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도 안녕
- 감독
- 석래명
- 제작년도
- 1971
- 출연
- 문희, 김정훈, 최무룡, 신영균, 김희라, 이순재, 안인숙, 최남현, 박암, 김칠성, 전계현, 지계순, 김기범, 김경란
1. 1973년 싱가폴에서 열린 제18회 아시아영화제를 참관하고 돌아온 신상옥은 위기의 한국영화가 “새로운 돌파구를 발견하지 못하면 재생할 길이 없다”고 일갈한다. 1) 그에 따르면 “몇 년 전만해도 일본영화와 함께 정상을 달렸던 한국영화”가 “전근대적인 작품으로 관객으로부터 유리되는 인상은 참으로 영화산업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한국을 제외한 9개 출품국의 영화들이 한결같이 “액션과 섹스물로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제작된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 좋다고 출품한 작품은 기복이 없는 너무나 평범한 작품”이라는 데에 있다. 그는 “오늘의 관객은 평범하고 짜증이 나는 영화를 보려는 것이 아니고 액션이나 청춘이 불타오르는 충족 표현을 보려는데 있는데 우리 여건은 이러한 것들을 제작하는데 너무나 많은 제약을 받고 있음”을 지적하며, “빠른 시일 내에 해외 진출의 돌파구를 열어줘야 한다”고 강변한다. 신상옥 이라는, 1960년대 이후 한국영화 산업의 최전선을 담당했으며, 공인된 국제통이 전하는 이 진단이 흥미로운 이유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 “액션이나 청춘이 불타오르는 충족표현을 보려”는 “오늘의 관객”이라는 범주.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적어도 이들이 1960년대 신필름의 기틀을 다지는 기폭제가 되었던 영화 < 성춘향 >(1961)이 구성해냈던 관객들, <연산군> 시리즈(1961-1962)와 쇼브라더스와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 달기 >(1964), < 대폭군 >(1966)에 이르기까지의 스펙터클 시대극이 소구했던 그 관객이 더 이상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 한국영화 산업은 주지하다시피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였다. 여러 위기의 원인 중 가장 먼저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은 다른 지역들에서 그러한 것처럼 TV의 급격한 보급에 따른 절대 관객수의 감소였다. 1969년 절정에 달했던 영화관객수는 1972년에 이르면 2/3 수준으로 급감했으며, 1975년에는 전성기의 1/10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신상옥의 언급이 있던 1973년 TV 수상기 보급대수는 100만대를 돌파했다. 이와 같은 수치가 보여주는 것은 단지 영화관객의 감소라는 문제만이 아니다. 이는 관객구성체라고 할만한 것이 완전히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에 따라 영화의 위상 또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장년 관객이 TV로 대거 이동한 이후 이 자리를 채운 것은 젊은 관객들이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여파는 도시 저임금 노동자라는 새로운 관객층을 급부상시켰으며, 서울과 같은 도시 내부의 공간 재편은 이 관객들이 점유하는 새로운 공간의 창출을 가능하게 했다. 그렇다면 “액션이나 청춘이 불타오르는 충족표현을 보려”는 “오늘의 관객”이란 바로 이러한 관객에 다름 아닐 것이다. 1960년대 이후 한국-홍콩-일본을 잇는 강력한 커넥션의 구축자이자(아시아영화제는 바로 신상옥이 이 국제적 커넥션을 만들어냈던 중요한 장이었다), 동시대 누구보다 민감한 국제적 감각의 소유자였던 신상옥은 영화의 위상 변화를 절감하고 있었다. 두 번째, 그런데 이 위상의 변화, 더 정확히 말하면 관객의 변화에 따른 이 위상 변화란 일국 레벨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 각국의 영화는 액션과 섹스물로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제작되고 있다”는 전언이 의미하는 바는 단지 한국영화가 얼마나 시대에 뒤처져 있는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액션과 섹스’라는 취향을 공유하는 국경을 넘어선 공통의 관객이 등장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국경을 넘어선 공통의 관객. 유신시대 한국이라는 이 극도로 폐쇄적인 장소에서조차도 이 공통 관객의 형상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확실히 흥미로운 지점이다. 아마도 그 대표적인 사례는 이 연재에서도 다룬 적 있는 196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무협영화, 쿵푸영화, 그리고 무엇보다 1973년의 이소룡 붐을 극적인 전기로 삼아 지역을 막론한 장사치들의 이합집산으로 만들어진 소위 홍콩식 권격영화들의 광범위한 유행이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례, 어떻게 여기에 섹스가 결합되는가. 신상옥의 1976년 영화 < 여수 407호 >/< 속 여수 407호 >는 한 시기의 가장 마이너하지만 동시에 ‘초국적’으로 소비되었던 한 장르의 ‘지역적’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사례이다. 