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여행길(원예봉사자의 하루)
- 감독
- 심재혜
- 제작년도
- 2007
임권택 의 이상한 한 해, 1978년. 두 편의 이상한 영화 <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 >와 < 가깝고도 먼 길 >. 두 편의 영화는 겹치면서 그만큼 서로 멀리 있다. 나는 두 편의 영화를 의도적으로 연이어 쓰고 있다. 둘 중 어느 쪽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지만 하여튼 둘 다를 읽어주기 바란다. 먼저 두 편을 상투적으로 소개하겠다.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 친구들과 놀던 중에 새집을 망가트리고 그 새집을 관리하던 할아버지가 그만 나무에서 떨어져 다치자 치료비를 구하러 (초등학교를 부르던 옛 말인) 국민학생 김한 어린이가 집에서 멀리 바닷가 마을에 사는 할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으러 간다. 김한 어린이는 그 동네 친한 형을 만나러 갔다가 작은 나룻배를 타고 그만 깜빡 잠이 든다. 그 사이에 배는 바다로 떠내려가서 표류한다. 그 작은 배를 구한 건 (중국을 ‘中華人民共和國’이라고 부르던 시절의) 중공의 커다란 화물선이다. 김한 어린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중국인들은 김한 어린이를 북한에 보내려하자 김한 어린이는 자신을 “대한민국의 어린이”이라고 몇 번이고 소개하여 부모의 품으로 돌아온다. 그게 이야기의 전부이다. 그 다음 <가깝고도 먼 길>. 낙도에 있는 국민 학교와 자매 결연을 맺으러 갔던 서울 나라 국민 학교 어린이들을 태운 배가 돌아오던 중 고장이 나고 거기에 강풍까지 만나 난파된다. 그 배에 탔던 김인철 어린이는 해변가에서 깨어나 보니 자신이 그만 북방경계선을 넘어 (지금의 북방한계선(NLL, Northern Limit Line)으로 불린 것은 1996년 7월 1일 이후의 일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1953년 8월 30일에 휴전선을 기준으로 남북한 2킬로미터 상호 침범할 수 없다고 정하면서 부른 NBL(Northern Boundary Line)의 번역어로 호칭할 것이다) 북한까지 떠내려 온 것을 알게 된다. 거기서 북한 어린이 이동만군을 만난다. 처음에는 서로 의심도 하고 말싸움을 하지만 결국 DMZ까지 가서 함께 휴전선을 넘게 된다. 하지만 월남하는 두 어린이를 먼저 발견한 북한군에 의해 사살 당한다. 마찬가지로 그게 이야기의 전부이다. 두 영화를 1978년의 자리에 가져다 놓으면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다. 유신정권 영화진흥정책 중의 하나였던 ‘우수영화 제작에 따른 외화 스크린 쿼터 보상제도’에 따라 이 범주에 속하는 (이 시기의 문화정책 분류에 따르면) 반공영화이며, 이 두 편의 영화는 영화사에서 쿼터를 받기 위한 목표에 충실하게 제작되었다. 아마 일차적으로 이 설명이 사실일 것이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 김대중을 간신히 이기고 제 7대 대통령 선거에 당선한 박정희는 그 해 12월 6일 즉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 명분은 베트남에서 호치민이 이끄는 베트콩 인민군에게 미국이 패배를 선언하고 철수를 시작했으며, 다른 한 편으로 냉전은 미국이 ‘죽의 장막’ 저편의 ‘中共’과 첫 협상을 하고 대만을 버리면서 새로운 국면이 되었다. 미국은 더 이상 남한의 우산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이 남한의 국민들 사이에서 퍼져나갔다.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지속적으로 좌파 혁명의 소식이 들려왔다. (그 소식의 대부분은 검열되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고작 20년이 지났을 뿐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은 대부분 전쟁(과 그 이후의 폐허와 빈곤)을 경험한 세대이다. 박정희는 사법과 경찰과 언론을 장악했으며, 검열과 체포로 감시기구를 작동시켰다. 이 시기에 감시기구는 문화에 관련된 활동을 하찮게 보았다. 지금과 결정적인 차이는 사회는 개인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비공개적인 어떤 장치도 갖고 있지 않았다. (좀 더 간단하게 인터넷은 아직 인류에 도착하지 않았다) 물론 유언비어가 떠돌았지만 그건 그저 소문이었다. 이때 정부 기관이 영화에 대한 검열을 강화하면서 감시의 시선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영화가 가지고 있을 어떤 잠재적인 비판의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당신들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 사회적 훈련을 반복적으로 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말 그대로 감시의 전술과 경영. 영화제작자들은 자신의 재산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 시기를 외부의 경쟁자들이 진입할 수 없는 안정적인 시장의 환경으로 받아들였다. 이 감시의 정책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확고하고 경직되었으며, 게다가 반복적인 검열 과정이 거듭되면서 정부기구들의 관료들의 정책 수행으로부터 영화제작자들 자신의 능동적인 실행에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 두 편의 영화,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와 <가깝고도 먼 길>을 가져다 놓는 것이다. 나는 이 단조로운 설명을 먼저 긍정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미 제작자의 손을 떠난 다음 상품의 형태로 다가온 사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 시절은 몰락의 시대였다. 하지만 몰락의 과정에 놓여있는 대상이 영화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 안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 그 사람이 몰락 안에서 하는 자기 증명의 흔적들. 그것이 아무리 희미하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보내는 구조신호. 벤야민의 조언. 비평은 (사후에 흔적을 검증하는) 관찰자가 아니라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바라보는) 목격자가 되어야 한다. 1978년, 그 상황에서 <가깝고도 먼 길>이라는 사건에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임권택은 종종 그 영화를 내가 찍었어요, 라는 반문으로 그 자리를 벗어난다. 허지만 참으로 기이하게도 <가깝고도 먼 길>은 그 영화를 주변으로 한 임권택의 다른 영화들과 이상한 공명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첫 번째, 여기서 행위의 목적을 괄호 치면 <가깝고도 먼 길>은 임권택의 ‘길 영화’이다. (김경현은 임권택의 ‘로드 무비(road movie)’는 관습적인 이 장르에서 벗어나있기 때문에 고유한 ‘길 영화(gil-movie)’라고 다시 정의를 내려야한다고 1996년 11월 6일 USC 컨퍼런스에서 발표했다. 