와 캐쉬 >도 못 봤습니다. 별로 본 게 없습니다. ‘돌아온 탕자’와 같은 감독이다, 라고 누가 얘기 하시더라구요. 막상 본 거는 별로 없어요. < 런어웨이 트레인 >하고,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 마리아스 러버 >가 그 분 영화였나? 나스타샤 킨스키가 나온, 그런데 그거는 청소년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영화라, 시네필적인 관점하고 상관없이 흰 속옷 같은 걸 입고 나스타샤 킨스키가 잡지 광고에 아주 야하게 나왔던 게 기억이 나네요. 진짜 예뻤죠. (웃음) 원래 얘기로 돌아오면 <런어웨이 트레인>이라든가, (로버트 알드리치의) < 북극의 제왕 > 이라고, 어네스트 보그나인하고 리 마빈. 되게 남성적인 중년 마초들이 무식한 무기들을 들고 싸우죠. 제일 좋아하는 열차 영화를 꼭 하나만 꼽으라면 존 프랑켄하이머의 흑백영화 < 트레인 >이었던 거 같아요. 나치들이 프랑스 미술품을 빼돌리려고 하려는 데, (두 손을 치켜들고) 기차를 계속 끌고 가려는 나치들과 휴전 협정 전에 기차를 멈추려는 버트 랭커스타의 싸움이 되게 긴박하게 펼쳐지는데 손에 땀이 나게 재밌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영화에서 보여지는 카메라 워크와 인물들의 우아한 동선에 매혹되었습니다. 거기서 1페니 짜리 동전으로 기차를 못 가게 하는 디테일도 나오는데, 그 영화는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데 < 설국열차 >의 텍스트로 삼으려는 영화는 별로 없었습니다. 기차 자체에 사람들이 계급별로 나누어져 있고 그 안에 온 사회를 압축해서 쑤셔 넣은 것은 이 그래픽 노블밖에 없었어요. 오히려 (디즈니_픽사의) < 월-E >같은 애니메이션 후반부, 또는 거기서 우주선에서의 생활상이 <설국열차>와 비슷한 거 같아요. 우연히 아들 때문에 봤는데 거기 사람들이 비만상태가 되고 그러잖아요. 그리고 < 2001 오딧세이 >를 응용한 패러디 장면이 나와서. 아마 그런데서 더 영감 받았던 거 같아요. 기차로만 보면 구로사와 아키라의 < 천국과 지옥 >에서 딱 한 시퀀스지만 기차 시퀀스가 나와요. 구로사와 아키라는 기차를 잘 다루는 감독인거 같아요. 그리고 이마무라 쇼헤이의 < 붉은 살의 >를 보면 이 여자의 집이 기찻길 옆에 있고, 거기서 기차를 타고 남자가 가는데, 별로 힘주어 찍지 않아도 기차의 가장 강렬한 장면이 나와요. 보면서 제일 싫었던 기차 영화는 < 폴라 익스프레스 >(웃음) 거의 달디 단 제과점 음식을 삼시 세끼 계속 먹어야하는 기분. 눈이 오고 기차 나오니까 한번 보게 되는데 반면교사로 삼았달까요. 아, 저러면 안 되겠다. 싫다. (일동 웃음) 정성일 _ < 설국열차 >에 관해서 영화계 사람들에게 파다하게 퍼져나간 이야기의 공약수는 봉준호 감독의 악전고투였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이끌고 끝까지 갈 수 있게 만든 가장 매혹적인 힘이랄까, <설국열차>에서 가장 매혹되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봉준호 _ (단호하게) 기차였죠. 여기 말하는 기차는 하위 장르로써의 기차가 아니라 영화가 두 시간 내내 달리는 기차에서 펼쳐지고, 그 안에 사회와 모든 것이 압축되고, 인간군상이 고농도로 압축된 상태에서 그것을 물리적으로 봤을 때, 달리는 기차 안에서 두 시간 내내 모든 희로애락을 내가 연출한다, 내가 언제 이것을 또 할 수 있겠냐, 아마 다른 감독들도 안할 것이다, 어찌 보면 끔찍한 조건이니까, 잠수함 영화 이상으로, < 설국열차 >를 만든다는 건 그런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해외 나가면 사실 고생하는 건 다 마찬가진데 그게 (거기서) 한국에 들어오는 소문은 과장된 게 많습니다.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찍었습니다. 정해진 일정 안에서 다 찍었고, 촬영자체는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촬영에 들어가기까지 오래 걸렸지만 그건 역설적으로 그만큼 준비를 많이 했다는 얘기이고, 촬영기간은 굉장히 짧았어요. 다 찍는데 석 달도 안 되었어요. < 괴물 >의 절반도 안되는(셈을 하더니) 2개월과 4주, < 플란다스의 개 > 다음으로 제 영화 중 가장 짧게 찍었죠. 90퍼센트 이상이 스튜디오 촬영이니까 날씨도 상관없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다 스토리보드대로 찍은 거고 여기에 관여했던 미국 라인 프로듀서들은 역사상 제일 쉽게 찍은 영화라고 기억할 거예요. 저는 그런 것들을 지켜내면서 괴로움도 있었고, 통으로 다시 찍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일반화시키면 원래 늘 그러니까요. 준비기간이 무척 길었지만 촬영 프로덕션은 계획대로 순조롭게 잘 끝났습니다. 외국 배우들과 계약 조건도 그럴 수밖에 없었고 제가 제임스 카메론도 아니니까(웃음) 미국적 관점에서 보면 독특한 저예산 사이-파이 영화고, 크리스 에반스도 그렇게 얘기하고 다녔어요. 그는 마블 영화를 주로 하는 배우인데 < 어벤져스 >는 2억불이 넘는 영화잖아요. 그의 관점에서는 < Snowpiercer >라는 작지만 괜찮은 영화를 찍는다, 고 토크쇼에 나가서 얘기를 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역대 최대 제작비니까 두 가지 정체성이 혼란스럽게 하는 면이 있었죠.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면 이건 정말 독특한 영화다. 기차 안에서 이렇게 모든 공간과 인물과 운동이 담긴, 저는 (영화에서) 운동이나 움직임을 몹시 좋아합니다. 기차도 움직이지만 그 안에 사람도 달린다. 그런 흥분이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 해무 > 정성일 _ 저는 지난 겨울에서 봄까지 임권택 감독님의 < 화장 >현장에서 다큐를 찍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 영화에 < 해무 >에서 넘어온 스태프들이 꽤 있었고, 게다가 영화 현장은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가 식구 아닙니까. 그때 <해무>에 대한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웃음) 좋은 이야기도 있고 과장된 이야기도 있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해무>가 신인감독의 악전고투 신고식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제가 궁금한 건 21세기 한국영화의 새로운 현상 중의 하나는, 홍상수 감독에서 박찬욱 감독에 이르기까지, 많은 감독들이 직접 제작사를 차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 설국열차 >도 박찬욱 감독이 제작한 것인데, 봉준호 감독이 제작사를 차린다는 것의 가장 큰 긍정적인 의미에서 목표, 욕심이 있었다면 무엇입니까? 봉준호 _ 강제규 감독님이나 강우석 감독님과 같은 분들은 비즈니스 모델, 사업을 하실 수 있는 성격과 스케일이 있다고 생각해요. 보스 기질도 있고. 하지만 저는 제일 반대지점에 있는 사람으로서 지속적으로 제가 제작사를 운영하면서 다른 감독의 작품을 제작할거라는 계획이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고 일회성으로 그칠 거라고 예상도 했고, < 해무 > 작업하면서 실제 그렇게 마음을 먹었고요. <해무>가 제 마지막 제작 작품이 될 거 같다고 인터뷰 때도 이미 한번 얘기했습니다. 제작은 저와 안 맞고 남은 인생은 연출에만 집중하겠다고 이미 명확히 했어요. 과정이 좀 복잡하긴 한데, (잠시 허공을 쳐다보더니) <해무>를 기획했던 이유는 저를 제외한 공동 제작을 한 다른 두 명이 < 괴물 >때 같이 일했던 프로듀서들인데 < 설국열차 >를 같이 하기로 했다가 못하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설국열차>는 준비기간이 굉장히 길어졌죠. <설국열차> 다음 작품, 여섯 번째 영화를 같이 하기로 한 친구들인데 (그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참 기다리고 있는 게 미안했습니다. 그런 미안함과, 그리고 <해무>라는 훌륭한 연극 원작을 2008년에 보고, < 마더 > 캐스팅 과정에서 (그 연극을 보고) 송새벽 씨를 발견했는데, 좋은 스토리라 저걸 누가 영화화 하겠구나 생각했는데 아무도 안 하더라구요. 그래서 기다리고 있는 프로듀서 후배들과 내가 기획자로 이 좋은 작품을 맺어주면 좋은 작품이 세상에 나오겠구나. 이왕이면 < 살인의 추억 >때 연출부였고 시나리오를 서포트했던 심성보 감독이라면 또 좋은 신인 감독이 입봉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기획의 이유입니다. 체코에서 <설국열차>를 준비할 때 화상회의로 투자사 분들과 <해무>를 얘기했습니다. <해무>라는 원작을 한국에서 재공연할 때 가서 보시게끔 제가 원격조정으로 어레인지한 거고 그래서 그 작품이 탄생하게 된 거고, 음, 체코에서 (<설국열차>를 다 찍고) 돌아왔을 때는 심성보 감독이 시나리오를 많이 썼고, 저는 <설국열차> 후반작업을 하면서 <해무>의 시나리오 마지막에 도움을 줬습니다. 제가 오야붕이고(웃음) 제작자인데 촬영 현장에 가면 얼마나 싫겠어요, 그래서 거의 한 달간 제가 촬영 현장에 안 갔는데 그때 많은 일이 있었어요. 그건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어쨌든 무사히 개봉하게 돼서 기쁘고 저도 거기에 책임을 져야할 입장이고 그것에 일조한데 만족하고 있습니다. <해무>가 마지막 제작 작품입니다. 더는 없습니다. 정성일 _ < 해무 >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어디입니까? 봉준호 _ 오프닝 씬을 제일 좋아합니다. 모든 사건이 시작되기 전에 선원들의 일상이 나오는데 거기 모든 배우들의 느낌이 제일 좋고. 그리고 영화 뒷부분에 이희준 씨가 거의 발정난 수캐가 되어 사상초유의 전자발찌 캐릭터죠. (웃음) 우리끼리는 전자발찌라고 불렀는데 거기서 막 뛰어다닐 때 이희준 씨 장면 좋아하고, 그리고 김윤석 씨가 밀항을 제의받는 장면이 있어요. 사료에서 시계 꺼내고 그때 뱀장어가 왔다 갔다 하고, 그 씬에서 김윤석 선배님의 연기가 참 좋았습니다. 존경할 만한 배우라는 생각도 들고, 그런 순간들이 좋았습니다. < 마더 > (흑백버전) 정성일 _ 지난 겨울 서울 시네마테크에서 < 마더 >의 흑백버전을 상영했는데, 그 말은 <마더>의 감독 버전이 흑백버전이라는 뜻입니까? 저는 두 개가 별개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봉준호 _ 2008년도에 그 영화를 처음 기획할 때 저나 홍경표 촬영감독이 < 마더 >는 흑백으로 하고 싶었는데, 그때 인더스트리적 조건으로 그게 좌절되면서 컬러로 바꿨다 그런 건 아니었어요. 그냥 컬러로 만들었는데 <마더>를 개봉하고 어떤 시점에서 둘이 좋아하는 서로의 흑백영화 로망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코엔 형제의 <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도 컬러 네거티브로 찍은 거를 개봉은 흑백으로 했고 컬러, 흑백 버전 두 가지로 DVD가 나왔다는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때 둘이서, 우리도 한번 해보자, 돈이 그렇게 많이 들지 않는다, 라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흑백에 대한 로망을 얘기하다가 나중에 흑백버전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래서 디지털 상태에서 충분히 할 수 있고, 그걸 쇼트 단위로 다 조절한 거예요. 저희도 궁금한 거죠. 같은 사운드, 같은 편집, 같은 퍼포먼스인데 흑백으로 바꿀 때 뭐가 바뀔까, 저희도 흥미로워하면서 저랑 홍경표 촬영감독과 강성표 컬러리스트가 작업을 한 거죠. 재개봉은 안했지만 DVD도 나왔고 해외에서도 틀고 있고 올 가을에 부산에서도 틀 거 같은데. 김혜자 선생님도 모시고 봤죠. 다들 나름의 감상이 있어요. 정성일 _ 흑백 버전을 봤었을 때 저는 이쪽이 감독 버전이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처음 < 마더 >를 보았을 때 몇몇 장면들에서 표현주의 영화의 느낌이 들었습니다. 밤이 되었을 때 그림자로 이어지는 골목 장면들이나, 혹은 의도적으로 벽을 찍은 정면으로 찍은 쇼트들 경우 의도적으로 화면을 만든 것 같은 장면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프릿츠 랑 영화의 자장권 아래 있다는 인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분을 컬러가 약화시키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첫 장면을 흑백으로 봤을 때 굉장히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흑백버전을 영화를 처음 보면서 상상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화 전체를 흑백으로 진행하다가 해가 저물가면서 햇살이 쏟아지는 고속버스 장면만을 칼라로 하면 어떨까, 라는 상상, 그런데 그 기대감이 충족되었을 때의 만족감이랄까, <마더>가 CJ에서 제작될 때, 그때 저는 시네마 디지털 서울 영화제에서 일하면서 가끔 CJ 사람들과 회의를 해야 했는데 휴식 시간에 제작중인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모두들 <마더>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대부분 산업적인 것이었고,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우리가 < 괴물 > 천만 기록을 깰 겁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 CJ는 천만 영화가 없었다) 그래서 <마더>를 보았을 때 마지막 장면의 칼라를 위해서 결국 모든 장면을 칼라로 보아야하는 거야, 라는 의문이 들었고, 그런 다음에는 다시 흑백 버전을 보게 되었으니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가상적인 상상의 가정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실현되는 가는 것을 본 달까, 봉준호 _ CJ에서 제작할 때 < 마더 >에 대한 간섭은 전혀 없었습니다. 100퍼센트 다 제가 할 수 있도록 하게 해주셨습니다. 흑백으로 한 건 개봉 후에 떠오른 아이디어였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만약 이상한 법이 생겨, 두 작품 중 하나만 남겨놓으라고 한다면 저는 흑백 버전을 남겨놓을 거 같아요. 마지막에만 햇볕이 퍼질 때 컬러가 폭발하는 그 버전을 남겨놓을 거 같아요. 영화란 것이 의도를 향해서만 돌진해야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들, 심지어 배우의 연기조차도 흑백으로 봤을 때 더 오롯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역으로 돌아봤을 때 우리가 흑백 고전에서 느끼는 매혹들 있잖아요. 크라이테리온에서 다시 출시된 펠리니의 흑백 영화나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 같은 것을 봤을 때 느껴지는. 처음 그 영화가 흑백으로 개봉했을 때 아직 프린트가 손상 안 되었을 때 극장에서 보는 느낌. 반대로 그 영화들에 컬러를 넣어서 생각해본다면 뭔가 흐트러트리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만약 영상자료원에서 한 작품만 남겨달라고 한다면 흑백만 남겨 주십사, 말할 거 같고 (그렇게) 선택하겠습니다. 같은 영화인데 다른 영화인 거 같아요. 김혜자 선생님 얼굴이나 눈빛도 흑백에서 더 좋았고. 정성일 _ 저는 봉준호 감독 인터뷰 중에서 21세기 첫 10년을 회고한 카이에 뒤 시네마 특집호(Cahiers du Cinema_652호_201001)에서 구로사와 기요시와 대담한 것이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도 미국영화광이기도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나서 미국영화를 예찬한 것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물론 후반부에 < 아바타 >를 앞에 두고 제임스 카메론 영화를 보는 게 두려워 그런 말도 있었지만(웃음) 구로사와에게는 영화청년시절을, 그리고 당신에게는 영화소년시절을 통과하면서 70년대 3명의 할리우드 감독이 인상적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스필버그. 드 팔마. 존 카펜터. 봉준호 감독께 그런 의미에서 미국 영화란 어떤 겁니까? 이를테면 박찬욱 감독의 미국영화에 대한 애정은 상당히 유보적이죠. 계속 유럽영화와 밸런스를 갖고 싶어 한다고 할까요. 구태여 호명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어떤 감독은 명단을 보고 있노라면 시네필이라고 믿기 난처한 허풍도 있고(웃음), 봉준호 감독의 미국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듣고 있으면 특별한 애정이라는 생각이 있어요. 물론 봉준호 감독 이전 세대의 감독 중에도 영화에 대한 시네필의 애정을 갖는 감독들이 있죠. 하지만 그런 감독들은 이상할 정도로 밸런스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측면이 있어요. 이런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런 의미에서 봉준호 감독은 한국영화에서 미국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세대라고 불러보고 싶어집니다. 저는 영화는 결국 미국 영화라는 생각이 있어요. 영화의 문법은 여기서 나왔고, 우리들이 질문하는 영화의 투명성이라는 것도 이 영화들을 보면서 배운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먼저 그리피스, 그 중에서도 존 포드와 하워드 혹스라는 이름, 얼마든지 불러 볼 수 있습니다. 킹 비더, 라울 월쉬, 니콜라스 레이, 더글라스 서크, 안소니 만, 어떤 의미에서 서로 다른 나라들은 미국 영화를 받아들이는 과정만으로 그 나라의 영화사를 다시 쓸 수도 있습니다. 이건 긍정의 의미입니다. 그게 프랑스 영화이건, 일본 영화이건,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시아 영화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하스미 시게히코와 아오야마 신지의 대담을 읽은 적이 있는데 거기서 하스미가 지나치듯이 말하면서 봉준호 감독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이 사람의 영화는 한국 영화 감독으로는 드물게 미국영화의 순혈(純血)을 받고 있다, 라는 구절을 읽으면서 멈춰 선 적이 있습니다. 봉준호 _ 저도 제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 거는 늘 민망한데(웃음) 나는 오늘날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됐나, 나는 뭘 봤나, 어릴 때 자라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죠. 아마도 여러 번 얘기했지만 저는 TV를 시네마테크로 삼았기 때문에 선배님들 세대처럼 프랑스, 독일 문화원을 출입한 세대는 아니었으니까, TV에서 한 영화는 70퍼센트는 미국 영화가 많았고, 저는 특히 AFKN 보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주한미군영상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거기서 B급영화도 많이 방영했었구요. 존 포드, 하워드 혹스 얘기를 많이 하셨는데, 일본 영화를 얘기할 때 오즈를 말한다거나 프랑스 영화를 얘기할 때 르누아르를 얘기한다거나, 그런 맥락은 제게 없는 거 같아요. 미국 영화 중에서도 약간 반 발짝 사이드로 빠지거나 B급 영화를 더 좋아했던 거 같아요. 존 카펜터나, 그 사람이 윌리엄 와일러같은 대접을 받지 않잖아요. (웃음) 유럽의 이상한 애들이 더 좋아하고, 스필버그가 < 죠스 >로 블록버스터의 이름을 만들기는 했지만, 그가 이상한 영화를 많이 만들기도 했고, 느끼해지기 전, 여유가 생기기 전의 스필버그를 좋아하는 거고, 드 팔마도 사실, 프랑스에서도 저에게 좋아하는 감독은 클로드 샤브롤의 범죄 영화를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유럽에서도 미국 영화를 좋아하는 유럽 감독을 좋아하는 구나 생각했어요. 셀프 진단이라 정확하진 않겠지만(웃음). 클로드 샤브롤이 히치콕에 대해 쓴 책이나 트뤼포의 「히치콕과의 대화」도 재미있게 읽었고. 구로사와 기요시도 미국 영화를 좋아하는 일본 감독이고, 그래서 카이에와의 대담도 그렇게 성립될 수 있는 거 같고, (잠시 생각) 미국 영화란 제게 깔려있었던 거 같이요. 대학교 다닐 때, 거기서 학교 영화 동아리를 할 때 대만 뉴웨이브에 동조된 시기가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길게 가지 않더라구요. 