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카피하다
- 감독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줄리엣 비노쉬, 윌리암 쉬멜, 장 끌로드 까리에, 아가시 나탄슨, 지안나 지아체티
서지환의 < 저 ㄴ(X)을 어떻게 죽이지 >란 영화를 보기 전에 가장 궁금한 것은 ‘저 제목을 어떻게 읽느냐’다. 그냥 ‘저 엑스’라고 읽어야 할까. 아니면 X가 검열한 단어를 찾아서 읽어야 할까. 후자를 따른다면 아마도 X가 검열한 단어는 ‘년’일 것 같다. ‘놈’은 아무래도 덜 검열되는 단어이고 다른 비속어 욕들은 두 글자 이상이니까. 영화의 무대는 시골 전원주택. 중년 부부가 애 없이 살고 있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노동으로 돈을 버는 거 같지 않다. 영화 속에서 이들과 함께 사람들은 젊은 고용인 세 명. 여자 둘과 남자 한 명이다. 그러니까 이 부부는 정상적인 사회 시스템에서 격리된 공간에서 옛날 서양 유한계급 사람들을 흉내내고 있는 것이다. 그건 이들이 ‘지나간 시대의 먼 나라’의 특정 계급 사람들이 다른 계급 사람들에게 가졌던 권력을 갈망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사람들이 이 역할극 안에서 선을 넘었고 다른 선도 넘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건 집에 있는 총기다. 대부분은 서바이벌 게임에서 사용되는 페인트건이다. 하지만 아닌 것도 있다. 그리고 지겨워진 남편은 고용인들에 사냥 게임을 제안한다. 여기서부터 관객들은 영화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확인한다. 2021년작이다. 그라고 봉준호의 < 기생충 >은 2019년에 나왔다. 이 영화가 <기생충>의 자장 밑에서 나왔다고 짐작하는 건 타당하다. 하지만 그만큼 게으른 생각이기도 하다. <기생충>을 염두에 둔 영화라도 장 르누아르의 < 게임의 규칙 >의 영향을 더 받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엔 계급을 다룬 수많은 영화들이 있다. 이 세계 속 갈등은 익숙해보인다. 여자 고용인 1번인 하윤은 새로 들어온 여자고용인 2번인 지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윤은 저택 남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영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렇다면 제목의 ’저 X’는 저 년’이 맞나? 그런데 요새 세상에 이런 제목 트릭에 그렇게 쉽게 넘어가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일단 이 영화는 프라이드 영화제 상영작이다. 그리고 영화는 이런 역학 관계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관객들의 고정관념을 반영한 것 같은 그림을 그리다가 중반 이후에 뒤집는다. 그 뒤집음은 비교적 상식적인 생각에 기반을 둔다. 젊은 고용인에 대한 중년남자 상사의 치근거림은 불쾌한 성희롱이다. 당하는 사람도 괴롭고 옆에서 이를 보는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바라 보는 사람이 성희롱 당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불쾌함을 설명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이 영화는 그걸 지켜보는 사람, 그러니까 하윤이 성희롱을 당하는 사람, 그러니까 지영을 처음부터 사랑하고 있었다고 친다. 이렇게 하면 진부해보였던 하윤의 행동이 다른 식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 이야기가 더 재미있어진다. 여기에는 다른 기능이 있는데, 지금까지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남편의 위치를 사정없이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성애자 남자의 권력은 하윤이 지영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않겠다고 생각한 뒤부터 붕괴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보니 남자의 권력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허약했다. 