이 장르는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하위 장르 중 하나인 여감방 영화, WiP(Women in Prison)로 불리웠던 영화인데, 간단히 말해 남자 간수들과 여자 죄수들로 구성된 감옥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들의 ‘진정한’ 볼거리는 (문자 그대로) 헐벗은 여성들에 대한 성적 착취라고 할만한 것이다. 감옥이라는 이 절대적 위계의 공간은 집단 누드, SM, 윤간, 레즈비언 성애까지 ‘자유자재’의 성적 표현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더없이 효율적인 공간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제스 프랑코, 잭 힐, 게리 드 레온 같은 이름들이 ‘악명’을 떨치고 있던 이 장르를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처음으로, 가장 창조적인 방식으로 흡수해온 것은 일본이었다. 1972년 일본에서 <The Big Doll House>(잭 힐)가 <잔혹여형무소>라는 제목으로 공개되어 인기를 모았다. 이미 포르노액션이라는 섹스와 폭력이 결합된 장르를 열정적으로 실험중이던 도에이는 재빨리 시노하라 토오루의 만화 『사소리』의 영화화를 서둘렀고, 그 결과 만들어진 <여수 701호-사소리>(이토 슌야)는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이 영화는 곧 시리즈로 이어졌으며(<여수 사소리-제41잡거방>(1972), <여수 사소리-짐승의 방>(1973)), 주인공 카지 메이코(梶芽衣子)는 일약 도에이의 간판 여성스타로 등극하였다. 이 영화는 남자의 배신, 강간, 감옥 수용, 탈출, 복수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여감방 영화 스토리를 변주하지만 또한 남자로부터의 배신이라는 사적인 원념으로부터 시작하여 체제에 대한 원념으로 나아가며(이 남자는 경시청 간부이고 여타의 ‘남자들’ 또한 모두 국가 권력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맺고 있는 자들이다) 격렬한 젠더대립과 체제 전복에의 의지로 충만해 있다. 그럼으로 <사소리>는 여감방영화라는 공통 장르에 기대는 동시에 우먼 리브(women’s liberation)와 국가 폭력에 대한 대항 폭력이라는 일본의 포스트 68적 주제를 정확히 반영해낸다. 두 번째로 이 지역에서 등장한 WiP 영화는 1973년 홍콩 쇼브라더스가 제작한 < 여집중영 女集中營 >(퀘이치훙)이었다. 일본군 수용소에서 ‘다채로운’ 인종의 여성 수감자들이 그야말로 다종다양한 성적, 육체적 착취에 신음하는 이 영화는 곧 아시안 WiP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으며, 한국에서 역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2. 1973년, 신상옥이 세계적 동시성을 호소했던 그해 말 신프로덕션은 ‘합작’ 타이틀을 내걸고 가장 뻔뻔스럽고, 가장 노골적이며, 가장 성공적인 결과를 갖게 될 한 편의 영화를 시장에 내놓았다. < 여감방 >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개봉한 <여집중영>은 1974년 1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네 편의 영화 중 한편으로 기록되었다.(참고로 말하자면 1974년의 최대 히트작은 한국영화의 흥행기록은 갱신한 < 별들의 고향 >(50만)이었으며, 나머지 두 편은 영화진흥공사가 제작한 < 증언 >과 < 아내들의 행진 >이었다. 당시의 한 신문기사는 국책영화 <증언>과 <아내들의 행진>을 제외한다면 10만을 넘은 한국영화는 <별들의 고향>과 <여감방>에 불과하다고 한탄하고 있다.) 한국어 더빙을 거친 <여집중영>은 정말로 극적으로 ‘한국영화’ <여감방>으로 탈바꿈하였다. 당시 한국 개봉 버전을 유추할 수 있는 심의대본(영상자료원 소장)에 따르면 이 영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인’ 독립군 김대만은 죽기 직전 ‘조선인’ 아내 정숙에게 군자금의 은닉장소를 알려준다. 정숙은 기독교 병원의 백인 여간호사들과 함께 일본군이 세운 여자 수용소로 끌려가는데, 이곳은 상시적인 능욕과 때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고문, 잔학한 일본인 여장교에 의한 레즈비언 강간을 포함한 집단윤간이 횡행하는 장소이다.(이 장면들이야말로 이 영화가, 이 영화를 포함한 여감방 영화들이 진정 보여주고 싶어하는 볼거리라는 점에 주의하자.) 여자들은 살기 위해 탈출을 꿈꾸고, 위장 일본군 장교로서 은밀히 작전을 수행중인 ‘박대령’이 그녀들을 돕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 영화가 위의 설정을 믿을만하게 만들어줄 어떤 장치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여집중영>→<여감방>으로의 이동이 진정 흥미로워지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먼저 이 영화의 ‘조선인’ 등장인물이라고 설정된 자들은 당연한 말이지만 ‘중국인’으로서의 그들의 표식을 전혀 감추지 않는다. 중국 복장의 이들은 중국 가옥에서 살고 있다. 한국-홍콩 합작 프로젝트를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얼마나 ‘한국영화’로의 전이에 무심했는가는 배우 로례의 존재로부터도 확인가능하다. 일단 ‘박대령’으로 기술되어 있는 그는 이미 한국 영화시장에 <금연자>(한국 개봉제목: 심야의 결투 )와 <용호투>(한국 개봉제목: 용호의 결투 ), 그리고 < 철인 >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개봉된 영화 <죽음의 다섯 손가락>으로 익히 알려진 홍콩배우였다. 