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판 포켓몬스터 뮤츠의 역습 EVOLUTION
- 감독
- 유야마 쿠니히코, 사카키바라 모토노리
- 제작년도
- 2019
- 출연
- 이선호, 홍시호, 김영선, 우정신, 오인성, 리커 마추모토, 오타니 이쿠에, 하야시바라 메구미, 미키 신이치로, 이누코 이누야마, 이시즈카 운쇼, 이치무라 마사치카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대일본 레코-드 회사 문예부장 이서구 끽다점 「비-너스」 매담 복혜숙 조선권번기생 오은희 한성권번기생 최옥진 종로권번기생 박금도 빠-「멕시코」 여급 김은희 영화여우 오도실 동양극장여우 최선화 경무국장게 보내는 아등의 서 삼교경무국장 각하여 우리들은 이제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여 줍시사고 연명으로 각하에게 청하옵나이다. (하략)” 1)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며 경무국장에게 편지를 보낸 장안의 내로라하는 문화계 인물 중에는 ‘끽다점 「비-너스」 매담 복혜숙(卜惠淑(馬利),1904~1982)’도 있었다. 한국의 대중문화, 연예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예의 복혜숙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연극, 영화, 방송에서의 연기 생활은 물론 가수와 성우 활동에 이르기까지 한국 대중연예사의 곳곳에서 그녀의 이름을 빼놓을 분야는 없기 때문이다. 연극 연기로 배우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마호정, 이월화에 이은 세 번째 여성 영화배우로 이름을 올렸다. 일제강점기 조선영화계를 점령했던 예쁘장하고 다소곳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여성 배우와는 거리가 멀었던, 배우 복혜숙은 초창기 조선영화에서 담대하고 현대적인 역할을 맡아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숨을 다하는 그날까지 복혜숙은 한국 대중연예사에 살아있는 성좌로, 원로 여성영화인으로 선구적인 역할을 해내며 60여년의 연기생활을 이어갔다. (사진1) 왼쪽부터 배우 전계현, 배우 복혜숙, 홍은원 감독 (사진2) 배우 최은희(가운데)와 함께 한 노년의 복혜숙 (오른쪽) 충청남도 대천에서 태어난 복혜숙은 서학을 공부해 기독교를 받아들인 아버지와 담대하고 영민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머니에게 한글은 물론 한학도 배워 당시 배우로서는 보기 드문 학식과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이화여자고등학교에 다니며 배운 수예에 흥미를 느껴 수예 선생이 될 요량으로, 16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요코하마 기예학교에 들어갔다. 정작 일본에서는 영화, 연극, 가부키에 마음을 빼앗겼다. 특히 <충신장 忠臣藏>에 감동을 받아, 그녀는 연기자가 될 생각에 수예학교를 나와 시와모리 모리노무용소에 입학했다. 하지만 딸을 찾아 나선 일본까지 건너온 아버지는 복혜숙을 자신이 관여하던 강원도 금화학교의 일본어 교사로 만들어 버렸다. 1920년, 배우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도망치듯 상경한 그녀는 단성사의 인기 변사 김덕경의 소개로 김도산을 알게 되어 신극좌에 입단했다. 이듬해 복혜숙은 <오! 천명>으로 첫무대에 서게 되었다. 복혜숙은 극단이 지방 공연을 다닐 때면 악대를 앞세우고 공연 홍보를 위한 거리행진(街廻り)을 도맡았다. 또 일본에서 여러 번 관람하여 대사를 기억하고 있던 <대위의 딸 大尉の娘>을 각색한 <누교 淚橋>를 직접 쓰고 주연까지 맡아 공연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사진3) 젊은 시절의 복혜숙 극단생활을 이어나가면서도 1925년에 복혜숙은 연기공부를 위해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현철이 세운 최초의 연기학교인 조선배우학교에 입학했다. 비슷한 시기 극단 토월회에도 입단했다. 토월회의 인기 배우 이월화를 대체할 배우로 복혜숙이 등장했던 것이다. 복혜숙은 토월회가 공연한 <춘향전>의 ‘춘향’ 역으로, <카쥬-샤>의 ‘카쥬-샤’ 역으로 이월화 이후 최고의 스타가 됐다. 2) 그 뒤에는 조선극우회와 중앙무대로 옮겨 무대에 섰다. 무대에서 인기를 얻은 그녀는 1926년부터는 최초의 방송국 경성방송국에서 시험용으로 내보낸 첫 방송극 <새벽종>(1926)에도 성우로 출연했다. 3) 또 복음성가를 잘 부르던 복혜숙이 음반도 냈다. 영화대본을 직접 연기하듯 읽어 녹음하는 영화극 음반인 <장한몽>(1929)이 그 시작이었다. 이어서 <쌍옥루>, <부활>, 그녀가 출연한 <낙화유수>에서 주인공의 비련의 운명을 담은 주제곡 ‘강남 달이 밝아서 임이 놀던 곳~’으로 시작되는 <강남달>을 선보였다. 그 후로도 <숙영낭자전>, <심청전>, <춘희> 등의 수많은 음반을 취입했다. 