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스 콰르텟
- 감독
- 신태연
- 제작년도
- 2018
- 출연
- 김재영, 김영욱, 김규현, 문웅휘
1984년 9월 23일 저녁, TV에 등장한 한 벽안(碧眼)의 남자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스라엘 출신의 마술사 유리 겔러는 KBS 1TV에서 방송한 ‘세기의 경이 초능력 유리 겔러 쇼’에 출연하여 숟가락을 구부리고, 시계의 작동을 멈추게 하는 초능력을 부려 충격을 주었다. 방송을 본 원근각지의 시청자들 중에서는 숟가락 구부리기 기적에 동참한 사람들의 체험담이 답지했는데, 이 불가사의한 순간에 유리 겔러는 이런 말을 남겼다. “중요한 걸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숟가락을 구부린다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게 보일 수도 있죠. 그러나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대관절 웬 헛소리인가? 숟가락 구부리기가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니. 유리 겔러의 초능력 쇼는 88 서울올림픽 30주년을 기념하여 KBS에서 제작한 아카이브 다큐멘터리 < 88/18 >에 삽입되어 있다. 많은 이들이 간절히 염원하는 것은 이루어지고 만다, 는 의지를 칭송한 초능력자 혹은 사기꾼이 남긴 선문답은 이 혁신적인 다큐멘터리의 핵심을 향하는 메타포처럼 들린다. 방송 다큐멘터리의 영역을 개척했을 뿐 아니라 다큐멘터리 문법의 전형을 다시 생각하게 한 <88/18>는 2019년 ‘모던 코리아’ 연작으로 계승되어 올해 공개된 시즌3에 이르고 있다. 독립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이태웅이 기획, 연출한 <88/18>은 서울에서 하계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1988년과 2018년 사이에 놓인 30년의 시간차를 왕래하며 1980년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는지를 정의하려 한다. 과거와 미래, 파괴와 재건, 거짓과 환멸은 그 시대를 규정할 수 있는 적절한 말일까? 서울올림픽을 앞둔 한국인들에게 혼연일치된 마음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초능력자, 진짜로 우리에겐 초능력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가 말한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과 세계평화 사이의 상관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관계를 조직하는 것’은 기록과 보존, 배열, 편찬, 재배치, 해석, 재맥락화 등 동시대 다큐멘터리의 주요 의제들을 관통하는 이 문제적 다큐멘터리의 에센스이다. 기록 자료와 연구를 바탕으로 한 <88/18>는 공영 방송국 기록 보관실에 안장된 거대한 영상 아카이빙 자료들을 모아 현재 시점에서 연출된 인터뷰와 엮는다. 파운드 푸티지 또는 편찬 다큐멘터리의 관례들에 비추어 <88/18>의 참신함은 영상 아카이브 자료가 만들어진 시점의 문맥을 폐기처분하는 담대한 결정에서 나온다. 최초의 문맥을 폐기한다는 것은 새로운 문맥을 형성하겠다는 의지와 상통하는 바, 아카이브에 담긴 흔적을 모으고 이어 붙여서 재구성한 장면들은 본래 연결되지 않았던 푸티지들의 논리를 형성하여 원본에 속하지 않은 의미와 맥락을 창조한다. 환언하면, 이 다큐멘터리는 1980년대 영상 기록을 추출하여 2018년의 시점에 재배열한 뒤 시청자들에게 30년의 시간을 성찰하도록 종용하는 것이다. 가공과 재해석이라는 행위는 특정 시공간의 좌표에 놓인 기록에 부과된 고정적이고, 단일한 의미에 저항하면서 창조적 글쓰기를 실천한다. 재배열은 재해석을 요구하며 제3의 의미를 촉진한다는 점에서 대중들의 집단기억 또는 악몽을 초월하여 새로운 사유의 경로를 개척하는 활동이다. 아카이브를 매개로 한 과거와의 네트워킹이 역사, 자료, 사실에 기초한다는 가설을 이 다큐멘터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가공과 변형, 재구성을 지향하면서 자료의 역사는 창조적인 의미에 자리를 기꺼이 내어줄 태세가 되어 있다. 냉전과 근대화, 도시 개발, 기술혁명, 계급 분화 등 시대의 풍경들이 경쾌하게 흘러가며 시청자들은 말과 이미지 사이의 거리, 틈새를 메워야 한다. 