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PD]일상탈출! 동백꽃 향기 그윽한 여수
- 제작년도
- 2010
최근 OTT 드라마 <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2021)와 JTBC의 <전체관람가+: 숏버스터>의 한 에피소드인 <미지의 세계 시즌투에피원>(2022)와 제작자이자 연출자로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 말이야 바른 말이지 >(2022) 등으로 부쩍 바빠 보이지만, 윤성호 감독의 다산성은 동시대 그 어떤 크리에이터에 뒤지지 않는다. 그 종류도 다양하여, 단편영화로 시작한 그는 다큐멘터리와 실험성 가득 한 작품을 거쳐 장편영화를 경유한 후 웹드라마라는 형식을 개척하더니 지상파와 케이블과 OTT에 이르렀다. 20여 년 동안 20편의 단편과 3편의 장편과 15편의 드라마를 만든 숨가쁜 시간! 여기서 쉼터 같은 작품이 하나 있다면, 바로 < 도약선생 >(2011)이다. 이 자유분방한 영화는 놀랍게도(!) 문화체육관광부와 아리랑TV가 제공하는 공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국의 도시를 알리기 위한 시리즈 중 한 편이었다. 윤성호 감독은 대구를 배경으로 <도약선생>을 만들었고, 윤태용 감독은 서울을 배경으로 < 서울 >을, 배창호 감독은 제주에서 < 여행 >을, 김성호 감독은 부산에서 < 그녀에게 >를, 전계수 감독은 춘천에서 < 뭘 또 그렇게까지 >를, 진광교 감독은 여수에서 < 려수 >를, 문승욱 감독은 인천에서 < 시티 오브 크레인 >을 연출했다. 65분이라는 애매한 러닝타임을 지닌, 스포츠 예능을 풍자하고 있는 건지 스포츠 영화를 조금 독특하게 만든 건지 알 수 없는 이 영화는 20세기까진 한국영화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취향의 B 무비였다. 영상원 전문사 과정을 졸업하면서 만든 단편 < 졸업영화 >(2006)로 부산국제영화제 선재상을 수상하고 첫 장편 < 은하해방전선 >(2007)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던 윤성호 감독은 이후 단편으론 ‘두근두근’ 시리즈를, 웹드라마로는 <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2010)를 내놓으며 왕성한 30대를 보내고 있었다. 이때 제안 하나를 받는다. 아리랑 TV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으로 제공하는 ‘영화, 한국을 만나다’라는 시리즈는 각 도시를 배경으로 그 지역의 특색을 살리는 프로젝트였다. 그의 도시는 순천. 윤성호 감독은 순천 송광사에 미국의 흑인 래퍼가 힐링 하러 온 이야기인 <소울>이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이때 갑자기 제작사에서 도시를 바꾸었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는 대구에서 영화를 찍으면 제작 지원과 현물 협찬이 들어온다는 제안이었고, 윤성호 감독은 받아들인다. 처음 기획한 제목은 ‘육상소녀’였다. 의도는 진지했다. 육상을 빙자해 ‘창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원래 들어오기로 한 제작비가 들어오지 않았던 것. 그래서 장면들을 빼기 시작했고, 몇몇 장면들은 즉흥적인 예능처럼 찍었다. 엔딩에서 영화를 황급하게 닫는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고, 러닝타임은 한 시간을 조금 넘기는 65분이 되었다. 제목은 <도약선생>. 주인공은 윤성호의 페르소나인 박혁권, 당시 웹드라마로 인연을 맺은 걸그룹 밀크 출신의 박재영(본명 박희본), 그리고 처음 함께 작업하는 나수윤이었다. 우정 역의 이우정과 원식 역의 나수윤. 이우정은 윤성호 감독의 연출부 출신으로 <은하해방전선>부터 시작해 총 10편의 윤성호 감독 작품에 배우로 출연했다. 2008년부터 단편을 만들기 시작했고 2020년엔 첫 장편 < 최선의 삶 >을 내놓았다. 나수윤은 <도약선생>에서 윤성호 감독과 처음 만나, 이후 여러 편의 웹드라마에서 함께 했다. 내용은 간단하다. 동성 친구인 우정(이우정)과 원식(나수윤). 남친이 생긴 우정은 대구에서 서울로 떠나게 되고, 원식은 매달린다. 우정은 원식에게 “뭔가를 보여 줘. 크고 높고 늠름한 걸”이라고 말하고, 원식은 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전영록 코치(박혁권)에게 장대높이뛰기를 배운다. 여기에 재영(박재영)이 합류하고, 그들은 다양한 트레이닝을 통해 조금씩 도약한다. <도약선생>은 윤성호 감독의 단편과 웹드라마를 꾸준히 ‘복용’해온 관객에겐 익숙하지만, 그의 영화 문법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꽤 난해한 도전이 될 수도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가 낯선 가장 큰 이유는 ‘생뚱맞음’이다. 이것은 윤성호 감독의 클리셰이자 유머 감각인데, 그 핵심은 ‘서사의 실험’이다. 파괴까지는 아니지만, 윤성호의 영화는 ‘일반적인’ 극영화의 구성과 사뭇 다르다. 