곧 1930년 <애(愛)의 광(光)>을 발표하고는 장안 최고의 재즈가수로 불리기도 했다. 4) 연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다재다능한, 명실공이 그녀는 ‘만능 탤런트’였다. 물론 그녀가 이렇듯 많은 재능을 발휘하게 된 데에는 한국 대중문화사 초창기의 한계적 특징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중문화에 투신했던 인원이 적기도 했거니와 연극배우, 영화배우, 성우나 가수 등의 역할 분할이 뚜렷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복혜숙은 한국의 개척기 대중문화사에서 빛나는 공적을 쌓은 선구자이자 연예계의 지주로 살았다. 하지만 그녀의 주요 활동 영역은 영화였다. (사진4) 영화 <농중조>(이규설, 1926)의 현장. 복혜숙은 아버지의 엄한 감시 때문에 새장 속의 새처럼 집안에 갇혀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여학생 화숙을 연기했다. 연극계에서는 이미 장안에 이름이 났던 복혜숙은 1923년 영화에도 출연을 시작한다. 첫 출연은 마호정과 함께 조선총독부가 계몽을 목적으로 제작한 것으로 윤백남이 연출을 맡은 위생 영화 <방역 防疫>이었다. 5) 출연료 2원을 받은 영화에서 그녀는 길거리에서 파는 레모네이드를 마시고 호열자(콜레라)에 걸려 눕는 주인의 딸 역할을 했다. 곧 극영화에도 출연하는데, 첫 출연작은 당시 인기 있었던 일본 제국키네마의 <농중조 籠の鳥>(松本英一, 1924)를 번안한 이규설의 <농중조 籠中鳥, 새장 속의 새>(1926)였다. 유교사상이 팽배했던 조선에서 젊은이들의 자유연애를 다루어 당시로서는 퍽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사랑을 쫓는 신여성 화숙으로 분한 복혜숙은 다리를 노출하기도 하고 안식(이규설)과 손을 잡는 러브신이 있어 인구에 회자되었다. 통속 신파 번역극이라는 비판 속에도, 남녀 학생들에게는 큰 환영을 받았다. 6) (사진5) <낙화유수>(이구영, 1927)의 한 장면. 이 영화는 단성사의 변사였던 김영환이 진주 기생이던 어머니의 일생을 극화한 <낙화유수>를 영화화한 것이었다. 복혜숙은 주인공 기생 역할을 맡았다. (사진6) <낙화유수>(이구영, 1927)에 참여한 스태프들 이듬해 복혜숙은 조선배우학교 시절 선생님이던 이구영이 연출하는 〈낙화유수〉(1927)를 찍었다. 배우학교의 동기생 이원용이 남자 주인공이었다. 이번에는 기생 역할이었다. 당시 단성사의 변사였던 김영환이 진주 기생이던 어머니의 일생을 극화한 <낙화유수>를 영화화한 것이었다. 기구하게 기생이 된 여인과 젊은 화가의 이루지 못할 사랑을 그린 이 신파극은 개봉 당시 장안의 기생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라며 치맛자락을 휘감고 구경들을 와 더 화제가 되었다. 7) 실연의 마음을 가누지 못해 여인이 투신하는 장면이 두고두고 회자되었는데, 장마철에 한강에 자살하기 위해 뛰어드는 장면을 회고하는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오고가는 행인들이 여자가 자살한다고 구경이 났었던’ 것이었다. 이처럼 그녀는 대담한 연기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당대의 다른 여배우와는 달랐다. 그녀는 연기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배웠다. 서예를 배우는가 하면 창과 러시아 댄스, 유도는 물론 자동차 운전을 배우는 데에 망설임이 없었다. 8) 그렇게 배운 솜씨들은 배우 생활을 하면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다. (사진7) 감독이자 배우 이규설. 복혜숙은 이규설의 작품 <농중조>(1926), <홍련비련>(1927), <순정은 신과 같다>(1928)에서 주연으로 열연했다. 그 뒤 ‘현대학생극’으로 불리던 〈홍련비련〉(이규설, 1927) 9) 에서 복혜숙은 지극히 우정이 깊은 두 대학생 김일과 현진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여배우 편실 역할을 했다. 이어 이규설 감독과의 세 번째 작업은 <순정은 신과 같다>(1928)였다. 둘은 지주의 아들 이규설과 소작인의 딸 복혜숙로 만나 부부로 연기했다. 같은 해 <세 동무(세 걸인)〉(김영환, 1928)에서 복혜숙은 어부의 딸 역을 맡아 사랑에 빠지는 연기를 선보였고, 만주 현지 촬영으로 이월화와 함께 출연했던 〈지나(支那)가의 비밀(일명 흑진주)〉(유장안, 1928)에서는 중국인 거리에 인질로 납치된 조선 여자 송미례 역을 맡았다. 주연으로 활동하던 이 시절 ‘얼굴이 땡그랗’던 복혜숙은 쾌활하고 발랄한 왈가닥 ‘잇 걸(It girl)’로 불린 클라라 보(Clara Bow)를 닮았다는 말을 듣곤 했다. 10) 해방 이전은 배우 복혜숙의 전성기였다. (사진8) <세 동무(세 걸인)〉(김영환, 1928)의 한 장면, 복혜숙은 사랑에 빠지는 어부의 딸 역을 맡았다. (사진9) <지나 가의 비밀>(유장안, 1928) 신문 광고. 만주 현지 촬영을 감행한 이 영화에서 복혜숙은 질로 납치된 조선 여자 송미례 역이었다. 