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여무
- 감독
- 권영순, 홍홍, 노준곡, 두문파
- 제작년도
- 1975
- 출연
- 전숙, 차명희, 남수정, 왕은희, 어네스트 탄, 산타 빅크, 최무웅, 황건, 핑키 데레온, 제이슨 빠삐요, 백표, 진적미, 진루, 맹비
“내, 실은 눈멀기로 말하면 타고난 놈인데, 그 얘기 한번 들어들 보실라우? 어릴 적 광대 패를 첨보고는 그 장단에 눈이 멀고, 광대 짓 할 때는 어느 광대 놈과 짝 맞춰 노는 게 어찌나 신나던지 그 신명에 눈이 멀고, 한양에 와서는 저잣거리 구경꾼들이 던져주는 엽전에 눈이 멀고, 얼떨결에 궁에 와서는... 그렇게 눈이 멀어서... 볼 걸 못보고, 어느 잡놈이 그놈 마음을 훔쳐 가는 걸 못 보고. 그 마음이 멀어져 가는 걸 못 보고. 이렇게 눈이 멀고 나니 훤하게 보이는데 두 눈을 부릅뜨고도 그걸 못보고... 그건 그렇고! 이렇게 눈이 멀어 아래를 못 보니 그저 허공이네, 그려. 이 맛을 알았으면 진작에 맹인이 될 걸.” 한탄인지 푸념인지 아님 깨우침인지. 장생이 마지막으로 내뱉는 처연하면서도 담담한 이 대사는 영화의 모든 걸 아우르며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절대 권력자인 왕도 마음껏 누리지 못한 자유와 신명으로 세상을 풍자하고 조소하던 광대들의 비극적인 운명과 사랑을 담아낸 이 영화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한민국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2006년 초 < 왕의 남자 >가 < 실미도 >와 < 태극기 휘날리며 >를 넘어 1,230만명이란 초유의 관객동원 신기록을 세웠을 때 모두가 놀랐다. 연출자인 이준익 은 < 황산벌 >이 성공했지만 아직 감독보단 제작자 및 영화수입으로 더 유명했고, 주연배우들인 감우성 , 정진영 , 강성연 은 스타급 흥행배우라고 말하기엔 다소 무게가 떨어졌으며, 이준기 는 완전 신예에 불과했다. 원작인 연극 <이 爾> 역시 2000년 초연 당시 각종 상을 휩쓸며 인기를 누린 작품이었지만, 엄연히 연극의 흥행과 영화의 흥행은 다르기에 이 정도 파괴력을 보일 것이라 예측한 이는 드물었다. 아니 사실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당시 천만 영화는 강우석 과 강제규 란 검증된 흥행사가 만든 딱 두 편에 지나지 않았으니. 연산군의 폭정이 극에 달한 무오사화 즈음을 배경으로 전통적인 소리가 가득한 마당극에, 소학지희가 펼쳐지고, 동성애를 암시하는 장면까지 어느 것 하나 흥행할 요소라고 감히 말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다르게 보면 오히려 그런 부분들이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와 ‘왕남폐인’들을 양산하며 흥행광풍을 불러왔는지 모른다. 가히 <왕의 남자> 신드롬이었다. 7개월 뒤 < 괴물 >에 의해 다시 순위는 바뀌었지만 <왕의 남자>는 < 7번방의 선물 >이 나오기 전까지 가장 적은 제작대비 최고 흥행수익을 올린 영화로 남아 있다. 음악을 맡은 이병우 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괴물>과 < 해운대 >까지 연이어 천만 영화를 터트리며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음악가 중 한명이 되었다. 포크듀오 ‘어떤 날’의 멤버이자 기타리스트로 유명한 그는 1994년 오스트리아 빈 국립 음악대학을 수석 졸업한 이후 1996년 < 그들만의 세상 >을 필두로 영화음악에 뛰어들었고, 미국 피바디 음악원을 졸업한 이후 2001년 애니메이션 < 마리이야기 >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영화계 행보를 이어나갔다. 