느슨한 챕터 구성인 <도약선생>은 한 국면이 넘어갈 때마다, “원식, 불심검문에 걸리다” “코치님은 채식주의다”라는 식으로 쨍한 내레이션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흥미로운 건, 내레이션의 화자가 한 명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다중 시점 서사는 신선하면서도 한편으론 관객이 서사에 몰입하는 걸 교란시킨다. 여러 명의 화자들은 때론 장면을 멈추고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영화라는 장치’를 드러내는 건 그의 필모그래피 중 전반부를 대표하는 방식이었다. (왼쪽 사진) 윤성호 감독의 작품엔 종종 동료 감독들이 카메오로 출연한다. 육상 체험장의 사회자는 최근 < 잔고 : 분노의 적자 >를 내놓은 한국 B 무비의 스페셜리스트 백승기 감독이다. (오른쪽 사진) <도약선생>은 배우 김종수의 초기작 중 한 편이다. 그는 대구스타디움 관리인으로 출연한다. 원래 썼던 시나리오가 어떤 완결성을 지녔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축약’된 <도약선생>에서 또 하나의 포인트는, 툭툭 끊기고 난데없으며 즉흥적인 톤이 주는 묘한 아우라다. 엔딩 크레디트에서 “실제 장대높이뛰기 선수들의 기록과 연습 방식과는 상이함”을 경고했듯, <도약선생>에서 전영록 코치(내내 가수 전영록의 잠자리 안경을 쓰고 나오는)의 트레이닝 방법은 독특하다. 기본적인 러닝에서 시작해 요가를 경유해 평행봉과 점핑을 거쳐 감수성을 기르기 위한 시 쓰기 수업까지 이어진다. 어떠한 계획도 없이 순전히 우발적으로 이어지는 듯한 이 과정을 장대높이뛰기를 위한 트레이닝 커리큘럼으로 제시하는 셈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스포츠 영화의 서사 구조를 따르는 듯하면서 그 내용은 예능과 다름없는, 변칙적 서사 전개다. 재밌는 대목은 실제로 대구 육상 스타디움이 등장하는 부분이다. 잔디에 들어간 죄로 관리인(김종수)에게 야단을 맡는 전영록과 선수들 앞에 갑자기 전영록의 군대 후임이었던 김 병장이 등장하고, 여러 후임들이 합세한 갑작스런 술자리가 이어지며, 그들은 군대 시절을 회상하고, 갑자기 모두 일어나 소주병에 회오리를 일으키며 “수평의 운동 에너지를 수직의 위치 에너지로”를 이야기한다. 도대체 어떻게 마무리될지 알 수 없는 고삐 풀린 서사 전개는, 갑작스레 장대높이뛰기가 “수평의 운동 에너지를 수직의 위치 에너지로”바꾸는 스포츠라는 대사가 등장함으로써 의외의 방식으로 봉합된다. (왼쪽 사진) “수평의 운동 에너지를 수직의 위치 에너지로!” 장대높이뛰기를 요약하는 이 영화의 모토다. 소주병을 잡고 있는 사람은 < 장례식의 멤버 >(2009)를 연출한 백승빈 감독이다. (오른쪽 사진) 얼굴에 붕대를 감고 연을 날리고 있는 전영록. 그의 모습 위로 노래 ‘도약은 패턴’이 흐른다. 이처럼 <도약선생>은 마치 아나키스트처럼 ‘영화적 서사’라는 것을 뒤흔들고, 그러면서도 정말 신기하게도 소정의 기승전결을 갖추며 전진한다. 그리고 영화는 갑작스레 “우연히도 결전의 날”이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절정에 다다르고, 갑작스런 이사를 하는 우정 앞에, 원식 역시 갑작스레 대미를 장식한다. “애정의 대미를 장식하고 싶은 건지, 대미를 장식하고 싶어서 애정을 길어올리는 건지” 알 수 없는 이 상황은, 어쩌면 영화 전체의 전반적인 주객 전도 상황을 요약하는 듯하며, 역시 갑작스레 전영록이 지니고 있던 치명적 문제가 폭로된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샹송 톤의 주제가 ‘도약은 패턴’이 흐르면서 영화를 닫는다. 여기서 윤성호 감독이 직접 쓴 가사는 음미할 만하다. “도약, 슬픈 믿음의 도약/약도, 약도를 들고 도착/도착, 제 시간에 도착/아아 그러나 나는 성도착/애착, 가쁜 착오들의 고착”으로 시작되는 가사는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이렇게 마무리된다. “패턴, 자기만의 패턴/아니 어쩌면 자기 기만의 패턴/유턴, 너를 목격하고 유턴/아니 어쩌면 너에게로 돌아가는 P턴/그렇게 나는 아직 인턴, 너에게 훌쩍/뛰었다 착지하는 나는 영원한 인턴/랜턴, 너는 나를 비추는 랜턴/윈스턴, 피아노는 역시 조지 윈스턴/볼턴, 이청용이 있는 볼턴/워싱턴, 오바마가 사는 워싱턴.” 한국영화의 삽입곡 중, 이토록 중독성 있는 라임을 만나 본 적이 있는가! 격조 있는 대미다.
1. 1973년 3월 31일자 중앙일보의 파리 특파원이 쓴 한 기사는 다음과 같은 울분에 찬 문장으로 시작되고 있다. “한국에서 로케 촬영한 <당수태권도>란 영화가 <변증법은 벽돌장을 깨뜨릴 수 있는가>라는 선전 문귀와 함께 완전한 공산주의 계급투쟁을 위한 영화로 둔갑, 파리에서 상영되고 있어 자유민주주의 한국이라는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다.” 