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프라이드
- 감독
- 전우성
- 제작년도
- 2019
- 출연
- 최병윤, 이나영, 조수향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먼저 깊은 한숨을 내쉰다. 나는 글을 쓰는 게 정말 힘들다. 그렇긴 해도 대상이 되는 작품이 있을 땐 어떻게든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이 기획의 실체 없는 주제가 주는 자유 속에서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내게 한국영화 비평의 안녕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 걸까? 간간이 영화평론가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지만, 나는 제대로 된 비평을 쓴 적이 거의 없다. 이 사실에서 오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무슨 연유에서인지 내게 기회가 닿은 이 글을 일단 시작해보려 한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그간 내가 무엇을 했는지 돌이켜 보기로 했다. 영화의 주변을 알짱거리며 한 것들 중에는 ‘말’을 하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주로 빛이 사라진 스크린 앞 객석을 바라보는 자리에 서서 말이다. 1. 영화와 관련해 내가 처음 맡은 일은 CGV 아트하우스 큐레이터라는 이름으로, 상영이 끝난 후 작품을 해설하는 것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그 일이 사라지기 전까지 1년 넘는 시간동안 매 주말 한 극장의 객석을 마주하고 섰다. 그리고 방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작품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의미를 독해해주었다. 실은 큐레이터가 아니라 ‘해설자’나 ‘도슨트’ 정도의 이름이 걸맞은 일이었다. 15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혼자 말한 후에는 객석의 질문을 받는 시간이 이어졌다. 해설을 듣기 위에 자리에 남은 적지 않은 관객들은 영화에서 감독이 감추어놓았을 수수께끼들에 관심이 있었다. 한 번은 작품에 등장한 상징을 알려달라는 한 관객의 요청을 완곡하게 거절했다가 다른 관객으로부터 ‘두부’에서 순수함이라는 상징을 왜 읽지 못하느냐는 꾸지람을 들은 일도 있다. 주인공 의상의 색상에서 어떤 변화의 도식을 찾아내려는 집착의 눈을 마주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욕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일부러 애쓰지는 않았지만, 아트하우스 영화를 즐겨 보는 관객들의 성향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이 짧다는 핑계로 쉬운 길을 택했다. 이 일을 하면서 나는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에 대한 공포를 약간 덜었고, 이론 용어를 덜 쓰게 되었으며, 때로는 관객의 반응에서 보람도 느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를 읽는 어떤 습관이 생겼고, 따로 활동을 하지는 않았기에, 비평과는 멀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비평은 단지 감독이 의도한 것을 대신 전달하는 것으로 끝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 십개월의 미래 >(남궁선, 2020) 관련 전주국제영화제 장기 상영회 중 필자 진행 GV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X ) 2. 내가 가장 최근에 활동한 장소는 인천 디아스포라영화제 다. 나는 영화제 기간에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한 영화비평워크숍 ‘활동사진’의 전체 진행을 맡았고(이동윤 평론가가 처음 기획한 것으로, 나는 멘토로 참여해오다가 작년부터 이 일을 했다), 영화제 GV의 모더레이터를 했다. 인천 지역 중·고등학교를 찾아가 디아스포라영화제 상영작을 보고 감독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프로그램, ‘영화, 학교가다!’의 모더레이터를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내 역할은 주로 앞에서 말하는 것이었다. GV(Guest Visit) 또는 관객과의 대화. 영화 상영 후 게스트(주로 감독)를 초청하여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이 자리에서 모더레이터는 감독과 관객 사이의 대화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리 작품을 세심하게 보고 정보를 찾아 알고 있어야 했다. 아트하우스 영화 해설과는 다르지만, 나는 GV 진행을 하면서도 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때로는 비평적 시각을 지켜내면서 감독으로 하여금 영화의 무의식적인 수행을 발견하게 하는 뛰어난 GV 진행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경험이 많지 않고 역량이 부족한 내게는 진행의 매끄러움이 우선 과제가 되었고, 순발력을 중요한 능력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진행자는 이 열린 대화의 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들에 유연하게 대처해야하기 때문이다. 