앞에서 나는 이 남자가 어떤 노동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건 남자의 사회적 기능이나 가치가 시시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건 정상적인 사회 시스템에서 격리된 이 세계에서 남자가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여기에 대해 깊이 고민할 사람이 별로, 또는 전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화는 발랄한 코미디지만 누군가에겐 정말로 무섭게 보일 법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런 단편 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는 출연한 신인이나 무명배우들이 발표 이후 주목받는 위치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윤역의 하윤경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봄날의 햇살이고 곧 부산에서 공개될 < 딸에 대하여 >(편집자 주: 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공개되었다) 영화판의 레인이다. 지영역의 방효린은 < 지옥만세 >의 선우이고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에 캐스팅되었다. 두 배우의 경력이 이후에도 여성간의 관계 또는 퀴어의 주제를 품고 있다는 건 흥미롭다. 심지어 방효린은 <지옥만세> 개봉 이전인 ‘썸머 프라이드 시네마 2022‘에 이미 방효린 특별전이 가능할 정도로 꾸준히 퀴어 주제 단편들을 찍어왔다는 정보를 덧붙이고 싶다.
< 기생충 >(2019)은 작가의 기질과 세계관, 스타일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대다수의 표현 요소들, 카메라와 조명, 세트, 미술, 음악 등이 탁월하게 조정된 영화이다. 특별히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것은 데뷔작 < 플란다스의 개 >(2000)에서부터 꾸준하게 발전되어 온 봉준호의 내러티브 기술 테크닉이다. 봉준호의 서사는 언제나 실종, 살인의 모티프를 타고 움직이는데, 제한된 러닝타임 안에서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서사의 국면들을 지속적으로 전환하기 위해 자신만의 시각 양식을 개발하였다. 이 양식을 ‘가속기술법’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가속기술법이라 함은, 내러티브 정보의 효율적 제공과 장면 전환의 가속화를 위해 가장 적은 수의 쇼트를 사용하여 빠른 속도와 리듬으로 한 장면이 이동해야 할 목표 지점에 매끄럽게 도달하도록 하는 시각화 전략이다. <기생충>에서 봉준호의 가속기술법은 음악가 정재일이 작곡한 테마 음악 ‘믿음의 벨트’가 깔리는 기나긴 장면들의 연쇄에서 극적으로 나타난다. 박 사장의 부인 연교(조여정)는 기정(박소담)에게 집안의 운전기사를 추천받는다. “믿는 사람 소개로 연결연결, 이게 베스트인 것 같아요. 일종의 뭐랄까... 믿음의 벨트?”라는 연교의 말을 신호탄으로 컨베이어 벨트 위를 이동하는 사물들처럼 유기적으로 배열된 쇼트들의 연속 진행으로 구성된 시퀀스가 이어진다. 물경 8분 동안 진행되는 이 시퀀스는 봉준호 식(式) 가속기술법의 강력한 효과를 입증한다. 음악과 나레이션이 병합된 사운드는 다양한 행위들의 계열이 이어지는 시퀀스를 통합하는 기능을 한다. 바로크풍 신고전주의 스타일로 작곡된 스코어 ‘믿음의 벨트’는 극중 기택(송강호)의 가족이 박 사장(이선균)의 집사 문광(이정은)을 내쫓기 위해 치밀한 협동 작전을 실행하는 시퀀스를 시청각적 스토리텔링의 백미로 만든다. 이 큰 사기를 계획하는 가족들에 관한 플래시백은 시퀀스 전체에 걸쳐 산재되어 있으며 한 번에 모두 완료되지 않는다. 마치 강도 계획의 모의를 촬영하는 영화 스태프들처럼 기택의 가족은 그들이 짠 플롯을 시나리오화하고 재연한다. 이 시퀀스에서 내러티브, 시각 이미지들과 대위법적으로 얽혀가는 음악의 효과는 기택 일가의 작전이 진행되는 경로와 정교하게 조응하면서 하나의 사건 단위를 도입하고 완결한다. 