이 성실한 특파원은 그저 소문만 듣고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직접 영화를 보고(“<당수태권도>의 토키가 중국어이기 때문에 원래의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이 영화에 대한 관련 평들을 찾아보고(“‘역사적 계급투쟁의 전위이다’라는 유력지 르몽드의 평까지 받았다”) 제작자까지 꼼꼼히 살펴본 후(“이 작품은 비공산계인 Ngay Hong에 의해서 제작된 영화이다”) 이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프랑스의 많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무조건 공산주의 선전물”로 받아들이게 했는지에 관해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 “문제의 묘는 상황의식을 가한 자막의 번역이 이 비공산주의 영화에 색채를 바꾸게 한 데 있다. 즉 완전히 자막 번역을 임의로 해 관중을 오도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또한 한국인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자막을 달아 이곳에서 상영중인 이 영화가 한국에서 촬영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한국인들이 등장하고 특히 우리의 자랑인 태권도를 삼고 있다는 데 큰 문제점이 있다.” 1) ‘우리의 자랑인 태권도’를 내세운 공산주의 선전영화라니! 『중앙일보』의 보도 직후 중앙정보부, 치안본부, 경찰서, 문공부가 일제히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후속 기사에 따르면 진상은 다음과 같다. 문공부에 따르면 이 영화는 “합작영화가 아닌 순수한 우리나라 영화” < 정도 >인데, <정도>의 제작사 한진흥업은 제작에 앞서 홍콩의 장강영화사에 이 영화를 수출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여기에는 동남아지역상영권 양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수출신고절차를 밟기 전에 한진에서 장강으로 필름을 보냈고, 장강이 <당수태권도>라는 제목의 중국어 더빙 버전을 프랑스의 ‘계급투쟁촉진회’에 이중수출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심각한 ‘오용’은 장강이라는 홍콩 영화사의 농간의 결과인가? 마침 영상자료원에는 이 영화 <정도>의 검열서류가 남아있다. 이 서류들에는 영화제작신고서, 진홍열, 백표(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진호 세 명의 홍콩배우들이 출연을 요청하는 국산극영화 외국배우 출연 승인 신청서와 장강과의 매도계약서 등이 포함되어 있다. 매도계약서에 따르면 한진흥업과 장강영화사 사이의 계약은 1972년 2월 27일에 이루어졌다. 영화제작신고서는 이 영화의 제작기간이 1972년 10월 10일부터 1973년 1월 30일까지라고 명기하고 있다. <정도>는 1972년 12월 22일 문공부로부터 검열승인을 받고, 1973년 5월 12일 스카라 극장에서 개봉하였다. 그런데 홍콩 필름아카이브에 따르면 <당수태권도>가 홍콩에서 개봉한 것은 이보다 만 1년 가까이 앞선 1972년 6월 20일이다. 이 검열 서류는 극히 의심스럽다. 만약 홍콩 필름 아카이브의 기록이 맞는다면 한진은 이미 존재하는 영화의 허위 제작 신고를 한 셈이다. 덧붙이자면 <정도>의 감독은 강유신, 오리지날 시나리오 및 심의대본의 작가는 유일수이다. 홍콩영화 <당수태권도>의 감독은 도광계(屠光啟), 시나리오는 예광(倪匡)이다. 강유신은 한진흥업의 전신인 대양영화사의 < 낙조 >(1968)로 감독 데뷔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정도>는 그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감독 작품이다. 1930년대말 상하이 시기부터 영화를 찍은 도광계는 1950년대 홍콩 우파 내셔날리스트를 대표하는 감독이었으며, 이후 쇼브라더스 전속으로 활약한 관록의 베테랑이다. 2) 1960년대 중후반 신필름 영화들의 각본을 담당했던 시나리오 작가 유일수는 이 시기 ‘용팔이’ 시리즈로 박노식이 그의 독특한 스타 페르소나를 만들어가는데 공조하고 있었다.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獨臂刀 >(장철, 1967)의 작가로 시나리오 경력을 시작한 예광은 < 보표 保鏢 > < 철수무정 鐵手無情 > <십삼태보 十三太保> < 복수 報仇 > 등 이 시기 장철 영화의 가장 중요한 공헌자이자, 홍콩영화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속필과 다작의 스타 작가였다.(그는 이소룡의 < 정무문 > 각본에도 참여하였다.) 이쯤에서 당신은 물을 것이다. 그럼 대체 <정도>/<당수태권도>는 누가, 언제, 어디에서 만들었다는 말인가? 적어도 서식의 완비라는 관료들의 꿈과 장사꾼의 야합이 만들어낸 저 서류들 안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무망해 보인다. 진정한 ‘위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바로 이 서류 양식들 안에서일 것이다. 간단히 말해 <정도>/<당수태권도>는 1970년대 한국-홍콩, 한국-대만 여타 등지에서 횡행했던 ‘합작’의 전형적인 형태에 다름 아니다. 이 결합의 양상은 다음과 같다. 아열대 기후의 홍콩은 가을과 겨울이 포착가능하며 오래된 중국적 풍경을 대체할 수 있는 장소가(고궁과 절) 있는 한국에서의 야외 촬영을 선호했으며, 스튜디오 촬영은 홍콩 쪽에서 담당하였다. 