올림픽을 다루고 있지만 경기 중계화면이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올림픽이라는 이벤트의 내외, 전후를 규정하는 다양한 맥락들이 어지럽게 교차한다. 흡사 북한 방송을 보는 것 같은 어조로 말하는 사람들은 시간의 덧없음을, 그 위에 얹힌 그래픽 디자이너 김기조의 형형색색 타이포그라피는 충돌과 부조화의 파토스를 자아낸다. <88/18>의 또 다른 특성은 전지적 나레이션의 부재이다. 나레이션을 통한 설명이나 정리를 회피하고 하나의 의미에 이미지를 정박시키는 틀에 박힌 배열을 경계하면서 다원적인 출처들을 드러내는 것이 플롯의 목적이다. 나레이션이 없는 대신 시청자가 최소한의 이야기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동원되는 것은 하나의 주제와 방사형으로 얽힌 이들의 인터뷰이다. 아카이브와 인터뷰는 하나가 다른 하나에 종속되지 않으며 독립적인 존재감을 가지며 투트랙으로 나란히 병치된다. 아카이브 이미지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말도 발화 시점의 의도를 배반하면서 다른 관점의 논평을 제공한다. 전체 서사를 주재하는 인물로 5공의 대통령 비서실 보좌관이었던 허화평, 건전가요 ‘아! 대한민국’을 부른 가수 정수라,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를 디자인한 디자이너 김현, 예술의 전당의 건축 설계를 맡은 건축가 김원, 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정화의 명목으로 철거된 빈민촌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 상계동 올림픽 >(1988)을 만든 영화감독 김동원, 상계동 철거민 김진홍, 컴퓨터 엔지니어 이철수 등이 각자의 위치에서 증언자의 역할을 한다. <88/18>은 잠자는 이미지를 깨어나게 하고 자료에 생명을 부여한다. 프로듀서 이태웅은 시청각 이미지를 통해 지적인 의미를 생산하는 아이디어를 탐구하고자 한다. 상호 독립적인 두 쇼트 사이에서 파생하는 아이디어를 추적하면서 관객의 마음에서 실제로 펼쳐지는 연상의 순서를 뒤집는다. 도입부에 1988년과 2018년을 평행하게 놓아 30년의 간극을 묘사하는 한 시퀀스를 사례로 들 수 있다. 1988년 ‘제5 공화국 언론통폐합 청문회’에서 국회의원 이철은 증인석에 앉은 허화평을 “5공의 핵심적인 인물”로 지목한다. 1988년의 허화평은 이철이 들려준 세평(世評)을 수긍한다. 이어지는 쇼트에서, 2018년의 카메라는 의자에 앉은 초로의 노인이 된 허화평의 깍지를 낀 채 모은 두 손을 시발로 하여 헤드를 살짝 들어 그의 몸통을 찍는다. 얼굴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화면 바깥에서는 또 다른 국회의원으로 추정되는 성명불상의 목소리가 “보안사의 실세”를 이야기한다. 다시 쇼트는 전환되어 1988년의 청문회에서 허화평이 보안사의 실세들이 누군지 설명을 요구한다. “삼 허씨(허화평, 허문도, 허삼수), 이학봉 씨, 이런 것이 실셉니다, 알았습니까? 알았지요”라고 추궁하는 화면 바깥 보이스오버에 대항하여 허화평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소립니다”라며 부인하는 취지의 답변을 한다.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여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1988년의 허화평과 2018년 허화평의 얼굴이 교차하면서, 2018년의 허화평은 “내 자신이 5공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을 해본 일은 없고, 다만 확실한 것은 5공을 이야기할 때 허화평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노라”고 말한다. 1988년의 허화평과 2018년 허화평의 나란한 배열은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이기도 한 ‘88/18’의 꼴을 제시하고 있다. “5공의 핵심적인 인물”과 “보안사의 실세”의 차이, 저 두 가지 수사와 “5공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허화평”의 간극은 무엇인가?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과 “세계평화”사이의 거리만큼일까? 아카이브 자료에 생명을 부여한다는 것은 저 말들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다. 