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화정구
- 감독
- 왕계
- 제작년도
- 1985
- 출연
- 석수, 관설려
<소년시절의 너> 중 / 사진: Far East Film Festival 대만, 중국, 홍콩을 아우르는 동시대 중화권 청춘영화는 어딘가 안전한 자리로 호출되곤 한다. 이는 가볍고 말랑한 감정의 외피를 두른 ‘틴 로맨스’나 ‘학원물’이 지배적인 인상으로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두운 골목과 방 한 칸을 배경으로 한 ‘도시 로맨스’, 혹은 성적 지향이나 계급적 주류 범주에서 벗어나는 ‘아웃사이더’의 지난한 성장 서사 또한 그 반경을 꾸준히 확장해왔다. 거짓 없는 미소와 서툰 고백에서 길어 올린 풋풋한 청춘의 초상과, 체제와 현실의 제약 속에서 너무 이르게 마모되어 버린 성장의 잔혹한 기록. 두 계열은 서로 다른 미학과 정서를 지닌 채 엇갈린 방향을 향하는 듯 보이지만, 성장의 희미한 슬픔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교차하고 중첩된다. 우리가 중화권 청춘영화로 부르는 범주는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이 영화들은 어떻게 하여 이토록 ‘범아시아적’ 생명력을 유지하는가? 질문은 자연스레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누군가는 <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구파도, 2011)나 <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 >(조미, 2013)을 기점으로 삼을 테고, 또 다른 이는 < 남색대문 >(이치엔, 2002)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 더 긴 역사적 궤적 속으로 옮기면, 중화권 청춘영화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동시대 현상만은 아니라는 점이 보다 분명해진다. 우선, 대만 뉴웨이브와 중국 6세대 영화, 그리고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덜 논의되어 온 홍콩 뉴웨이브의 성취 속에서 그 정서적, 미학적 뿌리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하나 아닌 여럿: 중화권 청춘영화의 기원들 누구나 겪지만 결국 지나간 과거로 남게 될 통과의례의 순간. 대만 뉴웨이브는 이러한 청춘을 형상화하는 데 탁월했던 시기로 기억될 만하다. 교복 입은 인물들의 초상이 전면에 놓인 작품도 가히 많았다. 그 출발점에 자리한 < 광음적고사 >(에드워드 양 외 3인, 1982)의 옴니버스 구성 가운데 타오더천과 에드워드 양이 각각 연출한 첫 두 에피소드(“작은 용 머리”와 “기대”), 그리고 진곤후 감독의 < 샤오피 이야기 >(천 쿤하우, 1983)는 소년·소녀들의 작고 애틋한 바람결 같은 초상을 내세운다. 그 물밑으로는 미국 이민, 대학 진학, 도시 중산층 진입이라는 당대 사회적 분위기의 기대와 규범이 조용히 도사리고 있다. 학교와 가정을 중심으로 일상의 반복을 미묘하고 리드미컬하게 포착한 이 감각은 <남색대문>과 같은 영화들의 정서적 결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를 일깨우는 동시에, 오늘날 중화권에서 ‘작은 청신함’이라 불리는 샤오칭신(小清新, Xiao qingxin)의 감정 구조와 그것이 하나의 서브 장르로 체화되어 온 흐름의 잠재태를 내포하고 있다. [1] 그러나 이 계보는 허우샤오셴의 < 연연풍진 >(1986)을 비롯한 성장영화에서 에드워드 양의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1991)까지 대만 뉴웨이브 1세대가 소외된 젊은 세대를 응시해온 흐름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 영화들은 포스트-경제 기적 시기에 접어든 관점에서 계엄령 시기의 역사적 조건을 되비추는 장치로서 청춘을 호출하며, 어쩔 수 없이 감내하며 통과해야 했던 국면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그 풍경은 담담한 일상으로, 때로 서늘하고 비정한 상태로 각인되는 한편으론 감독들의 노스탤지어와 자전적 경향을 투사한다. 도시로 향한 젊은 연인들이 이뤄질 수 없는 첫사랑을 흘려보낸 기억으로 남기거나(<연연풍진>), 백색 테러의 광풍과 외성인이라 불린 본토 이주민들의 불안정한 삶의 궤적을 통과하던 청년이 끝내 파국적인 폭력으로 치닫는 시간(<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속에서, 청춘은 이미 상실을 예감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광음적고사>,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중 (사진: Film at Lincoln Center , Asian Film Archive ) 이러한 정조는 중국 6세대 영화에 이르러 또 다른 시선으로 변주된다. 1989년 이후 중국에서 독립영화 [2] 로 분류될 수 있는 체제 외부의 작품들이 활성화되어, 급격한 시장화 한복판에서 방향성을 잃은 청춘의 초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아장커의 < 소무 >(1997)를 기점으로 가시화된 이 흐름은 로우예, 왕샤오슈아이, 장위안 등의 작업으로 이어지며 6세대라는 미학적 진영으로 일컬어졌다. 소매치기인 주인공과 ‘사업가’로 변신한 옛 동료를 대조하며 중국 소도시 시장경제의 비루한 풍경을 날것으로 포착한 <소무>의 감각은 < 쑤저우강 >(로우예, 2000), < 여름궁전 >(로우예, 2006), < 북경 자전거 >(왕샤오슈아이, 2001), < 북경 녀석들 >(장위안, 1992) 등에서 목표를 갖지 못한 채 그저 머물고 떠밀리며 시간을 견디는 젊음에 대한 묘사로 이어진다. 6세대는 이처럼 국가 주도 계획경제와 개혁개방 사이의 격변기에 놓인 청춘이 조기에 소진되어버리는 감정 상태를 대변하는 성취를 보였고, 이는 세계 영화제 회로에서 환대를 받았다. 말하자면 이 시기는 중국 본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독립영화’ 정신이 만개했던 때로 기록된다. 작가영화마저 상업영화 및 주선율 영화의 논리에 함몰되어가는 현 풍경을 떠올릴 때, 동아시아 청춘영화의 한 모델―즉, 비관적이지만 정직한 모델―을 제시한 당시 6세대의 성취는 그리움으로 남는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독립영화의 ‘죽음’이 목격되기 전 [3] , 이러한 계보를 근과거까지 계승하며 그 정서적 맥을 잇고 있는 작품으로 리위 감독의 < 관음산 >(2010)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소무>, <관음산> 중 / 사진: IMDb( 1 , 2 ) 홍콩영화의 경우 상황이 조금 달랐다 할 만하다. 서극의 < 제일유형위험 >(1980)이 보여주듯, 초기 홍콩 뉴웨이브에서는 청춘의 권태와 분노를 폭발할 듯한 폭력과 뒤섞어내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담가명이 호화롭고 자신감 넘치던 당시의 홍콩을 배경으로 도시 노마드들을 그려낸 < 열화청춘 >(1982)과, 왕가위의 < 중경삼림 >(1994)을 비롯한 1990년대 작품들은 청춘의 감정 구조를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이어진 프룻 챈의 < 메이드 인 홍콩 >(1997)은 포스트-반환 시기 처음으로 등장한 뛰어난 청춘영화가 아닐까. 영화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두 소년과 이에 합세한 소녀로 구성된 아웃사이더들이 비가역적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는 점에서는 <제일유형위험>을 환기시키면서도, 한결 차분한 시선으로 홍콩의 내면적 심상에 집중한다. 한편 왕가위와 같은 홍콩 뉴웨이브 2세대의 동시대에 함께 활동한 임영동의 <학교 풍운>(1988)은 전형적인 청춘영화의 문법과 거리가 있을지라도, 학교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성장기 소년·소녀들의 위태로움을 그려낸 가장 ‘홍콩적인’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될 만하다. <제일유형위험>, <메이드 인 홍콩> 중 / 사진: IFFR , IMDb 중국 문혁 세대와 Z세대의 초상: <방화>, <소년 시절의 너> 그렇다면 지난 10년으로 범위를 좁혀 중화권 영화로 시선을 옮겨보자. 동시대 작품들은 어떤 청춘의 풍경을 담아내왔을까? 이 작품들을 한눈에 조망하기란 쉽지 않고 필자의 한계도 있기에, 이어지는 글은 그 흐름을 가늠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한 몇몇 인상적인 작품들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를 제공하고자 한다. 먼저, 중국에서 제작된 청춘영화들은 대만발 ‘샤오칭신’ 장르가 중화권 전반에 끼친 영향력을 입증하듯 캠퍼스 로맨스가 주류를 이룬다. 매력적인 주연 배우들의 청신함, 푸르른 여름 하늘, 첫사랑과 서투른 고백 등 이 장르의 관습으로 간주될 만한 요소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공부’ 자체가 단순한 성장담의 소재를 넘어 과열된 입시와 신자유주의적 경쟁에 짓눌린 청춘 서사의 엔진이 된다는 점은, 중국 청춘영화만의 독특한 지점이다. 모범생 소녀가 불량스럽지만 순수한 문제아 소년의 공부를 도와주며 사랑이 싹튼다는 대만 영화의 공식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가 보여주듯 다소 귀여운 수준에 머물지만, 중국의 대히트작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2013)에 이르면 사뭇 다르게 변주된다. 이는 공부만이 ‘흙수저’인 자신의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 믿으며 로맨스를 아예 거부하는 주인공의 철벽같은 마음을 공략하기 위한 작전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 중 / 사진: IMDb( 1 , 2 ) 증궈샹 감독의 < 소년시절의 너 >(2019)는 중국발 학원 영화들의 흐름 속에서 가장 성공한 판본인 동시에 사회성 짙은 텍스트로 각인된다. 대입 시험인 ‘가오카오’를 코앞에 둔 시기, 주인공 첸니엔(주동우)이 한 소녀가 학교에서 자살한 현장을 목격한다. 죽은 소녀는 교내 가해자들의 악명 높은 괴롭힘에 희생되었음이 드러난다. 가해자들의 다음 표적이 된 첸니엔은 자신을 보호해 주려는 십대 거리의 소년(이양천새)과 운명적으로 엮인다. 영화는 입시 위주 고등학교를 지배하는 잔혹함의 심리를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탐구하며 시작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온 세상에 맞서 싸우는 두 십대의 서로를 향한 헌신과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순수한 로맨스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처럼 교육의 살풍경과 두 연인의 낭만적 비극을 대비시키는 방식은 미덕이라기엔 다소 한계를 노출한다.