각자의 인건비와 상호 체류비를 담당하되 한국 내 배급권은 한국 회사가, 그 외 지역의 배급권은 광대한 화교 문화권 전역에 배급망을 연결해놓은 홍콩 회사에 귀속되었다. 크레딧, 특히 영화의 주요 창작 주체로 상정되는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의 이름은 각각의 지역 버전에 따라 그곳의 관객들이 선호하거나 익숙한 이름만을 남기고 그 외의 이름들은 지웠다. 무엇보다 한국 같은 강력한 국가통제와 외화 유출 억제가 영화 정책의 이름으로 자행되던 장소에서 한국인 감독(제작자, 시나리오 작가)의 이름을 단 합작영화란 국내법과 산업적 재생산 모두를 충족시키는 기획이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복수의 기원의 영화가 발생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만이 아니다. 진정 <정도>/<당수태권도>의 사례가 흥미로워지는 것은 여기에 이미 내재된 포스트프로덕션적 탄력성이라고 할만한 것이다. 이 영화(들)는 이 부류의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이 서로 다른 편집의, 서로 다른 더빙 버전으로 각각의 영화가 상영되는 지역의 관객들에게 어필하고자 하였다. 당시 후시녹음은 다양한 언어권에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했던 홍콩 영화산업의 중요한 관행이었다. 한국은 1960년대 이래 후시녹음의 탄탄한 스킬을 갖추고 있는 나라 중 하나였다. 여기서부터 더 확장된 지역에서의 자유로운 더빙까지의 거리는 한 끝 차이다. 즉, <정도>/<당수태권도>는 조금 이른 시기이기는 하지만 이 부류의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이 서로 다른 편집의, 서로 다른 더빙 버전으로 각각의 영화가 상영되는 지역의 관객들에게 어필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이 영화(들)은 무수한 전용 가능성을 향해 이미 열려 있는 것이다. 물론 이때의 전용 가능성이란 소비되는 지역에 따른 더 적절한 상품으로의 교체 가능성에 지나지 않지만. 2. “한국인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자막”(이를테면 “착취당하는 자를 위해서는 건배를, 착취하는 자에게는 절멸을”과 같은 자막을 본 1973년의 파리 특파원이 느꼈을 기함을 한번 상상해보라)으로 점철된 르네 비에네의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는 한국인과 중국인 대 일본인이라는 민족적 공분을 국가-자본주의의 앞잡이인 관료들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의 항거라는 계급적 대립으로 옮겨온다. 이 “이 최초의 전적인 전용영화”는 1967년 비에네가 『인터내셔날 상황주의자 제11호』에 기고한 「상황주의자들과 정치 및 예술에 반대하는 새로운 행동형태」 3) 라는 글에서 제시한 방법론의 현실태로 등장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이전 세기의 혁명투쟁에서 이어받은 형식과 카테고리를 사용하여 체제 전복활동에 힘써왔다. 나는 과거로부터의 어떤 준거도 갖지 않는 수단을 통해 우리들의 이의 제기에 관한 표현을 완성할 것을 제안한다”는 문장으로부터 시작하는 이 선동적인 글에서 비에네는 ”스펙타클의 명제 그 자체를 전용(détournement)”할 것을 주장한다. 스펙타클 사회에 대항하는 실천이 그 자체로 스펙타클이 되어간다면, 여기에 회수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스펙타클의 미디어를 전용할 것. 전용의 대상으로 적절한 것은 포트로망과 포르노 사진, 대중잡지, 코믹스, 그리고 예술적 이데올로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상업영화와 같은 것들이다. “특히 상업영화를 우리의 것으로 하자.” 르네 비에네는 자신이 공언한 바를 적극적으로 실천하였다. 그는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에 이어서 이시이 테루오의 <불량누님전>과 스즈키 노리부미의 <공포여학교>를 전용한 <카마레로부터 온 여자들 Girl from Kamare>(1974)이라는 또 한편의 ‘전용’ 영화를 만들었다. 1970년대 초 일본의 도에이 영화사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섹스와 폭력의 결합태로서 소위 ‘포르노 액션’으로 불리웠던 이 영화들은 노골적인 여성 신체의 전시와 착취, 그리고 젠더적 불안까지를 겸비한 포스트 68적 일본 대중문화의 급진성을 입증하는 실례였으며 또한 전세계 익스플로이테이션 필름 시장의 중요한 공급물로 기능하였다. 즉, 이 영화들 역시 이 시장에서 빈번히 이루어졌던 바, <정도>/<당수태권도>와 마찬가지로 상영장소와 형태에 따른 부단히 탄력적인 대응이 강제되었으며 더빙과 재편집에 자유로웠다. 즉 전세계 대중들에게 가장 싸게 공급되는 염가의 상품으로서 이 영화들은 도작과 도용의 가능성에 활짝 열려 있었다. 르네 비에네는 이 두 번째 전용영화를 통해 국가와 시장과 교회의 권위에 대한 전복을 꾀하였다. 