이 이야기는 이 영화의 표면으로부터 그 어떤 ‘한국성’ 혹은 ‘한국성’의 위장 따위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당시 본격화되기 시작한 소위 ‘위장합작’ 영화들의 거개가 그러한 것처럼 이 영화 또한 몇몇 한국인 배우들의 존재로 아슬아슬한 합작의 암묵적인 최저 조건에 부합하려고 한다.(이 영화에는 고상미, 나하영 등의 한국인 여배우들이 출연한다.) 그러나 반라의 학대받는 여성들의 육체 중 하나로 기입되어 있을 뿐인 그녀들의 국적이 한국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해보이지 않는다. <여집중영>→<여감방>이 한국영화로의 전이에 이토록 무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명하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여기에 무심하기 때문이다. 중국인인가, 한국인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간악한 일본군이라는 적이며, 이 공동의 적 앞에서 벌거벗은 채 학대받는 여성들은 하나로 묶인다. 심지어 백인 여성들 또한 오로지 벌거벗은 육체로 다채로운 육체적, 성적 학대를 견디어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그 어떤 인종적 위계 혹은 차이도 없이 학대받는 ‘아시안’ 여성들과 하나가 된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간악한 일본군이라는 적또한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설정을 믿을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한국과 홍콩 양쪽의 공통된 민족적 공분일 터이지만, 생사여탈권을 쥔 이 절대악의 형상은 이런 류의 영화들에서 익숙한 것이다. 이를테면 70년대식 WiP 영화의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받는 <러브 캠프 7 Love Camp 7>(1969)은 나치 수용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사 Ilsa> 시리즈로 대표되는 1970년대 내내 이어질 나치 수용소 배경의 WiP 영화, 이름하여 나치 익스플로이테이션의 효시가 될 이 영화는 나치 수용소에 끌려간 여성 유태인 박사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잠입한 연합군 여성요원을 중심으로 수용소의 여성 수감자들이 겪는 능욕과 고문, 집단윤간, 새디스틱한 레즈비언 섹스를 그리고 있다. 요컨대, 이 영화들에서 배경이란 다채로운 방식으로 학대받는 여성들이라는 진정한 볼거리를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다. 물론 이 볼거리는 국제적으로 순환하는 동시에 각각의 지역적 맥락이 부여하는 노골적인 성적 판타지와 결합한다. <여집중영>→<여감방>의 최대 볼거리가 기독교 병원의 간호사들로 설정된 백인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능욕이라는 것이야말로 아마도 이에 대한 가장 뻔뻔스러운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채로운 육체적, 성적 학대의 대상이 된 이 벌거벗은 백인 여성들의 존재가 아시안 남성들에게 가져다주었을 노골적인 인종적, 젠더적 쾌감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3. 어쨌든 <여감방>의 성공은 아마도 이 시기 신상옥을 가장 고무시켰던 사건인 것처럼 보인다. 그는 여기에서 홍콩과 한국 (그리고 일본)의 ‘공통 관객’에 대한 확신을 얻은 것 같다. <여감방>의 히트 이후 신상옥은 곧바로 신프로덕션 제작의 < 혼혈아 쥬리 >를 일본인 감독을 초청해서 완성, ‘여감방 시리즈 제2탄’으로 개봉했으며, 그 스스로 <여수 407호>/<속 여수 407호>를 만들었다. <여수 407호> 시리즈는 ‘액션과 섹스’라는 공유 트랜드에 대한 신상옥의 확신이 어떤 형태를 얻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만주국의 수도 신경. 간호사 강희는 의사 하윤과 약혼한 사이이다. 어느날 밤 그들의 병원에 강희의 오빠 동민이 일본군이 쏜 총에 맞아 실려온다. 마침 강희가 일본군을 따돌리기 위해 나간 사이 유격대원인 동민은 금궤가 묻힌 장소를 하윤에게 알려주고 죽는다. 강희와 하윤은 부상당한 다른 유격대원들을 치료하기 위해 산에 오르고, 하윤은 강희에게 관동군 군의에게 가서 약을 가져오라고 시킨다. 약을 구해 돌아오자 유격대는 일본군에게 일망타진당한 상태. 강희 또한 어느날 밤 쳐들어온 네 명의 일본군에게 강간을 당한다. 그 중 한명을 가위로 내리꽂은 강희는 현재 교도소에서 복역중이다. 강제노역과 여자들에 대한 학대가(왜인지 이 학대받는 여죄수들 중에는 금발의 백인 여죄수도 끼어 있다) 만연한 이곳에서 유일하게 조선인 소장만이 여죄수들에게 온정적이지만, 이곳의 실권은 일본인 부소장 가토가 쥐고 있다. 가토의 노골적인 성적 착취를 견뎌내는 강희에게는 이곳에 같이 들어온 춘자만이 유일하게 마음을 열 상대이다. 그러던 어느날 옛 동료 하연이 이곳에 새로 수감된다. 강희는 하연으로부터 하윤이 오빠를 죽이고, 혼자 금궤를 독차지하기 위해 일본군과 밀통하여 유격대를 몰살시켰으며, 이제 그 모든 일을 도왔던 하연마저 만철 총재의 딸과 결혼하기 위해 버렸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복수를 결심한 강희는 호시탐탐 감옥에서의 탈출을 꿈꾼다. 