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에 책임이 있는 체제 내부의 어른들(교사와 경찰들)이 지나치게 선량하고 도덕적인 인물로만 묘사되고, 가해자들 역시 충분한 전사나 깊이 없이 평면적 캐리커처에 가깝게 제시되면서, 두 상처 입은 영혼들의 고립은 사회적 압박 못지않게 스스로 세상과 단절하려는 관계의 내향성에 의한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오카오’ 점수가 부르주아로의 격상과 잔인한 빈곤의 삶 사이 간극을 결정짓는 상황에서, 첸니엔이 통과해야 하는 절박함의 정동은 한 편의 ‘십대 오페라’ 같은 이 영화를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요소일 테다. <소년시절의 너> / 사진: IMDb <방화>(2017)는 문화대혁명 말기, 문공단(문화예술선전대)에 입대한 젊은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공간이 당대의 예술학교나 사실상 다름없었던 현실이 재현될 뿐 아니라, 영화 역시 학원영화의 문법을 상당 부분 따르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블록버스터와 풍자극을 넘나들며 < 집결호 >(2007), < 아부시반금련 >(2016) 등을 연출해온 중국의 대표적 감독 펑샤오강의 야심작이다. 무용수가 되기를 꿈꾸는 샤오핑은 문공단에 입성한 첫날, 자신을 마중 나온 선배 류펑에게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이타적이고 충직한 성정의 류펑은 정작 자신의 호의를 이용하기만 하는 피아노 반주자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영화는 마오쩌둥의 사망과 4인방 숙청, 그리고 1979년 중-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지는 약 5년간의 격동을 통과한다. 그 사이 샤오핑은 재교육 시설에 수감돼 있던 아버지의 죽음을 접하고, 류펑과 샤오핑 모두 전쟁에 참전한 뒤 정신적·신체적으로 소진된 상태로 귀환한다. 하지만 <방화>는 문화대혁명이 야기한 전면적인 비극을 정면으로 성찰하기보다는, 학교 청춘물의 형식을 빌려 이들에게 고통을 안긴 공산당 간부나 상하이 상류층 자녀들과의 격차를 부각한다. <소년시절의 너>의 첸니엔처럼, 샤오핑 역시 수줍음과 서투름, 그리고 계급 지위로 인해 조롱과 배제의 대상이 된다. 즉, 시대의 광기보다는 오늘날 중국사회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비판 가능한 엘리트 부유층의 부패와 계급적 소외에 비극의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제목인 방화(芳华)는 ‘꽃다운 청춘’ 혹은 ‘향기로운 시절’을 뜻한다. 세월이 흘러 1990년대 중반, 두 주인공이 재회하는 장면에서 문공단 시절은 노스탤지어 깃든 기억으로 남고, 그 공식적 종언을 알리는 해산식 장면에서 샤오핑은 생애 가장 아름다운 춤을 춘다. 대만 청춘 영화의 속삭임: <조니를 찾아서>,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한편 오늘날 대만 청춘영화의 흐름이야말로 젊은 시절을 ‘아팠지만 예뻤던’ 감정으로 재배치하는 ‘샤오칭신’ 감성 구조와 떼어내 설명하기 어렵다. 동시에 그 한편에서는 이전 세대 영화들이 간직했던 불안과 공허의 정조를 일정 부분 봉합하면서도, 이를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변주하려는 흐름 또한 포착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만 청춘 영화들은 불확실한 현재를 견디기 위한 하나의 정서적 피난처를 제공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일상 속에서 작고 사소한 것들, 곧 ‘작은 행복과 미세한 슬픔’을 섬세하게 건드리는 이 방식은 개인주의적 정서를 중시하며,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로부터 물러나 자기만의 세계에 침잠하려는 태도를 전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평론가이자 제작자인 페기 차오는 자신의 제작 영화 <남색대문>이 ‘샤오칭신’ 장르로 호명되는 데 대해 조금 다른 관점을 내놓는다. 그 미덕이 “대만 사회에 뿌리를 둔 일상적 디테일의 축적을 통해 그려낸 삶의 초상이자, 자비로 가득하며 악의가 없는 세계”의 포착에 있다는 것이다. [4] 후앙시 감독의 < 조니를 찾아서 >(2017)는 이러한 설명에 잘 부합하는 텍스트다. 타이베이를 배경으로 한 세 젊은 인물의 이야기는 인상 깊은 오프닝으로 시작된다. 지하철에서 작은 상자를 들고 탄 여자에게 한 청년이 다가와 새장이 아니냐고 묻는다. 여자는 나중에 답을 주겠다고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전에 그런 상자에 새를 담아온 적이 있다고 덧붙인다. 같은 빌라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적당한 거리를 둔 채 걸어가는 긴 시퀀스를 통과할 때까지도 이들이 우연히 스친 타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후앙시는 허우샤오셴의 < 남국재견 >(1996)과 < 자객 섭은낭 >(2015) 제작부를 거치며 선배 감독의 인장과도 같은 롱테이크를 체득한 인물이며, 이 영화에는 실제 허우샤오셴이 제작자로 참여했다. 영화는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주변을 어떠한 판단 없이 평등한 시선으로 관조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일상의 미스터리를 낯설고도 신선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이를테면 화면에 익숙해진 뒤에야 청년의 티셔츠 무늬가 작은 새들이라는 사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순간처럼, ‘조니’라는 사람을 찾는 이상한 전화들을 계속 받아오던 여자는 문득 옛 애인을 조니라고 부른다. 앵무새를 키우는 여자와 자폐 성향을 지닌 청년, 그리고 탈출한 앵무새를 계기로 이들과 관계를 맺게 된 수줍음 많은 집수리공이 왜인지 모를 기분 좋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이야기. 이는 느슨하며, 너그럽고, 명확한 해답은 없지만 삶에 대한 낭만을 포기하지 않는 순간들로 가득하다. <조니를 찾아서> 중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2020)을 논하기 위해서는 대만발 청춘영화의 또다른 국면을 호출해야 한다. 전형적으로 이상화된 여성성보다는 강인하고 때로 보이시한 여성 캐릭터가 선호되고, 완성된 사랑보다는 첫사랑의 어슴푸레하고 틀이 잡히지 않은 감정에 집중해 온 흐름 말이다. <남색대문>, < 영원한 여름 >(2006), <여친 남친>(2012) 등이 보여주듯, 대만 청춘영화에는 퀴어 서사와 삼각관계의 묘사를 통해 장르의 영토를 확장해 온 하나의 계보가 존재한다. ‘사랑과 우정 사이’의 미묘한 긴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종종 촉발되는 모호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섬세한 터치는 대만 청춘영화만의 고유한 미학을 구축해왔다. 패트릭 류 감독의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막 계엄령이 해제된 1980년대 후반 대만을 배경으로 한다. 아한은 가톨릭 기숙학교에서 버디를 만나 단짝 친구가 되고, 두 소년 사이에 형성된 감정은 학교가 여학생을 받기 시작하면서 시험대에 오른다. 신입 여학생 반반의 등장은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성적 정체성을 직면하도록 압박하는 계기가 된다. 표면적으로는 삼각관계를 통한 ‘사랑과 우정 사이’라는 테마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 보이지만, <네 마음>은 정통 퀴어 영화라기에는 터치가 다소 가벼웠던 기존의 청춘영화 흐름에서 한 발 더 묵직하게 나아간다. 기숙학교 내에 공공연히 만연한 호모포비아와, 스스로 게이였음에도 아한에게 ‘교정’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던 캐나다인 신부의 모순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영화는 계엄령 해제라는 조용한 변화의 출발점에서 시작해,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시간으로 닿는다. 과거의 고통과 열정을 다시 마주하며 잃어버린 줄 알았던 시대의 기억을 되찾으려는 듯, 주제곡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이 흐르는 가운데 두 주인공은 죽은 신부의 교구가 있던 퀘벡의 밤거리에서 우연히 재회하는 결말로 향한다. 홍콩 독립 청춘영화의 새로움: <쪽빛 하늘>, <좁은 길> 마지막으로 최근 홍콩 독립 청춘영화는 대만의 청춘물이 제공하는 감정의 완충 지대나, 중국 본토 학원영화의 서사와는 사뭇 다른 궤적을 그려낸다. 이 글을 준비하며 마주한 가장 큰 수확은 홍콩 반환 이후 감독들의 본토행에 따른 영화 산업의 공동화나 정체성의 약화라는 오랜 우려를 불식시키는, 독립영화 진영의 새로운 세대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저예산으로 제작되면서도 도시 청춘들의 표정과 삶의 결을 세밀하게 기록해 온 이 영화들은, 때로는 홍콩을 향한 러브 레터처럼 읽히기도 한다. 아모스 와이의 <닷 투 닷>(2014), <냅핑 키드>(2018), <먼 곳에서>(2022) 등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주목할 점은 홍콩영화발전위원회(Hong Kong Film Development Council)가 주관하는 신인 감독 지원 사업(First Feature Film Initiative)을 통해 입봉하는 신예가 점차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업은 신인 감독의 데뷔작을 지원할 때 홍콩 영화계의 거장 감독이나 베테랑 제작자를 멘토로 매칭해 주는 방식을 취한다. 2013년부터 시작된 이 세대 간 유기적 결합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 덕분에, 최근 홍콩 독립영화를 보면 타이틀 크레딧에서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익숙한 홍콩 감독들을 발견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쪽빛 하늘> 중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 그중에서도 <쪽빛 하늘>(2017)은 동시대 홍콩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중 하나인 청킹와이의 극영화 데뷔작이다. <천하태평>(2008), <음악 인생>(2009), <하나의 국가, 두 개의 도시>(2011), <테이스트 오브 유스>(2016) 등 홍콩의 현실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들과 허안화의 <밤과 안개>(2009)의 각본을 쓰며 다져온 청킹와이의 서늘한 시선은, 부모 살해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소재를 통해 홍콩 사회가 청춘에게 드리운 그림자를 냉정하게 응시한다. <쪽빛 하늘>에서 부모의 시신이 지역 저수지 인근에서 발견된 뒤, 어린 코니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한다. 