말하자면 이 상황주의자의 실천은 1970년대적인 의미연관은 차치하고라도 상품으로서 어떻게 상품에 대항할 수 있는가, 혹은 상황주의자의 어법을 따라하자면 스펙터클로서 어떻게 스펙터클에 저항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는 동어반복이지만 영화가 전적으로 ‘상품’이 되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지금 의도적으로 ‘상품’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를테면 <정도>/<당수태권도> 같은 영화를 두고 국가적 귀속을 혹은 오리지날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해보인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영화를 보는 자들은 이 귀속의 문제에 거의 무감하기 때문이다. 누가 상품을 만든 자를, 상품의 국적을 따지겠는가? 아마도 이 지점이야말로 왜 1970년대 한국에서 이와 같은 영화들이 그토록 유독한 저질영화로 자리매김되었는지, 또는 (거개가 골계로 끝나버렸지만) ‘태권도’라는 국가적 기표를 덧씌우는데 그토록 희화적으로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지가 아닌 담론적 차원에서) 매달렸는지를 해명할 수 있는 지점일 것이다. 이 영화들은 할리우드가 생산하는 고급 산물들의 반대편에 놓인 가장 싼 상품으로서, 싼 값에 더 많은 이윤을 얻고자 하는 자본가들에 의해 잘라지고 이어붙여지는 것을 대가로, 이 지역 영화 중 최초로 말 그대로 글로벌한 이미지-상품으로 소비되었다. 혹은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비 속에서 이 영화들은 상품의 형태를 얻고 비로소 세계성의 획득에 성공하였다고. 이 싸구려 상품은 고급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찬가지로 염가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자들, 전세계의 하위계급자들이 향유하는 이미지-상품으로 기능하였다. 아마도 20세기 영화의 위계 중에서 가장 최하위에 위치해 있을 이 영화들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면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포스트콜로니얼한 열정과 분노, 그리고 장사꾼들의 잇속(과 1970년대 한국이라는 저 유신 시대가 낳은 기괴한 이미지의 유통)으로 형성된 기이한 야합의 산물인 이 이미지-상품은 말하자면 ‘빈곤한 이미지’(히토 슈타이얼)의 영화적 전신이며, <벽돌은 변증법을 깰 수 있는가>라는 상황주의자의 실천은 그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혹은 상황주의의 시효와도 상관없이 무한한 도작과 도용이라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제시된 하나의 가능성으로 읽혀져야 한다. 3. 2000년대 이후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를 한국어로 처음 소개한 글은 2004년 4월 『씨네21』에 실린 아드리앙 공보의 「영화의 유용? 그 위험한 변신」이다. 4) 유운성은 아드리앙 공보가 전용의 ‘원본’으로 제시한 <당수태권도 唐手跆拳道>와 <정도 正道>의 관계를 밝혔다. 5) 또, 이 글을 보완, 확장한 글(「전용의 계보: 당수태권도는 변증법의 정도(正道)일 수 있는가?」 6) 에서 유운성은 이 영화의 ‘혼란스러운’ 창작주체에 관한 추측을 <당수태권도>와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의 비교 및 <정도>의 심의대본과 오리지날 시나리오의 비교를 통하여 꼼꼼하게 수행한 바 있다. 7) 특히 상황주의자들의 실천에 관한 포괄적인 논의를 전개해가는 멕켄지 와크는 프랑스 마오이즘과 중국학 연구자 르네 비에네 사이의 긴장, 그의 두 편의 ‘전용’ 영화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와 <카마레로부터 온 여자들 Girl from Kamare>(1974)을 논하는 데 책의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한편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는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68혁명과 영화’라는 주제하에 상영된 바 있으며, 2019년 부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당수태권도>는 worldcinemacentral.com이 운영하는 유투브 채널 Wu Tang Collection에서 찾아볼 수 있다. 8) 르네 비에네의 ‘전용’ 영화들은 우부웹(UbuWeb)에서 찾아볼 수 있다. 히토 슈타이얼은 에세이 영화 <11월>에서 그녀의 매혹적인 개념 ‘빈곤한 이미지’와 ‘여행하는 이미지’를 전개해나가면서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를 인용해오고 있다. 