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호
- 감독
- 여소룡
- 제작년도
- 1991
- 출연
- 호혜중, 강홍, 여소룡
짝퉁 이소룡의 역사에서 가장 현기증 나는 대목은, 그들의 다채로운 영어이름이다. 이소룡의 ‘Bruce Lee’ 라는 원래 이름에서 ‘L’을 돌림자 삼아 이렇게나 많은 변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다. 나훈아 로부터 너훈아, 나운하, 나운아, 나윤아, 노훈아가 파생된 것처럼 말이다. 지난 회 < 일소일권 >으로 소개한 거룡은 ‘Bruce Lei’이고, 또 다른 짝퉁 이소룡 배우들인 하종도 는 ‘Bruce Lai’, 유가영은 ‘Bruce Lau’, 장정의는 ‘Bruce Lea’, 우양은 ‘Bruce Ly’, 그리고 이번에 소개할 여소룡 은 이러한 부동산 ‘알박기’ 경쟁에 뒤늦게 뛰어든 관계로 ‘Bruce Le’라는 어딘가 이름을 짓다 만 것 같은 소심한 이름을 썼다. 물론 유가영은 이후 자신의 독자적인 활동으로 더 유명해졌고, 거룡 의 경우 ‘Dragon Lee’라는 보다 멋진 이름을 함께 사용했다. 이미 포화상태인 ‘Lee’를 리모델링하느니 굳이 ‘Bruce’라는 단어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대한남아의 기개를 보여준 신선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물론 그들은 패티김 과 패튀김이 함께 활동했던 것처럼, 이소룡이 죽기 이전부터 짝퉁으로 활동했다. 여소룡 은 수많은 짝퉁들 중 가장 진짜와 닮았던 배우다. 쌍꺼풀이 없어서 클로즈업을 하면 곤란하지만, 멀리서 보면 전혀 분간하지 힘들 정도로 체격이나 움직임이 오리지널 이소룡과 판박이다. 쉽게 말해 ‘얼굴만 가리면’ 이소룡이다. 그런데 여소룡은 한국인이 아니다. 대만 출신으로 홍콩에서 활동하던 중, 역시 홍콩으로 건너가 쇼브라더스에서 활약했던 수많은 한국 액션배우들 중 하나인 남석훈 의 눈에 띄어 한국에서도 활동하게 된 것. 이수현 주연 ‘아시아 슈퍼히어로’ 영화 <중국초인>(1975) 등에 출연했던 그는 이소룡의 < 당산대형 >(1971)의 흥행에 힘입어 나열, 진혜민 등과 함께 그 아류작인 <당산제자>(1976)에 출연했고 이후 <용문비지>(1976), <충렬정무문>(1977), < 벽력용권 >(1978) 등 주로 강홍 감독의 영화에서 짝퉁 이소룡으로 활동했다. 바로 여기서 남석훈을 만나게 됐다. 한편 <황금첩혈>(1979) 등을 연출하는 등 나중에는 감독으로도 활동했다. 화천공사가 거룡을 발굴했다면, 여소룡 은 남아진흥공사에서 만든 남석훈 의 < 속 정무문 >(1977), 태창흥업에서 만든 최우형 의 < 십자수권 >(1978) 등에 출연했다. 역시 홍콩 액션배우 진성이 함께 출연한 <속 정무문>은 단성사에서 개봉해 6만 관객을 동원했으니 제법 성공을 거둔 셈이다(영상도서관 멀티미디어석에서 VOD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요즘 식으로 말하면,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입하지 못한 마이너리거가 한국 프로야구팀에서 와서 활동하는 경우랄까. 지금껏 한국 액션배우들이 홍콩으로 ‘수출’되기만 한 것으로 알지만, 그런 반대의 역사도 있었던 것이다. <십자수권>은 최우형 감독의 데뷔작으로 홍콩, 대만 등지로도 수출되어 <사망마탑>(死亡魔塔)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그는 나름 ‘정통’ 무술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감독으로 < 사형사제 >(1982), < 여걸 청나비 >(1983) 등을 만들었으며 < 기문사육방 >(1983)의 경우 유일하게 영상도서관 멀티미디어석에서 VOD로 관람 가능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쉰 살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떴다. < 십자수권 >에서 여소룡 은 독립운동을 하다 죽은 한국인의 아들로 나온다. 