남자의 배신-강간-감금-탈출-복수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 구조는 WiP 영화의 한 전형이기도 하지만 더 직접적으로는 <사소리> 시리즈의 반복이다. <여수 407호>/<속 여수 407호>가(이 두 영화는 주인공 강희 역을 맡은 홍콩배우 엽영지와 가토 부소장 역의 장패산의 스케쥴 때문에 거의 동시에 만들어졌다) 신상옥이 <사소리>를 강력하게 참조하고 있음은 <속 여수 407호>에서 <사소리>의 화재 장면이 유사하게 반복되고 있는 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적극적인 참조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것은 <여수 407호>에서는 <사소리> 시리즈의 저 격렬한 젠더 대립과 체제전복적인 폭력이 거의, 전적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 영화의 배경이 식민지 시기이며, 그럼으로써 <여집중영>이 그러한 것처럼 절대악으로서의 일본, 일본인이라는 설정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 설정의 결과 적은 민족적으로 ‘외재화’되고, 체제전복의 폭력적 열망은 사라진다. 아직 오지도 않은 ‘국가’를 어떻게 ‘전복’할 수 있겠는가. 여자를 배신한 남자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일본과 내통한 자, 독립군을 밀고한 자, ‘밀정’이며 이것이야말로 그가 악당인 이유이다. 이 악당을 제외한다면 ‘한국인’ 남성들은 정말로 세심하게 그들의 윤리적 지위를 보호받는다. 그들은 정의로운 독립군이거나, 나라가 없음을 통탄하는 인정많은 조선인 소장이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는 이 조선인 소장일 것이다.(의미심장하게도 그를 따르는 유일한 부하는 중국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캐릭터가 흥미로운 이유는 내러티브의 전개 속에서 그가 전혀 ‘무능’하기 때문이다. 이 조선인 소장은 공정한 ‘법’에 기대어 이 여감방을 정의롭게 운영하고 싶어하나 법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 악독한 일본인 가토 때문에 빈번히 좌절에 이른다. 그는 내러티브의 전개상 거의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캐릭터의 존재 이유를 내러티브 내에서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 이유는 1976년 한국이라는 영화 바깥에서 찾아야 한다. 긴급조치의 시대에 등장한 이 공정한 공권력에 대한 기대, 그러나 무력하기 짝이 없는 이 형상은 이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1970년대의 한국이라는 ‘리얼리티’를 담보하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이 존재는 마치 동시대의 한국 액션영화가 태권도라는 애매한 기표로 위장하고, 반일/반공의 서사들로 최소한의 정당화 기제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이런 류의 섹스플로이테이션 영화가 한국에서 만들어질 수 있었던 최소한의 장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수 407호>/<속 여수 407호>는 곧 홍콩에서 <老虎嶺女子監獄 1, 2>로 공개되었으며, <Girls in the Tiger Cage>/<Revenge in the Tiger Cage>라는 제목의 ‘언컷’ 버전으로 전세계에 유통되었다. 이 유통과정까지를 포함한다면 <여수 407호>/<속 여수 407호>는 섹스와 폭력(종종 이 둘의 결합)이 낳은 전지구적인 영화 네트워크 속에 어떻게 한국산 영화가 개입해들어갔는지는 보여주는 유감없는 사례이다. 4. 1970년대 한국에서 만들어진 <여수 407호>가, <사소리> 시리즈에서 노골적으로 보여준 성정치와 전혀 무관한 지점에서 성립되고 있었다면, 30년 만에 한국에서(즉, 1990년대를 통과한 이후의 한국에서) <사소리> 시리즈에 대한 어떤 응답과 마주하는 것은 기이하고도 흥미로운 경험이다. 박찬욱 의 < 친절한 금자씨 >(2005)는 아마도 WiP 영화라는 관점에서만 보자면 여기에 대한 가장 진지한 장르적 성찰의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시네필’ 박찬욱은 <사소리> 시리즈를 경유함으로써, 이 장르가 보여준 성정치를 말 그대로 동시대적 차원에서 구현해내었다. 동시에 공통장르로서의 WiP를 창조적으로 전유해온 이 사례는 한국영화가 어떻게 보편성을 획득해나갔는가에 관한 하나의 사례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 1) 「亞洲영화제를 보고, “邦畵제작에 새 돌파구를”」, 『경향신문』, 1973.5.26. (관련글) 1. 비행기의 시선, 무정한 시선 - 2021.04.30. 2. 액션영화의 한 기원, 안중근과 무협 - 2021.05.31. 3. '외팔이'의 도래, 1960년대 후반의 무협붐 - 2021.06.30. 4. 태권도 영화- 챠리 셀과 바비 김, 이국적 이름들의 행렬에 관하여 - 2021.07.23. 5. 이소룡적 신체 - 2021.08.24. 6. 김두한과 협객물, 유신 시대의 가장 안전한 쾌락 - 2021.10.01. 7. 브루스플로이테이션과 한국영화 - 2021.11.01. 8. 춤추는 괴수, 1967의 '트위스트' 용가리 - 2021.12.02. 9. 우리는 왜 그때... - 2021.12.24. 10. 용팔이, 1970년대의 과잉과 잉여 - 2022.02.24. 11. 1970년대식 섹스와 폭력, 여감방 영화와 <여수 407호> - 2022.03.22. 12. <삼국대협>, '트랜스내셔널한 어떤 고립에 대하여 - 2022.04.20. 13. '빈곤한 이미지'의 여행- <정도>/<당수태권도>와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 - 2022.05.30.