하나의 질감을 드러내는 스코어가 바탕을 제공하고, 이야기와 연기, 상황은 분리된 채로 연결되어 있는 열차 칸들처럼 유기적인 사슬로 묶여 있다. 이전 쇼트들이 이후에 올 것에 반향을 일으키고 하나의 요소는 다른 요소에 작용하여 흡사 오케스트라처럼 진행된다. ‘믿음의 벨트’ 시퀀스의 목표는 가능한 한 신속하게(가속기술법의 의의) 박사장의 집에 침투하는 기택의 가족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건의 효율적인 기술은 이야기의 경제성을 극대화하기 때문에 이미지의 속도와 리듬은 매우 중요하다. 카메라 움직임의 템포, 방향은 치밀하게 계산되었고, 프레임의 속도를 조절하는 슬로우모션, 화면 밖 나레이션과 극중 대사의 티키타카, 시퀀스의 주요 국면들에 화면 요소들의 적절한 배치를 통한 완결 구조 등이 독립적인 시퀀스로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다채로운 스타일 장치들의 몽타주를 통해 봉준호는 기택의 가족이 문광을 내쫓기 위해 그녀에게 결핵 환자의 누명을 씌우는 기나긴 계획과 그 실행과정을 기술한다. 시퀀스의 구성은 기택이 박 사장의 운전기사가 되기 위해 고급 외제차 작동법을 학습하고, 테스트 주행으로 안정적인 운전 솜씨를 어필하는 신으로 시작하여 기정과 기우의 나레이션이 교차하며 이 집에서 문광의 역할과 됨됨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신, 문광의 복숭아 알레르기 내력에 대한 해설, 문광에게 결핵환자 혐의를 씌우기 위한 계획과 그 실행을 교차하여 최종적으로 작전의 종착점에 도달하는 신으로 전개되어 간다. 기우(최우식)의 과외 수업을 문광이 감시하는 장면에서 기택이 쓰레기통에서 피가 묻은 휴지를 들어 올리는 지점까지 장대하게 진행되는 이 시퀀스에서 모든 쇼트는 유기성을 가지고 연결되며 일체의 군더더기가 없다. 강도 계획 모의처럼 행위들은 분리되어 있지만 그들의 배열은 연속성의 원칙 하에서 진행되고, 편집은 무의미한 커팅이 아니라 쇼트들 간의 일정한 흐름을 가진 논리적 전환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믿음의 벨트 시퀀스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첫 번째 요소는 전체를 관통하는 카메라의 무빙이다. 서두에서 연교가 늘어놓는 설명대로 ‘연결연결’되는 신들 간의 이동은 카메라 무빙의 연쇄로 보증된다. 기택이 운전기사 면접을 위해 박 사장의 사무실을 방문하는 신에서 우에서 좌로 이동하는 카메라의 수평 움직임으로 시작한 시각화 방식은 박 사장의 집에서 기정과 문광의 이동을 따라 좌에서 우, 우에서 좌로 움직이는 카메라 무빙으로 연결되고, 문광에게 복숭아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계획 하에 기정과 기우의 액션을 보여주는 전, 후의 카메라 움직임으로 이어진 뒤, 백화점에서 쇼핑 카트를 끄는 기택과 연교의 움직임에 동기화된 카메라의 수평 이동을 거쳐 문광이 버린 휴지를 확인하려는 기택의 액션을 따라가는 수평 이동으로 종료된다. 여기서 카메라 무빙은 시공간의 차이를 두고 발생하는 액션들을 하나의 테마와 목표로 꿰어내는 컨베이어 벨트와 같은 공정으로 만든다. 이 시퀀스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두 번째 요소는 교차편집을 통한 공간을 초월한 연속성의 창조이다. 분리된 두 시공간의 교차편집을 제공하는 것은 반 지하방에서 이루어지는 기택과 기우의 역할극과 마트로 향하는 자동차 안에서 기택과 연교가 나누는 대화이다. 교차편집 국면은 두 시공간에서 티키타카를 이루는 대화로 연결된다. 기택의 “제가 들으려고 한 게 아닌데,...”라는 눙치는 대사와 연교의 “요즘도 결핵환자가 있어요?”, 다시 기택의 “집에 다솜이 같은 어린애도 있는데...”와 같은 대화가 반 지하방과 자동차 안에서 교차를 이루며 반복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틀에서 시퀀스의 통일성을 창조하는 것은 컬러이다. 컬러의 통일성은 초입부, 기우와 박 사장의 맏딸 다혜(정지소)의 과외 수업에서 간식으로 등장하는 피자 위에 뿌려지는 핫 소스와 이 시퀀스의 대단원에서 기택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휴지를 들어 올릴 때 그 위에 발라진 피로 위장된 핫 소스의 시각적 조응으로 이루어진다. 붉은색 컬러의 조응으로 세팅된 가속의 리듬은 거대한 계획의 단계별 진행을 연속적으로 이어줌으로써 강화된다. 