이 강렬한 스릴러는 누가 저질렀는가를 이미 알려주고 시작하기에, 질문의 중심은 ‘왜’라는 동기로 집중된다. 빈곤과 학대로 점철된 코니의 가정환경, 그녀가 학교 친구를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과정, 그리고 사건에 깊이 관여하면서 점차 자신의 사적인 삶까지 흔들리기 시작하는 여성 수사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선정적으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세심하게 펼쳐지는 이 탐구의 형식은 평소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코니와 같은 인물들이 스스로 말하게끔 유도한다. 대만이나 중국의 청춘 학원 영화에서 ‘파란 하늘’이 젊음의 자유를 상징한다면, 이 영화의 어스름한 ‘쪽빛’은 홍콩의 비좁고 폐쇄적인 공간을 짓누르는 색채로 활용된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안전하지 못한 채 위협받는 십대들을 압박감 가득한 스릴러에 담아낸다는 점에서 <학교풍운> 같은 홍콩영화의 고전적 전통이 환기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부모 살해를 자행한 소녀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거부하는 젊은 여경의 윤리적 딜레마는 평행선을 달리는데, 이는 세대 갈등의 단면이자 출구 없는 미로 같은 도시에 갇힌 홍콩 현세대의 실존적 질식 상태를 대변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좁은 길>(2022)은 2019년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당시 자살을 예고한 어린 시위대를 구하려는 청년 구조대의 이야기를 담은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기를>(2021)을 렉스 렌과 공동 연출했던 람섬 감독의 단독 연출작이다. 이 영화 역시 대만의 낭만이나 중국의 열망과는 또 다른, 도시 속에서 존엄을 지키려는 홍콩 청춘들만의 정직하고도 아픈 초상을 그려낸다. 코로나19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 영세 청소 대행업체의 일원인 노동자 자크가 늦은 밤 식당을 방역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주로 가라앉은 팬데믹 시기의 밤 장면으로 구성된 <좁은 길>은 조용한 노동계급의 고독을 포착하지만, 음울하거나 비관적이기보다는 사회 주변부의 고단한 상황을 응시하면서도 어딘가 미묘한 위로와 해방감을 안겨준다. 일손이 절실하지만 도시를 덮친 팬데믹 탓에 자크의 형편은 넉넉지 않다. 그는 충동적으로 지원한 캔디의 비공식적인 구직 요청을 받아들이고, 매일 밤 일당을 현금으로 지급한다. 비교적 어린 여성인 줄로만 알았던 캔디는 사실 어린 딸을 키우는 싱글맘이다. 두 사람은 감정적 방어 기제를 세우면서도 서서히 비즈니스 파트너에서 친구 사이로 발전하지만, 영화는 연애담을 전형화하지 않는 선에서 결말을 열어둔다. 람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지난 몇 년간 힘든 시간을 보낸 홍콩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고, 우리 모두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자 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5] 취약함을 인정하는 용기는 <좁은 길>의 가장 큰 미덕이자, 고립 속의 유대를 형성하는 두 주인공의 서사에 깊이 공감하게 만드는 동력일 것이다. 청춘영화라는 틀 안에서 보자면 입체적으로 그려진 젊은 청소 노동자와 싱글맘의 묘사 자체가 인상적인 ‘캐릭터 스터디’라 할 만하다. <좁은 길> / 사진: IMDb *** [1] Papan Yang, “The Taste of Ice kacang: Xiaoqingxin Film as the Possible Prospect of Taiwan Popular Cinema”, The IAFOR JOurnal of Asian Studies, 2:1, 2016, p. 75. [2] Chris Berry, “Cinema: Reconsolidation of Party-State Hegemony in a Market Economy,” in M Dahl, M. Szatkowski & H. Kups (eds.), China under Xi Jinping: An Interdisciplinary Assessment , Leiden & Boston: Brill, 2016, p. 351. 중국 독립영화는 일반적으로 정부 당국의 검열을 거치지 않은 영화를 말한다. 이는 체제 내 상영이 허가된 예술영화(艺术片, yishupian)와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공식적으로 상영되지 못하는 독립영화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중국 내 독립 영화제(난징, 베이징 등)나 대안적 상영 공간을 통해 소개되거나, 주로 해외 영화제를 거점으로 유통되는 경향을 보였다. [3] Chris Berry, ibid., p. 350. [4] Song Hwee Lim, Taiwan Cinema as Soft Power: Authorship, Transnationality, Historiography , London & NY: Oxford University Press, 2022. p. 129에서 재인용함. [5] Elizabeth Kerr, “ Portrait of a City: The Narrow Road ” , ZOLIMA citymag (접속일: 2025. 12. 26.). 박은지(영화 연구자) l 프랑스 탈식민주의 영화와 동시대 동아시아 영화를 연구하고 글을 쓴다. 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 및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프로그래머. 지은 책으로 『지중해의 영화』, 주요 논문으로는 「장-뤽 낭시를 경유한 클레르 드니의 여정: ‘신체-지리학’ 영화, 생태적으로 그려내기」, 「부산 프랑스문화원과 트랜스로컬 시네필리아」, 「홍콩 누아르에서 포스트-홍콩 누아르까지 성찰적으로 바라보기」, 「두기봉의 밀키웨이 제작사와 포스트-1997 홍콩영화 정체성의 문제」 등이 있다.
2019년 대구사회복지영화제 중 상영 전 작품 소개 왜 대구에서 영화글을 쓰나요? 그 소박하면서도 긴 여정 2025년 가을, 대구·경북에서 지난 10여 년간 나온 100여 편의 영화를 소개하는 책을 한 권 출간했다. 그저 몇 년 동안 꾸준히 기록해 온 글 모음일 뿐인데, 이런 유형의 작업은 최초라는 소릴 여기저기에서 듣는 중이다. ‘지역’에서 영화 관련 글을 쓰고 활동한다는 소개를 하면, 대개 접하는 반응은 두 갈래로 나뉘게 마련이다. 1) ‘얼마나 수고(혹은 고생) 많으냐’, 2) ‘거기에서 어떻게 (제대로) 활동하느냐’다. 둘의 온도는 차이가 크지만, 배경은 거의 다르지 않다. ‘지역’에서 영화를 논하기 어렵다는 전제다. 영화 평론집을 내고 ‘작가’란 어색한 호칭을 종종 듣지만, 평론가를 지망한 적은 딱히 없었다. 영화와 무관한 일을 하며 받는 업무 스트레스를 풀고자 영화제에 종종 다니던 게 조금 유별난 점이란 정도? 그러다 조금씩 지역의 독립·예술영화 극장과 소규모 상영회에도 간간이 다니게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불쑥 상영회를 열어보겠다는 꿈이 생겼다. 그렇게 모든 재앙(?)이 출발한다. 상영회를 열며 소소한 영욕을 쌓아간다. 관련 활동을 이어가니 주변에서 알아차리게 된다. 영화를 매개로 한 교육이나 사업 기획이 생업에 침투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공사 구분이 허물어지자 화근은 종잡을 수 없이 커진다. 마침내 영화제를 열어보자는 제안이 나오고, 실무를 떠맡게 된다. 그렇게 2010년, 대구사회복지영화제가 시작된다. 영화제 자원활동가도 한 번 하지 않고 졸지에 영화제를 책임지게 된 셈이다. 이후 10년간 좌충우돌 행각이 이어졌다. 저서 『경계의 영화: 대구영화라는 낯선 풍경』(2025,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소 뒷걸음질 치다 쥐잡기? 어쩌면 필연을 가장한 우연 영화제 관객으로 다녔을 뿐, 실무는 관람과는 차원이 달랐다. 작품을 발굴하고, 상영작을 수급한 다음 행사를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해 온갖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관객의 다양한 수요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건 물론, 정산과 평가까지 마쳐야 행사 하나가 끝난다. 온갖 사건 사고를 겪으며 경험과 교훈을 얻었다. 무엇보다 영화를 선별하는 안목이 얼기설기 형성되어갔다. 작지만 내실 있는 영화제를 꾸린다는 건, 실무적으로 경험이 축적되는 것과 함께, 무엇보다 자신만의 선구안이 형성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해당 영화제가 지향하는 가치, 공유하고 싶은 주제가 (영화제가 상정하는) 관객과 접점을 형성하기 위해선, 개별 ‘취향’과는 구별되는 ‘지향’이 필수다. 영화제를 통해 프로그래머의 가치와 덕목을 어렴풋이 깨우쳐 나갔다. (좌) 2019년 대구사회복지영화제 중 단편2 섹션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우) 2018년 전태일 노동영화제 중 < 사수 >(김설해, 정종민, 조영은, 2018)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며칠에 불과한 영화제 동안 소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뻔하다. 여건의 한계로 미처 소개하지 못한 작품이 잔뜩 쌓이게 마련이다. 추가 상영을 향한 갈증은 별도의 상영회로, 사전 제작 지원으로 자연스럽게 향한다. 물론 새로운 도전이니 풀어야 할 과제가 수북하다. 용케 고비를 넘기며 소박한 성과를 이룰 때마다 욕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지역 영화제는 서울과 비교해 너무도 취약한 다양한 영화와, 이를 매개로 한 프로그램에 목마른 지역 관객에게 부족하게나마 극장의 대체재로 기능한다. 