나는 이 새로운 정의에 동의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 만다라 >에 관한 글에서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런데 임권택의 ‘길 영화’는 그의 영화에서 이때 처음 나타났다. 그런 다음 지속적으로 ‘길 영화’를 만들어나갔다. < 짝코 >, <만다라>, < 나비 품에서 울었다 >, < 길소뜸 >, < 개벽 >, < 서편제 >, < 취화선 >, < 천년학 >. 임권택은 마치 여기서 하나의 방법론을 찾은 것처럼 그렇게 반복해서 만들었다. 하지만 <가깝고도 먼 길>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두 번째. 배에서 난파한 남한 어린이 김인철은 북한경계선에서 북한 어린이 이동만을 만난다. 김인철과 이동만은 서로 완전히 정반대의 자리에서 만난다. 그들이 같은 것은 어린이라는 사실뿐이다. 이때 이 둘 사이에서 같은 것과 다른 것 사이에는 어떤 봉쇄된 괄호가 있다. 임권택은 같은 것을 강조하거나 다른 것을 내세우는 대신 그 사이에 놓인 괄호에 관심이 있다. 이 괄호가 <가깝고도 먼 길>에서는 단순했지만 같은 것과 다른 것을 되풀이하면서 점점 더 많은 것들을 그 안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임권택은 이 괄호가 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듬해에 만든 <짝코>는 <가깝고도 먼 길>과 비교할 수 없는 성찰과 예술적 가능성을 열어놓았지만 단지 서사 안의 두 인물, 빨치산 백공산과 그를 평생 동안 따라다닌 송기열 사이의 관계는 이동만과 김인철의 (역사 안의) 반복이다. <만다라>에서 소승불교의 길을 가는 법운과 대승불교의 길을 가는 지산은 끝내 그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 <나비 품에서 울었다>. 잠시 동안 집을 떠난 여자와 우연히 그녀를 택시에 태운 운전기사의 여행길은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길 위에서’ 끝난다. <길소뜸>. 한국전쟁 때문에 헤어진 소년과 소녀는 어른이 되어서 만남의 광장에서 다시 만난다. 두 사람의 추억을 괄호 치면 아무 것도 겹치지 않는 삶. 두 사람은 강원도에 살고 있다는 아들을 만나러 간다. 만남을 성공하긴 하지만 그 성공은 사실상 그 만남이 실패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런 다음 둘이서 셋이 된 세 사람은 다시 만날 약속 없이 헤어진다. 그들은 서로가 끝내 거리를 유지한다. 이때 이 거리는 단지 내면적인 거리가 아니라 그들의 행위로 나타난다. <가깝고도 먼 길>로 돌아와 보자. 김인철 어린이가 마지막에 휴전선을 건널 때 이동만 어린이가 뒤따라 와서 합류하는 것은 서로 동반하여 북한에서 남한으로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만 길을 잘못 들어 지뢰밭으로 들어선 김인철 어린이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온 것이다. 하지만 그 노력은 부질없는 시도로 끝난다. 왜 여기에는 괄호가 보충되거나, 혹은 무언가에 매개되거나, 더 나아가 그 둘이 하나로 종합되지 않는 것일까. 아마도 검열관들은 이 괄호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 검열관들이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세상이 둘로 나뉘었을 때, 그때 그 중간의 어떤 자리도 남겨두지 않은 채, 반복해서 하나가 다른 하나에로 서로 교대하듯이 자리를 바꿔가면서 눈앞에서 학살을 했을 때, 자기의 자리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하지만 그 장소에 있어야만 했을 때. 자신을 자기가 구출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공백의 이미지이다. 임권택은 그것을 지혜라고 여겼다. 경험의 지혜. 하지만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그 이미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임권택은 둘을 제시한 다음 그 둘이 하나로 겹치지 않은 채로 놓아두고 완강하게 종합을 거절하면서 그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괄호의 공백을 그의 영화 안에 비밀 암호처럼 남겨놓았다. 어쩌면 필연적인 귀결. 그 괄호를 임권택은 반공영화를 찍으면서 만들어냈다. 종합의 실패로서의 공백. 매개의 다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놓여진 심연. 무엇으로도 보충되지 않는 장소. 거의 모든 것이 몰락의 사대라고 할 수밖에 없는 시간에 만들어진 <가깝고도 먼 길>의 기술적 약점을 찾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다. 임권택의 영화답지 않게 씬 사이의 의상의 연결조차 문제가 생겼다. 김인철 어린이와 이동만 어린이가 커다란 진흙웅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우리는 분명히 두 소년의 옷이 완전히 진흙투성이가 된 것을 보았다) 다음 장면은 두 소년이 모두 말끔한 옷을 입고 있다. 두 장면 사이에는 어떤 시간적인 생략도 없는데 그러하다. 임권택은 같은 해에 < 족보 >와 < 상록수 >를 찍었다. 그리고 이듬해에 < 깃발없는 기수 >를 연이어 찍었다. 현장에서 무언가 문제가 벌어졌으며, (나는 임권택이 거의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씬 사이의 연결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을 그의 연출 과정을 보기 위해 처음 방문한 1985년 < 연산일기 > 현장에서 보았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알지 못하는 무슨 문제가 거기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걸 가정하여 <가깝고도 먼 길>을 방어하는 것은 내 관심의 요점이 아니다. 반대로 거의 실패가 예정되어있을 것만 같은 현장으로 진행한 이 불균질적인 영화에서 임권택이 담아내려고 한 공백은 무엇이었을까, 에 관한 이미지를 그려내는 것이 내 목표이다. 여기서 거의 파괴적이라고 불러야 할 것은 1978년에 확대재생산 되고 있었던 두 가지 서로 다른 종류의 이미지 사이의 충돌의 몽타주이다. <가깝고도 먼 길>은 표면적으로는 남한 어린이 김인철과 북한 어린이 이동만 사이의 만남이지만 사실상 이 영화가 구성하고 있는 것은 두 소년의 마음속의 이미지 사이의 거의 폭력적인 충돌의 몽타주이다. 두 소년이 처음 만났을 때 곧장 각자의 마음속에 담아둔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그 둘은 처음에는 서로 낯선 상대방에게 불신과 의심, 혹은 적개심을 품고 서로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판단을 스스로에게 자문자답한다. (voice_over_narration)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반대로 한다. “달래서 여길 빠져나가야 할 텐데, 그런데 나를 신고하지는 않을까” 그러는 동안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여길 어떻게 들어왔지? 