그리고 돈에 팔려간 누이동생을 찾아 군벌들이 일본과 내통하여 혼란스러운 중국 땅에 나타나, 부패 군벌이 주관하는 무술대회에 출전한다. 한국식 ‘만주 웨스턴’ 장르에 < 용쟁호투 >(1973)와 < 사망유희 >(1978)가 적당히 뒤섞인 이 이야기에서 여소룡을 두고 이소룡과 가장 닮았다고 말하는 건, 바로 노란색 트레이닝복 ‘간지’가 그와 무척 흡사했기 때문이다. < 일소일권 >의 거룡의 노란색 트레이닝복, 혹은 역시 거룡이 출연했던 <쾌권괴초>(1979)에서 장일도가 입었던 노란색 트레이닝복이 지나치게 굵은 옆줄로 인해 동일시를 방해했다면, 여소룡은 정말 비슷하다. 하지만 같은 의상이라도 홍콩의 도심이 아닌 한국의 용인 민속촌을 배경으로 삼았기에, <속 정무문>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자와 눈 내리는 민속촌을 거닐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다소 어안이 벙벙하다. 그나마 <십자수권>은 <사망유희>의 마지막 액션신이 펼쳐지던 5층 구조를 그대로 모방했기에 나름 실감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런데 오리지널보다 더 강한 볼거리를 액션을 선보여야 한다는 강박 때문인지, 한 층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고수는 수십 마리의 뱀을 내던지며 그 뱀으로 목을 조르며 싸우는 기괴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액션 연출이 뛰어나건 어쨌건 간에 어쩔 수 없는 B급의 향기랄까. 그럼에도 다른 짝퉁 이소룡 영화들과 차별점을 갖는 부분이라면, 역시 ‘흑형’과의 대결이다. 사실 이소룡이 < 용쟁호투 >에서 실제 가라데 고수이자 배우인 짐 켈리, < 사망유희 >에서 카림 압둘 자바 등 흑형들과 싸우는 장면은 꽤 중요한 이미지다. < 십자수권 >에서 다채로운 권법을 사용하고 화려한 돌려차기를 구사하는 흑형과의 대결은 꽤 볼만하다. 가령 <쾌권괴초> 등에 등장했던 흑인 배우는 단지 구색 맞추기였을 뿐, 너무나 어이없는 무술 동작으로 실망만 안겨준 것에 비하면 상당한 퀄리티다. 이렇듯 왠지 서오릉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중국인 여소룡 과 머리에 두건을 두른 흑형이 쿵푸 대결을 벌이는 기묘한 풍경에 괜히 숙연해진다. 오른쪽 칼을 든 사람이 양사 더 숙연해지는 이유는 당당한 체구의 배우 양사 때문이다. < 용쟁호투 >(1973)에서 이소룡과 대결을 펼쳤던 그는 < 십자수권 >에서는 여소룡 과 싸웠고, <쾌권괴초>에서는 장일도와 싸웠다. 급기야 < 용재강호 >(1986)에서는 이소룡의 아들 브랜든 리와도 싸웠다. 말하자면 이소룡과 그의 아들, 그리고 그의 아류들과도 다 싸웠다. B무비이기에 가능한 설정일 텐데, 세상 어디 그런 배우가 있을까. 또 하나, ‘백옥과도 같은’ 피부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미모로만 따지면 개인적으로 역대 한국 여배우 중 세 손가락 중 한 명으로까지 꼽고 싶은 여수진의 존재다. 박노식 의 < 광녀 >(1975)에서 박노식의 연인이었고, < 폭력은 없다 >(1975)에서 박형사(박노식)가 오랫동안 지켜봐온 광일(원선)의 연인으로도 등장한다. 그야말로 이런저런 B무비에서만 활동하다 사라졌던 안타까운 배우다. 여수진 여소룡 감독: 최우영 각본: 허진 개봉극장: 청계