그 특성을 깨닫는 순간, 무형의 책임이 어깨에 내려앉는다. 우리 지역에 반드시 그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하는 작품은 무엇일까? 턱없이 부족한 자원과 기회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최적화 모델을 찾기 위한 계산과 순수한 열망이 끝없이 충돌하며 개인의 욕망과 지역 영화문화의 공공성이 외줄타기를 거듭했다. 맨땅에 헤딩하기로 얻는 찰나의 행복, 일상의 갈증 지속 가능한 영화제를 내실 있게 꾸리고, 여력 닿는 한 온갖 명목으로 공동체 상영회를 기획하고, 영화제 프로그래머란 직함으로 여기저기 영화를 소개하는 자리에 나가거나 글을 기고하게 된다. 자연스러운 순서다. 이름을 걸고 적합한 작품을 추천해 기대 효과를 충족해야 한다. 다양한 수요가 예상치 못하게 불쑥 제기되더라도 늘 열과 성을 다해 의뢰에 응대할 때만 후일을 기약할 수 있다. 어느새 업계 관계자(!)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그에 걸맞은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할 일은 점점 늘었다. 물론 대부분은 누가 강요한 게 아니다. 그래도 하면 좋을 듯하거나 필요할 일이란 생각에 자발적으로 벌인 일이다. 그러니 잘 안 풀려도 하소연하거나 누굴 원망할 수 없다. 그러나 못내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찰나의 보람과 일상의 고민이 쌓여만 갔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19가 터졌다. 영화제나 상영회를 지속하기가 어려워졌다. 설상가상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오랜 입원 기간 동안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외출도 면회도 통제된 가운데, 다행히 와이파이는 잘 터졌다. 노트북을 켜고 영화를 본다. 하지만 허전함은 여전했다. 영화를 소개하고 나누는 재미가 없었던 탓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렇게 본격적으로 영화에 관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영화제 일을 하면서 조금씩 글을 쓰긴 했지만, 대개 작품 소개를 위한 한정된 분량과 용도에 그쳤다. 긴 글을 쓸 여력도 없고, 쓴다고 해도 게재할 지면이 지역엔 딱히 없었던 탓이다. 영화를 소개하는 건 글보다는 상영 기획으로, 혹은 종종 들어오는 방송 프로그램으로 수행해 왔다. 외부 조건의 극단적 변화로 그 경로가 변경되어야 할 상황이 닥치자, 자연스레 영화글 쓰기로 중심이 이동된 셈이다. 그러다 보니 그냥 쓰고 싶은 작품에 관한 글쓰기가 아닌, 보다 선택과 집중에 의한 작업을 구상하게 된다. 일단 다양한 영화를 소개해야 하는데, 마침 코로나19로 인해 얼어붙은 극장가엔 역설적으로 저예산-다양성-독립-예술영화 소개가 상대적으로 늘어나던 참이다. 재개봉 붐도 일었다. 다양한 영화가 어려움을 뚫고 극장에 걸리는데, 정작 이런 영화들의 정보를 접하긴 무척 어렵다. 자연히 (재)개봉 독립·예술영화 작품 소개 글을 기고하게 된다. 지역에서 영화 잡상인이 존재할 이유 다음으로 상영 활동을 수행하며 알게 된 지역 영화인과 그들의 작업을 알리고 싶었다. 역시 주기적으로 리뷰를 작성한다. 영화 애호가가 아닌 평범한 이들에게 일상과 영화가 연결되는 접점을 만들고자 예전부터 틈틈이 작성하던 교육 목적 기고도 꾸준히 잇는다. 어느새 해야 할 몫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불어났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정체성에 혼란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인정받기 위해 십여 년 넘게 분투해 왔건만, 정작 본업은 지지부진한데 부업이 활발해진 격이라 그렇다. 그렇게 어쩌다 시작한 정기적 집필 작업은 크게 세 경로로 집중되어갔다. 가변적인 글쓰기 실험으로 인스타그램에 영화 단평을 별도로 올렸다. 단평은 정식 기고의 초벌 스케치 역할과 더불어, 지면 게시용으론 애매한 분량이나 비중의 작품도 공개적으로 소개하는 우회로로 상정했다. 그저 많이 보고 능력껏 쓰는 것에서 출발해, 일정한 방향과 목적의식을 갖고 작품을 소개하는 공적 경로를 좌표로 설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조건반사처럼 끊임없이 지금도 글을 작성하는 중이다. 그 과정이 반복되며 일종의 축적을 낳는다. 기존의 오프라인 상영을 통해 형성해 온 독립·예술영화계 네트워크를 다른 각도로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필자가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리뷰 피드(< 밸브를 잠근다 >, < 입문반 >) 그런 실용성 말고 이런 글쓰기 활동이 지역 영화 (창작 및 관람) 환경에 어떤 순기능을 수행하고 있을까? 그저 자기만족에 불과한, 혹은 남들이 상대적으로 덜 다루는 희소성에 주목한 데 불과할까? 해당 질문은 지금도 수시로 머릿속을 맴돈다. 혹시 이 고민에 답을 얻기 위해 지역 영화 관련 활동을 계속하는 건 아닐까 싶을 만큼. 그러나 조금씩 몇 년간 꾸준히 수행하던 지역 영화 글쓰기의 쓸모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간 한국 독립영화에서 ‘지역 영화’는 꾸준히 호명과 소환을 거듭해 왔다. 주요 영화제에서 여러 이름으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주로 포진한 영화학과 중심)에 대비되는 로컬 작품 위주 부문을 신설하고, 지역별 독립영화제에서도 해당 분야 비중이 대폭 늘어났다. 영상 제작 환경의 긍정적인 변화와 교육/지원기관의 증가로 지역에서 제작되는 영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 안에 무수한 다양성과 가능성이 내재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유력 영화제에서 호명되고 수상하지 않는 한, 절대다수의 지역 영화는 소리 소문 없이 잊히기 일쑤다. 물론 이는 수도권 지역에도 적용되지만, 바늘귀의 크기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문제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지역 영화생태계’란 수식어가 종종 등장하지만, 정작 제대로 된 심도 있는 논의는 찾기 힘들다. 대개 개별 지역마다 (변화된 창작 환경에 따라 대폭 증가한) 창작자는 꼭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소수나마 복합상영관에 걸리는 상업영화에 만족하지 못하는 관객층, 그들에 의지하며 능력껏 다양한 작품과 기획을 선보이려는 상영 공간 및 집단이 존재한다. 지역 영화제/독립·예술영화관/(근래 확산되는) 상영회 개최그룹 등이다. 이들을 묶어 흔히 생태계로 호칭한다. 지역 영화 창작자와 독립·예술영화 관객이 별개가 아니라면 그 자체로 작은 영화 공동체가 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싹틀 법하다. 그러나 가야 할 길에는 난제가 숱하다. 우선 관객 입장에선 반드시 지역 영화를 관람할 이유랄 게 없다. 세상에 봐야 할 영화가 얼마나 많은데, 정보도 찾기 힘든 낯선 영화까지 챙겨야 한다는 말인가. 그러다 보니 지역에서 만든 영화가 평가받는 거의 유일한 기준은 (외부의 알려진) 영화제 진출과 수상 경력으로 제한된다. 자기 동네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돌고 돌아 역수입이 되어야 비로소 인식 대상이 되는 것이다. 지역 영화의 매력이자 개성이라면, 다양한 고유의 소재와 배경, 지역 사회와 문화에 주목한 특유의 색깔일 텐데 정작 그나마 소개될 기회를 얻는 경로는 그 특색과 동떨어지기 쉬운 셈이다. 이런 오류를 보완하는 데 지역 사회 내에 공존하며, 영화생태계 일부로 소속감을 지닌 평론/평론가의 존재는 필수적인 윤활유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2023년 반짝다큐페스티벌 중 섹션4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작은 변화의 가능성과 함께 엄습하는 숙제들 지역에서 왕성히 활동하는 인터넷 대안언론 《뉴스민》에 제안해 ‘무비053’이란 이름의 칼럼을 열었다. 2주마다 꼬박꼬박 대구(경북) 지역 작가와 배경의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다. 2022년 3월부터 기고를 개시한 해당 칼럼이 훗날 『경계의 영화: 대구영화라는 낯선 풍경』(2025)의 산파가 된 셈이다. 몇 년 전부터 틈틈이 비정기 기고는 진행했지만, 본격적인 지역 영화글을 집필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글쓴이에게 일어난 변화는 작지 않다. 지역에서 영화 관련 글을 쓴다는 건 단순히 글쓰기로만 끝나지 않는 일이다. 일단 영화를 찾아봐야만 한다. 대부분 지역에서 제작되는 작품이 단편이다 보니 오프라인 상영을 찾아다녀야 한다. 그나마 대구는 근래 비교적 활발하게 작품 창작이 일어나고 있기에 작품 숫자는 적지 않은 편이나, 지역별 편차에 따라 애초 작품 수급 자체가 힘든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일상적인 상영 공간이 부재하니 한 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볼 기약이 없다. 그런 상황이라면 창작자에게 별도 연락을 취해 과정을 밟아야만 한다. 그런 수소문을 통해 멀찍이 거리를 두던 지역의 영화인들과 대면하고 교섭(?)을 치르게 된다. 해당 과정을 반복하며 정보를 취합하고 평론 글을 게재하면 창작자의 반응을 기다리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거의 경험할 기회가 적다 보니 글쓴이가 기대하던 교류를 얻기란 지극히 드물다. 그저 자신의 작업에 누군가 반응을 남겼다는 사실 자체로 기뻐하거나, 혹은 오탈자 지적이나 창작 의도에 부합하는 글을 암묵적으로 바란다는 확인이 대다수 반응을 이룬다. 이럴 땐 맥이 빠지지만, 결국엔 양측 모두 훈련과 적응이 필요한 사안이긴 하다. 『경계의 영화: 대구영화라는 낯선 풍경』 관련 대화형 행사 (좌) 2025년 부산다큐필름페스티벌 중 토크 포럼 / (우) 2025년 안동중앙아트시네마 내 북콘서트 안면을 트고 인사하게 되면 새롭고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하는데, ‘팔이 안으로 굽지 않느냐는’ 의심이다. 이는 여전히 저울에 올라오는 쟁점이기도 하다. 작품에 대한 상세 정보 취득이 수월해지는 만큼, 그에 비례해 중심 잡기라는 난제가 동시에 닥친다. 지역 영화를 둘러싼 일종의 ‘온정주의’에 관한 입장은 극명하게 나뉜다. 누군가는 당연한 일이라며 여러 제약을 극복해 완성된 지역 작품을 ‘동료’적인 시각에서 다루는 게 틀린 게 아니라 말하지만, 누군가는 그러한 근접성이 공정한 비평과 동떨어진 것이라 비판한다. 정답은 늘 그 중간 어딘가에서 형성된다. 글을 쓸 때마다 성배를 찾는 불가능한 모험을 거듭해야 한다는 뜻이다. 글을 쓰는 행위는 송고했다고 바로 끝나지 않는다. 