《동아일보》 1928년 5월 25일자 6면 하지만 배우 활동만으로 생활을 꾸려내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녀는 1928년부터 8년간 카페 비너스를 운영했고, 이때 결혼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두 젊은이들의 사랑의 도피를 다룬 영화 박기채의 <춘풍>(1935)에 출연으로 영화계에 복귀했다. 안종화의 <역습>(1936)에는 살인자의 아내 역으로 출연하면서 카페 비너스를 제작 사무실로 제공하면서 실질적인 제작에 참여했다. 11) <반도의 봄>(이병일, 1941)에서는 배우가 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정희와 함께 방을 쓰는 음반회사 직원으로 등장했다. 조선인들의 영화 제작이 힘들어진 식민지 말기에는 <감격의 일기 感激の日記>(신경균, 1943), <그대와 나 君と僕>(허영, 1944)를 비롯한 다수의 어용영화에도 출연했다. (사진10) <역습>(안종화, 1936)의 한 장면 (사진 11) <반도의 봄>(이병일, 1941)에서 음반회사 직원 모경숙 역의 복혜숙 1920년대 말 자유분방한 신여성의 아이콘이던 복혜숙이 연기를 전환하게 된 계기는 최인규의 <수업료>(1940)에 출연하면서부터였다. 동시녹음이 진행된 이 영화에서 30대 복혜숙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자식 내외가 행상을 하러 도시로 나가자 소학교에 다니는 손자 영달을 돌보기 위해 넝마를 주우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는 할머니 역을 맡았다. 당시 그녀 나이 37세였다. 이 영화 이후 그녀는 노역을 주로 맡았다. 인자한 어머니, 억척스럽고 생활력 강한 상인, 유난스런 할머니 같은, 그녀는 연기력을 요구하는 조역으로 이후 300여 편의 영화에 얼굴을 비쳤다. 또 텔레비전 드라마 <아내의 얼굴>(KBS, 1962), <아씨>(TBC, 1970), <옛날 나 어릴 적에>(MBC 신년특집, 1981) 같은 작품에도 종종 출연하였다. (사진12) <수업료>(최인규, 1940)에서 복혜숙은 병상에 누워서도 어떻게든 손자 영달이의 수업료를 마련해보려는 애달픈 할머니를 연기했다. 해방 후 정치와 경제가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자재와 필름이 부족해 영화제작이 열악했던 시기, 새롭게 시작하는 영화계에서 그녀 역시 주조연을 마다않고 성실히 한몫을 했다. 최인규의 <자유만세>(1946)에 간호사 혜자(황려희)의 어머니를, 〈똘똘이의 모험〉(이규환, 1946)에서는 똘똘이의 어머니를 맡았다. 또 〈죄 없는 죄인〉(최인규, 1948), 〈여명〉(안진상, 1948), 〈수우〉(안종화, 1948), 〈성벽을 뚫고〉(한형모, 1949)에도 작은 역이나마 출연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국방부 정훈국 문예중대에 입대해 공연을 하며 전장을 누볐고, 잠시 머물렀던 마산에서 촬영한 〈삼천만의 꽃다발〉(신경균, 1951)에서는 전선에서 실명한 아들(최현)에게 자신의 눈을 이식해주는 어머니로 분했다. (사진13) <여명〉(안진상, 1948) 신문광고 (사진14) <성벽을 뚫고>(한형모, 1949) 신문광고 (사진15) <삼천만의 꽃다발>(신경균, 1951) 광고. 아들에게 자신의 눈을 이식해 주는 어머니 복혜숙이 보인다. 전후 본격적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한 한국영화계에서 복혜숙은 전성기를 넘은 나이에도 활동을 이어나가는 거의 최초의 여성 배우였다. 더 이상 주연을 할 만한 시나리오가 없었지만 <청춘쌍곡선>(한형모, 1956), <아리랑>(김소동, 1957), <조춘>(유두연, 1959), <삼등과장>(이봉래, 1961), <청춘교실>(김수용, 1963), <여판사>(홍은원, 1963), 그리고 미공보원(USIS-Korea)이 제작한 문화영화 <황토길 Litany of hope>(양승룡, 1962)에서 어머니와 할머니 역할을 전담하면서 꾸준히 식지 않은 연기력과 열정 보여주었다. (사진16) <청춘쌍곡선>(한형모, 1956)에서는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중학교 교사 명호(황해)의 어머니로 분했다. (사진17) <삼등과장>(이봉래, 1961) 구소장(구봉서)의 어머니 역을 맡았다. (사진18) <황토길>(양승룡, 1962)에서 한센 병을 앓고 있는 시인 한하운(김웅)의 어머니로 출연한 복혜숙 (사진19) <청춘교실>(김수용, 1963)에서는 손녀 셋을 거느린 왈가닥 할머니로 등장했다. (사진20) <여판사>(홍은원, 1963)에서는 치매를 앓고 있어 우연히 독을 마시게 되는 시할머니 역할을 했다. 김수용 감독이 배우 복혜숙이 자신의 영화에서 열연했던 강렬한 장면을 회고한 적이 있다. 해방촌 빈민들의 군상을 그린 김영수의 희곡을 영화화한 <혈맥>(1963)에서 김덕삼(김승호)은 새로 얻은 아내가 자신의 돈을 훔쳐 달아나자, 중신을 선 대폿집 주인(복혜숙)에게 무작정 따지러 간다. 아내를 찾아내라는 어깃장을 놓는 덕삼과 이 어이없는 주장에 맞서는 꼿꼿이 맞서는 대폿집 주인 아낙의 대단한 육탄전이 펼쳐진다. 