2003년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와 < 장화, 홍련 >의 잇단 성공으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호러와 코미디, 가족물과 음악영화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특유의 서정적인 선율과 독보적인 멜로디 감각을 선보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왕의 남자>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에 이은 그의 두 번째 사극으로, <스캔들>이 기존의 전통적인 국악 스코어에서 벗어나 바로크 시대의 챔버 사운드를 들고 와 사극에 새로운 시각과 독특하고 세련된 양식미를 부여했다면, <왕의 남자>는 그 챔버 스트링 앙상블을 유지하되 대금이란 전통악기를 전면에 내세워 보다 한국적인 색채와 스타일의 절충을 꾀하고 있다. 대금은 부드럽고 아름답지만 어두운 음색의 저취와 평취, 그리고 선 굵고 장쾌한 음색의 역취에 이르는 세 가지 음역대에서 변화무쌍하면서도 맑고 여무진 소리를 들려주는 악기다. 따라 장생과 공길, 연산이라는 복잡다단한 세 캐릭터의 슬픈 사연을 한데 엮어낸 선율을 연주하기에 더없이 탁월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이병우와 그가 음악을 한 영화들 영화에서 가장 처음 마주치는 오프닝 크레딧의 ‘프롤로그-먼길’은 바로 그 대금의 맑지만 투박한 음색을 확인할 수 있는 큐로, 토속적이면서도 처연한 감성을 담아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암시하고 있다. 메인 테마인 ‘반 허공’이 변주된 곡인데 이는 이후 ‘돌아올 수 없는’, ‘세상 속으로’, ‘행복한 광대들’, ‘꿈꾸는 광대들’과 ‘에필로그?돌아오는 길’ 등으로 영화 내내 이어지며 길목이라 할 수 있는 부분에 위치해 극을 관망하고 정서적인 통일감을 부여한다. 특히나 반복적으로 무겁게 짓누르는 저음의 첼로는 광대들의 목숨을 건 풍자와 연산의 피비린내 나는 황음무도, 처선의 절개와 녹수의 질투를 한데 모아놓은 - 불안하고 비통한 심리의 선율로, 하나같이 비극적인 결말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잔혹한 운명을 상징한다. 이 위에 얹은 아름답고 서글픈 멜로디만이 그들을 위로하고 달래준다. 여러 테마를 사용하기보다 간단하면서도 다양한 변주를 통해 심리적인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그의 스코어들은 명료한 상징과 장치적인 효과를 갖는다. 주된 선율을 생략한 채 조심스런 감정을 드러내는 ‘연정’이나 주제부를 단순화시켜 연산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낸 ‘그림자놀이-봉황은 울지 않는다’, ‘자궁 속으로’ 같은 큐들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밖에 ‘인형놀이’나 ‘반정의 북소리’처럼 간단한 타악 리듬으로만 그 상황의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불길한 조짐의 ‘파적심의 울음소리’나 ‘장생의 외침’과 같이 질주하는 스트링과 파열음의 대금, 강렬한 퍼쿠션을 조성해 서스펜스를 극대화시키기도 한다. 신디 프로그래밍이 가미된 ‘광대 사냥’의 경우는 마치 제리 골드스미스나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를 듣는 듯 정석적이고 장르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연극과 달리 영화는 장생의 시점으로 극을 이끄는데, 이를 위해 이병우는 특별히 극 후반 장생의 테마를 배치했다. 처연하고 구슬픈 대금의 ‘눈먼 장생’이 바로 그 곡이다. 절제되고 담백한 메인 테마 ‘반 허공’과 달리 이 곡은 절절하고 거칠게 한(恨)을 토로하는 아름답고 강렬한 선율을 가졌다. 이 선율이 흐르며 장생은 지난 과거를 반추하며 지금의 심적/육체적 고통을 승화시키고, 이 선율이 흐르며 공길은 연산에게 반 허공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연을 나타내는) 줄 위는 땅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반 허공이라고. 결과적으로 ‘눈먼 장생’과 ‘반 허공’은 대비되면서도 서로 이어진 이란성 쌍둥이와 같은 테마인 셈이다. 