제목의 ‘장미’는 꽃 이름이기도 하겠지만, 실제 유지인 의 극 중 배역 이름이기도 하다. 전화벨이 울리자, 장미(유지인)는 졸린 눈으로 “어보세요?”라고 전화를 받는다. 금요일을 토요일로 착각하고 꿈나라에 빠져있던 장미는 부랴부랴 학교로 향한다. 모범생이라 그런 줄 알았더니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던 모양이다. 심지어 캠퍼스에서 여대생들이 대놓고 담배 피우기 애매하던 시절(지금도 그런가?), 화장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모여 담배를 피워대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들을 꼬나보는 학교 관계자가 바로 < 여곡성 >(1986)에서 귀신이 몸을 빌린 시어머니로 출연하여 혀를 길게 뽑으셨던 석인수 선생이다. 이름은 남성적이지만 당대 한국영화의 못된 시어머니, 무당, 여죄수 등을 도맡으며 황정순의 반대편에서 장르와 분량을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영화에 이바지하셨던 훌륭한 분이시다. 그처럼 공부는 뒷전인 장미와 그 일행들을 기다리는 남자는 바로 규식( 송승환 )이다. 장미만을 사랑해온 규식은 카페에서 사랑의 징표라며 무언가를(알지만 도저히 쓸 수 없다)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그러고는 (역시 알지만 도저히 쓸 수 없는) 동정과 처녀성에 대한 규식의 일장연설과 플래시백이 이어진다. 단순한 세대차이로 치부하기에는 납득하기 힘든 그런 논리로 규식이 급기야 “우린 결혼해야 돼, 부모들 사이에서도 얘기가 끝났어”라고 말하자, 장미는 허탈한 듯 소리친다. “아이구 이 피곤한 친구.” 그래 궤변은 늘 피곤한 법이다. 장미 가시로 만든 핏방울 징표 “세 방울은 장미 거, 세 방울은 내 거” 규식을 따돌린 장미와 그 일행은 야심한 시각이 되자, 정체불명의 술집에서 만난 하키부 남자들과 옷 벗기 내기 술 마시기 게임을 시작한다. 이계인 이 대학생으로 나오는 것은 이해한다 해도, 같은 해 만들어진 하길종 의 < 병태와 영자 >(1979)에서 병태( 손정환 )에게 “군대에서 여자 친구 사진을 갖고 있는 것은 정신무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충고하는 소대장으로 나온 이해룡 이 전혀 정신무장이 안 된 하키부 예비역 대학생으로 나오는 것은 무척 황당하다. 심지어 유지인 보다 실제 20살이 많고, 영화 속 중년남으로 나오는 신성일 보다도 한 살 많은 한국영화계의 대표적 원로배우다.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1989)에서는 은주( 이미연 )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아무튼 여자가 한 명 모자라지만 대담하게도 두 사람을 상대하겠다는 장미로 인해 게임이 시작된다. 그런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은 철민(이계인)이 술자리를 뒤엎으며 장미에게 “자신을 내동댕이치는데 익숙한 여자”라고 소리친다. 그처럼 < 가시를 삼킨 장미 >의 초반부는 뭔가 ‘한국판 < 님포매니악 >’스러운 분위기로 후끈 달아오른다(물론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너무 설레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는 마시길). 문제의 대학생들(가장 앞이 이해룡 , 세 번째가 이계인 )과 후끈한 게임 정진우 감독의 < 가시를 삼킨 장미 >는 이장호 감독의 < 별들의 고향 >(1974)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른바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의 자장 안에 있다(<별들의 고향>을 각색한 이희우 작가가 <가시를 삼킨 장미>를 썼다). 그를 B무비 장르에 명쾌하게 포함시킬 수는 없겠으나, <가시를 삼킨 장미>는 A무비를 지향하는 대사들의 연속이 오히려 현재에 이르러 B무비처럼 느껴지는 경우다. 당시로써는 ‘여성 주체’에 대한 심오하고 페미닌한 텍스트로 해석될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나마 그를 현실적으로 살려내는 것은 유지인 의 탁월한 연기력이다. 그런 혼돈의 술자리를 끝내고 헛헛한 마음으로 귀가한 장미 앞에는 쓸쓸한 새장이 있다. 까마귀(< 하얀 까마귀 >), 뻐꾸기(<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 앵무새(<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 갈매기(< 백구야 훨훨 날지마라 >) 등 유난히 새를 사랑해온 정진우 감독의 미장센이 빛나는 대목이다. 심지어 신일룡 , 이미숙 주연의 또 다른 연출작 <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1984) 또한 앞서 <두견새 왜 피를 토했나>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그보다 앞선 최초의 제목은 <짧았지만 만족했어요>라는 야릇한 제목이었다). 당시 「경향신문」은 이 영화를 촬영 중인 정진우 감독을 인터뷰한 취재기사에 “정진우 감독 조류학자 되려나”라는 제목까지 달았었다. 누가 봐도 현실의 장미를 비유하는 것이 빤한 새장 속의 새를 향해 그녀가 말한다. “넌 왜 그렇게 불쌍하게 있니. 날아, 노래를 해, 날아, 노래하라고!” 