이 장면에서 복혜숙은 담배를 입에 물고 김승호와 몸싸움을 하면서 거칠게 대거리를 하는데, 그녀는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 생활 전선에 나서야했던 강단 있는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을 몸소 보여준다. 김수용의 또 다른 영화 <사랑의 조건>(1979)에서 일흔이 넘은 복혜숙은 어린 손자를 데리고 필사의 힘으로 한 겨울 눈 내리는 대관령을 넘는 할머니로 특별출연을 했다. 이 영화에서 그는 모진 날씨 따위에는 아랑곳없던, 여전히 두 눈에서는 광채를 내뿜으며 서슬 퍼런 연기를 해내던 노년의 복혜숙을 잊지 못한다. 12) (사진21) <혈맥>(김수용, 1963) 중 김덕삼(김승호)과 대폿집 주인(복혜숙)의 육탄전 복혜숙은 평생을 배우로 무대 위와 또 카메라 앞에 있었다. ‘남들이 안하던 때에 배우로 입문해 연예계의 여러 방면에서 초창기 증인으로 또 산 역사 노릇’을 했다. 다방면에서 최고의 인기와 함께 여성으로서 선각자의 길을 걸었다. ‘복혜숙 여사의 연기생활 40주년 기념하는 스타의 밤’에는 많은 동료와 후배들이 기꺼이 함께 해줄 만큼 평생 한국영화를 지켜온 한국영화의 어머니로 평가를 받았다. 또 ‘뭐든 뒤로 미루지 못하는 성격 탓’에, 또 연예계를 통찰하는 식견을 갖춘 몇 안 되는 배우로 영화인들의 존경과 대우를 받으며 행복한 삶을 살았다. 13) 18세부터 연기해 온 그녀의 일대기가 특별드라마 <얼굴>(1981, KBS)로 만들어질 만큼 그녀의 생 그 자체가 한국 대중연예사이기도 했다. (사진22) <대한뉴스>(제 387호, 1962) 연예계 소식 중. 962년 10월 12일부터 2일간 시민회관에서 복혜숙의 연기생활 40주년을 기념하는 스타의 밤‘ 행사가 열렸다. 당시 이원우 공보부 장관이 복혜숙에게 표창을 수여하고 있다. 스크린 밖에서도 그녀는 영화계의 원로로서 업계의 권익을 위해서라면 발 벗고 나섰다. 1954년 한국영화 입장세 면세조치를 이끌어내기 위해 선봉에 섰고, 한국영화협회가 한국영화 40년을 기념하기 위한 영화회관 건립 기금을 위해 야심차게 기획된 영화 <애정삼백년>(윤봉춘, 1962)에도 앞장 서 힘을 보탰다. 1955년 대한영화배우협회를 창설해 10년간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으며, 1962년부터 한국영화인협의의 연기분과 위원장으로 배우들의 뒷바라지에 힘을 쏟았다. 그녀의 은막 인생을 마지막으로 장식한 영화는 진용(박재호)의 할머니 역을 맡은 〈낮은데로 임하소서〉(이장호, 1982)였다. 하지만 78세의 그녀는 아직도 ‘못 다한 일 많아 은퇴할 생각이 없’ 14) 었다. (사진23) 한국영화 40년을 기념하기 위한 영화회관 건립 기금을 위해 야심차게 기획된 영화 <애정삼백년>(윤봉춘, 1962) 포스터. ‘윤봉춘 복혜숙 지휘’라는 문구가 보인다. (사진24) <낮은데로 임하소서>(이장호, 1982)에서의 복혜숙 1)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삼천리》 1937년 1월호 9권 1호, 162~166쪽. 2) “명우와 무대(7), 복혜숙 양의 『카쥬-샤』, 부활의 여주인공으로, 토월회 무대에”, 《삼천리》 제5권 4호, 1933년 4월, 11쪽. 4) 복혜숙의 생애는 다음 자료들을 참고해 요약 기술하였다. 『여성실화: 빛나는 성좌 복혜숙』, 명서원, 1976: 이영일, 「스크린을 빛낸 예도 60년-복혜숙」, 『한국영화인열전』, 영화진흥공사, 1982; 황문평, 「여성 연예계의 선구자 복혜숙」, 『삶의 발자국』(1), 선, 1988; 조영만, 「여배우 복혜숙의 활약」, 『30년대 문화예술인들: 격동기의 문화계 비화』, 범양사, 1988; 한국예술연구소 편, 「2장 복혜숙」, 『이영일의 한국영화사를 위한 증언록 : 김성춘·복혜숙·이구영 편』, 도서출판 소도, 2003, 이순진, 「복혜숙」, 이승희 외 지음, 『식민지시대 대중예술인 사전』, 도서출판 소도, 2006; .한상언, “한상언의 <한국영화스타>3 :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한국영화의 어머니 복혜숙”, 오마이스타, 2004년 10월 13일,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0214631 4) 이동순, “이동순의 가요이야기, 한국 최초 재즈가수 복혜숙의 노래를 들어보세요”, 조선Pub, 2013년 10월 18일, 조선Pub 홈페이지 http://pub.chosun.com 5) 복혜숙, 「나와 영화반세기 복혜숙 편」, 월간 《영화》 1974년 1월호, 53쪽; 복혜숙, “나의 교유록-원로여류가 엮는 회고 <83> 영화계 데뷔”, 《동아일보》 1981년 5월 6일 7면. 6) “영화평 농중조 조선키네마 작품”, 《동아일보》 1926년 6월 27일 5면. 7) 안종화, 앞의 책, 157쪽; 김남석, 「배우 복혜숙 연구」, 『인문과학연구』 13,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05, 123~125쪽. 8) 복혜숙, “나의 교유록-원로여류가 엮는 회고 <81>”, 《동아일보》 1981년 4월 29일 7면. 9) KMDb에는 이필우가 감독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신문지상에는 이규설이 감독으로 명시되어 있다. “홍련비련”, 《동아일보》 1927년 2월 5일 5면. 10) 한국예술연구소 편, 「2장 복혜숙」, 앞의 책, 144쪽. 11) 복혜숙, “나와 영화반세기: 32세 때부터 노인역만”, 월간 《영화》 1974년 3월호, 68쪽. 12) 김수용,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여성신문이 함께하는 “그리운 여배우” 1탄 복혜숙: 드라마 분위기 설정해가는 역광 같은 배우, 복혜숙”.