핫 소스에서 비롯된 컬러 모티프는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거대한 학살극이 벌어질 때 흩뿌려지는 피로 이어진다. <기생충>의 ‘믿음의 벨트’ 시퀀스는 가난한 가족에서 부유한 가족으로의 이동, 분리되어 있던 그들의 병합을 단단한 시청각 이미지의 벨트로 묶는다. 이처럼 봉준호 식 가속기술의 전략은 집중과 통일성을 가지고 내러티브 기술(記述)의 효과와 스타일의 합일을 창조하는 탁월한 전략을 보여준다. 상술한 <기생충> 외에도, < 살인의 추억 >(2003)에서 시골 형사 박두만(송강호)의 애인 설영(전미선)이 지체장애인 백광호(박노식)의 별명 ‘덮쳐라 백광호’에 대해 설명하고, 두만이 그를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하여 지하 취조실로 데려오는 일련의 쇼트 연결, < 마더 >(2006)에서 살인사건 희생자 문아정의 됨됨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네 아낙들, 소년들의 증언을 연속적으로 이어붙인 ‘미인박명 문아정’ 시퀀스 등이 가속기술법의 또 다른 사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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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가까이서 볼 땐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 찰리 채플린 인생은 희극과 비극이 언제나 교체한다는 저 말. 맞다. 비극으로만 점철될 것이라 믿었던 군대생활도 통틀어 20분 정도는 재미있었으니까, 아니면 굳이 경험하지 않더라도 공중화장실 변기 위에 삶의 격언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고, 비슷한 맥락으로 우리 동네 백수형도 가끔 나에게 말하곤 할 정도로 저 말은, 그냥-누구나-대충-던질 수-있는 말이다. 그런데도 저 말이 (적어도 나에게는) 빛나는 것은 채플린이 저 말 속에서 영화적인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클로즈업과 롱샷. 클로즈업에서는 비극이며, 롱샷에서는 코미디라는 말. 가만히 채플린의 영화를 떠올려 보면 그의 말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그는 모든 롱샷에서 코미디를 만들어내었고, 그의 모든 클로즈업은 아려오는 슬픔과 애잔함이 가득하였다. 보통 하나의 프레임이 인물을 잡아낼 때 사용되는 용어인 롱샷과 클로즈업은 일반적으로 카메라와 인물 간의 거리, 또는 대상과 관객의 사회적 거리를 표현하는 가장 근본적인 장치이다. 말하자면, 카메라에 비친 대상에게 일정한 심리적 거리를 두고 보는 것을 롱샷의 거리(distance)이고, 대상과 상당히 개인적으로 친숙한 거리에 두고 보는 것을 클로즈업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롱샷에서는 대상이 되는 인물에게 일정한 거리감을 두면서 개인적 친밀감 보다는 낯선 이로 남게 한다면, 클로즈업에서는 인물과 카메라가 가까워지면서 친밀감을 중시하고, 감정의 거리를 줄여서 심리적 동질성을 가지게 하는 점이다. 채플린이 등장하는 롱샷에서 관객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멀찌감치 앉아서(상대적으로 타자화 되어 있는 상태에서) 넘어지고, 떨어지고, 실수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웃음으로 받아들인다. 즉 카메라와 대상의 거리(롱샷), 이로 인한 사회적 거리는 그것을 구경거리 정도로만 국한시키고 말뿐이다. 하지만 인간의 얼굴이나 대상을 클로즈업으로 촬영하게 되면 관객을 더 이상 구경꾼이 되지 못한다. 대상에 가까워지면 우리는 거리감을 지우고, 개인적인 거리 상태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원근법적 거리를 사라지게 하고, 대상을 촉지적으로 만지게 되는 상황. 정신없이 흔들리는 정동의 상태. 채플린의 클로즈업은 특히 더 그러했다. 정유미 감독의 < 연애놀이 >를 처음 접했을 때의 감정도 그랬다. 클로즈업으로 시작되어서는 요상한 80년대 복장을 한두 명의 연인의 롱샷으로 이어지는 첫 오프닝부터 말이다. 