이 곡은 이병우가 직접 장생의 심정을 담아 작사한 주제곡 ‘가려진’으로 장재형이 불러 사운드트랙의 맨 첫 트랙에 실렸다. 시종일관 광대놀음의 풍물패 소리와 궁중음악이 깔리지만 그럼에도 이병우의 1분이 채 안 되는 짧은 큐들은 적재적소 빈 여백에 효과적으로 자리 잡아 내러티브와 캐릭터의 감정선에 밀접하게 연계돼 유기적인 호흡을 들려준다. 길이나 분량과는 다른, 밀도의 위력이다. 그간 이병우 영화음악에서 두드러진 건(물론 뛰어난 멜로디와 좋은 편곡의 힘도 무시 못 하지만), 감정과 경이의 순간을 포착한 놀라운 공명감이었다. 그 날카로운 울림이 관객들을 울리고 웃기고 가슴을 아리게 만들며 짙은 여운을 남겼다. 기타 디자이너로 직함을 늘리며 잠깐 동안 영화계에서 멀어진 이병우는 2013년 가을 세 번째 사극 < 관상 >으로 다시 영화음악가에 복귀한다. 이전의 두 사극과는 또 다른 한국적 울림과 아름다운 멜로디로 무장해 관객들의 감성적인 약점을 치밀하게 파고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왕의 남자> 사운드트랙으로 미리 예습을 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사운드트랙은 영상자료원(K-0038)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참고적으로 이선희의 ‘인연’은 <왕의 남자>의 주제곡이 아니다. ‘인연’의 뮤직비디오에 <왕의 남자> 클립이 쓰였을 뿐이다. 따라 사운드트랙에서 그 곡을 찾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Track List 1. 가려진 - 장재형 2. 먼 길 3. 각시탈 4. 돌아올 수 없는 5. 너 거기 있니? 나 여기 있어 6. 세상 속으로 7. 위험한 제의 하나 8. 행복한 광대들 9. 내가 왕이 맞느냐? 10. 위험한 제의 둘 11. 꿈꾸는 광대들 12. 수청 13. 인형 놀이 14. 연정 15. 그림자 놀이 -봉황은 울지 않는다 16. 피적삼의 울음소리 17. 광대사냥 18. 광대의 죽음 19. 어서 쏴 20. 질투 21. 장생의 분노 22. 내가 썼소 23. 애원 24. 장생의 외침 25. 눈먼 장생 26. 자궁 속으로 27. 반정의 북소리 28. 반 허공 29. 돌아오는 길 30. 반 허공 Guitar Version
1. 시대물에서 괴기물까지 50편 연출 권영순 은 1956년 시대물인 < 옥단춘 >으로 감독 데뷔했다. 그는 1981년 < 사향마곡 >이란 영화까지 25년간 50편을 연출했다. 한국적인 영화제작 상황에서 영화감독이 특정 장르를 고집할 수 없기도 하지만 권영순은 통속시대물로 감독 데뷔해서 코미디물, 액션물, 검객물, 반공물, 문예물, 괴기물, 멜로물 등 다양한 장르를 체험하고 선도했다. 그만큼 그는 영화감독으로서 행동 구역이 넓고 시각이 트였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그러면 권영순은 왜 시대물로 감독 데뷔를 했는가? 나는 시대상을 통해 그 필연성을 찾을 수 있었다. 1956년은 한국영화사적으로 성장기였다. 1953년 한국전쟁은 휴전으로 포성이 멈췄다. 사회가 안정으로 접어들면서 한국영화도 차츰 제작 열기를 더 해갔고 1954년부터 57년까지를 성장기로 부른다. 이 기간 4년 동안 총 100편의 한국영화가 제작되었는데 1956년에 30편이 개봉되었다. 1956년 개봉된 한국영화 30편 둥 절반이 역사물과 통속시대극이었다. 전창근 의 < 단종애사 >와 < 마의 태자 >, 윤봉춘 이 < 처녀별 >과 < 논개 >, 이규환 의 < 심청전 >, 김소동 의 < 왕자 호동과 낙랑공주 >, 정창화 의 < 장화홍련전 >, 김기영 의 < 봉선화 >, 안종화 의 < 천추의 한 >과 < 사도세자 >, 이병일 의 < 시집가는 날 >, 홍일명 의 < 벼락감투 >, 신현호 의 < 숙영낭자전 > 등 13편과 권영순 의 데뷔작 < 옥단춘 >을 합쳐 14편에 달했다. 1956년은 정부가 서울로 환도했지만 전흔의 상처는 그대로 남아있어 멜로물과 청춘물이 자리매김하기 전 관객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로는 역사물과 통속시대물밖에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권영순 도 1956년 < 옥단춘 >으로 감독 데뷔한 것은 이런 영화 흥행의 흐름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 <옥단춘>은 온갖 유혹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의연히 절개를 지킨 평양기생 옥단춘의 생애를 그렸는데 윤인자 가 타이틀 롤을 맡았고 김진규 , 최봉 이 공연했다. 