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블로그, 2014년 2월 26일,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블로그 http://siwff.tistory.com/503 13) 복혜숙, “나의 교유록-원로여류가 엮는 회고 <97> 첫 TV드라마”, 《동아일보》 1981년 5월 26일 7면. 14) 복혜숙, “나의 교유록-원로여류가 엮는 회고 <100> 복혜숙 연예생활 60년”, 《동아일보》 1981년 5월 30일 12면.
2016년은 내게 ‘여성’이라는 키워드로 기억될 한해다. 현실 세계에서건 극장에서건, 그동안 발화되지 않았든 혹은 쉽게 간과되었던 여성의 목소리들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울림으로 다가왔고 이러한 흐름이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서의 나에게도 큰 감흥을 주었던 것 같다. 2016년 한해 사사롭게 마음에 품었던 영화 중 많은 작품이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주거나 여성의 서사에 보다 주목한 작품들이라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 엘르 >와 < 아쿠아리우스 > < 아가씨 >와 < 줄리에타 >가 그런 작품들이다. 다시 한번 올리비에 아사야스와 호흡을 맞춘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호연이 인상적이라는 점에서 < 퍼스널 쇼퍼 >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겠지만 이 영화와 < 슬랙 베이: 바닷가 마을의 비밀 >, 그리고 < 곡성 >은 불균질한 요소들의 충돌과 결합으로부터 생성된 미스터리한 기운이 더 매혹적으로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 패터슨 >은 영화의 리듬감이, <룸>은 스토리텔링이 인상적이었던 영화였고 드라마 < 웨스트월드: 인공지능의 역습 >은 아이디어와 무슨 일이 곧 일어날 것만 같은(그러나 쉽게 일어나지 않는) 불길한 무드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 자리를 빌려 사사롭게 고백하자면, 리스트를 꼽기 전에 < 비밀은 없다 >를 보았다면 나는 주저 없이 <웨스트월드: 인공지능의 역습> 대신 이 영화를 선택했을 것이다. 손예진의 폭발적인 연기가 인상적인 이 작품은 ’한국 여자’에 덧씌워진 이미지를 사정없이 깨부수는 동시에, 한국 여성 캐릭터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멋진 사례가 될 것이다. 이 지면에서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여성’이라는 키워드로 묶인 영화들 중 가장 과격한 영화라고 할 만하다. 2016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중 최고의 논쟁작이었던 < 엘르 >다. 이 작품은 네덜란드 감독 폴 버호벤이 할리우드에서 자국으로 돌아가 만든 < 블랙북 > 이후 10여 년 만에 연출한 장편영화로도 화제를 모았다. 영화 < 베티 블루 37.2 >(1986)의 동명 원작을 집필한 프랑스 작가 필립 지앙의 소설 「오...」(2012)를 영화화한 <엘르>는 폴 버호벤이 원래 미국에서 촬영하려 했던 작품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투자자이든 배우이든 이 영화에 참여하는 데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버호벤은 유럽으로 눈길을 돌려 원작의 무대이기도 한 프랑스에서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 <엘르>를 보면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더욱 분명해진다. 불륜, 강간, 관음, 사도마조히즘, 폭력. 온갖 종류의 금기에 노골적으로 현미경을 들이대는 이 영화는 미국인들이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모험심을 필요로 하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여주인공이 괴한에게 광폭하게 강간당하는 첫 장면부터, 시나리오를 덮어버린 이들이 적지 않았으리라 짐작한다. < 엘르 >는 미쉘(이자벨 위페르)의 비명으로 포문을 연다. 