다음 달 10월에 마침내 크라이테리온에서 (에드워드 양의) <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 >이 블루레이로 나온다고 해서 프리 오더로 예약해놓고 기다리고 있어요. (웃음) 너무나 그 영화를 좋은 화질로 다시 보고 싶고.. 대만 영화의 아름다움, 한국 영화가 저러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삶과 역사가 다 있고.. 그런 생각했다. 나는 영화 동아리니까, 시네필이니까 저런 영화 다 봐야해. 그런 생각을 했어요. 허우샤오시엔 영화를 다 볼 거야. < 비정성시 > 보면서 양조위가 참 안됐다, 왜 저렇게 어깨가 좁을까, (웃음) 그런 생각도 들고. 그 마음은 여전함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그게 제 본령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저의 뼈와 살을 이룬 건 미국 영화라고 저 스스로도 생각이 들구요. 덧붙여 시네필이 된 후에 완전히 매혹된 김기영 감독이나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스스로 제 멘토라고 믿고 싶어지는 감독님들은 미국이나 대만 뉴웨이브 사이 어디에 자리매김해야할지 모르겠지만. 그분들에 대한 광적인 마음은 굉장히 오래 지속되는 거 같아요. 대만 뉴웨이브에 대한 매혹이나 그 당시 처음 KINO 창간될 시 베스트 10을 꼽으면 그런 영화들이 들어가곤 했는데 그건 일시적이었던 어느 한 시기였던 거 같아요. 정성일 _ 2012년 사이트 앤 사운드에서 앙케이트에서 부탁한 10편의 영화를 뽑아서 보내면서, 전제는 나의 창조적인 생각에 가장 임팩트를 준 10편의 영화라고 단서를 달았고, 기억을 환기시켜 드리자면 알파벳 순서대로 허우샤오시엔의 < 비정성시 >, 구로자와 기요시의 < 큐어 >, 김기영 의 < 하녀 >, 코엔형제의 < 파고 >, 히치콕의 < 사이코 >, 마틴 스콜세지의 < 성난 황소 >, 오손 웰즈의 < 악의 손길 >, 이마무라 쇼헤이의 < 복수는 우리가 한다 >,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 공포의 보수 >, 데이비드 핀치의 < 조디악 >. 이렇게 열 편이었습니다. 봉준호 _ 저는 항상 연쇄 살인 특별 우대합니다. (웃음) 항상 서너 편이 들어가 있어요. 정성일 _ 어떤 영화를 선택하느냐는 그 사람의 취향이고 태도이기 때문에 저는 명단에 우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명단을 보면서 즉각적으로 드는 생각은 이른바 이야기하는 모더니즘 영화에 전혀 관심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명단에서 얘기하는 로베르 브레송이나 고다르, 브뉘엘, 이런 이름이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만 말하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후기 펠리니 영화가 있었을 거 같은데, 이를테면 < 카사노바 >나 < 사티리콘 >같은 영화가 있었을 것만 같은데, 아니면 베르히만의 과도한 바로크적인 영화, 이 영화가 취향이 아닐 수도 있지만 < 마더 >의 흑백버전을 보고 나면 왠지 <침묵>이나 <마술사>, < 처녀의 샘 > 같은 영화들, 그런 모더니즘 영화들. 열편 안에 들어오지 못할 만큼, 이 영화들은 20위권 바깥에 있어, 라고 한다면 그건 그런 영화들과 멀어, 라는 선언처럼 읽힙니다. 봉준호 _ 네, 먼 것 같습니다. 특별히 그런 질문을 해본 적 없지만, 고다르 영화를 본 건 영화 동아리 때가 전부였습니다. < 비브르 사 비 >는 라스트 씬이 굉장히 흥미로웠던 기억이 생생히 있지만 DVD를 사서 모은 이후에 고다르 영화의 DVD를 산 적이 없습니다. < 미치광이 피에로 > 블루레이를 산적은 있지만 사놓고 안 봤습니다. (웃음) 2년 됐는데, 패키지가 너무 예뻐서 샀는데 손이 안가요. 이미 본 < 피아니스트를 쏴라 > 이런 걸 한 번 더 본다거나 아니에스 바르다를 본다거나 그러기는 하지만 고다르 영화는 손이 안 가는 것 같습니다. 취향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만드는 입장에서 그런 영화를 잘 할 수 있는 분들은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구요. 제 친구 중 그런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만 영화계를 떠났어요. 영화아카데미 11기 동기 중에 허재영이라는 친구가 그런 영화를 굉장히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청어람에서 데뷔를 할 뻔 하다가 못했어요. 그 친구의 < 모자 >라는 졸업 작품이 있는데 제가 촬영을 했어요. 그 친구가 한국의 고다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영화계를 떠났습니다. 그 친구와 저는 많이 다르다, 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취향이나 식성까지도(웃음). 고다르 영화를 보는 것보다 이마무라 쇼헤이나 끌로드 샤브롤 영화를 한 번 더 보는 쪽으로 항상 손이 더 가는 거 같습니다. 정성일 _ 좀 더 산만하게 진행해보겠습니다. (웃음) 임권택 감독님 영화로까지 다가가는데 좀 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첫 번째 영화 < 플란다스의 개 >를 보기 전에 이른바 영화 커뮤니티 안에서는 이미 봉준호 라는 이름은 기대의 명단에 들어있었습니다. 아카데미 졸업 작품인 < 지리멸렬 >때문일 텐데 흥미롭다는 생각은 했지만 저는 이 영화를 연출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플란다스의 개>를 처음 보았을 때 봉준호 감독에 관해서 전혀 모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영화잡지 키노를 만들고 있었고, 창간 일 년 후에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첫 번째 영화를 다시 보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상대로 아류들이 쏟아져 나오거나 아니면 미처 이해하지 못한 채 여전히 고전적인 방식의 영화에 머물러 있거나 둘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다가 불현듯 <플란다스의 개>를 보게 되었을 때 살짝 쇼크에 빠졌습니다. 뭐랄까, 이 영화는 갑자기 나타난 UFO 같았습니다. 우리가 만나기 전, 그러니까 며칠 전 이 영화가 막 나왔을 때 키노를 다시 펼쳐서 인터뷰를 읽어보았습니다. 사실 모든 감독들은 첫 번째 영화를 찍고 나서의 인터뷰가 가장 솔직합니다. (웃음) 무언가 이해받고 싶어 한달까요. 봉준호 감독은 여기서 여러 차례 만화적 프레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모델의 위기에 대한 영화였습니다. 이 위기가 영화 안에서 한번 작동을 시작하자 멈추지 않고 달려간다, 는 그 느낌이 신나는 영화입니다. 비탈을 달리는 그 아슬아슬한 느낌.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플란다스의 개>는 시장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 살인의 추억 >은 무언가 후퇴한 느낌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우아하긴 하지만 고전적인 모델로 되돌아가버렸을 때 저는 이 영화에 대해서 어떤 적개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웃음) 뭐랄까, <플란다스의 개>와 <살인의 추억> 사이에는 어떤 블랙홀이 있는 느낌입니다. 이제는 그 둘 사이에 놓인 블랙홀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게 아닐까요? 봉준호 _ 네, 강을 건넜습니다. < 플란다스의 개 >가 좀 모던해보일 수 있는 건, (잠시 생각) 그것을 만들었을 당시 제가 가졌던 불안한 상태가 있고 편집이 순탄치 않았습니다. (편집기사였던) 이은수 씨와 계속 불협화음이 있었습니다. 음악으로 보면 텐션노트 상태로 편집에 반영되는 것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구요. <플란다스의 개>를 제가 부끄럽게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만 제가 그 당시 할 수 있는 건 다 했고, (제작자였던) 차승재 대표가 전혀 터치를 하지 않았어요. 완성한 편집본을 들고 차승재 대표 집에 갔던 게 생각납니다. 같이 편집본을 보자고 해서 마음속에 준비를 하면서 갔어요. 이 씬을 빼자고 하면 이렇게 반박해야지, 저 씬을 빼자고 하면 저렇게 반박을 해야지 하고, 온갖 경우의 수를 준비해서 갔는데 딱 보고 아, 고생했다 이제 술 먹자, 해서 아무 관심 없구나, 결국 역시 이건 버리는 영화군, 하고 상처를 받았죠. (웃음) 한편으로는 행복했죠. 그대로 개봉할 수 있겠다. 한번 엎어졌다가 다시 살아나면서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죠. 우노 필름이라는 (예전) 싸이더스의 한구석에서 적은 예산으로 아무 간섭 받지 않고 영화를 찍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기도 했었는데, 그런데 그 영화를 찍고 흥행뿐 아니라 비평에도 미지근하게 별 반응이 없었고, 개봉하고 일 년 반이 지나면서 홍콩이나 뮌헨 영화제에서 상을 수집하면서 씨네21에서 다시 새롭게 쓰는 리뷰가 나오고 그랬지만 개봉하고 1년은 굉장히 쓸쓸했습니다. 나에게 질문을 했죠. 이 영화를 내가 어떻게 생각해야하나. <플란다스의 개>의 이성재 심리와 굉장히 비슷해져 버렸어요. 거기서 성인들의 세계, 룸살롱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많이 마신 술로 구토를 하는 그런 세계로 들어갈락 말락 하고 있잖아요. 이성재가 어떤 경계선에 서서. 내가 충무로 감독인가? 그때는 그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인디 장편을 찍어야하나? 아니면 단편을 계속 할까? 당시 말하는 충무로 35미리 상업영화 감독이 될 수 있을까, 또 되는 게 옳을 것일까 질문을 하면서 갈팡질팡하고 있었고 그런 것이 주인공 이성재가 케이크에 돈다발을 넣어갖고 교수에게 먹이러 가잖아요. 그것도 지하철을 타고. 그 심리와 비슷한 상태였어요. 거기서 막 요동을 치면서. 또 싸이더스라는 굉장히 큰 회사에 일하고 있었던 거잖아요. 아무도 나에게 강요하진 않았지만, 내 나름의 순결주의가 있었습니다. 이게 4번째 영화여야 한다는 강박. 단편 3개를 찍었는데 비록 길이가 1시간 30분이 되었지만 내 독립적으로 단편을 찍던 때와 똑같아야만 해. 누가 충무로 영화와 같지 않다. 단편을 늘린 거 같다는 건 내게 찬사야. 현장 스태프들은 되게 이상하게 생각했죠. 그 영화를 보면 행인이 없어요. 왜 저 감독 영화에는 엑스트라가 없나, 협회 엑스트라가 싫었어요. 다 빼! 주인공만 걸아가! 길에 행인이 없을 수도 있잖아! 이건 나의 네 번째 영화여야하고 첫 충무로 상업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야. 시나리오 써서 주변 선배들에게 보여주면, 너 정말 이 영화로 데뷔하려고 하냐, 차승재 제정신이냐, 이야기가 왜 이렇게 조잡 하냐,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더 오기가 생겨서 무말랭이 하나로도 드라마에 반전을 끌고 올 수 있다는 걸 보여주마. 더 세세하고 작고 쪼잔한 것에 더 집착하게 된 게 <플란다스의 개>였습니다. < 살인의 추억 >은 그 결과에 대한 나 스스로의 반작용이 있었습니다. 역시 누군가 강요하지 않았지만. 반대로 이번에는 굉장히 큰 사건으로 정면대결하고 싶어졌습니다. 사건의 바다로 내가 다이빙 하고 싶다. 그게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었죠. 그때는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에 국회도서관에 출근하다시피 했었어요. 국회도서관의 거대한 자료들. 거기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취향은 접어놓고 그 당시 중앙일보, 경향신문, 다 보면서. 나는 아주 조그맣고 이 사건은 이렇게 거대한데, 그 사건에 80년대라는 더 거대한 것까지 포함되어 있고, 아주 작은 내가 거기에 다이빙한다, 사건 자체를 존중한다, 사건에 대한 내 입장을 정하고 그것을 영화로 표현하자. 나는 어차피 충무로 감독이 됐다. 쫄딱 망했지만 그런 경계선의 갈등도 없어졌고. 이게 세 번째 네 번째 상관없이 나는 직업감독이 됐다. 안도감 플러스 실망감이 믹스된 거죠. 그렇게 되니까 마음이 편해지면서, 그 사건에 되게 심하게 몰입을 했어요. 나중에는 진짜 제가 범인을 잡을 줄 알았다니까요. 관련 주민들을 만나고 심성보 감독이랑 하도 많이 돌아다녔죠. 나중에는 범인의 생각을 알 거 같은 거예요. 그 사람 생각을 하도 많이 해서. 그렇게 접근한 결과물이 <살인의 추억> 이었던 거 같아요. 처음 얘기하지만 그런 마음도 있었어요. (잠시 생각) 이런 심정도 있었죠. <플란다스의 개>를 만들었을 때 다들 나를 무시했었지 이런 이상한 앙심도 있었습니다. 촬영 김형구, 조명 이강산 감독님처럼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 약간 중년남자가 찍는 압도적인 완성도의 영화? 왠지 대종상에서도 환영받을 것 같은 향취의 영화를 찍어서 너희 모두를 압도해주마 이런 앙심도 있었습니다. (웃음) <플란다스의 개>는 재기발랄하고 영화 동아리를 갓 졸업한 애의 영화라면, 이번에는 이런 복수심도 있었어요. 내가 이런 영화도 찍을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마. 좌 형구, 우 강산으로 모시고 송강호란 배우가 정면에 있는 상태에서 그런 삐뚤어진 마음도 있었던 거 같아요. 정성일 _ 봉준호 감독에게 프로페셔널이라는 게 특별한 의미였던 거 같아요. 봉준호 _ 충무로 직업감독이 된다, 직업감독이 된다는 데 동경도 있었지만 공포도 있었어요. 내 성격에 될 수 있을까. 그걸 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병신이 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도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잘났고 기가 세고, 무시무시한 사람이 너무 많은 거예요. 차승재 대표님도 그렇고, 소위 영화를 하신다는 사람들에게 경외심과 두려움이 있었어요. 내가 과연 저걸 할 수 있을까. 연기영화과를 지원했다가 포기할 때도 그런 생각했습니다. 참가번호를 달고 와서 면접관 앞에서 오열도 할 수 있고 탭댄스도 할 수 있는 애가 오십 몇 대 일로 올 텐데, 나는 변태 샌님인데 교수님 앞에서 춤추고 그럴 수 있을까. 그런 공포감이 항상 있었고, 그래서 연영과를 포기하고 영화 동아리를 했는데 그런 어정쩡함이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영화판에 적응할 수 있을까. 조감독을 할 때도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십 년 베테랑인 사람에게 나는 매일 깨질 거야. 조감독인 저 사람이 보면 나는 되게 병신 쪼다일거야. 임권택 감독님이 소품 일부터 시작하셨나요? 현장에서의 모든 걸 짊어지고 출발해서 감독의 자리에 오르시거나. 예를 들면 임권택 감독님의 조감독 출신인 김영빈 감독님처럼 남성적이고 카리스마적인, 감독은 그래야만 할 거 같고, 근데 관심 있는 건 영화밖에 없고, 또 만화를 좋아하니까 장면을 그려서 찍고 싶고 충무로 직업 감독으로서 형상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많이 다르고 그게 계속 지속되었어요. 근데 < 살인의 추억 >을 하면서 좌 형구 우 강산을 모셔놓고 그런 것을 극복했었던 거 같아요. 강호 형님과 새벽 4시까지 나도 술 마실 수 있다. 그러면서 많이 편해졌던 거 같아요. (웃음) 정성일 _ 영화 아카데미를 입학할 때 롤 모델이었던 한국영화 감독은 그 당시 누구였나요? 이제 이 학교를 들어온 건 고민은 끝났고 한국에서 영화감독이 되느냐, 마느냐만 남는다는 자기 선언 같은 것이니까요. 그때 내가 열심히 하면 저기까진 할 수 있어, 라는 꿈같은 것이라고 할까. 봉준호 _ 나는 유영길 촬영감독님과 일하는 감독이 되고 싶었어요. 故 유영길 촬영감독 정성일 _ 유영길 촬영감독님의 어떤 영화가 마음을 끌었나요? 봉준호 _ 많습니다. 극장에서 본 ( 박광수 의) < 그들도 우리처럼 >. 장선우 감독님의 < 너에게 나를 보낸다 >. 제가 아카데미에 입학한 게 94년도인데, (박광수의)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 ( 허진호 의) < 8월의 크리스마스 >는 훨씬 뒤였고. ( 정지영 의) < 남부군 >. 김유진 감독의 <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도 유영길 감독님이죠. 유영길 감독님이 나를 감독으로 인정해주고, 같이 쇼트에 대해서 얘기할 수도 있고 그러면 나도 충무로 감독인 게 아닌가. 유영길 감독님은 성품도 점잖으시고, 게다가 젊은 감독들이나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감독에게 잘해주신다, 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곤조도 안 심하시고. (웃음) 당시 아카데미 동기였던 조형기 촬영감독이 유영길 감독님의 조수생활도 잠시 했었고. 유영길 촬영감독님에 대한 동경이 있었죠. 그런데 제가 입봉하기 3-4년 전에 98년에 돌아가셨죠. 그리고 90년대 장선우 감독님 영화를 되게 좋아했어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도 참 아름다운 영화고 <그들도 우리처럼>도 아름다운 영화라고 생각했었는데, 마음적으로 더 끌렸던 건 장선우 감독님 영화였어요. <너에게 나를 보낸다>나 < 경마장 가는 길 >은 정말 좋아했었고. < 우묵배미의 사랑 >은 거의 대사를 외우다시피 했었죠. 집에 비디오를 아직도 갖고 있는데, 아, 그 영화는 블루레이가 나와야되는데. 그때 삐삐 시절에 인사말에 <우묵배미의 사랑>의 대사를 입력하고 다녔어요.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지만 (음성을 흉내 내면서) “혹시 백일도 선생 아니십니까?” 이대근 씨와 박중훈 씨가 논에서 만났을 때 그 대사. (웃음) 박중훈 선배님과 별로 친하지 않았는데 작년 부산에서 만나서 새벽까지 술 마시면서 <우묵배미의 사랑> 시절을 직접 들었어요. 거의 포장마차의 Q&A같은. <그들도 우리처럼>도 하셨잖아요. 박중훈 선배님께 직접 듣는 두 영화에 관한, 그 두 작품은 똑같이 90년도에 나왔지만 전혀 다른 영화잖아요. 장선우 감독님이 <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으로 인해서 그렇게 되신 건 굉장히 안타까운 일인 거 같아요. 더 많이 작품을 하시면 좋았을 텐데. < 우묵배미의 사랑 > 정성일 _ 약간 우회를 하고 싶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따라가면서 영화 안에서 차례차례 한국을 지워간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시작할 때는 동시대 한국을 찍었고, 그런데 두 번째 영화에서 동시대 한국을 버려두고 뒤로 물러나서 86년에서 91년 화성으로 옮겨갔습니다. 게다가 여기서 화성은 시간의 지표가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아니라면 잘 잡히지도 않습니다. 다시 한강으로 돌아왔다고 하지만 괴물이 나타나면서 한국의 풍경 자체를, 말하자면 불길하게 만드는 거죠. 거기 있을 수 없는 어떤 잉여가 나타나면서. 그리고 나서 이상한 < 마더 >가 있습니다. 아주 이상한 영화. 이 영화는 한국의 불가능한 지리학에 관한 영화입니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거기가 어딘지 알 수 없는. 그 동네 사는 사람도 저 골목이 우리 동네가 아닌데. 우리 동네는 저렇게 이어지지 않는데, 라면서 가상의 동네가 성립하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 설국열차 >까지 오면 자기 영화 안에서 한국 자체를 블랙홀 안으로 계속 밀어 넣어버린다고 할까, 여기서 구체적인 한국 자체가 사라져간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종종 구멍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 부분이 미학적이거나 정치적 구멍이라는 블랙홀이라는 느낌에 멈추지 않고 무언가 다른 표현을 쓰고 싶어집니다. 저는 아직 그것을 표현할 개념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자기 영화 속에서 사라져가는 한국에 대해 어떤 생각이 있는 지 궁금합니다. 약간 과도하게 단순하고 과격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을 부숴버리고 싶다는 생각. 봉준호 _ (잠시 생각) < 플란다스의 개 >는 심지어 제가 살던 아파트에서 찍었습니다. 신혼 생활을 했던 아파트와 제가 결혼 전에 살던 아파트 지하에서 찍고. 그 영화는 세트가 없었어요. < 살인의 추억 >은 아주 명확한 시공간 좌표가 있어요. 86년 화성에서 시작하는. < 괴물 >은 한강이 나오고. 글쎄, 어렸을 때 한국이나 한국 로컬리티와 아무 상관이 없을 수 있지만, 사진에 관한 아주 단순한 책에서, 바르트의 「밝은 방」 이런 책이 아니고, 사진 잘 찍는 법 이런 책이었는데 어린 제게 마음에 남은 것은 사진 잘 찍는 사람은 어떤 사람을 찍을 때 그 사람에게 점점 다가간다. 