객석의 질문이 없거나 감독의 대답이 지나치게 짧아 진행자의 말이 많이 필요한 경우가 있고, 단편 섹션에서 한 쪽으로만 질문이 몰리거나 순차통역으로 인해 시간이 부족해서 조율이 필요할 때도 있다. 사실 이것들은 사전에 잘 준비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넘어갈 수 있다. 무엇보다 예상하기 어려운 것은 어떤 관객이 말을 걸어올지 모른다는 사실이 아닐까. 이제는 클래식 밈이 된 ‘GV 빌런’의 존재 말이다. GV에 참석 좀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분에 대한 저마다의 피로한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진행자의 덕목일까? 나는 빌런을 직접 만난 적은 없다. 그런데 관객으로서 나는, 가끔은 일부 관객들이 질문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태도를 갖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얼마 전 참석한 한 영화제 GV에서 나는 영화제에 거의 처음으로 온 듯한 어느 비시네필 관객이 영화를 본 후 한껏 들뜬 자신의 감상을 길게 늘어놓는 동안 관객 여럿이 우르르 자리를 뜨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장황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관객의 소감과 그에 대한 감독의 대답에는 왠지 모를 감동 같은 것이 있었다.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영화, 학교가다!’ 프로그램에서는 시네필이 만족할 전문성 있는 질문만을 기대할 수는 없다. 초대받은 감독과 진행자인 나는 이곳에서 영화제 GV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시네필 바깥의 시선들을 만난다. 학생들이 영화에 대해 주로 궁금해 하는 것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인공이 어떻게 살아갈 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을 학생들에게 되돌렸을 때 흥미로운 반응을 만날 수도 있었다. 한 번은 주인공인 남자 고등학생이 숨겨왔던 자신의 디아스포라적 정체성을 친구들 앞에서 밝히며 끝나는 한 작품(< 동우 >(박호범, 2022))을 여러 학교에서 상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각자의 경험을 통해 서로 다른 시선을 갖게 된 두 집단의 의견이 뚜렷이 갈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주로 여학생들이 이 영화의 결말을 감동적으로 받아들인 반면,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암울한 후일담을 예상한 것이다. 나는 이후에 이 작품을 보게 된 학생들에게 앞서 확인한 이 결과를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가 촉발시킬 수 있는 대화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3. 한 명의 강사가 강의를 하고 과제에 대해 피드백을 해주는 일반적인 비평워크숍들과 달리, ‘ 활동사진 ’은 한 명의 멘토와 네 명의 참가자로 구성된 복수의 모둠이 각각 활동하는 워크숍이다. 총 4회 차로 구성된 이 워크숍에서 각각의 모둠은 이틀간 디아스포라영화제에서 상영작들을 함께 보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다. 영화제를 기준으로 1주 전에 영화 비평 특강이 있고, 1주 후에는 비평문 초고에 대한 멘토의 피드백 시간이 있으며, 활동 종료 후 비평문 최종고를 엮어 비평집을 발간한다. 나름대로 고심한 구성이지만 비평적 글쓰기를 훈련하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이 워크숍 활동의 정점은 글쓰기보다는 활기 넘치는 토론시간이라고 느껴진다. 여러 참가자들이 자신을 소개하며 ‘그간 영화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고 대화를 나눌 친구가 주위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 그들에게 비슷한 관심으로 만난 일면부지의 사람들이 함께 영화를 본 후 즉각적인 감상을 나누고 각자의 비평적 주제를 찾아가는 일은 분명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 노출된 정보와 평가가 거의 없는 영화제 작품들을 선입감 없이 보고 판단한다는 상황이 흥분과 긴장을 더하는 것 같다. 워크숍 '활동사진' 활동 장면 (사진: 필자 제공) 영화를 본 직후에 이루어지는 토론은 말끔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본 것을 글로 바꾸고 고치면서 생각을 정련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말하는 것이니 어려운 게 당연하다. 멘토가 주제를 제시하며 방향을 잡지만, 간혹 대화는 참가자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엉뚱한 길목을 기웃거린다. 한 모둠이 토론하는 모습을 한발 떨어져서 지켜본 적이 있다. 영화의 어느 장면에서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린 한 참가자가 다소 긴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지점이었다. 