이러한 쇼트 구성은 이후 계속 이어지는데, 놀랍게도 이 작품은 딱 그 두 개의 쇼트, 롱샷과 클로즈업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롱샷(long-shot), 놀이의 프레임 보통 인물의 롱샷의 경우는 설정 쇼트로 알려져 있다.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공간의 설명, 실사영화에서는 마스터 쇼트라고 불리는. < 연애놀이 >의 경우에도 롱샷은 작품의 제목처럼 놀이를 위한 공간설정이다. 바닥에 네모난 금을 긋고, 나란히 신발을 벗고 네모난 공간으로 들어간 두 명의 남녀. 이 작품 전체를 통틀어 변화하지 않는 롱샷의 구도이다. 아예 작품 속에서 모든 롱샷의 레이아웃은 이 장면을 바탕으로 고정되어 있다. 다른 별도의 배경이 없이, 바닥에 별도로 그려진 프레임은 ‘연애놀이’가 일어나는 공간이자, 그들이 벗어나지 않는 공간이다. 놀이라는 속성상 그들은 그 프레임 안에서 다양한 역할극을 하거나, 그곳에서 지켜야 하는 룰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속에서는 그들은 소년, 소녀가 되거나, 젊은 연인이 되거나, 늙은 부부가 되어야 하는 운명이다. 따라서 그들의 놀이에는 금 그어진 공간, 그려진 네모의 공간 외부로는 갈 수 없다. 모든 놀이가 그렇듯이 구별된 공간은 살아온 기억이 되거나, 현재의 갈등이거나, 미래의 다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간의 설정은 그어진 금(밟으면 죽는 그 ‘금’)과 신발(구두)에 의해서 더욱 강화된다. 금의 외부가 일상과 외부의 삶이라면, 금의 내부는 연애와 삶의 공간인 셈일 텐데, 이를 끝없이 재생산하거나 재고하게 하는 것이 금의 외부에 놓인 신발이다. 신발은 외부의 삶에서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옴을 상징하는 역할을 하면서도, 언제든 다시 돌아나갈 수 있는 상징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연애가 이처럼 위태하지 않았던가? (금을 밟으면 죽는, 경계를 넘나들기 힘든. 실제로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가 넘어지면서 우연히 금을 밟는 장면이 나오는데,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바로 다음 에피소드에서 그녀는 아픈 설정으로 된다.) 하지만 처음 이 작품을 대할 때의 롱샷들은 그 위태함을 바라보는 두려움보다는 묘한 웃음을 번지게 한다. 그것은 롱샷으로 보이는 인물들의 움직임과 상황 때문인데, < 연애놀이 >에서 롱샷으로 잡힌 인물들은 컷아웃 애니메이션의 그것처럼 묘한 타이밍과 특유의 단축법으로 그려진 신체의 표현으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에는 롱샷에서 클로즈업으로 넘어가는 몇몇 재치 넘치는 샷 구성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롱샷 장면에서 보이는 장면들은 공간 설정에 대한 정보로 구성되어 인물들과 카메라, 즉 대상과 관객과의 거리는 멀다. 그 때문에 연애놀이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그들이 하는 놀이(오래되고, 가물가물한, 무덤덤한)가 롱샷으로 펼쳐질 때 재밌는 구경이 된다. 그러나 그 때문에 이 작품이 단순한 희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아픈 아련함이 있다. 클로즈업(close-up), 대상을 향한 무한한 촉감 < 연애놀이 >에서의 클로즈업은 주로 놀이에 사용되는 사물, 손, 그리고 얼굴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사물은 놀이를 위한 주요한 소도구이며, 손은 놀이를 이어주고, 인물들을 이어주는 도구가 된다. <연애놀이>의 롱샷이 상당히 단순화된 드로잉과 레이아웃으로 구성된 것에 비해, 클로즈업으로 보이는 각각의 대상, 특히 놀이의 사물들은 그것들과는 대조적으로 디테일한 표현을 두고 있다. 이는 감독이 가지는 사물에 대한 애정과도 같은데, 이로 인해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사물들은 더욱 깊은 주의와 의미를 품게 되고, 놀이는 단순한 놀이가 아닌 특별한 은유의 모습을 띠게 된다. 