그 사람의 눈과 얼굴을 향해서. 점점 하나씩 빼면서. 못 찍는 애는 점점 뒤로 물러난다. 나무도 넣어야지, 저런 것도 넣어야지, 이렇게. 어린 마음에 그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괴물>을 만든 후에 제가 초등학생 때 읽었던 그 문구가 떠올랐어요. <괴물>은 한강에 괴물이 나오지만 한 발 물러서면 못난 가족이 있고, 더 한 발 물러서면 한국 사회가 있고, 더 빠져 나오면 미국이 있다. 그런 식으로 물러났던 게 아닌가. 물론, 더 버라이어티하고 풍자의 전시장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왠지 그런 작업은 한 번으로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점점 사람을 향해 다가간다. 그게 김혜자 선생님의 얼굴이었던 거 같아요. 다 지우고 싶은 거예요, 다른 것들은. 그때 < 마더 >를 준비할 때 그런 충동이 있었어요. 김혜자의 눈을 찍는 영화다. 다가가자, 더 다가가자. 영화에 핸드폰이 나오긴 하지만 시대가 뭔지 애매하게. 핸드폰이 나오지만 로케이션은 80년대인 거 같기도 하고, 도시인거 같기도 하고, 시골 같기도 하고, 또 그 언저리인거 같기도 하고. 그렇게 하나씩 지울수록 김혜자 선생님의 얼굴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서 <마더>의 흑백 버전에서는 컬러마저 지워버린 거죠.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애초의 의도가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버전만 남겨야 한다면 흑백을 남기겠다고 말한 겁니다. 어쨌든 <괴물> 이후 <마더> 때 한국을 블랙홀에 밀어 넣는다, 이전에 그런 단순한 충동이 있었던 거 같아요. 사진을 찍을 때 점점 그 사람의 눈을 향해 다가간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처럼요. 그렇게 <마더>를 찍었다고 자평했었거든요. 그래서 < 설국열차 >에 맘 편하게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온갖 나라 사람을 모아놓고 기차라는 용광로에 쑤셔 넣어서. 무대 자체가 이동하는 거잖아요. 단순 추상화된 기차라는 섹션, 이 섹션에 좌표가 없는 거죠. 송강호 , 고아성 한국 캐릭터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사실 지금 개봉하는 핀란드 관객들은 그 사람이 한국어를 안 하면 그들이 한국 사람인지도 모를 거예요. 우리가 노르웨이어와 스웨덴어를 구별 못하는 것처럼 한국어와 중국어를 구별 못하는 북유럽 사람들이 보면 송강호, 고아성이 한국말을 하는지 한국배우인지 모를 거란 말이에요. 그런 느낌을 원했거든요. 일부러 송강호 씨가 김치 얘기를 한다거나 태권도 얘기를 하지 않게 했어요. 한국이 아니라 동양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봤습니다. <살인의 추억>이나 제가 살았던 아파트에서 찍었던 <플란다스의 개>를 보면 정말 멀리 돌아온 거죠. 정성일 _ 산만하게 질문한다고 했으니 다시 산만하게 돌아오겠습니다. (웃음) 봉준호 감독에게 한국영화는 김기영 입니다. 여러 차례 김기영 감독님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셨습니다. 이를테면 다른 자리에서 다른 감독들로부터 자주 호명되는 유현목 , 이만희 , 하길종 , 이장호 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봉준호 감독에게 임권택 은 무엇입니까? 봉준호 _ 김기영 감독님을 한국 영화다, 한국 영화는 김기영이다 라고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이마무라 쇼헤이나 신도 가네토나 (아르튀르) 립스타인 같은 분들 중 한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기영 감독님이 한국적이다, 한국 영화. (잠시 생각) 이를테면 일본 영화는 오즈다, 라는 식의 접근으로 김기영 감독님을 선택한 적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너무 재밌는 거예요. 나를 미치게 하는 요소가 있어요. 이장호 감독님의 영화들, < 바람 불어 좋은 날 > < 바보선언 >이나 < 과부춤 > 이런 것도 엄청나게 좋아합니다. 김기영 감독님의 영화 팬으로서, 팬심 이런 거는 압도적으로 큰 거는 사실입니다. 그분에 관해서 많이 수집했고 책이건 비디오이건. 하지만 김기영 감독님이 한국 영화고 충무로다. 일본 영화의 오즈다, 라고는 한 번도 생각 못했어요. 임권택 감독님은 뭐랄까, 동경하는 부분, 존경과 또 다르죠. 물론 존경하지만 내가 정말 할 수 없는 것들만 다 하실 수 있는 분. (잠시 생각) 그 분이 갖고 계신 스타일이나 경지 같은 거는 제가 이해하거나 손에 안 잡히는 부분들이 많아요. 그리고 임권택 감독님은 몇 편 안되지만 제 영화를 어떻게 보셨을까 이런 게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궁금하죠. 저는 임권택 감독님 영화에서 훔쳐다 쓴다, 존경의 의미에서의, 그런 게 저에게는 불가능 한 거 같아요. 스타일이나 스케일이나 하시는 방식이 아름답고 동경의 대상이지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새끼발가락 하나라도 걸치거나 오마주하거나 응용하거나 그런 건 아닌 거 같아요. 제가 가장 최근에 본 건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 아제아제 바라아제 >와 오늘 아침에 < 짝코 >를 봤어요, 영상자료원의 DVD로. 그게 되게 좋아했던 임 감독님 영화인데 아주 옛날에 방송에서 해줬던 거라 제대로 된 프레임으로 본 건 오늘 처음 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느끼는 거지만, 모르겠어요,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를 보고 항상 느끼는 감정은, (한참 생각) 관객으로서가 아니라 새까만 후배로서 영화를 찍는 거리라고 해야 하나, 사건이나 인물이나 어떤 감정이나 되게 시니컬하고 냉소적이고 차가운 거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떤 감정을 강요하는 관객을 특정 위치로 몰아넣는 것도 아니고 특유의 선선한 느낌? 선선한 바람을 쐬는, 분명 아무것도 어떤 방향으로 몰고 가거나 관객을 푸시(push)하지 않는데 감독님이 세팅한 대로 두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이 감정에 푹 젖게 되는, 그런 게 재밌잖아요. 객관적이고 냉소적인 거리 또는 주관적이고 감정을 저킹(jerking, 갑자기 낚아채버리기도)하는, 그 양쪽 다 아닌 거 같아요. 그 느낌이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상상을 해도. 예를 들어 관객을 되게 몰입되게 몰고 가다가 쇼트를 바꿔서 어떤 의도된 디스탠스(distance)를 주면서 관객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그런. 삑사리의 장난을 저는 칠 수 있지만 임권택 감독님께서 축적되고 쌓는 느낌을 저는 모르겠어요. 어떻게 가능하고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는지. 작품마다 상대적인 차이가 있겠죠. < 길소뜸 >의 언덕배기에서 마지막 걸어가는 장면에서 상대적으로 더 서늘한 장면이 있겠고, < 서편제 >에서 오정해가 울면서 김수철 씨의 음악이 확 덮어버릴 때처럼 상대적으로 덜 들어가는 것 같은 것도 있겠지만. 임 감독님의 선선한 거리가 있는 거 같아요. 요즘 저녁의 선선한 날씨처럼. 선선하면서도 그 친구가 참 안됐어. 그 사건이 참 슬퍼. 그러면서도 전혀 울고 짜고 하는 건 아닌데, 묘한 거리가 분명히 있는 거 같구요. 두 번째로 놀랍고 신비로운 것은 오늘 <짝코>를 보면서 다시 느꼈지만,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보면서 또 느꼈지만 세월의 두께. 두 시간의 러닝타임 안에서 늘 영화라는 게 시간이 비약하거나 점핑하기도 하고 시간이 확장되기도 하고. 그걸 다루는 게 감독의 일이지만 영화 전체의 스케일에서 시간이 흘렀다, 세월이 흘렀다, 개인이 세월을 감당한다는 느낌을 임권택 감독님처럼 표현할 수 있는 분은 유일무이한 거 같아요. 예를 들어 < 시네마천국 >에서 영화 초반 보여주다 말았던 키스 씬들을 라스트에서 다 보여주고 엔니오 모리꼬네 음악이 엄청 높은 볼륨으로 막 커지면서 관객들 다 울고, 물론 좋죠. 그것도 세월의 거리가 있고 알프레도는 지금 없고 그 사람이 모아둔 키스 씬 자투리만 남았지만 거기서 표현되는 영화의 시대, 광장에서 영화를 보던 시대, 알프레도의 시대는 갔고 극장은 허물어지고 온갖 것을 열나게 박아놨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세월의 거리와는 게임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훨씬 작은 단위의 시퀀스에서도 임 감독님은 놀랍게 그것을 표현하시던데 그 비밀이 뭔지 모르겠어요. 미국식 에픽, 소위 서사. 오늘 <짝코>를 보니까 베르톨루치의 < 1900 >도 생각이 나더라구요. (로버트) 드니로와 (제랄) 드파르디유가 애기 때부터 십년에 걸친 얘기잖아요, 지주와 소작농의. 최근 디스크 두 개짜리의 확장버전도 봤지만, 거기서도 드니로가 머리 허옇게 바르고 나오지만, 임권택 감독님만큼 세월의 두께를 표현하지 못하는 거 같아요. 나이든 분장을 잘하고 못하고가 아닌 거 같아요. 영화 전체 리듬을 어떻게든 본능적으로 컨트롤하시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있는 거 같아요. < 취화선 >에서 최민식 아저씨랑 안성기 선배님이 재회하는 장면, 눈발이 날리면서 갯벌에서 멀리서 찍잖아요. 그때 울컥하고 올라오는 감정은 최민식 분장했네. 안성기 선배 머리 분칠했네. 롱 쇼트에서 서로 껴안네, 이런 게 아니라 저는 거기서 되게 실제 세월의 감정이 느껴져요 <아제아제 바라아제>에서 강수연 선배가 먼 길을 돌아서 원래 멘토인 스님 앞에서 돌아왔을 때의 느낌들. 그 모든 일들을 섬에서부터 탄광에서 부터해서 그런 두께의 느낌이 전해오거든요. 유인촌 , 한지일 , 그리고 안병경 님을 거쳐 거쳐 오거든요. 그 모든 세월을 겪고 돌아오는 느낌. 그 느낌의 비밀을 저는 잘 모르겠어요. <서편제>에서도 과거와 현재의 플래시백. 오늘 다시 본 <짝코>에서도 김희라 선배와 최윤석 씨가 다 늙어서 갱생원 옷을 입은 채 서울시내로 나오잖아요. 학생 때는 못 느꼈는데 되게 이상한 카메라 워크가 있더라구요. 요즘 젊은 사람이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두 인물 노인네가 얽혀서 싸우는데, 이 말도 웃긴데, 이 사람은 망실공비요!!, 그러면서 소리쳐도 경찰들은 “후 캐어즈(who cares)?” 라며 무심하게 지나가잖아요.(웃음) 노인네 둘이 엉켜 싸우는데 두 주인공이 카메라 밖으로 나가버려요. 도시를 지나가는 차를 잡고 있다가 카메라가 가만히 있으면 이 두 사람이 알아서 프레임 안으로 (다시) 들어와요. 두 노인이 엉키고 있는 모습이 묘한 세월의 두께가 느껴지거든요. 금가락지를 발에서 빼고 임신한 여자를 데리고 산에서 김희라가 뛰어내리고 그 시간들과 단순히 노인분장이 아니라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다른 평론가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예전부터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했었어요. 유난히 세월의 긴 폭을 다룬 영화도 많이 하셨잖아요. < 씨받이 >처럼 집중된 스팟(spot)의 영화도 했지만 저는 세월의 폭이 되게 넓은 임 감독님 영화를 좋아하는데요. <취화선>도 그랬고, <아제아제 바라아제>도 그랬고, <짝코>도 그랬고. <서편제>도 포함이 되나요? 데이빗 보드웰의 개론서를 보면 스크린 듀레이션(duration), 플롯 듀레이션, 스토리 듀레이션으로 이렇게 기계적으로 3가지 듀레이션을 나눠놓고 서양 애들 식의 분석의 세계를 임 감독님은 이미 넘어서 있으신 거 같고, <짝코>나 <서편제>처럼 시간대가 막 왔다 갔다 하고 <짝코>는 플래시백에 또 플래시백이 있고 그렇잖아요, 그걸 벽돌을 쌓듯 축조하는 듯한. 세월의 몇 십 년, 두 사람이 걸어온 것. 베르톨루치의 <1900>보다 훨씬 더 세월의 두께가 깊게 느껴지는 거 같아요. 그 마술을 저는 잘 모르겠어요.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데 싫어하실 거 같아요. (웃음) 정성일 _ 임권택 감독님은 봉준호 감독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영화를 찍어 오신 분이니까 당연히 영화를 보면서, 그러니까 봉준호 감독께서 영화를 하겠다고 결심하기 훨씬 이전부터 만들어왔으니까, 계속해서 무심하게 지나가다가 어느 순간 만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일까, 라고 임권택이라는 이름을 유심히 보기 시작한 영화는 언제부터입니까? < 씨받이 > 봉준호 _ < 씨받이 >. 87년 개봉작인 <씨받이>입니다. 그 영화를 비디오로 출시했을 때 대여해서 봤습니다. 극장에서 못 봤어요. (그 영화가 개봉한) 87년은 고3 때였습니다. 제가 88학번이니까요. 하지만 임 감독님의 명성은 이미 신문에서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 만다라 >를 하셨으니까요. 사실 강수연 누나 때문에 보게 된 거죠. 동경해 마지않던. 중고등학교 발정기 때 보게 되었습니다. (웃음) 제 꿈과 로망이었던 강수연 선배를 이제는 실제 몇 번 뵙고 얘기도 나눠봐서 지금 이렇게 얘기하려니 되게 쑥스럽네요. 강수연 선배덕분에 임 감독님 영화를 보게 된 거죠. <씨받이>에는 분명 야한 장면이 있을 거야, 씨를 받으려면 분명 야할 거야. 야한 장면 없이 씨를 받지 않겠지, 라는 아주 고등학생인 마인드로.(웃음)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빌려봤는데 별로 야하지 않았고, 다른 의미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아직 박광수 , 장선우 감독님이 등장하기 이전이었고, 제가 김기영 감독님에 빠지기도 훨씬 전이었고. 정성일 _ 저는 그 영화를 임권택 감독님과 인터뷰를 한 직후, 그때는 남산에 있던 영진공(영화진흥공사) 지하 시사실에서 박광수 감독과 함께 보았습니다. 남산에서 보고 나서, 그때 박광수 감독이 이장호 감독님의 조감독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사무실이 종로 3가에 있어서 남산에서 보고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그때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무 말이 없이 그냥 걷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박광수 감독이 혼잣말처럼 말했습니다. 딴 감독들은 다 자신이 있는데, 아직도 이 감독하고는 아직 안되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 사람 앞에서 여전히 아이로 남아있는 기분이 드는구나. 봉준호 _ 박광수 감독님은 영화를 격투기처럼 생각하시나 봐요. 대결 같은. (웃음) 정성일 _ 진짜 말없이 걸어가다가 갑자기 그 얘기를 했어요. 그리고 그 마음은 진심이었고 아마 평생을 담아두신 것 같아요. 결혼하면서 임 감독님을 주례로 모시고 지금도 매년 새해가 되면 세배를 하러 오시니까요. 봉준호 _ 저도 강수연 의 뭔가를 영접하는 마음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틀었다가 어, 하고 되게 놀랐어요. 첫째, 메시지가 그렇게 강렬할지 몰랐었어요. 조선시대 양반사회에 대한 얘기가 굉장히 직접적이지 않나요, 시작부터. 마당에서 강수연 언니가 뭘 하는데 안에서 사대부 양반들이 모두 모여 제사나 그런 걸 길게 논하고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이 시각적으로 강력하게 형상화되어서 보여질 때, 이 집의 기와집의 기하학적 패턴들, 생각나는 게, 그 장면에서 기와지붕들이 구중모 기사님의 렌즈로 포착되었을 때 아지랑이가 막 피어오르잖아요. 아마 렌즈 밑에서 버너 같은 걸로 뭘 피우셨던 거 같아요. 그런 비주얼도 처음 보는 거 였구요. 완전 다른 영화구나! < 씨받이 >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강수연 님이 별로 야하게 안 나왔다는 실망감을 압도하는. (웃음) 그때부터 임권택 감독님 영화를 봐야한다. 그래서 < 아제아제 바라아제 >도 서울극장에서 개봉할 때 가서 봤던 거고, <씨받이>와 <아제아제 바라아제> 사이에 있던 < 아다다 >는 극장에서 놓쳤는데 대부분 극장에 가서 봤어요. < 개벽 >, < 서편제 >, < 태백산맥 >, < 장군의 아들 > 전부 다. 그리고 대학 때 제일 큰 취미가 황학동 가서 비디오 사는 거였는데, 동대문운동장 지나서 4호선 역에서 내려가서 개봉하는 영화들뿐만 아니라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죠. < 길소뜸 >, < 티켓 > 이런 작품들 비디오로 봤습니다. 거기 사인도 받았는데 플라스틱이 아니라 비닐 케이스 밑으로 커버를 빼는. < 천년학 > 행사 뒷풀이 때 거기 종이 케이스에 사인도 받았습니다. <티켓> 마지막 장면에서 김지미 여사가 품에서 달걀을 꺼내듯이 (임 감독님의 비디오 자켓을 꺼내들면서) 슬그머니 다가가서 저기 너무 실례지만, (하고 인사를 드리니 임 감독님이) 자네 < 괴물 > 신기해, (라고 하셨을 때 개의치 않고) 아, 저기 (여기에 사인을 좀) 이러니까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구요. (웃음) <길소뜸>, <티켓>, < 만다라 >는 테이프로 구했었죠. 영상자료원이나 회고전할 때 본 것도 있고, <씨받이>가 어쨌든 출발점이었던 거 같아요. < 장군의 아들 > 정성일 _ < 씨받이 >로 임권택 감독님 영화를 시작했다면 전혀 다르지만 뒤이어 만나게 된 < 장군의 아들 >을 보았을 때 느낌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봉준호 _ 이분이 어렴풋하게만 듣던(건데) 옛날에 장르 마스터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액션 그런 걸 한 번도 못 봤었거든요. < 만다라 >, < 씨받이 >만 머릿속에 있고. 근데 이 분이 한때 일 년에 4편씩 다찌마와리를 찍었다니! 그러다가 < 장군의 아들 > 보니 너무 재밌는 거예요. 특히 박상민이 싸울 때 직부감(vertical_high_angle)으로 찍은 쇼트들. 벽을 밟(고 뛰어올라 걷어차)는 장면. 미국 영화나 홍공 무술영화와 너무 다르고, 너무 재밌고 흥분되는데 동시에 6, 70년대 이분 액션영화는 어땠을까 추측해봤죠. 그때 그 가닥을 보여주시는 거구나 생각했어요. 재밌었어요. 장르 마스터였을 때 어떠했을까 추측해보게 되더라구요. 류승완이랑 얘기도 많이 해봤습니다. 자기도 벽 밟는 거 흉내내봤다고 하더라구요. (웃음) 인상적이었어요. 그 분이 <길소뜸>이나 <짝코>나 < 아제아제 바라아제 >나 그분 특유의 롱 테이크라든가 아주 유연하고도 마술 같은 리프레이밍(reframing)이라 해야 하나, 관객이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프레임을 새로 잡는데 조잡한 트래킹이나 줌에 의지하지 않고. 표준렌즈나 단렌즈(wide-lens)를 끼운 상태에서 굉장히 절묘하게 리프레임 되면서 모든 미장센이 완벽하다고 느껴지는 그런 굉장히 마술적인 순간이 많았거든요. 근데 액션을 찍을 때는 이 분이 그런 걸 어떻게 하시려나. 빠른 편집으로 그걸 또 하시더라구요. 반대로 막 싸우는데 겹쳐진 상태에서 (인물들 사이의 동선이) 하나도 엉키지 않고, 액션을 저렇게 찍으실 수도 있는 거구나. 심지어 아주 옛날부터 저렇게 찍으셨나보다. 아직도 임 감독님이 6, 70년대 찍으신 액션 영화를 못 봤어요. 하나만 추천해주시면 보고 싶어요. 어떻게 그렇게 하셨고 뭐가 같고 다른지. 정성일 _ 그렇다면 역시 저라면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를 먼저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제게 부탁의 기회를 주신다면 저는 봉준호 감독의 사극을 한번 보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액션영화뿐만 아니라 임 감독님의 60년대 사극영화를 보신다면 몹시 흥미롭게 보실 수 있으실 거 같아요. 봉준호 _ 저는 임 감독님의 사극은 유인촌 , 김진아 의 < 연산일기 >만 보았을 뿐입니다. 60년대 사극영화도 보고 싶네요. < 망부석 > 정성일 _ 추천한다면 저는 세 번째로 찍은 < 망부석 >이라는 영화를 먼저 고르겠습니다. 약점도 동시에 있지만 이미 세 번째부터 이 사람은 완성된 영화를 만들고 있었구나, 라는 당혹감마저 불러일으킨다고 할까요. 31살에 만든 신상옥 규모의 영화라고 할까. 봉준호 _ 컬러인가요? 정성일 _ 흑백으로 찍었습니다. 임권택 감독님의 첫 번째 컬러 영화는 67년에 찍은 < 요화 장희빈 >입니다. 이 영화도 사극입니다. 봉준호 _ 말씀하시는 거에 제가 동의하는 것은 마술적인 순간들이 임 감독님 영화에, 이런 말은 외람되지만, 임 감독님의 별로라고 하는 영화에도 꼭 한두 번 씩 있는 거 같아요. 정성일 _ 심지어 저렇게 포기한 영화에서조차도 이런 장면에서는 이렇게!! 봉준호 _ 빈손으로 돌아가시진 않는구나(웃음) (2부에 계속) (註)_ 인터뷰 중의 대화는 가능하면 오가던 이야기의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래서 일부 어휘들이 영어 단어가 사용되는 경우에도 옮기지 않고 그냥 고스란히 남겨 놓았다. 그 까닭은 의미는 옮길 수 있으나 대화의 문맥에서 그 단어가 가지는 ‘뉘앙스’를 상실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대화중의 일부가 두 사람 사이에서 서로 충분히 다시 설명해야 할 필요가 없어서 마치 점프 컷처럼 진행될 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괄호를 치고 보충설명을 덧붙였다. 일부독자들에게는 필요치 않을 수 있지만 이 점 이해를 바란다. 또한 서로에게 약간의 어색한 표현들도 대화의 ‘라이브’한 무드를 돕기 위해 수정하지 않았다.