남.기.남 앞으로 해도 뒤로 해도 마찬가지인 이 이름은 마땅히 이 코너에서 다뤄져야 할 것이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그의 등장을 기다려 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무언가를 쓰려 하면 곤란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그는 남철 도, 남성남 도 아닌 남기남 이기 때문이다. 그는 임권택 보다 늦게 데뷔했지만 더 많은 수의 작품을 연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김청기 처럼 아동영화에 영화 인생을 걸지도 않았지만 현재까지 깨지지 않는 아동영화의 최고 흥행작품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영구와 땡칠이 >는 애초에 정식 극장 개봉도 못 하고 어린이회관을 전전하였으나 폭발적인 인기에 뒤늦게 극장으로 확대 개봉한 최초이자 최후의 사례다. 영화인들은 180~250만 사이를 최종스코어로 짐작하는데, 이는 어린이회관 상영에 대한 집계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뿐이면 쉬울 것이다. 그의 현장은 전설이 만들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그는 중화권을 돌며 짝퉁 이소룡인 ‘여소룡’과 권격영화를 찍을 당시, 허가도 받지 않고 대만의 한 사찰에서 촬영을 감행했다. 해당 사찰의 관련자들이 저지했음은 당연지사. 연출부와 제작부가 사정을 설명하고 옥신각신하다가 도저히 허가를 받을 수 없어 남 감독에게 더 이상 촬영이 어렵겠다고 전하자 그는 말했다고 한다. “찍긴 뭘 더 찍어. 다 찍었어. 철수!” 이뿐만이 아니다, 임하룡 , 이성미 와 함께 한 < 철부지 >의 촬영 현장은 한국 영화사상 가장 짧은 촬영 기간으로 알려져 있는데, 촬영 6일 차가 되던 날 점심시간이 되어 연출부 한 명이 “감독님 식사하시고 찍으시죠.”라고 말하니 “뭘 더해. 다 찍었는데. 밥 먹고 철수!”라고 응수했다고 전해진다. 제작 스태프조차 알 수 없었던 남기남 연출의 마술. <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큘라 >에 출연했던 개그맨 정종철 은 본인의 경험을 이렇게 회고하기도 했다. “대체 내가 뭘 하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편집본을 보니 영화가 되어 있는 거예요.” 띠요옹~ 남기남 감독과 작품들 남기남 의 영화는 그런 것이었다. 70년대 유신정권하에서 대충 빨리 찍어 스크린쿼터를 해결하고 외화를 수입하려는 목적에만 눈이 벌개있던 제작사들에게 남기남은 소중한 존재였다. 적은 제작비로 휘몰아치듯 영화를 찍어 눈 깜짝할 새 개봉까지 해치워버리는 남기남은 일종의 해결사였고, 가끔씩 흥행에도 대박까지 터트리기도 하는 영화 제작자들의 로또이기도 했다.(실제로 남기남은 고 이주일 과 함께한 < 평양맨발 >의 흥행으로 정부가 선출한 우수감독에 뽑혀 할리우드에 가기도 했다. 정부가 우수감독도 뽑아 할리우드도 보내주고 참 좋았던 시절이었나 보다.) 그중에서도 < 태권소년 어니와 마스터 킴 >은 가장 재미있는 사례다. 이 영화는 1986년 미국 ABC에서 방송된 <태권소년 어니>라는 드라마로 인기가 높아진 ‘어니 리예스 주니어’를 기용해 만들어진 영화다.(그는 스턴트맨을 거쳐 액션배우로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이 드라마는 한국에도 방송되어 큰 인기를 모았다. 1989년 12월에 개봉한 <태권소년 어니와 마스터 킴>의 광고 카피는 “겨울방학 특선! 태권소년 어니가 영화에 나왔대! 잘났어 정말! 태권소년 어니!”였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은 어니가 아니라 마스터 킴이어서 과연 남기남 감독이라는 감탄을 자아낸다. 내용이 무슨 의미냐 하는 생각도 들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어느날 미국 워싱턴에 살고 있는 재미교포 ‘하바드 박’이 살해당한다. 그는 헤로인 밀수 조직과 연관이 되어 있었던 것으로 의심을 받는다. 