인과적 논리에 따라 조합되지 않는 요소들을 재구성하여 상상적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는 것, 기록을 생산하는 시점의 맥락에서 벗어나 그것의 처리방식이 의미를 생성하는 전기(轉機)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인간의 마음을 조형하는 이 접근법은 의미를 생성하는, 관습적이고 자의적인 방법에 의존하지 않고 생성의 과정을 활력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생각의 대상을 제시하는 것과 생각의 과정을 탑재하는 것의 차이를 보여주는 아카이브 다큐멘터리의 수사학은 의미에 대한 세뇌를 넘어 미묘하고, 보는 사람이 알아채기조차 어려운 지적인 체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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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0년대, 이장호 의 시대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 현은 자신의 나이가 4.19와 5.16 시절에서 멈췄다고 말한 바 있다. 1980년대를 자각 있는 청년으로 통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김 현의 표현처럼 1980년에 나이가 멈췄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끝없이 흘러가지만, 멈춰 있는 의식의 시간과 공간은 집요할 정도로 제자리 걸음이다. 그 제자리 걸음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므로 제 발 밑을 더욱 깊게 파내려 갔을 것이다. 그 파내려간 자국, 나는 그것을 1980년 한국 근대의 상처라고 부르고 싶다. 1980년대 한국영화들 역시 그 상처의 흔적, 어눌한 표현으로 이루어진 상처의 자국으로 본다. 그 영화들 속에 등장한 인물들, 그들은 1960년대 한국 영화 속 주인공들보다 더 못나고 집요하며 파괴적이었다. 그 역할은 대체로 남자들이 맡았다. 남성 감독들은 그렇게 남성을 묘사함으로써 스스로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1980년대의 한국 영화도 그런 상황에서 새롭게 꿈틀거렸다. 하지만, 광란의 1980년대를 다시 되돌아본다면, 1980년대는 한국의 근대가 겪어야 될 하나의 과정이기도 했다. 독재 정권에 대한 ''힘없는 저항''은 당연히 또다른 독재 군사 정권을 낳았던 것이고, 그 독재 정권이 추동했던 경제 개발은 당연히 빈부의 격차를 극대화했고, 그 서구의 근대화를 모방한 경제 개발은 고유의 문화와 공동체의 미덕을 당연히 파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이장호 감독이 서있었던 지점은 바로 그 곳이었다. 우리가 1980년대 한국 영화를 떠올리면서 언제나 이장호를 앞자리에 세울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그래서 이장호는 독보적인 동시에 1980년대 영화 청년들에게는 ''스승''이었다. 그는 80년대 한국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주도한 인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감독이었다. 과거 '1980년 ''서울의 봄''에 때맞추어 나타난 비판적 리얼리즘 영화를 시작으로 해서...'라고 표현할 당시의 비판적 리얼리즘 영화란 바로 < 바람불어 좋은 날 >을 가르키는 것이었다. 또 당시 젊은 평론가들이 80년대 영화를 대상으로 뽑은 베스트 10에서도 이장호 의 영화는 < 바보선언 >(1위), <바람불어 좋은 날>(2위),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6위), < 과부춤 >(8위) 등 무려 네 편이나 포함될 정도였다. 80년대 이후 한국의 영화평론가들이 이장호를 가장 많이 언급한 까닭은 6,70년대 한국영화의 전통을 흡수하여 80년대에 쏟아낸 피드백 장치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장호 감독보다 여러모로 선배격인 감독들과 동년배 감독들도 그러한 역할을 했지만 그가 유독 돋보인 까닭은 가장 충무로적으로 자라났으면서도 가장 격변기의 청년의식을 잘 대변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풍부한 공식 기억이 현재의 관객들에게 기억되지는 않고 있다. 또 한국영화를 ''직업적으로'' 기억하는 평론가나 학자들 사이에서도 잊혀지고 있다. 