정윤철 감독의 데뷔작 < 말아톤 >은 소통에 대한 영화였다. 실화를 바탕으로 삼은 자폐아 ‘초원’이의 마라톤 도전기를 전국 500만이 넘는 폭발적인 관객동원으로 이끈 건 그들의 닫힌 세계를 이해하고자 한 작은 노력 덕분이었다. 자폐증은 소아 1,000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흔한 질병이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이나 치료방법이 밝혀지지 않았다. 국내에선 1999년에 이르러서야 공식 장애항목으로 등록되었을 정도인데, 초원이 눈에 비친 대한민국이란 현실이 세렝게티와도 같은 생경한 환경으로 비쳐졌는지 모른다. 영화는 그런 냉엄하고 비정한 세상에 대해, 그리고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며 많은 공감을 얻었다. 무엇보다 음악의 힘이 컸다. 연극음악감독, 피아니스트, 게임회사 직원 등 긴 무명 세월을 견디며 대중과의 소통을 꿈꿔왔던 김준성의 음악은 여기서 날개를 달았다. 갇힌 마음속에서 넓은 꿈을 꾸는 5살 지능의 20살 청년의 모습부터 이를 지켜보는 가족의 심경과 차가운 현실의 벽까지 두루 아우르며 피아노와 기타, 스트링 오케스트라로 풀어낸 그의 따스하고 아름다운 음악은 실화 속 주인공, 캐릭터, 관객 그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박수를 보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백만 불짜리 끝내주는 음악을 만든 그는 이 데뷔작으로 그 해 청룡영화상, 대종상 음악상을 모두 석권하며 영화음악가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걸었다. 데뷔 전부터 단편에서 이미 호흡을 맞춰온 원신연 감독의 음악적 페르소나가 되어 다양한 실험성과 세련된 스타일을 과시하는 한편, 자신의 전공을 살려 국내에선 보기 드문 오케스트레이터로서도 탁월한 솜씨를 뽐냈다. < 전설의 고향 > < 고사 > < 핸드폰 > < 더 게임 > < 차우 > < 심야의 FM > < 베스트셀러 > < 공모자들 > 등 호러와 스릴러 장르에서 특화된 모습을 보이면서 동시에 < 특별시 사람들 >과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 < 끝과 시작 > < 집으로 가는 길 > 그리고 <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같은 감성적인 드라마에서도 빼어난 선율과 풍부한 심상을 잊지 않았다. 이제 대중들에게 그의 음악은 익숙해졌지만, 아직 이름은 친숙해지지 못한 ‘영화음악가 김준성 ’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영화음악에 대해 보다 심도 깊은 접근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그와 나눈 일문일답들. 먼저 최근에 음악을 담당하신 < 더 테너-리리코 스핀토 >가 제17회 상하이국제영화제에서 먼저 공개되었는데요, 국내에선 언제 개봉인가요? 국내에서는 아마 11월경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일본과 개봉을 같이 하려고요. 일본은 워낙 만들어진 다음에 개봉이 늦어서 그 일정을 맞추려는 거 같아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음악 영화이고, 실화를 각색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갑상선 암으로 목소리를 잃었지만 재기에 성공한 성악가 배재철 씨의 이야기를 다뤘는데요. 김상만 감독님과는 어떻게 만나게 되신 건가요? 감독님과는 < 심야의 FM >에서 처음 만났는데 호흡이 좋았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저도 그 영화음악을 대표작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감독님이 음악 영화를 준비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궁금하죠. 음악 영화를 한다면 분명 오페라 영화일 텐데. 그래서 기술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거예요. 시나리오를 받아서 봤어요. 이 영화는 음악적으로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걸 이야기해주러 갔죠. 어떤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을 해드렸어요. (그랬더니) 한 달 후에 같이 하자고 연락하시더라고요. (웃음) 음악이 이렇게 메인으로 나오는 영화는 필모그래피 중 처음입니다. 클래식을 전공한 작곡가로서 음악이 주가 되는 영화는 어떤 느낌인가요? 음악 영화는 힘들다... 죠. (웃음) 일이 3배는 더 많아요. 음악감독이 기술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상당히 많더라고요. 첫째는 믹싱도 알아야 하고요. 클래식 영화니까 클래식 전반에 대한 음악적인 지식, 능력도 있어야 하고요. 싱크에 대한 문제가 가장 중요하거든요. 우리는 배우가 직접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성악가가 하기 때문에 입을 맞추는 문제가, 편집적인 센스가 있어야 맞출 수가 있어요. 거기다 영화음악을 또 만들어야 하잖아요? 일이 좀 많아요. (웃음) 공개된 티저를 보면 오페라 장면도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요, 어떤 곡들이 사용되었나요? 일단 ‘네순 도르마’가 쓰였고요.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가 쓰였어요. 저작권은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저작권료를 낼 일이 없었죠. 녹음을 다 새로 했거든요. 세르비아로 가서 (녹음했는데) 오케스트라 단원이 많은 영화음악 전문 단체가 있어요. 그분들이 도와주셨어요. 한국에서 지휘를 제가 할 수는 없으니까 대전시향의 전임지휘자, 류명우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지휘를 해줬어요. 처음으로 돌아가 보면 시작은 단편 영화와 연극, 무용 음악이었습니다. 1992년부터 대략 30여 편의 연극을 하셨다고 했는데(크루서블, 날 보러 와요, 오월의 신부 등), 애초부터 극음악에 관심이 있었나요? 서울대 작곡가를 졸업하고서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극음악을 한 것은 사람이 좋아서 시작한 거 같아요. 학교 다닐 때부터 연극 음악을 했었죠. 극단 연우무대와 작업을 10년 정도 했어요. 그때 많은 사람들과 공동 작업을 한다는 것이 좋았어요. 사실 혼자 현대음악을 쓰는 것도 좋았고, 여전히 제 꿈은 현대음악을 계속 하는 거였는데, 97년도에 유학을 다녀온 이후 IMF가 왔어요. 다시 유학을 떠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요. 그때부터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되었는데요. 500명의 관객을 행복하게 하는 음악보다 앞으로는 500만이 행복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 어떨까. 그러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영화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들이 시작됐죠. 연극 <날 보러 와요>는 초연 음악이었나요? 네, 초연부터 했었죠. 영화 < 살인의 추억 >을 보고는 어떤 느낌이었는지? 그 당시는 영화를 하고 싶었던 때이기 때문에 제가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죠. 제가 했으면 그만큼은 못했어요. (웃음) <살인의 추억> 음악은 정말 잘 만든 음악이에요. 일본인 작곡가 타로 이와시로가 했었죠. 굳이 왜 일본인 작곡가를 썼을까, 하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그 당시 붐이 있지 않았어요? 일본 작곡가를 한국 영화에서 많이 썼어요. 김성수 감독의 < 무사 >도 그랬고요. 어떤 붐의 마지막 단계였던 거 같아요. 2005년? 2006년도까지. 히사이시 조의 < 웰컴 투 동막골 >을 마지막으로… 그 후에는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끼는지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연극과 무용과 영화의 차이는 뭐가 있을까요? 근본적인 차이는 없는데요, 영화가 조금 더 음악적인 판타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장르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연극은 제약이 좀 많이 있거든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명확하고요. 배우들의 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뿐 아니라 미술과 공간과 시간과 정서 등등 느끼는 것들이 종합적으로 되어 있으니까 할 것이 더 많고 성취감도 더 많은 거 같아요. 김소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 하늘색 고향 >도 작업을 하셨습니다. 어떤 작업이었나요? 음악 감독의 역할이었죠. 영화를 처음 접하는 거였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굉장히 많았어요. 감독님과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요. 그 영화에 가장 필요로 하는 음악을 만드는 일이었는데 음악 감독이라기보다는 작곡가의 개념이 더 많았던 거 같아요. 아마도 그 영화를 하고 난 다음에 잘 못했던 거 같아…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다, 그런 소망을 가지게 된 계기라고 생각해요. 2004년에는 뉴에이지 느낌의 솔로 앨범 ‘어느 아침’도 발표하셨어요. 김광민이나 이루마 같은 피아노 솔로 앨범이었는데. 피아니스트로서의 욕심도 있지 않으셨나요? 이루마 씨가 (앨범 내기) 6개월 전에 (제가) 발표했거든요. 제가 발표를 했을 때 대중들은 저에게 관심이 없었어요. 음악도 안 들어주고. 콘서트를 잡아주는 데가 없으니까 제가 자발적으로 돈 들여서 열 번 정도 해봤거든요. 무명의 삶이 이렇게 어렵구나 하는 걸 알았어요. 그때 경제적으로도 아주 어려워졌고. 지금 할 때가 아닌가 보다 해서 접었죠. 아직도 욕심은 있으신 거고요? 네. 5년 뒤에 시작하려고요. 5년 뒤면 50이거든요. 그때는 관객들이 제 얼굴 보고, 제 몸매 보고 (웃음) 선택하지 않고 음악 자체의 진실성을 보고 판단하지 않을까 싶고. 제가 영화를 하다 보니까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서 연주하는 것을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그런 것을 할 수 있으려면 테크닉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칠 수 있어 보다는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 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해서 한 5년 뒤면 준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는 관객과 직접 만나려고요.. 장편 영화음악으로 데뷔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습니다. 2005년 정윤철 감독의 <말아톤>으로 데뷔했는데, 어떻게 작업하게 되었나요? 저에게 천운이었죠. 제가 그 당시에 게임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요. 게임 회사에서 뽑았던 직원이 정윤철 감독의 교회 후배인 거예요. 자기네 교회에 감독 형이 계신 데 영화를 들어간다고 하더라. <말아톤>이라는 영화인데 아직 음악 감독을 못 구했다고 하더라. 이거 잘 됐다. 한번 되든 안 되든 데모를 한번 내보자. (가지고 있던) 데모 음악들 중 비슷한 음악들을 골라서 보냈어요. 그러고 나니까 이 친구가 다음에 <말아톤> 시나리오를 들고 오더라고요. “이걸 읽고 써주세요”, 하는 거죠. 그중 춘천 마라톤 장면을 읽고 써달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더라고요. 봤어요. 감동이었죠. 시나리오를 읽고 감동을 느낀 게 아직도 있어요. 그래서 영화의 분석에 들어갔죠. 결론은, 이 영화는 구조적으로 되게 탄탄한 영화다. 그 때문에 (음악을) 정말 잘 만들어야 한다. 구조적으로. 두 번째는 초원이가 자폐인데, 의외로 엄마가 더 자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초원은 더 자유로운 사람일 수 있다. 역발상을 한 거죠. 그래서 ‘달려라 초원’이라는 곡을 써서 보냈는데, 그 곡은 일반적인 4/4 곡이 아니에요. 이런 (약간 엇박자의) 리듬을 가지고 있거든요. 일반인들은 그렇게 뛰지 않겠지만 초원이라면 그렇게 뛸 것 같더라고요. 그런 리듬과 초원이의 행복하고 자유로운 생각과 현악기와 피아노를 묶어서 만들었죠. 그랬더니 연락이 왔어요. 계약하자고. 그래서 계약하게 됐어요. (웃음) 첫 영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누구기에 여기 와가지고..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사람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네”, 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영화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초원이가 연습하던 운동장을 7일 동안 찍었거든요. 아침부터 촬영이 끝나는 밤늦게까지 지켜봤어요. 지켜보니까 너무 심심해요. (웃음) 너무 괴로운 거예요. 오선지를 가지고 갔거든요. 틈틈이 작곡했어요. 결국 그때 작곡한 곡들이 대부분 다 들어갔죠. 초원이, 조승우 씨 얼굴을 보면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작곡을 한 거죠. 53회 촬영 회차 중에서 20회 넘게 촬영장을 나갔어요. 게임회사에서는 음악을 담당하셨던 거죠? 네네... 정윤철 감독도 신인이었고, 감독님도 입봉작이었는데,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별로 없었어요. 아, 작업은 수월하게 하신 편이네요. 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었어요. 혹시 이것이 어떤가요, 하면서 감독님에게 그때그때 드렸죠. 촬영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요. 약간의 프리 작업처럼 진행된 건가요? 그럼요. 촬영 기간 내내 작업했어요. 음악을 듣고 굉장히 많은 곳에 붙여보시더라고요. 이거 좋다 좋다 나쁘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셨죠. <말아톤> 음악은 전체적으로 ‘자폐’에 대한 사회의 인식, 무거움 등을 갖고 있고요, ‘장애’에 희생되는 가족들의 이면도 다루고 있고. 솔로 악기들이 그런 디테일들, 고독, 외로움을 표현해주는 것 같은데요, 그러면서도 동시에 희망을 품은 밝은 분위기로 치환되는 게 인상적입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게 메인으로 쓰인 피아노인데요. 사용한 이유가 있었나요? 감독님이 요구하셨어요. 피아노와 스트링 오케스트라로 가자. 지금까지 봤을 때 그게 가장 좋을 거 같다. 저도 동감을 했고요. 전반적으로 지금 생각해보면 피아노와 스트링 위주지만 다른 악기도 더 많이 나올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해요.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저에겐 어떤 미션이잖아요.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죠. 피아노가 주는 차가운 따뜻함이 있고, 황량함, 비어있는 거 같은 것. 굉장히 많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악기예요. 그래서 음악적으로 작곡 되어지는 여러 가지 기법 상 메이저와 마이너의 성격을 뭉뚱그려서 표현한 게 많거든요. 이중적인 이미지를 가져가는 것이 아닐까. 기쁘면서도 차분하고, 차가우면서도 슬프고, 슬프면서도 희망적인 것을 보이고. 그런 복합적인 감정의 음악을 만들려고 했죠. 달리는 장면의 곡들이 아름답습니다. ‘한강 마라톤’, ‘뛰는 가슴’, ‘달려라 초원’ 같은 큐들. 또 이것이 변주 확장된 ‘바람을 가르는 손’ 등. 영화 <말아톤>에서 가장 인상적인 테마이기도 한데, 멜로디라인에 대한 확신이 있었나요? 영감이 확 떠오르셨나요? 굉장히 많은 변형들이 있잖아요? 전체적으로 영화에 음악은 음정 관계에서 출발했어요. 완전 5도. 첫 오프닝부터, 완전 5도, ‘도’와 ‘솔’ 이런 개념이 많이 쓰이거든요. 두 번째 테마 ‘하늘이 걸린 풍선’ 같은 경우도 ’미라미레도시도레솔‘과 같은 완전 5도 음정이 많이 쓰여요. ‘달려라 초원’은 뒤집어서 ‘도솔미레 솔파미’… ‘도’와 ‘솔’, 완전 4도 뒤집으면 완전 5도, ‘솔’과 ‘레’. 이런 음정에서 출발했어요. 음악에 있어 분석의 씨앗은 완벽하게 찾아진 거거든요. 다행히도 초반에 테마 두 개가 다 나왔어요. ‘달려라 초원’과 ‘하늘에 걸린 풍선’, 정서적인 테마와 달리는 것에 대한 테마가 다 나왔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변주는 제가 자신이 있었죠. 뭘 해도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삼천포 전략이라고... (웃음) 처음 시작하는 부분만 원래 테마와 비슷하게 가요. 한 마디를 넘기면 안 돼요. 그다음에는 마음대로 가는 거예요. 정서를 유지하면서 음악이 다양성을 확보하는 방법이죠. 처음에 ‘달려라 초원’ 음악을 주셨을 때 그 음악이 그대로 사용된 건가요? 네, 똑같이 사용됐어요. 그럼 두 번째 테마인 ‘하늘에 걸린 풍선’은 언제 작곡을 하게 되신 건가요? 계약하고요. (웃음) 계약하면 행복하잖아요. 마지막 춘천 마라톤 시퀀스는 전적으로 조승우라는 배우와 음악의 힘으로 달려가는 지점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음악과 배우만 나오는 상황인데, 음악들은 시퀀스 하나에서 굉장히 여러 곡으로 쓰이거든요. 거기서 잡으신 주안점은 무엇이었나요? 일단은 초원이가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대한 문제였어요. ‘달려라 초원’은 경쾌하지만 해맑음이 없어요. 해맑은 느낌, 행복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다른 곡들이 준비되어 있었잖아요. ‘뛰는 가슴’이라든지 하는 곡이요. 전체적으로 형식적인 것들을 나눈 거죠. 쓰러지기 전까지, 거기서 주저앉은 다음까지. 그다음에 다시 일어나는 장면, 그다음 골인 지점으로 향하는, 그렇게 크게 세 덩어리가 있는데 다른 곡들을 각각 배치한 거죠. 조승우의 감정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원래는 다른 조로 되어 있던 곡들을 같은 조로 편곡해서 연결하는 작업을 했어요. 맨 마지막에는 금관도 나오게끔 배치를 했고요. 한 곡으로 유지했으면... 아마 그 장면이 굉장히 길었을 거예요. 네. 20분 정도 진행되는 장면이죠. 네. 여러 가지 이미지를 들려줘야지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느끼게 되니까 시간이 훅 지나갈 수 있죠. 이 작품으로 청룡영화제 음악상을 받으셨어요. 대종상도 받았어요. (웃음) 기분이 어떠셨나요? 첫 영화로 받으신 건데요. 큰일 났다 싶었어요. 자칫 잘못하면 내가 나락으로 빠질 수도 있겠구나. 망가질 수 있겠구나. 청룡상 시상식 때 “초심을 절대 잃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이렇게 큰 영광을 얻었는데. 공공의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에 대한 약속이잖아요. 그 약속을 지키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고 싶었고. 그 이후에 처절한 투쟁이 시작됐죠. (웃음) 그다음으로 작업한 < 가발 >은 원신연 감독과의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춘 영화이자 첫 번째 장편영화였습니다. 원신연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는지요? 고통스러웠죠. 