그와 절친이었던 재미한인회 회장 신성일(끝까지 극 중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다.)은 하바드 박을 친딸처럼 여기며 보살피는 와중, 유학을 위해 무작정 미국에 온 마스터 킴을 만나게 된다. 집도 절도 없는 마스터 킴은 비슷한 처지의 고아 마이클(어니 리예스 주니어의 극 중 이름은 마이클이다. 고로, 극 중에 ‘어니’라는 존재는 없다.) 만나게 된다. 고아원에서 배운 태권도를 수준급으로 구사하는 마이클과 마스터 킴은 친구가 되고, 그 둘을 의기투합하여 폭력과 마약, 섹스의 위험에 노출된 미국 청소년들을 계도하기 위해 태권도 도장을 차리게 된다. 그리고 하바드 박을 쫓던 헤로인 밀매상들은 마스터 킴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고 도장에 쳐들어오게 되고 한판 승부를 벌이는데... (좌)마스터 킴과 마이클의 첫 대련 '허허, 이 녀석이!' (우)'어때 우리 이제 친구 되는게.' '난 너 같은 부랑아와 친구가 되고 싶지 않아.' 어설픈 연기, 계속 헛갈리는 내용, ‘ 남기남 ’이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되는 유치한 촬영 등을 조금만 참을 수 있다면 영화는 나름대로 즐길 만하다. 무술 유단자 바비 J 킴 과 어니의 무술 연기는 상당한 수준이며(남기남 감독은 한 때 무협영화의 흥행사였음을 떠올리자) 유해한 환경에 노출된 미국 청년들을 태권도로 교화하자는 애국적 스토리가 심금을 울릴랑말랑 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전설이 된 이유는 영화 밖에 있다. 이 영화는 1989년 12월에 개봉을 했다. 89년 7월에 남기남 감독이 연출한 또 한 편의 영화가 개봉했는데 그게 < 영구와 땡칠이 >다. 한 해에 그가 감독한 영화가 복수로 개봉하는 일이 드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 태권소년 어니와 마스터 킴 >이 <영구와 땡칠이>가 촬영되는 중간에 찍혀졌다면 얘기가 조금 다르다. 남기남 감독은 <영구와 땡칠이>의 촬영 도중 세트 제작을 위해 1주일의 시간이 비었다. 미리 스케쥴을 통보받은 남 감독은 제작자 몰래 비는 시간 동안 미국에서 다른 영화 한 편을 더 감독하기로 계약하고, 스태프 6명을 데리고 출국해버렸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이유는 이렇지만, 항간엔 심형래 의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 있는 상태여서 남기남 감독이 화가 나 그랬다는 설도 있다. 실제로 89년 개봉한 김청기 감독의 우뢰매 시리즈 5편 < 뉴머신 우뢰매 >는 그런 심형래를 빼고 ‘ 한정호 ’라는 배우가 에스퍼맨을 연기했다. 이 역시 심형래의 폭거(?)로 인한 일이었으나, 그가 우뢰매에서 빠지자 우뢰매와 심형래의 인기가 동반하락, 6편에서 에스퍼맨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곳에서 <태권소년 어니와 마스터 킴>을 뚝딱 촬영하고 돌아와 <영구와 땡칠이>의 남은 부분 촬영을 3일 만에 완료한 것이다. 게다가 이 영화의 주인공인 마스터 킴을 맡은 ‘ 바비 J 킴 ’을 왕년의 액션스타 ‘바비 킴’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다른 사람이다. 바비 킴을 따라한 콧수염 때문에 멀리서 보면 얼추 비슷해 보이긴 하는데 가까이서 보면 그냥 한눈에 봐도 다른 사람이다. 바비 J 킴은 바비 킴처럼 마초의 기운이 희번덕거리지 않는다. 맘씨 좋은 아저씨 같달까. ‘폭력과 마약, 섹스에 노출되어 있는 미국 청소년들을 태권도로 교화시켜보겠습니다.’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아저씨가요?’라고 말하고 싶다. 만약 같은 대사를 원조 ‘바비 킴’이 했다면? ‘암요 그러믄요 미국 꼬맹이들은 혼 좀 나야지요.’