또한 당신은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의 한국어 자막 버전과 중국어 자막 버전을 각각 유투브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자막은 물론 어떤 한국어 화자와 어떤 중국어 화자의 노고 덕택이다. ‘빈곤한 이미지’의 여행은 계속된다. *** 1) 주섭일, 「프랑스서 공산주의 선전영화로 둔갑한 합작 무협영화」, 『중앙일보』, 1973.3.31 2) 국공내전의 와중에 홍콩으로 이주해온 도광계는 특히 1950년대 홍콩에서 1930년대의 상하이 좌파 영화들을 우파 영화로 ‘전용’해오는 데 특별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의 경력을 생각한다면 프랑스에서의 <당수태권도>의 운명에는 명확한 시적 정의가 있다.” Morris, Meaghan. “Transnational Imagination in Action Cinema: Hong Kong and the making of a global popular culture,” Inter-Asia Cultural Studies, Vol. 5, No. 2, 2004. 도광계는 1957년에 만들어진 한국/홍콩의 첫 번째 칼라 합작영화 <이국정원>에 전창근, 와카스기 미츠오와 함께 공동감독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당수태권도>는 그가 감독 크레딧에 올라 있는 마지막 영화이다. 3) Viénet, René. “The Situationists and New Forms of Action Against Politics and Art”, Internationale Situationniste No.11, October 1967. 이 글을 포함한 상황주의자들의 글은Situationist International Online(https://www.cddc.vt.edu/sionline/si/against.html)에서 읽을 수 있다. 4)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23961 5) 「<정도 正道>가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 La dialectique peut-elle casser des briques?>가 된 사연」 http://annual-parallax.blogspot.com/2017/10/causerie.html 6) http://annual-parallax.blogspot.com/2019/01/blog-post.html 7) 그 외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에 관한 영어 문헌으로는 다음을 참조. Wark, McKenzie. The Spectacle of Disintegration: Situationist Passages out of the Twentieth Century, London: Verso, 2013. 프랑스어 자막을 입힌 이 독특한 전용의 형태에 대해서는 Shochat, Ella and Stam, Robert. “The Cinema After Babel: Language, Difference, Power”, Screen, vol.26 no.2, 1985. 8) https://www.youtube.com/watch?v=ZmM2-SZV3Rs (관련글) 1. 비행기의 시선, 무정한 시선 - 2021.04.30. 2. 액션영화의 한 기원, 안중근과 무협 - 2021.05.31. 3. '외팔이'의 도래, 1960년대 후반의 무협붐 - 2021.06.30. 4. 태권도 영화- 챠리 셀과 바비 김, 이국적 이름들의 행렬에 관하여 - 2021.07.23. 5. 이소룡적 신체 - 2021.08.24. 6. 김두한과 협객물, 유신 시대의 가장 안전한 쾌락 - 2021.10.01. 7. 브루스플로이테이션과 한국영화 - 2021.11.01. 8. 춤추는 괴수, 1967의 '트위스트' 용가리 - 2021.12.02. 9. 우리는 왜 그때... - 2021.12.24. 10. 용팔이, 1970년대의 과잉과 잉여 - 2022.02.24. 11. 1970년대식 섹스와 폭력, 여감방 영화와 <여수 407호> - 2022.03.22. 12. <삼국대협>, '트랜스내셔널한 어떤 고립에 대하여 - 2022.04.20. 13. '빈곤한 이미지'의 여행- <정도>/<당수태권도>와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 - 2022.05.30.
1. 1970년대의 한국영화는 그 독특한 조증과 울증의 세계로 기억될 것이다. 이를테면 1974년 경이적인 흥행성공을 기록한 < 별들의 고향 >이 마련해낸 70년대의 여주인공 경아는 까르륵거리는 웃음과 흘러내리는 눈물로 기억된다. 혹은 < 바보들의 행진 >의 저 과도한 명랑과 내러티브 공간의 바깥으로 번져나오는 우울을 생각해보라. 프로파간다적 명랑성이라 할만한 대책없는 웃음과 영화 안에서는 거의 해명되지 않는 우울의 왕복. 이 감정의 기복은 너무 극심하고 빈번해서 한 편의 영화 내에서, 그러니까 컷과 컷의 연쇄 안에서 그 적소를 찾아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인다.(물론, 검열의 문제가 있다. 우리는 몇몇 참혹한 사례들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다.) 1970년대 한국영화를 보는 데 있어 끊임없이 영화 바깥을 참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조울증의 영화들은 영화를 국가 시책의 방도로 삼고자 했던 정책자들의 과도한 개입과 이제 막 등장한 대중의 상상태와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한 장사치들의 욕망이 얼기설기 엮여진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그 중에서도 가장 낮은 위치에 놓여있던 액션영화는 어떠한가? 