부산 촬영 때 한 달 반 정도를 같이 가 있었어요. 전 영화를 거의 처음 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 당시라 할지라도. 경험도 없는 데다 장르도 바뀌었고요. 곡은 쓸 줄 아는데, 이게 영화에 딱 맞는 음악인지는 확신이 없었어요. 감독에게 들려주면 감독은 계속 노노노! 그랬죠.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저를 음악 감독에서 자르진 않더라고요. 끝까지 기다려줬어요. 2월 말에 시작해서 5월 중순까지 두 달 반 정도를 어떠한 테마도 못 잡았어요. 곡은 쓰지만 정신이 없었죠. 5월 중순이 돼서 곡을 하나 썼어요. 저도 확신이 섰어요. 감독님에게 들려주니, 감독님이 “준성아 그 음악 듣고 울었어. 너무 좋아.”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테마에 대한 확신이 생긴 거잖아요. 그다음에는 거기에 대한 변주가 빅뱅처럼 빵! 터져버린 거죠. 굉장히 많은 변주들이 이뤄졌어요. 테마가 하나 잡히면 그다음부턴 수월하게 가시는 것 같아요. 네 (웃음) 전 그래요. 첫 번째 호러영화였는데, 호러적인 느낌보다는 슬프고 애잔한 효과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근데 그게 고전적인 우리네 한의 정서라기 보단 증오와 질투, 이런 개인적인 감성들에 가깝고, 굉장히 아름다워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아름다운 멜로디의 피노 도나지오나 엔니오 모리꼬네 선율처럼도 느껴졌는데, 좀 의외였습니다. 호러영화인데 왜 이렇게 아름답게 갔을까? 자매간의 정이 더 중요한 주제였어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을 절제 하고, 큰 덩어리의 정서가 흘러갔으면 좋겠다, 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래서 그렇게 만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을 백퍼센트 믿은 제가 실수한 거예요. 공포 영화의 미덕은 무서움이거든요. 아름다움은 그다음의 부가적인 거예요. 그런데 아름다움이 우선이 되고 무서움이 거의 없으니까. 제가 만약 지금 <가발>을 한다면 아름다운 음악의 절반을 잘라버릴 거고요, 무서운 사운드적인 음악을 반 이상을 도배를 할 거예요. 그럼 관객들도 무한히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선율)에서가 아니라 극히 일부를 통해서 (그 아름다움을) 극대화해서 느낄 수 있었을 거예요. (지금은) 너무 흔해져 버려서. (웃음) 그래서 음악 때문에 실패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어요. 후회를 많이 했죠. 그 당시 만들어진 호러 영화들이나 스릴러들이 유독 클래식컬한 감성을 가지고 있었어요. 마치 유행처럼. 이병우의 <장화, 홍련>이나 <분홍신>, 심현정 이지수 최승현의 <올드보이>, <혈의 누> 등 이런 영향이 있었나요? 아뇨, 전혀 없었어요. 원래 저의 색깔이에요. ‘가족을 위한 왈츠’ 라는 왈츠가 주된 테마로 등장합니다. 왈츠는 목적이 있었어요. 다들 왈츠를 쓰더라고요. <올드보이> <장화, 홍련> 저 이후의 어떤 사람도 왈츠. 그래서 왈츠의 끝장을 나도 한 번 보여주고 싶다, 라는 욕심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만들어봤죠. (웃음) 모차르트나 베르디의 레퀴엠 Dies Irae(진노의 날)과 동명의 성가곡은 성당에서 흘러나오는데, 영화의 엔딩과 비춰봤을 때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영화의 반전과 관계있는 내용입니다!) 부산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부르는데, 여성과 남성 사이의 목소리를 찾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소년소녀합창단은 영화사에서 촬영을 위해 준비한 합창단이었어요. 촬영을 위해 섭외했는데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돈도 아낄 겸 녹음을 하자! 악보를 미리 보냈어요. 녹음실이 아니고 촬영장에서 녹음한 거예요. 붐 마이크를 스테레오로 잡아서요. 그런데 솔로가 좀 약했어요. 솔로의 밸런스가 안 맞는 거죠. 그래서 이 음악을 가지고 서울에 와서 보강 했어요. 임지성, 홍주영, 박희준 세 명 불러서 더빙을 해서 보강을 한 거죠. 소년을 쓴 의도는 따로 없었어요. 영화사에서 해준 거니까. 주어진 환경에 충실히 했던 거죠. 그 뒤 작업한 게 < 3인 3색 러브스토리 - 사랑즐감 >이라는 옴니버스 작품이었습니다. 온라인으로 개봉되었고, KT 의뢰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점 등 특이한 영화였는데요. 그중 정윤철 감독의 <폭풍의 언덕> 음악을 담당했는데, 어떤 작품이었나요? 급하게 연락을 받았어요. 그때까지 작업 된 음악이 마음에 안 드셨나 봐요. 그래서 저에게 SOS를 친 거죠. 끝내야 할 날짜가 다음 주인데 시간이 없다, 그래서 갔어요. 가서 영화를 보니까 판타지가 있는 소소한 멜로의 느낌이 있더라고요. 코믹도 있고. 그래서 해보겠다고 하고 작업을 시작했죠. 피아노로 즉흥 연주를 하다 보면 음악이 주는 뉘앙스가 있어요. 화면을 보면서 연주를 해봤더니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테마를 하나 만들고, 그 다음 날 테마를 통해 변주를 시작했죠. 결혼식장의 음악은 결혼식의 느낌을 코믹하고 유희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아코디언을 썼어요.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게 된 거죠. 딱 일주일이 걸렸어요. 감독님의 반응은 어떠셨나요? 그 당시 감독님은 만족하신 거 같은데요. 이상하게 그다음부터 저를 안 부르시더라고요. (일동 웃음) 그다음에 감독님 두 작품을 더 하셨잖아요. 저를 안 불렀어요. 각각 주제곡이 있었는데(에픽하이, 이소은, 성시경), 이는 별도로 진행되었던 건가요? 네, 그건 저와 별도로 진행된 거예요. 단편 작업은 장편과의 차이가 있나요? 네, 차이가 있어요. 일단 예산의 차이가 크게 나고요. 짧은 기간에서 핵심적인 이미지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그 점이 좀 다른 거 같아요. 줄줄이 줄줄이 할 이야기 다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줄여서 정제되게 전달해야 한다는 점이 다르죠. 그래도 좀 긴 단편이 있어요. 그런 단편의 경우는 감독님들도 원하시고 해서 상업적인 영화음악처럼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대체로 단편은 오랫동안 생각하며 만들 수가 없죠. 원신연 감독과의 두 번째 호흡을 맞춘 영화는 < 구타유발자들 >이었습니다. 국내에선 보기 드문 지역색이 담긴 블랙코미디이자 부조리극이었는데요, 어떤 콘셉트를 잡으셨는지요. 이것도 고통스럽게 작업했죠. 이때부터 영화에 대한 공부가 시작했어요. <가발> 때 ‘음악’은 성공했다 하더라도 영화(음악)적으로는 실패한 거였으니까요. 영화랑 딱 맞는 음악이 아니었다고 판단했거든요. (그때부터) 각각의 영화를 하면서 영화를 통해 남들이 안 하는 짓을 꾸준히 해보자고 했고, 그 첫 번째가 <구타유발자>였어요. 그러나 원래 콘셉트 잡는 것이 힘든 음악 감독이기 때문에 두 달을 또 고통스럽게 보낼 수밖에 없었죠. 감독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발상의 전환을 하라고 했던 거 같아요. “우리 영화의 제목이 뭐냐. ‘구타유발자들’ 아니냐. 앞에 두 글자 따서 구ㅌ, 굿 그걸 타악기로 만들어 봐.” 그렇게 던진 거죠. 전 덥석 물었죠. 한국 전통적인 굿의 양식과 분위기, 그리고 한국 타악기를 통해서, 팀파니와 같은 서양의 일반적인 오케스트라에서 쓰는 거 말고 다른 타악을 합쳐서 굉장히 묘한 걸 만들 수 있겠구나, 손뼉을 탁 쳤죠. 먼저 해야 할 것은 타악기를 녹음할 것인가, 미디로 연주할 것인가를 결정했어야 했어요. 꽹과리를 녹음한다고 했을 때, 연주자는 백 퍼센트 내가 요구하는 악센트를 연주하지 못할 거다, 그리고 시끄러울 거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북과 징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장구는 대체 가능할 거 같았지만 꽹과리는 정말 한국적인 악기거든요. 꽹과리를 가지고 녹음을 하자. 그래서 꽹과리를 가지고 분리된 소리를 녹음을 각각 했어요. 딱, 따악. 소리가 다양하게 변화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이런 것들을 다 녹음 한 거죠. 컴퓨터에 샘플러에 넣어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쓰는 거죠. <구타유발자> 하면 오지에서 외로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공포감이 있잖아요. 그것을 표현해주는 악기가 뭘까. 예전에 와인 잔에 물을 찍어서 돌리면 이상한 소리가 나죠. 그릇 가게 가서 서로 다른 음역대의 소리가 나는 유리잔을 다 샀어요. 그걸 녹음실에 가져가서 하나씩 녹음했죠. 그릇가게에서 다 해보신 거예요? (웃음) 네, 그렇죠. (웃음) 그 그릇들로 음계를 만들어서 영화에 쓴 거죠. 테스트를 해봤을 때 반응이 무지 좋았어요. 감독님도 좋아했었고 영화사도 좋아했어요. 아 됐구나. 그다음은 풀린 거잖아요. 마음대로 했죠. 그렇게 음악을 가지고 노는 것들이 많아요. 감독님은 처음 콘셉트를 잡으시면 그다음은 재미있게 작업하시는 거 같아요. 네, 맞아요. 삽입곡으론 오펜바흐 <호프만의 이야기> 중에서 ‘나무숲 속의 새들’과 비제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 김진표의 ‘350초 미친년 추격전’이 오프닝과 엔딩에 쓰였습니다. 선곡은 누구의 아이디어였나요? 선곡은 감독님의 아이디어에요. 오페라는 제가 곱하기 5배수를 (후보작으로) 드렸고, 결정은 감독님이 한 거죠. 그러고 나서 2006년도에 게임 음악을 하셨는데요, 원래 계셨던 게임 회사의 일을 하신 건 아니시죠? 네, 다른 게임회사 음악을 했어요. 제가 예전에 몸담았던 게임회사에서는 딱 한 곡을 썼어요. 그렇게 저를 필요로 하는 회사가 아니었던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10개월 정도만 있었지만. 영화를 하면서 회사를 그만뒀는데 이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영화만 하기에는 한가할 때가 있거든요. 틈틈이 작업 했죠. 지금도 서비스가 되는 게임이에요. <그라나도 에스파다>. 아 그래요? 아까도 메일이 왔어요. <그라나도 에스파다> 로그인 음악 악보 좀 달라고. (웃음) 영화음악가들의 게임 음악 진출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할리우드도 해리 글렉슨 윌리엄스나 브라이언 타일러, 구스타보 산타올라야 등이 <메탈 기어 솔리드>나 <어쎄신 크리드>, <라스트 오브 어스> 등을 맡는 것처럼. 영화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화면에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것이 차이예요. 아, 굉장한 차이인데요? 네, 곡을 많이 쓸 수도 있죠. 완전히 음악적인 구성만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좀 편해요. 다시 게임이나 혹은 애니메이션과 TV 쪽에도 관심을 두고 있는지요? 관심은 여전히 많아요. 우선순위를 보자면 영화음악이 최우선적인 것 같고요. 그다음의 음악들은 만드는 것에 대한 보람을 찾아야 하는 거 같아요. 그것이 돈이건 명예건 음악적인 가치건. 그런 것들이 충족되면 하는데 지속적으로 하려면 뭐든지 음악적인 가치가 보장되어야지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런 점에서 영화는 굉장히 매력적인 거죠. 그리고 박철웅 감독의 < 특별시 사람들 > 음악을 맡으셨어요. 영화는 정식 개봉을 하지 못한 걸로 아는데. 어떤 작품이었죠? 네, 개봉 못 했어요. 타워 팰리스 맞은편에 있는 가장 못사는 동네 (이야기)예요. 거기서 철거를 해야 하는, 그래서 이주를 해야 하는 가족이 해체되고 재결합하게 되는 드라마죠. 4남매 중에서, 남자가 3명이 있는데 일남이 이남이 삼남이예요. 삼남이가 음악을 해요. 노래를 잘하는 아이거든요. 이 아이가 이런 과정을 거치며 음악적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어떤 계기로 하시게 되었나요? <말아톤>과 같은 영화사였어요. 대표님이 추천을 해주셨어요.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하셨어요. “감독님, 왜 감독님께서 이 음악을 하셔야 하는 건가요?” 그때 제가 대답하길, 삼남과 제가 똑같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여기까지 왔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음악을 통해서였으니까. 그런 한 가족의 소망을 제가 음악으로서 지켜내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꼭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개봉을 못 했어요. 많이 아쉬우셨겠어요. 제가 만든 음악 중에서 최고로 잘 만든 음악이었거든요. 음악은 제 블로그에 올려놨으니 들어보실 수 있어요. 그러고 보면 음악감독들이 다 개봉하지 못한 작품들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거 같아요. 이렇게 대중과 만나지 못하는 작품을 볼 때면 기분이 어떤가요. 슬프죠. 먹먹해져요. 만들어 놓고 세상 사람들에게 소개를 못하는 거잖아요. 그 먹먹함이 저뿐 아니라 감독님, 참여한 스태프들 모든 사람이 느끼는 거죠. 슬퍼요. 그나마 저는 자유롭죠. 음악이라도 한풀이 삼아 들려줄 순 있잖아요. 그 다음 작업하신 게, 사극 호러인 <전설의 고향>의 음악이었습니다. 김지환 감독은 호러 마니아로 알려졌는데, 음악적으로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음악적으로는 한국적인 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였어요. 한국적인 것을 배제하자고 하시는 분도 계시잖아요? 사극이란 걸 해서, 국악의 원류를 보여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현대적으로 재해석을 어떻게 해할 것인가. 그 당시 사극 음악에 대한 고민이 최근의 <광해>까지 이어지지 않나 싶어요. 만드는 방법이라든지 기법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메인 테마를 들어보면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쌍둥이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멜로디를 연주하는데, 극 중 소연과 효진이 연상케 합니다. <가발>처럼 자매 이야기이고, 또 역시 반전 아닌 반전을 갖고 있죠. 하지만 <가발>보다 호러적인 사운드에 주안점을 뒀어요. 전반적으로 두 가지 콘셉트를 잡았어요. 정서적인 것과 무서운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는 작곡을 하려 하지 않았어요. 그래야지만 작곡이 되더라고요. 사운드를 수백 가지를 만들었어요. 각각의 사운드를 만들어서 모자이크 붙이듯이 배치를 한 거죠. 음악적 구성을 하며 배치를 하는 방식으로 완전히 스타일을 바꿨어요. 무서운 이야기는 해체와 재결합이에요. 그리고 정서적인 음악은 영화에 충실하려고 했고, 기법은 한국적인 것을 가지고 가되 국악적인 것은 가지고 가지 말자. 그쪽으로 접근을 했고요. 이희승 아우라 엔터테인먼트 대표와 공동으로 작업하셨어요. 어떤 식의 공동 작업이었나요? 싸움이 많이 일어나더라고요. 이희승 대표가 아니라 다른 작곡가가 있었거든요. 한동안은 그래서 공동 작업은 안 하게 됐어요.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있는 거잖아요. 그것을 조율하는 것이 많이 힘들더라고요. 물론 많은 장점도 있어요.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다 메꿔주니까. 음악 감독이 둘이 있으면 음악적 능력이 두 배로 뛰거든요. 혼자 작업했을 때부터 음악이 다양해지고 자유로워지거든요. 그래서 힘들긴 했지만 그걸 알고부터는 공동 작업을 많이 시도하게 되었죠. 이후 < 세븐 데이즈 >부터 ‘씨네노트’라는 팀을 꾸리게 된 건가요? 네, 회사를 만들었죠. 호러적인 스코어와 음향과의 차이가 있을까요? 호러적인 스코어는 음악적 구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호러적인 사운드는 음악적 구성을 제외하고 효과만 노리기 때문에... 제가 봤을 때는, 사운드는 영화 믹싱할 때 하잖아요. 이걸 음악가가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요. 큼지막한 소리들은 제가 만들기도 해요. <가발>에선 머리를 긁다가 알약이 툭툭 떨어지는 장면이나 <전설의 고향>에선 유명한 깨 씬이 있습니다. 기괴한 비주얼들이 있는데, 작업하면서 힘들진 않은지. 전 웃으면서 해요. 전 (무서운 걸) 즐겨요. 만들 때는 다 포인트를 알잖아요. 포인트에 사람들이 반응을 하거나 비명을 지르면 전 흐뭇해져요. 가학적인 사람이죠. 호러영화에 최적화되셨네요. 요즘 다시 하고 싶어요. 작업하지 않는 호러영화들도 잘 보시는 거예요? 그건 안 봐요. 약해요. 서양의 무서운 것들을 몇몇 골라서 보긴 해요. <쏘우> 시리즈, <호스텔>도 좋아하고... 원신연 감독과 세 번째 장편 <세븐 데이즈>를 맡으셨습니다. 원래 연출은 각본을 맡은 윤재구 감독이었다가 교체된 걸로 알고 있는데, 음악 제의는 그 이후에 받게 된 건지. 네 원신연 감독이 저에게 해주신 거죠. 역시 <세븐 데이즈>도 그 전의 모든 영화음악과 다르잖아요. 역시 또 고통 속에 시작했죠. 핵심은 빠른 비트를 보여줄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달라는 거였어요. 레퍼런스는 ‘본’ 시리즈였고요. 정서적인 것은 < 플라이트 93 >이었고요. <플라이트 93>은 봤지만 ‘본’ 시리즈는 한참 있다 봤어요. 음악만 듣고 분석을 해봤는데, 미니멀 음악이거든요. 기법을 보면요. 지속적인 반복을 통해서 감정을 전달하는 거죠. 증폭시키면서요. 미니멀에 대한 감은 제가 있었어요. 공부한 것도 있고, 그 효과를 느끼고 있었던 것도 있었고요. 그러나 이것이 다른 작곡가의 미니멀과 김준성의 미니멀은 달라야 하거든요. 그 점 때문에 그 차이를 찾아야 하는데, 안 나오는 거죠. 그래서 포기했어요. 쉽게 가자, 고 생각해서 몇 가지 콘셉트를 가지고 시작했죠. 일단 리듬부터. 딴딴딴… 332 박자의 변형을 통해 저음에서 보여주니까 그 자체가 어떤 역동감이 생기죠. 두 번째, 나머지 파트의 현악기들도 그렇게 연주하니까 묘하게 긴장감이 생겨요. 음은 하나밖에 없어요. 딴딴딴 딴딴딴.. 구조적으로, 강약의 변화에 따라서 사람들을 달리게 하는 거죠. 불안하게 만들고. 화음은 두 개밖에 없어요. 1도와 6도의 마이너 형태를 썼죠. 화음이 없으니까 관객들은 너무 명확하게 이 음악을 파악하게 돼요. 그래서 이것을 변주하는 느낌을 통해서 관객들이 음악이나 영상에 집중할 수 있게끔 했어요. 그러니까 이 영화만의 독특한 음악이 나왔던 거 같아요. 포기하니까 나와요. 많은 사람들이 <세븐 데이즈> 음악을 인정해주고 좋아하더라고요. 감사하죠. 컷들이 빠르고, 핸드헬드와 주밍에, 대사와 효과도 많아서 음악이 손해보는 부분도 없지 않은 거 같아요. 씬 전반에 걸쳐 음악이 길게 배치되기도 하는데(‘세븐 데이즈’ 같은 트랙은 10분이 넘어간다), 이런 미키마우징을 구성할 땐 어떤 느낌이었나요? 일단은 배우의 행동, 움직임을 봐요. 저게 구조적인 움직임일까, 습관일까 연기일까. 구조적인 움직임은 제가 다 체크를 하죠. <세븐 데이즈> 같은 경우는 맨 마지막에 김윤진 씨가 묶여있는 장면이잖아요. 그리고 정동환 씨가 서류를 불에 던지는 장면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다음 일어서 나가고 뒤돌아보고 하는 장면도 이어지고요. 그런 구성을 다 짜서 중요한 포인트를 타악기로 가죠. 그런데 타악기가 정박으로 가는 게 아니에요. 이 점이 <세븐 데이즈> 음악의 큰 매력인데 전체 음악을 정박으로 가지 않게 썼어요. 전 간헐적이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나오고 싶을 때 나오는 박자라는 거죠. 이것들을 행동할 때 중요한 포인트에 다 넣었어요. 큰 덩어리의 형식은 음악의 형식이 바뀌는 것으로 처리하고. 전체적으로 쌓아나가는 구성으로 해서 긴장도가 누적돼서 폭발하도록 했어요. 십 분짜리 음악은 그다음에도 음악을 만드는 데 어떤 기준이 됐어요. 김미숙 씨가 잡혀갈 때, 엔딩 몽타주에서 자닌토의 ‘Blu YonS Tae’가 선곡되었어요. 제가 2004년에 ‘어느 아침’을 재발매한 적이 있어요. (자닌토가) 거기 음반사 대표님이세요. 거기에 사장님의 음반을 넣고 싶다고 부탁을 했더니 추천을 해주셨어요. 처음 듣고 뿅 갔어요. 약간 명상음악 같았습니다. 네. 발음을 스스로 만든 거예요. 음악성도 굉장히 깊었고요. 그중 2곡을 선곡한 거죠. 미발표 곡이었는데, 개봉한 이후에 (그분) 개인 앨범에 수록되었어요. 윤인호 감독의 <더 게임>은 니이타 타츠오의 <체인지>라는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캐릭터도, 설정도, 세트도 과장된 느낌이 있는데, 어떤 콘셉트를 가지고 시작했는지요? 