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소룡, 성룡을 패러디한 배우는 많았지만 한국 액션배우를 패러디한 배우는 바비 J 킴이 유일하지 않았을까? 누군가 속은 기분이 든다면 이름에 J가 분명히 들어가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하기 바란다. (누군가는 ‘ 남충일 ’ 무술 감독 같다는 이야기도 하는데 확인된 바는 없다.) 마스터 킴의 사람 좋은 4종 세트 < 태권소년 어니와 마스터 킴 >은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 ‘어니’ 이름을 빌어 졸속으로 제작된 겨울방학용 어린이 영화였다. 포스터를 봐도 그건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영화의 기둥줄거리가 헤로인 거래에 연루된 ‘하바드 박’의 죽음이고 여주인공이 납치되어 강간의 위험에 빠지질 않나(덩치가 산만한 외국 배우가 벨트를 푸는 시늉을 하는 장면이 있다) 급기야 태권소년 마이클이 별다른 힘도 못써 보고 총에 맞아 사망하는 아스트랄 한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진다. 영화의 각본을 쓴 사람은 홍종원 이라는 설과 장현수 라는(< 게임의 법칙 >의 그 장현수 감독이다.) 설이 있는데, 네이버 검색에는 장현수, KMDb에는 홍종원이다. 남기남 과 꾸준히 작업을 한 사람이라는 점을 보면 홍종원이 맞는 것 같은데 구글 검색에는 아예 장현수와 남기남이 공동감독으로 올라가 있으니 참 어지러운 지경이다. 하여간 각본을 누가 썼든 ‘감독 남기남’이라는 크레디트 아래서는 크게 의미는 없을 것이다. 남기남이라는 브랜드는 강하다. 남기남 감독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한물간 직업 영화감독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다. 현재까지 현역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2010년 < 동자 대소동 >, 2011년 <달무리>를 연출했다. 마치 영화를 공장에서 뽑아내듯 해치웠던 그의 감독으로서의 태도에는 이런저런 이견이 있다. 하지만 그가 했던 작업들은 철저히 대중들의 눈높이에서 기획되고 만들어진 영화들이었다. ‘3류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별명처럼 따라붙으면서도 묵묵히 영화 한 길을 걸어온 이 노장은 죽기 전까지 “그럼 다 찍지, 남기남?”이라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영화 인생을 이어갈 것이다. 그는 한창 무협영화 감독으로 이름을 날릴 무렵인 70년대 언젠가 촬영차 고향 광주로 내려갔을 때, ‘환영. 천재감독 남기남’이라는 플래카드를 보고 영화에서 예술적인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아예 지워버렸다고 한다. 예술인으로서의 생존이 아닌, 인간으로서 생존하기 위한 직업으로 영화를 규정지은 것이다. ‘장인’이라고 부르긴 힘들겠지만, 자신의 직업과 주어진 사명에 철저하게 몰입했던 영화인으로서 존경받을 구석은 분명히 있다고 본다. 1년에 9편을 찍는 괴력은 그저 빨리 찍는데 통달했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해내겠다는 불굴의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천재 감독’에서부터 ‘저질’까지의 극단을 오갔던 남기남 감독에게 나는 ‘음지의 거장’이라는 칭호를 바치고 싶다. 바비 J 킴 ERNIE RAYES.JR 신성일 감독: 남기남 각본: 홍종원 개봉극장: 한가람 관람인원: 203(서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