해당 작품이 웬만큼 외부에서 소개되지 않았다면, 대부분은 필자의 글이 유일한 ‘공식’ 평론으로 남는 경우가 태반이다. 즉, 해당 작품 관련 검색 가능한 ‘정전’이 되는 셈이다. 이는 아주 살짝 보람인 동시에 큰 부담으로 자리한다. 작품이 온당하게 평가받고 소개될 수 있도록, 일종의 A/S 과정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다. 작품이 추가로 상영 기회를 얻게 지원하는 임무도 부여된다. 영화의 의미와 가치, 효용을 글을 쓰면서 포착한 데 기반해 가능한 선에서 추천하고 제안하는 과정이 글을 쓰는 동시에 부가된다. 지역별 영화생태계에서 비평의 자리를 찾기 위해 일련의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일부 작가의 작업을 일종의 ‘작가론’으로 작성하는 경로에 진입한다. 단편 위주로 작업하는 지역 창작자에겐 쉽게 접하기 힘든 기회인 도시에, 평론 관점에서도 창작자의 출발점부터 연속적으로 작업을 관찰하고 포착할 수 있는 드문 계기이기도 하다. 그런 계기를 통해 드물게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는 창작자를 지켜보는 건 ‘발견’의 기쁨이 되곤 한다. 여기까지 언급하면 한국 독립영화의 ‘블루 오션’으로 간주할 만하지만, 실제로 지역 영화 글쓰기는 외롭고 험난한 길이다. 우선 공개 지면이 거의 부재하다. 물론 서울 등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평론 영역에서도 지면 축소는 공통된 화두겠지만, 지역은 몇 곱절 더 심각하다. 일단 영화 평론을 전문적으로 실어주는 매체 자체가 드물다. 일간지나 공중파 방송 역시 전문 코너가 부재한 데다, 온라인 미디어 또한 전문 지면을 유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글쓴이 역시 라디오 프로그램에 간헐적으로 출연하는 것 외엔 안정적인 미디어 지면을 확보하는 데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사실상 자기가 글을 올릴 지면을 새로 만들어야만 가능한 셈이다. (좌) 2019년 대구MBC 프로그램 <문화극장 조조할인> 중 코너 ‘작은 영화관’ 녹화 현장 (우) 2023년 KBS2 라디오 프로그램 <음악과 음악 사이> 중 코너 ‘이 영화 어때요’ 생방송 현장 물론 없던 지면을 창조하다시피 하니, 중앙 미디어에 비교하면 노력과 봉사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지면을 유지하는 것도 감사한 일인 경우가 허다한 탓이다. ‘박리다매’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고료를 받고 평론을 싣는다는 기준을 설득하는 자체부터 쉽지 않다. ‘무료’로는 원고를 싣지 않는다는 원칙을 꺼내며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할 판이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글을 쓸 수도 없다. 하지만 제대로 쓰고 싶은 만큼 전문성을 추구하는 데에도 한계가 뚜렷하다. 해당 매체 독자층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좀 더 핵심적인 화두가 있는데, 애초 지역을 기반으로 영화 평론을 수행하는 동업자 겸 경쟁자 집단이 부재한 데 기인하는 문제다. 원래 고민하던 목적의식, 지역 영화에 대한 다양한 비평을 통한 ‘기대 효과’가 온전히 구현될 수 없다는 구조적 한계는 대구·경북은 물론 거의 모든 ‘지역’에서 공통된 난제다. 동료를 만들고 싶어도 찾기란 쉽지 않다. 아무래도 협업이 당연한 영화 창작 과정이나 상영 활동과 달리, 기본적으로 개인 작업인 특성 때문이다. 아울러 관심사와 여타 조건이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공동 작업은 더욱 고난도로 변한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일단 지역에서 전문화된 글쓰기를 상시 과제로 삼는 필자 찾기가 1차 관문, 지역 영화에 관심을 가진 이가 희소한 게 2차 관문, 조건 다 맞아도 일감이 없는 지역에서 해당 활동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게 3차 관문이다. 그야말로 ‘좁은 문’이다. 그룹을 구성해 ‘선의의 경쟁’을 일상에서 수행하지 않는다면 지역에 절실한 다양한 결의 비평 문화 조성은 암초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생태계 순환 과정에서 창작 집단에 자극을 주고 긴장을 유지하려면 넘어야 할 벽이기도 하다. (좌) 2022년 안동중앙아트시네마 내 영화비평 강좌 ‘영화 보기의 미학’ 프로그램 소개 (우) 2022년 인디플러스 포항 내 강의 ‘독립영화의 감상과 비평’ 지역 영화 예산 복원을 넘어서 지속 가능한 생태계 형성까지 2023년, 몇 년간 조금씩 조성해 왔던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역 영화 창작 및 영화문화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된 후, 현재까지 관련 예산은 복원되지 못한 상태다. 자연스럽게 지역 영화 관련 지원 및 정책 초점은 해당 사안으로 귀결되는 실정이다. 물론 (개별 지역이 아닌 전체) 총액 12억이란 별것 아니게 보이는 지원 예산을 참 알뜰하게 써가며 여러 항목에 골고루 종잣돈이 되온 게 증명되기에, 본 예산은 복구를 넘어 대폭 확대되더라도 전혀 낭비가 아니다. 문제는 몇 년째 이 문제로 지역 영화에 대한 모든 담론이 환원된다는 점이다. 일단 ‘지역 영화(창작과 문화)’ 정책 수립의 초점과 방향이 확립되어야 한다. 현재 정부의 영화정책은 여전히 20세기에 형성된 ‘수출산업’에 방점이 찍혀 있다. 한국 독립·예술영화는 그런 시각 아래 철저하게 상업영화의 ‘(산업)예비군’으로만 사고해 온 게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 관점에서 언젠가부터 독립영화와 창작자마저 마치 국가대표팀 선발하듯 국내외 주요 영화제 진출과 수상 중심으로 서열화되는 실정이다. 그런 일방적 기준에 의한다면, 지역 영화는 2군도 아닌 3군 이하로 취급될 뿐이다. 당연히 관심을 호소해봐야 헛수고일 따름이다. 이런 난맥상을 돌파하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수다. ‘산업’ 중심주의를 돌파하지 않으면 결국엔 지역 영화는 유령처럼 떠돌 뿐, 실체를 갖출 수 없다. 지역의 인재는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 서울로 향하면 되고, 지역의 관객은 복합상영관 객석을 채우는 머릿수로만 족할 뿐인데 지역 영화에 유의미한 관심이 향할 리 없다. 기껏 기존 예산이 복구된다 해도 그저 시혜적인 상징에 불과할 테다. 지역 영화(창작과 문화)를 진흥하려면 우선 서울을 제외한 지역 공통 현황과 함께 차별화된 지역별 특징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영화문화 측면을 뛰어넘어 한국사회 고질병인 ‘서울 공화국’ 문제와 직결된다. 즉 지역 균형발전, 지방분권 쟁점과 같은 궤로 놓고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그렇게 발상을 전환한다면, 독립·예술영화 접근 기회의 균등은 곧 비수도권 주민들의 문화복지 권리 일부가 된다. 물론 그저 최신 상업영화 대작 관람 기회를 넘어, 다양한 영화문화 접근권으로 향해야 유의미할 것이다. 지역 영화에 관한 글쓰기는 그저 개별 창작물에 관한 평론으로 그치지 않는다. 해당 작품이 꼭 영화제를 거쳐 인정받지 않더라도 지역 내에서 충분한 함의와 가치를 갖는다면 이를 포착해 소개하는 기능을 통해 지역 영화문화 형성의 일부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글을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상영 활동 등 2차, 3차 소개 기회를 넓히는 파급력을 상정하며 글을 쓰게 된다는 의미이다. 얼핏 피곤하거나 과도한 확장으로 받아들여질 주장이다. 그러나 지역 영화를 평론한다는 건 글쓰기로만 국한하기에 애초에 불가능한 과제다. 일종의 능동적 ‘수용’ 활동이자 순환계 내에서 끝없는 운동을 거듭하되 ‘미토콘드리아’처럼 일정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지역화’한 영화 평론은 예산과 지원 대책에만 갇히지 않는 지역 영화문화 형성의 일부로 역할을 얻는다. 물론 ‘가지 않은 길’이기에 정답은 누구도 모른다. 다만 기존 독립·예술영화 비평 모델과 비교하면 보다 사회학적 접근, 현장 참여에 주목하는 형태를 지니리라 예상해 본다. 일단 떠나지 않고 지역 사회 쟁점과 배경을 숙지한 상태로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고 발굴해 접속하는 과제를 수행하는 수밖에 없다. 개인을 넘어 집단으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분법을 넘어 공생하는 영화생태계로 접근하는 과정에서 지역 영화 글쓰기는 고유의 형상과 임무를 찾게 될 테다. 지금은 일단 씨를 뿌리며 경작에 나설 시간이다. 2019년 대구MBC 프로그램 <문화극장 조조할인> 중 코너 ‘작은 영화관’ 녹화 현장 * 사진 전체: 필자 본인 제공 김상목(스크리닝 메이커) l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영화제와 상영회 기획부터 매체 기고, 라디오, 텔레비전, 교육 강연 등 들어오는 일 마다하지 않고 즐겁게 지역에서 다양한 영화를 소개하며 활동 중. 저서 『경계의 영화: 대구영화라는 낯선 풍경』(2025), 공저 『이것은 카메라입니다』(2022) 집필.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1. 초등학생 때 면접을 보고 들어간 방송반에서 나는 영상 송출 담당이었다. 아나운서 선발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당시 여자애들은 전부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방송반에 들어갔다). 영상 송출 담당이란 조회 시간에 타이밍에 맞춰 애국가 제창 화면을 틀고, 교가 비디오를 틀고, 다시 화면을 전환해 강단을 비추는 일이었다. 특별활동 시간에는 방송실 안에서 함께 영화를 보거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면서 보냈던 기억. 고등학생 때는 영상제작 동아리 활동을 했다. 집에서 안 쓰는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영상을 찍었고 이런저런 공모전에서 나름 성과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대학교에 가서도 영상제작 동아리에 들어갔다. 학내방송국도 아니고 영화동아리도 아닌 영상제작이라는 모호한 분과만을 노렸던 행보에 대해서는 늘 약간의 해명이 필요했다. 영화는 멀고 어렴풋하게 느껴졌던 반면, 영상은 지금 당장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대상처럼 친밀하고 가까웠다. 영화를 의식적으로 챙겨보거나 영화 비평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보다 훨씬 뒤의 일이다. 