이 반동 자식을 빨리 고발해야 할 텐데”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하지만 이동만 어린이는 김인철 어린이가 하지 않는 (마음속의) 질문을 한 가지 더 한다. 김인철 어린이의 손목에 찬 ‘디즈니 만화시계’(그때는 아동용 디즈니 캐릭터 시계를 그렇게 불렀다)와 고급 운동화를 몰래 훔쳐보듯이 바라보면서(zoom_in) "저런 걸 어떻게 갖게 된 거지, 아마 미 제국주의 앞잡이일거야“라는 부러움과 자기 정당화의 문답이다. 이 덧붙여진 비대칭의 대립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남한의 상품과 그에 이끌린 북한 어린이의 유혹의 (그리고 패배의) 문답. 처음에는 이 진부한 체제 우월의 매뉴얼에 가까운 표시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 표시들은 물론 서사 안이 아니라 서사 바깥을 향한 것이다. 서사 바깥? 만일 당신이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을 떠올렸다면 그건 기계적인 반응이다. 1978년의 관객들은 반대편의 수령에 비해서 자신들의 대통령이 훨씬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행복하고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음을 증명하려는 이 반공영화들의 충성스러운 장면들의 반복 앞에서 피로한 상태였다. 이 표시의 전시가 진정 관객으로 삼고 있는 것은 검열관들이다. 물론 나는 검열관들이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의 명제. 검열이란 국가의 나르시시즘이다. 그리고 경찰국가가 되었을 때, 1978년 남한이라고 부르는 토픽의 맥락에서, 검열은 박정희(라고 부르는 체제)의 나르시시즘이(이어야 한)다. 이때 영화의 맞은 편 자리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검열관이 검열을 하는 자리에 불려간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한 쪽이 검열을 당할 때 다른 한 쪽은 검열을 해야 한다. 이때 검열관은 검열을 하는 과정으로 검열을 당한다. 나는 지금 카프카를 떠올리고 있다. 검열관은 검열을 수행하는 자리이지 검열이라는 도구가 아니다. 그러므로 검열관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 영화의 주제, 형식, 서사, 주인공이 아니다. 그들이 검열에 충실 할 때 거기에 없어야 할 표시가 있는가, 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고, 제도에 충실할 때 거기에 있어야 할 표시가 있는가, 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거기에 있어야 할 표시가 거기에 없는가, 는 제도적인 무관심의 대상으로 재분류될 것이다. 물론 그들은 충실한 공무원으로 자신의 임무를 다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표시는 이미 항상 거기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영화의 원래의 목표, 스크린 쿼터라는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임권택은 이 제도의 원리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게다가 1978년에 임권택은 그 제도 안에서 살아야했다. 그런데 임권택은 여기서 이상한 공백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만일 이 제도가 요구하는 표시 앞에서 멈추는 대신 거기서 더 멀리 지나쳐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자신을 “조선인민공화국 상원 인민학교 4학년 3반 소년단 분대장”이라고 소개한 이동만 어린이는 김인철 어린이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생활을 떠올려본다. 이때 떠올려보는 이미지는 플래시백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생활 이미지이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여기서 중요하다. (나는 여기서 다소 장황하더라도 주석을 달아가면서 간극을 확인해나갈 것이다) 이 이미지들은 이동만 어린이가 거기에 항상 포함되어 있지만 그의 개인적인 기억이나 경험에서 온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북한 어린이들의 표준적인 생활상의 모습이다. 물론 그때 임권택은 북한에 가본 적이 없으며 (임권택이 처음 북한을 다녀온 것은 2000년 11월 10일이다. 남북한 문화교류의 차원으로 영화인 방문단 중의 한 명으로 금강산을 다녀왔다. 그 방문이 현재까지 임권택의 북한 방문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북한에 관한 정보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러므로 그 당시 북한과 관련된 반공영화, 반공드라마, 반공 홍보물은 검열에서 통과된 몇 개의 모델의 재생산이었다. (이 모델들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내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다) 이동만 어린이는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남한에 대한 왜곡된 교육을 받으며 (아마 이동만 아린이의 담임선생님도 사실은 남한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는 교육받은 대로 전달하는 것일 뿐이었을 것이다. 그건 남한의 담임선생님들이 북한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으면서 북한에 대해서 교실에서 교육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교육이 왜곡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가 남한에 살기 때문이다. 이 간단한 논리!) 군사훈련시간에는 인민학교 4학년 어린이들이 전쟁에서 사용되는 실탄이 장전된 총을 들고 목표를 사격하고 철조망을 통과하고 지뢰를 해체하다가 실수하여 폭발 사고로 수업 중에 사망하기도 한다. (그때 남한에서는 그런 강도 높은 군사훈련은 아니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준(準)군사훈련에 해당하는 교련수업을 남녀 모두 받았다) 산수시간에는 선생님이 “남조선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매일 굶어죽는데 어른 다섯 명이 죽고 아이 다섯 명이 죽으면 모두 몇 명이 죽었습니까?”라며 덧셈을 가르친다. 국어시간에 쓴 시라면서 “남조선 공장굴뚝, 연기도 못 뿜는 공장굴뚝”이라는 시를 읊는다. 교실에는 미술시간에 그린 그림들이 붙어있다. 그리고 그 그림들은 하나같이 불 뿜는 탱크. 폭격하는 미그 전투기, 총을 쏘는 인민군들, 육박전을 하며 찌르고 찔리는 장면들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 장면들의 사실여부를 알지 못한다. 1978년 당시 북한 탈북자들, 귀순용사들, 체포된 무장공비들, 자수한 간첩들은 공식적인 기자회견을 했고 마이크와 카메라 앞에서 북한에서의 생활상을 알려주었다. 