그러니까 도시 하위계급 남성들의 값싼 오락거리이자, 국가의 직접적인 치안의 대상이며(이런 영화들이 상영되던 장소는 가장 빈번한 경찰력의 검속 대상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라), 때때로 통국가적 장르의 위용을 과시하며 장사꾼들의 주머니를 채워주었던 바로 그 장르 말이다. 2. 임권택의 1972년 영화 < 삼국대협 >은 액션 히어로의 트랜스내셔널한 교류의 역사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복합적인 동시에 가장 고립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제목 그대로 이 영화에는 일본의 맹협(盲俠) 자토이치와 홍콩의 외팔이 독비도(獨臂刀), 한국의 의적 일지매가 모두 등장한다. 당시의 광고. “중국의 외팔이, 일본의 맹협, 한국의 일지매가 한꺼번에 나온다!” 이 광고 문구는 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간결하게 전달한다. 동어반복이지만, 다시 한 번 말하건데 자토이치와 독비도와 일지매를 한 자리에 모으는 것. <삼국대협>이 만들어지기 일년 전, <신자토이치 부셔라! 중국검>(일본 제목)=<독비도 대전 맹협>(홍콩 제목)이 < 외팔이와 맹협 >이라는 심플한 제목으로 한국에서 개봉해 인기를 끌었다. <자토이치> 시리즈의 22번째 작품이자 <독비도> 시리즈 중 하나로 카운트되는 이 일본-홍콩 합작영화는 아마도 1970년대 초 이 지역에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가장 대담한 기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자토이치와 독비도는 아시아를 석권하고 있던 당대의 액션 히어로들이었다. 1962년 제1작을 내놓은 이래 <자토이치> 시리즈는 1960년대 내내 일본 내에서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절대적인 인기를 구가하였다. 이 시리즈의 주요 수입처였던 홍콩의 쇼브라더스는 이 시리즈의 직접적인 영향하에서 자신들이 새롭게 전개해나갈 신파 무협영화의 기본틀을 완성하였다.(더 나아가서 말하자면 당시의 쇼브라더스 라이브러리에서 <자토이치> 시리즈를 컷 바이 컷으로 ‘사숙’한 신필름의 임원식과 최경옥은 자토이치-카츠 신타로의 맹인 검법을 응용, 여성 맹인 검사 이야기 < 맹수 >와 < 비연맹녀 >를 만들었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쇼브라더스는 <독비도>(한국 제목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를 통해 신파 무협영화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으며, 이로써 외팔이-왕우라는 자토이치-카츠 신타로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린 액션 히어로가 탄생하였다. 자토이치와 외팔이가 대결하는 <신자토이치 부셔라! 중국검>=<독비도 대전 맹협>은 <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 같은 기획이다. 물론 훨씬 더 성공적인. 문제는 이 절대 강자들의 대결을 어떤 결말로 이끄는가이다. 즉, 누가 이기는가의 문제. <신자토이치 부셔라! 중국검>=<독비도 대전 맹협>은 이 문제를 각각의 자국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으로 해결하였다. 일본 버전에서는 자토이치가 이기고, 홍콩 버전에서는 독비도가 이긴다. 다시, 1971년 <외팔이와 맹협>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개봉했던 당시로 돌아가보자. 이 영화는 위장 일본영화가 아닌가라는 논란이 있었으나 일본-홍콩 합작 서류 사본을 제출함으로써 개봉될 수 있었다. 인기 절정의 ‘외팔이 독비도’와 더불어 전광석화 같다는 소문만 무성했던 맹인 자토이치의 오리지날 검법을 드디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 영화의 흥행은 예상대로 성공적이었으며, 서울에서만 18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참고로 말하자면 이 순간에 확인된 ‘자토이치’의 흥행가능성은 한국에서 개봉될 수 없었던 이 일본영화의 판권을 사들이도록 만들었고, 곧 <자토이치>의 한국 버전 < 죽장검 >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돈방석에 앉을’ 거라고 예측됐던 이 영화는 그러나 흥행에 실패했으며, <자토이치>처럼 시리즈로 만들고자 했던 당초의 기획은 좌초되었다.) <외팔이와 맹협>에서 이루어진 자토이치와 독비도의 기념비적인 만남을 염두에 둔다면, 이로부터 촉발되어 여기에 한국산 히어로 일지매까지 가세한 <삼국대협>은 이로부터 한발 더 나아간 것이었다고까지 할 수 있으리라. 