거기서 끝이 아니라, 알아듣지도 못하는 애꿎은 새를 향해 더 심도 깊은 논의를 펼쳐 보인다. “우리는 왜 수컷을 통해서 존재가치가 인정되니? 잘못된 거야! 난 싫어. 그런 모든 걸 다 감수하고 살 수만은 없어. 싫어, 싫어, 싫어~~~” 새장 이후 부산 집으로 내려가던 장미는 우연히 옆에 앉은 중년남자( 신성일 )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가정으로 인해 번뇌에 빠진 그를 “우리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얼마나 한정된 범위 안에서의 선택인가를 생각해봐요”라며 위로한다. 파산하고 부산에 내려온 남자는 아내도 자식도 답이 되지 못한 현실 속에서 장미를 만나고서야 삶을 돌아볼 기회가 생긴다. 하지만 “앞으로 백 가지 슬픔이 있더라도 한 가지 행복을 위해 살겠어요”라는 장미의 비현실적이고 천사 같은 사랑도, 남편의 하숙집에서 여자 팬티를 발견하고 연락한 그의 아내( 선우용녀 )로 인해 ‘불륜’이 되어 산산조각 나고 만다. 그럼에도 “죽음을 모르고 뛰어드는 하루살이에게 박수라도 칠까”라며 두려움 없는 사랑을 꿈꾸는, 그렇게 자신을 (깡에 살고 깡에 죽는) ‘깡생깡사’로 표현하는 장미의 모습은 꽤나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런 불륜이 집에도 알려지고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중년남자를 향한 마음이 ‘항상 충족되지 못한 아버지의 이미지를 찾으려 했던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관계는 끝나버린다. 예정된 사랑의 실패로 장미는 이전보다 더 방탕한 생활을 하고, 급기야 약물 과다복용으로 정신병원에도 간다. 당시 국내 유일의 정신병원이었던 ‘청량리뇌병원’에서는 장미를 두고 ‘마음의 병’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이후 겨우 진정이 됐을 즈음에는 혼자 동시 상영관을 찾아 영화만 보는데, 그런 그녀 앞에 세호( 한진희 )라는 미남자가 나타난다. 또한 비슷한 시기 옛 친구 진영( 김보미 )이 결혼 예찬론을 펼쳐서 장미의 마음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킨다. 그렇게 장미는 안정된 생활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품는 듯하다. 진영과 통화하며 “우리들의 방황도 어떤 식으로든 끝장이 나려나 봐”라는 장미의 얘기 뒤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버닝 러브’가 흐른다. 얼마 뒤 세호의 집요한 애정공세로 두 사람은 건너편으로 당인리 화력발전소가 보이는 한강변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세호의 몸개그는 장미의 얼굴에 잃어버린 미소를 되찾아준다. 영양가 없는 남자들 하지만 세호 또한 ‘똑같은 놈’이다. 결혼까지 생각한 장미가 임신을 하게 되지만, 세호는 어머니가 장미의 과거를 알아서 결혼을 승낙하지 않고 있다는 핑계까지 대며 한사코 결혼을 거부한다. “아직도 엄마 젖을 빨고 싶겠죠? 조금씩 엄마한테서 벗어나요”라고 충고하지만 세호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이후 세호의 진짜 비밀이 드러나면서, 남자 잘못 만나 고생하는 장미의 비극은 종지부를 찍는다. 여느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와 별다를 바 없는 설정 안에서도 < 가시를 삼킨 장미 >의 유지인 은 <별들의 고향>의 경아( 안인숙 )와 비교해도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정진우 감독이 같은 해 만든 < 심봤다 >의 유지인이 얼마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지 비교해 보면 좋을 것이다. 이듬해 출연한 이장호 감독의 < 바람불어 좋은 날 >과는 또한 얼마나 비슷한 모습인지도). 더불어 < 별들의 고향 > 이후 유행처럼 만들어지던 아류작들 대부분은 그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관음증을 영상화한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가시를 삼킨 장미>는 ‘버림받은 여자의 방황’이라는 나름의 한계 안에서도, 고민의 흔적이 역력한 이희우 작가 특유의 대사들과 정진우 감독의 집요한 연출력이 결합해 유지인의 장미를 보다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영화 속에서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리고 드디어 다른 여자 친구가 생긴 규식과 장미가 나누는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난 아직도 너를 이해 못 하겠어”라는 규식의 회한 가득한 말에 장미는 이렇게 답한다. “나 자신도 나를 이해 못 해.” “나 자신도 나를 이해 못 해.” 이건 유지인 이 예뻐서 그냥... 유지인 신성일 한진희 송승환 감독: 정진우 각본: 이희우 개봉극장: 스카라 관람인원: 75,757명