게다가 어떤 사진자료도 제공되지 않고 구술로만 전달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의 상상으로 그 이미지를 보충해야만 했다. 나는 그 내용이 모두 남한에 와서 교육을 받은 다음에 만들어낸 조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내용 모두가 북한에서의 생활상이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이를테면 <기생충>에서 박사장 가족이 사는 동네와 김씨 가족이 사는 동네는 얼마나 다른가. 만일 두 동네 중 하나씩 서로 다른 두 편의 영화가 보여준다면 우리는 어느 쪽을 믿어야했을까) 그러므로 이동만 어린이가 떠올리는 북한에서의 어린이들의 생활상은 사실의 재연이라기보다는 수수께끼에 가까운 연출이다. 두 가지 지적. 첫째, 그런데 이동만 어린이의 생활상은 그의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미지이기 때문에 김인철 어린이는 보지 못한다. 둘째, 그렇다면 이동만 어린이의 북한에서의 생활상은 왜 필요한 것일까. 물론 일차적인 이유는 이미 설명한 것처럼 이 장면들은 <가깝고도 먼 길>이 반공영화라는 것을 검열관들에게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표지들이다. 하지만 임권택은 거기서 더 밀고 나간다. 하나의 질문. <가깝고도 먼 길>은 1978년에 교실에서, 텔레비전에서, 다른 영화에서, 라디오에서, 온 사방에서 포위하듯이, 그렇게 상투적이고 진부하며 무엇보다 피로할 정도로 반복되고 있는 모델을 다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그 모델을 비판하는 대신 그 모델이 폐허라는 것을 드러내 보여준다면 거기서 그 제도의 폭력성을 드러내 보여줄 수 있을까. 물론 임권택이 전술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이 모델의 앙상함을 비판하는 대신 그걸 어디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스스로 그 모델이 일그러졌음을 보여주는 쪽을 선택했다. 얼핏 보면 안전해보이지만 방법론적으로 훨씬 폭력적이라는 걸 생각해야 한다. 영화에서 무엇을 무엇 곁에 놓느냐는 문제. 김인철 어린이와 이동만 어린이는 서로 마주쳤을 때 서로의 체제가 더 훌륭하다고 말싸움을 한다. 물론 그걸 과장해서 설명할 필요는 없다. 소년들은 상대방의 체제를 본 적이 없으며, 각자의 교실에서 배운 대로의 학습에 따르는 것이다. 이때 이 말싸움은 공정하지 않다, 왜냐하면 영화를 보는 우리는 김인철 어린이의 이 쪽의 세계는 본 적이 있지만 이동만 어린이의 저 쪽의 세계는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깐만, 여기서 멈추고 다시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정말 김인철 어린이의 세계를 본 적이 있는가. 모두들 잘 알고 있는 명제에서 시작하겠다. 세상은 여러 개의 세계로 나누어져 있다. (다시 한 번 반복하는) 간단한 예. < 기생충 >의 한 장면. 기우는 고액과외를 가르치기 위해 박사장 집에 처음 왔을 때 대문을 열고 들어가서 두리번거린다. 왜? 한 번도 본 적아 없는 세계니까. 물론 누군가는 영화를 보면서 김씨네 반(半)지하 집에 왔을 때 눈을 둥그렇게 떴을 것이다. 각자는 각자의 고유한 세계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세계를 마음대로 이동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 나라에서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에로 이동하는 일보다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나가는 편이 훨씬 쉽다. 김인철 어린이의 집. 다정한 아버지와 부드러운 어머니. 행복한 표정의 중학생 누나와 어린 여동생. 아버지는 늘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 김인철 어린이의 친구들은 모두 좋은 옷을 입고 생일날이면 다들 커다란 선물상자를 사들고 방문한다. 1978년 남한. 나는 이동만 어린이만큼이나 김인철 어린이의 집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심지어 김인철 어린이는 같은 남한에서 함께 살고 있는 내 이웃인데도 그러했다. 물론 김인철 어린이의 집은 가능한 세계이다. 그러나 그건 아주 적은 숫자이다. 1978년을 설명하는 두 가지 사례. <가깝고도 먼 길>이 제작된 그해 2월 21일 인천 동일방직은 1,383명의 조합원을 가진 공장이었다. 노동조합 위원장 선거가 있었고, 회사는 이를 방해했다. 선거가 있는 그날 새벽 5시 30분 어용노조 직원들이 선거함이 있는 사무실에 난입하여 선거함을 지키던 조합원들에게 똥물 세례를 시작했다. 노조위원장을 포함하여 128명의 조합원이 해고되었고, 조합원들은 농성을 시작했다. 이 농성은 1980년 5월 17일 전두환 군부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이듬해 YH무역은 수출업으로 성공적인 업체였음에도 근로자들이 노동조합 신청을 내자 1979년 3월 자진폐업 신고를 냈다. 그러자 그 해 8월 19일 YH무역 근로자 172명이 야당이었던 신민당에 모여 항의농성을 했다. 당시 신민당 총재는 김영삼 전대통령이었다. 하지만 경찰이 진입하여 신민당에 모여 있던 시위 근로자들뿐만 아니라 신민당 국회의원, 당원, 신문기자를 무차별로 폭행하고 전원 구속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중인 근로자 한 명이 추락사하였다. 이 두 개의 사건은 1979년 10월 16일 부산, 그리고 18일 마산에서의 시위로 이어졌고 10월 27일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는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 실장을 저격하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김인철 어린이의 집은 가능한 세계이다. 그러나 그 세계가 현실에서 거의 발견하기 어려울 때,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울 때, 남한에서 그 세계는 사실상 분리되어 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김인철 어린이의 집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사이의 누구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험하고 있)는 간극. 이때 이 세계가 북한의 어린이들의 생활상이라고 가정된 이미지에 대해 마치 대답하듯이 남한의 어린이들의 생활상이라고 보여질 때 갑자기 상황은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진다. 어떻게? 이 영화의 제목 ‘가깝고도 먼 길’은 남한과 북한 사이의 거리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를 단체 관람하는 대부분의 어린이들의 일상생활과 김인철 어린이의 세계 사이의 거리가 된다. 이중의 거리. 거기서 느껴보는 소외감. 왜냐하면 김인철 어린이의 집은 <가깝고도 먼 길>에서 남한의 어린이들의 생활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 김인철 어린이의 집은 남한의 일부 어린이들의 생활상이라고 대답하면 정확하게 그 반대편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게 된다. 