그 망각은, 현란한 변화로 압축할 수 있는 21세기식 변화에서 가장 큰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다른 이유 또한 없지 않을 것이다. 두 가지 이유 즉, 80년대식 시선으로 이장호 의 영화들을 바라보는 방법을 잊어버린 집단 기억 상실증 혹은 현재의 시각으로 봤을 때 뭔가 석연찮은 미학의 부재 등이 그 망각 현상을 초래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는 이장호의 시대였다. 2. 이장호 라는 상처 이장호 는 < 별들의 고향 >(1974)으로 감독길로 들어섰고 다행히 이 작품은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청춘의 아름다움과 애정을 노래한 < 어제 내린 비 >(74), < 너 또한 별이 되어 >(75), < 그래 그래 오늘은 안녕 >(75) 등을 연거푸 만들던 중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5년간의 강제된 공백기간을 가졌다. 당시의 한국은 남자머리가 길다고 파출소에서 강제로 머리를 자르거나 길을 가는 여자를 불러 세워 미니 스커트의 길이를 자로 재던, 말도 안되던 시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가혹한 불행의 시기였지만 대통령의 부하가 대통령에게 총을 겨눌 정도로 국민들의 억제된 민주화 요구가 서서히 폭발 직전에 다다른 그 시절은 상대적으로 그의 의식이 첨예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기간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 바람불어 좋은 날 >(80)은 바로 그 시절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시골에서 상경한 세 청년이 결국 서울에서 쫓겨나는 모습을 그린 이 영화는 독재 정권의 경제 개발과 그 개발이 가져온 빈부의 격차와 인간성의 파괴 등을 담은 것이었다. 그는 시대의 상처를 자신의 재기작에 심었던 것이었다. < 바람불어 좋은 날 > 이후 < 어둠의 자식들 >(81), < 낮은 데로 임하소서 >(81), < 바보선언 >(83), < 과부춤 >(83)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회성 드라마 혹은 관객과 현실을 이어주는 영화들이 있는가하면, 여러모로 동의를 구하지 못한 작품인 < 일송정 푸른 솔은 >(83)이나 < 무릎과 무릎사이 >(84), < 어우동 >(85)같은 가벼운 포르노 그라피, 그의 부정적인 재능이 결집된 < 이장호의 외인구단 >(86), < 와이의 체험 >(87) 등이 그의 작품연보를 채우고 있다. 그래서 그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무척 힘들다. 사회 반영의 의지, 흥행 집착, 작가의 지향 등이 마구 뒤섞인 그의 작품연보는 보는 이들은 물론 본인조차 무어라고 꼬집어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아무튼 그는 어떤 것이라도 다 할 수 있었지만, 어떤 것을 만들어도 불안한 기간을 거치면서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를 내놓았다. 평자들의 평가가 엇갈리기는 해도, 이 작품에 대한 견해는 가장 진지하면서도 가장 실험적인 그리고 이야기와 형식의 독특한 경지를 확보한 것이라는데 대체로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장호 는 이 작품에서 민속신앙과 우리 민족의 용해된 삶, 역사적 비극으로부터 가차없이 침범 당하는 개인의 삶, 분단과 통일에 대한 뒤틀린 견해로 가득찬 사회 등을 풍부하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조명하고 있다. 이 영화만 본다면 그는 작가이자 격조 높은 예술가였다. 그러나 예술가이면서도 그는 영화 제작자였다. 판영화사를 차려서 우습고도 야릇한 작품들을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이장호를 근대 한국의 상처이자 제대로 자랄 수 없었던 1980년대 한국 영화의 상처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상처의 정확한 문맥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그의 영화와 행적을 통하여 우리는 한국영화를 이해하는 몇 가지의 개념들을 파악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한국영화의 모더니티, 신파성, 한국형 내러티브와 스타일, 집단주의, 사회문화적 맥락 등은 이장호 를 통하여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1980년대 한국영화의 뉴 웨이브, 이장호]({영상문화정보}, 2002년 여름호)에 실린 글을 토대로 다시 쓴 글이다. 