게다가 이들 앞에 공동의 적을 설정해둠으로써, 불필요한 우열 가르기를 지양하고 히어로들이 힘을 합쳐 적을 무찌른다는(이 적은 물론 악독한 일본인이다) 산뜻한 쾌감까지를 선사하고자 한다. 이 영화의 간략한 줄거리. 때는 임진왜란 직후인 조선중기. 조선의 검객 일지매는 일본이 빼앗아간 왕의 보검을 찾아서 일본으로 향한다. 일본에서 외팔이와 맹협을 만난 일지매는 이들과 힘의 우열을 가리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셋이 모두 힘을 합쳐 공통의 적이자 사원(私怨)의 대상인 악당 구로다와 대결한다. <삼국대협>이 진정 흥미로워지는 것은 이 영화가 자신의 줄거리에도, 그리고 이 줄거리가 전달하는 그 어떤 도상에도 전적으로 무관심하다는 데에 있다. 첫 번째, 이 영화는 일단 설정상 세 나라가 모두 개입된 동아시아 국제전으로 임진왜란을 불러오고 있지만, 이 설정은 다만 삼국의 캐릭터를 불러모으기 위한 장치에 불과해 보인다. 즉, 이 시대배경을 그럴듯하게 만들어줄 디테일도, 역사적 관점도 전혀, 부재한다. 두 번째, 명백히 당대의 인기있는 히어로들을 빌려오고 있지만 여기에는 자토이치-카츠 신타로도, 독비도-왕우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에 카츠 신타로를 그럴듯하게 흉내내기 위해 흰 눈자위를 희번뜩거리는 김희라와, 왕우를 흉내내서 머리를 하나로 틀어올리고 한쪽 팔을 옷소매에 숨긴 채 외팔이가 된 김기주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원본을 모방하는 데에 있어 그 어떤 심혈도 기울이지 않는다. 의상, 제스처, 무기 등 대부분의 디테일은 원본으로부터 어긋나 있다. 맹협은 장발이며(자토이치는 짧은 머리이다. 이 독특한 헤어스타일은 맹인 안마사인 자토이치가 사회적 약자라는 것을 드러내는 유력한 징표였다), 외팔이는 장검을 사용하는 데다가 검은 옷도 입고 있지 않다(검은 옷이 홍콩 무협영화에서 차지했던 의미와 부러진 칼이 <독비도>에서 가지고 있던 내러티브적-신체적 의미를 생각해보라!). 다시 말하자면 이 맹협은 자토이치를 흉내내고 있으나 자토이치는 아닌 말 그대로 (한국어 번역인) 맹협이며, 외팔이는 독비도를 흉내내고 있으나 독비도는 아닌 (마찬가지로 한국어 번역인) 외팔이일 뿐이다. 세 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유일한 관심은 맹협과 외팔이와 일지매라는 세 인물의 등장에 있다. 정말로 그것이 유일한 관심인데, 왜냐하면 이들은 등장할 뿐 아무 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종종 슬랩스틱 코미디와 같은 움직임을 연출하거나, 옷 바꿔입기와 같은 작은 소극들을 만들어낸다. 아무도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믿지 않으며, 그것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또한 믿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난감한 순간이 마지막에 온다. 세 히어로는 드디어 힘을 합쳐 구로다의 집에 쳐들어간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강력한 구로다의 일격에 세 명의 칼이 모두 잘려나가고, 흘러내리는 바지춤을 움켜쥔 채 도망다니는 이 우스꽝스러운, 거의 비루해 보이는 히어로들의 형상은 과연 무엇일까? 3. 정성일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여기에 대한 가장 적절한 묘사일 것이다. “우스꽝스러운 슬픔,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의 무의미. 내가 여기서 보는 것은 달리 말하기 힘든 우울증이다.” 1) <삼국대협>에 관한 가장 길고, 가장 정교한 분석일 이 글에서 정성일은 이 ‘우스꽝스러운 슬픔’을 임권택이라는 작가(무)의식 안에서(혹은 임권택을 통해 한국영화사의 부단한 계보를 형성시키고 하는 그의 의도 속에서) 발견해내고 있지만 아마도 이것은 임권택만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지지부진한 조울증이야말로 1970년대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었는가를 실감케 하는 것인지 모른다. 베트남전 특수를 거치며 한국은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대중사회로 진입해가고 있었으나 민족중흥을 외치는 독재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폐쇄적인 언설공간으로 이를 마름질하고자 하였다. 세계를 향한 열림은 마치 베트남전과 이 나라가 관계맺던 방식만큼 왜곡되어 있었다. <삼국대협>이라는 저 ‘빈곤한 이미지’야말로 이 순간 한국영화가 가닿은 가장 국제적이고, 가장 지엽적인 한 형상에 다름 아닐 것이다. *** 1) https://www.kmdb.or.kr/story/5/1338 (관련글) 1. 비행기의 시선, 무정한 시선 - 2021.04.30. 2. 액션영화의 한 기원, 안중근과 무협 - 2021.05.3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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