어떻께? 이동만 어린이의 집은 북한의 일부 어린이들의 생활상일 뿐이다. 논의를 그렇게 끌고 가면 어쩌면 북한에는 김인철 어린이보다 훨씬 잘 사는 어린이도 있을 것이다, 라는 대답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제 세계는 잘게 쪼개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 이 논의 맨 마지막 자리에서 기다리는 대답은 검열관을 몹시 불편하게 만들 두 체제 사이의 대립의 철학적 기원에 놓여있는 사적 소유와 사회적 생산 사이의 모순에서 발생한 계급에 관한 세계사이다. 임권택은 여기서 마치 두 세계 사이에 어떤 중간도 없는 것처럼 양쪽 끝으로 번갈아 오간다. 한 쪽 끝은 가고 싶지 않은 세계이지만 다른 하나는 갈 수 없는 세계이다. 가장 이상한 순간은 김인철 어린이가 이동만 어린이에게 함께 남한에 가자고 할 때 벌어진다. 나는 김인철 어인이의 호의를 의심하지 않는다. 아마 이 소년은 정말 그렇게 할 것이다. 이동만 어린이는 그의 부모와 함께 어린이 공원에 가서 함께 테마 파트 미니 전기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즐거운 오후를 보내고, 그런 다음 이동만 어린이는 김인철 어린이 친구들의 따뜻한 환대와 그 자리에 참석한 모두로부터 각자 준비한 선물을 받는다. 이 환대를 의심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왜 이 장면이 이상할 정도로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여기에 빠진 단순한 질문이 있다. 환대의 다음 날은? 이동만 어린이가 남한에 와서 환대를 받는다는 것이 김인철 어린이의 자리에 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임권택은 그걸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길소뜸>을 떠올려보라. 한국전쟁에서 헤어진 소년과 소녀가 33년에 만난다. 하지만 다음 날은? 바깥이 안으로 들어올 때 그 안은 다시 바깥과 안으로 분할된다. 이 분할은 무한정 멈추지 않고 운동할 것이다. 게다가 적대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것이 세계사였다. 그렇지 않던가요? 우리는 이상적인 긍정과 이성적인 현실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심연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아이들은 김인철 어린이의 집에 선물을 들고 이동만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는 그 파티에 참석할 수 없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동만 어린이가 남한에서 환대를 받은 다음 그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그 환대의 자리에 다시 가기를 원한다면 (소름끼치게도 이 소년이 배운 바에 따르면) 그 선택은 다시 북한으로 되돌아와서 남조선 적화통일의 그날까지 혁명 사업에 충성을 바쳐 복무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조크로 들리는 만큼 이 장면은 우스꽝스럽다. 갑작스러운 이상적인 해결 방식의 장면들. 하지만 무조건이라는 환대는 없다. 환대라는 긍정의 이면에는 복종이라는 부정이 담겨있다. 이때 환대는 폭력이 될 것이다. <가깝고도 먼 길>에서 핵심은 무엇인가. 이 영화를 북한의 어린이들이 볼 리가 없다. 그러므로 여기서 벌어지는 환대는 북한의 어린이들에게 남한의 어린이들이 보여주는 관용과 친절이 아니라 정반대로 남한의 어린이들이 가져야 하는 환대의 예의에 대한 그 스스로의 학습인 것이다. 하지만 그 환대의 행위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 파티에 가야한다. 환대를 수행할 기회조차 상실한 수많은 남한의 어린이들. 이때 이 씬은 이동만 어린이의 머릿속에서 전개된 장면이라는 사실을 환기해야 한다. 북한 어린이의 기대의 지평. 그 지평을 바라보는 남한 어린이들이 가져보는 이상적인 환대와 현실에서의 수행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거리. 그러므로 이 행복해 보이는 남한에 온 이동만 어린이를 위한 파티 장면은 남한 어린이들에게 파국의 순간과 대면하는 씬에 다름 아니다. 임권택은 남한의 김인철 어린이와 북한의 이동만 어린이의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각자의 생활상을 번갈아 오가다가 마지막 순간에 그 둘을 하나로 합치면서 사실상 이 편집 구조의 결론이 파국의 충돌 몽타주라는 것을 하나의 환상이라는 텅 빈 씬 안에서 전시한다. 텅 빈 공백은 제로가 아니다. 그건 부정이 아니라 거기에 아무 것도 없음을 일깨우는 실패의 긍정인 것이다. 공백의 이미지. 그 안에 아무 것도 없는 이미지. 하지만 그것이 없다면 전체가 무너져버리는 실패의 긍정이라는 방식에 대한 1978년 제도의 프로젝트의 허구를 마치 알레고리처럼 만든 이미지. 임권택은 <가깝고도 먼 길>에서 반복적인 편집의 구조 안에서 마지막 순간 우리에게 공백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그렇다면 파국을 어떻게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리는가. 이 모든 가정에 대한 대답. <가깝고도 먼 길>은 두려울 정도로 무자비하게 끝난다. 김인철 어린이는 이동만 어린이의 인도로 무사히 휴전선에 도착한다. 이제 맞은편의 초소까지만 가면 남한 국방군이 기다리고 있다. 두 사람은 통일이 되면 만나자는 약속까지 하고, 김인철 어린이는 이동만 어린이가 늘 부러운 시선을 보내던 디즈니 시계와 운동화를 선물하면서 이동만 어린이의 고무신과 바꿔 신는다. 그러나 DMZ 지대를 지나가던 김인철 어린이는 그만 길을 잘못 들어 지뢰밭으로 들어선다. 이동만 어린이는 김인철 어린이를 구하기 위해 철조망을 넘어 그 곁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 두 소년은 남한 초소를 향해 달려간다. 그냥 건너가면 된다. 눈앞에 국방군 초소가 보인다. 그런데 뒤에 자리한 북한군 초소의 인민군들이 총을 쏘아 사살한다. 영화는 두 소년이 피투성이가 되어 죽은 시신을 보여주면서 끝난다. 그러므로 여기엔 어떤 다른 기대도 남아있지 않다. 이 마지막 장면은 영화에서 두 가지 약속을 어긴다. 하나는 어린이는 죽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면 (나라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그 장면에 제재를 가하거나 관람여부에 제한 등급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부정적인 심의기준을 적용한다. 다른 하나. 반공영화는 ‘反共’영화이기 때문에 공산주의에 대해서 승리해야 한다. 그 승리가 물리적인 군사력의 형태이건, 도덕적인 우위에서건, 형태를 달리한 서로 다른 맥락의 휴머니즘에서건, 긍정되어야 한다. <가깝고도 먼 길>에서 가장 바보 같은 대답은 북한군 공산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체제를 군사력으로 방어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어린이들을 사살함으로써 도덕적으로 패배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렇게 설명해버리면 <가깝고도 먼 길>은 공산주의자들의 도덕적 패배를 주장하기 위해 아이들을 사살한 장면을 전시한 것 말고는 달리 한 일이 없다. 