그러니까 영상제작 활동을 했던 시기와 영화를 좋아하게 된 시기가 다르다는 점은 내내 의문이었다. 그 두 가지는 다른 걸까?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하면서 일단 찍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나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까? 2. 글 쓰는 사람의 손 위에서 시간은, 마감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하는 카운트다운으로 대체된다.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밀려나는 리듬이 있을 뿐. 이건 마감의 불안으로 또 다른 층위의 불안을 지우는 일. 불안으로 불안을 다시 쓰는 일. ‘다시 시작해보자’라는 주춤거림 없이 글쓰기가 어렵다. 그건 글쓰기에 가로막힌 사람이 쓰던 원고를 거칠게 구긴 뒤 새 종이를 꺼내면서 뭔가를 새로 시작하고 있다는 착각을 통해서만 글을 시작할 수 있다고 느끼는 아주 상투적인 장면인 동시에, 대부분의 내 글쓰기가 출발하는 장소다. 눈치 챘겠지만, 글을 시작하기 위해 쓰나 마나한 말을 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다. ‘영화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일단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자꾸만 미루게 된다. 곤란한 일이다. 그리고 이 글에서만큼은 한 방울도 남김없이 ‘나’여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이 든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단 지금까지 내가 썼던 모든 글은 불순하다고 말해야 한다. 종종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나의 경우, 특히 영화에 대한 글쓰기는 책상 위가 아니라 책상 아래에서(Under The Table-‘불법적인 일’을 뜻하는 관용 표현) 이루어지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종종 영화 전문 매체에 글을 쓰고, 힘을 북돋아주고 싶은 어떤 영화에 관해서는 목소리를 높여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말의 효력을 따질 새도 없이 글이 공적인 경로로 유통된다는 사실은 특권적인 동시에 두려운 일이다. 줄곧 이런 불안이 따라붙었다. 왜 정녕 영화여야만 할까? 하지만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을 읽으며 이보라 평론가가 쓴 구절에서 멈칫했던 기억도 난다. “글을 쓰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만 할 수 있나?” *주1 비평은 단순히 작품에 대한 해석이 아니다. 『비평철학』에서 저자는 기술과 해석이 서로 다른 작업이며 기술은 명백한 요소들에 대한 증언인 반면, 해석은 명백한 요소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동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해석은 결코 최종 진술이 될 수 없는 미완의 작업이다. *주2 어떤 것이 명백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지 선택하기 위해서는 관습적인 것이라 여겨지는 공통의 합의들에 대한 감각을 키워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것에 대한 가장 새로운 이야기조차 사실은 통속적인 것의 배후에 있다는 깨달음이 글쓰기의 날카로운 기쁨이라면, 나는 그 순간을 연장하기 위해서 글을 쓰고 있다. 결코 최종 진술이 될 수 없다는 점은 매혹적인 동시에 끝나지 않는 악몽 같다. 불만족스러운 마감을 했다는 불안이 들 때면 어디에도 없던 평론가 데이비드 매닝 *주3 (일명 ‘데이비드 매닝 사건’)의 유령이 나타난다. 이 자리는 언제 백지화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허구가 아닐까. 그 누구로도 대체 가능한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닌가. 어느 날 꿈에서는 내가 데이비드 매닝으로 판명 난다. 그리고 깨어나면, …이 세계는 꿈이라고 해서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간단한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주4 '데이비드 매닝'의 평을 실은 영화 광고 (사진: " Dave Manning ", The Museum of Hoaxes) 3. 영화를 둘러싼 불안과 수치심, 글쓰기의 곤란함이 맞닿는 장소가 영화 비평이라는 밀실이다.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은 묘연하다. 미치더라도 이들과 함께 써나가야 하는데,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영화 비평을 수행적인 활동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때 수행성이란 현실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방식의 개입이 아니라 ‘일단 가까운 곳으로 돌입하는 것’에 가깝다. 영화는 멀지만 영상은 찍을 수 있다고 여겼던 것처럼, 지금 당장 무언가를 바꿀 수는 없더라도 최대한 현실이라고 감지되는 최전선을 향해 두드려보는 무모함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일단 돌입하고 나면 문제는 다음으로 미루면 된다. 문제는 다음이 항상 너무 빨리, 그리고 시시각각 찾아온다는 것뿐이다. 비평은 무언가를 걸치고 말하는 작업이기에 제로에서 시작할 필요가 없다. 비평은 이미 나와 있는 것들의 재활용에 그치지 않으며 여전히 창조적인 활동에 가깝다. 두 진술은 양립 가능하다. 나는 비평과 픽션의 일치를 소망하고, 그런 소망이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어렴풋한 예감 속에서 쓴다. 오히려 나를 쓰게끔 만드는 것은 그런 오래된 불가능성이다. 2년 전 언파운디드랩의 초대를 받아 비평과 픽션의 상호 침투에 대한 글을 쓴 적 있다. 비평과 픽션을 이어주는 가능한 다리들을 다소 산만하게나마 떠올려보고자 했는데, 당시에는 비평의 픽션을 비평의 형식(적 다양성)으로 구현하려고 시도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나는 비평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무용한 일을 벌이고 매번 실패하지만 형식적인 새로움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은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비평의 새로움이란(물론 매우 드문 확률로 형식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작품과 그것이 놓이거나 영향을 미치는 현실 사이의 관계를 조정하는 방식에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비평가의 수행성은 ‘담론 만들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래밍 어드바이저 서동진은 한국단편영화 섹션의 특정 경향을 분류하며 영화들이 특정한 문화적 부족을 형성하고 있음을 이해하려고 시도해야 한다고 쓴다. 작품의 표면에 드러난 이야기나 이미지로 환원할 수 없는 영화 찍기가 갖는 수행적 측면에 주목하여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이미 만들어진 ‘작품’으로 간주하고 그 속에 재현된 이야기와 이미지의 언어적 측면이나 미학적 측면을 헤아리려는 것과, 영화를 하나의 수행적 언어, 즉 일종의 ‘하기(doing)’로 간주하고 영화를 사유하는 것은 다른 접근이다. *주5 서동진은 이 글에서 영화를 특정한 주제나 담론으로 분류하기보다는 단편영화 찍기라는 문화적 수행성과 그 활동의 가치를 중심에 둘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화를 사유하는 것은 “제작된 작품에 연연하지 않고, 감독이라는 텍스트와의 관계를 특권화하는 용어에 불신을 보내는 것”이기도 하다. *주6 감독이 자신이 만든 영화의 모든 부분을 통제하고 창조한다는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보았을 때 작품에 대한 논의는 그것의 주제나 의미, 의도 같은 것들에 의해 휩쓸려가기 쉽다. 반면 영화를 활동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영화를 이미 제작된 것이라는 한정된 텍스트가 아닌, 감독과 작품 사이에 놓인 관계의 완고함을 슬며시 흔들며 제작자의 목소리가 어떻게 반영되고 구성되는지를 조망하게 하는 다층적인 텍스트로 바라볼 수 있게끔 한다. 단편영화,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의 수행성이 공동체의 발견과 자기 구성의 쾌락에 있다면 이것은 비평의 수행성에도 어느 정도 해당되는 말이다. 특히나 영화 비평은 하나의 작품에 대해 논할 수도 있지만 그 작품을 둘러싼 믿음이나 애정을 그러모으면서 특정 집단을 호명하기 위해 쓰이기도 한다. 물론 영화의 수행성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도 성립하는 것과 달리 비평은 단순히 ‘나’를 등장시키거나 일상을 전시하는 것만으로 비평적 효용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비평은 영화를 완결된 것으로 여기지 않으면서 ‘작품과 나’를 연루시킬 수 있는 방식에 대한 고민으로 영화를 현실을 향해 연장시킬 수 있다. 비평은 담론의 부피를 가지지 않은 것, 지나치게 사소하거나 주변부적인 것, 일상과 비슷한 층위에서 간과되는 것들을 재발견하거나 다시 응시하자고 청할 수 있다. 비평의 수행성은 자신의 일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일상성의 속성을 재규정하는 기술이다. 그러므로 비평적 차원에서 작품을 현실과 매개하는 일은 분명 픽션의 기능을 지닌다. 이는 ‘나’라는 주어를 등장시킬 때만 어떤 활동이 수행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과 비일상적인 것, 주류와 비주류를 구분하는 선에 대한 감각을 예민하게 운용하는 것이 비평의 수행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일에 비평가의 일상이 식별 불가능한 상태로 용해되어 있다. 영화의 수행성을 중점에 둔다는 것은 감독의 지위를 특권화하는 관점으로부터 떨어져나왔을 때 더욱 잘 보이게 되는 작품들의 층위가 있다는 말이다. 덜 만들어진 것 같은 영화, 조악한 영화, 그럼에도 사로잡는 영화. 카메라를 다루는 치기 어린 몸짓에서 순간적으로 묻어나는 광채가 있다면 그를 이야기해 봄 직한 것으로 부풀리고, 영화의 담론적 영토를 재구성하는 것은 비평가의 수행이 아닐까? 비슷한 관점에서 다시 보기를 청하고 싶은 것은 청소년 제작 영화 들이다. 