데뷔 이듬해인 1957년 권영순 은 김광주 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멜로물 < 나는 너를 싫어한다 >와 라이트 코미디인 < 오해마세요 > 두 편을 감독했지만 흥행적으로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1958년 연출한 코미디물 < 오부자 >가 흥행에 대성공을 함으로써 일약 유명감독으로 단숨에 가치를 올렸다. 영화 <오부자>는 화목하게 살아가는 오부자(五父子) 가정의 아들 4형제가 합동결혼식을 올리게 된다는 내용의 코미디물로 출연도 이종철 , 김희갑 , 구봉서 , 양훈 등 코미디언들 일색이었다. 이 영화는 1958년 4월 19일 서울 국도극장에서 개봉되어 흥행바람을 일으키더니 그 여세를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제작자 권철휘 는 큰 돈을 거머쥐었고 감독 권영순도 스타덤에 올랐다. < 오부자 >를 감독한 1958년부터 1965년까지는 권영순 으로서는 감독 절정기였다. 감독 활동은 1981년까지 했지만 1958년부터 1965년 가지 이 기간 동안 권영순은 < 흙 > < 표류도 > 같은 문예물에 도전했고 대륙활극 < 정복자 >로 흥행의 줏가를 높였으며 역사물 < 진시 황제와 만리장성 > 에서는 당대의 톱스타 김진규 . 김지미 . 김승호 . 박노식 등을 총출연 시켰으며 흥행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시간 동안이야 말로 권영순 의 연출 감각은 최고 궝영순은 영출자로서 상승 곡선을 그었으며 다양항 장르를 체험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2, 폭 넓은 연출세계- 다양한 장르 섭렵 권영순 감독은 세 번째 작품 < 오부자 >가 흥행에 성공 했지만 코미디물이란 한 장르에 집작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 섭렵에 들어간다. 그 당시 한국영화 게작계 풍토나 감독 자신의 안전 항해를 위하여 계속해서 몇 작품 코미디물을 연출할만한데 권영순은 안주정착하지 않고 재빨리 방향을 바꾼다. 네 번재 작품으로 멜로물 < 한 많은 청춘 >을 감독한다. 이 영화는 소매치기와 그의 도움을 받는 여대생과의 순정 연애를 담았는데 황해. 김미선이 주연했고 안성기 의 아역배우 데뷔작이기도하다. 이때부터 권영순 감독은 거침없는 다양한 장르 섭렵에 돌진한다. 한국영화 감독 중에서 권영순 만큼 여러 장르의 영화를 연출한 감독도 드물다. 통속시대물로 데뷔해서 코미디물, 멜러물, 문예물, 반공물, 앳션물, 검객물, 역사물에서 말년의 괴기물에 이르기까지 권영순 만큼 다양한 영화 쟝르를 소화한 감독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연출시야가 넓고 감각이 빠르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는 작업이다. 그의 연출 작품을 장르별로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 통속시대물 : < 옥단추 >(56) < 옥난 공주와 활빈당 >(60) < 가야금 >(64) * 코미디물 : < 오부자 >(58) < 오해 마세요 >(57) < 8통8반 여반장 >(64) * 멜러물 : < 나는 너를 싫어한다 >(57) < 한 많은 청춘 >(58)< 언제까지나 그대만을 >(59) < 가는 봄 오는 봄 >(59) < 양지를 찾아서 >(59) < 장미의 곡 >(60) < 그리운 얼굴 >(60) < 정과 정 사이에 >(72) < 모정 >(72) <축배> < 산녀 >(73) < 불꺼진 창 >(76) * 역사물 :< 진시 황제와 만리장성 >(62) < 에밀레종 >(68) * 반공물 : < 국회 푸락치 >(74) * 문예물 : < 흙 >(60) < 