이 마지막 장면에는 그런 설명이 없다. 북한 인민군들은 제 임무를 수행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어떤 정치적 학습에 따라 수행한 것이 아니며, 그 과정에서 어떤 도덕적 망설임도 없으며 그러므로 그 결과에 대해서도 어떤 도덕적 후회가 없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장면에 관한 질문은 온전히 영화에로 귀결된다. <가깝고도 먼 길>은 왜 반공영화로서 해피엔딩을 포기해버린 것일까. 왜 임권택은 마지막 장면에서 해피엔딩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일까. 세 개의 가능한 장면을 가정해보자. 첫 번째 가정. 두 소년이 DMZ 휴전선을 넘어갈 때 아무도 지켜보는 시선이 없는 장소를 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동만 어린이는 이 지역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어디에 지뢰가 묻혀있는 지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초소가 없는 지역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두 소년은 북한군의 아무런 방해 없이 넘어간 다음 국방군 초소를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영화가 끝난다.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엔딩이지만 그렇게 되면 무언가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이 단조로운 엔딩에 대해서 영화 바깥에 대해서 위기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오는 것은 이렇게 단순한 일인가요? 어린이들도 이렇게 손쉽게 넘어올 수 있다면 훈련받은 간첩, 무장공비, 공작원들에게는 얼마나 쉬운 일인 것일까. 두 소년이 어떤 경우에도 방해받지 않고 그렇게 손쉽게 넘어오면 안 된다. 검열관은 임권택에게 반문할 것이다. 왜 여기에 아무도 없습니까. 그런 다음 엄격하게 조언할 것이다. 남한의 국방 경계는 그렇게 허술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가정. 북한 인민군 초소에서 두 소년을 발견한다. 인민군 저격수는 소년들이라는 것을 발견한 다음 사격을 중단하고 그들이 지뢰밭을 무사히 통과하기를 걱정한 다음 남한 초소에 도착하자 안도의 작별인사를 보낸다. 이 엔딩은 검열관이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세 번째 가정, 북한 인민군 초소에서 두 소년을 발견하고 총을 쏘자 맞은 편 남한 국방군 초소에서도 소년들을 구하기 위해 맞대응을 시작한다. 소년들은 안전하게 남한 초소에 도착한다. 만일 세 번째 엔딩이 <가깝고도 먼 길>에 가장 적절하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지금 휴전선의 의미를 완전히 놓친 것이다. 휴전선은 잠시 전쟁이 중단된 것이지 ‘전쟁이 끝난 것(終戰)’이 아니다. 초소 사이의 상호 총격전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며, 위반하는 경우 순식간에 한반도를 불바다로 만들 수도 있다. 검열관은 이 엔딩에 위기를 느낄 것이다. 임권택에게 남은 선택은 그렇게 많지 않다. 왜 소년들을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은 모두 부정되어야 하는가. 나는 차례로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 다음 차례로 제거해나갔다. 언제나 이유는 동일하게 귀결된다. 휴전선이라는 특수한 장소의 논리. 어떤 환상도 작동되지 않는 공간. 여기에 도착하면 누구라도 여기의 논리를 따라야한다. <가깝고도 먼 길>은 마지막 순간 서사의 무능력과 마주해야 한다. 반복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여기는 휴전선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자기가 다루고 있는 장소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사태와 마주하는 순간, 이때 임권택이 혐오하는 것은 휴전선 그 자체라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여기서 모든 가능성은 뒤로 후퇴하고 만다. 그건 <가깝고도 먼 길>만이 아니라 모든 남한영화, 남한의 모든 예술, 그것이 문학이건 미술이건, 연극이건, 모두가 이 장소 앞에서 무능력을 고백하게 된다. 임권택은 이 장소에 도착한 다음 다시 공백 상태로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영화의 (불)가능성과 대면한다. 여기서는 상상도, 환상도, 질문도 작동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한 빨리 여기서 떠나야 한다. 임권택은 찍기 싫은 장면을 서둘러 끝내고 영화를 끝낸다. 나는 의도적으로 끝내다, 라는 말을 두 번 썼다. 그런 다음 임권택은 두 번 다시 이 장소 근처로 가지 않았다. 대신 이 장소의 역사적 근거에로 거듭해서 되돌아왔다. 아마 그 이야기를 할 때가 된 것 같다. (계속)
휴머니즘의 길을 찾아가는 순례의 여정 < 기쁜 우리 젊은 날 >(1987)에서 영민은 짝사랑하던 혜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 인내하며 기다림을 견뎌내야 했다. 그리고 같은 해 연말, 크리스마스이브에 개봉한 < 안녕하세요 하나님 >(1987)에서 (마찬가지로 배우 안성기가 연기한) 청년 병태는 경주의 첨성대를 보기 위한 여행길에 나선다. 전자가 오랜 시간의 흐름을 경유한다면, 후자의 서사는 장소와 공간의 이동을 통해 전개된다. 얼핏 보면 상반된 면을 보이는 이 두 영화는 사실 배창호 (裵昶浩: 1953~)라는 감독의 세계관 안에 하나로 수렴되는 동전의 양면들이다. 사뭇 달라 보이긴 하지만 이 두 영화는 시간을 통해서든, 아니면 공간을 통해서든 일종의 긴 탐색의 여정을 다루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인물들은 ‘사랑’이라는 가치에 눈뜨게 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소풍 하루 전날 뇌성마비에 걸려 몸져누운 병태는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해 아버지 몰래 집을 나선다. 그에게 있어 경주행은 유년기에 멈춰버린 인생의 시간을 되찾기 위한 꿈의 여정이다. 그러나 장애의 몸에 홀로 여행을 떠나는 건 쉽지 않다. 단순히 서울역을 찾는데도 버스를 잘못 타고 길을 헤매는 그에게 조력자 역할로 시인 한민우, 무임승차한 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춘자가 동행으로 붙는다. 인물의 설정은 다르지만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는 감독의 성공작 < 고래사냥 >(1984)의 또 다른 변주에 가깝다. 실연의 고통을 달래고자 무작정 길을 나서 방랑하던 병태는 구체적인 목적지를 얻으며, 거지 왕초 민우는 시인으로 바뀌었지만 병태를 돕는다는 점에서는 같으며, 사창굴에 빠져들어 삶의 험난함을 겪었던 춘자는 홀로 만삭의 몸을 끌고 다니는 미혼모로 바뀌어 있다. 