그녀는 복면을 쓰고 집으로 침입한 괴한에게 성폭행을 당한다(사건은 암전된 화면 속에서 진행되고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괴한은 유유히 사건 현장을 떠나고, 남겨진 미쉘은 잠시 몸을 추스르더니 의연한 얼굴로 입었던 옷을 쓰레기통에 넣고 깨진 접시를 치운다. 그리고 목욕을 하며 다리 사이에서 흐르는 피가 섞인 거품을 바라본다. 이 충격적인 오프닝 시퀀스는 하나의 질문을 제기한다. 누가, 왜 그녀에게 그런 짓을 했는가? 아직도 미쉘의 곁을 맴도는 전남편, 미쉘과 불륜 관계에 있는 친구의 남편, 미쉘에게 자꾸 의미심장한 눈길을 주는 옆집 남자, 게임 회사 대표인 미쉘에게 사사건건 불만을 털어놓는 부하 직원. 모두가 조금씩 의심스럽다. 미쉘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는 주요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는 <엘르>의 초반부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형식을 띤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누가 범인일지 짐작해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범인의 정체를 추리하는 건 맥거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엘르>의 핵심은 ’그 여자’라는 제목의 의미처럼, 미쉘이라는 인물의 욕망과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쉘의 삶은 곳곳이 지뢰밭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전 국민이 다 아는 연쇄살인범이고, 어머니는 철이 없다. 전 남편은 제 앞가림을 못 하고 어리숙한 아들은 여자친구가 낳은 다른 남자의 아이에게 집착한다. 불륜 관계에 있는 친구의 남편은 직장에서건 밖에서건 발정 난 동물처럼 추근대고 회사의 남자 직원 중 누군가는 미쉘이 게임 캐릭터에게 강간당하는 영상을 단체 메일로 뿌린다. 어쩌면 삶을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는 다양한 시련들 사이로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처럼 사뿐하게 걸어나가는 미쉘의 모습을 지켜보는 건 < 엘르 >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이유다. 무엇보다 미쉘은 선택을 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을 내리는 사람이다. 그녀에게 사회가 부여한 역할은 온갖 괴물이 출몰하는 1인칭 게임 속 주인공이지만, 그 역할을 거부하고 스스로 게임의 콘솔을 잡은 플레이어가 되길 욕망하는 느낌이랄까(그런 점에서 시나리오 에이전시의 대표였던 원작 소설 속 미쉘의 역할이 게임 회사 대표로 바뀌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일례로 이 영화에서 미쉘이 가장 먼저 내리는 선택은 경찰에 성폭행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것이다. 기겁하는 친구들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경찰하고 엮이기 싫어. 이 얼간이 때문에. (‘연쇄살인범의 딸’이라는 오명 때문에) 내 인생을 재건하려고 정말 힘들게 싸웠어.” 그리고 덧붙인다. “미친놈은 잡아야지. 미친놈 해결하는 건 내 전공이야.” 그렇게 미쉘은 시스템보다 손도끼와 스프레이의 힘을 더 신뢰하는 여자다. 그 선택이 때로는 비윤리적이고 상식과 동떨어져있다 해도, 중요한 건 그녀가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자신이길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임을 깨부수고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일이라 믿는 폴 버호벤의 고약한 취향이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에서다. 성모상을 옮기는 옆집 남자를 창문으로 엿보며 자위를 하고, 성폭행범이 밝혀진 뒤에도 그와 은밀한 게임을 벌이며 사도마조히즘적인 욕망을 펼쳐 보이는 이 여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금기시되는 상황을 극단적으로 펼쳐 보이며 관객을 난감한 상황으로 밀어 넣는 폴 버호벤의 장기는 이번 영화에서도 여전하다. 미쉘로 분한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는 그녀의 근작 가운데서도 최고다. “이처럼 변태성을 탐험하는 작업을 하려면, 기쁨과 창의성을 가지고 (감독과) 저 멀리까지 함께 갈 수 있는 배우가 필요하다. 세상에서 이런 악보에 장단을 맞출 수 있는 배우는 단 한 사람밖에 없다”는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처럼, 이자벨 위페르는 스릴러와 블랙코미디를 오가며, 냉철한 커리어우먼과 비밀스러운 욕망을 지닌 여성을 넘나들며 폴 버호벤의 변화무쌍한 장단에 기꺼이 ‘놀아’난다. 