그때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는 한 사람의 몸짓과 그의 말이 언제 끝날 지를 살피고 있는 듯한 다른 사람의 복잡한 얼굴이 함께 보였다. 여느 대화와 별반 다르지 않은 그 상황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입되었다. 나는 언제 어느 장소에서 어떤 사람들과 보고 그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에 따라 그 영화가 전혀 다른 말을 걸어올 수 있다는, 그리 특별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4. 역동적이고 미묘한 대화의 장에 대해 생각하면서, 지극히 단순하게도 김덕중 의 < 컨버세이션 >(2021)을 떠올린다. 유운성 평론가는 “ 한국독립영화 속, 대화의 언어 ”라는 글에서 한국독립영화에서 대화 장면의 빈약한 연출을 지적한 바 있다. <컨버세이션>은 한국(독립)영화에서 긴장감을 만들거나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에 그쳤던 ‘죽은’ 대화 장면을 섬세한 연출로 살려냈다. 이 생생한 장면들에서 우리는 대화를 구성하는 것이 말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본다. 세 친구가 집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대에 파리에서 함께 유학 생활을 한 적 있는 은영( 조은지 ), 다혜( 송은지 ), 명숙( 김소이 )이 은영의 집에서 오랜만에 모인 것이다. 코너형 소파에 나누어 앉은 이들의 모습은 풀숏의 고정된 프레임 안에서 함께 보인다. 카메라를 마주한 명숙이 먼저 파리 시절에 새겨진 자신의 열등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느새 그의 이야기가 끝나고 다혜가 입을 뗀다. 그런데 한 박자 늦은 은영이 다혜보다 큰 자신의 목소리를 밀고나간다. 카메라 가까이에 앉은 은영이 몸을 기울일 때마다 화면에서 얼굴이 가려져버리던 다혜가 결국 은영에게 발화권도 빼앗긴 것이다. 이제 카메라는 은영과 다혜를 마주보는 자리로 옮겨간다. 다혜의 눈은 초점을 잃었고, 은영은 삶에 대한 느낌과 남편의 반응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때 화면 오른쪽에 있게 된 명숙이 끼어들어 말하기를 시도하지만 은영의 말이 멈추질 않는다. 실패한 명숙은 이후 소파에 몸을 기대어 슬며시 프레임 밖으로 나간다. 동시에 나온 목소리들이 서로 부딪치고 어떤 말들은 묻혀버리는 상황. <컨버세이션>은 발화 경쟁이 있는 익숙한 대화 상황에서 활동하는 힘들을 자연스러우면서도 또렷하게 가시화한다. 얼굴을 마주한 대화의 장을 구성하는 것은 말뿐만 아니라 표정과 몸짓이라는 시각적인 요소들이기도 하다. 그뿐일까. 이 장면에는 초대받지 않은 바깥의 존재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끓고 있는 커피포트는 은영을 프레임 안팎으로 들락거리게 해 분위기를 산만하게 하고, 근처에 잠들어 있는 아기의 존재는 음량을 조절하게 만든다. 창으로 들어온 오후의 강한 태양마저 은영의 얼굴 위에서 빛과 그림자의 그림을 부단하게 그린다. 이 바깥의 존재는 이어진 씬에서 대화의 다른 차원을 지시하기도 한다. 다혜와 명숙이 아파트 복도 끝 계단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대화를 나눈다. 이때, 다혜가 명숙에게 자신이 말을 하지 못하면 ‘빡이 친다’고 말하며 앞선 발화 경쟁을 의식하고 있었음을 밝힌다. 그런데 이처럼 강한 토로 후에 이어진 다혜의 말은 하필 도로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묻혀 때때로 우리에게 잘 들리지 않게 된다. 건물 고층에 서있는 두 사람과 건너편 같은 높이의 어느 장소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카메라 사이에 마치 심연과 같은 무한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 앞선 장면에서 인물들의 대화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의 것들이 시선과 몸짓을 통해 드러났다면, 이 장면에서는 인물들의 세계와 관객이 자리한 현실 사이에 놓인 모종의 간격이 시청각적인 거리감으로서 드러난다. 말하자면, 어떤 외부가 항상 대화에 끼어들고 있다. (영화와 현실의)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 뿐만 아니라, 영화와 관객 사이의 대화에서도. 5. 대화의 장에서 발신자의 말은 수신자에게 진실을 온전하게 전하지 못한다. 홍상수 의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2015)는 이 불완전한 ‘말’을 대하는 한 인물의 두 가지 상반된 태도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동일한 두 인물이 우연히 만나 같은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이틀간의 여정이 반복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수원에서 열리는 GV 행사에 하루 일찍 도착한 영화감독 함춘수( 정재영 )는 화성행궁을 서성이다 윤희정( 김민희 )이라는 여자를 만난다. 둘은 대화를 나누고 함께 윤희정의 화실에도 간다. 만남이 술자리까지 이어지자 함춘수는 부지런히 구애를 하고, 윤희정의 요청으로 자리를 옮겨 그녀의 지인들과 합석하게 된다. 영화의 1부(‘그때는맞고지금은틀리다’)와 2부(‘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이 기본적인 상황 위에서 그려진다. 이때, 1부와 2부의 두 세계 사이에서 차이를 만드는 것은 상황을 대하는 인물의 말, 그리고 그에 따른 표정과 몸짓, 감정 등의 변화다. 1부에서 함춘수와 윤희정이 나누는 대화들은 우스꽝스럽다. 