여행은 배창호 감독의 필모그래피 전반을 관통하는 중요한 라이트모티프(Leitmotiv)이다. 배창호 영화에서의 인물들은 여행(또는 방랑)을 나서서 고난과 역경을 거친 뒤 성장 내지 각성을 얻고 돌아오는 신화-동화의 서사적 구조 속에서 작동한다. 여행은 <고래사냥>처럼 성장과 성숙의 과정이거나, < 황진이 >(1986), (일견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연상케 하는) <꿈>(1990)처럼 종교적 깨달음의 추구이기도 하며, 때로는 < 적도의 꽃 >(1983)의 미스터 M(한민우와 더불어 이명세 의 < M >(2007)에서 재활용되는 이름)이 선영의 죽음을 겪고, 한국과 멕시코, 미국으로 계속 이동하는 < 깊고 푸른 밤 >(1984)에서 백호민이 끝내 자신이 추구하던 성공이 허망한 것이었음을 깨닫는 바와 같이 냉혹한 현실 인식 내지 자기 성찰에 직면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종국에 맞는 상황이 다를 뿐이지, 배창호가 만든 일련의 영화들은 가치관에 대한 탐색의 과정을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 <안녕하세요 하나님>은 배창호식 로드 무비 중 가장 낙관적이고 따스한 정감을 지닌 버전이며, 지금에 와서도 눈여겨볼 만 한 보편통시적인 지점을 관통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주인공들은 사회의 정상성 속에 편입되지 못한 채 주변부를 맴도는 방외인(房外人), 시대의 소수자(minor)들이다. 병태는 뇌성마비 장애를 앓고 있고, 춘자는 처음엔 시댁으로 간다고 했지만, 실은 남자에게 속아 이용당한 뒤 홀몸 아닌 몸으로 버려진 미혼모(그녀가 정표로 간직하던 보석은 전당포에서 보통의 유리 조각으로 판명된다.)였으며, 보헤미안 시인 민우는 원래는 교사 출신으로 합창 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 전복사고로 학생들의 죽음을 겪고는 자취를 감춘 불행한 인물이었음이 드러난다. 상흔(傷痕)을 안고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연대. 영화는 이러한 인물들의 사연을 여정이 진행되는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 서서히 드러내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극의 흥미를 잃지 않게 하고, 각 인물의 자아 찾기, 인간성 회복과 깨달음의 여정에 동참하도록 유도한다. 여행 중 일행으로서 가족적 연대의식을 형성한 병태 일행은 각자의 소중한 것을 조금씩 희생하면서 서로를 배려하고자 한다. 춘자는 만삭의 몸임에도 자신이 굶는 대신 병태와 민우에게 자장면을 먹이고, 병태는 경주에 가서 그림을 그릴 물감을 전당포에 맡겨 일행을 위한 돈을 마련한다. 이러한 자기희생과 배려의 행위는 일행을 배불리 먹이고자 호텔 레스토랑에서 속임수를 쓰는 민우의 행동에서 정점으로 치닫는다. 무임승차로 역에 붙잡혔던 병태 일행이 서로를 부축하고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의 롱테이크, 시골 학교 교실에서 민우의 풍금 연주에 맞춰 정상적인 몸으로 춘자와 춤을 추는 걸 몽상하는 병태의 환상은 불완전한 소수자들이 서로를 돕고 보듬으며 난관을 헤쳐나가는 영화의 인간미 넘치는 감성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이다. 민우의 풍금 연주에 맞춰 정상적인 몸으로 춤을 추는 병태와 춘자 이와 같은 인정(人情)의 베풂은 주인공 일행 사이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병태 일행이 여행 중에 만나고 스쳐 지나는 주변 인물들은 때때로 역무원처럼 박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버스를 잘못한 병태를 챙겨주는 우이동 버스 종점의 기사들과 샌드위치 노점 아저씨, 숙직 중 병태 일행을 맞아 잠자리를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야식으로 감자를 대접해준 학교 선생님, 일행을 받아들이고 대접해준 환갑 잔칫집(<고래사냥>에처럼 스틸컷으로 전환되는 연출은 훗날 이명세의 <M> 에서도 그 영향을 찾을 수 있다.), 병태의 물감을 받고서 선선히 돈을 내준 전당포 주인, 비 내리는 날의 이삿짐 트럭, 병태와 춘자를 돕고자 일어선 시외버스 안의 승객들에 이르기까지, 이방인을 환대할 줄 알며, 그들의 여정을 도와주고 격려해주는 선량함을 품고 등장한다. 소수자에 가해지는 정상적 사회 일반의 차별과 폭력에 초점을 맞추기 마련인 통속적 피해자 서사와는 사뭇 궤적을 달리하는, 당대의 관객에게 대안적 사회상을 영화적 유토피아로써 제시하고자 하는 배창호식 휴머니즘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이다. 여행 중 길과 사람의 관계성에 주목하는 배창호식 로드무비의 휴머니즘은 경주를 지척에 두고 춘자가 출산하는 헛간 시퀀스에서 종교적 차원으로까지 비약한다. 이 지점에서 경주로 향하던 병태 일행의 여행은 예수 탄생 직전 요셉과 마리아가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기독교 신화의 순례와 치환된다. 예수를 낳은 성모 마리아처럼 헛간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춘자의 주위에서 병태와 아이들은 (마치 페데리코 펠리니의 < 카비리아의 밤 >(1957) 엔딩에서 줄리에타 마시나를 둘러싼 광대들처럼) 노래하고 행진한다. 화사한 촛불 조명과 필터 처리로 연출된 병태의 환상과 더불어 이 장면은 유영길 촬영감독의 섬세한 조명 처리를 통해 낭만적이고 상징적인 순간으로 그려진다. 실내의 노란 빛은 차츰 문과 나무 벽 틈 사이를 관통해 안으로 비치는 신비로운 푸르스름한 빛으로 대체되며 일순간 신화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이른다. 현실적인 상황으로는 차별받기 십상인 미혼모의 아기는 구세주의 탄생과 동일시되며 축복받는 것이다. 이 아기는 병태 일행과 그들을 도와준 사람들 모두의 인정이 한땀 한땀 모여 빚어낸 사회적 사랑의 결실이다. 아이가 구원을 가져다준 것이 아니라 아이가 바로 구원의 산물이자 징표이며, 그것으로 세상은 이미 구원받은 것이다. 신화적 분위기의 춘자의 출산 장면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여행은 서울과 경주라는 출발점과 종착점을 갖는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하는 여행은 실상 실패한 여행이다. 목적지를 향한 여행은 진행되면서 여행자의 신체와 의식, 삶을 변화시키며, 종국에는 목적지가 아닌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토록 선망하던 첨성대에 도착했음에도 (배창호 영화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인 벤치에 앉은 채) 침울해 보이는 병태의 표정은 이러한 여행의 역설을 잘 보여준다. 정작 중요했던 건 첨성대가 아니라 그에 도달하기까지 겪었던 다양한 사건들, 다양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 춘자와 병태는 일행을 떠났던 민우와 다시금 경주에서 재회한다. 지저분한 머리와 수염을 깔끔히 정리하고 다시금 교사로서 풍금을 연주하는 민우의 모습은 “경주에는 왜? 거긴 폐허와 무덤뿐인데”하던 극 초반의 모습과 대비를 이루며 그가 여행의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본연의 자아와 인간미를 회복했음을 보여준다. 