말하자면,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돌, 찻잔, 모래, 과자, 방울, 핸드백, 청진기, 주사기 등등은 실제 삶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갈등이나 희망, 기억, 시간 등으로 환유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작품이 적절한 유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러 복잡한 감정을 떠오르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이를 더욱 강화시켜주는 또 다른 중요한 지점은 바로 얼굴의 클로즈업이다. 보통 상당히 단순화되어 있는 데생에서 인물의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제시하기는 쉽지 않은데, 그것은 단순화된 이미지 때문에 클로즈업 내부에 등장하는 정보의 양이 너무나 적어서 수용자들이 쉽게 따분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 연애놀이 >에서의 얼굴 클로즈업은 전혀 다른 양상이 된다. 그들의 얼굴은 윤곽선으로 그려진 선들의 끝없는 떨림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감정을 전달한다. 이때 떨림의 선은 이미 앞서 제시된 애정 어린 사물들과 인물들 간의 손의 연결, 그리고 클로즈업된 얼굴의 이미지로 이어지면서 이것이 그려진 애니메이션이라는 존재적 층위를 알림과 동시에 인물의 얼굴을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치는 공간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얼굴의 작은 떨림은 그야말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선, 그 자체의 존재의 함성인 셈이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그 선을 만지듯이 바라볼 수 있다. 놀이에서 삶으로 이 작품이 농익은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감독은 각각의 에피소드들의 순서를 구성함에 있어서 상당히 많은 고민을 한 흔적을 찾을 수가 있는데, 각각의 에피소드는 놀이의 순서이면서, 삶의 순서이고, 미묘한 감정의 고리가 연결되는 과정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먼 곳(long-shot) 에서 살펴야 했던 누군가의 놀이가 그들의 내부(close-up)를 드러내면서 (복잡하게 떨리는 사물을 대면하게 함으로) 우리는 비로소 이것이 삶에 닿아 있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80년대 복장을 한 부모세대의 기억을 인터뷰하는 것일 수도 있고, 현재 우리가 느끼는 삶의 재연(reenactment)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가 겪게 될 누군가의 재현(representation)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백미라 느끼는 것은 마지막 두 개의 에피소드인 병원놀이와 시체놀이인데, 이 두 에피소드는 앞선 이야기들이 들려주는 단순한 놀이를 삶의 영역으로 옮기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메마른 감정의 얼굴이 슬픔과 비극의 클로즈업으로 변환되고, 놀이의 구경꾼이 어느새 그들의 감정 한가운데로 들어오게 만들어 버린다. 놀이에 불현듯 끼어든 느닷없는 비극. 눈물을 왈칵 쏟아내는 여성 캐릭터의 모습에서는 그야말로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짧은 지면상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순 없지만, 그 장면의 배경과 이야기의 내부를 향한 궁금증은 정말 감독에게 묻고 싶을 정도다) 짧은 15분짜리 단편 영화지만, 그만큼 여기에는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작가는 분명 누군가의 사랑을 사랑하고, 기억을 가다듬고 손질하는 유려한 양식을 가지고 있으며, 따뜻한 유머(humor)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애절하고, 사랑스러운 휴머니스트임에 분명하다. 채플린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