표류도 >(60) *액션물 : < 목숨을 걸고 >(62) < 남아 일생 >(65) < 무적자 >(66) < 의리에 산다 >(70) < 6인의 난폭자 >(70) * 검객물 : < 비호 >(69) < 쌍용검 >(69) < 무정검 >(69) < 백면검귀 >(69) < 유정검화 >(70) < 복수의 마검 >(70) < 다섯개의 단검 >(71) * 괴기물 : < 대지옥 >(72) < 반수반인 >(75) < 용사왕 >(76) < 사향마곡 >(81) 권영순 이 연출한 50편의 작품을 살펴보면 기본이고, 반공물에, 액션물, 검객물에다 특히 이광수 원작소설 < 흙 >과 박경리 원작소설 < 표류도 > 2편의 문예물이 눈에 띈다. 그리고 권영순 감독은 말련에 괴기물에 심취하여 여기에 매달린 흔적이 역력하다. 그리고 한 때는 다작 감독이기도 했다. 1960년과 1969년에는 한 해에 5편의 영화를 감독하기도 했다 한해에 최고로 10편의 영화를 연출한 한국 감독이 있기도 하지만 한 해에 5편 연출도 대단한 다작으로 봐야 한다. 권영순 감독의 다작과 1970년 전후해서 낮은 제작비의 검객영화를 빠른 기일 내에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빠른 작업 속도가 큰 몫을 했다. 권영순 감독의 현장 작업속도는 영화계에서 최고로 꼽는 기능인이었다. 그가 빨리 작업을 진행한 날은 하루 주야 120커트를 촬영할 정도였다고 그의 조감독들은 증언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3, 현장의 고집 센 기능주의자 권영순 감독은 촬영현장에서 고집 센 독재자였다. 그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작업 진행속도가 빠른 만큼 감각이 눈부실 정도로 빨랐다고 한다. 그만큼 두뇌의 순발력과 회전이 팍팍 돌아가 촬영 현장은 <레디 고> 소리가 거침이 없었다. 그대신 권영순 감독은 촬영현장에서 스탭들의 조언을 철저히 외면하고 배격하는 고집 센 독재자였다고 한다. 그는 조감독이나 촬영기자, 조명 기자의 조언을 일체 듣지 않고 자지 고집대로 밀고 나갔다고 한다. 성격이 과격하고 신경질이 많은 권영순 감독이었지만 신통하리만큼 현장 촬영에는 한 치의 착오도 없었다고 당시의 조감독들은 증언했다. 그이 현장 고집은 유명해서 조감독이 조언하면 ''너가 감독되면 그렇게 하라''고 일축했다. 하기야 이런 고집과 뚝심이 없었으면 어떻게 하루 주야 120커트를 촬영했겠는가? 따라서 제작자들에게 권영순 감독의 인기는 최고였다. 촬영 속도가 빠른 만큼 제작 기간이 단축되고 제작비가 절감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촬영현장에서 진행속도가 빨라도 배우들의 연기지도는 권 감독ㅇ 몸소 시연을 해보일 만큼 적극적인 연출을 했다. 특히 액션물에서 격투 신은 몸을 아끼지 않고 연기지도를 했다고 한다. 이런 현장에서 열정이 촬영이 끝나면 엄습하는 허탈감을 떨치지 못한 탓인지 촬영장 밖에서는 술을 말술로 마셨다고 한다. 촬영장 안에서는 뜨거운 열정의 고집센 독재자였고 일상에서는 술을 사랑해 말술을 사양하지 않은 권영순 감독은 1992년 5월 23일 식도암으로 사망했다. 1923년 출생이니 69세로 일생을 마감했다. 여운이 남은 아쉬운 죽음이었다. 경북 안동 출생으로 본명은 권영계(權寧桂). 일본대학 문학부 졸업. 유족으로는 부인과 스튜디어스 출신 외동딸이 남아 있다. 김화(영화평론가) / 2002년 <프로필> 1923년 3월 9일 경북 안동 출생 1992년 5월 23일 사망 1956년 < 옥단춘 >데뷔 <작품명> 1956 옥단춘 1957 나는 너를 싫어한다 / 오해마세요 1958 오부자 / 한많은 청춘 1959 언제까지나 그대만을 / 가는 봄 오는 봄 / 양지를 찾아서 1960 흙 / 표류도 1962 진시황제와 만리장성 1965 모녀봉 1966 무적자 1968 풍운의 임난야화 1969 무정검 / 백면검귀 1970 유정검화 / 의리에 산다 / 복수마검 / 육인의 난폭자 1971 다섯개의 단검 1972 정과 정 사이에 / 모정 / 대지옥 1973 산녀 /축배 1974 국회프락치 1975 인사여무 / 태백산맥 1976 불꺼진 창 1988 칠삭동이의 설중매 등 50여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