엄태웅 , 주원 주연, 황병국 감독의 < 특수본 >(2011)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특별수사본부’의 약자인데 시간을 더 거슬러 1970년대로 가면 설태호 , 이원세 감독이 바통 터치하며 만든 <특별수사본부> 시리즈가 있었다. ‘한국의 CSI 였다!’라고 말하면 너무 거짓말이고, 한국영화사의 대표적인 반공수사물 시리즈라고 보면 된다. 한국영화사에 에로, 액션 시리즈만 있었던 게 아니라 나름 진지한 범죄추리(물론 추리는 좀 약하다) 시리즈도 있었던 것. 1편인 < 특별수사본부: 기생 김소산 >(1973)을 시작으로 2편 < 특별수사본부: 여대생 이난희 사건 >(1973), 3편 < 특별수사본부: 배태옥 사건 >(1973), ‘꽃할배’ 이순재 가 출연한 4편 < 특별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 >(1974), 끝으로 역시 꽃할배 박근형이 출연한 < 특별수사본부: 외팔이 김종원 >(1975)에 이르기까지 모두 5편이 만들어졌다(1-2편은 설태호 감독, 3-5편은 이원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2, 4, 5편은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에서 VOD 관람이 가능하다). 특별수사본부 시리즈 이 시리즈는 민영방송 ‘라디오 동아방송’(1980년 신군부에 의해 KBS에 통합될 때까지 17년 7개월 동안 이어왔다)에서 1974년부터 1979년까지 방송된 라디오 심야프로그램 <특별수사본부> 시리즈가 그 모태다. 이 대공수사실록드라마에서 오제도 검사는 여간첩 김소산 사건, 해군 프락치 허만도 사건, 기생간첩 구자운, 점쟁이간첩 윤길도, 거물간첩 성시백 등을 도맡은 고뇌하는 반공검사로 큰 인기를 끌었다. 김수임은 광복 후 미군정기에 남조선노동당을 위해 일한 간첩으로 한국전쟁 발발 직전 총살형에 처해졌는데, 몇 년 전에는 조명화 감독에 의해 한미합작 영화로 만들어질 것이란 보도도 있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1948년, 주한 정보대장인 페이드 대령의 첩, 김수임( 윤소라 )이 특별수사본부에 체포되면서 시작된다. 매 시퀀스마다 회한을 머금은 표정으로 “그 이듬해 봄이었어요...”라는 식의 김수임 멘트로 시작하는 그 구조가, 마치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조안 크로포드의 회상으로 불쑥 시작하는 마이클 커티즈의 < 밀드레드 피어스 >(1945)를 연상시킨다. 아무튼 김수임은 남로당에 가입해 자신이 얻은 숱한 정보를 북한에 제공해오다가 오제도 검사( 이순재 )에게 체포된 것. ‘묻고 따지는’ 이순재에게 지난날을 회상하는 김수임의 과거는 도저히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다. 이화보통여자학교에 입학한 김수임은 이복 오빠인 최만용(북괴공작원의 아이콘이나 다름없는 ' 문오장 ') 때문에 17살의 어린 나이로 농부에게 시집갈 수밖에 없었고, 이듬해 시집을 뛰쳐나와 다시 이화여전에 입학한 그녀는 이강국( 신일룡 )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박헌영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이강국은 “좀 더 위대한 미래를 위해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해”라는 말을 남기고 월북하고 만다. 그런 사랑의 실패를 겪으며 페어드 대령과 결혼한 김수임은 아들 ‘밥’도 낳고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이강국을 미끼로 다시 수임에게 접근한 오빠 최만용의 획책이었던 것. 그렇게 수임은 남로당원으로서 첩보 활동은 물론 페어드에게 이런저런 인사 청탁까지 조종하는 위치에 이른다. 여기서 무엇보다 놀라게 되는 것은 후시녹음으로 완성된 외국인 배우들의 유창한 한국어다. 거의 아나운서 수준으로 얘기하는 페어드 대령은 물론 “엄마, 어디야? 빨리 와, 보고 싶어”라고 말하는 혼혈 아이 밥의 언어구사능력도 상당하다. ‘아들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는 수임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오검사가 집으로 전화했다가, 밥이 대뜸 “마미?”라고 영어로 답하자 황급하게 전화를 넘기는 이순재 의 연기 또한 놀랍다. 윤소라 윤소라 는 당시 서구적인 마스크로 눈길을 끌었다. 아마도 그런 외모가 당시로써는 낯설어서인지 김지미 , 남정임 , 문희 , 윤정희 의 자리까지 올라서지는 못했지만 꽤 깊은 인상을 남겼다. < 속 팔도강산 >(1968)으로 데뷔한 이래 제목부터 무언가 그녀의 선명한 캐릭터를 드러내는 < 버림받은 여자 >(1970), < 특별수사본부: 배태옥 사건 >, < 야녀 >(1974), < 70인의 여죄수 >(1974) 등에 출연하며 남다른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 김수임의 일생 >에서도 인사 청탁을 위해 속옷이 비치는 가운만 걸친 채 페어드 대령의 털 난 가슴을 어루만지며 유혹하는 장면이 생생하다. 물론 이강국을 그리워하는 사랑과 아들 밥을 향한 모성의 굴레 속에서 방황하는 그 깊은 슬픔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모습이 더 기억에 남는다. 당시 함께 이국적 외모의 글래머 배우로 주목받았던 김혜정의 다소 과잉된 연기와 비교하면 더욱 도드라진다. 물론 그 이국적 외모로 인해 <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 >(1965)의 미얀마 여자, < 여진족 >(1969)의 여진족이기도 했던 김혜정 또한 유현목 의 < 아내는 고백한다 >(1964), 이성구 의 < 지하실의 7인 >(1969)에서 대체할 수 없는 에로틱한 매력을 뿜어냈다. 