이때 유아기적 순수성을 은유하던 병태의 노란색 모자는 견학을 온 유치원생들 모자의 노란색과 포개지며 봄날의 개나리꽃과 같은 화사한 분위기를 빚어낸다. 춘자, 병태 그리고 유치원생들 동시대 한국영화계는 열린 영화’의 개념을 주창하며 < 성공시대 >(1988)로 풍자적 리얼리즘의 전위에 섰던 장선우 , < 칠수와 만수 >(1988)로 사회적 리얼리즘을 제시한 박광수 의 등장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배창호 감독은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시각에 입각해 특유의 낭만주의로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정립했다. 때론 이러한 감독의 성향은 진보적 평자들의 시선에서는 몽상적이며 현실의 정치적 문제를 다루지 않고 안전한 지점에 안착한다고 비판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또한 오늘날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정서는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어떤 점에서는 불가능하다 싶을 정도로 순수하며 인정이 넘친다. (또한 별개의 논의를 요구하는 바이지만, 여성 캐릭터를 남성에 의한 구원을 해야 하는 대상적 존재로서 그리는, 배창호 필모그래피 전반에 걸쳐 일관되는 감독의 여성관은 현대의 관점에서는 다소 걸리는 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는 돌이켜보면 영화를 바라보는 지금의 시대상이 각박해졌다는 방증인 동시에, 한국영화의 사회적 상상력이 더 이상 유토피아적 사회상, 공동체와의 유기체적 관계성을 그려낼 수 없을 만큼 빈곤해지고 황폐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배창호 영화의 낭만주의는 암울한 시대상을 포장하고 뒤덮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로부터 상처 입은 당대 사람들의 내면적 치유를 갈망하고, 더 나아가 인간적 삶이 가능한 대안의 사회, 대안적 공동체의 잠재적 형태를 제시하고자 했다고 보아야 감독의 본의에 더욱 근접한 해석이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안녕하세요 하나님>은 장애인(병태), 피해자로 내몰린 여성(춘자), 사회적 트라우마를 겪은 지식인(민우)을 주인공으로 함과 아울러, 언제든지 소수자들을 환대할 준비가 되어있는 유쾌한 동료들, ‘도래할 민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30년 넘는 시간의 공백을 뛰어넘어 오늘날의 관객에게 다시 발견되고 재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세월호 사건의 증후를 겪는 한편, 페미니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유토피아적 상상력을 봉인 당한 채 피해자 서사와 디스토피아에 주박된 오늘날의 한국영화계에 있어,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낭만주의, 유토피아적 비전은 차츰 잊혀가고 죽어가던 어떤 가능성을 일깨울 하나의 계기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2018년 9~10월 VOD 기획전 <길 위에서 답을 찾다: 로드무비> 상영작 -> 바로보기
그리스신화, 이집트신화, 중국신화 등 세계의 유명 신화들은 그동안 애니메이션의 소재로 많이 쓰였고 지금도 계속 쓰인다. 반면 우리의 전통 신화는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애니메이션화가 잘 되지 못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와 우리 신화의 재조명 바람과 함께 애니메이션계의 관심도 점점 늘어나 여러 작품이 제작되었다. 이성강 이 감독한 < 오늘이 >는 그런 움직임의 시작점에 있다. 제주 신화에 나오는 ‘오늘이’는 사계절을 주관하는 여신이라 한다. 강림들에 살지만 태생조차 모르던 한 소녀가 자신을 보살펴 준 학의 품을 떠나 부모가 살고 있다는 원천강을 찾아 여행길에 오른다. 그 과정에서 별충당의 장상도령을 비롯해 연화못의 연꽃, 청수바닷가의 이무기 등을 만나고 그들의 숙원을 모두 풀어준다. 그 덕인지 옥황상제의 부름에 하늘로 올라간 소녀는 선녀가 되고, 이후 원천강에 돌아가 부모를 돌보고 사계절도 관장하게 된다. 오늘이 신화는 겉으로 보면 장황하게 느껴지지만 결론적으로는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자신이 누구며, 특히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지를 헤아려가는 것이 테마다. 답은 소녀의 이름에 있다. 바로 오늘, 그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이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런 오늘이 신화를 전부 그려내지는 않았다. 선녀를 만나거나 부모와 상봉하는 부분 등 거추장스럽거나 구태의연한 부분은 없앴다. 여정도 원천강에서 출발해 원천강으로 돌아가는 식으로 심플하게 다듬었다. 때문에 이야기는 더 쉽게 이해가 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연상케 하는 캐릭터는 주목할 만하다. 장상도령의 히스테릭함, 연꽃의 의인화, 이무기의 수다 등 매우 특징적인 조연들의 모습이 극의 재미를 살린다. 그들이 등장할 때면 오늘이는 주인공이 아니라 오히려 조연처럼 느껴질 정도다. 줄곧 오늘이를 따라다니는 살아있는 보라색 여의주는 감초 역을 충분히 해낸다. 이런 캐릭터성은 이성강 이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준 것보다 훨씬 상업적이다. < 덤불 속의 재 >(1999) 등 단편 작품들부터 상업 장편인 < 마리이야기 >(2001)에 이르기까지 그의 애니메이션은 전반적으로 차분했다. 하지만 < 오늘이 >에서만큼은 작심이라도 한 듯 상업 작품의 생기발랄한 요소를 의식적으로 심어 넣은 느낌이 역력하다. < 오늘이 >는 예술성과 상업성의 경계에 놓여 있다고 하겠다. 물론 표현 면에서 어설픈 점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성강 의 필로그래피에서 <오늘이>의 존재는 창작 방향이 예술 작품에서 상업 작품으로 넘어가는 분기점이 되고 있는 듯하다. 내러티브 면에서 미완성성이 강한 우리 신화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미완성이기에 바꿀 여지도 많다고 본다. 오늘이 신화 외에도 우리만의 특색이 잘 나타나 있는 신화는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모든 것이 애니메이션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 오늘이 >는 그 가능성을 오래전에 보여주었다. 2004년 자그레브 애니메이션 영화제 특별상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초청받아 좋은 성과를 얻은 것도 그 때문은 아닐까 싶다. 우리 신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한 < 오늘이 >는 아이들은 물론 우리 것을 잘 모르는 어른들도 보면 좋을 애니메이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