두 사람은 ‘알 것 같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서로 반복한다. 함춘수는 윤희정의 그림을 보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좋아요. 정말로 좋아요. 뭘 한 건지 알 것 같아요.” 이어서 그는 자기 영화를 표현하는 데 쓰던 말로 그녀의 그림을 상찬한다. 하지만 그날 밤, 술자리 동석자들에 의해 그가 빈말을 했다는 사실이 까발려지고, 함춘수는 자신에 대한 말(사실과 소문)들에 둘러싸여 난처해진다. 결국 수치심을 느낀 윤희정이 자리를 벗어나자 둘의 관계는 맥없이 끝나버린다. 이튿날, GV에서 모더레이터는 ‘감독님에게 영화란 무엇이냐’는 ‘빌런’같은 질문을 던진다. 굳은 얼굴로 입을 연 함춘수는 기어이 격분하며 이렇게 소리치고는 극장을 나간다. “우리의 삶은 그런 말들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말의 힘? 저는요, 그런 중요한 말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대사는 말에 대한 그의 입장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어차피 진실을 전하지 못하는 말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는 냉소적인 태도 말이다. 그렇기에 함춘수는 마음을 ‘어떻게 말로 표현 할 수 있느냐’고 생각하면서, 텅 빈 말들이 불러일으키는 ‘공감’이라는 착각, 그것이 주는 편안함에 기대려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1부에서만 들을 수 있는 함춘수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은 그와 우리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보다는, 그가 독백의 공간에 갇혀 영원히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느낌만을 남긴다. 2부의 함춘수는 ‘말’에 대해서는 1부와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는 말을 ‘함부로’ ‘많이’ 하면서 어떻게든 진실을 전하려고 분투한다. 윤희정은 처음엔 함춘수의 말에 상처받지만 곧 그를 믿고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새벽이 오자 두 사람은 그들의 짧은 만남을 정리하며 부드러운 말들을 서로 주고받는다. 함춘수는 자신이 ‘너무 말을 많이 했다’며 사과의 말을 건네고, 윤희정은 함춘수의 실수를 덮으며 자신이 ‘말을 잘 할 테니 걱정 말라’고 다독인다. 또 다시 이튿날, 다행히 이번 GV는 무사히 끝난 것 같다. 함께 담배를 피우던 모더레이터가 함춘수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는 스태프에게 좀 전에 만난 GV 빌런 이야기를 꺼낸다. “근데 아까 안경 낀 걔는 너무 깼어.” “너무 말을 많이 하죠?” 함춘수는 여기서 자신의 영화를 보러 온 윤희정과 재회한다. 이 대화 장면은 영화의 예고편으로 쓰였다. 그런데 예고편은 영상을 거꾸로 재생한다. 이 역재생된 화면 위로 ‘지금’, ‘그때’, ‘맞다’, ‘틀리다’라는 단어들로 조합된 말들이 자막으로 나온다. 말의 언어적 의미가 소거된 이 영상에는 서로에게 집중하는 두 사람의 표정과 몸짓이 더욱 잘 보인다. 신기하게도, 두 사람은 그 비언어적인 소리와 시각적 표현들을 통해, 혹은 우리가 배우지 못한 미지의 언어를 가지고서 정말로 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말이 세계를 탐험하는 동안, 비언어적 의미들이 함께 부지런히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6. 영화는 대화들로 구성된다. 영화 속에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뿐 아니라, 인물과 세계 사이, 세계와 세계 사이의 대화가 있다. 영화비평은 그런 영화와의 대화다. 우리는 영화의 대화를 추적함으로써 그것이 의도로 귀결되지 않게 하는 외부의 활동을 발견한다. 아니, 거꾸로 이 잉여적인 것이야말로 비평이라는 대화의 장을 연다. 비평은 다른 비평과의 대화를 진행하기도 한다. 극장의 평론가 대담이나, 온라인 팟캐스트 같은 것들이 있다. 내가 이따금 참여하는 ‘ 비평의 편지 ’는 영화를 두고 두 사람 사이에서 오고간 세 통의 편지를 독자에게 발송하는데, 잠재적인 다수의 수신자를 가정하고 쓰인 사적 대화라는 점에서 영화 속 인물들의 대화를 닮았다. 영화의 대화, 영화와의 대화, 그리고 비평의 대화는 이렇게 서로 연결된다. 우리는 독백 속에 갇히지 않기 위해, 외부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지금’에 충실한 말을 찾아 계속해서 새로운 대화를 시도하게 될 것이다. 강소정(영화평론가) l 가끔 영화에 대해 말하거나 쓴다. 제2회 독립영화비평상 오디오비주얼필름크리틱 부문 당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에 만난 작품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22살 겨울, 처음이자 마지막 단편 연출을 끝내고 나서 나는 명확하게 깨달았다. ‘아, 이건 내가 할일이 아니다.’ 신이 나에게 감독에게 필요한 자질들은 애초에 주지 않았을 뿐더러, 낯가림이 꽤 있었던 20대 시절 나에게는 많은 사람들과 부대껴야 하는 현장이 너무나 스트레스 였다. 이런 성향의 사람에게 편집 파트는 딱 안성맞춤이었다. 영화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으면서도 현장에서의 그 불꽃튀는 부대낌은 겪지 않아도 됐으니까. 