음악은 촬영과 편집이 다 끝나고 왔어요. 음악 감독님이 교체된 거죠. 전에 하신 분은 모르겠는데. 한 달 안에 끝내야 했어요. <세븐 데이즈>를 하는 도중이 아니었나요? <세븐 데이즈> 끝난 다음에, 시사회 후에 찾아오셨어요. 한 달 만에 해야 한다. 해 달라. 실제로는 50일 정도 걸렸어요. <세븐 데이즈>와 같은 영화사예요. 그래서 하기로 했죠. 저는 판타지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영화사는 “그러면 관객이 안 드니까. 판타지 영화는 한국에서 성공한 적이 드무니까 액션으로 해 달라. <세븐 데이즈>처럼 해 달라.” 그래서 두 가지 버전을 만들었어요. 두 번째 버전이 미니멀한 스타일로 액션감이 있고 긴장감이 있으니까 그 점이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영화사에서 사실은 포기한 작품 중의 하나였어요. 그나마 음악이 바뀌면 좋지 않았을까, 했던 건데 예상보다 관객이 많이 들어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웃음) 불길한 느낌의 오보에, 혼과 스트링, 그리고 묵직한 피아노가 어우러지며 장중한 묘미가 들었습니다. 악마적이기도 하고 드라마틱합니다. 특히나 ‘체인지’라는 큐가 <죽어야 사는 여자> 테마 같았어요. 이 영화는 액션적인 테마는 그리 안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누군가가 몸을 바꾸러 가는 건 아니잖아요. 누군가의 집에 가고, 영향을 받고 다시 가족으로 들어오는 이야기로 생각했어요. 액션은 필요한 부분에서 쓸 수 있지만 중요한 테마는 아닌 거죠. 음악 선택의 기준이… 짧은 시간에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제 주변의 음악 하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죠. ‘체인지’는 제가 아니고 서재영(씨네노트의 직원)이라는 제 친구가 만든 곡이에요. 전체적으로 영화를 보고, 이미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물음을 계속 줘요. 어떤 사람은 코믹으로 보는 사람, 무서운 이야기로, 액션으로 보거나 그로테스크한 걸로 보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걸 고르는 성향이 있어요. 그래서 그걸 처음부터 배치를 하는 거죠. 중요한 장면들을 배치하고, 나머지는 또 다른 구조로 만들어내고 이러면 음악이 통일성과 다양성이 생기죠. 제가 공동 작업을 할 경우 저 자신에 대해 엄격해지는 거 같아요. 안 맞으면 제가 제 곡은 안 써요. 강회장의 전부인 이혜영 과 희도의 삼촌 손현주 씨가 제거되며 희도의 여자 친구가 어렴풋이 사건을 알아차렸을 때 흐르는 ‘더 게임’이란 곡은 7분에 걸친 긴 음악입니다. 시퀀스 자체를 음악으로 묶는 건 할리우드에서 주로 쓰는 경향인데 어떤 부분을 의도했는지요. 역시 이것도 미니멀이잖아요. 아무리 길어도 변주에 따라서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거거든요. 작곡 테크닉이 제일 중요해요. 큰 형식을 잡아놓고 나머지는 조금씩 변하면서 변주를 주는 방식이거든요. 길어도 저는 (그런) 작곡이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씨네노트에서 디지털 앨범으로 최초로 발매된 사운드트랙입니다. 왜 CD 발매를 안 했는지? 디지털 음원 시장의 가능성을 본 건지? M&F가 어려워졌어요. 음반을 내주는 회사가 없어진 거죠. <세븐 데이즈>의 음반은 제가 만들었거든요. 안 팔려요. 그래서 디지털이라도 사람들에게 들려주자. 자료의 공유 차원이라고도 할 수 있죠. 이 뒤로도 한동안 디지털 출시가 이어져요. 그다음이 세 번째 호러 영화로 창 감독의 <고사: 피의 중간고사> 음악을 담당하셨습니다. 사실 말이 호러지 스릴러에 가까운데,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었나요. 맞아요. 가리자. 관객의 눈을 가리자. 관객이 느끼는 것을 유도하자, 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음악이 빠르고 박진감이 넘치는 것을 썼는데요. 너무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16mm 영화예요. 화질이 안 좋아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했을 때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를 따라가도록 해야겠다 했어요. 지루하지 않게. 안 그러면 어떻게 말해야 하나... 발각되기 쉬운? 발각되기 쉽죠. 영화가 굉장히 짧아요. 한 방에 훅 보고 나오도록 해야겠다. 시작부터 해서 어쩔 수 없이 공포적인 사운드를 하지만 중반부터는 달리게 했죠. 호러 스코어에선 역시나 합창(코러스)의 위용이 제맛인데요. ‘피의 중간고사’란 큐에서 바로크적인 분위기와 함께 이런 스타일을 잘 들려줍니다. 가사가 뭘 의미하는지 궁금하네요. 라틴어예요. ‘레퀴엠’이라든지 하는 곡에 많이 나오는 가사죠. 합창단이 부른 건 아니고요. 컴퓨터에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게끔 해서 프로그래밍해서 만들었어요. 속편 < 고사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 >의 음악은 맡지 않으셨어요. 아쉽진 않으셨는지. 네, 영화사가 바뀌니까. 정윤철 감독님도 다른 분들과 하는데... (일동 웃음) 2008년도였는데요. 원신연 감독님이 <태권 브이> 실사판을 준비하셨습니다. 4년 정도 준비하다 중단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혹시 원 감독님의 음악적인 파트너로서 사전 작업 된 게 있었나요? 원 감독님이 얼마나 냉혹하시냐면 그간 세 작품을 쭉 해온 저를 절대로 내정을 하지 않으세요. 똑같은 위치에서 많은 사람의 데모를 받아보고, 제일 좋은 걸 선택하겠다 하셨죠. 그래서 우리가 아는 유명한 음악 감독님들이 데모를 냈던 걸로 알고 있고, 결국 제가 선택됐어요. 근데 영화는 못 들어갔죠. 사전에 준비는 안 하셨죠? 데모를 냈어요. 총 4개를 냈었죠. 그중에서 제 데모가 가장 <태권 브이>와 근접 하다고 하더라고요. <태권 브이>는 故 최창권 씨의 음악이 너무나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그래서 두 개는 그 음악을 기본으로, 나머지 두 개는 새로운 곡으로 만들었죠. 그 유명한 주제가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셨던 건가요? 그 주제곡이 장점과 단점이 있어요. 단점은 현대 영화와 안 맞는다는 거예요. 애니메이션이기도 하고요. 장점은 예전의 향수를 공유할 수 있다, 라는 것이죠. 그걸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가장 힘들었고, 결국 원래 원곡의 이미지를 해체하지 않으면 못쓰겠구나, 하는 판단을 했어요. 빰빠라빰… 하는 <태권 브이>가 처음 시작할 때 나오는 전주 부분은 가지고 올 수 있죠. 하지만 본 멜로디가 나오는 부분부터는 사용하기가 힘들죠. 그런 문제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앞의 금관 테마만 가져와서 중요하게 작업을 했었죠. 얼마나 고통스러웠는데요. (일동 웃음) 원신연 감독과의 첫 만남은 어떻게 만나시게 된 건가요? 아주 오래전 2000년도에 <적>이라는 천만 원 들여 만든 작품이 있어요. 그때 음악 감독을 구하는 과정이었고, 저는 연우무대에서 연극 음악을 하고 있었는데, 김석주 씨라고 연우에 계시던 분이 <적>에 투자하신 거예요. 그분의 소개로 만나게 됐죠. 그 영화를 같이 한 건 아니고요. 개런티 협상에서 실패해서 못했고. 그때 제가 음악 한 번 들어보라고 준 게 있거든요. 필요할 때마다 그걸 단편 작업하시면서 야금야금 그 곡들을 쓰시고 통보해주시는 거예요. 그러다 <자장가>라는 작품을 할 때 저에게 오셨어요. 쓸 만한 곡이 없었거든요. 저에게 특유의 노래가 있었는데요. 그걸 편집해서 보내준 적이 있었죠. < 빵과 우유 >는 음악이 없으니까 제가 필요가 없었고요. 다음 작품이 오랜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작품이 홍지영 감독의 첫 영화 < 키친 >입니다.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키친>은 2007년경부터 진행하던 영화였어요. 2년을 기다렸는데... 처음에는 예산규모가 좀 있었어요. 싸이더스에서 시작했었는데 수필름으로 넘어가면서 예산이 대폭 줄어져 버린 거예요. 예산만 보면 제가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동안 같이 진행한 기간이 억울한 거예요.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리가 더 중요한 것이라며(웃음), 제가 더 지출해가며 연주 예산을 잡았죠. 홍지영 감독의 콘셉트는 ‘빛’이에요. 미술로 따지면 인상주의라 할 수 있죠. 빛을 어떻게 음악적으로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했죠. 전체적으로 꿰뚫는 것은 인상주의적인 것을 많이 차용해서 쓰려고 했어요. 음악에서 인상주의적이라는 건 어떤 건가요? 일단 화성적인 진행 방식이 달라요. 음을 쓰는 방식이 전통적인 작곡 기법보다는 좀 더 음… 두루뭉술한 느낌이 좀 더 있죠. 그러면서도 음악적 구성은 다 가지고 있어야 하고요. 그런데 사실 이 영화가 빛이 다 살아나는 작품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음악까지 인상주의적으로 가면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아진다는 판단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그런 게 준비된 음악 중 한 곡을 빼고는 다 버리기도 했어요. 그 한 곡이 무엇인가요? ‘낯선 정사’ 라는 곡입니다. 한 여자와 두 남자의 동거에 대한 이야기였죠. 쉽게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 아닐 수도 있는데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여지도 있고. 그런 민감한 부분들이 있었는데, 음악은 영화처럼 편안했습니다. 시나리오를 보고서 요구되는 음악들을 다 만들었어요. 회사(씨네노트)에서 작곡가들이 즉흥적으로 피아노 연주회를 했어요. 전 녹음도 하고 연주도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곡들을 영상에 붙여봤어요. 맞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었죠. 거기서 선택하는 과정이었는데요. 4명의 작곡가가 참여를 했는데, 전체적인 색을 맞추는 것이 중요했어요. 원래는 피아노로 만들어진 곡이고, 4명이 다 다르니까. 색채를 입히고 영화적으로 자르고 편집하고 배치하는 작업을 제가 했죠. 4명의 작곡가가 했지만 한 사람이 한 것처럼요. 엔딩 곡으로는 마이큐의 ‘일 년 후’는 어떻게 선곡하게 되었나요. 영화에선 요조가 부른 버전이 엔딩에 흐르는데, 사운드트랙에선 신민아가 부른 버전이 실렸어요. 판권에 대한 문제 때문에 그래요. 영화에서는 허락을 받았지만 OST에서는 허락을 못 받아서 새로 녹음한 거죠. 주지훈 씨가 불어로 부른 ‘사랑밖에 난 몰라’와 신민아 씨가 부른 이 곡 때문에 사운드트랙이 판매가 많이 됐어요. 특히 일본에서 원정을 와서 사가는 경우도 있어서 5,000장을 찍었는데 그게 모두 나갔거든요. 일본 현지에서도 많이 팔렸고요. 배우가 인기 있으니까 잘 팔리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사실 데뷔작이 <말아톤>이어서 이런 감동물이나 드라마가 주류를 이룰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필모를 채우고 있는 건 장르영화가 많습니다. 스릴러나 액션, 호러 같은 장르물. 김한민 감독의 <핸드폰>이나 이정호 감독의 <베스트셀러>, 김홍선 감독의 <공모자들>까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아니면 취향인 건지? 제가 가장 못 하는 거였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했어요. 그래서 <구타유발자>는 남들과 다른 발상으로 시작한 특이한 음악, 블랙 코미디에 대한 도전이었고요. <세븐 데이즈>는 빠른 액션 , 할리우드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에 대한 생각, 거기서는 음악에 대한 확장이 이루어진 거죠. 기존은 오케스트라를 음악이라고 했다면 이제는 소리 날 수 있는 모든 소재들이 음악적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거였고. <더 게임>은 너무나 빨리 만들어서 생각할 틈이 없었고요. 공포영화를 액션영화처럼 표현하면 어떨까 하는 실험을 <고사>에서 했었고요, <핸드폰>에서는 싱크에 대한 개념을 가질 수 있었던 기회였어요. 싱크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완벽하게 배웠죠. 그게 잘 적용된 게 <차우>였어요. <차우>는 배우 움직임을 그대로 음악으로 표현하는데 그게 절묘했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 이후부터 음악이 더 잘 안 들리게 된 거 같아요. 꺼내서 보면 좋은데 영화와 보면 영화 속에 묻혀버리는, 그렇게 된 게 <차우>부터였고요, 그다음에 <베스트셀러>같은 경우는 왜 사운드를 녹음실에서만 하지? 내가 해봐야지. 음악적인 사운드를 실험했죠. 그다음 <심야의 FM>같은 경우는 일렉트로닉한 사운드를 음악적으로 가지고 오면서 영화의 극한을 보여주는 쪽으로 생각했었죠. 영화마다 목적과 콘셉트가 다 다르네요. 네, <심야의 FM>까지 하고 나니까 이제 공부 다 끝났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까 하셨던 이야기 중에서 <핸드폰>이 싱크에 대해 큰 의미를 두셨다고 했는데, 영화의 어떤 면 때문이었는지요? 감독님께서 예전과는 다르게 촬영 내내 음악을 들려주면 너무나도 유쾌하게 웃다가 가셨어요. 그런데 편집을 끝내고 나서 저를 때려잡는데 그 개념이 싱크였어요. 음악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싱크가 안 맞는다. 저는 큼지막하게 봤다면 감독님은 디테일하게 봤던 거죠. 그 정보를 조금이라도 빨리 주셨으면 다 했을 텐데. 저를 가장 때려잡으셨죠.(웃음) 그다음부터 싱크는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됐어요. 이중에서 <베스트셀러>만 디지털 음원으로 공개되었고, <핸드폰>과 <공모자들>은 음원으로도 발매되지 않았습니다. <핸드폰>은 제가 정리를 못 했어요. 끝나고 난 다음에 OST 정리할 여유가 없었어요. 당시에는 내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제 사이트에 모두 공개해놨어요. <공모자들>은 그때 음저협과 영화사와의 마찰이 있을 때였어요. 그때 딱 걸린 거죠. 내면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내면 저작권 청구를 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눈물을 머금고 못 내게 됐어요. 그게 편법으로 풀리게 된 게 <광해>때 부터였어요. <광해>는 어떻게 하게 됐냐면 누가 음저협에서 전화가 온다면, 누구 곡입니까, 하고 물어보게 만들자. (공동 작업이었기 때문에) 제가 안 만들었습니다. 모그가 했습니다. 모그 감독은 김준성 감독님이 했습니다. 하면서 서로 떠넘기기를 하자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웃음) 디지털 음원은 CD와 달라서 공개 시 제약이 없는 거죠? 작곡자가 작업을 하고 공개를 하겠다 하면 되는 건가요? 그래도 영화사와 계약은 따로 해야 해요. <공모자들>은 인물(조윤희나 최다니엘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할 땐 스트링이 부각되고, 임창정, 조달환, 오달수 등의 캐릭터에선 일렉 기타가 두드러집니다. 악기의 선택이 캐릭터를 어떻게 묘사하고 활용하는지요. 장르 성격에 따라서 만약에 영화를 클래식으로만 하게 되었을 때, 물론 개별적인 주제들이 있어서 분석을 할 수는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관객들에게는 한 가지로 들리거든요. (서로 다른 악기군을 활용해 배치하는 것이) 장르가 다양한 두 개의 복합장르라 한다면 융합되고 흩어지고 따로 나오기도 하고 하면서 다양한 심상을 보여줄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배치를 했어요. 신정원 감독의 < 차우 >는 미국 로케이션까지 감행한 대작이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자주 보이는 크리쳐 액션물을 떠올렸는데, 실상 영화를 보면 조금 당황스러운 유머가 촘촘히 배치된 스릴러에 가까웠어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이런 독특한 영화가 나올 거라 예상했는지? 이것도 제가 막판에 들어간 영화예요. 제가 막판에 들어가면 이상하게 영화가 잘 되더라고요. (웃음) <더 게임>도 막판에 한 달 남겨놓고 들어갔잖아요? <고사>도 원래 제가 하던 음악이 아니었어요. 우리 회사의 다른 작곡가가 하던 거였는데, 몸이 아파서 제가 대신하게 됐죠. 그 영화도 잘 됐잖아요. <차우>도 그랬고 < 연애의 온도 >도 그랬어요. 이 영화는 음악 감독이 선택되지 않은 상태에서 편집까지 다 끝났죠. 그래서 그것도 한 달 반 두 달 만에 끝냈어요. <차우>는 시나리오를 못 봤어요. 편집본을 본 게 처음이었죠. 애초에 이런 영화인지는 알고 계셨던 거네요? 처음에는 제목만 알던 영화였죠. 그런데 처음 편집본을 보고나니 과장을 하지 않고 솔직하게 음악으로 접근하면 실패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 콘셉트는 과장이다. 멧돼지가 귀엽게 나오는데, 이 멧돼지가 무섭게 보일 수 있도록 하는 과장을 해야 한다. 언밸런스함이 핵심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쓰는 거죠. 음악에도 깨알 같은 유머가 다 들어가 있어요. 그 거대함에도. 묻혀서 잘 드러나지 않는데... 이번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차우> 음악을 듣다 보니 음악은 의외로(영화의 코믹한 느낌과 달리) 진중하고 박진감 넘칩니다. ‘멧돼지 습격’, ‘돼지 사냥꾼’, ‘마을 회관’, ‘차우의 추적’, ‘멧돼지 잡기’ 등 큐들은 박진감 넘치고 할리우드 스코어 같은데요, 그런데 마을의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던져주는 ‘삼매리 사람들’, ‘이장님 말씀’ 같은 곡과 대비돼 효과가 크게 느껴졌어요. 일단 두 가지 콘셉트였어요. 블랙 코미디와 덩치. 블랙 코미디는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음악이 안 나와요. 뒤통수를 쳐야 하는 음악이어야 했던 거예요. 덩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야지만 나오죠. 그래서 정확한 오케스트레이션을 해줘야 하고요. 나머지는 편법으로 변칙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거죠. 이것의 밸런스를 맞추는 게 어떨까, 생각해봤는데, 밸런스를 맞추게 되면 의도가 뭉개질 거 같아요. 그래서 그 둘을 개별적으로 놓자, 라고 생각했죠. 덩치를 만드는 음악에는 제가 주력이 되어 있고요, 블랙 코미디 적인 음악은 다른 사람을 선택했어요. 그래서 (씨네노트의) 서재형 작곡가가 작업했어요. 엔딩 크레딧을 보면 80년대 할리우드 영화처럼 배우들이 나와 포즈를 잡아요. 그때 흐르는 테마도 인상적입니다. 8~90년대 팀 버튼 영화에 나올 법한 사운드더라고요. 네 맞아요. (관객들이) 영화 보고서 무섭게 봤던 기억보다는 재미있게 영화를 보고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전체적인 영화의 색을 봤을 때 블랙 코미디의 음악이 뒷부분에 들어가면 재밌겠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그때까지 계속 달리거든요. 덩치로 밀어붙이는데. 약간 발상의 전환을 통해 끝을 맺고 싶었죠. 그래서 서재형 작곡가에게 부탁했어요. 전 그런 걸 잘 못해요. (웃음) 전 무겁고, 진중하고,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그런 것들을 주로 하죠. 그러고 보니 감독님 필모에 코미디가 거의 없는 거 같아요. 예전에 < 동갑내기 과외하기 2 >를 했었어요. 그런데 중간에 짤렸어요. (웃음) 음악이 너무 슬프대요. 그래서 나중에 다시 (제가 만든) 음악을 들어봤더니 역시 슬프더라고요. 짤릴만 하구나… 그다음 민규동 감독의 < 끝과 시작 >은 < 오감도 > 프로젝트에서 파생된 작품입니다. 장편으로 늘려서 2013년에 다시 한 번 개봉했는데, 국내에서 이런 경우는 드문 편이죠. 음악적으로는 어떻게 작업을 했는지요? 단편과 장편 편집 때 다시 후반이 이뤄진 건가요? 아니요. 민규동 감독이 7회차에 촬영을 다 해서 만든 작품이 장편이고, 그걸 줄인 게 단편이었죠. 전 두 개를 다 준비했어요. 처음에 작업한 건 단편. 단편을 토대로 해서 장편까지 다 갔죠. 2009년에 그 작업이 다 이루어진 거네요. 작업이 다 끝나고 개봉만 2010년으로 미뤄진 거군요. 네 맞습니다. 음악이 마치 에로틱 스릴러 스코어 같아요. <오감도> 자체가 에로스 프로젝트이긴 했는데, 제리 골드스미스의 <원초적 본능>이나 알란 실베스트리의 <가면의 정사>가 떠오릅니다. 