청소년들이 주체가 되어 만든 영화들과 영상 제작 문화를 단지 아마추어적인 것이나 미성숙한 단계로 한정시키는 것에 대한 묘한 반감이 있다. 그 시기의 기억이 수치스럽다면, 수치심이라는 바로 앞에 놓인 경험으로부터 출발해 청소년 영화의 한때라는 비가시적인 기억을 담론이라는 공통의 영토로 구제할 수 있을까? 어쩌면 청소년 영화의 스타일을 논해 볼 수도 있을까? <D-?> 중 유소라 의 < D-? >(2003)은 수험생이었던 유소라 감독이 직접 자신과 주변을 기록한 사적 다큐멘터리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인 유소라 감독은 카메라를 지니고 다니며 본인의 일상을 기록한다. 주변 친구들을 인터뷰하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화면 안에 등장해 가상의 청중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학교생활과 가정에서의 일상, 충분히 사사롭지만 문제적일 정도로 내밀하지는 않은, 개인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고3 수험생의 나날들. 입시제도에 대한 심정이나 수험생활의 고충, 장래에 대한 고민을 친구들에게 묻고 답하는 인터뷰는 짧은 호흡으로 리드미컬하게 쪼개어지고 재조합되면서 특정 무리의 집단적 고백으로 조성된다. 이때 아이들은 카메라를 의식하는 동시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자신의 동급생을 바라보고 있다. 유소라는 철저하게 카메라에 매개된 존재로 등장한다. ‘셀프 카메라’라는 형식이 충분히 어떤 문법으로 자리잡지 않았던 때에 스스로와 스스로의 일상을 향해 카메라를 드는 것은 분명 어색한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어떤 형식이 이미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사후적인 자리에서 그것이 최초로서 유효했을 풍경을 생생하게 가늠해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동시에 많은 것이 당연해지거나 진부해졌다는 것은 이미 그것이 스타일화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일상의 기록이 자연스러워졌지만 2002년에 카메라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동급생들의 반응에는 부자연스러운 측면이 있다. 아마도 유소라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어서 누구도 특별히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2014년 독립영화 기획전의 GV에서 유소라 감독은 학생이었던 당시 이미 영상 제작에 관해 여러 성과가 있었기에 제지를 당하기는커녕 오히려 학교의 지원을 받았다고 말한다. 사실 유소라 감독은 청소년 영화 제작 문화의 붐을 이끌었던 <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 >(이선희 외 9인, 1998)를 제작한 영파여중 방송반의 일원이었다. 제1회 서울 YMCA 청소년영상페스티발(주제: ‘오늘, 우리의 모습: 우리의 자화상’)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던 이 영화는 실제 일진회 무리였던 학생들을 연기자로 섭외하고 그들이 직접 시나리오를 수정하기도 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당사자가 직접 폭력을 재연한다는 측면에서 페이크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 영화는 그러한 작품의 분류와 계보를 의식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실제 비행 청소년들이 등장인물로 분한 장선우 감독의 < 나쁜 영화 >(1997)에 대한 청소년들의 응답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의 설립자이기도 했던 김종현 선생이 영파여중 방송반으로 부임하면서 그의 지도하에 함께 제작된 것이기에 어른들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의 형식은 어떤 미학적인 방법론이라기보다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제도가 문제적인 것으로 낙인찍거나 방출시키려 하는 대상의 이야기를 주체화함으로써 제도와의 마찰을 일으키기 위한 사건에 가깝다. 실제로 이 영화가 발표된 뒤 방송반 담당이었던 김종현 선생이 학교에서 퇴출당했다는 일화가 설명해 주듯. 그리고 몇 년 뒤 선생은 다시 영파여고로 복직하게 된다. 이는 청소년의 영상 제작이라는 문화가 하나의 흐름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며, 동시에 이는 더 이상 ‘포스트 서태지 세대’가 가진 문화적인 정체성의 공유지대를 내보이는 수행성이 갖는 반격이 이전만큼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D-?>는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처럼 문제적인 아이들을 다루지 않는다. 다만 수험생이 학교에 캠코더를 들고 다니면서 다소 위험한 장면(수업하는 장면이나 체벌하는 영상 등)을 촬영하는 데도(비록 이것이 녹화 중이라는 카메라 신호를 가리고 몰래 찍은 것이라 하더라도)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랍다. 영화는 같은 학급 친구들이 교실 컴퓨터에서 포르노 사이트에 접속한 기록을 발견하는 장면을 보여주거나 계속 비슷한 설명을 동어 반복하는 선생님의 수업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기도 한다. 남자가 너무 궁한 나머지 담임 선생님을 보며 윤계상을 떠올린다는 지극히 소녀적인 차원에서 도발적인 고민들도 담겨있다. 영화는 수능을 두 달 넘게 앞둔 D-70부터 수능 당일을 거쳐 졸업식, 그리고 졸업 이후 대학에 입학한 정황까지 시간을 내림차순으로 충실하게 따라간다. 하지만 유소라 감독이 수험생활 당시 촬영한 푸티지를 편집한 것은 성인이 되고 난 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실제로 이 영화는 공개 당시 이토록 사소한 내용이 정녕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는지를 따지는 의아함과 더불어 영화가 청소년 섹션인지, 성인 섹션인지 판단하기 모호하다는 반응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이 영화가 졸업 이후의 시점에서 회고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 기록을 촬영한 자가 수험생 당사자이며, 자신을 둘러싼 현장을 증언하고 있고, 카메라가 학교라는 제도의 규칙과 규율을 얼마나 침범할 수 있는지 의문에 부치는 식으로 제도의 윤곽을 드러내는 실험을 감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려 이 영화는 성인이 된 시점에서 청소년기의 기억을 해부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과 청소년기를 단순히 입시라는 제도의 전환점으로 구분할 수 있는지 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청소년기는 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 수능이 끝나고 처음 합법적으로 술을 마시는 날? 대학 입시 결과 발표를 듣거나 재수를 결정하는 순간에? 졸업식 날 어설프게 화장한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릴 때? 어쩌면 청소년기는 한번도 끝난 적이 없는 게 아닐까? 시스템 내부에서 그것과의 마찰을 통해 자기 자신과 공동체를 표현하는 <D-?>는 영화의 수행성이 청소년이라는 지위와 범주 안에서 실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청소년 영화’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제작 주체의 나이가 청소년에 해당한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그 영화가 바탕으로 하는 수행성의 범주에 따라 청소년 영화라는 스타일을 정의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지나치게 조악하거나 서툰 화면이 일정 부분 청소년기 특유의 풋풋함과 열기를 재현하는 방식으로 굳어진 것은 사실상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흥했던 청소년 영화 제작 문화가 끼친 영향이 아니었을까? 디지털이 보편화된 전환기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세대의 갈급함이 맞닿는 지대에서 탄생한 스타일. 특정한 영화적 실천의 계보나 아카데믹한 것을 의식하지 않(못하)고 그저 찍겠다는 충동이 자제할 길도 없이 먼저 앞서나가서 이상한 형상을 만들어내는 영화들을 어떻게 옹호할 수 있을까? 교육과 창작, 반발심과 순응 사이에서 지글거리는. <D-?> 중 이우정 감독의 < 애드벌룬 >(2011)을 다시 살펴보는 게 하나의 답이 될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단출하다. 평범한 아파트에서 정신없이 등교 준비를 하는 여고생의 아침으로부터 출발하는 영화는 두 여자애의 혼란스러운 친밀함과 한밤의 일탈이라는 비일상적인 소동극으로 향한다. 아파트 옥상의 애드벌룬 안에서 술을 마시던 아이들이 질식사했고, 주인공은 운 좋게 사고를 면한다. 그러나 거기 휘말린 지봉이라 불리는 여자아이의 죽음은 누군가의 청소년기에서 영영 불가해한 추문으로 떠돌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야기보다도 이야기가 이미지화되는 방식이다. 2011년에 제작된 <애드벌룬>은 의도적으로 열화된 화질로 촬영되었다. 윤성호 감독은 <애드벌룬>이 ”요새 안 쓰는 베타캠(정식 명칭은 베타캠betacam 비디오 캠코더. sony에서 개발한 방송용 ENG 카메라, 설명은 필자)을 굳이 대여해 특정 시기의 스탠다드(1990년대 교육방송 청소년 드라마와 중고등학교 영상제작반의 의욕적인 과업 사이 어딘가)를 일부러 서툴게 재현한다” *주7 라고 말한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 장면 또한 캠코더로 촬영된 푸티지를 활용한다. 몰래 교실을 촬영한 듯한 영상과 함께 또래 여학생들을 둘러싼 소문을 무심하게 읊조리는 나레이션이 들린다. 이 푸티지는 사실상 영화 전체의 이야기와는 무관하다. 언제 어디서 누가 촬영했는지도 알 수 없으며, 그 사실이 중요하지도 않다. 이유리와 김애숙, 한혜정이 누구인지도. 오히려 영화와 상관 없어 보이는 오프닝을 영화와 접속시키는 것은 출처 미상이라는 이미지의 익명성과 화면의 질감이다. 정제되지 않은 캠코더 화면과 서사를 위해 봉사하지 않는 이미지 자체의 활력, 저화질의 푸티지는 베타캠으로 촬영된 장면과 큰 낙차 없이 어우러진다. <애드벌룬>의 오프닝씬이 채택하고 있는 것은 여자 청소년기라는 특정한 시기의 혼란스러움, 잔인함, 기억과 감각에 대한 인용이다. 