근데 막상 졸업하자마자 편집실에 취직을 하고보니, 이곳도 후반작업의 시작이어서 그런지 사람은 꽤 많이 만나는 파트였던지라, 초반에 적잖이 당황을 하며 적응을 해 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편집실은 하루라는 시간 제한이 있던 현장과는 달리 마감 기한이 훨씬 널널했기 때문에, 그 부분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다. 나는 사실 편집을 오로지 감으로, 그리고 편집실에서 8년 동안 일하면서 수많은 작업들을 마치 게임 미션을 클리어하듯이 헤쳐 나가면서 오로지 경험으로 배운 케이스이다. 영화과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단지 나랑 결이 맞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보는 시간과 그 순간의 공기를 사랑해서 영화를 시작한 케이스였다. 그래서 대학을 다니던 그 시절엔 영화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이게 뭔지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에게 편집 선생님이 누구였냐고 물어본다면, 편집실에서 같이 작업했던 수많은 감독님들이 내 선생님들이었다고 대답하고 싶다. 그렇게 쉼없이 달려오다 어느 해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의도치 않게 쉬는 기간이 생겼다. 그때 그동안 본능으로 배운 걸 눈으로 확인 해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그때 다시 본 영화가 < 디 아워스(The Hours) >(스테판 달드리, 2002)였다. 편집의 관점에서 영화 전체를 분석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그동안 작업하면서 사건이나 스토리가 강한 영화가 아닌 정서나 무드로 밀어붙이는 영화의 편집과 연출이 궁금하던 찰나에 마침 리스트에 있길래 선택을 했었다. <디 아워스>는 각기 다른 시간대에 사는 세 여자가 나와서 진행되는 영화이기 때문에 더더욱이 이런 접점이 없는 인물들로 펼치는 스토리 라인에서의 편집이 궁금했다. 나는 주어진 숙제는 성실히 하는 인간이기는 했지만, 그 숙제를 스스로 만들어서 하는 대단한 인간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눈앞에 닥친 작업들을 끝내는 것에만 몰두하면서 살기 급급해서 이런 식의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은 없었다. 사진: "The Hours", IMDb <디 아워스>에 등장 하는 세 명의 여자들은 소설 『댈러웨이 부인』(버지니아 울프, 1925)으로 묶여 있는 인물들이다. 1923년 영국 시골 도시에서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하고 있는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1951년 미국 LA에서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 임신 6개월 째인 로라(줄리안 무어). 그리고 2002년 미국 뉴욕에서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출판사 편집장 클래리사(메릴 스트립). ‘댈러웨인 부인’을 쓰고, 읽고, 그렇게 불려지는 이 세 여자들이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파티를 준비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단 하루를 통해, 결국 이 여자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고독과 그것을 어떻게 마주하고 받아들이는지, 영화 안에서 시간을 건너뛰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어떤 순간들을 만들어 내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는 연출이나 편집을 활용해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이 교차되는 씬들을 행동으로 이어 받아주든지, 아니면 서로 다른 시대에 사는 인물의 나레이션을 이용하거나 음악으로 세 인물을 하나의 분위기로 감싸는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씬과 시퀀스를 이어가고 엮어간다. 그렇게 이 주인공들이 결국 같은 불안과 고독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음을 드러내고, 이로 인해 파생되는 다양한 감정을 쌓아가며 영화의 에너지를 확장시켜 나갔다. 그때 이런 부분들을 세세히 뜯어 보면서, 나는 편집할 때 설계해야 하는 이미지의 배치나 컷 구성, 그리고 컷팅으로 어떻게 영화의 에너지를 잃지 않고 2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을 끌고 나가는지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다. 영화 속 세 여주인공이 하루 동안 겪는 감정적인 불안의 근원은 결국 자기 모습 그대로 온전히 드러낼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허무함에서 오는 고독과 외로움이었다. 영화 속에서 보이는 이런 주인공들의 ‘하루’라는 시간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일상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날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서 마음 속의 어떠한 균열들이 건드려지게 되고, 그 균열을 감당하고 버티고 해소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투쟁 해야만 내 모습 그대로의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영화는 건네고 있다. 