비틀린 욕망을 지녔다는 점에서 < 엘르 >의 미쉘은 역시 그녀가 주연을 맡았던 < 피아니스트 >의 에리카를 떠올리게 하는 지점도 있는데, 하네케의 영화가 에리카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면 버호벤의 <엘르>는 욕망의 주체로서의 미쉘에 보다 초점을 맞추는 느낌이다. 한편 < 엘르 >는 게임의 규칙을 아는 이들만이 헤아릴 수 있는 은밀한 즐거움으로 가득한 영화다. 미쉘과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빠르게 습득한 뒤, 그녀가 매 순간마다 각기 다른 인물들과 나누는 시선의 교환을 좇는 재미가 이 영화엔 있다. 특히 모든 등장인물들이 미쉘의 초대로 한자리에 모이는 크리스마스 파티 장면이 압권이다. 이 부르주아들은 점잖게 차려입고 샴페인 잔을 부딪히지만,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다. 이들의 정체가 불륜남, 얼뜨기, (아마도) 강간범-정체가 밝혀지기 전이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우스꽝스러운 난장의 한복판에서 오직 미쉘만이 고고하다. 파티의 기저에 은밀하게 흐르는 욕망과 비밀스럽게 구축된 관계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는 그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각자에게 은밀한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미쉘의 장단에 놀아난다. 이토록 야심만만하게 게임의 완전한 지배자가 되려 하는, 지배자가 되기 위해 때로는 괴물이 되기도 서슴지 않는 여성 캐릭터를 또 언제 만나볼 수 있을까. 폴 버호벤의 다음 영화는 < 블랙북 >과 <엘르>만큼이나 간극이 길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릴 적 ‘주말의 명화’에서 본 < 킹콩 > < 죠스 > < 공룡 백만년 >등을 통해 괴수영화를 알게 되었고, AFKN에서 ‘고질라’ 시리즈를 접하며 급기야 괴수영화의 팬이 되었다. 외국 괴수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괴수영화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다양한 영화에 관심이 많으셨던 부모님 덕분에 어릴 적부터 장르 영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그 덕에 < 우주괴인 왕마귀 > < 킹콩의 대역습 > < 비천괴수 > < 몽녀한 > 등의 한국영화를 접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한국 괴수영화는 남한판 < 불가사리 >( 김명제 , 1962)와 < 미녀 홍낭자 > < 악의 꽃 >을 빼고는 모두 관람한 것 같다. 언젠가 추석 때 방송된 북한판 < 불가사리 >를 보는데 어머니가 예전에 본 다른 ‘불가사리’ 영화가 있다고 말씀하셔서 남한판 < 불가사리 >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호기심에 어머니와 그 영화에 대한 대화를 더 나눠봤는데 당시 기준으로도 영화의 특수효과가 조악해서 보는 내내 많이 웃었다고 했다. 어린 시절 즐겨보던 책 「괴수군단대백과」에서 고질라를 용가리로 잘못 소개한 걸 발견한 것도 < 대괴수 용가리 >와 관련된 소소한 에피소드다. < 킹콩의 대역습 >은 어린 시절 형과 같이 극장에서 봤는데 너무 어릴 때여서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가 훗날 TV에서 방영된 것을 보고 다시 기억해낸 영화이기도 하다. 한국 괴수영화들에 대한 개인적 추억담들이 쏟아져 나온다. < 불가사리 > < 대괴수 용가리 > < 킹콩의 대역습 > < 차우 > < 7광구 > < 손님 > 한국은 괴수영화 장르의 불모지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은근히 괴수영화가 많이 나온 국가이기도 하다. 지금은 기록이 깨졌지만 봉준호 감독의 < 괴물 >은 당시 국내 역대흥행 기록을 갈아치웠고, 그 이듬해 나온 심형래 감독의 < 디워 >도 흥행에 성공했다. 그 후 < 차우 > < 7광구 >등의 영화들이 나왔고, 성격이 약간 다르지만 < 연가시 > < 손님 > < 퇴마: 무녀굴 >은 돌연변이 기생충과 식인 쥐, 뱀 요괴가 나오는 영화였다. 현재 한국 괴수영화는 괴수 장르임을 내세우기보다는 장르 영화에 편입된 형태로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드라마 <야경꾼 일지>와 <밤을 걷는 선비>에서 이무기와 흡혈귀 등이 등장하기도 했다. 한국의 괴수영화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 대괴수 용가리 >와 < 우주괴인 왕마귀 >에는 6.25 동란으로 인한 전쟁의 공포가 담겨있고, < 킹콩의 대역습 >과 < 악어의 공포 >에 와서는 괴수의 탄생 혹은 활동의 주 무대가 국내를 벗어나 해외로 이어졌다. 