영화는 효정이라는 인물과 친구 지봉(지연)을 중심으로 벌어진 하루의 해프닝이라는 특정한 이야기에 머물 수도 있었지만 굳이 영화의 앞과 뒤에 기록 푸티지를 삽입해 드라마를 공적인 기억으로 확장시키려 한다. <애드벌룬> 중 화면과 편집, 대화를 구성하는 방식에 있어서 이 영화의 의도적인 서투름은, 윤성호의 말대로 청소년 드라마의 외피를 차용해 그것을 비트는 방식으로 ‘고유한 것’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전략일 수도 있다. 허나 이러한 고유함은 청소년 드라마의 스타일과 영상제작반 과업의 활기를 연상시킨다는 공통의 기억지대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 영상제작반의 활동은 묘사되지 않으며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다만 어딘가 미숙한 듯한 연출과 편집, 방송 카메라로 촬영한 듯한 질감은 분명 아마추어적인 활동을 상기시키고 있다. 어쩌면 뉴진스의 디토(ditto)식으로, 이 영화의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캠코더를 든 여자 청소년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고 상상해볼 수도 있겠다. 영화의 앞뒤로 삽입된 익명의 푸티지를 다시 떠올려보자. 지나치게 밀접하고 실시간적인 이미지는 이것이 촬영되었을 방식의 내밀함을 은연중에 연루시킨다. 영상이 암시하는 것은 손에 카메라를 들고 학교를 관음하는 내부자적 시선의 은밀함이며, 이는 <애드벌룬>을 보는 내내 이상한 불길함으로 달라붙어 있다.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이 영화의 서브 장르는 공포다. 나레이션이 덤덤하게 들려주는 괴담 같은 소문, 과고에 진학했던 한 여학생이 아버지의 압박에 못 이겨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는 이야기는 청소년기 특유의 잔인함과 서늘함을 증폭한다. 학원물에 등장하는 캠코더 영상이 노스텔지어뿐 아니라 공포를 자아내기도 한다는 사실은 이미 <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김태용, 민규동, 1999)가 보여준 적 있다. 무분별한 일상의 순간을 충동적으로 기록하는 캠코더의 조작 방식과 그렇기 때문에 거기 무엇이 찍혀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유령을 불러들이기에 좋은 환경이다. 아는 만큼 알고 모르는 만큼 모르는 청소년들의 직설은 충분히 잔인하다. 정제되지 않음은 실은 매우 사실적인 동시에 장르적인 감각이다. <애드벌룬>은 성인 연출자(청소년들이 제작 주체가 아니라는 점에서)가 만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기의 학교라는 시스템 내부의 생태계와 그 혼란을 거의 피부로 맞닿아 있는 듯한 감각을 준다. 이 영화가 진짜에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리얼리즘 영화의 수사를 애써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 영화라는 수행의 아마추어적인 특징을 전유해 서사로 편입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서사와 무관하지 않은 어떤 불안의 정체를 성공적으로 표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툴고 미숙한 것을 부족함에 그치지 않고, 담론적 부피로 만드는 것. 4. 청소년이 제작 주체가 된 영화들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편이다. 오세섭 은 청소년들이 주로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가 반영된 논픽션을 제작하면서 자기 재현의 효과를 얻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청소년 제작 영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시대를 막론하고 비슷한 내용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주8 이들이 묘사하는 내용은 학교폭력과 성적, 진로문제, 가족 관계와 사회에 대한 관심 등이라는 주제의 큰 경향 안에서 반복된다. 1998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청소년 제작 영화에서는 초창기의 관행이 반복되고 있으며 입시 위주의 교육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이러한 경향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주9 확실히 청소년들의 가장 내밀한 목소리는 입시 제도에 대한 경험과 문제의식을 자주 경유할 수밖에 없다. <D-?>과 마찬가지로 비슷하게 입시 생활의 부조리함으로부터 출발하는 홍다예 의 < 잠자리 구하기 >(2024) 또한 수능을 얼마 앞두지 않은 수험생인 감독 자신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추후에 무엇이 될지 모르겠지만 우선 그 시절을 기록해 두어야 한다는 본능적인 예감, 그리고 반쯤은 입시 제도에 대한 반발심으로 촬영된 것들이다. 유소라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홍다예 감독도 대학생이 되고 나서 그 기록을 다시 들여다본다. <잠자리 구하기>가 보여주는 현실이 지나치게 가깝다는 감각은 대상과의 영점조절을 의도적으로 실패함으로써 내가 너를, 우리가 우리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가한다. 주제와 내용을 중심으로 영화의 경향을 범주화하는 관점의 부작용을 차치하고서라도, 그 충돌이 그 안에서 어떻게 분화하는지, 자신의 목소리를 어떻게 기입하는지 추상화한 채 단순한 치기 어림으로 노이즈와 아우성을 뭉뚱그려서는 안 될 것이다. 비평이 언제나 상대보다 많이 안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하는 일이라는 세간의 오해에 따르면 비평은 항상 성인의 시점을 전제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비평의 청소년성이 가능한지 묻고 그 치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잠자리 구하기>에서 입시에 실패한 감독은 재수를 택한다. 사람들은 이 기간이 유예기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학에 가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는 답답함과 분노, 우울감은 입시라는 사건으로부터 멀어진 뒤에도 여전히 그 사건의 후유증과 싸워야 하는 과업으로 남는다. 감독의 나레이션처럼 우리는 “아직 유예기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도 바깥에 놓인 시간이 있을지언정 삶 바깥으로 잠시 떨어져 나갈 수 있는 삶의 일부란 없다. 청소년기와 아직 끝장을 보지 못한 무언가가 남아있다는 기분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 잘못된” 사람이 가진 우울의 궤적을 표면화하는 기록들, 그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고 편집해야겠다는 충동으로 남아서 영화의 수행성과 접속한다. 그러니까 청소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건 아직 성장판이 닫히지 않았다는 식의 낙관이 아니다. 청소년기를 제도적 나이가 아니라 스타일로 확장될 수 있는 특정한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정의할 때 종종 불가해한 활력을 띤 영화들을 수용할 수 있는 지반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이야기로 환원되지 않는 소음과 신음, 반발심, 특정 시기가 지나면 부끄러운 것으로 판명 날 어떤 충동들, 미래에 무감한 투신을 마주하는 기쁨이 있고 그 충격이 글을 쓰게 한다면 기어이 그렇게 할 것이다. 왜 이 순간에도 여전히 나는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까? 앞으로도 나는 너무 모르고, 모를 거라는 예감 속에서 쓰겠지만, 모르면서 일단 앞서나가는 마음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음을 부정하거나 배신하고 싶지 않다. 그 마음을 저버리지 않는 것은 모르는 것이 아는 것으로 전환되는 순간에 발각될 미래의 수치심을 감수하는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수치심을 기다리는 일. 부정확함을 견디는 것. 글쓰기는 언제나 불안이라는 뒤축을 밟고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일이니까. 거의 넘어지듯이. <잠자리 구하기> 중 *** 주1. 이보라, 「쓰러진 활자들을 일으키기. “그래도 우리는 말해야 하지 않는가.”」,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 2023, 106쪽. 주2. 노엘 캐럴, 이해완 옮김, 『비평철학-On Criticism』, 북코리아, 2015, 159~164쪽. 주3. 2001년, 소니 픽쳐스 엔터테인먼트는 데이비드 매닝이라는 평론가가 작성한 < 기사 윌리엄 >(브라이언 헬거랜드, 2001), < 애니멀 >(루크 그린필드, 2001) 등의 영화에 대한 호평을 인용한다. 코네티컷주의 소규모 신문 릿지필드프레스의 필자라고 알려진 이 데이비드 매닝이라는 평론가는 그러나 가상의 인물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평론가의 이름으로 영화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게재하고 이를 광고에 활용한 것이다. 어디에도 없던 평론가 데이비드 매닝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이미 유령적일뿐 아니라 영화 비평이 산업의 가장자리에서 니콜 브레네즈의 표현대로 ‘부역자들’로 과대 대표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서 온전한 의미의 비평 활동이 수용될 장소가 희박하다는 점을 알려준다. 주4. 스즈키 이즈미, 최혜수 옮김, 『여자와 여자의 세상』, 문학과 지성사, 2024, 407쪽. 주5. 서동진, 「전주국제영화제가 소집한 19편의 한국 단편 영화」, 《독립영화》 통권9호, 2001, 10쪽. 주6. 같은 책, 7쪽. 주7. 윤성호, “ [초이스]애드벌룬 ”,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2012. 3. 6. 주8. 오세섭, 「청소년 제작 영화에 나타난 자기표현으로서의 재현의 의미」, 《씨네포럼》 제35호, 2020, 89쪽. 주9. 같은 책, 94쪽. 김예솔비(영화평론가) l 영화를 중심으로 시각예술 전반에 대한 글을 쓴다. 이따금 영화 비슷한 것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