사진: "The Hours", IMDb (좌 상단부터 시계 방향, 버지니아1 , 버지니아2 , 클래리사 , 로라 ) “삶과의 투쟁없이는 평화도 없어요.” -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영화를 만드는 일은 재밌으면서도 너무나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처음 편집을 시작하며 꿈을 키워 갈때는 나도 여느 유명한 편집감독님 들처럼, 이런 저런 다양한 장르를 다 잘 소화하는 편집기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런 부분이 내 뜻대로 잘 되지 않을때 좌절도 하고 나에 대한 자책도 많이 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영화를 편집하면서 느낀 가장 큰 부분은 영화에는 정답이 없고, 다 각자 자기만의 색깔과 방식이 존재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편집기사는 그 무수히 많은 촬영 소스에서 배우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통해 작품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개성과 매력을 찾아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무난하게 5점짜리 씬만 있는 영화보다는 좀 불균질하더라도 3점과 7점이 공존하는 영화가 더 매력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밖에서 바라볼 때 평균 점수가 똑같더라도 말이다. 아무래도 영화는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너무나 큰 자본이 들어가고 수많은 사람들과의 소통과 협업을 통해 작업이 이뤄지는 곳이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통용되는 ‘이래야만 한다’라는 것도 분명히 존재하고, 수학의 정석처럼 딱 꼬집어 정의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의 규칙들이 이 산업 안에서는 존재한다. 처음 일을 시작하고 편집기사라는 이 일에 대한 열망과 사랑이 컸던 나에게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기질보다는, 이 업계에서 통용되고 있던 ‘그래야만 한다’라는 것들의 기준에 맞춰서 변하려고 많은 애를 썼다. 하지만 의도치 않은 잠깐의 휴식기 아닌 휴식기를 가졌던 그때의 나는, 나라는 사람이 거쳐온 시간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해소할 것은 해소하고 흘려보낼 것은 흘려보내는 그런 시간을 보냈다. 그 당시 나는 편집기사로서의 손연지, 인간 손연지의 장점과 매력은 무엇인지, 편안하게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영화와 환경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했던 것 같다. 살아가면서 쉼없이 달리기만 하는 것보다는, 남들이 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무용한 시간도 가끔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기가 나에겐 그랬다. “있는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 가지고 있는 기질 덕분에 어렵지 않게 잘할 수 있는 작업과 공부가 필요한 작업에 대한 구분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성향적인 부분에서 오는 장점과 한계들... 그때 이 영화를 통해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편집기사로든 사람으로든. 나는 운명론을 좀 믿는 편인데, 내가 보는 영화나 작업하는 영화가 나에게 찾아온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2017년의 나에겐 <디 아워스>가 찾아와 편집기사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져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손목이 허락하는 한 할머니가 되어서도 편집을 하고 싶기 때문에, 앞으로 나이가 들더라도 내가 가진 감각과 감성을 지키면서도 고착화되지는 않는 그런 할머니 편집기사로 늙어가고 싶다. 내가 편집한 작품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말을 건네는 그런 마법같은 순간이 일어나길 기원하며, 오늘 하루도 언제나 그랬듯 마우스를 잡을 것이다. 사진: "The Hours", IMDb 손연지(편집기사) l 극영화, 드라마, 다큐, 뮤지컬 필름 등 스토리 텔링이 들어간 다양한 장르에서 편집을 한다. 눈을 끄는 화려한 편집도 좋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편집을 하고 싶다. 영화 < 비밀 >(2023), < 세자매 >(2020), < 찬실이는 복도 많지 >(2019), < 이장 > 등 다수, 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편집