이런 분위기는 < 용가리 1999 >와 < 용가리 2001 > 그리고 < 디 워 >로 이어졌으며 < 괴물 >은 미군이 한강에 방류한 포름알데히드로 인해 돌연변이 괴물이 탄생한다는 설정인데 이는 반미 정서와 한국사회 내부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 <차우>는 최상위 포식자가 없어서 소동을 일으키는 멧돼지 문제를, < 7광구 >에는 한일 공동개발구역에 대한 문제가 담겨있다. 해외의 경우에도 < 킹콩 > < 에이리언 > < 엘리게이터 > < 죠스 > 같은 영화들이 나오는 데에는 그만한 원인이나 사건이 있기 마련이다. 괴수라는 상상 속 공포의 대상을 만들어 내려면 그 시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잠재적 공포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 앞으로 나올 한국 괴수영화들도 한국 내부의 문제와 공포를 계속 담아내야 할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특수효과마저 조악하게 느끼는 한국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특수효과도 꾸준히 발전할 수밖에 없다. 웬만한 수준 이상의 특수효과가 아니면 외면해버리는 한국 관객들의 눈높이가 한국 괴수영화의 발전에는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한국에서 괴수영화를 만들려면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장르 팬으로서 영화 제작자들이 국내보다 해외시장을 목표로 했으면 하는 데, 당연한 이유겠지만 해외에는 이런 장르영화의 고정 팬층이 두텁기 때문이다. 더구나 해외의 괴수영화팬들은 할리우드 스타일로 제작된 한국 괴수영화보다 한국적인 정서와 색채가 담긴 괴수영화에 더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 이런 점이 강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괴수 영화 감상과 더불어 괴수 피겨 모으는 취미도 함께 갖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괴수영화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보니 컬렉션이 중단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영화 속 괴수들이 피겨 제품으로 나오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서 아쉽다. 그나마 영구아트에서 < 용가리 >와 < 디워 > 관련 피겨가 나온 적이 있었고, EBS < 한반도의 공룡 >에서 점박이 피겨가 나온 바 있다. < 괴물 >을 비롯 몇몇 한국 괴수영화들의 캐릭터 제품이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만 나와서 역으로 비싸게 구입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내가 가장 아끼는 괴수 피겨는? 미국에서 한정으로 나온 봉준호 감독의 <괴물> 레진 피겨와 <고질라 vs 비올란테>에 나온 1991년 버전 고질라 피겨를 꼽고 싶다. <괴물>은 당시 미국에서 한국괴수 피겨가 나왔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지금도 애착을 갖고 있고, <고질라 vs 비올란테>는 직장 다니며 처음으로 큰 맘 먹고 구입한 고가의 피겨라는 점과 금형과 디테일이 훌륭해서이다. 해외 DVD, 블루레이 샵에서 발견한 한국영화 최근에는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 괴수영화 팬들과 연락이 되어 페이스북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심형래 감독의 < 용가리 >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인 외국인들인데 이들의 한국 괴수영화에 대한 관심은 실로 놀라운 수준이다. 팬아트 수준을 뛰어넘는 정교한 CG 작품까지 제작하는 등, 굉장한 열정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작업들을 하고 있어 나도 많은 자극을 받고 있다. 몇 년 전 해외에 나갔다가 DVD, 블루레이 샵에 한국 괴수영화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어서 반갑게 느낀 적도 있다. 해외에 괴수영화 팬들이 많아서 그런 건지 봉준호 감독의 < 괴물 >이 여전히 잘 보이는 위치에 당당히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 차우 >는 < CHAWZ >, < 전우치 >는 < WOOCHI The Demon Slayer >라는 제목으로 출시되어 있었는데 국내와는 달리 괴수영화라는 점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간절한 바람이 있다면 김명제 감독의 <불사가리>, ‘ 대괴수 용가리 ’의 슈트를 재활용하여 제작한 김기영 감독의 < 미녀 홍낭자 >, 그리고 이용민 감독의 < 악의 꽃 > 이 세 영화의 필름을 찾게 되어 영상자료원에서 다 함께 볼 날이 왔으면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