특이했던 거 같아요. 신디 사운드에, 스트링의 활용이 그러한 스타일이었는데요. 어디에 초점을 맞추셨는지요. 판타지죠. 영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성격이 에로보다 판타지 쪽에 더 가깝기 때문에. 판타지를 낼 수 있는 악기군이 따로 있어요. 첼레스타, 비브라폰, 비슷하지만 판타지에서 조금 멀어지는 피아노, 판타지에서 가장 멀어지는 스트링까지. 그다음 신디사이저 소리가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거든요. 그건 판타지를 유지하려 함이었어요. 그다음 화음이 거의 안 바뀌죠. 화음이란 게 바뀌게 되면 음악으로 빠져들기 쉽기 때문에 판타지에서는 화음을 안 바꾸는 게 좋아요. 그렇게 준비를 해서 멜로디를 만들고 편곡을 다시 시작하게 된 거죠. 엔딩에 흐르는 곡은 휘루 1집에 실린 ‘Dark Sun’을 개사한 ‘네가 오면’이란 곡입니다. 감독님께서 직접? 민규동 감독님께서 개사하신 거예요. 그 곡 선택을... 제가 드렸던 곡 중에서 선택하신 거죠. 굉장히 쿨하신 분인 줄 알았어요.(웃음) 선택도 잘해주시고 OK도 잘 내주세요. 그게 깨진 게 <내 아내의 모든 것>이었죠. 엄청나게 섬세한 사람이었구나, 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다음이, 앞서 소개한 < 더 테너 >의 김상만 감독과 처음 작업한 영화가 <심야의 FM>이었습니다. 굉장히 다양한 경험을 한 감독님인데, < 공동경비구역 JSA >과 < 해피엔드 > 미술감독, 최호 감독의 < 사생결단 >에선 직접 미술/음악감독을 했고, 전 ‘허벅지 밴드’ 멤버이자 현재 ‘슈퍼스트링’에서 베이시스트를 맡고 있기도 하죠. 이렇게 음악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이라면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아니요, 더 편해요. 디렉션이 굉장히 명확하세요. 그런 장점이 있어요. 대체로 저를 선택한 기준은 기존의 전 작품들을 보고 음악의 성향을 보고 이미 선택한 거였기 때문에 그건 문제가 안 되는 거고요. 결국 연출의 의도와 음악의 의도가 일치하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에, 그렇게 작업하면서 <심야의 FM>은 몸은 힘들고 정신도 힘들었지만 작업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트러블은 거의 없었어요. 대화가 정말 잘 통했어요. 라디오 영화음악이 주요 배경으로 나오는데, 라디오 영화음악을 실제로 많이 들었었는지? 안 들었죠. (웃음) 그 때문에 수록곡이 굉장히 많아요. <카사블랑카>의 ‘As time goes by’, <피아니스트>에서 삽입된 슈베르트의 곡 ‘Schubert Trio en Mi bemol majeur opus 100 D.929/Andante Con Moto’, <볼륨을 높여라>에서 레너드 코헨의 ‘Everybody Knows’, <택시 드라이버>에서 버나드 허만의 ‘Betsy in a White Dress’, <스팅>에서 나온 Scott Joplin의 ‘The Entertainer’ 등의 영화음악은 물론, 포미닛의 ‘I My Me Mine’까지. 저작권을 살 수 없으니까, 음원은 못 사겠다는 생각이 들어선 지 <스팅> 주제음악도 음원을 새로 녹음을 했고요, 슈베르트의 곡도 새로 연주해서 녹음했죠. 노래 곡만 원곡을 사오는 거고 노래가 없는 연주곡은 똑같이 다시 만들어요. 감독님이 다 선곡을 하시는 건가요? 아니요, 전 그런 권한이 없죠. 시나리오 때부터… 시나리오에는 더 많은 곡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저와 상의하면서 많이 뺐죠. 이 곡들이 다 필요한가. 어차피 노래를 사기로 결정하면 촬영 전에 예산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다 문의를 해보게 되죠. 그런데 이 곡 이 곡은 빼도 되겠다 싶다고 하면 감독님도 고민하시다가 예산 측면뿐 아니라, 길이나 극의 구성적인 면에 고려해서 빼게 된 곡들이 있어요. 두세 곡 정도가 날아 갔죠. 연주만 새로 하는 경우도 저작권료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 않나요? 저작권료를 내지만 음원에 대한 사용권을 안 내도 되죠. (결국) 반값이 되는 거죠. 슈베르트 곡은 저작권료가 없는데 음원을 쓰게 되면 음원료가 나가는 거잖아요? 그것도 아까워서 연주를 하면 내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그리고 슈베르트 나올 때 나오는 음악이 슈베르트 음악과 한 세트에요. 그걸 다 계산 하고 만든 거거든요. ‘As time goes by’ 가 흐를 때 스코어의 배치도 그랬던 거 같아요. 음향처럼 확 나왔다가… 미리 감안해두고 배치를 하신 건가요. 네 맞아요. 슈베르트 음악이랑 ‘As time goes by’와 조정이 똑같아요. 성격은 좀 다르죠. 얘가 올라가기도 할 때 자빠트리고, 내려갈 때 음악이 확 올라가고, 그런 음악적인 재미가 있어요. 만드느라 죽는 줄 알았어요. (웃음) 만들면서... 내가 액션적인 스릴러를 이제는 잘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그냥 음악이 아니라 음악적인 계산과 배치가 이뤄져야 하는 거죠. 네 그렇죠. 뚜렷한 메인테마를 잡기보단 긴장과 효과에 주력하셨던 것 같습니다. 스트링 위에 일렉트로닉한 소리들(음향/효과)이 가득한데. 감독님의 주문은 어떤 것이었나요. 네. 사운드적인 것이 테마였어요. 감독님의 주문은... 음,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그냥 해달라고 하신 거 같아요. (자신도) 음악감독이었기 때문에 주문을 해도 잘 안 먹힌다는 걸 아시겠죠? 그냥 선택하시겠다고 한 주의였던 거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제가 콘셉트를 제시한 거죠. 일렉트로닉이 전작에 거의 없었거든요. 감독님은 (그거에) 만족해하셨는데, 제작사의 다른 분들은 불안해했죠. 뭐냐면, 첫 템프 트랙을 제가 만든 걸 붙이거든요. 기존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음악은 사운드 음악성 다 최고잖아요? 이걸로 템프 트랙에 붙이지 않아요. 전 거칠고 사운드는 개판이지만 제가 현재 작업 중인 것으로 붙여요. “음악적 구성을 이런 식으로 할 겁니다.” 그렇게 해오면 김상만 감독님은 음악도 해보셨기 때문에 이 음악들이 어떻게 바뀔 질 알잖아요? 그런데 다른 대표님들은 그걸 모르죠. 그분들을 만난 자리가 있었는데, 개봉 시기가 첫 미팅 후 한 달 10일 뒤였어요. 제가 그랬죠. “개봉을 최소한 두 달 후로 미뤄 달라. 이 작업은 이제부터 시작인데, 지금 붙여놓은 음악으로 판단하지 말라. 다음 왔을 때 서너 곡이 바뀌어 있을 것이다. 첫 곡부터 끝 곡까지 순서대로 작곡하기 때문에, 이것이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좋을 거 같다. 기다려 달라”, 이런 이야기를 하며 술을 먹었더니 안 자르더라고요. 그다음에 왔을 때 4곡을 들려드렸어요. 그랬더니 안 자르더라고요. 원 없이 작업을 했죠. 엔딩 곡으로 쓰인 ‘Idols of the radio’은 김 감독님이 직접 ‘슈퍼스프링(혹은 김상만 감독)’에게 의뢰한 곡이라 들었습니다. 감독님이 직접 하겠다고 하신 거예요. 그래서 영화 전반적인 사운드 느낌과 많이 달라요. (웃음) 엔딩곡은 자신의 밴드의 음악이 올라오길 원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죠. 작업을 하면 사람마다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이 있잖아요. 감독님께는 그게 그 순간이었다고 봐요. 전 기꺼이 응원했죠. 민규동 감독과 두 번째로 작업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노희경의 동명의 드라마가 원작이었습니다. 원작을 보았는지요? 안 봤어요. 원작을 보면 원작의 느낌을 제가 받을까 봐, 봤다고 얘기하지만 절대 안 보는 편이죠. 정통적인 신파 멜로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었나요? 아니 반대로 어떤 지점을 피하려 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일단 울리지 말자예요. 울리면 큰일 난다. 음악은 최대한 담담하게 표현하자. 슬플 때 음악은 모두 장조예요. 상황에 대한 음악은 단조고. 이것은 신파나 슬픈 영화를 할 때 제 기본적인 콘셉트이기도 해요. 그 때문에 영화가 갖는 성격은 고급스럽게 변해요. 그 자체가 감동으로 느끼게 되죠. 슬퍼서 운다기보다는 감동 받아서 울게끔 만드는 게 목표잖아요. 그래서 그 기억을 계속 가져갈 수 있도록 되는 거죠. 사운드트랙은 디지털 음원 발매 외에 초회 한정 DVD 번들로 포함된 채로 발매되었습니다. (뒤에 나온 <내 아내의 모든 것>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공개 형태가 따로 CD로 발매되는 것보다 장점이 있는지. 영화사에서는 OST 발매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죠. 이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죄다 연주곡이니까요. 그래서 안 만드는 거죠. 디지털로만 되는 건데, 나중에 DVD가 나오게 되면 패키지를 통해 가격을 더 받을 수 있잖아요. 슬픈 일인데. 그렇게 해서 들어간 거죠. 그다음에, 민규동 감독과의 세 번째 작품 < 내 아내의 모든 것 >은 거의 필모 최초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였습니다. 그 작품의 목적도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관객이 원하는 곡들을 주체적으로 적용하자라는 거였어요. 이선균 씨의 음악보다는 류승룡 씨에 대한 음악을 정교하게 많이 하자, 선균 씨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영화를 살리려면 류승룡 씨가 스타가 돼야 한다. 그래서 굉장히 과감한 라틴음악들을 배치해 버리는 거죠. 진짜 카사노바처럼 보이도록요. 첫 등장부터가 이상하지 않아요?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사운드가 가득해요. 스패니쉬의 플라멩코나 맘보, 샹송에 재즈, 팝까지. 그게 월드 음악이잖아요. 영화에 대한 저의 콘셉트에요. 처음에 박준호 PD님이 감독님과 오셨어요. 이야기를 하다가 월드뮤직으로 가자, 그랬어요. 감독님도 좋은 거 같다, 하셨고. 그래서 그걸 차근차근 준비를 한 거죠. 너무나 많은 곡이 필요했었고요. 두 번째 목표는 2년 반, 3년 반을 같이 고생한, 데뷔는 두 작품으로 했지만 이름은 유명해지지 않았던 이진희 음악감독에 대한 배려예요. 이 친구가 이 영화를 하면 주목을 받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분명히 이야기를 했어요. “이걸 하면 넌 독립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네가 이걸 최초의 작품이 되게끔 열심히 해봐라. 나는 곡을 안 쓸 거야. 네가 다 써라.” 그렇게 했어요. 이진희 음악감독이 거의 천재적인 면이 있는 거 같아요. 그 친구는 정말 천재예요. 기존의 음악감독들이 정말 많잖아요. 제가 알고 있는 음악감독들을 다 뛰어넘는 천재예요. 놀이동산에 쓰인 샹송 ‘Je I’aime plus que tou’와 집에서 추던 춤곡이자 엔딩에 흐르는 맘보 ‘Embrasse-moi’ 모두 기존에 있는 곡이 아니라 이진희 감독의 창작이었더라고요. 돈이 없기 때문에 (웃음) 만들어야 해요. 배치는 제가 다 했지만, 임수정의 성격을 다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 영화 초반 임수정이 나오는 장면에서 기타음악이 나와요. 그런데 음악을 빼버리니까 임수정 캐릭터가 부정적으로 보이는 거예요. 근데 음악을 붙여놓으니까 임수정의 성격으로서 배치가 되어버린 거죠. 관객들이 이해할만하게 된 거죠. 히스테릭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격으로 보게 되는 거죠. 그게 음악의 역할이었죠. 그때 알았어요. 아,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얘는 성격이 이러니까 이렇게 보세요, 이렇게 제시를 해야 하는 거구나. 류승룡 씨 나올 때는 무조건 대놓고 시작하는 거죠. 그러니까 영화가 더 재밌어졌어요. 제가 스스로 싱크 대마왕이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로 깨알같이 한 게 있는데요, 어떤 장면에서 음악이 딱 일부러 끝나게 만든 거예요. 그럼 사람들이 웃어요. 되게 재밌었어요. 음악적인 포인트로도 웃음을 전달할 수 있어요. 비비드(박성희, 정아영, 신아름)라는 그룹이 웬만한 곡들을 많이 불렀어요. 영화사와, 음반사와의 상업적인 선택이었죠. ‘장성기의 세레나데’도 인상적인데요, 독자적인 스코어처럼 활용되다 동시에 장성기가 부르는 들국화의 ‘매일 그대와’ 반주가 되며 섬세하게 다가옵니다. 어떻게 선곡하게 된 건가요. 감독님의 선곡이에요. 하지만 음악 사용 방법은 제가 선택하죠. <키친>에서도 주지훈 씨가 노래할 때 나오는 음악이 서로 다른 음악이거든요. 이를 절묘하게 묶는 건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도 그런 장면이 나와요. 심수봉의 노래였죠. 다른 건데 같게 만드는.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하나를 보면서, 배우의 노래를 들으면서 즐기지만 깊은 정서를 또 가지고 가니까 레이어가 하나 더 쌓이는 거죠. 그래야지만 장성기의 허세가 드러나는 것도, 장성기의 진실이 증폭되는 것도 가능한 거죠. 다음에 < 광해 >를 하셨습니다. 모그 음악감독이 먼저 작업하던 프로젝트라고 들었습니다. (저번 모그 인터뷰에서 듣기는 했지만)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모그 감독이 저를 속였어요. (일동 웃음) 저의 전작들을 다 들어보고, 김준성 음악감독에게 맡기면 되겠다고 생각했나 봐요. 그래서 찾아왔어요. 할리우드(라스트 스탠드)로 가야 한다. 예산까지 다 넘겨주고 갈 테니까 해 달라. 그래서 이게 왠 떡이냐, 저 사극을 좋아하거든요. 기분 좋게 하려고 했는데. 영화사가 저를 잘 몰라요. 사실 지금도 저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한 개수에 비해서 제 음악을 듣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로 평가하는 게 있거든요. 저 자신이 저평가 된 음악감독인 거죠. 그래서 오케스트레이션을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걸로 평생을 먹고 산 사람인데.(웃음) 영 미덥지 않았나 봐요, 회사는. 그래서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모그 음악감독이 잡더라고요. 제가 다른 외압을 다 막아줄 테니 감독님이 음악을 해주세요. 그래서 하게 됐죠. 조건을 걸었어요. 전체적으로 음악은 다 할 테니 모그 감독은 이 순간부터 빠져라. 더 쓰지 말아라. 였어요. 그래도 곡을 써서 보내요. ‘사월의 테마’ 같은 곡이요.(웃음) 그렇게 작업을 시작하게 됐죠. 제가 곡을 만드는 것과 모그 음악 감독이 만든 것을 일관성 있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했어요. 많은 분들이 오프닝 음악을 좋아하는데, 오프닝 음악은 영화와 별개의 음악이거든요. 테마가 아니에요. 넣고 싶진 않았는데, 워낙 추창민 감독님이 오랫동안 들어왔던 음악이라 붙일 수밖에 없었던 거죠. 편곡에만 2주가 걸렸어요. 그만큼 어려웠던 곡이에요. 그다음부터 쭉쭉 진행시켰죠. 앞의 코미디 부분은 몇 개 빼고는 음악이 다 되어있었고, 편곡을 하고 비어있는 부분을 채워 넣는 작업을 했어요, 뒷부분은 아예 없었고요. 거기는 제가 다 만들었죠. 한 사람이 만든 것처럼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키친> 이후 오랜만에 사운드트랙이 CD로 발매되었습니다. 원래 그것도 영화사에서는 못 내주겠다고 했던 거예요. 내달라, 좀 강력하게 제가 말했죠. 음저협과 협상도 되지 않았냐. 그래서 내게 됐죠. 앨범이 좀 팔리지 않았나요? 순식간에 절판됐더라고요. 거기까진 제가 잘 모르겠어요. <공모자>부터 제가 음악 믹싱을 시작했어요. 보니까 믹싱기사 뒤에서 제가 계속 떠들고 있어요. 그럼 믹싱기사는 제 말을 이해하고 제가 하란 대로 똑같이 하거든요. 그럴 바에야 내가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태성 음악감독을 만났는데 직접 하세요 그렇게 말을 했고요. 제가 직접 하는 게 빠르겠다 싶어서 했는데, 의외로 괜찮은 거예요. <광해>도 그렇게 했고요. 사운드 좋다는 칭찬도 많이 받았어요. 다음 작품이 노덕 감독의 < 연애의 온도 >였습니다. 씨네노트의 팀 작곡가들의 다양한 참여한, 어떻게 보면 슈퍼바이저의 개념으로 작업을 하신 거 같은데요. 어떻게 조율하고 작업했는지 궁금합니다. 음악감독의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다시 고민해 봤죠. 음악감독이 왜 필요하지? 작곡가가 필요한 거 아닌가? 좀 다른 거 같아요. 모그 감독에게 할리우드 시스템을 좀 들어봤거든요. 거기에는 템프 트랙을 붙이는 에디터가 있고 영화사의 입김이 강한 사람, 영화사를 이해하는 사람이죠, 작곡가가 있고 예술가잖아요, 오케스트레이터가 따로 있더라고요. 영화를 구현하는 사람이잖아요. 이 세 사람의 개런티가 똑같대요. 놀랐죠. 음악감독이 다 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한국에서는 어떨까. 뮤직 에디터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조영욱 음악 감독이잖아요. 오케스트레이터로 유명한 사람 별로 없어요. 그런 점에서 제 장점이 뭔지 봤을 때, 전 에디팅을 잘 하는 거 같아요. 남의 음악이 아니고 제 음악으로 템프 트랙을 까는 일이요. 그건 표절에 절대 걸릴 수가 없어요. 제가 편곡을 할 때도 음악 자체의 완성도만 힘쓰면 되지 뭐랑 비슷할까 하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전체적으로 구조를 만들어나갈 수 있잖아요. 그래서 뮤직 에디팅은 장점이 많은 것 같아요. 영화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음악감독이잖아요. 작곡가들은 전반기에 일을 다 해놨기 때문에 후반에는 다 놀아요. 오케스트레이션은 제가 계속 해왔고. 여러 분야의 편곡도 가능하니까요. 다양한 심상을 보여주는 쪽으로 접근을 하는 거죠. 일단은 <연애의 온도>도 편집본을 받은 거잖아요. 작전을 세웠어요. 큰일 났다, 시간이 짧으니까.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성공이 있었기 때문에 좀 특이하게 가자. 아코디언을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재즈나 월드뮤직을 똑같이 가져가보자. 이렇게 제가 변했어요. 매번 실험을 하던 사람이 이젠 실험을 안 해요. 안전빵. (웃음). 나머지 깊은 정서에 대한 부분은 국적 상관없이 영화에 맞는 걸로 가자. 클래식 적인 음악이라기보다는 팝적이고 기타도 많이 쓰는 대중적인 성격으로 접근했죠. 그게 대중적인 성공과 결부될 수 있을 거 같았고요. 그렇게 준비했고, 우리 작곡가들에게 작업시켜서 완성했어요. 롯데에서도 만족했어요. 롯데에서 하는 다음 로맨틱코미디 작품을 그때 열심히 했던 정교임 음악감독이 데뷔하게 됐어요. 씨네노트에서 작업하다가 독립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요. 이진희 음악감독처럼 잘 된 경우고 있고요. 그전에는 잘되기까지 지원을 해줬는데 이젠 기준을 낮춰서 데뷔하게 될 경우 필요하면 나가는 걸로도. 꼭 데뷔해도 나가고 싶어 하지 않은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씨네노트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죠. 첫째는 월급제거든요. 예술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안정성을 주기 위해 월급제로 운영해왔는데, 영화 자체가 평균적이지가 않잖아요. 일이 있다가도 없기도 하고. 힘들 땐 또 힘든 거죠. 사업으로 되는 건 아니구나 하는 걸 알게 됐어요. 작년에 정교임 음악감독이 <캐치 미>로 데뷔하고, 나윤식 음악감독이 <살인자>로 데뷔하고, 지금은 데뷔 안 한 한 사람 남게 됐죠. 방은진 감독의 < 집으로 가는 길 >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 소개된 실화를 다룬 작품인데요, 어떤 콘셉트를 가지고 접근했나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과 같은 콘셉트였어요. 슬픈 것에 슬픈 음악을 하지 말자. 그래서 슬픈 장면에서는 장조, 사건에서는 단조가 긴박하게 나오죠. 그리고 제일 중요한 콘셉트는 전체 음악에서 뭔가 걷는 것 같은 느낌을 만들어주자. 걷는 것은 딴딴딴딴 같은 음을 계속 반복해 주는 게 있어요.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의 소망을 걷는 것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거죠. 정제된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통해서 배우의 생각과 손짓과 모습들이 관객들에게 잘 보이게 하는 거죠. 