사진: " Larks on a String ", Národní filmový archiv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에 만난 작품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현실 세계 어디엔가 있을 법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와 인물들을 다소 직설적이며 담백하게 표현하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개인적으로는 희로애락을 불러일으키는 사건들이 일상에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자리 잡고 있다가 부지불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진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후에 남겨진 감정들은 온전하게 이해되거나 소화되지 못한 채 한동안 멍때림 혹은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고는 한다. 내게는 영화가 이러한 감정들의 번역기이자 소화제였기에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서 직접 참여하기에 이르렀던 것 같다. 많은 파트 중에서도 왜 하필 촬영이었을까를 묻는다면, 루빼에 눈을 파묻었을 때 현실의 많은 부분과 단절됨과 동시에 주시하고 있는 것만을 선택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담아야 할지와 같은 형식에 대한 고민보다 내용과 대상 그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강했던 탓에, 가끔 나의 촬영에 영향을 끼친 영화를 촬영적으로 풀어 답을 해야 할 때 어려움을 느낀다. 내게는 동전의 양면처럼 영화와 촬영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며, 결국 오늘날의 내가 촬영에 대해 갖는 시선이나 태도에 영향을 끼친 영화가 무엇인지, 촬영을 하고 싶은 열망을 일으키는 이야기가 무엇이냐는 질문과도 같기 때문이다. 영화를 어떻게 시작할지 몰라 헤매던 시간을 지나 촬영팀 생활을 거쳐 촬영에 대해 참으로 느리지만 꾸준히 배워나가던 시절 우연히 보게 된 한 감독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답을 대신하고자 한다. 2006년 겨울,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체코 영화제가 열렸고 당시 본 여러 작품 중 < 가까이서 본 기차 >(이리 멘젤, 1966)를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소시민적인 캐릭터들과 소소한 사건들을 담아내는 감독의 따뜻한 시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는 현실을 해학으로 드러내는 방식 때문이었다. 사회 초년생이자 연애 초보자인 밀로쉬(바츨라프 네카르시)의 역무원 적응기와 연애기, 그리고 본인과 관객 모두 예상치 못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연신 미소를 짓게 만들다가도 일순간 당혹감과 애처로운 감정을 모두 경험하게 만드는 감독의 스타일에 푹 빠지게 되었고 그렇게 ‘이리 멘젤’이라는 감독의 이름을 마음에 새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감독의 차기작 < 줄위의 종달새 >(이리 멘젤, 1969)가 개봉을 하였고 이 영화는 내가 영화인으로서의 삶을 살거나 혹은 그렇지 않은 시간을 보낼 때도 항상 마음이 향하는, 가본 적 없는 고향과도 같은 영화가 되었다. (좌) 사진: " The Power of the Powerless: Five Banned Films from the Czechoslovak New Wave: Larks on a String ", Film at Lincoln Center (우) 사진: " Skrivánci na niti ", IMDb <줄위의 종달새>는 체코슬로바키아의 1948년 2월 혁명 이후 공업단지에 위치한 한 폐철 처리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곳은 부르주아로 찍힌 자들이 과거의 만행을 보상하기 위해 사실상 강제 동원에 가까운 노동을 하는 곳이며 전직 철학 교수, 검사, 목수, 이발사, 색소폰 연주자, 호텔 요리사가 등장한다. 또한 이곳에는 해외로 탈출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받고 노역 중인 여성 수감자들도 등장하는데, 이 두 집단의 교류를 막는 자는 집시 여인과의 결혼을 앞둔 한 젊은 간수다. 그리고 겉으로는 이들과 동등한 노동자임을 강조하면서 주어진 작은 권력을 최대한 휘두르는, 등장부터 퇴장까지 ‘청결'을 외치는 관리자도 등장한다. 주요 사건은 요리사 파벨(바츨라프 네카르시)이 여성 죄수 중 한 명인 이트카(이트카 젤레노호르스카)와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르는 과정이다. 죄수라는 이트카의 신분으로 인해 파벨은 그녀 없이 당 관리자 앞에서 혼인 선서를 하게 되고 이트카 또한 감옥에서 3시간 전 그와 결혼했다는 증명서를 받게 된다. 동료들이 마련한 허름한 초소에서의 합방을 불과 몇 걸음 앞두고 파벨이 ’그'라고 불리는 당 최고직 위원의 환영 행렬에 강제로 동원되며, 둘의 만남은 잠시 유예되는 듯 흘러간다. ‘그'에게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던 시절은 어디로 갔는지 질문을 던지는 파벨. 이 도발적인 질문으로 인해 행사 후 이트카를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기던 그는 요원들에 의해 납치되듯 사라지고 둘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는다. 수개월이 흘러 복역을 마친 이트카. 