흥미롭게도 <지하실의 7인>에서 윤소라는 말 수가 적은 수녀, 김혜정은 성적 매력을 마구 발산하는 북한 여군으로 출연해 만났다. 역시 외모 하면 빠질 수 없는 남자 신일용도 있다. 수임이 이강국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누구나 한 번쯤 보면 반할 수밖에 없는 쾌남아였어요”라고 말할 정도인 신일용 과는, 윤소라의 은퇴작이기도 한 김수용 의 < 아라비아의 열풍 >(1976)에서도 연인으로 출연했다. 그런 두 사람이 마치 <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 >(2005)의 부부처럼 ‘그 사람이 매일 아침 어디로 출근하는지 모르고’ 살아온 그 세월이 허망하다. 김수임의 화장, 그리고 페어드 대령의 유창한 한국말 그래도 김수임과 이강국은 서로를 잊지 않고 살아왔다. 클라이맥스는 이강국을 시골에서 올라온 외삼촌이라 거짓말하고 페어드 대령에게 빼내 달라고 말하는 순간이다. 수임으로 인해 한국식 인사 청탁 문화가 몸에 밴 그는 부탁대로 강국을 집으로 데려오지만, 외삼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젊고 잘 생긴 그를 살짝 의심한다. 결국 페어드는 “부인, 난 이제 사무실로 나가 볼 테니 삼촌을 좀 대접해요”라고 출근하는 척 거짓말을 하고는 그들의 뜨거운 포옹을 몰래 훔쳐본다. 그렇게 수임은 사랑에 실패하고 감옥에 이르게 된다. 반공영화이기는 하지만 “사랑과 사상이 꼭 일치되어야 하나요. 전 좌익을 사랑한 게 아니에요, 그의 마음과 육체를 사랑했어요. 사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라는 항변은 가슴 절절하다. 그렇다. 당시 공공의 적은 북한이 아니라 일본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전 죽일 년이에요”라는 마무리 멘트를 들은 오제도 검사는 “사랑의 에고이즘이군요”라는 명쾌한 결론을 내린다. 마치 제 자리에 앉아 모든 것을 척척 추리해내는 탐정 엘큘 포와로처럼 고뇌하는 모습으로 소파에 앉은 이순재 의 모습이 그 기나긴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 특별수사본부: 기생 김소산 >에서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우는 윤정희 의 모습이 압권이었다면, < 김수임의 일생 >에서는 페어드 대령의 면회 전 손거울을 보며 눈화장을 고치는 윤소라 의 연기가 심금을 울린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페어드 대령의 마지막 한 마디가 귓전을 울린다. “딸링...” 그 딸링에 덧붙여 확실히 이것 또한 말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하루종일 “마미~~~”라는 말이 입에서 내내 맴돌 것이다. 김수임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검사에게 이렇게 부탁한다. “내 얼굴을 곱게 화장하겠어요. 추하게 있는 것은 자신을 사랑할 줄 몰라서죠. 늙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화장을 하지 않고 남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여자에요.” 이순재 정말 마지막으로 이순재 에 대한 얘기로 마무리하고 싶다. < 그대를 사랑합니다 >(2011) 당시 인터뷰했던 그는 가장 존경하는 선배 배우로 최무룡 을 꼽았다. “후시녹음 시절에도 그처럼 자기 대사의 템포를 살려내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후시녹음이라 그런 주연급 배우들 중에 대사를 안 외워오고 그냥 입만 벌리거나 조감독이 옆에서 읽어주는 대사를 그대로 따라 읽는 경우가 허다했지. 뭐 나중에 성우가 다 하니까. 그런데 최무룡 선배는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늘 내실을 다지는 사람이었지. 메소드 연기의 대가였고 늘 끊임없이 새롭게 변신하는 배우였어. 물론 다른 좋은 선배 배우들이 많았지만 자기만의 확고한 원칙과 ‘폼’이 잡혀 있는 최고의 배우였지. 그래서 한번은 최민수 를 만나 진지하게 얘기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 내가 민수 백일잔치도 가고 어렸을 때부터 쭉 봐왔거든. 이제 작품으로 만날 일은 없고, 전에 무슨 행사장에서 만난 적 있는데 머리에 두건 쓰고 수염 기르고 요란한 청바지 입고 왔기에 ‘야, 너 허리에 도끼만 차면 딱이겠다’고 한 적 있어. (일동 대폭소) 연기자로 치면 ‘성골’ 출신 배우고 또 한때 얼마나 잘했어? 멈추지 말고 좀 더 하면 정말 최고의 배우가 될 수 있을 텐데. 마스크도 얼마나 좋아. 참 아쉬워, 한번 만나서 얘기해야지.” 그렇게 그는 한국영화사 최고의 배우로 최무룡을 꼽았다. 그러면서 앞선 시리즈에서 오제도 검사를 연기한 최무룡에 이어 자신이 그 역할을 이어받은 <특별수사본부> 시리즈에 대한 애착이 컸다. 그로서는 얼마나 감격적인 캐스팅이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윤소라 신일룡 이순재 문오장 감독: 이원세 각본: 오재호 개봉극장: 대한 관람인원: 11,249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