음악으로 하여금 가리고 메꾸는 것이 아니라 배우가 워낙 연기를 잘 하니까, 그것을 조금이라도 받쳐주게. 그리고 이중적인 의미가 다 있어요. 이쪽으로 보면 슬프고, 이쪽으로 보면 아름답고, 그처럼 배우의 다양한 면을 보게 되고 관객들은 연기나 연출에 있어서도 슬픔이 아닌 감동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했던 거죠. 그 의도가 성공했던 거 같아서 만족해요. 오랜만에 피아노가 메인으로 나서는데, 어떻게 보면 데뷔작이었던 <말아톤>을 연상케 하는 지점도 있습니다. 네. 제 친구인 피아니스트 천현정이 연주했죠. 대학교 때 제가 작곡한 곡을 연주해줬던 동기 세 명웰옳퓸틈絿뵈??됐는데요, 그 중 한 명인 김계화가 <말아톤>을 연주했고요, 현정이가 이번 <집으로 가는 길>을 연주한 거고요, 또 한 사람은 아직 대기 중이에요. (웃음) 각각 프랑스에서 절망하고 고수는 한국에서 절망감을 느끼잖아요. 피아노가 주는 감정이 절망에서 오는 차가운 느낌과 희망적인 부분까지 이중적인 느낌을 잘 포착했뇩염?같습니다. 직접 스트링과 혼 등 오케스트레이션을 다 하시는 데 이런 부분들이 힘들지는 않은지. 그건 제 사명이죠. 영화를 잘 만들어야 하는. 늘 힘들죠. 잠을 잘 못 자요. 영화 막판이 되르오訪怠챨@?하루 16시간씩 되거든요. 진짜 몰입해서 해요. 계속 부담감도 있고요. <용의자>의 밀밭 나오는 마지막 장면 있잖아요. 거기 피아노 음악이 끝까지 해결이 안 됐어요. 얼마나 고민이 많겠어요. 잠을 자다 깼어요. 당장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앞에 앉아서 녹음을 했죠. 됐다!! 했죠. 잠자면서 악상이 떠올라요. <전설의 고향> 메인 테마도 그랬어요. 원신연 감독과 네 번째 작품이자 가장 최신작인 < 용의자 >를 하셨습니다. ‘본 시리즈’와 <다크 나이트> 시리즈의 음악을 떠올리는 관객들도 많았어요. 존 파웰이나 한스 짐머의 이런 오스티나토가 현재 할리우드 스코어의 유행이기도 합니다. 감독님이 직접 레퍼런스를 제공했다고 들었어요. 네. 개봉하기 2년 전에 오셔서 “나 이거 하고 싶어”, 딱 던져놓고 가셨어요. 이걸 들었을 때, 딱 할리우드에서 유행하는 음악인 거거든요. 그리고 정서적인 음악은 일반적인 오케스트라의 음악으로 하고 싶지 않으신 거 같았어요. 화음도 원치 않은 것 같았고요. 계속 그 상태로 2년 동안 고민한 거죠. 아무리 해도 할리우드 영향을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걸 표현해낼 수가 없어요. 더 효과가 좋은 것을 찾아내지 못한 거죠.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영화음악 작곡가들이 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미니멀 음악에서 파생된 형태인데, 70년대 말에 필립 글라스가 미니멀에서 출발했고, 90년대에 전자음악으로 갔다가 2000년도에 존 파웰이 ‘본’ 시리즈에서 시작했고, 그걸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던 한스 짐머가 해낸 게 < 다크 나이트 >였고요. 이것이 퍼지고 퍼져서 지금이 된 거 같아요. 유일한 방법은 결국 사운드적인 접근이에요.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면서 벗어날 순 있지만, 리듬을 구성하는 방법은 어쩔 수가 없어요. 그게 한계죠. 어떻게 해야 하느냐, 했을 때, 가장 기본적으로 뚝딱뚝딱 선율을 그냥 만드는 수밖에 없었어요. 여러 가지 음색적인 소리를 조합을 해서 깎아내면서 <용의자> 자체의 색을 만들었는데, 그 자체도 (스타일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요. 반성만 해서 될 수는 없거든요. 숙제죠. 단기간 내에는 되기 힘들 거 같아요. 감독들이 이런 레퍼런스가(혹은 템프 트랙들이) 때론 작곡가의 아이디어나 창의적인 부분을 제약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다행히도 저에게 템프 트랙을 주는 경우는 제가 보내주는 음악뿐이거든요. 그게 이제 전통이 됐나 봐요. 모두 제가 보낸 음악으로 붙여 왔어요. 최근 <연애의 온도>도 물론 제가 붙이는 것과 너무 다르지만, 제가 보내드린 것만 가지고 붙여 오셨더라고요. 그게 좋으신 가봐요 이젠. 처음에 제가 설명을 했어요. 남의 음악을 붙여오면 그걸 따라갈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더 힘들다. 그래서 제 음악을 붙여주고, 만약 없으면 그런 식(다음 사람의 음악을 붙이는 것)으로 해달라고 하죠. <용의자> 때 원신연 감독님이 주신 레퍼런스가 뭐였나요? 죄다 ‘본’ 시리즈, 그리고 <다크 나이트>였죠. 원신연 감독님과의 호흡은 어떠세요? 이젠 4번째 작품을 해서인지 <용의자>가 그 전작 3개의 작품들에 비해서는 고통이 덜했어요. 그러나 23개월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작업했거든요. 고통의 총량이 이만큼이라면 그게 길게 나눠서 온 게 아닐까. (웃음) 이젠 서로가 서로를 알게 됐다고 할까? 익숙해졌기 때문에 더 다른 걸 추구하게 되는 것도 있어요. 아마도 감독님이 처음 작업 시작하고 지금까지 남은 사람이 저밖에 없을 거예요. 이 전통을 유지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제가 게으르면 안 돼요. 절대로. 작업과정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영감을 얻으시나요? 계산을 하죠. 이 영화는 이렇게 돼야겠다. 그 틀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오게 하죠. 얘는 이렇게 얘는 이렇게. 그래야지 각 영화마다 다를 것 같거든요. 예쁜 음악을 쓰자, 이건 콘셉트가 아니잖아요. 국내 영화음악에서 고쳐보고 싶다거나 도전해보고 싶은 지점이 혹시 있으신가요? (도전하고 싶은 지점은) 제일 잘 하는 사람, 가장 많이 찾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 생각은 이제 버렸어요. 버리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제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게 힘들고 불행해지잖아요. 이제는 보람 있고 행복한 작업을 하고 싶어요. 예산에 따라서 내가 움직여야지 하는 생각도 많이 없어졌고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1000만 원짜리 영화든 100억짜리 영화든 전부 최선을 다해 만들거든요. 한 씬 한 컷도 모두 베스트만 고르거든요. 그런 정신과 그런 작업에 대한 접근방법이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앞으로 살날들을 봤을 때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것들을 놓칠 수도 있잖아요.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이유가 있고 전작을 보고 맞다고 생각했으니까 연락을 해오는 것일 텐데, 직접적으로 참여를 못 한다 하더라도 조언이라도 하자, 도와보자 이런 쪽으로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영화음악가와 영향받은 음악에 대해 골라본다면? 한스 짐머를 좋아해요. 예전에는 굉장히 싫어했는데요... (웃음) 한스 짐머는 영화계에 있어서 혁명가예요. 시스템을 만들었고, 시스템을 통해 많은 제자를 배출했죠. 영화음악의 판을 완전히 갈아엎었죠. 한스 짐머를 의식하지 않고, 싫어하더라도 그 사람처럼 음악을 만들어야 해요. 전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어요. 하지만 그 시스템을 공부할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한국 영화음악도 계속 전진하며 나가야 하니까요. 그래서인지 이해하게 되고 좋아하게 됐어요. 딱 좋아하시는 영화음악 있으세요? 제가 영화음악을 하게 된 것이 <쉰들러 리스트>였어요. 너무나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주는 것이… 울고 싶은 사람에게 너 울어봐, 라고 도와주는 게 아니라, 정말 울고 싶은 사람을 감싸 안아주는 듯한 음악이었어요. 저도 그런 영화음악을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한 거죠. 감독님에게 영화음악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도망가고 싶은데, 하루만 도망가도 아쉬운? 그런 것 같아요. 5년 후에는 도망가실 수 있으시겠어요? 못 갈 거 같아요. (웃음) 하나 끝나면 또 하나 해야 되고. 또 끝나면 또 하고. 지금 씨네노트에는 몇 분이나 계세요? 직원은 한 명이 있고요. 예전에는 5명까지 있었다가 독립한 사람도 있고, 그냥 집에 간 사람도 있죠. 요즘은 학생들이 좀 있어요. 학교 학생, 아니면 제가 개인적으로 가르치는 학생들인데요 일을 통해서 가르치고 있는 거예요. 그 자체의 경험이 중요해요. 그 시스템을 올해 시작했어요. 마지막으로 다음 차기작은 어떤 작품인가요? < 나의 사랑 나의 신부 > 리메이크를 했어요. 임찬상 감독의 작품이고 신민아 , 조정석 씨가 나오는 작품이죠. 조정석은 귀엽고 신민아는 너무 사랑스러운. 이걸 음악으로도 그대로 표현했죠. 이명세 감독의 원작 영화 음악도 인상적이지 않았나요? 그 음악도 일부 나와요. 이명세 감독의 원작 음악도 편곡해서 사용했어요. 여기까지입니다. 긴 시간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빨간 무스탕이 아리조나 사막을 가로질러 달린다. 흙바람을 일으키며 질주하는 차 안 라디오에서 흐르는 곡은 페기 리의 ‘It’s a Good Day’. 경쾌하고 발랄한 스윙곡의 희망찬 가사와 달리 운전자의 상황은 그리 좋아보이질 않는다. 초조하게 담배를 물어 피우는 왼손에는 피 묻은 붕대가 감겨있고, 며칠째 잠을 못 잔 듯 운전하며 꾸벅꾸벅 졸기까지 한다. 각성제를 쏟아 붇고, 연신 라디오 채널을 돌려 록과 재즈, 성악까지 다양한 곡들로 근심과 피로를 지우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설상가상 펑! 소리와 함께 본네트에서 흰 연기가 가득 피어오른다. 고무 밸브가 더위를 참지 못하고 그만 터져버린 것이다.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남자는 사막 한 가운데 갈래 길에서 잠시 멈춰 서는데 그제야 불길한 듯, 음산한 듯 스코어가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더위를 상징하는 색소폰 연주에 짜증을 한 가득 품어 낸 하모니카 소리가 어우러진, 마치 어디선가 들어본 곡조 같다. 서부극의 한 자락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이 음악은, 맞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스타일이다. 올리버 스톤은 이런 기시감을 위해 이 거장을 불러왔다. 스파게티 웨스턴 사운드의 선각자. 정통 서부극의 정의와 용기, 사랑과 프론티어 정신 따윈 개나 줘버리고 암투와 음모, 배신과 폭력 그리고 조소가 판을 치는 조잡스런 세계관에 잔인하면서도 위트 있는 음악을 부여한 그는 그야말로 < 유턴 >의 음악에 최적화된 작곡가였다. 엔니오 모리꼬네 엔니오 모리꼬네. 더 이상의 어떠한 설명도, 찬사도 필요치 않은 지구상의 유일무이한 영화음악가. 전설 중의 전설이자 아직도 현업에서 열심히 노익장을 과시하며 작업을 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마에스트로다. 비발디와 로시니, 베르니와 푸치니 이후 이탈리아가 낳은 최고의 작곡가이자 히트상품으로 1961년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500편이 넘는 영화음악을 맡으며, 전 세계적으로 50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는 국경을 초월해 수많은 나라에서 작업했고(심지어 막부 시대를 다룬 일본 NHK 대하서사극 <무사시>의 음악도 담당했다), 열렬한 관객들의 찬사와 감동, 전율을 이끌어냈다. 아카데미 음악상에 5번 후보로 올랐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시며 수상하지 못했지만, 2007년 아카데미는 그에게 평생공로상을 안겨주며 그 공적을 인정했다. 그의 음악은 천상의 하모니와 아름다움을 가진 동시에 실험적이고 키치적이며,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형식과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이념과 국가에 소속되지도 않는다. 드라마와 코미디, 시대극은 물론 갱스터와 SF, 공포, 웨스턴, 전쟁, 액션과 지알로나 성애영화에서도 그의 음악은 등장한다. 고전에 능숙하며 현대 음악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창의적인 유머와 과감성, 천부적인 멜로디 감각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더욱 놀라운 건 그의 경이적인 작업 속도와 양이다. 53년간 530편에 육박하는 작품 수만 보더라도 산술적으로 한해 평균 10편씩 50년간 개근해왔다는 건데, 실력과 재능 못지않게 부단한 노력과 근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유턴>은 그의 필모 중에서 널리 알려진 작품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선율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도들을 보여준 그의 초기작과 유사한 비장의 OST다. < 닉슨 >의 실패 이후 올리버 스톤 감독은 가볍고 작은 소품으로 그 정치적인 무게감을 덜어내고자 했다. <유턴>은 그런 재기발랄함이 드러나는 영화로 숀 펜과 닉 놀테, 제니퍼 로페즈, 존 보이트, 빌리 밥 쏜튼, 파워스 부스, 클레어 데인즈, 조아퀸 피닉스 등 좋은 배우들의 앙상블과 존 리들리의 단단한 각본을 가지고 강렬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단 하루 동안에 작은 마을 안에서 벌어지는 이 영화는 마치 2시간분의 머피의 법칙을 보는 듯한데, 어떻게 이렇게 재수가 없을까를 되네일 만큼 지독하게 꼬여가는 점입가경의 상황이 재미를 부추긴다. 자동차 고장으로 인해 사막 한가운데 외딴 마을로 들어선 남자는 마을의 아름다운 여인과 만나며 이에 얽힌 욕망과 질투, 과거의 복잡한 사연까지 안게 되고, 이 잠재적인 폭탄의 심지가 점점 타들어가며 서스펜스와 부조리한 블랙 코미디를 발생시킨다. 거기에 사막이 주는 강렬한 더위까지 결합하며 불쾌지수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는데, 그 파멸과 비극이 그리 고통스럽진 않다. 오히려 씁쓸하고 텁텁한 뒷맛에 헛웃음을 짓게 만든다. 사랑과 돈, 그 두 가지로 인해 발생하는 어리석은 인간사가 얼마나 많았던가. 로버트 리차드슨의 과도하지만 감각적인 촬영과 < 도어즈 >와 < 올리버 스톤의 킬러 >를 찍었던 감독답게 올리버 스톤의 센스 넘치는 음악 선곡이 빛을 발하며 이 지독한 악몽과도 같은 영화에 구원의 빛을 비추고 있다. 유턴 엔니오 모리꼬네의 선율에는 작열하는 태양과 아리조나 사막의 숨 막힐 듯한 무더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러면서도 스파게티 웨스턴과 지알로, 좌파 영화로 대표되던 그의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초기 스타일이 정확히 한 세대를 거슬러 되풀이 되고 있다. < 미션 >이나 < 시네마 천국 >처럼 인상적인 테마라 할 주된 선율이 관객들에게 각인되지 않지만, 우수 어린 하모니카나 구슬픈 여성의 허밍, 나른하면서도 신경질적으로 느껴지는 일렉 기타, 지역색이 묻어나는 벤조와 뇌쇄적인 색소폰, 차갑기 그지없는 피아노와 팬파이프 등 그가 즐겨 쓰는 모든 악기들이 총동원돼 저마다 음색을 뽐내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올리버 스톤은 특히나 사막이라는 공간의 작은 마을 ‘수피리어’를 세팅하며 마카로니 웨스턴 속 무법천지와 개성적인 캐릭터들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 과감히 엔니오의 색채를 빌렸는데, 이렇게 짜증스런 음악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불편하고 불유쾌한 농담으로 가득 차 있다. ‘U-turn’과 ‘Hallucination Walk’, ‘End of Sheriff’, ‘Fall and Rse’ 등이 대표적인 트랙으로 전위적이고 입체적인 사운드의 진수를 선보인다. 그의 아름다운 선율만 기억하고 있는 팬들에겐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고, 그의 초기 음악 스타일을 알고 있는 팬들에겐 이런 전복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면모가 반가울 수도 있을 것이다. 웨스턴과 스릴러, 멜로와 블랙 코미디를 아슬아슬하게 경유하는 <유턴>의 퓨전적인 미학은 또 다른 환희와 감동을 던져준다. 삽입곡에 있어서도 대단한 사치를 부렸다. 사운드트랙엔 그 중 10곡이 엄선돼 실려 있는데 모두 깨알같이 빛나는 명곡들이다. 그리고 그 곡들은 대체적으로 반어적으로 사용되었다. 앞서 잠깐 언급한 페기 리의 ‘It’s a Good Day’가 영화의 앞과 뒤를 멋지게 장식하며 아이러니한 즐거움을 주었다면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컨트리송이나 감미로운 블루스, 발라드와 흥겨운 홍키통크는 주인공의 재수 없는 일진을 더욱 도드라지게 나타낸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도시 속에 숨겨진 욕망과 잔악한 배반의 드라마를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는 셈이다. 새미 스미스와 패치 클라인이라는 걸출한 국보급 두 여성 컨트리 싱어를 비롯해 자니 캐쉬와 웹 피어스라는 쟁쟁한 남성 컨트리 스타까지 배치해 남서부의 정서를 기가 막히게 담아낸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 ‘Your Cheatin’ Heart’, ‘Honky-Tonk Girl’, ‘Ring of Fire’, ‘More and More’ 등은 기이하게 비틀린 마을 분위기와 달리 달콤하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영화 <돈 주앙>에 쓰였던 브라이언 아담스의 주제곡 ‘Have you ever really loved a women’을 라틴 버전으로 부른 ‘La Mujer Que Amas’를 비롯해 글로리아 린의 아름답기 이를 데 없는 ‘I wish you love’와 ‘Speaking of Happiness’ 등 감미로운 곡들이 삽입돼 영화를 중화시키거나 아이러니한 상황을 더욱 심화시키는 역할을 해냈다. 이를 모두 마무리 짓는 건 엔니오 모리꼬네의 처연한 ‘Grace’다. 흐느낌에 가까운 구음과 팬파이프, 신의 입장에서 내려다보듯 부유하는 일렉 기타의 선율이 모든 고통과 사건을 치유한다. 요즘 올리버 스톤이 다소 주춤한 길을 걷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나이로 구순이 거의 다 되어가는 엔니오 모리꼬네는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그의 영화적 동지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신작 <커러스폰던스 The Correspondence>의 음악작업에 들어갔고, 자국의 TV시리즈나 TV영화음악도 꾸준히 담당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달(6월) 중순에는 미국에서 콘서트가 예정돼 있고, 내년에는 프랑스에 투어가 잡혀있는 등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몸소 실천 중에 있다. 부디 그가 오래 오래 몸 건강히 활동해서 공로상 받고도 아카데미 음악상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으면 좋겠다. Track List 1. It's a Good Day - Peggy Lee 2.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 - Sammi Smith 3. More and More - Webb Pierce 4. La Mujer Que Amas - Pedro Fernandez 5. I Wish You Love - Gloria Lynne 6. Honky-Tonk Girl - Johnny Cash 7. Your Cheatin' Heart - Patsy Cline 8. Ring of Fire - Johnny Cash 9. Lonesome Town - Ricky Nelson 10. Speaking of Happiness - Gloria Lynne 11. Grace 12. U-Turn 13. Bobby 14. Hallucination Walk 15. Go On... Kill Grace 16. A Banjo in the Desert 17. Against 18. A Careless Sheriff 19. Dialogue with the Indian 20. Old Family Souvenirs 21. End of Sheriff 22. Fall And Rise 23. Grace (Repr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