이제 그녀는 2년 형을 선고받고 지하 탄광으로 내려가는 파벨을 기다리며 함께 할 그날을 꿈꾼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충격과 감동을 준 장면들이 있었다. 하나는 청결을 이유로 전라의 한 소녀를 목욕시켜 왔던 관리자의 행적이 관객과 또 다른 동료 모두에게 발각되는 장면이었다. 동료 또한 이 만행에 동참하는 서사 상의 귀결도 충격적이었지만 이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인해 더욱 그러한 감정을 느꼈다. 영화가 초반부터 유지해 온 공간 속에서, 여러 인물과 상황을 함께 담아내는 풀숏(full shot)과 니숏(knee shot) 정도의 비교적 널찍한 숏 사이즈(shot size)를 통해 가감 없이 상황을 드러냄과 동시에 유린의 손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클로즈업으로 강조했는데, 시공간을 압축하지 않고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도 특정 순간만큼은 카메라가 인물에 가까이 다가가 촬영하는 방식이 내게 강렬하게 다가왔고 이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사진: " Skrivánci na niti ", FDb.cz (원자료 출처: Filmové studio Barrandov / 저작자: Josef Janoušek) 다른 하나는 엔딩 장면이다. 트럭에 실린 채 탄광으로의 노역을 앞둔 파벨에게 이트카가 거울을 이용해 햇빛을 보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나는 진실과 결혼했어요”라는 대사를 던지고 갱도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는 파벨. 냉혹한 현실 덕분에 진실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는 철학자의 말에 옅은 미소를 띤 그의 얼굴이 화면 가득 등장하고 마치 아내를 향하는 듯 시선을 위로 올리는데, 이어지는 장면은 지상을 향하되 그로부터 더 멀어지는 일종의 엘리베이터 시점 숏(POV)이다. 어찌 보면 인물의 익스트림 클로즈업에 이은 POV라는 단순한 쇼트의 구성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점점 더 작아지는 지상의 빛의 사각형을 계속해서 바라보다 암전되는 이 마지막 장면이 희망과 동시에 여전히 녹록지 않은 현실을 표현한다고 느꼈고, 음악과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내내 희비의 양가감정이 끊임없이 교차로 밀려들며 입가에는 미소가, 눈에는 눈물이 고였던 기억이 난다. 단순한 듯 단순하지 않은 이리 멘젤 감독의 카메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그 특징이 느껴진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사회주의 체제가 지닌 부조리를 고발하는 성격이 짙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체제에 순응하는 자, 반대하는 자, 그리고 그 중간 지점에서 갈등하는 자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어떤 가치 판단에 근거한 차별적 시선이라기보다는 인간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내려는 듯 꽤나 담담하다. 이러한 시선과 일관된 태도들이 쌓이고 쌓여 특정 순간에 이르러 감독이 의도가 더욱 강렬하게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줄위의 종달새>는 감독의 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카메라가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카메라’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작품이기도 하다. 사진: " RECEDING WAVE: ON JIŘÍ MENZEL & LARKS ON A STRING ", Metrograph 시나리오를 받아 읽거나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을 바라볼 때 촬영을 고민하는 나의 마음 속 어디엔가 이리 멘젤 감독의 영향이 생각보다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낀다. 특히 사건을 바라보는 ‘태도’와 대상과의 ‘거리두기’의 정도를 고민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만날 때 더욱 그러했다고 생각한다. < 나의 피투성이 연인 >(유지영, 2023) GV 때 객석에 앉아있던 내게 정말 감사하게도 정성일 평론가님께서 쇼트 구성에 대한 질문을 하신 적이 있다. 카메라가 인물의 감정을 앞서가지 않으려 했고 영화 후반부 영안실에서의 건우( 이한주 )와 그가 바라보는 대상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기준으로 전후의 쇼트들을 자연스레 정리한 것 같다고 답을 했었다. 돌이켜보니 내게 ‘생각하는 카메라’를 심어준 작품들이 있었기에 현장에서의 마법 같은 순간들을 잘 담아낼 수 있었고, 그 시작에는 <줄위의 종달새>가 있었다. 이제는 ‘올드의 올드 시네마’가 되어버린 영화이지만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 의해 다시 한번 발견되기를 소망한다. 김보라(촬영감독) | 이야기와 인물을 화면에 담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유지영, 2023), < 아이 >(김현탁, 2021), < 퇴직금 >(전재연, 2021) 등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