이효인 (영화평론가,경희대교수) / 2003년 <프로필> 1945년 5월 15일 서울 출생 1966년 홍익대학 미술대학 건축미술과 2년 수료. < 작품 연보 > 1974 '' 별들의 고향 ''감독 데뷔 제13회 대종상 신인감독상 수상 제11회 한국 연극 영화 예술상 신인상 수상 1975 어제 내린 비 / 너 또한 별이 되어 1976 그래 그래 오늘은 안녕 1980 바람불어 좋은 날 제19회 대종상 감독상 수상 제17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영화부문) 작품상ㆍ대상 수상 1981 어둠의 자식들 (흥행 베스트) /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1982 낮은 데로 임하소서 제21회 대종상 작품상ㆍ감독상 수상 제18회 한국연극ㆍ영화예술상 작품상 수상 1983 일송정 푸른 솔은 제 22회 대종상 우수작품상 수상 1983 바보선언 시카고 국제영화제 본선 진출, 'OUTSTANDING OF MERIT' 수상 1984 과부춤 일본 키네마준보 우수외국영화에 선정 1984 무릎과 무릎사이 (흥행 베스트) 1985 어우동 (흥행 베스트) 1986 판영화 설립. 대표이사 취임 1986 이장호의 외인구단 (흥행 베스트) 1987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제2회 동경 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상 수상 1987 Y(와이)의 체험 1988 바보선언 ''과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 베를린 국제영화제 영인터내셔널포름 부문 동시출품으로 ZITY상, CALIGARI상 각각 수상 1988. 9. 제 26회 뉴욕 필름페스티발 선정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 1990 미스 코뿔소 미스터 코란도 1992 명자 아키꼬 쏘냐 1995 천재선언 제9회 기독교문화대상 영화부문 수상 < 주요 경력 > 1996년∼2000년 8월 31일 - 중부대학교 연극영화과 부교수. 1997년 - 부천시 영상도시화 PROJECT 연구원 1997년 - 제1회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1999년 - 창작 오페라 ''황진이'' 연출, 예술의 전당<오페라하우스> 공연 2000년 - 중국문화부초청 8월 24일, 25일 북경 21세기극장 오페라 ''황진이''공연 연출 2000년 - (사) 한국영화감독협회 부이사장 2001년 - 2002 FIFA WORLD CUP KOREA/JAPAN TM 공동개최기념공연 오페라 ''황진이'' 도쿄 신국립극장공연(4월 15ㆍ16일) 연출 2001년 - 전주시 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 2002년 - 미주 한국일보 초청 오페라 ''황진이'' LA -Hollywoo d KODAK 극장 공연 (8월7. 8일) 연출 2002년 11월 서울시문화상 수상. 2003년 현재 - 전주대학교 예체능영상학부 연극영화전공주임교수 < 주요 논문 > 「부천 영상산업화 연구보고서 」(공동), 부천시 , 1997년. 「일본문화개방 이대로 좋은가?」(단독), 아태평화재단 , 1998년. 「큰 정신 작은 영화」(단독), 한성대학교 , 1999년. < 주요 저서 > 「모두 주고 싶다」 태멘출판사 , 1980년 「바보처럼 나그네처럼」 도서출판 산하, 1987년 < 기타 영상제작배급실적 > 1986년 - 이장호의 외인구단 제작배급 1987년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제작배급 1987년 - Y의 체험 제작배급 1988년 - 깜동 공동제작배급 1988년 - 이장호의 외인구단2 공동제작배급 1989년 - 독일 이탈리아 합작영화 '' 모모 '' 수입배급 1989년 - 베르린 국제영화제 은곰상 수상작 ''죄''(영국제작)수입배급 1989년 - 미스코뿔소 미스터코란도 제작 배급 1990년 - 미국영화 ''헬레이저'' 수입배급 1991년 - 미국영화 '' 헬 바운드 '' 수입배급 1992년 - ' '숲 속의 방 '' 제작배급 1992년 - '' 핸드백 속 이야기 '' 제작배급 1994년 - KBS 텔레비젼 특집드라마 3부작 ''너의 뺨에 입 맞추리'' 외주 제작